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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허구연의 생애 및 경력을 다룬 문서.2. 선수 시절
부산 대신초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야구를 했다고 한다. 당시 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대신초 야구부 감독이 초-중-고-대학교까지 함께 나온 두 살 아래 고향 후배 이성득의[1] 삼촌이었다고 한다.2.1. 경남고 - 상업은행(1970)
현역 때 포지션은 내야수. 특히 2루수가 주 포지션이었다. 경남고등학교 야구부(1967년 ~ 1969년) - 상업은행 야구단(1970년) - 고려대학교 야구부(1971년 ~ 1974년) - 한일은행 야구단(1975년 ~ 1978년)을 거쳤다.1967년 제 21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한 후. 등번호 3번이 허구연이다. |
경남고등학교 시절 허구연. 참고로 1960년대라 경남고 건물이 목조 건축물이었다. |
8살이었던 1959년에 야구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경남고 야구부 시절부터 준수한 배팅 능력을 지닌 선수였다. 1학년이던 1967년에 황금사자기에서 경남고가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이때는 1학년에 불과했던 만큼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는 주장은 다소 걸러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1학년 때인 황금사자기 때 얼마나 활약했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동기들 중에서 야구선수로서 실력이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다. 청소년대표로 발탁되기도 했다.
경남고 졸업 후 실업야구 상업은행에서 입단하여 1년간 선수생활을 했다. 상업은행 장태영 감독이 "네가 오면 경남고 팀 동료 한 명을 상업은행에 넣어주겠다"고 통보했고, 이에 허구연은 우정을 저버릴 수 없어 1970년 상업은행 야구단에 입단했다고 한다.
허구연 본인이 주장하는 대로 원래 운동이 아닌 공부를 하려 했다는 그의 진술, 그리고 학벌, 학력에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는 모습으로 볼 때, 그가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실업야구로 직행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2]
사실 당시 고려대나 연세대 야구부는 요즘과 달리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에는 최고의 야구 엘리트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곳이 연고대 야구부였다. 박철순, 최동원, 선동열, 이순철, 조계현 등 당시 고려대와 연세대 야구부를 나온 기라성 같은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고교 4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후 MVP 정도는 차지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고려대와 연세대 야구부였다. 개인성적도 특출나야 했고 아울러 소속 고등학교의 성적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당시 장효조, 이만수, 김재박, 김성한, 한대화, 김시진 같은 야구 엘리트들도 고3 때 우승 및 MVP 같은 확실한 경력이 없어서 연고대에 가지 못하고 한양대나 동국대 등에 입학해야 했다.
허구연은 청소년대표로 선발된 경력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던 경남고 야구부는 그가 1학년때인 1967년 제 21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제외하면 4대 고교야구대회인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에서 한번도 4강안에 든 적이 없다. 사실 1학년때의 우승기록은 거의 무의미하고 대학 진학에 있어서 3학년때 성적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데, 당시 야구대회에서 실적이 없었던 경남고 출신인 허구연이 고려대를 비롯한 명문대 야구부에 합격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때문에 허구연은 실업야구에서 1년간 선수로 뛴 후 실업야구 경력을 바탕으로 고려대 야구부에 재수했을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2.2. 고려대 야구부(1971~1974)
실업리그 상업은행에서 1년간 선수로 뛴 후 이를 바탕으로 1971년에 고려대학교에 체육특기자로 진학했다. 1971년 고려대에 입학한 허구연은 그해 고려대 야구부에서 3, 4번 타자로 발탁되었는데, 이는 고려대 야구부 역사상 처음으로 1학년이 4번타자로 기용된 것이다. 허구연은 1972년 대학 야구 홈런왕에 등극했다.2.2.1. 고려대 입학 관련 논란
허구연 본인은 1971년 고려대 체육학과에 들어갔으나 공부 안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안들어 그만두고 1972년 예비고사를 보고 정식으로 고려대 법대에 다시 입학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러 물증 및 정황상 그의 주장은 구라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진실은 1971년 체육특기자로 고려대에 입학하여 법학과를 선택한 후 1975년 졸업한 것으로 여겨진다.허구연 본인은 1971년 고려대 체육학과에 들어갔다가 1972년 정식으로 예비고사를 쳐서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고려대학교 학보인 '고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였다. 우선 일반 언론에 실린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저는 이제 상업은행 처음 갔다가 1년 있다가 대학으로 갔거든요. (중략)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업은행에) 갔다가 이건 도저히 아니고 공부를 해야 되겠다. 그래서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을 다시 간 거예요. 은행에서 뭐 난리 났죠. 하도 은행에서 잡아가지고 예비고사를 못 쳤어요. 잡으니깐. 예비고사를 쳐야 대학을 가잖아요. 예비고사를 안 치면 체육학과밖에 못 갔어요. 그래서 제가 체육과를 들어간 거에요. 그래도 난 가겠다. 그러니까 (은행에선) 할 말이 없는 거죠. 그래서 체육과를 또 다니다 보니까 아 이건 공부를 별로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당시에는 특기자만 다 모아놨으니까. 그래서 또 다시 시험을 쳤어요. 예비고사를 쳤어요. 그래서 법대를 갔어요. 그러니까 학교에서도 고대에서도 또 놀란 거에요. 이거 뭐 4번 타자가, 제가 1학년때부터 3,4번을 쳤는데, 아니 뭐 또 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공부하겠다고 갔어요.
-KBO 특별기획 야구를 말하다 - 허구연 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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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도망치다시피 상업은행을 떠나 이듬해 71학번으로 고려대 체육학과에 체육 특기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1년 뒤에는 같은 학교 법학과 72학번으로 두 번째 입학식을 가졌다. (중략) 1971년 3월 체육학과에 입학하면서 나는 야구선수와 수험생의 생활을 병행했다. 말하자면 ‘주야야독’(晝野夜讀)이었다. 정식으로 예비고사, 본고사를 거쳐 법과대학에 들어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최초의 국가대표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운동선수들은 무식하다”는 세간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 신문 인터뷰에서 “판검사나 변호사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야구가 더 좋아서 안 하는 것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듬해 나는 고려대 법대에 신입생으로 다시 들어갔다. 체육 특기자 출신이 고려대 안에서도 입학하기가 가장 어려운 학과로 통했던 법대에 시험을 봐서 합격하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내에서도 난리가 났다.
- 서울신문 인터뷰
- 서울신문 인터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실업팀에 들어갔다가, 대학 수업을 듣고 싶어서 체육 특기자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전 ‘내가 좋아하는 야구도 하면서 사법고시 합격을 해보자’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다시 공부를 해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지요. 그런데 야구부 활동을 하다 보니 합숙 훈련도 많고 원정 경기도 많아서 사법고시와 병행은 하기 힘들더라고요.
- 허구연 학무지경, LG 챌린저스
- 허구연 학무지경, LG 챌린저스
사법고시에 패스한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71학번 체육 특기자로 고대에 입학했지만, 예비고사를 다시 봐서 72학번으로 법대에 들어갔다. 야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업을 들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아침 9시에 중간고사를 보고 낮에 동대문야구장에 가서 홈런을 2개 친 날도 있었고.
- , 800만 관중 흥을 돋우다
- , 800만 관중 흥을 돋우다
1년간 실업 선수로 뛰는 동안 그는 이것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컸다. 결국 허구연은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받아들여질 리 만무했다. 팀은 허구연의 예비고사 응시를 막았다. 그렇지만 이미 결심이 선 허구연은 예비고사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고대 체육과를 선택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된 허구연은 1년이 지나고 다시 한 번 ‘사고’를 친다. 자신은 ‘공부하러’ 간 건데 체육과의 분위기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1학년 때 아무도 모르게 예비고사를 치렀다. 결과는 법학과 합격. 정상적이라면 70학번이어야 하는데, 체육과 71학번, 법학과 72학번이 된 것이다.
“전 사법고시 합격을 해보고 싶었어요. 고시 합격하고 야구를 해도 되잖아요. 자기 공부를 하면서 운동도 하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었던 거죠.”
- 최고가 되려면 버릴 줄을 알아야 한다
“전 사법고시 합격을 해보고 싶었어요. 고시 합격하고 야구를 해도 되잖아요. 자기 공부를 하면서 운동도 하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었던 거죠.”
- 최고가 되려면 버릴 줄을 알아야 한다
1년 뒤. 그는 대학문을 노크한다. 상업은행 장태영 감독이 펄쩍 뛰며 말렸다. 모처럼만에 들어온 복덩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잔류요청을 정중히 거절한다. 우여곡절 끝에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특기생으로 입학한 허구연.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특기생이란 ‘딱지’가 싫었다. 이왕 대학생활을 한다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다. 다음 해 그는 일반학생들처럼 예비고사를 쳐 자력으로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한다. 고려대가 발칵 뒤집힌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 허구연과 인프라, 박동희
그는 특기생이란 ‘딱지’가 싫었다. 이왕 대학생활을 한다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다. 다음 해 그는 일반학생들처럼 예비고사를 쳐 자력으로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한다. 고려대가 발칵 뒤집힌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 허구연과 인프라, 박동희
허구연은 1971년 고려대학교에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다시 대입 시험을 치러 공부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72학번으로 재입학하는 엄친아의 면모를 드러냈다.
- MK 스포츠 2014.01.28
- MK 스포츠 2014.01.28
그러나 허구연이 고려대 72학번이라는 공식 기록은 없다. 고려대에서는 공식적으로 허구연이 법학과 71학번으로 되어 있다.
당시에는 체육특기자로 입학해도 법학과, 경영학과 등 일반학과를 선택하는 관행이 있었다. 김경문이 고려대 경영학과 78학번, 선동열이 고려대 경영학과 81학번, 박용택이 고려대 경영학과 98학번인 것은 이같은 이유이다. 허구연 이외에도 체육특기자로 고려대에 입학해서 법학과로 졸업한 선수들은 많다. 김경기(고려대 법학과 86학번), 염경엽(고려대 법학과 87학번), 심재학(고려대 법학과 91학번), 최희섭(고려대 법학과 98학번 중퇴) 등 여러 야구선수들이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축구, 농구 등으로 종목을 확대하면 고려대 법대 졸업한 수많은 선수들이 더 있다.
또 70년대초 당시 고려대가 입결이 많이 떨어져 연대, 부산대, 이대에 입결이 밀리던 시절이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고려대 들어가는 것은 그때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특히 고려대의 간판 학과인 법학과는 더욱 그렇다. 허구연의 말이 모순인게 당시에는 예비고사를 치른 후 본고사를 봐야 합격할 수 있었는데, 도입 초창기 예비고사는 말그대로 대학에 입학할 자격이 있는가를 보는 예비 자격 시험에 불과했고 당락은 본고사가 좌우했다. 때문에 예비고사를 다시쳐서 고려대 법학과에 합격했다는 허구연의 발언은 당시 실제 입시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입시 프로세스를 잘 모르고 한 발언이다. 당시 예체능계 및 특기자를 제외하면 모든 문이과 계열 학생들은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모두 치러야 했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예비고사는 거의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위권 학생들은 예비고사는 기본 실력으로 보고 당락을 좌우하는 본고사에 매진했었다.
진실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본고사에서 고려대 같은 사학들이 엄청난 비리를 저리른다는 민원과 국민들의 불만이 폭증해서 박정희 정부가 결국 입시의 공정성을 위해 1969년 예비고사를 도입했고[4] 예체능계를 제외한 모든 학과는 반드시 예비고사를 봐야 입학이 가능했다. 당시 예비고사는 사학들이 최소한의 실력도 안되는 사람을 부정입학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었다. 따라서 체육특기자라 하더라도 법학과, 경영학과 등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예비고사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당시 많은 운동부 학생들이 예비고사를 치르지 못해 체육학과에 입학해야 했다. 나무위키 고려대 출신 인물을 보면 알겠지만 1960년대에는 운동부 출신도 법학과, 경영학과 등 일반학과를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69년부터 갑자기 운동부 출신들의 출신학과가 체육학과에 집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1970년대말에 다시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경영학과, 법학과 출신의 운동부 선수들이 늘어난다. 허구연이 다시 예비고사를 봐서 법대에 들어갔다는 진술을 최대한 당시 상황에 맞게 해석하자면 허구연 역시 1971년 예비고사를 치르지 못해 체육학과로 진학했다가 1972년 예비고사를 치른 후 법학과 진입 자격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혹은 72년 예비고사를 봐서 자격을 얻었으니 체육학과에서 법학과로 전과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허구연은 예비고사를 봤다는 말은 수도 없이 했지만 본고사를 치렀다는 말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따라서 그가 입시를 다시 봐서 일반학생으로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다는 말은 구라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플레이오프 2차전 LG :삼성 경기에서 TBC 라디오 프로야구 중계에서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이 출연했는데 홍준표가 허구연이 1972년 고려대 법학과 동기라고 라디오 중계 중에 직접 언급한 걸로 보아서 허구연이 고려대 법학과 입학은 사실인것으로 보인다.
또 허구연은 한일은행 팀에서도 1975년부터 뛰었다. 그런데 이는 허구연이 72학번이라면 조기졸업을 해야만 가능한 것인데 운동부가 아닌 일반 학과 학생이 대학야구리그에 출전하면서 조기졸업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2.3. 한일은행(1976~1978)
고려대학교를 졸업 후 1975년 김응용 감독이 이끌던 한일은행 야구단[5]에 입단했다. 미사일 타선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75년, 1976년 2년 연속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등 실업무대에서 잘 나가는가 싶었는데... 1976년 대전광역시에서 열린 한일 올스타전에서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큰 부상을 입었다.[6] 당시 2아웃 주자 1루인 상황에서 평범한 유격수 땅볼을 유격수가 1루로 던지지 않고 2루로 송구했고, 엉겹결에 2루에서 공을 받은 2루수인 허구연이 후속 동작을 취하지 못한 와중에 일본 팀 1루 주자의 거친 슬라이딩에 받히면서 정강이뼈가 바스라진 부상을 입은 것. 당시 공주고에 재학중이었던 김경문이 이 경기를 직관하고 있었는데 부딪힐 때 '빡' 소리가 경기장 전체를 울릴 정도였다고 하니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시 구급차가 없어서 야전용 들 것에 실려나갔고, 이때 다리가 덜렁거릴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는데, 대전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차안에서 마취를 했음에도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4차례의 수술 끝에 겨우 일상 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회복되었다.1978년, 재활시스템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잘 뛰지도 못하는 허구연을 김응용 감독이 대타로 기용했고 그 타석에서 홈런을 쳤는데 그것이 허구연의 마지막 타석이었다. 같은 해 5월 김감독이 말렸으나 정상적인 걸음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의사의 권유대로 은퇴를 했다.
한일은행에서 선수를 은퇴한 후 관행대로 은행에서 직원으로 계속 일할 수 있었으나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포기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계산에 약해서 은행 일은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3. MBC 해설위원 1기
참고로 본인이 밝히지 않았지만 허구연은 금성계전(주)[7]에서 샐러리맨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이때 회사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녔다고 되어 있다. 당시 사내 야구 동호회를 만들어 대회에 나가 선수 겸 감독으로서 우승도 쉽게 하자 경기에 직접 나오지 말라는 상대팀의 불만까지 생긴 적이 있었다고 한다. ## 허구연은 1984년 금성계전을 그만두었다고 한다.그런데 여기서 또 여러가지로 앞뒤가 안맞는 현상이 나오는데,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되었을 때 곧바로 해설위원을 활약하게 된 것. 그렇다면 2년 이상을 직장인 생활을 하면서 프로야구 해설가로 활약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앞에도 나와있지만 허구연은 1981년 석사 학위를 받고 나서 교수를 꿈꾸며 경기대에서 2년간 강사 생활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허구연은 금성계전 인사과 직원, MBC 프로야구 해설위원, 경기대학교 법학 강사 이렇게 쓰리잡을 뛴 것이었다.
허구연은 본인이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하던 1978년 동아방송에서 야구 해설을 시작했다. # 그런데 한편으로 허구연은 1978년 병상에서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공부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당시에는 실업야구였고, 주로 라디오 중계였다. 1982년 KBO 리그 원년부터 MBC 야구 해설위원이 되어 KBO 리그 중계활동을 하며 야구팬들에게 해설가 허구연으로 다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초창기 김용 MBC 아나운서와 함께
4. 흑역사인 청보 핀토스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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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b21528> 초대 (삼미 초대) | 2대 (삼미 2대, 청보 초대) | ||||
박현식 (1982) | 감독 대행 이선덕 (1982) | 김진영1 (1983, 1984~1985) | 감독 대행 이재환 (1983) | ||
<rowcolor=#b21528> 2대 (삼미 2대, 청보 초대) | 3대 (청보 2대) | ||||
감독 대행 이선덕 (1983) | 감독 대행 박현식 (1983) | 감독 대행 신용균 (1985) | 허구연 (1986) | ||
<rowcolor=#fff> 3대 (청보 2대) | 4대 (청보 2대, 태평양 초대) | 5대 (태평양 2대) | |||
감독 대행 강태정 (1986) | 강태정 (1987~1988) | 감독 대행 임신근 (1988) | 김성근 (1989~1990) | ||
<rowcolor=#ff9933> 6대 (태평양 3대) | 7대 (태평양4대) | 8대 (현대 초대) | 9대 (현대 2대) | ||
박영길 (1991) | 정동진 (1992~1995) ☆ | 김재박 (1996~2006) ☆ ★ ★ ★ ★ | 김시진 (2007) | ||
윗첨자1 : 김진영 감독이 1983년 중반 폭행 사건으로 인해 현장에 복귀하지 못했고 이재환, 이선덕 코치, 박현식 고문이 감독 대행직을 맡았다. 1985년에는 18연패로 인해 신용균 코치가 임시로 대행을 맡았고 모기업이 청보로 넘어가자 다시 복귀했다. |
역대 전적 | ||||
팀 | 경기 | 승 | 패 | 무 |
총계 | 57 | 15 | 40 | 2 |
청보 핀토스 No.70 |
허구연 |
허구연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1985년 MBC 청룡으로부터 감독 오퍼가 왔지만 고사했다고 한다. # 1985년 4, 5월경 MBC 이웅희 사장이 독대를 여러 번 하면서 감독을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으나, 감독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고 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허구연 본인의 주장 이외에는 이를 뒷받침하거나 지지하는 어떠한 다른 증언이나 기록도 전무하다.
그렇게 MBC 이웅희 사장의 요청을 간절히 거절했던 허구연은 불과 몇 개월 후에 돌연 청보 핀토스 감독직 제의를 수락하고 감독에 취임했다. 하지만, MBC 청룡 감독직을 거절한 것은 당시 MBC 청룡 감독이었던 어우홍씨가 허구연의 경남고 시절 은사여서 제자가 스승의 자리를 뺏을수 없다며 거절한 것으로 본인이 직접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하여 청보 핀토스를 창단한 청보식품 회장 김정우 구단주는 팀을 인수하기 전 삼미 시절 임명된 감독인 김진영을 낙마시키고, 참신한 새 감독 후보를 탐색했는데, 그의 눈에 들어온 이가 당시 야구해설가로 해박한 이론을 자랑하던 허구연이었다.(...) 이에 박정삼 청보 단장이 허구연에게 수차례 감독직을 요청했다.
허구연 본인의 말에 따르면 박정삼 청보 단장이 정말 집요하게 설득해서 결국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청보가 원래 못하는 팀이기 때문에 감독을 맡아서 성적이 안나와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한편 허구연이 청보 감독으로 내정된 후에 이웅희 사장은 허구연에게 감독도 잃고 해설가도 잃었다며 허구연에게 푸념을 했다고 한다.
“박정삼 단장의 제의를 놓고 한 달 간 고심했다. 감독직을 수락하는 대신 코치진 인사권과 계약기간 3년 보장을 요구했다. 코치 경험도 없는 판이어서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 연봉 각 3000만원, 총액 1억2천만원이라는 당시 kbo 역사상 감독계약중 김영덕감독과 함께 최고 대우 였다. 김영덕감독은 수십년간 지도자 생활을 하며 ob베어스 원년 우승을 시키는 등 당시 최고로 인정 받아 부자구단 삼성과 맺은 계약인데, 반면 허구연은 7개구단 중 가장 가난하다던 청보에서 지도자 경력도 없는 신인감독이 이런 계약규모가 나와 당시로써 파장이 엄청났다. 참고로 1986시즌 7개 구단 감독 중 최고 연봉자는 삼성 라이온즈의 김영덕 감독의 4천만원이었는데, 김영덕 감독은 84시즌 당시 감독 최고금액인 계약금 3천만원, 연봉 3천만원에 3년 계약을 맺었으나 84년 한국시리즈의 부진 등으로 1985시즌 연봉은 2850만원으로 삭감되었으나,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전후기 통합 우승을 달성한 공로로 연봉이 무려 40%나 올라 4천만원이 되었다.
청보 감독을 맡았던 당시 허구연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정확히는 1985년 10월 17일 청보에 부임했을 당시 허구연은 만 34년 7개월의 나이였다. 이는 역대 최연소 KBO 1군 감독 취임 기록으로 남았다.[8] 당시 팀의 최고참 선수인 장명부 보다 허구연의 나이가 어려서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감독 취임 당시 허구연은 초짜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젊은 지도자의 패기 내지는 시행착오라고 감싸기에는 다소 너무 무례하고 오만하게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미 계약할 때부터 지도자 경력이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경험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시행착오 기간까지 감안해서 3년이라는 기간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하는 뻔뻔함을 보인 바 있다. 사실 연봉 협상이나 계약을 할때 허구연은 의외로 철판을 깔고 어불성설한 이유들을 천역덕스럽게 갖다 대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해설가 시절에도 연봉 협상과 관련한 몇가지 좀 특이한 일화들이 있다.
게다가 허구연은 초짜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코치 임명에 관한 전권도 함께 요구했다. 당시에는 경험이 많은 감독이라 하더라도 코치 임명권을 가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대표적으로 OB 베어스 창단 당시 김영덕 감독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주가 선임한 김성근 코치와 한솥밥을 먹어야 했다. 후임으로 감독이 된 김성근 역시 구단이 자신을 견제하기위해 정적인 이광환을 코치나 2군 감독 등으로 계속 돌리는 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감독 본인이 원하는 한두명의 코치를 영입해달라고 구단에 사정하는 정도였다. 요즘도 감독이 코치임명의 전권을 갖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을 제외하면 감독이 모든 코치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임명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자신이 원하는 코치를 3인 내외로 꾸리고 나머지는 구단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청보 핀토스 감독에 취임한 직후에 허구연은 김정우 구단주와 신현철 구단주 보좌관, 임완 사장, 박정삼 단장과 같이 모여있던 자리에서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김 구단주에게 "구단주님, 구단 내에서 저와 사장 중에 누가 더 높은 위치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당당하게 물었다고 한다. 일반 야구팬들도 아는 상식이지만 당연히 사장 아래가 단장이고 단장 아래가 감독이다. 물론 경험이 많은 유명 감독인 경우 어느정도 단장과 맞먹는 권한을 갖기도 하지만 명목상 단장이 감독 위에 있다. 허구연이 아무리 야알못이라지만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구단의 권력 구도에서 조기에 기선을 제압하려는 섣부른, 하지만 어설플 정도로 철없는 시도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시작부터 허구연은 구단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정치질부터 시도했던 것이다. 당시 김정우 구단주는 어이가 없었는지 허구연의 당돌한 물음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웃고 넘어갔다고 한다.
또 자신감에 넘치던 초보 감독 허구연은 감독을 맡자마자 자신의 핸디캡인 나이가 걸렸는지 팀의 베테랑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벌였다. 감독에 취임한 허구연은 꼴지팀을 벗어나기 위한 체질 개선이라는 명분 하에 선수단 개편을 추진했고, 그 선수진 개편의 핵심은 허구연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던 장명부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또 장명부 다음 고참이었던 김무관을 은퇴시키고 코치로 임명했다.
또 초보감독 허구연은 자신에게 주어진 코치 임명권을 십분 발휘하여 기존 청보 코치진들을 모두 물갈이하고, 유남호를 제외하고 김명성, 강태정 등 자신과 친분이 있는 야구 선배들로 새로 코치진을 꾸렸다. 자신의 나이가 어리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경험 있는 이들로 코치진을 꾸린 것이었다.
이렇게 허구연은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으나 개막전부터 내리 7연패를 당하는 등 전반기에만 8승 23패란 처참한 성적을 거두었다. 결국 전기리그 도중인 5월 10일 휴양이라는 명목하에 강태정 수석코치에게 지휘봉을 넘기고 일본 연수를 떠났다. 당시 언론 보도는 구단에 의한 사실상 경질 통보로 해석되었다. 일부 언론은 5월 11일 사퇴로 보도하기도 했다. #
하지만 6월 18일 후기리그 개막과 함께 감독에 복귀했다. 그러나 7승 2무 17패라는 전기리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초라한 성과를 남겼다. 결국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1986년 8월 6일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에 대해 허구연 본인은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자진해서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언론 보도에 의하면 김정우 구단주가 직접 허구연의 해임을 결정, 통보한 것이었다. 청보 허구연 감독 전격해임
전후기를 합산한 통산 성적은 57경기 15승 2무 40패. 승률 0.273[10]이다(…) 그래서 인천팬들 사이에 "허구헌날 지는 허구연"이란 드립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고.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이었던 김영덕은 그런 허구연에게 "구연아, 프로 감독은 무조건 센 팀에서 하는거다."라는 희대의 명언를 남기기도 했다.
원래 청보는 허구연 임기 전이나 후나 못하는 팀이라면서 허구연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지만, 허구연은 청보 역사에서 압도적인 최저 승률을 기록한 감독이다. 1986 시즌 청보가 기록한 승률인 0.302은 구단 최저 승률인데, 허구연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의 승률만 계산하면 0.273이다.
역시 제 3자 입장에서 야구를 논하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지휘를 하는 것은 넘사벽급의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허구연 자신도 가끔 해설 도중에 청보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면 매우 좋아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며, 자신에게 상당히 아픈 기억이라고 털어놓았다. 허구연 야구 인생 최대의 흑역사로 남아 있는듯.[11] 실패의 이유를 코치 등 실전 지도자 경험 없이 현장에 바로 뛰어든 것을 들었다. 또 자신은 감독에게 필요한 단호하고 모진 성격을 가지지 않아서 애초에 자리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훗날의 인터뷰에서 회고하길, 당시 주심들이 "허구연에게 지면 안된다"라고 하여 청보 핀토스에 불공정한 편파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 고생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 이후 2015년 5월 30일 한화 이글스 대 롯데 자이언츠와의 해설에 참여했을 당시에도 옆에 같이 해설하던 정민철이 표를 구하지 못 해 문수 야구장 외야석 뒤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숭의야구장[12]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려는 순간, 청보 감독 시절이 떠오른 나머지 숭의야구장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떠오른다며 숭의야구장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정민철의 입을 다급하게 막은 적도 있었다. 1시간 48분 40초부터
여담으로 청보 감독 시절, 모기업의 청바지 브랜드 '핀토스' 광고에 출연한 전력이 있다.
1987년부터 3년 동안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직을 맡았는데 재임 마지막 해 롯데의 성적은 꼴찌…. 이후 1년 간 토론토 블루제이스 마이너 팀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후 1991년 다시 해설계로 복귀하였다.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이후 삼성, LG, 모팀과 현대까지 4개의 팀에서 감독 제의가 왔으나 감독 경험에서 느낀 것이 있어서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해 프로야구에 진입했을 때도 감독직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는데, 심지어 정부 고위 인사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정주영 현대 회장도 관심을 많이 보였던 상황. 허구연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이 감독직을 고사하면서 대신 김재박을 추천해서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13]
5. MBC 해설위원 2기
1989년 롯데 자이언츠 코치에서 물러난 후, 1991년 해설위원으로 복귀하여 2021년까지 활동하였다. 1990년대에는 KBS에서 야구 해설을 담당하던 하일성과 더불어 대표적인 야구 해설위원이었다고는 하나, 대중적인 인지도와 선호도에서는 하일성에게 넘사벽급으로 많이 밀렸다. 대부분의 일반인이나 라이트팬들은 하일성은 알아도 허구연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허구연 특유의 경상도 발음을 흉내내면 들어는 본 적이 있다는 반응 정도. 본인에 말에 따르면 해설계의 2인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다고 한다.[14] 허나 사실 확실한 2인자라 말하기 조차도 어렵다. 다만 변화구
2000년대 중반, 하일성이 KBO 사무총장에 임명되며 해설계를 잠시 비운 사이에도 허구연은 계속 야구중계를 하였는데, 많은 젊은 해설위원들과 비교되며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오랜 해설 경력과 국제 경기 중계에서의 좋은 반응, 그리고 국내의 열악한 야구 환경에 대한 거침없는 쓴소리로 많은 지지를 받아 해설계의 1인자 자리에 올랐다고 평가받기도 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독도를 넘기는 타구', '고마워요 사또', '궁내 채고의 싱카볼 투슈' 등 야구팬들에게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명대사를 여럿 남기며 당시 KBS와 SBS를 압도적으로 꺾고 시청률 1위를 하였다.
2000년대 후반 하일성이 해설계에 복귀하고, 허구연 본인의 해설 방식에 대한 논란[15]이 야구팬들 및 커뮤니티 사이에서 많이 부각되면서 2000년대 초중반기에 비해 그의 해설에 대한 선호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야구팬들로부터 편파 중계가 매우 심하다고 평가받는다. 엘롯기 같은 팬이 많은 인기팀들은 상당히 편파적으로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반면, 샴셩 라이온즈, 하나 이글쓰, 에쑤께이 와이반슈, 키윰 히로즈 등은 상당히 편파적으로 마치 WBC같은 국제대회 때 일본戰에서 일본 팀 바라보듯 해설 중계한다는 원성이 많았다.
그래도 2014년에는 삼성 라이온즈도 호의적인 해설을 해 주는 편.
2021년 12월 창사 60주년을 맞은 MBC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여러 인물들을 해설위원으로 데뷔시키기도 했는데 대부분 해설위원으로 인생의 대박을 터뜨린 인물이다.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실패 이후 야인 생활을 하던 고려대 동기 차범근을[16] MBC 축구해설위원으로 추천했고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경남고 후배 이성득을 부산방송 야구해설위원으로 추천했으며 평소 입담 좋기로 유명했던 前 LG 투수 차명석을 해설가로 이끈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MLB, NFL에 관심이 많았던 사업가 겸 기자 손건영을 해설가로 이끈 사람도 허구연이다. 적어도 차범근, 이성득, 차명석, 손건영에게 허구연은 인생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셈.
엠스플을 거친 고려대학교 출신 해설위원들 중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엠스플은 야구와 농구 모두 본인의 모교인 고려대 체육부 출신의 오랜 명성을 가진 방송사이다. 엠스플에서 대표적인 고려대 출신의 야구에서는 양상문과 김선우 등이며 농구 해설위원으로는 김동광을 포함해서 신기성과 현주엽 등이 고려대 출신 대표 해설위원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6. KBO 총재 시절
야구인 최초 KBO리그 총재로, 트렌디한 마케팅과 괜찮은 피드백 능력, 각종 기술 도입[17], 인프라 확충 등으로 KBO리그 역대 최초 한 시즌 누적 1000만 관중이라는 업적을 달성하며 KBO리그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개혁가이나, 해설위원 시절부터 지적됐던 문제점인 특정 팀 차별과 순간적인 판단력과 같은 부분이 개선되지 않았고, 일반적인 행정, 경영가의 가장 큰 문제점인 돈으로 인해 종종 나오는 졸속행정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여 공과 과가 명확하게 갈리고 있다.6.1. 취임 전
2022년 초, KBO 역대 최악의 총재였던 정지택이 사퇴하면서 공석이 된 KBO 총재 자리에 차기 총재로 3명의 추천을 받았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구단들이 허구연을 총재로 추대하는 데 합의했으며, 3월 11일에 KBO 차기 총재로 내정됐다. KBO 소속의 10개 프로야구 구단은 3월 11일 제4차 이사회를 열고 차기 총재로 허구연을 단일 후보로 추천할 예정이었다.3월 25일, 열린 서면으로 열린 구단주 총회를 통해[18] 허구연이 KBO 24대 총재로 만장일치 선출되었다. 이로써 허구연은 야구인 최초로 KBO 총재에 오르게 되었다. 임기는 정지택의 잔여 임기인 2023년 말까지다. # 이로 인해 공백기 제외 35년 동안 해 왔던 문화방송 해설가 활동은 당분간 그만두게 되었다.
취임 직후 가장 급한 숙제인 강정호의 복귀 안건에 대해 "사무국에서 결정을 보류했는데, 새로운 총재에게 짐을 떠넘겼다고 할 수 있지만, 사무국이 보류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조치를 잘했다"며 "팬심도 있고, 법적 문제로 갈 수도 있다.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고민을 많이 해보도록 하겠다"라고 밝히면서 근시일 내에 복귀 승인이 나지는 않을 것을 암시했다.#
3월 28일, 서면 취임사를 통해 '일탈 행위 금지'를 외쳤다. 그는 선수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4불(음주운전, 승부조작, 성범죄, 약물복용)[19]을 금지 사항으로 특별히 지켜주길 바란다. 일부 선수의 일탈이 야구계 전체에 엄청난 타격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체험했다"라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강정호의 복귀 승인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간접적인 시사가 아닌가 하는 의견들이 있는데, 문제는 키움 히어로즈가 구단 차원에서 법리적인 검토를 거친 후 승인을 신청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향후 KBO와 키움간의 법적 소송전이 이어질 우려도 생기고 있다.
6.2. 2022년
그러나 여전히 현실 파악을 하지 못한 지역 정치인이나 언론도 존재하고 있는데, 허구연의 해당 발언을 두고 대전을 무시하는 처사, 돔경기장으로 지어질 새 구장을 자문위원장으로서 반대한 원흉(?)이라던가 '떠날 테면 떠나라' 같은 발언도 쏟아내고 있다.[23] 당연히 이들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다. 4월 10일 허태정 대전시장과 만난 박찬혁 한화 구단 대표이사는 연고지 이적설을 일축했다. 박 대표는 “구단에선 연고지 이전을 할 생각이 절대 없다"라며 "앞으로도 대전에서 구단을 운영할 것이라는 뜻은 불변하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4월 20일,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과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 아시안 게임과 관련해 김광현, 양의지, 양현종의 와일드 카드 차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발을 위해 MLB에서 뛰고 있는 한국계 선수들을 리스트업한 상태라고 밝혔다.
4월 29일, 이전부터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던 강정호의 복귀에 대한 결정이 내려졌다.#. 우선 임의탈퇴에 대해선 제재의 의미로 부가한 것이 아니라 해외 진출을 위한 것이었음으로 임의탈퇴 해지는 수용[24] 하되, 강정호와 키움이 체결한 선수 계약은 KBO 규약 44조 4항[25]에 따라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강정호의 복귀는 결국 무산되었다. KBO의 입장은 "세 차례에 걸친 음주운전뿐만 아니라 사고 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하는 등 죄질이 나쁘고, KBO가 가진 사회적 가치와 스포츠 선수로서 갖춰야 할 스포츠맨쉽 등을 생각하였을 때 계약 승인 시 KBO 리그의 발전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KBO 리그 내의 음주운전 사건을 뿌리뽑기 위해 더 강력한 제재 또한 준비 중이라고 한다.
2년 전 학교폭력 건으로 NC 다이노스가 1차 지명을 철회했던 고려대 투수 김유성의 2023년도 신인 드래프트 대상 포함 여부로 또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신인 드래프트부터 4년제 대학 2학년 선수의 얼리 드래프트 신청이 가능하게 되어 김유성의 드래프트 참가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1차 지명 철회 건 이후 스포츠와 연예계에서 학교폭력 관련 사건이 잇달아 폭로되고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26] 실력으로는 1라운드 지명이 당연하다고 해도 그를 지명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논란이 다시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차후 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막을 명분이 없으며 KBO가 추구하는 클린 베이스볼이 무의미해질 것은 물론 KBO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다. 각 구단 스카우트들은 물론 팬덤에서도 갑론을박이 계속 일고 있는 터라 강정호 복귀 불허 건과 마찬가지로 KBO 차원에서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서서히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김유성이 지명 당일 두산에 지명을 받으면서 앞으로 관련 규정을 강력하게 보완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 것은 물론 김유성 지명 철회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하면서 이번 일의 가장 큰 책임을 지게 되었다.
다만 허구연의 취임 이후 비디오 판독실의 배정 인원을 5명으로 늘려 비디오 판독 시간이 평균 18초 정도 단축되고, 선수들의 팬 친화적 행보가 늘어난 점을 통해 어느정도의 유의미한 성과가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도 존재한다.
6월 2일, 강정호가 복귀를 포기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고, 다음 날인 6월 3일에 음주운전 관련 징계를 강화한다는 KBO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면허 정지 시 70경기 출장 정지, 면허 취소 시 1년 실격, 음주운전 2회 적발 시 5년 실격, 3회 적발 시 영구 실격이다. 음주운전 횟수는 2018년 9월 11일 이후부터 산정하며 별도의 상벌위원회 없이 바로 제재가 부과된다. # 단 일부 극단파들로부터 무조건 제명하라는 소리는 들었겠지만.
6월 30일, 취임 3개월을 맞아 뉴시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몇몇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뛴 한국계 선수들이 나중에 KBO 리그에서 뛰려고 할 경우 외국인 선수가 아닌 신인 드래프트 참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는데, 이에 대해 이 선수들이 상식적으로 신인 최저 연봉을 받고 뛰고 싶겠냐, 이럴 거면 해외파 복귀 제한 규정도 폐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거기다가 수도권에 국내 인구, 경제의 70%가 밀집되어 있다며 지방 구단의 수도권 중립 경기를 생각해왔다고 말해 "연고지 제도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연고지 제도가 프로야구의 근간이라는 점, 국내의 타 프로 스포츠가 연고지 제도 정착을 시키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총재로서 경솔한 발언이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27]
6월 현재는 허구연 역시 전임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28] 무능한 총재라는 것이 야구팬들의 중론이다. 말로는 팬 퍼스트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하는 행동을 보면 지나치게 대중적인 여론만 의식할 뿐 제대로 하는 일은 없다는 얘기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심판진의 각종 화려한 오심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방치에 가까운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은 10개 구단 팬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욕을 박고 있다. 그런 와중에 개막전을 미국에서 하네 뭐네 하는 실속없는 번지르르한 말만 계속 하고 있어 날이 갈수록 평이 추락하는 중이다. 특히나 원래부터 허구연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마음을 품고 있던 키움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으며[29], 하주석의 10경기 출장 정지를 기점으로는 한화 팬들에게도 최악의 평을 듣고 있다.[30] 그리고 SSG의 고교선수 템퍼링 논란이 터지며 총재로서 계속 지지받을 수 있을지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31][32]
사실상 뭘 해도 "심판진 관리나 똑바로 해라"는 비아냥을 받는 동네북 포지션이 되었다.[33] 하지만 한국 야구에서 심판은 거의 잘해야 본전의 반을 건질까 말까 하는 3D 직업이라 인원도 별로 없어서 무조건적으로 출전 정지를 내리기도 쉽지 않으며, 오심 문제도 점점 심해지며 총재 자리마저 잘해야 본전인 동네북 신세가 되어버린지 오래라 무조건 허구연만을 비판하긴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야구팬들 입장에서 그런 사정까지 일일이 이해해줘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심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이 지랄이 나도 허구연은 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넘어가겠지"라는 비아냥이 무조건 나온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이미지가 이미 지구 맨틀을 뚫고 있다.
그 외에도 지나치게 KBO의 '위기'를 강조하는 탓에 반감을 갖는 여론도 적지 않다.
올스타전이 끝난 직후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학폭 건으로 국가대표 자격이 영구 박탈되었지만 대한체육회 소관이 아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발은 가능하다는 안우진의 선발 문제에 대해서 여론을 의식하고 있음을 밝혔으며[34], 신생 팀 창단은 남북통일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2022년 7월 25일 방송한 야구의 참견에 출연했다. 전체 영상
9월 22일 염경엽 대표팀 기술위원장이 한국계 선수들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출국했는데 이에 대해 너무 늑장을 부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실적으로 참가가 가능한 선수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치 화이트는 2022년 9월 3일 대니얼 킴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DKTV와의 인터뷰를 통해 불참 의사를 밝혔으며 노아 송은 군 문제로 인해 차출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35] 데인 더닝도 2022년 9월 23일 DKTV와의 인터뷰를 통해 불참할 뜻을 밝혔으며 25일 고관절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불참 사유가 고관절 부상 으로 추정된다. 결국 토미 에드먼과 롭 레프스나이더 정도가 그나마 발탁이 가능한 상태지만 확실한 주전인 에드먼과는 달리 레프스나이더는 다음 시즌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처지라는 점이 변수다. 타이슨 로스와 조 로스 형제는 규정상 발탁이 불가능하며[36] 허구연 총재가 직접 언급했던 코너 조는 자신은 중국계 미국인이지 한국계가 아니라며 거절했다.[37]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김재박과 함께 직접 경기를 보러왔다가 경기 초반부터 키움이 승기를 잡는 모습을 보이자 대놓고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이 중계에 적나라하게 잡히기도 했다.(...)
이후 그가 심혈을 기울이던 MLB 월드 투어: 코리아 시리즈 2022마저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다만 이번 건의 경우에는 취소 이유가 MLB 사무국과 프로모터 간의 갈등이 가장 큰 원인인데다 원래 투어 자체를 주저하던 KBO를 MLB 사무국 측이 허구연 총재 취임 이전부터 계속 개최를 요청해 왔던 것이고[38] 허구연 총재 및 KBO 측은 아무 잘못이 없는지라 허구연에 대한 여론이 마냥 좋지는 못한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이 건만큼은 직접적으로 허구연을 욕하는 여론은 거의 없다. 애초에 KBO 역시 프로모터 측이 초청하는 초청팀 입장이라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리그 일정 조정 및 선수 차출 협조 요청, 장소 대관 및 중계사 지정 등 귀한 손님을 맞을 준비를 열심히 했던 KBO 입장에서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큰 손해를 보고 말았다.
2022년 한국시리즈를 코앞에 두고 이태원 압사 사고가 발생하고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자 KBO 측에서도 응원 자제, 축소 등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당연히 야구팬들의 반응은 매우 좋지 않다. "경기전 간단하게 묵념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응원까지 제한할 필요가 있냐"는게 주된 반응. 야구팬들 역시 코로나의 영향으로 2년 동안 사실상 제대로 된 응원을 하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간신히 좀 제대로 된 응원을 하게 됐는데 허구연을 비롯한 KBO 관계자들이 지나치게 정치권 및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과잉대응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39][40]
결국 국가애도기간에 껴있는 4차전까지 시구없음, 응원단장은 관중들의 안전한 관람을 안내하는 역할, 치어리더 운영 안함, 앰프 및 축포 사용 안함 정도로 결론 났는데, 야구팬들은 "애초에 추모강요랍시고 응원을 제한하는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여전히 KBO 측의 처사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는 중이다. "아무리 정부쪽에서 내려온 지시라고 해도 소신껏 무시하고 행동할 깡도 없냐",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세우는게 총재 자리 아니냐"며 야구인 출신인 허구연 역시 이전 정치인 출신 총재들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놈이라고 원성을 토하는 야구팬들이 많다.[41]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허구연을 비롯한 KBO 측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의견도 소수 보이지만, 야구팬들이 KBO 측의 입장을 굳이 이해해줘야 할 이유는 당연히 없다.
윗문단만 보면 무능한 총재이지만 그래도 일처리 하나는 똑바로 하고 있는데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이강철을 빠르게 선임해 본격적인 대회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6.3. 2023년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앞두고 미국에 기술위원들을 보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구단들과 접촉해 김하성, 토미 에드먼, 최지만 같은 해외파들의 합류를 조기에 확정지었으며 국내파 선수들 역시 성적위주로 선발했다. 역대 국가대표팀과는 다르게 엔트리 논란도 거의 없었으며[42], 안우진을 차출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나 학교폭력 관련 문제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라 차출하지 않았다.심지어 체코, 중국의 전력 파악을 위해 미리 전력분석원을 보내기도 했고, 호주전도 미리 준비하기 위해 코칭스태프들을 호주에 보냈으며, 선수들 컨디션 관리를 위해 비즈니스석을 준비하기도 하고, 심지어 편하게 올라가라고 편한 조인 B조에 편성되도록 힘쓰고 일본에서 정상회담 열때 쓰는 숙소에 현지에서 한식 조리사까지 채용해 식사를 제공하는 등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위해 적어도 협회 차원에서는 최선을 다 했다.
그러나 허구연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강철호는 이강철의 심각한 투수 운용과 몇몇 선수들의 실력 부족으로 또다시 국제 무대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면서 전부 빛이 바랬다. 그나마 윗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KBO에서 대표팀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었다는 사실이 뒤늦게나마 알려지면서, 팬들이 허 총재에게 비난을 가하지 않고 있다는 게 본인에게는 다행. 이제는 남은 임기 동안 KBO 리그에 대한 대중의 비판을 받아들이면서, 리그의 질을 높여야 할 큰 과제가 놓였는데.... 그 이후 서준원의 성착취물 논란, 장정석의 박동원 FA 협상 당시 뒷돈 요구 논란 등 시즌 개막도 하기 전부터 온갖 논란이 쏟아지고 있어 이러다 진짜 응급실에 실려가는 것 아니냐는 야구팬들의 걱정이 나올 정도.
개막 하루 전인 3월 31일에는 KBO가 관계사 중계권 관련 배임수재로 압수 수색까지 당했는데 그것도 총재 부임전 2022년 3월에 일어난 에이클라 KBO 로비 논란이 증거불충분으로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이 검찰이 비리혐의를 포착하고 강제 수사에 착수하면서 총재 자리까지 위태로워졌다. 다만 엄연히 KBO 직원의 개인 비리고, 허구연 총재 취임 전에 일어난 일인지라 총재 사퇴까지는 가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위의 장정석 뒷돈 요구 사건에 관해서도, 덮고 가서는 안된다면서 직접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기도 했다.
한편 국제경쟁력 강화와 리그의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계획을 제시했는데, 피치클락 도입, 시프트 폐지, 전임감독 체제 부활 등 야구팬들이 원했던 방안이 그대로 시행되어 반응이 좋은 편이다.
다만 2023시즌 들어서 유독 심판진의 패악질이 심해지고 각종 논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43] 이를 방치에 가깝게 내버려두고 있는 점은 비판받고 있다. 심지어 8월 2일 경기에서 심판의 판정에 항의한 김원형 감독에게는 경고 조치를 내리고 다음에는 엄벌조치를 처할 것이라고 하는 등 심판진에게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 하는것과 정반대로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대차게 욕 먹었다. 전임자들이 워낙 화려하게 똥을 싸고 간지라 걔들보다 낫다는 거지 허구연의 행보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결코 잘 한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총재 부임 초기부터 현 포스트시즌 제도가 1위팀에 지나치게 유리하다며 계속 바꾸려는 듯한 언행을 보여주더니, 결국 2024시즌부터 포스트시즌에 6위까지 진출하는 개편안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야구 팬들에게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언더독이 선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44]
잔여 경기 일정에 들어서면서 돔 구장을 쓰는 팀의 더블헤더 편성 등 일정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하필 허구연이 해설 시절부터 해당 팀을 노골적으로 싫어한 전적이 있다보니 대놓고 의심을 받는 상황. 심지어 더블헤더 상대 팀인 한화에서 일정 변경을 요청했는데도 KBO 측에서 묵살한 정황까지 나오며 여론이 더 험악해지고 있다. 사실 그런 논란을 떠나서 시즌 초 지나치게 우천 취소를 남발한 것이 시즌 일정에 악순환으로 작용했는데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대처를 못 하고 있는 것도 까임의 한 이유가 되고 있다.
문제점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특히나 2023시즌 후반기에는 우천취소 일정 조정에 더블헤더를 무작정 끼워넣은 것 하나로 10개 구단 야구팬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정을 짠 것이냐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총재 부임 초기에 "전임자들보다는 낫겠다"며 어느정도 기대를 받았던 것과 달리 결국 허구연도 전임자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무능한 총재라는 쪽으로 여론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나 지적받는 점은 올해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심판진에 지나치게 편향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는 점과 우천취소 일정을 짤 때 지나치게 더블헤더를 많이 끼워넣었다는 점이다. "어차피 누굴 세워놔도 무능한 건 똑같으니 돈이라도 잘 타오게 이전처럼 기업인이나 정치계 인사를 선임하는 것이 낫겠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냉혹한 비판을 받으며 같은 야구계에서는 손혁이나 홍준학같은 막장 단장,[45] 축구계에서는 정몽규 축협 회장 등과 비견될 정도로 여론이 악화되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아시안게임 명단도 엄청난 잡음이 일어나며 허구연의 무능한 이미지에 완전히 쐐기를 박고 말았다.
국정감사에서 ABS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허구연 |
10월 24일에 있었던 국정감사에서 좋은 대응을 보여줘서 평가가 좋아졌다. 제대로된 증거도 없이 10년 전 사례를 들고 의혹제기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에 대해 침착하게 대응하고[46], 그동안 지자체에서 징수해 가던 구단 수익과 불법 토토로 음지로 빠지는 이익 등을 어필하여 답답한 모습만 보였던 이전 총재들과 달리 KBO 팬들이 속시원해 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 종목 팬들도 국내에서 제일 인기 좋은 종목의 총대를 멘 발언에 호평하고 있다.[47] 국정감사 전문 요약
거기에 지난 해에 이어서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시구자에 스포츠인들의 비중을 높혀 더욱 호평받고 있다.[48] 취임 첫 해였던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2차전[49]에 홈 팀인 SSG 랜더스를 고려해 김성근 감독과 박재홍 해설위원을 시구, 시타로 선정한 바 있으며[50] 6차전에 SSG 랜더스의 전신 SK 와이번스에 몸 담은 적 있던 이만수 前 SK 감독과, 김용희 前 SK 감독, 김경기 前 SK 타격코치를 초청했고 5차전에서는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에 선정됐던 구대성, 정민태, 김기태, 이상훈, 심정수의 시상식 및 시구 행사가 거행되기도 했다.
이런 호평에 힘입어 차기 KBO 총재에 단독 출마했다. 사실상 연임이라고 봐야 할 것같다. 이후 이사회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되며 2026년까지 총재직을 맡게 됐다.
6.4. 2024년
1월 3일 뉴미디어 중계권 입찰을 받았고, 1월 8일 가장 큰 금액을 지른 CJ ENM과 우선협상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CJ 측에서 '실질적 무료' 드립을 치며 사실상 TVING 유료 중계로의 전환을 노리는 듯한 발언을 해 야구팬들의 반응이 썩 좋지 못하다는 것. 하지만 CJ ENM은 입찰 금액이 연간 400억 원대로 경쟁자인 네이버 컨소시엄에 비해 꽤 큰 차이가 났고, 유일하게 유튜브에서의 재편집이나 움짤 같은 2차 창작을 허용해 주겠다는 이야기도 있기 때문에 총재로서는 당연한 결정을 했다는 의견도 꽤 있다.이후에도 티빙 측에서 비슷한 식의 말장난을 반복하며 KBO 리그 중계[51]의 유료화가 코앞에 다가오려는 모습을 보이며 그동안 허구연이 주구장창 외치던 야구의 대중화, 보편적 시청권 주장과는 정반대가 되는 상황이 되자 허구연에 대한 민심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결국 또 돈돈돈 하다가 나락을 가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전임 총재들은 재편집이나 움짤 같은 2차 창작을 막아서 욕을 푸짐하게 먹은 거지 보편적 시청권을 나락으로 보내지는 않았다. 거기에 허구연 본인도 보편적 시청권은 TV로 충분하다는 망언을 해 더 욕을 먹고 있다. 본인이 중계 협상 초반에 했던 보편적 시청권 언론플레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KBO 역사상 최악의 실책으로 민심이 완전히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중이다.[52]
그리고 티빙에서 광고 포함, PIP 불가[53] 5,500원 요금제가 공개되면서 야구팬들의 반응은 더욱 험악해졌다. 사실상 이전 총재들을 뛰어넘는 역대 최악의 총재로 등극할 기미도 보이고 있다. 비슷한 시기 류현진의 국내 복귀라는 초대형 카드가 있음에도 이마저도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잠시 묻혀있던 이전 실책들까지 다시 끌올되며 그야말로 먼지나게 맞고 있다.[54][55]
사실 전술한 티빙 중계 관련 논란 쪽에 어그로가 다 쏠려있으나, 그 외에도 허구연이 2024년에 도입하려는 각종 제도에 대해서도 "그냥 메이저 리그에서 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성급하게 도입하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피치 클락에 대해서는 "아직 피치컴도 제대로 도입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치 클락부터 무작정 도입하려 하는 것이 맞냐?"라며 야구팬들은 물론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국 피치 클락의 정식 도입은 2025년으로 미뤄졌지만 자기들 멋대로 이랬다 저랬다 줏대 없이 바꾼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세계 최초로 도입된 ABS에 대해서는 잘 도입했다는 반응이 많다.
다만 MLB 서울 시리즈의 개최는 허구연이 MLB 사무국에 읍소를 하면서까지 받아냈고, 꽤나 흥행한 시리즈가 되었고, KBO 리그 자체도 2024년 시즌 초반에는 한화 이글스의 선전 등으로 인하여 흥행이 꽤나 잘 되고 있는 상황이다.
4월 26일, 창원 NC 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낙동강 시리즈를 관람하였다. 이날 마산합포구의 최형두 국회의원과 함께 경기를 관람하였는데, 경기 후 최형두 의원이 "허구연 총재가 지금처럼 창원 NC 파크 구장에 관객 접근이 어려우면 구단은 위약금을 내서라도 연고를 이전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라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KBO는 지방자치단체가 도시철도와 같이 지역 내의 교통 인프라 개선 등을 하지 않으면 구단이 연고지를 이전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한 발언이라고 해명하였다. 이진만 NC 다이노스 사장 역시 "야구장 접근성 개선은 환영이지만, 연고지 이전 논의는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우리 구단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여전히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라며 연고지 이전설을 일축했다.[57][58]#
이제 관건은 11월 프리미어 12에서 호주, 도미니카 공화국, 대만, 그리고 어쩌면 일본을 상대로 리벤지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그의 2024년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이후 리그가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되며 더욱 흥미로워졌고, 이와 더불어 트렌디한 마케팅 덕분에 신규 팬들이 많이 유입되어 전반기 종료 시점 누적 관중이 6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역대급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어 호평받는 중이다. 특히 2024 KBO 올스타전 클리닝 타임 특별 공연에 DAY6를 초청하고, 중간 공연에 광고가 따로 붙게 하는 엄청난 기획을 선보이며 역대급 올스타전을 이끌어 냈다는 반응이 많다.[59]
그리고 문제의 정몽규를 비롯한 축구협회에서 홍명보를 국대 감독으로 선임하는 과정에서 허구연에게 돔몽규라는 멸칭을 붙였던 것이 민망해질 정도로 격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그래도 허구연이 정몽규보다는 훨씬 낫다는 여론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2024년 7월 15일, KBO 리그에 피치컴이 도입됐다. 피치컴은 MLB에서 사인 훔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2022년에 처음 도입한 제도로, 포수가 송신기를 이용해 구종, 코스 등을 누르면 투수는 모자에 달린 수신기를 통해 이를 전달받을 수 있다. 피치컴을 사용하면 사인 전달 시간이 줄어들면서 경기 시간 단축을 기대할 수 있다.
다음 날인 16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kt wiz와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웨스 벤자민과 장성우가 피치컴을 사용하면서 1호 착용자가 됐다. 벤자민의 경우 미국 마이너 리그 시절 피치컴을 경험해봐 바로 착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구단이 승낙했다. 이날 6.1이닝 1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8승째를 거둔 벤자민은 경기 후 "타자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편했다. 미국의 경우 사인 훔치기가 많은데 피치컴 사용을 통해 주자에 신경쓰지 않고 타자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피치컴이 내 투구 템포를 더 빠르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것"이라며 "타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타자에게 불리한 것 같다. 무엇보다 세트 포지션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가 뭘 던져야 할지 알게 되니 그만큼 미리 준비하게 된다”며 피치컴 도입의 장점을 늘어놨다.
한편 시즌이 진행되면서 KBO 리그가 지독한 타고투저 메타로 들어가면서 모든 팀의 투수진이 완전히 박살나자 허구연이 이번 시즌에 도입한 제도들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고 메이저 리그에서 한다는 이유로 무작정 도입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의견도 서서히 나오고 있다. ABS, 베이스 크기 확대, 시프트 제한, 피치 클락 등이 전부 타자들에게 더 유리해지는 룰이다 보니 안 그래도 공인구 변경 등으로 타고투저가 된 상황에서 대다수의 투수들이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ABS는 호평이 압도적이지만 나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부호가 붙는다는 평이 서서히 늘어나는 중이다.
그래도 무엇이 되든 간에 KBO 리그가 사상 최고의 흥행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8월 18일 역대 최다 관중 신기록을 기록하였고, 치열한 순위 싸움이 전개되면서 1,000만 관중 돌파도 가능해진 상황이다. 여러모로 KBO 리그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중이다.
한편 9월이 되자마자 칼같이 14시 경기를 줄줄이 편성했는데, 문제는 계속된 폭염으로 인해 9월 중순에도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어갈 만큼 뜨거운 상황에서 14시 경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렇다 보니 9월 14일에 열린 롯데와 한화의 사직 경기에서 온열질환자가 23명이나 발생하기도 했고#, 9월 16일에 열린 키움과 두산의 잠실 경기에서는 주심이 탈수증세로 어지러움을 겪어 대기심으로 교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때문에 단순히 9월이 됐다고 기온 등의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경기 시간대를 바꾸는 것은 안일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만 이는 KBO만의 잘못은 아닌 것이, 일단 올해 폭염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고, 공중파 채널과의 계약 등 어른의 사정도 있는지라 공중파 채널들 역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내년부터는 변경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60]
어쨌든 위와 같은 이유로 호불호가 갈리고 있긴 하지만 결국 9월 15일에 KBO 최초 한 시즌 누적 1,000만 관중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다행히 허구연 총재 본인이 추석 당일인 9월 17일, 직접 잠실 야구장 2시 경기를 직접 관람하고 나서 느꼈는지 다음 날인 9월 18일에 2시로 편성된 경기들을 전부 5시로 바꿨다. 늦은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그래도 직접 현장을 찾아 바로 변경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여론도 호의적으로 바뀌었다.[61] 또한 2025 시즌부터 7, 8월 공휴일 및 일요일 경기를 오후 6시로 변경하고 9월 이후 경기 시간의 조정 여부는 기상 상황을 고려해 추후 논의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거기에 선수들의 의견까지 반영해 올스타 브레이크를 6일로 늘렸다.
이래저래 비판받는 정책들도 있긴 하지만 공이 명확하고 거대하며, 명예직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던 이전의 KBO 총재들에 비해 매우 적극적으로 KBO 리그 개선에 나섰고 그 결과 전례없는 프로야구 최대 흥행을 이끌어 냈다. 특히 후반기에는 경쟁자격인 대한축구협회의 회장 정몽규가 온갖 논란과 추태로 세간의 비판을 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허구연의 행보는 더더욱 부각되고 있으며, 스포츠협회장은 역시 그 종목에 애정이 확실히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줬다. 또한 정몽규는 24일에 진행된 청문회에서 자꾸 말을 더듬는 등의 추한 모습만을 보여줬는데, 이 때문에 허구연이 작년 10월 24일에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자신의 의견들을 명확하게 피력하는 모습이 다시 한 번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2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비가 많이 와서 그라운드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경기를 무리하게 강행했고, 결국 6회초에 우천 중단이 되며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이어지게 됐다. 심지어 다음 날에도 비 소식이 있고, 특히나 삼성 팬들은 무사 1, 2루라는 좋은 기회를 잡았는데 그 상황에서 갑자기 중단시키고 경기를 연기하니까 제대로 뿔이 났다. 물론 날씨에 따른 경기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경기감독관의 몫이겠지만 한국시리즈 같은 큰 경기에서는 총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허구연 본인도 현장에 왔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한 부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물론 프리미어 12라는 국제 대회, 식전 행사 이슈로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하긴 하나,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고 시즌 내내 잘해오다가 KBO 리그 최대의 축제인 한국시리즈에서 큰 실책을 했기 때문에 본인도 그렇고 팬들도 씁쓸한 뒷맛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피드백은 빠르게 하는 편이기 때문에 추후에 또 다시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는 적절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다만 취소 시 상황이 삼성에게는 불리하게, KIA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한국시리즈 결과에 따라 특정 팀을 우대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다음 날에 진행되어야 할 서스펜디드 경기가 우천으로 인해 연기됐으며, 재개된 경기에서 삼성이 좋았던 6회초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고 KIA가 역전승을 거두면서 비토 여론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결국 원래부터 허구연에 매우 적대적이던 키움 팬덤에 이어 삼성 팬덤까지 모조리 적으로 돌려버리는 위엄을 달성했다. 억까 요소 없이 순수하게 본인 무능으로 인한 실책이라 남탓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트렌디한 마케팅, 피드백 능력, 여러 기술 도입 등의 장점이 있긴 하지만 해설위원 시절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된 특정 팀 차별, 순간적인 판단력과 같은 부분은 총재 시절에도 개선되지 않아 허구연에 대한 여론이 심하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원인이 되고 있다.[62] 이것을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향후 총재 임기에 중요한 요소가 될 듯 하다. 기본적으로 KBO 리그를 크게 개혁시킨 개혁가는 맞으나, TVING 관련 논란에서부터 알 수 있듯 수익을 지나치게 우선시해 일반 야구팬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퇴보했다고 여겨지는 정책을 취하기도 하고[63] 허구연 본인이 해설 시절 홀대하던 키움과 삼성을 총재가 되고 나서도 홀대하는 듯한 스탠스를 취했기에 여기에 대해선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행정가나 경영가로써의 장단점이 극렬히 있는 셈. 즉, 공과 과가 명확하게 갈리며, 팬들의 평가도 극과 극이다.[64]
이후 기아 타이거즈가 5차전에서 승리하며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고, 사상 최고의 흥행 시즌인 2024 KBO 프로야구도 끝이 났다. 다만 끝마무리가 좋지 못한 것이 옥의 티이며, 삼성과 기아의 전력 차는 분명히 있었으나, 삼성이 좋았던 1차전 6회초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무력하게 4승 1패로 패배하고 말았다. 만약 서스펜디드가 아니었으면 최소한 6차전까지는 이어졌을 수도 있다. 또한 한국시리즈가 끝나고도 서스펜디드 관련 해명이나 사과가 없는 것에 대해 야구팬, 특히 삼성팬들은 아쉬움과 분노를 동시에 표출하고 있다.
일단 울산에서 열린 KBO FULL LEAGUE에 특별해설로 나와 ABS 높이 조절 여부, 국대 평가전 확충, 유소년 인프라 등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확실히 야구인답게 야구 인프라에서 만큼은 진심인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11월 1일부터 2일까지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리는 쿠바와의 프리미어 12 대비 평가전 경기를 2024 K-BASEBALL SERIES라는 네이밍을 붙이고 tvn과 협력하여 중계를 진행한다. 네이밍에 --
스포츠조선의 박재호 편집국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야구부장에 따르면 2024년까지 수년간 논의 수준에서 그쳤던 아시아 쿼터제를 2026시즌부터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제도 도입 시, 대만 프로야구 리그는 물론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등 일본 독립리그 선수들이 아시아 쿼터제로 유입될 것이라고 전망된다.
프리미어 12 대회가 슈퍼라운드 예선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음으로써 프리미어12를 위해 2024 시즌에 더블헤더와 웬만하면 우천취소를 하지 않고 경기진행, 일정 앞당기기 등등 많은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허구연 총재의 잘못은 아니나[66] 앞으로의 한국 야구가 국제대회에서 더이상 강국이 아님을 명심하고 변화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더불어 류중일 감독의 거취에 대한 올바른 결정이 앞으로의 평가를 좌우할 요소 중 하나일 것이고, 코칭스태프의 세대교체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7. 기타
- 1991년 국내 최초 ARS 스포츠 정보 서비스 업체를 창업해서 성공을 했다.
- 2000년 일간스포츠와 함께 '허구연 야구발전 장학회'를 설립했다. 2002년에는 야구정보회사인 KSN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는 직접 기자 역할까지 겸하며 선수단을 인터뷰하고 다음 경기 전망을 해설하기도 했다.
그나마 일반인에 가까운 발음평소에 루헨진으로 발음하던 걸 류현진이라고 발음할 정도였다!그러나 콘디숀 발음은 어쩔 수 없었다.네덜란드전 스코어도 틀렸다.
-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윤태영이 나온 주말 드라마인 2009 외인구단에서 구수한 해설을 한 공로로 받았다(...).
- 2010년 3월부터 일구회 부회장을 맡게 되었다.
- 2011년 7월 22일 목동 야구장에서 한국 고교야구 부흥 및 1976년 청룡기 대회의 재대결의 의미로 가진 군산상고와 경남고 레전드 리매치에서 경남고 감독으로 나왔다. 이날 경기는 경남고가 스코어 4:0까지 앞서다 5회에 들어와 군산상고가 단번에 4:4로 동점을 만든 뒤 다음 회에 역전, 결국 5:7로 경기가 끝났다. 5회에 동점을 허용했을 때의 감독 허구연의 표정은 심히 압권(…). 국내야구 갤러리에서는 그 표정 때문에 개념글에 갔다. 사나이 눈물.JPG
사나이 눈물 약하다 욕하지마, 허구라 고급 표정, 허구라 공황장애허황장애, 요리왕 허구라 등(...) 어이없는 실책(나이 생각하면 당연한 실책)이 나와서 놀라는 표정도 히트를 쳤다. 여담으로 이 레전드 리매치는 최동원이 살아 생전 대중들에게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였던 행사였다. 허구연은 이때 최동원이 애써 약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최동원은 그런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 야구에 대한 대중 해설서를 몇 권 집필한 적이 있다. '홈런과 삼진 사이', '허구연의 재미있는 야구교실', '프로야구 10배로 즐기기', '허구연의 야구', '여성을 위한 야구 교과서', '여성을 위한 야구 설명서' 등이 있다. 이 중 여성들을 위해 쓴 책들이 눈에 띄는데 여느 스포츠들이 그렇듯 KBO 리그도 팬덤이 남초 성향에 가깝다보니 여성 팬들의 확충을 기대하고 책들을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책의 효과가 있었는지실제로 여성 팬이 증가했으며, 총재로 재임하면서 여성팬들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그 결과 2024 시즌에 KBO리그 한 시즌 누적 1000만 관중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 2020년 4월 7일부터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채널 이름은 구독허구연[67]으로, 앞서 유튜브를 시작한 김선신, 박지영, 정용검과 함께 자축하는 영상을 찍기도 했으며,[68] 본인 특유의 발음을 적극적으로 살려서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KBO 총재가 된 이후로는 취임식 영상을 마지막으로 유튜브 업로드가 중단되었다.
[1] 후술하겠지만 롯데 자이언츠에서 프런트로 일하던 이성득이 야구 해설을 맡게 된 것도 선배 허구연의 추천 덕분이라고 한다.[2] 즉 그가 공부해서 공부 실력으로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했다는 주장은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3] 현재 비공개 처리됨[4] 당시 고려대, 연세대 같은 사학에 입학 비리가 있다는 소문이 횡행했고 여러 증언들이 있었다. 실제로 당시 고려대는 정부의 조사 결과 교수들의 자녀가 특혜를 받아 부정입학한 사례가 다수 적발되어 총장이 자진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5] 한국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전부 우리은행의 전신이라 우리은행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6] 이때 1·2차전에서는 한국팀의 유일한 타점을 모두 허구연이 기록했다. 그리고 3차전 가던 도중에 꿈자리가 뒤숭숭해 당시 올스타팀 감독이었던 허정규 감독님에게 오늘만 빼달라고 했는데 감독이 "지금 네가 제일 잘치니까 한 타석만 더 서라."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 결과...[7] 현 LS산전. 당시 허구연은 인사과에서 근무했다.[8] 감독대행으로까지 범위를 넓히면 1982년 만 33세 9일의 나이로 해태의 감독대행을 맡았던 조창수가 최연소이다.[9] 본인이 스톡킹에 출연해 이때 썰을 풀었는데 이날 경기 이전에 경기를 뒤지던 상황에서 댄 스퀴즈 번트가 타자주자가 라인 안쪽으로 뛰는 바람에 상대 송구에 맞고 3피트 룰 위반 아웃이 되었는데, 이날 비슷하게 상대가 번트를 대고 안쪽으로 뛰어 송구를 맞았는데 아웃이 선언되지 않아 우리가 안에서 뛴 건 아웃인데 왜 저쪽은 세이프냐 형평성이 맞지 않아 항의했다고 한다. 다만 심판을 찬건 아니고 홈플레이트를 찼다고.[10] 백인천의 02롯데보다는 낫지만 웬만한 선수들의 타율 수준이다. 타격왕 김청보[11] 실제로 태평양 돌핀스가 인천 연고팀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올랐을 당시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팀을 망쳐놓은 것 같아 태평양 경기만 보면 애잔하다는 얘기를 했었다. 여기에 1994시즌 태평양 돌핀스의 유니폼 컬러가 자신이 지휘하던 청보의 유니폼 색과 비슷해서 그 트라우마는 더 컸을지도.[12] 그 당시 숭의야구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인근의 광성고등학교 교문 쪽 언덕이나 옥상 등에 올라가서라도 몰래 야구를 관람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응?[13] 신동아 이영미의 스포츠 줌인 #[14] 무릎팍도사 출연 시에 건방진 도사가 이를 두고 계속 놀렸다.[15] 특히 편파 해설.[16] 나이는 허구연이 두 살 더 많지만 학번은 72학번으로 같다고 한다.[17] 대표적으로 ABS[18] 구단주 총회를 대면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대기업 오너 내지는 CEO를 겸하고 있는 10개 구단주들의 스케줄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19와 시간 절약도 이유가 되겠고. 2021년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열린 대면 구단주 총회는 kt wiz의 창단을 승인한 2013년 1월 총회가 마지막이다. 전임 총재인 정운찬과 정지택은 서면으로 선출되었다.[19] 취임사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3월 27일 KBS 이슈 픽 쌤과 함께에 출연할 때 도박을 추가로 언급했다. 학교폭력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는 해당 사안이 프로 스포츠 단체인 KBO가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어서 언급을 안 한 것이지 신경을 안 쓴다고 하기는 어렵다.[20] 당시에도 한화 구단, 정운찬 총재의 동의를 받고 허구연 당시 해설위원이 직접 나섰다.[21] 한화 팬덤의 반응은 이 발언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김성근의 재임기 이후 모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은 지 오래되어 모기업에 대한 성원은 애저녁에 식었고, 한화 팬들 중에는 충청권 말고도 수도권 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되기 때문.[22] 현재 새 야구장의 상황과 가장 비슷한 선례로 볼 수 있다. 대전 2호선도 시공 방법이나 운행 방식 등 모든 방법을 다 결정했음에도, 대전 정치권 특유의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인해 시장이 바뀐 뒤 갑작스레 사업이 엎어지고 트램이라는 방식으로 변경 및 강행되어 아직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만약 이런 행태가 없었더라면 2호선은 이미 완공 후 한창 운행하고 있었다.[23] 심지어 박두용 중구청장 후보는 한밭종합운동장의 자리에 "육상 경기장과 야구장이 혼용된 트랜스포머식 경기장을 짓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펼쳤다. 이는 야구와 육상 경기가 어떻게 열리는지만 알아도 할 수 없는 발언이다. 즉 단체장 후보가 자기 지역에 존재하는 자원의 특성조차 모른다는 말이다.[24] KBO 규약 31조와 65, 67조에 따라 임의탈퇴와 임의탈퇴 해지 시 KBO 총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25] 총재는 리그 발전과 KBO의 권익 보호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선수 계약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26] 게다가 김유성은 자신의 가해 사실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고소하는 등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고소 건은 결과적으로 불기소 처분이 나오면서 김유성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만 다시 확인했다.[27] 물론 기아, 롯데, 한화, 삼성 등은 서울에서 홈 팀에 뒤지지 않는 관객 동원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듣는다는 점에서 아예 불가능한 구상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다만 중립 경기 개최로 이들이 분산되느냐의 여부도 불분명하며, 당장 선수들의 피로 문제로 2연전을 폐지하네 마네 하는 상황에서 중립 경기는 더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주된 반론. 중립 경기 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구단이 볼 피해나 정서적 문제 역시 전혀 고려가 되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다.[28] 물론 직전 총재인 정지택이 역대급 흑역사인지라 그거보다는 낫다는 평이지만, 애초에 그쪽이 너무 심했을 뿐 허구연 역시 절대 좋은 평을 받을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가 많다.[29] 실제로 허구연은 해설 시절부터 비인기 팀에 대한 차별 논란이 많았고 총재가 된 후에도 키움에 대한 차별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30] 물론 한화 팬들이 하주석의 행동 자체를 실드 쳐주는 것은 절대 아니고 "이게 10경기 정지씩이나 받을 일이냐", "이럴 거면 심판들도 오심할 때마다 확실하게 처벌해라"에 가깝다. 애초에 하주석이 화를 낸 원인 자체도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불만이었고, 이미 2022 시즌 들어 몇몇 선수들이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다 퇴장당한 전적이 있는 만큼 심판진에 대한 야구팬들의 시선은 절대 곱지 않다.[31] 전면 드래프트로의 전환 첫 해인데다 위에서 언급한 김유성의 드래프트 대상 포함 여부가 여전히 남아있고, 바로 전날 엄형찬의 미국 진출이 발표된지라 프로야구 팬들의 고교 야구에 대한 관심도, 집중도가 극에 달한 시점에 터진데다 SSG가 해명하며 KBO 승인 사업의 일환이었다는 주장을 펴며 KBO가 끌어들여진 판도가 되어버렸다. 거기다 애초에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 자체가 구단 관계자들이기에 현장의 지지도까지 얽힌 문제가 되어버렸다.[32] 당장 2년 전에 롯데가 유사한 논란을 일으켰을 때 단순 면접이었다는 결론으로 유야무야 넘어갔는데, 그것보다 2~3단계 이상 깊은 접촉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또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이전 총재 이상으로 문제를 대충 해결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33] 당장 허구연의 유튜브 계정에 마지막으로 올라온 총재 취임식 영상만 해도 댓글창이 그야말로 개판 5분전이 된지 오래다(...).[34] 2022년 7월 18일 유튜브 채널 스브스 스포츠에 올라 온 영상 말미(1시간 13분 26초부터)에 SBS 이성훈 기자가 해당 문건과 관련해 이야기를 풀면서 안우진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발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도 된다.[35] 2022년 5월에 복귀 관련 기사가 나왔지만 9월이 되도록 추가 소식이 없으며 복귀한다 해도 실전 공백 기간이 길어서 현실적으로 발탁은 무리다.[36] 초대 대회인 2006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참가 자격 조건에 조부모의 국적 및 출신지가 삭제되었다.[37] 코너 조는 피츠버그로 이적한 뒤인 2023년 4월 MK스포츠, 스타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은 중국계이며 부모도 중국계 이민 2세라고 밝히며 한국계가 아님을 확실히 못박았다.[38] 무려 20년 전부터 계속 제안이 들어왔다고 한다.[39] 실제로 관련 커뮤니티에는 경기 예매를 취소했다는 글도 속속 올라오는 중이다.[40] 그 와중에 SSG 랜더스 갤러리에서는 트럼펫 등 온갖 악기를 들고간다는 글이 쏟아지며 그야말로 개드립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41] 참고로 KBO 공식 인스타 계정에 올라온 응원 자제 관련 피드는 비판 댓글이 우르르 달릴걸 본인들도 진작에 예상했는지 댓글이 막혀 있다.[42] 최지만의 과거 약물 복용 건을 일부에서 비판하긴 했다. 결국 최지만은 소속 팀인 피츠버그의 반대로 참가가 불발되었다.[43] 물론 심판진의 질에 대한 논란은 매년 있어왔고 MLB나 NPB라고 심판진이 딱히 더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이번 시즌은 오심 논란이 굉장히 많고 이에 항의하다 감독이 퇴장당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늘었다.[44] 실제로 유력 개편안을 보면 정규 우승팀의 메리트를 아예 없애버린 수준인지라 말이 많다.[45] 마침 2023년 10월 14일 홍준학과 허구연이 함께 시시덕거리는 사진이 찍혔다. 물론 리그의 흥행만 중시하는 허구연 성향상 수준을 극단적으로 포기하더라도 흥행을 잘 올리는 홍준학과 완전히 찰떡궁합이다.[46] 심지어 유정주는 허구연의 발언 도중에 말을 끊는 등 강압적이며 무례한 태도를 보여주었고, 발언 시간이 끝났는데도 계속해서 이의를 제기하자 같은 민주당 소속 이상헌 위원장이 이를 중간에 제지했을 정도다.[47] 스포츠토토 지원금은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농구 등 주요 구기종목은 물론 다른 비인기종목들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수익원이다.[48] 2차전에서 배우 정우성이 영화 서울의 봄 홍보차 시구를 하긴 했으나, 정우성은 이전에도 이정재와 함께 LG 홈경기에서 시구를 한 적이 있기에 아주 뜬금없는 인선은 아니었다.[49] 2022년 한국시리즈 1차전은 동년 5월에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에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시구가 유력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해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면서 및 시구 등 여러 행사가 전면 취소되었고 결국 이듬해 2023 KBO 개막전에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를 찾아 시구 행사를 가졌다.[50] 다만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해 시구, 시타가 취소되었고 대신 인천 SSG 랜더스필드 스카이박스에서 허구연 총재와 함께 경기를 관람했다.[51] 정확히는 인터넷 중계 한정[52] 그러나 이후 구단들이 유튜브 영상 업로드 가능 조건을 이유로 들어 티빙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허구연에 대한 비토 여론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53] 이후 티빙 측에서 스포츠에 한해 PIP 허용으로 방침을 바꿨다.[54] 사실 야구는 2008년 이후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했으며, 라디오에서도 중계할 만큼 인기가 높다. 또 국내 스포츠 중 선수단 몸값이 가장 크게 왔다갔다하는 규모이며 최근 들어 여성 팬과 어린이 팬들도 증가했다. 그런데 유료 중계로 바뀌고 게다가 유료 중계마저 최악의 서비스를 보이려는 모습이 있어 비판이 심각하다.[55] 물론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 야구도 각 팀마다 유료 중계가 있으나, 일본은 사실상 야구가 독주 체제이고 유료 서비스를 시행하는 미국에서도 팬들의 여론은 매우 좋지 않다. 특히나 한국의 정서엔 아직 OTT 개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며, 스포츠의 경우는 더더욱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 그렇기에 티빙이 우선협상권을 가졌을 때도 팬들의 여론이 좋지 않았다.[56] 시즌 개막을 앞둔 시점에서 이강철 kt wiz 감독은 피치 클락을 확실하게 도입할 생각이 아니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게 낫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KBO의 주장대로 전반기에만 운영했다가 추후에 사라질 수도 있는 제도라면 굳이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투수들에게 적지 않은 심리적 압박감을 준다고 덧붙였다.[57] 이는 허구연의 이전 행보와 비교해보면 모순되는데, 프로야구 제 9구단 창설 당시 김택진 NC 구단주는 본인과 연고가 없는 창원시에 구단을 창단하는 것을 망설였으나 허구연이 창원시에 연고지를 두는 것을 권유하고 설득했기 때문이다.[58] 다만, 허구연을 옹호해보자면, 야구 관련 인프라 개선을 위해, 연고 이전이라는 과격한 발언까지 하면서 창원시 측을 압박할 수 있는 사람은 허구연밖에 없었다. 구단에서는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팬들을 위해서라도 연고지 이전 발언 같은 건 할 수 없으며, 그 진의가 단순 시청을 압박하기 위한 허장성세라도 마찬가지다. 나름 이슈가 되고 여론을 움직일 정도로 체급이 있는 인사면서도, 반대로 구단에게는 크게 부담 주지 않을 수 있는 포지션은, 총재라는 거창한 직함을 가졌으면서도 연고지 선정에 대한 영향력은 생각 외로 거의 없는 허구연밖에 없는 것.[59] 이는 미국의 슈퍼볼의 하프타임 쇼와 비슷한 연출이다.[60] 5월과 9월 일요일, 지상파 편성, 공휴일 경기를 5시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61] 심지어 팬들조차 다음 시즌부터는 바뀌어야 한다고 했었는데 현장 방문 후 곧바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62] 심지어 티빙 중계권 관련 논란이 한창 거세던 시기에는 정몽규와 동급이거나 더 밑바닥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팬심이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또한 한국시리즈 1차전 서스펜디드 사태도 시구자 초청, 식전 행사에 들어간 비용, 쿠바와의 국대 친선경기 때문에 취소하지 못한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63] 어디까지나 초반에 비해 여론이 많이 나아졌다는 거지 TVING에 대해서는 TV 중계와의 지나친 딜레이 문제 등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비판 여론이 계속 나오고 있다.[64] 좋아하는 쪽에서는 전반적으로 한국 야구를 발전시켰다며 호평을 하나, 싫어하는 쪽에서는 차별과 가끔 나오는 졸속행정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며 비판을 한다.[65] 오랜만에 들어서 재밌다는 반응도 있고, 무언가를 자꾸 많이 들려줘서 유익하긴 하나, 말이 너무 많고 중계에 방해되는 것 같아서 싫다는 반응도 있다.[66] 대회 직전에 핵심으로 지목되던 선수들의 부상이 많았다.[67] '구독하고요'를 사투리로 표기함과 동시에 '허구연을 구독하라'는 뜻을 담은 중의적인 이름이다.[68] 야구인으로서의 경력은 당연히 허구연이 가장 선배지만, 유튜버로서의 경력은 나머지 3명이 앞선다. 김선신과 박지영은 일찌감치 개인 계정을 만들었고, 정용검은 개인 계정은 없지만 엠스플 계정에 고정 컨텐츠인 정용검 TV를 올리는 등 사실상 유튜버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