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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07:03:32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철도사고 요약도
발생일 1993년 3월 28일 17시 29분
참사 D[dday(1993-03-28)]일
유형 탈선, 전복, 노반침하
사고원인 삼성종합건설의 무리한 발파로 인한 선로노반붕괴
발생 위치 부산직할시 북구 덕천2동
경부선 구포역에서 직선거리 약 0.9㎞[현위치]
탑승인원 승객: 276명
피해 인명 78명 사망, 198명 부상(중상 54명, 경상 144명)
차량 기관차 및 발전차 대파, 객차 2량 탈선, 파손
시설 지반침하로 인한 노반붕괴
기타 알 수 없음
운영기관 대한민국 철도청
사고열차 열차번호 #117[2]
출발역 경부선 서울역
종착역 경부선 부산역

1. 개요2. 경과
2.1. 사고 과정2.2. 사고 원인2.3. 사고 여파
3. 여담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1993년 3월 28일 17시 29분 부산직할시 북구 덕천동 경부선 구포역에서 북쪽으로 약 900m 떨어진 지점에서 서울발 부산행 제117호[3]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 및 전복하여 78명 사망, 198명 부상(중상 54명 경상 144명)을 기록한 대참사이다.

파일:attachment/gupo02.jpg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혹은 구포 무궁화호 참사라고도 하며 줄여서 구포참사라고 통칭한다.

당시 KBS 9시 일요현장 동영상
당시 MBC 뉴스센터 동영상
당시 뉴스 보도 동영상

2. 경과

2.1. 사고 과정

인명피해가 많은 대형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가 생존[4]한 덕분에 일련의 전후 상황이 상세히 파악 가능했다. 당시 117호 무궁화호는 전역인 양산 물금역을 지나고 구포역[5] 정차를 앞두고 시속 85km 속도로 해당 구간을 통과 중이었는데 사고 지점 100m 전인 덕천2동 빅토리아호텔 뒤 덕천천 앞에 이르렀을 적에 사고 지점 선로의 지반이 무너지는 모습을 기관사가 발견하여 비상 급제동을 시도했지만 제동거리가 부족했던 탓에 결국 견인 기관차였던 7116호, 발전차와 객차 2량이 무너진 지반으로 전부 곤두박질쳤다. 뒷차량들은 구덩이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탈선했다.

파일:attachment/gupoaccident.jpg
파일:attachment/gupoaccident2.jpg

위 두 사진에서 아래쪽에 있는 차량이 발전차이고 위에 있는 차량이 기관차이다. 객차 뿐만 아니라 앞의 기관차도 반을 날려먹었을 정도인데도 발전차는 외형이 거의 멀쩡할 정도로 단단했던 만큼 사고 당시의 충돌에너지량은 상당했을 것이다.

[ 충격적일 수 있으니 열람 주의 ]
파일:attachment/gupo03.gif

기관사의 신속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기관차 및 발전차 바로 뒤에 연결된 객차 2량은 구덩이에서 전복하여 충돌하였다. 특히 맨 앞의 객차는 각종 기계들로 가득 찬 단단한 쇳덩이와 같은 발전차의 바로 뒤에 직결된 상태에서 충돌하였다. 서행 중도 아닌 85km/h의 속도로 중속 주행 중에 100m 전방에서 갑자기 노반이 무너져 내린 상황이다 보니 기관사가 제대로 손쓸 겨를도 없이 그 속도 거의 그대로 바로 앞의 발전차에 충돌하였고 기계 설비가 가득하여 단단하고 무거운 발전차는 상대적으로 강성이 약한 객차를 앞에서부터 뒷쪽으로 문자 그대로 으깨 버렸다. 결국 발전차와 직결된 객차는 사진과 같이 휴지처럼 구겨질 정도로 끔찍하게 파손될 수밖에 없었으며 인명피해도 이 객차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당시 보도나 후일담에 의하면 형태가 심하게 훼손된 시신들의 잔해를 수습하는 등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탑승하고 있던 사람들은 2명을 제외하고 전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생존자 2명의 증언에 의하면 대파된 객차 내에 시체가 산더미처럼 있었다고 한다.

이때 부산경찰과 철도청, 부산직할시 소방본부 소속 119구조대119구급대[6], 부산직할시 공무원, 인근 군부대, 민방위 대원 등이 동원되어 구조작업을 벌였으나 곧 날이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린 데다 사고 현장으로 접근하는 도로가 정체를 빚는 등[7] 구조작업이 늦어져 인명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8]

해당 기관사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는데 지반이 무너진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고 기관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의 조치를 다했기 때문이다.

2.2. 사고 원인

파일:attachment/gupo05.jpg

위 그림에는 삼성종합건설의 미허가 구조변경 사실이 적용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는 노반 바로 아래에서 발파, 붕괴되었다.

사고 당일 MBC 뉴스센터의 꼭지 중 하나. 철도청의 긴급대책본부 구성을 전하는 기사다. 58초 경에 사고 원인이 ' 우리청과 협의 없이 삼성종합건설에서 노반 25m 지하에 한전 전선관 매설작업 중 노반침하 '라고 분명히 명시되었다.

선로의 지반침하, 즉 땅이 꺼진 이 황당한 사건의 원인은 사고 당일 밝혀졌다. 당시 사고현장은 한국전력이 1989년 12월부터 2백억 원을 들여 화명동 북부산변전소-감천동 남부산변전소 간의 345kV 4회선 지중선로 지하전력구 공사현장이었으며 1994년 6월 완공 예정인 곳이었다.[9] 설마설마 했으나 실제로 지반 아래에서 지하전력구 설치를 위해 발파 작업을 했음이 드러났다. 그것도 시공사인 삼성종합건설 맘대로.

삼성종합건설이 한 짓만 놓고 보면 영화에서나 보는 열차 테러공성전에서 성벽 아래로 땅굴을 파 붕괴시키는 원리와 동일하다. 실제로 공항의 경우 이런 방식의 폭파 테러로 주요 시설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활주로나 계류장 밑으로 지하차도를 잘 파지 않는다. 철도는 중간에 멈출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좀 낫지만 지하차도는 테러리스트가 중간에 잠깐 내려서 폭탄을 설치하고 슬쩍 도망친다면 속수무책이다. 김포국제공항만 해도 지하차도를 뚫으면 부천까지 5분도 안 걸리지만 이런 문제로 강서구 외발산동 혹은 인천 계양구 상야동 쪽으로 뺑 돌아간다. 서해선이 여길 지나가는데 최대한 공항 바깥쪽으로 돌게 공사했다.

실제 발파는 하도급을 받은 한진건설이 수행하였지만 삼성종합건설의 지시 하에 일어난 일이라 책임은 한진건설과 삼성종합건설 둘 다에게 있었다. 이들은 철도청과 어떠한 협의나 통보도 없이 공사를 수행했다.

철도법에 따르면 선로 밑 발파 작업은커녕 선로 주위에 나무도 함부로 못 심게 되어 있다. 선로 지하물의 공사와 설치는 철도청 철도건설창(현 국가철도공단)이 하도록 되어 있다. 즉 시공사가 법을 무시하고 공사를 진행한 100% 인재였다.

2.3. 사고 여파

파일:attachment/gupo04.jpg

600여명의 승객 중 28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후속 조치로 선로 30m 근처 공사는 교통부에 신고를 해야 하고 벌칙 조항도 강화되었다.

이 사고로 삼성종합건설 사장 남정우와 김봉업 한전 지중선사업처장 및 현장관계자 허종철 등 공사 관계자 16명이 구속되었으나 대법원은 회사 임원급 6명에 대해서 과실치사상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버렸고 이들의 뇌물 공여에 대해서 집행유예로 2심에서 유죄로 인정하는 정도에 그쳤다. 사고 이후 연이은 대형참사가 지속되면서 엄정한 법집행을 해야 할 사법기관에서 책임이 가장 큰 경영진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특히 관련자 중 남정우 삼성종합건설 대표는 사건 이후 삼성신용카드로 전보됐다.

결국 시공사였던 삼성종합건설은 당시 법률상 최고 기간이었던 6개월 영업 정지를 당했고 해당 기간 동안 국내 수주는 불가능해졌으며 2550만원의 껌값 과징금을 물었고 6개월 영업정지로 인해 예상되는 수주 손실액이 1조원이었다. 이후 삼성종합건설은 삼성건설로 사명을 바꾸었다가 1996년 삼성물산에 흡수되어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됐다. 사실상 이 참사의 영향으로 엄청난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고자 내린 그룹 차원의 자구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름만 바꿔 봤자 똑같은 놈임은 다 알았기 때문에 삼성물산은 부산 지역[10]에서 상종도 못 할 쓰레기 기업으로 낙인이 찍혔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이 사고 이후 10년 가까이 부산권 지역에 아파트를 비롯한 각종 건설 사업과 관련하여 얼씬거릴 수 없었고[11] 부산 삼성의료원 혹은 삼성 실버타운[12] 같은 부산 지역에서 건립을 계획했던 것들이 모두 엎어졌을 정도로 그 후폭풍이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13] 이 사건 이후 삼성 브랜드는 구매하지 않거나 기피하는 사람도 생겼으며, 특히 이건희를 씹어죽일 놈이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삼성물산이 부산 지역에서 다시 이미지를 회복한 때는 2014년 래미안 해운대의 건설 이후였지만 삼성건설은 이 사고 이후 '삼성물산 건설부문'이라는 사명과 이름 그대로 물산 아래에 소속된 부서에서 독립계열사로의 지위를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삼성건설이 싱가포르 등 동남아에 진출한 계기가 되었는데 국내 공사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입찰을 받지 못해 해외 진출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해외 진출은 토목플랜트 분야가 대부분이었지만 아파트 등 주거와 사무용 건물이 타깃임이 특기할 점이었다.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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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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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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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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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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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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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월 18일
22 중구 남산동 판자 아파트 화재
1964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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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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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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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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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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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7월 17일
67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
1956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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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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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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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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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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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에는 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사건도 포함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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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위치] 덕천배수장 및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덕천역 7번 출구 인근[2] 현재는 #1209열차가 해당 열번을 사실상 계승 중이다.[3] 당시 이 열차는 12시 45분 경 서울역을 출발해서 17시 41분 경 부산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4] 사진을 보면 기관차 전면은 거의 멀쩡하다. 오히려 엔진이 있는 후부가 박살났다.[5] 현재와 달리 사고 당시는 화명동 일대가 개발 바람이 불기 전이라 화명역은 없었다.[6] 1993년이면 이미 부산소방본부에 중부/부산진소방서에 119구조대가 발대해 있었다. 119구조대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발대했고 구급대는 더 앞서 1981년부터 운영되었다.[7] 해당 지역에 금곡대로, 백양대로만덕대로가 있지만 금곡대로는 사고 8개월 전인 1992년 7월 21일부터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덕천역 구간 건설, 백양대로는 1992년 8월 31일부터 구명역구남역 구간 건설 착수로 인해 혼잡한 상태였다. 만덕대로는 당시에도 상습 정체구역으로 유명했다.[8] 구조가 늦어짐으로써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는 바람에 사고난 다음주에 하나회 콤보로 이미 김영삼에게 찍혀 있던 이필섭 합참의장이 책임지고 경질되었다. 뭔 말이냐면 구포참사와 같은 전국구 대형재난은 소방청이 아직 없었고 민방위 소방국인 시절에는 합참의장이 내무부 장관과 함께 실질적인 지휘자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소방청이 생긴 2000년대 이후에는 소방청장이 재난구조 지휘자가 되었다.[9] 여담이지만 해당 구간 지중화 건설은 당초 예정보다 3년이 더 소요되어 1997년 4월 30일에 완공됐다고 한다.[10] 아이러니하게도 부산 부전동에 한때 계열사였던 CJ제일제당 설탕제조 공장이 있었다.[11] 다만 아래 여담 문단에 서술된 것처럼 사고 구간을 지하로 관통하는 부산 도시철도 3호선 본선 및 구포역 구간을 삼성건설의 후신인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1998년 5월 26일에 계약을 맺고 건설했다. 조달청 계약현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12] 삼성그룹의 실버타운인 삼성노블카운티는 본래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구서IC 근처(구서동 산43-1)에 1990년대 중후반에 건립될 예정이었으나#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사고로 인하여 부산에서 삼성물산에 대한 인식이 워낙 시궁창이 되어서 시민들의 반발이 상당했기 때문에 결국 구서동에 건립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건립하게 되었다.[13] 다만 부산MBCPSB 등 부산 지역 방송에는 광고가 나오긴 했다.[14] 심령, 귀신 주제로 유명한 유튜브 채널인 윤시원 로스트에서 괴담을 확인하는 영상을 다뤘다.(구포역 무궁화호 열차사고 당시 비가 왔다. 영상에서도 차안에서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15] 부산 지하철 3호선 311공구. L=2,239m. 공사기간: 1998년 5월 28일 ~ 2005년 3월 31일. 공사구간 시점도 경부선 노반 아래부터이다.[16] 당시에는 적의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 적 참호 바로 아래까지 갱도를 파고 난 후 발파하여 참호와 참호 사이에 빈틈을 만들거나 참호를 돌파하는 경우가 많았다.[17] 당시 사고 사진을 보면 동력차 뒷부분부터 3호차까지 바퀴가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관절대차가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