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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효 등이 고종의 퇴위에 협조한 대신들을 암살하려다 처벌된 사건은 이완용이 고종 퇴위를 반대하던 대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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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용 | 박제순 | 이근택 | 이완용 | 권중현 |
1. 개요
乙巳五賊대한제국 말기, 일제의 한국 침략 과정에서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한국 측 대신 가운데 늑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친일반민족행위자 매국노를 뜻하는 말이다. 을사늑약은 이들을 통해 대한제국과 일본간에 공식적으로 처리되었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당하게 함으로써 대한제국을 일본의 보호령으로 전락시키고 국제사회가 일제의 조선 지배를 합법적으로 보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1906년 3월 12일 공립신문에 난망자오적(難忘者五賊)이란 기사가 실린 이후 오적(五賊)으로 통칭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을사오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 목록
2.1. 을사오적
을사년 5인의 적. 을사늑약의 체결에 가담한 5명의 주요 친일 인사들이다.<rowcolor=#FFF> 이름 | 직위 | 오늘날의 직위 | 사진 |
이지용 (李址鎔) | 내부대신 | 행정안전부장관 | |
박제순 (朴齊純) | 외부대신 | 외교부장관 | |
이근택 (李根澤) | 군부대신 | 국방부장관 | |
이완용 (李完用) | 학부대신 | 교육부장관 | |
권중현[1] (權重顯) | 농상공부대신 | 농림축산식품부장관 + 산업통상자원부장관 |
2.2. 을사삼흉
일러두기 |
본 문서에 등장하는 '을사삼흉'이라는 단어는 정식 학술 용어가 아닙니다. |
<rowcolor=#FFF> 이름 | 직위 | 오늘날의 직위 | 사진 |
이재극 (李載克) | 궁내부대신 | 대통령비서실장 | |
민영기 (閔泳綺) | 탁지부대신 | 기획재정부장관 | |
이하영 (李夏榮) | 법부대신 | 법무부장관 |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위 8명 중 이완용을 제외하고는 잘 모른다. 문서 최상단 틀만 보아도 이완용은 수많은 매국노들 중에서도 혼자 을사오적, 경술국적, 정미칠적에 전부 포함되어 있다.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나라를 팔아먹기 바빴던 정말 독보적인 수준의 매국노라는 뜻이고, 그 임팩트가 너무 강해 우리나라 역사에 정말 관심이 있거나,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저 나머지 사람
3. 반대자
이름 | 직위 | 오늘날의 직위 | 사진 |
한규설 (韓圭卨) | 참정대신 | 부총리 + 국무총리 직무대행 |
4. 에피소드
외부대신인 만큼 박제순은 원래 "외교권은 안 된다"라고 하던 자인데, 당일에는 겁먹고 "마음대로 하시오"하고는 을사조약에 도장을 찍어줬다.[4]"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바로 교섭(交涉)이니 찬성과 반대가 없을 수 없습니다. 내가 현재 외부대신의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외교권(外交權)이 넘어가는 것을 어찌 감히 찬성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한규설과 함께 조약문 수정에는 불참하지만 합방 때 똑같은 짓을 한다. 반대하다가 결국에 끝에는 찬성, 그리고 경술국적 등극. 권중현도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황실의 존엄 및 안녕이 포함되면 상관없다는 식의 말로 결국 찬성. 이지용의 경우는 그들과 달리 나이도 제일 어리고, 이전부터 친일파로 설쳐대면서 한일의정서와 제1차 한일협약을 다 하게 했던 인간이다. 그만큼 뼛속까지 친일파라 일본만 철석같이 믿던 자인데, 도박 중독자가 돼서 죽을 때는 "일본에게 속았다"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다만 외교 한 가지만 이웃 나라에 맡긴 것이고, 부강해지면 되찾을 수 있다"면서 보호국이 되는 것을 실컷 우겼다고 하는데, 사실 한일의정서 때도 일본한테 뇌물 쳐받은 인간이라 대한제국이 부강해지느니 어쩌느니 한 건 다 스스로 꾸며낸 말이고, 자기 부와 권력 가지려고 한 앞잡이짓이다.
일각에서는 군부대신 이근택의 경우 고종의 충복이나 다름없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고종의 밀명으로 친일파에 든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근택은 훨씬 전에 궁정 쿠데타를 기획한 적도 있다.# 사실 근왕파였던 것으로만 따지면 이완용도 아관파천 때 적극적으로 활동한 고종의 측근[5][6]이었다.
4.1.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사실 이들에게도 소수를 제외하면[7] 변명거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을사조약 전에 한일의정서와 1차 한일협약을 허용한 상황이 러일전쟁 승리 이후 일본이 진행한 을사조약을 막기 힘들게 했다. 게다가 저 을사오적이라는 이들 가운데 애초에 뚜렷하게 찬성을 표현한 이는 없다. 그 이완용조차도 "저는 황제 폐하께 이러저러하게 말씀을 올렸습니다만 찬성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했었고, 박제순은 어쨌든 절대 반대한다는 표현을 했으며, 그 외에도 대부분 "저는 조선의 대신인데 어찌 조선의 권리를 넘기는 일을 찬성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식으로 돌려서 어정쩡하게 표현했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그 말을 듣고는 반대하지 않으면 찬성이라는 괴상한 논리를 펼친 것인지 "음... 그럼 찬성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라는 이상한 해석을 통해 찬성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거짓 딜레마의 일종이다.이들이 만약 목숨을 걸고 똘똘 뭉쳐 결사반대했다면? 조선의 거의 모든 다른 친일파들마저 결사반대하는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그래도 딱히 변하는 건 없었을 것이다. 일본은 아마 이들을 모두 해고시키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죽여버리고[8][9] 그 자리에 다른 친일파들을 앉혀서라도 을사조약을 체결해냈을 것이다.
즉, 이미 사실상 대한제국 내각은 모든 요소를 일본에게 빼앗겨 실권을 잃은 상태였고, 비상시국에 적합한 군주가 아니었던 무르고 우유부단한 황제, 개혁의 기회를 잡지 못하게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던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의 삼박자의 잘못이 거듭된 끝에 저 을사오적이라는 거대한 인물들로 터진 것이다. 을사오적이 멀쩡한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저들만 탓하는 것 역시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정당화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한규설처럼 대한제국의 대신으로서 결사반대해서 해고되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했어야 옳았다. 국가에 충정을 바치라고 평소에 백성들이 굶어죽는 와중에도 나라의 녹을 주며 풍요롭게 살도록 해 준 것인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자기 보신을 위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아무것도 안 했으니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논점은 저들이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저들만의 잘못으로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5. 패러디
을사오적이라는 말은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큰 죄를 지은 배신자'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을사오적의 패러디는 주로 을사오적의 '을' 대신 다른 단어가 들어가거나 '을사'를 해당 연도의 육십갑자 또는 다른 단어로 바꾼 패러디가 많이 존재한다.[10]
비슷한 매국노 총칭으로 정미칠적이랑 경술국적 등이 있지만 당연히 을사오적이 인지도로는 압도적이다. 우선 다섯명이라는 인원이 생각보다 많이 나오는데다가 을사조약이 국권침탈 과정 도중 가장 자세히 배우는 사건들중 하나다. 또한 경술국치야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가 된 것은 역사에 아무런 관심 없던 사람도 알지만 경술국적이란 용어 자체가 쓰이는 빈도가 적으며 정미칠적또한 정미 7조약 자체가 군대해산을 제외하면 쉽게 넘기는 경우가 잦고 무엇보다 일곱명은 이미 부정적,긍정적 의미로도 쓰이는 대체어가 있다.
5.1. 정치
- NLL 게이트와 관련해서 민주통합당 이원욱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 74명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원세훈, 남재준 전현직 국정원장,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서상기 정보위원장, 권영세 주중대사를 '계사오적\'이라고 맹비난하고 국회 청문회 개최를 주장했다. 참고로 음식 부분의 통큰치킨 계사오적과는 관련이 없다.
-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서울과 부산 모든 구에서 대참패를 당한 이후 초선 의원들이 모여 반성을 표한다고 밝히자 일부 지지자들은 대표되는 초선 의원 5명을 싸잡아 초선오적, 신축오적, 초선족 등으로 칭하며 수천 개의 문자 폭탄을 보내는 등 폭언을 가하였다.
- 2023년 윤석열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을 피해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이 대납하겠다고 공식화하고, 2023년 한일정상회담에서도 지나치게 친일적인 모습을 보이자 윤석열 대통령, 박진 외교부 장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서민정 외교부 아태국장을 계묘오적이라고 명명하였다.
-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자, 이를 반대하는 이들이 그 도입을 제창한 정치인인 이해찬, 이재명, 박찬대, 진성준, 임광현을 금투세오적이라고 지칭했다.### 김영환 금융투자소득세 인버스 투자 발언 논란 때문에 을사오숏이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 2024년 12.3 계엄 사태 이후 국민의힘이 내란을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의 표결에 불참하면서 불참한 105인의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해 분노한 국민들이 갑진백적 또는 갑진105적이라는 멸칭을 붙였다.##[11]
5.2. 음식
- 통큰치킨 판매 중단에 관련해서 '계사오적\'이라는 패러디가 생겨났다. 해당 인물은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12], 나경원, 이종혁, 노회찬, 전현희[13]이다. "이들을 총선 때 뽑지 않겠다", "총선 때 뽑지 말자"면서 역적 취급을 하기도 했다.
5.3. 스포츠
-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이 한국에게 패배해서 조별리그 최하위 탈락을 하자 '독사오적'이라는 패러디도 생겨났다. 해당 인물은 요아힘 뢰프 감독, 메수트 외질[14], 토니 크로스, 마누엘 노이어[15], 마츠 후멜스 등 5명. 이들은 결국 역적 취급을 당하며, 영구까임권 획득.
- 이스타TV의 박종윤은 아스날의 선수 윌리안, 조 윌록, 니콜라 페페, 에디 은케티아를 두고 을사사적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이 네 선수들 중 한 명도 선발명단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 아스날이 아직까지는 성적이 좋다.
- 2022-2023 시즌 이후 첼시 FC가 성적이 부진한데 이어 구단 성골 유스인 메이슨 마운트가 고주급을 요구하며 재계약을 하지 않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이적을 요구하자 첼시 팬들은 마운트에게 마완용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데 이어 구단에 통수를 치고 떠난 티보 쿠르투아,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 먹튀+통수+언플 3박자를 가진 로멜루 루카쿠, 그리고 자말 무시알라 판매, 동생 캘럼 허드슨오도이의 이적 소동을 저지른 브래들리 허드슨오도이와 함께 첼사오적으로 불리고 있다.
-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가나에게 물귀신 작전으로 복수를 당한 우루과이의 폭력적인 4인방 에딘손 카바니와 디에고 고딘, 호세 히메네스, 페르난도 무슬레라와 가나의 불구대천 신의손 원수 루이스 수아레스를 우사오적이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루이스 수아레스가 특히 더 까이고 있다.
5.4. 게임
- SNK가 한창 경영난에 시달릴 당시 KOF의 운명을 걱정하던 사람들 중에서 이럴거면 차라리 SNK의 경영권을 캡콤에게 넘기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캡사오적이라 불렀다.
- 아프리카TV 스타크래프트 BJ 중 일부는 본래 컨텐츠인 스타 1은 안 하고 항상 리그 오브 레전드 혹은 그와 관련된 컨텐츠만 진행해서 롤사오적이라고 불린다.
- 아프리카TV 코인 게이트와 관련하여 이영호, 염보성, 김봉준, 김승현, 김택용은 스타판에서 메이저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이 연루되면서 사실상 명맥만이라도 이어오던 스타판을 완전히 끝장냈다는 의미로 코인오적 또는 코사오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5.5. 드라마
- 야인시대의 내가 고자라니와 관련된 패러디도 있다. 심영이 고자가 되고 전향서를 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을 심사오적 또는 고사오적, 고자오적이라고 부른다. 해당 인물은 김두한, 상하이 조, 의사양반[16], 형사양반, 문영철이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을 괴롭힌 박연진, 전재준, 이사라, 최혜정, 손명오, 이 5명을 가리켜 팬들은 동은오적이라 부른다.
5.6. 인터넷
- 환핀대전 드립에서도 환국의 지원군이던 공룡 중 다섯 마리가 핀란드 제국에 빌붙어 공룡들이 모두 멸망한 것을 가지고 '공룡오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공룡 다섯은 다름아닌 핀란드의 헤비메탈 밴드인 헤비사우르스를 가리킨다.
6. 관련 문서
[1] 아이러니하게도 권중현의 조상이 권율과 이순신이다. 부모가 각각 권율과 이순신의 9대손이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두 조상의 유전자가 만나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셈이다.[2] 해외 위키피다아에서도 정미칠적, 경술국적은 중국어, 일본어 위키피디아 정도밖에 문서가 없는 것과 정반대로 을사오적은 영어, 프랑스어, 말레이어, 인도네시아어를 넘어 우크라이나어, 노르웨이어 위키피디아에도 문서가 있을 정도다.[3]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이토는 이를 찬성으로 취급했다. 이토는 추궁에도 무조건 반대를 고수한 한규설을 제외하고는 모두 찬성으로 취급하였다.[4] 외무대신인 만큼 조약의 대표였다. 이 조약이 황제의 명의가 아닌 외무대신과 이토의 명의로 나온 것을 기억하자.[5] 이완용은 젊을 때 무려 고종의 아들 세자(훗날의 순종)를 직접 가르치던 선생이었을 정도니 측근이 아닐 수가 없다. 이완용은 당대 조선 공무원들 중 영어를 가장 잘한다고 소문났던 사람이고, 훗날에도 자기가 나라를 팔아 일본인이 되었음에도 미국인과는 통역 없이 이야기하고 오히려 일본인과는 일본어 통역을 썼다. 일본어를 몰라서, 젊을 때 영국에서 살았던 이토 히로부미와 영어로만 대화했다.[6] 원래 반일 친미 친러 성향, 즉 서양파였던 이완용이 돌변하여 고종과 러시아를 버리고 친일파가 된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20세기 초 러일전쟁 영향도 있지만, 그전에 이미 19세기 말 아관파천 때 노력에 비해 이후 고종에게 천대를 받은 원한이라는 설이 있다.[7] 이지용은 을사조약 이전에 한일의정서와 1차 한일협약의 앞잡이였기에 변명거리도 없는 골수 친일파 매국노이다. 단지 이때는 러일전쟁 종전 이전이라 고종이 러시아 승리를 기대하던 시기라 일본군대가 한반도와 만주에 있던 상황 속 리스크를 덜 지려고 고종이 반대를 제대로 못한 감이 있다. 물론 그건 고종이 반대를 잘 못했던 사정이 그런 거고, 이지용은 오히려 그 핑계로 밀어붙였으니 다르다. 좋건 나쁘건 친일파.[8] 당시 일본 제국은 일국의 왕비를 직접 칼로 베어죽이고 시체까지 태워버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후대의 일이지만 일본 제국은 군국주의에 반대했던 자국의 총리마저 총으로 죽이기도 한다. 하라 다카시, 이누카이 츠요시, 다카하시 고레키요, 사이토 마코토, 5.15 사건, 2.26 사건 문서를 참조.[9] 만약 이들이 을사조약을 결사반대했다면 당장 죽여서 반동을 일으키기보다는, 일단 모두 해임시키고 다른 친일파들을 앉혀서 을사조약을 체결한 다음, 합병을 완전히 끝낸 뒤에 처형했을 것이다.[10] 대표로 계모오적.[11] 해당 사건이 1년도 아닌 한달만 더 늦었다면 백만 붙인 을사백오적이 될 뻔했다. 해당 년도가 을사늑약 이후 119년 뒤고 달은 마지막 달이였으며, 그 이듬해인 2025년은 을사늑약이 일어난지 정확히 120년이며, 1905년 기준 60간지가 정확히 두 바퀴를 돌 때이다.[12] 정진석 정무수석이 트위터에 "튀김닭의 원가가 6200원인 점을 감안하면 롯데마트가 마리당 1200원 손해보고 판매하는 건데 대기업인 롯데마트가 매일 600만원씩 손해보면서 닭 5000마리 팔려고 영세업자 3만여 명의 원성을 사는 걸까"라고 남겼다.[13] 이들은 정진석이 통큰치킨 판매 중단 관련해서 트위터에 올린 글에 동의를 표해가지고 역적 취급을 당했다.[14] 당시 터키 대통령과 찍은 사진으로 인해 아예 역적 취급을 당했다.[15] 주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과 골키퍼가 골문을 비우고 나와서 손흥민에게 빈집털이를 허용 한 것이 문제가 되어서 역적 취급을 당했다.[16] 심영이 전화를 달라니까 중환자실이라서 전화는 없으니 푹 쉬라고만 해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