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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6:31:09

만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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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특징4. 종류5. 요리6. 빈부격차와 가난의 상징7. 기타

1. 개요

만터우(饅頭 / 馒头)는 중국만두이자 전통 중국 요리의 하나이다. 지방에 따라 (饃) 혹은 모모(饃饃)라고 부른다. 발음은 표준중국어 기준 [mǎn.tʰoʊ].

2. 역사

이 음식들은 초기에는 발효 기술이 없어서 그냥 익힌 밀가루 덩이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밀이 처음으로 중국에 전래된 시안 지방에서 주식으로 먹는 꿔쿠이라는 솥에 구워내는 납작하고 단단한 에서 그 원형을 볼 수 있고, 섬서성의 명물빵인 파오모(泡饃饃)도 이런 형태의 빵이다.

그러다 발효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의 부풀어오른 형태가 되었다. 그에 대한 언급은 남제서(南齊書)에 서진 영평 9년(299년)에 태묘의 제사음식중에 발효시킨 빵인 면기병(麵起餠)[1]이라는 음식이 나오며 송나라 사람 정대창도 '연번로演繁露'에서 발효된 밀가루는 부드러워진다고 이 음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3. 특징

만터우는 한국식 독음으로 '만두'로 읽히지만, 속이 없다. 그냥 두꺼운 밀가루 반죽을 길게 뽑아 마시멜로 모양으로 숭덩숭덩 썰어놓은 것이나 위 사진처럼 동그랗게 빚어놓은 것을 그대로 쪄놓은 형태인데, 한국에서는 꽃빵이 만터우와 비슷하지만 꽃빵[2]쪽이 훨씬 더 반죽이 얇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나 대만 현지에서 한국에서 주로 떠올리는 만두를 먹고자 한다면 '만터우'를 주문해서는 안 된다. 바오즈 혹은 자오즈[3]를 달라고 해야 한다.

제갈량의 고사를 예로 들며 "어찌됐든 나관중 시절에는 속을 채운 포자 등도 만두라고 불렀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나름 타당한 것이, 설령 현재의 연구 결과대로 "만두의 발명가 제갈량설이 틀렸다" 해도 "삼국지연의가 나온 시점까지도 밀가루 반죽 안에 고기 속을 넣고 동그랗게 빚어 익혀낸 요리를 만두라고 불렀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가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한편 상하이 등지에서는 현재도 속이 들어간 만두를 만터우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샤오롱바오도 만터우라고 뭉뚱그려 부르는데, 한국에서 포자건 교자건 소롱포건 죄다 왕만두, 만두, 물만두라고 만두 시리즈로 뭉뚱그려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속에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먹으면 별다른 맛이 없지만, 얘는 그 자체만으로 먹는 게 아니라 다른 음식과 곁들여먹는 것을 상정한 주식이다. 이해가 잘 안 된다면 흔히 먹는 고추잡채의 꽃빵을 잡채 없이 먹는다 생각하면 편하다. 만터우만 단독으로 먹는 건 한국으로 따지면 맨밥을 먹는 것과 똑같은 행위인지라 꼭 곁들이 반찬이 필요하다. 그냥 먹어도 맛있으면 자체 풍미가 강하다는 의미로 쉽게 질리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식으로 쓰이는 음식(쌀밥, 빵 등)은 전부 밋밋한 맛을 갖고 있다.

4. 종류

밀가루가 아닌 옥수수 가루나 수수 가루로 반죽해 만드는 원추형의 만터우는 워워터우 혹은 워터우(窩窩頭, 窩頭)라고 불린다.[4][5] 북중국의 주식은 밀, 남중국의 주식은 쌀을 기반으로 했는데 만터우가 밀빵이라 볼 수 있다.

만터우의 형태와 선호는 지방마다 달랐는데, 산둥에서는 속을 넣지 않은 걸 먹었으나 상하이시에서는 만터우 속에 속을 넣어서 만든 것을 선호했다. 보통은 속을 넣으면 바오쯔(包子)라 부르지 만터우로 분류하면 안 되지만, 상하이 사람들은 속을 넣어도 그걸 계속 만터우라고 불렀다고. 때문에 상하이에서 속이 안 들어간 만터우 사먹기는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로, 중국 공산당에서 식량을 아끼기 위해서 본래 속이 들어가는 만터우를 속이 없는 빵 덩어리 형태로 만들어서 억지로 보급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마오쩌둥 시절에도 시골에서 서민들이 고기랑 야채로 속을 채워 지진 주식용 호떡을 끼니용으로 흔히 만들어 먹던 걸 보면 그냥 헛소리이다. 애초에 식량이 부족했다면 곡물이 제일 부족했을 텐데 곡물을 가장 많이 쓰는 속없는 빵을 일부러 보급할 리가 만무하다. 영양은 둘째치고라도 과일 껍질이든 순무든 속을 넣어야 양이 불어난다.

당연하겠지만 만터우를 공산당 차원에서 억지로 만터우라고 보급한 것은 아니고, 대약진 운동 당시에 개인식당의 폐쇄조치를 단행하고 공공식당을 개설해서 운영하도록 했고[6], 각 개인은 식사 때마다 공공식당에 가서 밥을 먹도록 강제해놓았는데 공공식당이 워낙에 엉망진창으로 운영되다보니 결국 공공식당을 폐쇄했던 일화가 와전된 것이다.

5. 요리

만터우를 튀겨서(炸饅頭, 자만터우) 연유와 함께 디저트처럼 내놓는 것과 진인(金銀)만터우라고 해서 절반은 쪄내고 절반은 튀겨내는 빵 여러 개를 내놓는 요리나 앞서 언급한 섬서성의 파오모를 뜯어 양념한 양고기 국물에 꿇여먹는 양러우파오모(羊肉泡饃)라는 시안 지방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요리[7], 곡식 대신 으로 만드는 밤 워터우[8]가 유명하다.

남송 시대 간신 진회가 명장 악비를 모함해 죽이자 그 증오심에 임안의 한 간식 가게에서 진회 부부의 모습을 밀가루로 때려 빚어 반죽한 뒤 그걸 하반신이 뱀처럼 보이게 등을 붙여 한 쌍으로 꼬아서 기름에 넣고 튀겨 팔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 유탸오(油條)[9]라는 길거리 도넛이나 꽈배기과 비슷한 쫄깃한 식감이지만 단맛이 아닌 소금기 있는 반찬급의 음식[10][11]도 있고, 이 음식에서 간식으로 발전한 매실호두참깨를 넣어 반죽한 뒤 튀겨 복숭아씨를 뿌려 먹는 꽈배기 모양의 단맛이 도는 과자인 마화(麻花) 등의 다양한 요리가 존재한다. 꼬치집 같은 데서는 꼬치로 구워서 제공하기도 한다.

6. 빈부격차와 가난의 상징

만터우는 옛날부터 중국의 빈부격차와 가난의 상징이였다. 20세기 말 이후로는 더욱 조리방법이 간편하고 자극적인 맛의 컵라면이 보편화되어 돈없고 시간없는 농민공과 학생, 기차에서 간편하게 식사하려는 귀성객들이 컵라면으로 한끼를 때우면서 그 이미지를 대체하기는 했지만, 만터우는 주식이니까 대충 만터우로 때우는 경우도 많다.

소설 대지를 보면 주인공 왕룽이 농사일을 하면서 마늘을 끼워 넣은 만터우로 점심을 해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난한 사람이나 노동자들에게는 일상적인 메뉴였던 듯하다. 90년대 번역본에는 "밀떡"이라고 번역되었다.[12][13]

영화 인생에서는 문화대혁명 시기 푸구이의 딸인 펑시아가 만삭이 되어 산통으로 입원한 병원에 제대로 된 의사 하나 없던 상황에서, 당시 홍위병들에게 반동으로 몰려 감금당했다 풀려난 산부인과 전문의인 왕 교수가 며칠간 굶어서 힘이 하나도 없던 것을 안타깝게 본 주인공인 푸궤이가 사준 만터우를 정신없이 먹다 혼절한다.

며칠간 굶는 것도 모자라 고문을 당하다보니 평소 체중보다 많이 낮아졌고, 기력도 상실했던 상황에서 물도 없이 급하게 먹다보니 평소보다 급하게 많이 먹은 7개의 만터우가 하필이면 목이 메어 마신 때문에 뱃속에서 불어버려 급체해버린 것. 결국 진료를 하지 못해서 펑시아가 과다출혈로 사망하자 이후 왕 교수는 죄책감으로 밀가루는 입에도 안대고 쌀만 먹자 그러면 쌀값이 비쌀텐데 하고 푸구이가 후일담처럼 얘기한다.[14]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서, 2004년 중국 빈부격차를 다룬 국내 다큐멘터리를 보면 시골에서 도시로 와서 기술없이 건설업하는 막노동자들의 식사 메뉴가 1인당 만터우[15] 4개 정도와 무짠지와 쌀죽, 또는 배추국 등이 전부[16]로, 이것만 하루 3끼를 먹는다고 나온 적이 있다. 오죽하면 본 다큐멘터리에서 나레이션을 맡은 구자형 성우도 요리의 천국 중국에 안 어울리는 빈한한 아침이다라고 할 정도이다.

고기도 한달에 몇번 나올까 말까 한다. 대충 삼겹살[17]과 배추에 간장을 넣고 졸인게 전부인데, 도시로 나온 농민공 입장에서는 고기를 먹어볼 날이 잦지 않아서 거의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한사람당 몇점정도 먹는것이 끝이다.

이는 당시 농민공들의 평균적인 임금 지급 체계가 평시에는 용돈 수준만 주고 본 급여는 한 철에 몰아서 주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받은 급여의 대다수는 고향에 보냈으니 농민공들이 물가가 비싼 북경에서 뭘 사먹을 여유가 안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비록 2000년대에서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임금 수준이 크게 올라서 서민 식당에서 파는 음식도 못사먹을 정도까지 아니게 되었기는 했지만 문제는 물가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훨씬 높다보니 여전히 만터우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하루에도 모두 합쳐 100kg 이상 짐을 가지고 걸어 올라오기에도 힘든 산 위의 식당과 숙박 시설에 필요한 짐을 나르는 짐꾼들도 일단 한번 올라가서 돈 받은 다음에 만터우만 꺼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아직도 볼 수 있다. 그것만 먹고 이번에는 식당에서 내주는 쓰레기들을 수십kg 무게를 가지고 내려가서 돈 받고 하는 가난한 짐꾼들을 극한직업에서 취재했던 바 있다.

7. 기타

시키면 한다! 약간 위험한 방송에서 만터우와 비슷한 음식이 나온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팥 없는 찐빵은 무슨 맛인가를 실험하는 내용이다. 만터우도 그냥 보면 속 없는 찐빵처럼 생기기는 했다.

[1] 여기서 기(起)는 영어의 rise와 마찬가지로 빵이 발효되며 부풀어오른다는 뜻이다.[2] 중국에서는 화쥐안(花捲)이라고 부른다.[3] 빠오즈는 야채호빵하면 바로 짐작이 갈 포자, 자오즈는 교자다. 보통 '바오쯔', '자오쯔'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중국어에서는 첫음절에 강세가 들어가기 때문에 실제 발음은 '빠오즈', '자오즈'에 가까우며, 마지막 음절에 강세를 넣어 '바오쯔'라고 하면 못 알아들을 수 있다.[4] 이 워워터우의 기원 중 하나로 서태후가 거론된다. 전란을 피해 서태후가 시골에 내려갔을 때 허기가 져서 농민들이 바친 밋밋한 옥수수 만터우를 맛있게 먹었다가, 나중에 자금성에 환궁하여 그 맛을 잊지 못해 만들라고 지시하였으나 이미 먹을것이 풍족한 상태로 돌아왔는데 그깟 싸구려 만터우가 맛있게 느껴질 리 만무했다. 결국 궁중의 요리사들이 견과류와 설탕을 듬뿍 넣어 겨우 서태후를 만족시켰다는 야사가 있다.[5] 워터우가 한국에 이름이 알려진 건 한국에 있는 판다인 바오 가족이 즐겨먹는 간식으로 등장한 무렵이다.[6] 심지어 유서 깊은 고급 음식점들도 강제로 공공식당으로 전환시켜 기존 메뉴를 전부 폐지하고 오로지 만터우 같은 서민 음식만 만들어 팔게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전통 요리의 레시피가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7] 통일왕조 송의 건국자인 조광윤이 즉위하기 전 빈곤할 때 굳은 빵을 국에 적셔먹던 것에서 기인한 음식이라고 한다.[8] 의화단 사건서태후가 피난가면서 유래한 음식이라고 한다. 위에 있는 워워터우 일화 각주에 나오는 게 이것.[9] 당시엔 문자 그대로 진회를 튀긴다고 유작회(油灼檜)라 불렀지만 서슬 퍼런 병사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유작귀(油灼鬼)라고 돌려 불렀고, 도리어 진회가 이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당시 발음이 지금과 같았다는 보장은 없지만 실제로 檜는 guì. 鬼는 guǐ로 성조 하나 차이로 발음이 같다. 단, 檜가 진회의 이름으로 쓰일 때는 qínhuì로 발음된다.[10] 중국의 가장 일상적인 아침 식사가 바로 이 튀긴 유조에 달콤짭짜름한 간장소스를 곁들이고 두유, '떠우장'이라고 하는 설탕을 넣은 콩국이나 기타 죽과 같이 먹거나 다른 음식을 싸서 먹는 것이다. 지방 요리인 삼(糁)과 함께 먹어도 일품이라 한다. 한국에서도 안산이나 구로동에서 맛볼 수 있다. 중화권 사람들, 특히 강남 사람들은 유조를 그야말로 매일매일 먹는다.[1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작가로 유명한 주요섭이 쓴 소설인 인력거꾼에서도 상해에서 인력거꾼으로 생계를 꾸리는 주인공이 유조와 죽으로 아침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12] 한창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던 60-80년대의 한국도 가난한 노동자들의 점심이 혼분식 장려 운동으로 인해 보통 밀떡이었다는걸 생각해보면 정말 적절한 번역.[13] 대지의 작가인 펄 벅미국인이지만,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내내 중국에서만 살아서, 이례적으로 중국어가 모어였다. 당연히 중화권에 대해서는 매우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14]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휩쓸던 시기 전문직 종사자나 예술가들은 반동분자로 몰려서 린치를 당했다. 그렇다보니 병원에는 이제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이 의료진이랍시고 푸구이 앞에서 고압적인 모습을 보였다. 펑시아가 출산을 해야하는데 병원 상태를 보니 불안했던 푸궤이가 사위 완얼시 덕에 감옥에 갇혀 있는 왕 교수를 불러온다.[15] 만터우도 재료에 따라 품질이 확 다른데, 이들이 먹는 만터우는 최저품이라 겉보기에도 초라했다. 싸구려라고 하면서 무표정하게 먹는 모습들을 보여준다.[16] 당연하지만 이렇게만 계속 먹으면 영양실조 걸리기 딱 좋다. 당장 거의 대부분이 탄수화물로 이뤄져 있고, 단백질은 거의 함유되어 있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한 쌀 덕택에 그 즉시 영양실조가 일어날 수준은 아니라는 것. 물론 그래봐야 쌀도 곡식이고 녹말이 대부분 인만큼 장기적으로 섭취했을 때는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17] 중국에서는 삼겹살보다 우리나라에서 저렴한 앞다리살이 가장 비싸다. 그나마 저렴한 삼겹살, 그것도 질이 안좋고 털까지 남아있는 삼겹살에 배추를 넣고 간장으로 졸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