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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3:40:02

2024년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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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머리1)
(수괴)
윤석열(대통령)
지휘부 <colbgcolor=#bc002d,#000><colcolor=#fff,#e0e0e0>
중요임무​종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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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윤석열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 청원 · 윤석열 특검법 제정 촉구 청원 · 국민의힘 해산 청원
그 외 특집 프로그램
1) 형법 제87조에서 정한 내란 혐의로 사법부(서울중앙지법)에서 지휘부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함에 따라 동조 제1호인 우두머리(수괴)에 해당하는 인물. 2020년 형법 개정으로 수괴에서 우두머리라는 순우리말로 변경됨. 군형법은 유지.
2) 같은 조에 따라 사법부(서울중앙지법)에서 해당 인물들을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발부했거나 검찰에서 중요 내란중요임무종사 공범으로 지목함에 따라 제2호 내란중요임무종사로 기입.
3) 같은 조에 따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및 사법부에서 해당 인물들을 내란 혐의로 소환을 통보함에 따라 제3호 부화수행으로 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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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1] 의결정족수 미달로 인한 투표불성립으로 탄핵안 자동폐기[사유2] 탄핵소추 대상자의 사임으로 탄핵안 폐기[사유2] 탄핵소추 대상자의 사임으로 탄핵안 폐기

<colkeepall>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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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000> 당사자 윤석열
탄핵소추 탄핵소추 / 표결 (1차 · 2차)
탄핵심판 탄핵 심판
탄핵 시위 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 2024년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탄핵 청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와 내란죄 수사를 위한 특검법 제정 촉구에 관한 청원
관련 문서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관련 문서 · 윤석열 대통령 탄핵론(당선 후 · 비상계엄 해제 후) }}}}}}}}}
2024년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파일:1214촛불.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일시 2024년 12월 4일 ~ 진행 중
지역 여의도 국회의사당 일대, 광화문 광장 일대
원인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투표불성립
윤석열 정부각종 논란
목적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통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인용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에 대한 진상규명
참여 인원 약 300만 명 (주최 측 추산 누적 인원)
약 40만 명 (경찰 추산 순간 최대 누적 인원)
종류 항의, 집회, 서명운동, 총파업, 피케팅, 시국선언, 행진, 시위

1. 개요2. 규모3. 배경4. 집회 중계
4.1. 주요 시위 장소
5. 참가 인원6. 전개
6.1. 12월 7일6.2. 12월 8일6.3. 12월 9일6.4. 12월 13일6.5. 12월 14일6.6. 12월 21일
7. 지역 시위
7.1. 부산광역시7.2. 인천광역시
7.2.1. 남동구7.2.2. 부평구7.2.3. 중구
7.3. 대구광역시7.4. 광주광역시7.5. 대전광역시7.6. 세종특별자치시7.7. 충청북도7.8. 충청남도
7.8.1. 천안시
7.9. 경상북도
7.9.1. 포항시
7.10. 경상남도
7.10.1. 창원시
7.11. 강원특별자치도
7.11.1. 춘천시7.11.2. 강릉시
7.12. 전북특별자치도
7.12.1. 전주시7.12.2. 익산시
7.13. 제주특별자치도
7.13.1. 제주시7.13.2. 서귀포시
8. 시위 문화
8.1. 과거 시위들과 비교되는 이번 시위의 차별점
9. 사건 사고10. 기타

[clearfix]

1. 개요

파일:윤퇴진여의도집회_1.jpg
국회부터 여의도공원까지 의사당대로를 메운 시민들
(2024년 12월 7일 오후)
내란 수괴 윤석열을 체포/탄핵하라!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이 종료된 직후인 2024년 12월 4일부터 전국에서 시작된 윤석열 퇴진 범국민운동. 주최 단체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다.

2. 규모

12월 7일 경찰 추산 순간최대인원 15.9만 명, 주최 측 추산 합산최대인원 100만 명이 참가했다. 12월 14일 여의도에서만 경찰 추산 순간최대인원 24만 명, 주최 측 추산 합산최대인원 200만 명이 참가하면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두 번째,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되었다.

3. 배경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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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경 대통령 윤석열이 전국 단위의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으며 그에 따른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계엄군을 동원했다. 아울러 계엄사 포고령 제1호를 통해 국회 및 정당의 정치활동 일체 금지, 모든 언론과 출판의 자유 통제 등 전 국민의 정치적·사회적 기본권의 핵심 영역을 전격 박탈하는 통제 조치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항의성 시위가 다발적으로 촉발되었고, 탄핵 표결을 앞두고 군중들이 대규모 운집하며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4. 집회 중계

4.1. 주요 시위 장소

이 집회는 서울 여의도 일대 및 전국에서 진행되었다.
파일:2024년 12월 7일 국회 인근 지도.jpg
<bgcolor=#000> 12월 7일 17시경 여의도 도로 상황

5. 참가 인원

<keepall>
<rowcolor=#fff> 연도 일시 차수 경찰 추산* 주최 측 추산** 누적 연 인원 (주최 측 기준) 비고
2024년 12월 7일 1차 160,000 1,000,000 1,000,000
2024년 12월 14일 2차 240,000 2,000,000 3,000,000
2024년 12월 21일 3차
* 순간최대인원으로 추산
** 연인원으로 추산

6. 전개

6.1. 12월 7일

파일:윤석열퇴진_1.jpg
파일:국회의사당-집회-상황-2.jpg
파일:국회의사당-집회-상황-4.jpg
파일:국회앞윤석열퇴진.jpg
<rowcolor=#fff> 퇴진 집회를 위해 국회 인근에 밀집한 인파
(2024년 12월 7일 오후)

6.2. 12월 8일

6.3. 12월 9일

6.4. 12월 13일

6.5. 12월 14일

파일:1214범국민촛불대행진.jpg
파일:1214촛불2.jpg
파일:1214촛불3.jpg
파일:1214촛불.jpg
<rowcolor=#fff> 여의도 서쪽 모든 길을 메운 인파
(2024년 12월 14일 오후)

6.6. 12월 21일

윤석열 탄핵소추 가결로 이제 여의도 국회의사당 일대에서 열지 않고 장소를 옮겨 2016년 ~ 2017년 박근혜 퇴진 운동과 같이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 또한 본 집회 종료 후 헌법재판소로 행진할 예정이다.

7. 지역 시위

7.1. 부산광역시

12월 7일 17시 서면 쥬디스 옆 대로에서 부산촛불행동의 주최로 집회를 열기로 했다. 뉴스1

12월 7일 기준으로 주최 측은 3천여명의 인파를 예상해서 진행하려 했지만, 주최 측 추산 약 1만 명으로 추산되는 인파가 모였기 때문에 시가 행진은 않고 비교적 일찍 (19시) 해산하였다.[2] 하지만 시민들이 차마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계속 "윤석열을 체포하라" 구호를 외치자 약 1시간 가량의 뒤풀이 자유발언을 추가로 진행하였다.

다음 날인 12월 8일은 증가한 인파를 감안해 시가 행진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진행하였으며, 동천로에서 양쪽이 만나 집회를 마무리했다.

12월 9일 쥬디스 태화 옆 젊음의 거리 일자 대로에서 20시 기준으로 인파가 약 420m 길이로 모여서 촛불 집회를 열었다. 같은 시간에 옆 쥬디스 태화 정면에 경찰 기동대가 약 50명 가량 대기 중이었다.

12월 14일 쥬디스 태화 옆 젊음의 거리에서 17시 시작하기로 기존에 공지가 올라왔었지만, 시작 전에 부산촛불행동은 전포대로에서 15시부터 하는 것으로 변경하여 집회를 열였다. 연합뉴스 35m 폭의 전포대로 약 400m 길이의 대열로 꽉 찬 인원이 모여서 집회 측 집계 기준 7만 명의 시민이 모여[3] 퇴진 및 탄핵 촉구 시위를 진행했다.[4] 집회는 17시 경 윤석열 탄핵 가결로 절정에 이르고, 이후 약 1시간 동안 집회를 한 후 18시를 기준으로 해산했다. SBS 윤석열 탄핵 국면 이후로 부산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시위였다.

부산촛불행동은 추후 매일 평일에는 19시, 주말에는 17시에 집회를 열기로 했다. 오마이뉴스 국회 탄핵이 가결된 이후로도 헌법재판소가 탄핵 판결을 내리는 날 까지 집회를 계속 열기로 했고, 이 날 참가한 시민들에게 주말에는 가급적이면 참가해 줄 것을 호소했다.

7.2. 인천광역시

7.2.1. 남동구

12월 9일, 여러 시민단체 연합인 사회대전환·윤석열정권퇴진 인천운동본부의 주도로 구월동 인천터미널 및 롯데백화점 일대에서 2개 차선을 사용하는 것을 시작해 국민의힘 인천시당이 있는 유영빌딩[5][6]까지 약 1.2km 정도를 행진하였다.[7] 인천투데이

7.2.2. 부평구

12월 13일에는 부평역 광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 주관의 집회가 열렸다. # 부평역 광장에서 버스전용차로와 2개 차선을 활용해 집회가 열렸고 부평시장역까지 직진한 후 선회에서 다시 부평역까지 한 바퀴 도는 행진이 이루어졌다.

7.2.3. 중구

12월 12일, 영종도 버거킹 영종하늘도시DT점 앞에서 시위를 하였다. 중구의 배준영 의원을 비판하고 https://www.youtube.com/watch?v=PY4Xskqz60Q 노래를 틑며 시위를 하였다.

7.3. 대구광역시

조선일보에 따르면 12월 6일 오후 5시 대구 동성로 한일CGV 앞에서 시국대회가 열렸다.

12월 4일부터 14일까지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7시[8] 대구 동성로 CGV 대구한일 앞에서 시국대회가 열렸다. # 특히 탄핵안 표결 당일인 12월 14일 경찰 추산 2만명이 국채보상로 한일극장 ~ 공평네거리 구간 전 차선[9]을 꽉 채웠다.

탄핵안 통과 이후인 12월 17일부터는 평일 집회는 폐지하고 토요일에만 기존대로 오후 5시 한일극장 앞에서 여는 것으로 바뀌었다. #

7.4. 광주광역시

12월 4일 오후 7시부터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99개 단체로 구성된 '윤석열 정권 퇴진 광주비상행동' 주관으로 13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후 5.18 민주광장에서 매일 집회가 열리고 있다.

7.5. 대전광역시

12월 4일 오후 8시부터 서구 둔산동 은하수 네거리 일대에서 윤석열정권퇴진대전운동본부를 중심으로 31개 지역 시민단체, 70여 명이 운집했다. 이날부터 19시마다 이들 주도로 퇴진 시위가 열렸다. 12월 4일 기준, 경찰 측에 둔산동 은하수 네거리에 1500여 명이 집결할 것으로 신고된 가운데, 안전 관리를 위해 경력 150명이 동원됐다. 중도일보

7.6. 세종특별자치시

12월 9일 6시 30분부터 도담동 해뜨락 광장(먹자골목)에서 '불법 계엄 헌정 유린! 내란 사범 윤석열 퇴진! 나라 걱정 세종행진' 촛불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200여 명(경찰 추산 150명)이 참여했고, 이어진 거리 행진에는 300여 명이 동참했다. 세종운동본부는 집회 후 나성동 국민의힘 세종시당까지 3.5km 거리를 행진하며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뉴스1
윤석열 퇴진을 위한 나라걱정 세종행진이 12월 13일 18시 30분에 도담동 해뜨락 광장(시계탑)에서 진행된다.[10][11]

7.7. 충청북도

7.8. 충청남도

7.8.1. 천안시

12월 9일 '충남시민대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천안종합버스터미널에서 오후 6시부터 진행되었고, 12월 13일까지 매일 오후 6시마다 진행되었다. 뉴시스 뉴스 1

12월 14일 천안종합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3시부터 진행되었고 천안, 아산 등 충남 시민 2000여명이 참여했다.

7.9. 경상북도

7.9.1. 포항시

포항시민단체연대회의는 12월 8일부터 영일대해수욕장죽도시장에서 매일 정기적인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

7.10. 경상남도

7.10.1. 창원시

12월 8일부터 창원광장일대에서 집회가 일어났다. 뉴스1

7.11. 강원특별자치도

7.11.1. 춘천시

12월 4일부터 거의 매일 춘천시 동내면 거두리 거두사거리 일대에서 정례집회가 열렸다.

또한 한기호 국회의원(춘천철원화천양구 을)의 춘천시 동면 만천리 사무실 앞에서 항의 집회가 열렸다.

7.11.2. 강릉시

12월 4일부터 월화거리에서 정례집회가 열렸다.

7.12. 전북특별자치도

7.12.1. 전주시

12월 6일부터 전주 객사에서 윤석열퇴진전북운동본부 주최로 집회가 열렸다. 이후 평일 오후 6시, 토요일 오후 4시마다 집회가 열렸다.

7.12.2. 익산시

12월 11일과 13일 윤석열퇴진 익산운동본부는 영등2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윤석열 퇴진,구속 익산시민 촛불문화재가 진행됬다.

7.13. 제주특별자치도

7.13.1. 제주시

윤석열정권퇴진 · 한국사회대전환 제주행동 주최로 제주시청 민원실 앞에서 평일 오후 7시, 토요일 오후 5시부터 윤석열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제주도민대회를 열고 있다. #

7.13.2. 서귀포시

서귀포시 시민사회단체 및 정당으로 구성된 ‘서귀포 시민행동’은 12월 11일 오후 6시 30분부터 옛 초원다방 사거리에서 윤석열 탄핵, 국민의힘 해체를 촉구하는 촛불 집회를 개최했다. #

8. 시위 문화

8.1. 과거 시위들과 비교되는 이번 시위의 차별점

이번 시위는 과거의 시위들과 비교하여 여러 차별점이 있다. 이번과 비교 대상이 되는 대중 확장성이 큰 시위는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 때와 비교하면 그 당시보다 SNS와 유튜브 등이 훨씬 활성화된 사회로 바뀌었고, 그 사이 젋은 여성들의 정치적 진보 성향 비율 약진[23]이라는 현상이 추가되었다. 또한 시민들의 시위 자발성[24] 증명을 위해 다양한 취미와 공유 성격들을 마치 해시태그처럼 깃발을 내걸고 참여하는 일이 더 광범위하게 활성화되었다는 특징이 읽히고 있다.

9. 사건 사고

10. 기타


[1]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탄핵 전문 가수'라고 소개해서 시민들에게 웃음을 줬다.[2] 서면 쥬디스 옆 대로는 만 단위의 인파를 수용할 만한 공간은 아니며, 주최 측이 앰프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바람에 골목 뒤쪽 인원에게 주최 측의 공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도 했다.[3] 5만명으로 추산한 보도도 있다 오마이뉴스 오후 4시 기준으로 5만으로 추산했다는 보도가 있으므로, 7만 추산 기사는 6시 해산까지 기준을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4] 페르미 기법으로 군중 수를 추산하면 약 4만 2천 이상의 인파였다. 물론 중간에 돌아가거나, 혹은 시간 공지를 못 보고 늦게 유입된 인원들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늘어난다[5] 포드코리아 인천전시장이 있는 곳 6층에 위치해 있다.[6] 해당 건물 1층 유리문 및 주변 벽에는 국민의 짐/내란 동조당 해체, 인천 지역 국회의원인 윤상현, 배준영에 대한 심판이 적인 종이가 붙었고 당사 옆 벽에는 '국민의짐 인천시당 (내란공범)'이 붙게 되었다.[7] 여담으로, 시민들이 유영빌딩에 도착한 시간대에 포드코리아 전시장의 불이 바로 꺼졌다. 도착 시간이 아마도 오후 8시 정도였을 듯.[8] 토요일은 오후 5시부터. 첫 주인 12월 4~6일은 평일에도 오후 5시부터 시작했었다.[9] 새방골 방면(동→서) 2개 차로 제외[10] 올리브영 세종도담점을 검색하면 나오는 앞에 있는 공터[11] 18시 30분에는 거리공연 및 발언을, 19시에는 도담동 광장에서 국민의힘 세종시당까지 거리 행진을 진행한다.[12] X(트위터) 사례 (#1 #2 #3 #4 #5 #6)[13] 정확히는 5.18 당시에는 경제 사정이 열악해서 그 정도였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만큼 스케일이 커졌다는 것, 그리고 많은 우리 국민들의 해외 진출로 인하여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를 메우고자 재외 동포들의 선결제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14] 김진태가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망언을 내뱉은 게 계기였다.[15] X에서는 연말 가요 시상식을 방불케 한다는 의미를 담아 국회 앞에서 MAMA가 개최되었다는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16] 참고로 아이돌판의 경우는 타돌 사이에 연합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몇몇 그룹 팬덤끼리는 사이가 매우 안 좋기도 한데, 윤석열이 말 그대로 팬덤 대통합을 이뤄낸 것이다.[17] 12.7 여의도 탄핵집회 참석자 최소 28만명, 20대 여성이 가장 많았다[18] 주로 IZ*ONE, LE SSERAFIM, 프로미스나인 등의 남초 팬덤[19] 주로 IVE, NMIXX 등 청소년층이 다수인 팬덤과 여자친구처럼 전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20] 주최 측에서 응원봉을 들고 나온 청년들을 보고 과감하게 기존의 민중가요 뿐만 아니라 아이돌 히트곡까지 선곡해서 재생했다. #[21] 항목에도 나오듯이 윤수일의 아파트와 매시업을 해서 재생하기도 했다. #[22] 12월 8일 집회 발언 도중 롯데 우승보다 계엄령을 먼저 봤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23] 물론 그 당시에도 20대 여성은 민주진보 성향 압도우위이다. 일례로 18대 대선에서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20대 여성에서 69% 정도 득표하였다.[24] 근래 많은 시위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비교적 대중 확장성이 작은 시위들에서는 아무래도 시위의 주제와 연관된 사회단체, 또는 정치와 한 다리 걸쳐 있는 주최 측의 의향이 크게 작용한 시위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시위를 주최하는 단체의 조직에 의존하기보다는 남녀노소 진보중도보수 가리지 않고 범국민인 사유로 모였다는 자기 증명을 말한다.[25]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여의도공원까지 감안해도 대규모 인파를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26] 물론 주최 측에서도 이를 고려해서 거점마다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는 등 여러 준비를 했지만, 100만이 넘는 인파 모두에게 화면을 송출하는 건 무리였고, 대신 참여자들이 현장에서 주최 측 유튜브 생중계를 시청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27] 반대로 광화문광장은 탄핵 반대 집회 쪽에 차지하게 된다. 박근혜 퇴진 시위 때는 국회 탄핵 가결 후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탄핵 반대 시위대들이 모였다. 탄핵 가결 전에는 230만명까지 모였기 때문에 광화문광장 뿐만이 아닌 주변 안국, 종로, 을지로, 서울광장, 서대문 방면 광화문 도로 등등 시위대 인파가 그 일대를 장악했는데, 국회 탄핵 가결 후에는 광화문광장을 거점으로 한 박근혜 퇴진 시위의 규모가 상당히 줄어서 인접한 두 시위 장소 간 분리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28] 그러나 탄핵 가결 이후 집회부터는 헌법재판소가 핵심이므로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하고 헌법재판소까지 행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29] 중국의 간체자가 아닌 대만과 홍콩 등에서 쓰이는 번체자로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