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반공주의
1. 설명
반공주의를 표방했던 인물들을 정리한 문서. 정치인으로서는 단순히 공산주의를 싫어한 수준이 아니라 국내외 공산주의 금지 등 탄압에 적극적으로 나섰거나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하는 등 뚜렷한 반공 행적이 있었을 경우에만 기술하도록 한다.2. 정치인
확고한 사회주의 성향이었지만 공산주의에 반대했던 인물은 ★, 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인물은 ☆, 주류 보수주의나 온건 보수주의 성향의 인물은 △, 전통주의 혹은 권위주의적 보수주의 성향의 인물은 ▲, 파시스트 혹은 (비파시스트) 극우계 인물은 ◑로 표시하도록 한다. 자유지상주의 성향의 정치인의 경우 □ 표시.2.1. 아메리카
- 구스타보 디아스 오르다스▲
- 도널드 트럼프△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라파엘 트루히요▲
- 레오폴도 갈티에리▲
- 로널드 레이건△
- 리처드 닉슨[1]△
- 린든 B. 존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 알베르토 후지모리▲
-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마티아우다▲
- 에르네스투 가이제우▲
- 이사벨 페론▲/◑ - 막후에 정통 페론주의(페론주의 내 우익, 반공주의)를 대표했던 정치인 호세 로페즈 레가(Jose Lopez Rega)가 있었다.
- 제럴드 포드△
- 조지 H. W. 부시△
- 조지프 매카시▲ - 매카시즘의 창시자. 매카시즘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이 사람으로부터 나왔다.
- 존 F. 케네디☆
- 존 에드거 후버▲
- 주앙 피게이레두▲
- 제툴리우 바르가스▲/☆ -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데 권위주의 우파이라는 평가와 사회민주주의 좌파라는 평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 지미 카터☆: 경제적으로는 다소 우클릭한 부분이 있어서, 좌파가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 카스텔루 브랑쿠▲
- 풀헨시오 바티스타▲
- 프랑수아 뒤발리에▲
- 하비에르 밀레이□
- 해리 S. 트루먼☆
-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 후안 페론★/☆/▲/◑ - 이 항목에 서술된 사람들 중에서는 실제 정치성향에 대해 가장 많은 논란이 일어난 인물로, 극좌나 중도좌파 성향이라는 주장에서 권위주의 우파 내지는 파시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허나 공산주의 계열 노동조합은 철저히 탄압하면서도 노동자와 원주민들의 권익 향상, 복지 정책의 확충, 빈부격차 해소 등의 진보적 정책들로 일관했다는 점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반공주의 좌파 성향으로 평가된다.
- 휴이 롱☆ - 스스로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실제로 공산당을 혐오했다.
2.2. 아시아
92공식 이전 중화민국(대만)의 중국국민당 소속 정치인들은 확고한 반공이였으나 이후 중국국민당 정치인들은 친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용공적 태도를 보이며, 현상 유지하의 대륙과 교류협력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2] 반공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반공 성향이라고 언급되는 등의 자료 제시를 하고 추가하는 것이 좋다.- 김구▲ - 민족주의 성향이다.
- 김영삼△
- 나렌드라 모디△
- 네 윈★ - 미얀마의 독재자로서 고립주의, 사회주의 독재를 펼쳤으나 공산주의자들은 반정부 세력이자 엄격한 탄압의 대상으로 여겼다.
- 네이선 로☆
- 노태우▲/△
- 다이리◑
- 라몬 막사이사이☆ - 그의 소속 정당은 우익 정당인 국민당이었으나 그는 대대적인 토지개혁과 복지 정책 확립을 추구했다.[3]
- 라이칭더☆
- 레꽝빈★ - 민주사회주의자라는 공통분모가 있던 호아하오교 계열 정치인이기에 ★표시가 붙긴 했으나 사실 군사적 행보만 두드러졌지 정치적으론 별 두각을 보이지 못한 인물이기 때문에 사실 본인의 성향은 불명이다. 그러나 출신 배경이 지주에게 피해를 입은 빈농의 자녀였고, 호아하오교에게는 영웅 취급을 받았으나 베트민에게는 잔학무도한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우익일 가능성은 낮았으며 동시에 극렬 반공주의자였을 것이란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는 편이다.
- 론 놀▲
- 리콴유▲
- 뤼슈롄☆
- 모하마드 다우드 칸▲
-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 모하마드 오마르▲
- 박근혜△
- 박정희▲
- 백선엽▲
- 쁠랙 피분송크람▲
- 사담 후세인★ - 강력한 반미와 사회주의(바트주의) 독재로 유명하지만 그와 바트당의 치하에서 국내의 공산주의는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져 탄압당했다. 1973년 소련 수상 알렉세이 코시긴의 방문 후 공산당에 잠시 유화책을 펼쳐 민족진보전선이라는 연정을 구축하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깨졌고 이라크 공산당은 후세인 정권의 숙청에 맞서 지하에서 무장투쟁활동을 전개했다.
- 사릿 타나랏▲
- 수하르토▲
- 아그네스 차우☆
-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 반미 지도자였지만 신정 체제 하에서 공산주의자를 비롯한 좌파는 여전히 주요한 적이었으며 좌파 세력 축출을 위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지기도 했다.
- 유승민△ - 우파 반공주의자이긴 하지만 북유럽식 복지 제도 도입과 노동권 강화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주류 우파와는 성향이 크게 다르다.
- 아흐마드 샤 마수드☆
- 이명박△
- 이반 람☆
- 이승만▲
- 인디라 간디☆ - 외교적으로는 공산권과 친하게 지냈던 것과 별개로 국내 공산주의자는 어김없이 탄압했다. 인도 공산당은 계속되는 탄압으로 인해 지하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으며 미조람 지역의 공산주의 + 분리주의 반란을 쓸어버린 일도 있었다.
- 왕징웨이★->◑
- 응오딘지엠▲
- 응우옌바오또안★ - 본인의 종교는 호아하오교가 아닌 카톨릭이었으나, 베트남 민주사회당의 초기 당수로써 사실상 후인푸소의 정치적 후계자나 다름없다. 1947년 베트남 공산당의 대규모 비공산주의계 동맹들에 대한 배신행위로 인해 정치 난민이 다수 발생하자[4] 이들을 사이공으로 망명시키기 위해 해외 파견되는 등 큰 활약을 했다. 이후로는 응오딘지엠 초기 정권의 주요 정적으로 활동했는데, 응오딘지엠의 혁명동지 숙청 행보와 민주주의 후퇴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지엠을 독재자라고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결국 1963년 캄보디아에서 초 의문사했는데, 응오딘뉴 휘하의 비밀겅찰 소행이라는 의혹이 매우 짙다. 몇개월만 더 버텨서 살아남았다면 정치적으로 무능하기 짝이 없던 군사 쿠데타 주역들의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었을 만큼 화려한 경력과 능력을 지닌 인물이기에 좌파 반공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죽은 게 참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 응우옌반티에우▲
- 장면△
- 장제스▲/◑[5]
- 장준하△
- 전두환▲
- 조만식△
- 조슈아 웡☆
- 찐민테☆/★/△ - 아주 명백하게 반공주의를 추구한 인물이긴 하나, 본인이 좌파였나 우파였나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까오다이교는 호아하오교와 달리 해당 종교 출신 정치인들이 일관적으로 특정 사상을 표방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 차이잉원☆
- 티파니 윈☆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 홍준표△
2.3. 유럽
- 네스토르 마흐노★ - 독재자가 아닌 극좌 인사로서 공산당과 대적한 대표 인사인데 당시 유럽의 극좌 진영은 공산주의 계열과 아나키즘 계열로 나뉘어서 상호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레흐 바웬사△
-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 마거릿 대처△
- 마린 르펜◑
- 보리스 옐친△/▲
- 베니토 무솔리니◑
- 비드쿤 크비슬링◑
- 블라디미르 푸틴▲
- 살러시 페렌츠◑
- 샤를 드골▲
- 스탠리 볼드윈△
- 스테판 반데라◑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 아돌프 히틀러◑
-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 안테 파벨리치◑
- 알렉산드르 콜차크▲
- 에리히 루덴도르프◑
- 엥겔베르트 돌푸스◑
- 오르반 빅토르☆->△->▲
- 올로프 팔메☆
- 윈스턴 처칠△
-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 이온 안토네스쿠◑
- 자크 시라크△
-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 콘라트 아데나워△
- 클레멘트 애틀리☆
- 파울 요제프 괴벨스◑
- 프란시스코 프랑코▲/◑[6]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 대표적인 반공주의적 사회민주주의자로, 우파 조직인 자유군단을 동원해 스파르타쿠스단을 진압하였다.
- 필리프 페탱▲/◑
- 하인리히 힘러◑
- 호르티 미클로시▲
- 헤르만 괴링◑
2.4. 아프리카
- 가말 압델 나세르★ - 대표적 아랍 사회주의 지도자이지만 역시 공산주의에는 반대했다. 외교적으로 미국보다 소련과 가까웠으나 국내 공산주의는 엄격히 단속되었다. 아랍 연합 공화국이 결성된 이유도 시리아의 공산주의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 무아마르 카다피★ - 전술한 나세르, 사담 후세인과 비슷한 케이스다. 반자본주의, 반미를 주장했으며 공산권과 친하게 지냈지만 국내의 공산주의는 탄압했다. 리비아 공산당은 그의 집권 내내 금지되었으며 공산주의를 비롯한 반정부 사상을 억압하기 위한 문화혁명 등이 이뤄지기도 했다.
- 가파르 니메이리★
- 블레즈 콩파오레▲
- 이언 스미스▲
- 피터르 빌럼 보타▲
- 헤이스팅스 반다▲
- 헨드릭 페르부르트▲
3. 비정치인
- 김좌진★ - 전술한 네스토르 마흐노와 동일한 케이스로, 때문에 활동지에서 고려공산당 계열 인사들과 수시로 충돌을 빚었다.
- 김형직▲ - 김일성의 아버지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강경한 반공주의자였다. 그렇다 보니 공산주의자에게 암살을 당했다.
- 놈 촘스키★ - 사상적 측면에서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입장으로, 정확하게는 비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성향이다.
- 더글러스 맥아더△
- 마틴 루터 킹☆
- 미시마 유키오◑
- 미하일 바쿠닌★ - 현대 아나키즘과 생디칼리슴의 선구자격인 인물로, 한때는 공산주의를 지지하던 인물이었으나 카를 마르크스[7]와 대립을 겪은 끝에 공산주의 진영과 결별했다. 20세기 초반에 아나키즘 진영이 공산주의 진영과 극좌 진영의 주도권을 두고 대립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다.
- 비오 12세▲ -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 후에 즉위한 교황들 중에서 가장 권위주의 성향이 강했고 공산주의를 포함해서 모든 좌파 사상들을 혐오했다.[8] 참고로 가톨릭의 교황은 세속적 측면에서는 바티칸을 통치하는 군주이지만 실제로는 가톨릭 교회의 영적 지도자라는 종교인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므로 이쪽에 등재한다.
- 안창호☆ - 공산주의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겼으나 어쨌든 안창호 개인은 사회민주주의자였다.
- 오카와 슈메이◑
- 요한 바오로 2세△ - 종교인인지라 반공주의 성향을 띄는건 당연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추기경 시절부터 직접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는 입장이었던지라[9] 그런 사람들 중에선 다소 보수적인 편이었다.
- 월트 디즈니△
- 이원복☆->△ - 전술한 유승민과 같은 케이스로, 우파로 전향한 뒤에도 반공주의와 북유럽식 복지 제도 도입을 지지하는 성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 존 듀이☆ - 사상적 측면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자유주의적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했다[10].
- 존 메이너드 케인즈☆/△ - 관점에 따라 좌파 성향이나 우파라고 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인식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사회자유주의 성향에 가까운 인물인 것도 사실이라서 후대의 좌파 성향의 사상가나 정치인, 경제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 존 폰 노이만☆/△ - 그 유명한 천재 수학자 맞다. 허나, 폰 노이만은 살아생전에 자신이 반공주의자인 것만 이야기했을 뿐, 구체적으로 자신의 정치 성향이 무엇인지는 밝힌 적이 없어서, 좌파 성향인지 우익인지는 분명치가 않다[11].
- 전태일☆/★- 노동운동의 대표격 인물이라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생전에 반공주의적 성향을 가졌다고 하며 북한 체제에도 비관적이었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노동운동가라도 아나키즘이나 사회민주주의 성향이라면, 반공주의자를 자처하는 경우도 많다.
- 정용진△ - 신세계그룹 정용진 SNS 멸공 발언 게시 논란 문서 참조.
- 지청천△ - 김원봉의 좌익 세력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 때문에 자주 갈등을 빚었으며 후에 민족혁명당을 탈당하였다.
- 찰스 코글린◑
-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 미하일 바쿠닌과 함께 카를 마르크스에 대적했던 초기 사회주의자들 중 한 명이었다. 비폭력주의 아나키즘[12]을 주창함으로서 좌파 자유지상주의의 시조가 되었다.
4. 반공주의자 집단들
특정 개개인이 아닌 인물 집단들을 적는다.- 베트남 공화국을 지지한 베트남인들
- 냉전기 베트남 공화국의 거의 모든 주요 종교인들 - 틱광득 소신공양 사건의 임팩트와 응오딘지엠 정권 이후 불교계에 간첩 침투가 잦았다는 점 때문에 베트남 공화국 시기 불교가 공산주의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는 오해가 의외로 존재하는데[13] 사실 불교계를 비롯한 베트남의 전통/민족종교계는 공산주의자와 사이가 험악하기로 유명했다. 베트남 공산당이 소련 공산당의 종교의 자유 탄압을 교조적일 정도로 철저하게 배워왔고, 더불어 30년대부터 자행한 동맹 배신 행보가 겹쳐져서 베트남 공산당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거의 종교 반공주의자 제조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불교 중에서도 특히 하술할 호아하오교에게는 공산주의자들은 불구대천이다.
- 까오다이교 계열 정치인들
- 호아하오교 계열 정치인들 - 창시자 후인푸소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반불 공동전선을 펴기도 하는 등 공산당과의 사이가 괜찮았으나, 후인푸소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납치당해서 실종된 이후 극렬 반공주의 성향을 띄게 된다. 한편 베트남 민주사회당이라는, 베트남국 말기~베트남 공화국 초기의 주요 좌파 정당이었던 베트남 민주사회당(★)이라는 정당은 이 종교 출신 정치인들이 주역이 되어 세운 정당이다.
- 베트남 국민당을 포함한 하노이 기반 사회주의자들★ - 베트남 공산당이 주도한 연정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곧이어 배신행위를 저지른 공산당의 기습에 큰 타격을 받고 세력이 축소되었고,[14] 지원자이던 중국 국민당마저 국공내전 패전으로 기대하기 어렵게 되자 결국 우군이 많던 사이공으로 넘어온다. 40년대 말~50년대 초반의 대규모 월남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월남민의 대다수가 카톨릭 교도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워낙 월남한 카톨릭인들이 저학력 저소득층 위주였기 때문에[15] 사실 이런 세속주의 반공주의자들의 정치적 망명의 월남도 만만찮은 파장을 가져왔다.[16]
- 쿠바계 미국인: 쿠바의 공산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쿠바인들이 주축이 된 이민자 집단으로서 현 쿠바 정권에 매우 적대적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죽었을 때 대놓고 축제를 벌일 정도.
[1] 그의 집권 시기에 미중수교와 데탕트 등 외교적으로는 공산권과 관계 개선이 이뤄졌지만 닉슨 본인은 강력한 반공주의자였고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반미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쿠데타가 이뤄진 것도 이때였다.[2] 대륙이 공산당 1당체제이기 때문에 대륙과 교류협력을 지지하는 입장을 지닌 당의 정치인들이 반공이라고 보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국의 민주당계 정치인이 한총련 등 이적단체를 탄압하기도 했고 종북주의에 반대한다고 해도 햇볕정책 지지 등 아예 반공주의자라고 지칭하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3] 필리핀은 각 정당의 이념은 구색맞추기로 걸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좌파 인사가 우파 정당에서 활동하거나 좌우 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다.[4] 주로 베트남 국민당을 비롯한 하노이 기반의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세속주의자라는 차이는 있어도 정치적 색깔은 유사했기에 베트남 민주사회당에서도 이런 거물을 파견할 정도로 노력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5] 장제스의 통치가 (유사) 파시즘적 성격이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6] 파시스트 여부는 논쟁이 있지만 명백한 극우 정치인이였다.[7] 공산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그 마르크스맞다.[8] 이 때문에 전통주의 가톨릭 지지자들 중에서 가장 근본주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교황공석주의자들과 콘클라베주의자들은 비오 12세를 최후의 정통 교황으로 보아서 그 이후로 즉위한 이들을 합법적인 교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9] 그의 출신국인 폴란드는 냉전 시대 내내 공산주의 국가였다.[10] 위의 놈 촘스키와 비슷해보이지만, 존 듀이가 좀더 온건한 성향이다.[11] 일단 존 폰 노이만은 매카시즘을 열렬히 반대하여, 그 피해자가 된 동료 과학자들을 구명하는데 힘쓴 바 있다.[12] 생디칼리슴과는 엄연히 다르다.[13] 나무위키 응오딘지엠 문서에 베트남 통일 이후 공산당이 불교를 탄압했다는 대목에 토사구팽 아니냐는 취소선이 달려 있던 적도 있다.[14] 보응우옌잡이 주도했다. 보응우옌잡이 공산당 내 친중파이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국공내전과도 상황이 비슷한 셈이다.[15] #[16] 특히 세속 반공주의 세력이 남베트남에 합류했다는 의미가 큰데, 사실 베트남 남부 지역의 독립운동은 불교를 포함한 민족종교와 크게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근로인위혁명당은 해외 인맥이 많았을 뿐 국내 기반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즉 이들의 월남은 '세속 반공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남베트남에 합류했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대부분이 지엠의 숙청 때문에 무력화되는 건 함정[17] 민주파 내에서도 트로츠키주의자 등 비마르크스-레닌주의 계열 공산주의자들이 있다. 다만 이들은 민국파나 본토파와는 거리가 있다.[18] 비슷하게 대만의 독립 및 중화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범록연맹 역시 뚜렷한 반공 사상을 가지기보다는 중국공산당에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