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싱가포르의 종교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2. 상세
2020년 통계에 따르면 불교[1] 31.1%, 기독교[2] 18.9%, 이슬람교[3] 15.6%, 도교 8.8% 순이다. 그리고 2020년 기준으로 20%는 무종교인이다. 말이 그렇지 깔린게 교회이고 모스크이며 힌두 사원도 통계 비중이 무색하게 흔하게 보인다.기독교, 도교, 불교와 무종교는 거의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며 말레이인의 98.8%는 무슬림이다.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은 힌두교, 시크교, 이슬람 위주로 힌두교인이 가장 많지만 무슬림도 상당수이고 소수라지만 상당한 인구를 자랑하는 크리스찬들이 혼재한다. 요즘은 인종 전체에서 10~20대들 사이에서는 무종교인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다만 중국계는 기독교 신자도 증가 추세이고[4] 말레이인들은 이슬람을 이탈하면 말레이인으로 불인정되는 등 배척을 받기에 무종교 성향이라도 겉으로는 무슬림인 척 하고는 한다. 인도계 싱가포르인들도 마찬가지로 힌두교를 더이상 안 믿어도 힌두 공동체를 의식해 겉으로는 힌두인인 척 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서술 글들이 종교를 개별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간과하기 쉽지만, 싱가포르 종교의 가장 큰 특징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종교의 용광로라는 점이다. 당장 다양한 종교가 비슷한 비중으로 모이는 곳은 싱가포르와 몇몇 국가들 외에는 없다.#
자료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종교인은 2020년 기준으로 불교 31%,기독교 19%, 이슬람 16%, 힌두교 5%, 도교 9%로 분포하는데 이처럼 4대 종교가 특정한 세를 가지고 공존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싱가포르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종교가 있기로 유명한 인도마저도 불교도는 1%가 채 되지 않는다. 거기에 중동 등 많은 국가들이 종교 갈등으로 유혈사태까지 가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대단한 일이다.#[5]
3. 불교
다양한 종교들이 고루 난립하며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교가 크게 3분할로 세를 잡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그나마 종교인들의 절반 가량인 31.1%의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가장 대중적인 종교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도교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40%에 육박하게 된다.동아시아는 아니지만 중화권에서 출발한 이민자들이 일군 사회인만큼 유불선 삼교인 불교와 도교, 유교의 전통이 강한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다만 도교는 타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유교와 마찬가지로 생활 양식, 전통 문화에 녹아들고 종교로서의 존재감 자체는 다소 쇠퇴하고 있다.
중국계 태국인들이 들여온 불교는 중국 불교와 태국 불교가 혼재하며 대개 소승불교이고 몇 개 절은 태국인 스님이 세워서 불상이 태국식이다. 부처님 오신 날[6]은 베샥데이라 불리며 크리스마스, 부활절, 무함마드 탄신일과 함께 주요 공휴일이다. 물론 중국+태국에 약간 미얀마 불교도 섞여 있어 한국의 부처님 오신 날과는 풍경이 다르다. 그리고 한국과 달리 연등을 달지 않는다. 이 역시 소승불교식이다.
관음사나 팔레라이 사원 같이 대놓고 태국식 절이 있는 경우도 흔하다. 관음사는 중국계 태국인들이 세운 절이며 팔레라이 사원은 태국 스님이 창건한 태국 사찰로 대놓고 태국식 색체가 강한 편이다. 한국식 대승불교에 익숙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볼때 굉장히 신기하게 보일 것이다.
구르카로 들어온 티베트인 혈통의 네팔인 및 부탄 이주민들의 영향으로 티베트 불교도 들어왔다. 티베트 불교 사원으로는 차이나타운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불치사가 있으며 원래 영국군 일원이던 구르카인들이 창건한 절이다. 중국계 불교도와 구르카인 간은 통혼이 꽤 잦은 편이라 여기 말고도 티베트식 절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불상도 티베트식 불상이 꽤 많이 보인다. 한국 불상의 인자함과는 달리 티베트 불상은 원래 호전적이던 유목민족 티베트인의 기질 탓인지 험악하게 생겨서 처음 보는 사람은 희한함을 느끼기도 한다.
다만 싱가포르의 불교는 기독교나 이슬람과 달리 교세가 감소 추세이다. 특히 싱가포르인 승려 공급이 끊겨서 젊은 승려가 없다. 젊은 승려는 태국이나 미얀마, 스리랑카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아직까지도 50대 이상 기성세대가 굳건한지라 싱가포르 종교인의 절반에 가까운 수인 30%를 점하고 있는 가장 대형적인 종교가 맞으며 불교 국가인 태국, 스리랑카, 미얀마 출신 외국인 노동자 내진 난민 등 각종 이민자 숫자의 증가로 인해 여전히 그 세는 줄지 않고 있다.
집안 구성원들의 개개인적인 종교는 다르더라도 가족 전통 종교는 불교인 경우가 많으며, 생활 곳곳에 불교식 문화가 매우 많이 녹아있다. 대표적으로 채식 요리 위주의 정진 요리가 발달하는 등의 영향이 있다.[7]
서유럽에서의 기독교가 비록 소멸 직전까지 쇠퇴했으나 생활 속에서 습관이나 문화엔 영향이 크듯이 원래 동아시아에서 이주한 중국계가 주축인 만큼 이들 사이에는 불교, 유교, 도교가 생활 속에 존재한다. 한국에서 불교, 유교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것과 비슷하다.
남아시아 노동 이민자들이 넘쳐흐르는 나라답게 스리랑카인 불교도들도 많으며 스리랑카 절도 있다. 스리랑카 불자들은 굳이 자기네들 절 말고도 다른 절에 가서 합장하고 시주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힌두교도들도 불교 절에 와서 소원을 빌거나 합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불교도가 힌두사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
일본계 이주민들은 일본식 선불교나 일련종 등 일본 고유의 종파를 믿는 불자들도 있다. 서양에서 불교 하면 티베트 불교와 일본식 선불교를 생각할 정도로 일본 불교도 꽤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4. 기독교
기독교는 싱가포르에서 불교 다음으로 교세가 크다. 이웃 나라들과 달리 기독교가 보편적이고 교회가 흔하다.싱가포르 기독교 사회는 다른 나라의 기독교 커뮤니티에 비해 화이트 칼라 계층 및 사회지도층 등이 믿으며 학력이 매우 높기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및 홍콩과 비슷하게 기독교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며 홍콩이나 호주 등과 마찬가지로 종교 재단인 사립학교 중 개신교, 가톨릭 재단의 비율이 높다.#[8] 이는 가톨릭과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는 교육을 통한 선교를 중시해서이다. 특히 가톨릭의 경우 적극적으로 교육사업에 임해서 수많은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영어 교육을 위해 가톨릭 학교를 다니고 세례를 받았다. 거기에 이민으로 유입되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및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기독교인들이나 중국본토에서 박해를 피해 온 중국 지하교회 기독교인들까지 합류 중이다.
기독교 신자는 거의 중국계 싱가포르인 신자들이다. 그리고 영국계 백인과 크리스찬이라 불리는 일부 타밀인도 믿는다. 타밀인들만 모이는 교회가 리틀 인디아와 부기스에 있을 정도다. 월등히 말레이시아보다 기독교인도 많고 교회도 더 흔하며 싱가포르 교회가 말레이시아에 선교하러 간다.
교파는 영국의 영향으로 성공회 및 가톨릭이 다수이며,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루터교회 등 다른 개신교 종파와 정교회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중국계가 말레이계보다 인구 상 많은 탓에 기독교가 이슬람교에 잠식당하지도 않았고 중국계 싱가포르인은 홍콩인들과 비슷하게 일찍이 서구화되어 타 동남아시아 국가 화교 사회나 중국 본토, 대만 등과 달리 기독교를 적극 받아들였다.[9]
그리스도교인이 많아서 아시아에서 한국, 홍콩, 마카오, 필리핀과 함께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인 몇 안 되는 나라 및 지역이다. 2023년 이전까지 크리스마스에 대한 대체휴일이 없었던 한국[10]과는 달리 여기서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까지 박싱 데이라 부르며 쉬며, 일요일에 겹치면 대체휴일을 준다.
학교들 역시 영국 학제를 적용해 2주 간 크리스마스 방학에 들어간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에 이 나라에 가면 여기저기서 성탄 트리를 볼 수 있는데 크리스마스 하면 눈과 겨울을 떠올리는 한국인에게는 낯선 광경인 야자수 크리스마스 트리가 여기저기 펼쳐진 적도의 크리스마스를 볼 수 있다.
이 나라는 오래된 교회를 많이 볼 수 있는데 동남아시아에서는 필리핀을 빼면 드문 광경이다. 당장 시내의 예배당들의 연도가 191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인 곳도 흔하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미사/예배 기본 언어가 영어+표준 중국어이다. 여기에 사이사이로 리틀 인디아는 크리스탕을 위한 타밀어[11]가 제공되고 가톨릭은 필리핀인 가사 도우미 등을 위해 타갈로그어 미사를 추가한다. 한인교회는 당연히 한국어 예배/미사가 추가된다. 그리고 대한성공회 측에서 싱가포르 성공회와 사제[12]를 상호 교환파송하는 케이스도 많다.
4.1. 가톨릭
싱가포르 가톨릭 교회는 역사적으로 말레이 반도의 가톨릭 교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과거 싱가포르는 말라카 왕국[13]에 속하였는데 1511년 포르투갈의 콘키스타도르인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장군이 이끄는 포르투갈 해군이 말라카를 점령하였을 당시 8명의 군종 신부도 콘키스타도르들을 따라서 함께 왔다. 이 때 포르투갈은 점령 후 교회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1514년 부활절에 첫 성당이 완공되었다.
그리고 예수회 선교 신부로 유명한 스페인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1545년 9월에 말라카를 방문하였고 이후 8년 동안 적어도 네 번을 더 방문하였다. 성인은 그가 방문했던 아시아 도시들 중 말라카에서 가장 많이 사목하였다. 그러자 교황청에서는 싱가포르를 말레이시아의 영역에 두지 않고 따로 대교구로 독립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한 역사 속에 최초로 싱가포르에 유입된 가톨릭 신자들은 포르투갈의 인도 식민지였던 고아와 캘리컷에서 유입된 인도인들이었다. 그러나 말라카가 네덜란드로 넘어간 뒤 개신교 국가 네덜란드는 굳이 가톨릭 선교의 필요성을 못 느꼈고 자연스럽게 가톨릭을 믿는 인도인 신자들의 유입은 끊겨버렸다. 그 후 네덜란드가 영국에게 말라카를 뺏기고 싱가포르는 독립된 조호르 술탄국의 영역이 되면서 이슬람 색체만 남았다.
그러다가 싱가포르가 조호르 술탄에게서 래플즈 경에게 양도되어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아일랜드인 수도 사제들이 선교사로 싱가포르로 오면서 중국계 쿨리들에게도 가톨릭 전도를 시작해 수많은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세례를 받고 개종하며 아일랜드인 신부들에게서 영어를 배운다.
그리고 어느덧 중국계 유이민 숫자가 원주민 말레이인보다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싱가포르 가톨릭 교회는 절반 이상이 중국계 싱가포르인으로 채워지게 되었고 가톨릭 선교 역사도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가톨릭은 아일랜드인 신부와 수도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된다.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에서 유입된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영향을 강히게 받은 한국의 가톨릭과 달리 싱가포르의 가톨릭은 아일랜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동아시아 내 가톨릭보다는 영어권 내 가톨릭과 더 비슷하다. 미사 언어가 대게 영어인 것부터 그렇다.
현재도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의 가톨릭 개종은 계속되고 있으며 가톨릭계 사립학교를 다니며 성경을 배운 어린 세대에서 가톨릭으로 유입되는 사람이 많다. 한 가정에서 부모, 조부모는 불교를 믿고 본인은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집안 전통 정도로 생각하고 가족들을 따라 절이나 사당에 드나들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싱가포르가 원래 말레이 기반 사회로 무신론을 좋지 않게 보고 뭐든 믿을 것을 권유하는지라 젊은 층도 영미권과 달리 느슨하게나마 종교활동을 하는 것에 가깝다. 독실한 신자의 유입은 아니라도 분명 가톨릭이 성장세인 것은 고무적인 것이다.[14]
특히 사립학교 교육 덕에 가톨릭 신앙을 접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30대와 40대로 접어들며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하면서 가톨릭 비중은 더욱 올라갈 전망이다. 영국 식민지배 덕에 성공회 등 개신교가 강세인 싱가포르에서 가톨릭 비중도 높은 이유가 가톨릭의 교육 선교 덕분이다.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싱가포르 가톨릭에서는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다수이며 소수의 인도계 싱가포르인들[15]과 필리핀인 신자들이 있다. 부기스에 타밀인 성당이 1곳 있고 동쪽에 필리핀인 성당이 1개 있으며 나머지는 중국계가 주류라서 성당에 중국어와 영어를 병기한다.
참고로 싱가포르 신자들은 역시 가톨릭 비중이 높은 홍콩 신자들처럼 신심이 두터운 편으로서 본당 밖에는 에어컨이 없는데도 주일 미사 때마다 성당 밖에까지 사람들이 꽉 찰 정도로 미사 참례도가 높은 편이다. 열대 국가인데 당장의 고통을 무릅쓰고 주일을 지킬 정도로 신심이 두터운 게 맞다.
그리고 홍콩/마카오 교구와 마찬가지로 싱가포르 교구의 경우 신자들의 냉담률이 극히 낮은 편인데 다른 나라의 가톨릭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당장 라틴아메리카와 필리핀의 냉담율도 높은 편인 현실에 이들보다도 나름 신앙생활을 준수하게 하는 셈이다.
한편 라틴 예법의 로마 가톨릭 교회 외에도 인도계 싱가포르인 일부가 믿는 동방 가톨릭의 일파인 시로말라바르 가톨릭도 있다. 이쪽은 사도 도마가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사역하면서 그 제자들이 세운 교회가 교황의 수위권 내에 들어와 가톨릭으로 인정받은 곳으로 역사가 아주 오래된 곳이다.
2022년 8월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추기경으로 윌리엄 고(吳成才, William Goh) 대주교가 한국의 유흥식 대주교와 함께 새 추기경으로 선임되었다. 이때 가톨릭 신자가 많은 한국이나 싱가포르 말고도 가톨릭 신자가 미미한 나라들인 몽골 등에서도 추기경이 선임되었다.
4.2. 개신교
개신교는 성공회, 장로회, 루터교회, 감리교 등이 주류며 영국 영향으로 성공회 및 감리교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은 스코틀랜드에서 유입된 장로교이며 역시 영국에서 유래한 오순절 교단이나 영국과 관계가 깊은 북유럽, 독일어권에서 유입된 루터교도 상당수이다.애초 여기 개신교 자체가 중국인 전통의 유교 사상이 개신교 근본주의를 만나 강한 사회문화적 보수 성향을 보여 호모포비아가 만연하고 술, 담배를 매우 죄악시한다.[16]
싱가포르 젊은 층은 홍콩이나 한국과 달리 무신론자는 별로 없고 20%의 무종교인들은 종교를 특정하지 않았을 뿐 적극적 무신론은 아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인들이 원주민인 곳으로 무슬림이어야 말레이인으로 인정할 정도로 종교적인 말레인들은 무신론을 영혼이 없는 것으로 보고 뭐든 믿을 것을 권유하는 풍토가 있는데 여기 영향을 받아서이며 사립학교를 세우며 교육 선교에 적극적이던 가톨릭과 성공회/감리교/루터교의 호응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단순 신자수 상 30%를 차지하는 불교에 비해 개신교의 신자수는 적어 보이지만,[17]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엘리트 계층이나 화이트 칼라 계층 등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개신교인들이라 개신교는 사회적인 영향력이 상당하다.[18][19]
개신교 교세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한지라 싱가포르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회인 전술한 시티 하베스트 교회가 있는데 한국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비슷한 포지션이다. 그런데 담임목사인 콩히(康希, Kong Hee)[20] 목사의 공금 횡령 등 전횡으로 인해 이 교회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으며, 신학적인 면에서도 번영신학을 내세워서 기존 싱가포르 개신교계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되는 등 논란이 있었다. 결국 콩히는 구속되어 감옥에 갔고 2019년 만기 출소해 현재 조용히 지내고 있다.[21]
이 교회는 잘 나가다가 콩히가 구속된 후 교회가 분열되어 교세가 크게 줄어들어서 과거에 잘 나갈 땐 창이공항 인근 엑스포 콘서트장을 빌려 큰 규모의 주일예배를 열기도 했으나 2015년 이후에는 주롱 신도시[22] 및 시내 선텍 시티(Suntec City)[23] 내에 위치한 본당에서만 예배를 한다.
콩히 목사는 동남아시아의 조용기라고도 불리며 실제로 조용기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제자격 인물이다. 콩히 목사는 원래 성공회 소속이었으나 신학은 오순절교단에서 이수했고 목사 안수 역시 오순절교단으로 받았다.[24]
그의 교회가 초교파를 표방하며 여러 교파에서 목회자를 초빙한 건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심지어 오순절교회에 소속된 자체 신학교도 있어 여기서 양성된 목사들은 콩미니스트라고 불렸다.
그의 사모이자 목사인 호선(Ho Sun)[25]은 무려 대만 및 홍콩에서 가수 활동을 하는데[26] 목사 사모가 연예인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의 문제도 있을 뿐더러 미국 진출 시도를 위해 발매한 앨범에 수록된 차이나 와인(China Wine) 등의 노래들의 뮤직비디오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서 이것도 문제시되고 있다.[27]
호선은 차이나 와인 외에도 대만에서도 원래 직업인 세속가수를 할 때 무대 수위가 높은 편이었기에 이중생활을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원래 가수였으니 그것까지 나쁜 건 아니지만 문제는 그녀가 원래 전도사였다는 것과 하필 남편의 수감 이전에 급조 목사안수를 받았단 것이었다. 누가봐도 세습을 위한 급조 안수였는데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실제로 호선은 2010년에 시티 하베스트 교회 전도사로 복귀하였고 2016년 남편 수감 직전 목사 안수를 급조로 받아콩히 목사, 초유의 '부부세습' 이루나? 콩히 수감기간 동안인 2017년부터 2019년까지 2년 간이나 수감된 남편 대신 교회를 이끌었다. 그러나 목사가 되고도 여전히 세속가수에도 한 발 걸쳐 있으며 무엇보다 본인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을 겪은 것을 전혀 사죄나 반성을 안 하고 있다.[28]
비록 콩히 목사 본인이 강대상에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오르는 등[29] 격식 없는 인물이고 여성 부목사/전도사들 역시 목회자보다는 가수로 착각할 정도로 치장하고 예배에 오르는 등 타 교회들과 달리 파격적 행보로 유명했던 곳이기는 해도 관념상 보통 목사의 아내면 품위를 생각해서 점잖은 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의 공금 횡령 사건 역시 아내의 미국 진출[30] 과정에서 터졌다.[31]
결국 시티하베스트교회는 콩히가 구속수감된 후 아내에게 위의 급조된 목사 안수로 교회를 세습하다가 분란이 일어나서 부목사들이 모두 독립해서 찢어져 사실상 공중분해되었고 현재는 번영하던 1990년대 및 2000년대 당시 성도 수의 절반도 안 남았다. 물론 교회 자체는 남아있으며 아내 호선 목사와 콩히의 제자 목사인 콩미니스트들이 사역을 이어받았으며 2019년 콩히의 만기출소 후 콩히가 담임목사직에 복귀해 담임목사로서 사역을 계속하고 있으나 신자 수는 반토막난 지 오래고 이미지를 조져먹어서 부흥은 어려울 듯 하다. 실제로도 콩히는 출소 이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판데믹이 터졌던데다 정부의 출소 후 감시 등으로 제대로 활동을 못 하고 조용히 살았으며 싱가포르가 위드 코로나를 택한 2022년 이후에도 별다른 행보가 없다.[32]
사실상 중국계 크리스천 커뮤니티에선 시티 하베스트라는 이름 자체가 금지어 비슷한 이름으로 전락한 지 오래일 정도로 이미지를 조져먹었고 간혹 이 교회가 없어진 줄로 잘못 아는 사람들까지 있다. 이 교회는 버젓이 잘 있으며 영어와 표준 중국어로 메인 예배가 진행된다. 물론 호선 목사와 콩히 목사 부부는 여전히 비판의 대상이지만 남은 교인들은 여전히 콩히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33]
그리고 시티하베스트교회와 쌍벽을 이루는 대형교회로 프라나칸 출신 조셉 프린스(Joseph Prince) 목사의 뉴 크리에이션 교회가 있다. 여기는 신학적으로나 논란으로나 시티 하베스트 교회[34]와 비슷하지만 아직 대형 사고를 치진 않았다.
이들 외에 또 다른 중국계 대형교회 목사가 동부 카통(Katong)에 위치한 FCBC(Faith Community Baptist Church, 坚信浸信教会)의 마술사 목사로 유명한 # 로렌스 콩(鄺健雄,Lawrence Kong) 목사다.
로렌스 콩은 콩히와는 성씨는 같으나 다른 사람이며 혈연관계는 없다.[35] 이 둘은 중국계 싱가포르인에 남자라는 점만 같을 뿐이다.
이 사람의 경우 대놓고 이단적인 개신교 신앙운동으로 지적받는 신사도 운동을 지지한다는 의혹이 강하며[36] 강한 호모포비아 성향이 있어 대놓고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반동성애/탈동성애 운동을 하거나 낙태 반대운동을 하는 등 전형적인 개신교 근본주의적 보수 성향을 보인다.
위의 경우 사실 신사도 관련 교회나 목회자일수록 사회문화적으로 거의 극우에 가까운 보수성을 보이니 딱히 이상하진 않다. 당장 한국 내 신사도 의혹 목사들도 태도가 똑같다. 로렌스 콩 목사의 신사도 의혹을 지적한 칼럼
그나마 위의 조셉 프린스나 로렌스 콩 목사는 콩히와 달리 전횡으로 문제가 되지도 않았고 아내 등 가족들의 이중생활 문제로부터도 자유로운 편이다. 로렌스 콩 목사의 경우 대놓고 아들인 다니엘 콩 목사에게 세습했으나 시티하베스트교회와 달리 이쪽은 별 문제시되진 않았고 매끄럽게 세습이 이뤄진 지 오래다.
사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교회를 구성하는 싱가포르의 경우 유교와 도교 사상의 영향이 강해 똑같이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 못잖게 대형교회로 갈수록 생각보다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성을 띄는 경우가 잦으며 이는 최대 교단 중 하나인 성공회도 예외는 아니다.
성공회는 중용을 중시하는 기조에 맞춰 색채를 덮을 뿐이라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성공회 신자들도 이러한 근본주의적 주장에 동조하는 경우가 잦다.[37]
개신교 교파 중 세력이 큰 편인 성공회의 경우 싱가포르 성공회는 홍콩 성공회와 함께 아시아의 중요 성공회 관구 중 하나이다.
싱가포르 성공회의 경우 여러 지역에 교회가 있으며 사제는 한국 성공회가 신부로 호칭하는 것과 달리 목사로 호칭한다. 목사 위에 주교가 있는 셈이다. 성공회와 루터교회는 주교제를 추구하는지라 주교제가 있다.[38] 대한성공회가 싱가포르 성공회와 사제 교환파송을 한다.[39]
부킷티마(Bukit Timah) 지역에 위치한 싱가포르 신학교(新加波神學院, Singapore Bible College)#는[40] 동남아시아 최대 신학대학으로 중국계 싱가포르인 기독교인들의 신학 공부 및 선교사 파송을 위해 만들어진 신학대학이다. 여기서 교육받은 수많은 중국계 싱가포르인 목사들이 중화권 각지나 동남아시아 주변국은 물론 세계 곳곳으로 파송되어 중국인 이주민들과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한다. 특히 여기 졸업생 절반 이상은 중국 대륙으로 들어간다. 싱가포르에 소재한 신학교가 가장 큰 이유는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에서 개신교 교세가 가장 큰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성공회 대주교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인 티투스 청(章剑文. Titus Cheong) 대주교이며 이 사람은 싱가포르 교회뿐만 아니라 이웃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교회까지 전담 중이다. 저 둘의 기독교인 비율이 매우 낮아서 그렇다.
4.3. 정교회
정교회의 경우, 한국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산하의 싱가포르 대교구가 있으며, 본국 뿐만 아니라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몰디브,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41]까지 총괄하는 제법 규모가 큰 교구이다.2008년 1월 9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시노드의 결정에 따라 홍콩·남아시아 대교구에서 분리 독립하였다. 소수의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자도 있다. 싱가포르 중심가에 있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가 바로 19세기 영국인을 따라온 아르메니아인 샤키즈 일가에 의해 형성된 오리엔트 정교회이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외에도 소수의 콥트 정교회와 인도인들이 주로 믿는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도 있다.
5. 이슬람
이슬람은 불교, 기독교와 함께 싱가포르 종교 지분을 공유하는 3대 종교의 일원이다. 싱가포르 사람들이 종교인 하면 불교 승려, 기독교 신부+목사 그리고 이슬람 이맘 셋을 기본적으로 떠올린다. 종교인 하면 스님과 목사/신부를 기본적으로 떠올리는 한국인과 비슷하다.원주민 말레이인과 일부 타밀인 그리고 중국계 싱가포르인+말레이인 혼혈인 프라나칸 중 이슬람을 택한 사람들이나 인도계 싱가포르인+말레이인인 인도계 프라나칸들이 주로 믿으며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예멘 등 이슬람권 이민자들이 늘고 있어서 기독교와 함께 증가 추세이다.[42]
주로 아랍연맹 회원국, 중앙아시아나 남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이나 이웃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수없이 건너오는 육체노동자들과 아랍인, 튀르키예인 사업가들을 중심으로 이슬람도 증가 추세다.
극소수 중국계 무슬림은 히잡을 착용하고 다니고 말레이인보다 훨씬 동아시아틱하게 생겨서 금방 눈에 띈다. 중국계 무슬림은 회족 혈통이거나 선조 때 말레이인과 접촉하던 페라나칸 출신의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며 개종자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소수고 그나마 성명이 타 중국계와 똑같아 구분이 안 된다.[43]
말레이인 거주지인 부기스의 아랍 스트리트에 가면 이 나라 최대의 모스크를 볼 수 있으며 그 외 여러 곳에 마스지드[44]와 무슬림 묘지가 흩어져 있다. 즉 말레이인 거주지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와 매우 비슷하다.
무슬림 인도계 싱가포르인[45]들이나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출신의 남아시아 이민자들이 싱가포르 곳곳의 호커센터에서 사테, 로티 프라타, 치킨 커리, 탄두리 치킨, 케밥 등의 음식을 팔고 있으며 모두 인기가 많은 저렴한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이다.
리틀 인디아에 가면 힌두사원과 함께 모스크도 많다. 그리고 차이나타운 한구석에도 나고르 더르가 모스크 등 각종 모스크가 널렸는데 원래 차이나타운 일대는 식민지 초기에 영국이 일종의 쿨리들을 위한 게토로 만든 곳으로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인도계 싱가포르인 쿨리들이 공존했기 때문이었다.
주요 공휴일로는 다른 이슬람권 국가와 같이 라마단의 끝을 기념하는 하지 라야 푸사(Hari Raya Puasa)[46]와 이슬람 달력의 신년을 축하하는 하리 라야 하지(Hari Raya Haji)[47] 등이 있다.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마카오 포함) 등 동아시아의 라마단 기준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여기 싱가포르 기준을 따른다. 그래서 한국의 이슬람 협회도 싱가포르와 교류가 많다. 사실 당연한 게 이 나라는 라마단 시종 기준을 이웃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기준으로 맞췄기 때문이다. 이는 브루나이도 마찬가지다.[48]
종파는 대부분 수니파이며, 소수의 시아파 및 아흐마디야 무슬림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수니파 무슬림들에게 차별을 받고 있다. 아흐마디야가 가장 심해 이 사람들은 무슬림으로 취급도 안하고 대놓고 사이비 종교 취급을 당한다.[49] 시아파 역시 말은 안 하지만 내심 이단으로 취급하며 은근히 차별 및 홀대가 심하다.
그 외 이슬람권 자체에서 범 종파적으로 유행하는 신비주의인 수피즘도 있다. 싱가포르 이슬람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이슬람과 사실상 동일하기 때문에 수피즘 역시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를 따라서 힌두교 및 소승불교, 그리고 전통 애니미즘 등의 영향이 강한 편이다.[50]
신양심은 인물마다 스펙트럼이 크며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카자흐/키르기즈 및 우즈베크, 위구르, 투르크멘인들이나 튀르키예인, 아제르바이잔인 등의 튀르크계나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인 무슬림들처럼 세속적인 사람들부터 중동과 아프리카 몇몇 나라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와하브파 등을 추종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을 가진 인물까지 다양하다.
10-20대 말레이인들 같이 세속적인 사람들은 히잡이나 할랄푸드 같은 거 신경도 안 쓰고 다니는 경우도 많이 있는 편이다. 특히 40대 이하 말레이인 여성들의 경우 더이상 히잡을 안 쓰고 민소매 셔츠와 레깅스나 원피스 등을 입으며 편하게 다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진짜 독실한 사람이면 얘기가 달라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에서 자주 보이는 얼굴을 다 가리고 눈만 내미는 니캅을 착용한 여성도 간혹 볼 수 있다. 특히 부모 세대가 강경 이슬람 신자일 경우 특히 그렇다.
다행히도 와하브파나 말리키파, 한발리파 등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부류는 소수다. 싱가포르 경찰청과 함께 내무부인 홈팀에 속하는 내부안전국(ISD)은 극단주의/원리주의 이슬람이 테러의 씨를 뿌릴 수 있어서 매의 눈으로 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모스크에서 설교 중 이맘이 과격한 지하드 같은 단어를 쓰거나 혐오 발언을 하는 등 맛이 간 소리를 할 경우 테러 선동으로 간주해 경찰에 신고하도록 한다.[51]
이슬람의 경우는 싱가포르는 말레이인들이 원주민이며 말레이인=이슬람교 신자로 정체성 자체를 규정한지라 말레이인들을 중심으로 무슬림들이 주로 많은 편이다. 말레이인 다음으로 큰 그룹은 타밀인 무슬림들이며 이들은 무려 19세기에 래플스 경을 따라 인도 동부 벵골 및 남인도의 하이데라바드[52]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역사부터 길다.
그 외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이슬람권 남아시아인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고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에서 사업차 이주한 아랍인들도 많으며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이자 주변국인 인도네시아 출신 가정부들도 많아 이슬람이 활성화되어 있다. 모스크만 해도 어지간한 동네엔 도배가 되어 있다.[53]
이렇게 이슬람 신자가 많은 덕에 싱가포르에선 히잡 착용을 공공기관이나 직장 내에서 하는 것을 두고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인종 및 종교 간 화합을 중시하는 싱가포르 정부라서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맥도날드와 버거킹은 돼지고기를 이용한 버거가 없이 닭고기가 주 메뉴이며 한식당이나 중국음식점, 양식당 등 비 이슬람권 음식점도 주방장이 말레이인이나 타밀인 무슬림이면 돼지고기를 팔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싱가포르 맥도날드를 이용했을 때 생각보다 먹을 게 없다고 불만하는 이유가 치킨버거로 모든 고기가 통일된 탓이 크다.
호커센터 역시 할랄 푸드 식기를 따로 모으는 식기수거함을 별도로 마련한다. 호커센터에서 파는 음식 중 인도계/말레이계 음식들은 100% 할랄 푸드이기 때문에 이슬람 교리 상 이들을 담은 식기는 비 할랄 식기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각 코너들에도 할랄 여부가 표기되며 페라나칸계 중국식당은 100% 할랄 요리만을 취급하는데 중국계는 물론 말레이인들도 즐겨 먹는 요리들이 페라나칸 요리인 바바/논야 요리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전형적 페라나칸 중국 요리인 락사의 경우 아예 돼지고기를 쓰지 않고 쇠고기 및 닭고기를 사용한다.[54]
한편 이슬람 신자들이 많은 나라답게 거리에서 히잡을 착용한 여성이나 페즈 등 이슬람 전통 모자를 착용한 남성들 숫자가 많다. 특히 말레이인 기성세대들은 더욱 그렇다. 말레이인들의 전통적 거주지인 부기스 일대에서 금요일 저녁에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싱가포르 법원 내에서는 어느 나라나 다 그렇듯 정장과 함께 전통의상 착용을 요구해 히잡을 쓰거나 페즈를 쓴 말레이인들이 법정을 드나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55]
참고로 한국에서는 주로 귀신 쫓을 때 무당이나 스님을 부르고 서양권에서는 가톨릭 신부를 부르지만 싱가포르에선 주로 한국의 무당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말레이인 주술사들을 부른다. 주술사들이 쿠란을 독경하며 귀신을 쫓는 의식을 행하고는 하는데 특히 흉가는 빨간 커튼을 치고 아랍어로 뭐라 쓴 글귀가 있어 금방 구분된다. 이런 집은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당연하지만 이사를 말린다.[56]
6. 도교
동아시아는 아니지만 동아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데다가 중국계의 비율이 극히 높고 불교의 비율도 가장 높은 31%인 만큼, 불교, 유교와 함께 동아시아 전통 삼교의 일원인 도교 신자도 상당수다. 비록 감소세지만 종교 자체가 아닌 문화적 영향력은 엄청나다.전체 인구의 8% 가량이 도교 신자로 꽤 많은 숫자이긴 하지만 종교로서는 세가 급감하고 있다.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를 비롯한 다른 중화권과 비교해도 싱가포르 도교는 종교로서의 그 축소세가 확실한 편이다.
저 8%의 숫자도 감소세가 뚜렷하여 도관에 출입하는 사람은 호기심에 구경오는 관광객이 아니면 노인들 뿐이다. 한국의 무속신앙이 종교로서의 지분은 거의 사라지고 불교에 흡수되다시피한 것과 똑같다.[57]
하지만 중국계 사회는 동아시아는 아니지만 동아시아 문화권의 일원인 만큼 생활과 문화에서는 한국의 무속신앙처럼 여전히 기복신앙으로 남았다. 한국에서도 무속신앙은 종교로서의 세는 거의 없어졌지만 불교와 융합되거나 한국식 개신교에 영향을 주거나 하며 고등종교에 흡수되고 기복신앙으로 남았는데 싱가포르의 중국계 사회는 한국 사회와 종교 지형이 거의 똑같다.[58]
애초에 동아시아 전통 유불선 삼교인 유교, 불교, 도교는 주로 유교와 도교가 종교를 넘어 아예 일상생활 속 문화로 녹아 들어버리고 이들과 교리를 공유한 불교와 전통신앙이 남는 형식으로 주로 진행된 와중에 도교라는 독자적인 종교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대만은 특이 케이스이다.[59]
이 때문에 싱가포르에서도 현재 도교는 종교 자체로서는 급감하고 한국의 무속신앙처럼 믿는 종교를 초월한 생활 속 기복신앙으로 봐야 맞다.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종교로서의 도교가 여전히 존재하고 10% 상당수의 통계를 보이는 홍콩 및 마카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불교나 무신론자에 흡수되며 하락세이며 심지어 아직까지 도교가 절대 다수로 굳건한 대만조차 2020년대 들어서는 도교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종교로서 믿는 비중과 상관없이 중국 전통 명절인 청명절, 단오절, 중양절 등에는 중국계 싱가포르인 기성세대들 사이에선 여전히 제단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이마저도 아랫세대로 가면 고리타분한 미신 취급해서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회사나 대학교 등에서 해당 명절마다 제삿상을 마련하고 향 태우는 정도다.
7. 기타 종교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의 영향으로 힌두교 신자 역시 5%나 된다. 그래서 힌두사원, 도관, 절, 교회, 모스크 등 다양한 종교 시설들을 한 동네에서 모두 볼 수가 있다. 힌두교는 말이 5%지 이 정도면 소수치고는 상당수라서 깔린 게 힌두교 사원이다.리틀 인디아에서는 특히 힌두인들의 비중이 높아 거리를 지나가다 힌두교 특유의 향 냄새와 각종 힌두교의 신들 내지는 현자들의 초상화나 조각상을 흔히 볼 수 있다.[60] 힌두교 향 냄새는 대게 한국인들에게 낯설고 향이 너무 진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향 피워놓고 카네샤나 비슈누 신상에 기도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1% 정도의 시크교 신자들도 있어 시크교 사원도 간혹 볼 수 있다. 그러나 시크교는 소수다.인도계 싱가포르인 중에서 타밀인이 아닌 펀자브 등 북인도 출신들이나 시크교로 개종한 타밀인들이 주로 시크교를 믿으며 인도 북부에서 건너오는 이민자 숫자가 늘면서 시크교도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의 모어는 타밀어지만 시크교도들은 종교 언어로 펀자브어를 쓴다.[61]
전술했듯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3대 종교가 각각 종교세를 분할하고 힌두교 및 시크교도 각각 5%와 3%나 되어 소수치고는 많아 종교시설이 곳곳에 있고 각 종교 성직자들이 서로의 종교시설을 자주 방문한다. 중국계 목사들의 경우만 해도 사찰이나 힌두사원, 모스크에 자주 방문한다.
특히 차이나타운에는 특이하게 절과 교회, 도관/공묘, 힌두사원, 모스크가 같은 블록에 있으며 다들 오래되었다. 당장 차이나타운 초창기 지역인 탄종파가 등의 중국계 교회들의 건축연도는 1910년대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대면 한국은 일제강점기 초기였다.
사이비 종교로 분류되는 종교들의 경우 활동을 제약당하는지라 찾아볼 수 없으며 특히 여호와의 증인은 활동 자체를 금지당한 지 오래라 찾아볼 수 없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도 활동을 금지당했다.#
[1] 대다수가 티베트 불교 및 상좌부 불교이다. 사실 중국의 불교는 도교와 유교같은 중국 토착신앙이 많이 결합되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싱가포르는 원래 구르카 유입이 많고 이들이 중국계 태국인 등과 통혼해 티베트 불교가 많다. 중국식 절은 도교와 완전히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 일부 절은 태국식 절이나 미얀마식 절이다.[2] 개신교 + 가톨릭이 대다수고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동방 가톨릭 등이 있다. 동방 정교회를 빼면 중국계 기독교인들이 거의 싱가포르 기독교인이라고 보면 된다. 일부라고 말하기에는 굉장히 높은 비율이며 사실상 불교와 기독교가 종교를 믿는 중국인의 절반을 나눈다.[3] 대다수가 수니파다.[4] 특히 고학력자 및 화이트 칼라 계층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지며 여성들의 기독교 입교 비율이 높다.[5] 이전에 비해 불교와 도교는 감소했고 이슬람과 기독교는 증가했으며 힌두교는 그대로다. 젊은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집안 전통만 불교인 무신론자들은 스스로 무종교로 응답하며 종교를 가져보려는 이들은 기독교계 사립학교 교육의 영향 덕에 가톨릭이나 개신교에 입문한다. 이슬람은 말레이인과 같은 언어를 쓰는 인도네시아인들이나 중동, 남아시아 각 국가 난민 유입으로 역시 증가 추세다.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에서 회족 출신이 아니더라도 말레이인과 통혼한 프라나칸들은 이슬람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힌두교는 특유의 교리 때문에 인도인이 아니면 믿기 힘든 종교이며 인도계 싱가포르인의 출산율도 낮은 편이라 세가 정체될 수밖에 없다.[6] 한국과 달리 음력 4월 15일인데 중국계 태국인들이 믿는 소승불교의 영향이다.[7] 불교 +도교 신자가 대부분인 대만과는 달리 정진요리가 그렇게 흔하진 않지만 찾아보면 고퀄리티의 정진요리 식당이 꽤 나온다.[8] Education and schools 문단 참조.[9] 싱가포르 교회는 19세기 식민지 초창기부터 지어졌으며 리콴유의 다문화 정책 덕분에 싱가포르 화교는 이웃 말레이시아 화교보다도 더 서구화되어 기독교 교세도 말레이시아의 화교 사회와 비교가 안 되게 크다. 말레이시아는 아직까지 불교나 도교식 장례식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싱가포르에선 기독교식 장례식을 접하는 게 좀 더 많으며 대형교회 및 동남아시아의 저명한 목사들 역시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다. 성공회는 아예 동아시아를 모두 전담하는 홍콩처럼 동남아시아 전역을 관할할 정도다. 아시아에서 추기경도 주로 한국 및 홍콩, 필리핀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나온다.[10] 1960년에 딱 한 번 적용되었다.[11] 크리스탕은 포르투갈인 혈통이 섞였으나 너무 오래 전에 인도화되어 포르투갈어를 못한다.[12] 싱가포르 성공회는 사제를 중국어로 목사(牧師)로 호칭한다. 한국 장로교/감리교/침례교와 똑같다.[13] 현 말레이시아 믈라카 주 일대를 다스리던 왕국.[14] 말레이인들은 이슬람을 믿는 만큼 무신론자를 영혼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데다 공산주의를 금기시해온 나라여서 무신론은 공산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꺼리는 성향이 좀 있다. 한국에만 있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싱가포르의 무신론 비율은 낮으며 무종교인들은 딱히 종교를 특정하지 않은 것에 가깝다. 리콴유는 본인이 종교를 특정하여 믿지 않았지만 반공 성향으로 공산당 좋은 일 시키기 싫어했으며 공산당을 탄압해서 싱가포르 공산당은 1970년대 이후 씨가 말라버렸다.[15] 이들은 크리스탕이거나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남인도 출신들이다.[16] 영국인들의 청교도적 개신교 신앙이 중화권 전통의 유가 사상을 만나서 중국계 싱가포르인 그리스도인들의 성향은 상당히 사회문화적으로 보수 성향을 띈다. 아랫세대로 내려가면 중도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성세대와 대형교회 목사들이 굳건하다. 담배의 경우 정부 정책적으로 최대한 안 보이는 곳에 숨겨서 팔기까지도 할 정도로 노이로제를 보인다. 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술병으로 병나발 불고 걸어다니면 바로 경찰에 체포당하고 벌금 물게 된다. 술 살 땐 비닐봉투로 가려서 안 보이게 넣어줘야 한다. 퀴어 축제는 정부가 허가조차 내주지 않으며 싱가포르 개신교계와 이슬람계가 한목소리로 반대한다.[17] 특히 50대 이상 기성세대에서는 불교 신자가 많다.[18] 다국적 기업 임직원이나 각종 전문직 종사자인 의사, 변호사, 회계사 그리고 관료, 경찰간부, 소방간부, 영관급 장교 등 고급 공직자들이 대거 개신교를 믿는다. 참고로 싱가포르 총리인 로렌스 웡도 개신교인으로 알려져 있다.[19] 사실 20%에 근접하는 개신교 비율은 필리핀이나 동티모르를 빼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이다. 필리핀과 동티모르는 스페인, 포르투갈 통치 시기에 기독교가 강제되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이다. 당장 싱가포르의 이웃나라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나 좀 위의 태국, 베트남, 미얀마 그리고 아예 대놓고 이슬람만 인정하는 브루나이 등과 비교하면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개신교 신자 비율이 높은 나라다. 불교가 국교 비슷하게 자리잡은 태국이나 꽉 막힌 이슬람 국가인 브루나이에서 싱가포르에 오면 분위기가 확실히 바뀐다.[20] 강(康)씨는 민남어로 콩(Kong)으로 발음된다. 광동어로는 홍(Hung)이다. 콩히 목사는 호키엔(Hokkien)으로 불리는 푸젠인 출신이다.[21] 그 와중에 출소하자마자 대부급 존재인 조용기 목사와 친분이 두터운 이영훈 목사를 찾아가고자 방한한 적이 있었다. 조용기 목사는 생전에 콩히의 대부로서 설교까지 하라고 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는지라 방한 후 주일예배에서 설교도 여러 번 했다.[22] 몇 km만 더 가면 말레이시아 조호르 주 국경인 투아스가 나오는 곳이다.[23]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즈음에 분산투자 목적으로 리카싱, 스탠리 호, 리샤우키 등 5명의 홍콩 재벌들이 만든 대규모 쇼핑몰 겸 사무동 복합건물이다.[24] 훗날 부목사들이 되는 그의 중국계 남녀 제자들은 원래 지역 성공회 교회의 성경공부 스터디 학생들이었다. 콩히는 해당 모임의 리더를 맡아 영어와 표준중국어로 성경공부를 진행했고 신학 배경이 없음에도 언변이 뛰어나 추종자가 많아졌으며 나중에는 신학을 공부해 전도사 신분이 된다. 물론 기존 싱가포르 교회와 목사들은 그를 검증되지 않은 이단이라고 깠다.[25] 본명은 호이우선(Ho Yeow Sun, 何耀珊)이다. 이 사람은 광동인 혈통이라 이름이 광동어로 되어 있는데 호(何)씨는 광동계 성씨 중 가장 많은 성씨 중 하나다. 홍콩 가수 겸 영화인 허관걸이 그녀와 같은 성씨이다.[26] CCM이 아닌 진짜 세속 가수다. 이 사람의 입직 경로에 대한 말이 많은데 영어 위키백과의 관련 항목에 따르면 호선은 1992년부터 남편과 함께 시티 하베스트 교회를 창립하고 사역하다가# 2000년에 대중문화를 통한 선교라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사역을 위해 그만두고 가수가 된 케이스다.[27] 대놓고 제목이 중국 술인데다 뮤비가 너무 야하기 짝이 없다. 대놓고 속옷만 걸치고 야한 춤을 추는 등 선정적이기 짝이 없는 뮤직비디오이며 무엇보다 개신교에서 금기시하는 술을 다룬다. 그래서 싱가포르 기독교인들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불문하고 조롱 섞인 반응을 보였다.(사실상 저 교회 신도들만 빼면 거의 모든 싱가포르 기독교 신자들이 이를 좋지 않게 봤다) 사실 호선은 자신이 미국에서 세속 가수를 하는 것을 숨기고자 앨범 제목이기도 한 차이나 와인(China Wine)이라는 가명으로 앨범을 냈는데 남편인 콩히 목사가 떠벌리고 다녀서 알려졌다. 나중에 호선의 미국 진출은 남편을 몰락시키는 트로이 목마가 된다.[28] 이 때 세습을 둘러싼 분란 통에 여러 부목사들이 떨어져 나가 독립했다.[29] 보통 교회 같으면 제아무리 담임목사라도 품위가 없다고 난리가 날 일이다.[30] 이를 하이브리드 사역이라 하며 대중문화를 이용한 선교라고 부르기는 했다. 기독교가 쇠퇴하는 서양에 재접근하려면 어느 정도는 세속적 문화에 코드를 맞춘다는 것으로 취지는 좋았는데 과정이 불투명하고 매끄럽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31] 사실 세속가수로서 미국 진출이 가명까지 써가며 굳이 욕심내야 할 일은 아니었던게 호선은 이미 콩히의 사모이자 싱가포르 국내와 중화권에선 중국어 CCM을 많이 불러 세속가수 뿐만 아니라 CCM가수로도 명망이 이미 있었다. 괜히 거리도 먼 미국에 그것도 세속가수로 진출하려고 결과적으로 남편이 헌금에 손대게 만든 건 전적으로 호선 본인의 실책이 맞다. 문제는 현 시점까지 호선 본인이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없어서 문제다.[32] 그래도 2019년 출소하자마자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가려 방한했고 거기서 자신을 양아들이라 지정한 콩히의 대부 조용기 목사, 역시 친분이 있는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등을 만나고 기도원에선 예배 설교까지 하고 갔다. 현재 정신적 문제를 겪는 외아들 돌봄에 집중한다고 하는 말도 있다.[33] 물론 대부분의 싱가포르 기독교인들은 이런 주장을 미친 소리 취급하며 콩히 부부가 사과 한 마디 없는 것을 극딜한다.[34] 번영신학을 강조해 교회 몸집 불리기에 치중하는데 사실 도교 사상이 개신교로 융합되며 기복신앙적 면이 강한 중국계 개신교 사회에서는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기복신앙적이고 물질 만능주의적인 면이 강하게 남아있으며 대형교회로 갈수록 심해진다. 앞의 시티 하베스트 교회의 참극도 물질 만능주의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다. 무속 신앙이 융합된 한국 개신교가 지나치게 성장 위주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유불선이 융합된 동아시아 교회 자체의 한계점이 보이는 부분이다.[35] 애초 둘의 성씨는 한자가 다르다. 한국에서 같은 조씨도 본관에 따라 趙/曺씨 등으로 서로 한자가 다른 것과 똑같다.[36] 정작 대형사고를 친 콩히는 신사도 운동에 부정적이라서 설교 중에 신사도 운동을 여러 번 까며 올바른 믿음이 아니고 신비주의일 뿐이라고 반박한 적이 있었다.[37] 더구나 반동성애 운동은 싱가포르 원주민들인 말레이인들이 믿는 이슬람과도 코드가 잘 맞는다. 그래서 동성애 비판에는 개신교계와 이슬람계가 대동단결한다. 싱가포르 정부 자체가 성소수자에 비우호적인 것도 이러한 종교적 풍토 때문이다. 이 나라에는 얼마 전까지 소도미법 비슷한 것도 있었다. 리셴룽 총리가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하기 전까지 유일하게 비 이슬람 국가에서 동성애 처벌법이 있던 나라였다. 리셴룽 총리의 지지도가 범국민적으로 높은 이유가 깐깐했던 아버지와 달리 유연하고 진보적인 개혁 성향을 보이는 덕분이다. 리셴룽 총리는 이외에도 아버지 대에 만들어져 다소 억압적인 여러 법규들을 손보며 시대에 맞게 유연하게 바꾸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 중이다. 2020년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한 후 더욱 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38] 사실 감리교의 감독직도 원래는 Bishop(주교)이다. 한국 감리회는 가톨릭과 혼동을 막으려 감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39] 싱가포르 성공회는 사제를 목사로 호칭하여 대한성공회와는 사제를 일컫는 한국어와 중국어 명칭이 다르다. 영어 명칭은 동일하다.[40] College라고 썼지만 2년제 전문대학이 아닌 버젓한 4년제 신학대학이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세웠으며 주변국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개신교인들도 여기로 와서 신학을 공부하고 자국에 선교하러 나선다.[41] 남아시아는 힌두교 및 이슬람교 문화권이라서 정교회 신자가 극소수라 할 수 없이 그리스도인이 많은 싱가포르에서 싸잡아 관할한다.[42] 할리마 야콥 전 대통령이 인도계 프라나칸이다.[43] 싱가포르인 여성 나노과학자로 유명한 재키 이루 잉(Jackie Yi-Ru Ying)이 이런 경우다. 30대 초반에 개종하여 오늘날 무슬림 여성 과학자로도 이슬람 세계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다.[44] 모스크의 아랍어 원어가 마스지드로 성원으로 번역된다.[45] 무슬림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은 꽤 많아서 인도계 인구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대통령인 할리마 야콥을 배출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마이소르 왕국이나 하이데라바드 술탄국 등 남인도 지방의 이슬람 국가 출신들이다.[46] 아랍어로는 이드 알 피트르[47] 아랍어로는 이드 알 아드하[48] 기념일 이름이 말레이어로 되어 있어 아랍어 이름을 쓰는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중앙아시아/튀르키예 등 타 이슬람권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날짜는 동일하다.[49] 아흐마디야는 메카 및 메디나 성지순례 자격까지 박탈당했을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는다.[50] 이슬람이 처음 전파될 당시 주술사들이 쿠란을 들고 귀신을 쫓았다든가 현재도 주술사나 점성술사들이 쿠란을 갖고 다니며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고 의식을 치르는 등 전통 애니미즘 요소가 여기저기 잔존해 있다.[51] 여담으로 싱가포르를 건국하고 종교화합을 주도했던 리콴유도 개인적으로는 이슬람교를 좋지 않게 봤다.[52] 마이소르 술탄국 및 하이데라바드 술탄국, 구자라트 술탄국 등 여러 이슬람 국가들이 남인도 일대에 있었다.[53] 싱가포르는 태국 방콕 및 홍콩과 함께 아랍인들이 동남아시아에서 굉장히 많은 도시에 속한다.[54] 덕분에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닭 소비량이 가장 많은 국가로 손꼽힌다. 힌두교는 소, 이슬람은 돼지를 금기시하여 그 중간선이 닭밖에 없어서이다.[55] 말레이인 남자들의 경우 페즈를 쓰고 양복을 입는 사람도 많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정치인들과 똑같다.[56] 부동산 업자들이 골라주지 않는 또 하나의 집이 사채업자(Loan Shark)들에게 당해서 빨간 페인트가 칠해지거나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집이다. 말레이인이나 인도계 싱가포르인 혹은 싱가포르에서 사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거주지들은 경제 사정이 상대적으로 어려워 이렇게 당한 곳이 꽤 있다. 물론 이렇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채업자들은 100% 검거되어 태형까지 받는다.[57] 물론 도교나 무속은 불교와 엄연히 다르다. 한국에서만 해도 불교 승려들은 공식적으로 무속행사에 참여하거나 사사로이 사주를 봐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58] 여기에 한국은 도교도 무속에 합쳐졌다. 관우나 악비를 충무공 이순신 장군, 임경업 장군이나 남이 장군 등과 함께 신으로 섬기는 무당도 많다. 이들은 군신을 섬긴다며 조선시대 구군복을 무복으로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의 경우 샤머니즘이 전통인 알타이 계열인지라 무속신앙이 워낙 기반이 탄탄해서 정작 도교 자체는 이미 무속에 흡수되어 존재가 없어졌다. 한국은 그래서 삼교에 도교 대신 무속이 들어간다.[59] 한국은 전술했듯 도교까지 무속신앙에 흡수됐고 삼교의 선은 도교가 아닌 무속신앙이다. 유교는 독립된 종교라기보단 윤리와 철학이며 공자 자체가 괴력난신을 금한 덕에 따로 종교로 믿는 것보단 생활윤리로 자리잡아 현대 한국에서는 기독교를 믿는 가정인데도 전통은 유교를 고수하는 가정도 많다. 사실 유교 내에서도 다양한데 조선 시대 후기에 전국으로 퍼진 성리학이 위주다보니 다른 중화권에 비해 보수적인 면모도 보인다. 그렇다보니 유교 전통이 합쳐진 개신교 근본주의적 성향이 강하기도 하다. 물론 중화권의 유학은 한국과 달리 성리학 외에도 실용주의적인 양명학과 공자의 가르침을 복원하는 고증학이 중심이라 어느 정도 개방성은 있었다. 그래서 대만이나 홍콩에서의 유교가 한국에 비해 개방적이다.[60] 리틀 인디아에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게 힌두사원이며 그 다음이 압둘 가푸르 모스크, 아귈라 모스크 등 모스크들이다. 힌두식 채식과 이슬람식 할랄 푸드가 식당가를 양분하며 여기서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찾을 수도 없다. 중국계 식당들도 알아서 할랄 인증을 받고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취급 안 한다.[61] 참고로 싱가포르 초창기 때 영국이 치안유지를 위해 보낸 병력이 시크교도와 무슬림으로 이루어진 세포이 즉 라스카린 용병들이다. 홍콩에서는 아예 시크교도가 경비업을 한때 장악할 만큼 시크교도 군인을 많이 데려왔으나 싱가포르는 남인도에서 주로 사람들을 데려와 시크교도 비중이 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