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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21:20:27

대항해시대 3/도시일람

1. 개요2. 도시 메뉴3. 지역4. 도시
4.1. 이베리아4.2. 지중해4.3. 북유럽4.4. 중근동4.5. 중앙아시아4.6. 아프리카4.7. 인도4.8. 동남아시아4.9. 중국4.10. 조선4.11. 일본4.12. 신대륙

1. 개요

대항해시대 3에 등장하는 지역과 도시에 대해 나열한다. 일단 게임이라 실제와 다른 곳도 있고, 배경이 15세기~16세기이기 때문에 게임 초반부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 도시도 있다. 발견을 이루고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도시가 생겨나는 방식이다.

2. 도시 메뉴

게임을 시작하면 도시 화면이 표시되며, 항해 또는 육상 이동을 통해 다른 도시에 가도 유사한 화면이 나오지만 도시에 따라 없는 건물도 있다. 대항해시대 2와 달리 건물을 선택해서 들어가더라도 시간이나 날짜가 경과하지는 않으며, 단지 육상으로든 해상으로든 도시를 떠날 때 10일, 들어올 때 10일[1] 일괄적으로 시간이 경과한다.

3. 지역

게임상에 존재하는 지역 분류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은 게임 상으로도 지역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4. 도시

기본은 한국어판 게임에 등장하는 명칭으로 작성한다. 러시아 북부(북부아시아),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에는 도시가 없다.

4.1. 이베리아

4.2. 지중해

4.3. 북유럽

4.4. 중근동

4.5. 중앙아시아

4.6. 아프리카

4.7. 인도

4.8. 동남아시아

4.9. 중국

4.10. 조선

4.11. 일본

4.12. 신대륙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정복(멸망) 이벤트가 2개나 배치되어 있는 특이한 지역으로, 고증보다도 뒤늦게 생기는 도시들도 있으며, 유난히 버그가 많다.

[1] 항구에만 입항하면 곧 도시에 들어온 것이 되기에 입항만 하고 도시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10일이 경과한다.[2] 포르투갈의 리스본, 스페인의 세빌리아.[3] 내륙 도시가 아닌 항구도시에 입항해서 들어온 경우 성문으로 나가면 다시 배를 출항하기 위해 해당 도시에 들어가야만 해서 날짜를 손해보므로 출항 후 상륙해서 탐험하는 것이 좋다[4] 이 경우 ㅇㅇㅇ가 ????를 발견했습니다. 등의 메세지가 뜬다.[5] 유럽 지역에서 구입한 배는 이슬람이나 동남아 등지에서는 개조할수 없다. 마찬가지로 다우도 유럽 지역에서 개조할수 없고...[6] 교역품 발견물을 발표해야 해당 교역품이 등장한다.[7] 이때는 무슨 능력이 필요한지 메시지가 뜬다. 그 외에 선행 발견물을 요구하는 힌트의 경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나온다.[8] 그라나다, 말라가[9] 위구르어. 대항해시대 시리즈는 3과 온라인만 육상 탐험 및 내륙도시가 있다.[10] 동남아시아의 캐릭터는 유목민하면 흔히 떠오르는 찰갑과 방패, 곡도를 들었지만 중앙아시아의 캐릭터는 검은 피부에 괴상한 헤어스타일, 민소매 옷에 곤봉을 들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캐릭터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중앙아시아의 캐릭터 외형은 도무지 중앙아시아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한겨울에 영하 40도 가량의 추위가 찾아오는 중앙아시아에 민소매 캐릭터가 존재하는게 맞을까, 열대 기후인 동남아시아에 존재하는게 어울릴까?[11] 호주 쪽 발견물의 경우 힌트 책이 중국에 있지만 몇몇 책은 동남아시아토착어가 필요하다.[12] 조선은 중국 문화권으로 표시된다. 언어는 동아시아 토착어를 쓰는데 3에선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아시아토착어로 묶었다. 이후 온라인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언어 스킬에 넣으며 분리했다.[13] 금각사 발견 시 츠카하라 보쿠덴이 등장해 일기토를 벌이게 되는데 검술수치 0의 허약한 상대일 뿐이다.[14] 아마 정확하지는 않으나 실제로 15세기 제노바의 도제를 역임한 로도비코 디 캄포프레고소로 추정된다.[15] 토리노 이전의 수도 샹베리가 프랑스와 너무 가까워 프랑스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고자 토리노로 천도했는데도 이정도였다.[16] 1657년 전까지는 덴마크령이었다.[17] 정복자 메흐메트는 콘스탄티노플 정복 후 그리스 정교회의 대주교와 함께 신학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3세기 무렵 이 성당을 찾았다. 이들은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된 남쪽 예배당인 파레클레시온에서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 예배당은 현재 소규모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18] 도시 이름 자체가 이즈미(和泉)와 셋츠(摂津)의 경계(堺)에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