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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 |
본명 | 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 Gottlieb Mozart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 |
출생 | 1756년 1월 27일 |
잘츠부르크 대주교령 잘츠부르크시 알트슈타트잘츠부르크동 (現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주 잘츠부르크시 알트슈타트잘츠부르크동)[1] | |
사망 | 1791년 12월 5일 (향년 35세) |
합스부르크 제국 빈 (現 오스트리아 빈) | |
묘소 | 오스트리아 빈 성 마르크스 묘지[2] |
국적 | 합스부르크 제국 |
신체 | 163cm[3] |
가족 |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1719년~1787년) 어머니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1720년~1778년) |
배우자 콘스탄체 모차르트[4](1762년~1842년, 1782년 결혼 ~ 1791년 사별)[5] | |
슬하 4남 2녀 | |
종교 | 천주교 (세례명: 요한 크리소스토모)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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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2. 명칭
그의 성 '모차르트(Mozart)'는 모첸(motzen, 남부 독일 방언: motschen)과 하르트(hart)의 합성어인 '모츠하르트(Motzhardt)'의 변형으로, 뜻은 '험담하는 사람' 혹은 '조잡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주장[6]과, 중세 고지 독일어로 습지를 의미하는 모스(mos)와 하르트(hart)의 합성어라는 주장이 있다. 아쉬운 것은, Mozart(Mozahrt)가 기록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이 14세기이므로 새로운 자료가 추가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이상 더 자세한 추측은 어렵다는 점이다.오늘날 그의 이름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로 굳어졌지만, 생전에 그가 성인이 된 후 사용했던 이름은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Wolfgang Gottlieb Mozart)'였다. 이름의 미들네임이 고틀리프에서 아마데우스로 바뀌게 된 것은 그의 사후 미망인인 콘스탄체 때문이었다. 그밖에 어렸을 때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연주여행을 했기 때문에 각국 언어 관습에 따른 다양한 버전으로 이름이 각색되기도 했으며, 모차르트 본인이 성년이 되면서 본인의 취향이 반영되기도 했기 때문에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본명은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us Theophilus Mozart)'이다. 세례명의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Wolfgangus Theophilus)' 부분을 독일식인 '볼프강 고틀리프(Wolfgang Gottlieb)'로 고친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 Gottlieb Mozart)'를 일반적으로 모차르트의 풀네임으로 본다. 풀네임에서 첫 두 이름을 뺀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Wolfgang Gottlieb Mozart)'에서 독일식의 고틀리프(Gottlieb)를 라틴식으로 바꾼 아마데우스(Amadeus)를 채용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가 현재에 굳어졌다.
풀네임에서 생략된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ysostomus)'는 '황금의 입'으로 알려진 교부(敎父)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7]에게서 따왔다고 한다.
'볼프강(Wolfgang)'은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살던 고향의 호수 이름[8]에서 따온 것이다. 지명이 아니더라도 볼프강은 독일어권에서 남자 이름으로 흔히 사용되는 이름 가운데 하나[9]다. 이 이름은 귀족들에게 한정되어 붙여지며 본래 평민들은 사용할 수 없었는데 모차르트는 예외적으로 썼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오래전의 일이고 21세기 기준으로는 귀천없이 누구나 쓰는 이름이다.
'테오필루스(Theophilus)'는 대부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라틴화된 그리스어이다. 뜻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자(Theo-Philus)'라는 의미이며 이를 독일식으로 쓰면 고틀리프(Gottlieb, Gott-Lieb), 이를 다시 라틴식으로 쓴 것이 아마데우스(Amadeus, Ama-Deus)였다.
모차르트가 성년이 된 후 그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독일식인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Wolfgang Gottlieb Mozart)'라 표기되었다. 모차르트 생전에 열린 콘서트 포스터에는 거의 모두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Wolfgang Gottlieb Mozart)'라고 표기되어 있다. 프라하 등에서 열린 콘서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장난기가 많았고 언어유희를 좋아했던 모차르트는 사적인 편지에서 '아마데(Amadé)'라는 프랑스어 이름도 즐겨 썼다. 이러한 표현은 대부분 가족이나 지인과의 편지에서 사용되었고,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은 사실상 없었다. 모차르트가 '아마데우스(Amadeus)'라는 정식 라틴어 표기를 사용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마데우스를 쓴 경우에도 '우올프강구스 아마데우스 모차르투스(Wolfgangus Amadeus Mozartus)'라는 식으로 이름 전체를 라틴어로 표기했는데, 이는 재미로 고대 로마식 이름을 흉내내서 써본 것이며, 결코 대외적으로 정식으로 사용한 이름은 아니었다. 현재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생전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라고 표기한 적은 1787년 5월 단 한번 있다고 한다.
이렇게 생전에 공식적으로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였던 그의 이름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라고 바뀌게 된 것은 그의 사후, 그의 작품의 판권을 상속받아 소유하고 있던 미망인 콘스탄체의 개인적 의지 때문이었다. 미망인 콘스탄체는 모차르트 서거 직후부터 자신의 공식적인 서명으로 '콘스탄츠 모차르트(Konstanz Mozart),[10] 결혼 전 베버(Weber), 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미망인'이라는 서명을 사용했다. 그러나 콘스탄체의 서명과는 관계없이 모차르트 추모 콘서트를 포함해서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Wolfgang Gottlieb Mozart)'라는 표기가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차르트 서거 후 1798년 그 유명한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출판사에서 모차르트 미망인 콘스탄체의 허가를 받아 모차르트 전 작품을 악보로 출판했는데, 이 때 모든 작품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11] 아마데우스(Amadeus)라는 라틴식 미들네임이 사용된 것은 모차르트 전 작품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미망인 콘스탄체의 의사가 반영되었다고 보여지고 있다. 악보계의 바이블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사에서 출판된 모차르트 악보가 유럽 각지에서 사용되면서 이 이름이 완전히 굳어지게 된 것이다.
되도록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올바른 한글 표기이다.[12] 하지만 '모짜르트'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외래어 표기법이 정착되기 전인 1980년대만 해도 이 명칭이 더 흔하게 쓰였다.
한국의 경우 모제도(慕帝道)라는 음역한 이름도 있었으며 해방 직후까지 이 음역한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이후에는 '모짜르트'라는 표기를 썼다가 1989년 2월 개정 맞춤법을 시행하면서 '모차르트'으로 바뀌었다.
3. 생애
자세한 내용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4. 음악
자세한 내용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음악 문서 참고하십시오.4.1. 오페라
자세한 내용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오페라 문서 참고하십시오.5. 평가
18세기 빈 고전파를 대표하는 천재이며, 35년의 짧은 생애 동안 수많은 불멸의 곡들을 작곡하였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함께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추앙받는다. 음악사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심지어 서양권에서는 신성한(divine)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정도로 신성불가침의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그의 음악은 불멸의 반열에 올랐으며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클래식에 전혀 관심이 없더라도 모차르트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심지어 그의 이름도 모르고 그의 음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사람조차도 그의 음악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특히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주목할 만한 음악을 남겼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재능이 뛰어났던 불세출의 천재로 인정받고 있다. 35년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작품 수만 무려 쾨헬 번호(K.) 626편에 이르는 곡[13]을 남긴 괴수이며 단순히 곡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다수의 작품들이 음악성 측면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으며 음악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천상에서 내려오는 듯한 아름답고 순수한 멜로디, 짜임새 있는 천재성이 돋보이는 곡의 구조, 대중성 모두 하나라도 놓치는 거 없이 정말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곡을 들으며 악보도 함께 보면 천재라는 단어가 모차르트라는 인물을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다.[14]
모차르트의 가장 놀라운 능력은 기악, 성악을 가리지 않고 모든 형식의 음악에 능했으며, 일반적인 팔방미인 수준이 아니라 거의 끝판왕급 역량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모차르트처럼 기악곡 분야 전반과 성악곡 분야 전반에서 모두 뛰어난 걸작을 남긴 음악가는 극히 드물다.[15] 기악곡의 경우 독주곡/실내악/협주곡/교향곡과 같은 다양한 음악장르에서 (첼로나 트럼펫 정도를 제외하고)특정 악기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악기를 위한 작품 및 다양한 악기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남겼으며,성악곡의 경우에도 독창곡/합창곡/오페라/종교음악 등의 거의 모든 장르에서 역사적인 명작들을 남겼다.
또한 모차르트처럼 대중성과 작품성 양쪽에서 모두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음악가 역시 정말 드물다. 그의 음악들은 쉽고 편안하게 들리면서도 역대급의 음악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대작곡가들의 음악들과도 구별되는데, 덕분에 그의 음악은 콘서트홀에서만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음악, 각종 BGM, 벨소리 등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 세계의 광고, TV, 영화, 드라마 등 모든 분야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이 가장 많이 사용될 정도로 클래식 음악가 중 대중적으로도 가장 잘 알려진 음악가이다.[16]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모차르트의 음악을 많이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1. 모차르트에 대한 말
나는 항상 나를 모차르트의 가장 위대한 숭배자로 여겨 왔으며, 내가 죽는 날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루트비히 판 베토벤
앞으로 100년 동안 다시는 그런 재능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요제프 하이든
요제프 하이든
모차르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다. 베토벤은 그 자신의 음악을 창조하였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은 순수함과 미를 지녔는데, 그것은 우주에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내적 아름다움의 일부가 숨겨져 있다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 같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모차르트여! 이 멋진 나은 세상의 모습을 당신이 주셨나이까? 가볍고, 밝고, 좋은 날들이 내 평생 동안 내게 머무를 것입니다. 멀리서와 마찬가지로 모차르트 음악의 마법의 음표는 여전히 우아한 방식으로 내게 떠오릅니다.
프란츠 슈베르트
프란츠 슈베르트
서로 연결되는 안락함과 우아함으로서 이토록 즉흥적이고 명확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우리가 모차르트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쓸 수 없을 지언정, 최소한 그처럼 순수한 음악을 쓰도록 합시다.
요하네스 브람스
요하네스 브람스
모차르트는 음악 창작에 있어 전 영역을 아우르지만, 내 부족한 머리 안에는 건반밖에 없다.
프레데리크 쇼팽
프레데리크 쇼팽
모차르트는 나중에 우리 모두를 잊히게 할 것이다.
요한 아돌프 하세
요한 아돌프 하세
모차르트는 매우 장대한 규모의 창의력을 보여서 사람들은 사실상 그가 그 자신을 계속해서 위대한 걸작에 내던졌다고 말하곤 한다.
클라우디오 아라우
클라우디오 아라우
모차르트의 음악은 특히나 연주하기 어렵다. 그의 감탄할 만한 명쾌함은 그 음악이 매우 청백함을 입증한다. 그의 연주에서 약간의 실수만 해도 그것은 백지 위의 검은 점처럼 두드러진다. 때문에 그의 곡은 음 하나하나가 정확히 연주되어야 한다.
가브리엘 포레
가브리엘 포레
모차르트의 엄청난 천재성은 그를 역대 모든 예술가들 중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게 했다.
리하르트 바그너
리하르트 바그너
모든 음악적 야망은 모차르트 앞에서 절망이 된다.
샤를 구노
샤를 구노
모차르트는 위대한 거장들 중에서 가장 범접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아르투르 슈나벨
아르투르 슈나벨
모차르트의 음악은 천사들을 지상으로 내려오도록 유혹할 만큼 매우 아름답다.
프란츠 알렉산더 폰 클라이스트
프란츠 알렉산더 폰 클라이스트
어떤 난관에 부딪히면, 모차르트가 당신에게 해결책을 준다.
페루초 부소니
페루초 부소니
인간 내면의 영혼과 그 에너지의 깊이를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바흐, 베토벤, 바그너의 곡들에 감탄할 만하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신성한 본능이다.
에드바르 그리그
에드바르 그리그
베토벤은 일주일에 두 번, 하이든은 네 번, 그리고 모차르트는 매일 연습한다.
조아키노 로시니
조아키노 로시니
우리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자주 들을수록 그의 음악이 더 새로워 보이지 않는가?
로베르트 슈만
로베르트 슈만
모차르트는 정의되기 이전에 어떤 행복이다.
아서 밀러
아서 밀러
만약 길을 가다 베토벤을 만나면 모자를 벗어 정중히 예를 표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모차르트를 만난다면 그 자리에서 기절할 것이다.
카를 뵘
카를 뵘
완전하고 열린 해석이 가능한 모차르트의 음악은 여전히 예술의 끝처럼 느껴진다.
손열음
손열음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할 때마다 늘 행복을 느끼며, 항상 그것을 즐긴다. 모차르트는 모든 것을 가진 천재적인 존재이다. 그의 음악에는 무수히 많은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어 그의 작품을 듣고 있으면 인간의 온갖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조성진
조성진
6. 여담
자세한 내용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여담 문서 참고하십시오.[1] 잘츠부르크는 현재 오스트리아의 한 지방인데, 모차르트 생전에는 엄밀히 말하면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스리던 오스트리아 대공국 소속이 아니라 잘츠부르크 대주교령으로 독립되어 있었다. 그래서 모차르트가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전 잘츠부르크 대주교인 콜로레도 대주교를 상전으로 모셨던 것. 모차르트 사망하고 10여년이 지나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침공하자 콜로레도 대주교는 영지를 포기했고 오스트리아가 잘츠부르크를 관할하게 되었다.[2] 참고로 가묘다. 시신은 이 공원 어딘가에 묻혀있지만, 합사되었기에 정확한 위치와 어느 시신이 모차르트 시신인지는 오늘날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즉, 모차르트가 어디 묻혀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은 낭설이다.[3] #, #2[4] 결혼 전 성은 베버(weber)[5] 모차르트 사후 모차르트 전기 작가였던 Georg Nikolaus von Nissen과 1797년부터 동거, 1809년에 재혼했다.[6] 독일계 성은 보통 그들 조상의 직업을 따서 만든 것으로, 조상 대대로 직업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면 현재 직업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독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성 뮐러(Müller)는 풍차 돌리는 사람 내지 방앗간 주인 정도 되겠다.[7] 라틴어식으로는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이다.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언변이 뛰어나고 설교를 잘 하여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국에서는 '요한 금구(金口)'라고도 부른다.[8] 호수 이름이면서 동시에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9] 당장 동시기 인물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도 미들네임 중 볼프강이 있다.[10] 콘스탄체는 서명에서는 항상 독일식인 '콘스탄츠(Konstanz)'라고 표기했다.[11] 콘스탄체는 모차르트 서거 후 레퀴엠의 완성을 시작으로 적극적으로 모차르트의 작품을 정리, 출판했다. 이를 통해 콘스탄체와 자녀 등 모차르트의 유가족들은 경제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고, 또 모차르트의 악보, 편지를 비롯한 각종 자료가 잘 보존될 수 있었다.[12] 실제 발음은 표준 독일어 기준으로 모차트에 가까우며, 오스트로바이에른어 방언 발음으로는 모짜르트에 가깝다.[13] 각 편마다 3악장, 4악장씩 이루어진 소나타, 협주곡, 교향곡 등을 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곡들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 파트너십 중 하나로 인정 받는 레논-매카트니가 작곡한 곡의 수보다 많다. 다만 이 626편 중 일부는 그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14] 멜로디와 곡의 구조와 대중성 모두 최상급으로 창작해내는 건 정말 음악사에서도 손에 꼽는다. 멜로디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슈베르트는 음악의 구조적인 빈약함에서 낮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반면 곡의 구조가 짜임새있는 슈만이나 브람스는 멜로디나 대중성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 모든 요소들을 다 완벽하게 만들어낸 모차르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15] 대작곡가 레벨에서는 사실상 없다. 다방면에서 걸작을 남긴 바흐의 경우 오페라는 작곡하지 않았고 독창곡의 경우에도 코랄 편곡 등의 종교음악이 대부분이다. 반면 헨델은 주로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와 같은 극음악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하이든이나 베토벤의 경우 기악분야에서는 전무후무한 성취를 이루었지만 성악분야의 기여도는 상대적으로 모차르트에게 많이 밀린다.[16] 밑에 서술되어 있지만 EBS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비교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영화나 드라마 등지에서 사용된 모차르트의 음악이 베토벤의 음악보다 수백여 개 더 많다고 한다.[17] Mozart is the musical Christ. Mozart is the highest, the culminating point that beauty has attained in the sphere of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