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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4:48:07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역대 시험/제47회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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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대 주요 고급시험의 기출경향과 문제
2.1. 10~19회
2.1.1. 10회2.1.2. 11회2.1.3. 12회2.1.4. 13회2.1.5. 14회2.1.6. 15회2.1.7. 16회2.1.8. 17회2.1.9. 18회2.1.10. 19회
2.2. 20~29회
2.2.1. 20회2.2.2. 21회2.2.3. 22회2.2.4. 23회2.2.5. 25회2.2.6. 26회2.2.7. 27회2.2.8. 28회2.2.9. 29회
2.3. 30~39회
2.3.1. 30회2.3.2. 31회2.3.3. 32회2.3.4. 33회2.3.5. 34회2.3.6. 35회2.3.7. 36회2.3.8. 38회2.3.9. 39회
2.4. 41~46회
2.4.1. 41회2.4.2. 42회2.4.3. 43회2.4.4. 44회2.4.5. 45회2.4.6. 46회
3. 역대 주요 중급시험의 기출경향과 문제
3.1. 27~35회
3.1.1. 27회3.1.2. 28회3.1.3. 29회3.1.4. 30회3.1.5. 31회3.1.6. 32회3.1.7. 33회3.1.8. 34회3.1.9. 35회

1. 개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역대 기출에 대한 분석이다. 단 해당 내용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역대 시험(162번 판)에 특정 개인이 자기 생각을 서술한 내용을 가져온 것이므로, 실제 난이도나 문제의 평가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음을 판단하며 읽기 바람.

2. 역대 주요 고급시험의 기출경향과 문제

2.1. 10~19회

2.1.1. 10회

시험문제가 꽤나 어려웠던 14회 이전 시험 중에서도 눈에 띄게 어려웠던 시험. 뚜껑이 열리자 충공깽 급으로 지엽적인 지식들을 요구하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물론 알게 모르게 힌트가 담겨져 있는 문제도 꽤 있었고, 비교적 쉬운 문제도 간혹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수능 국사 영역에서도 오답률이 과반 이상인 수준의 문제만을 추려 뽑은 것 같은 정도의 극악한 난이도를 보였고 80점 넘은 사람이 5명 이하였으니 극악의 난이도였던 7회 다음으로 높았던 난이도.[1] 대학교 전문가 수준이었던 7회보단 훨씬 쉬웠지만 난이도가 헬게이트였던 것은 마찬가지. 고시생들 덕분에 문제가 갈수록 쉬워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 때의 난이도를 뛰어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2.1.2. 11회

2.1.3. 12회

2.1.4. 13회

2.1.5. 14회

2.1.6. 15회

2.1.7. 16회

2.1.8. 17회

2.1.9. 18회

2.1.10. 19회

2.2. 20~29회

2.2.1. 20회

2.2.2. 21회

2.2.3. 22회

대체적으로 평이한 편이었다. 아니, 난이도라는 게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지엽적인 내용을 묻는 문제는 거의 출제되지 않았고, 그나마 생소한 자료들도 잘 읽어본다면 어렵지 않게 추론이 가능한 문제들로만 구성이 되었다. 다음은 개중 까다로웠던 문제들.

* 11번: 첫 번째 사료에 대표적인 망이, 망소이의 난를 제시하여 답은 매우 쉽게 나왔다. 만약 두 번째 사료인 김사미, 효심의 난만 제시되었다면 까다로운 문제에 속했을 법한 부분. 참고로 1번은 교과 외의 부분인 이비, 패좌의 난으로 공무원 시험 수준의 지엽적인 선다이므로 참고만 하자.
* 19번: 주요 단서였던 천태종, 교관겸수, 내외겸전 등이 아닌, '문종의 넷째 아들', '교단 통합 운동'만으로 의천을 유추해야 했던 까다로운 문제일뻔 했으나, 문제가 옳지 않은 것을 묻는 문제여서 선다만 잘 봐도 나머지는 의천, 하나만 지눌임을 쉽게 알 수 있다.
* 33번: 대한제국기 시대상과 그림을 보여주며 당시에 맞는 역사 사실을 고르는 문제. 까다로운 축에 속했지만 1점짜리 문제이기에 당락을 결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 37번: 대한제국의 일제강점화과정을 당시 체결된 조약을 제시하고 고르는 문제로 각각 1차한일협약과 정미7조약을 제시했다. 사료를 꼼꼼하게 읽어 각 시점에 일어난 정책과 사실을 파악해야 풀 수 있는 문제로 이번 고급시험에서 가장 난이도가 있는 축에 낀다.
* 42번: 생소한 사건인 1930년대 일제하 노동 운동가였던 옥상녀 '강주룡'에 대한 문제. 1930년대를 몰랐더라도 신문에 제시된 1932년만 봤다면 매우 쉽게 풀 수 있었다. 추후 중급 33회 20번에 선다로 출제되었다.

2.2.4. 23회

2.2.5. 25회


2.2.6. 26회

2015년에도 기존의 쉬운 시험체계를 가져갈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고난이도의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다. 아무래도 지난 1년 내내 60퍼센트가 넘는 합격률을 보이다 보니 난이도 조절에 들어간 듯. 이 때문에 1년치 기출문제만 풀어보고 기출문제 점수만을 보고 느긋하게 시험장에 갔던 수험생들은 집단으로 멘붕에 빠졌다.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상식수준의 문제는 많이 줄어들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사료를 던져주고 지엽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근 2년 동안 가장 어려웠던 난이도. 게다가 베이스로 깔아주는 듯한 문제도 죄다 함정 카드를 깔아서 수험생들을 여럿 낚았다. 그 결과 고급 합격률도 37퍼센트로 수직낙하했다.

다음은 그 중에서도 어려웠던 문제들.

더욱이 이 문제들 모두 하나같이 2, 3점짜리다 보니 헷갈리거나 함정에 걸려서 어어 하는 순간 20~25점 가까운 점수를 어이없이 날려버린다. 그렇다고 제대로 풀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문제들이 다 맞는 것도 아니니 나머지 문제들에서 점수를 못 막으면 2급 당첨 or 과락(...). 특히 2014 기출 문제만 풀어봤거나, 최태성, 고종훈 한국사 같이 얇은 요점책으로만 정리한 수험생들은 제대로 피를 봤다. 그리고 교재와 강사들이 강조하는 중요하고, 상식적인 내용들은 정말 상식으로만 다루고 문제로는 크게 제출되지 않았다는 것도 난이도 상승의 주범으로 볼 수 있다.

2.2.7. 27회

2014년 물난이도의 재림. 26회의 시험이 응시자들에게 지엽적이고 비주류적인 문제로 충격을 주었다면, 27회 시험은 나오던 문제만 나오고 지문과 선지의 난이도 모두 폭락하였다. 전근대사 부분은 26회와 정반대로 주요 사건 위주로 출제되었으며, 그나마 지엽적인 문제가 나올 만한 문화재 파트마저도 팔만대장경, 다보탑, 무령왕릉 등 중학교 한국사 수준의 문제들이 출제되었다. 문화재 파트에서 난이도가 있다고 할 만한 내용은 법주사 팔상전인데 그마저도 제시문과 문화재 사진만 잘 살펴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였다. 26회 고급시험의 전근대사 난이도가 과거 국사 및 한국근현대사 교육과정 시절 불수능 수준이었다면, 이번 시험은 현행 한국사(2014~2016학년도 대수능)의 쉬워진 전근대사 문제 난이도 수준으로 추락했다고 할 수 있다. 근대사, 현대사 모두 26회에서 나왔던 수많은 낚시 지문이 사라지고, 역사 기본서나 수능특강 수준의 난이도로 출제되었다.

그나마 특기할 문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2.8. 28회

27회에 이어 역시나 무난했던 시험. 27회보다는 어려웠지만 26회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비교적 쉬운 문제가 많이 나왔다. 다음 문제들이 특기할 만 하다.

2.2.9. 29회

27, 28회보다는 난도가 상당히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무난했던 시험. 비록 앞의 두 시험보다 지엽적인 내용들이 더 많이 나왔지만, 고급 자격요건인 60점을 따는 것은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개화기에서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등의 전개과정을 전혀 물어보지 않았고 굉장히 상식적인 내용만을 물어봤으며, 세시풍속/민속놀이 문제는 웬일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세계문화유산 등 시사적인 문제가 상당수 나와서 교재로만 공부한 수험생에는 독이 되었을 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만점을 위해서는 교과서 외에도 역사 관련 기사도 꾸준히 읽어야 한다는 교훈을 심어준 시험.

주목할 만한 문제를 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2.3. 30~39회

2.3.1. 30회

최악의 물시험. 합격률이 70%가 넘었다. 출제 위원들의 난도 조절 실패

풀기 쉬웠다, 찍기 쉬웠다는 평이 대다수. 덕분에 만점자들이 상당수 속출하였다. 다른 회차에 비해 근대사 부분은 눈에 띌 정도로 쉬워졌다. 시험마다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했는 문화재, 유적 문제에도 힌트가 상당히 많이 주어지기도. 더구나 29회와는 달리 이번 회차에서는 최근 이슈가 되는 문제 대신, 교과서만 봐도 풀 수 있는 문제들을 배치하였다. 이로써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패턴상 다음 시험은 꽤 높은 난이도를 보여줄 듯.

문제들이 매우 쉬운 편이지만 그나마 눈여겨 볼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 14번: 사료 말미에 '동명왕편' 출처만 봐도 주몽 = 동명성왕을 떠올려 고구려 관련 선다를 고를 수 있다.
* 16번: 지역사에 역사적 이슈를 첨가하여 문제를 출제하여 다소 까다로웠던 문제로 보일 수 있으나, '고려의 수도' '만월대' 등의 키워드로 개성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 23번: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파견된 조선의 사절단으로 조선통신사로 쉽게 추론할 수 있었지만, 오답 선다의 내용이 다소 낯설었다.
* 26번: 3점 배점. 조선 숙종에 관한 문제이다. 태조의 영정을 새로 제작하였다는 사실이 다소 생소할 수는 있어도, 세 차례의 환국, 대동법 전국 확대라는 키워드를 잡으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숙종은 탕평책과 관련되므로 영조정조의 업적과 비교해서 공부하자.
* 27번: 2점 배점. 조선 서얼 문제. 서얼들이 지은 시집 <규사>를 몰라도, 적자와 대응된다는 점을 키워드로 잡으면 정답을 고르기 수월할 것이다. 조선의 계층인 중인, 신량역천과 엮어서 공부해 두자.
* 30번: 주요 내용 없이도 '연암', '열하일기'만 봐도 실학자 중 박지원에 관한 내용임을 쉽게 안다면 답을 고르는 데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참고로 중상학파의 박지원(화폐 유통)과 중농학파의 이익(화폐 폐단)은 주장하는 내용이 서로 정반대이므로 비교해서 알아두면 좋다.
* 33번: 국어 연구에 관한 문제. 1907년 이라는 년도를 통해 일제강점기 전 상황임을 인지하여야 한다. 일제강점기 전 국어 연구 기관은 국문연구소(1907년)밖에 없다.
* 36번: 고종의 광무개혁의 세세한 개혁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정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라)의 보기가 다소 생소하였을 것이다.
* 39번: 3점 문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지역을 묻는 문제이다. 정답은 아주 쉬웠지만 오답지들이 다소 난해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륭양행에 교통국을 설치한 곳은 단둥,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한 건국 강령 발표는 충칭, 임시 사료 편찬회는 상하이.
* 43번: 1920년대 의거활동과 그 위치까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문제였다. 허나, 3점 문제 치고는 정답 선다가 일반 대중들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안중근의 하얼빈역에서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이 나와서...
* 44번: '심상소학교', '황국신민'을 통해 3차 교육령이 시행된 민족 말살 통치시기를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제1조 없이 제13조만 사료로 제시되었다면 난이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 45번: 2점 문제. 일제 시대의 법령 순서 문제이다. 제시문은 회사령, 토지 조사 사업, 국가총동원령, 조선 소작조정령. 키워드가 대놓고 나와 있어 파악하기 쉬웠을 것이다. 다만, 회사령과 토지 조사 사업의 연도를 대충 외운 수험생은 피를 보았을 터. 디테일한 연도 암기가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2.3.2. 31회

30회보다는 어려웠으나,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갈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대체적으로 쉬웠다. 고급 합격률도 62.8%로 평균적인 수준을 기록하였다.[3]

특징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다.

2.3.3. 32회

난이도는 평이한 수준. 다소 생소한 지문들과 내용이 몇 문제 출제됐다. 다만 지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한 두개씩 힌트가 주어져있고, 무엇보다 어려운 문제들의 보기가 답이 확실히 아닐만한 것들이 많아 문제를 푸는 센스가 좋다면 그리 어렵게 느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문제들은 조금 신경써야 할 문제들이다.

2.3.4. 33회

32회보다는 어려웠으나, 그럼에도 평이한 수준이었다. 뭐? 매년 마지막 시험은 어렵다는 징크스 때문인지 아니면 그간 난이도가 낮아서 난이도 조절을 한건지 알 수는 없지만 고급 합격률은 41.4%[4]로 낮은 편이었다. 선사~고려에 비해 근현대사 부분에서 비교적 까다로운 문제가 출제되었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아래와 같다.

2.3.5. 34회

난이도가 평탄했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헬문제(35,46번)를 제외하면 역대 최악의 물시험이었던 제30회 시험과 별반 다를바 없을정도로 쉬웠다. 어려운걸 제외하고 나머지 문제를 거의다 맞췄다면 1급은 안정적으로 취득할수있었던 꿀시험이였다. 합격률은 69.3%

핵심문제는 다음과 같다.

2.3.6. 35회

합격률은 56.7%, 34회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근래의 평이한 출제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난이도였다는 평이다. 특이한 것은 3주 뒤 치러진 2017년 지방직 9급공무원 시험에 38번이 응용되어 출제된 점이다. 38번에서 제시된 사료가 약간 변형되어 선지로 나왔던 다소 고난도의 문제였다

주목해야 할 핵심문제는 다음과 같다.(배점은 1,3점만 표기할것)
고급 답안 발표에서 약간의 혼선이 있었고, 시험 2일 뒤인 5월 29일에야 제대로 정정되었다.

2.3.7. 36회

30회 이후로 합격률이 70%를 넘어 72.1%를 기록했으며, 이는 역대 두번째로 높은 합격률이다.

주목해야 할 핵심문제는 다음과 같다.

2.3.8. 38회

2월 3일 토요일 2018년 첫 한국사능력 고급시험이 치러졌다. 난이도는 적당했다 하지만 고대사부분이 조금 까다로웠다. 합격률은 63%다

그러나 고대사 부분에서 원래 잘 다뤄지지 않던 내용이 나온 것이나 인물 관련 문제가 까다로웠다는 평도 있다. 꼼꼼히 외우지 않았다면 점수를 깎일 요인이 많았다.

1번: '구석기 시대'의 생활 양식을 묻는 문제였다. 본문에 제시된 (가) 시대에 대한 힌트를 찾아보면 '연천 전곡리'와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그에 대한 힌트로 제시할 수 있다.

2번: '연개소문의 쿠데타'에 관한 사건이다. 수나라의 문제와 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하지만 고구려가 방어해내고, 수나라는 국력을 고갈하여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뒤, 중국의 중심 세력으로 올라선 나라는 당나라. 당나라는 고구려에 대해 유화 정책을 펼쳤지만, 이미 중국에 하도 치여 질려버린 고구려는 천리장성을 축조하게 된다. 이 때 연개소문은 천리장성 축조의 관리 감독직을 맡게 되고, 이 과정에서 연개소문은 세력을 키워 정변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 왕을 살해하고 새로운 왕을 옹립한 뒤, 자신은 막리지가 되어 정권을 손에 얻게 된다. 그리고 몇 년 뒤, 645년에 당 태종은 고구려 안시성을 공격하게 되고, 이때 안시성은 당나라 군대의 공격을 막아낸다.

9번(1점). 발해 문왕 대 있었던 일을 묻는 문제였다. 주어진 보기에서 '문왕' 이라는 시호가 나오지 않고 본명인 대흠무, 존호, 자녀의 이름만 던져주고 이것을 통해 발해 문왕임을 추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보기의 내용 중 발해 문왕과 관련된 것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 힌트가 있었다. 첫번째는 존호,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이라는 존호에서 '대흥'과 '보력'은 발해 문왕 때 사용하던 연호의 명칭이다. 두번째는 자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를 문제집으로든, 인강으로든 발해 관련 공부를 할 때 '정혜 공주'라는 이름을 최소한 한 번 이상은 들어보게 되는데 정혜 공주와 발해 문왕이 연관성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면 오히려 이것을 통해 발해 문왕과 관련된 정답을 찾아야 함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11번. 후삼국 시기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에 대한 문제이다. 보통 후삼국 문제들은 지도를 보여주나 관련된 주요 행적 등의 내용을 통해 어느 인물인지를 추론하게 하는데 이 문제의 경우, 보기 중 첫번째 문단에 나온 아들들의 이름[9]과 금강을 총애하여 나머지 자식들의 분노를 샀다는 내용과 두번째 문단에 나온 '적국에 투항하여 아들을 징벌하고 싶다는 내용' 등으로 견훤에 대한 문제임을 추론했어야 했다. 다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공부할 때 견훤 관련 내용에서 이 문제처럼 아들들의 이름이나 발언 등의 내용은 언급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몇몇 응시생들은 이게 대체 누군지 추론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태조 왕건 드라마를 본 사람이면 견훤 아들이 신검인 건 다 알기 때문에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2.3.9. 39회

5월 26일 토요일 '18년도 두 번째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졌다.

대체로 평이한 수준이었다. 제시 자료나 문항 선지에서 기존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 문제에서 조차 나오지 않았던 낯선 개념을 다룬 내용이 몇 있기는 했지만, 문제를 푸는데 애로점을 줄 만큼 크게 지장을 준 편은 아니었다.

2.4. 41~46회

2.4.1. 41회

10월 27일 토요일 '18년도 마지막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졌다. 매년 마지막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어렵게 나온다는 징크스에 걸맞게 난이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였으며, 기출 문제만 풀고 간 수험생은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각 커뮤니티에도 어려웠다는 사람이 대다수. 댓글을 확인해보자. 합격률은 43.6%으로 2017~2018년 고급 시험 중 가장 합격률이 낮았다.

2.4.2. 42회

2019년 첫 시험. 41회보단 난이도가 낮았으나 수험생들이 잘 공부하지 않았던 생소한 개념들을 물어보는 문제가 굉장히 많이 출제되었다. 근현대사는 평이하였으나 전근대사의 난이도가 높았다. 삼국시대를 대충 공부한 사람에겐 뒤통수가 얼얼했던 시험.

2.4.3. 43회

5월 25일 토요일 19년도 두 번째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졌다. 난이도는 평범한 수준이었으나 저번 회차에 이어서 전근대사의 난이도는 조금 높았던 편이다.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는 한두문제를 제외하고는 너무 대표적인 사건이나 사회 제도만 나와서 굉장히 쉬웠던 편.

2.4.4. 44회

8월 10일 토요일2019년의 세 번째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졌다. 시험 직후 어려웠다는 평이 많았는데, 특히 앞서 치러진 몇 회의 시험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지엽적인 사료들과 인물들이 많이 나와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있었다는 평이 많다. 결국 합격률이 38.8%를 보였는데, 이는 제44회 시험까지 치러진 시점에서 볼 때 37.4%를 기록했던 2015년의 제26회 시험 이후로 가장 낮은 수치이자 역대 여덟 번째로 낮은 수치이다.[15] 일각에서는 2021년부터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7급 공개경쟁채용시험에서 한국사 영역을 대체하는 것을 앞두고 난이도를 맞추기 위해 베타 테스트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2.4.5. 45회

10월 26일 토요일2019년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졌다. 합격률은 64.6%를 보였다. 매년 마지막 시험은 어렵게 나온다는 징크스가 있는데다가 앞선 제44회 시험이 어려웠던지라 이번 시험도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의외로 쉽게 나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2020년의 첫 시험이 어렵게 나올 것 같다는 우려를 나타내기까지 하고 있다고.#

2.4.6. 46회

2월 8일 토요일2020년의 첫 번째이자, 47회 시험부터 있을 체제 변화 전 마지막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시험 전날까지 응시 자제를 권고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시험이었는데, 앞서 말한 2020년의 첫 시험이 어렵게 나올 것 같다는 우려가 딱 들어맞게 되었다. 시험 직후 응시자들은 생소한 지문이 많았고 어려웠다고 평했다. 시험일이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이었지만 세시풍속 문제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합격률은 56%로 의외로 무난하게 나왔는데 어려운 문제는 정말 어려웠지만 쉬운 문제는 매우 쉬웠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들을 풀지 못했다라더라도 쉬운 문제들만 틀리지않고 맞추었으면 무난하게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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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대 주요 중급시험의 기출경향과 문제

3.1. 27~35회

3.1.1. 27회

3.1.2. 28회

3.1.3. 29회

3.1.4. 30회

3.1.5. 31회

3.1.6. 32회

3.1.7. 33회

합격률 35.4%로, 2013년 이후 중급 합격률 중에서는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평소의 중급 시험에 비해 비교적 지엽적이고 세부적인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고, 예시도 좀 더 심플하거나 자주 접하기 어려운 느낌이므로, 일반적인 중급 학습 감각으로 풀면 혼동이 오거나 맞추기 어려운 경향이 컸다.

* 3번: 백제의 시대순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나)와 (다) 보기가 헷갈렸을 수 있다. 고구려와 신라의 경우, 불교 수용 이후 전성기를 맞이하였는데 백제만 그 반대이기 때문.
* 15번: 단순히 최씨정권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일어난 일에 대한 자세한 순서를 묻는 까다로운 문제였다. 최우 시기에는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1232)하고 삼별초의 항쟁을 펼친 내용이 시험에 자주 나온다. 또한 무신집권기의 순서를 공부할 때에는 보통 집권자의 변화 정도만 학습하고 최씨 정권으로 뭉뚱그려 넘어가기 쉬우므로 사건 순서를 자세히 학습해야 한다.
* 20번: 여성사라는 독특한 주제의 문제가 출제되었으며, 나혜석과 김만덕이라는 다소 낯선 인물을 출제하여 난이도를 높였다. 하지만 선지 구성을 살펴보면 (가)가 확실히 맞고 (다)가 확실히 틀리 다는 것만 파악하고 풀면 답을 고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참고로 (다)의 선다는 1930년대 일제하 노동 운동가였던 '강주룡'에 대한 설명으로 고급 22회 42번에 사료로 출제된 적이 있다.
* 39번: 3·1운동이라는 것을 알면 쉽게 답을 고를 수 있으나 ‘태화관 터’, ‘탑골공원’ 등 지명만으로 유추해내어야 하는 문제였다.
* 49번: 그래프만 제시되어 당황할 수 있었으나 유신 정우회라는 키워드만 잡아내면 쉽게 답을 고를 수 있는 문제였다.

3.1.8. 34회

3.1.9. 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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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합격률은 7회가 근소한 차이로 높았다.[2] 정확히 말하면 역계경이라는 인물이 진국으로 망명한 것은 위만 조선 후기 한나라와 싸울 때의 일이다.[3] 초급의 경우는 49.8%로 역대 두번째로 낮았고, 반대로 중급은 역대 최고인 76%를 찍었다. 뭐 이래?[4] 2016.11.08 기준 역대 8번째[해설] 연도는 1712년.(숙종 38년)[6] 3.1운동이후 본국인 일본에서도 다이쇼 데모크라시열풍도 있고해서 식민지인 조선에도 각종 언론 활동 허용등 그 전보다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정책을 실시하였다. 물론 이는 식민지 조선인을 민주시민으로 만들려는 목적이 아니라 한민족을 이간질시켜 소위 말해 일본에 협력하는 사람을 많이 나오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7] 내선일체, 일선동조론, 황국신민서사 암송 등이 이 시대에 나타났다. 또 일본어상용화를 강령하게 추진했는 데 이와 같은 정책은 조선을 완전히 일본화(化)하는 목적에 수행된 것이다.[8] 특히 일본어상용화는 문제에 나오는 조선 교육령 내용에도 반영되어 있다.[9] 금강, 신검, 양검, 용검 모두 견훤의 자식들이다.[관련나라] - 가야[실행일] - 1950.9.15.[12] 유신 체제를 끝장내는데 계기가 되었다는 것까지 추가로 알아두자[13] 유신 체제 성립 직전이라는 것도 알아두자[14] 현재 남북 합의와 관련된 문제는 40~43회까지 4개회차 연속으로 출제되었다.[15] 이는 난이도가 높았던 제13회 시험까지의 기록도 포함한 순위다. 제14회 시험부터 제44회 시험까지 합격률이 38.8%보다 낮았던 때는 제26회(37.4%) 시험이 유일하므로, 제44회 시험은 그간 쉬운 경향에 익숙해져 있었던 수험생들에게 초창기급의 합격률로 경종을 울렸다고 볼 수 있다.[16] 제33회 시험 이후로 처음이다.[17] 제26회 시험 이후로 처음이다.[18] 다만 제시된 선지를 봤을 때 쉽게 분간이 가능한 왕의 업적을 제시했기 때문에 이시애의 난에 대한 건 잘 몰라도 오답 소거를 통해 맞춘 수험생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