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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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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제4대 법부대신
이범진
李範晋 | Lee Bum-jin
파일:이범진.jpg
출생 1852년[1] 9월 3일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사망 1911년 1월 13일 (향년 58세)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본관 전주 이씨[2]
재임기간 제2대 농상공부대신
1895년 8월 8일 ~ 1896년 2월 29일
제4대 법부대신
1896년 2월 29일 ~ 1897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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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76e><colcolor=#ffde09> 부모 아버지 이경하[3]
자녀 아들 이기종, 이위종
친인척 이복서제 이범윤
종교 유교 (성리학)
약력 미국 주재 조선 공사
미국 주재 대한제국 공사
프랑스 주재 대한제국 공사
오스트리아 주재 대한제국 공사
러시아 주재 대한제국 공사
농상·공무대신
서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1. 개요2. 생애
2.1. 생애 초반2.2. 조정 대신 시절2.3. 외교관 활동2.4. 독립운동에 투신하다2.5. 사망2.6. 사후
3. 대중 매체에서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120159_112532_950.jpg

구한 말 시기의 친러파 외교관이자 정치가. 대한 제국 시기에 활약하다가 일제가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 하자 저항하다가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자결하였다.

2. 생애

2.1. 생애 초반

1852년 9월 3일 서울에서 흥선대원군의 측근 중 한명인 이경하의 아들로 태어났다.[4] 이범진은 26세 때부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매천야록에서는 부사로 부임이 되었는데 백성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기생들을 발가벗긴 다음에 희롱했으며, 소란을 피우면 죽이겠다는 막장 관리로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매천야록에 적힌 기록은 신빙성이 없으며, 실제로 이범진은 부사로 재직한 적이 없다. 즉, 매천야록의 저자 황현이 수집한 왜곡된 정보 중에서 하나다.

2.2. 조정 대신 시절

이범진은 26세 때 1878년 병과에 급제하며 관리가 되었다. 그는 공조 참판, 호조 참판, 이조 참판, 궁내부 대신, 법부 대신, 고등 재판소 재판장 등의 관직을 거쳤다. 1895년 명성황후 등과 친러파가 되고 을미사변 이후 춘생문 사건이재순, 이완용 등과 함께 일으키지만 실패하자 중국으로 망명한다.

1896년 귀국해 아관파천을 일으켰다. 아관파천으로 친일 내각이 붕괴되고 중심이었던 김홍집, 어윤중, 정병하는 돌에 맞아 죽고, 유길준, 조희연, 장박, 우범선은 일본으로 도주한다. 하지만 우범선 역시 일본에서 제거되었다. 김윤식은 은신하다가 체포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김종한은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친일 내각이 붕괴하고 새로운 내각이 등장했다. 그는 법부 대신이 되어 당시 법부 대신 장석주가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을미사변을 철저히 수사했고 이 사건의 배후에 일본이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일본 측 인물을 수사하기는 어려웠고 오히려 일본의 압박을 받아 이범진은 정치적으로 불리해졌다. 그리고 이완용과의 경쟁에서 이완용의 승리로 끝나고 그는 완전히 정치권에서 물러나게 된다.

2.3. 외교관 활동

파일:李範晋.jpg

1896년 주미 공사가 되어 7월 대한 제국에서 출발해 9월에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러시아 공사로 전임되고 프랑스 • 오스트리아 공사를 겸임한다. 1900년 미국을 떠나 아들인 이기종, 이위종과 5월 파리에 도착했다. 그는 프랑스의 대통령을 만나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러시아에 도착해 러시아 황제를 알현했다. 그는 황제에게 신임장을 전달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장례식에도 참석했고 1901년에 프랑스 • 오스트리아 공사에서 해임되었다.[5] 잠시 독일 공사가 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 공사 시절 대한 제국의 국권 수호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일제는 한일 의정서 체결 이후 대한 제국 정부에 이범진을 소환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소환에 불응했고 황제의 전보가 왔다. 그 내용은 황제는 이범진이 "러시아에 계속 머무는 것을 원하고 소환한 것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 후 이범진이 귀국을 거부하자 일제가 공사직을 해임시켰지만 그는 비공식적이지만 공사직을 계속 수행했고 러시아 황제는 대한 제국과 러시아 양국간의 친선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한국의 국권 회복을 바란다라고 했다.

그 뒤 러일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이범진은 일제와 러시아의 강화 조약 체결이 대한 제국 국민을 절망으로 빠트렸고 빨리 서울에 러시아 공사를 파견해주기를 바란다라는 내용의 황제의 서신을 러시아 외부 대신에게 전달했다. 그 후 무책임한 대신들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황제는 러시아 황제에게 국권 회복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2.4.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 고종이 헤이그에 이준이상설을 보내 열강을 상대로 구국 외교를 하려 하자 그는 헤이그에 특사 파견을 준비해왔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이위종을 이준, 이상설과 함께 가서 도움을 주게 하였다. 하지만 헤이그 특사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이준은 헤이그에서 객사하게 된다. 직후 이범윤, 유인석, 홍범도, 이상설, 최재형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연해주 독립 운동을 주도했고 이때 그는 연해주의 한인 신문을 발간했다. 또 연해주의 의병에게도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이 이루어지며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일본에 합병되게 되었다.

2.5. 사망

서장님! 지금 한국에서의 상황들, 국권 침탈은 저에게 목숨을 보존할 어떠한 희망과 가능성도 앗아갔습니다. 적에게 복수할 방법이 없기에 저는 진정 자결을 결심합니다.
- 쿠즈네초프 경찰서장에게 남긴 이범진의 유서 중 일부
한국, 서울, 덕수궁 황제 폐하께.

우리나라 대한제국은 망했습니다. 폐하는 모든 권력을 잃었습니다. 저는 적을 토벌할 수도, 복수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자결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오늘 목숨을 끊으렵니다.
- 고종 황제에게 보낸 이범진의 유서 중 일부
이범진은 유산을 모두 독립 운동을 위해 사용했고 결국 목을 멘 상황에서 총을 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순국했다. 향년 59세였다.

2.6. 사후

1911년 2월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우스펜스코예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나 1958년 소련의 공동묘지 재구획 공사로 인해 멸실되었다.

1912년 3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한민학교의 큰 양옥 교사를 신축할 때 4,698루블이 들었는데, 이 중 1,000루블이 그가 기증한 것이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3. 대중 매체에서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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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원속보 무안대군파 권11 26쪽에는 1853년생으로 등재되어 있다.[2] 광평대군파 17대손, 시조 42세손 범(範)○ 항렬.[3] 이름난 무관으로 흥선군의 신임을 받았고 군사 경찰권을 장악한 실력자였다.[4] 단, 이경하의 적자가 아니라 이경하와 기생 출신 첩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 출신이다.[5] 러시아 공사직은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