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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21:42:39

탈북/과정과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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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탈북이 어려운 이유
2.1. 사방이 막힌 지리적 환경2.2. 북한 붕괴를 원치 않는 중국러시아2.3. 고도화된 정보 통제와 상호감시2.4. 가혹한 처벌과 연좌제
3. 탈북 경로
3.1. 북한 내륙 이동과 도강
3.1.1. 코로나19 봉쇄 이후
3.2. 중국3.3. 제3국
3.3.1. 몽골 경유3.3.2. 태국 경유3.3.3. 기타 동남아 국가
3.4. 해외 주재 중 탈북3.5. 군사분계선(휴전선) 전면돌파
3.5.1. 관련 사례
3.6. 북방한계선(NLL) 해상 탈북
3.6.1. 관련 사례
3.7. 전투기
4. 대한민국 입국5. 여담6. 탈북을 지원하는 단체 및 조직

[clearfix]

1. 개요

북한이탈주민의 구체적인 탈북 과정과 관련 사례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이다. 2023년까지 대한민국으로 입국한 누적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34,078명이고 탈북했지만 중국에 숨어있는 탈북민은 10만~25만 명으로 추산되며, 알려지지 않은 실패한 탈북까지 합하면 지금까지 시도된 탈북 횟수는 훨씬 더 많다. 이 문서는 언론이나 방송 등에서 공개된 정보를 기반으로 서술된 것이며, 수십 만건에 달하는 모든 탈북 과정과 경험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확실한 사실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인해 북한을 탈출하는 난이도는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2. 탈북이 어려운 이유

2.1. 사방이 막힌 지리적 환경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한정된 통행로
큰 강 두 개가 국경을 차단

수심은 낮지만 큰 조수간만으로 조류가 빠름
파일:북한전체_위성지도.png
수심이 깊고 풍랑이 심함

세계 최대의 지뢰 매설지대
남북 양측 수십 만 병력 밀집

한반도는 3면이 바다이고 북부는 험한 산악지형으로 이뤄져있어 지리적으로 수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외부 세력이 침략하기 힘든 천혜의 요새였다. 하지만 반대로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힘든 감옥과 같은 환경이다. 3면이 육상 국경이었던 데다 허가를 받고 서독으로 넘어가는 방법도 존재했던 동독이나, 삼면이 모두 바다는 아니었던 베트남보다 북한 체제의 쇄국정책이 자연적으로 훨씬 철두철미하게 되었다.

2.2. 북한 붕괴를 원치 않는 중국러시아

중국러시아는 대한민국과 국경을 맞닿는 정세의 불안정을 원하지 않아서 북한을 비호하고 있으므로 탈북민을 단속하여 북송시켜버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로 탈북해도 북송되지 않는다면 당장 북중국경을 지키는 북한 국경경비대부터 탈북해서 유지되지 않을 것이며, 북한 내륙으로 소문이 퍼져 탈북민이 늘어나고 부릴 노예가 없어진 김씨 일가와 북한 체제는 쉽게 붕괴했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 붕괴로 인해 대규모 난민 사태가 촉발하여 동북 3성의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중국북한이탈주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경제적 이유로 탈북한 '불법 입국자'라 정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에 숨어있는 탈북민을 모두 체포해서 북송시키고 있으며 탈북 방지와 북한 체제 유지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탈북민을 북한으로 돌려보냈을 때 박해를 받을 것이라 여길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고, 이 때문에 당사자들이 돌아가기를 원치 않으며, 이들을 받아주겠다는 제3국(한국)이 분명히 있는 상태인데도 북송을 고집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북한과 맞닿아있는 극동지역은 애초에 탈북을 시도하기에는 지리적으로 불리한 지역이어서 러시아를 통한 탈북 시도는 비교적 많지 않다. 러시아 정부도 변두리 지역인 극동에서 일어나는 탈북에는 크게 관심을 쓰지는 않고 있으며 모스크바 주재 유엔난민기구(UNHCR)가 존재하고 있어 이 사무소를 통해 정식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절차를 거치고 안전하게 대한민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러전으로 인해 북러관계가 밀접해짐에 따라 북한의 요청에 의해 러시아 내 탈북민들이 북송되고 있으며, 2023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탈북하려던 북한 무역대표부의 모자가 러시아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북송되는 경우도 생겼다.

2.3. 고도화된 정보 통제와 상호감시

어려서부터 수령들에 대해 알아야 하였고 신격화된 수령에 대한 역사와 찬가를 부르며 자라났다. 우리는 이기는 것만 보아왔다. 6.25의 전쟁은 미국의 부추김을 받아 남조선 괴뢰들이 일으킨 침략전쟁이며 그 전쟁에서도 조선은 세계강대국이라고 하는 침략자 미제와 허울만 있는 유엔을 도용하여 참전한 제국주의 반동들을 이겼으며 모든 면에서 조선은 무조건 이긴다. 지는 것은 절대로 볼 수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조선은 정의의 편이라고 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내가 사는 나라가 가장 정의로운 나라라고 믿고 있으며 자존감 또한 하늘을 찔렀다.
어떤 물건을 평가하려면 그와 유사한 물건이 있어야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하나의 물건만 보고는 결론을 내릴 수 없으며 그것이 제일인가 하는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철저히 통제되고 격패된 사회 속에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놓고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 구대명, 《거품 2》,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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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통제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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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탈북이 어렵더라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이 기회를 잘 탐지하면 탈출할 방법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은 어릴 적부터 세상에 부럼없어라 같은 노래를 배우며 자신들의 나라가 지상락원이라고 세뇌 교육을 받는다. 또한 조선로동당은 주기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활동을 펼쳐 외부세계에 대해 나쁜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자기가 살고 있는 북한이 힘들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가스라이팅한다. 실제로 조선중앙텔레비죤국제소식 보도에는 항상 나쁘고 암울한 해외 뉴스만 짜집기해 보도한다. 탈북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 인민들은 정말로 전세계 사람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교육 수준이 높고 북한에서 부유하게 살던 엘리트 탈북민들도 살면서 어렴풋이 모순을 느끼기만 할뿐, 북한 체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며 해외에 나와 자유로운 생활과 인터넷을 접하기 시작해서야 진실을 알게 된다. 북한이 망하기 전까지 인터넷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처음부터 탈북이라는 선택지를 떠올릴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북한에도 한국 드라마가 유행하며 북한 주민들도 북한 체제가 잘못됐다는 것을 안다고 증언하는 북한이탈주민이 많다. 북한 주민에게 한국 드라마는 재미있고 한국이 잘 산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게 해주지만 자신들이 살고 있는 북한 체제의 모순과 김씨 일가의 진실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한국 드라마는 재밌게 보면서도 당과 국가에 대한 기존의 충성심은 흔들리지 않는 이중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탈북민들의 주장은 '생존자 편향의 오류'일 수 있는데, 탈북민 둘중 1명은 함경북도 출신이고 이 지역은 중국과 인접해 무역과 밀수로 외부 문물을 접하기가 쉬운 곳이어서 북한 주민 전체를 대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탈북민 자체가 북한 주민 2,500만 명 중 누적 3만 명밖에 안될 정도로 희귀한 케이스이고, 탈북을 실행할 정도면 이미 북한에 있을 때부터 드라마를 즐겨보고 북한 체제에 반감을 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륙쪽 깊숙히 박혀있는 산골 농촌에 사는 북한 인구의 상당수는 한국 드라마는 커녕 '한국'이 남조선인 것도 모를 정도이며 조선로동당의 선전과 강연을 그대로 믿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 정보가 극단적으로 차단된 환경에서 북한 주민들은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소달구지가 돌아다니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농촌에서 유일한 정보 소스는 당의 선전 뿐이니 믿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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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 감시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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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보위부 출신 탈북민 이철은의 증언에 따르면, 보위원 한 명이 주민 700~1,200명을 관할하고 있으며 휘하에 30~40명의 정보원을 둔다고 한다. 즉, 북한 주민 30명 중 한 명은 보위부 스파이라는 뜻이고 군대, 직장, 학교 가릴 것 없이 개인이 속해있는 모든 집단, 조직에는 동료들의 정황을 상시 보고하는 보위부 정보원이 존재한다. '주민 감시의 1선'이라고 불리는 인민반장 또한 20~40 세대로 이루어진 인민반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에 대해 담당 안전원에게 보고해야 한다. 인민반장은 각 세대의 경제상황, 방문하는 친척이나 손님, 심지어 숟가락 갯수까지 알 정도로 각 가정에 대해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극악의 감시 환경 속에서 자신의 탈북 계획을 타인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도움을 받거나 탈북에 필요한 정보를 찾기도 쉽지 않다. 모두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상황에서 평범하게 생활하는 척하면서 혼자서 혹은 정말 믿을 만한 극소수의 가족과 몰래 소통하여 극비리에 탈북을 준비해야 한다. 만약 가족 중에 탈북한 사람이 있다면 그 감시는 몇배 더 심해진다. 탈북을 계획대로 완벽히 실행해도 인민반장과 이웃들이 하루도 안되어 알아챌 것이기 때문에 추적이 시작될 때까지 시간도 많이 벌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북한은 전력사정으로 인해 CCTV가 희귀하고 전산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아 실시간으로 추적이 불가능하고, 사람이 사람을 감시하는 시스템이니 허점이 많아 일단 한번 멀리 떠나면 어디로 갔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2.4. 가혹한 처벌과 연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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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범수용소/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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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탈북이 많았던 2000년대까지는 도강을 하다 적발되거나 중국에서 북송당해도 사정을 참작하여 풀려나거나 로동단련대에서 가벼운 형만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점차 한국행을 위한 탈북이 많아지면서 처벌 수위가 강해졌다. 함경도 지역에서 탈북이 많다보니 함경북도에 위치한 평범한 로동교화소였던 전거리교화소가 한국의 가족과 통화하던 주민과 그를 주선하던 브로커, 북송된 탈북민이 대거 수용되면서 수감생활이 가혹해졌고 그로 인한 악명이 자자해졌다. 그래서 형기가 있는 노동교화형이라도 반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데 전거리교화소 출신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감자 넷 중 하나는 옥사하기 때문이다. 탈북 브로커나 북송된 탈북민 중 한국행 시도를 했거나 기독교와의 접촉 사실이 명확한 사람은 정치범으로 간주되어 정치범수용소행이 확정이다. 코로나19 이후로 처벌이 가혹해져 중국에서 살다가 북송된 탈북자들에게도 최소 5년, 대부분 7~10년의 로동교화형에 처해지고 있다.# 로동교화소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정도의 형기는 사실상 사형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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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좌제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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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탈북하면 북한에 남아있는 나머지 가족들은 '월남자 가족'이라는 가장 최하층 출신성분으로 강등되며, 이 이력은 대물림되어 대대손손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고 살아야 한다. 연좌제가 적용되더라도 탈북민이 수만~수십 만 명이니 가족들이 직접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대학 입학이나 입당은 평생 꿈도 꾸지 못하며 군대도 갈 수 없다.[1] 인민반장과 보위지도원, 안전원이 불시에 집을 방문해 확인하며, 이웃에게까지 항상 감시를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탈북한 가족과 연락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북중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산골로 추방되기도 한다.

해외에 나와있는 북한인들이 상대적으로 탈북하기 쉬움에도 탈북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해외로 나오려면 기본적으로 기혼자이고 가족이 있어야 한다. 외교관의 경우, 자식 한 명은 반드시 평양에 두고 나와야 하는데 인질로 삼아 탈북을 시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태영호김정은의 변덕으로 두 아들 모두 영국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는데, 아내인 오혜선이 다시는 없을 기회라고 설득하여 자식을 모두 데리고 탈북한 경우이다. 해외로 파견된 북한 사람들은 출신 성분이 좋고 충성심이 높은 평양 출신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탈북할 경우, 평양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모든 재산과 기반을 몰수당하고 오지로 추방이 확정적이다. 평생을 평양에서 도시 인프라를 누려온 가족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오지에서 남은 평생을 살아야 한다.

3. 탈북 경로

3.1. 북한 내륙 이동과 도강

주민의 이동을 통제하는 보위부의 '10호 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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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전·이동의 자유 침해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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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려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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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은 탈북은 커녕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평양 시민의 경우 평양시민증만 있으면 북한 내륙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지만 북중국경 지역은 예외에 해당한다. 내륙 지역 주민들은 북중국경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부터 힘들다. 려행증을 받지 못하면 길목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검문 초소를 통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려행증을 발급 받으면 자신의 행선지가 노출되니 탈북하려고 길을 떠날 때에는 려행증이 오히려 독이 될 수가 있다.

내륙 지역 주민들의 입장에서 자신이 태어나서 평생 살아온 고장을 떠나 처음 가보는 북중국경 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강을 넘어 탈북할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다.[2] 보위부 스파이의 존재로 인해 탈북에 대한 정보를 물어볼 수도, 공유할 수도 없다. 애초에 황해도, 강원도 같은 북한 내륙 지역은 북중국경에서 주로 활동하는 브로커들이 찾아가기도 힘든 지방이어서 탈북에 관한 정보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통일부 북한이탈주민 재북 출신지역별 현황에 따르면, 황해도와 강원도 출신 탈북민은 전체 탈북민 중 1~2%에 지나지 않는다. 내륙 지역일수록 탈북은 엄두도 못내 시도 자체가 없다는 의미이다.
코로나19 이전 압록강변 경비가 심하지 않았던 2000년대 초중반의 두만강 밀수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브로커
, 대북송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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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양강도는 중국을 통해 외부 문물을 접하기가 쉽고 두만강을 통한 밀수가 일상화되어 있으며 무산군, 혜산시, 회령시, 온성군 같은 지역은 바로 옆에 두만강을 끼고 있어 탈북하지 않은 집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탈북이 일어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내륙 지방과 비교해 함경도, 양강도 주민들은 보고 들은게 많으니 '탈북'이라는 행위에 거부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들의 약 75%가 북중국경을 접한 함경북도양강도 지역 출신이다. 함경도 출신 탈북민이 많으니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한 대북송금도 활발하고, 이를 중개하는 브로커업도 성행한다. 중국 휴대전화를 사용해 대북송금을 중개하는 브로커들은 밀수와도 관련이 있고 그 밀수 루트를 통해 도강도 일어난다. 밀수와 관련이 없는 사람도 수소문하면 브로커 찾기 어렵지 않으며 같은 도내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유로 국경지역까지 가기도 쉽다. 평안북도자강도압록강 하류를 끼고 있으나 압록강 하류는 강폭이 넓어 맨 몸으로 도강이 불가능하고 자강도는 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군수공업지대이기 때문에 통행이 훨씬 엄격해 이 지역 출신 탈북민의 비율도 3%에 지나지 않는다.#

도강은 강폭이 좁고 유량이 적은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에서 주로 일어나는데 밀수가 이뤄지는 루트로 가면 천(川)에 가까울 정도로 수심이 낮고 비용도 저렴하나 국경경비대도 당연히 이 사실을 알기에 감시초소가 집중되어 있어 위험하다. 무작정 도강을 시도하면 경계 근무를 서던 국경경비대의 총에 맞을 수 있으니 브로커는 도강 예정 시간에 근무를 서는 국경경비대를 매수해[3] 도강을 하는게 가장 안전하게 넘는 방법이다. 국경경비대가 많이 없어 경계가 허술한 곳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탈북민의 도강 경험담을 보면 거의 머리만 내놓고 강을 건넜다는 증언이 많다. 중간에 일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해당 지역 보위부를 매수하기도 한다.[4] 브로커는 북한에만 있는게 아니라 중국측에도 브로커가 대기하고 있어 탈북자들이 강을 넘으면 이들을 인계한다. 브로커들은 보위부의 도청을 우려해 미리 정한 암호를 사용해 통화한다. 만약 북송된 탈북민이 보위부의 심문을 받고 브로커의 정보를 불면 브로커도 살기 위해 도강해서 탈북해야 한다.

도강을 해도 끝난게 아니라 중국쪽에도 높은 둑과 철조망이 쳐져 있어 이걸 넘는 것도 문제다. 중국쪽은 CCTV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국경쪽 도로에는 중국 공안의 검문소[5]도 있기 때문에 활보하고 다니면 중국 국경경비대에 체포된다. 최대한 빨리 북중국경에서 멀어져야 하기 때문에 산으로 들어가 중국 내륙쪽 마을을 찾거나 중국측 브로커 있다면 브로커가 준비한 차량을 타고 은신처로 이동한다.

3.1.1. 코로나19 봉쇄 이후

파일:2019년_회령_철조망.webp
▲ 2019년 3월 회령 인근 국경
[ 2022년 4월 위성사진 펼치기 · 접기 ]
파일:2022년_회령_철조망.webp
코로나 봉쇄 전후 함경북도 회령시의 국경. 감시초소가 추가로 설치되고 완충지대가 새로 생겨난 것을 볼 수 있다.[출처]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김정은은 방역을 명분으로 기존보다 주민들의 이동 통제를 더 엄격히 하면서 군대를 동원해 북중국경 전역에 2-3중에 달하는 콘크리트 담벽과 철조망을 새로 설치했으며 감시초소마다 CCTV도 설치했다. 호수와 군사시설이 없는 곳은 모조리 철조망이 쳐졌다. # 압록강, 두만강, 백두산 기슭은 기본이고 기나긴 서해안, 동해안마저 모조리 철조망이 새로 생겼다. 철조망 사이에도 완충지대를 설정하여 강에 접근조차 힘들게 되었다. 2023년 말 기준으로, 북중국경의 북한 쪽에는 이중 철책이 처져 있다. 감시초소 또한 저 두 개의 철책에 각각 있는 상황이다. # 국경경비대 또한 뇌물을 받고 사람을 넘겨주는 것이 발각될 시 총살형에 처해진다. 국경 지역에서 활동하던 브로커들도 도강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이상 탈북 브로커로 돈을 벌 수 없게 되었고 보위부의 집중 단속도 벌어져 브로커의 90%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후 도강은 거의 불가능해진 상태이고, 2020년대에 한국으로 입국하는 탈북민들은 코로나 사태 발생 전 중국으로 넘어갔거나 해외로 파견되어 해외에 체류해있던 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알려진 바로는 2023년에는 오직 2명만이 국경경비대와 직접 거래해 한국 돈으로 따지면 2천만 원을 주고 중국으로 넘어와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3.2. 중국

파일:BBC 로고.svg
'공화국 역사상 초유의 일'... 죄수와 간수의 동반 탈북 사건
BBC News 코리아
(2020년 2월 21일)

중국 동북 3성에는 탈북민으로 위장한 보위부 스파이도 활동하고 있다. 북송된 탈북민이 보위부에게 포섭되어 각종 훈련을 받고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중국 내 탈북민들을 신고하는 것이다. 연변 일대에는 한국으로 보내주겠다며 돈만 챙기고 공안에 신고해서 북송시키는 브로커로 위장한 보위부 스파이인 '강은아'라는 여자가 탈북 브로커들 사이에서 악명이 자자하다. 한국 국적을 가진 탈북민 출신 브로커들도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보위부의 함정에 걸려들어 북한으로 납치되는 경우도 있다.

기독교, 그 중에서 개신교 선교사가 탈북을 이끄는 경우, 브로커 비용을 받지 않는 대신 2~3개월간 성경 공부를 시킨다. 심지어 1년 넘게 숙소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성경 공부를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는 중국에서 탈북민을 공부시켜 다시 북한으로 보내 선교한다는 황당한 계획을 준비하는 선교사도 있었다. 과거에는 중국의 아지트에서 탈북민들을 모아놓고 공부를 시켰으나, 이들이 공안의 표적이 되어 단체 북송되는 경우가 빈번해져서 이제는 교육 장소를 동남아로 옮겼다. 북송된 탈북민은 보위부 조사 과정에서 기독교와 접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100% 정치범수용소행이다. 왜 성경 공부로 시간을 끌어서 잡히게 만드냐는 비판도 있지만 선교사의 입장에서 북한 사역을 한다는 명목으로 종교계로부터 기부금을 지원받아 탈북비용을 충당하기 때문에 일정 성과가 있어야 하며, 수천만 원을 들여 탈북민을 구출했는데 한국으로 온 뒤 모른 채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어느 선교회가 성경 공부를 시키기 위해 탈북민과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어 보도가 된 적도 있다. 어찌됐든 기독교 선교사들은 중국 내 탈북민 구출에 큰 축임은 부정할 수 없으며, 숨어사는 탈북민의 입장에서도 한국으로 보내준다는데 기독교던 뭐던 가릴 처지가 아니다. 중국 내 감시가 심해지면서 탈북 비용이 크게 증가해 예산상 구출할 수 있는 건 몇명 뿐인데,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탈북민만 수백 명이라고 한다.

2020년 코로나19 봉쇄 이후, 그 이전부터 삼엄해진 국경 감시 때문에 중국 루트가 거의 막혀간다는 복수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국경의 감시가 전자 장비까지 동원될 정도로 고도화되고, 북한도 탈북을 좌시하지 않으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하고자 중국 정부의 이동 통제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2022년 중국의 코로나 거리두기 정책이 극심해졌을 때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출연진들이 더욱 탈북이 어려워진 이유를 설명했는데, 과거부터 중국 대륙을 장거리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와 기차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왔으나, 지금은 변두리 기차역에서조차 안면인식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현금 없이 위챗으로 결제를 해야 하기에 개인정보 및 백신패스 관련 정책들이 큰 난관이 된다고 한다. 탈북자들은 모두 신원 미상으로 표기되므로, 한 성에서 또다른 성으로 이동[15]을 하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상당히 어려워지게 된 것. 그렇기 때문에 중국 내륙 이동을 검문소를 피해 차량으로 하게 되면서 탈북 비용이 증가했다.

중국에서의 탈북 과정은 워낙 다양한 사례가 존재해 모든 사람의 삶이 다르듯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도강한 후 중국을 구경할 새도 없이 브로커가 이끄는 대로 일주일 동안 버스와 기차만 타면서 곧바로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몇번에 걸친 북송과 수년간의 지옥같은 교화소 생활을 겪고도 다시 탈북 후 한국에 입국하는 사례도 있다. 탈북민마다 탈북 과정 중 겪었던 조선족에 대한 인식도 다른데, 한송이처럼 탈북 여성을 인신매매로 팔아먹는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탈북 과정 중 조선족 브로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국어를 모르는 탈북민이 조선족의 도움이 없었으면 탈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다른 탈북민의 반론도 존재한다. 한 마디로 중국에서의 탈북 과정은 케바케이다.

3.2.1. 대한민국 직행

파일:2002일본영사관 진입.jpg
▲ 2002년 김한미 일가족
일본 총영사관 진입 사건
[16]
2000년대 초반에는 중국에 들어온 탈북민이 주중 대한민국 대사관에 현지 경비를 뚫고 들어가 대사관에서 신변보장을 받는 방법을 썼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대사관 주변에 공안의 경비가 강화되자, 2002년 3월에 베이징에 있는 스페인대사관에 탈북민 25명이 진입에 성공하면서 제3국 대사관과 외국인 국제학교로 집단 돌진하는 방법이 유행했다. 이러한 탈북 시도가 국제적인 이슈가 되자 중국 공안에서 모든 대사관 정문의 경비를 강화하면서 막무가내로 뚫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해졌다. 담을 넘어서 들어가는 것도 전기 철조망이 쳐져있어서 불가능하다. 2002년 중국 선양 주재 일본 총영사관은 아예 공안이 대사관 안으로 들어와 진입에 성공한 북한이탈주민을 체포하는 것을 방기하다 국제적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은 바가 있다.

비행기와 배를 이용한 대한민국 직행은 중국 대륙과 동남아를 건너야 하는 다른 길에 비하면 거리가 짧고 고생하지 않지만, 출입국심사나 보안 검사 중에 걸리면 도망칠 길도 없이 바로 체포되어 북송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성이 큰 루트다. 이 경우 탈북민의 한국행 의도가 명백하므로 관리소행이 확실하다. 그래서 이 방법을 선택한 탈북민들은 배와 비행기가 출발할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17] 그마저도 이 방법은 중국이 전산화가 되기 전인 2000년대까지의 이야기이고 전자여권으로 교체가 완료된 2010년대부터는 아예 불가능해진 방법이다.

브로커를 통해 위조 여권을 구하거나 사망 신고를 하지 않은 사망자의 호적을 사서 위명여권을 발급받은 뒤, 중국인이 무비자로 입국 가능한 제주도에 중국인 관광객으로 입국해 제주국제공항 출입국사무소나 제주지방경찰청 등지에서 자수하는 방법도 있다. 제일 비싸지만 안전한 방법이다.

브로커가 여객항이나 공항의 출입국심사관을 매수한 뒤, 안전하게 출입국심사를 통과하고 밀입국하는 방법도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탈북민은 다른 밀입국 시도자와 비교하면 뒤탈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을 위조여권으로 통과시키면 인천공항에서 다 걸리고 중국으로 송환되면서 도장을 찍어준 출입국 관리 직원도 엄벌을 받을 확률이 높은데 탈북민은 위조여권으로 밀입국해도 한국 정부에서 문제 제기를 하지도 않고 사용된 위조여권은 회수되어 탈북민이 중국으로 다시 올 일도 없기 때문에 안전하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완전범죄가 될 수 있다.

3.3. 제3국

3.3.1. 몽골 경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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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도 북한이탈주민들을 인도적으로 대우하는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탈북민들을 대한민국으로 송환한다. 몽골은 2000년대 초반 개척된 초창기 1세대 탈북 루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몽골로 넘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중국 내몽골(네이멍구)부터가 또 다시 국경지역이기 때문에 뻥 뚫린 내몽골 사막에서 중국 국경경비대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중국 철조망에 다가가기도 쉽지 않다. 중국 철조망을 넘었더라도 탈북민 앞에 보이는 건 고비 사막으로, 매우 혹독하기 때문에 여기서 길을 잃어 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태국 루트와는 다르게 여기는 길을 인도하는 브로커도 없고 탈북민들은 내려두고 알아서 사막을 넘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탈북민들은 몽골로 넘어가기만 하면 끝이지만 브로커들은 다시 중국쪽으로 밀입국해야 하기 때문에 체포되면 몇년의 징역형을 살아야 하는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 철조망을 여러 개 넘고 사막을 횡단해 몽골 국경수비대에 체포되면 탈북 성공이지만 광활한 사막에서 무사히 발견되는 것 자체가 생존의 문제다. 이때는 순찰로로 쓰이는 차도를 찾는 게 핵심이라고 한다. 순찰로만 찾으면 언젠가 국경을 순찰하는 차량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사히 주몽골 한국대사관으로 넘겨진 북한이탈주민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보호 하에 울란바토르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사막을 건너야 하는 몽골 루트의 위험성은 영화 크로싱경계에서 묘사된다.

3.3.2. 태국 경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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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콩강 일대
2019년 혜산시에서 탈북한 5인 가족이 중국동남아를 거쳐 한국으로 오는 과정 (비욘드 유토피아)

북한이탈주민 평균 70%가 태국 루트를 통해 대한민국으로 입국한다. 중국 대륙을 횡단하여 윈난성 쿤밍(곤명)에 도착하면 이제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로 밀입국한 뒤 차를 타고 내륙쪽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다가 내려서 직접 밀림을 헤쳐서 메콩강으로 가야 한다. 태국,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사이에 있는 이 내륙 국경 밀림지역을 현지 브로커를 따라 10시간이 넘는 산행을 해야 하는데 산 몇개를 넘는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동남아쪽 브로커들은 주로 현지 범죄조직 소속으로 이 일대는 마약으로 악명이 높은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이다. 즉, 탈북민 밀입국에 마약 밀수용 루트를 쓰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브로커와 동행했지만 동남아에서는 범죄자일지도 모르는 브로커와 밀림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메콩강은 10분 정도 배를 타고 건너면 성공이다. 이때는 브로커 없이 탈북민들만 쪽배를 타고 건너게 되는데, 지도를 보면 태국으로 가기 위해선 어느 국가를 경유하던 메콩강을 건너야 한다. 또한 브로커 입장에선 태국 국경을 같이 밀입국하다 걸리면 벌금형이나 감옥살이를 해야 하므로 태국 땅에 안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이 강을 건너는 탈북민들은 오래전부터 메콩강을 일명 '악어강'이라 불렀는데 사실 악어가 서식하진 않는다. 이러한 별칭의 유래는 브로커가 강을 건너는 탈북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지어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로 2018년에 메콩강을 건너다가 배가 침몰해 탈북민이 익사한 사례가 있다.

메콩강을 건너 태국 땅에 도착하면 마침내 자유를 찾은 것이다. 친미 국가인 태국은 인근 공산권 국가와는 달리 탈북민을 추방하지 않고 난민 자격을 인정해 대한민국을 포함한 원하는 나라로 이동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태국까지만 도착하면 매우 기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고 한다. 아무나 보이는 곳에 들어가서 경찰을 불러달라고 하면 현지인들은 이 상황에 매우 익숙해서 태국 경찰을 부르고 북한이탈주민들은 경찰서로 이송된다. 이후 태국 법원에서 불법입국죄로 벌금을 부과하면서 제3국 추방 명령을 내리는데, 벌금을 내면 바로 방콕 이민국수용소로 이송되지만 벌금 낼 돈이 없는 사람들은 현지 감옥에서 진짜 범죄자들과 함께 한두달 옥살이를 한 뒤 이민국수용소로 보내진다.

기독교 선교사를 통해 동남아로 들어오는 경우, 메콩강을 건넜더라도 이민국수용소로 가지 않고 기독교 선교사가 운영하는 단체 숙소에서 2~3개월 정도 성경 공부를 한다. 과거 중국에서 하던 성경 공부를 비교적 안전한 동남아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선교사들은 외부 개입없이 탈북민들에게 집중적으로 기독교를 선교한다. 탈북민들을 바로 이민국수용소로 보내면 최소 3개월 동안 연락이 끊기게 되는데 그동안 자신을 구해준 기독교 선교사에 대한 고마움도 차차 식어버리고 정착 교육을 마치고 한국 사회로 나오면 적응하느라 바쁜데 종교활동보다 흥미있는 것도 훨씬 많아서 탈북민을 다시 교회로 끌어들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방콕 이민국수용소에는 탈북민 전용 방이 있는데 그곳에는 먼저 들어온 탈북민들이 대기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여러 소문과 정보가 공유된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산 탈북민들은 그동안 들은 정보가 있어 한국에 익숙하지만 북한에서 바로 넘어온 탈북민들은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부 탈북민들은 한국행을 희망하지 않고 미국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18] 이곳에선 매점을 이용할 수도 있고 비교적 자유롭게 전화도 할 수 있어서 탈북이 성공했음을 알릴 수 있다. 안남미로 된 밥과 갖가지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 때문에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선교단체와 주 태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탈북민들의 여러 편의를 봐주며 일주일에 2번 특식으로 한국 음식 도시락을 준비해 제공한다고 한다. 대기하는 인원에 따라 한달 안팎[19]으로 수용소 생활을 한 뒤, 한국대사관에서 임시 여권 발급 절차가 끝나면 방콕에서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으로 입국한다.

3.3.3. 기타 동남아 국가

북한과 친한 공산권 국가인 라오스, 베트남이나 독재 국가로서 친중파가 많은 캄보디아, 미얀마는 탈북자를 단속하는 국가여서 그 고생을 하고 거의 다 도착했는데 이 지역에서 체포되어 북송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들 국가로 밀입국해서 한국 대사관에 들어가도 수개월~1년 동안 대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안전하고 빠르게 한국으로 갈 수 있는 태국을 최종 목적지로 한다.

라오스는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자 갈등하다가 북송을 취소한 적이 있는데, 중국보다야 대화의 여지가 더 있다지만 손놓고 있으면 라오스에서도 북송된다. 2013년 라오스 탈북 청소년 북송사건이 있었는데, 주라오스 대한민국 대사관은 탈북자들의 신병이 억류되어 있던 18일 동안 단 한 차례도 영사면담을 하지 않았다. 결국 청소년 9명은 북송되었다. 한편 북송된 청소년들은 북한의 선전에 이용되고 있다. 그래도 2020년 이후로도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에 진입하는데 성공하면 대사관에서 3개월 정도 대기 후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다.

베트남의 경우, 베트남 경제에 한국이 큰 부분을 차지하니 예전보다 한국에 훨씬 우호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2004년 베트남은 체류 중이던 468명을 한국 정부가 베트남과 직접 교섭하여 이틀에 걸쳐 2차례 전세기편에 태워서 한국에 대거 입국을 성사시킨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 베트남 지역을 경유하는 탈북 루트는 북한 당국에 의한 거센 항의로 인해 현재 사실상 봉쇄되었다.[20]

말레이시아의 경우, 북한과 아예 단교 상태이며 싱가포르 역시 대한민국과 우호적 관계이므로 이 두 나라는 거의 완전히 안전하지만 어차피 가는 길에 태국이 있기에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3.4. 해외 주재 중 탈북


외교관, 해외주재원, 북한식당 종업원, 파견노동자, 유학생 등은 본인의 결심만 있다면 탈북하기 가장 쉬운 루트에 속한다.[21] 중국, 러시아를 통해 다른 나라로 밀입국하는 형식의 탈북과는 물리적 난이도가 다르다. 대신 외교관이 아닌 이상 가족들은 북한에 남아있고 홀로 탈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비교적 고위층에다가 한국행이 명확하기 때문에 한국 언론에도 보도되어 평양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오지로 추방되고 감시가 심해 북중국경으로 탈북한 일반 북한 주민들과는 달리 연락조차 힘들다. 주성하 기자가 겪어본 사례에 따르면 종종 해외 북한유학생들로부터 탈북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는데, 주성하 기자는 그때마다 한국에 와서 살아보니 가족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으니 가족들도 같이 데리고 오거나 한달 동안 생각해보고 그래도 탈북하고 싶다면 도와준다고 대답해준다. 그러면 절반은 탈북을 포기한다고 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로 해외 파견 중 탈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대북제재가 시작되면서, 본국으로 송금해야 할 충성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외교관들이 처벌의 두려움을 견디다 못해 탈북을 결심한다. 또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연좌제로 송환을 앞두고 탈북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장성택 처형 사건으로 인해 해외에 나와있던 장성택의 측근들이 줄줄이 송환되자 위기를 감지하고 탈북한 사람이 많다.

3.4.1. 러시아

파일:러시아-북한-노동자.jpg
▲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모습
러시아에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처음 접하게 되는 북한 노동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북한/인권 문서
번 문단을
해외에서의 노동 착취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충성의 외화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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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을 넘어 러시아로 직접 탈출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북한과 러시아가 국경을 맞댄 곳은 라선시 하나뿐인데, 이곳은 경제특구 지역으로 북한 내에서도 접근이 곤란한데다 라선시 일대가 두만강 하류인지라 강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도강이 어렵다.

북한 사람들은 러시아에 외교관, 무역일꾼, 건설노동자, 벌목공으로 파견되었다. 90년대부터 시베리아에 벌목공으로 나간 사람들은 엄청나게 고된 벌목장을 이탈하여 불법체류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십여년 이상 러시아에서 살아 한국말을 잊어버린 채 한국으로 입국한 사례도 있었다. 이들이 그나마 북송되지 않고 불법체류자로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러시아는 탈북자를 체포할 강력한 이유가 없었고 중국과 달리 인구가 희박한 극동지역에서 그에 필요한 행정력도 없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노동자의 수는 수천~1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건설노동자들은 노동력이 부족한 극동지역에서 러시아 건설회사로부터 하청을 받아 건설작업을 한다. 하루 2~3시간만 자고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러시아 원청회사에서 지불한 급여의 10% 정도만 자신의 몫으로 지급된다. 5년간 일해도 손에 쥐는 건 2,000달러가 전부다. 현역 군인들이 러시아 노동자로 파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군복무를 하는 군인 신분이기에 민간인처럼 월급을 주지 않아도 공짜 노동력으로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정도 경험이 쌓인 건설노동자들은 '청부'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건설수주를 받아 집단적으로 건설 노동을 하지 않고 따로 사회에서 수익성 높은 건설이나 인테리어 일감을 구해 정해진 액수를 바치면서 자유롭게 일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북한 노동자들은 감시의 눈을 피해 스마트폰을 구입[24]하여 사용하기 시작한다.

러시아 파견노동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과 유튜브와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 북한의 실상과 자신이 노예처럼 일해왔다는 것을 깨닫고 탈북을 결심한다. 스마트폰은 브로커와 직접적으로 연락하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탈북에 중요한 수단이다. 러시아에서 탈북한 해외노동자가 말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스마트폰은 한국어 언어 옵션이 있는 걸로 구한다. 2. 인터넷에서 모스크바 주재 유엔난민기구를 검색하여 연락처를 찾는다. 3. 유엔난민기구에 연락을 하면 북한 담당 변호사가 받을테니 러시아어나 번역기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유엔난민기구와 연락할 때 러시아 경찰이 도청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25] 접선장소를 정할 때도 수시로 위치를 바꾸도록 한다. 4. 러시아어를 못한다면 주변 한인식당이나 상점을 찾아 도움을 요청한다. 5. 한국 영사관과 대사관 전화번호를 검색해서 알아낸 후 도움을 요청한다. 한국 영사관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유엔과의 연결을 도와줄 수 있다. 유엔에 망명 신청을 하더라도 자신이 북한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신분을 증명할 서류가 없어 난민 신청을 거부당해 어느곳도 가지 못하고 그대로 러시아에서 노숙하다 객사한 사례가 있다.

러시아에 나와있는 선교사들과 구출활동가들도 이들의 유엔난민기구를 통한 망명 신청을 돕는다. 러시아 북한노동자들에게 제일 가까운 한국 외교공관은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이다. 하지만 북한도 바보는 아니므로 그만큼 더욱 경계를 철저히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2023년에 탈북한 러시아 북한노동자의 증언에 따르면 블라디보스토크 한국 영사관은 북한측에서 상시 도청 중이기 때문에 탈북을 희망해 전화를 걸었던 여러 북한노동자들이 적발되었으며 절대 이곳과 전화를 하면서 구체적인 본인의 신상을 밝히면 안된다고 한다.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망명이 접수되어도 여러 행정절차가 있기 때문에 바로 러시아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유엔난민사무소에서 숙소를 마련해주고 생활비까지 지급해주는데도 탈북민 입장에서는 러시아에 머무르는게 가시방석과 같다. 당연히 북한 당국도 이를 가만히 놔둘리가 없다. 러시아 경찰에 체포 협조 공문을 보내고 러시아 마피아 조직에게 현상금까지 걸면서 탈북민을 잡으려고 한다. 러시아가 중국보다 탈북이 쉽긴 하지만 극동지역은 지역정부와 경찰이 북한 대사관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탈북민을 불법적으로 납치한 뒤 북한 당국에 넘기는 경우가 지속되고 있어서 계획없이 무작정 탈북하면 안된다고 한다. 납치된 탈북민은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영사관 지하에 감금되어 한꺼번에 북송된다.# 무사히 망명 허가를 받으면 러시아에서 바로 오지는 못하고 제3국으로 이동한 다음 대한민국으로 오게 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한러관계가 나빠짐과 동시에 러시아와 북한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이므로, 탈북민들이 러시아에서 탈출을 시도하면 북송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존에는 공산권출신 국가 치고는 의외로 범죄 혐의 또는 북한의 송환 요청이 없는 한 탈북자 강제북송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곤 하나, 2016년 러시아도 북한과 탈북자 강제송환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고 이미 우크라이나전 발생 전에도 탈북자를 북송한 전적이 있었다.# 또한 러시아 정부측에서 유엔난민기구 사무소에서 일하는 러시아인 직원과 북한 노동자들을 돕는 인권활동가들에게 법적 처벌을 하는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면서 유엔난민기구를 통한 망명 신청도 어려워졌다.

2024년부터 북한 당국이 러시아 북한노동자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일탈과 탈북의 주요 원인인 것을 알았는지 암묵적으로 눈감아주던 휴대폰을 몰수하기 시작했다. 또한 2020년 이후 행방불명자로 처리했던 해외노동자들의 한국 입국 여부를 파악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연좌제로 처벌하고 있다.

3.5. 군사분계선(휴전선) 전면돌파

파일:강원도_동부전선.jpg
▲ 강원도 고성 인근 동부전선의 야간 모습[26]
파일:귀순자유도함.jpg
GP 주변에 설치된 귀순자 유도함
파일:1535780677.png
▲ DMZ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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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비무장지대를 뚫고 한국으로 귀순하는 경우이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도보로 탈북이 가능한 경로이지만, 3만 명의 북한이탈주민 중 휴전선을 이용한 사람은 극소수이다. 군사분계선은 극도로 위험하고 일반 주민들에게는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경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전선으로 탈북하는 사람들은 북한군 민경부대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휴전선 인근에서 복무하면서 비무장지대의 지형 조건과 북한군과 한국군의 경계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전선 주변은 역사상 육군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조선인민군 육군의 70% 가량이 250km밖에 안 되는 원산시 이남 및 휴전선 근처에 전진배치되어 있다. 최고 2,200V 전압의 전기 철조망 또한 탈북을 방해한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 시간대를 파악해 건너거나 쇠막대기를 이용해 전기를 땅으로 흘려보낸 뒤 철조망 밑으로 구덩이를 파고 통과해야 한다. 폭이 수십m 이상은 될 지뢰지대도 난관이다. 가장 위험한 요소로 1953년 정전 이후 비무장지대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지형상의 변화 등의 이유로 지뢰가 어디로 쓸려내려갔는지 한국측도 북한측도 아무도 모른다. 한반도의 휴전선은 전 세계에서 지뢰 밀집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다.

북한군의 감시를 피해 비무장지대에 들어서면 한국군측에도 민경부대가 기다리고 있다. 보통 북한군이 내려오면 열상감시장비에 포착되는데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내려올 때부터 추적, 감시하면서 귀순 유도 작전을 진행해 신병을 확보한다. GP나 GOP 쪽에 탈북자들을 안내하기 위해 푯말과 전화기를 두긴 하는데, 애초에 넘어오는 탈북자들은 그런게 있는 줄도 모르기 때문에 철책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귀순한다. 귀순한 북한 군인들은 처음 마주한 한국 군인들의 체격을 보고 놀란다고 한다. 또한 절차상 총이 겨눠진 채로 몸수색을 당하고 포박해 끌고가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예전에는 휴전선으로 귀순한 탈북자에게 바로 식사를 줬다고 하는데, 강냉이밥과 염장무만 먹다가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날 수도 있어 최근에는 일선 부대에서는 물 이외에는 제공하지 않고, 국가정보원에 인계하고 건강검진 후에 식사를 제공한다. 한편 2000년대 중반 중부전선을 통해 발생한 귀순 사례에 따르면 그냥 교대근무자들이 먹는 밥을 퍼다 줬다는 얘기도 있다. 근무 병력들이 먹기 싫은 밥을 대충 퍼먹고 잔반처리하는 것을 본 탈북병사의 한마디가 "인민이 용서치 않을 겁네다"였다고 한다. 군인이 소총이나 수류탄 등의 무기를 소지한 채로 탈북하는 경우에는 해당 무기의 유형과 가치를 고려해 보로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27]

3.5.1. 관련 사례

2000년대까지는 공개되지 않은 군사분계선 귀순이 많았으므로 모든 사례를 기재한 것이 아님.














3.6. 북방한계선(NLL) 해상 탈북

파일:귀순표지판.jpg
"대한민국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아래에 있는 전화기의 신호 단추를 누르시면 안전지역으로 안내하겠습니다."
- 백령도에 설치된 탈북 유도 표지판에 적힌 문구
전마선, 목선 등을 타고 서해 혹은 동해로 빠져나와 NLL을 넘어 대한민국 영해로 진입하는 경우이다. 1987년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간다며 일가족을 이끌고 귀순한 김만철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동해안으로 빠져나올 경우 해류에 따라 일본쪽으로 표류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으로 떠내려갈 경우 해상보안청 경비함에게 포착돼 구조된다. 일본은 자유진영 국가이기 때문에 탈북자가 원하면 대한민국으로 보내준다. 바다를 통해 한국에 귀순한 탈북자를 탈북자 사회에서는 '직통생'이라고 부른다.
파일:삼척북한목선.jpg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
북한은 해상을 통한 탈북을 막기 위해 일종의 조업허가권인 '바다출입증'을 발급해서 아무나 바다로 들어갈 수 없게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바다출입증을 받으려면 경계 근무를 맡은 관할 군부대의 초소, 대대, 여단에서 도장을 받고 담당보위원과 군() 보위부, 또 담당안전원, 분주소[29], 군(郡) 안전부 도장까지 필요해 최소 8개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허가를 받을 때마다 뇌물은 필수이다. 당연히 출신 성분이 좋지 않거나 어업과 관련없는 사람들은 바다출입증을 내주지 않아 해상 탈북은 시도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바다출입증을 받아도 난관은 남아있는데 형제나 친척 등 가족이 한 배에 탈 수 없고 특히 여성은 무조건 배에 태울 수 없게 하여 가족 단위의 탈북을 막고 있다. 어선 자체도 소형 목선으로 만들고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경운기에나 쓰는 엔진만 달 수 있도록 하여 원양 항해를 제한한다. 또한 북한에서는 개인이 배를 소유할 수 없으므로 수산사업소나 군부대 부업선 명의로 배를 등록해놓고 일정 수입을 바친다는 계약을 한 뒤 실질적인 선주 역할을 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배는 수산기지 소속 부두에 정박되어 있으며 이곳의 경비초소가 출입하는 인원을 검사하고 배의 모든 입출항이 파악된다. 즉, 해상 탈북을 위해 배를 출발시키려면 수산사업소 경비가 지키는 항구로 몰래 숨어들어가서 배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어부도 아닌 가족들을 데려가서 몰래 배에 태운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배를 타고 탈북한 북한이탈주민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이들의 공통점은 해안 입출입을 통제하는 군인, 경비원들과 친해져서 경계심을 흩뜨려 놓았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자주 호의를 베풀어 장기간에 걸쳐 친해지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상술한 것처럼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보다 가족들을 배에 태워 출항시키는 과정이 훨씬 어렵다. 고기잡이와 상관없는 노인과 아이를 어선에 태웠다는 건 탈북 의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일단 배를 띄워서 바다 한가운데까지만 가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북한 경비정들은 해상 순찰을 나가도 연료가 없어 정해진 곳에서 닻을 내려 정박한 뒤 시동을 끄고 한가하게 시간만 보내고 돌아오므로, 선박의 엔진을 껐기에 전기를 퍼먹는 레이더가 작동하지 않아 갑판 견시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목선은 들키지 않고 내려올 수 있다. 그렇게 NLL 이남으로 넘어와 대한민국 해군이나 해경 함선과 만나면 탈북 성공이다. 출항하는데 성공했다고 해도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황해남도에서 탈북에 실패한 사람들이 처형되는 것을 목격했다던 탈북민의 증언도 있고, 연평도 군복무 당시 NLL로 남하하던 어선을 북한군 고속정이 나포해서 끌고가는 정황을 관측했다는 목격담도 존재한다.

배를 타지 않고 바다를 헤엄쳐서 온 탈북민은 인천광역시 옹진군의 서해5도, 강화군, 경기도 김포시의 대한민국 영토가 직접적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황해남도 주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30] 일단 서해 바다쪽은 수심이 얕아 썰물 때를 노려 바다에 뛰어들면 황해남도 연안군쪽에서 인천광역시 강화군교동도로 헤엄쳐 탈북에 성공한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언뜻보면 바로 대한민국 영토가 보이고 거리가 짧아 상대적으로 수월해보이지만 막상 바다로 뛰어들면 조수간만의 차가 커 조류가 강한 서해에서 수영해서 오는게 쉬운게 아니라고 한다. 썰물 때를 놓치면 조류를 극복하지 못하고 북한 쪽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에는 NLL을 수영해서 넘어오려다 강화도 해안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북한 남성도 있었다. # 동해쪽은 수심이 깊고 중간에 경유할 섬도 없어서 수영으로 탈북하는 건 불가능하고 성공한 사례도 없다.

3.6.1. 관련 사례
























3.7. 전투기

파일:이웅평_귀순.jpg 파일:이철수_귀순.jpg
▲ 수원비행장에 착륙하여 귀순한 이웅평(좌)과 이철수(우)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들로 북한 공군 조종사들이 전투기를 몰고 그대로 귀순하는 경우다. 이 경우 쉽게 구할 수 없는 적국의 현역 군사자산을 같이 들고오고, 북한에서 전투조종사는 상당히 높은 고급인력이기 때문에 그 전투기와 조종사의 가치[33]를 고려해 거액의 보로금[34]이 지급된다.

4. 대한민국 입국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은 태국 루트를 거쳐오기 때문에 태국 이민수용소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입국하게 되는데, 이때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탈북민들이 북한에 있을 때 TV에서 보던 비행기는 주기장에서 계단을 통해 탑승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공항에서 탑승교를 통해 비행기로 들어가다보니 이륙할 때까지 여기가 비행기 내부인 줄 몰랐다는 경험담이 상당히 많다. 이륙한 비행기가 새벽 시간대에 대한민국 상공에 진입하는 경우, 탈북민들은 창밖에서 빛나는 발전된 도심의 야경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는다고 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국가정보원 직원의 인솔을 받는다. 불시에 개별 입국해도 인천국제공항에 별도로 국정원 사무실이 있는지 출입국 관리 직원에게 말하면 바로 국정원 직원이 나온다고 한다. 중국에서 바로 넘어온 '직통생'들은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현대적 시설을 인천국제공항에서 처음 경험하게 된다. 탈북민들은 일반 여행객처럼 정문으로 나가지는 않고 따로 마련된 통로를 통해 대기해둔 버스에 탑승한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버스로 이동하는 중 인천대교 위를 지나가는데 바다 한가운데를 수많은 차량과 함께 달리는 광경을 보며 발전된 한국의 개발상을 직접 보게 되고 한국 영화와 드라마 속의 도로에 붐비는 수백 수천 대의 차량 행렬과 밤새도록 불이 밝혀진 도심, 행인들의 가지각색의 옷차림이 촬영용으로 준비된 세트장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고 한다. 이후 단체로 인천 적십자병원으로 이동해 건강검진을 받는다. 이때 인생 첫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도 많고 피검사를 위해 채혈을 많이 하다보니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35]도 있다. 북한에서 한국은 사람의 피를 뽑아 팔아먹는다는 교육을 받아서 더 그런 점도 있다.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으면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입소하게 되고, 이후엔 하나원으로 이동해서 남한 사회 정착을 위한 지원을 받는다.

고위급 탈북민의 경우에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가지 않고 국정원이 소유한 안전가옥에서 조사와 보호를 진행한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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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6. 탈북을 지원하는 단체 및 조직



[1] 북한에서 군복무 경력은 당원이 되기 위한 필수 자격이어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간부가 될 수 없다.[2]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은 북중국경 압록강, 두만강만 넘으면 탈북에 성공한 줄 알았다고 한다. 중국-태국을 거치는 대장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북한에서 알았으면 탈북은 시도도 안 했을 것이라고 증언한다.[3] 코로나19 이전 기준 한 명을 넘기는데 한화로 천만 원이었다고 한다.[4] 그렇다고 해서 도강이 안전하지는 않다.[5] 북중국경을 여행하는 여행유튜버의 영상을 보면 항상 중국 국경경비대가 검문하는 것을 볼 수 있다.[출처] 휴먼라이츠워치[7] 단체로 움직여야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8] 혹은 이미 중국에서 옥살이를 해서 입국이 불가능한 경우이다.[9] 혹은 북한에서 살기 힘들어 자기를 중국에 팔아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10] 인신매매로 팔린건데 무슨 괜찮은 인품이냐 하겠지만 전근대적 남존여비 사회에서 살아온 북한 여성의 가치관으로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11] 대부분 동북 3성 지역에 산다.[12] 인터넷이란 개념을 모르는 탈북민들은 단순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 정보도 방법을 몰라 몇년 간 허송세월하는 경우도 있다.[13] 중국 내 탈북민부터 한국 입국에 성공한 탈북민까지 들어와 있어 헤어진 가족들을 찾거나 브로커 정보를 공유한다고 한다.[14] 당연하지만 중국 공안도 이 단톡방을 감청한다.[15] 동북 3성 지역에서 중국 중부나 동부, 서부, 남부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에 해당된다.[16] 일가족은 체포되었지만 중국, 일본, 미국, 한국 간 외교전 끝에 한국에 입국에 성공했다.[17] 대한항공 등의 한국 국적기를 탄 순간부터 대한민국 항공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 국적기에 타기만 해도 탈북은 성공한 것이다. 설령 타 국적기를 탄다해도 현실적으로 고작 탈북자 한 명 잡겠다고 이미 이륙한 비행기를 다시 회항시켜서 체포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18] 이 경우 1년 이상 수용소에서 기다려야 하고 미국에서 탈북민은 수많은 난민 중 하나라서 한국만큼 다양한 정착 지원도 해주지 않는다.[19] 2000년대까지만 해도 수 개월을 대기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한국 정부가 태국 정부와 직접 소통하면서 기간이 짧아졌다.[20] 이때 이제 만나러 갑니다 출연진 중 한 명인 유현주 씨가 탈북했다. 입국일이 7월 27일이었는데, 같이 온 사람들과 함께 "탈북의 7.27~"이라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21] 물론 여기서 중국은 해당하지 않는다.[22] 당연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인 체코에서는 탈북을 막을 이유가 없고 심사관은 탈북을 시도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확률이 높다.[23] 탈북 후 이정호로 개명[24] 보통 같이 일하던 타국 노동자들에게 대리구매를 부탁하거나 그들의 중고폰을 구매한다.[25] 유엔 변호사들도 이걸 알아서 전화번호를 수시로 바꾼다고 한다.[26] 최전방 북한 군인들은 야간 근무를 서면서 이 광경을 10년간 보게 된다.[27] 후술할 정하늘의 경우, AK 소총 2정과 수류탄을 합해 1,5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28] 귀순을 유도한 분대장은 30박 31일 휴가를 받았다고 한다.[29] 파출소[30] 경기도 파주시 또한 범주에 포함되어 있긴하나, 한강하구 중립수역에 속하는 파주시 루트로 현재까지 탈북이 공개된 사례는 없다. 파주시의 오두산통일전망대와 접한 임진강은 간조 시간 중에 강폭이 650~700m 간격으로 좁혀지기에 짙은 안개로 인해 가시거리가 매우 짧은 극단적인 기상상황으로는 이론상 탈북이 가능하긴 하다. 아무래도 임진강을 접한 구역인데다 짧은 거리인 만큼 경비가 엄청 삼엄하기에 파주시로 통한 탈북 사례는 위에 서술된 MDL 탈북을 제외하고는 아예 나오지 않고 있는 듯하다.[31] 이북 5도 행정구역 기준 황해도 벽성군 청룡면 영양리, 맹해리, 학산리, 용매리에 해당한다.[32] 상이군인[33] 단순한 물질적 가치 말고도, 국방정책이나 작전, 전술, 실태 등에 대한 증언 등 군사적 가치를 포함한다.[34] 군함·전투폭격기: 5억원 이하, 월남귀순용사특별보상법시행령 8조 3항: 전투폭력기(=전투기/공격기) = (24K)황금 20,200그램-황금 144,200그램 또는 이에 상당한 금액. 최대 금액인 144,200그램은 2022년 12월 말 기준 108억원이 넘는다.[35] 북한 주민들은 헌혈이라는 개념이 희박하고 피를 잃으면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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