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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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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동 법정동
<colbgcolor=#F08300> 광명1~7동 광명동 옥길동(6동 관할)
철산1~4동
시청
철산동
하안1~4동 하안동
소하1, 2동 소하동
일직동 일직동
학온동 가학동 노온사동 }}}}}}}}}
경기도자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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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
光明市
Gwangmyeong City
}}}
<colbgcolor=#f08300><colcolor=#fff> 시청 소재지 시청로 20 (철산동)
광역자치단체 경기도
하위 행정구역 19행정동 8법정동
면적 38.52㎢
인구 277,281명[1]
인구 밀도 7,198.36명/㎢[2]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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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재선)
시의회
파일:zsdkl3gasdg.svg
5석[3]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5석[4]

1석[5]
도의원
파일:zsdkl3gasdg.svg
3석[6]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1석[7]
국회의원
<colbgcolor=#f08300><colcolor=#fff>
파일:zsdkl3gasdg.svg
임오경 (재선)

파일:zsdkl3gasdg.svg
김남희 (초선)
상징 시화 장미
시목 은행나무
시조 까치
시가 광명시민의 노래
지역번호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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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징
2.1. 광명시민의 노래
3. 역사
3.1. 지명 유래3.2. 의외로 빠른 도시화
4. 지리
4.1. 자연지리4.2. 인구
5. 도시구조
5.1. 남부와 북부의 이질성5.2. 서부와 동부의 이질성5.3. 미개발지역5.4. 광명뉴타운5.5. 광명역세권개발사업5.6. 광명시흥테크노밸리5.7. 광명시흥신도시5.8. 집값5.9. 기타
6. 지역 특징
6.1. 아파트 천국6.2. 베드타운6.3. 지역 정체성과 인지도 개선6.4. 생활권서울 편입 문제
7. 도시행정
7.1. 시청7.2. 주요 행정기관 권역7.3. 사법7.4. 치안7.5. 세무행정7.6. 병무행정7.7. 전화7.8. 상하수도7.9. 차량등록 관련
8. 교통9. 경제
9.1. 개요9.2. 산업9.3. 상권9.4. 금융
10. 관광11. 생활문화
11.1. 교육11.2. 의료기관11.3. 종교
11.3.1. 소속 교구11.3.2. 소하동 미자립교회 난립 문제
11.4. 장례시설11.5. 방송 수신 환경11.6. 택배11.7. 지역 언론11.8. 방언11.9. 대중문화 속의 광명
12. 정치13. 군사14. 하위 행정구역15. 사건 사고16. 기타
16.1. 과거의 상징물
17. 출신 인물18. 국내외 교류
18.1. 국내18.2. 국외
1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경기도.

북부와 동부는 각각 서울특별시 구로구금천구, 남동부는 안양시, 북서부는 부천시, 남서부는 시흥시와 접한다.

도내에서는 부천시, 시흥시, 안산시와 같이 경기 서부[9]로 분류되나, 정작 생활권으로 보면 경기도보다는 서울, 특히 영등포권의 지역색이 더 강한 도시. 영등포권의 역사적 전신 중 하나인 조선 시대 시흥군 중 서울에 편입되지 않은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구 시흥군의 계승 의식은 없다시피한데, 현대에 서울 편입을 염두에 두고 개발(이른바 개봉 60만 단지)되어 도시 꼴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 전에는 강 갈대밭 건너 바로 옆에 읍내, 그리고 그 읍내 너머에 시내[10]가 있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광명 시가지가 처음 형성될 무렵 이 도시 사람들은 서울시민이 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시 승격 전후의 신문기사, 1980년대 지리지, 인터넷 향토백과, 1991년판 광명시지, 광명동·철산동지(광명시청 편저) 등 각종 향토사료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위성도시 육성정책으로 인해 서울 편입이 좌절되고 1981년에 경기도 산하의 시로 승격했으며, 광명시 승격에 실망한 광명주민들이 서울 편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기도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도 딱히 광명시청에서 시흥군의 계승자로서의 성격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안양천을 경계로 서울과 인접해 있는 곳에서는 하천 정비사업이 이루어지기 전 과거 뱀처럼 구불구불했던 강 모양을 따라 시도 경계가 나뉘어 있었다. 그러다가 안양천이 직선으로 정비되면서 현재는 강 건너 광명시 안에 강 옆으로 자그마한 땅만 서울시로 되어 있다거나 반대로 서울시 안에 광명 땅 조각이 들어와 있는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아파트 단지 중에서도 바로 옆에 붙어 있음에도 서울과 광명이 나뉘며 가격 차이도 크다.

2. 상징

CI
파일:광명시 CI.svg
2014년부터 사용 중인 광명시의 CI이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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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파일:광명시 시기(1981-1987).svg
1981년~1987년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사용됐던 휘장이다
파일:광명시 구 CI(1987–1995).png
1987년~1995년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사용됐던 휘장이다
파일:광명시 CI(1996-2000).svg
1996년~2000년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사용됐던 휘장이다
파일:광명시 CI(2001-2014).svg
2001년~2014년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사용됐던 휘장이다 }}}}}}}}}}}}}}}
마스코트
파일:20181007_광명시 기본형 캐릭터.jpg
현재 사용 중인 광명시의 마스코트다.
시정방침
파일:민선8기 광명 시정방침.png
시민헌장
우리는 구름산과 도덕산의 기상과 정기를 이어받아 날로 뻗어 갈 새 광명을 문화도시로 발전 시켜 쾌적하고 살기 좋은 행복의 터전으로 건설하기 위해 여기에 큰 뜻을 모은다. 이곳에 삶을 은혜롭게 여기면서 자랑스런 광명시를 내 고장으로 기려 자손만대의 무궁한 번영과 영광을 위해 슬기와 지혜를 모아 우리 시민이 지켜 나아갈 바를 밝힌다.

2.1. 광명시민의 노래


구름산 정기 받은 우리 광명시
언제나 밝은 햇살 큰마음 큰 뜻 되어
사랑과 지혜로 땀 흘리는 보람 속에
오늘도 웃음 꽃피는 자랑스런 광명시민
꿈과 슬기 어린 아름다운 우리 고장
찬란한 전통과 내일의 영광 위해
손과 손을 마주잡은 역군이 되어
오늘도 웃음 꽃피는 자랑스런 광명시민

파일:광명시민의_노래_악보.jpg

정확한 사용 시작시기는 미상이나 시 승격 당시부터 사용된 노래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시청과 관내 주민센터 등지에서 사용되는 노래이다.

3. 역사

파일:광명시 CI_White.svg 행정구역 변천사
시흥군 서면
(始興郡 西面, 1896)
시흥군 서면
(西面, 1914)
시흥군 광명출장소
(光明出張所, 1974)
광명시
(光明市, 1981)
시흥군 남면
(始興郡 南面, 1896)
시흥군 소하읍
(所下邑, 1979)
인천부 황등천면
두길리 (斗吉里, 1896)
부천군 소래면 옥길리
(玉吉里, 1914)
시흥군 소래면
옥길리 (1973-83)

시흥군 문서에 나오듯 서울로 편입된 곳을 제외하고는 현 광명시 정도가 조선시대부터 시흥군이었다. 그럼에도 시흥 명칭을 결국 가져가지 못하고 소래, 군자 일대가 가져가게 되었다.

3.1. 지명 유래

'광명'이라는 지명은 1963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 편입 이전만 해도 지금의 광명동 일대에 국한된 명칭으로, 광명7동 신광명변전소 인근의 원광명(굉메)라는 자연촌락에서 유래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광명이라는 지명이 듣보잡이었다가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얘기는 아니고, 이미 출장소가 설치되는 1970년대쯤 되면 광명리는 소하리와는 별개의 생활구역으로 취급되었다. 당시 광명리에서 버스로 소하리까지 가려면 영등포로 나가서 버스 타고 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읍 지역이 시로 승격될 당시에는 읍의 이름이 도시 이름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나, 1981년쯤엔 사실상 중심지가 소하리 서면초 부근이 아니라 광명리로 옮겨진 상태인데다가 광명출장소 관할지역을 서울 편입에서 배제시키는 의미도 있었기에[11] 소하읍→소하시가 아닌 광명시로 한 것이다. 승격 당시 광명시 인구가 15만명인데 이 중 소하동 거주자는 2만여명, 하안동은 당시 미개발지였고 철산동 역시 시 승격 이후에나 주공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건설되었으니 사실상 광명동 지역에만 10만명 가까이 거주하고 있었던 셈이다.[12]

일부에서는 '빛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광명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광명이라는 지명은 단지 광명7동에 있는 굉메마을의 음차일 뿐이다.

3.2. 의외로 빠른 도시화

경기도 내 30개 도시 중에서 시 승격이 광명시보다 더 빠른 도시로는 개성시(미수복)[13], 수원시, 인천광역시(1981년 직할시 분리), 의정부시, 부천시, 안양시, 성남시 7곳 정도다.[14] 특히 광명시는 성남시 다음으로 서울의 팽창으로 생겨난 두 번째 도시이다. 광명시는 서울(특히 영등포)의 인구 폭증에 대처하는 차원에서 서울 편입 예정지의 개념으로 개발되었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서울 편입 대신에 시로 분리된 도시이다.

그래서 시 승격 초창기에는 경기 남부지역에선 얼마 안 되는 도시로서 나름대로 중심지 노릇을 하기도 했다. 당시 이미 업무 과부하였던 부천, 안양지역 관공서를 대신해 광명경찰서[15]와 광명세무서[16]가 시흥군 소래, 군자, 수암면 지역[17]과 안산시까지 관할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광명시 교육청(현 경기도광명교육지원청)도 마찬가지. 특히 북시흥 지역은 경찰서는 1999년, 세무서는 1996년(광명세무서 시흥지서 개서)까지 광명시 쪽에서 관할해 알음알음 그 영향력이 남아있다.[18] 다만 역사적으로 중심지 노릇을 해 온 건 아니고 여건상 어쩌다보니 그런 기능을 잠시 부여받은거라 시흥과 안산이 어느정도 성장한 지금은 의식하고 찾지 않으면 깨닫기 어려운 수준이다.

4. 지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10px-Gwangmyeong_Gyeonggi_South_Korea.svg.png
경기도에서 광명시의 위치.

4.1. 자연지리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경기도 최강의 폭염도시 중 한 곳이다. 좁은 면적에 여기저기 골고루 도시화가 돼있는 경기도에서 날씨가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냐만은,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시즌에 광명과 멀지 않은 안산시와 비교해보면 제법 체감이 될 정도며 이는 광명이 서울의 열섬 현상[19]을 그대로 받는데다 시가지 남부가 쭉 산으로 막혀있는 지형의 영향으로, 여름엔 광프리카가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는 더위가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겨울에 따뜻한 것도 아니어서 냉대기후 지대이며[20][21], 철산동 기준으로 특히 개봉동, 구로동, 대림동, 가산동, 신대방동[22]과 기후가 거의 같다. 장마철에 안양천 물이 불어나 일부지역이 침수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대한민국 기상청 AWS 실시간 자료에서는 과천과 함께 서울권으로 분류되어 있다.링크 참고로 부천, 시흥은 '경기남부서해안'(인천 포함) 권역에, 안양, 군포는 '경기남서내륙' 권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지질학적으로는 편마암 기반의 퇴적층 지대로 알려진 편이지만, 서울시립대 교수의 말에 따르면(기사) 영등포와 광명 일대가 석회암 지대라고 한다. 현재의 도덕산공원인 옛 방공호가 석회광산 입구였다는 말이 있고, 서울 지하철 7호선 철산역 건설과정에서 철산동 지하에 석회동굴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석회암 지대라는 지적이 틀리지는 않을 듯. 지질정보사이트 자료에 따르면 도덕산 산맥과 소하동 일부가 석회암 지대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목감천, 안양천 등의 하천이 흐르며, 목감천은 광명시와 서울시 구로구, 부천시, 시흥시와, 그리고 안양천은 서울시 구로구, 금천구, 안양시와의 실질적 자연경계[23]이다.

4.2. 인구

파일:광명시 CI.svg 광명시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2,992명
1970년 27,816명
1975년 93,328명
1979년 5월 1일 시흥군 서면 → 소하읍 승격
1980년 145,870명
1981년 7월 1일 시흥군 광명출장소 + 소하읍 → 경기도 광명시 분리 승격
1983년 2월 15일 시흥군 소래읍 옥길1리, 옥길3리 편입
1985년 219,544명
1990년 328,423명
1995년 343,899명
2000년 338,139명
2005년 327,828명
2010년 343,982명
2015년 344,978명(정점)
2020년 298,599명
2024년 10월 277,281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5만 명
행정동별 인구 통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철산3동 36,862명
소하1동 30,449명
소하2동 26,888명
하안1동 25,432명
일직동 21,819명
광명7동 19,812명
하안3동 19,224명
광명6동 13,817명
하안2동 13,325명
광명5동 12,139명
하안4동 11,943명
철산1동 10,599명
철산4동 9,545명
광명3동 9,821명
광명4동 7,976명
철산2동 5,481명
광명2동 2,984명
학온동 1,957명
광명1동 56명
2023년 9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 ||

시흥군 소하읍 시절에는 인구가 무려 15만 명이나 되었던 과대읍이었는데, 이는 읍 단위 행정구역 인구 기록 역대 1위에 해당한다. 이렇게 과대읍이 된 이유는 서울 편입 여부가 도통 결론이 나지 않았던 탓. 당시에는 남부 지역인 하안리(하안동), 노온사리(노온사동), 가학리(가학동), 일직리(일직동)는 미개발지였고, 철산리(철산동)는 철산1동 옛 광복아파트쪽만 개발되어 있었으며,[24] 서면 중심지였던 소하리(소하동)는 조그마한 시가지가 전부였으니 사실상 당시 인구가 광명리(광명동)에 집중되었던 셈. 도시개발기에 지금의 광명시로 유입된 인구들은 서울토박이들 아니면 삼남지방 출신 상경민들이었다.

1990년 초반에 하안동 아파트 단지 조성이 완료되면서 인구가 30만명대로 늘어났는데, 1990년대 중반 이후로 2010년대 중반 35만명 가량 정점을 찍고 2010년대 후반부터 다시 감소하고 있다. 1995년 도농복합시 출범 당시 용인시파주시, 화성시보다도 인구가 많았지만, 이 시들의 도농복합시의 넓은 면적과 인구가 많은 인접도시인 수원시, 고양시, 성남시의 팽창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한 반면, 광명시는 서울특별시와 인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서울특별시의 연담화 현상을 꺼리는 정부의 개발 정책(특히 신도시 계획)에서 철저하게 배제되는 바람에 인구 증가가 정체되어 있다. 만약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가 유지됐다면 광명시의 인구가 50만을 넘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엎어졌다가 3기 신도시 계획으로 사실상 부활. 그나마 KTX 광명역 덕분에 소하지구와 광명역세권지구가 개발될 수 있다는 게 위안이다. 그리고 가학동 지역에 광명시흥테크노밸리 사업이 추진된다.

서울의 교외화 현상으로 인한 서울시민의 경기남부 전입현상에도 불구하고 근래 인구가 줄고 있는 도시 중 하나이다.[25] 안그래도 한창 재개발이 진행되는데 유입 인구도 적다보니 인구가 계속 줄고 있다.] 2010년대 중반만 해도 35만명대였으나 2024년 현재는 27만명대로 감소했다. 또 하나는 안양시. 그러나 군포시, 의왕시, 과천시 덕에 소위 안양권역 자체는 증가세라, 가구수는 그대로인데 가구당 인구가 줄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9년 2월, 대강 재건축 이주중인 철산동과 소형평수가 많은 하안동이 줄고, 빌라 등이 새로 개발되는 소하동이 인구가 느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에는 재건축, 재개발로 인한 이주의 여파로 30만명대로 떨어졌으며 2020년 12월에는 결국 30만명 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광명뉴타운 사업으로 인해 광명사거리역철산역 일대의 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뉴타운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면서 원주민들이 광명시 밖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뉴타운 지구가 완성되면 새로운 인구가 전입을 하여 인구가 다시 늘어날 예정이긴 하지만, 광명뉴타운이 재개발 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차근차근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에 광명시의 인구 증가는 늦춰질 예정이다.

2024년 하반기부터 광명뉴타운 아파트들이 대거 입주할 것으로 예상되어 인구가 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5. 도시구조


파일:attachment/광명시/gwangmyeongcity-neighbourhoods.jpg
광명시의 소생활권

고구마 모양이다. 고구마를 길게 반으로 자르면 가운데는 볼록한 모양이 되는데 딱 이런 형상이다. 초등학교 지역 향토수업 때도 교사가 광명시를 고구마에 빗대기도 한다. 대부분의 도시는 산이나 능선이 있는 경우 경계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광명시는 한 가운데를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서독산의 산맥이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형태로 뚜렷한 자연적 경계선을 이룬다. 시가지는 북쪽과 동쪽에 몰려있으며, 최근 동남쪽이 개발되어서 발전하고 있다. 34만 정도인 인구 규모에 비해 시의 면적이 워낙 작고 가운데는 산지이며 남서부 지역 대부분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고 사람들은 좁은 지역에 몰려 살기 때문에 실제 주민들이 체감하는 인구 밀도는 높은 편이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개발된 소하동보다는 광명동, 철산동 주민들이 체감하는 인구밀도가 굉장히 높다.

이 항목에서는 북부와 남부, 서부와 동부의 이질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이 뿐만이 아니라 각 동마다 조금씩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소생활권도 약하게나마 구분할 수 있다. 매우 좁은 의미에서 생활권을 보자면, 광명동, 철산동, 하안동, 소하동(더 좁게는 소하1동, 소하2동)(광명역세권이 개발되면 일직동까지) 이렇게 동별로 나눌 수 있다. 각 동마다 소규모이지만 중심 상권을 가지고 있으며, 철산동이 가장 큰 중심지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는 철산동이 하안동과 광명동 사이에 있기 때문에 중심지로 적합했던 것 같은데, 소하동과 일직동이 개발되면서 중심지가 조금 북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들긴 한다.

5.1. 남부와 북부의 이질성

광명은 크게 북쪽의 광명·철산동 지역과 남쪽의 하안·소하동 지역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하안동+철산3동 > 나머지 철산동 > 광명동 > 소하동 순으로 동네 사이의 생활 수준 격차가 제법 컸다. 특히 도덕산 기슭에 있는 철산4동은 광명시 시가지 중에서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으로 70년대에 지어진 낡은 집들이 많다. 사진작가들에게는 은근히 알려진 달동네이기도 해서 사진을 찍거나 환경정화 차원에서 벽화를 그리러 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 벽화 작업의 주관자가 서울특별시이다. # 그나마 철산4동 남쪽은 고층아파트로 재건축이 이루어져서 '평균적'으로는 환경이 나아진 듯. 최근 들어서는 광명동 외곽에 아파트 단지가 대거 들어서고, 소하동쪽에 이마트 등이 생기고 개발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전체적으로 평준화되는 분위기다. 북광명의 서울시 도시계획 편입 이후 2010년 소하동 개발 이전까지는 남광명은 사실상 버려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 광명시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지는 서면초를 위시한 소하동 남부로 시흥군 시절에는 서면의 중심지였다. 다만 서울특별시의 베드타운으로서 제일 먼저 조성된 곳은 광명동과 철산동 일부. 서울 편입이 무산되고 나서 시 승격 후 본격적인 베드타운으로 조성된 곳은 철산주공 12,13단지, 하안주공 고층 단지들이다.

1970년대에는 북부인 광명리에서 남부인 소하리로 시내버스로 가려면 서울 영등포를 거쳐야 했다고 하고, 통화권도 광명출장소 관할구역(북부)인 광명리와 철산리는 서울시내통화권(개봉전화국 관할), 소하읍 행정관할구역(남부)인 소하리 등은 서면 자체통화권(광명우체국 관할)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남부와 북부가 이질적인 이유는 각 동마다 개발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광명동 일대와 철산동 일부 지역은 주로 6-70년대에 개발되었고, 철산동 저층아파트단지는 주로 80년대, 하안동은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소하동은 주로 2010년대 초반(구시가지 제외)에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광명역이 있는 일직동은 2016년인 현재 활발하게 개발 중이다. 그래서 광명·철산 시가지와 하안 시가지, 소하 시가지는 서로 조금 따로 노는 편이다. 일단 도시 한가운데를 산줄기가 관통하기 때문에 도시가 길쭉한 모양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고, 결국 광명7동부터 시작해 광명사거리-철산역-하안사거리-소하지구에 이르기까지 나름 개발지역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상권은 이 좁고 길쭉한 도시지역 중간중간에 점점이 박히는 식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를테면 철산동하안동은 서로 이어져 있으나 약 1km에 걸쳐 주공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선지라 시가지 간 연계성이 약하다.[26]

소하동의 경우 특히 비교적 최근까지는 서면초 부근 시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비닐하우스 단지, 농지였기 때문에 철산동과 하안동 시가지와 분리되었다. 지금은 소하동 북부 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많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단절성은 덜해졌지만 그래도 소하동에도 이마트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상권이 발달하고 있어 어느 정도 분리된 부분이 있는 건 사실. 특히 그린벨트 해제 여부와는 별개로 기아자동차 공장 인근 토지가 완충지대로 묶여있기 때문에 옛 서면, 소하동 남부와 그 외 지역들 간에는 여전히 생활권상 단절성이 크다.

주변 연계생활권에도 차이가 있는데, 광명동과 철산동은 구로구, 영등포구쪽에 가깝고, 하안동, 소하동은 금천구, 안양시쪽에 가깝다. 때문에 도시 자체의 인구는 32만에 이르는데도 정작 각 상권의 규모를 보면 산본보다도 못하다는 평가를 종종 듣고 있다. 광명시 도시계획 자체도 소생활권역을 광명동 생활권, 철산동 생활권, 하안동 생활권, 소하동 생활권으로 구분하고 있다.

남광명(정확히는 남동쪽)은 북광명에 비해 개발 가능한 부지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광명시에 대학병원이나 이케아나 롯데아울렛같은 대형 쇼핑몰, SK테크노파크같은 시설이 들어온다고 치면, 북광명의 상권은 포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광명에 건설될 가능성이 크다.[27] 또한 관공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철산동 상업지구 안에 있던 광명보건소가 하안동 구름산 옆으로 이전하기도 했으며, 철산동에 있던 광명소방서는 워낙 작았으나 소하동에 화려하게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광명시 평생학습원도 철산동 상업지구에서 하안도서관근처 복합문화시설로 이전했다. 철산동 상업지구에있는 광명경찰서도 소하동으로 이전하려고 했으나 계획이 없어졌다.

아무튼 과거 서울시 편입 예정지였고 시 승격 이전부터 과거 서울시 도시계획의 직접 영향 하에 시가지로 개발되어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성장해 온 북광명과 안양시의 영향권에 있던 농촌지역으로서의 남광명은 서로 이질적인 특성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 문서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농촌지역의 남광명(남동지역)과 서울의 베드타운성격을 띄는 북광명간의 이질성을 설명한 것으로 보이나, 광명역이 건설되면서 남광명이 개발되고 북광명과 연담화 되면서 점점 이질성의 희석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마트, 이케아, 코스트코, 광명역 등을 이용하는 북광명 주민들이 늘면서 남광명에 익숙해지는 북광명 주민들이 늘고있고, 북광명을 왕래하는 남광명 주민도 많다.

이 외에도 밤일마을(하안동), 가리대마을(소하동) 등 자연촌락이 지금도 남쪽에 일부 남아 있다.[28]

5.2. 서부와 동부의 이질성

광명시 남부와 북부 간의 이질성 못지 않게 서부와 동부의 이질성도 만만치 않다. 도덕산-구름산-서독산 구릉지대가 광명을 동서로 양분하는 모양새이기 때문. 구한말까지 광명시 서부는 시흥군 남면, 광명시 동부는 시흥군 서면이었다. 또한 광명시 서부인 광명동은 원래는 사실상 서울 개봉동의 연장선상으로 개발된 곳이라면, 철산동과 하안동은 구로공단의 베드타운 개념으로 개발된 곳이다. 그래서인지 서광명인 광명동은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위주인 반면에, 동광명인 철산동과 하안동(+소하동 북부)는 아파트 위주다. 이에 따라 서광명과 동광명 간에 생활수준 등의 차이가 존재한다. 생활권 면에서도 서광명은 개봉동, 오류동, 천왕동 및 시흥시, 부천시와 연계되어 있고, 동광명은 구로동, 신도림동, 양천구 목동, 영등포구, 금천구, 안양시와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철산동이나 하안동, 소하동을 주 생활권으로 하는 사람들은 광명시장이나 그 주변 옷가게 말고는 광명동에 갈 일이 없기 때문에 광명동이 낯선 경우가 많다. 다만 철산동 출신은 하안동, 소하동 출신에 비해서는 그 정도가 약한 편. 특히 광명시장이라는 강력한 소비시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철산동에서는 광명사거리를 방문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반대로 광명동 출신들은 서광명 지역에 워낙 학교가 없다보니[29] 동광명을 오가는 것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 편이다. 오죽하면 북한에서 발간된 각종 백과사전에서도 광명시 항목에서 시내 한복판에 산줄기가 있어 동서 왕래가 어렵다고 깐다.

5.3. 미개발지역

시 남서쪽에는 학온동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개발제한구역이 많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 밭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정도다. 이 구역에 분당신도시에 버금가는 광명-시흥 보금자리 지구가 형성될 예정이었으나 2012년 말에 한국토지주택공사 부채 문제로 시작, 부동산경기 침체 와 그로인한 사업자금 미확보라는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4년여의 표류 끝에 2014년 5월 보금자리지구 사업 자체가 잠정 취소되었으며, 2014년 9월 4일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 사업이 공식적으로 백지화되었으며, 2015년 4월부로 보금자리지구가 지정해제되었다.

이 발표로 광명-시흥보금자리는 난개발방지를 위해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되었고, 보금자리사업의 일부였던 지구 내 영세공장 및 주변 정비를 위한 산업단지 조성은 LH가 주관하여 이행하겠다고 약속하고 진행 중이다. 한편 위 LH가 주관하는 공업단지와는 별개로 2015년 7월에 경기도는 해당 옛 보금자리계획지구의 일부에 제2의 판교테크노밸리를 내세우며 첨단연구단지(광명시흥테크노밸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5.4. 광명뉴타운

시에서 광명동 일대를 재개발하는 계획인 광명뉴타운을 계획하였으며 광명동 거의 대부분이 포함될 만큼 그 규모가 굉장히 크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의 반발이 심하기도 했고 이 문제로 주민들끼리 갈등이 커져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는데, 뉴타운 사업 안에 든 일부 지역 주민들은 자기네 구역이 재개발할 만큼 노후화되지 않은 건물들이 많고 신축 건물들도 몇 있는데 사업을 추진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광명1동 주민센터 관련해서도 말이 있었다. 결국 뉴타운사업은 백지화 되는 듯 했으나 2016년 6월 부로 일부 구역을 사업 구역에서 해제하고, 그 외 나머지 구역에서 뉴타운 사업을 하기로 확정하였다. 가장 진척이 빠른 곳은 16R구역으로, 2021년 5월 현재 완공 후 입주하였다. 그 외에는 1R, 2R, 10R 구역이 현재 공사중, 뉴타운 구역이 사실상 광명동의 거의 절반에 달하다보니 뉴타운 해제 지역은 집값이 엄청나게 뛰어오르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5.5. 광명역세권개발사업

5.6. 광명시흥테크노밸리

옛날에는 광명시흥 보금자리주택지구였다. 보금자리주택 계획 철회 이후 산업단지로 용도변경.

5.7. 광명시흥신도시

5.8. 집값

광명시의 집값은 일단 경기도 서부권끼리만으로 보았을 때는 수도권 서부권 안에서는 상위권에 속한다. 특히 일직동(KTX광명역세권), 철산동 일대 아파트들만을 기준으로 하면 서울 은평구, 서대문구, 강서구경기도 성남시, 안양 평촌신도시 등의 지역들과 비슷하다. 서울 소재인 일명 노도강금관구(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금천구, 관악구, 구로구) 등의 지역들보다도 집값이 비싼 편이다.

면적당 매매가 기준으로 일직동의 준신축 아파트(광명역파크자이, 광명역센트럴자이, 광명역 U플래닛 데시앙 등)와 철산3동의 재건축 아파트들(철산역 롯데캐슬&SK뷰 클래스티지, 철산 래미안자이 등)이 가장 높은 편이고, 그 다음으로는 철산역 역세권인 철산 주공 12·13단지가 줄을 잇는다. 시가지 지역 중에서 광명동 쪽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으나, 광명뉴타운 사업으로 광명동도 신축아파트들로 재개발되는 만큼 시세가 상승할 예정이다.

광명시의 집값이 의외로 경기도 내에서 상위권인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광명시의 집값이 저평가되었던 것이 많이 해소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경부터라고 보면 된다. 저평가 해소의 주요 요인을 꼽자면, 철산동 재건축, 7호선 개통, KTX광명역 개통, 실질적인 서울 중소생활권, 가산&구로디지털단지, 이케아 광명점, 코스트코 광명점 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7호선 개통으로 교통 여건이 좋아진 상황에서 철산동 저층단지들이 대거 고층의 30평대 이상 단지로 재건축되고[31] 광명역세권과 소하지구가 개발되는 한편 구로G밸리가 서울 유일의 생산기지이자 서남권 주요 업무지구로 개편됨에 따라 30~40대 부부 단위 통근수요를 광명시가 휩쓸어버린 것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광명시 부동산 시장의 큰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구로G밸리의 직주근접권으로 광명시 부동산 시장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구로동, 가리봉-가산동, 독산동, 대림동 일대가 갈수록 슬럼화 되어가는 것도 크게 한 몫을 했다.

'경기도 디스카운트' 운운이 제대로 통했던 시절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로 그때까지만 해도 광명시 주택은 서울에 비해 매우 저렴했다. 당시 광명시 아파트 평균가가 평당 500만원대였다. 지금 같으면 평당 500만원대라면 서울통근하기에는 먼 경기도 외곽 동네나 해당된다. 당시만 해도 광명시 집값이 많이 저평가된 시절이기도 했다.[32] 1990년대까지의 광명시는 지역정체성에 혼란이 생길정도로 인지도가 워낙 듣보잡인 위성도시였던 데다가 태생 자체도 서민층인 구로공단 근로자들을 위한 베드타운이라는 점, 매물들이 대부분 열악하기 그지 없는 오래된 주공저층아파트 위주였다는 점[33], 1990년대에 경기도로 이주한 중산층들이 대거 일산, 분당 등 1기 신도시와 용인 수지구, 기흥구 등으로 옮겨갔다는 점, 그리고 7호선 개통 이전이라 서울로의 교통이 은근히 많이 불편했던 점[34] 등이 과거의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소였다.

현 시점에서 경기도 디스카운트 효과는 크지 않다. 설령 서울로 편입된다고 해도 서울특별시 광명구라는 타이틀을 단 것 때문에 집값이 소폭 상승할 여지는 있겠으나 2000년대 후반 이후로 저평가의 정도가 낮아졌기 때문에 부동산 폭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한다. 다만 금천구가 광명시에 비해 집값이 싼 것을 근거로 경기도 디스카운트가 전혀 없다고 운운하는 사람도 있지만, 금천구 집값이 그렇게 된 것은 서울이지만 옆동네 광명시보다 주거, 교육환경 모두 뒤쳐져서 그런 것이지 만일 금천구의 주거, 교육환경이 최소한 광명시 수준이었다면 인서울 버프로 광명시보다 집값이 더 비싸면 비쌌지 못할리는 없다는 점에서 경기도 디스카운트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구로구 신도림동에 있는 아파트 값이 철산동 신축 아파트 값보다 비싼 것도 그러하고. 이건 당연히 신도림동이 철산동보다 교통이나 지리적 위치가 좋기 때문에 의심을 품을 이유가 없다.

다만 금천구, 구로구가 광명보다 집값이 높아진다고 해서 이 자체가 경기도 디스카운트라고 단정짓는 것도 무리가 있다. 도심, 강남과의 거리가 광명보다 가까운 이들 지역이 최소한의 여건을 확보했을 때 광명보다 집값이 높아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광명이 서울에 있든 경기도에 있든 간에 금천, 구로에 비해 서울 도심지역과의 거리가 먼 것은 그대로다. [35]

참고로 2003년에는 정부가 서울 강남구와 함께 광명시를 투기지역으로 지정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도 '포텐셜'은 있었다는 소리다. 아무튼 이러한 지역적 특성 때문에 경기도 내에서 2000년대 후반 당시에 비교적 집값 하락폭이 낮은 편이었다. 아무튼 과거의 정보를 듣고 광명시 집값이 싼 것으로 알고 찾아왔다가 생각보다 높은 광명 집값에 당황하는 경우가 꽤 있다. '광명시를 그저 싼 동네'로 알고 이사오려하다가 광명의 집값에도 결국 좌절하여 부천 구시가지나 안양 구시가지(만안구), 안산, 인천 등지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광명 집값이 비싸다며 옥길지구나 목감지구에 입주하겠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36] 인천 호남향우회에서 보수정당 측 모 인천시장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면서[37] '인천의 집값은 서울, 분당, 광명의 절반 밖에 안된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그리고 서울 서남권 출근길 정체의 원흉인 서부간선도로는 지하화되어 성산대교 남단부터 서해안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금천IC까지 왕복 4차로, 연장 10.33km의 터널로 2015년 8월 착공하여 현재 개통되었으며 또한 소하동 기아대교 인근과 연결된 강남순환고속도로평택파주고속도로가 개통하여 각각 강남과 경기 남부권으로의 접근성이 보다 개선되었다.

2015년 1월~11월 사이에 광명시 집값 상승률은 경기도 1위를 차지했다.기사

2013년 이후 4년 간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시군구 중 아파트값 상승률 1위를 차지했다.기사

2017년 하반기에는 보합세였다가, 2018년 8월 기준으로 구 철산주공 4단지인 철산 센트럴 푸르지오 분양으로 광명 부동산은 뜨거운 상황이며, 하안주공도 투자세력이 대량 매수에 나서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러한 부동산 폭등의 여파로 서울, 과천, 분당와 같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될 것이 점쳐지고 있는 분위기다.

2018년 8월 27일에 8.27 부동산 대책에 따라 하남시와 함께 투기과열지구로 추가지정되었다.기사

5.9. 기타

철산동 최북단에 있는 주공 리버빌아파트는 원래 '삼각주마을'이었는데 재개발 이전에는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장마철이 되면 이 지역 주민들은 시청의 지시에 따라 광명북, 도덕, 광명동초등학교에 피난을 가야 했다. 삼각주마을은 광명시 북부 일대가 1982년에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구역에서 해제될 때도 서울시 도시계획 구역으로 잔류하였다가 2001년 이후 광명시 도시계획 구역에 편입된 후에 지금과 같이 아파트 단지로 재건축될 수 있었다. 광명시가지와 남부순환로로 단절되어 있어 생활권은 광명시보다는 구로구 쪽에 가깝다.[38][39]. 그리고 심야버스를 비롯하여 광명시 지역을 거치지 않는 여럿 서울 시내버스 노선들이 지나간다.

지금의 철산 한신아파트 자리도 안양천 주변 배후습지 지대이자 판자촌 지대였는데, 특히 1987년에 안양천 대범람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의 한신아파트가 준공된 것은 1992년 경.[40] 철산동 북부에 모세로라는 도로가 있는데, 철산동에 있던 옛 자연취락 중 하나인 모세마을(이른바 '연서')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연서라는 이름은 하안동에 있는 연서초등학교가 써먹고 있는 게 함정이다.[41]

6. 지역 특징

6.1. 아파트 천국

안양천로를 따라 철산1동부터 소하1동까지 약 6km을 이동하면 정말 끝없는 아파트 단지들을 볼 수 있다. 이는 노원구1기 신도시들 처럼 베드타운으로 조성한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근래에 조성된 일직동 또한 신도시 형태의 아파트 단지 지역이며,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들이 많은 광명동 일대도 광명뉴타운 사업으로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 중이기에 이러한 아파트 위주의 도시형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6.2. 베드타운

다른 수도권 도시들이 다 그렇지만 서울의 주거기능을 분산하기 위해 만든 위성도시로, 베드타운 성격이 강하다.

원래는 서울의 위성도시 개념이 아닌 서울 편입 대상지역으로 염두에 두고 현 광명시 북부인 철산동 일부와 광명동 일대에 주거택지지구를 조성했으나, 서울 집중화 현상 해소를 위해 서울에 편입되지는 못했다. 이후 철산동과 하안동 일대를 서울의 베드타운 성격으로 개발하였다.<88년까지 광명시 철산 하안동 일대 대규모 베드타운 조성>

파일:1981년 철산동(1).jpg
1981년 철산동 모습. 철산대교와 여기에서 이어지는 디지털로, 그 아래의 철산주공3단지를 중심으로 왼쪽의 철산공원, 그 너머의 철산주공2단지, 두 단지 사이에 조성된 광명성애병원 부지가 보인다. 철산주공2단지 건너편의 논들이 지금의 철산상업지구 자리이며 가운데 쇠머리마을이 있던 지역에 철산역이 들어섰다. 마을 뒤편의 산에는 훗날 시청과 시민회관, 각종 관공서와 광명중/고등학교가 들어서게 된다. 전반적으로 우성아파트에서 시작해 철산주공12단지에 이르는 구역이 텅 빈 반면에 오히려 서울과 맞닿은 목감천변이 주택으로 빼곡한 것을 볼 수 있다.[42] 철산주공3단지 왼편에는 현재는 삼거리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복개천'이 보인다.

파일:1981년 철산동(2).jpg
안양천 방면에서 철산주공3단지를 찍은 모습. 오른쪽의 디지털로 끄트머리에 광덕초등학교가 보인다. 왼편 언덕이 철망산, 오른쪽 언덕은 철산공원이다.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는 철산주공3단지로 현재 철산래미안자이아파트로 재건축되었고, 두 언덕 사이에 있는 아파트는 하안본주공2단지로 현재 하안두산위브트레지움아파트로 재건축되었다. 철산공원 바로 뒤에 있는 아파트는 현재 철산푸르지오하늘채아파트로 재건축된 철산주공2단지이며, 도덕산 앞에 있는 아파트는 하안본주공1단지로 현재 광명e편한세상센트레빌아파트로 재건축되었다.

파일:2006년 철산동.png 파일:2017년 철산동.png
왼쪽 사진은 2006년 철산동의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2017년 철산동의 모습이다.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는 광명동, 철산동, 하안동, 소하동 중에서 광명동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대규모 아파트 단지이다. 특히 주공아파트 천지. 광명동은 몇 개의 아파트단지, 철산동은 1981년 철산주공아파트(저층)[43]와 도덕파크타운 2개단지, 하안동은 1990년의 하안주공아파트 14개단지와 하안본 2개 단지, 소하1동은 2000년대 초반 일부 민영아파트와 2000년대 후반 소하휴먼시아 7개 단지, 신촌휴먼시아 2개 단지, 소하2동 광명역세권휴먼시아 5개 단지로 개발되었다. 심지어 일직동 광명역사 코앞에도 주상복합아파트들을 짓고 있다. 일부 지역은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광명시가 마냥 아파트그라드인 것만은 아니다. 광명시 인구 34만명 중 10만이 넘는 인구가 광명동에 거주 중인데, 광명동은 아파트보단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이 많다. 그렇다고 광명동에 아파트가 없는 것은 아니고, 광명사거리역 근처에 한진아파트 단지가 있으며[44] 광명6동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신축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만약 광명뉴타운사업이 진행된다면 아파트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6.3. 지역 정체성과 인지도 개선

베드타운이고 도시 내에 외지인이 시간을 내서 찾아올 만한 별다른 시설이 2010년대 중반 전까지 없다 보니 한동안은 이 도시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광명시' 출신이라고 말하면 "광명시가 뭥미?"하는 반응이 나오며 초기에 거의 듣보잡 도시로 취급 받기 일쑤였으며, 서울에서 많이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다. 때문에 생활권이 서울 서남부권쪽이겠다 지역번호도 02이니 그냥 서울 산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울 출신이고 그 중에서도 출생지가 인근의 구로구, 영등포구, 금천구, 양천구(목동)이라면 더더욱 그렇다.[45] 사실 8,90년대까지는 광명시는 개봉동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었다. 광명동과 철산1동 지역이 개봉지구와 함께 개발되었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개봉동'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46] 지금도 영등포 지역에서는 광명을 개봉동이라고 부르는 어르신들이 종종 보인다.[47] 물론 이후 철산동과 하안동이 개발되고, 서울 지하철 7호선 이 들어오면서 광명 일대를 개봉동으로 칭하던 관행이 점차 사라졌다.

다만 광명에서 초중고를 나온 사람들 중에 서울 출생자가 대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그것은 편견이다. 실제로 80년대 후반 출생 광명 초중고 출신자 가운데서 광명 출생자가 적지 않다.[48] 시흥군 소하읍 시절에도 인구가 15만명이었으니 시 승격 이후에 태어난 그 또래 나이대에 광명시 출신자가 적은 게 이상한 거다. 도시 기반이 거의 자리잡은 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 대부분인 광명시 재학 초중고생의 경우는 광명 출생자가 더 많을 듯. 하지만 광명시가 전통적으로 물갈이가 심한 도시이기 때문에(즉, 정주의식이 약한 도시) 의외로 그 비율이 높지 않을 수도 있다.

지역정체성이나 생활권 문제가 아니더라도 광명이라는 동네를 잘 모를 법한 비수도권 출신이나 외국인한테 '서울'이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으며, 자신이 사는 곳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서울'이나 '구로 근처'라고 얼버무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노원구, 강동구와 같이 광명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서울 동부권 자치구의 주민들 중 일부는 광명시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

시 승격 이후 20년 간의 암흑기를 지나 대외적 인지도 상승을 위해 2000년 서울 지하철 7호선 개통 이후 한때 '철산'역의 역명을 '광명시청'으로 변경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 그냥 묻혔다.[49] 그러나 2000년 서울 지하철 7호선 개통, 2004년 KTX 광명역 개통, 2006년 광명돔경륜장 개장, 2012년 코스트코 본사 이전, 2014년 한국 첫 이케아 광명점 개장 및 롯데몰 광명점 개장 등으로 최근엔 많이 알려진 상태. 특히 이케아 최초 개점의 임팩트가 워낙 컸다 보니 광명=이케아로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다. 최근에는 광명동굴도 적극적으로 밀고 있다.

6.4. 생활권서울 편입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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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도시행정

7.1.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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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주요 행정기관 권역

경기도를 북부권, 남부권, 서부권, (중부권)으로 3~4등분할 경우에는 대체적으로 서부권에 속하는 도시로 본다. 다만, 가끔 안양권과 묶여서 경기 중부권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선거 홍보책자에서는 광명을 서부권이 아닌 중부권으로 분류했다. 일단 광명시민들은 주로 서울로 왕래하므로 부천 혹은 안양쪽으로 연계 의식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실제로 서울을 왕래하기 위해 광명을 경유해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안양 쪽 거주자보다 인천이나 부천 쪽 거주자가 압도적으로 많다할 수 있으므로 서부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경기도와 국토부 차원에서의 도시계획에서도 광명시를 서해안권, 즉 서부권에 있는 도시로 본다.

행정구역과 생활권이 상이한 지역이다보니 광명시를 관할하는 행정기관들의 권역 구분도 다양하다. 아래에 별도로 언급되지 않은 기관들은 경기권(수원권, 경기남부권) 관할인 경우다. 정부의 입김이 많이 적용되는 대중교통, 방송통신 분야를 제외한 민간기업의 경우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전기(전력)의 경우 광명시를 관할하는 한국전력 광명지사 조직 자체는 경기 남부권을 관할하는 한국전력 경기지역본부 산하이지만[58], 광명시의 송변전 계통은 남서울지역본부 관할이다. 이를 보여준 사건이 2017년 6월 11일 영서변전소(현 신광명변전소) 기능이상으로 인한 서울 남서부권 및 광명 지역 대규모 정전 사태. 시 승격 이전에는 한전 영등포지사 관할이었다고 한다.

7.3. 사법

가장 가까운 법원은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서울남부지방법원이지만,[59] 예비군훈련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울이 아닌 탓에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관할한다.[60] 철산동에 광명시법원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소액사건 등 일부 업무만을 담당하고 있다. 검찰도 법원과 마찬가지로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에서 관할한다.

단 과거에는 시흥군 자체가 서울지방법원 본원(1971년 이전) - 서울지방법원 영등포법원(1976년 이전) 관할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수원지방법원 본원이 관할했었다.

최근접 기관인 서울남부지방법원 관할로 변경하는 것은 서울 편입이 아니고서는 비현실적이므로, 광명 시민들은 관할 법원을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이나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다.[61] 광명시가 가까운 안양지원을 두고 멀리 떨어진 안산지원 관할이 된 이유는, 되게 간단한 내용이지만, 안산지원 설치 당시에는 안양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62] 당시만 해도 수원지방법원 관할 중 최근접 기관이 안산지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위와 같은 문제로 2015년 이후에는 지역사회 차원에서 관할 법원을 안양지원으로 변경하는 시도가 법률안 발의를 포함하여 여러 번 이루어졌으나 2019년 현재까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2017년에는 안양권에서 일어났던 안양지방법원 승격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2심 관할 법원은 서울 서초동 소재의 서울고등법원에서 수원 소재의 수원고등법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7.4. 치안

광명시의 치안은 경기도남부경찰청 산하 광명경찰서가 맡고 있다. 광명시는 아파트 단지가 많은 지역 특성상 경기도 지역 중에서도 강력범죄 발생률이 낮은 편. 옆동네인 구로구, 금천구, 부천시, 시흥시, 안양시보다도 나은 편이다. 중앙일보 기사에서 공개된 성범죄 지도에 따르면 광명시는 인근의 부천, 시흥, 구로, 금천, 안양에 비해 성범죄율이 낮은 것으로 나와있다.

다만, 중심지이자 유흥가가 밀집되어 있는 철산상업지구광명전통시장 주변에는 가끔가다 강력범죄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때 이 동네 일대를 활동했던 조폭광명사거리파철산리파까지 있었을 정도. 1차적인 도시화가 끝나자 2000년대 무렵부터는 치안이 안정된 것으로 보인다.

7.5. 세무행정

수원세무서(수원시, 화성군, 시흥군) → 안양세무서 (안양시, 시흥군) 관할이었으며, 1985년 광명세무서가 설치되었다가 1999년 부천세무서 광명지서로 격하되었고, 2004년 시흥세무서가 개청하면서 그 산하로 소속이 변경되었다.[63] 2016년 6월 9일 광명세무서로 재승격했다.

원래 광명세무서는 경기도, 인천, 강원도를 관할하는 중부지방국세청 산하였는데, 2019년에 인천지방국세청이 분리 신설되면서 광명세무서도 인천지방국세청 산하로 편입되었다.

관세 업무는 서울세관 산하 구로지원센터(옛 구로세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본래는 구로세관(서울 금천구 가산동 소재)이 광명시와 서울시 일부[64] 관할구역으로 두었으나 관세청 조직개편으로 일부세관들이 비스니스센터로 격하되어[65] 안양세관 산하의 구로비즈니스센터가 되었다가[66] 2022년에 서울세관 산하로 이관된후 비스니스센터를 지원센터로 명칭변경되었다.

7.6. 병무행정

광명시의 병무행정은 종전에는 수원시에 소재한 경인지방병무청(구 인천경기지방병무청)이 담당했지만, 2015년 7월부터는 인천광역시 남구에 소재한 인천병무지청(구 인천징병검사장)에서 담당하고 있다. 징병검사 관할이 2011년(1992년생)까지 광명시 거주자는 인천광역시 남구 학익동에 있는 인천검사장(현 인천병무지청)에서 징병검사를 받았으나, 2012년(1993년생)부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서울지방병무청으로 넘어갔다.[67][68] 물론 동원지정 등 나머지 병무행정은 인천병무지청 관할이다.

보훈 업무는 국가보훈처 산하 서울지방보훈청[69] 산하 인천보훈지청(인천 남동구 구월동 소재) 관할이다. 참고로 인근의 구로, 금천은 서울남부보훈지청(서울 서초구 소재) 관할이다.

7.7. 전화

광명시 통화권 이력 정리 (옥길동 제외)
  • 1964년 이전: 서울 시흥우체국 (시흥군 서면, 동면 자체 통화권)[70] → 1964년 서면우체국 분설로 서면 분리
  • 1964년~1970년 12월 (광명동, 철산동) / ~ 1980년 (하안동, 소하동, 학온동): 서면우체국 → 1974년 광명우체국 (시흥군 서면/소하읍 자체 통화권) → 1980년 서울통화권으로 흡수되면서 시흥군 소하읍 자체 통화권 폐지
  • 1970년 12월~1976년 (광명동, 철산동[71]): 영등포전신전화국 양서분국 오류분실 (서울통화권)
  • 1980년~현재 (학온동): 개봉전신전화국 → KT 개봉지사 (서울통화권)
  • 1976년~현재 (광명동, 철산동): 영등포전신전화국 개봉분국 → 1977년 개봉전신전화국 → 1978년 광명동, 철산동 미가입구역 서울시내전화 준가입구역 설정(서울통화권 편입 완료) → KT 개봉지사 (서울통화권)
  • 1980년~현재 (하안동, 소하동, 일직동): 노량진전신전화국 시흥분실 → 1983년 구로전신전화국 시흥분국 → 1995년 금천전화국 → KT 금천지사 (서울통화권)

서울전화를 거저먹은 동네, 그리고 경기도에서 유일한(시 단위 기준) 오리지널 02.[72][73][74] 이렇게 서울전화를 거저먹은 경기도 동네들은 광명시만이 아니지만, 시 단위로 따지면 경기도에서 유일한 곳.

광명시는 경기도이지만 전화 지역번호는 서울특별시의 02이다. 광명시 중 서울시계 지역만 02를 쓰는 것도 아니고, 광명시 전역이 02를 쓴다. 시흥군 광명출장소 일대가 잠정적인 서울 편입 예정지였던 시절에 광명출장소 지역 뿐만 아니라 시흥군 서면 전체가 전화망 확충 과정에서 서울전화 구역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었기 때문. 이는 전국 전화망 확충 과정에서 서울 신규편입지가 서울전화에 편입되면서 행정구역 상 서울은 아니지만 서울생활권에 속하는 일부 경기도 지역도 겸사겸사해서 서울전화 지역으로 편입시킨 것. 이는 시흥군 서면(현 광명시) 뿐만 아니라 광주군 서부면(지금의 하남시 감북, 초이)과 고양군 신도면 일대(지금의 고양시 덕양구 화전, 삼송지구)도 마찬가지였다.[75]

광명시 지역의 서울전화 편입 과정을 자세히 고찰하자면, 개봉동, 시흥동, 독산동 등 광명 주변 서울 지역이 1970년 3월 21일에 서울전화로 편입되었고[76], 1970년 12월 1일에 광명리 일부가 서울전화(오류분실[77] 관할지역)에 편입(관련 고시)되면서 서울전화 편입이 시작되었다. 점차 광명리, 철산리 일대의 가구들에 서울전화 회선이 설치되면서 개봉전신전화국이 승격설치된 1977년 즈음에는 서울전화에 가입된 번지들이 해당 고시에 나온 바와 같았으며, 1978년 8월 1일부로 고양군 신도면, 광주군 서부면이 서울전화로 편입되면서 광명리와 철산리는 완전한 서울전화 가입가능지역(당시 표현으로 '준가입구역'[78])으로 편입되었다.관련 고시.[79] 1981년에는 하안동 일부(구 하안주공 본1,2단지 지역)가 개봉전화국 관할로 편입되었다.[80] 가학리, 노온사리, 하안리, 소하리[81], 일직리 지역은 원래 시흥군 서면 자체통화권(광명우체국 관할)이었다가[82][83] 수도권 전화 광역화 계획에 따라 1980년에 서울전화로 편입되었다. 의외로 옥길동은 과림동과 함께 1978년말에 서울전화로 편입되어 소하동 등지보다는 이른 편. 한편 옥길동은 1978년 서울통화권 편입 이전에는 소래면 자체 통화권이었다. 이후 이 소래면 자체 통화권은 1979년 부천전화국 관할이 되면서 인천통화권(032)으로 편입되고 만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까지 부천, 고양, 안양, 분당 등지에서 성행했던 '서울전화 편입' 주장[84]이 죄다 퇴짜를 맞았던 걸 보면 광명시는 서울전화를 거저먹은 셈. 과천의 서울전화 편입과정과 비교하자면 광명의 서울전화 편입은 거의 묻지마식 편입인 셈이다. 이는 타 경기도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와 시외전화요금 수입감소와 같이 과천의 서울전화 편입 문제를 둘러싼 잡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과천청사라는 버프 하나만으로 1985년에야 안양전화에서 서울전화로 인위적으로 편입된 과천시의 사례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85]

얼마 전까지만 해도 131 기상청 안내전화로 기상예보 서비스를 받을 때 광명지역 기상 현황 및 예보를 안내받으려면 031-131로 걸어야 했다. 그냥 131 누르면 서울지역 기상 현황 및 예보가 안내된다. 그렇지만 광명시나 기상청이 있는 서울 신대방동이나 거의 기후가 비슷하고[86] 서울시계 지역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광명시의 지역적 특성상 다들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2022년 현재 기준으로 집 유선전화의 경우 동 단위로 기상예보가 나오도록 시스템이 개선되었고, 2018년부터는 02를 쓰는 광명, 과천이 아예 02-131로 편입되었다.

112나 119의 경우 031 국번 없이도 자동으로 경기도 소방본부,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연결되도록 조치되었다고 한다.[87] 하지만 예전에는 광명에서 112로 전화걸면 서울지방경찰청 측에서 전화를 광명경찰서 쪽으로 돌려야했던 불편함이 있었다.기사

경기도교육청 민원콜센터 031-1396과 같이 경기도 관할 공공기관에 전화걸 일이 있으면 031을 누르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걸 까먹고 그냥 전화걸면 경기도교육청이 아닌 서울시교육청으로 걸린다.

광명시를 관할하는 전화국이 광명시에 있지 않고 서울에 3곳으로 분산되어 있다. 광명시를 관할하는 전화국으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동에 있는 KT 개봉지사(구 개봉전화국)[88]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KT 금천지사(구 금천전화국), 금천구 독산동 월경지에 있는 KT 신금천지사(과거 금천전화국의 분국) 세 군데로 분산되어 있다. 개봉지사는 광명시 중에서 광명동, 철산동, 옥길동, 노온사동, 가학동과 하안1동 일부[89]를 관할하며, 신금천지사와 금천지사는 소하동과 하안동의 각 일부와 일직동을 관할한다. 국번이 268x과 261x, 2625로 시작하는 번호는 개봉지사 쪽이고 80x,892~896으로 시작하는 번호는 금천지사, 897~899국번은 신금천지사 쪽이다. 신규번호는 KT 전화망 기준으로, 206x번대를 쓴다. 단, KT 이석채 회장 시기에 지사들의 대대적인 통폐합이 이루어져, 신금천지사가 금천지사로 통폐합되어 현재의 신금천지사 건물은 전화분국 기능보다는 KT 영업소 + 서드파티 민간사업자 임대 점포로 쓰여질 가능성이 있다.

국번조차도 개봉지사 관할구역은 서울 개봉동, 고척동의 국번과, 금천지사 관할구역은 서울 시흥동의 국번과 공유한다.

광명시는 현재 인구가 35만명 수준이고, 시 승격 당시에도 15만명이었는데도 아직도 관내에 자체 전화국이 없는 상태이지만 같이 02를 쓰는 과천시는 인구가 10만도 안되는데도 아주 최근인 2016년까지 관내에 자체전화국이 있었다. 광명시의 경우 시 승격 이전부터 서울과 생활권이 너무 밀착해서 서울 소재 전화국의 관할구역으로 편입되었다면, 과천시의 경우 안양전화국 관할이었던 과천을 떼내고 정부청사의 원활한 통화를 위해 위해 따로 전화국을 차린 것이다.

KT 구로지사(구 구로전화국)[90]가 광명시도 관할해서 광명이 서울 02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광명동·철산동(월경지 제외)·학온동은 애시당초 구로전화국과 관련없고(1977년에 설치된 개봉전화국 관할), 하안동·소하동 쪽을 관할하는 지금의 KT 금천지사가 1995년 금천전화국으로 승격하기 이전에 구로전화국 시흥분국(1983년 개편[91])으로 있었던 시절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옛 철산3동 안양천 이동 월경지(1995년 가산동 편입)는 1973년 구로공단 제3단지 준공으로 구로전화국 본국 관할로 편입되었다.

광명시 관내에 자체 전화국이 없고 관할 전화국들이 전부 서울에 있기 때문에 광명시가 031 지역으로 편입된다면 굉장히 곤란하게 된다. 소속 도의 지역번호가 아닌 인접한 특별시, 광역시 지역번호를 쓰는 과천시, 부천시, 경산시마저도 관내에 자체 전화국이 있다.[92] 물론 광명을 031로 편입시키는 것은 주민입장에서는 있던 것을 빼앗기는 셈이라 실질적으로는 저렇게 될 가능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KT측으로서도 광명시의 031 편입은 안양 지역 전화국 시설 확충 혹은 광명 관내 전화국 신설과 같이 괜한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93] 또한 역사적으로도 광명시 전화는 과천시와 달리 오리지널 서울 02이라는 문제도 있다. 장비보강 비용 문제가 아니더라도 국번 개편자체(지역번호 변경은 필시 국번 개편이 뒤따름)가 명시적,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참고로 2000년 전화번호 개편 당시에 부천시의 일부 주민들은 부천시의 031 편입을 요구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가 있다. 지역번호, 국번 바꾸는 것 자체가 애들 장난이 아니다. 부천시의 031 편입이 무산된 것도 국번재배열 문제도 있지만, 번호 전환에 따른 사회적 비용 또한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지역번호 개편때 기존 지역번호가 워낙 중구난방(인천번호+안산번호+서울번호)이었던 시흥시만 031로 통합되고, 과천시, 광명시, 부천시, 경산시는 해당 소속 도가 쓰는 지역번호가 아닌 기존의 지역번호(인접한 특별시 및 광역시 지역번호)로 존치된 것도 이런 측면이 컸다. 현재로서는 경기도 지역 국번도 과포화되기 시작한 상황이라 031 편입이 녹록치 않다. 032가 싫어서 031로 편입하라는 요구도 안먹힌 마당에 02라는 프리미엄을 포기할리가 없다.

특이하게도 하안동, 소하동 지역에 있는 주민센터나 도서관과 같은 광명시청 산하 기관들은 죄다 철산동쪽인 2680 국번을 쓴다. 또 시흥시 과림동 지역[94]도 개봉전화국 관할로 지역번호 02에 261X 혹은 268X대 전화번호를 쓴다.[95] 개봉지사 측의 설명에 의하자면, 신규고객 중 031을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서울의 신규 국번인 2060번대를 쓰는 업소들이 광명시내 곳곳에 있는 것을 봐도 그러하다. 광명시에서 031을 쓰는 경우는 원래는 경기도 다른 지역에 있다가 광명으로 이전해오면서 기존 번호를 그대로 쓰는 극히 일부 가정이나 업소가 대부분이다.

서울 구로구(KT 개봉지사 국번 사용지역의 경우), 금천구(KT 금천지사 국번 사용지역의 경우)에서 자꾸 여론조사 전화가 온다. 반대로 구로, 금천구 주민인데 광명에서 여론조사나 선거운동 문자가 오는 경우가 있다.

광명시청 및 산하기관(주민센터, 시립도서관 등)은 국번으로 02-2680(개봉지사)를 쓴다. 단, 공립 초중고교는 해당 사항이 없고 소재지의 국번을 쓴다. 원래 61X, 68X번대였던 개봉전화국 국번은 1999년(61X국번), 2002년(68X국번)에 앞에 숫자 2가 추가된 261X, 268X번대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7.8. 상하수도

일부 사람의 편견과 다르게 상수도(수돗물)는 서울특별시로부터 독립한지 꽤 되었다. 그런데 1988년에 완공한 노온정수장은 한동안 인천광역시 관할이었다. 이게 사실 인천시 단독정수장이 아니라 부천, 시흥, 광명 등의 인천권을 인천시가 책임지는 광역정수장 개념으로 지어졌기 때문. 노온정수장 통수가 시작된 것은 1989년 6월 15일. 1986년 인천직할시 노온정수장 설치에 관한 조례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애초부터 인천광역시 산하 정수장으로 지어진 모양. 1990년 서울시 수돗물 공급 중단 이후 2008년까지는 광명시는 상수도 한정으로 인천권에 속했던 셈이다. 1990년 6월 15일 서울시 수돗물 공급 중단 이후부터 2009년에 광명시로 이관되기 전까지는 광명시민들은 노온정수장 완공 이후로 인천시 수돗물을 먹어온 셈이다. 광명시내 여기저기 널려있는 구 인천직할시 시절 문장이 붙어있는 맨홀 뚜껑들은 그 시절의 흔적. 서울특별시 옛 문장이 붙은 맨홀 뚜껑들도 어렵지 않게 광명시내에서 찾아볼 수 있다.사실 노온정수장은 광명시 뿐만 아니라 부천시(소사구), 시흥시 북부, 인천광역시 일부(광명시 이관 후로는 공급 중단)에도 수돗물을 공급할 목적으로 지어진 정수장이라 정수가용능력은 광명시의 수돗물 수요보다 훨씬 많은 편이다. 노온정수장의 취수장은 풍납취수장이 아닌 팔당취수장이다.

다만 철산1동 월경지는 서울시 수돗물이 공급된다. 참고로 독산1동 월경지는 행정구역 상 서울특별시이고 서울의 행정상 공백지역도 아니기에 당연히 서울시 수돗물인 아리수가 공급된다.

서울시 수돗물이 공급되던 시절에는 관할 정수장이 신월정수장(현 서서울호수공원)이었다. 그런데 그 신월정수장도 원래는 김포, 부천 지역을 관할하던 인천시 산하 정수장이었다가 1979년에 서울시가 인수한 것. 철산대교 밑에 붙어있던 서울시 상수도관은 1990년 이후로 방치되었다가 2014년에야 철거되었다. 시 승격 이전에는 수도요금 징수는 서울 영등포구청이 담당했다 (출처: 1976년 <시흥군 서면 광명리, 철산리 편입방안> 서울시 문건).

광명시에서 나오는 하수의 대부분은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있는 서남물재생센터(구 가양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한다. 해당 하수는 안양천~한강 둔치 지하에 매설된 광역하수관을 따라 강서구의 하수처리장으로 흘러간다. 1987년 서남물재생센터 준공 당시에 광명시 예산 지분 70억원이 투입되었다. 다만 일직동 역세권(제2경인고속도로 이남 지역)에서 나오는 하수는 광명시-안양시 경계에 있는 박달하수처리장(1992년 준공)에서 처리된다.

단, 옥길동, 노온사동, 학온동은 하수처리 제외지역이다. 산업단지가 조성된다면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자체 하수처리장이 조성될 계획이라고 한다. 광명시 나머지 지역은 기존대로 서울 서남물재생센터, 안양 박달하수처리장이 관할.

1987년 3월 서울 가양하수처리장(당시 명칭 '안양하수처리장'. 현 서남물재생센터) 준공으로 1988년 9월 7일에 실질적으로(이날에 서울-광명 간 하수관거 연결) 서울시 하수처리구역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광명시의 하수가 안양천, 목감천으로 그대로 유입되었다. 사실 1986년부터 정부에서 광명시 자체 하수처리장 건설 계획을 세워 광명동에 광명시의 독자적인 하수처리장 건설이 추진되었으나[96] 광명동과 인접한 구로구에서 쓰레기소각장 건설이 추진된 것과 맞물려 양쪽 주민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불렀고, 그것이 행정학에서도 회자되는 협력 거버넌스 사례인 2000년 환경 빅딜로 이어졌다. 환경 빅딜의 결과 광명시는 자체 하수처리장 건설 대신에 서울의 가양하수처리장(현 서남물재생센터)을 연장 이용하게 되었고, 구로구는 자체 쓰레기소각장 건설 대신에 광명시의 가학동 쓰레기소각장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광명시 자체 하수처리장 건설 계획 자체가 아예 백지화되었다. 다만, 최근에는 광명시흥 테크노벨리 계획과 맞물려 학온동을 관할할 자체 소규모 하수처리장 건립 계획은 있다고 한다.

서울 서남물재생센터의 하수처리 용량증설이나 노후화 시설 개선 사업에 대한 비용에 대해 지금도 광명시는 일부를 분담하고 있다.

분뇨는 광명시청 관할 분뇨수거차를 통해 광명시내 각 가정/건물별 정화조에서 수거되면 광명스피돔 근처에 있는 분뇨처리장에서 처리되며, 일부 신축 아파트단지들의 경우는 정화조 없이 분뇨관을 통해 서울 소재 서남물재생센터에서 처리한다.

7.9. 차량등록 관련

차량등록소는 부천시에 위치한 차량등록사업소에서 1992년까지 계속 전담되었다. 당시 차량번호는 경기 서부권이기에 김포군[97], 강화군, 옹진군과 마찬가지로 경기X러/로/루/르YYYY의 차번호판이 존재하였으나, 1993년부터 정식으로 신설된 후부터 차량번호판은 경기X추/처YYYY[98]로 바뀌었다가 1996년 번호 체계 개정으로 경기 번호판을 그대로 두되, 승용은 39, 승합은 72거~머, 화물은 84고~무, 특수는 98거로 각각 배정되었다.

199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는 광명시 차량등록소가 광명성애병원 근처 주차장 부지에 있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하안동 광명공영차고지 조성으로 광명시 소재 서울 면허 시내버스 차고지들이 그쪽으로 통폐합되면서 광명실내체육관 옆 옛 보영운수 차고지로 이전했다.

8.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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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경제

9.1. 개요

서울특별시의 위성도시(베드타운) 답게 서울특별시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많다. 알바 또한 광명시내 상권뿐만 아니라 인근 서울 지역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가산동에서 근무하는 광명시민만 13,0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관련기사 구로G밸리 지역 중에서 가산동 지역은 2,3단지 뿐이고 1단지는 구로3동에 있으니 구로G밸리에서 근무하는 광명시민만 대략 2만명 이상이라 추측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서울특별시로 출퇴근하는 인구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 비중이 경기도 내에서 가장 높은 것은 사실이다. 경기개발연구원에 따르면기사 서울과 경기도 간 통행 비율집계에서 광명시가 50.7%로 경기도 내에서 서울과의 통행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99] 2010년도 데이터에서도 주간인구지수가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꼴찌이며 유출지로는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로 나와있다. 2015년 통계데이터에서도 광명시의 서울 통근율(통근 인구 대비)이 경기도 1위 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2010년의 통계청 자료에서는 전체 시 인구 대비 서울 통근, 통학 비율이 29%로 경기도 1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2위는 과천시. 서울 지하철 7호선 이용객 수에서 광명사거리역과 철산역이 각각 전체 2, 3위를 차지할 정도라는 것은 광명시의 높은 서울 통근율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2세 이상 통근통학인구 중 서울 통근통학비율은 38.8%로 38.9%를 차지한 과천시에 비해 0.1%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그 바로 아래는 35.8%를 차지한 하남시. 참고로 시 승격 당시에는 서울 통근율이 무려 80%에 육박했다고 한다.

2017년 상반기 기준으로는 광명시의 시외 통근율이 전체 취업자 중 62.5%로 집계되었다. 경기도내 4위에 랭크되었으며 1위는 과천시(78.5%), 2위는 의왕시(74.9%), 3위는 군포시(65.4%)가 차지했다. 광명시와 비슷한 타 지자체는 구리시(61.3%), 오산시(60.1%) 정도.

이 탓인지 2010년 현재 광명시의 GRDP(지역 내 총생산)는 약 3조 9천억 원이며 1인당 GRDP는 12,054,000원으로 경기도 내 꼴찌에서 두 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개발가능부지 대부분이 택지지역으로 전용된 탓에 지역경제를 이끌 대규모 공업시설 등의 조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기아자동차와 롯데칠성음료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대기업 사업장도 존재하지 않아 대부분 영세기업 및 거주민을 상대로 하는 소비시설들이 나머지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소하지구 내에 입주한 광명 테크노파크와 에이스광명타워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지역경제의 새로운 핵으로 부상하는 중. 2012년 기준으로 광명시 지방세 납부액의 절반을 기아자동차, 테크노파크, 롯데광명물류센터, 스피돔, 이마트소하점, 마사회 광명지점, 에이스광명타워에서 납부한 것으로 나왔다.관련기사 2016년 GRDP는 1인당 1,964만원으로 31시군 중 26위를 차지했다. 여전히 하위권이긴 하지만 30위였던 5년 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 특히 고양시, 의정부시 등을 아래에 두고 대기업 사업장 많기로 소문난 의왕시를 바짝 뒤쫓는 쾌거를 달성했다.

별 다른 경제적 기반이 없는 것 치고 의외로 자영업 비중은 낮다. 인구 천명당 생활밀접형 자영업자 비중이 의왕시에 이어 경기도에서 밑에서 두 번째. 상당수의 서비스 수요를 가까운 서울에서 흡수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광명시 자체가 구로공단의 배후 주거지로 개발된 역사가 있는데다가 현재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의 직주생활권이고, 금천구와 동일한 지역노동시장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광명시 바로 옆에 대도시(서울특별시)의 대규모 산업단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광명시의 자족도시화를 방해하는 근본 요인인 셈이다.

광명시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단연 광명역세권개발사업로, 그간 경기침체로 지지부진했던 개발사업은 2000년대 말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해 2012년 연말부터 코스트코 광명점이 영업을 개시하였고 2014년 12월에는 이케아 광명점롯데몰 광명점이 광명역세권에 들어섰다. 2017년까지 역세권에 조성을 추진중인 국제디자인클러스터가 완성되면 역세권 개발은 일단 큰 틀이 잡힐 듯하다.

9.2. 산업

거대하고 또 그만큼 오래된(1970년대에 최초 건립) 기아 AutoLand 광명[100] 광명시 소하동에 있어서 베드타운만이 아닌 자체 생산기능도 갖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하리 공장은 그린벨트 지역에 있는데 이는 소하동 일대가 그린벨트에 편입되기 이전에 공장이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기아의 창업지는 옆동네인 서울 금천구 시흥동. 그래서 이 공장은 실제 생산하는 차가 많지 않다.[101] 1997년 기아자동차에서 서산오토밸리 사업에 착수할 때부터 소하리공장이 서산으로 이전된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계획이 무산되었다. [102]

철산1동 월경지에는 과거 대우자동차 정비센터가 있었는데, 이 부지에는 현재 롯데 광명물류센터가 들어서 있다. 대기업 사업장 외에는 1992년 경기도 최초의 아파트형 공장으로 설립된 광명시범공단[103]과 2010년 문을 연 광명테크노파크·ACE광명타워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공단을 조성할 부지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산시설들은 아파트형 공장 형태로 입주해 있으며, 때문에 중소기업들 위주로 돌아가는 편이다.

농업의 경우에는 1960년까지는 전체인구의 70%를 차지하였으나, 시 승격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급격한 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는 도시화가 더딘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하우스 재배 등 근교농업이 발달하여 고등채소와 과실류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전체 인구의 15%[104]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9.3. 상권

광명시 내 대표 상권은 철산상업지구와 광명동 상권이며, 이 외에 동별로 소규모 상권이 분포해 있다. 최근에는 광명역세권에 대규모 쇼핑단지가 들어서는 중.

자세한 내용은 광명시/상권 문서 참조.

9.4. 금융

광명시에 위치한 금융기관[괄호]
제1금융권
국가기관
광명우체국 (7)
국책은행
중소기업은행 (4)
특수은행
수협은행 (1) 농협은행(중앙회) (4)
시중은행
신한은행 (3) 우리은행 (5)
SC제일은행 (3) 하나은행 (3)
국민은행 (4)
제2금융권(상호금융)[괄호]
농업협동조합
광명농협 (8) 안양축산농협 (1)
수산업협동조합
고흥군수협 (1) 구룡포수협 (1)
새마을금고
광명새마을금고 (7) 광명제일새마을금고 (6) 광명동부새마을금고 (4) 광남새마을금고 (3)
기아자동차새마을금고 (2)
신용협동조합
광명신용협동조합 (3) 롯데칠성음료신용협동조합 (1)
상호저축은행(상호금고)
한국투자저축은행 (1) 융창저축은행 (1)

10.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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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생활문화

11.1.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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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의료기관

과거 광명성애병원(272병상)이 시내 유일한 종합병원이었으며, 일반 병원으로는 하안사거리의 광명인병원이 있었으나 2020년 3월 초 폐업했다. 하지만 백화점이나 할인점과 마찬가지로 구로구나 영등포구쪽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구로구 구로동)나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영등포구 대림동)과 같은 종합병원이 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중앙대학교광명병원(617병상)이 역세권지구 국제디자인클러스터 옆에 2022년 3월 개원하면서 의료 환경이 더욱 좋아졌다. 또한, 소하지구 SK 테크노파크 북쪽에 들어서는 광명G타워 지식산업센터에 중앙대학교병원이 운영하는 건강검진센터와 의원급 의료기관 다수가 들어섰다.

광명시 보건소는 1971년 2월 20일 시흥군 보건소 광명지소로 개소한 이래 시승격과 함께 광명시 보건진료소로 승격, 1983년 광명시 보건소로 승격하여 현 철산3동 평생학습원 자리에서 개소하였다.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당시 시설은 30만 시민을 책임지기엔 시설이 꽤 열악했다. 예방접종 시기엔 접종 받으려는 줄이 상업지구까지 넘쳐나던 판... 그러던 것이 2000년 하안동의 크고 아름다운 시설로 옮겨가 노인요양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다만 철산동에서 하안동으로 이전하면서 광명동 지역에서의 접근성이 불편해진 탓에 광명6동에 보건분소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 광명사거리에는 양산부인과와 한원보산부인과, 그리고 지금은 부천으로 이전한 조규학산부인과(현 초앤유여성병원)라는 3개의 산부인과가 있었다. 광명, 철산지역 초등학생들은 광명사거리에 자신이 태어난 산부인과를 댈 수 있는가, 없는가로 토박이 여부를 과시하기도 했다(...) 지금도 파티마산부인과[107]와 순풍산부인과[108]와 같은 산부인과가 광명사거리에 몇 군데 있고, 금천대교 주변에도 미래여성산부인과가 있다. 광명시가 출생지인 사람 중에 출생 당시 광명주민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고대구로병원이나 대림성모병원이나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에서 원정출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광명시내의 산부인과는 다른 도시들의 산부인과와는 다르게 폐업은커녕 현상유지 혹은 리모델링을 하는 산부인과가 많다. 이는 경기도 내에서도 연령대가 젊은 편에 속하는 광명시의 특성상 출산율이 서울특별시보다도 높아 출생아 수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1.3. 종교

11.3.1. 소속 교구

11.3.2. 소하동 미자립교회 난립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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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미자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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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 그 이름도 유명한 교회촌이 있다. 소하동 중에서 서울특별시의 경계지역(그 유명한 독산동 월경지 중 단독필지지구)에 교회들이 몰빵되어 있는데, 수십개의 영세교회들이 이곳에 몰려있으며 교회가 개척과 폐지가 반복되고 있다. 물론 이런 교회의 목회자들은 경제 사정이 영 좋지 않다. 그러므로 교회를 운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주중에는 노가다를 하고 주말에만 목회를 하는 투잡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교회를 다니는 건 영 좋지 않다. 한 교회를 다니면 옆에 있는 교회들이 서로 전도를 해대서 거의 쟁탈전 수준의 전도를 하고, 이에 따라 교인들이 계속 수평이동을 하며 순례교도가 되어 이 교회 저 교회 떠돌아다니고 한 교회에 정착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미자립교회목사가 계속 암묵적인 눈치를 주기 때문에, 헌금으로 쓰는 돈이 무시 못할 수준이 된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이른바 교회촌미자립교회들이 지나치게 많이 몰빵된 탓에 한정된 지역 주민 숫자로 계속 교인 돌려막기를 하고 있어서 전혀 성장하지 못한 탓에 교회로 이루어진 할렘이 형성되어 있는 상태이다.

11.4. 장례시설

장례식장은 규모가 있는 병원에는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으나[109] 실질적으로 중요한 시설은 화장장과 납골당. 하지만 광명시내에는 화장시설이 없다. 따라서 부평(인천시 관할), 벽제/원지동(서울시 관할), 수원, 성남 등지에 있는 화장터에 관외이용자 요금인 100만원이나 지불하고 이용해야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에 광명시의 지분이 투입된 화성시 광역 화장장이 최근에 준공되어 화성시 화장장을 관내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건설 과정에서 수원 호매실지구 주민들과의 마찰이 있기도 했다.

납골당은 일직동에 시립 납골당인 '광명메모리얼파크'가 있는데, 원래는 화장장 겸용으로 설치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납골당이 안양 석수동 연현마을과 가까워서 납골당 건립과정에서 안양주민(그 연현마을 주민들)과 광명시 당국의 물리적인 충돌이 많았다[110] 어쨌든 우여곡절끝에 이 납골당은 결국 개장하여 광명시 출생자 및 일정기간 이상 거주자의 유골 안장을 받고 있다. 산이 개인 사유지라 그랬는지 부지가 너무 좁으며 그리고 주차장도 턱없이 부족하다.

11.5. 방송 수신 환경

광명시는 대표적인 지상파 방송 강전계 지역이다. 남산송신소가 메인이었던 시절에는 그냥 중전계 지역[111]이었지만 송신중심점이 관악산으로 옮겨지면서, 광명시-남산 사이에 별다른 산이 없고 광명시 자체가 관악산과 바로 트여져 있는[112] 지리적 혜택을 받았다. 이는 남산전파와 관악산전파가 균형잡힌 서울시 구로구, 영등포구, 강남구, 서초구도 마찬가지다.[113]

예전에는 남산서울타워 주변 지역이 방송 강전계 지역의 혜택을 누렸으나 지금은 방송송신소 거점이 관악산으로 옮겨졌다. 따라서 수도권 아날로그 텔레비전 거점송신소는 여전히 남산이지만, FM라디오 대부분, DMB, 디지털TV의 수도권 거점 송신소는 관악산이며, 남산은 사실상 서울 강북지역 디지털방송 중계소로 격하되었다. 참고로 그곳은 남산송신소에서 발산되는 잡신호때문에 관악산 송출 라디오방송의 전파수신상태가 그리 좋진 않다.

아무튼 이러한 지역적 특성때문에 아파트 공청시설을 포함하여 지상파 직접수신하는 광명주민들은 KBS 경인 1TV가 아닌 KBS 서울 1TV를 시청하고 있으며, 아파트에 살고 성능 좋은 실내안테나가 있으면 웬만하면 실내 TV 수신이 가능할 정도다.
AM라디오 중에서 경기 서부에 중파송신소를 둔 KBS는 수신상태가 좋다(603, 711 kHz). 개봉송신소(639 kHz) 폐쇄 전에는 개봉송신소 전파가 워낙 강력해서[114] 일부 PC용 스피커나 싸구려 앰프에 KBS 제3라디오가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다만 고양시에 여러 중파송신소를 둔 민방은 수신상태가 그리 좋지않다. 디지털TV가 있고 고층아파트에 사는데 공청안테나 시설이 영 아닌경우 좋은 실내안테나 가지고 실내수신을 시도해 보자.

도덕산에 광명중계소가 있는데, 이는 아날로그 TV 방송 시절에 광명동 일부 지역의 난시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된 중계소다. 당시에는 메인 송신소가 관악산이 아닌 남산타워였고, 아날로그 방송 특성상 신호강약과 상관없이 산과 같은 장애물이 있으면 방송수신품질이 심히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어서 그 중계소가 필요하였다. 지금은 디지털 방식에다가 메인 송신소가 관악산인 만큼 디지털 전환으로 폐지되려나 싶겠지만 아마도 KBS 경인방송센터 송출망 확충 문제로 해당 중계소가 존치된 것으로 보인다.[115] 그리고 광명중앙도서관 쪽을 위시한 일부 지역은 관악산 전파 수신상태가 좀 애매하기도 하다. KBS 도덕산 중계소는 KBS 소래송신소 측에서 관리한다.

중파방송 송수신에 유리한 지역이다보니 과거에는 관내에 중파송신소가 2개소나 있었다. 예전에 소하동 자리에 MBC 중파 송신소가 있었다. 현재로 따지면 소하초 앞 사거리 인근. 이름하여 구 MBC 시흥송신소. 1961년 7월에서 11월 당시의 신문을 찾아보면 시흥군 서면 소하리에 송신소를 세웠다는 HLKV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지금의 MBC를 가리키는 곳이다. 참고로 이 송신소는 1994년에 현 위치(경기도 고양시)로 이전되었다.

또한 동양방송 라디오 송신소(시흥송신소)도 철산1동에 있었다. 지금으로치면 철산KBS우성아파트 일대. 여담으로 초창기에 바로 옆 서울 개봉동에 동아방송 라디오 송신소(언론통폐합때부터 2010년 폐쇄까지는 KBS 개봉송신소)가 있는 것 때문에 혼신 문제가 생겨 주파수를 640kHz로 바꿔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에 KBS 시흥송신소(철산동)와 개봉송신소가 개봉송신소로 통폐합되면서 개봉송신소에서 792kHz(KBS 라디오 서울 → SBS 라디오)[116]와 639kHz(KBS 제2라디오 → KBS 제3라디오)[117]가 동시에 송출되기도 했다.

11.6. 택배

광명시의 택배는 대체적으로 구로금천권으로 묶여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예외는 있다.

CJ대한통운의 경우 광명시 관할 영업소가 안양시 석수동에 있다. (광명, 안양 관할) 그런데 광명영업소가 금천지점 산하로 뜬다. 그리고 광명에서는 물품을 발송할 때는 가산 콘솔을 경유하는 경우가 있는 듯.

한진택배의 경우 철산대교 코 앞에 한진택배 남서울물류센터가 있지만 정작 광명이 관할이 아니며, 관할 영업소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 동부제강 옛 공장터에 있다. 물론 물건은 오류동 영업소에 가기 전에 남서울물류센터를 거치긴 한다. (부천, 광명, 영등포 관할)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관할 영업소(구로지점)이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데, 광명시도 관할구역으로 두고 있다. (구로, 금천, 동작, 광명 관할)

페덱스는 철산동, 광명동, 하안동, 소하동(법정동 기준)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소재 강서영업소에서 직접 배달온다. (강서, 양천, 영등포, 구로, 금천, 광명, 동작, 관악 관할)

쿠팡은 예전에는 서울 오류동 소재 구로물류센터 관할이었는데 최근에 시흥시 소재의 시흥물류센터로 바뀌었다. 이때 구로구 일부, 금천구 일부도 그쪽으로 넘어갔다.

11.7. 지역 언론

시에서 발행하는 광명소식과, 민간에서 발행하는 광명지역신문, 광명일보, 광명매일신문, 광명포스트, 뉴스인광명 등이 있다.

11.8. 방언


전통적인 토박이 방언을 기준으로 한다면 영등포, 금천 지역과 함께 구 시흥 방언 권역에 속하지만, 현대 방언을 기준으로 하면 서울 방언 지역에 속한다.

안양시, 수원시, 용인시, 안산시 등의 여타 경기 남부 지역과 다르게 '~하는 거'와 같은 종결 어미가 잘 쓰이지 않는다. 경기도 내에서 서울 출신 이주민 비율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이고 생활권이 영등포 권역에 속하다보니 사실 단지 서울의 영향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옛 서면지역(현 광명시)만 빼고 오리지널 시흥군 지역이 죄다 서울에 편입[118], 시흥(금천)방언이 그대로 현대 서울(영등포)방언이 된 셈이니 다르고 말고 할게 있나.

몇 가지를 기억해 보자면, 작대기(막대기), 줄거리(줄기), 도하기(더하기), 뜨들지마(떠들지마), 비다(베다)/띠다(떼다)/디다(데다), 봉다리(봉지). 모두 국민학교 때 썼던 말들이다. 다만 여기에 나온 사투리들은 서울을 포함한 경기 중부권에서 보편적으로 쓰였던 방언이기도 하다.

다만 광명시 특유의 사투리가 하나 있는데, 편가르기할 때 쓰이는 데덴치스다. 서울의 '데덴치'가 광명으로 이주온 서울 출신 이주민 사이에서 변형된 것으로 추정. 이것만 봐도 얼마나 광명시가 역사적으로 서울시 팽창과 매우 밀접한 위성도시인지를 알 수 있다. 광명이 서울시 학군에 속했다면(서울 편입 포함) 서울 쪽 아이들과의 교류때문에 서울처럼 "데덴치"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서울 출신 이주민이 광명에 정착한 역사가 긴 편이고 학군이 애초부터 분리되다보니 저런식으로 변형되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데덴치스'는 광명시의 영향이 강한 구로구 일부 지역에서도 쓰인다는 제보가 있다. 발음은 보통 데데-ㄴ 치 ↗ㅅ! 정도. 그러나 현재에는 서울의 데덴치도 들어와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11.9. 대중문화 속의 광명

도시가 워낙 존재감이 없다보니 각종 미디어에서 어쩌다 광명이 등장해도 광명이라는 이름이 대놓고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보통은 설정상 서울이라고 되어있으니 서울 분위기를 낼 수는 있는데[119] 촬영에 무리는 가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동네를 찾을 때 광명을 촬영지로 택하는 정도다.

12.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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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군사

관내에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제52보병사단 사령부[122]가 주둔하고 있지만 정작 광명시는 수도군단 예하 제51보병사단 관할 지역이기 때문에 광명시 지역 향토예비군들은 박달교장(안양시) 대신에 더 먼 반월교장(안산시)으로 가야 한다.[123]

52사단 사령부내에 동원자원호송단(줄여서 호송단)도 주둔하고 있다. 두 부대는 전혀 다른부대이다. 상급부대도 다르고(52사단 상급부대는 수도방위사령부, 호송단 상급부대는 육군동원전력사령부)부대마크도 다르다. 한울타리두가족. 근처 박달교장까지는 철산역을 기준으로 버스로 편도 1시간 정도 소요되며(이건 대충 광명에서 안양1번가로 가는 소요시간과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124], 과림교장까지는 광명사거리에서 39번 버스타고 3~40분 정도면[125] 한번에 갈 수 있는데 비해[126] 반월교장까지는 무려 편도 1시간 40분이나 걸린다.

문제는 이 반월교장이 수도권에서도 손꼽히게 대중교통이 부실한 동네라[127] 보통은 시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예비군들을 수송해주는데 이게 왕복 6,000원[128] 버스-택시로 아등바등 해봐야 시간은 갑절로 들고[129] 돈 드는 건 대강 비슷하다보니 대부분의 광명 예비군들은 오늘도 울며 겨자먹기로 6,000원의 거금을 들여 나라를 지키러 가고 있단 거다. 그런데 같은 훈련장 쓰는 시흥시는 그나마도 없다. 대야동 쪽만 버스가 운행되고 능곡, 정왕 지역은 편도 택시비만 지원해줘서 광명에서 시흥으로 이사 간 예비군들은 광명에 남은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사실 이건 하필이면 훈련장이 있는 안산이 수도권에서도 손꼽히는 시장도 치를 떨 정도로 막장인 버스업체를 보유한 지자체라 벌어지는 일이다. 아무튼 여러 민원에도 불구하고, 전국단위훈련 신청을 통해 훈련장을 박달교장으로 바꾸라는 것이 당국의 공식입장이다. 따라서 예비군훈련 일정이 뜨는 대로 바로 예비군 홈페이지에서 전국단위훈련 신청을 통해 훈련장을 바꾸도록 하자.[130] 자신이 서울혐오주의자라서 서울 관할 훈련장으로 가는 것에 정 스트레스 받으면, 또는 원하는 날짜에 서울지역 전국단위훈련들이 마감 사태를 보이고 있으면 51사단 산하의 창박골쪽(안양시 만안구 관할) 예비군 훈련장으로 가도 무방할 듯 싶다.[131] 사실 반월예비군훈련장의 수용능력이 포화된 경우에는 전국단위훈련 신청이 아니고도 일부 동미참 인원들이 창박교장으로 배정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아니면 아예 고개를 서쪽으로 돌려서 17사단 산하의 부천시 예비군훈련장도 반월보다 훨씬 가기 편하니 여기로 가도 된다.[132]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왕복 교통비가 문제라면 서울 강남쪽 예비군훈련장이나 인천 쪽 예비군훈련장(공촌/신공촌/주안/계양)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사실 이러한 열악한 현실과 다르게 묵묵히 전세버스를 타고 반월교장으로 가는 광명시의 예비군 용사들이 많다. 아무래도 전국단위훈련 신청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수방사 예하 사단쪽 훈련장들이 경기도 남부권 훈련장들에 비해 예비군 훈련이 FM스러운 점도 이에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리모델링을 위해 반월훈련장은 2018년 하반기부터 임시 폐쇄되었다가 재개장하였다.

14.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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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사건 사고

1997년 1월 철산동 철산역[133] 근처에 위치한 대형 할인 매장 나산클레프에서 20대 여성 쇼핑객이 무빙워크를 이용중, 무빙워크 손잡이와 윗층 바닥면 사이에 목이 끼어 그 자리에서 숨지는 참변이 있었다. 그 사건 때문에 현재의 백화점과 쇼핑센터 등에서 에스컬레이터 윗층 바닥면에 매달아 놓는 삼각형 안전 설비를 갖추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한겨레 관련 기사 동아일보의 관련 사설

또한 1994년 3월 모 중학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MBC 뉴스데스크 보도 하지만 2002년에 인근 서울 독산동 월경지의 모 중학교에서 더 스펙터클한 일이 일어났다.[134]

삼풍백화점 붕괴당시 하안동에 거주하는 21세 청년이 11일만에 구조되었다. 그것도 당시 구조때문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최명석씨였다. #

1995년 12월 31일에 광명전통시장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 여러채를 태워먹고 주상복합건물[135]에서 거주하던 몇몇 사람들이 숨지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전국에 생중계되었으며, 특히 인근 소방서에서 전력을 있는대로 끌어오고도 좁은 시장 내 통로 때문에 진화작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후 전통시장 통로 및 소방기준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136] 이후로도 광명시장이 정상화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지붕이고 뭐고 다 사라졌으니 새까맣게 탄 점포 안에 물건을 쌓아놓고 급조한 전기선에 전구를 매달아 은박접시로 전등갓을 씌워 장사를 해야 했는데, 비가 오면 전선을 타고 빗물이 흘러들어간 전구가 퍽퍽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광명 사람들은 시장에 장을 보러 다녔고[137] 이후로 광명시장은 몇 번 리모델링이 있었지만 줄곧 소방선과 지붕을 갖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화재로 전파된 건물들 자리에 현재 크로앙스 건물이 들어서있다.

2000년 3월 모 초등학교에서 식중독 터져 뉴스에 나오기까지 하였다.#

2003년 3월 소하2동에 사는 전모양(사건당시 초등학교 1학년) 유괴당해서 화성시에서 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으며 현재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관련기사

2000년경에 광명시민회관 운동장에서 KBS 출발 드림팀 경기가 녹화되었는데 그 촬영분은 영영 불방되고만 흑역사가 있다. 유재석 외 몇명의 연예인들이 목마를 타고내려와 점프하는 게임이었는데 연예인 출연진들 사이에서 안전이 불분명한것 같다고 하여 2시간여 게임이 진행되지 않아 구경 온 시민들도 실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재석이 자신있게 도전하다가 다리를 다쳐 한동안 방송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였다. 그리고 촬영 중단 후 철수했다..

2011년에 모 고등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급우를 골탕먹이기 위해 독성이 비교적 약한 제초제를 넣은 보온병을 사물함에 숨겨두어 여러명이 중독된 사건이 일어났다.

2016년 3월 30일 오후 6시 30분 경에 소하동의 이마트 주변의 한 쓰레기 처리장에서 불이 나 대형화재로 번졌다. 이로 인해 검은 연기가 많이 솟아올랐고, 주변 지역에 재를 뿌리는 등의 피해를 주었다. 또한 폭발음이 수차례 크게 발생하기도 했다. 이 연기는 소하동 전체로 퍼졌고 하안동 등의 지역까지 타는 냄새가 퍼졌다. 이 화재로 인해 소방당국이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기사

2017년 6윌 11일 영서변전소(현 신광명변전소) 장비 문제로 서울 서남권과 광명시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였다.

2017년 9월 13일 오전 12시 10분 경기 광명 광명시 소하동 한 군부대 앞 도로와 인근 마을 등지에서 북한의 대남전단 수백 장이 발견됐다.관련기사

2018년 10월 29일 하안동 도덕산 등산로 입구에서 60대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관련기사

2019년 1월 31일 오후 7시 30분경 광명 5,6동 일대에서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원인은 한전의 개폐기 조작 실수.

2021년 2월 17일 새벽 1시 40분경 광명 5동 일대에서 40대 여성이 50대 지인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관련기사

2021년 9월 광명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3학년 학생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관련기사

2022년 10월 25일 오후 11시 30분경 소하1동 모 아파트 에서 40대 남성이 아내와 10대 두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관련기사

16. 기타

하안중 부근 유수지에 모 운전전문학원이 들어서있는데, 놀랍게도 그 학원에서 운전면허 따면 경기도 면허가 아닌 서울면허로 나온다. 이렇게 하는 데는 학원 수강생들이 경기면허보다 서울면허를 선호하는 것도 있고(학원측 설명)[138] 사실 학원의 주요 타겟지역이 광명시 뿐만 아니라 서울 영등포 권역이라는 점이 크기 때문(노량진역까지 코레일로부터 인가받은 광고 현수막을 걸 정도).[139] 다만 이건 필기 접수와 과정 합격후 면허발급 서류를 어디다 보내냐의 문제라 다른 지자체의 운전학원에서도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대표적으로 서부면허시험장을 통해서 서울면허를 받는 경우가 많은 고양시나 파주시.[140] 경기남부는 도시의 역사가 오래되고 각 지역마다 시험장이 많아서 대체적으로 자기도시 안에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으나 광명, 하남, 과천 등 서울에 바로 인접한 중소규모 도시나 경기북부(의정부, 양주, 동두천 제외)의 경우에는 서울 면허 받는게 흔한 일이다.[141] 무엇보다, 90년대 중후반 즈음부터 전문학원에서 시험을 볼 수 있게 법률이 개정되고, 지역번호판을 폐지하면서 면허시험장에서 거주지확인을 하지 않게 된 시점부터는 본인이 원하면 제주도에서도 서울 강남면허 받는 게 가능하기에 큰 의미는 없다고 보면 된다. 보통은 면허학원에 면허발급사무를 위임할텐데, 시험에 합격했다는 증명서를 발급해달라고 해서 원하는 시험장에 방문한 다음 직접발급 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광명시 지역의 향토사를 알고 싶다면 이 사이트로 들어가보자. 과거 광명의 모습에 대한 토박이/장기거주 주민들의 증언을 볼 수 있다.

시에서 안양천 구일역부근에 물놀이장을 지었다.

시 모양이 고구마를 닮았다.

16.1. 과거의 상징물

파일:광명시 시기(1981-1987).svg
1981년 시 승격 직후부터 1987년까지 사용된 깃발.[142]

파일:광명시 구 CI(1987–1995).png
1987년 11월 통계연보에서부터 나타난 깃발. 1995년까지 사용했다.

파일:광명시 CI(1996-2000).svg

위의 로고를 변형한 새 로고. 1996년부터 2001년 초반까지 쓰였다.

파일:광명시 CI(2001-2014)_국문_상하.svg
2001년에 주민설문조사[143]를 통해 선정한 문장으로, 2014년 7월까지 쓰였다.

파일:attachment/광명시/gm-mascot.jpg
옛 마스코트 '푸름이'. 1995년에 제정되었고, 2014년 7월까지 쓰였다.[144]

2014년 8월 시 문장 및 마스코트 개정 이후로 시청이나 도서관과 같은 산하기관에서 문장 교체작업이 진행되었으며, 화영운수 버스에 붙어있던 시 문장도 10월 30일 전후로 새 것으로 교체되었다.

17.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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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국내외 교류

18.1. 국내

18.2. 국외

19. 관련 문서


[1] 2024년 10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2] 2024년 10월 기준[3] 광명시 가선거구 (광명1동, 광명2동, 광명3동, 철산1동, 철산2동, 철산3동): 안성환
광명시 나선거구 (광명4동, 광명5동, 광명6동, 광명7동, 철산4동): 이형덕
광명시 라선거구 (소하1동, 소하2동, 일직동): 정영식, 현충열
광명시 비례대표: 김정미
[4] 광명시 가선거구 (광명1동, 광명2동, 광명3동, 철산1동, 철산2동, 철산3동): 김종오
광명시 나선거구 (광명4동, 광명5동, 광명6동, 광명7동, 철산4동): 이재한
광명시 다선거구 (하안1동, 하안2동, 하안3동, 하안4동, 학온동): 설진서
광명시 라선거구 (소하1동, 소하2동, 일직동): 구본신
광명시 비례대표: 정지혜
[5] 광명시 다선거구 (하안1동, 하안2동, 하안3동, 하안4동, 학온동): 이지석[6] 광명시 제2선거구 (광명4동, 광명5동, 광명6동, 광명7동, 철산4동): 최민 (초선)
광명시 제3선거구 (하안1동, 하안2동, 하안3동, 하안4동, 학온동): 유종상 (초선)
광명시 제4선거구 (소하1동, 소하2동, 일직동): 김용성 (재선)
[7] 광명시 제1선거구 (광명1동, 광명2동, 광명3동, 철산1동, 철산2동, 철산3동): 김정호 (초선)[8] 경기도 도시로서 유일하게 오리지널 02에 가깝다. 시 승격 이전에 일찍이(1970년대) 서울 통화권에 편입된 덕분에 경기도인데도 02를 쓴다. 같이 02를 쓰는 과천시(1985년)보다 서울 통화권 편입시기(1970년 12월 ~ 1980년)가 빠르다.[9] 일단 부천, 시흥, 광명, 김포는 경기도청보다 인천광역시청더 가까운 동네들이다.[10] 특히 광명동, 철산동 지역 주민들(토박이나 시흥군 시절부터 장기거주한 이주민들) 사이에서 전통적으로 '시내'는 영등포(영등포역 상권)를 의미했다.[11] 구로구가 영등포구에서 분리되어 나갈때 광명리와 철산리도 같이 구로구에 편입시키는 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만일 이 검토안대로 광명리와 철산리가 서울 구로구로 편입되었더라면 지금의 광명시는 없었을 것이다.[12] 이걸 자기 업적으로 내세우며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한 양반도 있다.[13] 이북 5도 기준.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황해남도 관할이다.[14] 1981년 시 승격 동기로는 동두천시평택시(구 송탄읍 지역)가 있다.[15] 1982년 개서 이후 1988년 안산경찰서 개서로 안산시와 시흥군 군자면, 수암면 지역 이관[16] 1985년 개서 이후 1989년 안산세무서 개서로 안산시와 시흥군 군자면, 수암면 지역 이관[17] 군포읍, 의왕읍은 안양쪽 관공서가 담당.[18] 화영 1번이 신천동 빗자루가 된 것도 어찌 보면 이 때의 유산 중 하나다. 사실상 37번을 대체해 신천동으로 연장되었기 때문. 3번의 후계자인 39번은 말 할 것도 없다.[19] 특히 광명동과 철산동은 서울 열섬의 직접 영항권에 들어가 있다. 반면에 안양, 과천, 의왕은 서울 열섬의 직접 영향권 바깥에 있기에 서울, 광명과는 기후가 미묘하게 다르다.[20] 최한월 평균기온 영하0도 기준. 영하3도 기준이면, 서울, 인천, 경기 서남부와 마찬가지로 온대 하우 기후에 들어간다. 이 설명은 서울과의 기후상 이질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 서남권 지역도 이런 기후적인 특색이 광명과 마찬가지다.[21] 물론 영하3도 기준으로도 온대기후가 아닌 냉대기후에 들어가는 일산, 의정부 등 경기 북부나 양평 등 경기 동부권에 비해 겨울이 온화한 편이다.[22] 대한민국 기상청 소재지[23] 명목상 행정구역 경계는 정확히 안양천과 일치하지는 않는다.[24] 지금은 재건축된 구 철산주공 2,3단지와 하안본주공 1,2단지는 시 승격 당시에 막 완공되려고 하는 시점이었다.[25] 이유는 신도시 인프라와 반도체, IT, 자동차 등 첨단산업 일자리가 집중되고 있는 수용성화평 경부라인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광명시는 집값이 매우 높아서 진입장벽이 다소 높고 이러다보니 유입인구가 적다.[26] 특히 철산동 중 철산로 이북쪽은 생활권 상 하안동과 관련이 없다. 다만 디지털로 이남인 철산동 남부(철산한신, 철산래미안자이 등)는 부분적으로는 하안동과 생활권이 겹치긴 하다. 실제로 남녀공학 되기 이전의 하안중 배정구역은 철산로(그러니까 철산12단지)까지 였다.[27] 삼성서비스센터와 LG서비스센터가 철산동에서 소하동으로 이전한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삼성서비스센터는 원래 철산동 삼성생명빌딩 안에 작게 들어서 있었으나, 소하동이 개발되자 아예 소하동에 디지털프라자라는 건물을 새로 지으며 그 건물 안으로 이전했다.[28] 밤일마을은 그냥 마을느낌으로 주택필지 만들더니 이제와서 옆에 3기신도시 택지지구 놓겠다고 하고, 가리대마을은 재개발을 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별 진전이 없다.[29] 서광명 인구가 광명시 전체의 30%에 달하는데 고등학교는 인문계 실업계 포함해서 3개 빼고 나머지 8개가 죄다 동광명에 있다. 젊은애들 놀만한 곳도 동광명 뿐이다.[30] 그런데 이는 만일 대림동을 비롯한 서울 서남권의 서민, 저소득층 거주지가 대규모로 전격 재개발된다면 광명시가 다시 저평가의 늪에 빠질 여지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31] 광명시 저평가 해소의 가장 큰 분수령이 이 지점이었다. 90년대 말 재건축 떡밥이 본격화되자마자 산꼭대기 본주공1단지가 평당 1,000만원을 돌파했을 지경이다.[32] 1990년대까지의 광명시의 집값은 2014년 현재 인천의 집값이 서울 집값에 비해 많이 저렴한 것과 같이 당시 서울 집값에 비해 많이 저렴했던 것으로 이해하면 편하다.[33] 도덕파크 입주 이전 철산동에 고층아파트는 KBS우성, 철산주공 12, 13단지, 철산한신, 쌍마한신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주공 1~11단지까지 빼곡하게 저층아파트 천지. 그나마 고층 위주로 개발된 하안동 지역이 철산동의 고층아파트들과 함께 강남권의 일부 구축아파트와 맞먹는 수준에 도달하며 광명 집값을 멱살잡이하긴 했지만 90년대 당시로서는 광명시가지에서도 외곽지대였다는 점에서 시 전체의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지금도 하안주공아파트 소유주들은 광명시 최대의 핌피집단 중 하나다.[34] 반대로 서울에서도 교통 안 좋은 지역 정도는 90년대에도 광명시가 이겨먹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중랑구. 물론 중랑구는 이후 7호선과 6호선, 중앙선 등이 개통되면서 여건이 많이 나아졌지만 광명시 또한 똑같이 7호선의 수혜를 직격으로 받으면서 여전히 중랑구 집값을 누르고 있다.[35] 다만 철산동을 한정으로 비교하자면, 구로구 온수동이나 금천구 시흥동보다 서울 도심이 더 가깝다. 이들 지역보다 집값이 비싼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36] 목감입주민 카페를 보면 광명의 높은 집값에 밀려 시흥 목감으로 내려간 광명 출신이 적지 않다. 최근 입주민들 사이에서 목감동 광명 편입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37] 논란이 일자 하루만에 철회했다.[38] 광명 버스를 타려면 남부순환로를 넘어 대략 7~8분 정도 걸어나가야 한다. 광명시민들은 여기에 버스가 들어가면 구일역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노선 투입을 요청하고 있지만 정작 시청이나 화영운수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회차부지가 없어서 조금 돈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거주민들부터가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낀다.[39] 현재는 광명01이라는 버스가 생겼다.[40] 그런데 바닷모래를 써서 주공아파트에 비해 건물이 약하다는 이야기가 있다.[41] 이런식으로 학교 이름 막 지은 곳이 몇 곳 있다. 예를 들면 도덕산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도덕초등학교라든가, 안현마을에서 고개 하나 넘어가야 있는 안현초등학교라든가. 다만 안현초는 안현리의 안에 해당하는 하안동에 있는데다(다만 안현초의 위치는 철산동 방향 내리막길에 있기 때문에 근대적 측량 이전에는 철산리의 일부로 취급받았었을 수도 있다) 안현고개 인근에 있고, 도덕초는 철산동 일대가 도덕산의 영향을 받는 동네이기라도 하지, 연서초는 아예 다른 동네 이름을 붙여놓은 꼴이다.[42] 이는 광명시의 도시화가 광명동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43] 1~3단지는 민간업체인 광명e편한세상센트레빌단지(하안본주공1단지), 광명두산위브트레지움단지(하안본주공2단지), 철산푸르지오하늘채단지(철산주공2단지), 철산래미안자이단지(철산주공3단지)로 재건축되었고 현재 철산주공 4~11단지가 저층으로 남아 있다.하지만 2019년 2월 기준 철산주공4단지는 철산센트럴푸르지오(가칭)으로 재건축 중이며,7단지는 재건축 이주중이고 8~11단지는 2019년 말~2020년 초에 이주를 시작할 예정이다.[44] 1970년 착공, 준공된 광명아파트가 있었다. 이 아파트가 경기도 최초의 공동주택 단지였다.[45] 후자의 경우(성인이 되기 이전에 광명으로 이주온 경우 한정)는 서울을 고향으로 생각하며, 광명은 그저 거주지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단지 광명은 고향이 아닌 초중고를 나온 동네라는 의식이 있는 셈이다. 물론 성인이 되고 나서 광명으로 이주온 경우라면 광명이 '사실상의 고향'이라도 될 턱이 없다.[46] 예를 들면 수원 망포동 등도 대강 영통이라고 뭉뚱그려 부르거나 용인 상현동을 광교를 칭하고 있다.[47] 심지어 광명사거리에 '개봉극장'도 있었고, 버스들도 철산1동이 종점이었던 30번이나 개봉극장-천왕동이 종점이었던 140번처럼 버젓이 광명이 종점인 노선들이 시흥군 시절의 관습으로 '개봉동'이라고 붙이고 다녔다. 시흥군 시절 광명/철산 지역에서 살다가 영등포로 이사 간 분들도 여전히 광명을 개봉동이라고 부른다.[48] 서울에서 출생하여 광명에서 초중고 나온 사람이 초중고 동창의 페이스북에 기재된 출신지를 보고서야 광명 출신의 동창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다만 출생지가 광명은 아니지만 광명을 실질적인 고향으로 생각하여 페이스북 출신지를 그렇게 표기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49] 역명으로 쓰기에는 멀다는 것이지, 도보로는 10분 정도 걸린다.[50] 지금은 안산으로 이관[51] 구 구로세관, 조직 변천 자체를 따지자면 2016년 이전의 광명세무서와 비슷한 케이스. 안양세관이 구로세관에서 분가되었는데 2015년 세관 조직개편으로 구로세관이 안양세관 산하로 흡수되었다가 2022년 다행이서울세관 산하로 이관[52] 부천과 시흥 포함[53] 인천병무지청 및 인천지방국세청의 신설 추세를 미루어 봤을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행정적으로는 광명이 인천권으로 조금씩 편입되고 있다.[54] 광명세무서의 소속 상위기관이다.[55] 최근 안양권 지역사회의 안양지방법원 승격 움직임에 광명시도 편승하여 안양지원 관할로 편입하려는 모양새다.[56] 광명에서 케이블TV를 설치하면 지역광고로 안산시 소재 업체들이 나오는 이유다.[57] 서울 서남부 몇몇 자치구도 포함되어 있다.[58] 과천시는 자체 지사가 없어 남서울지역본부 서초지사가 관할한다.[59] 철산동에서 버스를 타면 40분이면 가며, 자가용이나 택시로 가면 더 빠르다. 광명역이 있는 일직동도 50분이면 가지만 광명역-구로역 구간의 전철은 답이 없다.[60] 2002년 안산지원 설치 이전에는 수원에 있는 수원지방법원 본원 직할이었다.[61] 광명역에서 대중교통으로 출발할 시, 부천지원까지 40분, 안양지원까지 약 1시간이면 간다. 광명시청 기준으로는 부천지원까지 50분, 안양지원까지 약 1시간 10분이다.[62] 이때만 해도 안양시민들은 수원지법으로 가야 했었다.[63] 시흥세무서는 1996년 광명세무서 시흥지서로 출발하였는데 관계가 역전된 셈이다.[64] 서울특별시 관악구, 동작구,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강서구(김포공항세관의 관할구역 제외), 양천구[65] 특히 수도권 지역 세관의 각 관할구역이 조직개편으로 뒤죽박죽되었다. 가령 부평세관의 격하로 부평구, 계양구 등지가 안산세관 관할구역으로 편입되었다든지 등이 있다.[66] 이쪽도 상술된 세무서처럼 안양세관이 구로세관에서 분리되었는데..[67] 인천광역시의 인구는 증가추세에 있는 반면에, 서울특별시는 인구가 소폭 감소추세에 있고 경기도, 인천광역시보다 인구 고령화가 더 빠르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광명시 거주자의 징병검사는 서울지방병무청이 계속 담당할 것이다.[68] 무엇보다도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차이난다. 대중교통편도 지하철 환승에 버스 환승까지 해야하는 인천쪽(1시간 넘게 걸림)에 비해 서울지방병무청은 광명-철산과 같은 7호선 보라매역 근처(30분 소요)다.[69] 서울 용산구 국방부 근처에 있다.[70] 시흥군 동면(지금의 금천구, 관악구) 자체 통화권은 1970년 3월 서울통화권으로 흡수되면서 폐지.[71] 현재 가산동으로 편입된 옛 철산3동 월경지는 1973년 구로공단 제3단지 준공으로 구로전화국 본국 관할로 편입.[72] 같은 서울 지역번호 02를 쓰는 과천은 오리지널 02는 아니다. 서울 전화 편입 이전에 안양의 0343을 썼기 때문이었다.[73]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오리지널 02라는 것도 광명동, 철산동 한정이다.[74] 일본의 경우, 코마에시도 해당되지만 이쪽도 관할 전화국이 관내에 있지 않고 옆동네 세타가야구에 있다.[75] 인천권의 부천시, 대구권의 경산시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인접 대도시의 통화권으로 편입되었다. 반면에 과천시, 계룡시는 원래는 중소도시 통화권에 속했지만 정책적 필요에 의해 인접 대도시로 통화권이 조정된 케이스다.[76] 1962년 당시 시흥우체국(현 금천구 시흥동 소재)의 관할 전화(지금의 금천, 관악, 광명 지역)가 42대였다.[77] 원래는 구로구 서부 지역의 전화는 오류우체국이 관할하였으나 1970년 서울전화로 편입되면서 그 기능은 영등포전신전화국 양서분국 산하로 편입되었고 1976년 영등포전화국 개봉분국(현 KT개봉지사) 개설로 폐지. 개봉전화국 분설 당시인 1976년에는 광명리, 철산리 전화 가입회선이 3220회선이었다고 한다.[78] 전화 전봇대 등 회선 가설 공사비를 부담하면 전화가입이 가능한 구역.[79] 약간 시차가 있었지만 같은 해에 지금의 과림동과 옥길동도 서울전화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1980년에 역곡동 일부(온수공단 지역)가 서울전화로 편입.[80] 그러나 2009년 재건축 이후에는 여느 하안동처럼 KT (신)금천지사가 관할한다. 사실 그 이전에도 하안동쪽 국번을 쓰는 경우가 꽤 있었다.[81] 원래 소하동이었다가 1987년 행정구역 경계조정으로 안양시 석수동으로 편입된 지역 포함[82] 당시 통화권은 시읍면 단위였다. 웃긴 것은 광명우체국 당시 소재지였던 광명리는 이미 서울통화권에 편입된 상태였다는 것. 이런 문제 때문에 1980년에 소하읍 남부 역시 서울통화권으로 쉽사리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83] 1964년 서면우체국→ 1974년 광명우체국 분리 신설 이전에는 서면은 서울 시흥우체국 관할이었다. 1972년 서면우체국 관할 전화 가입자는 163명이었는데, 당시에 광명리와 철산리는 서울통화권에 이미 점차 편입되기 시작했으니 그 163명은 소하리 등 서면 남부 지역 가입자인 것으로 보인다.[84] 사실 이들 지역의 서울전화 편입 요구를 촉발시킨 것은 후술할 1985년 과천 서울전화 편입 문제.[85] 과천 서울전화 편입 당시 시외요금수입 감소를 우려한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와 과천의 안양 편입에 잿밥이 되지 않을까 염려한 안양시가 반발했다고 한다.[86] 기상청 동네예보를 보더라도 철산동 기준으로 가산동, 구로동, 대림동, 신대방동 일대는 습도, 풍향, 풍속, 기온 등이 거의 똑같다![87] 다만 관내에 자체 전화국이 없는 문제 때문에 시스템 상으로는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88] 1976년 개국. 개봉전화국의 전신은 영등포전신전화국 양서분국 산하 오류분실.[89] 재건축 이전의 옛 하안주공 본1,2단지 지역. 현재는 신금천지사 관할.[90] 현재 관할구역: 구로동 일부, 가산동, 조원동 등[91] 1983년 이전에는 노량진전화국 시흥분실이었고, 구로전화국도 원래는 노량진전화국 구로분국이었다.[92] 실제로 석수전화국은 서안양전화국과 통폐합되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생성된 석수전화국이 광명시쪽 전화를 관리하든지, 아님 광명시에 서안양전화국 산하 전화국을 집어넣는게 낫다.한편으로는, 과천은 원래 KT과천지사(구 과천전화국)가 있었으나 데이터센터로 개편되면서 과천시가 동안양지사로 편입되었다.[93] 설령 개봉지사, 금천지사 회선 과포화가 문제가 된다해도 자체 전화국 신설이나 안양 지역 전화국 장비 보강보다 개봉지사, 금천지사 장비 보강이 더 싸게 먹힌다.[94] 과림동이 서울전화에 편입된 것은 1978년의 일로, 생각보다 오래되었다.[95] 이 번호들은 원래 61X나 68X로 세자리 번호였지만 1999년 7월과 2002년 12월이라는 두 차례에 걸쳐 2를 추가로 붙여서 26으로 시작하는 네자리 번호가 되었다. 그 이후 번호들은 대부분 6으로 시작하는 네자리 번호다.[96] 사실 독자 하수처리장 건설 추진 계기는 당시 서울시가 광명시의 하수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입장 표명이었다. 다만 이것을 서울시의 이기주의만으로 치부하기에 애매했던 것이, 당시 서울시 관할 하수처리장의 수요 초과 문제가 서울시의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가양하수처리장 건설 당시에 광명시 지분(예산)이 투입되었다는 것이 문제다.[97]김포시이지만 1988년까지는 김포와 부천이 직접 붙어 있었다.[98] 당시 1자리 번호를 쓰던 시절에는 승용차는 1과 2가 주력이었고, 승합차는 주로 5의 앞쪽 부분 번호(1000~4499)를, 화물차는 7을, 특수차는 9의 앞자리 번호(승합과 동일)로 추정한 것으로 각각 쓰였다.[99] 그 다음으로는 과천 49.5%, 하남 47.2%, 구리 46.1%, 남양주 37.3%, 고양 35.7% 순으로 집계됐다.[100] 소하동을 소하리라고 부르는 것은 시 승격 이후에도 오랫동안 시흥군 시절의 모습에서 크게 발전한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안동이 꽤 빨리 하안리라는 이름을 벗어던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도 기아 공장 인근의 완충지대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막상 소하보다 늦게 개발된 광명역세권 일직동이 일직리라고 잘 안 불리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는 일직JC 때문에 일직동이 더 붙었다. 소하JC, 소하IC도 있지만 94년에 생긴 일직JC와 다르게 2016년에 생겨났다.[101] 현재 프라이드(수출용), 카니발, K9, 스팅어, 스토닉 5종이다.[102] 소하동 입장에서는 매일같이 기아 공장에서 발생하는 악취와 소음 등 각종 환경문제로 시끄러운 것도 사실이다. 기아가 이거 무마하려고 광명시청과 시의회에 향응접대하다가 걸려서 망신살이 뻗칠 지경이니 차라리 나가리 소리가 나오는것도 당연하다. 광명시만 그런 게 아니라 시내 한복판에 공장이 있는 광주광역시에서도 비슷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요새는 광명시흥테크노밸리로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103] 하안동 아파트형 공장이라고 불리는 그 곳이다.[104] 광명시 거주 경제활동인구가 아닌 광명시에서 경제활동하는 인구가 기준인 것으로 추정. 전자인 경우 서울통근 경제활동 인구가 포함되니 농업 종사자 비율이 확 낮아진다.[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07] 90년대 말에 원장이 입건된 것이 언론을 탄 그 산부인과 맞다.[108] 당연히 드라마의 거기가 아니다. 단 간판이 드라마 타이틀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하다.[109] 광명대교 입구에 서울시 소재의 서울장례식장도 있다.[110] 말 많은 그 시장의 바지가 찢기기도 했다.[111] 그런데 MBC가 2016년 FM4U 관악산 송신소 이전에 관해 보도자료를 뿌리면서 기존의 난청 지역 목록에 광명시를 포함한 병크가 있었다. 그 병크의 여파로 화영운수 버스들이 관악산송신소 이전 광고를 달고 다니기도 했다.[112] 괜히 광명 내 초중고교들의 교가에 '관악산 자락'이라는 구절이 있는게 아니다.[113] 서울시 동작구와 관악구는 관악산과 가깝지만 구릉이 많은 지형상 문제와 송신소 근접지 음영현상 때문에 관악산 전파 수신상태가 좋지 않다. 대전 유성구에서 계룡산 전파가 잘 안잡히는것도 이와 유사한 경우. 광명시 거의 중앙에 자리잡은 도덕산 정상에 있는 각종 전파 중계시설들도 도덕산 때문에 남산 전파가 제대로 안잡히는 광명동 일부 음영지역을 위해 설치된 중계소다. 안양, 과천도 관악산 전파 강전계 지역이지만 남산 전파가 아예 잡히질 않는다는게 문제다.[114] 송신소 인근지역에서 그 신호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개봉송신소 인근 모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OTP 프로젝터를 프로젝션 TV에 연결했더니 TV에서 KBS 3라디오 방송음이 나온 사례가 있다.[115] 그런데 목표 가청구역 중에 서울특별시 구로구 온수동, 천왕동, 오류동이 포함되어 있다.[116] 통폐합 이전 개봉송신소 주파수[117] 통폐합 이전 시흥송신소 주파수[118] 참고로 영등포는 성저십리 바깥 지역 중 가장 먼저 서울로 편입된 지역이다.[119] 서울 버스나 서울 택시가 돌아다닌다든가[120] 광명역 별명이 광명국제공항이었다. 역사가 하도 큰데 이용객 없다고 붙여진 별명이다.[39화] [122] 옥길동에 있던 모 연대는 안양에 있는 모 여단으로 통폐합[123] 광명시와 시흥시를 관할하는 예비군 훈련장이 뜬금없이 안산시에 왜 있는지 의아할 법한데, 사실은 원래 시흥시 지역이었던 훈련장 소재지가 1995년에 안산시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124] 안양고, 박달초 앞 정류장에서 바로 갈아탈 수는 없고 안양고나 박달초 운동장을 가로지른 다음에 박달초 뒤편 정류장에서 1번 마을버스를 환승해야 한다.[125] 2020년말에 박달교장으로 통폐합[126] 과림동주민센터에서 하차하면 입구 간판이 보인다.[127] 버스가 90분에 한 대 다닌다. 아니면 안산대안교육센터까지 군화 신고 10분 이상 걷는다.[128] 2014년부터 올랐다.[129] 광명에서 안산 가는 방법이라면 301, 320 등을 타는 것이 정석인데 이 버스들이 정차하는 정재초등학교 근처는 한적한 주택가라 택시 잡기도 힘들다.[130] 다만 전국단위훈련을 신청한 후에 훈련장을 해당 신청한 서울시내 자치구 쪽으로 찾아가야 한다. 예를 들어 영등포구 쪽으로 신청했다면 박달훈련장 내 영등포구 대대 교장으로 찾아가야지, 구로구 대대 교장이나 관동훈련장(관악, 동작)으로 잘못 찾아가지 말라는 얘기. 소총을 수령할 때는 그 신청한 서울 동네쪽(예: 문래동)으로 가지 말고 '전국단위' 팻말이 적힌 반으로 찾아가야 한다.[131] 창박교장은 보영운수 버스 종점 차고지 인근이다.[132] 부천역까지 전철타고 가서(75번 버스는 역곡역-부천역 사이를 빙 돌아가므로 비추) 남쪽 큰길을 건넌 다음 015번 마을버스 타고 15분 정도 가면 위병소 바로 앞에다 떨어트려 준다. 길을 모르겠으면 부천 남부역에서 택시타도 기본요금 살짝 넘을 수준이다.[133] 당시에는 공사중. 개통된 것은 2000년 2월.[134] 금천구의 그 중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교사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수행평가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 더욱 충격을 주었다. 당시 KBS 추적60분[135] 흔히 생각하는 번듯한 아파트가 아니라, 1층에는 점포가 있고 그 윗층에서 거주하는 식.[136] 오늘날 전통시장 내부에 흔히 그어져있는 황색선이 이 사건 이후 도입되었다. 특히 광명시장은 대화재의 기억으로 이 선을 꽤나 잘 지키는 편이다.[137] 광명에 별 다른 대형 상업시설이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만일 클레프가 이 때 있었다면 아마 광명시장은 엄청난 타격을 입고 회생하지 못했을 것이다.[138] 광명에서 면허를 따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중교통이나 학원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이용해 강서운전면허시험장을 이용한다.[139] 그리고, 학원이 이전하기 전에 위치했던 곳이 철산교 건너편 가산동에 위치한 만민교회버스들이 주로 주차하는 주차장부지. 자세히 보면 운전학원에서 사용하는 언덕코스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40] 원칙적으로는 의정부시의 경기북부면허시험장 쪽으로 처리가 되어야 하나 수강생 선호도 문제와 의정부 가는 것보다 서울 상암동(DMC) 가는 게 더 편리하다는 점과 맞물려서 이렇게 한다.[141] 구리/남양주의 경우는 중랑시험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고, 고양/파주는 상술했듯 서부시험장. 하남은 강남면허시험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성남에서도 일부는 강남면허시험장을 통해 처리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김포는 일부는 강서, 일부는 서부에서 처리한다.[142] 1987년 5월에 발간된 경기도의 《내고장 상징물총람》에선 이 깃발을 수록하고 있었으므로 5월에서 11월 사이에 교체한 것으로 추정된다.[143] 2001년 당시에 광명시내 초중고교에 다녔다면 학교에서 로고 선택안에 대한 주민 설문조사를 위한 가정통신문을 받아봤을 것이다. 당시에는 여러가지 가안들이 나왔다.[144] 제정 당시 명칭 설문조사를 했는데 1번 푸로미(영단어 'from'을 근간으로 한 것), 2번 빛돌이, 3번 새빛동이. 아마 1번 푸로미를 조금 다듬어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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