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웹소설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2. 주역
2.1. 조범석 중장
사람은 말이야, 응? 정도(正道)를 걸어야 해. 샛길로 가봤자 그 끝엔 좋을게 없다고. 그냥 국회의원, 장관, 총리 하면 되잖아? 네가 가려는 길 끝에 절대 천국은 없다고! 해본 놈 말 좀 듣자!
자세한 내용은 조범석(웹소설 캐릭터) 문서 참고하십시오.2.2. 아르민 로젠바움
신이 있다면
그는 내가 독일을 다스리길 원하신다.
그는 내가 독일을 다스리길 원하신다.
오직 권력을 가진 자만 자유로울 수 있다.
나머지 피지배자는 권력자가 던져주는 자비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고.
자세한 내용은 아르민 로젠바움 문서 참고하십시오.나머지 피지배자는 권력자가 던져주는 자비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고.
3. 독일
3.1. 주인공 일가
- 브루노 로젠바움
아르민 로젠바움의 아버지. 볼품없는 외모라는 설명과 아르민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힘에서 밀린 것으로 보아 비리비리한 체형으로 보인다. 자수성가해서 도이체방크에서 근무하는 엘리트 금융인이지만, 집안에서는 술마시고 들어와 매일 아내를 폭행하는 가정폭력범이다.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이유는 자신의 재력으로 아내 아말리아와 결혼할 수는 있었으나 아말리아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러나 아내가 사망하며 아들에게 남긴 유언을 보면 아내는 의외로 남편을 사랑했기에 불륜할 생각이 없었고, 이 모든 것이 브루노의 자괴감에서 나온 피해망상이었다.
주인공이 비행기 회사를 차린 이후에는 아들의 권유로 은행 일을 그만두고 회사의 재무를 맡게 되었으며, 쌓은 인맥으로 인재들을 스카웃해서 회사의 허리를 담당하게 된다. 아르민이 루덴도르프와 충돌해 사장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고 낙하산 사장이 온 후에도 회사에 남았으며, 오히려 낙하산 사장과 적극적으로 붙어먹으면서 아들이 세운 회사의 돈을 횡령했다. 아르민이 최초에 아버지를 스카웃했을 때 품었던 기대, "아버지가 아들 회사에서 횡령을 하진 않겠지."도 평시 상황에서는 달성되었고, 이후 본인이 아들에게 변명한대로 그러지 않았으면 아르민의 부친인 그가 회사에 남을 수 있었을 리 없다. 문제는...
아르민이 회사를 되찾고 아내인 아밀리아가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자 뷔르템베르크 지사 쪽 임직원 아이인 마리아 바우어를 데려왔다. 그러나 바우어는 1911년에 사망했지만 마리아는 1912년생이었고, 브루노와 얼굴이 너무 닮아있었다. 즉 불륜을 저지른 것은 아내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었던 것(...). 이에 분노한 아르민은 브루노를 죽도록 구타한다. 심지어 평소에는 억제기 역할을 하던 조범석 마저도 죽이지만 않으면 되니까 권총으로 패자며 이를 갈았다. 애초에 조범석이 전생에 쿠데타를 시도한 원인 중 하나가 가족의 억울한 죽음이었던 만큼 가족애가 투철한 인물인데 아내가 죽자마자 숨겨둔 자식을 데려오는 모습을 보고 꼭지가 돌아버리지 않는게 이상할 판이었다. 그 후 부친을 해외 지사로 치워버리며 그냥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셨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자신의 혈액을 모두 아내의 가문의 피로 바꿔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 단순히 자신의 핏줄에 대한 증오심으로 볼 수도 있지만 체펠린의 사망시 독백과 가족에 대한 조범석과의 대화를 생각해보면, 아내의 친가라서가 아니라 체펠린 일가를 더 가족처럼 생각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르민에 의해 해외로 사실상 추방된 이후 로젠바움사에서 횡령했던 돈으로 스페인에서 향락에 빠져 여생을 보낸다. 매춘에 빠져 지내다가 결국 매독에 걸렸고, 말기 신경매독으로 정신이상을 일으켜 스페인의 한 창녀촌 뒷골목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 본래 이런 사정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반역 혐의로 재판받던 빌헬름 황태자가 아르민을 아버지가 외국에서 얼어죽게 한 놈이라고 비난하면서 독일 국내에 알려져버렸고, 아르민은 어쩔 수 없이 형식적으로 브루노의 묘지에 참배한다. 괴링은 아르민이 브루노를 증오하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래도 자신에게는 잘 대해주셨다며 개인적으로 따로 헌화한다. 이걸 본 아르민의 반응은 '잘하고도 욕먹을 놈'
- 아말리아 로젠바움
아르민 로젠바움의 어머니. 볼품없는 남편과 달리 상당한 미녀이지만, 불경기를 맞아 집안이 빚을 지게 되자 빚을 탕감받는 대신 옛 유대인 남자 애인과 헤어지고 젋은 돈많은 엘리트였던 브루노 로젠바움과 결혼한다. 그러나 남편 브루노 로젠바움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는 걸로 보였고 남편은 피해망상이 심해 그녀를 의심하며 폭력을 가했다. 그나마 주인공인 아르민이 빙의를 겪고 우등생이 되고 성장해서 브루노를 제어할만한 힘을 가지게 되자 가정폭력이 줄고 아들에게 술을 먹이려는 남편을 들들 볶기도 하는 평범한 가정에 가까워졌고, 비행 실험 성공 후에는부모님이 아들에게 아부하는화목한 가정이 되었다.
유대인 의사 헤르만 에펜슈타인[1]과 불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여서 아르민과 독자들에게는 남편 브루노보다 못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때 감염되어 사망한다. 아르민의 사업이 성공한만큼 부유한 삶을 누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럼에도 아낌없이 베풀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몸을 아끼지 않다가 걸렸다고 한다. 불륜 관계를 추궁한 아르민에게 남긴 유언으로 보아 불륜은 피해망상이 있던 브루노와 그 성격이 유전된 아르민이 오해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죽기 전 아들에게 아버지 처럼 되지말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라고 유언을 남기고 사망한다. 이후 브루노의 불륜 사실이 터지며 평가는 사실상 180도 반전. 게다가 불륜으로 의심받았던 문제의 그 장면은 오히려 남편을 혼내겠다고 하는 에펜슈타인을 말리던 상황이었다. 이때 한 말을 보면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 페르디난트 그라프 폰 체펠린
비행기 개발에 서두르던 주인공이 적절한 후원자를 찾다가 만나게 된 군인 출신의 발명가. 자금 후원과 기술 습득을 위해 주인공이 인맥을 끌어오고 추천서를 받아가며 의도적으로 체펠린 백작에게 접근했다. 다행히 비행선만 좋아하는 외골수 발명가는 아닌지라 비행기의 가치를 알아보고 주인공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자금이나 기술 방면으로만 협력한 것 뿐만 아니라, 유명세가 없던 주인공이라면 접촉하기 힘들었을 마이바흐도 체펠린 백작이 나서서 소개시켜주는 등 주인공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실제 역사처럼 비행선 제작을 포기하지 않고 여러번 실패를 경험하여 큰 손실을 입고 좌절했지만, '체펠린이라는 이름을 항모에까지 붙이려 할 정도로'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르민이 정신적, 경제적 위기를 겪고 좌절하는 체펠린 백작에게 달라붙어 혀가 아플 정도로 위로를 해 주었다. "(후원할 돈이 없는데) 자네는 왜 나를 떠나지 않지?" 라는 체펠린 백작의 질문에 대해 "그야 우리는 하늘을 날 테니까요." 라는 주인공의 답변은 아르민의 속셈을 모른다 치면 그야말로 명문. 그 후 식사 때 체펠린 백작 부인이 챙겨준 고기 양이 처음 왔을 때의 2.5배 정도 늘어났고 체펠린 백작의 딸들도 본격적으로 아르민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아르민의 비행기가 대세가 되자 각자 갈길을 가는게 낫겠다는 의견을 표했으나 카이저의 미래를 아는 아르민은 연을 끊지 않는 길을 택하였으며, 이후 역으로 자금지원을 받아 비행선 개발에 성공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단순히 하늘을 꿈꾸는 도전자인 듯했던 인간이 비행선 성공하자마자 융커 아니랄까봐 비행선에 폭탄을 가득 실어 런던으로 날려보내 빅토리아 여왕의 무덤을 폭격해버리자고 외치는 게 개그.
1차 대전 중반이 넘어가며 비행선의 전술적 실용성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 밝혀지자 우울증에 걸렸고 아르민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원래는 본인 집에서 안움직일 생각이였는데 아르민의 집에 커피와 담배가 넘쳐난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이사했다고. 원 역사보다 2년 더 살고 1919년 베르사유 조약 체결을 본 후 사망한다. 오히려 자신의 역작인 비행선은 쓸모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이 불구가 되는 꼴까지 보았기에 독일 통일의 대업을 프로이센 놈들이 망쳤다며 절망에 빠져 죽어갔으며, 아르민에게 전쟁으로 죽어간 수백만 독일 건아들의 복수를 위해 반드시 런던과 파리를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 장면은 지금껏 사위 집에 얹혀살며 딸에게 야단맞기도 하는 등 훈훈하게 지내던 할아버지라는 이미지와 전혀 달리 처절하기 그지없어서, 아르민의 손목을 부러트릴 듯이 부여잡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서는 유언했으며,[2] 영국에서 로젠바움 총통의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느니 블러핑이느니 돈벌레 자본가가 전쟁을 할 리 없다느니 하면서 티격거릴 때 "그는 체펠린의 유언을 이어받은 자요!" 라는 외침이 나온 것을 보면 유언의 내용이 외부로 알려진 듯하다.
이후 런던과 파리 자체가 불타지는 않았지만 영국의 자존심이던 본토 함대가 전멸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4주만에 독일에 항복하며 그의 유훈은 어느정도 이뤄졌다. 또한 원역사와 달리 그의 이름을 딴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은 완성되었으며,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영불해협 해전에 투입되었으나 격침되었다. 영국의 패전이 사실상 확정된 뒤에 영국군의 마지막 발악에 침몰한 것이 체펠린 백작이 영국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을 본 후에야 마침내 눈을 감았다는 평이 나왔다.
- 에르나 폰 체펠린 → 에르나 로젠바움
원래의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체펠린 백작의 둘째 딸. 첫째 딸보다 주인공에게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했으며,[3] 주인공과의 연을 강화하려던 체펠린 백작의 계획에 의해 아르민 로젠바움과 결혼하여 로젠바움 부인이 된다. 아르민은 사실 에르나와 더 일찍 결혼할 수도 있었으나 너무 일찍 아들을 낳았다가 1차 대전에 징병되어 죽을까봐, 그리고 카이저가 체펠린 백작을 별로 안 좋아해서 결혼이 몇 년 미뤄졌다.
장남 페르디난트와 둘째 오토를 낳는다.[4] 아르민이 자신이 직접 체벌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제가 안될까봐 못하고 있다보니 자식들에 대한 체벌도 도맡아 하고 있다. 마리아를 데려왔을 땐 혼외자가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수양딸로 받아들이고 친딸이나 다름 없게 돌본다. 대공황 후 아르민이 대통령이 되며 자신은 퍼스트 레이디가 되었고 남편이 곧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독재자가 되었지만 "로젠바움주의인지 롯데주의인지 모를 소리만 하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그의 사상이나 정치에는 일절 관심이 없으며, 남편을 꽉 쥐고 있는 여장부. 아르민이 자식들에게 그 거대한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는 시원하게 따귀를 갈겼다.
자식들이 다 결혼에 관심 없어하는데 일가의 후광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아르민이 장남 페르디난트는 시베리아로, 차남 오토는 중국으로 보내버린 후 관계가 악화되어 밥을 차려주지 않기 시작한다. 이후 아르민이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오토를 장개석의 양녀 장야오광과 결혼시키기로 결정하자 결국 관계는 완전히 파탄나고 별거 상태에 들어간다. 이 부부관계는 아르민이 자식들을 불러모아 함께 순방 겸 세계일주를 시작하면서 간신히 회복된다.
- 페르디난트 로젠바움
아르민과 에르나의 장남. 동생 오토보다 철든 모습을 보인다. 전후에 마리아가 자신의 고모라는 사실을 알고서 사춘기를 겪었다고 한다. 아르민이 회사를 물려주지 않을거라는 말에 처음에는 반발하려고 했지만, 나라를 바꾸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설득, 그리고 아르민이 정치를 하면서 보인 살벌한 면모를 보고 업보를 쌓기 싫어서 납득한다. 아헨 공대에 진학해서 물리학자가 되었는데, 아버지에게 핵무기의 기초 개념을 받고 이를 연구하게 되었으며 아르민이 퓌러가 된 후에는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소련에 파견된다. 그리고 현지에서 만난 유대계 러시아인과 결혼하려고 한다. 사실 이 여자는 소련이 보낸 스파이였고, 아르민은 이를 눈치챘지만 일부러 흠결을 내 페르디난트를 후계자 구도에서 배제할 목적으로 그 여자의 일가친척을 전부 독일에 보내는 것으로 스탈린과 합의한다. 결국 1939년 최초의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다. 태평양 전쟁 발발 후 미국의 핵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견문을 넓히러 미국 여행을 간다는 명목으로 파견된다. 소련 스파이 출신 여자와의 사이에서 자식 셋을 낳았다.
- 오토 로젠바움
아르민과 에르나의 차남. 순무와 루타바가를 먹기 싫다고 투정부리다가 에르나에게 싸대기를 맞기도 하였다. 사실 아르민의 지하실에는 통조림이 쌓여있었고 아르민의 재력이면 웃돈을 주고 암시장에서 다른 음식을 사올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순무와 루타바가를 먹였다. 우선 아이들에게 세상 물정을 알게 할 필요가 있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감자와 고기를 먹는다고 자랑이라도 했다가 정치적으로 곤란해질 수도 있기 때문. 전후에는 전쟁 시기에 제대로 못 먹은 영향으로 먹보가 되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장교로 임관했는데 조범석의 말로는 무능할 정도는 아니라고. 형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방침에 불만을 표했지만 자기 아니었으면 평민이 장교가 됐겠냐는 말에 찌그러진다. 아르민이 정계에 진출하기 전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던 연인이 병으로 사망한 이후 쭉 미혼으로 지내서, 연을 맺으려고 달려드는 불나방들에게 질린 아르민이 대사관 주재무관으로 파견할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중국으로 파견되었는데,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서 난징 대학살이 벌어졌을 때 대사관을 개방해서 많은 중국인들을 구한 공을 세웠다. 이후 표면적으로는 일개 장교지만 사실상의 독일 대사 노릇을 하게 된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잘생긴 외모 덕에 여러 여자들과 문란한 생활을 했는데, 그렇게 건드린 여자들 중 장개석의 양녀 장야오광이 있었다. 아르민에게 자신이 장야오광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자 아르민은 오토를 장야오광과 결혼시켜 중화민국과의 결혼 동맹을 추진해야겠다며, 에르나와는 일말의 상의도 없이 결혼을 명령해버린다.[5] 장야오광과의 사이에서 자식 하나를 낳았다. - 장야오광 → 야오광 로젠바움
장개석의 양녀. 중화민국과 동맹을 강화하려는 아르민은 오토가 장야오광과 교제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자 바로 결혼하라고 지시한다.
- 마리아 바우어 → 마리아 로젠바움
브루노 로젠바움이 1911년 사망한 로젠바움사 뷔르템베르크 지사의 임직원이었던 바우어 씨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본 혼외자. 즉 아르민의 이복여동생인데 심지어 1912년생으로 아르민의 둘째 아들인 오토보다도 어리다. 모친마저 사망한 후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아말리아가 사망하자마자 브루노가 고아원에서 데려온다. 아르민은 브루노의 행동에 분노했지만 그렇다고 마리아를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보내거나 인간쓰레기인 브루노가 키우게 할 수는 없어서 자신과 에르나가 키우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로젠바움 부부가 혈연 관계가 없는 전쟁 고아를 입양한 것으로 과거를 세탁한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철이 들었고 입양아로 포장된 사생아라는 자신의 위치를 불안하게 여기는지 은근히 가족들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오빠(사실 조카) 오토보다도 훨씬 철이 들어서 오히려 오빠를 돌봐주고 있다.
아르민이 총통이 된 이후 결혼도 하지 않고[6] 아르민을 위한 도구로 살겠다고 선언하며 어린 시절에 버림받은 트라우마로 아르민의 신봉자가 되었음이 드러났다.[7] 아르민의 소개로 신분을 세탁하고 그의 동서이자 국가안전부 장관인 브란덴슈타인 백작의 비서로 일하게 되었고, 승진을 거듭하며 조직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시대지만 독재 국가를 지탱하는 공안기관의 요직을 맡게 되어서, 향후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8] 총통 암살 음모를 이용해 대 폴란드 개전 명분을 만들자는 대담한 계획을 내놓는데, 아르민은 마리아의 초안은 너무 리스크가 크다며 반려시키지만 이후 이를 보완해서 잘 써먹는다. 이후에도 아르민은 죽일 생각까진 없었던 빌헬름 2세를 죽일 계획까지 짜놓고 '우리도 왕 목을 잘라볼 수 있게 되었다'며 싱글벙글하다가 다시 반려당하는 등 아르민보다도 훨씬 과격한 면모를 보인다. 성격파탄자 브루노의 성향을 물려받은 상태에서 초과격파인 브란덴슈타인 백작에게 교육받은 것이 원인인 듯.
로젠바움 사후 브란덴슈타인과 함께 슈타지에서 은퇴해서 상이용사와 고아들을 돕는 NGO를 운영하는데, 이 단체가 키운 고아들의 상당수가 군부, 공화국 수비대, 슈타지에 취직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정권을 흔들 수 있다. 이 단체를 운영하며 개인적으로 자신의 우상이자 아버지 겸 오빠인 아르민에 대해 수십년간 연구했고, 아르민은 단순히 통찰력이 좋은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미래를 보고 왔다는 진실에 가까운 결론을 내렸다. 또한 아르민처럼 담배를 즐기게 되었다. 프란츠 바이젠바움의 개혁안을 좋게 평하고 정권을 잡도록 도와주기로 한다.
1980년 조범석이 스위스 은행의 로젠바움 비밀 금고로 찾아왔을 때 이를 예상했다는 듯 조범석을 맞이한다. 조범석에게 그간의 진실에 대해 들은 후 계속 자신을 지켜봐왔던 조범석을 삼촌으로 대하며 아르민과 안부를 나눈다.
사후에는 유전자 검사로 브루노의 친딸이었다는 복잡한 가족관계의 진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 헬렌 폰 체펠린 → 헬렌
폰브란덴슈타인-체펠린
체펠린의 첫째 딸이자 실존인물. 잘생긴 아르민에게 어느정도 호감은 있었으나 아르민보다 5살 연상으로 나이 차가 많아서인지 에르나와 달리 아르민에게 적극 관심을 표하지는 않았다.
- 알렉산더 카를 폰 브란덴슈타인 → 알렉산더 카를
폰브란덴슈타인-체펠린
헬렌과 결혼한 체펠린의 첫째 사위, 즉 아르민과 동서 관계. 귀족 출신이기에 체펠린 백작의 작위는 귀천상혼을 한 아르민이 아닌 이쪽이 계승한다. 로젠바움 집권 후 국가안전부(슈타지) 장관이 되었으며 '베를린의 교수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의외로 로젠바움주의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으며[9] 로젠바움 정권과 운명공동체가 되었다는 실리적인 이유로 로젠바움 정권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아르민이 그에게 슈타지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긴 것도 인척 관계로 엮인 운명공동체라는 것과 이런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성향 때문. 폴란드인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반역자들을 척살하는데 아르민이 너무 무르다고 할 정도로 인물의 본래 성격도 과격한 편이다. 로젠바움 사후 마리아와 함께 은퇴해서 상이용사와 고아들을 돕는 NGO를 운영한다.
- 에르베르트 체펠린 브란덴슈타인
1973년의 수도방위사령관. 이름으로 보아 헬렌의 아들 혹은 손자로 추정된다.
3.2. 로젠바움 주변
- 휴고 융커스
아르민이 회사를 설립할 때 아헨 공과대학교 교수였던 그를 스카웃해서 함께 비행기를 개발한 원로.
- 아우구스트 오일러
실존인물로 원 역사에서 항공 면허를 딴 공식적으로 최초의 독일인 파일럿. 예비 사위를 비행기라는 검증되지 않은 날틀에 태우지 않으려고 체펠린 백작이 준비한 인물로 사상 최초의 파일럿이 되었다. 이후 비행기 사업을 시작했지만 로젠바움사에 밀리자 아르민이 인수 후 로젠바움사의 중역이 되어서 함께 만주까지도 다녀온다. 아르민이 정권을 잡은 뒤 교통부 장관에 임명된다.
- 헤르만 괴링
에펜슈타인과의 인연으로 헤르만 괴링이 갓난아기였던 시절부터 아르민과 친분이 있었다. 권력을 잃고 몰락한 아버지는 집에서 쫓겨나고 모친과 대부 에펜슈타인 박사가 동거하면서 괴링 형제가 있는 곳에서 대놓고 불륜을 하는 개막장 집안에서 자라고 있었으며, 그런 가정환경에서 헤르만이 자라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던 아르민이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보호자 노릇을 하며 키워줬다. 성인이 된 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파일럿으로 입대한다. 아르민과는 워낙 어릴 적부터 알아왔기에 유치한 농담을 하고 노는 절친한 형, 동생같은 사이이며 헤르만은 아르민을 자신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종전 이후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패배자가 된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던 중 아르민의 제안으로 돌격대의 창립 멤버가 된다. 아르민의 집권 후 법무부장관이 되었고, 독재체제 구축 후에는 민족혁명당 원내총무가 되었다. 아르민이 무에서 독재 권력을 구축하는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봤기 때문에 실제 인물과 달리 조심성을 뼈에 새기게 되어서 내심 후계에 대한 야망을 품으면서도 착실하게 일한다. 절대권력자인 퓌러의 최측근을 경쟁하는 3인 중 한 명.
개인적으로는 실제 인물처럼 덕후 성향이 있으며, 아르민 정권이 부정부패를 철저히 감시하고 처벌하는 만큼 실제 인물처럼 부패하진 않고 청탁이 있으면 작중 시대 기준으로 뇌물로 취급받지 않을 정도로만 '성의'를 챙긴다. 이는 내심 자신이 총통 후계자 후보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행동을 사린 것인데, 결국 괴벨스가 나가리된 후 낚시 모임에서 콘라드 슈미트와 함께 후계자로 지명된다. 그러나 총통 독재 체제는 아르민의 대에서 끝날 것이며, 괴링은 분당된 민족혁명당 중 혁명의 지속을 주장하는 당을 맡아 슈미트와 경쟁할 것이다. 자신이 꿈꾸던 2대 총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다소 실망했으면서도 총통이라는 엄청난 자리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 결정을 납득한다.
아르민이 은퇴한 후 1947년 독일민족혁명공화국 2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14년의 임기를 마친 후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어에게 정권을 넘겨준다. 슈미트가 프란츠에게 해주는 말에 의하면 대통령직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퇴임하고 울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새롭게 전개된 미래의 가능성 중에는 괴링이 총에 맞고 암살당하는 미래도 있었다.
- 알베르트 괴링
헤르만 괴링의 동생. 헤르만과 다르게 아르민과의 개인적 친분은 없었던 듯하다. 지옥 같은 서부전선의 참호에서 육군으로 복무 도중 형 헤르만은 아직 명예라는 것이 남아있는 하늘의 전장에 있다고 생각하여 부러워한다. 뮌헨 공대 졸업 후 영화 산업에 종사했던 원 역사와 달리 괴링의 동생이라고 아르민이 챙겨줬는지 로젠바움 그룹 항공회사 사장이 되어서 새로운 항공기 개발에 갈려나가고 있다. 로젠바움 정권은 나치와 다르게 유대인 차별을 하지 않아서인지 반정부 성향은 보이지 않는다.
- 콘라드 슈미트
작가의 전작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도 등장했던 인물. 갓 대학에서 졸업해 로젠바움의 회사에 들어가는 인물로 첫 등장한다. 이후 아르민이 준비한 21세기식 세뇌 교육의 마수에 걸려버린다.MC물1차대전 발발 후 자진하여 군에 입대하고 철십자 훈장을 받을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다 패전 후 베를린으로 돌아온다. 이후 아르민의 전속비서로 근무하다 로젠바움 그룹 전략기획실 실장이 된다. 명칭과 달리 그룹의 투자방향 같은걸 논하는 곳이 아니라 아르민의 집권 전략과 정적들을 어떻게 조질지를 연구하는 조직이다.
전쟁에 질려버린 모습을 보이던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 때와 달리 나치새끼들은 죽여도 된다며 과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흑화했단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는 동생 부부의 복수를 하면서 성정이 변한 것도 있지만 히틀러에 대해 연구하면서 그가 권력을 잡으면 평소에 말하던 유대인 학살과 전쟁을 진짜로 저지를 놈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란 이유도 있다. 아르민이 집권한 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다. 집권 전과 다름없이 사생활이 없는듯이 열정적으로 일하면서 사리사욕이나 개인적인 성향을 일절 내비치지 않아서 정권 내부의 평가가 좋다. 팬덤 말마따니 주구장창 "총통에게 반항하는 놈들을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고 소문이 날까." 만 고민하고 진짜로 조지는 사람인데 2인자 경쟁자 중 한 명인 괴링도 "정 죽겠다 싶으면 비서실장에게 가서 빌어봐라 착한 사람이니 살려는 줄거다." 라고 할 정도로, 적에게는 악독하지만 아군에게는 자애로운 성격인 듯.
1918년 아르민이 자신의 세력을 구축할 때 초창기부터 최측근으로 함께 했기에 아르민이 독일을 장악하고 세계 패권을 쥐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고 철저하고 거대한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했는지 알고 있다. 세상은 결국 로젠바움의 계획에 따라 놀아나는 인형극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으며, 일반인이 감히 총통의 심모원려를 이해하려 들었다가는 미쳐버리거나 이성을 잃고 숭배자로 전락하게 된다며 거의 코즈믹 호러처럼 여기고 있다. 어쩌면 비행기를 개발한 것조차 권력을 잡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진실에 가까운 추측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으로 최측근인 그는 몇 차례 총통의 계획이 실패하는 것을 목격했기에[10] 총통이 신이 아니며 가끔은 실패하기도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무지성 숭배자가 되지 않고 이성을 붙잡고 있다.
괴벨스가 불륜과 뇌물 등 온갖 뻘짓을 저지르며 후계 구도에서 배제된 후 헤르만 괴링과 함께 후계자로 선정된다. 민족혁명당 당수가 되었고 대통령 괴링과 달리 내치를 주장하며 대립하는 척 짜고치는 정쟁을 벌이며 일종의 관제야당 역할을 맡는다.
- 파울 요제프 괴벨스
자신의 장애에 대해 심한 열등감을 가진 소년이었다. 로젠바움 사의 장애인 특별 전형에 선택되어 대학 진학 대신 로젠바움 사에 취직하게 되었지만, 실제 취업이 성사되기 직전 아르민이 루덴도르프에게 찍혀서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장애인 특별 채용은 없던 일이 된다. 로젠바움에게 농락당하고 버려졌다고 생각한 괴벨스는 식음을 전폐하고 방에 틀어박혀 일기장에 세상에 대한 저주를 빼곡하게 적었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후 아르민이 괴벨스에게 친필 편지를 보내서 자신은 강제로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채용 취소는 자신의 의사가 아니라는 해명을 하고 전쟁 후 반드시 다시 받아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를 받은 괴벨스는 로젠바움같은 위인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저주를 적어놓은 일기장을 찢어버리고 완벽하게 가스라이팅을 당한다. 종전 이후 로젠바움 그룹 내 영화사에 취업했다.
여자친구[11]의 부모님이 별볼일 없는 괴벨스와의 교제를 반대할 때 아르민이 괴링을 보내서 괴벨스의 뒷배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 원만히 해결해준다.
원 역사에서도 히틀러의 광신도로 히틀러가 자살할 때 가족들과 함께 동반자살할 정도로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인 인물인데, 본 작품에서는 대전쟁의 영웅이 자신을 직접 선택해주었고 연애 문제까지 해결해주었기에 주인공의 광신도가 되었으며, 주인공이 대통령에 오른 뒤엔 원 역사에서 보여주었던 그 악마같은 선동능력으로 독일 국민들을 아르민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1936년 올림픽 개막식을 총괄했다.
로젠바움 그룹 내에선 괴벨스가 간부까지 올라간 것에 대해 인간승리로 평가되고 있으며 로젠바움 그룹의 세 파벌 중 하나인 청년파의 중심이 되었다. 다만 괴링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원 역사랑 비슷해서 서로를 헤르만 마이어, 요제프 바우어라고 부르고 있다. 원 역사에서 괴링이 베를린 상공에 단 한 대라도 적의 항공기가 나타나면 자신을 마이어(Meire)라고 불러도 좋다고 호언장담했던 일화에서 비롯된 내용이다. 마이어는 김씨, 이씨 수준으로 독일에서 흔한 성씨이기에 ㅇㅇ가 진짜라면 내 성을 간다라는 의미로 언급했던 것. 바우어도 마찬가지로 흔한 성씨인지라 본 작품에서는 네 자리에 너 말고 아무나 앉혀놔도 너보단 잘 할 수 있을거다라는 디스의 의미로 언급되는 것이다.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바람기도 심해서 기껏 결혼을 지원해주었던 아르민이 불같이 화를 내며 손수 참교육을 시전하고[12] 루르 탄광으로 잠시 유배보냈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원래 로젠바움의 최측근 중 하나였으며 아르민이 속으로 후계자 후보로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나 결국 불륜 사건을 계기로 후계 구도에서 배제당하고 최측근 낚시 모임에도 불려나가지 못할 정도로 위상이 추락한다. 선동 능력을 대체할 수 없어서인지 다하우행은 면한 듯 하지만 최측근에서 일개 장관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으니 사실상 숙청이나 마찬가지 신세.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후계 구도에 욕심을 내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후보에 넣고 여론조사를 하는 등 아르민의 신경을 긁었고, 결국 빌헬름 황태자와 융커들을 숙청할 때 함께 숙청당한다. 그렇게 체포되는 줄 알았으나... 어떻게 했는지 빠져나와서는 콘라드의 집까지 찾아와 살려달라고 애걸한다.[13] 이때 언급되는 내용을 보면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지나친 뇌물 및 상납, 불륜에 도박까지 부정부패에 완전히 찌든 모습을 보여준다. 추남에 불구인 자신에게 사람들은 굽신거리고 여자들이 유혹해오는데 어떻게 참느냐며 궤변을 늘어놓다가 행복한 은퇴 계획을 박살낸 원한도 담아 콘라드에게 이가 나갈 정도로 쥐어터진다.
그래도 결국 슈미트가 변명해지고 괴링도 죽여봤자 저 정도 부정은 다들 저지르는지라 죄를 지어서 처벌받는 게 아니라 총통의 총애를 잃은 결과로 보일 거라는 기나긴 설득 끝에 괴벨스를 죽이는 것이 별로 이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납득한 아르민은 괴벨스를 죽이지 않기로 한다.[14] 그러나 선전부 장관에서 물러나고 파벌도 해산하는 것은 물론 안카와 이혼하고 재산은 최대한 아내에게 분배, 그리고 괴벨스 몫의 재산에서도 90%를 사회에 환원하며, 대일전에 파병될 독일군과 함께 극동으로 가서 현지 선전 활동을 하면서 영구히 독일로 귀국하지 못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아시아에 도착한 후 민족혁명주의 선전 활동을 한다. 버릇은 못 고쳤기에 마찬가지로 여자를 밝히는 오토와 만나서 함께 하렘 라이프를 즐기다가 한 중국 미녀와 사실혼 관계가 된다. 이후 베트남에서는 중국이 미인계로 괴벨스 박사를 꼬셔서 이제 괴벨스는 중국 편만 들 것이라고 말이 나오자 베트남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베트남 여자도 첩으로 들였고, 참족에서 불만이 나오자 참족 첩을 들이고... 이런 일이 반복되어 결국 아시아 각 민족 여자들을 죄다 하렘에 집어넣어 혼인동맹을 맺는 왕건 메타를 실현한다. 버마에 방문한 아르민은 이를 듣고 어이없지만 아무튼 외교적 성과는 거뒀고 괴벨스가 행복하다니 됐다며 넘어간다. 그 와중에 중국에서는 정력제 사업도 하면서 돈도 꽤 챙겼고 아시아에 괴벨스의 사생아만 40명이 넘는다고 한다. 한국에 남은 괴벨스의 후손은 '백림 괴씨'[15]라는 성을 쓰고있다.
- 요아힘
폰리벤트로프
전간기의 혼란 속에서 독일이 나갈 길을 고심하다가 파펜의 소개로 아르민과 회동 후 추종자가 되었다. 당의 중진이 되면서 자신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외교 쪽 공직을 맡고 싶었으나 아르민이 기용하지 않자 당의 외교 싱크탱크 '민족혁명수출전선'을 만들고 회장이 되었으며, 그 위치 덕에 독일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총통의 의중을 전달하는 역할에 안성맞춤이라 폴란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련에 파견되는 것으로 등장했다. 본의 아니게 외무부를 견제하는 역할도 하게 되었으며, 1936년 올림픽에 스탈린이 독일을 방문하게 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둔다. 원 역사에서도 악평을 받았던 만큼 전문 외교관이 아니라 외교 회담에서는 아르민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며 로젠바움 찬가를 부르는 미숙한 모습을 보이지만, 일부러 이 미숙함을 이용해서 껄끄러운 외교 회담에 보내서 독일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등 알차게 활용하고 있다. 베를린 올림픽을 계기로 노이라트를 누르고 외교부의 실세이자 로젠바움주의의 나팔수로 떠오르게 되었지만, 정도를 모르고 지나치게 나댔고 그가 적극 지지하던 일본이 난징 대학살을 저지르면서 몰락한다. 그래도 이후 리투아니아에 접촉하는 등 비공식적인 외교 업무에 유용하게 써먹는다. 종전 후에는 미국으로 파견되어 미국 정계를 들쑤셔서 루즈벨트가 4선을 하도록 부추긴다. 아르민 사후엔 결국 소원하던 외무장관이 됐으며, 경륜도 쌓일만큼 쌓여서 원숙한 외교관이 되었다.
3.3. 로젠바움 정부 각료
- 얄마르 샤흐트
아르민이 <독일중흥민족각성운동>에 영입하기 위해 접촉한다. 능력도 뛰어나고 원 역사에서 나치에 협력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설령 아르민이 독재 권력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안성맞춤인 인물이라고 조범석이 추천했다. 원 역사에서처럼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 그를 발탁한 아르민의 평가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고, 집권 후 경제부장관에 임명되었다. 군 개혁이 완료된 후에는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어서 문민통제에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원 역사처럼 국가 위신을 위한 재무장에는 찬성했지만 전쟁에는 반대해서 패싱당하고 있다. 그래도 팽하진 않았고 '포스트 아르민' 체제에서 내치를 주장할 야당의 중심인물로 점찍었다. 원 역사처럼 악화되는 경제 상황에 고통받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경제 범죄도 몇 건 저질렀다고 하나 로젠바움 전쟁 승전 후에는 재무부장관으로 다시 돌아왔고, 배상금과 열강들이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해 낸 돈, 무기 판매 대금 및 라이센스비를 두둑히 받아서 부채도 거의 해소해서 말년에는 행복해질 수 있었다.
- 프란츠
폰파펜
슐라이허가 강제로 로젠바움 사에 꽂아넣은 심복. 슐라이허를 보고 누군지 떠올리지 못했던 조범석은 파펜의 이름까지 들은 후에야 슐라이허와 파펜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말아먹은 총리들이며 두 사람은 나중에 사이가 틀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려낸다. 이를 듣고 아르민은 파펜과 슐라이허의 사이를 이간질하여 파펜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아르민 집권 후 내무부장관이 되고 총리 자리를 약속 받았지만, 브뤼닝 암살의 책임을 뒤집어 써서 나가리되고 아르민이 2년 기한의 대통령 겸 총리가 되었다. 이후 무임소장관이 된 것을 보면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난 듯. 검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모를 꾸미면서 아르민은 독일과 독일인에 관심 없는 도박꾼이라며 의외로 그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말을 했다. 그러나 쿠데타가 일어나기도 전에 아르민이 추궁하자 심약한 성격에 모든 것을 다 불었고, 그 대가로 다하우 수용소장이 되었다. 원 역사와 달리 1수용소는 교화의 여지가 없는 국가의 적들을 가둬놓는 수용소로 교도소보다 처우가 좋다고 한다. 다만 문제가 일어나면 싹 몰살시킬 계획이 세워져 있고, 별도의 2수용소에 그들의 가족들을 '보호'란 명목으로 가뒀으며 수용소장인 파펜의 가족들도 여기에 갇혀 있다.[16]
- 콘스탄틴
폰노이라트
작중 많은 것이 변했지만 원 역사와 같은 해에 아르민 로젠바움에 의해 외무부 장관으로 지명된다. 다만 아르민과 접점이 없었고 조범석도 슐라이허를 뒤늦게 기억해낼 정도로 역사에 해박한 편은 아니라 어떻게 알고 기용했는지는 의문인데, 원 역사에서 파펜 내각의 외무부장관으로 입각했으니 그의 추천에 의한 것이거나, 아르민의 장인 체펠린 백작을 후원한 뷔르템베르크 왕국 출신의 귀족이니 아르민도 알아서 기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료적으로 아르민의 지시를 묵묵히 이행하다가 하루는 아르민이 품은 구상을 묻는데, "폴란드를 무너뜨리고 프랑스와 1:1로 붙는 것"이란 답변에 아연실색한다. 원래 귀족이란 출신 성분에 뷔르템베르크 인맥의 핵심 인물로 콧대가 매우 높았던 것으로 보였으나 당 내에서 급부상한 리벤트로프를 견제하면서 처신을 조심하게 된다. 히틀러와 달리 아르민은 외교적 해법을 끝까지 놓지 않아서 전쟁이 일어난 후에도 중용되었고, 로젠바움주의에 심취했다기보다는 관료에 가까운 인물이라 아르민이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식민지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퇴로를 열어주겠다는 의사를 보이자 기꺼워한다.
-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어[17]
로젠바움사 직원이었으나 회사의 후원으로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었으며, 로젠바움 전쟁 시기에 병역기피를 위해 괴벨스의 선전부에 들어갔다가 아시아를 다녀왔다. 슈미트의 천거를 받아 괴링의 뒤를 이어 3대 독일민족혁명공화국 대통령이 되었다. 지도자로서 안정을 추구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라 보수파와 개혁파 모두에게 불만을 사고 있다. 프란츠 바이젠바움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가 당 내의 개혁파가 보수파를 몰아내는 것처럼 연출해야 한다며 악역을 맡아달라고 하자 이를 받아들이고 프란츠에게 재떨이를 집어던진 후 로젠바움스부르크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연기를 한다.
3.4. 군부
3.4.1. 육군
-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일명 소(小) 몰트케로 대(大) 몰트케라고 불리는 헬무트 폰 몰트케의 조카이다. 작중 썩어빠진 융커의 표본으로 등장한다. 카이저 빌헬름 2세의 총애를 받는 아르민을 간신이라고 부르며 싫어하고 아르민의 군 생활을 꼬으려고 했지만 미리 알아챈 아르민에 의해 실패한다. 원 역사대로 슐리펜 계획을 말아먹고 실각한다.
- 에리히 폰 팔켄하인
실각한 몰트케 대신에 참모총장 자리에 오른다. 원 역사대로 서부전선에 집중하지만 전선은 교착화되었고 오히려 독일과 같은 호엔촐레른 가문이 다스리는 루마니아가 협상국에 가담하자 실각하고 루마니아 전선으로 보내진다. 꼬장꼬장하고 고압적인 인간이라 첫 만남 때부터 아르민이 예비역 소위임을 상기시키며 하급자 대하듯 해서 아르민의 어이를 털었으나, 조범석은 동업자의 공감대인지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고 평생 군대라는 울타리에만 있으니까 하급자를 배려할 필요를 못느끼게 돼버린 타입이라고 옹호했다.[18]
- 에리히 루덴도르프
평민에서 군의 정점까지 올라간 인물이지만 1차대전의 결과를 알고 있는 아르민은 팔켄하인과 같이 실각하고자 팔켄하인의 편을 들면서 대립하게 된다. 권력을 쥐자 아르민을 사회주의자로 매도하면서 로젠바움사에서 쫓아낸다. 전쟁을 위해 독일 경제를 완전히 통제하려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독일 경제를 파탄시켜 버렸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아르민의 농간으로 베르사유 조약에 사인한다. 이에 분노를 머금고 있다가 뮌헨에서 전쟁 패배 원인은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에 있다고 주장하는 애국적인 젊은이를 만난다. 이후 아르민이 집권하자 자신이 반드시 슐라이허처럼 죽을 거라는 위기감으로 1934년 쿠데타를 기획했지만 실패했고, 이미 달고 있던 실패자, 매국노, 내란음모자란 타이틀에 더해서 독일 민족의 멸망을 획책했다는 혐의까지 더해져서 고사포로 처형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차 대전 중 전쟁포로를 노역시키느냐니 차라리 독일 여성을 고용하겠다는 아르민의 주장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지라 꽉 막힌 군부에서는 다 기각당했지만, 유일하게 루덴도르프만 지지해줬다.
- 파울 폰 힌덴부르크
원 역사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대통령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 작중 팔켄하인 실각 후 정권을 잡지만 너무 늙었기에 상징적인 위치에 머무르며 모든 실권을 루덴도르프에게 몰아주고 뒷방 늙은이처럼 지내고 있다. 그러나 연륜이 무색하지 않게 아르민과 만난 자리에서 그가 독일이 패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간파하는 예리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 아르민이 뇌물로 땅문서를 건내자 그건 또 받아먹었다.[19]
공화국 전환 이후에는 전쟁영웅이자 군부 내 원로로 아르민이 준 농장에서 지내고 있었으나 에베르트가 사망하자 아르민이 킹메이커로 나서 원 역사대로 대통령이 된다. 다만 대공황 발발 이후 아르민이 1932년 독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자 아르민을 지지하자는 아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불출마한다.[20] 1934년 쿠데타 후 루덴도르프가 배후자로 처형면서 그 역시 의심의 대상이 되어서, 생의 남은 1년을 아들 오스카어를 위해서 자신은 반역자가 아니라고 변호하고 아르민을 찬양하는데 보냈고, 융커들의 원죄가 다 까발려지면서 그의 신화도 깨졌다. - 오스카어
폰힌덴부르크
파울 폰 힌덴부르크의 아들. 아르민의 평에 의하면 나이 먹을만큼 먹고 아버지가 유명인사가 됐다고 그 그늘 안으로 들어간 '아버지 잘 만난 병신'. 아르민에게 거액의 뇌물을 받고 아버지가 히틀러가 아닌 로젠바움을 지지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융커 숙청 후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자신이 죽은 후 오스카가 숙청당하지 않도록 열심히 로젠바움을 찬양하고 충성을 맹세했기에 해를 입지 않았다. 힌덴부르크 기념관장이 되어서 완벽한 잉여인간이 되었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농장까지 있으니 잘 먹고 잘 살았을 듯 하다.[21]
- 낙하산 사장
이름은 나오지 않음. 퇴역 장성 출신 융커로 루덴도르프에 의해 아르민이 로젠바움사 사장에서 쫓겨난 후 사장 자리에 앉는다. 경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힌덴부르크와의 인맥만으로 내려온 똥별이었기에 비효율적인 운영으로 항공기 생산 효율을 떨어트렸으며 성상납을 요구하고 식량도 빼돌리는 등 직원들을 착취했으며 회사 자산까지 횡령하는 막장 운영을 한다. 패전 직후 아르민이 사장 자리를 되찾기 위해 돌격대와 함께 쳐들어가서 창문 밖으로 던져서 죽인다.[22] 이 자가 창고에 몰래 군수물자들을 빼돌려 둔 것이 있어서 돌격대의 무장에 도움이 되었다.
- 한스 폰 젝트
독일군의 새로운 참모총장으로 부임하면서 등장. 연합국 감시 하에서 군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같이 연합국에게 미움받는 처지인 소련과 접촉을 시도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 중이다. 자신의 심복이었던 슐라이허의 배신으로 몰락...하는 줄 알았으나 아르민이 정권을 잡은 뒤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복수를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아르민에게 보은하면서, 한편으로는 군부를 장악하려는 권력욕에 공화국을 흔들었던 원죄 반반의 이유로 아르민에게 절대복종한다. 그러나 융커들에게는 출신이 천박한 이들과 야합했다는 이유로, 문민통제는 갖다버린 현역 군인들에게는 이미 군복을 벗었다는 이유로 경원시되었고 1934년의 쿠데타에서 살해당하면서 편하게 죽은 원 역사보다 2년 일찍 생을 마쳤다.
- 쿠르트
폰하머슈타인에크보르트
원 역사에선 끝까지 히틀러에 반대한 몇 안 되는 장성으로 아르민 집권 시점에서는 육군참모총장을 맡고 있었다.[23] 부정적인 의미에서 당대의 독일 군인이지만 나라가 이 꼴이었다가는 복수는 커녕 외침에 망할 것 같아서 강력한 리더십을 갈망하고, 슐라이허의 절친이긴 하지만 그의 정치질은 부정적으로 보고 자중할 것을 권고한다. 슐라이허가 살해당한 후에는 젝트의 노욕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서 젝트가 교체를 건의하는데 아르민은 오히려 그와 독대해서 자신의 대계를 밝히고 충성을 맹세받는다. 그러나 군을 견제할 공화국 수비대와 공군을 확충하려는 아르민의 계획에 여러번 이의를 제기하는 만만찮은 인물이라[24] 아르민이 부하들을 관리 못 한 책임을 물어 쳐내려고 계획했던 것으로 보였는데, 1934년의 쿠데타 때는 라인란트를 시찰하고 있어서 방관자가 되었고 결국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쿠데타 진압 후 반역자들을 직접 뿌리뽑겠다는 청을 올렸지만 거부당했고, 이후에도 군부를 지키려고 아르민에게 직언을 올리고 충성 맹세를 종용하면서 동분서주했다. 결국은 사임하고 브라우히치에게 직을 넘겼다.
- 쿠르트 폰 슐라이허
실상은 권력에 눈이 먼 야심가지만 네덜란드에 있는 빌헬름 2세를 비롯한 호엔촐레른에게는 왕정복고의 대의를 가슴에 품고 있는 충신으로, 사민당 주류에게는 공화국에 충성하는 몇 없는 군인으로 알려져 있는 처세술의 대가. 아르민이 자신과 같은 야심가라는 것을 눈치채며 불쾌감을 느끼고, 아르민의 가정부를 매수하여 협박 편지를 보내며 견제를 날린다. 이후 아르민과 면담에서 그녀를 해쳤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리고 다음에는 가족도 해칠 수 있다고 암시하여 자기 심복인 프란츠 폰 파펜을 로젠바움사에 꽂아넣는다. 아르민이 집권하기 전까지 그에게 제일 위협적인 인물이었지만 아르민이 원 역사에선 이후 사이가 나빠질 파펜을 포섭했고, 1932년 대선에서 당선되자 사방에 적을 만든 만큼 궁지에 몰리게 되고 아르민과 젝트에 의해 부인과 함께 암살된다. 대외적으로 슐라이허의 사망원인은 총기사고이고 부인은 남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고 발표됐다.
- 발터
폰브라우히치
원 역사와 달리 아르민 로젠바움이 진학한 프랑스 김나지움 베를린에 갔다가 아르민이 졸졸 따라다니자 멘탈이 붕괴돼서 군사학교로 도망쳤다는 설정이 생겼다.[25] 아르민이 대통령이 된 후 만나서 선배라고 부르며 사과하자, 자신에게 관심을 줘서 영광된 기억이었다며 아부한다. 원래 아르민과 같은 김나지움을 다녔다지만 학년도 달라서 마주칠 일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로젠바움파가 됐던 것이라고 하며, 1934년 쿠데타 진압 후 군부 대숙청 후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아르민과 첫 독대에서 아부하다가 자신은 존중할만한 사람을 좋아해서 뽑은거라고 만류하자 용기를 내서 아르민의 군 인사 개입에 제동을 걸려고 하나 압박에 바로 런한다. 그리고 아르민이 자동소총을 구상한 것을 보고 이런 공돌이가 총통인 이상 신무기 개발에 예산이 마를 날은 없을 거라고 속으로 환호한다. 이후에도 프로이센 군인의 곤조로 용기를 쥐어짜서 아르민에게 직언을 올리곤 하지만 한번 하면 그날치 용기를 다 써서 찌그러지는 개그 캐릭터가 되었다. 사실 쿠데타 실패 후 묘사된 군 숙청의 규모와 강도를 보면 말이라도 꺼내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 아르민의 후광에 힘입어 군을 완벽하게 장악했지만 군 내 권력 투쟁, 그리고 대숙청 이후에도 문민통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후배들 때문에 고통받는다.[26] 군 개혁이 완료된 후에는 원수로 진급하고 합동참모의장 겸 육군총사령관으로 영전한다. 로젠바움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는 프라하 조약군의 초대 총사령관이 되었다.
-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아르민 로젠바움이 대통령이 된 시점에 베를린을 포함한 제3군 사령관이라, 조범석도 명장이라 포섭해야 한다고 하긴 했지만 아르민에겐 그보다 수도를 지키는 사령관이라 죽이거나 포섭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차피 융커인 건 마찬가지라 대통령이 된 아르민이 나치를 일망타진하는데 군을 움직여달라는 '요청'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여서 총선 때 민족혁명당이 승리하면 인정해달라는 '거래'를 해야 했다. 원 역사에서 나치 독일군의 2차 대전 초반 신화를 쓴 명장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1934년 쿠데타에서 반란군이 포섭 대상으로 삼았는지 습격을 받고 동참하라는 요구에 프로이센 군인은 반역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허무하게 살해당했다.
- 에리히
폰만슈타인
군부 내에서 민족혁명당에 입당하여 아르민 로젠바움을 독일민족의 영도자로 추앙하며 첫 등장. 1934년 쿠데타 이후 숙청을 끝낸 군에서 중용되었지만, 성격은 원 역사와 유사한 기회주의자이다. 이 때문에 아르민이 '대놓고 남 깔보는 저 못된 성질 고치기 전까진 시베리아에 짱박아두라'고 명령해 시베리아에서 눈을 퍼먹고 있었는데, 조금만 더 놔두면 저 인간 미칠 것 같다는 보고 때문에 다시 불러들였다. 하지만 만슈타인의 그 성격은 여전했고, 결국 아르민은 그의 기를 꺾기 위해 워게임을 제안한다. 만슈타인도 이에 응하지만, 아르민은 조범석의 조언을 받아 그를 쳐바르고[27] "조금 더 수련하고 돌아오시오"라는 티배깅으로 만슈타인을 멘붕시킨다. 이후 아르민은 만슈타인을 금쪽이라고 칭하며 밥으로 여겼는데...
만슈타인은 침식을 잊고 패배를 끊임없이 복기한 결과[28] 천재적 통찰력으로 모든 것을 깨닫는다. 이후 아르민과의 독대에서 그 워게임이 프랑스와의 전쟁을 상정한 것임을 알아차렸고, 여러 가지 근거[29]를 토대로 아르민의 옆에, 한 나라의 군부에서 야전과 참모를 오가며 심혈을 기울여 키워냈지만 실전을 경험하지는 않은 미래의 장성이 있다는 것까지 눈치채었음[30]까지도 밝히고 거울에 있는 조범석을 향해 경의를 담아 경례를 한다.[31] 그리고 아르민에게 우회적으로 낫질 작전으로 프랑스를 상대로는 승리해도 결국은 패배하게 될 거라는 답변을 듣는다.
그야말로 정신병자나 할 수 있는 발상인데다가 총통에게 미친 소리를 하는 것인지라 계급장과 사직서를 미리 제출했고 죽거나 다하우나 정신병원에 가거나까지 각오하고 왔다. 결국 사실로 드러났지만 어디 가서 절대 말할 수 없는 내용이고 소문이라도 나면 만슈타인이 더 군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 공식적으로는 아르민에게 불경스러운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하고 건강상 핑계로 한직으로 보내지며, 시베리아의 훈련시설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 낫질 작전을 계속 연구할 것을 명령받는다. 해당 연재분은 개그 캐릭터가 될 것 같던 만슈타인이 광기에 가까운 천재성으로 아르민의 비밀을 꿰뚫어보는 과정을 뛰어난 필력으로 묘사해서 호평을 받았다. 작품 외적으로 보면 아르민은 원 역사대로 전쟁을 하면 파멸이라는 것을 알고 '제 2의 보불전쟁'을 추구하면서도 이것조차도 영국의 참전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은 애써 외면해 왔는데, 이를 다시금 깨닫고 자신의 역할을 다시금 자각하게 되는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폴란드 침공에서 북부집단군 참모장으로 재등장했는데, 아르민의 비밀을 입 밖에 내지 않는 데 모든 절제력을 소모하느라 자기 자랑 등 다른 분야에서 절제력을 잃고 자신을 천재라고 떠벌리며 총통에 대한 숭배를 아무데서나 떠들어대는 개그 캐릭터가 되었다. 심지어 "자신은 항상 총통과 함께한다고 외치며 버스를 탈 때 2인분 요금을 지불한다." 는 농담까지 도는 모양... 더욱 가관인 것은 그 말을 들은 버스기사는 "이보게! 요금은 1인분만 내게 총통각하는 무료거든!" 이라고 받아친 모양(...)다른 장성들은 시베리아에 짱박힌 동안 천재적인 군사적 능력을 얻은 대가로 미쳐버린(이성을 악마에게 팔아서 군사적 능력을 얻은거냐는 평도 듣는다.) 안쓰러운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프랑스 침공 때는 대장이 되어서 자신이 구상한 낫질 작전의 총지휘를 맡는다. 로젠바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으로 전후 원수로 진급하고 육군참모총장이 되어서 아르민의 의도대로 숙군을 위한 계략을 실행한다.
에필로그 시점에서 밝혀지기를 아르민이 죽은 뒤에도 그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으며, 그 결과물인 연구자료는 마리아 로젠바움이 보관하고 있다. 이 연구자료는 마리아가 아르민의 비밀을 정확히 밝혀내는 근간이 될 정도로 아르민의 진실에 가장 근접해있다.
- 발터 모델
실제 인물이 그랬듯 작중에서도 촉망받는 장교이자 브라우히치의 피후견인으로, 아르민이 스페인 내전에 파견할 지휘관으로 선발하고 브라우히치와 함께 식사 자리를 갖는다. 쿠데타 전 히틀러와 식사를 한번 하면서 친나치 혐의로 수사받은 적도 있어서 입지가 애매했는데, 아첨을 잘 못 하는 성격에 아르민 앞에서 현장 지휘관의 자율성 얘기를 했다가 호통을 듣고 쫓겨나서 시베리아로 보내졌는데, 그러면서도 아르민은 그냥 경고나 할 생각이었는지 소장이라고 칭하면서 스페인어와 국제법을 공부해두라고 하면서 파견이 확정되었고, 스페인 내전 발발 후 파견부대 지휘관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2차 대전 발발 때는 중장 계급으로 제 15군단 군단장이 되었고, 명령형 지휘체계를 선호하는 그와 상극인 롬멜을 부하 사단장으로 배정받아서 고통받으면서도 바뀐 역사로 인해 포위망을 뚫으려는 영미연합군에 맞서 악전고투 끝에 사수에 성공한다. 실제 인물처럼 최악의 전선에 직접 나와서 지휘하는지라 일선 병사들에겐 '포격을 부르는 재앙신'으로 취급되지만 본인은 개의치 않는 넌씨눈 기믹이 생겼다.
이후 민족혁명당 원로로서 롬멜과 함께 프란츠 바이젠바움의 쿠데타를 지지해주는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모델과 롬멜의 발언은 마리아 로젠바움을 제외하고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원로 중의 원로로 대우받고 있다.
-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총통 앞에서 말실수를 한 모델이 시베리아로 쫓겨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다가 함께 쫓겨났다고 언급됐으며, 스페인 내전 발발 후 모델의 참모장으로 파견되었다.
- 빌헬름 카이텔
원 역사처럼 데스크워크에 뛰어나서 장성이 됐지만 지휘 능력은 떨어져서 경원시 됐는데 아르민과 독대 후 전역하고 로젠바움 중공업 회사 사장이 되어서 군납비리로 꿀을 빨던 업체들과 군 인사들을 탈탈 털었다.
- 프란츠 할더
1934년 쿠데타에 가담자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원 역사에서도 히틀러 암살 계획에서 기회주의적인 행보를 보인 인물인 만큼 단순 가담자에 불과했는지 아는 역도들를 다 불고 예비역으로 편입되어서 생존했다. 이후 일본과 해군 협력이 시작되면서 로젠바움사 직원이 되어서 일본에 사실상 귀양 보내졌는데, 장성은 아니지만 프로이센 군사학을 배우고자 하는 일본인들이 그를 극진히 대접했고 가족들의 안위를 생각해서 로젠바움주의를 찬양하고 널리 알리면서 2.26 사건이 로젠바움주의에 기반한 혁명이 되어버리는 나비효과를 낳았다.
- 페도어
폰보크
폴란드 침공 때 북부집단군 사령관으로 등장. 참모장 만슈타인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광기에 혀를 찬다. 프랑스 침공 때는 아르덴 방면 주공인 A집단군 사령관이 되었다.
빌헬름 황태자와 친분이 있어 그와 함께 숙청될 뻔했지만 빠른 손절로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이후 일본을 상대하기 위한 아시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아시아로 파견된다.
- 귄터
폰클루게
원 역사와 달리 이탈리아가 적이 되면서 공화국 수비대 및 육군 예비역들로 편성된 D집단군의 사령관이 되어서 지원 온 체코군과 함께 남부 독일을 방어하는 어려운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군이 체코군의 LT vz. 38에 가로막혀서 패퇴하자 예비대를 바로 때려박아서 격퇴하는 공을 세운다.
- 에발트
폰클라이스트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방면의 조공으로 연합군을 기만하는 임무를 맡은 B집단군 사령관이 되었다.
- 빌헬름 리터
폰레프
역사의 변동으로 가짜전쟁이 없어지면서 마지노선 방면에서 유사시에 프랑스군을 막아야하는 C집단군 사령관이 되었다.
- 에르빈 롬멜
원 역사에서는 히틀러에게 바쳤던 충성의 방향이 바뀌어서 본인이 민족혁명주의 사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총통에 대한 충성심이 깊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아첨꾼이 되었다. 눈에 띄는 전공만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야심가이며,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마리아 로젠바움과 결혼시키겠다는 망상까지 한다. 프랑스 침공 때는 모델의 제 15군단 휘하 제 7기갑사단 사단장으로 참전했는데, 공군의 지원도 8,8cm FlaK도 없는 상황에서 제 4기갑사단의 독일 전차로 상대하기 어려운 드골 지휘하의 르노 B1부대와 마주치자 물자 보급하러 온 트럭들을 징발해 판처파우스트를 든 보병을 잔뜩 태워서 전차에 돌격시키는 기책으로 공세를 돈좌시키는데 성공한다. 트럭 부대는 탄약을 다 쓰자 냉큼 도망보냈지만 본인은 아예 프랑스 전차부대를 비스듬히 돌파해 독일군 방어부대에 합류, 방어전을 지휘했다.
이후 민족혁명당 원로로서 모델과 함께 프란츠 바이젠바움의 쿠데타를 지지해주는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롬멜과 모델의 발언은 마리아 로젠바움을 제외하고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원로 중의 원로로 대우받고 있다.
- 쿠데타 가담 장성들
1934년 쿠데타가 실패한 후 무자비하게 처형당한 장성들 중 네임드들. 대체로 왕당파 성향이거나 아르민에 의해 이길 수 없는 전쟁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원 역사에서 히틀러 암살을 고려했거나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가담했었던 루트비히 베크, 에르빈 폰 비츨레벤 등이 사형 선고를 받았고 장검의 밤이 존재하지 않게 된 작중에선 죽지 않았던 페르디난트 폰 브레도우[32]도 포함되었다.
3.4.2. 해군
-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원 역사에서 독일제국 해군을 건설한 제독으로 아르민이 융커들에게 치일 때 견제할 목적으로 그와 함께 항공 분야에서 협력을 진행한다. 이후 행적은 원 역사와 같다.
- 에리히 레더
해군참모총장으로 아르민 로젠바움의 집권 후 그가 말이 더 통할거라고 기대하고 해군 확충을 건의했지만 돈이 없다며 해군 항공대를 중심으로 한 해군 계획을 뭣모르고 떠든다고 생각하여 실망한다. 여기에 더해 맨하튼이란 이름의 극비 프로젝트에 해군 명의로 투자를 하게 만들어서, 기대를 저버리고 휘하 장교들이 나치즘에 빠져도 방관했었다. 그러나 1934년 쿠데타가 해군 장교들이 끼기도 전에 진압당했거나 해군 자체가 규모가 작아서인지, 아르민에게 충성 맹세 후 자체적으로 반역자들을 처벌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이후 합참에서 모든 군사 현안에 대해서 해군에 투자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며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만 하고 있다. 조범석이 조만간 구연동화를 하겠다고 평할 정도. 무솔리니가 쏘아올린 건함 경쟁에 국민의 열망에 힘입어 함대를 일부 재건할 수 있는 의문의 1승을 거뒀다.
영불해협 해전에서 독일 해군이 영국 해군 본토함대를 전멸시키며 로젠바움 전쟁에 화룡점정을 하고 승전을 이끌어내자 어깨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제가 1934년에 베를린에 있었을 때..."로 시작되는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투 머치 토커가 되었다. 프라하 조약기구가 성립된 후에는 브라우히치 후임 합참의장이 되어서 진주만 공습 이후 새로워질 해군의 패러다임에 맞춰서 해군을 재건하는 중임을 맡는다.
- 카를 되니츠
함대 재건을 위해서 아르민이 조범석의 말을 듣고 항공모함과 유보트 중심의 해군 재건 안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첫 등장했다. 그런데 원 역사와 달리 "유보트 300대만 있으면 영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말을 미친 소리라고 일축해서 아르민을 벙찌게 만든다. 나치 독일은 지속적으로 확장하여 영국과의 대립을 피할 수 없었던 반면 아르민의 독일은 외교 협상 기조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작중에서도 잠수함의 양산은 영국의 역린을 자극할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결국 아르민은 조범석을 마구 갈군 뒤 해군은 장식품 정도로 취급하기로 했다. 이른바 '움직이는 에펠탑'. "아니 에펠탑이 움직인다니까? 에펠탑에 왜 성능을 따지지?"
원 역사에서는 나치즘에 심취한 인물이었고 조범석은 해군에 무지해서 그가 한 말은 알아도 그가 누군지는 모를 정도라 숙청당할 가능성도 충분했는데 작중에선 성향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 귄터 뤼첸스
영국 본토 함대를 핵폭격으로 쓸어버리기 좋도록 예쁘게 모아보라는 자살에 가까운 임무를 맡고 독일 해군 혁명함대를 이끌고 영불해협에 진입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여기서 죽겠지만 역사는 독일 함대가 대영제국을 멸망시켰다고 기록할 것이라는 비장한 연설을 한다.[33] 다행히 핵폭격은 성공적으로 이뤄져서, 유령 함대가 되어버린 본토 함대를 공격해서 궤멸시키는 업적을 이뤄냈다.
3.4.3. 공군
- 빌헬름 뵐케
오스발트 뵐케의 형으로 동생처럼 파일럿이었으나 유명하지는 않았다. 원 역사에서는 오스발트가 전사하고 빌헬름은 생존해서 1954년까지 살았으나 작중에서는 오스발트가 살아남고 빌헬름이 전사했다.
- 만프레트
폰리히트호펜
원역사의 붉은 남작으로 유명한 에이스 파일럿. 원역사와 다르게 1918년에 전사하지 않았고 살아남았다. 뵐케와 다르게 융커 출신인 관계로 돌격대에 가입하지 않고 군대에 남는다. 그 뒤, 공군은 사실상 리히트호펜 일가가 차지했다고 한다. 아르민 집권 후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공군을 분리독립시키면서 공군참모총장이 되었다.
- 알베르트 케셀링
다이나모 작전 때 독일 해군을 보호하며 연합군의 탈출을 막고 영국 함대 위에 핵을 떨구기 위해서 해당 지역의 모든 공군과 육군 병력을 지휘하게 되었다. 결국 임무를 완수했다.
3.4.4. 공화국 수비대
- 오스발트 뵐케
원 역사의 뵐케의 금언으로 유명한 에이스 파일럿. 형 빌헬름 뵐케와 함께 파일럿이 되며 아르민과의 인연을 쌓는다. 원 역사와 달리 1916년에 전사하지 않았고 종전 후 헤르만 괴링을 따라 돌격대에 들어온다. 아르민의 집권 후 만들어진 친위대 '공화국 수비대'의 사령관이 됐다. 아르민에 대한 충성심은 확고하지만 그와 함께 하면서 쌓아온 내적 친밀감 때문에 그를 숭배하는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와 권력 투쟁에도 진절머리를 내며 조직의 존재 목적인 공화국의 적을 물리치는 것만 생각하는데 그 때문에 사령관이 된 듯. 공화국 수비대에 조종사 출신이라 기존 육군 융커 장성들과 사이가 나쁘다.
- 헤르만 호트
육군 높으신 분들의 정치질에 질려서 자신이 생각하는 기갑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공화국 수비대로 전군해서 참모장을 맡고 있다. 조직의 특성상 아르민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뵐케를 사령관에 임명했지만 조종사 출신이라 부족한 육전에 대한 전문성을 보완해주려는 인선인 듯. 아르민 로젠바움에 대한 광적인 충성심으로 무장하고 있다. 다만 군부 내에서는 학맥으로 얽힌 브라우히치와 경쟁에서 못 이길 것 같아서 옮겼다고 알려져있다.
- 베르너
폰프리치
원 역사에서는 동성애자라는 모욕을 당하고도 끝까지 나치를 지지한데다가 반유대주의도 강하고 폴란드 침공 때 전사해서 군사적 능력도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의외로 쿠데타 이후 수사를 받을 때 다 루덴도르프에 속은 탓으로 돌리고 필사적으로 충성을 맹세해서 현역으로 살아남았고, 브라우히치 육군참모총장에 밀려 명목 뿐이긴 하지만 육군총사령관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약점이 많이 노출돼서인지 똑같이 동성애자로 밀고당했는데, 아르민은 이 고발을 무시하는 대신 짬으로는 군 내 최고위급인 그를 공화국 수비대로 전군시켜서 정치장교 역할을 맡겼다.
- 오토 슈코르체니
중위 계급을 공화국 수비대 산하 특별작전국의 공수부대 지휘관으로 미래에서 따온 오륜기 강하 퍼포먼스를 지휘하는 것으로 처음 등장했다. 원래 슈코르체니는 오스트리아 출신인데, 작가는 이에 대해 묻는 댓글에 로젠바움주의에 감화된 슈코르체니가 독일로 이주해서 공화국 수비대에 입대했다고 답했다. 이후 별 등장은 없었으나 1973년 전당대회에 원로로서 등장한 것을 보면 공화국 수비대에서 상당히 높은 자리까지 올랐던 듯하다.
- 프란츠 바이젠바움
막스 바이젠바움과 엠마 바이젠바움의 아들, 1918년생. 작가의 전작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도 등장했던 인물로 전작에서는 극악무도한 나치 추종자[34]로 등장했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기에 본작에서는 어떤 운명을 맞을지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있다. 생후 2개월만에 스파르타쿠스단 봉기에 휘말려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된다. 전작에서와 달리 자신의 유대인 핏줄을 숨길 필요가 없어진 것 때문에 신분 세탁 없이 콘라드 슈미트의 아들이 아닌 조카로서 자라고 있다. 로젠바움사의 첫 봉기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아이'라고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올바르게 컸고[35], 학창시절 나치를 추종하는 급우의 싸대기를 갈기는 등 어릴 적부터 강경 로젠바움주의자로 자라났으며, 성인이 된 후 공화국 수비대에 입대한다.
폴란드가 단치히 양도를 결정하자 이를 점령하러 가는 공화국 수비대 소대장 중 하나로 등장했는데, 총으로 위협하는 폴란드 국경대원에게 자신의 목숨은 총통이 주신 것이니 쏠테면 쏴보라고 을러대며 방향만 다를 뿐 광신도적 성향은 전작에서와 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도 아르민은 히틀러와 달리 전쟁 범죄를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할 것이라 적어도 강간이나 민간인 학살같은 짓은 저지를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자 끝까지 국경을 지키겠다는 폴란드 국경대원 헨리크에게 존중을 표하며 초콜릿도 나눠주고, 그가 귀가하겠다고 하자 위험하다고 차라리 포로가 되라고 만류했으며, 고집을 꺾지 않자 중대장에게 맞을걸 각오하고 탈출한 척 풀어주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다.
본래는 자청해서 최전방으로 가려고 했으나, 동생의 혈육이자 아들같이 키운 프란츠가 전쟁터에서 죽는 걸 원치 않았던 삼촌 콘라드가 직접 뵐케에게 부탁하여 위험한 프랑스 방면이 아닌 폴란드 쪽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소속되어 있던 공화국 수비대 제1사단이 총통명령으로 폴란드에서 이탈리아 전선에 재배치되었고, 예상 외로 이탈리아 전선이 프랑스 방면보다 훨씬 격렬했는지라 콘라드가 손을 써서 오히려 더 위험해진 꼴이 되었다. 다행히 승전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무솔리니와 같이 로마도 다녀오고, 그대로 돌아와 전역하게 될 예정이다. 그리고 이제 결혼도 하게 될 모양인지 콘라드의 아내가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다고.
50대가 돼서는 로젠바움스부르크(구 베를린) 시장이 되었으며 민족혁명당 독재 체제가 끝나감을 느끼고 개혁에 앞장서기로 한다. 콘라드 슈미트, 마리아 로젠바움 등의 지지를 받아 로젠바움 블럭이 해체되지 않으면서도 민주화 개혁을 이뤄내는 데에 성공한다. 1980년에는 마리아 로젠바움과 함께 스위스 은행에서 조범석을 만나 조범석의 비밀을 아는 단 두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전작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가 본작의 이후 시간대라는 것이 밝혀지며 가장 운명이 안타깝게 뒤틀린 인물이다. 원래 인간말종이던 인물이 운명이 바뀌며 개과천선한 게 아니라 원래 유럽의 민주화와 유럽 통일을 이끈 위대한 정치가였던 인물이 운명이 바뀌며 강간과 살인을 즐기는 인간말종으로 변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히 전작의 프란츠 슈미트와 동일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프란츠 슈미트는 출생 년도가 좀 더 늦으며 엠마는 봉기에 휘말린 게 아니라 프란츠를 낳다가 죽었다. 일단 엠마와 막스가 만난 인연부터가 로젠바움사 때문이었기에 로젠바움사가 없었던 전작에서는 엠마가 아예 다른 남자에게서 프란츠를 임신했을 확률도 있고 그렇다면 이름만 같은 다른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원 역사에서처럼 1931년에 해군에서 불명예제대 당한 후 공화국 수비대에 입대했는지 전함 아르미니우스에 배속된 정치장교로 등장한다. 핵폭발 후 함장인 뤼첸스가 바다 사나이의 유대감으로 용감했던 영국 수병들을 위한 묵념을 지시하자 민족의 영도자 아르민의 이름이 붙은 배에서 불경스러운 행동을 한다며 이의를 제기하는데, 뤼첸스는 이뭐병 취급을 하고 협박까지 곁들여서 입을 다물게 한다. 실제 인물도 꽤나 타산적인 충성을 바쳤다고 평가받는 만큼[36] 로젠바움주의에 진심으로 심취했다기보다는 출세를 위해 심취한 것처럼 연기하느라 작품에 나온대로 억지로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불명예전역을 당한데다가 빽이 됐을 나치당도 없는지라 뤼첸스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듯. 다만 작중 독일에서 둘 뿐인 전함의 정치장교가 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이상의 능력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3.5. 정치인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원 역사에서 바이마르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맡기에 아르민이 미리 침 바르고 친노동자 정책으로 독일 일반 국민의 민심을 얻기 위해 접근한다. 사실 아르민은 21세기식 복지 시스템을 알기에 사민당의 정책은 필요없지만 복리후생 어쩌고 하기엔 빨갱이 싫어하는 카이저가 뒷배라 노동자 파업을 막기 위해 사민당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둘러댄다. 처음에는 친절한 자본가 따위는 없다며 아르민의 속셈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아르민이 언론에 대고 친노동자 정책 편다고 나발을 불자 그러면 그렇지 했다가도, 자신들은 떠올리지도 못한 온갖 노동자 복지가 제공되자 아르민이 처음부터 사회주의자였나 생각하게 된다. 아르민의 답변은 "전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목이 잘리는 처지거든요?" 였다. 이후에도 아르민과 친노동자 정책 수립을 계획하는 등 협력한다.
종전 후 공화국 총리가 되었지만 혼란에 빠진 정국을 수습하지 못하고 아르민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르민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 제압을 도와준 후 사민당과 에베르트에 대한 적극 지지를 선언한다. 하지만 이는 대공황이 찾아오고 독일 경제가 파탄나면 사민당이 자신의 지지를 배신했다며 권력을 장악할 명분을 쌓기 위한 밑작업이다. 원 역사대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어느정도 안정권에 들어간 뒤 사망한다.
- 하인리히 브뤼닝
가톨릭 중앙당 출신의 총리로 독일 경제를 억누르는 배상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히려 독일 경제를 더 망가트려야 한다고 주장해 아르민을 놀라게 한다. 이후 자리보전을 조건으로 아르민에 대한 중앙당의 지지를 이끌었는데, 내심 더 높은 자리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었지만 샤흐트와 경제 정책 관점 차이를 이유로 밀려났다. 이후 아르민이 수권법 통과를 위한 비상시국 조성을 위해 공산당의 소행으로 위장해서 암살한다.
- 에른스트 텔만
독일 공산당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원 역사처럼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10%대 득표율을 얻었으며, 1934년 쿠데타에 가담했다고 발표된다. 이후 다하우 수용소에 수감됐을 것으로 보인다.
- 빌리 브란트
60년대에 재창당된 사회민주당의 정치인. 민주화를 한다고 해도 민족혁명당을 배제해버렸다가는 독일의 패권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기에 프란츠 바이젠바움과 몇 가지 밀약(민주주의와 민족혁명주의는 양립하지 못하는 관계가 아님을 선언, 민족혁명주의가 민족혁명당의 전유물이 아님을 인정, 민족혁명주의를 인정하는 정당만 국정에 참여 가능)을 맺는다.
3.6. 나치당
- 아돌프 히틀러
서부전선에서 복무 중인 그림을 좀 잘 그리는 전령. 대부분의 독일군들이 로젠바움을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히틀러만은 로젠바움은 유대인이며, 적국에도 비행기를 팔아먹어 돈을 챙기는 박쥐같은 놈이고, 독일이 이기고 있을 때에만 싸워서 이름값을 높여놓고 패배하기 시작하자 은근슬쩍 전선에서 빠진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재밌는 점은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유대인설만 제외하면 히틀러의 주장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
원 역사대로 루덴도르프를 만나고 맥주홀 폭동을 일으킨 뒤 일약 스타로 떠오르고 나의 투쟁 집필에 들어갔지만 아르민이 한 발 빨리 일명 '로젠바움주의'를 내세운 책을 출판해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자 경계한다.[37]
1932년 대선에서 로젠바움의 당선을 막기 위해 출마하였다. 그리고 로젠바움의 이미지를 깎기 위해 로젠바움 유대인설을 밀어붙이지만 로젠바움 측이 조카 겔리 라우발 학대, 무솔리니와의 밀약 등의 치부를 풀어 역공을 가하며 이미지를 구기게 된다. 결국 대선에서 로젠바움에게 패하고, 아르민이 취임 직후 공산당과 나치당을 불법화하고 이후 이어진 총선에서 아르민이 창당한 독일민족혁명당이 단독 과반을 달성하여 궁지에 몰리자 결국 봉기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봉기는 결국 실패하였고 본진인 남부 독일을 중심으로 항전하다가 무솔리니의 도움을 받아 목숨만 건져서 오스트리아로 망명했다. 오스트리아 나치당을 장악하긴 했으나 엥겔베르트 돌푸스에 밀려서 효용가치를 잃고 무솔리니의 후원을 받아 반 로젠바움 세력들과 함께 1934년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러나 쿠데타는 실패했고 하인리히 힘러의 배신으로 체포당한다. 슈타지의 혹독한 심문을 받고[38]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르민은 히틀러를 죽이지 않았다. 히틀러는 외세와 루덴도르프에게 조종당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며 내란 관련 혐의로는 사형은 물론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은 대신 나치당의 당비를 횡령하고, '나의 투쟁' 수입을 탈세하고, 조카 겔리 라우발을 감금하고 근친강간하다가 살해했다는 명목으로 다하우 수용소에서 죽을 때까지 징역을 살게 한다. 결국 국가사회주의의 상징이자 순교자로서 죽는 것조차 실패하고, 자기 사상 없이 외세에게 조종당한 꼭두각시, 횡령, 탈세, 근친강간, 존속살해를 저지른 인간쓰레기라는 오명을 쓴 채 죽느니만 못한 보잘것없는 처지가 되었다.[39] 만에 하나 히틀러가 사형당한 뒤 국가사회주의의 상징이자 순교자로서 신성시되어 후계 세력이 나타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며, 이후 인접 국가의 나치당들도 각국 정부들에 의해 싹 쓸려나갔다. 다하우에 수감된 후 정화조에서 똥 푸는 일을 했고[40], 로젠바움 전쟁 종전 후 수감자 대부분이 석방될 때에도 그와 나치당 출신들은 예외로 처리되어 계속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죽이지 않는 듯 했으나 이제 와서 죽인다고 재평가될 여지조차 남지 않아서인지, 괴링에게 권력을 넘겨준 아르민이 마지막으로 히틀러를 포함한 모든 나치 수감자들의 처형을 명령하면서 결국 처형당한다.
- 에른스트 룀
아르민이 대통령에 오른 뒤 대놓고 나치당을 탄압하자 히틀러에게 구국의 결단을 제안하지만 히틀러는 군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는 한 불가능하다고 거절한다. 총선 패배 이후 히틀러가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판단해 봉기를 일으키자 슐라이허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가 간보자 분노한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에 망명한 이후에도 충성스러운 측근으로 남았지만, 1934년 쿠데타에 참여하면서 최후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 하인리히 힘러
1934년 쿠데타가 실패하고 히틀러가 남미로 도주하려 하자 넌 메시아가 아니라 정신병자라며 히틀러를 배신하고 팔아넘긴다. 히틀러 체포에 일조했다고는 해도 나치 수뇌부였으니 다하우에 수감된 것으로 보인다.[41] 괴링에게 권력을 넘겨준 아르민이 마지막으로 히틀러를 포함한 모든 나치 수감자들의 처형을 명령하면서 결국 처형당한다.
- 루돌프 헤스
원 역사의 나치 고관들로 1차 대전 전 언급되었는데 그 이후 등장은 없었으며 히틀러와 함께 오스트리아로 망명했다. 다하우에 수감된 후 대부분의 나치 추종자가 히틀러에 대한 충성심을 버린 것과 달리 히틀러랑 같이 똥 푸는 처지가 된 후에도 그에게 끝까지 충성한다. 괴링에게 권력을 넘겨준 아르민이 마지막으로 히틀러를 포함한 모든 나치 수감자들의 처형을 명령하면서 결국 처형당한다.
- 발터 폰 라이헤나우,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원 역사에서 능력은 뛰어나지만 나치에 광신적으로 충성한 장성들로 작중에서도 똑같다. 아르민 로젠바움의 집권 후에도 일부 초급 장교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세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1934년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실패해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3.7. 기타 인물
- 헤르만 에펜슈타인
실존인물로사실 아니지만알베르트 괴링의 친부로 알려진 유대인 의사이다[42]. 조범석이 빙의하면서 발작을 일으킨 아르민 로젠바움이 그 이후로 갑자기 똑똑해지자 관심을 갖고 무료로 진료를 봐주겠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아말리아와 만나고 싶어서 그러는 듯. 나중에는 원 역사대로 괴링 형제의 어머니와 불륜을 한다. 아르민의 모친 아말리아 때와는 달리 괴링 가문의 빚을 대납해주고 다섯 아이의 대부가 되어주었으며, 아내와 아이들과 성에서 살면서 남편인 괴링은 별거시키는데다 아들인 어린 괴링도 다 알고 있는 등 작중표현 19세기 기획작 야동(...)을 찍었다.
본작에서는 의사라고만 언급되어 있지만 사실 이 사람은 베를린의 부유한 지주에다 프로이센 왕가와 오스트리아 왕실 계보에 속해 백작 작위가 주어진 귀족 출신으로 황실에도 영향력이 있는 거물이었다. 유대인이라는 것도 모친이 유대인이었으나 결혼을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부친은 가톨릭교도였던 것으로 나치 독일 기준으로는 반유대인으로 분류되는 처지[43]. 즉 유대계인 것은 맞지만 정작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유대인이 아니며, 본인도 유대인 자의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대계 인맥은 강해서 대자이자 후계자 삼아준 괴링에게 많이 소개해주었다.
- 빌헬름 2세
아르민이 시험비행을 하기 전에 아부를 떨어둘 용도로 비행기 이름을 '빌헬름 데어 그로세' 라고 붙이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고, 어차피 수많은 후원 요청 편지를 받는데다 체펠린 백작의 실패로 학을 떼고 있었던지라 못본 척 했다가 11월에 시험비행에 성공하자 당장 10월에 '빌헬름 대제' 호의 명명을 승인한다는 답장을 보냈던 것으로 해 숟가락을 올렸다. 굳이 뒷북인거 알면서도 답장을 보낸 것은 체펠린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며 가능성 있는 젊은이를 후원했다는 명성과 비행기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주인공 입장에서도 사실 후원자랍시고 이놈저놈 다 달려들어서 영향을 끼치려다 비행기 회사 경영이 산으로 가는 것보다는 카이저 한 명만 큼직하게 영향을 행사하는게 차라리 깔끔하기도 하다. 그리고 아르민 로젠바움을 만나고 순수 게르만 출신임에 만족하는 한편 매우 수준낮은 아부를 들으며 감동한다.[44] 아부에 넘어가 아르민을 꽤 가까이 하지만 원 역사의 기질은 그대로라 독일 제국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1차 대전 중반부부터 실권을 잃고 허수아비로 전락했으며 아르민을 통해 비밀리에 종전 협상을 하려 했으나 아르민은 애초에 패배를 막을 생각이 없었고 이를 자신의 이미지메이킹 기회로만 사용한다. 결국 패전과 함께 원역사와 동일하게 폐위당하고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여담으로 많은 대역물에서 빌헬름 2세를 다루면서 그의 황당한 면모들을 대역팬들도 꽤 알게 되었지만, 불가리아 차르의 엉덩이를 때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독자들을 더 경악하게 만들었다.[45]
오랫동안 등장이 없다가 로젠바움 전쟁이 끝난 후 드디어 독일로의 귀국을 허락받으며 다시 등장했다.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아닌 공화국 시민 빌헬름 폰 호엔촐레른의 자격으로 귀국하고, 재산은 돌려줄 수 없지만 상수시 궁전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언론과 접촉하거나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빌헬름도 20여년의 망명 생활로 나름대로 판단력이 생겼기에 왕정복고 따위의 꿈은 꾸지 않으며 오히려 이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귀국한다. 아르민이 굳이 빌헬름을 귀국시켜주는 이유는 일단 자신이 청년 시절 그의 후원을 받았기에 은혜를 갚는 쪽이 이미지메이킹에 좋고, 바이마르 공화국과 다르게 독일민족혁명공화국은 카이저가 아닌 융커를 패전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어서 이쪽이 민족혁명주의 이념적으로도 옳으며, 결정적으로 빌헬름이 귀국하면 아직도 정세 판단을 못 하는 군 내 왕정복고주의자들이 꼬일테니 빌헬름을 미끼로 그들을 전부 잡아들이는 숙군 작업을 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자신을 후원해준 노인을 직접 숙청하면 이미지에 좋지 못하니 벨헬름 자체는 건드리지 않을 계획이다. 심리 묘사를 보면 빌헬름 2세를 건들지 않는 것은 실리적 문제 외에도 아르민 나름대로 빌헬름 2세에게 호감이 남아있기도 한 듯.[46] 귀국 후 감격에 취해서 잠시 자중을 못하고 정치적 발언을 할 뻔 했으나 분위기가 싸해지자 금방 정신을 차리고 로젠바움 찬양으로 마무리하면서 수습에 성공한다.
아들 빌헬름 황태자가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융커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정계 진출과 제정 복고의 욕심을 부리자 그러다 죽는다며 만류했지만 빌헬름 황태자는 노망난 노인의 헛소리 정도로 여기고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상수시 궁전을 떠나버렸다. 결국 쿠데타 모의로 빌헬름 황태자가 체포되자 노년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탓인지 사망했다. 아르민은 나름대로 마음의 빚이 있었던 그의 죽음에 안타까워했지만 정치적 이유로 직접 조문하지는 않았다.
- 빌헬름 폰 프로이센
빌헬름 2세의 장남. 왕당파들에게 왕정복고의 밑작업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기 위한 미끼로 아르민은 이 자를 민족혁명당에 입당시키고 장관 등 명예직이 아닌 중책을 던져준다. 아버지인 빌헬름 2세는 제발 좀 조용히 살라고 당부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아르민이 자신을 후계자로 밀어주고 있다고 착각해서 다하우에서 석방된 융커들과 어울리다가 대통령 출마 선언까지 해버린다. 그러나 같이 어울리던 융커들의 쿠데타 모의가 적발되면서 그대로 몰락하는데, 이때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고 착각했을 뿐 자신의 주변에 몰려든 것은 기득권에서 밀려난 불나방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한다. 아르민은 원래 빌헬름 황태자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으나 재판장에서 아르민에게 빌헬름 2세를 독살했다느니 자기 아버지는 객사하고 어머니는 병사하게 한 불효자라느니 하는 패드립을 쳐서 괘씸죄로 죽이기로 한다. 정치범 사형은 리스크가 있기에 다하우 종신형을 받고 이송되던 빌헬름을 분노한 폭도들이 습격해서 때려죽이는 것으로 연출되었다. 빌헬름 외의 호엔촐레른 일가는 모두 재산을 몰수당하고 국외로 추방되었으며 사람 이름에 폰 자를 사용하지 못하는 법이 제정된다.
- 빌헬름 2세(뷔르템베르크)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작중 시대를 보면 이 인물로 추정된다. 체펠린 백작을 후원했으며, 아르민이 만든 비행기 비행 시범 때도 참관해서 백작을 치하한다. 이후 체펠린 백작이 비행선에 추가 투자를 요청할 때 남부 독일 제후국의 국왕답게 북부 프로이센인 아르민이 비행기를 개발했다고 빌헬름 2세가 비행기 개발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해서 밀릴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는 것이 마지막 등장. 전후 혁명으로 왕국이 사라지면서 원 역사대로 폐위된 듯.
- 막스 바이젠바움
콘라드 슈미트의 여동생 엠마의 남편, 즉 매제. 유대인이다. 얼굴은 잘생겼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징병되지 않은 듯하며 군부에 의해 로젠바움 사에서 잘린 뒤 집에서 시를 쓰며 아들 프란츠를 돌보는 가정주부 노릇을 하고 있다. 콘라드가 서부전선에서 천신만고 끝에 귀가 후 처음으로 만났는데, 몸도 부실해 보이고 사실상 한량이나 다름없는 시인 노릇을 하는 매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47] 다만 유대인이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성씨 때문에 궁금해서 물어본 것일뿐 반유대주의는 없다고 부연해준다. 1919년에 장을 보러 나갔다가 스파르타쿠스단 봉기에 휘말려 아내와 함께 사망하였다.
- 엠마 바이젠바움
콘라드 슈미트의 여동생. 로젠바움 사 직원이며 막스 바이젠바움과 결혼해 아들 프란츠를 낳았다. 작가의 전작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서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고 언급됐는데, 작중에서는 소젠바움사에 취직하면서 형편이 좋아서 아이를 낳고도 생존했다는 설정인듯. 1919년에 장을 보러 나갔다가 스파르타쿠스단 봉기에 휘말려 남편과 함께 사망하였다.
- 휴고 슈티네스
독일 재계의 카이저라고도 불리는 독일 재계의 거물. 아르민의 존재 때문에 본인의 사업장에서도 복지를 도입해야 한지라 그의 친노동자 경영에 불만을 품고 아르민과 만난 자리에서 그를 붉은 자본가라고 말하며 협박을 곁들여서 재고를 요청하지만, 거절당하자 아르민이 지원하는 사민당 정부를 흔들고자 카프 폭동을 사주한다. 하지만 원 역사대로 실패하고, 이후 쿠데타군은 슈티네스의 본진인 루르에서 일어난 일명 '루르 반란'이란 공산주의 반란 진압에 투입되면서 본진이 피범벅이 돼 로젠바움의 일은 후순위로 밀린다. 대공황을 이용해서 사업을 크게 벌렸지만 탈출을 하기도 전에 병사했고, 후계자는 능력이 부족한데다가 남들의 피눈물을 이용해서 사업을 벌린지라 이후 슈티네스의 기업은 로젠바움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아르민도 그가 X같았는지 그의 기업들을 인수하고 자신의 초상화를 걸어서 능욕하고 지옥에서 보고 띠꺼워하라고 독백했다.
- 레니 리펜슈탈
원 역사처럼 '푸른 빛'을 만들어서 히틀러가 그녀의 광팬이 되었는데, 히틀러가 몰락하면서 작품 활동에 지장이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더 대담하게 아르민의 문란했던 젊은 시절을 다룬 '아르민 카사노바 씨의 화려한 인생'을 만들고 아르민의 눈에 들어서 선전 영화를 만들러 스페인에 가게 된다. 이후 오스트리아 전선에서 이탈리아군이 이탈리아군의 만행을 담은 선전 영화를 찍으러 오스트리아로 파견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원 역사와 달리 유대인 탄압이 없었고, 세계적인 석학이라 로젠바움 정권에선 그를 일절 건드리지 않았고 교수직도 맡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인의 강경한 평화주의적인 성향에,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아인슈타인의 지인들 중 상당수는 의문사하거나 다하우로 끌려갔기 때문에 로젠바움 정권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독일계 핵물리학자들이 학회에 한참씩 나타나지 않고, 다시 나타나서 이유를 물어도 얼버무리고, 서신조차 끊기는데다가 관련 자료들이 사라지는 등 원 역사의 맨해튼 계획과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으로 원자폭탄을 개발 중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이후 페르디난트 로젠바움이 직접 찾아와서 참여하라고는 하지 않을테니 함구해달라는 회유이자 사실상의 협박을 가한다.[48] 유대인 유명인사로서 이스라엘 공화국 건국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독일을 떠날 수 있었고, 이때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스웨덴으로 탈출한 뒤 영국 대사관으로 직행해서 독일의 핵개발 사실을 알린다. 그러나 이는 연합국의 강경 대응을 유도하기 위해 아르민이 의도적으로 핵개발에 대한 정보를 흘리려고 풀어준 것이었다.
- 오토 릴리엔탈
직접 등장은 없음. 독일이 1954년 발사 성공한 최초의 인공위성 릴리엔탈 1호에 이름이 붙는 영광을 누린다.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는 원역사보다 3년 빨랐지만 냉전기 미국의 막대한 투자가 없었다는 것과 이후 민주화 개혁으로 60~70년대에 혼란을 겪은 것 때문인지 인간의 달 착륙은 1980년으로 원역사보다 11년이나 늦게 이뤄졌다.
4. 영국
- 윈스턴 처칠
해군 장관으로 전쟁 참전을 주장하며 첫 등장. 원 역사와 동일하게 오스만 제국 국민이 모은 피 같은 방위성금으로 산 전함 2척을 압수하며 오스만 제국을 적으로 돌려버린다. 이후 로젠바움 사의 공장을 폭격해서 직원 2명이 사망하게 하는데 여기에 눈이 돌아간 아르민이 보복으로 대규모 비행선 폭격을 시도해서 런던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처칠은 이 런던 대공습을 역으로 이용해서 자신은 방공을 잘 준비했으나 군의 비협조로 방공에 실패했다는 언론 플레이로 영웅이 되었다. 이후 원역사와 같이 갈리폴리 전투를 처참하게 말아먹었으나 방공 전문가라는 이미지를 얻었기에 완전히 실각하지는 않았고 방공군 쪽으로 좌천당하는 선에서 끝났다.
전후에는 아르민이 영국에 방문했을 때 만나려 했으나 처칠 쪽에서 만날 이유가 없다며 거절했고, 원 역사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위험성을 예견했듯이 아르민이 두번째 대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며 열심히 경고하고 다니지만 영국 정계는 처칠이 1차 대전 때 로젠바움에게 능욕당한 것을 가지고 뒤끝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고 조롱한다. 그렇게 조롱당하던 처지였으나 폴란드 침공 이후 독일이 로젠바움 정권이 사실 처음부터 전쟁을 준비 중이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다시 떠올랐으며 결국 체임벌린 내각에 합류하게 된다. 개전 후 식민지들에서 로젠바움주의자들이 봉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단 자치권을 약속해서 진정시킨 후 나중에 입을 씻자고 제안해 혐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2차 대전 개전 직후, 무솔리니의 부탁으로 네덜란드 전선으로 시찰을 왔다가 주공이라고 알려진 네덜란드 방면의 독일군이 자국 전차가 아닌 폴란드 노획장비 7TP 탱켓을 끌고온 것을 보고 스당에 나타난 독일군이 주공이라고 확신하거나 로젠바움은 미치광이 학살자가 아닌 새 시대의 개척자가 되고 싶어하므로 절대 대도시에 핵을 쏘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등 처칠답지 않게 의외로 날카로운 면모를 보여준다.[49] 문제는 노르웨이를 선제공격하자거나 소련을 선제공격하자는 등의 헛소리를 더 많이 한지라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본토 함대에 대한 핵공격도 예측하고 더들리 파운드 해군참모총장에게 본토 함대의 분산을 요청했지만, 파리를 방어하기 위해 공군의 상당부분을 할애해서 불가능한 요청이었던지라 멱살을 잡히고 만다. 그답지 않게 책임을 추궁당하자 사과하고 파운드가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 등을 돌려 나간 것을 보면, 체임벌린 못지 않게 절망에 빠진 듯.[50] 결국 핵 투하로 본토함대가 전멸하자 이제 와서 버티자고 해봤자 이길 방법이 없다며 패배를 인정하고 체념한다.
아르민은 처칠을 베를린으로 초청했지만 본인과 체임벌린이 거절해서 아르민과의 만남은 또다시 무산되었다. 처칠이 하도 아르민을 까댄 전적이 많아서 베를린에 갔다간 영원히 다하우에서 썩게 될 거 같아서 거절했다고... 그리고 독일이 의도적으로 일본을 자극하여 태평양 전쟁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간파해내고 군대를 재건하기 위해 독일에서 무기를 사오자고 제안한다. 영독관계 악화와 패전에 직접적으로 큰 책임이 있는 처칠이 정계 은퇴를 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이런 주장으로 군을 재건할 때까지만 남아있겠다며 계속 유임된다.
이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헬리팩스 경이 총리 직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후임 총리로 지목된다. 영국이 매우 아쉬운 상황이 되었기에 이제서야 베를린을 직접 방문하여 아르민과 드디어 만나게 되었으며, 아르민은 완전한 갑의 입장에서 처칠을 가지고 논다. 결국 영국은 프라하 조약기구에 협력국 형식으로 참여하며 독일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후 일본과의 함대결전에서 영국의 마지막 남은 항공모함들이 전부 격침당하자 결국 마음이 꺾여버렸고, 해군 없는 섬나라 신세가 되어 처절하게 몰락하느니 독일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독일의 패권을 인정해버린다. 이후 프라하 조약기구에 정식 가입하고 런던에 독일군이 주둔해도 좋다며 완전히 로젠바움 딸랑이로 전락했고, 이참에 로젠바움사 주식도 사들여서 개인적으로 돈도 좀 챙기려 한다. 하지만 재무장관 시절 투자실패로 진 빚을 이번에야말로 청산하겠다면서 로젠바움이 사망하기 1달 전 거액을 대출해서 로젠바움사 주식을 풀매수했다가 로젠바움 사후 주식이 폭락하면서 -30%의 손해를 봤고 로젠바움의 장례식에서 통곡한다.
- 램지 맥도널드
최초의 노동당 출신 영국 총리로 독일의 재무장은 자위권을 위한 것이라며 이를 용인한다. 이에 무솔리니는 맥도널드, 로젠바움 두 좌파 수괴가 이탈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손잡았다며 분노한다.
- 에드워드 8세
원 역사에서 나치와 내통했고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제위에서 내려온 것으로 유명한 영국 국왕. 범게르만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한 동경은 똑같아서 아르민이 영도하는 독일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며 전통을 무시하고 국정에 개입까지 하려고 해서 내각이 골머리를 앓게 한다. 원 역사와 같이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려고 해서 볼드윈 총리를 괴롭게 했고 결국 결혼해서 퇴위했다.
- 스탠리 볼드윈
1936년 당대의 영국 총리. 독일을 견제해야 하는데 녹록치 않은 외교 환경, 비호의적인 국민 정서, 친독 정책을 종용하는 국왕 사이에서 고통 받는다. 그 때문에 이후 오스트리아 위기 때 독일과 이탈리아를 중재하러 와서 미라마냥 무기력하게 왔는데 이걸 보고 무솔리니는 영국이 독일하고 밀약을 맺었다고 착각한다.
- 네빌 체임벌린
원 역사에거는 뮌헨 협약 체결로 영국 역사와 인류 역사에서 두고두고 까였지만 작중에선 체코슬로바키아가 평화롭게 독일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버리고 아르민 로젠바움이 이끄는 독일이 대놓고 대영제국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로젠바움주의를 퍼뜨리면서 집권 후부터 확고한 반독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아르민의 야욕을 간과해서 재무장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고, 폴란드 침공 이후로 정권이 위기에 몰리자 처칠을 입각시켜서 위기를 돌파하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안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독일이 건국을 후원한 이스라엘을 승인해주는 대신 중립으로 돌려놓는 실속을 챙기기도 한다.
2차 대전이 발발하고 프랑스가 원 역사와는 달리 낫질을 당하고도 더 버티면서 공군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야 했다. 결국 핵폭격을 막지 못해 런던 교외에서 버섯구름을 직접 목격해버렸으며, 본토함대 전멸과 덩케르크의 영국군 전원 항복이라는 상황에서 아르민이 지중해 함대를 빼지 않으면 핵으로 날리겠다고 협박하자 지중해 함대를 철수시킨다. 원래도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패전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적어도 후임자에게 대영제국 최초의 패전총리라는 오명을 남겨주지 않기 위해 항복 협정에 서명할 때까지는 살아있겠다는 초인적인 책임감 하나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핵이 터진 뒤 몸에서 암이 발견되었음에도 치료를 거부했는데, 본토함대 및 프랑스에서 몰살당한 영국 청년들의 원한이 자신에게 암을 만들었다고 여기면서 치료는 살고 싶어서 받는 것인데 살고 싶지 않다면 뭐하러 치료를 받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베를린에서의 협상에서 아르민이 내세운 이념과 달리 실제로는 식민지 해방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간파했고, 결국 아르민의 제안대로 식민지에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시간을 돈으로 벌기로 합의한다.
- 에드워드 우드(헬리팩스 경)
체임벌린의 후임 총리. 태평양 전쟁 개전 후 일본군에게 참패하자 총리 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에는 '영국식 로젠바움주의'가 필요하다며 친독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독일과의 전쟁이 다가오자 바로 독일을 손절하고 노동당 내의 친독파들을 숙청한다.
- 더들리 파운드
영국 해군참모총장으로 됭케르크에 고립된 영국군을 구하기 위해서 출정하나, 처칠이 불러서 핵무기를 대비해서 함선들을 산개해야 한다고 청한다. 그러나 이는 당면한 위협인 독일 공군을 무시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요청이었고 독일 공군을 막아야 할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상당수를 프랑스로 보내버린 장본인이 요청한 것이라 분노가 폭발해서 처칠의 멱살을 잡고 때리기 직전까지 가는데, 이내 단념하고 핵무기의 위협은 알지만 자신들이 맞으면 영국 시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며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 찰스 포브스
영국 해군 본토함대 사령관. 영불해협 해전에서 독일 폭격기가 핵 투하를 하기 직전 뭔가 쎄하다는 것을 느끼고 "늦었다"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후 직접 묘사는 없으나 그가 탑승했을 본토함대 기함인 HMS 넬슨의 바로 위에서 핵폭탄이 격발되며 HMS 넬슨의 승조원 전원이 전사했다고 하므로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즉사했을 듯하다.
- 고트 자작
영국 대륙원정군 사령관으로 작중에서도 같은 직책을 맡았다. 원 역사에서는 다이나모 작전을 성공케 한 독일군의 판단 착오들이 없었고 핵폭탄에 본토 함대가 궤멸되자 중과부적으로 항복했다. 이후 본토로 복귀해서 청문회에서 해당 전역의 실패가 처칠의 판단 착오에서 비롯됐다며 책임을 전가한다.
- 해럴드 윌슨
1973년의 영국 총리. 독일의 패권이 흔들리는 틈에 다시 자기 편에 붙으라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고 유럽연방공화국 출범에 앞장선다.
5. 미국
- 라이트 형제
원 역사에서 비행기를 최초로 개발했지만 조범석과 아르민 때문에 비행기 개발자라는 타이틀을 빼앗겼다. 그러나 아르민은 원역사의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개발한 후 소송과 음해에 시달리다가 형인 윌버는 요절까지 했으니 그런 운명을 막아준 자신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뻔뻔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차피 독일의 아르민이 미국 지사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라이트 형제가 로젠바움 미국 지사를 담당하게 된다. 원 역사에서 자신들의 업적을 모르는 라이트 형제는 어째서 로젠바움이 자신들을 이렇게 신뢰하는지 알지 못하며 로젠바움을 은인으로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1차 대전이 발발한 후 아르민의 비밀 지시에 따라 회사명에서 로젠바움을 빼버리고 협상국의 전쟁 수행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어째서 독일군에서 복무 중인 아르민이 자신들에게 협상국을 도우라는 지시를 내렸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그저 전쟁에서 패배했을 때 처벌을 피하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한다. 아르민이 계획대로 전선에서 물러나고 경영권을 뺏긴 후 스위스에서 몰래 만나 윌슨 대통령에게 밀서를 전달한다.
한참 등장이 없다가 태평양 전쟁 개전 후 동생 오빌 라이트가 루즈벨트의 친서를 들고 독일에 특사로 파견된다. 하지만 전문 정치인도 아닌데다 순진한 성격인 그는 아르민에게 마구 휘둘러지며 이용당하기만 한다.
- 우드로 윌슨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1차대전 종전 논의를 위해 유럽에 발을 디딘다. 그리고 아르민의 밀서에 영향을 받고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서 카이저 빌헬름 2세와 독일 군부의 수장인 힌덴부르크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독일 국민들이 분노해 전쟁이 재개될 것으로 보이자 최소한 프로이센 군부의 확장 욕구만은 거세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군부 2인자였던 루덴도르프가 베르사유 조약에 사인하게 만든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로젠바움사 미국 지사인 WR사 항공기를 대여하여 선거유세를 한다. 관계자의 만류를 무시하고 항공기 점검을 미뤄가며 강행군을 하다가 추락 사고가 일어났고, 비서와 조종사가 사망했으나 본인은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고 간신히 살아남는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사고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구조대에게 자신의 이름이 아닌 자기 비서의 이름을 대면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사망 오보가 나도록 유도하는 초인적인 정치 감각을 보여줬다. 이후 아르민과 항공기의 결함이 사고 원인인 것으로 발표하여 자신의 과실을 덮어주는 대가로 앞으로 평생 WR사의 항공기를 타겠다는 거래를 하며 협력 관계가 된다.[51]
다만 소아마비 때문이 아니라 이 사고의 부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건강도 더 안 좋아진다. 아르민은 그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역사의 물결에 사라지길 바랬지만 결국 원 역사대로 대통령이 되었다. 다만 아르민과의 인연으로 친독 성향으로 알려졌고 작중에선 로젠바움주의가 '제 3의 길'의 위치를 확고하게 차지해서 뉴딜 정책을 펼때도 로젠바움주의자라고 공격받았다고 한다. 독일 해군이 전함 기술 협력을 요청했을 때는 정치 괴물답게 탁월한 줄타기 실력을 보이며 국제 관계, 해군의 우려, 국내 정치를 다 고려해서 독일에게 희망고문만 하다가 짬시켰다. 결국 열받은 아르민은 외교적 보복으로 일본과 교류하여 항공력을 강화시켜 주었다. 그러자 이번엔 미국과 태평양 패권을 다투는 일본과 독일이 밀착한다며 더욱 견제하는 자기실현적 경계 패턴.
1936년 방독에서는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독일은 군비축소 및 더이상의 확장 포기를 해서 평화를 이룩하자' 라는 제안을 하지만 영국은 몰라도 프랑스는 독일에게 뭐 하나 줄 생각이 없었으므로 거부되었다. 애초에 받아들였다가는 아르민 정권이 붕괴하는 제안이기도 하다. 이후 로젠바움 전쟁이 개전되자 원역사에서처럼 중립법을 꼼수로 우회하여 연합군에게 막대한 랜드리스를 해주는 동시에 참전할 준비를 시작했는데, 전쟁이 1달만에 독일의 완승으로 끝나며 쪽박을 찬 영프에게 돈을 떼먹힐 것은 물론 국내에서는 편을 잘못 들어서 유럽 시장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며 큰 비난을 받는다. 이 지경이 되자 내심 8년 해먹었으면 됐다며 3선을 포기할 생각이었으나 아르민 쪽에서 세계민족해방기구에 참여하라며 동앗줄을 내밀자 바로 로젠바움 총통이야말로 신이 내린 인물이라며 독일로 달려가는 태세전환을 한다. 덕분에 바닥까지 떨어진 지지율은 다시 높아지며 3선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는데,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미군이 일본군에게 연패하자 다시 지지율이 급락해서 독일의 지원을 받기 위해 오빌 라이트를 특사로 보낸다. 아르민은 이 기회를 잘 살려 독일의 무기들을 짭짤하게 팔아먹으면서 장남 페르디난트를 미국 여행을 빙자한 파견을 보내 미국의 핵개발에 협력해주었고 미국이 독일의 뒤를 이어 두번째 핵보유국이 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독미소 삼극체제가 자리잡자 미국은 체급도 가장 크고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보호받고 있어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유일한 변수는 독일과 소련이 손잡고 미국을 고립시키는 상황이므로 절대 팽창 정책을 펼쳐 어그로를 끌지 않고 자유무역으로 장사나 하면서 꿀이나 빨면 독재 국가들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지므로 미국이 승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주 국가인 미국의 특성상 자기 후임 대통령들이 지지율을 얻기 위해 호전적인 정책을 펼칠 가능성을 걱정한다. 결국 이런 걱정과 권력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전쟁이 끝났지만 준전시나 다름없다는 명분으로 4선에 출마해버렸고, 또 당선되면서 기어이 아르민 로젠바움보다 더 긴 16년의 임기를 보장받으며 국내외에서 독재자 소리를 듣는다.
만족을 모르고 기어이 5선에 출마해서 20년을 해먹겠다고 선언하자 민주당 내에서도 큰 논란이 터졌고, 이 와중에 백악관 2층 바닥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서 휠체어와 함께 1층으로 추락해서 부상을 입는다.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논란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고를 은폐하려 했으나 정보가 새어나갔고 루즈벨트에 불만이 있던 백악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사실을 밝혀버리며 당 내에서도 버림받는다. 이후 민주당이 자신의 5선을 돕지 않자 삐져서 건강 문제를 빌미로 휴양이나 다니면서 민주당 선거 유세를 돕지 않는 뒤끝을 부린 끝에 정권은 공화당에게 넘어가버린다. 16년의 임기를 마친 후 퇴임식에서 로젠바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미묘한 감정[52]을 느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 조지프 케네디
원 역사에서 케네디 가문의 토대를 만든 인물로 존 F. 케네디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대공황 직전 모든 주식을 처분하여 숏을 친 전설적인 투자자로 미국의 광란의 20년대를 이용하려고 하는 아르민이 루스벨트의 소개로 만나 실질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 그리고 대공황 직전 아르민의 조언을 받아들여 대규모의 공매도를 진행하였기에 원 역사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내었을 것으로 보인다.
- 제시 오언스
베를린 올림픽 4관왕을 차지한 흑인 육상선수. 원 역사에서도 히틀러는 악수를 하며 그를 치하했고 손도 흔들어줬지만, 작중에서 아르민은 루즈벨트가 노골적으로 반독 성향을 드러내자 금메달을 딴 제시 오언스를 포옹하며 독일의 평등주의와 반제국주의 가치를 선전하며 루즈벨트와 영국을 동시에 엿먹인다. 당시 인식상 경기 직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더러운 깜둥이를 백인인 독일 총통이 직접 포옹했다는 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루즈벨트는 제시 오언스와 악수라도 했다가는 자신의 지지율이 폭락하리라는 생각에 아프다는 핑계로 황급히 시상식장에서 도망치며 제시 오언스를 외면하는 추태를 보였다.
- 조지 C. 마셜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은 3인 1조로 운용하는 판처슈렉과 유사한 무기를 운용하는 것을 미국 정치권에서 이를 보고 전차 무용론을 주장하며 대신 판처슈렉을 카피한 바주카를 더 도입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마셜은 어떻게든 전차를 지켜내려고 했지만 결국 미국은 전차 개발을 중단하고 바주카를 대량생산하게 된다. 로젠바움 전쟁 이후 원 역사처럼 육군참모총장이 되어서 무기에 대한 투자를 건의하나 임기말의 루즈벨트에게 무시당한다. 이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루즈벨트의 친서를 직접 전달하고 로젠바움 전쟁에서 설립된 교리들을 얻기 위해 독일에 왔다.
- 더글라스 맥아더
로젠바움 전쟁 이후 일본 제국의 위협이 점증되자 필리핀에 더 많은 투자를 요청하나 루즈벨트에게 무시당한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일본의 군정사령관이 되었으나, 소련의 조선 내전 불개입을 받아낸 대가로 일본공산당의 활동을 용인하라는 백악관의 명령을 보고 분개한다.
히로히토를 매달아버린 후 일본인은 천성적으로 사악한 민족이니 국제 사회의 감시가 필요하다며 일본인의 죄책감을 자극해 통제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지나친 일본인 악마화의 반작용으로 민족 따위는 허상이라는 공산당의 세력이 커지게 된다.
1956년 듀이의 후임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다. 취임 직후 매카시 일당을 쓸어버렸고 공산주의와 민족혁명주의의 침투를 막으려면 나라를 좀먹는 인종차별,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믿고 딕시들을 무자비하게 때려잡기 시작한다.[53] 덕분에 코 앞의 쿠바가 공산화되는 것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 내부가 혼란스러워지지만 정작 소련과 독일은 미국과 너무 경제적으로 얽힌 것이 많아 미국의 혼란이 빨리 수습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
딕시를 재기불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인단제를 폐지하고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혁을 선언했으며, 이후 암살당하긴 했으나 직선제 개헌은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 개헌 후 분노한 딕시에게 암살당했거나 개헌 전에 암살당했으나 본인의 죽음으로 개혁이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로젠바움 전쟁 후 미국 육군이 전훈과 향후 과제를 토의하는 장소에서 짤막하게 등장한다.
- 조지 패튼
이름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아이젠하워가 언급된 부분에서 전차를 달라고 빼액거리는 한 장성으로 추정되어 전작의 독자들에게 반가움을 안겼다.
이후 만슈타인에게 전격전을 선보인 그 워게임을 언급하면서 아르민과 워게임을 하게 해달라고 마셜에게 조르는 모습으로 직접 등장. 한니발의 환생인 자기가 보기에 아르민 총통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환생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등 특유의 광기는 여전하다.
종전 후에는 신탁통치 중인 조선의 군정사령관이 되었다. 내막은 미국이 저 정신나간 놈이 육군참모총장이 되는 꼴을 보기 싫어서 잘 구워삶은 후 조선으로 보내버린 것인데, 그런 상황을 모르는 패튼은 자신을 공산 세력과의 최전선으로 보내주려는 것으로 착각하고 조선군을 강군으로 키워내 행정가로서의 유능함을 증명한 뒤 정계에 진출한다는 망상을 하고있다.[54] 조선인들이 화씨 0도에서 100도를 오가는 극심한 연교차의 극한 기후와 지게를 사용한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구르카 못지않은 타고난 전투민족이라는 이상한 오해를 하고있다.
문제는 군사 분야에 대해서는 북진멸공이니 만주점령이니 하면서 초강경책을 떠들지만 행정에는 문외한인데다 혹시라도 실수를 했다가 정계 진출에 악영향이 갈까봐 최대한 일을 미루려고 하는 보신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토지개혁을 미뤄서 공산당이 세를 불릴 기회를 줘버렸고 대선 후에 시위를 자신이 진압했다가 보너스 군대 때처럼 오명을 쓸까봐 김구에게 정권을 이양해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결국 내전의 책임을 물어 해고당하고 귀국한다.
- 토머스 E. 듀이
루즈벨트가 5선을 하겠다며 추태를 부리다가 실패하자 민주당의 대선을 훼방 놓는 트롤링을 벌인 탓에 손쉽게 1948년 대선에서 승리한다. 이후 루즈벨트가 우려했던대로 유화 정책을 폐기하고 미국의 영향권으로 인정받은 지역에서 친소련, 친독일 세력을 적극적으로 때려잡겠다고 선언한다. 재선에 성공했고 1956년 같은 당의 맥아더에게 정권을 넘겨준다.
6. 소련
- 블라디미르 레닌
제정 러시아가 곧 망하고 소련이 들어선다는 것을 아는 아르민이 미리 인맥을 만들어놓기 위해 스위스에서 접선한다. 아르민을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좌파적 성향을 가진 공화주의자 정도로 이해하고 협력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아르민은 레닌과의 만남을 통해 사상의 필요성을 느끼고 <민족사회주의>를 생각해낸다. 사망 전에 혁명동지들에게 아르민 로젠바움은 이상주의적이고 온정주의적이지만 개량주의자라 함께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 이오시프 스탈린
아르민 로젠바움을 민주주의자로 여기는 부하들과 달리 권력의 화신답게 로젠바움 그룹은 혁명을 위한 자금원, 조직한 시민단체는 혁명의 전위 세력이라며 아르민이 구축한 건 전제적 독재정권이라고 정확하게 간파한다. 어쨌든 소련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르민이 보낸 밀사가 기존의 관계를 더 발전시켜서 그 이상을 원한다고 하자, 그 속내를 알아차리고 맘에 들어한다. 1934년 쿠데타 후에는 원 역사에서 히틀러가 저지른 장검의 밤을 보고 그랬듯이 아르민을 칭찬하며 지대한 호감을 품고, 아르민이 구상한 모든 것에 협조하면서 밀월관계를 맺게 된다.[55][56] 독일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레닌의 후계자로서 호승심으로 아르민을 직접 만나보기로 하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직접 가기로 결정한다.[57] 그리고 아르민과 회동에서 원 역사보다 4년 일찍 똑같은 내용의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게 된다.[58] 아르민의 통치술에 감명을 받아서 대숙청을 더 강력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2차 대전 중 폴란드와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벌어지자 이를 협정을 깬 것으로 간주하고 폴란드를 점령해서 폴란드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나, 대숙청의 여파로 소련군이 약화된 것을 느낀데다가 전쟁 중 보여준 독일의 힘에 경악해서[59] 독일을 견제해서 독일이 수립한 신질서를 거부하고 옛 식민지들을 적화시키는데 주력하기로 한다. 독일과 우호적이었을 때에는 민족혁명주의는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만한 이념이라서 공존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나 로젠바움 전쟁 이후에는 민족혁명주의는 혁명을 배신하고 자본주의와 공존을 택했다며 민족혁명주의자들을 올바른 사회주의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로젠바움, 루즈벨트를 초청해서 얄타 회담을 열었고 이 회담의 결과로 일본은 독미소 3국이 경쟁하듯이 핵을 쏟아부어 초토화되었으며 3분할 당한다. 전쟁이 끝난 후 소련이 대숙청의 여파로 휘청였지만 잠재력 면에서 독일에게 월등히 앞선다는 것을 깨달았고, 독일이 강한 것이 아니라 로젠바움이라는 인물이 워낙 대단해서 독일이 그 역량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간파한다. 이후 미국은 구 식민 열강들과 같은 체제고 독일은 구 식민열강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품었다는 오점이 있기 때문에 결국 소련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역사와 동일하게 1952년 처이발상이 병사하자 의사들의 독살을 의심한다. 그러나 원역사와 달리 독소전 승리가 없었기에 권위가 부족해서 이는 스탈린의 판단력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권력이 흔들림을 감지한 스탈린은 상대적으로 무색무취하고 정치적 능력이 부족한 몰로토프와 말렌코프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서기장에서 물러나서 상왕 정치를 펼치기로 한다. 그러나 1년만인 1953년 사망한다.
여담으로 방독 중 몰로토프와의 대화에서 향후 정세를 구상하면서 프랑스가 독일에게 순식간에 무너지는게 말이 되냐며 그게 실제로 일어난다면 자신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겠다는 드립을 쳐서 독자들 사이에서는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는 효자 드립이 흥하고 있다.[60] 당연히 실제로 미사를 보진 않았지만 이후 몰로토프를 볼 때마다 호언장담을 했던 흑역사가 떠오르는 듯.
- 막심 리트비노프
소련의 외무부장관. 원 역사의 나치당과 달리 로젠바움 정권은 반유대주의를 내세우지 않고 주변국과도 합리적인 외교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로젠바움주의는 무솔리니 같은 파시즘의 아류이고 독일은 명백히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며 가상 적국 1호로 간주하고 원 역사처럼 서방 국가들과 함께하는 집단 안보체제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민을 직접 만난 스탈린이 죽이 잘 맞아서 독소 불가침조약까지 체결하면서 해임당하게 되었다.
-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독일을 방문한 스탈린을 수행했으며, 아르민과 회담 후 스탈린에 의해 리트비노프 이후 후임 외무부장관에 지명되었다. 무색무취하고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말렌코프와 함께 차기 권력자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 스탈린이 독일이 프랑스를 이기면 미사를 본다고 호언장담했었다는 뒷담을 꺼냈다가 이걸 빌미로 공격받아 몰락하고 오지의 수력발전소장이나 폴란드 대사같은 한직이나 전전하는 처지가 된다.
- 게오르기 말렌코프
무색무취하고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몰로토프와 함께 스탈린의 후계자로 지명된다. 몰로토프가 스탈린 뒷담을 했다가 숙청당하고 스탈린의 후임 서기장이 되기는 했는데, 스탈린과 달리 바지사장에 가까우며 소련은 일인자가 없는 집단지도체제가 된다.
- 유리 안드로포프
1973년 유럽 침공 실패와 뒤이은 쿠데타로 혼란에 빠진 소련에서 지도자로 옹립되어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어려운 임무를 맡게 되었다. 이후 소련 상황에 대한 묘사는 없었으나 현대까지 소련이 존속된 것을 보면 어떻게든 개혁에 성공한 듯하다.
7. 프랑스
- 샤를 놀렛
전작인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서 1차 대전 때는 주인공 김유진을 도와줬고 2차 대전 때는 미국이 샤를 드골의 대항마로 염두에 뒀지만 종전 전에 사망한 인물. 여기서는 독일군을 감시하기 위한 <연합군 통제 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고 언급되었지만 실제 등장은 없었다.
- 모리스 가믈랭
프랑스군 참모총장. 독일과 체코가 자유무역협정으로 밀착하면서 프랑스에서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자, 의회에 나가서 대공황으로 인한 군축으로 군사행동이 불가함을 주장하며 위기감을 이용해서 예산을 더 타내기로 한다. 당대에는 독일조차 존경하는 명장이고 선출된 정부를 존중하는 흔치 않은 훌륭한 군인이긴 했지만 2차 대전 발발 시점에서는 독일의 판처파우스트를 보고 '전차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평가하거나 원자폭탄에 대한 첩보를 듣고도 '그래봤자 일개 폭탄이다'라고 생각하는 등 저질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실제 역사를 알고 있는 조범석은 가믈랭은 병신이라며 총사령관이 정신 멀쩡한 놈으로 교체당하기 전에 최대한 털어먹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결국 낫질 작전에 당해버렸는데, 지휘는 안 하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이 전쟁은 졌다고 선언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개전 6일만에 해임당한다.
- 알퐁스 조르주
프랑스군 부사령관. 참모총장 자리를 놓고 가믈랭과 경쟁하던 사이였으나 가믈랭과 달리 우익 성향이 강해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로 밀려나서 가믈랭과 불편한 관계이다. 또한 조르주는 유고슬라비아 국왕 알렉산다르 1세가 이탈리아에 의해 암살당할 때 현장에 함께 있었고 이때 팔과 가슴에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다가 살아난 뒤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서 이탈리아를 증오한다. 그러던 그가 가믈랭의 부하로서 이탈리아군과 함께 작전을 하게 된 것. 독일군이 아르덴 숲을 돌파해서 스당에 나타났을 때 보고 체계의 혼선 속에서 독일군은 존재하지 않으며, 프랑스군이 이탈리아군과 오인 교전을 했거나 민가를 약탈하려던 이탈리아군을 제지하려다가 충돌이 생긴 것이 와전됐다고 판단해버린다.
- 레옹 블룸
1936년 시점에 프랑스 최초의 사회당 출신 총리. 원 역사와 같이 급진적인 노동 개혁과 대공황 극복을 위한 여러 정책들을 펴면서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올림픽 개막식에서 소련의 냉담한 태도를 보고 독일과 손을 잡았다고 짐작하며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돈이 없고 정치권과 국민들의 의지가 없는 상황이라 일단 무솔리니와 손을 잡기로 한다.
- 마르탱 피아프
가상인물. 1차 대전 때 프랑스군으로 참전했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고, 로젠바움 사에서 강제노역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르민이 포로 신분인 자신들을 학대하지 않고 정당하게 임금까지 지급하고 휴일과 복지까지 챙겨주며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것에 감동하여 그를 진심으로 따르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로 귀국했고, 아르민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환영 인파 중 하나로 다시 등장한다. 이때 아르민은 일개 직원이었던 마르탱의 이름을 기억하며 불러준다. 이를 계기로 골수 로젠바움주의자가 되었는지 로젠바움 그룹 프랑스 지부장이 되었고 이후 프랑스 내 민족혁명주의 지하결사인 캐피단의 수장까지 된다. 개전 이후 정부의 추적을 피해 은신해서 독일의 지령에 따라 유언비어를 유포한다.
로젠바움 전쟁 시기까지는 캐피단과 공산당은 협력하는 관계였으나 종전 이후 독소 관계가 악화되며 공산당과 철천지 원수가 되었고, 캐피단은 페탱 정권을 지원하는 정치깡패로 변한다.
- 에두아르 달라디에
독일과 전쟁 상황에서 전시내각을 이끌게 되었다. 전쟁을 앞두고 국가를 어느 정도 총력전 체제에 대비해서 재편하긴 하지만 손발이 안 맞는 연합군, 그리고 가믈랭의 트롤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다. 패전이 결정된 후에는 여론전을 펼쳐서 페탱에게 패배의 책임을 덮어씌우려고 했지만 페탱이 로젠바움과 손잡고 독일의 앞잡이가 되어버리자 그대로 정권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 필리프 페탱
1차 대전 직후부터 로젠바움사의 후원을 받았고 별 생각없이 이에 응했으나, 로젠바움이 정치인이 되더니 로젠바움이 자신의 이름으로 후원하던 상이군인 단체가 로젠바움주의 단체인 캐피단으로 변질되자 로젠바움사를 손절한다. 원 역사와 달리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동맹이 되면서 프랑코에게 스승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를 스페인 대사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다고 여겨져서 파견되지 않았고 달라디에 내각에서 장관이 되었다. 낫질 작전에 당해서 내각이 패닉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처음 등장해서, 지금 상황에서 조국에는 군인이 필요하다며 장관이 아닌 원수로 불러달라며 프랑스군의 지휘봉을 잡고 결사항전을 외친다.
원 역사에서 히틀러에게는 바로 항복했던 페탱이 파리가 함락되고 전국토가 잿더미가 되더라도 결사항전을 하려는 이유는 페탱의 가치관에서 히틀러는 타협 가능한 정상적인 지도자로 보였던 반면 탈식민주의를 외치는 로젠바움은 이해할 수 없는 미치광이로 보였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답이 없더라도 최대한의 피해를 강요해서 최대한 유리한 강화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61] 조범석-아르민은 아는 것과 다른 전개에 당황했지만, 이내 프랑스의 빠른 항복 후 영국이 유럽 본토에서 손을 떼고 본토에 전력을 온존하는 대신 프랑스를 돕겠다며 본토에 육공군을 투입하도록 유도하여 섬멸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그러나 페탱의 분투가 무색하게 독일의 핵 투하로 영국 본토함대가 전멸하며 페탱의 파리 방어선은 활약하지도 못하고 전쟁은 그대로 끝나버렸고 프랑스의 정치인들은 페탱에게 패전의 책임을 덮어씌우려고 한다. 페탱은 자신이 책임을 지고 항복한 후 그대로 역사에서 사라질 생각이었으니 아르민이 그를 직접 만나 프랑스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며 프랑스에도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가스라이팅을 시작하면서 사실 자신은 식민지 해방 따위에 관심이 없는 실리주의자라는 것을 밝히고 프랑스가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유지하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안하자 바로 넘어간다. 종전 이후 한동안 반대파와의 정쟁을 벌였으나 미국과 영국마저 태평양 전쟁 발발로 독일의 손을 잡자 반대파는 와해되고 페탱은 오직 국민투표로만 해임될 수 있는 종신 총리의 자리에 올라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다.
로젠바움주의의 더 극우화된 프랑스판 변종인 페탱주의[62]를 창시했고 페탱의 대숙청으로 죽은 프랑스인의 수가 로젠바움 전쟁으로 죽은 프랑스인보다 더 많았다. 1949년 초 원역사보다 2년 빠르게 사망한다.[63]
- 샤를 드골
제 4기갑사단을 이끌고 독일의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우월한 전차의 체급을 앞세워 강력한 공세를 펼쳤지만 원 역사와 달리 보병용 대전차무기를 충분히 확보한 독일군이 롬멜의 지휘 하에 테크니컬을 앞세워 막아내는데 성공하면서 전략적 패배로 귀결되었다.
- 피에르 라발
페탱의 후임 독재자. 패탱보다 더한 철권통치를 하고 있다고.
8. 이탈리아
- 베니토 무솔리니
바나나토 마시멜로이니[64]제작자 공인 웃음벨파시즘의 창시자. 사회주의 언론인 출신이지만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이탈리아가 승전국으로서의 핏값을 받지 못한 원한과 증오만 남았기에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자비하고 강인한 자가 나타나야한다고 주장하며 원 역사대로 로마 진군을 일으켜 정권을 잡는다. 독일 내전이 일어나고 독일에서 나치당의 몰락이 가시화되자 파시스트 동지 히틀러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그를 오스트리아로 보내 오스트리아를 장악할 계획을 세웠으나, 아르민 로젠바움의 능수능란한 외교 탓에 독일에 재무장의 빌미만 주고 이탈리아의 국제적 입지만 악화되는 외교적 대실패를 겪은 이후 아르민을 원수로 여겨서 독일을 주구장창 씹게 된다.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독일 대표팀의 입국을 지연시키고 사소한 시비로 경찰에 연행하거나 설사를 일으키는 식사를 제공하는 등의 꼼수를 써서 독일이 이탈리아에게 6:0으로 참패하게 만든다.[65] 이후 국민 감정이 격앙된 독일과 문화를 소재로 병림픽을 벌이다가 힌덴부르크 국장에 참석해서 화해의 제스쳐를 취하고, 아르민과 회동해서 쥐트티롤과 오스트리아 문제를 적절히 양보받는 대신 독일의 재무장을 지지하는 성공적인 외교 협상을 성사시킨다.[66] 이후 태도가 급변하여 독일에 전함을 영업하면서 자신의 외교 구상을 망친 프랑스에 건함 경쟁을 촉발시키는 의외로 능숙한 외교력을 선보인다.[67]
이후 원 역사대로 열강들의 묵인 하에 에티오피아를 침공한다. 아르민의 영도 하에 독일이 부상하면서 오랫동안 공들인 중유럽 영향권 계획이 붕괴 직전에 이르고, 파시즘은 로젠바움주의에 밀려 존재감도 희미해지는 상황이라 1936년 올림픽 방문을 계기로 영프와 다시 친해지기로 한다. 직후 오스트리아 정치 불안정 때 전쟁을 획책했으나 간신히 타협에 이르자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원 역사보다 훨씬 많은 군대를 스페인에 파견했고, 독일의 폴란드 침공 때는 독일을 압박하기 위해서 영프의 묵인 하에 오스트리아를 사실상 점령했다.
대부분의 대체역사물에서 무솔리니는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과 함께 웃음거리 취급을 당하고 본작도 비슷하지만, 한편으로는 파시즘의 창시자에 단숨에 한 나라를 거머쥔 지도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개인적인 매력과 날카로운 면모를 보이는 빌런으로 묘사되고 있다. 미래인인 조범석 입장에서는 웃음거리 같지만 그 시대를 사는 아르민에게는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정말 위험한 인물이라는 인식차를 보여주는데, 무솔리니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아르민을 조범석이 비웃자 "죽은 유고 국왕도 웃었겠지 아마?"란 한마디로 찌그러지게 만들어서 그가 엄연히 사악한 독재자임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비교적 위협적이었던 전간기의 모습이 무색하게 개전과 동시에 오스트리아 전선과 북프랑스 전선에서 연합군이 모두 박살나고 슈슈니크도 이탈리아를 손절했으며 사실상 무방비 상태가 되자 원역사의 대전 말기 무솔리니가 그랬듯 '이해할 수 없다'를 중얼거리면서 우울증에 걸려 업무를 내팽개치고 잠적한다. 패전이 확정되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파시스트당 정치인들에게 버림받고 허수아비가 된다. 그와중에도 항복 협정에서 무솔리니가 서명을 해야 책임을 완전히 떠넘길 수 있기 때문에 총리 직책에서는 안 짤린 상황. 이후 베를린으로 끌려온 그에게 아르민이 면전에서 마카로니 씨라고 놀려도 남티롤을 뜯어가겠다고 해도 가만히 있고 처형하겠다고 해도 덤덤했으나, 이탈리아 국왕도 국가 파시스트당도 무솔리니만 조지고 자기들은 살려달라고 했다는 걸 알려주자 조국에게 배신당했다는 것에 분노해 뭐든 할테니 살려만 달라고 울부짖는다. 결국 나라를 팔아먹어서라도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르민의 제안을 받아들여 독일의 괴뢰국인 이탈리아민족혁명공화국의 수반이 되기로 한다.[68]
처음에는 매국노 취급을 받았지만 되도 않는 정복전쟁에 군비를 쏟아붓지 않으니 점차 경제가 회복되었고 동남아에 파병된 이탈리아 해군이 큰 전과를 올리면서 지지율이 크게 오른다. 로젠바움, 루즈벨트, 페탱, 처칠 등 동시대의 지도자들이 다 죽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와중에도개그 캐릭터라서오래 살았고, 페탱의 장례식에 와서는 자기 숙소에서 살아남은 나의 승리네라는 혼잣말을 해서 도청하던 슈타지 요원을 폭소하게 만든다.
- 로돌포 그라치아니
이탈리아군 원수. 스페인에 프랑코를 지원하러 파견된 의용군 사령관이었다가, 2차 대전 개전이 임박하자 그대로 의용군을 끌고 북프랑스까지 올라간다. 아무 준비 없이 급하게 이동했기에 지도 한 장 없어서 프랑스군에 사본을 요청했고, 무기 하나 없이 몸만 온데다 식량조차 없어서 프랑스군의 짬밥을 얻어먹는 추태를 보인다. 게다가 이탈리아군은 스페인 내전을 겪으며 약탈이 습관화되어 동맹국인 프랑스 민간인들을 상대로 약탈을 벌였고, 이런 사건이 벌어지자 프랑스군이 준 짬밥이 맛없어서 병사들이 약탈을 했다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이후 독일군이 아르덴 숲을 돌파하자 조르주와 가믈랭 모두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독일군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와중에 나만 정상인 포지션이 되어 고통받는다.
- 피에트로 바돌리오
이탈리아군 원수. 오스트리아 전선 사령관. 체코군을 얕보고 탱켓 위주의 기갑부대를 꼴아박았다가 개전 3일만에 박살난다.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이탈리아 국왕. 2차 대전이 개전하자마자 전황이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움베르토가 오스트리아 전선에서 실종되자 무솔리니에게 분노를 드러낸다. 핵 투하로 인한 영국 본토함대 전멸로 패전이 확정되자 무솔리니를 바로 손절한다. 하지만 무솔리니가 로젠바움주의로 전향하면서 왕위를 잃을 상황이 된다.
9. 일본
- 히로히토
황도파가 원 역사 2.26 사건과 다르게 일본식 로젠바움주의인 황도주의를 내걸고 비교적 조용하게 군중을 원호 세력으로 두어 쿠데타를 일으키자 이를 승인한다. 전범재판은 피한 원 역사와 달리 얄타 회담에서 연합군 수뇌부가 히로히토는 전범 재판을 거쳐 처형하고 천황제를 폐지할 것을 결정해둔 상태라서 시한부 인생이 되었다. 이후 일본이 1억 총옥쇄 등을 주장하며 격렬히 저항하다 독일, 미국, 소련 3개국에게 사흘에 한 번 꼴로 핵을 골고루 처맞은 후[69] 무조건 항복하고 연합군이 일본을 점령하면서 체포된 후 교수형당했다.
- 야스히토
일본의 친왕으로 작중 일어난 로젠바움주의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으며, 일본을 대표해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맞아 독일을 방문하게 된다. 로젠바움의 부추김에 대동아공영권을 꿈꾸게 된다.
- 주독 일본 대사[70]
로젠바움 전쟁이 1달만에 독일의 완승으로 끝난 후, UN의 위치를 대신할 예정인 세계민족해방기구에 일본이 초대받지 못하자 로젠바움을 직접 찾아간다. 그러나 아르민은 민간인 학살이나 하고 천황 따위나 섬기는 일본은 민족혁명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만일 진짜 민족혁명주의를 따른다면 만주국, 조선, 대만의 통치권을 당장 세계민족해방기구에 넘기라고 한다. 이를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쫓겨났고, 그날 밤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되어 독일에서 쫓겨나버렸다.
- 야마모토 이소로쿠
인도양에서 프라하 조약군 함대와 그토록 꿈에 그리던 함대결전을 벌였지만 연합군에게는 일본군에 없는 레이더가 있었기에 예상과 달리 압승을 거두지 못했고 갑자기 나타난 미 해군의 공격으로 아카기 한 척을 제외한 모든 항공모함이 침몰해버리는 참패를 당한다. 이후 인지부조화 속에서 본국에 '손실이 좀 있었지만 전략적 승리를 거뒀다'라는 정신승리성 보고를 올렸지만 본국에서는 할복하라는 답을 보냈고, 결국 전함 나가토의 선실에서 할복자살한다.
- 무타구치 렌야
일본에 방문한 로젠바움사 직원들을 접대한 것을 계기로 민족혁명주의자가 되었다. 황도파의 다른 장성들이 민족혁명주의를 그저 집권을 위한 명분으로만 생각하고 자기들 입맛에 맞게 곡해해서 사용한 것과 달리 독일인에게 정통 민족혁명주의를 배운 무타구치는 이들의 모순을 지적했다가 황도파 내에서 찍혀서 좌천당한다. 좌천당해 아늑한 본토에서 쫓겨나 제18보병사단 사단장이 되었다가 버마 전역에서 일본군 장성 중 최초로 연합군에게 투항한다.[71] 단순 투항이 아니라 자신은 정통 민족혁명주의자라고 어필하며 독일군에게 적극 부역하려 하는데, 자신을 좌천시킨 황도파에게 깊은 원한을 품어서 독일의 힘으로 그들에게 복수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원 역사처럼 라인타는 실력은 최상급인지 결국 종전 이후 영프가 신탁통치하는 일본[72]의 육군 원수가 되어 아르민과 기념사진도 한장 찍게 된다.
10. 조선 → 대한민국 → 대한민족혁명공화국
- 이승만
스탈린의 방독 소식을 듣고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바로 하와이를 떠나서 독일에 입국하려 했으나, 테러리스트라며 입국을 거부당했다. 아내 프란체스카 도너가 오스트리아인이었기에 간신히 입국할 수 있었으나 그 직후 과거 로젠바움을 비방하는 발언을 했던 것 때문에 슈타지에 연행당한다. 그렇게 감옥에 갇힌 이승만은 올림픽은 물론이요 로젠바움 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조선의 신탁통치가 끝날 때까지 13년이나 수감 생활을 한다. 수감 생활 중 우선 독일어를 마스터한[73] 후 로젠바움주의 서적을 조선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며 완전히 전향한 것으로 행세한다. 독일 측은 이승만이 진심으로 전향한 게 아니라는 것은 눈치챘지만, 이범석의 무능이 밝혀지며 대안이 필요했고 이승만의 성향상 절대 4년의 임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반드시 민족혁명주의를 도입해서라도 장기집권을 하리라 판단했기에 이승만을 석방한 뒤 금괴를 주고 귀국시킨다. 귀국하자마자 이범석을 제압하고는 내전을 거친 나라 꼬라지를 해결하겠다고 미국을 구워삶은 뒤 1953년 김구의 뒤를 이어 2대 대통령이 되었고, 자유민주주의와 민족혁명주의를 혼합한 일민주의를 창시한 뒤 개헌으로 임기를 12년으로 연장하고 독재 권력을 구축한 후 1965년 임기 도중 자연사했다. 혁명전쟁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한 후 무덤에서 파헤쳐져 부관참시당한다.
- 이범석
히틀러 지지자였던 원 역사와 달리 로젠바움 지지자가 되었다. 이승만과 달리 로젠바움 자서전 초판본과 괴벨스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로젠바움주의자라는 것을 적극 어필하여 무사히 독일에 입국한다. 직접 묘사되지는 않았으나 이후 로젠바움과 1시간 정도 접견할 기회를 가진 듯하다. 이후 독일이 임시정부를 후원하게 되면서 당연히 로젠바움을 직접 만난 임시정부 최고의 독일통인 이범석의 위상도 크게 올라갔다.
대선에서는 김구를 지지했지만 독일의 전례로 보아 선거가 유혈사태로 이어질 것을 예상하고 자신의 사병 집단인 '조선민족혁명청년단'을 무장시키고 싸움에 대비한다. 이렇게 대비한 덕분에 김구와 패튼이 부산으로 도망치는 동안 이범석은 공산군과의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으며, 로젠바움이 그랬듯 이 승리를 바탕으로 권좌에 오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혁명을 일으키게 무기를 달라는 요구를 보고 괴벨스는 이범석이 매우 무능해서 대통령감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 해당 보고를 받은 괴링은 결국 이범석의 대타로 이승만을 석방시켜 보냈고 이범석은 이승만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이승만이 자연사한 후 잠시 권한대행을 하며 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렸으나 이기붕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났다.[74]
- 김규식
이범석과 함께 독일에 입국한다. 이범석이 로젠바움주의를 노골적으로 찬양해서 함께 입국할 수 있었지만 이후 이범석에게 '백림 로씨'로 성을 바꾸지 그러냐고 비아냥댄 것을 보면 로젠바움주의에 비판적인 듯하다.
- 손기정
원역사와 마찬가지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해서 금메달을 걸고 아르민을 접견하게 된다. 아르민은 일부러 야스히토 친왕을 대동한 자리에서 '키테이 손'이 아닌 한국식 이름을 알려달라 한 뒤 '손기정'으로 고쳐 불러주고, 그에게 일본의 선전대로 조선 민족이 일본의 식민 통치에 만족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손기정은 이 선택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것임을 알았지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일본 친왕과 독일 총통 면전에서 일본의 폭압적 식민 통치를 고발하고 규탄한다. 이 사태로 독-일 관계는 파탄 직전으로 악화되었으며[75], 손기정은 살기 위해서 남승룡과 함께 귀국을 포기하고 독일에 망명을 요청하여 독일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안봉근의 집에 머물게 된다. 계속 독일에 거주하다가 일본이 패망한 후 귀국했고, 아르민 로젠바움을 직접 만난 몇 안되는 조선인이고 독일어가 유창해서 아르민이 조선에 방문했을 때 안내인이 되어 재회한다. 이때 아르민이 자신을 기억해주고 정확한 발음으로 이름을 불러주자 다시 감동한다. 김구, 이범석 등과 함께 대권 후보 중 하나로도 거론된다.
- 남승룡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땄으며 손기정의 폭탄 발언으로 결국 함께 독일에 남기로 했다고 한다. 계속 독일에 거주하다가 일본이 패망한 후 손기정과 함께 귀국했다.
- 안봉근
직접 이름 언급은 없지만 안중근 의사의 사촌으로 원역사에서와 마찬가지로 독일에 정착하여 두부 공장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이다.[76] 독일 망명을 선택한 손기정과 남승룡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줬다고 한다. 계속 독일에 거주하다가 일본이 패망한 후 손기정과 함께 귀국했다.
- 박헌영
소일 불가침조약 체결 이후 일본이 소련의 눈치를 보면서 공산주의자 탄압을 멈춰서 조선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간다. 조선군 장교들 중에 공산주의자를 아주 많이 심어놨다며 자신이 지시하면 조선에서 십만명의 공산주의자가 봉기를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산주의자가 많다는 것이 허세는 아니었는지 해방 후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올랐고, 아르민은 박헌영이 대통령이 되고 조선이 그대로 공산화될까 고민하는 미국인들에게 투표함 바꿔치기를 하라고 조언한다. 미-독이 머리를 써 김구가 아닌 박헌영이 미리 기표된 선거용지를 잔뜩 만들어버렸고, 이로 인해 부정선거 프레임을 뒤집어써버려 최다 득표자였지만 미군정에 의해 당선 무효로 선언되었다. 이후 압수수색에 저항하다가 경찰들이 여럿 죽어나가는 통에 결국 내전으로 확대된다.
사실 박헌영은 무장봉기를 일으키더라도 나중에 일으킬 계획이었기에 준비 없이 갑자기 일어난 내전과 갑자기 정적으로 떠오른 김일성에 당황한다. 이후 삼남으로 진격하자는 김일성의 주장을 삼남에는 어차피 공산주의자가 많아 봉기가 일어날 거라고 무시하고 중공, 소련의 지원을 받기 위해 북진하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소련과 미국, 독일의 물밑 합의로 소련의 인도 진출을 묵인하는 대신 소련이 조선 개입을 관두기로 하면서 어차피 북진해봤자 그들의 지원을 받을 수 없기에 이는 완전한 오판이 되었다. 믿었던 소련에게 버림받고 미군이 몰려오는 와중에도 공산당 동지들이 권력 투쟁이나 하는 꼴을 보고 삶에 대한 의지를 잃고 권총자살한다.
- 이은
일본이 패망할 것을 대충 눈치까고 조선 자치령은 독립국이며 연합국에 가담할 것을 선언했으나 이는 매국노로 가득한 궁궐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일제 패망 이후 조선 자치령의 존재도 부정되고 신탁통치가 시행된 후의 행적은 불명이지만, 조선 왕족들이 골로 갔다는 언급을 보아 좋은 대접은 못 받은 것으로 보인다.
- 김구
박헌영에 대항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 성향 대권 후보. 아르민이 직접 만나서 기념사진을 찍어주며 힘을 실어준 결과 박헌영과 45:55로 서로 엇비슷한 수준으로 지지도가 올라갔다. 친일파들과 협력하는 미군정과 대립하는 관계였으나 극단적인 고집쟁이라는 성향이 비슷해서인지 은근히 패튼과 동질감을 느끼며 말이 잘 통한다.
미군정이 공산당의 투표 조작 혐의를 조작한 후 김구를 당선인으로 발표하여 초대 대통령이 된다. 그 직후 국방경비대에게 서울로 진입 명령을 내리지만 김일성 등 군 내 공산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서울이 점령될 위기에 처한다. 서울을 떠나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패튼은 일단 부산으로 가서 주일미군 증원을 기다리자며 김구를 강제로 차에 태워서 피난시킨다. 비록 미국과 독일 덕에 내전은 가볍게 승리했지만 권위가 크게 실추되었고 극단적 민족주의자로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본 탓인지 본인이 정치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 채병덕
조선국방경비대 1연대장. 서울에 진입해서 반란을 진압하라는 김구의 명령을 받았으나 혹시라도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 자신이 시민들을 학살했다는 누명을 쓸까봐 결단하지 못하고 고민한다. 그러던 중 군수참모인 김일성에게 살해당한다.
- 김일성
조선국방경비대 1연대의 군수참모. 연대장 채병덕을 직접 권총으로 쏴죽이고 반공 성향 장교들을 전부 살해한 후 연대를 접수해서 서울에 진입하며 내전의 신호탄을 쏜다. 인지도가 전혀 없던 김일성은 이 사건으로 박헌영 다음 가는 공산당의 스타로 갑자기 떠오른다. 이후 공산군이 삼남으로 진격해서 도망친 패튼과 김구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박헌영의 주장대로 북진을 우선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박헌영이 자살하자 직접 공산당 간부 여럿을 쏴죽이고 미군에 투항하며 자신은 반공주의자니 살려달라고 우기지만 패튼에게 구타당한 후 김구에 의해 교수형당해 사망한다.
- 조만식
조선기독당 당수이며 본인은 부정하지만 '평양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서북 지역에 큰 영향력을 가졌다. 조선 내전 당시 평양에 방어선을 쌓아 공산군의 진격을 막아내면서 이범석과 함께 내전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이후 미국은 김구는 권위가 실추되었고 이범석은 로젠바움주의자이므로 기독교도인 조만식을 차기 지도자로 밀어주기로 한다.
- 이기붕
대한민국 3대 대통령. 이승만 사후 이범석과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차지했으나 12년의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망. 혁명전쟁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한 후 무덤에서 파헤쳐져 부관참시당한다.
- 이강석
대한민국 4대이자 마지막 대통령. 중화민국과의 반중전쟁에서 서울과 평양이 핵폭격당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조범석의 활약으로 간신히 승리한다. 그러나 전쟁영웅 조범석의 청년혁명당이 일으킨 혁명전쟁에서 1주만에 패배했고 망명을 시도하던 중 시민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한다.
- 이신찬
합참의장. 반중전쟁의 만주 회전문 전역에서 활약한 전쟁영웅. 군부의 중립을 지지했으나 종전 후 이강석 정권의 암살로 추정되는 헬기 사고로 사망한다.
- 문유겸
원정군 사령관. 반중전쟁의 산해관 전역에서 활약한 전쟁영웅. 이신찬의 사망 소식에 조문하러 가던 중 이강석 정권의 암살로 추정되는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 강명호
반중전쟁에서 활약한 군인. 군인이지만 이강석의 사돈이라서 충성파였다.
- 야구장 어린이
조범석이 부산의 한 야구장에서 만난 어린이. 조범석은 공을 건네준 후 장교 말고 다른 일 하라는 덕담을 남기고 떠난다.
11. 폴란드
-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폴란드 제2공화국의 독재자. 아르민 로젠바움이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기 위한 외교전의 일환으로 바르샤바를 방문해서 회동한다. 독일을 불신하고 양국 간 국민감정이 너무 안 좋아서 아르민이 원하는 수준으로 친밀해지진 못했지만, 실제 히틀러와 그랬듯이 일단은 좋은 관계를 맺기로 한다. 이후 겉으로는 큰 일 없이 원 역사와 같은 시기에 사망했다.
- 에드바르트 리츠시미그위
원역사의 폴란드 침공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인물로, 작중 피우수트스키 사후 폴란드의 권력을 장악한다. 독일의 자작극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폴란드의 여러 정치인들과 군인들은 이를 전쟁을 일으킨 뒤 승리하여 전쟁영웅으로서의 절대권력을 노리는 리츠시미그위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으며, 심지어 리츠시미그위 본인조차 독일의 자작극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민족주의에 뇌가 절여진 혈기 왕성한 몇몇 부하들이 급발진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폴란드는 독일, 리투아니아, 체코슬로바키아, 소련의 4개국에게 다굴당하며 2주만에 항복했고, 리츠시미그위는 쿠데타군에게 벌집이 되어 죽는다.
- 헨리크
폴란드 국경수비대원으로 1938년 독일이 폴란드를 향해 최후통첩을 했을 때 처음 등장한 가상인물. 동료들과 대화에서 국가의 영광보다는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을 소망하는 소시민적 성향을 드러내 동료들에게 로젠바움주의자냐는 비아냥을 듣는다. 하지만 이후 정작 진짜 독일 공화국 수비대가 단치히를 점령하러 들이닥쳤을 때 헨리크를 비난하던 동료들은 전부 도망간 반면 그 혼자만 용기를 쥐어짜서 폴란드 국기가 휘날리는 동안은 끝까지 지키겠다며 남는다. 이 모습을 본 공화국 수비대원들 또한 헨리크의 애국심을 존중하여 초콜릿을 나눠주는 등 잘 대우한다. 그렇게 독일 공화국 수비대와 함께 있던 중 결국 전쟁이 발발하자 밖에 나가면 죽을테니 그냥 순순히 포로로 잡히라는 프란츠의 제안을 거부했고, 프란츠는 중대장에게 맞을 것을 각오하고 그가 도망친 것으로 위장하여 풀어준다. 모티브는 헨리크 수하르스키로 보인다. 이후 등장이 전혀 없는데, 사실 폐기된 절망편 외전에서 괴링 암살범이 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12. 오스트리아
- 엥겔베르트 돌푸스
오스트리아의 독재자. 망명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나치당을 장악하고 오스트리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자 반발하여 관계를 끊을 기세로 이탈리아를 압박했고, 결국 무솔리니가 효용가치가 다한 히틀러를 독일로 보내서 반로젠바움 세력[77]과 연계해서 다시 정권을 장악하게 후원하는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나치가 몰락하고 아르민은 오스트리아를 당장 병합할 생각이 없는 관계로 암살당하지 않고 더 오래 오스트리아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쳐서 국가의 생존을 모색하면서, 야권 세력이 로젠바움주의로 뭉치면서 독일에 좀 더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1936년 올림픽 때 독일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체코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면서 돈벼락을 맞는 것을 본 국민들의 분노로 반정부 시위가 대규모로 발생해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78] 결국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제네바에서 모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간의 합의로 권력을 잃고 남미로 망명을 떠나게 됐다.
- 쿠르트 슈슈니크
아르민과 무솔리니의 합의로 돌푸스 이후 오스트리아의 지도자가 되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 직후 이탈리아군의 주둔을 승낙하라는 압박을 받았고, 독일에 붙으면 그대로 합병이지만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를 괴뢰화해도 합병까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무솔리니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개전 직후 오스트리아 전선의 이탈리아군은 체코군에게 3일만에 박살났고, 오스트리아 전역은 슈슈니크 타도와 독일과의 합병을 외치는 시위대의 물결에 뒤덮인다. 이 지경이 되자 오스트리아의 독립을 보장할테니 연합국의 편으로 참전하라는 무솔리니의 제안을 무시하고 합병 후 재산을 가지고 안전하게 해외 망명을 갈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로젠바움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추축국의 편에 붙는다. 이후 베를린에 와서 머리를 박았다고 하며 그 이후는 언급이 없으나 무사히 살아남았을 듯하다. 오스트리아는 2년 후인 1941년 압도적인 찬성 투표로 독일과 합병했다.
- 프란체스카 도너
베를린 올림픽에 이승만과 함께 입국하던 중 이승만이 입국을 제지당하자 오스트리아인인 도너가 나서서 독일어로 대화하여 입국을 허락받았다. 하지만 이후 이승만은 바로 슈타지에 체포되어 기나긴 수감 생활을 했고 그동안 이승만의 구명 운동을 했다고 한다. 이후 언급은 없으나 대한민국의 영부인, 이승만 사후에는 태후 노릇을 하며 잘 살았을 듯하다. 원역사에서만큼 장수했다면 말년에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이승만의 묘가 부관참시당하는 꼴까지 봤을 것이다.
13. 인도
- 찬드라 보스
1936년 올림픽 때 독일에 입국해서 기자회견으로 영국을 엿먹이고 아르민에게 간디의 친서를 전달한다.
이후 골수 민족혁명주의자가 되었는지 프라하 조약군이 인도 제국군의 군권을 장악한 후 그와 추종자들을 인도군에 합류시킨다.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아르민은 어차피 인도는 영국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서 영향권에 넣기 어려우니 혼란에 빠트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인도에 민족혁명주의를 퍼트려 인도의 여러 민족과 종교들의 분리주의를 부추기는데[79], 인도가 하나의 통일된 민족 국가로 독립하기를 원하는 간디는 영국 식민지배자들보다 독일의 민족혁명주의가 더 큰 위협이라고 결론내린다. 이를 막기 위해 인도의 분열을 원치 않는다는 점 하나는 일치하는 영국 총독과 담판을 지어 인도 총독부의 지배권을 넘겨받는 합의를 이뤄낸다. 독립만 안한다면 다 용인해주겠다는 포용적 스탠스로 인도의 분열을 막아보려 했으나 극단적 힌두교들에게 암살당한 이후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결국 독립해 떨어져나간다.
14. 중국
- 장개석
1936년 올림픽 때 이후 일본에서 정권을 잡은 로젠바움주의자들이 일-중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압박하고 소수민족 탄압이 로젠바움주의에 어긋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선포할 기세를 보이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으로 처음 등장했다. 딸 장야오광이 오토 로젠바움과 결혼하게 되면서 아르민과 사돈 관계가 된다. 1973년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민족혁명 블록이 민주화되자 이를 수정주의로 규정하고 중국이야말로 진정한 민족혁명주의 국가라며 로젠바움 블록에서 이탈한다.
- 모택동
원역사에서처럼 일본군과 적대적 공생 관계로 협력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불렸으나 일본에 대한 전범 재판 도중 이런 사실이 드러나서 축출당했고, 이후 중국공산당은 친소파가 장악한다.
15. 체코슬로바키아
- 에드바르트 베네시
작중 주덴텐란트에서 긴장이 고조될 때 체코슬로바키아의 외무장관이자 유력 정치인.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체코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면서 정작 체코의 안전보장은 확답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한 차에 아르민의 설득에 마음이 동해서 결국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이후 대통령이 되었다. 경제적 협력으로 시작했다가 얼떨결에 체코와 독일이 운명공동체가 되어버리며 추축국의 창립 멤버 중 하나가 되고 전쟁에까지 휘말린 것에 큰 부담을 느낀다. 민족 구성이 복잡해지면 두고두고 화근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폴란드 침공 이후 아르민이 영토를 더 가져가라고 권유하는데도 기존의 분쟁 지대 조금만 가져가는 엄청난 자제심을 보인다. 이후 독일이 구축한 신질서의 이름도 프라하 조약 기구가 되어서, 독일에 편승한 것은 끌려가다시피 한 결과였음에도 엄청난 배당을 챙기는 성과를 거뒀다. 때문에 축배를 터트리는 각료들을 자제시키다가도 유럽의 2인자로 우뚝 선 체코를 생각하자 자기도 행복에 실성하고 만다.
16. 스페인
- 프란시스코 프랑코
원 역사처럼 국민전선의 이름으로 공화파 정부에 반란을 일으켜서 스페인 내전을 시작했는데, 역사의 변동으로 로젠바움주의를 내세우며 독일에 도움을 청해서 원래는 공화파 정부를 지원해서 무솔리니를 엿먹이려던 아르민은 마음을 바꿔서 국민전선을 지원하기로 한다.
17. 리투아니아
- 안타나스 스메토나
리투아니아의 독재자. 폴란드의 최후통첩을 받은 후 리벤트로프의 제안을 받아들여 로젠바움주의자임을 선언하고 독일의 손을 잡는다. 폴란드가 항복한 후 빌뉴스를 되찾은 대신 합의 하에 메멜을 독일에 반환했고 총통을 자칭하기 시작한다.
18. 유고슬라비아
- 페타르 2세
유고슬라비아 국왕. 유럽을 장악하고 설립된 프라하 조약기구에서 본보기로 나라 하나를 조지기 위해 만만하면서도 업보가 많은 유고슬라비아에게 모든 민족 국가를 해방시키거나 혹은 국왕이 퇴위하고 다당제 민주주의를 실시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내자 이를 수용하여 퇴위한다. 실권을 가진 군부에서 실권 없는 소년 국왕 하나 넘겨주는 대가로 국가 해체를 막은 것인데, 아르민은 어차피 국왕이 퇴위하고 공화제를 해봤자 유고슬라비아는 무조건 개판이 날 것이니 그 때 개입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이를 받아들인다.
19. 베트남
- 호치민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결국 공산주의를 택했다. 하지만 독일과도 완전히 척을 진 것은 아니다.
20. 버마
- 아웅 산
버마의 수많은 소수민족을 통합하기 위해 민족혁명주의를 도입한다.
21. 튀니지
- 하비브 부르기바
민족혁명주의자가 되어 튀니지의 왕정을 폐지하고 세속화 개혁을 한다.
22. 이스라엘
- 골다 메이어
1973년의 이스라엘민족혁명공화국 총통이자 유럽의 유일한 여성 국가원수
23. 21세기
- 김조윤 대위
조범석의 부관으로 작가의 전작 주인공이자 쿠데타 모의의 내부고발자이다. 대사가 많지는 않지만 특유의 똘끼를 숨김없이 드러냈으며, 전작의 계기가 되었던 쿠데타를 막은 것에 대한 전모가 더 드러난다.
- 한준현
조범석의 빙의 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자 쿠데타 사주 진범. 조범석의 기억을 엿본 아르민의 평에 따르면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미남이라고 하며,[80] 한산소곡주와 산낙지를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81]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사회적으로 명망 있던 젊은 사업가였고 시민단체를 운영했다고 하는데, 조범석이 한준현이 밟은 길을 아르민에게 벤치마킹하게 권한 것을 보면 거대 양당에 입당하지 않고 제3지대에서 대권을 거머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범석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에 이미 실질적으로 제6공화국을 무너뜨렸다고 한다.
주한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 공개석상에서 "짱개를 모조리 가스실에 처넣겠다"는 망언을 해서 중국과의 전쟁위기를 조성해 미군의 철수를 막으려 했지만 미국 대통령이 기어이 미군을 철수시키자 최후의 수단으로 조범석을 불러 국가를 포맷할 때라며 쿠데타를 사주하였다.[82][83] 조범석이 밥상을 엎으며 이를 거부하자 반찬을 뒤집어쓰고도 태연하게 입가에 묻은 초고추장을 핥으며 조범석의 가족을 음주운전으로 죽인 사람이 재벌 3세여서 집행유예 받고 풀려난 것까지 언급하며 쿠데타 하고 덤으로 원수도 갚으라며 그를 설득했다.[84] 이후 밝혀지길 조범석과 합의해 대외적으로는 도장 찍는 기계로 전락하는 척 실질적으로 민정을 다스리고 삼권분립과 헌정을 무시하며 군사정권의 상왕으로 군림하려 했다고 한다.[85] 사실상 당시의 혼란상과 조범석을 이용해 대한민국이란 나라 자체를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 한 셈.[86]
본작이 유료화된 이후 첫 에피소드에 등장했는데 민주국가의 대통령이면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광기와 미군철수를 막겠다고 공식 석상에서 "짱깨를 모조리 가스실에 처넣겠다" 선언을 하는 패기로 팬덤을 뒤집었다. 때문에 전작의 조연이었던 조범석이 본작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한준현을 주인공으로 차기작을 내려는 명원이 미리 캐릭터를 예고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명원 작가는 Q&A에서 차기작에서 한준현을 주인공으로 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고, 그 말대로 후속작의 주인공 자리는 한준현이 아닌 한준현의 아들이 차지했다.하지만 조기연중
- 영원그룹[87]
작중 대한민국의 재벌 그룹. 이 그룹 회장의 아들이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켜 조범석의 가족들을 모두 죽였지만 아버지의 빽으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88] 조범석은 복수할 방법이 없었기에 잘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말로 분노를 다스리며 그저 삭히고 살았지만, 한준현이 쿠데타에 협력하면 이들에게 복수하도록 해주겠다고 하자 이를 받아들인다. 결국 영원그룹 회장은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폭사하고, 그의 일가족은 조범석이 직접 총으로 쏴죽인 후 사고사로 위장된다.
- 용채산 산신령
조범석을 아르민의 몸으로 보낸 장본인. 용채산은 실제로 육군교도소 인근에 있는 해발고도 182미터의 작은 산이다. 산신령임에도 격식이 없고 야구를 보는 취미를 가지고 있어 조범석은 그저 성불못한 교도소 망령으로 생각했다. 조범석을 20세기로 보내기 위해 독약과 약관을 같이 건넨다.[89] 그러나 조범석은 약관을 읽어보지도 않고 독약부터 마셔 음독자살해버렸다.
본편 완결 후 사후세계에서 조범석과 아르민을 맞이하며 정체를 밝힌다. 사실 인류는 조범석의 쿠데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면 핵전쟁을 통한 상호확증파괴로 멸망할 운명이었다. 산신령이 신적인 존재라고 해도 인류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기에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세계선을 만들고자 조범석을 과거로 빙의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아르민의 활약으로도 멸망을 확실히 막아냈는지는 확실치 않은 상황이며, 이에 아르민의 제안대로 조범석과 아르민의 역할을 바꿔 바뀐 세계선에서 태어날 조범석의 몸에 보내줘서 2회차를 시작하도록 한다.
결국 조범석과 아르민은 세계의 멸망을 확실히 막아냈고, 조범석은 총통에서 은퇴한 후 티배깅을 하기 위해 용채산 전체를 구입해서 감자밭으로 바꿔버린다. 말을 듣지 않으면 감자밭이 아니라 용채산을 아예 평탄화시키겠다는 협박에 결국 조범석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게 된다.
[1] 오해할 수 있는데 결혼 이전에 사귀던 옛 유대인 남자 애인과는 다른 사람이다.[2] 실제 인물은 보불전쟁에도 참전했던 중장 계급의 군인 출신이다.[3] 최초의 비행기 이륙 이벤트에서 다들 비행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 에르나가 주인공의 허리를 은근슬쩍 잡는 장면이 나온다.[4] 셋째 아이도 있었지만, 이틀만에 사망했다.[5] 심지어 방해 공작 들어오기 전에 당장 임신부터 시키라고 말한다.[6] 아르민이 상대를 정해서 결혼하라고 명령하면 바로 결혼하겠지만 스스로 연애나 결혼을 하고 싶다는 욕구는 전혀 없다.[7] 이때의 독백으로 다른 독일인들은 아르민이 로젠바움주의를 창시하고 정계에 진출한 이후에 그를 숭배하게 되었지만 자신은 그보다 더 전에 아르민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자신의 구원자로 숭배해왔다며, 자신이 '로젠바움 숭배자 1호'라는 일종의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다.[8] 실제 역사를 보면 독재국가의 공안기관 수장은 이중적인 면모가 있는데, 체제를 지키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체제의 한계나 문제점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지도자가 되면 국가를 개혁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소련의 베리야나 안드로포프를 보면 알 수 있다.[9] 정확히는 로젠바움주의 덕에 나라가 안정화되었으니 '나라만 살리면 그만이지' 정도의 태도를 가진 소극적 지지자이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귀족 출신이라 로젠바움주의가 마음에 와닿지는 않은 모양으로 보인다.[10] 이때 그 실패 중에서 가장 처참하다고 평한 것이 바로 괴벨스. 본래 아르민은 민족혁명당을 둘로 쪼개어 강경파 여당은 괴링, 온건파 야당은 괴벨스에게 맡기기로 계획했다. 허나 괴벨스는 권력에 취해 지나친 비리와 문란한 사생활로 후계자 자격을 잃어버렸고, 아르민은 고민 끝에 정치에는 뜻도 관심도 없었던 콘라드를 대체자로 삼아야 했다.[11] 실제 당시 괴벨스의 여자친구였던 안카 슈탈헬름과 동일인인지는 불명.일단 숙청 및 이혼시에는 안카라고 언급한다. 실제 괴벨스는 1920년 부잣집 딸이었던 여자친구 안카에게 청혼했다가 경제적 차이를 이유로 거절당했고 안카는 다른 변호사와 결혼한다. 괴벨스는 이후 자살 기도까지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고, 이 사건으로 부르주아에 대한 분노와 열등감을 품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중에서 아르민이 자신의 배경을 내세워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할 정도의 집안이라면 안카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이후 괴벨스가 직접 자기 입으로 안카라고 밝히며 확정된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부부관계가 많이 악화되었는지, 괴벨스는 사치만 부려대는 안카에게 정이 떨어져서 불륜을 저지른 것이라며 되도 안한 변명을 늘어놓는다.[12] 총통 집무실에서 괴벨스가 피투성이가 되어 기어나오는 꼴을 목격한 사람이 많다고 한 걸 보면, 아르민이 직접 엄청나게 두들겨 팬 듯하다.[13] 마침 전역하러 고향에 돌아온 프란츠가 괴벨스를 알아보고 들여보내 주었다. 프란츠 입장에선 이제 막 독일에 돌아와서 작금의 숙청 정국은 잘 모른 채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아저씨인 괴벨스가 와있으니 별 생각없이 들여준 듯.[14] 애초에 괴벨스를 죽이려는 것은 실리적 이유 외에도 자신의 기대를 배신한 괴벨스에 대한 괘씸죄가 컸다.[15] 정작 괴벨스는 백림, 즉 베를린이 아닌 묀헨글라트바흐 출신이다.[16] 원 역사의 그것처럼 악명이 높긴 하지만 실상은 미국 교외 주택단지 같은 집에 질 높은 식사를 제공하고 노역도 상식적인 선에서 부여하는, 21세기 북유럽 국가 같은 환경의 수용소로 아르민은 수용자들이 다하우에 다녀온 것이 훈장이 되지 않게 하고 국가의 적이 호사를 누린다는 것을 안 국민들이 분노해서 수감자들을 때려 죽이고 싶어할 때 국가가 지켜주는 그림을 만들고 싶어서 이렇게 설계했다. 수감자들은 그 의도를 깨닫고 분노했지만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무기력감에 빠졌고, 형식적인 충성 서약만 하면 풀어주고 외국으로 망명하는 것도 막지 않는데다가, 그 충성 서약을 거부한 수감자들도 로젠바움 전쟁 승전 후엔 이젠 나가서 뭐 할 수도 없을거라며 나치 빼고는 다 풀어줬다. 어차피 국민들은 수감자들이 좋은 컨디션으로 풀려났음에도 풀어주기 전에 좀 챙겨줬을 거라고 실상에 대해 전혀 믿지 않을 정도로 로젠바움 정권이 세워질 때 저지른 숙청이 각인한 공포가 컸기 때문에 전시효과도 충분했다.[17] 현실에서 나치당 출신으로 전후 서독 총리까지 오른 인물.[18] 이에 대한 응징으로 아르민은 조범석의 계급장을 작대기 하나로 바꿔줬다.[19] 융커는 토지를 중시하는 귀족집단이기에 아르민이 건낸 땅문서, 그것도 융커의 핵심 이권지역 중 하나인 동프로이센의 농장은 융커들에겐 거절할 수 없는 엄청난 뇌물인 셈이다. 이때 '솔직히 농장은 참을 수 없었다'라는 서술이 그야말로 걸작. 다만 그냥 받아먹진 않고 아들 명의로 받았다고 한다.[20] 사실 아들은 로젠바움 그룹에게 뇌물을 받았다.[21] 실제 오스카 폰 힌덴부르크도 나치 시절 힌덴부르크의 아들이란 상징성으로 군에 복무하기는 했으나 별 실권도 없었고 전쟁범죄에도 가담하지 않았기에 전후 처벌받지 않고 잘 살아남았다. 원역사에서나 작중에서나 인간 토템 역할을 한 셈이다.[22] 원래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던 듯한데 사장실에 있던 자신의 소중한 수집품들을 다 갖다버렸다는 말을 듣고 딥빡해서 던졌다.[23] 원 역사에선 히틀러 총리 지명을 끝까지 막으려고 했고 결국 지명되자 사표를 던졌고 죽을 때까지 반나치 활동을 했으며 죽어서도 스와스티카가 관에 덮이는게 싫어서 공식 장례식을 거부하고 가족묘에 안장되었고 가족들도 모두 반나치 활동을 했다. 걔다가 반히틀러 활동을 한 장성들은 대개 전쟁범죄나 반유대주의 둘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는 것과 달리 하머슈타인은 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한직에 처박혀 있기만 해서 전쟁범죄에 연루되지도 않았고 지속적으로 유대인을 도왔다.[24] 실제 인물은 장인인 발터 폰 뤼트비츠가 주도한 카프 폭동에 동참을 거부하긴 했지만, 바이마르 공화국 내내 군대가 국가 안의 국가처럼 따로 놀았던 것에 대해 참모총장이라는 고위직에 있었으니 그런 성향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으로 채워넣은 듯. 이 행동들도 문민통제를 거부하는 것 보다는 육군 최고 선임으로서 자군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에 더 가깝다.[25] 결국 아르민에게 후원금을 뜯겼는지 '빌헬름 대제' 호 날개에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26] 그러나 본인 역시 크게 다를게 없어서 폴란드와 프랑스와 전쟁계획을 묻는 아르민에게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엄연히 정치와 대전략의 영역인 예방전쟁과 중립국 침공을 얘기해서 아르민의 분노를 산다. 이를 지적받자 "아뿔싸"라고 하는게 걸작.[27] 아르민 시점에서는 쳐바른 것인데, 조범석 시점에서는 그 풍부한 워게임 경험과 50년 후의 미래 전략전술을 가지고도 질 뻔했으며 아예 워게임 도중 자신의 얍삽이를 배우고 있었다면서 학을 뗀다.[28] 수치들이 일부 아르민에게 유리하게 조정되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르민이 초짜인 만큼 개의치 않았다.[29] 워게임에서 아르민이 구사한 전술은 천재의 번뜩이는 영감에서 보일 수 있는 미숙함이 없는 숙련된 것이었으며, 워게임에서 장비의 성능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나게 가정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아르민이 거울을 보는 것에 집착하는 버릇이 있다는 점, 아르민에게 붙은 인물이 대 몰트케나 프리드리히 대왕같은 과거의 전설적인 명장이라 하더라도 자신은 그 후 군사학의 발전까지 학습했으니 밀리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등이 그 근거다.[30] 다만 조범석이 실전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까지 어떻게 알았는지는 의문이다. 팬덤에서는 '군사훈련으로서의 워게임이 아니라 순수하게 게임에서 이기려는 태도' 를 보였다던가, 실력은 있지만 '아직 실전 경험은 없이 훈련을 쌓고 있는 신입 장교들 같은 움직임' 을 보인다던가 하는 가능성을 상정하였다. 독일 장성들은 워게임 규칙에는 없지만 실전에서 피할 수 없는 통신오류나 사고 등을 본능적으로 감안할 수밖에 없는데, '누군가'는 철저하게 워게임의 규칙을 신뢰한다던가.[31] 조범석은 이에 잠시 멈칫했다가 경례로 답했다.[32] 원 역사에서 중장이자 아프베어의 수장으로 슐라이허의 최측근이었는데, 장검의 밤 때도 도피를 거부할 정도로 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했다.[33] 물론 요오드를 섞은 술과 선글라스를 지급하는 최소한의 조치는 취했다.[34] 본인이 유대인 혈통인 것도 모른 채 나치즘에 열광하여 슈츠슈타펠에 가입해 민간인 학살을 벌이는 인간 쓰레기가 되었다. 단순 가담 정도가 아니라 자신을 만류하는 노인을 쏴죽이고 시체 옆에서 손녀를 강간하는 등 학살을 즐기는 인간 말종이였다. 종전 후 신분을 세탁해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행세를 하며 인권운동가로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결국 정체가 탄로나 모사드에게 암살당하는 것으로 최후를 맞았다.[35] 이때부터 아르민을 따르던 원년멤버들, 이후 로젠바움 정권의 주요 인사가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프란츠와의 친분이 있는 듯하다. 괴벨스가 직접 목마태우고 놀아줬다고 언급하고, 뵐케도 어릴 때부터 알던 아이인데 전투 중 전사해버리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 프란츠를 후방으로 보내달라는 삼촌 콘라드의 부탁을 들어준다.[36] 이를 반영해서 작가의 전작에서는 아예 연합군의 비밀 제의를 받고 파리 주둔 독일군을 팔아넘기고 전향하려고 했다.[37] 당시 독일은 대중정당이라 할 만한 정당이 없었으며 자신들의 지지기반만 챙기는 형태였다. 따라서 나치당 외에는 진정한 의미의 대중정당이 없었는데 이 상황에서 똑같은 대중주의 정치인인 로젠바움이 나오자 최대의 경쟁자가 된 것.[38] 정황상 히틀러의 증언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그가 자백했다는 명분을 붙여서 아르민의 반대파를 다 쓸어버리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39] 비슷하게 현실에서는 북한에서 탈북 외교관 태영호가 미성년자를 강간했다는 주장을 한 사례가 있다. 태영호의 탈북이 체제에 불만을 품은 고위층의 탈북이 아닌 인간쓰레기 성범죄자가 체포를 피해 도주한 것으로 보이도록 선전한 것.[40] 다하우 내부의 암묵적 룰에 따라 군인, 융커 출신들은 목공소, 정치인 출신들은 편지봉투 제작을 차지했다. 특히 정치인 출신들은 편지봉투 안쪽에 암호를 적어 외부와 소통하며 수용소의 검열을 피해 외부 정보를 입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치 출신들은 다른 수감자들에게도 대놓고 멸시받는지라 그런 곳에 끼지 못하고 정화조 청소 같은 지저분한 일만 할 수 있었다.[41] 게다가 원 역사를 아는 아르민의 입장에선 별다른 능력도 없고 나중에 배신까지 하는 힘러를 써먹을 필요도 없다.[42] 해당 루머는 영국측 프로파간다였다. 괴링 형제의 모친은 알베르트 임신 당시 남편의 임지인 아이티에 있었으므로 아닌 것이 확실하다.[43]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름#[44] 정작 아르민은 너무 노골적으로 아부를 한 다음 야단맞으면 정신차린 척 하고 좀 더 품위있게 아부를 떨 생각이었지만 황제씩이나 돼서 평생 아부, 아니 칭찬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것처럼 자존감이 낮은 황제를 보고 아무도 아부 한 번 안해준 거냐고 황당해한다.[45] 해당 에피소드가 처음 올라왔을 때는 뺨을 때린 것으로 나왔지만 이후 고증대로 엉덩이를 때린 것으로 수정되면서 독자들에게 이왜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46] 자기 자식조차 가차없이 핵개발을 위한 도구로 써먹는 아르민이 빌헬름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냉혹한 아르민 기준에서는 굉장히 유화적인 태도이다. 비록 서로 이용해먹는 관계이긴 했지만 빌헬름이 자신의 젊은 시절 융커들에게 견제당할 때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기에 마음의 빚이 생긴 듯.[47] 21세기에도 남자 가정주부를 한심하게 보는 사람이 많은데, 시대를 감안하면 시선이 더 좋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시인은 동서고금 언제나 돈이 되지 않는 직업이었다. 즉 말이 좋아서 시인에 가정주부지 콘라드가 보기에는 여동생이 잘생긴 백수 기둥서방에게 낚여서 잘못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48] 여담으로 이때 대화를 보면 페르디난트 로젠바움과는 단순히 같은 물리학자여서가 아니라 더 가까운 사이로 보인다. 작중 독일은 유대인을 탄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교수직을 맡아서 그를 지도했을 가능성도 있으며, 그조차도 미래를 알고 있는 아르민의 설계였을 가능성이 높다.[49] 원 역사에서도 처칠은 대전략에는 능했지만 소소한 디테일을 못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한 모습을 고증한 것으로 보인다.[50] 해군 참모총장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게 기가 막힌게 정확한 위력이 불명인 신형 폭탄을 피하겠다고 함대를 분산하면 방공망이 약화되고, 그럴 경우 함대는 대함폭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하나씩 잘려먹힐 결과가 명확하다. 그걸 막기위해선 강력한 전투기가 필요하지만 그 강력한 전투기를 프랑스에 돌려서 대공 전투능력을 약화시킨게 처칠이었기에 멱살을 붙잡은것. 작중 시점에서 영국 함대에겐 밀집한 뒤 신형 폭탄을 맞거나, 신형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대공망에 걸려서 폭격이 실패하길 비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셈.[51] 그냥 미국 거물 정치인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장면으로 볼 수도 있으나, 많은 독자들이 이를 필요해지면 언제든지 추락 사고로 암살하겠다라는 의도로 추측하고 있다.[52] 독재자였던 아르민 로젠바움은 삶의 마지막 1년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절대권력을 내려놓고 떠난 반면 민주국가 지도자를 자처하는 자신은 삶의 마지막 해에 (아르민보다 1년 많은)16년을 해먹고도 4년을 더 하겠다고 추태를 부렸다는 것에 대해 미묘한 패배감을 느낀 듯하다.[53] 남부 딕시 주들이 연방을 탈퇴하겠다고 위협하자 짧고 굵게 "탈퇴해라."라고 말하는 것이 백미. 맥아더 왈 '두 번째 군정은 결코 흐지부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54] 이를 본 조범석은 나라 망하기 전에 조선을 침공해야 한다느니 모르핀에 중독되어서 그런건가 하면서 정신이 나가버렸고 아르민은 혹시 나치 추종자인가 하는 의심을 하지만 조선이 나름대로 굴러가고는 있어서 그냥 넘어간다.[55] 아르민이 맨해튼 계획으로 명명한 핵 개발 프로젝트 역시 소련에서 대가만 적당히 치러주면 전폭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소련 입장에서는 뭔지는 몰라도 시베리아에 크고 아름다운 시설을 지어야 하고 아르민의 장남이 총책임자이니 심상치 않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훔쳐보기라도 해야 한다는 꿍꿍이를 갖고 있으며, 아르민 입장에서는 미래 지식을 통해 개발에 성공해도 어차피 흘러나갈거라 보안 유지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최초의 원자폭탄 묠니르의 위력을 알게된 스탈린이 핵개발을 지시하면서 독일이 남겨놓은 연구시설에서 그동안 빼돌린 연구자료를 토대로 핵개발에 성공하게 된다.[56] 또한 아르민은 폴란드를 반 갈라먹되 바르샤바를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공화국'과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을 사이에 두어 완충지대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영토를 잃고 분노할 폴란드와 폴란드에서 차별 받다가 국가가 생긴 유대인들 사이에 영원한 분쟁을 붙여서 정작 독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할 구상이다.??? : 오늘도 또 배우고 갑니다[57] 그리고 미지의 빨갱이 국가 소련의 최고지도자가 온다는 소식에 거의 전세계 주요국가의 지도자들이 집결하면서 베를린 올림픽은 정작 운동경기는 아무도 신경 안 쓸 거대한 외교의 장이 되었다.[58] 다만 실제로는 소련이 독일 몫이었던 리투아니아까지 차지한 것과 달리 폴란드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고 이스라엘과 함께 소련의 완충지대로 만들 아르민의 구상에 따르면 리투아니아는 독일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독립국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59] 정확히는 체급 차이 때문에 독일과 총력전을 벌이면 결국 소련이 이기지만 그 과정에서 최소 수천만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한다.[60] 실제로 스탈린은 신학교를 나왔고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정교회 신자여서 아들이 최고지도자가 된 후에도 신부가 되길 바랬다.[61] 결국 과거 독일과의 전쟁들처럼 패해서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알자스-로렌을 할양하게 되더라도 식민지 없이는 위대한 프랑스도 없으며 식민지인들에게 자유는 과분하다는 인식의 표출이라 독자들에겐 평이 좋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독일에게 큰 피해를 입히면서 그들이 내세운 로젠바움주의 대로 "진정 식민지인들을 위해 이 크나큰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느냐?"는 염전 여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총력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 대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62] 독일보다 더한 철권통치와 국민 감시를 한다. 게다가 국민 개개인의 노동생산성에 따라 시민의 권리를 차등화하는 노동 평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63] 최초의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모든 프랑스 구단이 광탈하는 걸 보고 죽었다는 드립이 퍼졌다고 한다.[64] 아르민이 무솔리니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영화에 나오는 독재자의 이름. 이를 매우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민주 국가의 지도자와 달리 독재자는 자신에 대한 풍자를 인정하면 정권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65] 원 역사에서도 파시즘의 우수함을 흥보하기 위해 심판매수, 상대팀에 대한 협박 등 온갖 짓을 저질렀었다. 덕분에 1934년 월드컵은 최악의 월드컵을 뽑으라면 반드시 거론되곤 한다.[66] 민주 국가였다면 국민 여론 때문에 하지 못할 외교를 독재자의 필요에 의해 쉽게 할 수 있는 현실을 반영했다.[67] 이는 아르민을 엿먹이는 것이기도 하다. 해군이 국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시대라 독일 국민들의 해군에 대한 열망이 자극되어서 아르민은 빠듯한 살림에 원치도 않는 해군에 투자를 해야 했고, 영국이 긴장하게 만들어서 크게 보면 외교 대전략까지 어그러뜨렸다.[68] 아르민이 굳이 무솔리니를 괴뢰정부 수반으로 쓰려는 이유는 이탈리아에 있는 소수의 민족혁명주의자들에게 정권을 넘겨줘봐야 통치 경험 부족으로 붕괴할 가능성이 높으니 일단 통치 경험은 많고 파시스트당의 조직도 가지고 있는 무솔리니에게 10년쯤 정권을 맡겨 파시스트당을 민족혁명당으로 개조하고 이탈리아를 완전히괴뢰화하려는 것. 만일 무솔리니가 반대파에게 암살당한다면 그걸 빌미로 군사개입을 하고 살아남더라도 10년쯤 후에는 후임자에게 정권을 넘기게 하고 베를린으로 불러들일 계획이다.[69] 유럽에서의 전쟁이 한 달만에 끝난 뒤 핵을 맞을 정도로 어그로를 끌었던게 일본 제국 뿐이었던 것도 있지만, 독일, 미국, 소련이 핵의 위력을 실험해볼겸 서로에게 자국의 핵 보유량을 과시하려고 핵을 펑펑 쏴댄것이 주된 이유이다. 첫날부터 3발 맞고 시작하고는 계속 주기적으로 원폭을 쳐맞았다.[70]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원역사와 같다면 1939년의 주독 일본 대사는 오시마 히로시다.[71] 원역사에서나 작중에서나 일본군은 워낙 항복을 꺼렸고 옥쇄를 숭상했기에 최초의 일본군 좌관급 포로가 전쟁 막바지인 오키나와 전투에서나 나왔다.[72] 큐슈와 시코쿠, 독일 블럭 소속인 영국과 프랑스가 신탁통치하는 형태이다.[73] 원역사의 이승만은 아내가 오스트리아인인만큼 독일어도 어느정도 구사했다고 한다.[74] 지속적으로 비중있게 등장했기에 독자들은 대체역사물에서 국가원수에 오르는 경우는 드물었던 이범석의 한국을 보기를 기대했으나 정작 권력을 잡지 못하고 허무하게 밀려나버렸다. 작가가 폐기한 절망편 외전의 핵심 이벤트는 괴링 암살이었다고 하는데, 괴링이 암살되었다면 괴링의 명령으로 이승만이 석방되지 않았을테니 아마도 절망편 외전에서 국가원수가 될 예정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75] 일전에 조범석이 1936년 올림픽 때 조선인들을 위해 뭘 해달라고 졸랐었는데, 이때 약속했는지 사건 이후 아르민이 부르자 조범석은 '총통 각하'로 칭하고 부족하다고 하자 부들부들 떨면서 "하일 로젠바움!"까지 한다. 물론 아르민도 나름 계산기를 두들겨보고 한 것이다.[76] 조범석은 독일에 성공한 한국계 사업가가 있는데 그게 하필 안중근 동생이라니 너무 소설같은 일이라고 말한다.[77] 왕당파 융커, 나치를 광신하는 청년 장교, 사민당 일부 등[78] 원 역사에서도 1931년에 독일과 관세동맹을 추진했으나 프랑스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는데 대공황 와중이라 경제 위기를 겪었다.# 이때 반대한 슬라브족 국가인 체코에서 오히려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자유롭게 국경을 오가는 것처럼 보이니 분노가 폭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79] 정확히는 먹혀들면 좋지만 인도가 분열되든 말든 상관없고 파키스탄이 독립한 후 동맹으로 삼을 생각이다.[80] 다만 나이가 있음에도 기생오라비 같은 느낌이 남아 있다고 깠다.[81] 아르민은 그걸 보고 기겁하였는데 문어나 낙지가 서구권에 식재료로 인식된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일로 지중해 인근을 제외하면 식재료로 취급도 안하던 상황이였기 때문이다. 올드보이 영화에서 서양인들이 기괴한 장면으로 뽑은 장면이 바로 산낙지를 먹는 장면이였을 정도로 현대에도 두족류에 대한 인식이 안좋은데 작중 시점의 유럽인들에게는 어떻게 인간이 저걸 먹을 수 있냐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82] 조범석이 쿠데타를 일으켜 표면상의 친중 정권을 수립하면, 중국을 달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언급을 보아 해당 시점에서 대만이 이미 무력으로 합병당했을 정도로 당시 중국이 막나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범석 언급으론 정권의 붕괴대신 전쟁을 선택했다고.[83] 이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 논리가 걸작인데 나 같은 놈을 청와대로 보낸 나라가 정상으로 보이냐며 이런 놈들에게 국가의 주권을 계속 맡기면 나라가 결딴난다며 국민주권을 부정하고 컴퓨터가 먹통이 되면 리부팅을 해야 하고 그래도 먹통이면 포맷을 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주장하였다. 조범석이 당신은 자신이 이 나라의 국가원수인 이유를 부정하고 있다고 소리치자 이미 국민들은 나를 뽑음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깎아서라도 남의 권리도 깎고 나라에 질서와 안정을 돌아오게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 반론하였다.[84] 조범석은 그 자리에서는 내 가족은 그런거 안 바랄 거라고 소리치고 떠났지만 직후 돌아가는 길에 김조윤과의 대화를 보면 결국 대통령의 말에 마음이 동하였고 결국 쿠데타를 시작하자마자 음주운전자와 그 가족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이후 일어난 일을 조범석의 꿈에서 엿본 아르민은 모든걸 잃고 단 하나 남은 군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이를 계기로 박살나면서 조범석이 끝없이 폭주했을 것이며 여기까지도 한준현의 설계였을 거라고 짐작하며, 그의 심계에 감탄하며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품는다.[85] 이에 대해 조범석이 차라리 자신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기를 바라며 한탄하는 묘사가 나온다.[86] 하지만 조범석의 부관인 김 대위가 내부고발로 쿠데타 계획을 폭로해 계획이 실패했고, 이후 진실을 밝힌 김 대위가 군부대 레토나에 치어 사망하고 조범석도 감옥 안에서 음독자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본인 입지만 더 위태롭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본인은 허수아비인 척 막후에서 유도만 했고 쿠데타가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로 실패했기 때문에 이를 역이용해 본인이 개입된 진실은 감추고 권력을 오히려 강화했을 수도 있다.[87] 현실에도 영원그룹이라는 이름을 쓰는 기업이 있으며 영원무역이라는 회사 역시 약칭으로 영원그룹을 쓰기도 하지만 관련은 없으며 작가 역시 동명의 기업들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88]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2020년대엔 공적인 인물들은 단순히 적발된 것만으로도 커리어가 끝나는데, 작중에선 현역 장성의 가족을 죽게 만들고도 사실상 무죄방면될 정도면 재벌이 법조계조차 자신들의 입맛대로 마음껏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사법부가 썩을대로 썩은 것으로 추정된다.[89] 원래 트럭에 박아 죽이는게 정석이지만 교도소 내부로 트럭을 보낼 순 없어서 내놓은 궁여지책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