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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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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북한의 혈통 정치학
3. 비판
3.1. '혈통' 자체의 정치적 날조 문제3.2. 봉건제적 세습 문제
4. 가계
4.1. 북한 정권 수립 이전4.2. 1세대(김일성)4.3. 2세대(김정일)4.4. 3세대(김정은)
5. 곁가지6. 여담7.

1. 개요

백두혈통(, Paektu bloodline[1])은 북한에서 지배층인 김일성 일가를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 빗대어 가리키는 미칭(美稱)이다. 이는 겉으로는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을 표방한다는 북한의 봉건주의, 전체주의적이자 전제군주적 독재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요소로, 이 '혈통'에 따라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령도자'가 선대의 혁명 과업을 완수한다는 명분으로 북한의 전제군주제형 세습 통치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백두혈통에 김일성의 아내이자 김정일의 모친 김정숙을 포함하면 백두산절세위인이란 개념이 된다.

2. 역사

'백두혈통'이라는 단어 자체는 김정은 시기에 나타난 단어다. 김일성 시기에도 그 일가의 핏줄이 존귀하다는 인식 자체는 있었으나 표현은 단순히 '백두산 줄기'라고 해서 김일성과 함께 활동했던 빨치산파 인물들에게 쓰인 정도다. 김정일 시대에는 '부자세습'을 북한에서도 극구 부정했기 때문에 혈통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당시 북한 고위인사들은 김정일이 어디까지나 김일성에 이은 당 고위직이었기 때문에 물려받은 것이지 김일성의 아들이라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이 공산주의를 아예 버린 것도 아니었고 부자세습이 전세계가 경악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던지라 무마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김일성 일가의 사람들도 조선로동당과 인민군에서 요직을 등용하는데 힘을 실어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허나 김정은 통치 시기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에 가있다가 느닷없이 후계자가 되었기 때문에 북한 내에서 정치적 행보를 보이기는커녕 그 존재 자체가 베일에 쌓여 있던 인물이라 김정은의 빈약한 집권 초기 기반을 보태기 위해 '김일성의 손자'라는 혈통을 강조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백두혈통'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김정은이 어느 정도 권력 기반을 안정한 후 북한에서는 역으로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의 인적사항이 주목 받는 데 부담을 느꼈는지 언급이 거의 줄었다. 김정은은 부계로는 '존귀'하다고 여겨지는 백두혈통이지만 모계는 역으로 가장 낮은 대우를 받으며 북한에서는 '째포'라는 멸칭으로도 불리는 재일교포 출신이다. 즉, 김정은의 모계 혈통은 출신, 성분 둘 다 적대계급잔여분자에 속하는 혈통인 것이다. 심지어 고용희는 재일교포 출신으로만 끝나지 않고(?), 남한 출신에, 아버지는 일본군에게 군복을 납품하던 친일 자본가였으니 일반적인 북한인이었으면 그 즉시 3대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을 사람이었다. 국가적으로 혈통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수록 김정은의 모계혈통이 발목을 잡는 셈인 것이다. 게다가 후술하듯 김일성이 북한 최대의 '적대계층'이란 것을 감안하면 김정은은 누구보다 완벽한 순혈(?) 적대계층 중의 적대계층인 만큼 일반적인 북한인이었으면 문자 그대로 최창익, 황장엽[2], 장성택[3][4], 신태수[5]도 가볍게 능가할 수준으로 온 가문 사람들이 몰살되고도 남을 인물이었던 셈이다. [6]

2020년대부터는 '백두혈통'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줄어들고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산절세위인 등으로 간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다만 2022년 2월 16일 김정일 80주년 생일 중앙보고대회에서 '백두의 혈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언급되어서 2022년 기준 북한 내부에서도 여전히 쓰이기는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23년 2월 8일 북한 열병식에서는 '백두혈통 결사보위'라는 구호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2.1. 북한의 혈통 정치학

수령은 육체적으로만 보통 인간이지 뇌수 능력은 이 세상 천재들을 다 합쳐도 따르지 못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중에 수령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가는 수령만이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수령이 지정해주는 사람이 다음번 수령으로 국가를 지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과 인품을 지닌 수령이 국가를 지도해야지 다른 사람이 국가 지도자로 될 수 없다는 것이 수령의 유일적 령도체계입니다. 인류 력사상에 처음으로 태어난 수령이 김일성이고 수령의 안목으로 보고 판단한 다음번 수령이 아들 김정일이고 또 그 다음번 수령이 손자 김정은이라는 것입니다.
김성일 사건의 주모자 김성일이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에게 전한 말 #
장장 수백년에 걸쳐온 노동계급의 혁명운동역사는 아무리 옳바른 지도사상과 집권력을 가지고 한 시대를 이끌어왔다 해도 영도의 계승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피흘려 개척하고 지켜온 혁명위업이 좌절과 우여곡절을 면치 못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기록하고있습니다.
우리 조국과 인민의 먼 앞날까지 내다보시며 역사상 처음으로 혁명위업계승문제를 가장 빛나게 해결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선견지명과 탁월한 영도에 의하여 우리 혁명이 주체의 불변궤도를 따라 대를 이어 힘차게 전진할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사상과 위업은 그의 가장 충직하고 견실한 위대하신 계승인들에 의하여 무궁무진한 생명력과 견인력을 과시하며 승리적으로 전진하여왔으며 오늘 더욱더 거세찬 활력에 넘쳐 승승발전하고있습니다.
202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30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리일환이 낭독한 추모사 중

북한 정치에 있어 '혈통' 개념의 시초는 1971년 6월 24일 개최된 사로청 제6차 대회에서 행한 김일성의 연설이며,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 후계문제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당시 김일성은 청년들은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하여야 한다는 연설에서 자라나는 새 세대들이 혁명을 계속하여야만 혁명의 대를 이어나갈 수 있으며 우리의 성스러운 혁명 위업을 완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김정일의 등장을 간접적으로 시사하였다.

이후 김정일은 1971년 10월 1일 당중앙위원회 청년사업부 및 사로청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에서 이러한 김일성의 세대교체 발언을 상기시키면서, 청년들이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은 사회주의의 몰락이 혁명 선배에 대한 배신(혁명 전통 계승의 부정)에서 비롯되었다며, 북한 지도부와 체제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 이는 공산주의의 핵심 이론인 계급 투쟁이 구 체제의 지배 계급과 신흥 계급이 생산의 주도권(=권력)을 놓고 투쟁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소련도 당 내에서 정치 투쟁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덕분에 그나마 소련이라는 국가가 그럭저럭 굴러가긴 했었다. 이건 다른 공산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 이후 북한은 대를 잇는 혁명의 계승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북한이 말하는 혁명적 전통의 계승은 결국 주체의 혈통론으로 이어진다.

북한의 혈통론에 따르면 당은 수령에 의해 마련된 혈통을 계승해 나가면서 수령의 당을 끊임없이 강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백두혈통을 강조하기 위한 논리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수령 혈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혈통 논리를 통해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수령과 당의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규율을 강요하고, 이를 통해 체제 안정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 시기 북한의 후계자론에 따르면, 원래 적법한 후계자의 요건은 다음과 같았다.
원래 북한의 후계자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전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었다. 허나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김일성체현론을 거쳐 결국 혈통계승론으로 연결된다. 혈통계승론은 김일성이 당 건설과 혁명을 개척하고 이끌어가는 노정에서 창시하고 발전시킨 모든 혁명적 재부인 혈통을 후계자가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김일성 시기에도 '혈통'이라는 단어를 넣긴 했으나, 처음에는 생물학적 혈통이 아니라 김일성의 사상과 이론, 혁명 업적, 투쟁 경험, 사업 방법 등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가까웠다. 하지만 세습 정치가 본격화되면서 생물학적 의미가 강해지고 후계자 선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였다.

3. 비판

3.1. '혈통' 자체의 정치적 날조 문제

"동무의 집안은?"
"증조부지주놈의 묘지기였소."
"계급주의의 개였군. 동무의 조부는?"
"리조 시대에 지방관을 하댔지요."
"봉건 잔재끄나풀이구만기래, 동무의 부친은 무엇을 하댔소?"
"한약방을 운영하는 의사였다오."[7]
"인텔리 분자였구만. 집안에서 믿는 종교 같은 것은 있소?"
"어마니의 성함이 베드로(반석)였댔소."
"이거이거, 종교까지 믿다니!![8] 네놈 집안은 완전히 반동 놈의 집구석이구만! 이런 반동 놈의 새끼!! 어디 잘난 이름이나 한 번 들어보자우!"
"김일성."
공산주의 유머 - 동무는 주체조선에 어울리지 않소.

김일성의 가족 관계와 출신 성분을 잘 생각해보면, 공산주의사회주의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래서 북한이 정말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였다면 김일성의 집안은 가장 먼저 숙청을 당해야 하는 입장이었다.[9]

애초에 백두혈통이란 단어 자체는 김정은 3대 세습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백두혈통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시기는 2000년대로 쓰인 지 오래되지 않았다. 2008년에 김정일이 뇌출혈로 쓰러지고 부랴부랴 후계 구도를 짰는데, 당시 김정은은 나이도 너무 어렸고 후계자 절차를 전혀 밟지 못했기에 혈통으로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물론 김일성 집권 시기에도 세습 통치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김정일도 혈통빨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정일은 최소한 김일성 생전에 후계 구도에서 승리하기 위해 권력 암투를 여러 차례 벌였으며, 당과 군 내부 요직을 두루 맡으면서 최소한 기본적으로 차기 지도자의 길은 밟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아버지 김일성의 아들로 뒤를 이은 것이지만 명목상으로는 후계를 맡을 만한 유력한 정치인 정도의 위치는 됐다. 당시 김정일은 김일성의 정처 김정숙의 장남으로 1964년에 로동당에 입당하여 선전선동부 선전지도원부터 차곡차곡 올라와, 김일성의 친동생이며 자신의 숙부인 김영주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부장 자리에서 밀어냈고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와 이복동생 김평일의 라인들을 대거 숙청하고 나서야 비로소 1972년 당중앙위원회에서 김일성의 후계자 자리로 추대받았다. 그냥 낼름 집어먹듯이 후계자가 된 것이 아니고 삼촌 김영주, 이복동생 김평일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낙점된 이후에도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후계자 자리에서 산전수전을 겪었고, 19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어서야 군권을 틀어쥐면서 사실상의 실권자가 되었다. 그리고 1994년 아버지 김일성의 사망 이후 유훈통치가 끝난 1997년에야 총비서 자리에 올라 공식적인 집권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경쟁자들을 보면 알겠지만 흡사 재벌들의 후계자 경쟁처럼 애초부터 혈통간의 다툼이긴 했지만, 그래도 1964년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30년 동안 요직을 두루 맡았고 기본적인 소양은 쌓았기 때문에 혈통 외적으로도 인정받을 여지는 있었다. 소련이나 중국처럼 공산당 일당독재가 이루어지는 국가라 해도 차기 지도자는 이렇게 권력 싸움에서 승리한 인물이 받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이 비록 공산주의 개념을 1970년대부터 내다 버리고 주체사상으로 일찌감치 갈아탔다곤 하지만, 완전한 세습 국가로 발돋움한 것은 2000년대에 이 백두혈통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부터였다.

김정일은 가계 내부의 적 외에도 갑산파 같은 정치 반대 세력이 있었고, 최소한의 권력 승계를 위한 다툼은 했으며, 김정일의 승계에 전 세계 국가들이 경악했던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부자(父子) 세습이라는 개념 자체가 당대 북한에도 없던 전무후무한 사태였기 때문에 집권 이전이나 직후에도 딱히 혈통을 내세운 적은 없었다. 김일성-김정일 정권 교체 시기에 과거 북한 인사들은 남한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김정일은 절대 세습이 아니며 능력으로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대외적으로 세습 통치라는 것이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북한 고위직들도 알고 있었으며, 겉으로라도 세습했다는 개념을 부인했다는 것이다. 동태관 로동신문 논설위원도 2012년 2월 11일 로동신문에 쓴 정론 <인민의 눈물이 말한다>에서 김정일의 세습에 대해 "누구도 해보지 못했으며 오직 자신의 실력과 의지로써만 실현해야 했던 계승위업"이라 언급했는데, 로동신문 논설이 지도자 주장의 대필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역시 사실상 과거 북한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 봐도 무방하다.

1974년에 제정된, 북한의 초월적 헌법이자 주기도문이나 다름없는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에 "김일성의 대를 이어 혁명 위업을 완수하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대를 잇는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김일성 다음 지도자도 이를 따르라는 말이었고 혈통까지 제약한 구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정일 집권 이후 북한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와 함께 교묘하게 이 말은 김일성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탈바꿈되었으며, 2013년 김정은의 집권 이후 이 10대 원칙이 완전히 혈통 우선 논리에 따라 개정되면서 오직 김일성, 김정일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만이 대를 이어 혁명 과업을 완수한다는 명분으로 3대 왕조 세습을 정당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김정은이 의 자식으로 출신부터 떳떳하지 못하고 어린 시절엔 원산 특각에서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숨어지냈고, 커서는 스위스에서 사실상 방치되었기 때문에 조선로동당이나 조선인민군 내부에 지지 기반은 커녕 인맥도 없고, 존재조차 공식적으로 부인되었던 김정은에게는 이런 억지식 개념이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정일도 김정은에게 후계자 승계 밑작업을 준비하려고 했던 듯 보이나, 김정일의 이른 죽음으로 밑작업이 제대로 시작되기 전에 승계가 이루어졌고 빈약한 활동 기록을 보완하기 위해 꺼내든 것이 결국 백두혈통인 것이다.

하필 백두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북한에서는 백두산을 젊은 시절 김일성의 항일 터전이자 김정일의 출생지라고 선전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실제 출생지는 러시아의 도시 하바롭스크지만, 러시아 변방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보다는 영산 백두산이 더 있어보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거짓 선전을 한다. 김정일이 태어나지도 않은 백두산의 한 봉우리에 '정일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백두산 밀영'이라는 이름으로 가짜 김정일 생가를 지으며 거짓 구호나무를 만들어 선전할 정도로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김정일을 동일시하는 프로파간다를 벌였다. 이 날조된 출생지를 얼마나 중요시하냐면 북한 TV 뉴스 후에 하는 날씨 예보에서도 백두산 밀영을 평양 다음인 두 번째로 소개한다. 북한에서는 날조된 군대인 조선인민혁명군의 창건일을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이라는 이름의 공휴일로 지정하고, 열병식을 개최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 기준으로는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김일성의 생가인 평양 시내 만경대고향집 역시 북한에서는 성역 대접을 받는다. 단 평양 시내에 있기 때문에 백두산 밀영과 달리 일기예보에는 그냥 평양이란 도시로 퉁친다.

백두혈통이라는 용어는 이 백두산=김일성-김정일 개인 숭배 선전을 김정은에게 대입시키기는 작업이다. "김정은은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김정일의 자식이므로 혈통 자체가 우월하다"는 헛소리를 지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상식적으로도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전근대적인 사고가 팽배한 북한 정권은 '백두혈통'이라는 선전 문구를 자뭇 자랑스럽게 퍼트리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100% 백두혈통인 것도 아니거니와, 세계적으로도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혈통주의적 사고이므로 외국에서는 비웃음을 당할 뿐이다. 어쨌든 북한 정치계에 가장 강력한 정통성을 가진 일족이므로 백두혈통이 아닌 한 북한의 통치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최고존엄과 함께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새롭게 나타난 프로파간다 문구이다.

항간에 백두혈통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혈족 모두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있지만, 백두혈통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뿐으로 넓게 봐야 김경희김여정처럼 남자가 아니라 후계에 위협이 되지 않을 만한 여자 형제만 껴주는 정도다. 그래서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은 존재 자체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이복형 김정남은 유부녀 성혜림을 이혼시키고 동거하다가 낳은 사생아이기 때문에 김일성에게 손자로 인정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평양의 늙은 당 간부들은 김정일의 정처 김영숙이 딸 김설송과 김춘송의 손을 잡고 명절마다 김일성에게 새배하러 갔던 걸 기억하여 성혜림은 물론 고용희는 존재 자체를 숨겼고, 김정남이 태어난 1971년은 김정일이 공식 후계자로 지명되기 이전이라 정적에게 공격당할까봐 철저하게 존재를 숨겼다. 고용희는 한때 우상화 시도가 있었으나 출신이 알려질 경우 부작용이 더 크다는 판단으로 우상화 자료들은 모조리 회수되어 폐기되었고, 관여자는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처넣었다. 공식적으로 김정은의 어머니는 선군의 어머니라는 모호한 호칭으로 언급되며 김정일과 혼인했는지 여부 역시 교육하지 않으며, 재일교포에 제주도 출신 가계를 철저히 숨기기 위해서 발설 시에는 정치범으로 취급하고 당과 수령을 모략한다는 명분으로 숙청된다. 게다가 김정은이 태양절 호칭을 축소할 정도로 권력, 입지가 집권 초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수준으로 강화된 2024년 기준으로도 고용희 우상화는 오히려 북한 측에서 제동을 거는 판이다.

소위 백두혈통이라는 김씨 삼부자는 공통적으로 비만인데 지도자는 풍채가 좋아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발상에서 일부러 살을 찌워서 그렇다고 한다. 21세기에 경제적으로 못사는 후진국에는 이런 풍조가 남아 있음을 감안하면 신빙성이 아예 없지는 않은 주장이다. 김정철, 김한솔과 같은 방계 혈통은 비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실 김일성은 1945년 한반도로 들어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마른 체형이었다. 1 2(왼쪽) 3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 활동을 하다가 만주국의 항일 빨치산 토벌을 피해 1940년에 소련으로 도망가 88 국제 여단에서 실전 참가 없이 훈련을 받았다. 이 때는 그래도 만주에서 실전을 치르던 시절보다는 의식주가 나아졌겠지만 소련의 일개 군인(대위)이었으므로 마른 체형을 유지했다. 1945년 9월 소련의 수송선을 타고 입국한 뒤에는 북한의 지도자가 되어 경제적으로 당연히 넉넉하게 살게 되었으므로 차츰 비대하게 몸집이 불어난 것이다. 김정은 역시 어릴 땐 농구를 좋아하고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니던 청소년기까지만 해도 심한 비만까지는 아니었다. 김여정마약 중독으로 살이 빠져 폭삭 늙은 걸로 추정되고 김정철은 몸짱이 되려고 스테로이드 따위를 주입하다가 부작용으로 호르몬 질환이 생긴 걸로 알려졌다. 현재 김여정은 마른 편이고 김정철은 보통 정도의 체형이다.

3.2. 봉건제적 세습 문제

나는 사회의 동의 없이도 출생에 의해 인간이 되지만, 이러한 특정한 출생은 보편적 동의에 의해 왕이나 귀족이 된다. 동의는 이러한 인간의 출생을 비로소 왕의 출생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왕은 출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른 규정들과 구별된 규정이 출생이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하나의 지위를 부여한다면, 인간의 이러한 특정한 사회적 기능 요소를 만든 것은 바로 인간의 신체이다. 그의 신체는 그의 사회적 권리이다. 이러한 체계에서 인간의 신체적 존엄이나 인간적인 신체적 존엄(이것의 내용을 상세히 말하자면 국가의 물리적 자연 요소의 존엄)은 특정한 존엄, 더욱이 최고의 사회적 존엄은 출생에 의해 예정된 특정된 신체의 존엄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 까닭에 이것은 귀족의 경우 당연히 혈통, 가문, 간단히 말해 그들 신체의 생활사에 대한 자부심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당연히 문장안에 자신에 상응하는 학문을 가지고 있는 이 동물학적 직관방식이다. 귀족의 비밀은 동물학이다.
카를 마르크스 독일 법철학 강요[10]
이조 5백년 역사의 세습과정 연구

철학박사이며 역사학자였던 박동근 교수는 김정일이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공부하던 시절 ‘신라의 3국통일 문제를 다시 검토할 데 대하여’라는 논문을 대필해 준 학자이다. 김정일의 후계과정에도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이 박동근 교수를 특별히 아껴 준 것은 단순히 자신의 논문을 만들어 준 은혜 때문만은 아니었다. 박동근 박사는 과거 우리나라의 봉건시대 귀족양반 가문의 후계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였다. 조선노동당 역사연구소에서 이조 봉건시대 5백년 역사의 세습과정을 >전문적으로 연구했다. 김일성 일가가 제일 궁금했던 점은 이조 봉건시대 5백년간의 세습 유지였다고 한다.
자신들은 조선노동당 역사연구소에서 이조봉건시대 5백년간 세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을 연구한다는 것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조 봉건시대 세습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이조 봉건시대 왕이나 왕의 후계자 배필은 반드시 양반 가문에서 뽑았는데 이런 것이 훗날 반드시 화근이 되었다는 얘기였다.[11]
양반가문에서 왕비를 선택하면 왕비의 친족들이 정치에 개입하며 나중에 왕까지 배신한다는 사실이었다. 김일성이 소위 백두혈통이라는 수많은 빨치산 동료들의 후손들을 외면하고 김정일의 아내로 평범한 가정출신을 선택했던 원인도 이씨 봉건시대 세습과정에서 나타난 결함들을 충분히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북한 엿보기] 백두혈통과 김정은 - 역사적으로 봉건세습 새 권력자에 의한 선대세력의 숙청으로 이어져 통일신문 2016년 6월 2일#
파일:김주애 5성장군.png
2023년 9월 9일, 정권 수립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의 딸 김주애에게 한 쪽 무릎을 꿇고 귓속말을 하고 있는 군정지도부장 박정천(계급 원수)의 모습.[12]

사실 입헌군주제 국가라면 몇 대를 세습하든 세습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일은 전혀 없지만, 북한은 명목상 사회주의 공화국이면서 3대째 세습을, 그것도 입헌군주제마냥 명목상의 권력 or 부분적인 권력만 세습하는 선이 아니라 전제군주제마냥 절대권력을 세습하여 휘두르고 다닌다는 것이 문제다. 처음에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척이나마 했으나 지금은 거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를 포기한 상태이고,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전제군주제 국가와 다름없는데, 현재 북한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도 헌법에서 빼버리고 금지시켜버린 국가라서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을 주장하면 정치범으로 숙청되어버린다. 그래서 북한이 극좌 계열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극좌 성향도 전혀 아니다. 오히려 파시즘의 근원인 제3의 위치와 매우 흡사하다. 김씨 왕조 집안은 출신 성분도 기독교를 믿고(김일성의 부모) 지주의 머슴 출신(증조부 김응우)에다 봉건제의 끄나풀(조부 김보현)에다 사실상의 전제군주제까지 운영하고 있으니[13]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이론에 의하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태생부터 출신 성분에서 무조건 걸러내야 하고 박멸해야 하는 타도의 대상이나 다름없다. 이런 이유로 위의 내용 같은 공산주의 유머도 있다. 북한의 정치헌법사전에서는 세습제 자체를 봉건적 신분제도의 잔재로 규정하고 있으나 김씨 일가의 세습만큼은 예외로 그걸 세습제라고 악평하는 건 비이성적이고 반역사적인 사고라고 못박아 두었다.

사실은 소련의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도 대부분 그들이 추구하던 국가에 어울리지 않던 사람들이긴 했다. 카를 마르크스블라디미르 레닌도 실제로 19~20세기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주장하던 유력한 혁명가들은 대부분 프롤레타리아와는 거리가 멀고 돈 많은 부르주아-중산층 같은 지식인 출신이 더 많았다. 그리고 이런 부르주아-중산층 출신 운동가들은 신념이 확고해서 진짜 프롤레타리아 출신 운동가들과 달리 변절하는 일도 적었다.

현재 북한 정권은 전제군주제도 아닌 사실상 군벌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부패도 엄청나다. 이 문서에 적혀 있듯이 사회주의 국가라면서 남녀 평등을 실현하지 못하고 약자를 배려해주지 않으며, 아예 혈통, 출신을 운운하며 성분 제도라는 계급제를 만들었다. '반석'(=베드로)이라는 기독교식 이름을 가진 어머니를 둔 김일성은 세계 최초로 '무신론 국가'를 선포한 엔베르 호자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보다 심하게 기독교 탄압을 하였고, 이런 행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겉으로는 남녘의 동포들과 손을 잡겠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주민들의 그 동포들에 대한 동경은 '외부 문물을 유포했다는 죄'로 공개 처형을 하며 그것을 본보기로 어린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까지 막고자 하고 있다.

과거 김일성이 김정일 권력세습에 대한 중국 지지를 요청하자, 마오쩌둥은 무슨 봉건왕조냐며 김정일 권력세습을 부정적으로 반응하였다. 이는 스탈린 못지않게 권력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마오쩌둥도 북한의 세습체제를 지지하지 않고 비판하였고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이 김정일의 권력세습을 지지했으나 동시에 북한의 개혁개방을 권하였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를 불쾌하게 여겼다. 되려 김정일은 덩샤오핑을 공산주의 배신자라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도 북한의 권력세습을 좋게 보지 않으며 오히려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이를 따라하다가 아내 엘레나 차우셰스쿠와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4. 가계

한성희
홍일천
김혜경


2
신정희
(리씨)
김혜순
리혜경
김솔희
홍영숙
서영라
김이순
장길선
김영숙
김춘송
(자녀)
(부인)
(장남)

3
(셋째)
(아들)
(남편)
(딸)
(딸)
김경진
김인강
(부인)
김은송
김성강
(부인)
(자녀)
제갈순복
김송죽
김백연
김형록
김영성
(부인)
(부인)
김정현
(부인)
김원주
김구일녀
김형실
김형복


김영주, 김평일, 김정남처럼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직계가 아닌 김일성 일족은 '곁가지'로 백두혈통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인척인 장성택은 곁가지도 아닌 곁나무로 장성택이 당 간부로 잘 나가던 시절에도 공식적으론 어느 누구도 장성택을 김일성의 사위나 김정일의 매제로 대우해서는 안 되며 바로 종파로 몰려 숙청 당할 사유였다.

다만 다 하지 말라는데도 장성택이 실세이기 때문에 잘 보이려고 노력은 하고, 김정일이 장성택이 젊은 시절에도 '장 부장'이라고 불러 소 부부장과 그 밑 직위일 때에도 "장군님도 장 부장 동지로 부르는데 다른 직급으로 감히 낮춰 부를 수 없다"며 로동당 부장급 대우를 받았다.

가문 특유의 돌림자를 사용한다. 김일성 세대는 주(柱) 자 돌림으로 김일성의 옛 이름이 김성주였다. 김정일 세대는 일(一) 자 돌림, 김정은 세대는 정(正) 자 돌림을 쓰고 있다. 이들의 본관인 전주 김씨 가문의 항렬과는 관련이 없고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돌림자이다.

4.1. 북한 정권 수립 이전


형제간에 공유하는 항렬자는 ○주(柱) 자이다. 친사촌, 친육촌들도 주자 항렬자를 쓴다.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는 역대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태조의 4대조를 추존하듯이 증조부 김응우 때까지 올라간다.

4.2. 1세대(김일성)


김영일, 김현에 관해서는 후사가 알려져 있지 않다. 김만일은 3세에 익사하여 사망했다.

형제간에 공유하는 돌림자는 일(一) 자이다. 김정일도 원래는 '金正一'이었지만 나중에 자신은 다른 형제들보다 특별하다는 의미로 아버지 이름의 한자를 따와서 '金正日'로 고쳤다.

김일성 대의 백두혈통은 지금과는 모습이 달랐다. 김정일 대에 가서는 형제여도 경쟁자이기에 곁가지로 몰아내는 모습을 보이지만 김일성은 다른 형제들과 권력 투쟁을 할 일이 아예 없었다. 애당초 김일성의 집안은 그냥 딱 조선 시대 평범한 집안이었다. 그러다가 김일성으로 집안이 출세한 셈인데 당연히 고모나 숙부들도 특별할게 없었다. 그러다보니 다른 형제들과 권력 투쟁을 할 일도 없고, 먼 친척도 잘만 기용했다. 친동생 김영주가 김일성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김정일과 싸웠지, 김일성의 자리를 넘보려고 시도한 적은 없는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의 여동생으로 알려진 김신숙, 김정숙[17]은 김경희나 김여정과 달리 친여동생들이 아니다. 김형직의 여동생이자 김일성의 고모인 김구일녀의 딸들이다. 이들도 지금의 김여정처럼 대단한 요직을 맡은게 아니라서 자연히 정치 투쟁에 발들이지도 않았고, 때문에 김일성과 좋은 관계로 남았다. 곁가지로 형제들을 한바탕 솎아내는 김정일 이후의 백두혈통에 비해 김일성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집안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것.

4.3. 2세대(김정일)


김혜경, 김설송, 김춘송, 김정철, 김여정의 가족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단, 김정은의 친남매인 김정철, 김여정은 결혼을 했고 자식도 있다는 건 확인됐다.

형제간에 공유하는 돌림자는 정(正) 자다.

4.4. 3세대(김정은)


국정원의 첩보에 의하면 김정철과 김여정은 결혼은 했고 자식도 있다고 한다. 위는 국정원에 따른 김정철 및 김여정의 가계도.

김정은 다음 세대의 경우 돌림자를 쓰는지 여부는 아직 불명이다. 김정남은 자식들에게 김한솔(金漢率), 김금솔, 김솔희 등 '솔'자 돌림을 주긴 했는데, 김정은이 형 김정남을 암살하면서 일가를 완전히 축출했기 때문에 김정은 본인의 자식들에게 형 일가와 같은 '솔(率)'자 돌림을 이어서 썼을지는 미지수. 김정은의 자녀 중 유일하게 이름이 공개된 김주애의 경우 '주(主)'자와 '애(愛)'자를 썼는데, 백두혈통 가계를 보면 김여정처럼 딸도 돌림자를 쓰는 경우도 있고 김경희처럼 딸은 돌림자를 쓰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이것만으론 애매하다.

만약 '김주애'도 돌림자를 쓴 이름이라면 김정은의 아들도 '주'나 '애' 중 하나가 돌림자일 것이며, 남자 이름으로 쓰기는 어색한 '애(愛)' 자 보다는 '주(主)'자 돌림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아들만 돌림자를 썼고 김정남 자녀와 별개의 돌림자를 택했다면 김정일과 김정은이 모두 아버지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만큼 '은(恩)' 자가 들어갈 수도 있다.

5. 곁가지

"우리는 김정은 동지밖에 없다"
"신념이란 무엇인가. 진짜 신념은 자기 수령만을 알고 수령만을 목숨 바쳐 지키는 것이다
수령의 곁에 있었다고 하여 다 충신이 아니며 대오에 함께 섰다고 하여 다 동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가 누구이건 수령을 모르고 감히 도전해 나선다면 설사 피를 나눈 혈육이라 해도 서슴없이 징벌의 총구를 내대는 대쪽 같은 사람, 그것을 곧 혁명으로 알고 혁명가의 본능으로 아는 사람이 진짜 신념의 강자"
2013년 12월 14일 로동신문 정론 '우리는 김정은동지밖에 모른다!' 중[22]
장성택 숙청 후 로동신문은 사설을 통해 혈육이라도 서슴없이 징벌한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장성택 숙청 사유 중에 한 가지가 이복형 김정남과의 교류 때문이었다고 추정한다. 장성택은 김정일에게 성혜림의 전 남편과의 딸 리옥돌 가족과 김정남을 돌볼 임무를 오랫동안 수행했었다. 특히 중국 당국이 김정남을 보호하고 유사시 대북 압박 카드로 쓸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암살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본 줄기가 크려면 곁가지를 쳐내야 하듯이 수령 절대 영도 체계하에서 다른 대체자는 백두혈통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다. 북한 일반 주민들은 김정일이 죽었을 때까지 미혼인 줄 알았다. 김성애의 친정 가문도 완전히 숙청되었지만 김성애와 이복동생 평일, 영일은 무사했는데, 김성애는 1969년부터 여맹위원장으로 김일성이 "김성애 동지의 지시는 곧 나의 지시입니다."라고 선언해서 오랫동안 설치고 다녔는데다가 김평일과 김영일 등 이복형제는 김일성이 1950년대부터 공인한 가족이다 보니 죽이면 수령 절대권위에 손상이 가기에 살려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피를 나눈 김영주, 김평일, 김정남처럼 권력에서 밀려난 인물들은 곁가지로 부르며 수령 일가로 취급하지 않는다. 김씨 일가는 만경대 김씨라고 하여 김일성 일가 친척들은 최고의 대우를 하지만 김정일의 지시로 군과 중앙당의 요직에서는 완전히 배제된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부하 백두산 줄기 항일 빨치산들 후손들의 대우는 잘 해주었으나 조직 지도부나 선전선동부 같은 요직에 등용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이들은 국가보위부외무성 같은 다른 권력기관으로 빠진다.

일가친척들을 잘 먹고 살게만 해주고 기타 다른 조직에서만 간부로 지내며 김일성의 사위이자 김정일의 여동생의 남편 장성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성택은 권력은 쥐어줬지만 곁가지는 커녕 곁나무로 불리며 세력과 사람 모이는 걸 철저하게 감시 당하고 3번이나 혁명화를 다녀올 정도였다. 그리고 2017년 사망한 김정남이 암살 당한 것으로 추정되어 김씨 일가의 세습의 잔혹성이 드러났다. 김정남은 유부녀를 강제로 이혼시키고 빼앗아 동거하다 불륜 관계로 태어난 자식이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에게 공인된 적도 없으며 백두혈통도 아니다. 김정남이 태어난 당시가 1971년인데 아직 김영주, 김평일과 후계자 다툼이 끝나지 않았고, 그 후에도 정식 부인 김영숙이 김설송, 김춘송과 손을 잡고 명절마다 김일성에게 인사하러 다닌 걸 평양의 당간부들이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공식적인 적통 백두혈통과 곁가지는 칭호를 보면 알 수 있다. 김형직김정숙은 당연히 선생님이나 녀사로 부르고, 김일성의 어머니 역시 강반석 녀사로 칭하고 조부모 김보현, 리보익, 외조부모 강돈욱, 위돈신은 선생님 녀사로 칭하며 김일성의 외삼촌인 강진석도 선생님으로 부르나 김일성의 친동생 김철주는 '동지'로 부른다. 강반석의 당숙 강량욱조차 선생으로 부르는 데 반해서 김씨 일가라도 곁가지로 취급되면 잘해봐야 '동지'로 끝난다. 한국에서 선생/여사(님) 취급과 달리 북한에서는 매우 엄격하게 제한적으로만 쓴다. 예를 들자면 김정은의 공식 아내로 소개된 리설주만 하더라도 잠깐 녀사로 소개되다가 밸런스 비판을 의식한 듯 다시 동지로 강등되었다.[23]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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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가계도는 김정은을 중심으로 작성된 것인데, 성혜랑을 김정은의 이모로, 이한영 등을 김정은의 사촌으로 잘못 작성하였다. 성혜림은 김정은의 서모(庶母)로, 김정은과 혈연적 관계가 전혀 없다. 따라서 김정은이 성혜랑을 도의적으로 '이모'로 칭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짜 이모는 아니다. 그냥 이복형의 이모, 아버지의 前 부인(사실혼)의 언니일 뿐. 그러므로 당연히 이한영 등도 김정남과 사촌이지, 혈연 관계가 없는 김정은과는 사촌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김정남의 이모 성혜랑은 1996년에 영국으로 망명했으며 지금도 거기서 살고 있고, 성혜랑의 아들인 이일남은 1982년에 한국으로 망명하여 이한영이란 이름을 쓰고 살다가 성혜림의 망명 시도 중 1997년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자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용희의 여동생 고영숙과 고영숙의 남편 박건은 1998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서 사장의 아들, 딸이나 친인척이 같은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경우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유튜버 이과장이 본인의 유튜브에서 처음 사용하며 인터넷 전반에 퍼졌다. 대개 저런 사람 중에서도 능력 등이 부족한 사람을 조롱하는 목적으로 많이 쓰이는데, 아무래도 가족이기 때문에 사장의 눈치를 덜 보게 되고, 사장이 더 챙겨주어 결과적으론 일반적인 직원들에 비해 급여도 많이 받고 짤릴 위험도 적기 때문에 그렇다.

묘하게 1세대인 김일성 3형제(김형직, 강반석 소생의 김일성, 김철주, 김영주)와 2세대인 김일성의 3자녀(김정숙 소생인 김정일, 김만일, 김경희)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첫째인 김일성과 김정일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되었고, 둘째인 김철주김만일은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고, 셋째인 김영주김경희는 최고지도자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앞의 두 형제자매보다 오랫동안 장수했거나 장수하고 있다. 김영주는 2021년 12월 13일 향년 10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김경희는 2023년 기준 77세로 현재까지 살아있다.

반면 3세대인 김정일의 3자녀(고용희 소생인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의 경우는 약간 다르면서도 비슷한데 첫째가 아닌 둘째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되었고 첫째 김정철은 요절하지 않고 살아 있기는 하지만 셋 중에 존재감이 없고 권력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 김철주, 김만일과 비슷하다. 셋째 김여정은 김영주나 김경희와 비슷하게 최고지도자가 된 형제를 보조하는 고위급 정치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4세대인 김정은의 3자녀(리설주 소생인 김○○, 김주애, 김○○)도 3세대와 비슷한 행적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의 장남으로 추정되는 첫째는 아직까지 공식 석상에서 등장한 적이 없고 몸이 아프고 왜소하다는 소문이 있는 등 존재감이 없다는 점에서 김정철과 비교되고, 둘째인 딸 김주애는 2022년 11월 처음으로 공개된 이후 계속해서 공식 석상에서 등장한 관계로 김정은 다음의 후계자설이 제기되다는 점에서 김정은과 비슷하고, 셋째는 아직까지 성별과 행적이 확인된 바가 없다. 다만 김정은의 자녀 3명이 정말로 3세대와 비슷한 행보를 보일지는 계속해서 지켜봐야 알 수 있겠다.

그리고 핵심 적통라인은 기예에 능한 것이 특징이다. 김일성의 경우 노래 부르기와 시작을 좋아해 현지 시찰에서 기분이 좋으면 간부들 앞에서도 노래를 부를 정도였으며, 김정일은 트롬본을 수준급으로 불 수 있어서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솔로 곡을 불 정도였다. 그 아들들인 김정철은 기타 연주 실력이 수준급이며, 김정은은 젊었을 적 스포츠를 즐겼다.

2018년 2월 8일, 청와대에서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의 방문을 지위가 높은 사람이 왔다는 의미로 "백두혈통의 방문이라 의미가 크다"라는 입장을 발표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이에 유승민 의원도 반응을 했지만 정작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는 로동당의 요직이기에 의미가 크다는 언급이 있었을 뿐, 백두혈통을 언급한 적이 없다. 아마도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자막을 보고 착각한 듯. 경향신문의 보도에서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가 언급했다는 표현이 있다. 관련 기사. 하지만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이, 어차피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라면 기자가 어떤 방식이었든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이라 '청와대'의 입장으로 보기는 무리다. 대략 "말로만 듣던 일명 '백두혈통'이 왔구나" 수준의 의미이다.

2018년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북한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이 참여하였는데 SBS의 배성재 아나운서는 "백두혈통의 최초 방문"이라는 북한 뉴스를 연상케 하는 어이 없는 발언을 하였다.

핵심 적통라인 한정 장수-단명-장수-단명을 반복하는 패턴이 있다. 이는 과거 독일 제국의 황실이었던 호엔촐레른 왕가도 마찬가지다.

7.

본래 북한과 나무위키에서만 쓰이는 표현이었으나, 점차 의미가 확장되어 대한민국에서는 기업의 오너 일가나 경영자의 가족, 특히 중소기업의 경영자의 자녀나 혹은 유력 가문의 자제들이나 외국 왕족 중에서 자국 내에서 신성불가침격인 존재로 추앙받거나 평판이 나쁜 이들에게 농담조나 비하조로 백두혈통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용어의 유래가 유래인 만큼 100% 조롱조로 쓰이기 때문에 평판이 좋은 세습 가문에 대해선 쓰이지 않는다.

[1] Paektu는 북한식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에 따른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 로마자 표기법에 의거하면 Baekdu.[2] 다만 황장엽의 친척들이 탈북을 하거나 반란을 모의하다 처형당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을 보면 먼 친척들은 적대계층 강등 내지 오지 추방에 그쳤을 가능성이 더 높긴 하다.[3] 참고로 김정은도 그 장성택의 조카였다.[4] 주성하의 증언에 따르면 장성택의 아내였던 고모 김경희의 제지로 먼 친척들은 단기적인 처벌만 받거나 정치범수용소에서 수감되었더라도 풀려나왔다고 한다. #[5] 참고자료 신태수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가문 단위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온 경우가 있다는 언급과 중앙에서 지목한 집안은 자식을 다른 수용소로 보내라 했다는 언급이 있다. 죄질(?)이 너무 흉악하기에 가문 단위로 끌려갔을 것임은 확실시된다.[6] 그래서인지 김일성은 김정은을 근본 없는 반쪽짜리 손자로 취급하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고 김일성과 같이 찍은 사진이 없는 바람에 김정은이 처음 등장했을 때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저게 도대체 누구냐는 반응이 앞섰다. 또한 북한 내부에서도 김정은이 재일교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던 탓에 북한 관리들조차 한국의 방송을 보고 나서야 김정은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은 물론 김정은도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리는 대북전단에# 유난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고 한다.#[7] 김형직은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진료는커녕 약조차 주지 않았을 정도의 개신교반공주의자였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 단체에게 원한을 사 여러 번 테러를 당한 끝에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거꾸로 말하자면 김형직은 자식놈에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패드립을 아직도 실시간으로 당하고 있는 셈.[8] 모친 강반석뿐만 아니라 부친 김형직 역시 개신교를 믿었다. 즉 양친이 모두 기독교인이었던 것.[9] 물론 근대에는 당연히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출신이나 사상이 본인의 생활에 있어 차별이나 피해를 받는 것은 몰지각한 행태로 취급된다. 그러나 북한은 지도층이 본인들의 심기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이름조차 서로 들어본 적이 없어도 같은 족보에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모조리 수용소에 끌고 가거나, 차별을 당연시하는 비이성적인 사회상이 갖춰져 있기에 김일성 본인부터가 일반인이라면 북한의 체계 하에선 이미 처형당하고 남을 수준인 것이다.[10] 카를 마르크스에 의하면 출생 자체로 인간이 되지만, 그 인간의 계급과 세습은 인간 보편적 동의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권력과 세습에 따른 자부심인 백두혈통은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동물학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주체사상에서 백두혈통이니 백두산절세위인이나 하는 것은 그들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무력에 의해 결정된 우상화에 불과하다.[11] 조선 영조 시기의 양반이었던 남하정의 동소만록에도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 세력이 왕실과의 혼인 관계로 맺어진 사돈,외척 관계를 내세우면서 궁궐 안을 마음대로 출입하고 요직을 꿰차면서 세도정치의 기반을 다져나갔다고 분석한 바 있다.[12] 당시 기준으로 김주애만 10살에 불과하고 박정천은 적어도 60대로 추정되며, 박정천은 조선로동당 군정지도부장을 역임한 북한 최고위급 인사이다. 김여정은 부부장이라는 공식 직책이라도 있지 김주애는 어떠한 공식적 직책이 하나도 없다.[13] 그것도 북한이 '리조'라고 멸시하고 청산해야 할 최우선적 대상이었던 조선의 왕조 세습 전통을 연구하고 자신들의 3대 세습에 써먹는 이중성까지 보여주고 있다.[14] 이 시절 가문의 본관인 전주에서 평양으로 이주해서 살았다. 전주 김씨 족보에서는 김계상 대에서부터 족보가 누락되어 있는데 이는 백두혈통에 대한 나머지 전주 김씨의 반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평양으로 이주해서 김계상의 후손들 대부분이 평양 인근에 살아서 6.25 때 이북 지역에 있던 족보가 파괴되어 남한 지역에서는 그들의 현황을 알 수 없기 때문. 거기다 북한은 백두혈통 본인들은 본인들의 본관을 아주 잘 알고 있긴 하지만 일단 공식적으론 본관을 폐지했다.[15] 이후 '金正日'로 고침[16] 한자는 다를 수도 있음.[17] 이쪽은 김신숙과는 달리 간부로 활동했다. 김신숙은 학자로 살다가 죽었다.[18] 리평과 결혼했지만 김정일과 유부녀 시절부터 불륜 관계였으며, 김일성 몰래 만나다가 결국은 리평과 이혼. 정식 부인은 아니라고 한다. 결국 김정남은 사생아인 셈.[19] 김경희의 친딸이 아닌 입양한 딸이라는 설이 있다.[20] 성별 불명[21] 아들인지 딸인지, 또 몇 명인지 알 수는 없지만 태영호 의원의 저서에서 김정철 본인이 아버지라는 것을 직접 언급했다.[22] 다만 이 정론을 쓴 로동신문 논설위원 동태관은 북한 기준으로도 매우 극단적인 성향의 언론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태관은 2015년 4월 27일에 쓴 정론 <태양은 조선에 있다>에서 북한의 반정부 인사들에게 대놓고 '병균들'이라는 막말을 쏟고 자신들이 미국에 '정의의 핵대전'을 일으켜 미국을 지구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까지 해댄 인물이고, 그런 호전성과 김정은 입맛에 딱 맞는 기사들을 써댄 덕분에 김일성상경루동 주택은 물론이고 리춘히도 받지 못한 김정일훈장까지 받았다.[23] 다만 리설주의 경우는 어린 나이 + 적은 경력 등이 원인으로 재일교포 출신에 첩이어서 공식적으로 예우받지 못한 고용희와는 달리 어느정도 최고지도자의 배우자로서 경력도 쌓고 아들이든 딸 김주애든 자식이 4대 세습을 할 때쯤엔 리설주도 다시 녀사로 올라갈 듯 하다.[24] 요절까진 아니지만 이때 북한 평균수명이 72세였으니 평균보다 단명인 건 맞다. 다만 김정일의 생활습관을 고려하면 오히려 장수한 셈이다. 공식적으론 1942년생이기에 이 기준으론 향년 69세이며 김길선 역시 70도 못 넘겼다는데 이 기준으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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