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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인공 일가
2.1. 주인공의 사업체 관련 인물
3. 조선
3.1. 왕실3.2. 노론
3.2.1. 춘당
3.3. 소론3.4. 남인3.5. 무관3.6. 기타
4. 일본5. 중국
5.1. 청5.2. 조정5.3. 후명
6. 준가르7. 네덜란드8. 러시아9. 영국10. 합스부르크 제국11. 프로이센

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소설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2. 주인공 일가

2.1. 주인공의 사업체 관련 인물

3. 조선

3.1. 왕실

3.2. 노론

3.2.1. 춘당

春黨. 젊은이들의 당, 혹은 김춘식의 당. 김운행의 장동 김씨 인맥과 김운행이 골라 뽑은 강남대성 수강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운행 본인이 노론인데다 주요 인물들도 노론계가 많은 지라 일단은 노론으로 분류되나, 소론, 남인 심지어 무관까지 포진된 빅 텐트 진영으로 작중 공인 어떠한 사상적 공감대도 없이 모인 잡탕이다. 영조도 탕평이라는 대의에 따라주는지라 이쪽에 딱히 트집은 잡지 않느라 이들의 성장을 방관했고, 이훤의 즉위 이후에는 사실상의 여당으로 기능한다.

3.3. 소론

작중 노론에게 밀리고는 있지만 조정을 양분하는 당. 주인공 김운행은 노론인지라 그닥 사이가 좋지 못하다.

3.4. 남인

작중 거의 사멸한 상태로 제대로 관로에 올라있는 인물은 체재공 뿐이다. 안정복, 이익 등은 시골에서 살고 있다. 다만 영조의 탕평책 지침 탓에 조정에서 언제든 약간의 발언권은 확보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한다. 안정복이나 이익도 적당히 괜찮은 성적만 내면 과거에 붙었을 것이라고. 김운행의 춘당 결성에 큰 영향을 준 세력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건 아니지만, 이 시기 붕당은 이미 학풍과는 상관없이 피를 피로 씻는 원한으로 복잡하게 엮인 터라, 김운행이 남인과 타협할 수 있는 신진 정치세력의 포지션을 잡는 걸 목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3.5. 무관

3.6. 기타

4. 일본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과 마찬가지로 내부 정쟁 외에는 150년에 달하는 장기간 대규모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의 일본. 덕분에 군사적 사정도 과거의 조선과 다르지 않아서, 몽골군 수천에게 막부군 수만명이 격파당하거나, 소집령을 못 들은 척 하는 등 병림픽을 벌이다가 규슈의 태반이 초토화당하고 영국군을 끌어들이게 된다.

영국군의 지원과 청의 혼란으로 몽골군은 격퇴하나, 이후엔 비어버린 규슈의 이권을 두고 다누마 일파와 다른 세력간의 경쟁이 붙는다. 마침 북벌을 시작한 조선은 다누마에게 이를 빌미로 식량을 수입한다.

5. 중국

5.1.

지금 청이 전쟁 중이라고 뒷통수를 치자는 소리는 말도 안 된다. 싸우다 지친 맹수를 잡는다는 비유는 그럴듯하지만, 그것도 맹수 나름이다. 지금의 청은 상처 입고 절뚝거리는 표범이 아니다. 물 먹다가 코를 살짝 물리는 바람에 악어를 짓밟아 핏물로 만들고 있는 아프리카 코끼리에 가깝다.
김운행(3화)
중원을 차지한 대제국. 작중 시점에서 최전성기[40]를 달리고 있는 대제국으로, 주인공 김운행은 아예 이쪽에는 최대한 연관되고 싶지 않아한다. 심지어 현 황제가 주변의 적성국을 죄다 학살한 건륭제인만큼 더더욱. 김운행이 청나라에 가기 전까지는 간접적인 영향 정도밖에 안 받았지만,[41] 나비효과로 인해 받게 된 영향력은 일본이나 유럽보다 더하다.

둘러싼 모든 세력들 중 조선을 제외하고, 러시아, 일본, 준가르, 위구르, 몽골(일부)와 수년간의 전쟁 끝에 우세를 점하고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고, 일본 원정도 초기 목적이던 사츠마 토벌은 성공했으며, 네덜란드와 영국의 연이은 해상전도 판정승이나마 거두는 어마무시한 위업을 달성하고 있다.[42] 그러나 준가르-티베트는 막대한 사상자를 본 끝에 하나로 뭉쳐 반청 세력으로 다져졌고, 영국은 청에 수십년 빨리 아편을 팔아치우기 시작했으며, 남중국의 한족 상인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4만에 달하는 유럽 연합군, 10만에 달하는 러시아-준가르 연합, 마찬가지로 수만에 달하는 강남 반란군과 백련교 반란으로 소모를 견디지 못하고 만주로 복귀를 천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 모든 사태를 조장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조선과 마지막 일전을 벌인다.

5.2. 조정

5.3. 후명

강남에서 일어난 제2 대명제국. 장강 이남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으나, 운남과 대만 등은 차지하지 못했다. 강남에서 반란을 준비하던 천지회+기존 지식인 계층+유럽 군이 연합해 건국했다. 사실 유럽 연합군이 강남 신사계층을 포섭할 계획으로 만든 누더기 국가라서 그 어떤 명분적 정당성도 없었다.[47] 그러나 조선이 재조지은을 외치며 천주를 공격하고 후명 1대 황제 주피터를 탈환하면서 순식간에 명분에 불이 붙었으며, 양광총독이자 청나라 측 주요 지휘관이던 이시요가 청나라의 책임추궁을 피하기 위해 후명에 붙으면서 어떻게든 그럴 듯 한 국가로 만들어진다.

6. 준가르

7. 네덜란드

네덜란드에 대한 설명은 복잡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면 충분하다.
영국의 선배.
에스파냐에서 싹을 틔운 검은색 악의는 네덜란드가 기른 다음 영국이 꽃피웠다.
황금의 17세기[Dutch Golden Age]는 지났다 하여도 '동인도 제도' 만 따진다면 아직 네덜란드는 전성기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벌일 수많은 만행은 오히려 서문조차 끝나지 않았다.
미래 프랑스 혁명으로 쓴맛을 볼 팔자라는 사실은 네덜란드의 기를 꺾지 못한다. 네덜란드인들은 나폴레옹이 몰락하자마자 부활해 악행을 재개했다.
조직적 학살과 폭력, 한때 네덜란드 국부의 3할을 감당한 계획적 농업 수탈, 독립 협상으로 위장하여 민족 대표를 암살하는 비열한 행태 등등은 끝이 없었다.
벨기에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콩고인의 손목을 썰어댄 게 아니다. 둘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 나라였다. 김운행이 항상 주장하듯 근본은 속일 수 없다.

그 역사의 선봉이 바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다.

인적 자원부터가 화려하다. 본국의 이사진이나 선장, 상관장 정도의 고위 간부를 제외한다면 구성원 대부분이 세상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막장 인생들의 집합이다.

멀쩡한 인간이 왜 고향과 가족 버리고 외계 행성 같은 바다 너머로 떠나겠는가. 부랑자, 범죄자, 빚쟁이, 노름꾼, 폭력배는 VOC가 세계에 자랑하는 인재들이었다.

그러므로 남의 불행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능력 하나는 아주 탁월했다.
103화
포르투갈과 함께 일찍부터 동아시아에 진출하고 기반을 닦은 유럽계 해상세력답게, 작중에서도 처음으로 본격 등장한 유럽인들이다.[51] 원래는 유럽인 전체를 일컫는 말인 홍모적(紅毛賊)[52]이 좁게는 네덜란드인을 일컬을 정도로[53] 유럽인의 대표 이미지를 선점 중이며, 청나라에 아편 유통시킨 범인도 아직은 영국인들이 아니라 네덜란드인들이다.

그러나 실상은 조선에 가장 많이 호구잡힌 유럽국가로, 빨대 꽂으려다 역으로 VOC 함선들을 나포당하고 선원들이 피랍된다거나, 조선 때문에 데지마 상관이 폐쇄되며 대일 무역이 붕괴된다거나, 지나가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모조리 해방별대(조선군)에 해적질을 당한다거나, 해방별대의 대중국/대일본 해적질에 명의도용을 당하는 등 정말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당한다(...). 게다가 7년전쟁 때문에 본토의 국운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라 조선에 보복도 못하고 있다. 반면 조선은 나포한 네덜란드 함선들을 복제하고 피랍 선원들을 화이정신주입봉(華夷精神注入棒)[54]으로 쥐어짜서 열심히 테크를 올리는 중이다.

8. 러시아

청과 국경을 접한 유일한 유럽국가로,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네르친스크 조약-캬흐타 조약으로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참고로 청은 러시아 차르를 몽골 놈, 러시아는 청 황제를 타타르 놈으로 취급 중이다(...). 동족혐오? 준가르를 비롯한 중앙 아시아 유목민들을 지원하며 청나라 북쪽 국경을 오랜시간 전쟁터로 만들었으나, 5년이 넘는 전쟁 끝에 실패한다.

9. 영국

영길리국은 조상 대대로 해적도배인데, 홍모적보다 더 사악한 무리들이니 관상만 봐도 알 수 있소.
김운행(175화)
작가 특성상 틈만 나면 블랙코미디로 까인다. 그러나 아직은 동아시아에 별다른 기반이 없는 애기 마족(...)이며, 본토 국운상 슬슬 쇠퇴하는 VOC의 동아시아 무역을 잠식하려고 지켜보는 중이다.

7년 전쟁의 나비효과로 생긴 여유 대부분을 중국 원정에 쏟아부었다.

10. 합스부르크 제국

11. 프로이센

중부유럽의 떠오르는 유망주. 원 역사에서는 합스부르크 제국-프랑스 왕국-러시아 제국의 3부인 동맹과 7년 전쟁 끝에 승리하는 것으로 이후의 초강대국 독일 제국까지 이어지지만 김운행의 존재라는 나비 효과의 결과로 패망한다.


[1] 작중 김운행의 본성을 처음으로 간파한 인물이 홍세화다. 정작 김운행과 혼사를 꾀하려던 홍대용은 그저 김운행을 전도유망한 인재로만 여겼다.[2] 인맥을 총동원해서 자기가 운행을 먼 발치에서 봤다가 반해서 상사병에 걸렸다고 소문을 냈다. 조선시대의 성관념상 김운행이 사대부 집안 규수를 꼬셨으니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고,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나머지 결국 김운행의 아버지조차 어딜 감히 가장을 젖혀 두고 아들놈이 혼자 나서서 색시감을 찾냐고 노발대발할 정도로 기정사실이 되었다.[3] 남편이 정승이 되면 아내인 자신도 왕실 여인을 제외하고 여성으로서 가장 높은 정경부인이 되기 때문.[4] 김운행의 평가. 건륭제는 예술을 좋아하는 황제였는데, 서예나 서화 솜씨는 괜찮았지만 문재는 영 아니올시다인 것으로 악명높았다.[5] 주변인들의 평가. 김운행은 일단 장원급제를 하긴 했는데, 각종 부정행위와 팀플레이로 먹은 장원인데다 관직생활 내내 삼국지연의를 인용하는 처참한 학문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6] 내레이션의 평가. 적국 군주에 대한 호감만으로 거의 패전에 가까운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해 다 이긴 전쟁을 말아먹은 것으로 악명높으며, 그 외에도 초등학생 수준의 지적 수준을 가졌다고 한다.[7] 북벌 계획을 현실화시켰다는 점에서도 이미 그렇지만, 그 계획을 지휘하며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심하게 터무니없어서 별 인연이 없었던 군부에서부터 열렬히 숭배하는 중이고 조정 문신들도 학식을 걸고넘어지는 듯 하다가도 김운행이 작정하고 짠 계획은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고 덮어놓고 믿는 상황이다.[8] 본인의 표현으로는 대포폰(...)[9] 물론 이 내기도박을 사주하는 것 또한 김운행이다. 아예 돈 필요할 때마다 타짜 원인손을 불러내서 울궈먹는 수준.[10] 실제 강남대성과 달리 성인을 기른다고 '大聖'이다. 실제 강남대성학원은 송파구가 아니라 강남구서초구에 있다.[11] 사실은 기초적인 신체단련이다.[12] 무려 그 박문수가 대놓고 면박을 주는 어조였다.[13] 이 와중에 김운행은 이것도 안 믿어서 영조가 철퇴질을 하려는 줄 알고 몸수색을 했다.[14] 어차피 한성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버틴다는 게 의미가 없을 만큼 한성이 발전했다.[15] 자세히 곱씹어보면, 임금이자 조부에게 천륜도 모르냐고 면전에서 비판한 셈이다.[16] 대비가 몸져눕자 주위에서 용하다는 춘식갑을 바치려 했는데 영조가 허황된 물건이라고 막았다.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 없는 전기충격기에 불과하지만 사기를 친 김춘식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인지라, 대비 입장에선 아주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과 다름 없었다.[17] 엄밀하게 말하자면 왕좌의 게임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영조는 30년동안 탕평을 구실로 철권을 휘두르며 군림한 덕분에 자기 사람이라 할 인물이 없었고, 반대로 사도세자는 소수지만 생사를 같이 할 홍봉한과 김춘식 패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균형이 크게 깨졌다.[18] 2배속 귀양[19] 3배속 귀양[20] 14촌으로 명종 때부터 갈라져 내려온다.[21] 실제 조선역사상 최연소 과거 급제는 고종시기에 급제한 이건창으로 만 14세의 나이로 합격했다. 박지원은 그보다 백여 년은 더 전 사람이니 이 소설 기준으로는 최연소가 맞을 것이다.[22] 사절의 신분인데다 뼛속까지 양반이라 박지원 본인은 내가 가져가고 싶으니까 가져가는건데 문제 있음?이란 식이지 갈취한다는 의식은 전혀 없다(...)[23] 그림 작가가 자그마치 변상벽, 정선이라는 화려한 진용에다 풀컬러다![24] 적전(藉田)이라고 하는데, 사실 기우제 지내며 퍼포먼스 하는 용도 빼고는 평소엔 신경작법 테스트용으로 자주 쓰여서 홍대용이 관습을 넘어서는 엄청난 기행을 한 것까진 아니다. 자기 관할도 아닌걸 매제 이름 팔아서 한게 문제지...[25] 그나마 홍대용이 나은 게 김운행이 기함할 정도로 홍삼을 뿌려서 값을 치렀다.[26] "실학자 주제에 실질이 없다.""쉬운 일만(안빈낙도) 하면서 폼 잡는다." 등으로 안정복을 저격했다.[27] 이 때 주인공이 한 방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는 소위 사이다라 불리는 통쾌함을 선사한다[28] 하지만 이것도 하루라도 더 살아서 김운행을 견제하려는 필사적인 의도이다. 이미 원 역사의 수명보다 훨씬 더 살고 있지만 이를 알리 없는 박문수는 오로지 김운행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상태이다.[29] 원 역사에서는 임오화변 때 세자 보호를 천명하다가 사사된다.[30] 이를 김운행은 초시공요새라 드립을 치는데, 훈련도감에 대한 서술과 투톱을 이루는 매우 찰진 명문이다.[31] 병기나 갑옷 깃발 등 군수품을 제조하는 곳[32] 긴빠이를 못하게 된 것도 있지만, 원래 역사를 아는 김운행이 조선 군대가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는 상황을 꺼렸다. 영조는 총뿌리를 외적이 아닌 사도세자에게 돌릴 인간이고, 조신들은 효종뽕이 도질 텐데 이 시기 황제는 건륭제 즉 청나라의 최전성기였다.[33] 평시선덕관은 상품작물과 갖가지 특산품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만큼 이런 구분 문제로 인한 싸움이 거셌다. 호박이 과일인가 야채인가, 수달은 생선인가 짐승인가 등.[34] 마침 어영청과 분쟁이 일어나 장용영이 왕의 친위대에서 밀려나며 장용영은 영조에 대한 불만을 품은 차였다.[35] 초도왕의 시체를 쏜 귀족들의 화살이 오기를 죽이려다 잘못 맞은 것임은 누구나 알겠지만 처벌할 수 밖에 없던 것처럼 왕족들을 겁박한 죄목은 의도가 좋더라도 용서할 수 없기에 구선행은 승전해도 중형을 피할 수 없었다.[36] 원래 집에서 키우던 개인 '초복이'와, 북경에서 정교회 사제한테서 강탈해와 각각 '중복', '말복'이라고 이름지어준 맹견 두 마리. 중복이와 말복이는 말이 좋아 맹견이지 발바닥이 사람 손바닥만 하다는 묘사나 원래 역사의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이 "당나귀만한 아라사 개"라고 서술한 부분을 인용한 걸 보면 오브차카 같은 초대형견인 듯.[37] 수빈 박씨의 조부 박사석의 서조카. 촌수가 멀긴 하나 박지원과 동 항렬.[38] 김운행은 이걸 '양(陽)의 현현'이라고 부르면서, 이걸 만들면서 음양의 이치를 깨달아야 겐나이가 가지고 있던 수동발전기를 고치는 원리를 배울 수 있다고 사기쳐서 근로의욕을 불어넣는다.[39] 사쓰마 번시마즈 가문과 함께 존재 자체가 소멸된 수준에 조슈 번 또한 일본군의 병참을 담당하느라 재정과 내정이 파탄나버렸다.[40] 흔히 청의 최전성기를 강희제-옹정제 시대로 칭하는데, 명군 강희제와 옹정제 시기에 축적된 잠재력을 본격적으로 폭발시킨 것이 바로 건륭제 시기이다. 이후로는 건륭제 말기부터 쌓인 적폐들이 곪아 터지면서 서서히 쇠퇴하게 된다.[41] 조선의 춘화가 일본을 거쳐서 청나라에 퍼진다던가.[42] 물론 이 대부분의 승전은 피로스의 승리라고도 하기 애매한 상처뿐인 영광이다.[43] 준가르 문서에서도 나오지만, 준가르도 악랄한 유목 제국의 성격을 유지했기 때문에 주변의 원한을 많이 사기도 했고, 규모는 유목민답게 수십만명 밖에 되지 않아 멸절이 쉬운 편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살아남아 다른 종족에 동화되기도 했고 같은 오이라트의 후예이자 친족 종족인 칼미크인들도 남아 있어 히틀러의 악랄함에 비하기엔 무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청나라가 명군이고 암군이고 할 거 없이 적에 대해서 가차없이 학살을 일삼아서 코락스의 이런 과장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44] 실제 역사의 건륭제는 거의 비슷한 표현인 중외공주(中外共主, 만국의 군주), 천하대군(天下大君, 세계의 제왕)라는 중2병 돋는 표현을 실제로 쓰긴 썼다.[45] 실제로 건륭제는 만주 문화를 진흥시키기 위해 많은 애를 썼던 사람인데, 이 가운데 만주어 진흥책도 있었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두었으며 조선 사대부들이 어느 정도 청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나 시험해 볼 작정으로 조선 사신들이 올 때마다 만주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하지만 당대 조선 사대부들은 반청 사상 때문에 공공연히 만주어를 할 줄 알면 손가락질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고, 역관들조차 만주어 실력이 형편 없었기에 건륭제의 이런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고.[46] 홍염이 겨우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김운행은 이미 조선의 권신이 되어 있었다. 이훤은 세자시절부터 청나라의 야설선진문물 수용에 적극적이었는데, 이를 모르는 건륭제 입장에선 홍염이 제 역할을 잘 해 조선이 친청으로 돌아선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홍염은 현상황을 최대한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 겸사겸사 밀수업으로 계속 돈을 쓸어담으려면 김운행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47] 오히려 유럽군의 대대적 약탈 때문에 부청멸양이라는 구호가 떠돌았을 정도.[48] 본래는 상황 파악이 먼저였겠지만 김운행이 세치 혀를 놀려 공격하게 만들었다.[49] 무려 어지에게 선공을 당하고도 반격할 정도의 실력[50] 규슈에 막 파견된 몽골팔기가 엄청난 학살극을 벌이고 있어서 서류상 실적은 이들을 초월했다.[51] 김운행 역시도 다른 서양말 능력은 숨기고 있어도 네덜란드어 실력은 숨기지 않고 있다. 박연의 자손을 엮어서 어떻게든 개연성을 만들 수 있기 때문.[52] 빨간머리도적. 홍모인(紅毛人)이라고도 한다.[53] 가령 175화에서 김운행은 '영길리국'을 '홍모적'과 다른 무리들이라며 구별해서 말한다.[54] 일본군이 빠따를 미화하던 용어인 군인정신주입봉(軍人精神注入棒)의 패러디. 즉 문명국과 오랑캐의 분별을 물리적으로 세뇌시켜주겠다는 의미다(...).[55] 본래대로라면 남태평양으로 갈 역사였으나 엔데버에 자금을 후원해 조선 탐사를 요청했다.[56] 그리니치 천문대 대장 네빌 매스컬린, 그의 조수찰스 그린, 칼 폰 린네의 제자 다니엘 솔랜더, 박물학자이자 지질학자 토마스 페넌트, 박물학자 조셉 뱅크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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