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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5:35:28

청사의 소재지가 불일치하는 행정구역

1. 개요2. 현재
2.1. 기초자치단체2.2. 행정복지센터2.3. 경찰서2.4. 소방2.5. 세무서2.6. 군사2.7. 기타
3. 과거
3.1. 광역자치단체
3.1.1. 대한민국3.1.2. 북한
3.2. 기초자치단체3.3. 경찰서3.4. 세무서3.5. 경찰청3.6. 소방서3.7. 기타3.8. 북한

1. 개요

도청이나 시청을 비롯한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청사가 자신이 관할하는 행정구역이 아닌 다른 행정구역에 소재한 지역. 청사의 위치와 관계없이 청사의 행정과 운영은 소재지의 행정구역이 아닌 자신이 관할하는 행정구역의 조례와 규칙을 따른다. 옹진군청이 미추홀구에 소재한 점을 이유로 옹진군이 미추홀구가 마련한 조례와 규칙을 따를 수는 없는 일이다. 외국에 위치한 대한민국 대사관의 영내는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과거 행정구역의 설치와 폐지가 빈번하던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으나 도농복합시의 등장과 자신의 관할구역으로 청사를 이전하는 과정을 거치며 많이 사라졌다.

2. 현재

2.1. 기초자치단체

2.2. 행정복지센터

2.3. 경찰서

2.4. 소방

2.5. 세무서

2.6. 군사

군사 시설은 그 특성상 관할구역 바깥에 있는 경우가 흔하다. 주로 도시 지역에서 그런 편.

2.7. 기타

3. 과거

3.1. 광역자치단체

3.1.1. 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원래는 청사의 소재지가 일치하였으나, 광역시 승격 등으로 청사의 소재지가 불일치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 - 부산광역시는 본래 경상남도 부산시였기 때문에 경상남도청이 경상남도 부산시에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으나 1963년에 경상남도 부산시가 (정부 직할)[9] 부산시로 승격함으로써 경남과 남남이 되어 남의 지자체에 청사가 자리 잡은 꼴이 되어버린 것.)

3.1.2. 북한

3.2. 기초자치단체

3.3. 경찰서

3.4. 세무서

3.5. 경찰청

3.6. 소방서

3.7. 기타


명목상 군청이 휴전선 이남인 김화군장단군도 명목상 청사의 소재지가 불일치하는 행정구역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사실상 북측의 행정 중심지인 금성면과 소남면 홍화리를 각각 군청 소재지로 볼 수도 있다.

3.8. 북한



[1] 연기면 연기리로 이전 예정[2] 그때는 경찰 관할구역과 구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서경찰서가 송파대로 서쪽 (현재의 송파구 을)도 관할했다.[3] 본래 창동은 도봉동과 함께 노원구 분구 당시에는 노원구에 속했으나, 1년만에 도봉구로 환원되었다.[4] 강남역 사거리에 있다. 강남대로를 건너가면 바로 서초구.[5] 과거에도 금정구예비군훈련장은 금정구가 아닌 양산웅상과 부산기장의 경계지점에 있었다.[6] 남구예비군훈련장은 본래 남구 옥동에 위치해 있었으나 2008년경에 울주군 청량읍으로 옮겨갔는데 해당 대대가 2022년 12월 1일부로 제19해안감시기동대대로 전환되면서 남구지역 예비군훈련 임무는 중구예비군훈련장에 통합되었다.[7] 아람단 위탁 운영. 현재 폐쇄.[8] 신규 입주자 모집 중단 및 기존 입주자 퇴거.[9] 경상남도에서 분리되어 내무부 직할로 들어갔기 때문에 당시에는 '부산직할시'로 불리지 않고 경상남도를 뺀 채 그냥 '부산시'로만 불렸다. 고로 시장 직함명도 '부산직할시장'이 아니라 '부산시장'이었으며 1981년에야 공식적으로 '부산직할시'가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과도기를 표현하고자 근래에는 '부산시(장)' 앞에 '정부 직할'을 괄호 병기한다. 괄호는 생략 가능하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그냥 '부산시'라고만 표기하면 경상남도 산하 시절인지 정부 직할기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을 살펴보면 '부산직할시'라는 명칭도 비공식적으로는 통용되긴 했다.[10] 1910년 한성부 폐지 후 경성부가 경기도에 편입, 1947년에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됨으로써 경기도에서 재독립.[11] 참고로 경기감영은 조선왕조 내내 한성부 내에 있었다가, 23부제 시행으로 경기감영이 폐지되고 1896년 13도제가 부활하면서 도청이 1910년까지 수원에 있었던 적이 있다. 따라서 경기도는 조선시대 대부분 기간 동안 청사의 소재지가 불일치하는 행정구역이었다.[12] 1963년에 경상남도 산하에서 정부 직할로 바뀌었다. 광역시 개칭은 1995년.[13] 1981년에 직할시 승격.[14] 1986년에 직할시 승격.[15] 1989년에 직할시 승격.[16] 1946년에 특별시 승격하다가 1952년 직할시로 개칭.[17]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실시 전인 시읍면자치제 시절이므로 1961년까지 명목상 지자체가 아니지만 편의상 기재한다.[18] 철원군과 김화군청을 합쳐 신철원에 군청을 두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1960년 이전에 김화군으로 군청을 옮겼다고 한다.[19] 1914년부터 1940년까지는 부천군청 소재지가 부천군 문학면 관교리 (구 인천도호부 구읍면 관청리. 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당시 부천군청 건물은 인천도호부관아. 1940년에 해당 지역이 인천부로 재편입. 1940년에 인천 율목동(개항장 지역)으로 부천군청 이전.[20] 부천군 폐지 후에도 부천시청으로 쓰다가 이후 옛 원미구청인 원미어울마당 자리로 이전하였다. 위치는 부천역 남쪽 대신증권 건물 자리에 있었다.[21] 영등포의 경성부 편입[22] 현재 이 자리에는 롯데마트 오산점이 들어섰다.[23] 미금역과는 관계없다.[24] 현재 충청남도경제진흥원이 들어서 있다.[25] 건물은 남아있다. 현재 천안시 서북구청으로 쓰고 있다.[26] 구청이 중구에 편입되어 다음해 이전했는데, 1995년에 광진구가 생겨서 구청을 또 이전했다. 현재의 광진구청. 다만 지방자치제 부활 이전이라 지자체는 아니었지만 편의로 기재한다.[27] 대덕군청을 대덕구청사로 활용하고 동구 일부를 신설하는 대덕구에 편입시킬 때 홍도동에 있던 대덕군청 위치를 오정동으로 착각(...)해 홍도동을 동구에 배정했다가, 구청 `국' 신설위해 행정구역 억지 조정(1988년 12월 25일 한겨례 기사) 문제가 되자 홍도동 일부만 대덕구 오정동에 편입하는 것으로 해결하였다.[28] 시 통합 이후 익산시 제2청사/함열출장소로 바뀌었다. 제2청사/함열출장소가 폐지된 후 비어 있다가 1998년부터 원광보건대학교 함열캠퍼스가 들어섰으며, 일부 건물은 2017년부터 익산시 북부청사로 신설 이전되었다.[29] 기존 군청은 1969년 신설된 신안군의 군청으로 2011년까지 있었고, 현재는 그 자리에 참사랑요양병원이 있다.[30] 이름과는 달리, 구 여천시가 아니었음에 유의. 참고로 구 여천시는 구 여천군의 삼일읍과 쌍봉면이 분리 승격된 것이다.[31] 통합 후 기존 군청은 순천제일대학교 캠퍼스로 사용되다가, 2003년에 모든 학과를 본교로 옮겨서 현재는 폐건물로 방치되고 있다.[32] 창원군이란 이름과는 달리 창원시가 아닌 마산시에 있었다. 자세한 사연은 창원시/역사 문서 참고.[33] 청사 건물은 지금도 남아있다. 1943년 통영군청으로 세워진 건물이며, 1995년 시/군 통합 이후에는 시청 별관으로 썼다. 2002년 이후에는 윤이상 페스티벌하우스로 쓰다가, 현재는 등록문화재 149호이자, 통영시립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34] 현, 제주특별자치도 2청사[35] 현, 서귀포시 1청사[36] 청사 이전 후에는 개발 사업을 추진하다 표류되어 한동안 폐건물 상태로 방치되다가 마침내 철거되어 현재는 3개의 빌딩이 들어섰다.[37] 청사 이전 후, 의회 건물은 철거되었고, 현재는 참사랑요양병원이 들어서 있다. 구 무안군청 서고로 서고 유적이 보존되고 있다.[38] 완주군청 이전 이후 철거되고 아파트가 들어섰다.[39] 본래 이곳은 결혼식장이었는데, 독특한 외관이 그 흔적으로 남아있다.[40] 다만 동대문세무서 별관에 세무서 일부 부서가 남아있는 시절부터 국세청우편물자동화센터가 입주했었다.[41] 2012년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도 2019년 세종특별자치시경찰청이 설치되기 전까지는 역시 관할구역에 속했다.[42] '일반구'가 부천에서 폐지되었기 때문이다.[43] 2019년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44] 덕원군은 1942년 원산부와 문천군에 분할 편입되어 폐지되었다. 광복 전에 이미 폐지되었으므로 현행 미수복지역(이북 5도) 행정구역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본 문서의 사례에 일단 해당되므로 함께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