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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7-24 23:03:47

솔리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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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2세 시대의 솔리두스

1. 개요2. 역사3. 흔적

1. 개요

솔리두스(라틴어: solidus) 혹은 노미스마(그리스어: νόμισμα)는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었던 금화이다.

2. 역사

기존의 아우레우스 금화를 대체하여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에 도입되어 이후 1,000여 년간 사용되었다.

4.48g의 순금으로 주조되었으며[1] 당대 정제기술의 한계로 순도는 95.8%이다.

로마 제국화폐 제도가 은본위제도에서 금본위제도로 변경된 결정적 계기가 된 화폐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제국 정부 손에 들어오는 금이라는 금은 싸그리 다 긁어모아 솔리두스를 대량으로 발행하였고, 일부 조세 항목은 솔리두스로만 수납 받기까지 함으로써 제국 내의 원활한 유통을 보장했다. 이때 콘스탄티누스는 솔리두스에 배율을 붙여 환산할 수 있는 화폐 체계를 만들지 않았으며, 그에 따라 기존의 은화 데나리우스와 동화 아스 두 규격은 폐지되었다.

그 결과 콘스탄티누스 자신을 포함하여 이후 황제들은 자유롭게 은전과 동전의 가치를 절상하거나 절하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금화 솔리두스만큼은 그 가치를 확정하고 준수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솔리두스에 절대적인 지위를 약속한 것을 고스란히 준수하였으며, 그의 통치 기간 내내 은전과 동전의 순도와 무게는 오락가락하였어도 솔리두스의 순도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다. 이것이 솔리두스는 절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전통으로 굳어져 솔리두스는 이후 800년 동안이나 절대적 신용을 받는 기축 통화로서의 입지를 철통같이 지킬 수 있었고, 제국 내에 아무리 기상천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솔리두스가 최후의 결제 수단으로서 제국의 뿌리를 지켜주었다.

이렇게 안정된 솔리두스 금화의 존재는 이후 로마 제국이 1,000년 이상을 더 존속할 수 있게 한 핵심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부가 화폐를 찍어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이 인플레이션이 시장에 반영되기 전에 해당 화폐를 입수한 "권력에 가까운 측"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지 않고 결제를 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 하층민으로부터 돈을 훔치는 효과가 발생하는데, 이를 '칸틸론 효과(Cantillon effect)'라 한다. 그런데, 솔리두스 금화는 그 어떤 미치광이도 감히 건드릴 수 없었으므로, 부유층이 대규모 결제를 할 때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창고에 처박아둔 은전을 쓰거나 솔리두스를 쓰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은전은 언제든 가치가 더 개판이 될 수 있으니 그 귀중한 솔리두스만큼이나 함부로 끄집어 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층민은 은전의 결제 단위도 그 액수가 커서 그리 자주 사용하지 않기에 결국 황제가 아무리 돈을 찍어내도 하층민으로부터 갈취할 수 있는 액수에는 한계가 걸렸고, 상유층 중에서도 권력에 가까운 유력자들에게도 실질적으로 일시적인 유동성 증가 혜택에 한계가 걸렸다. 물론, 결과적으로 은전의 씨가 마름으로써 조세 파탄으로 이어지게 되었지만, 후술하듯 이 조세 파탄은 어떻게든 운이 좋게 제국 제정에 일시적인 안정이 찾아오기만 하면 솔리두스의 절대적인 안정성을 바탕으로 언제든 해결이 가능한 문제로 그 규모가 제한되었다.

이 금화를 제국 동방의 그리스어권에서는 아예 ''이라는 뜻의 "노미스마(νόμισμα)"라고 불렀고, 동로마 제국 시기에는 솔리두스와 노미스마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제국 외부 지중해권에서는 비잔티움에서 유래한 "베잔트(bezant)"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회계단위이자 일종의 기축 통화로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원본 솔리두스를 흉내낸 유사 화폐 발행이 굉장히 흔했다.[2]

6세기에 이르면 서로마 제국은 물론이고 동로마 제국의 경제 상태도 개판이 되어, 은전인 실리콰의 가치가 파멸적으로 무너져내려 제국에 유통되는 화폐가 어마어마한 거액의 금전인 솔리두스, 어마머아한 소액의 동전인 누무스 뿐일 수준으로 화폐 유통 상태가 파멸해버렸는데, 은전의 가치가 하도 신뢰를 받지 못하다보니 새 은전이 발행되는 족족 기존 은전부터 전부 창고에 유보금으로 틀어박혔기에 은전이 아예 시중에 나오는 꼴을 볼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3]

그런데 막상 솔리두스와 누무스 간에는 아주 큰 액면가 격차가 있었기에 제국 내에서 그 중간 단위인 은화 없이 "중간 규모"의 거래를 하기가 매우 난감해졌다. 세금으로 걷어야 하는 가치는 은전인 실리콰로 징수해야 하는 규모였지만, 시중에서는 아무도 실리콰를 쓰지 않았고 로마 정부 자체도 실리콰를 신뢰하지 않아 실리콰로 징세하지 않았으므로 현물로써 세금을 징수하는 것 말고는 징세 수단이 없을 판이 되어버렸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현물 징수 체계는 중간에 누락되거나 손실되기 십상이라 더욱 높은 세율 책정을 유도했고, 더 높은 세율은 다시 더 많은 현물 중도 손실을 유발해 제국을 경제 침체의 늪에 빠트렸다.

이 문제는 제국의 회계 공무원 출신 황제인 아나스티우스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옹립되면서 해결되었는데, 아나스티우스는 아주 간단하게 솔리두스 화폐의 n분의 1 가치를 책정한 화폐 체계를 도입하여 제국 내에 적극적으로 통용되던 누무스의 가치와 명확히 연계시킴으로써 은전 실리콰의 가치를 복원하였다. 누무스의 가치가 실리콰의 600분의 1, 솔리두스의 14,400 분의 1로 규정됨으로써 누무스의 막강한 유통력과 솔리두스의 절대적 신뢰성의 힘을 끌어와 실리콰에 대한 신용을 복원한 것이다.

솔리두스는 여전히 "비축용 통화"로써도 지나칠만큼 고가치 화폐였으나, 솔리두스의 위신이 너무나 대단했기에 솔리두스 자체는 그대로 유지하고, 대신 세미시스, 트리미시스라는 이름으로 0.5 솔리두스, 0.25 솔리두스 가치에 상응하는 보조용 금화가 발행되었다. 마찬가지로 실리콰와 누무스 간에도 그냥 쓰기에는 큰 액면가 차이가 있었던 탓에 0.5 실리콰, 0.25 실리콰도 발행되었다. 다만 실리콰의 하위 단위 은전은 솔리두스 쪽의 그것에 비해 그리 많이 유통되지 않았다.[4]

이 개혁 이후로도 400년간 솔리두스는 그 가치를 철통같이 유지했지만, 10세기 말 재원 조달을 목적으로 경량금화인 '테타르테론(τεταρτηρόν)'이 생겨나면서 점차 소량으로 발행되어 그 유통량이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고,[5] 11세기 중엽부터는 본격적으로 제국이 몰락하면서 솔리두스마저도 순도 하락이 시작되어 미하일 7세 시기에 이르면 금화의 순도가 1/4로 떨어지는 등 가치가 결정적으로 폭락하여 제국 화폐 체계가 붕괴해버렸다.

이에 알렉시오스 1세는 1092년에 화폐개혁을 단행하였고, 구 노미스마가 지니던 최고액 금화의 지위를 대략 '고도로 정련된 화폐'라는 의미의 신(新) 노미스마인 '노미스마 히피르피론(νόμισμα ὑπέρπυρον)'으로 대체하였다. 하지만 히피르피론은 구 노미스마만큼 대량으로 주조되진 않아, 대규모 결제용으로 간간히 쓰이던 노미스마와 달리 실질적으로 결제용 화폐로써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납세용 화폐 또한 순은화가 아닌 좀 더 저렴한 합금인 금동화, 은동화로 바뀌는 등 인플레이션과의 타협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식으로 제국 정부는 소액화를 통해 현금화율을 일정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노미스마를 통한 인플레이션 보호 효과를 존치시키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국의 경제권은 노미스마로 상징되는 금본위제도에서 은본위제도로 점차 옮겨갔다.

이렇게 11세기 말 시작된 제국의 화폐 질서 혼란기를 종식시킨 신 화폐체제의 대표주자인 히피르피론은 구 노미스마의 7/8의 순도를 지녀 콤니노스-앙겔로스 시대가 끝나는 1204년 이전까지 대략 7할 이상의 순도로 제법 안정된 가치를 유지하였다. 13세기 중반 부터는 베네치아두카트에게 그 위상을 내어주게 되었으나, 노미스마 자체는 가치가 우하향하긴 하였어도 급격히 가치가 변동되는 일은 없었기에 4차 십자군 원정이라는 대참사가 일어나기 전 까지는 여전히 명망 있는 화폐 입지를 유지했다.

4차 십자군으로 제국이 풍비박산나고 라틴 제국이 옹립되어 통일 제국 경제권이 소멸해버린 시기에도 노미스마는 망명 정권하 하위 화폐들의 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5할 이상의 순도를 유지하여 유럽에서 평균 이상은 하는 화폐로서 자존심을 유지했다. 하지만, 팔레올로고스 왕조 시대 제국의 상황이 악화되며 완전히 은본위 사회로 접어들며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화폐로 전락하였으며 제국의 자존심으로서 형식적으로 소량의 히피르피론이 발행되는 수준으로 몰락하였다. 14세기 말에 이르러 금 수급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장부상의 단어로만 남게 되었으며, 1453년 제국이 멸망하면서 명맥이 완전히 끊기게 되었다.

3. 흔적

유럽에서는 화폐의 대명사였는데, 고용된 군인들이 급료로 화폐를 받았기에 '금화 받는 사람'이란 뜻에서 군인을 가리키는 용어 "Soldier" 및 로망스어권 계급 "Soldat"(프랑스어), "Soldado"(스페인어) 등으로 파생되었다.
[1] 솔리두스라는 이름부터가 순금임을 의미하고 있다.[2] 솔리두스보단 훨씬 순도가 떨어지지만, 솔리두스를 흉내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지역 왕조들의 권위가 과시될 정도로 솔리두스의 입지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솔리두스는 너무나 고가치 화폐라서 적당한 짝퉁(...)들이 꽤 실용성이 있기도 했고.[3] 이는 은화끼리는 명목상 동일한 가치를 지니므로 법정교환비가 고정되는 효과가 있어 그레샴의 법칙이 작용하여 저순도 은화(악화)가 고순도 은화(양화)를 몰아내고 은화 통화량의 주류가 되지만, 정작 그와 동시에 저순도 은화에 대한 신용 자체가 붕괴하면서 그레샴의 역법칙인 티어의 법칙(Thiers' Law)이 적용되어 교환비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은 금화나 동화 등 양화를 상대로 악화로서 밀려나서 쓰이지 않게 된 것이다.[4] 한편, 트리미시스는 유독 서유럽에서 매우 인기가 있어 대량으로 유통되며 유사 화폐도 상당히 많이 발행되었다. 정작 제국 내에서는 그렇게 많이 쓰이진 않았다.[5] 단, 이때까지도 솔리두스의 순도는 감히 누구도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꿩 대신 닭으로 따로 열화판을 찍어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