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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의 도시에 대한 내용은 리베리아(코스타리카) 문서 참고하십시오. 라이베리아 공화국 Republic of Liberia | ||
국기 | 국장 | |
The love of liberty brought us here 자유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 ||
면적 | <colbgcolor=#ffffff,#1f2023>111,369km² | |
인구 | 5,437,249명(2024년) | 세계 121위 | |
민족구성 | 크펠레족 20.3%, 바사족 13.4%, 그레보족 10%, 지오족 8%, 마노족 7.9%, 크루족 6%, 로마족[1] 5.1%, 키시족 4.8%, 골라족 4.4%, 기타 20.1% | |
종교 | 기독교 85.6%, 이슬람 12.2%, 토착 신앙 및 기타 2.2% | |
대통령 | 조셉 보아카이 (Joseph Boakai) | |
부통령 | 제레미아 쿵 (Jeremiah Koung) | |
하원의장 | 조너선 K. 코파 (Johnathan K. Koffa) | |
대법원장 | 시에-아-은예네 갸페이 유오 (Sie-A-Nyene Gyapay Yuoh) | |
민주주의 지수 | 5.57점, 혼합된 체제(2023년) (167개국 중 79위) | |
수도 | 몬로비아[2] | |
공용어 | 영어 | |
GDP | GDP: $43억 4,700만(2023) PPP: $97억 1,800만(2023) | |
1인당 GDP | GDP: $800(2023) PPP: $1,789(2023) | |
통화 | 라이베리아 달러[3] | |
남북수교현황 | 대한민국: 1964년 3월 18일 북한: 1975년 7월 3일[4] | |
여행경보 | 여행자제: 전 지역[5] |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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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수도는 몬로비아. 공용어는 영어. 인접국가로는 시에라리온, 기니, 코트디부아르가 있다.2. 국가 상징
2.1. 국기
미국이 해방노예를 식민(植民)시켜서 건국하였던 영향 때문에 국기도 미국의 성조기와 비슷하다[6]. 별이 50개가 아닌 큰 별 1개로 되어 있고 공식 명칭은 '외로운 별'(또는 '고독한 별') (Lone Star)이라고 불리는데 독립 당시 최초의 아프리카 독립국이었음을 상징한다. 빨간색은 용기, 흰색은 미덕, 파란색은 아프리카를 의미한다. 줄이 11개인 것은 독립문서에 서명한 지도자 11명을 상징한다.
국기의 유사성 때문에 종종 미국을 뜻하는 채팅이나 글에서 성조기 이모지를 써야 하는 곳에 라이베리아 국기 이모지를 잘못 쓰는 사례가 빈번하다. 레딧에는 아예 관련 서브레딧도 있다. #
그리고, 라이베리아의 독립은 사실상 미국이 강제로 시킨 것이나 다름없는데 알래스카 구입을 했던 것처럼 돈지랄을 시전할 정도로 식민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었지만, 미국에서 저 멀리 떨어져있는 아프리카 식민지를 운영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Liberian County Flags - Hello Internet Animated |
15개 주(County) 중에서, 시노에주(Sinoe County)를 제외한 주(州)깃발들이 상당히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정도가 정말 오죽하면 디자이너들이 자발적으로 다시 만들어 올려주는 소잿거리로 활용하고 있다.[7]
2.2. 국장
현재 국장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나무와 선박, 태양과 새의 문양은 본래 미국 식민 협회의 휘장에서 온 것이었다. 1847년 라이베리아가 독립하면서 현재 국장이 채택되었고 이후 몇 차례 디자인의 변화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3. 역사
3.1. 건국과 근대
원주민 역사에 대해서 대부분을 구전과 고고학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불분명한 점이 많으나, 원주민들의 상당수가 12세기에서 16세기까지 서부와 북부에서 왔다고 추정된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과 접촉하면서 '후추 해안', '곡물 해안' 등의 이름이 붙여진 지역 인근이다. 1602년에 네덜란드가 라이베리아 일대에 마을을 세운 적이 있지만 1년 만에 관두었고 영국도 라이베리아 일대를 식민화하려다가 중단했다. 이 나라가 세워지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아무래도 19세기 미국의 영향이 매우 강하다.훗날 남북 전쟁을 불러 일으킨 흑인 노예 문제가 심각해지는 와중에 1821년 미국에서는 "흑인을 다시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자"는 생각을 하였다. 결국 오갈데 없는 흑인들이 미국식민협회의 주도 하에 아프리카로 역이민을 했고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러나 미국에 잘 정착한 흑인들은 굳이 미국을 떠날 생각이 없었고, 사회 하류층들만이 작은 희망을 품고 라이베리아로 이민을 갔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라이베리아는 당대의 유럽 서방 열강들도 포기한 땅이었다는 것이었다. 당장 쓸 수 있는 자원은 아무것도 없으며 말라리아와 적대적인 원주민들이 가득하였고, 무엇보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그 일대로 보내는 등.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후에 어떻게든 정착을 했지만, 정착이 쉬운 일은 아니라서 초기 해방노예들은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면서 정착하는 데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과 관계 없이 미국 내의 흑인 노예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고, 흑인의 라이베리아 이주안도 일시기를 제외하고는 어영부영 무위로 돌아갔으며, 남북 대립을 막는데는 어떠한 효과도 없었다. 거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세워졌던 반투스탄 미승인국들과 같은 아이디어였다.
미국령 라이베리아 식민지는 1847년 독립하여 아프리카 최초의 공화국인 라이베리아가 되었다. 독립 직후에는 트루휘그당과 공화당간의 양당체제로 1870년대까지 이어졌지만 1878년 이후부터 1980년까지 휘그당 일당체제가 되었다.[8] # 결과적으로 보면 이 독재체제가 결국 라이베리아를 몰락시켜 아이티와 동급의 막장국가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그 옆에는 메릴랜드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854년까지 식민지로 경영되다 별개의 공화국으로 독립한 뒤 1857년에 라이베리아에 합병된다.[9]
라이베리아는 미국의 지원 하에 건국되었기 때문에 당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많은 열강들이 미국과의 충돌을 우려해 라이베리아를 정복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독립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흔히 에티오피아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시대를 겪지 않은 둘뿐인 나라'로 소개되기도 한다. 다만 제국주의적 식민지가 아닌 것이지, '식민지'의 기원적 의미로 치자면 아주 전형적인 식민지이다.[10]
미국계 해방노예(Americo-Liberian)들은 현지 부족들과 관계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고, 영어를 사용하고 미국에서 온 자신들이 야만스런 토착 원주민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겨 미국식 노예제와 신분제도를 도입했었고, 토착민들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하는 차별도 가했다. 투표권도 이 당시에는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에게 주는[11] 제한투표제를 체택했는데 초기 100년간은 기존의 원주민들이 살던 오두막을 가치가 있는 부동산으로 인정하지 않아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 선거권을 가지지 못해 실질적으로 과두정으로 운영되었고, 농장경영으로 얻은 세금도 주로 몬로비아를 비롯한 대도시들 위주로 투자하면서, 지방민들은 그 헤택을 누리지 못했다.
원주민들도 영어를 배우고 개신교로 개종하면 시민권도 주는 식으로 출세의 기회를 주었다고는 하지만, 기존의 흑인 부족들은 엄연히 외부인인 이런 해방노예들의 상전짓에 대해 백인국가 물 좀 먹었다고 옛날 일도 잊어먹는 엉클 톰, 즉, 검은 백인이라며 아니꼬와했다. 흑인 원주민들 중에서도 순진하거나 지적 장애가 있는 미국계 해방노예들을 속여서 다시 노예로 팔아버리는 경우도 있었기도 했고, 반대로 노예제가 페지된 1920년대에도 찰스 D. B 킹 대통령이 직접 지방민들을 속여 스페인령 기니(지금의 적도 기니) 당국과 짜고 계약노동자(사실상의 노예)로 팔아버리는 비리를 저질렀다가 탄핵당하는 추문도 있었다. 이러한 차별로 인해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라이베리아 당국과 토착민들의 갈등이 심했고, 1904년에 토착민 전원에게 시민권을 주어서 제도적인 차별은 철폐되었지만 그럼에도 1940년대까지도 부동산에 기반한 제한투표제로 보통선거가 실시되지 않아 투표권자는 소수에 불과했고, 보통선거가 실시된 이후로도 휘그당 일당체제라 부정선거는 일상적이었다.
이들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은 1970년대까지도 휘그당의 당권을 차지하며, 농장이나 합작기업같이 경제적으로 이권이 되는 사업에 손을 댔고 그러면서도 토착 부족의 왕족들 등 상층부와 통혼하며 기득권으로 군림했다. 아메리코 라이베리안들은 영어를 구사하면서 서양식 주택에서 살며 소울푸드를 비롯한 미국 요리, 양복, 그리고 개신교를 비롯한 미국 문화와 문물들을 라이베리아에 대대적으로 들여놓았다. 이들은 토착신앙과 이슬람교를 여전히 신봉하고 토착언어를 제1언어로 구사하는 원주민들과[12] 문화적으로 큰 차이점을 보였다.
사실 흑인들이 단일 집단도 아니었고,[13] 라이베리아는 대다수 흑인 해방 노예들에게 연고지도 아닌 생판 처음 보는 땅이었다. 17~19세기 노예 무역으로 인한 노예 수 증가에 서구 국가들만큼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흑인들도 참여했다는 점은 학계에서도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19세기 노예 무역의 쇠퇴에도 아프리카 내부에서 장기간 존속되어 온 노예 제도는 바로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이 내부 발전을 위해 활용하기도 했다.[14]
그나마 변명하자면 19세기 중엽은 아프리카의 농산물 플랜테이션 사업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노예를 비롯한 노동력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시기긴 했다. 라이베리아만이 돌출된 행동을 한 건 아니라는 것. 애초에 본국이었던 미국도 아직 흑인 노예 제도가 폐지되지 않은 상황인데 사고의 전면적 변화를 기대하는 게 넌센스일 수도 있고. 게다가 이전에 네덜란드와 영국도 식민화를 중단하고 물러날 정도로 라이베리아가 그다지 풍요로운 곳도 아니라서 노예 무역이 그나마 경제적으로 괜찮은 사업이긴 했다. 물론 잘한 일은 절대 아니다. 최소한 본인들도 노예 생활을 했던 케이스기에 더 비판받을 부분이다.
이 미국계 흑인들과 현지인들의 충돌을 나타내는 기념일도 있었는데, 이른바 '마틸다 뉴포트 데이'이다. 미국계 여성인 마틸다 뉴포트(Matilda Newport)를 기념하는 날이다. 1822년 12월 1일, 라이베리아 독립 이전 미국계 흑인들과 현지인이 무력 충돌이 벌어졌는데, 이 때 마틸다 뉴포트는 직접 대포를 쏴서 현지인들을 공격해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걸 기념하는 것...... 이후 이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은 이 일을 숭고한 투쟁으로 미화하고 매년 12월 1일을 이 마틸다 뉴포트 데이로 지정해서 기념일로 삼았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현지인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역사에 대한 비판이 생겨났고 또 해당 사건 자체의 진실성 여부도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쿠데타로 집권한 최초의 토착민 출신 대통령 새뮤얼 케니언 도 정권 때 이 기념일을 공식 폐지하였다.
그래도 유럽 및 미국과의 커넥션을 통해 라이베리아는 아프리카 중에서는 무역에 있어 교육 등의 면에서 유리한 점을 차지하고 있어 초창기에 이를 통해 현지 흑인들을 회유해서 영토확장을 단행하기도 했고, 국내외적으로 어느 정도 산업화에 성공하고, 이를 통해 대대적인 이민유치에 나섰다면[15] 최소한 남아메리카 국가들 정도의 경제력은 갖출 수 있었을 것이나, 라이베리아가 심혈을 기울렸던 커피와 설탕농업이 쿠바 및 브라질과의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192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경제적으로 장기간 침체되었고, 이로 인해 내부불만이 가중되어 내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독립을 하긴 했으나 말이 좋아 독립국이지, 미국의 괴뢰국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독립 이후 미군이 주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16] 그나마 라이베리아가 경제적으로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것은 1920년대부터였고 이후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경제가 돌아가서 아프리카에서는 잘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중진국 정도의 수준이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유럽 아프리카 국가들을 무시하는 라이베리아에 대해, 유럽 열강들과 우간다를 비롯한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 그리고 아프리카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이를 상당히 안좋게 봤다. 그리고 라이베리아에서 내전이 터지자 곧장 반군 쪽에 무기를 지원하며 친미 아메리코 라이베리아인 정권 타도에 힘을 보탰다. 이 시기는 상당히 혼란스러워 심지어 장교도 아닌 상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정도였다.[17] 그럼에도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때는 전쟁 발발 일주일만에 미국보다 먼저(1917년 선전포고) 독일 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내전 전 라이베리아의 역사 요약 참고자료[18] 참고자료 2[19]
3.2. 현대, 제1차 라이베리아 내전
자세한 내용은 제1차 라이베리아 내전 문서 참고하십시오.3.3. 찰스 테일러의 집권과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
자세한 내용은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 문서 참고하십시오.3.4. 이후
엘런 존슨 설리프(Ellen Johnson-Sirleaf, 1938년 10월 29일 ~ ) ([age(1938-10-29)]세)
2005년 10월 11일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치러졌다.
1차 투표에서는 22명의 후보가 출마해 조지 웨아 후보가 29.8%, 엘런 존슨 설리프 후보가 19.7%를 득표했다. 1차 투표의 득표율만으로 볼 때는 결선투표에서 웨아가 당선될 것이 유력해 보였고 많은 해외 언론이 그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2005년 11월 8일 2차 투표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는 10월 11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의 결선투표였다. 1차 투표에서는 과반수 득표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거는 매우 평온하게 진행되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국 3,000여개 투표소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배치되었지만 우려할 만한 사태는 없었다.
통신시설과 도로부족으로 선거결과가 확정되려면 1주일은 걸린 것이라는 예측이었으나 라이베리아인들이 높은 관심을 반영한 듯, 선거후 이틀이 지나자 존슨설리프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지 웨아 측에서는 즉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일부 투표함에서 유권자수보다 많은 투표용지가 나왔다는 것이 웨아측의 주장이었으나 사람들은 대체로 무관심했고 대세에는 지장 없다는 반응이었다. 유엔이나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의 선거감시단도 이번 선거가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최종결과는 존슨설리프 59.4%, 웨아 40.6%다
라이베리아는 2006년 중도 자유주의 성향인 통일당(Unity Party) 소속 엘런 존슨 설리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첫 여성 대통령인 설리프는 기초교육 보급, 평화 정착 등의 성과를 낸 공로로 201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재선에 성공했다. 물론 내전으로 인해 GDP는 여전히 세계 최하위에 워낙 장기간에 걸친 내전의 결과로 국가가 피폐해지고 사회적 손실이 막대한데다 지역 여성단체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현재도 심각한 상태로 매춘을 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많다. 게다가 부룬디처럼 무장해제를 거부한 채 버티는 일부 집단들이 다시 들고일어날 가능성도 있어서 아직은 갈길이 멀다.
실제로 2007년 3월 존슨설리프 정부는 정부기금을 횡령한 혐의로 과도정부 대통령 브라이언트를 체포하여 기소했으며, 2007년 7월 17일 브라이언트 과도정부에서 국회의장을 지낸 조지 쿠쿠(George Koukou)와 새뮤얼 도 정권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찰스 줄루(Charles Julue)를 중심으로 한 전직 장교들의 쿠데타 기도가 있었으나 사전에 적발되어 실패했다. 여담으로 줄루는 1994년에도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ECOMOG에 의해 진압된 적이 있다.
한편 존슨설리프는 대통령 임기를 2번 연임하며 12년 임기를 모두 채웠다. 이후 유럽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한 바 있는, 지난 대선에서 존슨설리프에게 패한 조지 웨아가 2017년 10월 10일 치러진 대선에 출마했고, 스포츠 스타의 명성 등에 힘입어 1차 투표에서 39.0%를 받아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그런데 문제는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전직 독재자 찰스 테일러의 전 부인 주얼 하워드를 선택하고 옥중의 테일러 본인과도 통화해서 논란이 되었다.# 실제 선거에서 테일러의 정당이었던 극우 국민애국당과 연합을 해서 이겼는데, 웨아 본인부터가 우파 진영 소속이라 이쪽 지지자들의 기반을 다지려는 목적인 듯하다.
하여튼 이러저러한 논란 끝에 조지 웨아는 결선 투표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2018년 1월 22일에 취임했다. # 그리고 찰스 테일러의 전 부인 주얼 하워드 역시 부통령이 되었다. 전 부인이라고 보기도 뭐한게, 찰스 테일러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면, 내 전 부인 주얼 하워드 테일러에게 투표하라. 주얼이 당선되면 나도 감옥에서 나갈 수 있다”라는 음성을 녹음해 뿌릴 만큼 그녀를 정치적 동지로 여기고 있으며, 덕분에 그의 근거지인 '봉 카운티'에서 주얼 하워드는 상원의원으로 당선될 만큼 테일러의 대리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때문에 그와 그녀의 세력을 흡수한 조지 웨아 역시 테일러에게 포섭되어 라이베리아 정치에 다시 테일러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2019년 6월 7일 조지 웨아 정권의 경제 부진과 고물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몬로비아에서 발생했다. #
2021년 7월 18일에 라이베리아 앞바다에서 선박이 침몰해 최소 15명이 실종됐다.#
2023년 10월 10일 열린 라이베리아 대선 1차 투표에서 현 조지 웨아 대통령이 43.83%의 득표율로 43.44%를 득표한 조지프 보아카이 전 부통령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며 1위에 올랐으며,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한 후보가 없어 상위 득표자 2명이 11월 14일 결선투표를 치렀다.# 최종적으로 사실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상황이다.
4. 전쟁 범죄에 대한 처벌 부재
라이베리아 내전이 끝나고 과도기 정부가 들어설 동안 라이베리아에서는 1979년 1월부터 2003년 10월 14일까지 라이베리아에서 일어난 전쟁범죄를 보고해 '국가 평화, 안보, 통합 및 화해를 촉진'하자는 목적으로 2005년 5월에 진실화해위원회(TRC)가 세워지고 2009년 7월 1일에 2권에 총합 491페이지 가량의 최종 보고서가 발표되었으나 처벌을 받은 사람은 전혀 없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범죄 조사 임무 정도만 부여받았고, 정부로부터 적절한 자금도 지원받지 못한 데다가 직원의 질적 수준과 인프라도 열악했기 때문이다.[20]그리고 TRC는 내전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만행 재발 방지를 위한 개혁, 새로운 전범들에 대한 추가 조사와 몇몇 인사들에 대한 사면[21]을 제시하고, 실제로도 라이베리아 정부가 따라야 할 개혁 권고안을 정확히 47건이나 제출하긴 했지만, 이 권고안들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을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이전의 전쟁 분파와 연루되면 30년 동안 공직을 맡거나, 임명되거나, 선출되는 것이 금지된다'는 내용으로 50명의 인사가 담긴 블랙리스트에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엘런 존슨 설리프도 있었기에 큰 논란을 빚었다. 이 논란이 터지자 설리프 대통령은 2009년 7월 26일에 '테일러의 의도의 진정한 본질이 알려졌을 때 그에 대해 나보다 더 열렬히 비판한 사람과 강력한 반대자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2011년 1월에 라이베리아 대법원은 TRC 보고서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 중 한 명에 대한 재판에서 '다수의 개인이 공직에 오르는 것을 금지하는 TRC의 권고는 열거된 개인의 적법한 절차에 대한 권리를 위헌적으로 위반한 것이므로 TRC가 제안한 금지 조치를 정부가 시행하는 것은 위헌이다.'라는 판결을 내리며 TRC의 권고 사항 중 상당 부분이 취소되었고, 이렇게 나이지리아 내전에서 반인륜 범죄를 지원하거나 아예 직접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은 과장 전혀 안 보태고 모든 만행의 총책임자이자 헤이그로 끌려간 찰스 테일러 전 대통령 1명을 제외하면 전부 합당한 처벌을 받기는 커녕 라이베리아에서 멀쩡히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22] 심지어 라이베리아에서는 르완다,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에서와 달리 국제재판소가 설립되지도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만약 처벌을 한다면 모든 사람이 살인으로 기소받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23] 결국 이 때문에 라이베리아에서는 다른 나라였으면 벌써 사형이 되고도 남았을 극악무도한 전범들이 멀쩡히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24]
라이베리아 내전 시기의 주요 군벌 지도자로는 프린스 요미 존슨(Prince Yormie Johnson, 1952~)이 있었는데, 프린스 존슨은 찰스 테일러의 라이베리아 국민애국전선(NPFL)의 최고 훈련 책임자로 일하며 라이베리아 내전을 일으킨 주범인 데다가 라이베리아 독립국민애국전선(INPFL)[25]을 이끌며 자신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특히 부하들에게 새뮤얼 케니언 도 전 대통령을 잔인하게 처형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사실상 1차 라이베리아 내전에 있어서 찰스 테일러에 버금가는 2인자나 다를 바 없는 인물이었다.[26] 존슨은 케니언 도 전 대통령의 친구와 군인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부하들조차 '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죽인 것으로 유명했고, 미국의 타이어 제조사 파이어스톤(Firestone)의 경영진들을 납치, 고문하기도 했으며, 특히 미국 출신 크리슈나 신봉자로 라이베리아로 봉사를 떠난 흘라디니 데비 다시(Hladini devi dasi, 1949~1990)가 존슨에게 사람들을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보내자, 이에 분개한 존슨은 그녀를 살해하도록 지시하여 1990년 9월 13일에 그녀와 그녀의 신자 5명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27] #
그러나 프린스 존슨은 죗값을 제대로 치르기는 커녕 오히려 1997년에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기독교인 복음주의 설교자로 변신했고,[28] 설교자로서의 평판은 좋았는지 설교자로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며, 도의 가족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기를 '거듭난'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내전 종전 후 2005년에는 당당하게 고국으로 돌아온 후 동년에 있던 선거에서 자신의 고향이자 지역 기반인 님바 지역에서 상원의원으로 출마하고는 당당히 당선되었다. 이후 존슨은 2006년부터 님바 지역의 상원의석에 앉고는 2023년 현재까지 무려 17년 동안 현역 상원의원 자리에 있으며, 상원 국방위원회 위원장도 역임한 적도 있고 2011년에는 문자 그대로 라이베리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까지 했다. 결과는 11.6%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29] 특히 그는 2010년 9월 BBC와의 인터뷰에서 "누구도 내가 특정인을 고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파렴치한 망언을 날렸으며, 자신은 압제적인 체제에 맞서 국민을 해방시키려 싸웠다는 점을 강조하고 다만 내전 기간 주민들이 고통을 입었다면 그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만행을 남이 한 것처럼 말하며 자기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때 수백 명의 민간인을 밧줄로 묶어놓은 채 강물에 빠뜨려 익사시킨 전적이 있는 한 장성도 한때 버젓이 라이베리아의 상원의원을 지낸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라이베리아 내전 당시의 반군 지도자 조슈아 밀턴 블라히(Joshua Milton Blahyi, 1971 ~).
심지어 라이베리아에서 손꼽히는 최악의 학살자가 목사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라이베리아 내전 당시 반군 지도자로 자신이 TRC 앞에서 증언한 것으로만 최소 2만 명 이상을 학살한 조슈아 밀턴 블라히인데, 그는 9살~10대 초반의 소년병들과 함께 신발을 제외한 옷을 다 벗은 채 적에게 돌격을 하기도 해서 이른바 "엉덩이 깐 장군(general butt naked)"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블라히는 라이베리아 내전이 끝날 무렵이었던 1996년에 자신의 손에 묻은 어린아이의 피를 보고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노예가 되지 말라'는 환상을 봤다고 주장하며 이 '경험' 이후 기독교로 개종하고 복음주의 설교자가 되었다. 참고로 밀턴 블라히는 자신이 목사가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부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서기 전에 우리는 보통 술과 마약에 만취가 되어 동네 십대 아이를 희생물로 바치고 이 아이의 피를 들이킨 다음 완전 나체가 되어 형형색색의 가발을 뒤집어쓰고[30] 민간인들로부터 탈취한 핸드백을 들고 다녔다. 우린 길에서 맞닥뜨리는 누구든지 살육했고 이들의 머리를 잘라내어 축구공으로 썼다. 우린 완전히 (술과 마약에) 취해서 벌거벗고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고 살의만 등등했었다. 우리는 수백 명을 살해했다. 사실 몇 명을 죽였는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그러다가 2004년 6월에 하나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하나님은 내가 영웅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고, 그 후부터 나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목사로 활동하며 과거 피해자들을 찾아 용서를 구하고 있는데[31], 자신 밑에서 학살을 자행한 부하들과 함께 뻔뻔하게도 가나에 있는 라이베리아 난민들을 찾아가 사역자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2007년에는 전직 군인들과 거리를 부랑하는 아이들, 마약 중독자들이 소년병과 마약 중독자 농업, 건설 분야에서 일하며 사회에 재통합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정부기구인 폭력에 저항하는 여정(Journeys Against Violence)을 설립하고는 공개적으로 "프린스 존슨 같은 전직 군벌들의 개별적인 역할과 그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재판을 받아야 한다. 전범 용의자를 기소하기 위해 라이베리아에 전범 법원을 설립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어떠한 전쟁 범죄에도 가담한 적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후 블라히는 여성 목사와 결혼해 4명의 자식을 낳고 평온히 살고 있으며, 블라히의 어머니는 옛 소년병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아들을 보고 '착한 사람'이라 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망언들을 일삼으며 자신을 정당화하다가 지난 2008년 1월 15일,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에서는 내전 당시 군벌들의 범죄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진실화해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는데, 블라히는 신발부터 바지, 셔츠까지 모두 하얗게 차려입은 채 청문회에 출석했다. 이 청문회에 증거사진들이 제출되었는데 블라히가 이끌던 ‘벌거벗은 엉덩이 연대’의 소년병들이 사람의 심장을 먹고 있는 모습, 거리 교차로를 사람의 뼈로 장식하는 모습, 처녀 소녀들을 윤간하고 있는 모습들이 찍혀 있었다. 블라히는 자신의 나신이 탄환을 보호해준다고 믿어서 소년병들도 신발만 신은 나체로 전투에 임하게 했으며, 학살 후에는 심지어 그의 부대가 문자 그대로 악마만도 못한 짓을 저질렀다는[열람주의] 잔학행위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그는 현재까지도 목회자로 살아가고 있다.
2013년 시점에서의 밀턴 블라히를 다룬 이 기사와 2021년에 라이베리아 토크쇼에 출연해 '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모를 빼앗긴 아이들 때문에 거의 매번 후회하며 산다'고 말했다는 것을 보면 농담이 아니고 그야말로 그 태연함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렇게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전혀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사회에 득시글거림에도 라이베리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과거의 비극을 들춰내지 말고 그냥 묻어두자는 여론이 더 강하다고 한다. 심지어 헤이그 재판을 받고 있을 당시의 인물들 가운데 우두머리 격인 찰스 테일러 대통령을 지지하는 간판이 몬로비아 거리 곳곳에 걸려 있고 심지어는 '테일러를 사랑하는 모임'이 운영하는 웹사이트까지 만들어졌다. 사실 이 정도의 혼란상이라면 우리가 소위 문명사회에서 배우고 지켜오는 도덕률 자체가 의미를 잃게 되는 아노미현상이 벌어질 법도 하다. 이를테면 문명사회에서라면 사람 한명을 죽여도 죄책감을 크게 느끼고 자수하거나 PTSD에 시달리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애들도 사람을 킥킥대면서 죽이는 것이다.
또한 테일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라이베리아에서 전범 재판을 해야 한다면 라이베리아 국민 모두가 피고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 "우리들 중에 손에 피 묻히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냐?"라는 궤변을 펼치면서 전범 재판에 반대를 하기도 했다.[33]
충격적인 사실은 라이베리아의 많은 가정에서는 강간을 당한 딸을 갖고 있는 동시에 군대에 끌려나가 남의 집 딸을 강간 살해한 아들을 두고 있는 집안이 숱하게 많이 있는 까닭이 있을 정도로 처벌 받을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쉽게 범죄자 처벌을 주장할 수 없는 난감한 처지에 있긴 하다. 그렇게 보면 여성과 어린이들이 가장 두드러지는, 진정한 피해자인 참극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차피 가해자 본인이 평생 고통받을 테니 법적으로는 가능한 용서하고 잊자는 모양이다.
나아가서 라이베리아 역시 칠레 같은 다른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확산은커녕 자국의 이익만 따져가며 필요에 따라 독재자나 전범들도 지원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1973년 칠레 쿠데타 당시 미국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지원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독재자들을 지원한 헨리 키신저같은 당대 미국 정치인들이 하급 전범으로라도 처벌받는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라이베리아의 반군 사령관 출신 인사가 이례적으로 스위스에서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 그리고 스위스 법원측은 반군 사령관 출신 인사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5.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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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의 정치 정보 | ||
부패인식지수 | 25점 | 2023년, 세계 145위 |
언론자유지수 | 64.34점 | 2023년, 세계 66위 |
민주주의 지수 | 5.57점 | 2023년, 세계 79위 |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조상들의 모국인 미국처럼 대통령 중심제를 하고 있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 임기는 6년이고 1회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 연임할 경우 대수는 새로 매겨지지 않고 12년 임기를 통째로 한 대로 센다.
5.1. 역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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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참조
6. 군사
라이베리아군 문서로7.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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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내려온 내전으로 아프리카에서 최하위권으로 경제가 내려앉은 나라였고, 현재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파나마의 뒤를 이어 세계 제2위의 선박보유국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단, 이 중 외국 소유 선박이 90%, 아니 99%가 넘는다. 그냥 연안 어업용 통통배를 빼면 전부 다 외국 선박들이라고 보면 된다. 외국 소유 선박이 라이베리아 선적으로 등록하는 이유는 세금이 싸고 규제가 약하니까. 편의치적(FOC) 목적으로 등록하는 것이다. 선박 보유 1위는 파나마이며 역시 같은 이유로 외국 선박이 잔뜩 등록되어 있다. 가끔씩 국내 뉴스 선박 관련 사고를 보면 한국 영해에서 파나마 선적 **호가 라이베리아 선적 **호와 충돌했다 이런 기사를 보게 되는데, 뜬금없이 이역만리 먼 나라의 배들이 왜 한국 영해에 있나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그게 다 이런 이유 때문. 전세계 배의 40%는 파나마, 라이베리아, 마셜 제도에 등록되어 있다. 참고로 2019년 기준으로 '실제' 선박보유국 1위는 그리스이다. 그 뒤로 일본, 중국이 있으며 한국은 8위. #
미국, 미얀마와 함께 미터법 단위계 같은 것을 쓰지 않는 나라다. 오죽하면 이 문제로 미터법 좀 쓰라고 해외에서 봉사까지 오겠나. 물론 이는 미국의 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깊은 우호관계를 맺음에도 라이베리아가 아프리카에서도 그리 큰 나라가 아니라서 지원금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고 부패문제도 걸려있기도 하며, 세계에서 제2위의 선박보유국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인구가 별로 많지 않은데다가 자원이 많음에도 오랜 내전의 여파로 산업은 낙후되었으며 제대로 된 기업도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라이베리아는 전세계 실업률의 하드캐리를 담당하는 곳이며, 실업률 통계가 보통 실제 실업 문제를 축소화해서 나타내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액면적인 실업률 자체가 70%에 인접하는 곳이었다. 2008년발 경제위기로 아프리카까지 영향을 받게 되자 라이베리아의 실업률이 곧 70%의 장막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는데 결국 2011년에 CIA에서는 라이베리아의 실업률이 7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 사실상 실업률 추계를 포기해버렸다. 이 정도 단계에서는 실업률 통계가 실질적 의미를 거의 상실할 정도가 된다. 고용 창출을 논하기 이전에 이미 정부는 그냥 호구가 된 지 오래다. 거기다 암시장의 활성화 등으로 완벽한 헬게이트가 열려있기 때문에 이 정도 단계에선 정확한 수치를 내는 것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이다. 물론 공식 실업률이 아닌 비공식 실업률은 70% 보다는 낮다.
자원으로는 다이아몬드가 생산되지만 이마저도 빈곤층이 70%에 달한다.
8. 문화
애초에 건국 자체가 미국에서 온 해방노예들 주도로 이뤄지다보니 문화에 있어서도 미국의 영향이 지대하다. 다만 마냥 미국의 영향만 받은건 아니고 해방노예가 도착하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전통문화도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으며 서로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나라치고는 비만율이 낮은 편이다. 물론 이는 국민들 다수가 냉장고, 세탁기같은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가질 여유가 없고, 햄버거, 피자같은 패스트푸드 자체가 고급 음식 취급받는지라 살을 찔 요인이 대폭 감소한 것이 원인이기는 하다.또한 야드파운드법을 유일한 도량형으로 사용하는 나라 중 한 곳이다. 그리고, 미얀마에서도 야드파운드법을 포함한 미얀마식 도량형을 사용한다.
8.1. 언어
라이베리아는 공용어가 영어다. 라이베리아 영어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의 영어권 국가들과 달리 미국 영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특징이다. 일상생활에서는 크레올어를 쓰는 경우도 존재하며 소수민족들의 언어(로마어 등)도 쓰이는 경우도 있다.8.2. 스포츠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미식축구와 야구는 인기는 전혀 없고 축구와 농구가 인기가 많다. AC 밀란과 첼시 FC에서 뛰었던 전설적인 축구선수 조지 웨아가 이 나라 출신이다. 웨아는 2005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리고, 2017년 대권에 다시 재도전하면서 11월 25일까지 2차 결선투표의 결과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12월 28일 2차 결선투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자신이 사비까지 들여가면서 라이베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FIFA 월드컵에도 도전했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나이지리아에게 승점 단 1점 차이로 밀려서 아깝게 탈락했던 적도 있다. 이 나라의 축구에 대한 자세한 건 라이베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고 있는 캐나다인 알폰소 데이비스가 라이베리아 출신이다.
2018년 K리그 2 소속의 안산 그리너스 FC가 이 국가 출신의 공격수인 세쿠 코네를 영입했다.
9.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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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미국 | 시에라리온 | 기니 | 나이지리아 |
주변국과는 수교를 맺고 있고 아프리카 연합의 정회원국이다. 하지만 시에라리온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경제적으로 라이베리아는 코트디부아르와 깊은 편이다.
19세기부터 미국과의 관계가 깊은 편이다.
9.1. 대한민국과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한국-라이베리아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9.2. 북한과의 관계
1973년에 수교하였으나 1988년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주도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으로 그 해 단교하였다.9.3. 라오스와의 관계
2015년 7월 21일, 라오스 참파삭 축구팀으로 이적한 라이베리아 출신 축구선수 23명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갈등이 생겨난 적이 있었다.# 게다가 이중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된 것이 알려졌다.#9.4. 프랑스와의 관계
라이베리아는 프랑스와 수교했다. 라이베리아는 프랑코포니 회원국이 아니지만, 주변국들이 프랑스어권 국가이기 때문에 일부 교류가 존재한다. 그리고 라이베리아 국경지역에는 프랑스어가 일부 통용되기도 한다.2014년 9월 17일, 국경없는 의사회는 라이베리아에 파견된 프랑스인 의사가 에볼라에 감염돼 사망했다고 밝혔다.#
9.5. 미국과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미국-라이베리아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미국과는 우호적인 편이다.
9.6. 시에라리온과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시에라리온과는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거기에다 양국은 전쟁까지 겪은 적이 있었다.
9.7. 기니와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기니-라이베리아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기니는 라이베리아와 경제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밀접한 편이다. 다만, 2014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때에 기니뿐만 아니라 라이베리아도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2021년 1월말부터 기니에서 에볼라가 발생하자 라이베리아측은 에볼라 유행 가능성에 대비해 기니 국경 지역에서 검사와 추적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9.8. 코트디부아르와의 관계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양국은 아프리카 연합의 정회원국이다. 그리고 코트디부아르는 라이베리아와 가나와 접해 있어서 영어가 제1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라이베리아도 경제적으론 코트디부아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9.9. 나이지리아와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나이지리아-라이베리아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10. 라이베리아의 현재 상황
라이베리아는 20여년에 걸친 내전을 거쳐 2006년 민선 대통령의 취임 이후 정치적으로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나, 경제적으로는 처참하기 짝이 없으며 공권력과 치안력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가 경찰의 재편 및 능력 향상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치안유지는 거의 전적으로 UN 평화유지군(UNMIL)에 의존하고 있으나, UN에 의한 민생 치안 유지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생계형 범죄가 빈민가를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강도와 강간과 같은 강력범죄가 매우 심각하며 백인을 비롯한 외국인 여인들이 강간을 당해 임신하는 경우가 잦으며 범죄자들은 총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특히 택시 안에서 강도를 당하는 사례가 많은데, 특히 다른 승객이 먼저 타고 있는 경우에는 운전자와 승객이 한패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타지 말아야 한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고있는데다가, 민족간 소통어로도 널리 쓰이기 때문에, 영어는 잘 통하지만 딱 그거 하나만이 장점이다.아직도 아메리코 라이베리아인과 원주민, 원주민 종족 사이의 갈등과 반목은 종종 집단간의 충돌로 나타나 폭동과 인민재판이 벌어지거나 관공서를 습격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높은 청년층 실업률과 라이베리아의 주수입원인 고무농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폭동 그리고 국가 행정력의 부재를 이유로 불법적인 자원을 팔아넘기거나 마약을 거래하는 범죄의 증가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약 7,200명에 이르는 전직 정부군의 군인과 무장단체 전투원의 사회복귀도 상당히 해결이 어려워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11. 여행 정보
라이베리아 입국 시에는 황열병 예방접종 여부를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여행 전 접종이 필요하다. 라이베리아 내 모든 의료시설은 매우 열악하기 짝이 없고, 의료시설에서 보관하고 있는 혈액은 매우 위험해서 절대로 혈액을 이용한 치료를 하면 안 되며[34] 약품 재고도 거의 없어서 여행할 때에는 비상약품을 반드시 휴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부상이라도 당할 경우 의료 후송기를 이용해 스페인이나 아랍에미리트로 후송해야 한다.또한 말라리아 위험지역이기 때문에 말라리아 억제약을 복용하면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장티푸스와 콜레라 등의 전염병이 만연하기 때문에 반드시 음식물을 익혀서 먹고 위생에 주의해야 하며, 식수는 병으로 판매되는 물만 사용하는 것이 권고된다고.
2014년 기준 전 지역이 "철수권고" 등급이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국경이 폐쇄된 적이 있다. 자세한 건 2014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을 참고할 것.
2015년 5월에는 에볼라 주요 발병국 기니, 시에라리온과 달리 WHO에서 에볼라 종식 선언(에볼라 프리)을 하여 특별여행주의보가 해제되고 철수권고로 바뀌었다.
에볼라 환자가 추가 발생하어 2015년 9월에 다시 종식선언을 했지만, 다시 2015년 11월 22일 현재 3명의 감염자 추가발생으로 당분간의 종식선언은 힘들 듯 보였다. 하지만 WHO는 2016년 1월 12일에 라이베리아의 에볼라 종식 선언을 발표했다. # 그러다가 종식 선언한지 하루만에 다시 에볼라 환자가 발생하였다. #
2018년 10월 29일 대한민국 외교부는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의 경보를 3단계에서 2단계로 하향조정했다. #
여성들의 경우 성폭력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2020년 9월 13일에 대통령인 조지 웨아가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에 급증한 강간 발생률과 그에 따른 계속된 시위에 ‘국가적 성폭행 비상사태(National Rape Emergency)’를 선포할 정도로 막장인 상황이며[35] UN의 조사에 따르면 라이베리아 국민 가운데 83%가 성폭행 발생의 요인으로 '여성의 겉모습'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 여행 삼아 갔다가 성폭력을 당해도 자칫 피해자인 여행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각별히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
12.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마이클 잭슨이 1987년 발매한 앨범 Bad의 히트 수록곡 "Liberian Girl"
- 메탈기어 솔리드 2의 주인공, 라이덴이 이 국가의 내전에 참여했다는 설정.
- 영화 로드 오브 워에서 무기상 주인공의 주요고객인 독재자 앙드레 바티스트가 집권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앙드레는 전직 대통령 찰스 테일러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나라가 소년병 징집은 당연하고 에이즈는 넘쳐난다. 오죽하면 주인공에게 독재자 아들이 섹시한 기쁨조 두 명을 붙여줘도 주인공은 거부한다. 도덕적인 이유가 아니라 에이즈가 있을까봐 그랬다.
- 파크라이3의 데니스 로저스가 이곳에서 높으신분들도 총애하던 군인이었다.
13. 관련 문서
[1] Roma족이 아니라 Loma족이다.[2] 이 도시 이름은 미국의 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으로, 라이베리아 자체가 먼로 대통령 덕분에 풀려난 노예들에 의해 건설된 나라이다.[3] 미국 달러도 널리 쓰인다.[4] 대한민국 외교부에 따르면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이후 단교했다가 나중에 재수교했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북한의 외교관계를 다룬 자료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5] #[6] 다만 별 개수 이외에도 미국 국기는 빨간색 가로줄이 7개이지만 라이베리아 국기는 가로줄이 6개이라는 차이점이 있다.[7] 궁금하다면 구글에서 'liberian county flag'를 검색해보자.[8] 참고로 이는 소련 공산당과 멕시코 제도혁명당의 장기집권 기록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9] 메릴랜드 공화국은 현재 라이베리아의 '주'로 편입되어 있다.[10] 이런 고대 식민지의 대표적인 국가는 페니키아의 식민지였던 카르타고가 있다.[11] 이때는 미국에서도 제한투표제를 시행하는 곳이 남아있었고, 부르봉 왕조~오를레앙 왕조 시기의 프랑스, 영국이나 초창기의 일본 제국도 일정액의 납세액을 내야만 투표권이 주어지는 제한투표제였다. 다만 라이베리아는 제한투표가 휘그당의 일당독재를 지속적으로 보장해주다보니, 보통선거가 늦게 도입되어서 늦게까지도 제한투표제가 시행되었던 것이었다.[12] 물론 이 원주민들도 나중에 와서 대다수가 기독교로 개종하기는 했다.[13] 당장에 백인도 유럽계 백인, 아랍계 백인 등으로 나뉘어 있고 유럽계 백인도 프랑스인, 독일인, 영국인 등등으로 갈라져 있다. 결국 라이베리아의 건국은 백인으로 치환하면 독일인, 이란인, 아랍인을 다 같은 백인이라는 이유로 한 나라에서 살라고 한 것이다. 이러니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14] 물타기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서구 노예 무역 쇠퇴 후 아프리카 노예 무역도 쇠퇴 추세를 보였고, 다호메이 왕국과 같은 현지 흑인 국가들이 노예 무역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스페인, 포르투갈 등 서구 국가들과 그 다음으로는 오만 제국과 오스만 제국같은 사하라 이북 이슬람권 국가들이 근세 ~ 근대 노예 무역의 주된 물주이자 수요 당사자였다는 점이다.[15] 1880년대 이래로 미국 남부에서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 백인들도 투표권을 회복하면서, 미국 남부 민주당원 조직들이 흑인과 빈곤층들을 상대로 투표권을 사실상 박탈시키는 제한선거권 제도를 부활시키며 기껏 이룩해낸 인종평등정책이 퇴보해버리는 바람에 다수의 남부흑인들이 투표권조차 지니지 못했던 암울한 시절이 1960년대 초까지 이루어졌고, 브라질 흑인들도 1889년에서야 노예해방이 이루어졌고,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이후로도 저임금 노동자와 가정부로 일하는 등 대다수가 빈민층이었으며, 남아공 등지의 여타 아프리카 흑인들도 상황은 더 나빴으면 나빴지 나을것이 없었다.[16] 라이베리아인들도 미국의 영향력을 아주 당연하게 여겨서 2003년 찰스 테일러 정권 말기 내전 때는 몬로비아 시내에서 피살된 사람들의 시신을 미국 대사관 앞에 쌓아놓고 개입하라고 시위를 할 정도였다.[17] 이 사람이 바로 라이베리아의 21대 대통령 새뮤얼 케니언 도다.[18] 미국 출신 해방노예 편으로써 휘그당 일당독재 시절 영웅처럼 추앙받던 여성 마틸다 뉴포트 관련 이야기다.[19] 지지율 1560%(...)를 차지한 라이베리아의 17대 대통령 찰스 D.B.킹 관련 이야기다.[20] 참고로 집단살해 등 국제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재판소가 창설된 2002년 이후 사건에 대해서만 관할권을 갖고 있다.[21] 지극히 당연하지만, TRC는 전쟁 개전이나 반인륜 범죄에 직접적, 적극적으로 가담한 자들은 전혀 사면 대상으로 삼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들은 라이베리아 사법 제도 내에서 정식 재판을 거쳐 처벌할 것을 요구했고, 사면 요구 대상은 전쟁 참여 당시 18살 미만이었거나 반인도적 범죄에 가담하지 않는 등 어느 정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사람들 정도로만 한정되어 있었다.[22] 심지어 테일러조차 라이베리아 내전에서의 범죄에 대한 책임이 아닌 시에라리온 내전에서의 범죄에 대한 책임으로 처벌을 받은 것이고, 이 때문에 라이베리아의 TRC는 테일러에 대해 전혀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23] 킬링필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어찌 보면 라이베리아 이상으로 미진했는데, 크메르 루주에 세뇌되어 타의로 학살에 가담하게 된 소년병 등 학살에 가담한 가해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훈 센 정부도 학살에 가담한 전원을 처벌하는 것은 완전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국제재판에 회부한 사람도 학살의 수뇌부격인 5명밖에 없었으며(이들 중 2명은 재판 중에 사망해 확실히 처벌을 받은 사람은 3명밖에 없었다), 심지어 최고 책임자인 폴 포트는 1998년에 이미 사망해서 재판에 부를 수도 없었다.[24] 다만 라이베리아에서의 전범 방치는 라이베리아 정부가 의도한 측면도 있는데, 어지간해선 후술할 밀턴 블라히와 같은 식으로 간접적으로 죄를 드러내 사회적 응징을 받게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25] 존슨이 1990년 2월에 테일러가 자신을 반역죄로 처형하려고 한 것을 알고는 NPFL을 자진 탈퇴하며 세운 단체다.[26] 심지어 존슨은 케니언 도를 처형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면서 불쾌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맥주를 홀짝이며 마시기도 했다. 존슨이 피투성이가 된 도 앞에 앉아서 거들먹거리며 맥주를 쌓아놓고 마시는 장면은 유튜브 등지에 올라와 있는 도의 심문 영상에도 그대로 찍혀서 나온다.[27] 참고로 이 만행은 전직 대통령을 잔혹하게 살해한 지 불과 나흘 뒤에 벌어졌다.[28] 사실 존슨이 뜬금없이 나이지리아에서 발견되었던 이유는 존슨의 추종자들이 그를 라이베리아 대통령으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테일러파들과 충돌하면서 존슨이 1992년에 나이지리아로 도피했기 때문이다.[29] 참고로 이는 한국으로 치면 노덕술이, 이탈리아로 치면 에리히 프리프케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3위를 기록한 꼴 그 이상이다.(!) 참고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후 찾아온 해방 공간에서의 혼란기와 반민특위 해산으로 일제강점기에 자행한, 독립운동가 고문이라는 반인륜 범죄에 완전한 면죄부를 부여받고 '반공투사'로 신분을 세탁한 뒤 육군 중령에 올라간 노덕술조차 밀수에 가담한 것이 발각되어 파면된 후 고향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뒤에서 3위로 낙선했고, 이후 불법 흥신소를 운영하면서 검사를 미행하다가 구속되는 굴욕을 당하며 이전의 영광(?)을 완전히 잃은 채 가난하게 살다가 쓸쓸히 사망했다. 에리히 프리프케 역시 2차대전 종전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하여 지역에서 호텔 관련 일을 하며 냉전시기 지역의 유지로 통하기도 하였으나 1994년 정체가 탄로나 체포, 재판 결과에 따라 종신형 언도를 받고 자기측 변호사의 집에 가택 연금되어 지내다가 2013년 사망했는데, 이탈리아도 아르헨티나도 그의 매장을 거부하여 결국 교도소내 죄수 묘역에 안장되는 상황이 되었다.[30] 실제로 그의 부하 중 일부는 여성복을 입은 채 전투에 나섰다고 한다.[31] 후술할 기사에 따르면 그에게 피해를 입은 76명 중 19명이 그를 용서했다고 한다. 그리고 블라히는 선교하러 갈 때 피해자의 유족들이 그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너무 안 좋아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거에 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혔기에 (과거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열람주의] 블라히는 어린아이의 신선한 피가 악마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에 전투 전에 어린이들을 산 제물로 바치면서 그 아이의 피를 마시기도 했고, 사람의 참수된 머리를 축구공으로 쓰기도 한 데다가 심지어는 전투 전에 죄 없는 어린이를 살해하고는 그 아이의 심장을(!!!) 다른 소년병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고 한다.[33] 물론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살기 위해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으로 하는 행위와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는 행위는 급이 다르다. 나아가서 실제로 전쟁터에서 강간 살해를 저지른 일반 병사들은 정당방위나 긴급피난과는 관계없는 흉악범죄를 저지른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범들과 급이 같은 것은 아니다.[34] AIDS와 에볼라가 둘 다 이 나라에서 발생했으며, 혈액은행 내에 보관된 현지인 혈액들은 이 바이러스들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35] 젠더기반폭력, 성폭력 근절을 위한 약 170만 유로가 투입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