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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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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ice, 좁은 의미의 향신료. 딱딱한 열매, 씨앗류를 의미.
/
**: Herb, 향료 중에서 부드러운 잎과 줄기를 의미.
그 외 비가공 식품 및 재배물 틀: 고기 · 곡물 · 과일 · 채소 · 해조류 · 향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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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형3. 역사
3.1. 고대, 고전 시대3.2. 중세 시대
3.2.1. 중세 시대의 가격 분쟁3.2.2. 서유럽에서의 수요3.2.3. 사치품으로서의 후추
3.3. 대항해 시대, 인도 항로의 발견
4. 아시아에서
4.1. 한국4.2. 일본
5. 종류
5.1. 통후추
6. 재채기 유발7. 후추와 건강
7.1. 루머
8. 미디어에서의 후추

[clearfix]

1. 개요

/ Pepper

쌍떡잎식물 후추목 후추과의 상록 덩굴 식물. 특유의 매운맛을 띄며[1], 인도,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열대 지방에서 널리 생산되고 있다. 주된 용도가 향신료라서 사용법이 식용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향수한약재에도 쓰인다.

일반적인 흑후추의 경우 열매는 고추와 마찬가지로 덜 익었을 때에는 녹색이며, 익을수록 검붉게 변한다.

후추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서양 요리의 필수 중 필수 향신료로 꼽힌다. 보통 '간을 한다'라고 하면 한국 등 동양 문화권에서는 소금이나 간장을 넣지만, 서양 문화권에서는 육류, 해산물, 채소, 곡류 등의 모든 종류의 식재를 막론하고 소금이 들어가는 모든 서양 요리엔 거의 예외 없이 후추가 한 몸처럼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과거에는 엄청난 고가의 조미료였으나 후추가 널리 퍼지고 일반화된 후 'Salt and Pepper'라는 관용구가 유명해질 정도로 서양에서는 기본적인 조미료 중의 하나로 친다. 한국으로 치면 상비품으로 마련하는 간장, 고춧가루, 된장, 고추장 등의 입지라 생각하면 된다. 서양권 어느 식당을 가도 테이블에 기본적으로 취향껏 쓸 수 있게 비치되어 있고, 심지어 전투식량이나 기내식 등에도 기본적으로 포함된다.

매캐한 향이 매우 강하여 한소끔만 뿌려도 음식의 향을 전부 잡아먹는다. 때문에 용량 조절을 섬세히 해야 하는 향신료다. 하지만 적절히 쓰면 식재료의 비린내를 잡아주고 자극적인 풍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동서고금 사랑받는 향신료다. 중세시대엔 귀족들이나 쓸 수 있는 최고급 향신료였지만 현대엔 누구나 저렴한 가격으로 뿌릴 수 있는 향신료이기 때문에 가성비 또한 훌륭하다.

과거엔 (오뚜기)후추통으로 직접 뿌리는 방식만이 유통되었으나, 식문화가 서양식 파인다이닝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통후추를 그라인더로 갈아 뿌리는 후추 제품도 퍼지기 시작했다.

2. 어형

조선에서는 후추를 '후츄'로 표기했으며, 한자로는 대부분 '호초(胡椒)'로 기록되어 있다. 이때는 고추도 '호초(胡椒)'라고 기록한 경우가 많다. 여기서 '호(胡)' 자는 오랑캐를 뜻하는데, 청나라원나라 등 옛 중국 쪽에서 온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2]

같은 한자권인 중국과 일본에서는 그대로 '胡椒(중국어 발음: hújiāo/후자오, 일본어 발음: こしょう/코쇼)'라고 쓴다.

영어로는 pepper라 한다. 후추는 중세 유럽에서 맵고 뜨거운 맛을 내는 향신료 = 후추(pepper)였기 때문에 후에 발견된 맵고 뜨거운 맛을 내는 향신료는 대부분 pepper가 붙는다. 단순히 pepper라고 하면 후춧가루를 말하고, 후추를 특정할 때는 black pepper, whole pepper라고 한다.

3. 역사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요리 재료 중 가장 많은 역사를 직간접적으로 쓴 향신료로서 역사의 한 단락을 장식하는 향신료의 대표 격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간을 제일 많이 죽게 만든 식물이라는 반농담 스러운 말도 있을 정도.

3.1. 고대, 고전 시대

후추의 원산지는 인도 남부 말라바(Malabar) 해안이다. 기원전 1세기경에는 이미 동남아시아에도 전해져 재배되었다고 여겨진다.[7]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후추는 중세 이전에도 원산지인 인도에서 퍼져나가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까지 널리 쓰였던 향신료 중 하나였다. 다만 기원전의 후추는 향신료보다는 의약품에 가까운 용도로 쓰였다. 대표적으로 고대 이집트 람세스 2세의 미라의 콧구멍 속에서 발견된[8] 후추 알갱이로 후추가 약재 용도로 쓰였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당시 보관 기술이 열악해 포도주가 산화되어 신맛이 되기 쉬웠기 때문에 시어버린 와인과 후추를 넣어 마셨다. 또, 영어 spice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species'도 원의미는 '토산물'이란 뜻이었다. 이 시기는 후추와 같은 향신료들을 지역 특산으로 생산되는 포괄적인 무언가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후추가 식용으로 자리잡지 못한 건 공급량의 부족과 더불어 중간 마진으로 인한 가격의 문제가 컸다. 알렉산드로스의 시대만 하더라도 폴리스, 국가 간의 공물로 귀금속, 보석과 함께 후추를 상납했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으며,[9] 마케도니아 왕국이 반쯤 단절되었던 서방 세계와 인도를 이음으로써 후추를 이용한 조리법이 유럽으로 넘어왔고, 비로소 식용 후추의 길이 열린 셈이었다. 그럼에도 서방 세계로 공급되는 후추의 양은 턱없이 부족했고, 후추가 공급 문제를 해결하여 서방 식문화의 약방의 감초로 발돋움하는 계기는 아우구스투스의 이집트 정복이었다. 로마는 여전히 중간 마진이 심했던 소아시아의 육로 상인을 뒤로하고, 홍해 무역의 선발 주자였던 에티오피아악숨 왕국과 교류하여 계절풍을 이용하는 항해법을 전수받아[10] 홍해 건너편의 인도로 보내는 무역선단을 꾸려 인도의 토후국과 교역하여 후추, 계피, 생강, 카르다몸 같은 귀중한 향신료를 양껏 공수해 올 수 있게 되었다.[11]

이 시절은 다르게 말하자면 대항해 시대 이전의 향신료 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카르페 디엠이란 어구를 남긴 시인 호라티우스는 후추 사업에 뛰어들어 큰 몫을 건지고 자신의 풍자시나 송시에 후추의 비유를 즐겨 썼고[12], 대 플리니우스는 저서 《박물지》에서 후추를 사고자 금을 궤짝으로 가져와 거래하는 후추 열풍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당시 후추의 가격과 소비 생태를 상세하게 설명하였는데, 필발(Piper longum)[13]과 상단 사진의 백후추가 1 파운드에 7-8 데나리우스, 흑후추가 그의 반 정도에 거래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로마의 동방 진출은 후추가 로마인, 나아가 유럽의 요리에 뿌리 깊게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고, 1-2세기 뒤의 사람인 미식가 아피시우스의 저서 《요리에 대하여》(De re culinaria)에서는 거의 80%에 가까운 레시피에 후추가 사용되었음을 언급하였다.[14]

이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발표한 가격 통제 칙령 때도 후추는 중요 물품과 함께 언급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후추의 가격의 상한선을 1 파운드에 800 데나리우스로 정하였다. 토목 공사에 동원된 인부의 삯은 1일에 50 데나리우스로 정하였으니 후추 약 450g의 가격은 대강 인부의 2-3주 치 삯으로 살 수 있었던 셈이다.

3.2. 중세 시대

로마 시대에 시작된 유럽인들의 후추 사랑은 서로마가 무너진 뒤에도 여전했는데, 후추를 가루화하여 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색다른 사용법이 연구되기 시작한 것도 중세였다. 육수를 우려낼 때 통후추를 넣어 끓이는 방법이 대표적으로, 이는 강한 향이 재료 고유의 맛과 향을 묻어버리지 않게 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값비싼 후추를 말려서 재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15]

3.2.1. 중세 시대의 가격 분쟁

후추가 온갖 요리에 많이 응용된 만큼 그 수요도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홍해의 무역선단을 통제했던 로마 시대와는 다르게 홍해 무역의 교두보인 이집트 지역이 이슬람 세계로 넘어간 이후, 후추를 파는 이슬람 상인과 후추를 운반하는 유럽 상인[16] 간의 알력 싸움은 그칠 줄을 몰랐다. 가격을 올려 팔고자 하는 이슬람 상인들의 열정은 실로 대단하였는데,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나 나올 법한 뜬소문과 신비주의 마케팅 전략을 동원했다. 이를테면 수백 년 전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에서 언급된 계피 새(Cinnamologus) 이야기를 들먹이기도 하였는데, 정리하자면 이렇다.
(중략)성경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계피에 대해,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실론 계피를 아랍 지방에 있던 불사조(계피 새)의 둥지에서 발견했다고 적고 있다. 불사조의 둥지는 매우 가파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놀라운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짐승을 큰 조각으로 잘라 불사조의 둥지 근처에 흩어 놓았다. 불사조들은 둥지에서 내려와 이 고기 조각을 물고 다시 둥지로 갔다. 결국 둥지는 고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계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17]

제정 로마 초기에 반박된 허황된 이야기를 중세 시대의 사람들이 믿을 리 없었지만, 서방 상인들 또한 이런 이야기를 자신들의 판매처인 유럽 지방에 널리 퍼뜨리며 가격을 올려 파는 데 톡톡히 써먹었다.[18]

3.2.2. 서유럽에서의 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추의 가격이 크게 요동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는데, 서로마가 무너진 이후 서유럽(특히 프랑스와 브리튼섬)에선 후추 공급의 단절이 있었고, 이로 인해 후추의 수요가 점진적으로 줄어든 상황이었다. 이후 십자군 전쟁을 치른 뒤 유럽에 후추를 이용한 레시피가 재보급되고, 서유럽에 더불어 봉건화된 북유럽 등에서도 후추의 수요가 생기며 10세기를 전후로 후추의 가격은 크게 오르게 된다.

예컨대, 동로마 제국에서는 술이나 음료에 후추를 타서 먹는 레시피가 유행이었고,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프랑스인들이 이런 요리를 맛보고 고향인 프랑스에 유행시키며 뱅쇼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었다.[19] 술이나 음료수에 후추 같은 향신료를 넣는 행위는 지금은 생소하지만, 문화적인 특성상 그 시대에는 유명한 블러디 메리의 경우에도 위에 후추를 뿌리는 경우가 있다.[20]
중세 시대의 요리는 이렇듯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많이 썼다. 오늘날 우리가 유럽 요리하면 생각나는 깔끔하고 재료의 본래 맛이 느껴지는 스타일은 누벨 퀴진 이후이다.[21] 향신료에 대한 광적인 욕망이 사라진 18세기 이후의 유럽인들은 중세 유럽 요리를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향신료를 잔뜩 뿌린 맛없는 요리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출처]

3.2.3. 사치품으로서의 후추

후추의 이용이 단절된 영향인지, 서유럽 지역의 고위층은 후추 같은 향신료를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였다. 당시 귀족들은 손님에게 쟁반 가득 통후추나 생강, 계피를 비롯한 향신료를 담아서 대접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스코틀랜드의 왕 일리암 1세가 런던의 리처드 1세를 방문했을 때 받은 접대 내용 중엔 '매일 2파운드의 후추와 4파운드의 계피를 제공한다' 라는 기록도 남아있었다.

후추를 과할 정도로 낭비하며 만드는 레시피가 퍼진 것도 이때인데, 오늘날의 기준으로 말하면 원본은 별것도 아닌 요리에 쓰잘데기없이 럭셔리함을 높이겠다고 아무런 맛도 안 나는 금박을 입히는 식이다. 즉, 중세 시대 당시 향신료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에서 중세의 고급 닭 요리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닭의 겉면을 후추를 비롯해 온갖 향신료를 과하게 섞은 가루 반죽으로 떡칠하고 그냥 굽는 요리였다. 이것을 그대로 재현했더니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과도한 양의 향신료 때문에 향이 코를 찌르는 듯이 자극했고, 껍질을 벗겨 먹었는데도 향신료 향이 심하다시피 배어 있었다. 향신료 향만 강한 데다가 밸런스까지 망친 이런 괴식 혹은 벌칙에 가까운 요리를 중세에는 고급으로 쳤다. 이는 귀족 본인의 부와 지위를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과시용 요리이기 때문이다.[23]

과열된 후추의 인기는 13세기에 접어들며 점차 그 기세를 잃고 사치품으로서의 자리를 다른 향신료들에게 내주게 된다. 귀족들은 정향이나 사프란[24] 같은 향신료로 등을 돌리고, 여러 교차적인 이유로 구매력이 오른 상공층[25]이 후추를 소비하기 시작한다.

3.3. 대항해 시대, 인도 항로의 발견

이렇게 과열된 후추의 인기가 식은 후에는 후추의 가격은 가난한 소작농 정도가 아니라면 크게 부담되는 선은 아니었다. 영국 런던의 물가 기준으로도 잡일꾼이 일주일 정도를 일하면 1파운드가량의 후추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 중개 거래는 당시 지중해 상인들의 젖줄과 마찬가지였다. 아이유브 왕조의 배를 가르고 일어선 맘루크 왕조는 십자군을 몰아내고 향신료 거래의 두 종점-육로의 레반트, 해로의 알렉산드리아-을 모두 점유하는 데 성공했는데, 또다시 서방의 십자군과 칼을 맞대는 건 경제적 손해라고 여긴 맘루크는 베네치아의 상인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향신료 거래의 이권을 나눠 갖게 된다.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키프로스를 비롯한 동지중해의 여러 섬을 거점 삼아 베이루트를 비롯한 레반트의 항구에서 향신료를 독점하였고, 맘루크는 맘루크대로 알렉산드리아의 수크에서 제노바나 아라곤의 상인들에게 향신료를 팔아치웠다.

베네치아의 향료 거리에서 베네치아는 240 파운드가량의 후추를 50~100 두카트 사이로 판매했는데, 레반트 지역에서 한번 아랍 상인의 마진을 거친 동량 후추의 가격이 25~40 두카트 정도였으니 대략 1.5~2배가량의 마진을 본 셈이었다. 또, 오스만이 득세하기 전 동지중해는 베네치아의 안방이나 다름없었으니 운임 비용을 최소화하는 게 가능했고, 이로 인해 향신료 중개는 오스만 제국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지중해의 패권 싸움에 진입하기까지 지중해 상인들의 메인 상품이었다.

이러한 향신료 열풍에서 소외된 건 유럽 끄트머리에 위치한 포르투갈카스티야 같은 변방 국가였다. 베네치아의 향신료 독점으로 인해 웃돈을 주고 향신료를 사오던 이들은 해양 산업이 미래라는 비전을 갖고 국가 단위로 해양 산업에 투자하였다. 항해 왕자 엔히크 등의 왕족들도 정력적으로 바다 너머 미지의 땅으로 몸을 던지는 데 마다하지 않았고, 이들의 열정과 노력은 결실을 맺어 대서양 너머의 새로운 세계, 신대륙희망봉 너머의 인디아스를 안겨주게 된다.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한 후 포르투갈 상선대가 싣고 온 향신료는 베네치아 상인들이 부르는 가격의 5분의 1 수준에서 거래되었는데, 이렇게 가격을 80%나 낮춰 판매하는데도 남는 마진은 현지 매입가의 무려 60배(!)에 수준이었다고 한다. 유럽 향신료 거래의 중심지가 베네치아에서 북해 연안의 안트베르펜으로 이동하면서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무역은 이때를 기점으로 쇠락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두 국가는 어마어마한 부를 쥐게 되었지만 반대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향신료 거래는 배 10척을 띄워 1척만 돌아와도 원금을 건질 수 있는 대박 사업이었지만, 달리 말하자면 배 9척을 잃는 게 일상이었던 도박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카스티야는 아라곤 왕국과의 동군 연합, 그리고 레콩키스타 가 끝나고 무산층이 되었던 이달고(평귀족)를 징발해서 신대륙의 콩키스타도르의 인력으로 삼기라도 했지, 포르투갈인도 무역으로 얻은 부를 자국의 생산업 같은 내실에 투자하기보단 그 돈을 전부 해양 산업에 재투자하는 실책을 저질렀고, 이로 인해 가뜩이나 부족했던 인력이 꾸준히 고갈되어[26] 이후 네덜란드, 잉글랜드 같은 후발 주자들과의 알력 싸움에서 허무하게 밀려나는 원인이 된다. 이 시기의 포르투갈은 찬란한 황금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청년들이 부를 탐하는 광기에 희생되고, 이후 이어질 암흑기의 출발점이 된 서글픈 시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 시기를 어떻게 추억하는지는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저작 《메시지(Mensagem)》에 수록된 '포르투갈의 바다'란 시로 엿볼 수 있다.
Ó mar salgado, quanto do teu sal
São lágrimas de Portugal!
Por te cruzarmos, quantas mães choraram,
Quantos filhos em vão rezaram!
Quantas noivas ficaram por casar
Para que fosses nosso, ó mar!
오, 짜디짠 바다여, 네 소금물의 얼마만큼이
포르투갈인의 눈물이겠는가!
그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눈물 흘리고,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헛된 기도를 올렸으며,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결혼하지 못하고 기다렸으랴!

Valeu a pena? Tudo vale a pena
Se a alma não é pequena.
Quem quer passar além do Bojador
Tem que passar além da dor.
Deus ao mar o perigo e o abismo deu,
Mas nele é que espelhou o céu.
항해는 가치가 있었는가? 모든 것엔 가치가 있다.
이들의 영혼이 작지 않다면,
보자도르곶[27]을 지나길 원하는 그 누구든
슬픔을 넘어서야 하리라.
신은 바다에게 위험과 심연을 주며
그 안을 거울 삼아 하늘을 비추게 만들었으리.

결국 포르투갈은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등 후발 주자에게 남방 항로의 주도권을 내어주었고, 이들이 말루쿠 제도 같은 핵심 지역을 영유한 뒤에도 후추의 값은 금방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독점이란 입지를 내세워 가격 유지를 위해 후추나무를 주기적으로 태워버리며 산출량을 조절했고, 후추 열매를 빼돌린 원주민은 사형에 처했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이런 비싼 값을 노린 상인들은 후추에 장난질을 해서 양을 불리려 했다. 이를테면 겨자 껍질, 노간주나무 열매, 완두콩 가루를 섞어서 양을 불리거나 심하면 창고 바닥의 먼지를 섞기도 했었으며 이후 아프리카에서 후추 재배가 성공하면서 값이 크게 폭락해 관련 상인들의 줄도산이 이어졌다. 이때쯤부터는 가난한 농민들도 식단에 후추를 듬뿍 뿌릴 수 있을 정도로 사용이 보편화되었고, 중산층과 귀족층은 그동안 바다 너머의 향신료에 목매단 것에 대한 반향인 것인지 월계수잎이나 바질 같은 토속 향신료도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4. 아시아에서

4.1. 한국

한국의 경우 후추라는 작물 자체가 열대 지방에서 재배되는 것이라 전량 외국에서 수입해야 되었기 때문에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사치품으로 분류되었다. 고려 시대벽란도에서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무역이 있긴 했으나 오늘날 보따리장수들의 거래 정도로 규모가 매우 작아 시세를 크게 낮추진 못했다.

조선 시대로 넘어가서는 오히려 국가가 무역을 전면적으로 통제하면서 해외 무역이 더 줄어들었다. 일례로 일본과는 일 년에 배 몇 척만 입항을 허가하는 식이였다. 이러다 보니 불만이 생긴 일본인들이 유일한 일본발 항구였던 왜관에서 시위를 하는 등의 사태가 있었다. 이는 중국과도 마찬가지로 중국과는 조공을 보내는 사신단을 수행하는 수행원들이 월급을 주는 대신 원하는 물건을 들고 가서 팔 수 있게 허락해 주는 제한적인 방식의 무역만을 행하였다. 이런 조선의 무역 통제는 후추의 품귀를 야기하였다. 성종은 후추를 직접 길러보려고 일본, 류큐 왕국의 사신들이 올 때마다 후추 씨앗을 가져다주면 큰 상을 내리겠다고 할 정도였지만 류큐를 포함해 중국, 일본 본토에서도 남만, 즉 자바 일대를 통해 수입해서 썼기 때문에 얻을 수가 없었다. 일본에서 팔만대장경을 달라고 요구하자 "대장경판은 각지의 사찰에서 보관 중이니 너네 나라에서 자라는 후추씨와 교환하자"는 엄청난 조건을 걸었으나 얻지 못했다.

징비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발발 전 일본에서 온 사신 유즈야 야스히로[28] 일행이 잔치 도중 일부러 술에 취하는 척하면서 후추알을 던지니 너 나 할 것 없이 일어서서 후추를 줍는 데 여념이 없어 자리가 난장판이 되자, 이 모습을 보고 야스히로는 "너희 나라는 이제 망했다. 나라의 질서와 사람들의 태도가 이렇게 엉망이니 어찌 망하지 않겠냐"며 비웃었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가 이런 조선의 정세를 알리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본격적으로 침략 준비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29] KBS 1TV 대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이 장면을 묘사한 바 있다. 당시에 후추가 얼마나 귀한 물자였는지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와서는 가격이 내려간다. 개항 전 조선 후기에 후추의 가격을 알려주는 사료는 찾기 힘들지만 다행히도 1808년 간행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후추 가격이 적혀 있다.
후추 매두(斗)의 값 은(銀) 5냥은 동래부(東萊府)에 복정하여 호조에 직접 납입함.
만기요람
다시 말해 후추 1말(=6L)에 은 5냥이니 이를 다시 환산해 보면 후추 1(=0.6L)는 0.5냥이다. 상평통보 4냥과 은 1냥이 교환되었으므로 조선 후기 후추 1되는 상평통보 2냥이다. 쌀은 1석(15말, 90L)에 상평통보 3~5냥 정도였으니 쌀 대비 가격은 100배에 이른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는 미국의 생활 문화가 유입되었다. 그래서 깡통시장 같은 데서 흘러나오는 미국제 맥코믹 후추통을 1970~80년대에 볼 수 있었다. 지금도 남대문시장 근처 칼국수집 등에서는 이 맥코믹제 후추통을 볼 수 있다. 맥코믹은 21세기 들어서는 오뚜기 등 국산 식료 회사들의 시장 점유율에 밀려났고, 동네 슈퍼에서는 대부분 국내 브랜드 제품을 들여놓고 있다. 사실상 외제 후추통은 자취를 감춘 상태다.

사실 후추는 국내 재배를 안 하기 때문에 100% 수입이고, 공장제 후추는 국산이나 외산이나 알맹이는 같기 때문에 맥코믹이나 오뚜기나 거기서 거기다. 오히려 수입산이라고 하면 갈아 쓰는 미주, 유럽 수입 브랜드 통후추를 지칭하는데, 그것도 원산지는 대부분 동남아시아이고 선별 기준, 포장 기술이 품질을 보장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코타니 등이 유명하며 일종의 준전문용 향신료 취급을 받는다.

후추 자체는 가정집마다 한 통 정도는 있으나 그렇게 빨리 소진되지는 않는다. 이유는 전술하였듯 고대부터 대중화된 작물이 아니다 보니 후추를 적용한 한국 음식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흡사 미국 가정집에 타바스코 소스는 한 통씩 있으나 제때 소진되지는 않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나마 타바스코는 유통 기한이 비교적 빠르지만 후추는 말려서 가루 낸 것이 주로 유통되어서 오래간다는 게 차이점이다. 상기한 후추를 국내 재배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서 기인한다. 현대 한국 음식 중 후추가 그나마 쓰이는 쪽은 떡국이나 설렁탕 등 담백한 요리에 들어가는 정도가 대부분이며, 당연하지만 비교적 역사가 짧은 응용법이다.

4.2. 일본

일본의 경우 중세시대부터 수출입품 목록에 후추가 들어가는 걸로 보아 후추에 대해 알고는 있었겠지만 요리에 후추를 사용하진 않았다. 일본에서도 생산이 어렵고 귀하여 중국이나 조선에서 비싼 값에 사들이는 중요한 무역 물자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거나, 고추와 같은 매운 음식 자체를 잘 먹지 않던 걸 봤을 때 불교 문화의 영향으로 매운 음식에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문화가 음지에나 있던 당대 일본에서 육류와 궁합이 맞지 생선 등 해산물하고는 안 맞는 후추는 자연히 필요가 없는 물품이었다.

5. 종류

한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은 흑후추로, 일반적인 후추 역시 흑후추를 이른다. 성숙하기 전의 후추 열매를 수확해 건조시킨 것이며, 건조 과정에서 녹색 후추가 짙은 갈색 내지는 검게 변한 것이다. 적당히 복잡하고 강렬한 향으로 가장 대중적으로 쓰일 수 있는 향신료이기에, 가장 폭넓게 판매되고 사용된다. 한식과도 잘 맞는 편이라 한국에서 유통되는 후추는 일부 수입 전문 식자재 취급하는 곳이 아닌 이상 거의 예외 없이 흑후추다.

후추가 나는 곳이나 후추를 사용한 지 오래된 곳에서는 다른 종류의 후추도 사용한다. 백후추의 경우 완전히 성숙한 후추 열매를 수확한 뒤 물에 불려 껍질을 벗겨낸 것이다. 후추 열매의 성숙도도 다를 뿐 아니라 껍질에 포함된 향미 성분이 날아가며, 물에 담그는 과정에서 발효에 준하는 과정(retting)이 일어나기에 흑후추와는 향이 상당히 다르다. 이로 인해 한식과는 다소 잘 안 맞는 편이며, 제대로 된 사용을 위해선 일반적인 후추 레시피가 아니라, 백후추를 강조한 레시피를 찾는 것이 좋다.

녹후추의 경우 흑후추와 기본적으로 조건은 같으나 동결 건조나 아황산 가스 등의 보존 처리를 통해 색을 보존한 것이다. 흑후추보다는 조금 더 강렬한 향을 가지고 있지만, 흑후추와 달리 유통 과정에서 향이 훨씬 더 쉽게 상하는지라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후추가 재배되는 곳에서는 후추 열매를 절임 처리(피클링)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엔 성숙도에 따라 녹색/적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 역시 녹후추와 마찬가지로 유통 과정의 문제 때문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간혹 수입 후추 중 여러 종류의 후추를 섞은 것의 일부에는 적후추(빨간 후추, 또는 핑크 후추; pink peppercorns)가 섞여 있는데, 이 적후추는 후추와는 다른 종이다. 이쪽은 남미 원산의 스키누스(Schinus, 페퍼나무속)[30]에 속하는 열매를 말린 것으로, 후추와 비슷한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다. 흑후추 향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꽤 많지만, 향의 기조가 비슷해 후추 믹스에서 같이 취급하는 것이다.

일부 대량 식자재 업체에서 다루는 보통 네모난 금속 통에 담아 파는 흰 후추는 백후추가 아니다. 단지 공장에서 검은 후추를 곱게 갈은 후 가열 살균 포장한 물건으로, 이 과정에서 후추 특유의 향미가 많이 손상되니 오히려 향이 중요하다면 일반적인 흑후추를 쓰는 것이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후추 가루 특유의 검은 입자가 떠다니는 것에 비해서 비주얼이 더 중요하고, 강렬한 후추 향이 필요 없는 경우(주로 국물 요리 등)에 유용하므로 판매되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된다.

후추속의 식물로 따지면 자그마치 2,400여 종이나 되는 큰 식물군이다. 한국에서도 남해안이나 제주도에도 후추등(Piper kadzura)이 자생하며, 약용으로 썼지만, 역시 매운맛이 없어서 후추 대용으로 사용하긴 힘들었다.

5.1. 통후추

통후추를 넣고 즉석에서 갈아서 뿌릴 수 있는 후추 통(페퍼밀)이 있는데, 향도 좋아지고 드르륵드르륵 돌려서 갈아 넣는 게 꽤 재미있다. 하지만 평소 오뚜기 후추 같은 것에 익숙해져 있다면 강렬한 향에 음식을 못 먹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냥 칙칙 뿌리는 공장제 후추와는 다르게 실제 통후추의 향은 굉장히 강렬하며,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당황스럽다. 부족하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조금만 넣어도 충분하니 자제하자. 물론 맛 들리면 조금씩 조금씩 점점 더 많은 양을 갈아 먹게 된다.

통후추는 갈지 않고 그냥 씹어 먹어도 맛있다. 특유의 매운맛과 향이 우리에게 익숙한 매운맛과 다른 강렬한 맛이라서 먹다 보면 은근 탐이 나게 된다. 특히 우유와 잘 어울린다.

일단 통후추는 한국 요리에도 쓰는 일이 많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 통후추와 후추 갈개(페퍼밀)를 사서 직접 갈아 쓰면 후추 향의 신기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청정원, 오뚜기, CJ제일제당, 농심그룹[31]에서는 이러한 페퍼밀과 통후추를 넣어서 포장해서 파는 것도 있는데, 대형 마트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페퍼밀의 품질이 의외로 괜찮으며 굵기 조정도 된다.[32]

굵기 조절은 되지 않지만 다이소에서 후추 그라인더를 2,000원에 판다. 따로 돈 주고 살 필요가 있나 하겠지만, 위에 서술된 대기업에서 파는 그라인더 포함 후추 통은 가성비가 매우 나쁘다. 차라리 다이소에서 그라인더를 따로 사고, 통후추는 리필 대용량으로 사는 것이 낫다. 참고로 리필용 후추는 대형 마트에서 소형 봉지에 포장된 것보다는 식자재 마트 같은 데서 대형으로 한 통 하는 걸 사서 쓰는 게 양이 많다. 가성비적인 측면에서 좋아 보일 수는 있지만, 후추는 보관 과정에서 향이 날아가기 때문에 굳이 후추 그라인더를 사서 쓸 정도로 후추 향에 민감하다면 사용하는 양을 고려해야 한다.[33]

간혹 제대로 갈지 않고 굵직한 알갱이째로 가열하는 요리에 사용하면 쓴맛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조리 후에 주로 뿌리는 경우가 많다. 가끔 일본 라멘집 등과 같이 통후추를 쓰는 경우가 있으니, 취향에 맞지 않으면 빼달라고 할 것. 흑후추는 조리 전에 넣고 끓여도 크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쓴맛은 나지 않는다.

6. 재채기 유발

몇몇 픽션[34]에선 후춧가루를 들이마시면 재채기가 나오는 묘사가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통후추든 분말 후추든 후추를 써서 요리를 하다 보면 실제로 재채기가 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직접 후춧가루가 코에 들어오기 때문이 아니라 자극적인 향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분 같은 것들로 인한 것이다. 스카프에 묻어 있는 것만으로, 그것도 너풀거리지 않게 목에 잘 묶어놓은 정도로 재채기하게 만들기는 힘들다. 만약 후추에 이런 성분이 있었다면 향신료로 쓰인다는 거 자체가 모순이다. 다만, 갑작스레 목구멍에 매운 게 들어가면서 사레가 들릴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다량의 후춧가루를 코로 직접 들이마시면 코가 간지러운 수준이 아닌, 쓰라리는 고통에 몸부림치게 되는 것이 실상이다. 호신용 스프레이의 영어 이름이 괜히 'pepper spray'인 게 아니다. 재채기를 유발하려면 차라리 더 안전한 밀가루나 코코아 파우더 등 미세한 식용 분말을 흡입하는 것이 낫다.

임진왜란조선군이 후추와 재를 섞어 터트렸다는 야사는 허구이다. 조선 시대 후추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는데 이런 귀한 후추를 아무데나 뿌릴 정도의 여력은 없었다. 다만 승병들이 주머니 또는 석회 주머니를 들고 다니며 터트려서 왜군의 눈을 노린 것은 사실이다.[35]

한겨레가 1월 1일 새해를 맞아 전 세계 100개국의 외국인 1033명이 사랑한 한국어 단어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후추가 순위권에 들었다. 한 사람이 이 단어가 재채기를 하는 소리같이 들렸는데 마침 후추가 재채기를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7. 후추와 건강

후추의 주성분 중 하나인 피페린은 위액 분비를 촉진시켜 소화를 돕는다. 그러나 과도한 위액은 점막에 손상을 주므로 굳이 소화제처럼 따로 챙겨 먹을 필요 없이 음식에 뿌려서 먹는 것으로 충분하다.

고기에 후추 간을 해서 구우면 풍미가 매우 좋아진다. 또한 가열하면 향이 강해지는 특성을 이용해 통후추를 기름 없이 볶은 후에 으깨 사용할 수도 있다. 다만 볶은 후 오래 두면 향이 다 날아가 안 볶은 것보다 못해지니 바로 쓸 양만 볶아야 한다. 또한 피페린 등 향미 물질은 무극성/지용성이므로, 고추와 비슷하게 기름에 향미 성분을 녹여내서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후추를 섭씨 120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발암 물질 의심군(2A)[36]인 아크릴아마이드가 대략 500㎍/kg에서 5,000~7,000㎍/kg 수준으로 10배로 증가한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후추를 뿌리는 양을 생각해 보면 많아야 수 g이므로 크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크릴아마이드는 후추가 아니더라도 전분류, 특히 튀김 요리 등에서도 생겨나며, 이에 따른 규제들(국내 전반 권고치 기준 1,000㎍/kg, 유럽연합 권고치 기준 식품 종별에 따라 50~750㎍/kg)보다 후추의 아크릴아마이드 농도가 높지만, 후추를 먹는 양을 생각해 보면 그 영향은 미미하다. 매운맛 때문에 어린이가 먹는 것들에도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인식은 하되 필요하다면 쓰는 선으로 정리하면 충분할 것이다. 대부분의 발암 물질들이 그렇듯이 한 병 덜 마시고 담배 한 개비 덜 피우는 것이 후추 10통을 안 먹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 음주나 흡연한다고 해도 암에 무조건 걸리는 게 아닌데 후추 먹고 암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37]
이를 한 번에 설명해 주는 영상

피페린은 가공육류의 발색제인 아질산 나트륨과 반응하면 6-나이트로피페로날이 생기는데, 이를 발암 물질이라 다루는 기사들과 블로그 글들이 보이나, 과학적 근거/검증이 부족한 글이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물질은 연관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아 발암 물질의 분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not listed). 독성에 관해선 유의미한 데이터가 검증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후추에 쓰이는 양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아질산염 자체가 보존료로서 필수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점이나, 비료에 의해 채소류에서도 미량 흡수되어 있다는 걸 감안할 필요도 있다. 가공육류 자체가 확실한 발암 유발성(1)을 띠고 있으며, 아질산염도 IUPAC 발암 물질 의심군(2A)에 올라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된다.

피페린이 커큐민이나 레스베라트롤을 비롯한 생리 활성 물질의 흡수와 생체 이용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 #

단 후추를 필요 이상으로 섭취 시 체질에 따라 후추 내 자극적인 물질인 피페린혈관으로도 배출이 되는데 이 경우 몸이 일시적으로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7.1. 루머

'통후추가 아닌 분말 후추는 몸에서 배출되지 않고 쌓여서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위벽에 달라붙는다', '뭉쳐서 소화되지 않는다'는 등의 기상천외한 말들이 네이버 지식인을 중심으로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가짜 정보에 오염되기 쉬운 인터넷 뉴스에서조차 다루지 않는 내용을 도대체 왜 맹신하고 있는 것인지, 그 출처가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는 내용이다.[38]

후추가 중금속도 아니고, 그저 물에 잘 녹지 않는 것을 본 인상만을 근거로 퍼진 루머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39]

또한 후추가 암을 유발하고 노화를 촉진하며 심지어 정력 감퇴까지 일으킨다는 루머도 있다. 암 유발은 상기 언급한 바대로 자연 상태로 정상적인 양을 섭취할 경우는 문제가 없는 동시에 비단 후추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노화를 촉진한다는 이야기도 전혀 근거가 없다. 정력 감퇴 루머 때문에 후추를 안 먹는 중년 남성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 또한 의학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

결정적으로 기원전 시대에서부터 이용되어왔던 향신료가 몸에 해악을 끼쳤다면 진작에 식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8. 미디어에서의 후추



[1] 이 매운맛은 캡사이신이 아닌 피페린이라는 유기 화합물로 인해 나오는 것이다. 양파나 마늘처럼 열을 받으면 매운맛이 사라진다.[2] 사실 한국어에서 "호" 자로 시작하는 많은 물건들이 거의 이런 의미다. 호박, 호두, 호주머니 등…. 비슷한 접두어로 당(唐)~이 있다. 호(胡)는 몽골족이나 만주족에서 유래한 것을 뜻할 때 많이 쓰이며 (소중화를 자처하던 조선의 입장에서) 조금 문화적 멸시의 느낌이 있는 반면, 당(唐)은 그저 한국이 조선 또는 고려라고도 불리듯 중국의 이칭으로 쓰인 것이다.[3] 종 모양을 닮았다 하여 Bell.[4] 고추만을 나타내는 단어로는 Chilli를 주로 사용한다.[5] Chilli라고만 하면 보통 가루를 내지 않은 고추로 생각하기 쉬워서 고춧가루 형태의 제품은 pepper가 거의 반드시 붙는다. pepper 단어 자체에 가루 형태라는 인식까지 붙어버렸기 때문에 통후추를 whole pepper라고 따로 파는 것과 같은 이유.[6] 크기와 모양이 바나나 같다.[7] 2020년 기준 현재 후추의 생산량에 있어 인도가 아닌 동남아시아의 베트남이 압도적 1위이다. 그 뒤를 브라질, 인도네시아, 인도, 스리랑카, 중국, 말레이시아가 잇는다.[8] 람세스 2세는 생전 매부리코를 지니고 있었고 본인도 이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파라오 본인이 마음에 들어 했던 외모적 특징이었기 때문에, 미라화 과정에서 주저앉는 것을 방지하고자 코에 후추 알갱이를 채워 넣어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는 처리를 해놓은 것이다.[9] 후추가 귀중한 가치의 상납품으로 쓰이는 것은 이후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백 년 뒤, 알라리크가 로마를 포위하고 강화를 위해 내세운 조건도 금 5천 파운드, 은 3만 파운드, 후추 3천 파운드, 비단옷 4천 벌, 다홍색 옷감 3천 필이었다.[10]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지금도 그렇지만, 아라비아해와 홍해는 항해하기 아주 껄끄러운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악숨 왕국 입장에선 시간이 쌓아올린 노하우 같은 기술이었겠지만, 이웃인 이집트 왕국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겠다.[11] 이때의 영향으로 인해 해상 향신료 거래의 중심지는 홍해의 끝인 수에즈의 건너편 도시인 알렉산드리아가 맡게 되었다.[12] 호라티우스의 풍자시 1권 2장의 서두에 나오는 'pharmacopolae'란 단어도 향료상을 빗댄 단어다.[13] 후추속의 식물로 후추와 매우 가까운 관계이다. 후추와 마찬가지로 열매가 송이처럼 열리지만, 송이 내의 열매들이 서로 들러붙어 하나의 길쭉한 덩어리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라 영어로는 long pepper라고 부른다. 특유의 매운맛이 후추보다 강한 것이 특징으로, 한때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14] 다만 실제 대다수의 식탁에 후추가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이 서적은 당시 유행이던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는 용도로 쓰여진 책자였기에 당대 요리법의 유행이었던 후추를 쓰는 레시피가 많이 실렸다고 생각하는 게 옳을 것이다.[15] 향신료뿐만이 아니라 역시 귀했던 시절에는 차를 우려내고 남은 잎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흔했다.[16] 대개 베네치아아말피, 제노바 같은 도시 국가의 상인들이었다.[17] 계피 새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대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서 그 실재에 대해 회의적인 언급을 하였고, 플리니우스도 향료상들이 가격을 올리기 위해 생긴 뜬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계피 새의 일부 전승(계핏가루 같은 향신료들을 둥지 삼아 부활한다는 등)은 이후 불사조 설화의 원전이 된다. 불사조가 '불'과 연관을 갖게 되는 것도 계피 새의 이야기와 융화되었기 때문.[18] 후술하겠지만, 이로 인해 중세 시기의 후추가 어마무시한 가격이었다는 오해가 퍼지기도 하였다.[19] 프랑스와 인접한 국가인 독일에서는 '글뤼바인(Glühwein)'이라 부른다. 만드는 방법 역시 거의 똑같다. 뱅쇼는 현대의 음료들에 비교하더라도 맛이 괜찮은 편이라 그런지 현재까지도 남아 여기저기서 팔기도 하며, 감기 걸렸을 때 민간요법으로 마시기도 한다.[20] 한국의 경우 수정과나 백숙을 끓일 때 통후추를 넣는 것 또한 향신료가 귀하던 시절의 잔재이다.[21] 다만 현대에도 최고급 스테이크 조리법 중에 겉면에 소금과 후추를 반죽처럼 바르고 구워내서 겉의 향신료 반죽과 바깥쪽을 덜어내고 먹는 방법이 있긴 하다.[출처] - 중세 말 유럽에서의 향신료[23] 현대 인도의 탄두리 치킨(Tandoori chicken)이 이 조리법과 비슷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탄두리 치킨은 맛은 매우 좋아서 이런 쓰레기 요리들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사실 탄두리 치킨은 원래 인도 요리라 인도 특유의 향신료를 듬뿍 썼을 뿐 아주 정상적인 요리고 과시용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24] 현대에 들어서 여타 향신료가 과거에 비하면 헐값 수준이 되었음에도, 사프란은 그 특유의 추출 방식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가격을 유지 중이다.[25] 이들의 구매력이 오른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서유럽 상권의 중심지가 되는 저지대발렌시아의 태동, 프랑스와 독일의 은광 개발로 인한 화폐의 보급 등이 있다.[26] 선원은 귀중한 인력이었지만 소모되는 일이 많은 인력이기도 했다. 한때 영국도 인력 소모를 감당하지 못해 해군을 군축하려 한 시기가 있었고,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던 네덜란드는 죄수의 감형을 조건으로 선원을 징발했다. 포르투갈은 1500년-1700년 사이에 본토의 인구수가 고작 100만 명에서 200만 명밖에 늘지 않았는데, 비슷한 규모였던 아일랜드의 인구가 1600년-1700년 사이 100만 명에서 190만 명이 된 점을 볼 때, 선원으로 인한 인력 손실이 막심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보낸 배 10척 중 9척이 침몰한다는 것은 배만 침몰하는 게 아니라 거기 탄 선원들도 다 죽는다는 것이므로….[27] 카나리아 제도의 남쪽에 위치한 서사하라 인근의 도시이다. 대항해 시대 이전 유럽인들은 보자도르곶 남쪽의 땅은 펄펄 끓는 유황물이라고 여겼고, 보자도르곶을 발견하고 남하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대서양 탐험에 불이 붙게 된다.[28] 조선에서는 귤강광(橘康廣·다치바나 야스히로)라고 불렀으며, 쓰시마 다이묘 소 요시시게(宗義調)의 가신이다.[29] 도요토미 히데요시유즈야 야스히로에게 명한 것은 조선으로 하여금 자신을 인정하고 또 정명가도를 받아들이는 것이었지만, 이것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도리어 조선으로부터 무시만 당했다. 이에 격노한 히데요시는 야스히로를 참형에 처하고 곧바로 침공에 돌입한다.[30] 캐슈넛과 마찬가지로 옻나무과에 속해서 견과류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31] 맥코믹사(McCormick)의 후추를 수입해서 판다.[32] 대상(청정원)에서 나오는 통후추가 유리 용기 및 세라믹 밀이기 때문에 추천한다. 즉 용기를 구입하면 통후추가 따라오는 식.[33] 향이 날아가도 상관없으면 상기한 방법이 가성비는 좋겠지만, 그럴 거면 그냥 갈린 채로 팔리는 기성품 후추를 써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34] 1913년작 미국의 단편 소설 '사자의 미소'에 트릭으로 등장했다. 여러 추리 모음집에도 빈번히 등장한 트릭이다. 역전재판 시리즈에서는 역전 서커스에서 이 트릭을 그대로 갖고 오면서 오류까지 같이 갖고 와 비판을 산 바 있다.[35] 석회가 수분과 접촉하면 열을 동반한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데 조선군들이 이를 터트리며 노린 것은 바로 일본군의 눈이었다. 석회가 눈에 있는 미량의 수분과 결합해 열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실명까지 할 수 있다. 18세기유럽이 배경인 전략 전술 게임 엠파이어: 토탈 워에서도 곡사포나 구포로 쏠 수 있는 석회가 든 탄환(quicklime)이 존재한다. 노리는 효과는 역시 같다.[36] 애초에 발암 물질 의심군(2A)에는 뜨거운 물 같은 것도 포함된다. 기준치 이하의 범위 안에서 섭취하는 건 문제가 없다.[37] 당장 떡국이나 칼국숫집에 가서 후추를 뿌려서 먹어보자. 국 한 그릇을 후추 향으로 가득 채우는데 겨우 티스푼으로 반 스푼도 필요하지 않다는걸 알 수 있다. 겨우 그 정도 양으론 암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38] 후추가 위액 분비를 촉진하여 소화를 돕지만 과량 섭취 시 위벽을 자극할 수 있는데, 여기서 위벽 관련 루머가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39] 이와 별개로 많은 분말 후추 시제품에서 쇳가루가 기준치 이상 검출되었다.# 후추를 갈아낼 때 기계에서 떨어져 나와 포함된 모양. 물론 이것도 후추가 쌓이는 건 아니다.[40] 이 소설은 사실 주 독자층이 아동이기 때문에 살상력이 있는 무기를 쓴다면 그것도 문제가 많다. 호첸플로츠가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였다면 주인공 콤비는 이미 1부에서 끔살당했을 것이다. 물론 그냥 어린애들이니 얕봐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실제로 소금탄이라는 비슷한 물건도 있었으니 고증이 아주 틀린건 아니다.[41] 하지만, 대항해시대 시리즈 최고의 히트작인 2편을 기준으로 보면 그리 매력적인 교역품이 아니다. 적은 무역 횟수로 최대한의 이익을 뽑을 수 있는 아프리카/아메리카-일본의 금은 교역이나 이익 비율 자체는 낮지만 이익 자체는 확실히 보장되면서 단시간에 여러 번 왕복할 수 있는 이스탄불-아테네와 같은 극근거리 무역로도 있는 데다가 하다못해 암스테르담-팀북투의 유리구슬-금/상아 교역도 유럽-인도 후추 교역보다는 이동 거리가 짧고 이익도 잘 나온다. 즉 좋은 무역품이기는 하지만 더 매력적인 대안이 있으며 3편에서는 무역품의 공급량 제한과 함선 중량 제한이 생기면서 양에 비해 가볍고, 대량 구입이 가능하면서 판매가는 최고 수입인 동시에 구입가는 저렴한 후추가 정향이나 중국산 비단, 도자기 등과 함께 최고 수준의 교역품이 되긴 했지만 정향에 밀려 콩라인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패키지 버전 대항해시대에서 후추의 상품 경쟁력이 가장 높은 시리즈인 3편 기준으로 보면 선박 수송량 대 물품 공급량(구매 가능량)의 제한이 꽤 빡센 데다 루트 개척만 잘하면 어지간한 상품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는 4편에 비해 이익이 나는 상품과 그렇지 못한 상품이 딱 나뉘어 있고, 게다가 악명 높은 입출항 시 20일 경과 시스템 때문에 단거리 왕복을 반복하는 교역보다는 입출항 횟수를 최소화하고 한 번 교역에 이익을 극대화하는 원거리 교역이 훨씬 매력적이므로 후추 교역이 제법 유용하기는 하다. 정향에 밀려 콩라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카락이나 다우 이상급의 대형 함선 8척을 채워 교역할 경우 정향만으로 적재를 모두 채우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정향과 후추를 함께 사들이는 쪽이 더 일반적이다.[42] 오픈 시절에는 약 5천 두캇이었으나 이후 패치로 후추/육두구/메이스/크로브의 유럽 내 가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제 캘리컷에서 후추 대신 사파이어를 사오면 순수익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이베리아 및 북유럽 지역에서 1.4, 남프랑스 및 이탈리아에서 최저가인 9천, 발칸반도에서 1.2에 매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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