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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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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격3. 친분4. 취향5. 위상 및 인기6. 기록
6.1. 무관의 프로 커리어
7. 이적설8. 축구 게임에서의 평가9. 대중매체10. 기타

1. 개요

손흥민의 여담에 대한 문서다.

2. 성격

3. 친분

4. 취향

5. 위상 및 인기

2020 국가브랜드대상
매일경제
2021 국가 이미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한국인 5위
기사전문(문화체육관광부)[49](2021.1.25)
2024 파워셀러브리티 2위
포브스코리아[50]
손흥민의 경제적 효과 2조원
#
한국의 문화적 아이콘
B/R Football
대한민국의 전국민적 영웅
CNN(2018.9.1)
아시아의 슈퍼스타
워싱턴포스트
아시아 축구 최초의 글로벌 슈퍼스타
BBC
"아시아 최고의 선수와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중국 중앙 텔레비전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アジア史上最高のストライカー)

NHK 일본 스포츠 중계, 카타르 월드컵 한국 대 우루과이전에서.[51]

- 인기와 인지도를 평가할 수 있는 여러 지표

한국 갤럽이 5년마다 조사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1위를 2019년과 2024년 최초로 2회 연속 차지했다. 2024년 지지율 49%의 해당 인물 조사 역대 최고 지지율 기록을 세웠고[52] 최초로 남녀노소 전연령대 선호도 1위 기록을 세웠다.

한국 갤럽조사 올해를 빛낸 스포츠스타 2015년도와 2017~24년도 1위를 차지하며 해당 부문 최초로 8년 연속 1위, 총 9회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엔 역대 최고 지지율 86.2%로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2018년 63.3%를 시작으로 이후 6년간 7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53]

시사저널 조사 한국을 움직이는 스포츠스타 2018~24년도 1위를 차지하며 시사저널 조사 최초로 동일 인물 7년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엔 93.2%의 압도적인 지목율을 기록했다. 인물 종합 조사에서도 스포츠스타로는 유일하게 2022년~24년도 3년 연속 10위권에 들고 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조사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스타 2018~23년도 1위를 차지했다. 조사를 시작한 2018년부터 6년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유일하게 두자리수 이상의 지지율을 받고 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츠계 인물 2021~23년도 1위를 차지하며 조사를 시작한 2021년부터 3년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창간기념 조사 역대 최고의 스포츠스타 1위를 2회 연속 차지했다.[54]

포브스코리아 조사 파워셀러브리티 40에 2015년부터 10년 연속 뽑히고 있다. 2015년 8위를 시작으로 총7회, 2019년부터 6년 연속 10위안에 들었으며 2020~21년도 4위, 2022년도 3위, 2023~24년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100분 토론 조사 2022 올해의 인물 1위를 차지했다.

시사저널 선정 2023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55] 2017년도, 2019~20년도, 2022~23년도 올해의 스포츠 인물에 총 5회 선정되며 기록을 세우고 있다.

초록우산 조사 2024 제4회 대한민국 어린이대상에서 최고의 스타상을 수상했다.[56]

아시아 선수 중 아시아 선수 최초 5대리그 득점왕, 아시아 최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아시아 선수 최초 리그 100골 기록, UEFA 챔피언스 리그, 프리미어 리그 등 유럽 5대 리그 통산 최다 득점 기록발롱도르 득표, 발롱도르 후보, FIFA FIFPro 월드 XI 후보, PFA 올해의 팀 선정, FIFA 푸스카스상 수상,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4회 수상, 유럽 빅리그 통산 150골 돌파 및 아시아 베스트 풋볼러 8회 수상, AFC 국제 선수상 4회 수상, AFC 아시안컵 베스트팀 등 아시아에서 주는 상을 모두 독식하고 있기 때문에 현역 아시아 선수들 중 독보적이며 역대 최고 수준이자 세계 탑급 공격수로도 인정받고 있다.

또한 현재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 선수이자, 이젠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 선수로도 꼽힐 정도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다양한 세계적 기업의 모델, 엠버서더로 활동하고 있고, 대한민국 뿐이 아닌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세계적인 기업의 모델 및 엠버서더는 스포츠 선수로 손흥민이 최초이자 유일무이하다.

아시아 최초 FIFA 시리즈 엠버서더, 아디다스 글로벌 대표 엠버서더[57], 버버리 글로벌 엠버서더, 캘빈 클라인 엠버서더 , 2022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 글로벌 모델[58]

6. 기록

6.1. 무관의 프로 커리어

7. 이적설

8. 축구 게임에서의 평가

9. 대중매체

10. 기타

파일:국대손등.jpg}}}
파일:클럽손등.jpg
소속팀에서와 국대에서의 유니폼 이름 마킹이 다르다. 소속팀에서는 이름 마킹이 SON이지만, 국대에서는 H M SON을 쓴다.[125] [126]


[1] 애초에 젊은 남녀가 만남을 갖는게 딱히 논란이 될 만한 것도 아니다.[2] 2021년 2월 인터뷰에서 말하길, 결혼은 34세 이후에 할 것이며 결혼 후에는 자신이 축구보다 가족에 신경 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3] 오히려 해리 케인과의 환상적인 콤비로 '손케 부부'라는 밈까지 존재할 정도. 참고로 케인은 손흥민과 달리 자식까지 있는 유부남이다.[4] 현지에서는 cheers, son's crying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5] 멕시코가 초반에 굉장히 강하게 나와 일찌감치 2승을 찍은 반면 스웨덴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이겼다고는 하지만 경기력은 비실비실했으며, 독일 상대로는 졌다. 그래서 당연히 멕시코가 스웨덴도 이길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멕시코가 지고 만 것.[6] 손흥민의 자서전(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에서 "골이 들어가는 순간 우리가 16강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7] 참고로 이 두 사람은 9년 전 아시안컵 결승에서 호주에게 패배를 경험했다.[8] 오죽하면 경기 후 손흥민의 골에 대해 "절대 운이 아니었다"라며 그의 겸손을 원천 차단해버리는(...) 기자까지 나올 정도. 이 질문에 대해 손흥민은 "운 좋게 공을 잡을 수 있었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창과 방패의 대결[9]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무리뉴가 토트넘 재임 때 침이 마르도록 손흥민 칭찬을 하곤했다.[10] 멀리 갈 것 없이 한국 국대 내에서도 기성용이 중심이 돼 최강희 감독에게 항명한 기성용 SNS 항명파동이 있었다.[11] 실제로 해외파 중에서도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고 국대의 주장이후 한국 국대는 선수단 내부에 잡음이 생긴적이 없다. 반사적으로 협회의 문제가 드러나며 국대의 운영에 의심하는 팬들이 늘어난 시기도 손흥민 주장 재임시절과 겹친다.[12] 이는 23-24 시즌 토트넘의 주장으로 선임된 이후 영국 현지에서도 주목받았다. 친화력과 인터뷰 스킬 등 이전부터 좋았던 부분들이 주장이라는 직책과 맞물려 팀 내외로부터 팀을 훌륭하게 이끌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13] 유명한 꼬마 팬으로는 딜라일라라는 소녀가 있다. "Sonny I love you"를 목놓아 외치다가 손흥민이 듣지 못하자 한번 실망하며 지오바니 로셀소를 세 번 불렀고, 딜라일라가 다시 "Sonny!"하고 부르자 손흥민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주었다. 딜라일라의 엄마가 이 과정을 영상으로 남겨놨기 때문에 딜라일라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고, 한번은 직접 만나 손흥민한테 안겨서 사진을 찍기도 했으며 이후로 생일 축하 메시지도 남겨주는 사이가 되었다.[14] 이날, 한 여성 팬이 사인을 받지못해 울고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사인을 받지 못받은 이유가 사인팔이들에게 밀려 라는것을 듣고, 그들을 팔이놈들이라 하며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했다.[15] 씨잼철: 제가 손흥민 선수를 마지막으로 뵌 게... | 손흥민: 잘할 때...(씨잼철: !!!)저 잘할 때만 찾고... | 씨잼철: 무슨 말씀이세요 진짜!!!나락 감지한 씨잼철[16] 이에 박재범은 개인 SNS에 쇼츠로 해당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짧은 꽁트영상으로 화답했다.[17] 이 기억 덕에 손흥민은 자서전에서 함부르크를 어린 나의 슬픔을 봄날 햇볕처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는 곳으로 표현했다.[18] FM2019에서는 손흥민이 좋아하는 인물에 레노와 벨라라비, 율리안 브란트가 포함되어 있다.[19] 벤 데이비스의 아들의 대부가 손흥민일 정도로 돈독한 사이라고 한다.[20] 2017년 여름 이적[21] 2017년 여름 이적[22] 2022년 여름 이적[23] 2023년 여름 이적[24] 2021년 여름 이적[25]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악동성으로 우려되던 세르주 오리에가 오히려 손흥민에게 잡혀사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손흥민과 자주 핸드셰이크를 하면서 친해져 팀에 융화되었고, 심지어 임대 차 토트넘으로 잠시 복귀했던 대선배 가레스 베일 조차 레알 마드리드에 있었던 때와 달리 매우 행복한 표정과 함께 손흥민과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보였다.[26] 특히나 라멜라의 경우 국내 손흥민의 악성 팬덤에게 테러나 다름없는 비하에 시달려, 안 좋은 감정이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나, 손흥민과 둘도 없이 친한 모습을 보여줬다.[원문] Needless to say how much I thank this man. Words are powerless to express my gratitude. I have learned a lot from you not only in football, but in life. Good luck in your future and I wish you all the best.[28] 어느 감독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무리뉴는 태도를 특히 중시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재능이 있는 선수라도 태도가 좋지 않다면 절대 선발로 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무리뉴가 손흥민을 승리토템처럼 모든 경기에 쓴 걸 보면 그의 재능과 태도를 좋게 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당 발언이 나온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토트넘은 득점원이 손흥민 한명 뿐이었고 매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는 강행군이었다. 다음 경기를 대비하기 위해 손흥민을 교체해줘야 했으나 이미 교체카드를 다 써버린 상황이었다. 이기고 있음에도 추가 득점을 위해 경기 종료 직전까지 스프린트를 하는 손흥민에게 무리뉴는 그냥 그 자리에서 패스만 하고 무리하지 말라고 만류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다음 경기에서 결국 손흥민은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게 되는데 당시 컨퍼런스에서 무리뉴가 손흥민의 부상 소식을 전하며 실성한 듯한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었다.[29] 다큐멘터리를 보면 부상에서 복귀한 손흥민에게 먼저 말을 걸며 " 로보캅 다됐네. 네 총은 어디있냐?"라고 웃으며 농담을 건네거나, 훈련 중 손흥민이 무리뉴에게 말을 걸어오자 " 아이고, 대한민국의 왕이시여. 질문이 있으시다고? 그럼 들어드려야지."라고 하는 등 손흥민을 꽤나 좋아한다.[30] 2021년 3월 구단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주제 무리뉴 경질설에 대한 질문에 "무리뉴는 지금 토트넘에 가장 많은 트로피를 가져다줄 감독"이라고 옹호했다. 하지만 그 이후 손흥민은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고, 토트넘은 유로파리그 16강 2차전에서 무기력하게 대패하며 탈락했고 결국 무리뉴는 경질당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손케 듀오가 너무 감독의 편애를 받았기 때문에 플랜 B가 없었고 또 이것이 선수들 간 분위기를 해쳤던 원인이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31] 토트넘 부임 전 케인을 페널티 박스 안에서 활용하겠다던 자신의 발언을 뒤집고 전임인 무리뉴가 구사했던 케인을 한칸 내리고 손흥민을 올려쓰는 공격 패턴을 그대로 구현시켰으며, 한참 손흥민의 부진 시기에 그를 벤치로 내리는 게 어떻냐는 기자의 요구에 "난 미친 놈이 아니다"라면서 손흥민을 대놓고 옹호했다.[32] 봉준호 감독을 만났을때도 영화 이야기는 안하고 손흥민에 대해서 주구장창 이야기 했다고 한다. 사실 톰 홀랜드는 여기저기서 아스날 FC 팬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었는데 공개적으로 토트넘의 팬이라고 인증하기도 했다.[33] 이 세리머니에 맛들렸는지 다른 동료들까지 동참하고 있다.[34] #[35] 훗날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손흥민을 영입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뛰어난 선수이며 한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말을 덧붙인 건 덤.[36] 참고로 그릴리쉬와는 따로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다. 거의 경기에서만 만나다시피 하는 사이.[37]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손흥민이 부상을 당했을 때 구자철과 기성용이 손흥민에게 연락해 위로했으며 언론에 손흥민의 출전 의지를 전해주기도 했다.[38] 선배들은 막내 손흥민이 아기같고 귀여워 해서 과자를 많이 사다줬다고 한다.[39] 손흥민이 국가대표로 첫 발탁된 아시안컵 대회가 박지성의 마지막 대회였다. 박지성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이을 선수로 손흥민을 뽑았다.[40] 박지성은 런던에 거주하며 손흥민 경기도 종종 보러간다.[41] 손흥민이 외국에 있음에도 하루에 한번씩 통화했다고 한다[42] 국가대표로 첫 발탁된 조규성이 손흥민을 볼 생각에 떨려하자 정승현이 손흥민은 워낙 신입들을 잘 챙겨주는 선배라고 말했다.[43] 과거 일부 유럽파 선수들이 파벌을 구성하여 대표팀 분위기를 흐렸던 것 과는 달리 국내파 해외파 가리지 않고 선수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A매치에서 첫 데뷔골(이지만 자책골로 정정)을 만든 송민규의 특유의 시그니쳐 세레모니를 본인 앞에서 보여준 것도 대표적인 예시이며 역시 A매치 데뷔골을 넣은 조규성과도 미리 맞춰둔 합동 세레모니를 했다.[44] 왜 빨간색이 아니냐면 빨간색은 토트넘이 제일 적대하는 팀인 아스날의 상징색이기 때문. 시뻘겋게 칠하고 다니다 잘못하면 돌 맞아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험악하다 한다.[45] 그래서 평소 축구에 관심이 많던 개리도 평소에 리쌍의 팬이라며 리쌍을 언급하였던 지동원과 손흥민을 2012년 말에 열릴 리쌍 콘서트에 초청하겠다고 한 적이 있지만 실제로 이루어 지지는 않았다.[46] 과거 궁금한 이야기 Y 출연 당시 낄낄거리며 런닝맨을 시청하는 모습이 촬영되기도 하였다.[47] 딱 아예 못먹을 정도는 아니다 정도 인듯하다.[48] 특히 데이비드 베컴이 챙겨먹었다는 장어 젤리를 보자 질색하며 베컴이 좋아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질색하기까지 했다.[49] 2021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50] \[2024 POWER CELEBRITY\] 2024 포브스 코리아 선정 파워 셀럽 40[51] 2022년 11월 24일자, 손흥민에 대해 자막으로 소개된 내용이다.[52] 2019년 달성한 스포츠 인물 역대 최고 지지율 35%의 기록을 또 한번 갱신했다.[53] 역대 조사에서 손흥민을 제외하고 60% 이상의 지지율을 받았던 경우는 2009년 김연아, 2010년 박태환 두번 뿐이다.[54] 2018년 창간 10주년 기념, 2020년 창간 12주년 기념 2회 실시. 각계 스포츠 전문가 100인을 대상으로 설문 진행.[55] 1989년 창간 이후 35년 동안 스포츠 인물이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것은 차범근 이후 역대 두번째이다.[56] 약 한 달간 전국의 현장 투표소와 온라인 투표소를 운영해 아동들이 직접 투표에 참여한다. 역대 수상자는 오은영, 유재석, 제이홉 등이다.[57] 아디다스 코리아가 아닌 아디다스 글로벌이다.[58] 로컬이 아닌 글로벌 모델은 메시와 손흥민뿐이었다.[59]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최고 시청률보다도 높은 시청률이었다.[60] 톰 홀랜드는 찰칵 세리머니를, 손흥민은 스파이더맨의 세리머니를 하였다.[61] 2년 연속으로 뽑혔다.[62] 분기별로 나오는 패션매거진이다.[63] 스포티비 나우, 쿠팡플레이 등 OTT 서비스 사용자까지 더하면 훨씬 많은 시청자가 지켜봤을 것이다.[64] 리오넬 메시, 킬리안 음바페, 네이마르 주니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손흥민 순이었다.[65] 1위는 방탄소년단, 3위는 BLACKPINK였다.[66] 이전에 출시한 선수들은 리오넬 메시, 데이비드 베컴, 지네딘 지단, 폴 포그바 등이 있다.[67] 축구 선수 중에서는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 주니어, 손흥민 3인이 뽑혔다.[68]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현역 선수가 20년 이상 스폰서십 계약을 맺은 경우는 드물다.[69] 펩시[70] 아디다스[71] 명품 브랜드들은 앰버서더 중에서도 홍보 효과가 큰 인물을 글로벌 캠페인 메인 모델로 내세우기 때문에 이를 겸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버버리의 메인 디자이너 다니엘 리는 손흥민과 함께 캠페인에 등장하거나 본인의 휴가를 미루면서까지 함께 화보 촬영을 하는 등 모델 손흥민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72] 구단과 초상권 계약을 맺고 굿즈 판매에 대한 인센티브를 받고 있다.[73] 벨링엄, 홀란드, 음바페, 래쉬포드, 손흥민 순이다.[74] 정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게 김도훈의 경우 오세아니아만 득점이 없는데 소속은 AFC지만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로 볼 수 있는 을 상대로 골을 기록한 적이 있다. 심지어 손흥민의 경우는 호주를 상대로 득점한 경기가 AFC 아시안컵 결승이었다.[75]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분데스리가, 세리에 A, 리그앙[76] 빅리그를 제외한 외국 프로축구 리그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손흥민 이전에 득점왕에 오른 한국인은 1999년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서 황선홍이 있었다.[77] 또한 아스날 원정에서의 멀티골은 토트넘 역사상 1993년 이래로 처음이며,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첫 번째 토트넘 선수도 손흥민이 되었다.[78] 이전 1위는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82개였는데, 손흥민이 이날 경기에서 83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에릭센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79] 마침 손흥민의 등번호도 7번이다.[80] 손흥민에게는 씁쓸할지 몰라도 토트넘보다 2023-24 시즌 레버쿠젠이 가장 먼저 트로피를 들었다.[81] FIFA 월드컵 우승은 대한민국의 전력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는다.[82] 2011 아시안컵 3위, 2015 아시안컵 준우승, 2019 아시안컵 8강, 2023 아시안컵 4위.[83] 이후에 손흥민이 토트넘으로 이적할 때 기록을 갱신한다.[84] 레버쿠젠은 역대 1위 클럽 레코드로 손흥민을 영입하면서 팀내 최대 바이아웃을 설정했는데 토트넘이 바이아웃에 돈을 더 얹어 영입 이적료의 3배 금액의 이적료를 지불하면서 역시 역대 1위 클럽 레코드 기록으로 넘기며 큰 이익을 남겼다.[85] 당시 토트넘은 득점 부족을 해결해 줄 공격수를 찾고 있었고 2010년 함부르크에서 데뷔했던 시즌부터 손흥민을 눈여겨보고 꾸준히 오퍼를 해왔기에 높은 이적료를 선뜻 지불하고 데려올 수 있었다. 물론 손흥민이 분데스리가에서 3시즌 연속 두자릿수 골 기록을 세우며 그만한 가치를 보여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86] 2위 기록 역시 손흥민이 레버쿠젠으로 이적할 때의 이적료이다.[87] 손흥민이 이적하던 2015년부터 워크퍼밋 규정이 강화되어 한국 선수들의 프리미어 리그 진출이 어려워졌다. 기존에 추천서 3장으로 통과할 수 있던 규정이 사라지고 소속 국대의 FIFA 랭킹 규정도 강화되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국대의 FIFA 랭킹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한국 선수들은 워크퍼밋을 받을 수 없었다. 다만 이적료 1000만 유로 이상의 고가치 선수는 조건없이 워크퍼밋을 받을 수 있다는 예외조항에 의해 손흥민은 워크퍼밋을 받을 수 있었다. 2021년 포인트 제도가 도입되어 국대 점수 뿐만 아니라 리그 점수로도 포인트를 채울 수 있게 되면서 워크퍼밋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완화되었는데 2015년부터 2021년까지의 강화된 규정 하에서 프리미어 리그로 이적한 한국 선수는 손흥민이 유일했다.[88] 마지막 리그 우승이 1960-61 시즌이다. 한국 국가 대표팀이 1960년 이후 아시안컵 우승을 못한 것과 비슷한 세월이다.[89] 당시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떠돌던 마네가 기자의 질문에 나는 오퍼받은 것이 없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손흥민이랑 아자르를 원한다더라 라고 말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90] 팬들이 우스갯소리로 총들고 협상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정도로 말도 안 돼보이는 싼 금액에 알짜배기 선수들을 데려오고 팔 때도 기대 이상의 금액으로 선수를 판다.[91] 다만 아스널은 토트넘과 라이벌 구도에선 엘 클라시코 수준의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고 20년 전에 핵심 선수였던 선배가 아스널로 가서 토트넘 팬들한테 욕을 무진장 먹은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갈일도 없을 것 같다.[92] 이적을 원하는 사람들이 토트넘에게 제일 아쉬워 하는 점이 결국 우승 트로피이고 이 때문에 토트넘을 자주 비하하기도 하는데,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축구 클럽의 가치나 매출 순위 등을 보면 토트넘은 10위 이내에 항상 자리잡고 있고, 결코 조롱당할 수준의 구단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토트넘과 비슷하거나 이상 가는 팀이 매우 적다는 의미이고, 그 클럽들이 EPL의 빅6와 레바뮌, PSG와 유벤투스 정도로 극소수다. 그리고 상기한 대로 이 팀들은 이미 손흥민의 동포지션에 쓸만한 선수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93] 콘테가 클럽에 남는 조건으로 선수들을 많이 사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게다가 시즌 중간에도 이적을 하느니 마느니 하던 해리 케인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도 클럽차원에서 제대로 우승을 노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94] 빅클럽 중에서 가장 크게 입에 올랐던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대표적이다. 손흥민이나 레알이 직접 언론에 흔든게 아니라 제 3자인 마네가 자신의 이적설을 부인하면서 이적시장에서 들리는 소식을 언론에 언급한게 시작이었다. 손흥민 본인이나 손흥민을 원하는 구단들이 협상을 쉽게 하려면 언론을 이용해서 토트넘을 흔들어야하는데 손흥민의 분란을 싫어하는 성향이 이를 막는 것이다. 레버쿠젠 시절처럼 손흥민 본인이 구단에 위치가 불만을 가지지 않고 토트넘이 손흥민을 위치에 맞는 대우를 해준다면 이적설이 발생하기 쉽지 않다.[95] 21-22시즌 초 케인만 해도 성골 유스임에도 이적설을 자기가 퍼뜨리며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는데 레비는 그걸 또 철벽같이 막아내면서 선수의 마음을 꺾은 것을 보면 손흥민이 나가고 싶어했더라도 성공하진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96] 사우디 리그는 월드컵을 유치하고 자국 리그를 키우기 위해 거대한 예산을 투자하여 유럽 리그의 스타 선수들을 대거 영입중이다.[97] 케인이 이적한 23-24시즌 이후 손흥민이 계약 연장을 지속한다면 토트넘과 동행은 그의 기량이 실질적으로 하락할 때 종료될 것으로 평가된다. 토트넘의 프런트는 손흥민을 최소 2년의 계약이 남을 경우 재계약을 추진하여 계약시점 구단이 가능한 최고 조건을 제시했고, 토트넘의 전성기로 평가받던 2016~2019 시즌까지 있던 핵심선수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선수가 되었다. 23-24 시즌부로 포스테코글루 체제에서는 주장직과 주전 공격진의 핵심까지 맡게 되면서 대체 불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98] 속도가속도 속칭 속가빨이라는 말이 매번 나오는데, 그 덕에 속도 능력치가 좋은 오버롤 83의 마커스 래시포드의 카드가 오버롤 89 해리 케인보다 비싸게 거래된다.[99] 출처[100] 참고로 FIFA 22의 TOP 22 중에 7명은 골키퍼이다. 골키퍼는 필드 플레이어와 어느 정도 구분되는 포지션임을 감안하면 손흥민은 필드 플레이어 중에선 TOP 15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스트라이커, 윙어&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 중에서 손흥민과 같은 89점으로 책정된 선수는 모하메드 살라, 카림 벤제마, 사디오 마네가 있다.[101] 처음부터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점점 속도가 떨어지는 폭발적인 가속, 처음엔 다소 느리지만 점점 빨라지는 긴 가속이 있고 이 중간에 위치한것이 제어된 가속이다.[102] 트레일러 영상에서는 오버롤이 86으로 설정되어 있었지만 이후 정식 출시 때는 슈팅 능력치가 1이 올라가면서 87이 되었다.[103] 게다가 이는 여자 선수들까지 합산한 기록이기에, 남자 선수들 중에서만 놓고 봤을 때는 27위이다.[104] +특성은 카드 왼쪽 가장자리에 골드 카드 기준 금색으로 표기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105] 감아차기는 2023년 4분기에 한번 너프가 이루어져 아웃포스트에서 쏘는 중거리 감아차기는 확실히 성공률이 떨어졌지만, 박스 안 감아차기는 여전히 득점율이 높다. 애초에 중거리 감아차기 자체가 스쿼드 배틀에서나 잘 먹히는 로망성 플레이이고, 실전에서 감아차기는 박스 안쪽에서 한번 접고 역발로 시전하는것이 일반적인 운용법이다. 예를들어 왼발이 주 발인 그리즈만은 오른쪽에 배치하여 박스 진입 후 방향을 한번 꺾어준 후 왼발로 감아차기를 시전하는 형태.[106] 랜덤포텐. 첫 시즌을 시작했을 때 150~180 사이에서 랜덤으로 배정받는다.[107] 굳이 현존하는 선수와 비교하자면, 훌륭하게 성장했을 때 세르히오 아궤로알렉시스 산체스 정도로 성장 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다만 일관성과 체력이 낮아 기복이 심하고 적절히 휴식을 주지 않을 경우 시즌 후반에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잦다.[108] 총합이 20[109] 그러나 일관성은 튜터링으로 보완이 불가능하다.[110] 그다지 빠르지 않은 동료들 때문에 빨라 보이는 것 뿐이다. 순간속도 15는 충분히 빠른 수치이다. 그는 확실한 주전이 아닌 시기를 겪었고 현재는 주전으로 출전하지만 2~3시즌 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111] 20 베타에서 낮은 어빌에 가속도 15로 출시했다가 극딜을 맞고 결국 17로 정정한 선례가 있음에도 하향한 것은 게임 밸런스 때문으로 추정된다. 20에서 자주 나오던 대지를 가르는 롱패스가 하향된 대신 2선에서 득점으로 직결되는 스루패스가 상향되면서 가속도, 주력이 빠른 공격수들이 강점을 보여서 안그래도 양발이라 상대 수비가 어느쪽으로 슈팅각도를 방어해도 강력한 손흥민을 속가 17로 플레이해보면 전성기 레알 호날두가 따로 없다.[112] 발음만 같지 일본 기업 소니와는 아무 관계없다. 일단 철자부터가 다르다. 사실 한글로 적어놓은 것만 같지 영어로는 발음도 아예 다르다. 일본 기업은 "쏘우니"에 가깝고 손흥민의 별명은 "써니"에 가깝다. 더 짧게 발음하고, 무엇보다 o를 다르게 발음하므로 척 들어도 구분된다.[113] 스펀지밥은 말이 굉장히 빠른데, 이를 평소에 시청하다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상대적으로 느리게 들려서 이해하기 쉬웠다고 한다.[114] 다만 유럽 진출 초기에는 영어가 완전히 익숙하지 않아 독일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오언 하그리브스통역을 도와주기도 했다.[115] 파일:30705.jpg[116] 파일:홍콩 세레머니.gif
워낙 상징적이다 보니 이를 따라하는 선수들도 몇 있다. NFL에서도 세이콴 바클리가 찰칵 세레머니를 했다.# 토트넘 성골 유스인 마이키 무어의 경우 소속팀과 연령별 대표팀에서 여러 차례 찰칵 세레머니를 선보여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117] 파일:손흥민 d .jpg 현지 기준 2021년 4월 11일 맨유전인데, 저 날이 팀 동료였던 델리 알리의 생일이라서 그의 이름의 첫 글자인 D를 만든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118] 여기서 국가대표는 스키점프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모델이었던 것을 의미한다. 강칠구임이 밝혀지기 전에는 아무도 영화 국가대표의 의미인줄은 몰랐다.[119]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 돌기 때문이다.[120] 경기장에 있는 손흥민에게 늘 쌍따봉을 날린다고 한다.[121] 물론 모든 축구선수들이 다른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손흥민의 팀 동료였던 해리 케인NFL의 열렬한 팬으로 유명하고, 앙투안 그리즈만NBA의 광팬이며 킬리안 음바페르브론 제임스와 서로 유니폼을 교환하고 자랑하는 사진까지 함께 찍었다. 페트르 체흐의 경우 아이스하키 강호인 체코 출신이라 축구선수 말년 때부터 영국 아이스하키리그에서 골텐더로 활약하고 있다. 국가대표 선배인 구자철도 야구를 좋아하며 사회인 야구에서 뛰기도 했다.[122] 실제로 케인도 은퇴하면 뭐할거냐 같이 골프치러 가자고 여러번 권했다고 한다.[123] 그 다음은 박지성(약 500억 원)이다.[124] 두번의 팔 부상의 여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125] 한때 SON Heung Min을 사용하기도 했다.[126] 24-26 시즌 국가대표팀 유니폼에는 HEUNGMIN으로 표기되고 있다.[127] 단 '좋아하는 선수'와 '보고 배울 롤모델' 로 호날두를 선택한 것이고, 둘 중 축구를 더 잘하는 선수는 메시라고 답한 바 있다.[128] 손흥민이 프로 데뷔 후 먼저 유니폼을 교환하자고 한 유일한 선수이다.[129] 유벤투스 유튜브 채널도 두 사람의 만남에 초점을 맞춘 하이라이트 영상을 올렸다.[130] 결과는 대한민국의 2:1 승.[131] 어시스트 기록은 손흥민이 앞선다.[사진] 파일:손흥민 띠용.jpg[133] 해당 골은 당시 독일 대표팀 골키퍼였던 마누엘 노이어의 실책도 크다. 1실점으로 조급해진 분위기속에서 골대를 비워두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더니, 상대편 골키퍼인 조현우와 마주칠 정도로 깊이 들어와있었고, 이때 손흥민의 역습에 딱 걸려버렸기 때문. 이때 최후방에 있던 니클라스 쥘레가 손흥민을 저지하려 했으나, 발이 빠른 손흥민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실점을 허용했다.[134] 손흥민이 이 정도로 직설적으로 감정을 드러낸 인터뷰는 북한전이 끝난 이후 뜬구름 잡는 질문만 들어왔을 때 정도밖에 없다.[135] 다만 이 인터뷰가 논란이 되었는데, 인종차별이 없을 수가 없겠지만 독일 사람들은 과거사 때문에 인종차별에 예민하게 반응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손흥민에게 일반화를 당했다는 점에서 이 인터뷰를 본 많은 독일인들이 불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136] 원정 경기였는데 노리치의 팬들까지도 박수를 쳐줬다고 한다.[137] 다만, 기성용의 중국 리그 발언은 영국 등 해외언론에서 번역될 때 제외되었는데 이와 관련된 한국 축구팬들의 정서를 유럽에서 온전히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기성용은 위 발언에 대해 손흥민의 신념을 이해하고 프리미어 리그에 남아 계속 기록을 세워줬으면 한다고 답했다.[138] 평소 독한 발언을 하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기자 비아신마저 "돈이 가장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 이 선수를 바보라고 해야 할지 안아줘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를 안아주고 싶다"라고 말해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139] 한국식 나이 계산법에 혼란스러워 한다거나, 우리도 저 법을 적용하자든지, 어쩐지 어려보였다는 등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140] 해리 케인의 이적 후 딥페이크 기술로 각종 드라마에 이별하는 내용의 영상이 만들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141] 종종 이런 모자를 선물받기도 한다.[142] 무려 7실점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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