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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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 채상병 특검법 · 2024년 국회 무제한토론 ·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 황상무 언론인 테러사건 언급 협박 논란 |
<colcolor=#fff>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 | |
<colbgcolor=#bc002d> 발생 일시 | 2023년 7월 19일 오전 9시 10분경 |
발생 위치 | |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읍 황지리 내성천 보문교 일대 | |
유형 | 익사 |
원인 | 조사 중 |
관련 부대 | 해병대 제1사단 |
인명 피해 | 1명 순직 (채수근, 계급: 상등병)[1][2] |
1. 개요2. 전개3. 사망자 채수근 상병4. 원인
4.1. 정부의 무리한 대민지원 요구4.2. 안전 불감증
5. 반응6. 추가 논란4.2.1. 해병대의 무리한 수색 강행4.2.2. 맨몸 수색 독려4.2.3. 수색 비전문 병력 배치4.2.4. 부적절한 복장 착용
4.3. 영주댐의 방류4.2.4.1. 극도로 부실한 장비 지급
4.2.5. 소방당국의 권고 묵살4.2.6. 실종 직후 신고 조치 지연6.1. 빈소 안내표기 한자 오기6.2. 해병 1사단의 수해 복구 거듭 강행6.3. 해병 1사단 장병 휴가, 외박, 외출, 면회 통제6.4. 대전현충원의 순직 위치 오기6.5. 민생법안 폐기
7. 관련 문서7.1. 관련자 문서
8. 둘러보기[clearfix]
1. 개요
'내성천 수색' 해병대원 실종.."하천 바닥 갑자기 푹 꺼졌다" | 2023.7.19. MBC 뉴스외전 |
채 상병이 소속됐던 해병대 1사단 제7포병여단의 지휘계통은 '호우피해 복구작전'을 수행할 당시에는 50사단의 통제를 받도록 지휘통제 체계가 전환된 상태였다. 따라서 논란이 된 임성근 1사단장의 지시는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아닌 월권에 해당된다고 경찰은 밝혔다. 사건 관련인으로는 해병대 사령관 김계환 중장, 제1사단 사단장 임성근 소장, 제7여단 여단장 박상현 대령, 제7포병대대 대대장 이용민 중령, 50사단 사단장[5] 등이다.
2. 전개
자세한 내용은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전개 문서 참고하십시오.2.1. 수사 외압 논란
자세한 내용은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수사 외압 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2.1.1. 제1사단장 임성근 혐의 무마 시도
자세한 내용은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수사 외압 논란/전개와 의혹 문서 참고하십시오.수색 당시 부대에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와 복장점검을 한다'며 지침이 내려간 것이 드러났다. # 그런데 그 지침이라는 게 '빨간색 해병대 체육복을 입혀라, 다른 옷은 안 된다'는 수준이고 정작 구명조끼나 기타 안전에 관한 유의사항은 단 한 줄도 없었다.
이처럼 군 당국은 해병대 제1사단장 임성근이 무리한 지시, 명령을 내렸다는 증거가 있다며 정확한 사실 관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
실제로 임성근 사단장이 '해병대 티셔츠가 잘 보이게 복장 통일'을 강조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 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해병대 수사단이 확보한 걸로 확인됐다. # 이에 따라 임성근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결재 하에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될 예정이었다. #
그러나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본인이 결재한 서류를 뒤집고 이첩을 보류한 뒤, 구두로 해병대 제1사단장의 혐의를 기재하지 말것을 지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해병대 수사단장의 반발이 심하였다. 과거 군대의 부실수사 문제 때문에 경찰로 사건을 이첩하는 것이 강제된 상황에서 굳이 혐의를 무마해야 하며, 이런 식의 지시로 해병대의 실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당 사건을 정쟁화할 우려가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결국 해병대 제1사단장의 혐의는 기재하지 않은 채 경찰로 이첩이 되었으나, 과실치사 혐의의 고발장이 접수되는 바람에 수사를 피하지는 못한다.
이로 인해 해병대 제1사단장의 혐의 무마 시도는 결국 이종섭 국방부장관 본인이 대면 결재한 서류의 신뢰성을 떨어뜨렸으며, 해병대 수사단장이 항명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는 촌극이 일어난다.
7월 18일 화상회의 때 7여단 참모가 들었던 진술은 임 사단장이 "둑 위에서 보는 것은 수색 정찰이 아니다. 둑 아래로 내려가라. 내려가면 바둑판식 수색 정찰해라, 찔러봐라. 필요하면 가슴 장화를 신어라."라고 평가를 했다.
2.2. 채상병 특검법
자세한 내용은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문서 참고하십시오.2.3. 경북경찰청의 임성근 불송치 결정
2024년 7월 5일 경상북도경찰청은 경찰 수사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임성근 사단장 및 하급 간부 등 총 3명에 대하여 불송치 의견을 제시했다. #1, #2 경찰 수사심의위원회는 경북경찰청장 김철문 치안감에 의해 개최되었으며, 위원회 명단과 회의록은 비공개이며, 심의 결과는 일방적으로 불송치에 기울었다. #3경찰, '채 해병 순직 사건' 임성근 전 사단장 불송치 결정
여단장까지 송치됐는데…임성근 전 사단장만 왜 빠졌나?
기존 수사 전면 부정한 "임성근 무혐의"‥면죄부 준 경찰 수사?
2024년 7월 8일,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업무상과실치사 등으로 고발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해 최종 '혐의없음'으로 불송치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직접적 사고원인으로 '11포병대대장의 임의수색지침 변경'으로 꼽았고 사단장으로서는 11포병대대장과 직접적 소통 및 지시하는 관계가 아니었기에 작전수행에 있어 지적과 질책을 했더라도 11포병대대장이 임의로 지침변경할 것을 예상하기 못했기에 혐의적용을 하기 어렵다고 꼽았다. 이어 제반 사정 미비에 대해 오히려 해병1사단장의 책임보다 해병7여단장에 책임이 더 크다고 판단해 최종적으로 해병7여단장, 제7ㆍ11포병대대장, 7포대대 본부중대장, 본부중대 소속 수색조장, 포병여단 군수과장 등 고발된 9명 중 6명이 송치 결정되었다. 임 전 해병1사단장 외의 2명은 말단 간부인데 각각 7포병대대 정보과장과 통신부소대장으로 이들에게는 별도의 안전통제 임무가 하달되지 않았으며 병사들과 같이 수색대원으로 수색 활동했던 사실이 확인되어 불송치결정이 내려졌다.
김철문 경북경찰청장은 "수사와 관련해서 (외부 특정인이나 기관으로부터) 전화나 일체 청탁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으며, "수해 복구 작업에 있어서 (7여단장과 임성근 1사단장) 둘의 위치가 달랐다. 7여단장은 50사단장의 직접적인 통제 권한을 받고 있었다"며 임 전 사단장을 불송치한 이유를 밝혔다. 또 7여단장 위에서 작전통제권을 행사한 총책임자인 50사단장을 기소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너무 광범위하게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예하 부대인 1천600명을 관장한 해병 7여단장이 책임을 진 것"이라고 답했다. 수사 결과 발표가 늦어졌다는 비판에는 "수사 관련자들이 군인을 포함해 67명이었다"며 "압수물 분석이라든가 자문단 자문 이런 과정을 (거치며 많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
경북경찰청 김형률 수사부장은 임성근 1사단장의 무혐의 발표를 하며 직권남용이 아닌 월권 행위라 하였다. #1, #2 임 전 사단장의 경우, 작전통제권이 없었으므로 “사전 위험 평가의무”도 없었다고 보았으며, 수변으로 내려가 바둑판식으로 수색하라고 하는것은 군사교범상 지침에 부합하였고, 권한 없는 월권이라 하더라도 월권이 무조건 직권남용은 아니라고 봤다. 그리고 채 해병 사망의 가장 큰 과실은 현장지휘 책임이 있는 여단장과 대대장에게 있다고 했다. 당시 7여단장은 50사단장의 작전지휘를 받아 예천지역 현장에 투입된 해병대의 총책임자로 안전한 작전수행을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었으며,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포11대대장이 “사실상 수중 수색”을 명했던 것에 있다고 보았다.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어 확인하며 임성근의 명령을 수행한 포대장이 명령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는 업무와 관련한 일반적·추상적인 주의의무의 위반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체적·직접적인 주의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적용된다면서, 임 사단장의 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수색작전과 관련해 구체적·직접적인 주의의무 위반이 있고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해야 하는데, 작전 지시와 관련해 임 사단장이 기존 수색 지침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지시한 것이 아니어서 위험을 높이거나 새로운 위험에 노출되도록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뉴스1
김경호 변호사는 경찰 수사심의위원회는 사건관계인[6]이 신청하여야 하는데, 김철문 치안감이 사건관계인이 아니므로 "직권으로 개최할 수 없는데도 열어 임 전 사단장에게 면죄부를 줬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
2024년 7월 11일, 국회 행안위 경찰청장과 경상북도경찰청장에 대한 질의에서 경찰은 11개월 동안 수사를 하였으나, 수사 결과는 2시간 정도의 경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되었으며, 수사 결과에 대해서 김철문 치안감의 의견을 반영하였고,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김철문 치안감이 인정하였다. 즉 11개월 수사 내용은 검토하지 않고 그냥 김철문 치안감의 의견을 듣고 일방적으로 불송치를 했다는 결론이 된다.
무혐의 발표 직후, 임성근은 언론에 "허위사실을 발표한 주장은 모두 정정한 뒤 공개적으로 발표해 달라", "허위 사실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사람들을 상대로 형사와 민사소송 등 권리구제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하였다. #1 국민의힘 신동욱 원내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인민재판을 하고 있다고 논평했으며, 박준태 원내대변인은 "채상병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대로 1주기 전에 수사결과가 발표된 것을 다행"이라며 사실상 유가족을 조롱하는 논평을 했다. #
2.3.1. 불송치 관련 부실수사 의혹
'임성근 불송치' 근거였던 수심위 의견…정작 위원장은 "당시 굉장히 의문"경북경찰청이 임성근 전 1사단장을 검찰에 넘기지 않겠다는 불송치 결정을 내리면서 든 근거는 "임성근을 제외하고 나머지 군 관계자 6명만 검찰에 넘겨야 한다는 의견을 낸 수사심의위원회의 의견을 참고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경북경찰청 수심위의 위원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당시 경찰 수사에 대해 "굉장히 의문점이 있었다"는 입장을 밝혀 경찰의 부실수사 의혹이 불거졌다.
2.4. 공수처 수사
MBC - [단독] 공수처, 임성근 핸드폰 경찰에 포렌식 협조요청‥통신기록 조회도 허가YTN - 군사법원, 임성근 사단장 '통화 내역 조회' 허가
KBS - 공수처, 임성근 휴대전화 경찰에 포렌식 요청
고위 공직자 수사기관이자 독립 중앙행정기관인 공수처에서 임성근 전 1사단장의 휴대폰 포렌식 협조요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협조 요청시점은 구명 로비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이 확보된 지난 1월 전후였으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측에서 요청한 사건 당시의 '통신기록 사실조회 신청'에 대해서 군사법원이 인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3. 사망자 채수근 상병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상등병 채수근 蔡洙根 | Chae Sugeun | |
<colbgcolor=#cc101f><colcolor=#ffcc00> 출생 | 2003년 1월 2일[7] |
전라북도 남원시 (現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 |
순직 | 2023년 7월 20일[8] (향년 20세)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구정리 포항 해군기지 해군포항병원[9] | |
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4묘역-413판-13706호 |
본관 | 평강 채씨 (平康 蔡氏)[10] |
가족 | 아버지 채홍석(1965년 2월 13일생)[11] 어머니(1967년 4월 18일생) |
학력 | 성원고등학교 (졸업) 원광대학교 창의공과대학 (건축공학 / 휴학[12])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해병대 (병 1292기) |
2023년 3월 27일 ~ 2023년 7월 20일[13] | |
최종 계급 | 상등병[추서](대한민국 해병대) |
상훈 | 보국훈장 광복장 |
원광대학교 창의공과대학 건축공학과 1학년을 마치고 3월 16일 군휴학을 제출한 후 2023년 3월 27일에 해병대 1292기로 입대했다. 7주 간의 기본군사훈련 후 5월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에 통신병으로 실무 배치를 받았다. 수해 복구에 투입되었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였다.
- 채수근의 아버지 채홍석(蔡洪錫)은 전북특별자치도 소방본부에서 27년을 가까이 헌신한 소방대원으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남원 지역 안전센터에서 소방위로 근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4. 원인
4.1. 정부의 무리한 대민지원 요구
근본적인 원인으로 정부가 무리한 대민지원을 군부대에 요구하는 것이 거론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정부는 예천군의 폭우 피해 복구 대민지원으로 가용한 인근 군부대를 총동원하라고 국방부에 특별지시를 내렸다. 尹대통령, 집중호우에 "가용자원 총동원해 대응하라", 한덕수 "산사태 피해에 군부대 적극 동원해 달라"..국방부에 특별 지시. 대통령의 동유럽 순방 기간 중 국내 지휘를 맡은 한덕수 총리는 "오늘 아침 제가 국방부 장관께 특별히 지시했다"며 "군부대가 적극적으로 장비와 인력을 동원하고 구조 활동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지자체 공무원과 전력을 다해 최선을 다해달라", "전국의 재난 상황을 살펴보면서 필요하면 늦은 밤이라도 과감하게 경찰과 군부대에 지원을 요청하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과도하게 조치하는 것이 이번 호우 대응의 원칙"이라며 "위험 지역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대피시키고, 가능성이 크지 않더라도 계속 순찰하라"라고 강조했다. 한덕수 총리의 지시를 받은 국방부는 군부대를 대민지원에 동원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군, 호우피해 복구 총력전 '생존을 위한 작전' 포기는 없다. 예천은 해병대 1사단의 관할 지역도 아니라는 것[16] 또한 이 점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17]결국 정부의 관행적 군부대 대민지원 동원에 사고가 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직도 군인이 소모품인가, 관행적 '대민지원'이 부른 참사... 해병대 "구명조끼 지급 안 했다".
정부가 내린 지시의 책임보다 전문성의 문제이고, 현장 지휘관들의 책임에 중점을 둔 반론이 밑에 있는데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을 관리하는 국방부는 무한 면책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며, 꼬리 자르기 식으로 중간급 간부만 책임을 지게 된다. 또한 일찍이 대통령은 "모든 정책의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라고 대통령과 정부의 결단과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의 관행적 대민지원을 비판하는 기사에 대한 반론 역시 제도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지, 정부가 군부대 대민지원을 관리 못하는 걸 반론하지는 못한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전후 복구도 아닌 평시에, 군대가 본연의 임무인 국방보다 인명 구조에 투입된다는 건 우선순위를 착각한 것이다. '다른 나라 군대가 대민지원에 마구 동원된다고 우리나라 군대 또한 그러는 게 잘못된 것이 아니다'는 논리 자체도 잘못됐다. 애초에 그런 인식으로 각국 정부가 군대를 쉽게 동원하는 대민지원이 욕을 먹고 있다.
군대 본연의 임무가 국방에 있듯이 군인들의 기술 역시 그 초점이 인명구조와는 다르게 맞추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해군 해난구조전대처럼 구조구난이 목적인 부대라면 모를까 수영 잘한다고 UDT 대원들과 특전사 해척조 대원들이 소방공무원 구조대원처럼 구조 목적의 수영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판타지나 다름 없다. 분명 이들은 다져진 기초와 노하우를 기반으로 구조대원의 구조 수영을 빠르게 배울 수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사전 교육과 충분한 숙달 없이 바로 투입한다고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경찰 공무원이 현장 경험으로 관련 법에 빠삭하다 한들 수 년간 공부한 진짜 법률 전문가와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과 같다.
군은 근본적으로 평시에도 전투 태세를 갖추고 국지적이든 전면적이든 전시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항상 갖추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며, 북한의 조선인민군 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외국에서는 군을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쓰지 않는다. 외국에서도 군이 대민지원을 나갈 때가 많다. 이 때 보급 수송로 확보 및 재건 등의 목적으로 간부와 병이 투입되어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한다.[18] 반면 국군은 평소에도 농번기나 파업 등으로 민간에서 일이 좀 삐걱거린다 싶으면 일단 군 인력부터 동원하고 보는 것이 한국의 전형적인 대민지원 관행이었다 보니, 상급자 눈 밖에 나기 싫은 하급 간부들과 단지 병역을 위해 복무 중이던 애꿎은 병들만 죽어라 고생하는 현실이다.
4.2. 안전 불감증
언론에서 '안전 불감'이라고 비판했다. #4.2.1. 해병대의 무리한 수색 강행
제보자는 "내성천은 모래강이라서 저렇게 들어가면 위험할 거 같아 걱정이 돼 계속 지켜봤는데, 갑자기 한 간부가 뛰어와 '119에 신고해달라'라고 말했다", "계곡처럼 갑자기 3m씩 빠지는데 그 아래가 펄이라서 강가에서나 도보 수색을 해야 했는데 왜 가운데까지 들어가는지 지켜보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라고 전했다. 애초에 구명조끼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위험천만한 구역에 장병들을 억지로 밀어넣는 바람에 이런 사고가 생겨버린 것.현장에 파견된 해병대원들은 수해 복구 작전으로 전파 받고 삽, 곡괭이, 모래주머니만 챙겨 갔는데 도착하고 나서야 실종자 수색 작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에 포병대대장은 수색이 어렵다고 보고했으나 사단 차원에서 수색을 밀어붙였다는 폭로가 나왔다. # # 당시 현장의 대대장들의 문자 내역이 공개됐는데 갑작스런 실종자 수색 명령과 안전대책 없이 위험한 현장에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다. #
또 앞서 지적된 보여주기를 위한 무리한 동원을 하면서 언론에 홍보하기 위한 답변 매뉴얼까지 배부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실종자 구조를 위해 동원된 해병대가 경쟁 목적으로 구조 소관인 소방당국의 지적을 무시하고 무리한 수색을 했고, 이 때문에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실제로 해병대는 2022년에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었던 경북 포항에서 KAAV를 활용해 수십 명의 민간인을 구조해 국민적 관심을 받았었던 바 있었는데, 이번에도 해병대가 국민적 관심을 얻기 위해 지난번과 같은 무리한 작전을 펼치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 실제로 1사단장 임성근은 이 사고가 일어나기 한 달 전쯤에 당시 해병대의 대민지원과 관련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 여기에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리기 전 "수심이 가슴까지 올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상관이 무리하게 작전을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 실제 수색 작전 영상. 채 상병의 동료들은 사고 당시의 급박한 상황에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그리고 해병대의 수색 활동이 전혀 불필요했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심지어 해병대 1사단의 관할 지역은 경북 포항이고 예천이 아니다.
원래 이 지역의 수색에는 소방당국과 특전사가 투입될 예정이었고, 실제로 소방당국이 드론 팀으로 광범위하게 수색 작전을 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실종자도 드론으로 찾아냈다. 순직 장병을 찾아낸 것 또한 소방의 드론 팀이었다. # 이미 소방에서 적외선, 열화상 드론 장비들을 이용해 주야간을 안 가리고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 중이었는데 군 투입 부대가 해병대 1사단으로 변경되었고, 만수의 하천에 급류가 흐르는 상황에서 안전장비도 없이 진행된 인간띠 작전은 불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무모했다는 의견도 힘을 얻었다. 심지어 당시 투입되었던 해병대 7여단의 지휘관인 7여단장은 현장에 없었다. 사고가 나고서야 부랴부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러 간 것이다. 가장 중요한 현장 지휘관의 판단이 아니라 무리할 정도로 통제되지 않는 환경에서 벌어진 인재다.
4.2.2. 맨몸 수색 독려
7월 23일, 연합뉴스는 해병대 측이 14박 15일 포상 휴가를 미끼로 급류 속 맨몸 수색을 사실상 독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 이에 대해 해병대에서는 14박 15일의 포상 휴가를 약속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14박 15일 포상 휴가를 당근으로 급류 속 맨몸 수색을 독려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인하였다. #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시신을 찾으면 포상 휴가를 주겠다고 한 거지, 포상 휴가를 이유로 무리한 수색을 지시한 것는 아니라는 의미다.[19][단독] 구명조끼 지급 안 한 해병대…"사단장님 오신다" 복장 통일 강조 | 2023.7.24. JTBC 뉴스룸 |
심지어 대형 그물을 구매하거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해병대 대원들에게 밧줄을 이용하여 인간 그물을 만들라고 했다. 밧줄에 매달린 병사들이 그물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4.2.3. 수색 비전문 병력 배치
맨몸으로 재해 현장에‥"군인이 소모품인가?" | 2023.7.20. MBC 뉴스데스크 |
이에 더해 당시 일병으로 자대 배치 2개월차였던 해당 장병은 그 전투 수영 훈련조차 마치지 못했다.
4.2.4. 부적절한 복장 착용
현장 간부들이 해병대원들에게 착용을 지시한 멜빵장화가 사고 위험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슴 높이까지 일체형으로 제작된 멜빵장화를 입고서 허리 높이의 물에 들어가면 내부에 물이 들어찬다. 그러면 물에 빠졌을 때 몸이 둔해져 헤엄치기 어렵다"고 지적했으며 유사시 물 속에서 벗어내기도 어렵다. #게다가 대원들은 완전 군장에, 눈에 잘 띄는 형광색 복장 대신 위장 무늬가 있는 전투복을 입은 상태였다.
4.2.4.1. 극도로 부실한 장비 지급
거기에 더해 최소한의 안전책인 구명조끼도 지급하지 않고 로프나 튜브처럼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구도 갖추지 않은 채 내성천에 투입했다는 것이 지적되었다.4.2.5. 소방당국의 권고 묵살
또 군 당국은 "물에 들어갔을 때 깊지 않았으며, 소방당국과 협의가 이뤄진 하천간 도보 수색 활동이었다"라고 주장하는 한편 "유속이 낮은 상태에서 지반이 갑자기 붕괴할 줄 몰랐다"라고 해명했다. #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소방당국은 인간띠 수색을 극히 만류했으나, 군(軍)이 이를 무시하고 투입했다고 한다. 애초에 물살이 너무 강해 심지어 투입 예정이던 상륙장갑차까지 철수한 상황에서 안전 장구류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병력을 투입한 것 자체가 군이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보여준다는 비판이 나왔다. #심지어 7월 27일 해병대가 처음에 한 말이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채수근이 투입됐던 '수중 수색 임무'는 소방당국과 사전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임무였다. #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실이 경북소방본부에서 받은 답변 자료를 보면 채수근이 실종되기 이틀 전인 7월 17일 소방과 해병 간에 수색 지원 인원과 구간 등을 협의했는데, 소방은 '수중수색'을 전담하고 해병은 '하천변(수변) 수색'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경북소방본부는 해병대가 수색 장비를 자체적으로 준비하기로 했고, 안전 유의사항에 대해서도 전달했으며 수색 방법 등 작전 수행은 군 자체적으로 결정해 실시했다고 전했다.
반면 해병대는 경북소방본부를 만나기는 했으나 그런 경고는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
산업 현장에서 사고 예방을 위하여 작업을 수행하기 전 '사전 위험성 평가'를 거치도록 강제하듯, 작전에 따라 정량적 위험성 평가를 작전 개시 전에 실시하여 위험 작전인 경우는 원천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회피하거나 회피 불가 상황이면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사전에 위험 예방 조치(보호장구 착용, 안전 시설 설치 등)를 완료한 후 작전을 개시하도록 규정(국방안전훈령)돼 있다. 이러한 체계적인 사전 위험성 평가 시스템이 도입되어 활용 중임에도 이번 사건에서 안타까운 중대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위험성 평가를 수행했는지 여부가 책임 귀속 관련 대단히 중요하다. 서울신문, 연합뉴스, 연합뉴스, 네이트뉴스, ZUM뉴스, RSS뉴스, 오마이뉴스, 시사IN.
4.2.6. 실종 직후 신고 조치 지연
현장을 지휘하던 간부는 당시 본인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졌고, 본인이 직접 신고를 할 수 있었음에도 직접 신고를 하지 않고 현지 주민에게 신고를 대신 부탁했는데[20] 해병대 당국은 그 이유를 밝힐 수 없다고 거부했다. #일단 지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다급한 상황에도 제3자 신고부터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군은 원칙적으로 민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군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우선하기에 지휘계통을 통한 상부 보고와 명령 하달 없이 하급 지휘관이 단독으로 경찰이나 소방 같은 민간 조직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월권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사람이 떠내려가는 긴급한 상황에 이 문제부터 생각하여 본인이 직접 신고하지 않고 굳이 제3자에게 신고 요청을 하느라 시간을 몇 분이나 허비한 점은 비판 받을 만 하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시행 2022. 7. 1.] [법률 제18465호, 2021. 9. 24., 일부개정])에 따르면 제2조(신분적 재판권) 제2항을 개정하여 성범죄, 군인 등이 사망 또는 사망에 이른 사건, 군인 등 신분 취득전에 범한 죄에 대해 군사법원의 개입을 막고 있으며(제2항 및 제3항 개정, 제4항부터 제6항 신설) 이를 고려하면 처음부터 해병대 경찰이 현장이 즉시 사건현장에 대한 통제권 등을 경찰에 이관하고, 경북경찰청 및 예천경찰서는 즉시 사건수사에 착수하였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군사법원법」제2조(신분적 재판권) ① <생략>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범죄 및 그 경합범 관계에 있는 죄에 대하여 재판권을 가진다. 다만,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21. 9. 24.> 1. 「군형법」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이 범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의 성폭력범죄 및 같은 법 제15조의2의 죄,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제2호의 죄 2. 「군형법」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이 사망하거나 사망에 이른 경우 그 원인이 되는 범죄 3. 「군형법」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이 그 신분취득 전에 범한 죄
4.3. 영주댐의 방류
경향 - [단독]수중수색 작업 중에도 댐 방류···채 상병 실종 3시간 만에야 방류 중단사건 발생 1주기 하루 전인 2024년 7월 17일, 채 상병 사망 전날인 2023년 7월 18일 약 107t/s의 물이 방류되었던 걸로 확인되었다. 수색인원이 위치한 지점까지 대략 2.5 ~ 4시간이 걸리는 걸로 추정하고 있다. 피해자가 급류에 휩쓸린 시각은 다음날 오전 9시 10분 경으로 당시에도 평균 80t/s 가량의 물이 방류되었고 실종 3시간이 지나서야 수문이 닫혔다.
이에 수자원공사 낙동강본부 측은 "2023년 7월 19일 오전 10시 2분 경 경북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사고가 발생해 일대를 수색 중이니 댐방류량을 조절해달라.'라는 요청을 받고 오전 10시 30분부터 닫기 시작했으며 전날 방류량에 대해서는 연락받은 게 없다고 했다.
당시 수색현장에 있던 관계자 역시 방류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며 '산사태로 인해 유실된 곳이 많아 수변수색은 힘들다고 판단해 도로정찰 위주로 해야할 것 같다.' 는 내용으로 7여단장에게 보고했고 이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기록이 사실이라면 사건 전날에 7여단장은 이미 현장답사를 했으며 도로정찰 위주로 변경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던 상황에 인명사고가 발생하니까 그제야 현장에 급파된 걸로 보인다.
5. 반응
5.1. 정부
- 윤석열 대통령은 7월 20일 대통령실 서면 브리핑을 통해 "순직을 진심으로 애도한다"라고 말하며, "유가족분들과 전우를 잃은 해병대 장병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
- 또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21] "채수근 일병에게는 국가유공자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 국방부는 7월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한 해병 전우가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관련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또한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질타에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현장에서 더 완벽한 대책과 상황 판단을 한 후 피해 복구 작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수색 및 구조 활동 때 반드시 안전장구류를 착용하게 하라는 내용의 지시 사항을 오늘 아침 시달했다고 밝혔다. #
- 이종섭 국방장관은 7월 20일, 채 상병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어 "우리 국민과 군을 위해 헌신한 채수근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다 해나가겠다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라고 말했다. #
- 이어 예천스타디움에 마련된 해병대 숙영지를 찾아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작전 중이던 해병대 장병을 위로했다. 또 해병대 장병이 실종된 지점을 찾아 현장 상황을 보고 받고 "군과 경찰이 잘 협력하라"며 해병대와 경찰에게 각각 격려금과 기념 코인을 전달했다. #
5.2. 지방자치단체
-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7월 20일, 채수근의 순직에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분들과 곁에서 함께 했던 해병대 장병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어 "경북도를 위해 몸 바친 채수근 상병의 순직은 경북도를 책임지고 있는 도지사로서 애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채수근 상병의 노력과 희생이 헛되지 않게 단 한 명의 실종자도 없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했다. #
5.3. 해병대
- 대한민국 해병대는 7월 20일, "경북 예천 지역의 호우 피해 복구 작전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해병대원의 명복을 빈다"며 "유족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호우 피해 복구 작전을 위해 헌신하다 순직한 해병에 대해 최고의 예우를 갖춰 후속 조치를 진행하겠다"라고 밝혔다. #1, #2
- 7월 20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비롯한 해병대 참모들이 빈소에 가장 먼저 헌화하고 분향했다. 채수근의 어머니는 고개를 떨군 해병대사령관의 손을 잡고 하염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
- 7월 20일, 해병대 제1사단은 사단장 권한으로 일병에서 상병으로 추서 진급을 승인했다.
- 7월 20일, 해병대사령부 공보과장[22] 최용선 해병 중령은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들로부터 사고 관련 질문을 받고 "구명조끼는 하천변 수색 참가자들에게 지급이 안 됐다"라고 밝혔다. 또한 "(당시) 현장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규정과 지침을 보완하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최 중령은 "해병대에는 재난 현장 조치 매뉴얼이 있다"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개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하지만 나흘 후, 구체적 매뉴얼이 없었음을 결국 인정했다.
- 7월 21일 오후,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내 강당에 차려진 채 상병 분향소에서 해병대가 채수근 부친 채홍석(58)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을 전달했다. 채홍석은 아들의 영정 사진 아래쪽에 훈장을 내려놓았다. 보국훈장 5등급인 광복장은 국가 안전 보장에 공로를 세운 대위 이하 국군 장병에게 정부가 추서한다.
- 7월 24일, 최용선 중령은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수변 지역에서의 실종자 수색 작전 간 구명조끼 착용 등 대민 지원 형태별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다"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보다 구체적으로 위험 상황별 안전 대책과 현장 안전조치 요령을 보완 중"이라고 밝혔다. #
- 7월 31일, 수사 결과 발표 1시간 전 해병대가 돌연 발표를 연기하고 국회 국방위 보고 또한 일방적으로 연기하며 의문점이 들게 하였다. 국방부 측에선 수사에 혼선이 생길 수 있어 연기하였다고 밝혔지만 자체 수사 결과가 부실한 것이 들통날까봐 추가 조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드러난 진실은 훨씬 추악했으니...
5.3.1. 예비역 연대
- 9월 23일,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와 사관 81기 동기회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5.4. 정치권
- 7월 20일, 국민의힘 지도부는 최고위원회의 전 순직한 해병대원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고 현역 의원들이 애도의 뜻을 담아 추모 성금을 모으기로 했다. #
-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는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며 "고인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을 숙연하고 정중한 마음으로 기리고 최대한의 예우를 해야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관계 당국은 수색 구조와 피해 복구 과정에서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안전 조치를 해주길 당부한다"라고 했다.
-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불어난 강물 속에서 수색 작전에 나섰는데 어떻게 구명조끼조차 지급되지 않았는지 국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관련 매뉴얼이 있었는데 지키지 않았다면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부분이고, 만약 없다면 없는 대로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난이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오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 관계 당국은 실종자 수색과 사고 수습에 나선 모든 분의 안전을 빈틈 없이 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
- 7월 20일, 더불어민주당은 순직한 해병대 병사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이번 사고를 '인재(人災)'로 규정해 철저한 진상 규명을 강조했다. #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해당 사고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추모하면서도, 다시 반복된 인재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올해 일어난 재해가 수사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수준의 경각심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또한 "왜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살인 아니냐는 유가족분들의 애끊는 절규와 허망함에 주저앉아버린 동료 전우들의 모습에 가슴이 찢어진다. 부디 더 이상의 인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라고 촉구했다.
-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수색 작전 중이던 해병대 병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안타까운 일"이라며 "국방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경위를 철저하게 규명하고 위험 현장에 함께하는 장병의 안전 대책을 철저하게 점검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 7월 20일,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상무집행위원회의에서 "재난 구조마저 인재가 되고 있다"며 "장갑차도 못 버틸 정도로 불어난 강을 수색하면서 구명조끼 하나 지급하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방부는 병사들을 안전대책 없이 투입한 경위를 명백히 규명해야 할 것"이라며 "국방위원회 현안질의 등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라고 밝혔다. #
- 7월 20일,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구명조끼 하나 입혀 보내지 않으면서 어떻게 성실의 의무를 다하라고 요구할 수 있나?"라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유가족과 국민 앞에 사과부터 하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해병대 및 군 수사기관은 진상을 분명히 밝히고,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라고 밝혔지만, "하지만 일선 간부와 지휘관 몇 명에 대한 추궁에 머물러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 7월 22일,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논평에서 "채수근 상병은 외동아들로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책임감이 강하며 예의 바르고 활발한 성격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채수근 상병은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하기 위해, 소방대원이었던 아버님의 응원을 받으며 용감하게 해병대에 자원했습니다. 위험하고 힘든 폭우 피해 복구 및 수색 작전 투입을 명 받고도 부모님과 동료들에게 자랑하던 명예로운 대한민국의 해병이었습니다. 채수근 상병은 작전 수행 중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며 "명예로운 대한민국 청년의 죽음 앞에 목 놓아 우신 유가족분들과 해병대 전우들께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하며, 다시 한 번 故 채수근 상병의 명복을 빕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우리 군인들이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 8월 25일,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국방위원회에서 수사 외압에 대한 의견을 표하는 중에 채수근의 죽음을 두고 "안타깝지만 손 잡고 가다가 웅덩이에 푹 빠져서 안타까운 죽음을 했어요. 그런데 이게 8명이나 다 처리할 만큼 어마어마한 군의 과오나 그런 겁니까?"라고 폄하했다. #, 영상.
- 12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국회 본청 앞 천막농성을 통해 김진표 국회의장을 상대로 해병대원 사망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촉구에 들어갔다. 농성은 본 회의가 예정된 12월 20일까지 진행되었으며, 20일 전용기 의원은 해병대예비역전국연대와 함께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국회의장 비서실장을 만나 해병대 예비역들의 의견을 전달했다.
- 2024년 4월 19일, 6개 야당[23]과 해병대 예비역 연대가 공동으로 채상병 특검법 처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5.4.1. 수사단장 보직해임 관련
자세한 내용은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수사 외압 논란 문서의 반응 부분을
참고하십시오.5.5. 시민단체
- 군인권센터는 실종 사고 소식이 알려진 후 "무리한 임무 투입으로 발생한 인재였다"며 비판하는 성명을 게시했다. #
- 이어 국방부는 즉시 대민지원 투입 장병의 안전 대책을 점검하고 추후 사고의 경위를 성역 없이 규명하라고 밝혔으며 실종자가 조속히 발견되기를 바라며, 마음 졸여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께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에 관한 청원에 동의 인원이 5만명이 된다.
5.6. 피해자 가족
- 채수근 유가족 측에서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름 석 자를 쓰지 말아달라."고 해병대 여단장에게 요청했다. 피해자 부모가 언론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릴 때마다 괴로워 한다고 전했다. #
6. 추가 논란
6.1. 빈소 안내표기 한자 오기
해병대가 채수근의 빈소에 아버지를 한자로 父(아버지 부)가 아닌 남편을 뜻하는 夫(지아비 부)로 잘못 표기했다가 뒤늦게 바로잡았다. 해병대 관계자는 "어이없는 실수를 했고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과 드린다"라고 밝혔다. #6.2. 해병 1사단의 수해 복구 거듭 강행
채수근의 사망 직후에도 해병대 1사단은 수해 복구를 또 다시 강행했다. 심지어 장례 기간 3일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7월 24일 기사.6.3. 해병 1사단 장병 휴가, 외박, 외출, 면회 통제
사건 발생 직후 주말인 7월 22일~23일, 채수근 일병과 함께 수중 수색에 투입되었던 동료 대원들의 휴가, 외박, 외출, 면회를 전면 통제했다는 의혹이 제보되었다. #1, #2 이번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동료 병사의 가족들이 회복을 위해 휴가, 외박, 외출, 면회를 신청했는데 해병대 측이 모두 거부한 것. 그리고 해병대는 군인권센터의 폭로에 대해 "22일에 휴가자 3명이 나갔다"라면서 군인권센터가 사실무근의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있다고 공격했다.이에 군인권센터 측이 "22일에 나간 휴가자는 전원 미리 계획되어 있던 정기휴가자이고, 이번 사고로 충격을 받은 병사들을 위해 가족들이 신청한 휴가와 외박 등은 모두 거부 당한 게 맞다. 가족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라고 반격하자 그제야 "현장에서 신속한 수해 복구를 위해 주말에도 수해 복구가 계속 시행될 것으로 예상돼 '(출타가) 제한될 수 있다'는 양해를 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 그리고 "현장에 함께 있던 장병들 중 휴일 출타를 신청한 장병이 없었다"라고 재차 해명했다. 하지만 애초에 군인권센터 측은 "부모가 신청한 것이 거부 당했다"라고 밝히고 있었으므로 "신청한 장병이 없었다"는 해명은 동문서답일 뿐이다. 게다가 군대, 그것도 해병대에서 동료들을 놓아두고 혼자 내보내 달라고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 저 해명은 하나마나한 것이다.
6.4. 대전현충원의 순직 위치 오기
채수근이 안장[24]된 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에 사망 장소가 충청북도 예천으로 잘못 표기되었다가 경북 예천으로 수정되었다. #6.5. 민생법안 폐기
채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정쟁으로 인해 법안을 심사해야할 법사위가 열리지 않아[25] 민생법안들이 대거 임기 만료로 폐기되게 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 #, #특히 법조계에서 중요한 법안으로 꼽는 구하라법, 가사소송법전부개정법률안,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 개정안, 검사정원법 개정안 등이 모두 다음 국회에서 재발의를 요하게 되었다. 특히 가사소송법전부개정법률안은 문재인 정부 법무부에서 발의했다가 제20대 국회에서 별 이유도 없이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을, 윤석열 정부 법무부에서 종전 법안을 손보아 다시 발의했으나 제21대 국회 역시 별 이유도 없이 처리를 하지 않았다. #
7. 관련 문서
- 대민지원
- 인재
- 안전불감증
- 대한민국 국군/문제점/안전
-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문제점/생명권 경시
-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 죽으면 누구세요?
- 대한민국 해병대/악습
-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 해병대 7여단[26]
- 국방부
7.1. 관련자 문서
자세한 내용은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수사 외압 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 윤석열 -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며, 대통령실의 수장
- 이종섭 - 당시 국방부장관
- 신범철 - 당시 국방부차관[27]
- 김태효 - 대통령실 국가안보1차장[28] MBC, #
- 김계환 - 해병대사령관[29]
- 임성근 - 해병대 제1사단장[30]
- 박정훈 - 前 대한민국 해병대 수사단장(대령)[31]
- 김도읍 - 21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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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 ||
[1] 2003년 1월 2일생.[2] 사망 당시 일등병이었으며 상등병으로 1계급 추서되었다.[3] 사고 당시에는 일등병이었으며 7월 20일부로 상등병으로 추서 진급하였다. 향년 20세.[4] 소속 부대명을 부르기에는 길고, 채수근 일등병이 상등병으로 추서된 점을 반영한 것이다. 2014년에 발생한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을 각각 '임 병장 사건', '윤 일병 사건'으로 부르듯이 관련 인물의 성만 따와서 사건명을 약칭한 적도 있고, 채씨가 상대적으로 덜 흔한 성이라는 점도 감안한 듯하다.[5] 대대장 측은 50사단장이 작전통제권자로서 소임을 다하지 않았다면서 직무유기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6] (경찰청) 경찰 수사사건 심의 등에 관한 규칙 제2조(신청) ① 사건관계인(고소인, 고발인, 피해자, 피의자, 피조사자, 피진정인 및 그들의 대리인을 말한다)은 경찰 입건 전 조사ㆍ수사 절차 또는 결과의 적정성ㆍ적법성이 현저히 침해되었다고 판단하는 경우 경찰관서(담당 수사관이 소속된 경찰서 또는 시ㆍ도경찰청을 말한다)에 심의를 신청(이하 "수사심의신청"이라 한다)할 수 있다.[7] #[8] 공식 사망판정 일자[9] 현장인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7월 19일 이미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관련 규정상 사망 판정은 의사만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사망 날짜와 장소는 7월 20일 포항병원으로 본다.[10] 판서공파 26세손 수(洙)○ 항렬. 집안의 장손이었다. # 아버지 채홍석은 25세손 ○석 항렬이다.[11] 전북특별자치도 소방본부 소속의 현직 소방관이다.[12] 1학년 수료 후 입대.[13] 2024년 9월 26일 전역 예정이었다.[추서] 사망 당시 일등병이었으며 상등병으로 추서 진급했다.[15] 즉, 장자의 장자의 장자인 셈.[16] 예천을 관할하는 곳은 육군 제50보병사단 제123보병여단과 공군 16비행단이며, 공군은 법적으로 자기 부대 부지 외엔 방어 책임지로 할당 받는 위수지역이 없으므로 육군 50사단 단독 관할이라 볼 수 있다. 해병대 제1사단은 포항, 경주 근처의 해안 지역 및 주둔 근처 육상 지역을 관할한다.[17] 다만 재난신속대응에 대한 근거 규정이 존재하기는 한다. #[18] 물론 국가적 재난, 군사 목적이 아닌 상황에서 대민지원이 이어지면 이들 나라도 좋은 소리 못 받는다. 자연재해로 대민지원이 일상인 자위대, 대만군도 군사 목적 외 대민지원 투입에 대해 실상을 아는 출신자들이 거센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19] 물론 국방의 의무를 위해서 자유를 뺏긴 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사람들에게 휴가가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안다면 제 아무리 힘들더래도 군인들은 휴가를 얻고자 무리하게 수색을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휴가는 군인들에게 가장 큰 가치를 지닌 보상이며, 국방부와 군부대들도 이를 알기에 군인들에게 휴가를 미끼로 강도 높은 업무를 주기도 한다.[20] 당시 해병대는 강가에 있었고 주민들은 다리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기에 간부가 뛰어와서 주민에게 신고 요청을 했다지만 여기서 신고 시간이 약 3분 정도 지체되었다.[21] 결국 대통령실 외압 의혹의 실체적 진실이 판명되어야 이 말의 진정성이 확보될 전망이다.[22] 해병대사령부 공보과장은 실무자에 해당한다. 보통 해병대사령부 공보 관련 대국민 브리핑은 당연히 대령 계급의 공보실장이 맡는다. 아마 이 사건에 대해 욕을 먹기 싫어 하급자를 대신 보낸 듯하다. 이것에 대해 캡틴 김상호는 "좋은 일에는 자기가 나서고, 안 좋은 일은 부하 대신 내보내는 비겁한 상급자"라고 비난했다.[23]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녹색정의당, 새로운미래, 진보당.[24] 장병 제4묘역 413 묘판 묘비번호 13706[25] 법사위원장을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맡고 있었는데, 국민의힘의 경우 특검법 처리를 막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법사위를 개회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특검법도 심사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민생 법안을 비롯한 다른 법안들 역시 심사할 수 없었다.[26] 당시 사건 현장에서 지휘를 맡던 제대. 포병여단 쪽 병력들은 임시 차출된 것으로 보인다.[27]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간접적으로 당시 사단장, 여단장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제외하도록 간접적으로 압박한 의혹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28] 수사단 언론 브리핑 자료를 요구하고, 이튿날 보도 보류를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29]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해병대 수사단장에 간접적으로 외압을 넣은 것으로 보도되어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박정훈 대령은 최초 언론 인터뷰에서 김계환 사령관도 국방부로부터 차관(장관)을 통해 압력을 받았고 그 문자 내용을 자신도 봤으며, 사령관은 수사단장인 자신에게 복잡한 사정을 토로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건 이후 진행된 통화와 대화들을 싹 다 녹음해뒀고 이 파일들이 공수처 손에 떨어지면서 용산 대통령실로 수사가 집중되게 만들었다. 박 대령이 최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것도 그렇고 행적도 여러 모로 국방부 편 사람치고는 상당히 묘한 인물.[30] 이 대민지원 업무의 명목상이면서도 실질적인 총책임자이다.[31]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편에 속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