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22:26:09

신수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태조 정종 태종
안천부원군 한경 상산부원군 강윤성 김천서 여흥부원군 민제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청천부원군 심온 화산부원군 권전 여량부원군 송현수 파평부원군 윤번
예종 예종, 성종 성종
청천부원군 한백륜 상당부원군 한명회 함안부원군 윤기견 영원부원군 윤호
연산군 중종
거창부원군 신승선 익창부원군 신수근 파원부원군 윤여필 파산부원군 윤지임
인종 명종 선조
금성부원군 박용 청릉부원군 심강 반성부원군 박응순 연흥부원군 김제남
선조 광해군 인조
해령부원군 김희철 문양부원군 류자신 서평부원군 한준겸 한원부원군 조창원
효종 현종 숙종
신풍부원군 장유 청풍부원군 김우명 광성부원군 김만기 여양부원군 민유중
숙종 경종 영조
경은부원군 김주신 청은부원군 심호 함원부원군 어유구 달성부원군 서종제
영조 정조 순조 헌종
오흥부원군 김한구 청원부원군 김시묵 영안부원군 김조순 영흥부원군 김조근
헌종 철종 고종 순종
익풍부원군 홍재룡 영은부원군 김문근 여성부원군 민치록 여은부원군 민태호
순종
해풍부원군 윤택영
추존
{{{#!wiki style="margin: -16px -11px" 목조(이안사) 익조(이행리) 도조(이춘)
이숙(이공숙) 최기열 안변부원군 박광
환조(이자춘) 덕종(의경세자) 원종(정원군)
영흥백 최한기 서원부원군 한확 능안부원군 구사맹
진종(효장세자) 장조(사도세자) 문조(효명세자)
풍릉부원군 조문명 영풍부원군 홍봉한 풍은부원군 조만영 }}}
조선 왕비 · 조선 추존 왕비 · 대한제국의 국구 }}}}}}}}}

<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0ad73> 조선 정승
태조 ~ 연산군
{{{#!wiki style="margin: 0 -10px -6px; min-height: calc(1.5em + 6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좌의정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문하좌시중 문하좌시중 → 문하좌정승
초대

배극렴
제2대

조준
문하좌정승
제2대

조준
제3대

심덕부
제4대

성석린
제5대

민제
문하좌정승 문하좌정승 → 좌정승 좌정승
제6대

이거이
제7대

김사형
제8대

하륜
제9대

조준
좌정승 판의정부사 → 좌의정
제10대

하륜
제11대

성석린
제12대

하륜
제13대

남재
좌의정
제14대

하륜
제15대

류정현
제16대

박은
제16대

박은
제17대

이원
제18대

류정현
제19대

이직
제20대

황희
제21대

맹사성
제22대

최윤덕
제23대

허조
제24대

신개
제25대

하연
제26대

황보인
제26대

황보인
제27대

남지
{{{#!wiki style="margin: -16px -11px"
제27대

남지
제28대

김종서
제29대

정인지
}}}
제30대

한확
제31대

이사철
제32대

정창손
제33대

강맹경
제34대

신숙주
제35대

권람
제36대

한명회
제37대

구치관
제38대

황수신
제39대

심회
제40대

최항
제41대

조석문
제42대

홍달손
제43대

박원형
제43대

박원형
제44대

김질
제45대

홍윤성
제46대

윤자운
제46대

윤자운
제47대

김국광
제48대

최항
제49대

한명회
제50대

조석문
제51대

심회
제52대

윤필상
제53대

홍응
제54대

노사신
제55대

신승선
제56대

정괄
제57대

어세겸
제58대

한치형
제59대

성준
제60대

이극균
제61대

류순
제62대

허침
제63대

박숭질
제64대

신수근
<colbgcolor=#c00d45,#94153e> 역대 정승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역대 영의정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우의정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문하우시중 문하우시중 → 문하우정승
초대

조준
제2대

김사형
문하우정승
제2대

김사형
제3대

성석린
제4대

민제
제5대

하륜
문하우정승 우정승
제5대

하륜
제6대

이서
제7대

이무
제8대

성석린
우정승
제9대

이서
제10대

조영무
제11대

이무
제12대

이서
우정승 판의정부사 → 우의정 우의정
제13대

조영무
제14대

남재
제15대

이직
제16대

류량
우의정
제17대

남재
제18대

박은
제19대

한상경
제20대

이원
제20대

이원
제21대

정탁
제22대

류관
제23대

조연
제24대

황희
제25대

맹사성
제26대

권진
제27대

최윤덕
제28대

노한
제29대

허조
제30대

신개
제31대

하연
제32대

황보인
제33대

남지
제33대

남지
제34대

김종서
{{{#!wiki style="margin: -16px -11px"
제34대

김종서
제35대

정분
제36대

한확
}}}
제37대

이사철
제38대

정창손
제39대

강맹경
제40대

신숙주
제41대

권람
제42대

한명회
제43대

구치관
제44대

황수신
제45대

박원형
제46대

황수신
제47대

최항
제48대

홍윤성
제49대

강순
제50대

김질
제50대

김질
제51대

윤사분
제52대

윤자운
제53대

김국광
제53대

김국광
제54대

한백륜
제55대

성봉조
제56대

김질
제57대

윤사흔
제58대

윤자운
제59대

윤필상
제60대

홍응
제61대

이극배
제62대

노사신
제63대

허종
제64대

윤호
제65대

신승선
제66대

정괄
제67대

어세겸
제68대

정문형
제69대

한치형
제70대

성준
제71대

이극균
제72대

류순
제73대

허침
제74대

박숭질
제75대

강귀손
제76대

신수근
제77대

김수동
<colbgcolor=#c00d45,#94153e> 역대 정승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역대 영의정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

<colbgcolor=#7e2f22><colcolor=#ffd400>
조선 중종의 장인 | 단경왕후의 부친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 신도공(信度公)
신수근
慎守勤
출생 1450년(세종 32)
경상도 진주목 거창현
(現 경상남도 거창군)
사망 1506년 9월 27일[1] (향년 55 ~ 56세)
(음력 연산군 12년 9월 1일)
중종반정 당시 살해
묘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봉호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A]
시호 신도(信度)[A]
본관 거창 신씨[4]
근중(勤仲, 勤中), 경지(敬之)
소한당(所閒堂)
부모 부친 - 신승선
모친 - 중모현주
부인 정실 - 영가부부인(永嘉府夫人) 안동 권씨
계실 - 청원부부인(淸原府夫人) 청주 한씨 한은광(韓銀光)
자녀 슬하 4남 3녀

1. 개요2. 생애3. 평가4. 여담5. 대중매체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조선의 관료. 단경왕후의 아버지이자 연산군의 아내인 폐비 신씨의 오빠이다. 부인은 권람의 딸이다.[5]

2. 생애

1450년 경상도 진주목 거창현(현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영의정으로 거창부원군에 봉해진 아버지 신승선임영대군의 딸인 어머니 중모현주(中牟縣主) 전주 이씨 사이에서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종 때 1475년에 수조관을 지내고 1484년에 음서로 통훈대부 행 사헌부 장령에 임명되었으며, 1492년에는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우부승지, 통정대부 좌부승지,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통정대부 호조 참의를 지냈고 1493년에 귀의 종기를 치료했다.

연산군 때 1495년에 좌부승지를 지냈고 공이 없는데도 외척이라 중직에 등용되었다는 상소가 올라오기도 했으며, 1496년에는 우승지, 1497년에는 가선대부 좌승지, 승정원 도승지, 자헌대부 행 승정원 도승지를 지냈다.

1498년에 숭정 이조판서에 임명되었고 1500년에 병으로 사직했다가 판돈녕부사, 우찬성을 지냈다. 1506년에 훗날 중종이 되는 신수근의 사위인 진성대군을 옹립하는 반정을 일으키자는 박원종의 제의[6] 를 "임금은 비록 포악하나 세자가 총명하니 믿어보자."라고 거절했다가 중종반정이 일어나 3형제가 유자광 일파에게 살해되었다.

사후 영조 15년에 딸인 단경왕후가 왕후로 복위 되면서 영의정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에 추증되었고, 영조는 신수근의 충절이 포은과 거의 같다고 신수근을 칭찬하였다.

3. 평가

평가는 연산군일기[7] 및 중종실록[8]에는 부정적이나 영조실록[9]과 국조인물고[10]에는 긍정적인 평가가 남아있다. 중종반정을 일으킨 세력이 연산군일기와 중종실록을 편찬한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후대의 평가가 객관적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중종반정에 참여한 공신 중 상당수가 오히려 연산군에게 총애를 입었던 자들[11]인데 반해 신수근의 행동은 신의가 있는 편.[12] 굳이 비판을 하자면 왕실과 가까운 외척이자 힘있는 관료이면서도 연산군에게 간언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만 당시 신수근이 간언했어도 연산군이 이를 들었을지는 미지수.[13] 차라리 반정군 측에 붙었다면 누이 신씨의 폐위까지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딸인 단경왕후는 왕후에서 폐위되는 일이 없이 왕의 외척이자 부원군으로써 목숨을 지키고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막판에 줄 잘못서서 파멸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4. 여담

5. 대중매체

6. 둘러보기

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의 역대 집권세력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조선의 역대 권력자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정도전 이방원 정사공신
(하륜, 조영무 등)
관학파, 종친
(황희, 맹사성 등)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안평대군, 고명대신 정난공신
(수양대군)
훈구파
(한명회, 신숙주 등)
성종 연산군 중종
대신 vs. 대간 대신 궁중파
(임사홍, 신수근)
반정공신
(3훈)
사림파
(조광조)
反김안로계
(남곤, 심정, 이행, 이항 등)
김안로
인종 명종 선조
대윤
(윤임)
소윤
(윤원형)
윤원형 vs. 이량 사림파 동인 vs. 서인 서인
(이이, 성혼, 정철)
동인
(류성룡, 이산해)
선조 광해군 인조
연립 (서인, 남인)
(윤두수, 류성룡 등)
북인
(이산해 등)
탁소북
(류영경)
청소북, 대북
(3창)
대북
(이이첨)
반정공신
(이귀, 김류)
공서
(김류, 최명길 등)
낙당, 원당
(김자점, 원두표)
효종 현종 숙종
산당
(송시열, 송준길)
서인 vs. 남인 남인
(허적, 윤휴)
일부 서인
(김석주)
산당
(송시열)
남인
(민암, 장희재 등)
숙종 경종 영조
소론
(남구만 등)
노론
(노론 4대신)
소론
(소론 5대신)
노론
(정호, 민진원 등)
온건 소론
(이광좌)
노론
(김재로 등)
영조 정조 순조
완론 탕평
(탕평당, 청명당)
청명당 vs.
홍인한정후겸
홍인한정후겸 외척
(홍국영)
소론
(서명선 등)
준론 탕평
(벽파, 시파)
벽파
(심환지 등)
시파
(김조순 등)
순조 헌종 철종
안동 김씨 세도가문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반남 박씨 등)
고종
흥선대원군
(+ 풍양 조씨, 안동 김씨, 남인, 소론, 북인)
여흥 민씨
(+ 개화파)
흥선대원군 여흥 민씨
(+ 온건 개화파)
고종 순종
급진 개화파 여흥 민씨 김홍집
(+ 친일파, 친미파, 친러파)
근왕파 친일반민족행위자
고명대신: 김종서, 황보인 }}}}}}}}}

[1] 율리우스력 9월 17일[A] 1739년(영조 15) 추증.[A] [4] 장성공파(章成公派) 16세 수(守) 항렬.[5] 이 관계를 통해 신수근은 남이와 동서지간으로 관계 이어진다.[6] 야사에서는 이 때 박원종이 신수근에게 '당신은 누이(폐비 신씨)와 딸(중종비 단경왕후) 중에서 누가 더 중요합니까?'라고 물었다고 나온다. 여기서 신수근은 누이를 선택했다.[7] 연산군일기에는 도승지가 되자 시기심이 있어 남을 해치는 일이 많고 세력을 빙자해 제 뜻대로 행동해 겉으로는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자기를 좋지 않게 하는 사람에게는 암암리에 중상하고 도승지가 돼서는 승정원의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해서 동렬의 사람들이 그가 하는 짓을 비웃었다고 한다.[8] 중종실록에는 중전 신씨의 오빠로 총애를 받고 상당한 뇌물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9] 영조실록에는 영조가 신수근에 대해 "신수근의 마음은 괴로왔고 신수근의 뜻은 확고하였다. 훈척에 연연하지 않고 섬기는 바를 바꾸지 않으며 순박하고 강개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았으니 만약 포장(褒奬)하지 않으면 어떻게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다운 도리를 바루겠는가? 대신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영조실록 125권, 영조 51년 8월 24일 기해 2번째기사에서 영조가 "신수근은 포은과 함께 충의가 같다"며 정몽주에 신수근을 비견한 발언을 한 기록도 남아 있다. 비록 정몽주가 고려의 충신이라도 조선 왕조에서 그가 받았던 대우나 입지를 생각하면 엄청난 찬사다.[10] 국조인물고에는 신수근이 외척임에도 재산이 없어 노비 수도 적었다고 적고 있다.[11] 박원종부터가 연산군과 친한 사이인 월산대군 부인 박씨의 동생이었고 본인도 연산군에게 대단한 신뢰를 얻었었다.[12] 말하자면 신수근은 박승종이나 기자헌과 같다고 볼 수 있다.[13] 오히려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굉장히 열심히 간언하는 인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