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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4:03:05

국가보훈부/문제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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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격상 전 문제점 및 논란
2.1. 필사적인 보훈인정 거부2.2. 셀프 국가유공자 등록2.3. 국가유공자에 대한 부당대우2.4. 내부 비리와 산하 단체들과의 유착2.5. 보훈 기준에 대한 논란2.6. 정권에 따라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정치적 성향2.7. 이명박 정부 당시 선거 개입2.8. 2021년, 천안함 추모식 전날에 카톡 초대장 발송 논란2.9. 5.18 계엄군 사진 사용 논란
3. 격상 후 문제점 및 논란
3.1. 박민식 장관 발언 논란3.2. 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자 홀대 논란3.3. 낙성대경제연구소장 독립기념관 이사 임명 논란3.4. 독립기념관 관동대학살 100주기 행사 취소 압박 논란3.5. 신체검사 등급기준미달자, 그들이 받지 못한 국가의 예우3.6. 제2 독립기념관 졸속 추진
4. 기타 사건사고
4.1. 격상 전4.2. 격상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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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가보훈부의 문제점 및 논란을 담은 문서이다.

이 문서는 국가보훈부로 격상되기 이전부터의 문제점 및 논란을 담고 있으며, 당시 부처의 명칭인 국가보훈처(약칭 보훈처)를 사용하기도 한다.

2. 격상 전 문제점 및 논란

2.1. 필사적인 보훈인정 거부

국가보훈부는 "국가유공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보훈, 제대군인의 보상·보호, 보훈선양에 관한 사무를 관장"을 하는 부서임에도 오히려 기를 쓰고 보훈 인정을 안 해주려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국가의 수호 및 안전보장과 직결되는 전투임무 수행 중에 피해를 입었다면 잘 처리해주는지 묻자면,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굵직한 몇 가지 사례들에 불과하고, 그 외에도 이런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소송을 포기한 피해자들의 경우 언론보도조차 안 될 것이므로 실질적인 피해자들은 더욱 많을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간간이 올라오는 피해 경험담들을 보면 군복무 당시 작전이나 훈련 수행 중 사고로 손발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보훈처는 정말 단 10원 한 푼도 보상하지 않으려 든 건 양반이며, 심지어 받은 급수도 소송을 제기하여 다시 뺏으려고 하기 일쑤라는 말이 많다. 평시에도 이 따위인데 만약 전쟁이 터져서 수많은 전사상자들이 양산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막막할 따름이다.

이러면서 자기들끼리는 문턱에 걸려 넘어져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짓이나 하고 있다. 이런 보훈처의 문제점들은 한국군의 의료체계 문제점과 가히 환상적인 막장 시너지를 일으키며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보훈 지정 기준도 매우 빡세다는 말이 아직까지도 있다. 2020년 6월 18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사례가 대표적인데, 명백한 상이군경임에도 보훈 지정을 받지 못한 사례[2]가 올라오면서, 보훈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는 비판이 매 정권마다 나오고 있다.[3]

사실 폭언, 폭행으로 인한 정신과적 병증이 생기는 사례 또한 매 국회에서 보훈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매년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류되다가 폐기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여럿 있었다. 이에 대해서,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2020년부터 '다치면 느그아들 방지법'[4]을 발의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있다.[5] #

반면,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국가 유공자의 지위 회복에 대해 뉘우침 제도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 즉 살인을 저질러도 국가보훈처가 스스로 '반성'한다는 의사가 충분하고 확인된다면 살인, 강간등 강력 범죄자에 대해 국가 유공자 지위를 다시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사실상 열어준 셈이다. #

2.2. 셀프 국가유공자 등록

위의 문단을 보면 알겠지만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은 임무 수행 중 영구장애를 입거나 사망해도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기가 한없이 어렵다. 그러나 보훈 인정을 이 악물고 거부하는 보훈처는 정작 자기 부처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느슨한 기준으로 국가유공자를 선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이 한번 족치거나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라도 하면 가라로 등록된 보훈처 직원 국가유공자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사유들을 보면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서, 퇴근 중 눈길에 미끄러져서, 체육행사에서 등산하다 넘어져서, 체육행사에서 배구 중에 공 맞았다고, 체육행사에서 족구하다 넘어져서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국가유공자로 등록이 된다.

실제로 국정감사 결과, 보훈처 재직자 중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자는 42명이지만 이 중 근무로 인해 다친 사람이 30%인 13명 정도에 불과하고, 더욱이 이 중 교통사고와 안전 사고를 제외한 순수 근무 중 다친 이는 7%인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당하게도 자체 체육대회나 출퇴근 중 다쳤답시고 국가유공자 된 사람이 무려 30%나 된다. 참고로 이들이 국가유공자로 받는 혜택은 7급 기준으로 매월 30만 9천 원, 자녀들 수업료가 대학까지 면제, 대부 지원 혜택, 자녀들 기업체 채용 혜택, TV수신료 면제, 전화비 감면, 국내 항공 50% 감면 등 상당하다.

2.3. 국가유공자에 대한 부당대우

언젠가부터 독립운동가6.25 전쟁 참전용사 본인 그리고 그 후손들이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 많이 알려지면서 이런 업무를 관장하는 국가보훈처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룰 바라보는 국민들은 "이런 꼴을 보자니 애국심으로조차 옹호할 수가 없다"고 분노를 표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결과가 그 꼴이니 애국심이 생겨날 리가" 또는 "그러면서도 정부와 여당은 허구헌날 애국심과 노력타령만 한다"라는 한탄과 자국 혐오적인 여론도 들끓게 된다.

이게 왜 심각한 문제냐 하면, 훈장 찾아주기 운동을 전후 반세기가 지난 후에 생색내면서 하는 것은 물론, 그나마도 몇 분 사진 찍고 홈페이지 올리고 하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런 것까지 가지 않더라도, 단순한 참전기록 조회나 참전사실 증명에도 매우 까다롭게 군다.[8]

이러한 많은 문제점을 보여주는 굵직한 사례를 두 가지 들자면 하나는 6.25 참전용사에 대한 보상금 논란이고 하나는 국가보훈처의 2016년도 예산 소동이다.

2.4. 내부 비리와 산하 단체들과의 유착

국가보훈처 관련 비리가 상당히 많다는 점도 문제다. 조금만 찾아보면 관련 비리 기사는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게다가 보훈단체들이 각종 비리로 얼룩지는 가운데 보훈처가 앞장서서 단체장의 간선제를 요구하는 점에서 아직 민주주의가 멀었다는 느낌을 준다.

보훈처 산하 단체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부터 수익사업으로 보훈대상자들을 지원한다는 명목하게 여러가지 특혜를 받고 있는데, 이것이 오랜 세월 지속되면서 온갖 비리 의혹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들 단체를 장악한 간부들은 수익사업을 통한 돈벌이에 집중하면서, 정작 회원들을 위한 복지는 내팽개친 모양새다.

2.5. 보훈 기준에 대한 논란

대한민국의 보훈 대상자는 크게 4가지 부류이다.
그러나 정권에 따라서 이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독립운동가라고 해도 사회주의, 좌파 계열은 무조건 배제했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2005년에야 몽양 여운형을 시작으로 대규모로 서훈하였다. 하지만 보수, 우파 세력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큰 논란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일체 배제했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투철한 독립운동가였지만 해방 이후 북한 정권에 참여한 김원봉의 서훈 문제와 일제강점기 시절 간도특설대로 활동했지만 한국전쟁에서 국군 지휘관으로 무수한 전공을 세운 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문제를 둘러싸고 또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이렇듯 국내의 첨예한 이념 갈등이 보훈처의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애꿏은 보훈처 직원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때문에 매우 복잡하다. 당시의 인물들은 35년간의 일제강점기와 그 뒤의 미/소 군정기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일본군 혹은 만주군에 자원입대해서 일본군에 활동했지만, 해방 이후 국군 장교로 6.25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사람도 있고 반대로 투철한 독립운동가였지만 해방 이후 북을 선택해서 남에 총부리를 들이댄 사람도 있다. 당장 전자는 백선엽[9], 후자는 김원봉을 생각하면 된다. 가치관에 따라서 이 두명에 대한 판단은 정말 확연하게 달라진다. 또한 일제강점기가 35년씩이나 되다 보니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기준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10] 어느 것을 더욱 중요시 할 것인가? 어느 시대의 활동을 먼저 볼 것인가? 등등. 이것은 20세기 우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념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고, 보훈처는 그 전선의 한복판에 서있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베트남전 참전용사 중에서도 고엽제 피해자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그들도 김대중 정부 들어서야 피해가 인정되고, 지원법률도 제정되었지만, 정작 피해자 조사와 지원은 지지부진하다. 고엽제전우회가 보훈처 산하 단체로 존재하지만, 여기는 피해자 지원보다 거의 극우정치깡패에 준하는 활동에나 열을 올리는 중이라서 오히려 비판을 받는 상황이다.[11]

2018년 들어서는 구한말동학농민운동까지 보훈 범위를 넓히면서 기준이 뭐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언제까지 할 거냐는 비판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보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나오지, 조선을 계승한다는 문구는 없다.[12]

2019년 2월 26일 유관순 열사의 서훈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격상되자 서훈 등급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도 결코 낮은 서훈이 아닌데다가, 인기와 지명도가 없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제치고 인기와 지명도가 높은 유관순이 서훈이 격상된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박근혜 정부로부터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았다. # 이후 문재인 정부의 보훈처에서도 이만희가 국가유공자로 적격하다고 밝혀, 정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참전 사실만 확인되면, 추가 절차가 없이 참전유공자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

2.6. 정권에 따라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정치적 성향

대한민국의 보수정당민주당계 정당 정부에 따라 성향이 크게 달라져 때문에 정권에 아부한다는 소리가 매년 나온다. 한국의 이념 갈등 자체가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다 보니, 구 일본군 소속이었지만 후에 대한민국 국군의 편에서 북한에 맞서 싸웠거나 독립군 소속이었지만 후에 인민군 소속으로 남한을 공격하는 등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았다. 거기에다가 일본 치하에 있었던 기간이 30년이 넘어가기 때문에 친일에 대한 기준자체도 무척 모호한 경우가 많아 관점에 따라 그 기준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이러한 과정을 거친 서구의 경우 기준이나 공감대가 잡혀있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의 경우 아직 정식 정부가 들어선 지 100년도 채 되지않는 데다가 이념 논쟁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논란이 클 수밖에 없다.

보수 정권 시대에는 미래 교육에서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부마민주항쟁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폭동이라는 늬앙스로 말해 논란이 있었고, 야권 인사와 시위 참가자들을 '빨갱이'라 가르치는 등의 색깔론을 펼치거나 공산주의종북주의, 좌파가 동의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 이와는 반대로 문재인 정부 때는 과거에 "6.25 전쟁미국의 철저한 계획 하에 시작된 전쟁이다."라고 주장했던 강사를 데려다 강의시켜 논란을 빚기도 했다. #

2017년에는 자유총연맹 대변인이자 태극기 집회 참가자인 양일국 강사가 어느 초등학교에서 통일교육, 나라사랑교육이랍시고 2008년 촛불집회 까는데 20분 가량 할애하다가 교사의 항의를 받고 중단된 사건도 있었다. #

이들 논란이 빚어질 때마다 보훈처에서 내놓는 입장은 '보훈처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보훈처가 스스로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주장하던 '이념 대결에서의 승리'는 정작 국가보훈처와 관련된 어느 법령에도 주요 업무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부랴부랴 나라사랑교육지원 관련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입법예고 했으나 3년 넘게 보류되었다.

2018년부터 나라사랑교육은 폐지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

2.7. 이명박 정부 당시 선거 개입

이명박 정부 당시 보훈처는 국가정보원, 국군사이버사령부와 함께 안보교육을 빙자해서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훈처장이 공개적으로 야권을 '대한민국 전복 세력'으로 규정하며 여권을 지지할 것을 호소한다든가, 당시 보훈처가 주관한 안보 강연(나라사랑교육)에서 새누리당박근혜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이 이어지는가 하면, 민주-진보 정권인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를 비방하고 보수 정권인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 이명박 정부를 칭송하는 내용을 담은 표준교안을 만들어 배포하기까지 하였다.

2.8. 2021년, 천안함 추모식 전날에 카톡 초대장 발송 논란

국가보훈처가 2021년 3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서해 수호의 날' 행사(3월 26일) 초대장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내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주관하는 중요 행사의 초대장을 행사 하루 전에, 그것도 공식 문서나 인편이 아닌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낸 전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

2.9. 5.18 계엄군 사진 사용 논란

2023년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을 추모하기 위해 올린 트윗에 올라간 사진이 계엄군 시각에서 본 시민의 구도로 찍힌 사진이여서 논란이 생겼다. # 또한, 원본인 흑백사진을 저작권자인 5.18기념재단의 허락 없이 저작권법을 어겼다는 논란이 나왔다. #

그러나 해당 사진은 5.18 기념재단에서 제공한 사진으로, 과거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5.18 관련 SNS 게시물에 사용했던 사진과 동일한 사진으로 밝혀졌다. #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페이스북에서 "계엄군이 주인공인 이런 사진을 굳이 2023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보훈처의 5·18 기념 이미지로 우리가 봐야 하나"라며 비판하자,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해당 사진은 지난 2019년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오늘의 한 장'이라는 주제로 올린 배경 사진과 똑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 말대로라면 문재인 (전)대통령이 계엄군의 편에서 계엄군을 주인공으로 삼았단 말입니까"라며 꼬집었다. #

3. 격상 후 문제점 및 논란

3.1. 박민식 장관 발언 논란

해당 항목 4.7~9문단 참조.

3.2. 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자 홀대 논란

이 글에 따르면, 국가보훈부최원일 前 함장 본인을 홀대했다고 한다.

10월에는 지난 현충일 행사 이후 VIP에게 유공자증을 받을 때 화면에 "2010년 3월 26일 북한 어뢰 공격으로 좌초"[13] 라고 적혀서 나와 당황하고 이를 항의했으나 장관은 자신의 일정을 다 소화한 이후에야 전화를 줘서 화가 나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이후에 전화를 하지 않았음에도 계속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꼬투리를 잡거나 유가족의 항의와 사과 요구에도 제대로된 사과를 하지 않고 이후 열린 강연에서 이를 지적하자 보훈부 국장들은 사과도 없이 강연 내용만 지적했다고 밝혔는데 이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국군의 날 행사에서 만났으나 이때도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따지는 말만 했다고 한다.

최원일 前 함장은 이러한 국가보훈부의 행보가 천안함 비하로 상처를 준 더불어민주당[14]과 뭐가 다르냐며 국방부와 국가보훈부, 그리고 보훈부장관을 비판했다.

3.3. 낙성대경제연구소장 독립기념관 이사 임명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낙성대경제연구소장 독립기념관 이사 임명 논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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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근대화론을 설파해온 단체 낙성대경제연구소의 박이택 소장을 독립기념관의 이사로 임명해 논란이 되었다.

3.4. 독립기념관 관동대학살 100주기 행사 취소 압박 논란


[단독] 보훈부, 독립기념관 '관동대학살 100주기 행사' 취소 압박

독립기념관은 2023년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를 맞아 전시회를 기획했다. 그러나 행사는 개최일 한 달 전에 돌연 취소되었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들은 당시 보훈부의 재검토 요청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보훈부는 관동대학살 전시가 독립기념관의 사업 본질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민식 장관은 해당 전시와 관련한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뿐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배 실상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기관으로, 일본 본토에서 벌어진 일제의 만행인 관동대지진이 독립기념관과 무관한 주제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5. 신체검사 등급기준미달자, 그들이 받지 못한 국가의 예우

상이군경[15] 중 등급기준미달[16] 경상이자는 국가를 위한 헌신이나 공무 수행 중 경미한 부상을 입었으나[17] 신체검사에서 상이등급 기준에 미달하여 적절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들은 요건[18] 심사를 통과했음에도 신체검사에서 등급을 받지 못하면[19] 보훈 혜택에서 극히 제한적인 혜택[20] 만을 받을 수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헌신 중 입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남성들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복무를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입은 부상에 대해서는 더 큰 보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군복무 중 다치더라도 국가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21]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격상된 이후에도 이러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조직의 격상은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실질적인 정책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국가의 체계적인 변화를 기대했던 많은 이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여러 선진국들은 대한민국보다 나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캐나다는 상이군경으로 인정되면 신체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혜택을 제공한다. 이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경우, 공평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상이등급이 미달되면 혜택에서 사실상 제외되어 본인의 희생이 무시된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상이군경 등급기준미달에 해당하는 경상이자를 위한 공식적인 단체나 협회는 없으며, 온라인 카페만 존재한다. 정부나 국가보훈부도 이들을 제대로 챙기지 않고 있다.

대통령 공약에서도 등급기준미달 경상이자에 대한 보훈보상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여러 차례 발표했지만, 실질적인 실행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지연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비춰질 수 있으며, 경상이자들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국민들은 국가가 헌신한 이들을 적절히 예우하지 못할 때, 그 신뢰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22]

이들에게 충분한 보상과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부상의 경중을 떠나 국가에 대한 헌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보훈보상제도의 즉각적인 도입이 필요하며, 마땅히 받아야 할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헌신을 제대로 인정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진정한 국가유공자 예우를 실천하는 길이 될 것이다.[23]

3.6. 제2 독립기념관 졸속 추진


2024년 9월, 최종예산안에 급작스럽게 245억의 사업비를 끼워넣은데, 이뿐만 아니라 부지선정 계획도 없어 졸속 추진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기존 독립기념관이 소재한 충청권 반발도 상당한 상황이다.

4. 기타 사건사고

4.1. 격상 전

4.2. 격상 후

용역 발주 부실

[1] 사실 이 문제는 단순히 보훈처가 막장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저 법률 시행령 자체가 굉장히 문제가 많다. #[2] 훈련 중 크레모아 격발 사고로 인해, 손가락 한 마디가 날아갔는데, 수술 후에도 의병제대 요건 미달로 만기제대한 것은 물론, 제대 후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최하 급수인 7급 지정도 비해당 판정을 받았다는 사례이다.[3] 사실 이 부분은 징병검사와 어느정도 일맥상통한다. 하물며 손가락이 잘려 나가 보훈 신청을 하더라도, 보훈처에서 신청자의 불편한 부분을 찾아주는 것이 아닌 신청자가 직접 여러차례에 걸쳐 누적된 병원 진료 및 치료 기록을 제출해야 한다. 즉 신청자가 직접 어디가 불편한지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4]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 죽으면 누구세요?에서 가져온 것이다.[5] 21년 3월 9일에 발의됐고, 8월 20일에는 군인 재해보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의 통과 촉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6] 공무원연금법 제 64조, 공무원연금법시행령 55조2항 등에 의해 공무원이 재직 중의 사유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탄핵 또는 징계에 의해 파면된 경우, 금품 밎 향응 수수, 공금의 횡령 밎 유용으로 징계 해임된 경우 등에는 연금을 절반으로 깎이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7] 다만 불법적인 특혜로 공기업에 취업한 자녀들에 대한 처분은 확인되지 않았다.[8] 가짜로 자신이 국가 유공자라고 속이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엄격하게 한다고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 엄격한 등록법 때문에 되려 국가 유공자로 등록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나기도 한다.[9] 당시 정규군사교육을 받은 인물이 드물었기 때문에, 실전경험이 있는 일본군과 만주군 장교 출신들이 자연스레 전공을 세우면서 고속진급을 하게 된다.[10]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논란도 결국 이런 문제이다.[11] 한국토지주택공사 사무실에 쳐들어가 협박을 하는 등의 조직폭력배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는 등 가해자가 된 피해자로 전락하면서 이미지가 굉장히 안 좋아졌다.[12]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출범할 때 헌법에 해당하는 임시 헌장 8조에 "구 황실을 우대한다."는 조항을 포함한 적이 있지만, 이마저도 1925년 개정 때 사라졌다.[13] 좌초는 배가 암초에 얹힘 이라는 뜻으로 천안함은 북한 어뢰 공격에 침몰 등으로 표현하는 게 맞다. 북한 어뢰 공격에 좌초 라고 하면 북한 어뢰 공격을 맞고 암초에 얹혀 좌초 당했다고 읽히게 된다.[14] 글에서는 모 정당으로 표현[15] 공무 중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 교정공무원 등[16] 상이등급이 책정되지 않은 無등급 비해당자들[17] 경상이라고 해서 단순히 가벼운 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복잡한 수술이 필요하거나 장기적인 후유증이 남는 경우가 많다. 비록 중상자에 비해 후유증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지만, 결코 경미한 부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심각한 부상이다. 경상이자들은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정신적, 사회적 어려움도 겪고 있으며, 이러한 부상은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참고로 국가보훈부는 약지 손가락 한 마디가 절단되어도 경상이자로 본다.[18]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 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상이(질병 포함)를 입고 퇴직한 사람의 해당 여부를 말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직접적 관련이 없으면 국가유공자와 유사한 보훈보상대상자에 해당한다.[19] 신체검사까지 통과해야 최종적으로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가 된다.[20] 상이처 부위에 대한 치료는 보훈병원과 위탁병원에서 무료로 가능하지만, 무료 진료는 상이처에만 한정되며 다른 질병이나 부상에 대해서는 무료가 아니다. 예를 들어 약지 손가락 한 마디가 없다면 등급기준미달이지만, 이미 치료가 끝난 상태라 사실상 혜택이 전무한 상태라 볼 수 있다.[21]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 죽으면 누구세요?[22] 국가보훈부의 주요 임무는 호국보훈가족 및 유족의 우대와 보호, 참전용사 및 제대군인에 대한 지원과 혜택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국가유공자 신청을 제한하고, 국가에 대한 배상 청구를 방어하는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러한 문제는 언론에서도 자주 다루어져 국민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23] 국가보훈부의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의지가 부족한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24] 다만 실제로 나치가 사용했던 장비 등을 보급받은 부대가 있긴 했다. 2차대전 후 미군이 수거한 것들을 보급용으로 사용했던 것. 하필 무장친위대의 옷을 준 탓에 소련이 왜 하필 무장친위대 거냐고 경기를 일으키며 항의한 적도 있다.[25] 철모의 형태가 슈탈헬름이긴 하나 실제로는 저렇게 짧고 처진 챙을 가진 다자인의 슈탈헬름은 없다. 나치독일의 철모를 사용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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