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튀르키예계 독일인은 오늘날 독일 국민 중 튀르키예계 민족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의미한다. 독일 국적을 보유하지 않고 체류하는 튀르키예인까지 합산하면 추정치로 약 300만 명으로 상당한 수준이다. 독일 내에서 영향력이 매우 크다.2. 상세
과거 오스만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에서는 많은 인적 교류가 이루어졌는데, 이 가운데는 오스만 제국의 기독교도 신민(그리스계, 아르메니아계) 외에도 프로이센 귀족들이 고용한 무슬림 의장대가 있었다. 프로이센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활발한 교류를 바탕으로 1866년에는 베를린에 마스지드가 건설되었다.본격적인 튀르키예계 독일인 인구의 시작은 1960년대 이후 서독으로 이주한 튀르키예인 노동자들이 시초였다. 이 당시 독일은 매년 고도성장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남아있던지라 노동력이 부족하던 시절이었고, 대안으로 튀르키예에서 노동력을 모집해온것이다. 당시 독일로 온 튀르키예인들은 독일에서 노동자로 활동한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이슬람 성직자들이 독일로 온 경우도 있었다. 또한, 튀르키예 정부의 세속주의 정책에 반대해서 독일로 이주한 경우도 상당했다.[1] 독일 역시 세속주의 국가이지만, 튀르키예처럼 인권을 무시하는 형태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화끈하게 탄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인과 쿠르드인은 쾰른에서 에센으로 연결되는 공업지대와 함부르크, 슈투트가르트, 카를스루에,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했다. 초창기에 독일정부는 튀르키예인 노동자들에게 제한적인 복지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튀르키예인 노동자는 영구정착자가 아닌 임시체류자라는 가정 하에서 그리고 민족적으로 독일계 후손에게만 시민권을 허락한다는 독일법에 따라서 이들에게 시민권이 부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74년 이후 독일 정부가 오일쇼크로 인해 실업률이 늘어나자, 새로운 노동자들의 유입을 막고 그 대신에 기존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족과 재결합하는 것을 허용하자 영주권자들이 생겨났다.
독일에 이주한 튀르키예계 독일인의 영향으로 독일내에서 튀르키예 문화를 쉽게 볼 수 있고 튀르키예 음식도 독일에서 볼 수 있다.[2] 그외에도 튀르키예계 독일인들이 독일의 축구선수로도 활동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독일내에서 튀르키예계 독일인들이 많다보니 튀르키예어도 독일내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튀르키예계 독일인 상당수가 영어와 독일어, 튀르키예어 세 가지를 어느정도 이상 구사 가능하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서독의 동독 흡수통일 이후 동독 출신 주민들이 상당수가 직장을 잃고 혼란을 겪으면서, 60~80년대 서독으로 이주해왔던 튀르키예계와 마찰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독일 선거에 투표할 경우에는 대체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을 지지하는 비중이 높아 진보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튀르키예 선거에서 투표할 경우에는 중도좌파 공화인민당보다 우파 정의개발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크게 높아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독일 국적을 취득한 튀르키예인들은 전통적으로 사회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튀르키예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다. 이렇게 투표성향이 엇갈리게 나오는것은 사민당이 그나마 튀르키예인들을 신경써주는데다가 보수적인 무슬림들이 에르도안을 튀르키예의 위상을 높인다면서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나타난 영향이다. 즉, 경제적으로 진보적인데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튀르키예인들이 많다는 것이고, 그래서 투표경향이 엇갈리게 나타나게 된것이다. 공화인민당보다 AKP 지지율이 훨씬 높으며. 타 해외거주 튀르키예인들이나 튀르키예의 주요 대도시, 동부 쿠르드족 거주지방에 비해서 에르도안과 AKP 표가 훨씬 잘나오기 때문에, 튀르키예 내에서는 농담삼아서 독일을 AKP의 든든한 텃밭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가령 2018년 대선에서 에르도안은 튀르키예 본토에서 52.4%의 득표를 얻었으나 독일의 튀르키예인들 사이에서는 64.8%의 득표를 얻었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과 독일 사이의 심각한 마찰이 생기면서, 튀르키예계 독일인들의 독일 내 입지가 근 몇년 사이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메수트 외질이 에르도안과 사진을 찍었다가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이후 2019년 결혼식에 에르도안을 초대해서 독일 내에서 역적으로 몰린 상황은 오늘날 튀르키예계 독일인들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정치적 성향 때문에 현재 튀르키예의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본토 튀르키예인과 해외 튀르키예인, 특히 튀르키예계 독일인간의 갈등이 생기고있다. 유로로 돈벌고 튀르키예에 놀러와서 황제라이프를 즐기는 튀르키예계 독일인들이 자꾸만 정의개발당을 찍고 공공연히 에르도안을 지지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어려운 본토 튀르키예인들이 발끈하는것이다. 2023년 대선/총선에서도 에르도안에 대한 지지세는 여전해서 에르도안의 승리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있는데[3], 아무튼 이러한 이중적인 투표성향으로 인해 튀르키예내에서도 갈등이 어느정도는 있는 편이기는 하다.
이스탄불 시내에서 정치, 경제를 주제로 거리의 일반인들과 인터뷰하는 유튜버의 영상에서 독일에서 온 튀르키예인이 에르도안 덕분에 경제가 좋아졌다라고 하자 본토 튀르키예인들이 반박하는 부분(2분10초부터)
독일의 네오나치가 가장 싫어하는 민족이 튀르키예계 독일인이다. 네오 나치는 튀르키예인들을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에 독일에서 튀르키예인이 길가다가 보이면 끌고가서 집단으로 린치하거나 살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4], 튀르키예인들 사는 집에다가 수류탄 던지고 도망가는 네오 나치들도 많다.
3. 종교
튀르키예계 독일인들의 대부분은 명목상으로는 이슬람교 수니파에 속한다.[5] 튀르키예가 세속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독일로 이주한 튀르키예계 독일인들 중에는 튀르키예 정부의 세속주의에 반대해서 독일로 이주한 경우도 있다보니 일부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종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아예 무종교인이거나 무신론자인 경우도 있다. 다만 무신론자 튀르키예인이라 하더라도 튀르키예인 정체성 자체는 버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일부 튀르키예계 독일인들 중에는 알레비파나 자자인도 있다. 튀르키예 출신 이민자 중 정교회주로 그리스계, 시리아 정교회[6], 동방 가톨릭 교회아르메니아계 등 기독교를 믿는 튀르키예인이 이주해온 경우도 드물지 않다. 소수이지만 라디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튀르키예 세파르드 유대인들이 독일에 정착한 경우도 있다.2015년 유럽 난민 사태 이후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들의 증가로 튀르키예계 독일인 입장이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다. 튀르키예계 독일인 무슬림들의 문화는 무슬림 정체성과 튀르키예 민족주의 성향, 유럽 문화가 복잡미묘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아랍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아랍 무슬림 난민들과 다소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튀르키예내에서 튀르키예인들과 아랍인 난민간의 관게가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지만,[7] 유럽내에서는 다 같은 무슬림이라며 싸잡히는 입장인지라 같이 연대할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는 하다. 한편으로 동독 출신 독일인들은 튀르키예계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 난민들을 같은 이슬람이라며 경계하고, 때마침 외질과 에르도안 사건까지 터지며 반난민 성향 독일인들의 튀르키예계에 대한 반감도 증대되었다. 북키프로스 문제도 동독 출신 독일인들이 더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는 하는데, 정작 북키프로스는 튀르키에에서도 세속 성향이 강한 지역이라 미묘한면이 있다.
4. 아랍인과의 혼동
상당수 한국인들이 튀르키예계 독일인이 아닌 독일 내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출신 아랍인 이민자와 난민들을 '튀르키예인'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며[8] 심지어 독일 체류 교민들 중에서도 튀르키에계 독일인과 아랍인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튀르키예계 독일인과 아랍계 독일인, 아랍인 난민은 이민의 역사와 집단 정체성등이 확연히 다르다.5. 유명 인물
5.1. 문화계
- 누르 페타호올루[9]
- 메리옘 우제를리[10]
- 슬라 샤힌[11]
- 멜템 카프탄 - 배우. 영화 "라비예 쿠르나즈 vs. 조지 W. 부시"에서 주연을 맡아 제7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 주연상을 수상했다.
- 에르도안 아탈라이 - 배우. 알람 포 코브라 11의 제미어 게르칸 역으로 유명하다.
- 파티흐 아킨 - 영화 감독. 미치고 싶을때, 천국의 가장자리, 심판(영화)
- 일케르 샤타크 - 영화 감독. 2023년 영화 티처스 라운지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 타르칸 - 독일 국적의 튀르키예계 가수. Şımarık, Dudu, Kuzu kuzu 등의 노래로 유명하다.
- Apache 207 - 독일의 래퍼.
5.2. 정치계, 경제계
- 젬 외즈데미르 - 녹색당 소속 정치인이자 숄츠 내각 식품농무부 장관. 튀르키예계 정치인으로서는 최초로 연방정부 장관직에 오른 인물이다.
- 우우르 샤힌, 외즐렘 투레지 - 부부 사이로 화이자와 함께 BNT162를 개발한 바이온테크의 창립자이자 CEO/CMO.
5.3. 축구선수
6. 관련 문서
[1] 그래서 튀르키예계 독일인들중에는 본국의 튀르키예인들보다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경우가 자주 있다. 그래도 독일에서는 진보주의자들이 그나마 튀르키예인들에게 신경써주는 축인지라 일정수준의 세속화는 이루어져있고, 극단주의자들은 소수다.[2] 특히 되네르 케밥은 독일의 대표 길거리 음식이 되었다.[3] 물론 근본적인 요인은 난민들의 표가 에르도안에게 쏠렸다는것과 에르도안이 현금살포로 지진대처에 대한 비판을 수습했다는 점이 있기도 하다.[4] 간혹 튀르키예인과 외모가 비슷한 그리스인을 네오 나치가 튀르키예인으로 착각해 린치하는 일도 있다. 튀르키예인으로 착각하는 경우 외에도 그리스인과 발칸 반도 출신 이민자들 역시 튀르키예인 만큼은 아니지만 독일 네오 나치들의 표적이 되어 증오 범죄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다.# 서유럽 네오 나치의 범죄 대상이 유대인이나 무슬림, 유색인종뿐일거라는 착각이 많지만 게르만족과 외모상 구분이 확연한 경우가 많은 남유럽 출신 백인들과 무슬림이 많은 알바니아, 보스니아 등 발칸반도 출신 백인들도 네오 나치의 범죄 대상이다.[5] 개개인별로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튀르키예인 순니파들은 상당수가 종교생활 및 이민자 사회생활에서 수피즘에 이런저런 영향을 받는 편이기도 하다[6] 주로 마르딘을 중심으로 한 쉬리아니 사람들[7] 일례로 튀르키예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범죄자나 테러리스트, 거지로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8] 독일 내 아랍인의 수는 140만명에 육박하며 튀르키예계 보다는 적지만 그 수가 상당한 편이다.[9]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다.[10] 튀르키예의 배우로 독일 국적도 가지고 있다.[11] 무명 단역 배우이지만 2011년 4월에 플레이보이 표지 사건으로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12] 엄마가 독일인 아빠가 튀르키예인이다, 국가대표는 아빠의 나라인 튀르키예를 대표해서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