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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07 20:15:56

나렌드라 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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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공화국 제14대 총리
나렌드라 다모다르다스 모디
नरेन्द्र दामोदरदास मोदी
Narendra Damodardas Modi
파일:나렌드라 모디.jpg
출생 1950년 9월 17일 ([age(1950-09-17)]세)
인도 구자라트 주 반드나가르
국적 파일:인도 국기.png 인도
학력 B N 고등학교 (졸업) (1963-1967년)
델리 대학교 (정치학 / B.A.)
구자라트 대학교 (정치학 / M.A.)
정당 ''' [[인도 인민당|
인도 인민당
]] '''
신장 170cm
종교 힌두교
약력 구자라트 주 의회의장
인도 연방하원의원
인도 구자라트 주 총리
(2001년 - 2014년 5월)
현직 인도 제14대 총리
임기 2014년 5월 26일 ~ 2019년 5월 26일
2019년 5월 26일 ~
서명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2. 초기 행적3. 인도 총리 1기
3.1. 2019년 인도 총선
4. 인도 총리 2기5. 이야깃거리

1. 개요

현재 인도총리2014년 5월 26일에 취임하였다.

1950년 9월 17일생으로 봄베이주(현 구자랏주)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어렸을때부터 동내 버스터미널에서 아버지와 함께 차를 팔았으며, 고등학교시절에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토론에서는 천부적인 기질이 있었다는 선생님들의 평이 있다.

8살때부터 RSS (Rashtriya Swayamsevak Sangh) 이라는 우파단체에 가입, 회원 활동을 시작했다.
RSS가 현 인도의 집권당, BJP와 밀접한 관련이있기때문에, 모디가 이 RSS -> BJP 루트를통해 정치적 기반을 닦았을거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2. 초기 행적

2001년부터 2014년까지 구자라트 주에서 총리(Chief Minister)[1]를 수행하여 탁월한 경제 성과를 낸 것으로 유명하지만,[2] 구자라트 주에서 일어났던 반이슬람주의 대규모 폭력사태에 연루되었던 적이 있는 등 극우 힌두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낸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2002년 구자라트 학살 사태[3]의 진짜 배후라고도 언급된다. 관련기사

카스트 계급은 놀랍게도 하위 계급인 간치(상인)로, 식료품・잡화상인 집안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기차역에서 짜이를 팔았고 청년 시절에는 형제들과 함께 버스 터미널에서 노점상을 차렸으며, 20대 때에는 인디라 간디의 독재에 맞서 싸운 이력도 있다.

이후 1985년 인도 인민당에 입당해 정치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전술했듯 2001년부터 2014년까지 구자라트 주의 총리로 최장기 재임하는 기록을 남겼고, 2014년 인도의 총리로 취임했다.

3. 인도 총리 1기

총리 취임 이후 인도 경제를 잘 이끌어나가고 있다. 주총리 재임 당시 구자라트 주의 제조업을 육성해 구자라트 주의 경제성장을 이뤄낸것처럼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정책을 통해 인도의 제조업을 육성 중에 있으며 외국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는데 2017년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619억 6천만 달러2013년의 280억 달러에 비해 2배 이상 늘었으며, 제조업 생산액 역시 2017년 기준으로 모디가 총리에 취임하기 전인 2013년 대비 40% 가까이 성장했다. 인도의 경제 형편이 매우 좋기 때문에 모디 총리의 경제 개혁이 지속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허나 이에 대한 반론도 수시로 제기되고 있는데[4] 모디 총리의 화폐개혁 정책이 제대로 된 조치가 마련되지 않고 실행되어서 경제적 발전이 둔화되었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여파[5] 또한 심각했었다. 또한, 인도 중앙은행이 1991년 경제위기 이후 저축해둔 자산을 급격히 매각하여 포퓰리즘 정책에 남발하고 인도의 경제적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지적과 모디정부가 인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6] 또한 2019년 현재 경기 침체 상황에도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공급 관련 정책에만 주력하고 당장의 경기 침체를 해결할 수요 관련 정책을 수분기 동안 펴지 않고 방치했다는 점에도 어느정도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5.8%로 6.5%인 중국보다도 떨어져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라는 타이틀도 잃었으며 제조업 생산액 증가도 최근 현재로서는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그리고 주변국과의 갈등 관계가 계속 증폭되고 있는데, 중국파키스탄과 관계가 좋지 않다. 모디 총리의 직설적인 발언과 과감성이 해당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을 테러지원 국가라고 비난했고 파키스탄 남부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발루치족의 분리주의 운동을 지지하고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소유권을 주장하여 파키스탄이 반발하고 있다.# 다만 모디는 인도의 다른 주변 이웃국가들인 부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는 외교적으로 나쁘진 않게 지내고 있다.

이외에 인도와 매우 친한 나라 중 하나인 미국과 군사 협력을 시작하며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다른 반중 성향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미국 외에도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국을 식민지배했던 영국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인도의 골칫거리인 낙살라이트 반군과 카슈미르 무장단체들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 반드시 멸망시키겠다며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토벌 작전을 지시했다.

지지율이 70-80%대로 아시아 국가지도자들 중 최고 지지율을 자랑한다. 퓨 리서치 센터의 2016년 조사에서는 지지율 81%를 기록했는데 심지어 야당인 국민회의 지지자 사이에서도 6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지지율이 더 올라 퓨 리서치 센터의 2017년 조사에서는 지지율 88%를 기록했으며, 국민회의 지지자 사이에서도 6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2018년에 들어서서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들의 불만이 쌓여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농민들이 불만이 크다. 친(親)농업 정책 도입을 요구하며 전국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12월 선거에서 29개 주 중에서 마디아프라데시, 라자스탄, 텔랑가나, 미조람, 차티스가르 등 5곳에서 패배했는데, 모두 '인도 중·북부 힌두 벨트'의 핵심으로 인도 인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으로 알려졌다. 또, 거품경제가 우려되는 와중에 인도중앙은행 총재를 사실상 쫓겨나게 만들었다.#

2019년 2월, 인도에서 성역으로 대우받고 있는 하천인 갠지스 강의 심각한 오염을 참다 못해서 그동안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서 받은 기념품 1,800여 점을 모조리 경매에 올린 후 그 수익으로 갠지스 강을 정화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는 2019년 2월 18일에, 인도에서 이슬람교도 등 소수종교집단이 종교적 이유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되고 있지만 가해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26일에 있었던 '인도 공군의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공습 사태' 를 총선을 앞두고 현재 떨어지고 있는 지지율에 대한 국면전환 카드용으로 쓰고 있다.

3.1. 2019년 인도 총선

2019년 5월 23일 총선 개표 결과, 모디에 비판적이었던 일부 외신들도 할말을 잃어버릴 정도로 예상을 깬 압승의 결과가 나왔다. 총 303석으로 과반을 압도적으로 넘었고, 기존 의석은 물론 저번 선거치의 결과를 상회하였다. 여권인 NDA는 총 353석을 차지하였다. 오디샤, 아삼, 카르나타카, 서벵골 등 기존 인도 인민당 입장에서 험지였던 북동부, 남부에서 대약진을 하였다. 39개의 의석이 걸린 타밀나두 주의 지역 패권 정당 AIDMK와 연정을 한 후폭풍으로 AIDMK가 1석으로 몰락하지만 않았더라면 개헌 발의 가능 의석인 357석을 훌쩍 넘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4. 인도 총리 2기

무슬림 등 동북부 소수 집단 탄압으로 논란이 된 '불법 이민자 색출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때문에 동북부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3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4.5%)이 전년 동기(7.0%)보다 대폭 하강하며 근래 6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2019년 12월 12일 인도 시민권 법안이 개정되었다. 개정안은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이 되어 2015년 이전에 인도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슬림은 제외되었다.[7]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해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시위는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인도 정부는 무슬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추가로 경찰병력과 무인드론을 투입하여 감시를 계속하는 한편, 무슬림 거주지역의 인터넷 접속까지 차단하여 시위를 막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0년 1월 10일 개정된 인도 시민권 법안이 발효되면서 모디 총리 인형을 태우는 등 인도 정부에 대한 무슬림들의 시위가 더욱 격화되고 있다. 특히 모디 총리가 방문한 콜카타 지역에서는 3만명의 무슬림 시위대가 모디 총리를 비난하며 시위를 벌였으며, 점점 시위가 확대되고 있다. 인도의 인구 중 약 14%(2억 명)나 되는 무슬림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모디 총리는 이미 인도 시민권을 받은 무슬림들의 이익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발효된 법안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5. 이야깃거리

  • 악력이 매우 좋다. 아예 각국 지도자와의 악수를 모아놓는 짤도 있으며, 윌리엄 왕세손의 경우 손이 아예 빨갛게 됐다.
    파일:external/cdn.ddanzi.com/126323923.jpg
    2016년 항저우에서 열린 G20 회담 당시 있었던 테레사 메이 총리와의 악수는 평범한 수준의 힘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 전에 시진핑 주석과도 악수를 했는데 시진핑이 근소한 차이로 모디에게 악력 배틀에서 졌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thehindubusinessline.com/modi-may_2999761f.jpg
    추가로 모디 총리가 2017년에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서로 만났으며, 이 둘이 서로 악력 배틀을 뜨면 누가 이길까 하고 전세계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했지만,[8] 둘 다 서로 개쫄려서 정작 실제로는 악수를 하지 않고 서로 포옹하는 것으로 끝냈다.
  • 요가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한다. 수준급의 실력자이다. 원래 인도에서 요가는 남자가 하는 수련법이였다. 다만 모디 총리가 한국 기준 70의 나이에도 정정한 것은 집안 내력도 있는 듯 하다. 모디의 모친은 1920년 경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워낙 시스템이 낙후되어 있던 시절이다보니 이 시기의 인도인들은 출생년월일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직도 생존해 있고, 모디의 부친 역시 1915년 경 출생하여 1989년 사망해 74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한국 기준에서는 74살까지 살은게 대단한 건가 싶지만, 인도는 1980년대 후반[9]에는 아예 평균 수명이 50대였고, 현재도 평균 수명이 60대 후반에 그치고 있다. 굉장히 장수한 셈.
  • SNS 팔로워 수가 굉장히 많다. 2019년 2월 기준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팔로워수가 4500만이 넘고 후발주자인 인스타그램도 1800만명이 넘는다.
  • 방한했을때 김무성이 모디 총리를 오래 기다렸지만 못 만나고 그냥 돌아온 적이 있었다 #
  •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데,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기에 방한 때에도 한국어 트윗으로 화제가 됐던 바가 있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날, 한국어로 취임 축하 메세지를 트위터로 올렸다. 이후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연락 후 한국어 트윗을 몇 차례 올리기도 했다.2017년 7월 8일에 독일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 한국, 일본 등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는 모디 총리가 쭉 시행해 왔던 동방정책(Act East)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중국을 견제하고, 해당 국가들의 경제적-군사적 협력을 얻어내고자 하는 외교 정책이다. 한국, 일본 입장에서는 인도 시장을 개척하고 인도에 투자함으로써 경제 면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군사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인도와 협력하며 다방면에서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모디와 인도 인민당의 집권 이후 급격한 힌두교 극단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 # 특히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의 종교적인 폭력이 심각해지자 모디 총리도 이를 비난하며 경고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아예 관련된 현 상황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모디의 소속 정당인 BJP가 힌두 극단주의 단체인 RSS를 대변하는 정책에 몰두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이다. 인도의 야당과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언론에서는 가끔씩 등장하는 힌두극단주의자 비판에 대해서도 일종의 립서비스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 지하철을 자주 애용하는 듯 한데, 일반적인 이동의 경우 시민들이 탄 칸에 같이 타는 경우가 많다. 높은 지지율에 총리가 탄 칸은 약식 간담회장으로 바뀌기도 한다고. 국빈 방문중인 정상이 있으면 지하철 타고 이동하자고 권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 인도공장에 방문할 때 모디 총리와 함께 지하철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SNS도 자주 활용하고 있다.#
  • 인권 관련된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여러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받았다. 관련기사 빌게이츠재단에서도 수상자로 선정했을 때도 인권단체들이 비난을 하였다.#
  • 2019년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SNS를 활용했는데, 그 트윗들이 하필 음슴체로 쓰인 탓에 아바투르라는 별명을 얻었다. 생물체 문재인. 등산을 매우 좋아함. 난다코트산에 초대하고싶음. 매우 높음.

[1] 인도에서 주의 명목상 대표는 대통령이 임명한 Governor(주지사)이지만, 의회에서 선출한 Chief Minister(주총리 혹은 수석장관)가 실질적으로 주의 행정을 이끈다. 인도가 연방 차원에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 차원에서도 의원내각제가 작동하여 주지사가 아닌 주 의회의 리더가 주 정부의 수반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 언론에서는 모디가 수행한 직책을 부르는 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주 총리, 수석장관, 주지사로 혼용하는 상태이다.[2] 2018년 기준으로 구자라트 주의 전체 GDP는 인구가 3배 이상 많은 우타르프라데시 주보다 더 크며, 2017년 구자라트 주의 경제성장률은 인도 평균의 2배를 넘은 13%를 기록했다.[3] 인도위키[4] 특히 2019년 현재 인도에 닥친 경기 침체 현상과 더불어[5] 2016년 화폐개혁 당시에는 수시로 깊은 시골에서는 화폐교환을 못해서 돈을 쓰지 못해 굶어 죽은 사례도 기사화 되었었다. 낙후된 대부분의 시골지역에는 화폐를 교환해줄 수 있는 은행들이 부족했기에 일어난 일[6] 모디와 모디의 당 BJP는 이미 인도 중앙은행의 총재를 두 번이나 갈아치운 전적이 있다. 모디 취임 당시의 인도중앙은행 총재는 2005년에 세계 최초로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예견한 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 시카고 대학교 교수였다. 하지만 모디는 라잔 교수가 전임 만모한 싱 내각에서 총재로 임명된 데다가 그 이전에 만모한 싱 총리의 경제고문으로 활동했다는 이력이 껄끄러웠는지, 라잔 교수가 총재직에 더 있기를 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기를 연장해 주지 않았다. 대신 모디는 당시 인도중앙은행 부총재였던 우르지트 파텔을 후임 총재로 임명했는데, 이 사람은 통화정책에서 모디 내각과 마찰을 빚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총재직을 내던졌다.[7] 관련기사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무슬림을 지지하는 입장은 기사에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해당 법안에 대한 인도 정부측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는 모두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국가이다. 무슬림국가에서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인도에 난민지위를 신청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슬람교에는 다양한 종파가 있고 기타 복잡한 사안이 여러 개 걸려있으니 판단은 알아서.[8] 도널드 트럼프와 나렌드라 모디는 전세계 정상들 중에서 가장 악력이 강력하기로 유명하다.[9] 이 시기는 한국의 평균 수명도 21세기에 비해 짧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