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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23:56:20

사회성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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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인
2.1. 정신건강적 사유
2.1.1. 가정 학대/학교폭력
2.2. 내/외향적 성격2.3. 방어적 성격2.4. 갑을관계2.5. 경험 부족2.6. 재미가 없는 경우2.7. 인간 불신/인간 혐오
3. 범죄

1. 개요

사회성 부족에 관한 문서.

2. 원인

2.1. 정신건강적 사유

대다수의 사기업 취업에 있어 고시 낭인을 기피하는 이유가 공부만 한 나머지 내향적인 성격으로 인한 의사소통 악화 우려 때문이다.

2.1.1. 가정 학대/학교폭력

임상심리학에 따르면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받은 아동은 트라우마로 인하여 자폐성 성격장애, 편집증, ADHD, 조현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또한 부모와의 관계형성은 사회적 관계를 맺는 일에 영향을 끼치며, 남자 아이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주된 원인이 된다.

거기에 폭력의 기억, 혹은 따돌림 등의 이유로 장기간 소외되어 살아온 경우, 제대로 된 사회성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성 부족이 될 수 있다. 위와 같은 증상에 대한 인식이 박한 환경에서 자라난다면 자력으로라도 사회적 기술을 터득하려고 해도 정규 교육과정의 학창시절, 친구들하고는 잘 어울리지 못하며 사회적 기준으로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사람마다 상식적인 가치관과 동떨어져 사고하거나 자신만의 편의적인 생각에 매몰된 나머지 자기객관화가 안되는 확증편향에 따른 사고방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다소 특이하다고 할 법한 수준의 취미를 가진 경우에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 있고, 오픈채팅같이 온라인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이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2.2. 내/외향적 성격

사회성은 기술과 능력에 대한 부분이고, 외향성-내향성은 먼저 다가가는 성향에 대한 부분이므로, 외향적으로 성격을 바꾸면 좋아지겠지라고 착각하면 낭패를 보기 쉽다. 내향적인 성격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못하고 삭혀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편견이 있지만 실제로 큰 관련이 없으며 내향적이라도 사회성이 높으면 입이 무겁고 싹싹하여 평판이 좋아진다. 외향적이라도 사회성이 낮은 사람이 아무리 친해지려고 하나 무리에서 겉돌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성의 문제라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설사 내향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공적인 집단이 아닌 가족이나 소수의 친구들과는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다만, 사교성이 뒤떨어지는 사람 중 내향적인 사람의 비율이 외향적인 사람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가끔 이를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목하는 이도 있으나, 더 심한 정도로 나타나는 곳이 정작 많은 한국인들이 선진국으로 막연히 동경하는 서구권 국가들이다. 즉 서구권이든 대한민국이든 사교성이 떨어지면 애당초 어울리기 힘들고 사회성도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7]

성인이 되면 자신의 성격에 맞는 직업에서 문제 없이 적응할 수도 있으며, 보통 학창시절에 심각하게 내향적인 사람도 직장생활을 하면 어느 정도 개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8] 억지로 사람의 성격을 바꾸려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개성을 부정하는 행태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면 최소한의 사회성만 유지하고 소위 '자발적 아싸'로 살아가는 것도 좋다. 사람들과 많이 어울려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며, 혼자만의 시간에서도 얼마든지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생활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필수적이긴 하지만 요즘은 직장인들도 자발적 아싸가 많은 건 알기에 자기 일만 하다가 출퇴근 및 점심시간에도 각자 따로 노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3. 방어적 성격

내/외향성 여부보다도 사실 방어성이 강한 성격이냐의 유무가 사회성의 고저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방어적 태도는 사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가지는 태도이다. 이 태도는 주로 자신이 느끼기에 '공격/위협을 받고 있다'라 여겨지면 드러난다. 어느 사람이든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아도 누군가에게 지적이나 꾸중을 들으면 듣기 싫어하거나 자기 탓이 아닌 누군가의 탓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방어적 태도는 사회적 불이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9] 그러나 이것이 적당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방어적 성격이라 불리는 수준까지 간다면 사회성 구축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방어적 성격은 보통 사람들보다 매사 방어적인 성격을 가리키는데, 이런 성격을 구축하게 되는 원인은 다양하다.[10] 공통적으로 자신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지키는 데에 집착하고 심하면 자기방어를 위해 다른 사람과 누가 잘못한가 보자 하는 식의 기싸움 문제로 격화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신 기준으로는 방어적이지만 타인 기준으로는 공격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스스로 잘못을 했어도 반성을 하기보다는 주로 원인을 외부로 돌린다. 피해의식이 두드러지는 경우도 많다. 어느 정도 자기객관화가 되는 방어적 성격의 소유자라면 최소한 스스로 사회성이 없거나 못해도 주변에 사람이 안 모인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기 어려워지고 주변에서 지적해줘도 바로 고치기가 쉽지 않다. 이미 방어적 성격을 가진 수준이라면 원인이 형성된 성격대로의 언행이 먼저 나오기 쉽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방어적인 태도로 자기 자존감과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다. 방어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방어적 자존감과 관련이 있다. 방어적 자존감은 자기 가치감을 방어적으로 가진다는 의미로, 자신과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타인/타인이 소속된 집단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신이 뛰어난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식으로 자신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렇기에 이런 자존감이 형성된 사람들은 외부의 지적과 비판을 수용하고 학습하는 것이 아닌 위협으로 지각하여 공격적으로 대응하게 된다.[11]

이 사람들에게서 주로 보여지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거나 수용하지 않는 것, 잦은 변명과 남탓[12], 융통성이 없거나 매우 부족함, 자기합리화와 같은 일부 방어기제의 남용, 사건에 대한 침소봉대적 인식[13], 강한 편견, 외부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 공격적인 태도, 자신에 대한 노출을 꺼림,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타인을 함부로 대함[14], 타인에 대한 불신과 의심 등이다.

따라서 방어적 성격의 소유자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 교류가 어렵고 대인관계상 고립되기 쉽다. 방어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 해당 성격이 완화되려면 사회적·도덕적으로 지지해주는 아군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타인에게는 비호감으로 찍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사회성을 기를 만한 경험을 쌓기보다는 찍힐 만한 존재로 여겨져서[15] 따돌림 당한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의 방어적 성격은 강화되는 악순환이 펼쳐진다. 소심하고 혼자 노는 기질과 방어적 성격이 합쳐지면 존재감이라도 낮아져서 혼자 외로울지언정 집단 내에서 비호감이라고 찍힐 확률은 내려간다. 반대로 대인관계상 교류를 많이 시도한 만큼 집단 내에서 사회성 없고 비호감적인 사람이라 찍힐 수도 있다.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만한 특징들이 언행으로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방어적인 태도는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처럼 느껴지지만 이것은 순전히 착각에 불과하다. 상대방이 자신을 더욱 불신하는 원인이 되거나 상처를 주는 행동이 될 수 있다. 또한, 사회에 보탬이 되는 행동도 덜 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오히려 그렇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들이 보탬이 되는 행동을 더 하고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는 편이다.

사회성을 원활하게 기르고자 한다면 우선 방어심리를 자제하는 법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자신의 방어심리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는 조금 더 수월하다.[16] 상대와 마주해서 대화를 하기 전 심호흡 등으로 정신을 안정시키고 최대한 집중해서 경청하고 수용해야 한다. 듣기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면 속으로라도 반박하는 식의 해석을 하고픈 욕구가 올라오겠지만 그걸 참아내야 한다. 반박, 부인, 정정을 삼가고 중간에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 같은 것도 삼가야 한다. 다른 말을 하고 싶으면 상대가 방어전략 없이 대화할 수 있을 때 말하면 된다. 상대의 말, 비난, 지적, 비판 등이 듣기에 모호하게 느껴지고 이해가 어렵다면 질문하는 게 좋다. 물론 대충 '내가 뭘 잘못했길래?'하는 식으로 물어도 한국 사회같이 고맥락 문화에선 문제를 지적하는 상대편도 '니 잘못은 니가 먼저 인지해야 하지 않나'하는 태도를 기본적으로 깔고 있어 두루뭉술한 답이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례 하나를 들어서 자신이 무엇을 실수했는지 자세하게 물어봐야 한다.[17] 자신이 잘못한 게 분명하다면 사과는 반드시 해야 한다. 쌍방의 잘못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 남탓을 했다간 상대가 들어주기는커녕 관계만 나빠진다.

상대가 말할 때 최대한 동의, 공감거리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이 공감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공통부분을 찾고 동의하는 신호를 보인다. 만약 아무리 해도 동의할 거리나 공감의 여지가 없다고 느껴지면 곰곰히 생각해보겠다는 반응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늘 경청하고 있음을 제대로 보여줘서 상대에게 최소한의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이게 어렵다면 상대의 말을 잘 기억해뒀다가 귀띔이라도 하자. 또한 반대진영의 상태에서 대화를 진행한다면 상대가 자신의 감정을 공유했을 때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해주는 게 좋다. 의견을 수용하되 갈등지점에서 서로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연습과 더불어 상대에게 동조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하며[18] 상대도 자신에게 어떤 이유로든 동조하지 않고 방어적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19]

만약 스스로 고치기 힘들다면 심리상담, 정신과 진료를 권장한다. 혼자서 애쓰기보다는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무래도 좋기 때문이다.

2.4. 갑을관계

사회성 문제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문제시하게 되는 본질적인 원인은 갑을관계이다. 대등한 관계에서 '쟤는 사회성이 떨어진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평가의 측면에서 나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고용주나 직장 상사가 말하는 것은 "내가 부당한 것을 시켰을 때 감히 부하로서 복종하지 않았다, 보복하겠다!"라는 말의 완곡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갑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을의 사정을 무시하기 십상이다. 상대방을 지루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내내 늘어놓는 경우는 아주 흔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딴청을 피우거나 남을 폄훼하는 말을 쉽게 꺼내는 사람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래도 사회성이 없는 저능한 상사라고 비난받지는 않는다.
A. 우리 부장은 생김새가 정말 볼품없는 행색에다 어눌한 말투로 업무지시를 하니까, 볼때마다 우습게 보이고 신경질이 나. 우리 부서에서 쫓아냈으면 좋겠다.
B. 저 단골 손놈, 정말 참을 수가 없어. 우리 가게에 돈은 많이 쓰지만 생김새가 정말 볼품없는 행색에다 어눌한 말투로 주문을 하니까, 볼때마다 우습게 보이고 신경질이 나. 우리 가게에서 쫓아냈으면 좋겠다.
C. 이번 신입사원은 생김새가 정말 볼품없는 행색에다 어눌한 말투로 대답을 하니까, 볼때마다 우습게 보이고 신경질이 나. 우리 부서에서 쫓아냈으면 좋겠다.
A, B 표현은 쓰이지 않지만 C 표현은 자주 쓰인다. 즉 사회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도 갑을관계에서 요구되는 감정노동의 일부라는 것이다.

2.5. 경험 부족

성장과정에서 대인기술을 적절하게 습득하지 못했거나 지식을 많이 배웠는데 실천해보지 못했거나 대인기술 비롯한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해봤어도 많은 경험을 쌓지 못해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배려하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 것, 타인의 감정을 노력해서 파악하려 하지 않는 것, 쉽게 공격적으로 되고 화내는 것, 성격이 급한 것' 등을 사회적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런 문제조차도 경험 부족의 원인이 크다.

A는 취미도 단조롭고, 여행도 거의 가지 않는 무직자라고 하자. B는 같은 기간 동안 친구를 많이 사귀고 여행을 많이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하자. 이 와중에 갈등을 해결하기도 하고 관계를 발전시키기도 하면서 여러 경험을 쌓게 된다. 운동이라도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격투기나 구기운동 종류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연습이 되며 반대로 혼자서 하는 운동인 줄넘기, 수영 같은 건 운동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사회성 함양에는 큰 도움은 주지 않는다. 이런 차이가 5~10년 정도 누적되면 사회성에 있어 큰 차이가 나게 된다.

환경 차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잘 대접받는 폐쇄된 집단에만 머물러서 생기는 경험 부족도 원인이 된다. 갑의 입장에서만 살아오면 적응하기 쉬우므로 누구나 잘 적응하고 살아간다. 자기 집단 안의 사람들은 문제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사회성의 문제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상황의 변화로 을의 입장이 되고 개인적인 이유로 비위를 맞추는 법을 습득하지 못하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예측 가능한 상황대로 해석하고 이는 어린시절 지내온 환경에 따라 누적된다. 한쪽이 굴곡이 적은 유순한 환경에서 자라왔다면 인격 모독성으로 느껴지는 발언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따끔한 조언으로서 한 말인데 이게 그렇게나 감정이 상할 일인가?'라며 당황할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로는, 실제 피해를 과장되게 체험하여 이의 억울함을 항변해봤자 이익이 없다고 판단해 수용당한 것을 스스로가 정상으로 납득시켜야지 과거의 트라우마가 진정되거나 간접적인 투쟁[20]에 의한 방어기제가 원인이 된 것으로 그나마 긍정적이라면 감정노동에 익숙해지는 것이겠지만 외부에 강요하는 건 다른 문제이고 반대로 심리적 안정을 위해 무심해지는 영역을 확장하다가 사회적 합의에 위배되는 선을 넘어 극단적인 내 편 편향으로 사이코패스 수준의 무관심을 보인다고 오해할 수 있다.
(업무 능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가족이 아프다는 사실을 듣는다)
A. "안 됐다. 힘내 ㅠㅠ."
B. "그건 본인 사정이잖아요."
C. "너는 쟤와 달리 다 있(으시)잖아?"
동료나 친구끼리는 A처럼 위로해주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일하는 곳에선 개인 사정은 중요하지 않다. 사정이 있는데도 굳이 나와서 하는 감성팔이가 얼마나 조직 생산성을 저해시키느냐를 모르는 것이 문제인 거지 공통된 윤리 신념을 지닌 사람들에게 지적될 만큼 무심하다는 반응을 근거로 공감을 갈급하는 쪽에 대한 공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B의 건조한 반응 역시 앞서 공공영역에 불필요한 자기 공개를 들먹이지 말라는 취지일 뿐 악의가 없음을 변호할 수 있다. 감정 쓰레기통은 누구라도 거부하는 역할이며 굳이 비판할 게 있다면, '주변 인물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나랑 상관이 없다'를 당사자가 모르게 감출 필요가 있는 경험의 부족을 집을 수나 있겠다.[21] C는, 너보다 더한 사람도 있으니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라는 거다. 본인 딴엔 위로겠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면 C의 경험 부족으로도 본다. 아픈 대상이 본인이 될 시에도, 몸도 제대로 간수 못 해 조직의 1인당 업무 가중을 요할 불안정성으로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주기에 따라 약점이 될 수 있다.

자신을 포함한 주변 인물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장기적으로 득될 게 없다. 역린을 아는 사람이 적이 되면 가장 무섭고 온라인에선 더욱 추접스럽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상처 줄 말은 도의적으로 하지 않을 것임을 상대도 알고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봤자 상처만 받을 것이다. 그냥 속 편하게 당신 하나 없다고 세상이 안 돌아간다는 착각을 버리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상처를 가장 덜 받는 방법이다.

'외동 → 갑을관계나 강요 따위 없고 대외활동을 거의 안하는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22] → 집단괴롭힘 없는 중고생 시절 → 권위의식 없는 평등한 대학 생활' 트리를 거치면 나중에 군대나 직장 등 서열 의식, 상급자에 대한 허례허식과 복종 등 똥군기를 마주치거나, 사악하고 교활한 사람을 만날 때 잘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 인턴, 동아리, 동호회, 자원봉사 등 을의 입장에서 많은 경험을 하면 나아진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혜안을 얻는다고 생각하여 "나는 사회성에 문제가 없다. 갈등이 생기는 것은 어린 너의 탓이다."라고 책임을 돌리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알고보면, '나이든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무례하다'라는 인식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똑같은 잘못을 해도 욕을 적게 먹는 게 원인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꼰대오지라퍼가 되지 않으려면 나일리지만 믿지 말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사회성을 유지한답시고 다른 공간을 침해하는 경우(예: 금연구역에서 친목을 위한 흡연) 시행자가 나이가 젊어도 상대가 예민하다 받아들일 수 있고 현 세대와 다르게 배운 인식 차이로 인해 무개념이 된 경우로는 과거 대중교통 내 흡연처럼 유해성에 무관심하여 어린아이나 신생아 옆에서 길빵해 간접적으로 영역을 침해당하는 보호자 입장에서 예민해질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하며 이는 행위를 연상하는 전자담배 역시 동일하다. 음주운전단합의 일환으로서 용인됐지만 현재는 살인미수 격으로 인식이 나락으로 떨어진 파렴치한 행위이다. 사소하게는 무논리로 우기거나 고함지르기, 예고 없이 문을 여는 행위가 있다. 서류 던지기도 창작물에서나 풍자하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 수 있어 법의 발효 역시 경험의 실효 명분에 포함된다. 남아 성추행 중 고추 만지기의 경우 과거에나 귀여운 공격성(cute aggression)[23]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성 인식이 개선되고 난 후 노년이라도 범죄로 인식하는 분위기이며 미디어에서도 찬반을 다루지 않는다. 그밖에도 본인의 습관으로 다수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

최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등 취미를 갖추는 게 좋다. 분명한 것은 소극적이고 대인기술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냥 우연히 아무 노력 안했는데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고시 낭인 등 일반적인 사회에서 오래 떨어져 지내도 경험이 부족해서 실수를 많이 저지른다.

집단괴롭힘 피해자의 경우 만날 사람 자체가 제대로 생길 수가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경험 부족이 되어 버린다. 단 좌절이나 트라우마로 경험 부족이 생기는 경우는 극복하기 위한 자기 개발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

지식 부족 역시 상당한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간혹 사소한 것 차이로 평가가 갈리는 것도 화법이나 처세술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해결되는 경우가 있으며 실제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자기 문제가 뭔지를 파악하고 직접 경험을 해보면서 지식을 쌓으면 보완이 가능하다. 고객서비스교육(CS), 스튜어디스/스피치/연기 학원[24] 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남을 기분 나쁘게 하는 언행의 경우, 기분나쁜 사회인을 만나는 경험이 많을수록 좋아진다. '저 사람이 나에게 저런 식으로 대하니까 기분이 나쁘다, 내가 저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한적이 있는데 그 사람 진짜 기분 더러웠겠다,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다' 같은 식의 경험이 많이 쌓일수록 좋아진다.

인터넷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도 아싸 화법, 찌질한 사람 탈출법, 사회생활 비롯한 지식과 간단한 요약 등으로 빠르게 이해시킬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서로 얘기해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현실 대화와 마찬가지로 반면교사가 있기에 너무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넘어가야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보는 게 좋다. 대다수가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 워마드같은 질 안 좋고 극단적인 커뮤니티에서 사실인 것마냥 무조건 자기잘못, 성차별, 자기 혐오 등을 넣는 혐오성 등을 배출하는 내용과 유머가 많이 돌아다니고 있기에, 철 많이 들 정도로 판단(눈치)이 좋은 사람이 아닌 이상 일단 '간섭하지 말자', '경우가 있고 확실하지도 않으니 일단 중립이나 관심없는 것처럼 넘기자'와 같이 맥락을 지닌 판단을 가지면서 보는 것이 좋으며 법, 심리, 철학에 대해 공부하여 사회적 변수를 추론하기 어려울 때마다 스스로의 교차검증을 거쳐 '왜 상대는 그러한 언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란 빅데이터를 학습해 수(手)의 확장과 의식적 공감을 통한 연역을 중립적 시각에서 고려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넓혀야지 본인의 사상을 존중받을 수 있다. 더불어 돈도 있어야 인간의 습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심리적 여유도 생기며 군중에서의 불완전한 신뢰를 사회 전체로 해석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는 밑바탕이 완성된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불문율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며 책으로도 배우기 힘든 편이지만, 30대 이상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 모르거나 지키지 못했을 경우 가르치거나 고쳐 줄 사람은 없다.

막장 부모의 교육법 때문에 생기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잘했을 때 자녀를 칭찬하는 건 바로 그 자리에서 실시하고,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는 무엇 때문에 혼내는 것을 당연히 알려줘야 하며 "다음에 이런 상황이 올 때는 이렇게 대처해야 한다."고 해결책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잘하는 일은 계속해서 잘하고 못하는 일은 해결책을 찾아서 고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반대로 해서 잘 한 일에 대해서는 "이런 것은 누구나 하는 건데 뭐 잘났다고..."라고 핀잔을 주고 못 한 일에 대해서는 "이런 것도 해결 못 하니? 그건 네가 알아서 생각해 내야지."하고 타박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아이는 바보가 된다. 가정 간의 화목을 핑계로 다른 사람을 못 만나게 하는 경우에도 생기며 이는 보통 잘 사는 집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난다.[25] 학군이 좋은 동네로 진학시키면 올바른 사회성을 가지게 될 거라면서 정작 가정에서는 어울리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아 크게 의미가 없는 상황도 발생하며, 통금과 같이 지나친 억압이 되려 사회성 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이해 과정을 고립시키는 건 자칫 도덕의 발달을 저해시킬 수 있다. 단적으로, '사람을 왜 죽이면 안 되는가?'라는 물음에 "당연히 안 되지!"라고 감정을 호소하는 건 라는 물음을 해소해야 하는 입장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법에 저촉해서 오는 이득보다는 손해를 입는 방향으로 부조리의 원리를 해석해주면서 이미 본인을 압도한 사회인이 정한 윤리의 사각지대까지 올라갈 확률은 극히 적다는 것을 암시해 줘야 후에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결과적으로 나에게 이익이 되는 선행을 하게 유도시켜 사회 전체적인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다. 세상의 어두운 면만 감추는 무책임한 훈육보다는 포괄주의적 해석을 통해, 비록 연기일지라도 관찰자인 미개인에게 이타적 선례를 보이는 숙주 역할을 자처해야 할 필요성은 사회구조적 실익이 근소히 앞서게 되는 것과 동치된다. 세상의 나쁜 요소. 즉 부정은 전염되므로 좋은 인간관계를 꾸미려면 이를 멀리해야 할수록 좋다는 건 어린 시절에게는 맞는 말이지만 성인기 이후에도 이해 과정이 끊기는, 쾌락만을 위한 관계주의를 지향하고 주변의 문제를 미래에 맡기는 온실 속 화초는 나중에 본인의 평판이 꺾일 시 그 문제점을 자각할 수 없다.[26] 타인에게 의존해서는 사회성을 꾸릴 수 없고 이는 관계주의적 망령으로 집단사고에 갇혀 잘못된 방향으로 자아도취하는 노예가 되기도 한다.

귀국자녀(어릴 때 해외에 장기간 거주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아이)의 경우에도 관용어 사용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미성숙으로 인해 타의로 상향된 사회관을 선망하도록 세뇌당해 추후 성인기가 되면 기존 상식이 박살나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소속된 영역이 정한 사회 부적응의 이미지를 제3자가 '인식'한다고 여론을 조작.
→ 필요 이상으로 관음하게된 관찰자를 통해 개인의 장애 요소를 공언화.
→ 주류에 의한 사회성 부족의 객관성 보충.
→ 자조적인 사회 부적응자의 결과물을 영역 외 불특정 다수에게 동일시.

이러한 과정은 다수의 경험이 요구되지 않는 폐쇄된 집단에서 쉽게 발생하며 타인을 장애인으로 매도하는 행위로 오는 법적 자율성을 깨닫는다면 매우 치밀해진다.

일반적으로 현대인 관점에서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장애화시켜서 얻는 이득이 없기에 이러한 이유로 사회성이 없다고 타박하는 건 시간 낭비로 판단하여 열을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미성년자의 경우 사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도덕적 인식보다는 학업에 집중하는 것이, 출세 강요를 시간 낭비라고 인식하는 세대 차이의 문제보다는 어린 치기로 이해하는 게 이성적이어야 하는 관찰자의 한계처럼, 피해자(장애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이성적이지 않은 상황을 억지로 정상의 기준에 맞게 비교하여 피해자의 사회성 부족을 정의한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니가 멍청한 거(=사회성이 없다) 아닌가?"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으니 or 니들이랑은 다르게 타고 낫으니 운이 좋은 것(=사회성이 좋다)이다."

또한, 이는 확률에 의해 우월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회성을 대변하려는 오류를 받아들이게 된다.[27]

개성 역시 그 집단 내 개그 코드가 맞았기 때문에 무리에서 규정한 인간다움을 인정받으려면 재치와 비슷하게 창의성을 요해야 하는 것은 같으며 전체의 이상향을 가장한 이상점을 증명하는 문화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고 정보 불균형이 심화되어 사회 부적응자가 발생하게 된다. 이때 친목 욕구의 균형을 위해서 불법에 접근하면 비행 청소년 루트로 들어서게 될 수 있다. 이는 사회화 과정이 단순히 보호자의 사회성이 좋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지식 부족을 악용하여 정보를 접하기 힘든 미성숙 상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증명해내는 과정을 통해, 정보력 약자인 당시를 고려하여 나에게만 책임을 몰아놓는 건 부당한 처사라고 은연 중 압박하여 피해자 또한 문제가 있다고 책임을 분담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학교폭력 가해자가 "장난이었는데 친구(=피해자)가 고통스러운 걸 몰랐다(=약자화). 선처해달라." 식으로 아웅하여, '우리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와 같이, 놀아주기 위해 노력했다며 피해자를 사회 부적응자임을 다수에게 암시하여 항변하기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협작으로 비유하면 된다.

문제는 이를 계도하지 않고 자라난 성인이 주류가 된다면,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자만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문서 내 서술된 문제를 타인에게 주입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를 메타인지하는 과정을 단순 '사람을 많이 알고 주변 사람에게 충분히 친하게 보이는가?', '자신의 면책이 소속(조직)으로서 증명되는가?'로 그 정의를 대신하는 미성숙한 사고방식을 신세대들에게도 이러한 왜곡된 사회관을 퍼트리는 등 유아화로서 자유분방을 모토로 삼는 특이점이 사회에 만연해진다면, 세대 간의 격차를 틀어지게 만들 혐오 컨텐츠를 양산하는 도식화로 인해 사회적인 인식 차이에서 시작하여 일반적인 사회성의 정의마저 차등화될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일렬횡대, 1인 다(多)석, 취식, 질주 등 비매너는 맞는데 뭐라 하기엔 쫌생이가 될 것 같은 껄끄러운 상황 역시 타인을 배려하기보다는 본인 위주로 세상을 판단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선천적으로 전두엽 발달이 더디거나 학대 또는 정말 사랑만 받아서 공감능력을 배우는 경험이 미흡한 게 주 원인이며, 배려해봤자 돌아오는 게 없다거나 되려 순진하다며 독하게 살으라는 쓴소리에 각성하여 주변 시선에 무덤덤해지는 등 경험적인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문화에 따라서도 그럴 수도 있지 않냐는 것에서부터 무개념으로 찍히기까지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또 이런 것들은 따져봤자 시간을 보상받지 못 하므로 실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행동을 지적하는 것도 언뜻 보기엔 자기 예언성 기우로 취급받는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

적절한 단어 선택과 사용법, 적절한 비유 및 표현을 쓰는 것도 사회성에 있어 중요한 경험이 된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있어서도 원어민과 소통을 병행하여 발화의 절제를 조절하는 훈련을 거치는 과정 또한 대화법을 독학할 수 있는 양질의 경험으로 작용받는 사람도 있다.

어린이가 헛소리를 하는 건 사회적 경험이 많은 성인 기준에서나 그렇게 느끼지 사회 부적응자로 발전할지를 판단하는 신호가 될 수 없다. 되려 그러한 비논리를 해선 안 된다고'만' 배웠을 시 논리적인 말만 할 수 있는 만큼 재미가 없게 되는 함정에 빠진다. 비논리로 친밀도를 보충하는 미끼에 간섭하거나 최소한 일상에서는 비논리로 상대의 말초를 자극하는 것이 추앙받기도 한다는 걸 외면해선 안 된다. 헛소리도 말 그대로 진짜 헛소리와, 녹진한 사교를 위한 톡톡 튀는 논리적 멍청함이 있다. 비논리적 대화법도 인간관계 형성에 있어 중요하다. 아무 말 대잔치도 다채롭다면 사회적 기술이 된다는 소리다.

2.6. 재미가 없는 경우

가끔씩, 대화를 해보면 사회성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주위에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다른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줄 능력이 부족하여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다. 즉 유머감각이 현저히 부족하여 무슨 말을 해도 따분하고 지루하게 들려서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이다. 현대 사람들은 매정하다. 재미를 줄 수 없다면 그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굳이 같이 놀고 싶지는 않은 그런 사람으로 본다. 그러므로 집단과 친해지고 싶다면 빨리 유머 감각을 키우는 것이 좋다. 정 기르기 어렵다면 다른 사람이 유머를 시도할 때 본인이 느끼기에 재미없더라도 맞장구라도 잘 쳐주자. 그럼 최소한 비호감으로 낙인찍힐 확률이 조금이나마 내려간다.[28] 흥을 돋우기 위해 몸을 혹사할 필요까진 없다. 이 도 같다.

재미가 없어보이는 상대 역시 자신이 속한 영역을 재미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심 분야가 너무 유치하거나 그 반대일 시 자신이 교류하고자 하는 분야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얘기해서 어색해질 바에 무관심으로 재미 없다는 선로를 택한 것이, 관계주의의 방향성이 각자의 분야를 존중하는 것과 대조적이라 사람들과 상대해서 얻어내는 이익이 없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그냥 저냥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물타기로 얻을 수 있는 평균값을 추산하여 개인만의 외향성을 내면화하는 원인 또한 작용함으로서, 이는 관찰자 시각에서는 별 반응이 없을지라도 자신의 의견을 존중할 만한 공간이 주어진다면 의사를 적극 발산하여 독창적인 사상을 공유할 수 있는 동기 역시 자기 분야에 주도적으로 나아가는 가변적 성향이 이해관계상 맞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발현될 수 있으며 의외의 면모를 발견하는 것도 크게 이상할 건 아니다. 유행에 따르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며 이는 계층 이동의 연장선으로, 인간 어장의 수질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수준에 맞지 않는 사람과는 꼬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인맥 물갈이 과정 중 그 대상이 본인이 되어 재미가 반감된 걸수도 있다.

그간 사람의 더러운 면을 많이 보고 자라 상대에 대한 기대를 버리거나 관심도 없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사교와 조화되는 성향과 반대일 확률이 높지만 이는 좋든 싫든 그 사람대로 최선을 다 한 걸수도 있다. 대부분 선천적인 외모가 나쁜 사람이 이에 속하는데, 못생긴 사람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오해도 깊게 들어가면 이미 무기력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사회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서, 아이컨텍으로 티키타카 해준 경험이 많은 사람이 보기엔 사교에 노력을 들이지 않는 사회 부적응자라 조롱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보기엔 휴대폰만 보거나 심하면 돌멩이 취급하여 같은 노력조차도 사회 부적응이란 꼬리표를 달아 유아 때나 성인기 이후까지 분위기에 맞지 않는 진지병으로 밈화를 일임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사교의 효율이 사람마다 다름을 깨닫고 포기하게 된 것이다. 시각을 넓히면, 분위기 파악 못하고 벙 찌게 만드는 눈새도 어쩌면 타인을 알아가고자 하는 욕구 중 실패한 개개인의 노력이며 이후 메타인지를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일부로 인하여 군중으로부터 음침해져가는 현상을 가속화하여 미디어로서 밈화의 정당성을 부추겼다.[29]

2010년대 이후, 단순히 남들로부터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여 사회성과 직결하는 선입견은 다소 완화됐지만, 과거에는 '친구 없음 = 사회 부적응자'가 국룰이었다.[30] "다른 사람이랑 대화는 하냐? / 너한테 말 걸어주는 사람이 있냐?"라는 현재로서 무례한 질문과, 재미가 없으면서도 사람을 만족시켜줘야만 하는 강박적 관계주의의 실증은 타발적 원인으로서 재미가 없어지도록 학습화한 것에 기여했다. 사교술에 능하다고 피해를 덜 받는 건 아니다. 친해지는 것도 중요하나 훗날 적의 확산을 막기 위해 관계를 검열하여 이러한 오해(=피해)를 덜 끼치도록 사리분별하는 집단을 구성하기 위한 실용적인 사회 지식 습득에서는 친구 여러 명을 만드는 것보다 사회경험이 많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게 더 유리하다.[31]

2.7. 인간 불신/인간 혐오

사회생활과 인간의 추악한 이면을 자주 접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 또한 본인도 모르게 아예 모르는 사람이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좋은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제 성격이나 인격이 나쁨에도 그것을 겉으로는 숨기며 사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다 싶으면 곧바로 본성을 드러내는 강약약강 + 잘 대하는 척했다가 나중에 통수를 치는 배신행위 등이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본성을 드러내는 유형(예: 일진, 갑질, 사기꾼 등)의 인간말종들에게 피해를 본 경험을 하게 되면 타인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교훈을 남기며 뇌리에 강렬하게 새겨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일상이라는 울타리 바깥에서는 사탄도 저리가라 할 인간군상을 생각보다 자주 만날 수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불편한 진실을 접하는 계기가 되어 '내가 없을 때는 내 욕하겠지', '보아하니 날 뜯어먹으려고 접근하는 게 분명해'같은 생각을 가지기 쉽다. 여기서 꼬여버리면 안정적인 벽에만 의존하거나 더 가면 가족, 친구조차 의심하는 꼬리물기식 불신 남용에 탈출하지 못해 내면이 몰락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상대를 자신과 같이, 급이 비슷한 상황에서는 배신해봤자 환원 가치가 적으니 '친한 척하는 게 더 이득임을 알고 있다'라고 판을 까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관찰자의 눈에는 그저 터울 없는 사이로 보이다가도 급이 변경됐을 시 일어나는 급전개에 적잖이 당황하는 것이고, 상대 역시 당신이 배신을 위해 작당할 것임을 미리 눈치채 대비하고 있을 것이라 알고 있으니 당하는 사람이 멍청한 것이라는 사고방식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주고 이러한 혐오를 촉발한 트라우마의 비특정성을 전위하려는 것도, 내가 당한 것들을 사회로부터 환원한다는 대리만족을 통해 인격의 분리가 수월하기 때문에 극단주의의 지대가 마련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이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보이겠지만,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독립적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개념까지는 가지 않는다. 인간을 혐오하지만 관계는 유지하는 사람이 있고 이것이 주변에 돌고 돌아 본인에게 득이 되는 경우가 있어 상대가 먼저 존중하면 최소한 배척한다는 티를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를 '인간'이 아닌 생물로 비유하여 혐오를 애써 외면하는 사람도 있다. 생존을 위한 현실적 이유이거나 더는 동류와 엮이고 싶지 않아 역으로 사람에 대해 알아가여 프라이드를 보호하려는 발악으로, 이에 극단적으로 심취한 나머지 외계인의 입장에서 인간의 탈을 쓴 개나 고양이를 관찰하는 중이라고 믿기도 한다.

3. 범죄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되는 객체의 영역을 분리하여 오는 평판 관리는 그 과정이 청렴한 것을 사회 내 디폴트로 자리잡고 있으며 준법정신에 따라 개성과 결합하면 큰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영입하기 이전 전과 유무를 고려[32]하거나 상징을 심사하는 건 조직의 평판을 보전할 효율적인 전략 중 하나이기에 화합을 연기하기 위한 충분조건에 부합하거나 스펙트럼을 대조하여 상관관계를 따진 뒤 불순을 제거할 용의로 광범위하게 쓰여지며 이는 일시적 시류여도 적용된다.[33]

그러나 학습된 사회성은 제3자로부터 초기화되지 않으며 전과가 있는 사람의 행적을 근거로 이를 모방하려는 선의의 제3자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도 없다.[34] 범죄의 상징을 몰랐던 상대방에게 의도를 알려줄 사람이 없을 만큼 주변에 자문가를 도맡는 사람이 전무한 가정 환경의 부재를 유추할 수 있다면서 본인에게 피해가 오는 걸 미연에 막을 수 있는 전과를 대신할 미관에 초점을 두어 사회 부적응자의 면모를 드러낼 시 이를 전과와 동급으로 취급하여 '저 인간의 행실을 봐서 주위에 그렇다할 인적 가치가 없음을 알 수 있다'라는 자기 확신의 범람과 함께, 딱히 부적응은 아닌데도 정상의 기준이 상향되어 우열론의 증식 앞에 '범죄=개성'이라는 일종의 재치의 발판으로 정상(正常)의 불신과 이를 알고도 당하는 피해자가 또다시 사회 부적응으로 몰리는 포식의 장이 형성됐다. 어떤 사람은 사회성이 좋아도 전과가 있기도 하고 이에 무색하게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케이스도 존재하며, '사회성이 좋다=전과가 없다'로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전과가 없더라도 사회성이 나쁠 수 있으며 그 근거가 배경지식이 없는 제3자가 납득할 만한 사유라면 미풍양속에 반하는 요소를 전과로 연결지어 기정사실인 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니 선한 척 연기하는 것일 수 있고 또 연기가 아닌데도 장애인처럼 보여서 범죄자 취급을 받아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 등 뭐가 됐든 결국 이 문단에서 설명하는 주제의식은, 전과의 유무를 고려한 인간성의 증명은 겉모습으로 우회가 가능하며 이를 통해 주류에게 평판을 입증하기 위해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설득이 가능한가로서 발생하는 사회성과 범죄 간 상관관계의 반례가 개인은 물론 집단에서도 그 기준은 불안정하고 틀릴 수도 있으니 이를 무지성으로 돌격하는, 자신이 사회성이 좋다고 착각하는 진성 사회 부적응자로부터 정의내려진 피셜이기도 하니 그 원인에 따른 감정의 출처도 애매해져서 진실성이 왜곡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인다고 하여 실제 범죄자로 대우할 마땅한 이유도, 처벌할 근거도 모두 조직의 편리를 위하여 정당화하여도 그 보복 대비 실익이 따라오지 않는 대항력만큼이나 관계주의 집착에 관한 회의의 등장으로 특정 대상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자체가 시간낭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회 부적응자가 군중에게 물을 흐려 피해를 끼칠 것이라는 다수설의 추측[35]이 사실로 다가온다 하여 평생 감옥에서 격리시키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애초에 인간은 스스로를 규제하기에 완벽하지 않다. 이보다 더욱 편파적인 개인에게 상대를 응징할 권리를 할당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공유한다고 믿던 개인들에게 배신당해 대표로 썩혀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준법정신이 부족하다고 하여 반드시 사회성 부족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흔히 일반인 레벨에서 범하는 경범죄의 경우, 실수로 인하여 발생한 상황이라면 사회적으로 큰 누를 끼치지 않으며 이는 공인이어도 살인과 동급으로 평판이 낮아질 만큼의 수준으로 가중되지는 않는다.[36] 일수벌금제(Day-fine)처럼, 수입에 따라 벌금을 차등해 청구하는 방식을 채택한 국가가 있지만 형 자체를 상향하지는 않는다. 무단횡단이나 흉악범이나 결국 같은 범죄 선상을 공유하니 화끈하게 사형을 때리자는 극단주의가 법조계까지 뻗치지 않는 이유도 본인이 그 상황에서 항변할 권리를 잃게 만드는 자폭성 논리이기 때문이다. 집행유예 이상의 형으로 처벌된 사람이어도 범행 사실을 인지 못 하였거나(예: 향초같이 수제 제작된 생활화학제품을 선물 및 양도하는 것, 대마 합법화 국가로 여행 시 멋 모르고 마약이 든 음식을 섭취하거나 한국 내로 반입 시, 옆에서 타인의 개인정보를 훑을 시 #, 방문 기념으로 문화재에 낙서하기, 무주물로 오인한 횡령 등) 그렇게 해야 할 마땅한 사유가 있었을 시(예: 정당방위라고 생각했는데 과잉방어가 될 시, 부모나 자식을 해코지한 가해자에게 위해를 가할 시[37], 사실적시 명예훼손) 법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사회 부적응자라고 치부하긴 어려울 것이며 같은 범죄이지만 세간이 바라보는 범죄의 명분이, 애초에 먼저 시작하지 않았으면 맞지도 않았을테니 자초한 쪽을 고깝게 인식하는 분위기라면 되려 피해자를 영웅으로 추켜 세우기도 한다.[38] 하나 충동적인 제재는 조리를 지키지 않은 피해자 이외에 실행자에게도 사회적 책임이 가해질 수 있다.

국가 내 사회문화적 차이에 따라 같은 행위여도 범죄로 구분되는 하한선이 다를 수 있다. 예로, 화장실에 이성이 출입하면 여성은 실수라고 넘어가거나 알고서도 들어갔다 해도 피곤하게 걸고 넘어지지 않으며 반대로 남성은 처벌될 수 있다.[39] 같은 원리로, 외모에 따라 상대가 성희롱이라 느낄 수 있을 불만 시대 속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털 끝조차 닿지 않도록 불미스러운 상황을 방지하는 게 유별나다는 평가를 받을지라도 위법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 누명을 씌여 선의가 오염돼 명예가 추락되는 걸 막기 위해 부작위에 의한 종범을 택하는 것이 나중에 선의로 발생하여 오는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작 도움이 절실한 사람에게 피해가 퍼지는 상황을 방기할 정도로 개개인의 사회 부적응을 증명하는 것만 못하게 되어 버리는 등 한시적으로 조련된 약자와 그의 대척점인 마케팅으로 스스로의 관점을 의심하게 만들고 정치적 무기력으로 인해 소신의 가치가 묘연해지는 허무함은 사회 체계 내 정을 대체하는 인의의 필요성마저 떨어지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 또 남이 도움을 청해도 무시하고 지나가는 건 법의 무지가 아닌, 도리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몸을 사리게 되는 원인이 더 크다. '저 상황에서 어떻게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가 있지? 사회 부적응이 아니라 진짜 정신/행적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괜히 도와주다가 누명 씌일 수 있다는 간접경험이 앞선 신중한 성향 차이이지 사회성과 큰 관련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괜히 남 구해주려다가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혀도 면죄부가 되는 게 아니니 이러한 내실과 밀접한 현상들을 유지하고자 하는 안정 욕구가, 법적 제도의 허술함에서 오는 뒷북으로 사회와 융화하는 데 오점이 있다는 인식을 압도하는 것도 사회성 부족을 판가름하는 기준을 모호하게 한다.[40] 이외에도 근친혼, 성소수자같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국가라도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윤리관을 준수하여 오는 이익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보다 현저히 적을 시 범죄는 사회 신용도에 따라 비례한다. 맞으러 가는 게 과장되지 않았던 2010년 이전의 군대 내 가혹행위가 주 예시인데, 사람을 패서 굴종시키는 게 설득시키는 방법보다 덜 피곤하니 얼마나 효율적으로 협박을 하는지가 사회적 능력으로 인정되었고 대다수가 이러한 강도 높은 유아 연기를 당연하다라고 세뇌할 정도로 인권침해의 온상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엄청난 사회적 해악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고 범세계적으로 그 결과가 증명되면서 사회 부적응자를 처단하기보다는 온정이라는 구실로 사람답게 대우하는 것이 고도의 네트워트 사회 속 정치적 이권을 유치하기 위해서도 이익인 것을 체감하게 되었으며 체벌 역시 훈육을 빙자하여 미성년자를 폭행하는 것으로서 이 과정을 범죄로 규정하는 것보다 개인의 이권을 위한 통제 요건에 부합했기에 암묵적으로 권장하였고 이후 구제로부터 고립된 세대 전환으로, 때려서라도 '고쳐야 한다'는 관념을 주입하여 생기는 이점을 취할 수 없도록 사회적 자살이라는 무관심이나 심하면 보복으로 응수하여 이러한 도태를 예상한 옛 주류의 태세전환과 그 일부가 자식에게라도 신생 주류에게 틔지 않도록 조향시킨 긍정적인 가치관을 통하여 범죄를 통한 사회적 이점을 퇴색시키는데에 동참했다. 이는 주류가 나아가고자 할 가치관에 따라 새로운 반례가 등장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41] 같은 학생끼리의 학교폭력도 '얼마나 신박하게 사람을 고문하는가'가 그 안에서는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관계 형성 과정 중 하나였다.

법의 사각을 노려 이러한 불가침성에서 벗어나는 경우, 한탕한 뒤 잠적[42]하거나 장애인인 척 연기하여 동정표를 얻거나 힐링 영상을 제조할 목적으로 행하는 동물 학대, 익명성 악용 등이 있다. 이외에 절대로 용인해선 안 될 만한 것들도 어떠한 기준으로 사회성을 정의하는지에 따라 사회적 기술이 된다고 여겨질 수 있다. 위와 마찬가지로, 윤리가 시덥지 않은 요소라고 느껴지면 수익 창출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모든 방법들(심지어 사기조차)도 일반인 대비 인간이란 자원의 유지비를 충당하기 쉬우므로, 출처를 불문하고 이를 방증하에 사회성이 좋으니 그러한 결과가 나온다고 믿는 것이고 평판을 상쇄하는 능력 또한 사회적인 면에서는 사회성이 좋다고 인식할 수 있다. 이렇듯 사회성이란 타인에게 피해를 덜 끼칠수록 증명된다는 상식선은 관점에 따라 완전히 뒤집어질 수 있다. 외부로부터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는 건 돈이 곧 신뢰인 성공신화의 인증 수단으로 쓰이는 사기공화국 내 연례행사이다. 적기라며 모이는 곳엔 먹을 게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A: "사회성 없는 티 내지 마라."
B: "너(A)는 빨간줄 그였으니 할 말이 없지 않냐?"
A: "나는 내 선에서 감출 수 있지만 너는 티가 나잖아. 내가 전과가 있어도 밖(=공공영역[43])에서 안 밝히면 그만인데 너는 사회성이 나쁘니 모르고 넘어갈 수가 없거든."
B: "그게 그렇게 중요해?"
A: "사회성이 부족해보이면 그게 범죄가 되는거고, 너는 일반인이지만 사회성이 없으니 범죄자처럼 취급당하는 거지. 지금 당장은 아닐 진 몰라도, 나중에 네 행동이 흉악범과 공통점이 생긴다면 이 조직(=사적영역[44])도 물드는 거고 결국 너로 인해서 전체가 피해를 보는 거지."
B: "사람에게 틔어 보이는 게 범죄보다 더 민폐를 끼친다는 거구나."

범죄와 사회성 부족에 따른 각각의 책임은 사적영역과 공공영역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추산된다. 어떤 사람이 일상에서 모방하기 쉬운 도박[45]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모든 재산을 탕진했어도 사적영역에서만 알 수 있게 은폐가 가능한 폐쇄집단이라면 범죄를 자제력의 문제로 치환할 수 있다. 이때 본인이 생각하기엔 '나의 행위는 의지만 있으면 즉시 끊을 수 있으며 이는 현재진행형(노력)이다'라 생각하고 이를 근거로 상대방의 사회성 부족을 '만일 나였다면 의지만 있으면 바로 고칠 수 있을텐데. 저건 노력 부족(=인성)이다'라며, 공공영역에서의 사회성 부족은 은폐할 수 없기에 그 피해의 총량을 스스로를 상대적으로 고평가한 입장에서 서로의 의도를 전향시켜 근본부터가 다른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다.[46] 내가 저지른 범죄는 외부에 누를 끼치지 않는 실수이고 이를 내부에서 따지면 끝날 일이지, 상대의 사회성 부족은 공공영역에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고 이를 내부에서까지 끌고 와 관찰자가 가늠하는 집단 내 사적 피해가 제3자를 통하여 피해를 키우도록 자초하게 만든 상대(B)의 습관으로 인하여 본인(A)의 자제력. 즉 저평가된 능력을 보상받기 위해 독립된 영역에서 미칠 수도 있는 민폐에 관하여 "너가 비정상이면 나도 그렇게 보이잖아."라고 책임 전가를 하는 거다. 쉽게 말해, 내부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외부에서는 없던 걸로 조작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원리로 '나는 (의도일 수 있는)실수를 반성하고 통제할 수 있는데 반해 너는 순전히 (실수일 수도 있는)의도이며 현재진행형 상태에 벗어난다'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본인이 따져도 된다고 확장하는 거다.[47] 여타 모든 형태의 범죄가 그렇듯 이를 누설할 변수를 통제하지 않아서 생기는 명예훼손은, 허위 가능성을 감당할 정도로 뒷담화로부터 얻는 이익이 없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이 섞인 그들만의 사실적시로 명예의 주체를 혼란스럽게 하는 타겟으로 선점될 확률을 높이는 어그로[48]가 결과적으로, 위 실제 범죄를 저지는 A와 사회 부적응자인 B의 예시와 같이, 범죄로 인하여 주변에 받게 될 보복보다는 양지에서 드러나게 되는 사회성 부족이 사적영역의 피해보다 크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으니 "너만 입 조심하면 공공영역으로 새어나갈 일이 없으니 실수인 셈치고 넘어가라."라며 배짱을 부릴 수 있으며 부적응자가 속한 영역을 공유하는 자신의 죄와 경합되는 상황을 예지하여 범죄보다는 불찰을 드러내는 죄질이 더 나쁘다고 판단하는 거다. 따라서, 개인이 예상하는 피해량이 '사적영역<공공영역'일 시, 이러한 책임 의식을 '범죄<사회성 부족'으로 조작하여 일어나기 힘든 가정을 통해 사적영역에서 만큼은 범죄를 축소하는 뻔뻔한 신조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49]

닫힌 사회에서는 사적영역의 수만큼 공공영역에서의 죄량을 추산할 수 있다. 외부로 공개된 만행을 제3자 봤을 시 그 여파를 가해자가 속한 개개인이 판단하기에 "가해자와 무관하다."라고 처신을 연기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되는 발설자로 인해 이를 함구하지 않아서 생긴 피해자 또한, 죄가 경합될 가능성을 내포하는 소신이 회색 지대에 있는 조직 내 방관자(=개인)와 가해자는 다르다고 항변할 기회를 박탈하도록 누설한 것에 따라, 관행을 외부로 퍼트려서 따라오는 실질적인 물의가 공공의 일원이 합심하여 축소하는 것보다 되려 확대를 시킴으로서 공공영역의 피해량과 가해자와 동참해 가해자(범죄)<피해자(괘씸죄)로 죄량이 역전되는 구조가 완성되며 사생활이 아닌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조차 공익적이었어도 상대방에게 사회 부적응이란 명목으로 힐난할 수 있는 구실이 마련된다.

범죄라고 하기엔 애매한, 설령 범죄여도 극단적이지 않은 사소한 것을 고자질하는 건에 대하여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주변에게 사실적시를 하자는 의견과 낙인으로 올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묵인하자는 의견의 찬반에 관하여 그 관점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본인 역시 주변에 공개하기 시원찮은 준 범죄 전적이 있다면 타인의 전과나 그러한 수준으로 명예를 훼손시키는 사실을 묵인해야 만이 자신의 책임도 묵인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건 알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범죄가 아닌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것들을 사회적 능력으로 알고 있었다면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고치도록 하자.

인간 혐오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혼자만의 정신 세계로 도피하거나 그럼에도 외로움에 절망감을 느껴 끝내 삶을 등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 혼자 죽기엔 억울하다며 묻지마식 테러를 감행하기도 한다. 이땐, 살아 남아도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사회 부적응자들을 물 먹인 정신적 테러는 씻겨나가기 어렵기에 가히 이적이나 다름이 없게 된다. 사회 부적응자의 인식을 바꾸겠다는 동기가 있어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러한 행위로 인식이 개선된다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

범죄가 사회 부적응자로부터 일어난다는 편견으로 인해 '사건 사고의 증가는 사회성 없는 세대 때문이기도 하다'라는 오해를 할 수가 있다. 이에 반박하자면, 범죄는 과거엔 더했고 단지 기술이 보급돼 암수로 덮기 힘들어진 점과, 부조리가 당연했던 것에 염증을 느끼는 태도를 겉보기에는 사회를 따르지 않는 부적응자의 불만으로 보이니 어떻게 떠넘기려다 사회성까지 엮게 된 점도 있다. 또한 논란의 범위에 들지 않는 기준이 나날이 빡빡해져감에 뭐만 하면 범죄라며 물타기하는 무분별한 악마화도 범죄율이 양적으로 증가했다는 착시에 영향을 주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과거 대비 인구 증가 및 과밀화에 따른 스트레스도 무시 못한다.

사회적 매개체는 실존 상태여야 한다. 범죄자를 곁에 둬도 괜찮은 사람의 경우, 실제 범죄를 옹호해서 사회적 거리가 가까운 지를 납득할 근거와는 상관 없이 안 좋게 평가될 수 있고 이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영화/드라마/만화 등 가상매체에 나오는 인물이 취향인 사람의 사회성도 같이 엮는 건 그 인물의 행적과는 무관한 타겟팅도 개입할 여지가 있기에 부적절하다. 어떤 배우가 악역이 어울린다고 해서 실제로도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으니 추후 매장 시 불순분자의 기질이라고 가중할 근거로서도 미흡하다. 범죄를 모방하는 사회 실험 역시 그 꾸민 범죄를 무시하고 지나간 사람에게도 실제 범죄였을 때에도 그럴 불순분자라며 비난을 가해야 하는가? 범죄를 옹호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딥페이크로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선동할 수 있다는 점을 보아, 본인이 목격하지 않았다면 사회성을 심사하는 과정 중 거짓이 껴있을 수 있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유리하기 때문에 사회성 없는 대응을 보여야 할 때[50] 이를 이상반응이라며 억지로 이유를 갖다 붙혀 사회 부적응자로 만들기도 한다. 사적영역에서 보여지는 행위를 평가 기준으로 본다면 위 예시와 같이 잠재적 범죄자로까지 평가가 악화될 수 있다.



[1] 지능이 낮아지는 것 역시 사회성을 낮춘다.[2] 집단 따돌림은 원인은 굉장히 다양해서 누구나 타깃이 되기가 쉽다. 고지능자 경우에도 잘난 척한다고 끼어주질 않거나 시험 공부를 방해하는 등, 안 좋은 짓까지 저지르게 된다.[3] 실제로 90년대 중반에 MBC에서 청소년 프로그램 <1318>이 방영되었을 때 남자 친구와 천문학 이야기만 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또래 시청자들은 지네들끼리 잘난 척한다고 거부감을 보였지만, 기성세대들은 흐뭇해 했다.[4] 지체 장애인과는 달리 외관상 정상인과는 다르다는 면죄부를 삼기가 애매하기 때문에 특정인에게 조롱에 대한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이는 종교를 가짐에 있어 그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면서 그 대상이 장애인보다 많기 때문에 정상인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 이상, 미쳐 보인다고 함부로 사회 부적응자로 치부하다간 본인도 손해이기에 부질없다고 포기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비슷하게는 치매를 사회 부적응으로 대우하려는 것처럼.[5] 우울증, 틱장애, PTSD사회공포증, 기면증 등.[6] 까다로운 입맛, 알레르기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별종으로 사회와 따로 논다고 오해할 수 있다. 잠꼬대도 무의식의 일부가 발현된 본심으로 생각할 시 제정신에서도 언젠가 했을 실언을 앞서 들은 것이라 판단하여 보복 대상에 넣을 수도 있다.[7] 전반적인 사회문화적 특성상 상대적으로 조용조용하고 남들과 엮이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살기에 괜찮은 나라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일본이다. 와 문화를 비롯해 메이와쿠, 다테마에 및 혼네와 관련해서 이질적인 측면들이 많으나 적어도 대한민국이나 구미권에서 소극적이고 사교성이 떨어져서 본의 아니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와 같은 일본의 관습들이 성격에 잘 맞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 기준 일본어는 학습 장벽이 낮은 언어이기 때문에 일찍이 본인의 성격을 진단해서 일본 진출을 꾀한다면 남은 일생을 비교적 만족스럽게 보낼 가능성이 커진다.[8] 한국 군필들은 강제로 조직생활을 20대 초기에 경험하게 되어서 이런 사람들도 어느 정도 바뀔 수밖에 없다.[9] 방어적 태도가 부족하거나 필요한 때에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불리냐면 바로 호구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지나치게 허용적으로만 대해도 사회성 형성에 좋지는 않다. 상대에게 이런 사람들은 초반엔 괜찮게 보일지 몰라도 결국 만만하니 뜯어먹거나 적당히 이용해 먹고 버리기 좋은 대상으로 낙인찍힐 뿐이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거나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큰 스트레스나 심한 심리적 상처를 입었을 때도 방어적 태도는 이를 이겨내기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하다.[10] 주로 학교폭력을 장시간 당했던 사람, 부모로부터 학대를 심하게 당하거나 인정을 잘 받지 못했던 사람, ADHD를 앓은 사람이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방어적 성격이 형성되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자존감 낮음, 사회성 전무, 눈치 부족인데 이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살았던 삶을 보면 타인이나 부모와의 교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경우가 많고, 여기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어적 성격이 형성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11] 이것은 내현적 자존감과도 관련이 있다. 외현적 자존감은 통제가 가능한 자존감이자 본인이 의식 가능한 자기 가치(예: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느끼는 것)에 대한 평가라 할 수 있다. 반대로 내현적 자존감은 자동적이고 통제가 불가능한 암묵적인 자존감으로 이게 낮다면 겉으로는 자기를 괜찮게 봐도 속으로는 스스로를 낮게, 부정적으로 본다는 말이 된다. 방어적 자존감은 외현적 자존감은 높으나 내현적 자존감은 낮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12] 이는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자기고양과 관련이 있으며, 방어적 성격이 가지는 자기고양은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즉 이 사람들 머릿속에는 '뭐가 어찌됐든 내가 잘났고, 잘못된 건 남이나 상황이다'라는 식이다.[13] 남들은 별로 문제가 아니라 여기는 사소한 부분도 자신에게는 큰 문제라 판단하는 편이다.[14] 타인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등의 언행.[15] 방어적 성격의 소유자의 언행은 이걸 보는 상대방에게는 눈치가 떨어지고, 사교성도 낮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 반성보다는 남탓과 변명 위주고 상대에게 벽을 치거나 피해의식, 때로는 배려심 없고 이기적이고 공격적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지만 상대 입장에서 보면 사회성은 낮은데 까탈스럽고 이기적이며 공격적이기까지 하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다름 아닌 '사회성 낮고 비호감'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16]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경우 방어적 성격과 태도가 매우 두드러지지만 자신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니 남들만 대환장한다. 이런 성격장애를 지니거나 여기까진 아니어도 스스로 문제라 인식 못하는 방어적 성격의 소유자들은 성격으로 인한 사회성 문제를 겪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거나 결국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와 만나게 된다.[17] 여기서 어려움이 생기는데, 이런 질문을 던지면 할 말이 많은 상대의 경우 일일이 사례를 늘어놓으며 답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자세한 대답을 내놓길 거부하고 알아서 찾고 고쳐보라는 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대답을 좀 해줄 법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전문 심리상담사라도 찾아가서 자문을 구해야 한다.[18] 의사소통과 사화관계에서 무작정 들어줬다가 손해 볼 상황에서는 방어적으로 나가기보다는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약간은 수용하는 시늉이라도 내면서, 자신은 그래도 상대와 무조건 뜻을 함께 할 수 없음을 이유와 함께 밝히는 게 좋다.[19] 그런 의미에서 상대가 자신에게 단순히 지적, 비판을 가하는 것이 아닌, 출처 미상의 모욕을 가할 경우 거기에 대한 분명한 응대도 필요하다. 상대가 선빵했다고 모욕으로 맞받아치면 태도가 가라앉긴커녕 더욱 격해질 우려가 있으므로(분노나 공격성이 드러날 때 공격적으로 응대하면 이게 더 강화된다) 뭣 때문에 화가 났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 말하면서도 자기를 존중해 달라는 표현도 분명히 해야 한다.[20] 과거에 자신이 당했던 분노를 상대에게 투영시켜 나오는 거부반응에 동질을 느껴 '내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여기서 흑화하면 자기 치유를 위한 투사적 동일시로 발전한다.[21] 하지만 상대가 의연토록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본인의 무관심을 '밝히는' 언행을 역공감해 달라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지적할 수 있다.[22] 이와 반대의 케이스가 있다면 어머니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친구의 어머니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정도로 친하고, 아버지는 개인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자신도 사회적 스킬을 부모님이 하는 것을 보며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다. 이런 아버지들 중에는 가정교육을 통해 자녀들한테 어떻게 해야 상대방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주지시키는 케이스도 있다.[23] 해하고 싶은 욕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아기에게 "어흥.", "이 노옴~."하면서 공포를 주입하는 개념이다.[24] 연예인 지망생만 가는게 아니다. 연기를 배우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는지 배우기도 한다.[25] 과거 학업 경쟁력이 심했던 90년대 후반과 10년대 초반에는 부모가 아이에 대한 교육에 대해 관심이 적거나 잘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공부만 시키는 경향 때문에 사회성이 다소 부족한 학생들이 많았었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사회성 공부보다 입시 위주로 공부를 시킨 탓에 다양한 사회 경험을 실천하는 게 불리할 정도로 생각을 짧게 만들어내는 데에 기여했다. 그때도 사회성 공부를 시키긴 했지만 대부분이 초등학교 고학년~고등학교로 이루어져 있는 교육의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데다 당시 집단주의 문화로 이루어진 사회정서의 영향을 받은 부모가 지배적이었다.[26] 이는 문제 없이 사회에 동화하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며 여기서 스스로 사회 부적응을 문제라고 아는 것부터가 과거 성교육 과정의 미비와 더불어, 가정에서도 쉬쉬하면서 발생하는 사회 지식의 의문은 유아 시기에 자생을 통해 해소하게 되므로 이로써 얻은 고정관념은 본인만 아는 집단 내 경험에서 정설로 박히며 이 또한 신생이 정한 인식의 재정과는 왜곡되어도 과거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 부정시키려 드는 일부 집단이 재정의한 멸칭에서 비롯된 사회 전체적 불신으로 확장하여 오는 반발 심리로 인하여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 면도 있다.[27] 인간에게는 예지력이 없지만 정상인(사실상 본인들 기준)이라면 이를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확률로 발생된 우연을 실수라면서 이러한 이유로 비정상인이라 믿는 미성숙 상태에서 확률을 조정할 능력이 없는 자신을 사회 부적응자로 받아들이고 이내 정신적 무기력으로 탈진하여 자아를 조작당한다. 이를 성인으로 비유하면, 맥락 없는 성공팔이로 지적 허영심을 과장시킨 유사 심리학에 의한 책장만이 '나는 남들과는 다를 것이다'라며 본인은 성숙하기에 성공 확률이 높다는 근자감에 빠진 우매한 청개구리들에게 넘겨지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28] 원래 사람은 자기에게 맞장구쳐주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느낀다.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처럼 느끼기 때문에 사회생활할 때 적절한 타이밍에서 하기 싫어도 다른 사람에게 맞장구쳐 주는 게 필요한 이유다. 대신 이것도 주변 반응을 잘 봐야 한다. 누군가가 유머를 시전하는 상황에서 다들 재미없어하는데 한 명만 재미있게 반응할 경우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그리고 맞장구쳐준다고 그걸 받은 당사자조차 좋게 반응할 거라는 보장이 늘 100%는 아니다. 즉 맞장구도 치기 전에 주변 사람들 반응을 먼저 봐가면서 쳐 줘야 한다.[29] 어떻게 조롱을 해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도 그 조롱을 경험했다는 전제가 뒤따라야 성립할 수 있다.[30] 단, 인터넷 커뮤니티SNS에서는 여러가지 문제 때문에 선입견이 심해진다.[31] 인맥을 온정적으로 대할 줄만 안다면 말년에 사회적 결과물이 죄다 털릴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스펙 및 자본 관리를 하되 관계 발전에 지장을 주는 협업자한테 피해를 보기 전에 멀리하는 처세술도 요구된다.[32] 해외 결격 사유가 있는지를 보거나, 남성일 시 병역 기간을 대조하거나 급수를 따져 사고치지 않고 집단에 잘 적응하는지를 판단, 레퍼런스의 상위 개념인 신상털이를 통해 퇴폐 기질을 가졌는지를 우회하여 행실의 불확실로서 감당해내는 해악보다는 무의식의 특성을 이용해 과정을 대입 및 축소하는 등 온갖 편법이 난무하며 간혹 너무 지나쳐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33] 잘 와닿게 비유하면, 기업 면접에서 우리가 원하는 조직의 방향성과는 다른 MBTI를 지녔다는 이유로 탈락시킨다고 생각해 보자.[34] 사회성 좋은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여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회성이 부족해졌다'는 아우라를 감지할 수 있다는 촉은 오컬트의 영역이며 실제로 범죄라 함은, 사회 내 위험을 촉발할 가능성을 분리하기 위해 묵시적으로 공공선을 모방하여 체제 유지에 활용될 자료로 특정하기 위한 대용일 뿐이지 그 자체로 고유의 사회성이 전체 기준의 경계 요인으로 포함하여서는 안 되며 이를 바라보는 가치관에 따라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고 낙인당해도 타 영역에서조차 적응할 수 없다고도 못 한다. 범죄자의 대부분이 문신을 한다고 해서 문신한 사람 전부가 범죄자가 아니듯, 상대에게 문신이 있다고 범죄자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할 근거가 없으며 성범죄자가 범행을 저지르기 이전 음란물을 봤다고 음란물 보는 사람 전부를 싸잡아서 예비 성범죄자로 만들거나 게임, 커뮤니티에 과몰입하여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다고 취미로 하는 사람까지 예비 사회 부적응자로 경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외에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불러다 '짜증나니까 빨리 고치는 게 신상(사회성)에 좋을 거다'같은 무책임한 조언은 반발심을 불러오기 쉬워서 역효과를 낸다.[35] 자신이 속해있는 영역 내 부적응자도 타 영역에서의 다수 또한 나처럼 같은 부적응자로 평가할 것임을 눈 앞에 있은 현상을 빗대어 사실로 확증한다. 이는 관찰자가 속한 영역 내 의견도 같은 원리로서 논리적 오류를 없앤다.[36] 단,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범위가 매우 방대해진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거나 길바닥에 침을 뱉는 공중도덕 위반은 개인에게는 사소하겠지만 처신에 민감한 공인에게는 후폭풍 수준으로 평판에 악영향이 가해진다. 온라인이라면 나락, 몰이 같은 부가적 제재도 따라오며 일면식으로도 연좌제가 적용된다. 인간의 상상력은 없던 논란도 만들어 낼 수 있다.[37] 여기선 누구를 더 사회 부적응자로 판단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한 대라도 더 쳐서 응수하는 것은 사회적 평가와 관련이 없는 행위로 볼지와, 아무리 피해자라도 법을 어긴 이상 잘 한 건 없으니 반사회적으로 볼지에 따른 해석 차이로 나뉘기 때문이다. 그나마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사회적 자살 수준으로 평가가 악화되진 않는다.[38] 이는 사법불신이 팽배할수록 더욱 노골적이다. 떼법도 한 예시.[39] 실제 이 점을 이용한 허위신고로 인해 범죄자가 될 뻔한 사례도 있다.[40] 처벌 가능성이 낮은 응급처치(예: 심폐소생술로 인한 신체 접촉 및 상해)도 누명만 씌여도 잠재적 가해자라는 인식이 박히기 때문에 평판에 치명적이다.[41]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요즘 애들이 싸가지가 없어졌다."라는 논리로 폭행을 용인하여 이를 면책하기로 합의한다면 언제든지 이같은 사회적 평판벌이가 재림할 수도 있다.[42] 일부 원조단체의 탈세 릴레이로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빈곤 포르노의 트렌드화 역시 정말로 도움받아야 할 계층을 향해 본인의 주제를 받아들이라는 현실주의 쪽으로 그 폭력성을 우회하도록 혐오를 조장하였고 결과적으로 남을 돕는 것에 대한 회의가 만연해졌다.[43] 개인의 행위가 공동체 및 사회로 퍼질 가능성을 지니는 모든 영역. 민감군에게는 사적영역과 통일시키기도 한다.[44] 완전히 독립된 개인 공간. 인식에 따라 육체 외 온전히 본인에게 정신을 쏟기 위해 전파를 끊는 것까지도 포함될 수 있고, 외부인과 독립하기 위한 체계(가정, 파벌, 동아리)에서부터 타인의 사적영역을 통틀기까지 본인의 영역으로 넓히는 것을 사적영역으로 보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작위적이다. 편의상 공공영역과 마찬가지로 학술적인 의미를 변형함.[45] 마약, 매춘, 폭행, (동물)학대, 모욕, 손괴, 흉기 소지도 포함된다.[46] 여기에 따지자면, 본인이 상대의 사회성을 개선시키기 위하여 납득 가능한 교육을 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사회성 부족에 대한 지적을 나쁘게 받아들일지도 모를 일이라, 애초에 '사회성은 기를 수가 없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야하는 능력'이라 스스로가 정의해 개선할 노력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심하면 사회성을 친화력도 아닌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 다수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47] 전과와 사회 부적응의 교집합을 걸어 보자면, 일반인과 비교해 사회 적격 기준이 더욱 엄해진다는 점이 있다. 여기서 전과는 위와 같이 말을 안 하면 되는데 반해 사회 부적응자는 행동거지 전체를 바꿔야 한다. 한번 낙인찍히면 불변이라는 걸 A도 알고 있을 테니 기억하는 이상 번복하면 가중사유가 되며 이 과정에서 실수로 인정되는 범위도 일반인 대비 확장되니 전과보다 개개인에게 피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걸어다니는 범죄경력자료에 준하는 편향에 사로잡히기도 더 쉬워진다.[48] 여기서 말하는 건 에티켓을 어기는 수준의 가벼운 일탈로서 식사할 때 흘리고 먹는다던가와 같이, 알아서 치운다면 비매너라 하기도 애매한 상황들 모두 상대에게는 선을 넘는 행위라고 과장해 해석을 때린다. 그나마 전과가 있는 사람은 국가가 공인한 비규범적 인간으로서 본인을 해칠 수 있을 가능성이 사회 부적응자보다 높다고 여기기에 알아서 사리지만, 그게 아니라면 본인이 처신하기 편할 정도로 자업자득인 이미지로 꽂힌 쪽에게 별것 아닌 걸로도 따져도 찍소리도 못할 것이라는 만만한 이유로 인해 사실보다 더 중하게 응수받기도 쉽다.[49] 이 때문에, 가정폭력이 우리 말고 다 벌어지는 현상이라며 범죄를 축소하는 동시에 실수를 파고 드는 가스라이팅을 문화라고 세뇌당한 상태에서 공공영역을 접한 이후 그동안 사적영역(=가족) 내 당연했던 처사가 실은 범죄였다는 충격에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50] 예를 들어, 목소리를 수집하여 보이스 피싱으로 악용될 수 있으니 대기하는 것을 상대는 이를 보고 전화 공포증인가 하여 사회성 부족으로 판단하는 것. 여기선 맘만 먹으면 의사소통에 문제 없이 대응할 수 있음에도 고의로 무시하는 건 사회성과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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