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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08:37:42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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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의 고사를 표현한 GIF 이미지[1] 출처

1. 개요2. 배경3. 표현의 문제4. 과거5. 현대
5.1. 군대5.2. 사회5.3. 기타
6. 좋았던 옛날 편향7. 기타
7.1. 관련 속담 및 명언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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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신세대세대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흉보면서 닮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90년대 X세대들도 기성세대에 저항하며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혀를 끌끌 차던 어른들의 흉을 봤으나 2020년대 들어서도 20대 개새끼론 등 여전히 대물림되고 있으며 지금의 20대도 어린이청소년를 보며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일종의 내로남불인 셈.

2. 배경

우선 왜 '버릇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버릇이 없다, 건방지다'와 같은 말들은 갑이 을에게 하는 말이며 대개 아랫사람이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을 때 이런 말이 나오므로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윗사람에게 할말은 한다'는 것이므로 을의 인권이 향상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 자체가 절대적 갑을체제였던 노예제에서부터 시작되어 21세기 민주국가들은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배려하는' 평등사회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추세이므로 갑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어졌다"고 느낄 수 있다.

'이등별'만 양산 신병영문화 헛구호(세계일보, 2005) 한국의 군대 문화를 예로 들면 20세기엔 정말 문자 그대로 '까라면 까'였으나 21세기 들어서는 '이등별'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작업 하나만 하더라도 서로 ‘해라, 못한다’ 다투다 보니 선·후임병 모두 영창가거나 아니면 내무반에서 갈등을 겪게 됐다”고 한다. 선임의 입장에서는 "까라면 까"라고 했더니 "너나 까"라며 대드는 후임을 보며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개탄할 만하지만 후임의 입장에서는 선임에게 대들 수 있을 정도로 인권이 대폭 향상된 것이다. 2005년은 참여정부 시절이었는데 참여정부는 워낙 후임의 인권이 시궁창이었던 군대문화의 개혁을 중점으로 삼았다. 기사에서도 "위에서는 ‘쫄따구 없애라’, ‘인격모독하지 마라’며 편하게 지시만 내렸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갑의 불만'임을 알 수 있다. 물론 '2005년 이등별'이 선임 앞에서 휴대폰을 하는 '2024년 이등병'을 보면 "버릇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2] 이처럼 군대에서 을의 인권이 개선될수록 "우리 때보다 버릇 없어졌다. 세상 참 편해졌다"는 갑의 탄식은 끊이질 않을 것이다.

2020년대 들어 한국에서는 촉법소년 논란이 화두가 되고 있다.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요"란 말도 밈이 되었다. 역시 사회적 약자미성년자의 인권이 향상되며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마치 이등병의 인권이 향상되면 '이등별' 부작용이 생겨나듯이 미성년자의 인권이 향상되면 '촉법소년'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주호민 특수교사 고소 사건의 초반 당시 일부 교사들은 집단으로 항의하며 요즘 애들은 버릇도 없고 조금이라도 혼내면 부모가 갑질을 한다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물론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3] 그러다 보니 이런 부작용을 들어 "요즘 것들은 버릇 없고 사회는 흑화되어 가고 있다"며 '좋았던 옛날 편향'에 빠질 수도 있는데 알고보니 교사의 언어 폭행과 아이 및 부모에 대한 갑질이 문제였다. 만약 초기 상황에서 가해 교사의 말만을 듣고 학생인권조례 등을 폐지했다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지 생각해보자. 물론 그러다보니 버릇없는 아이들의 부작용이 생겨날 수도 있지만, 그런 '을질의 부작용'이 무섭다고 어린애들에게 싸대기 날리던 '야만의 시대'인 20세기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그것은 자칫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소탐대실이 될 수도 있었다.[4] 특히 위의 사건과 같이 가해 교사의 의견에만 동조하다 가해 교사의 갑질 수준[5]의 요구와 언어 폭력이 드러나며 여론이 크게 바뀌는 등의 상황은 이에 대한 부작용을 더 크게 드러낸다.

응원문화 '격세지감 30년'(한국일보, 2015)이라는 기사를 보면 80년대에는 관중 폭력이 극심한 야만의 시대였으나 90년대 들어 에티켓ㆍ이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아재들만 즐기던 야구에 여성팬 등도 늘며 즐기는 문화가 형성됐다고 회고했다. 당시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여성과 약자의 인권에 무척 공을 들이던 시기였다. 물론 그러다보니 여성 우월주의가 나타나는 등 마치 '이등별'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2015년 한국 청소년 이슬람 국가 가담 사건을 벌인 청소년은 SNS에 "요즘 시대는 남성이 반대로 차별받는 시대야. 그래서 난 페미니스트를 싫어하지. ISIS가 좋아."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장애인이나 여성의 차별이 많이 줄어들고 사회적 참여도 활발해진 면도 있다. 그럼에도 일부 강성 페미니스트들의 부작용을 들어 "사회는 흑화하고 있다"고 한다면 자칫 '좋았던 옛날 편향'이 될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거나 삼강오륜의 부위부강(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 여자는 삼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삼일한) 등 사회적 약자였던 어린이나 여성이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당하며 갑질을 당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꾸준히 인권이 향상되는 과정에서 갑과 을이 충돌하며 갈등이 빚어지는 것을 보며(이등별이 선임에게 대들거나 학생이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등) 반대 입장에서는 사회가 점점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 "옛날이 좋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요즘 것들은 버릇 없고 건방지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3. 표현의 문제

말 안 듣고 실수하거나 민폐를 끼치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나 후배가 철없어 보이고 부족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인생 선배의 올바른 역할로서 이해심을 갖고 지켜봐주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 이미 사람들은 그들보다 더 먼저 태어났고, 인생경험이 더 풍부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봤으며, 이미 철들 시기를 보냈다. 그들은 인생 초보이자 성장/성숙이 아직 더 필요할 뿐이다. 그들 과정도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일 뿐이지, 사람들이 처음부터 성숙한 사람인게 아니지 않은가?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10대 시절의 생각과 정서를 버리지 못하는 대학생들도 입시에만 매달리다 보니 중요한 인성, 인격, 사회성, 내적으로 성장할 기회가 부족했던 결과 부족한 어른으로 자란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아직도 덜 떨어진 어른, 비뚤어진 어른 등 나쁜 어른들이 너무 많다. 대학교에서도 똥군기, 얼차려 같은 것을 하는 걸 보면 답이 없다. 하지만 입시 공부는 어른들이 시키는 것이며, 이에 따른 교육 제도도 어른들이 만든 것이다. 성숙한 사람으로 키우고자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의 역할을 잘 생각해 볼 문제이다. 신기술, 신제품 또한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고 검증, 보완 등을 거치기 마련이다.

세월이 흐르면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는데 '과거 세대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기준이 생긴다.[6] 그 기준점에서 통합이나 마찰이 발생하게 되는데, 마찰이 생겼을 때 과거 세대가 쓰는 논리들 중 하나. '구세대와 신세대가 서로 공존하는 게 좋지만 단순한 어려움을 넘어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이 이야기의 주요 내용이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신세대의 관념과 행동은 구세대가 만들어 놓은 틀을 깨기 마련이다. 구세대로서는 그 틀이 깨지면 의식적 또는 경제적으로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때 신세대에게 "(버릇없이)어른들의 말을 왜 안 듣냐?'' 라며 비난하는 것이다. 신세대로서는 구세대를 전혀 이해할 수 없으니 더욱 반발하게 되고 이러한 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사실 사회가 이런 과정을 통해 발전하기 마련이라 꼭 악순환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세대 갈등이 단 하나도 없는 사회는 구세대와 신세대의 기본적인 가치관이 같다는 것이니 발전가능성이 없는 정체된 사회라고 봐야 한다. 당장은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다른 경쟁사회에게 밀리거나 내부의 문제가 쌓이다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세대 갈등이 하나도 없는 것도 좋은 결말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는 개혁에 대한 마음가짐을 기준으로 구세대와 신세대를 나누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신세대로 볼 수 있는 청소년들이 길거리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거나 학교 내에서 온갖 사건사고를 주도하는 것은 어른들에게 반발하는 심리에 불과한 행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개혁적 성향 자체도 철저히 주관적인 것이며 단순한 비행과 쉽게 구별되지만은 않는 것이다. 적어도 기성세대, 기득권의 입장에서는 개혁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이 반사회적이자 패륜적이며 방종에 빠진 행동에 불과하기 일쑤다.

허나 이렇게 해도 나중에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0줄만 넘겨도 비슷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는데, 사실 30줄까지 갈 것 없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아예 불과 1년 후배나 중고생 및 초등학생들에게도 그런 소리를 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7]# 추가로 "내가 젊을(어렸을)땐 안 그랬는데"까지 더해주면 효과 100배. 뭐, 당장 군대만 가봐도 안다. 맞선임이 "나 때는 안 그랬어."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보다 더 진보적인 사회관이 일찍 정착한 서구권에서도 1960년대에는 젊은이들이 도덕과 책임을 모르고 자유와 개혁만 외친다고 2차 대전 참전자들이 깠는데 정작 그 68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고 가정을 꾸리고 나이가 들자 역시 자식 세대들에게 비슷한 드립을 친다. 1966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이 바로 '청년'이었으며 표지 모델엔 표준적인 당시 청년의 훈남스런 이미지를 올렸는데 새로운 사회적 개혁을 추구하는 '청년' 자체가 시대적 아이콘이었던 셈이다. 당시 청년들은 비틀즈처럼 사회개혁적인 면모가 강했으며 징병제 반대 시위 등 자유와 인권을 향한 젊은이들의 시위가 폭증했으며 히피족도 등장했는데 2차대전 때 국가에 목숨 바쳤던 기성세대들이 보기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청년들이 버릇없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결국 이 '청년'들로 인해 미국에서 징병제가 폐지되고 모병제로 전환되어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징병제 폐지 등 사회개혁에 앞장섰던 68세대들이 보기엔 그 뒤에 태어난 청년들은 군대 안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특히 80년대에는 헤비메탈이라든지 건스 앤 로지스 같은 파격적인 락밴드들이 탄생하며 펑크족 같은 스타일로 설치고 다니기도 했기에 버릇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8]
다만 한국은서구 국가들과는 달리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거쳐 1960년대까지는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다가 불과 수십 년 만에 한강의 기적으로 빠른 발전을 이룩하여 현재에 이른 나라이다. 즉, 서구 국가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룬 것을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이루었을 정도로 사회 변화와 발전의 속도가 유례없이 빨랐고 그로 인한 세대 갈등도 다른 나라들보다 극도로 심각하다. 거기다 전통적으로 유교의 잔재도 매우 강하게 남아있는 나라여서[9]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정치적으로는 독재 정권이 오래 지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긴 권위주의도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요즘은 세대 갈등이 지역 갈등, 성별 갈등, 계층 갈등, 이념 갈등에 비해 심각성이 덜 회자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고 세대 갈등이 완화되었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10] 사실 나무위키에서만 해도 적잖이 보이는 초딩, 중고딩, 급식충 등의 표현이나 20대 개새끼론과 같은 항목도 결국은 똑같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가해자가 된 피해자가 되거나 정신승리에 빠질 수 있으며 세대 갈등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2020년대 초반에 20대 중후반이라면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의 중~고생 시절을 회상해보자. 당시의 대학생과 어른들은 우리에게 바지 통을 너무 넓혀 입었거나, 머리를 길게 길렀거나, MP3 플레이어를 너무 많이 들었거나, 학생인데 화장을 했거나, 치마가 무릎 위로 살짝 올라왔거나, 카톡이 없거나 초창기로 대중화되기 전이지만, 문자 메시지 자체는 그 당시에도 있는지라 하루에 수백 통 보낸다고도 까였다. 현재의 기성세대들도 과거의 신세대였고, 현재의 신세대들은 세월이 흘러 기성세대가 되어 후세대들을 매몰차게 까게 될 것이며, 결국 그 후세대들조차 세월이 지나면 기성세대가 되어 아래 세대를 또 깔 것이다.

나중에 혹시라도 이런 말은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사실, 신세대 입장에서 보면 고작 나이 좀더 먹었다고 우쭐대는 것처럼 보일 뿐이고, 결론적으로는 세대간 갈등이 커질 뿐이다. 이런 발언들을 같은 세대끼리 지속적으로 하면 일종의 친목질과도 같아지며 세대 간 갈등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질 것이다.

아래에 서술된 옛날 사례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지만 개개인이 꼰대스러움을 버리고 세대 간에서 최대한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젊은 세대도 노력해야 한다. 참고하면 좋을 만한 글

4. 과거

5. 현대

5.1. 군대

군대에서는 "요즘 군대가 무슨 군대냐? 보이스카웃이지.", "요즘은 이등병이 아니라 이등별이다.", "나 때는 안 그랬다", "나 때는 더 심했다", "요즘 군대 좋아져서 사고가 더 늘었다." 등이 있다.

하지만 쌍팔년도부터 30년 전, 그리고 현재와 비교하면 군대 내의 구타 및 가혹행위로 인한 폭력사고와 사망사고는 절반보다도 훨씬 적다. 통계상으로 군대에선 2010년에 129명이 사망했는데 1980년만 해도 970명이 사망했다. 거의 매년 일개 연대가 전투불능이 되는 수준이었다. 요즘 군대는 시설 확충 및 구타 폭력의 근절 등 예전보다 좋아진 덕에 사고와 자살이 모두 줄은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전체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민주화하고 자유화됨에 따라 이전에는 '군대는 원래 이런 거다.', '이래야 군대지.'라고 안이하게 덮고 넘어갔던 일들이 피해자 본인들의 제보나 감찰/감사 과정에서 적발되어 사회적 이슈가 되기 때문에 심각할 정도로 많았던 가혹행위들의 실상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이런 일들이 이슈조차 되지 못했다. 워낙 사례가 많았고 더 심각한 건 그걸 당연히 여겼으니까 크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19] 하지만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등 굵직한 대형사고가 터지고 군대 내 스마트폰 사용이 허가되면서 너도나도 부조리를 사회에 끄집어내서 고발해내자 윗세대들까지 부조리의 실태에 경악할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해병대는 해병문학의 실사판급 부조리, 일명 해병비문학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여론이 급격하게 선회했다.

반대로 군대의 환경 개선과 혁신을 강조해야 한다는 뜻으로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쓰인 적이 있다. 임기말인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이 복무하던 을지부대에 방문했을 때 자신의 군생활과 영식이기자부대 군생활 이야기를 꺼내놓고 군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했는데 더 좋아져야 된다는 뜻으로 썼다. 영상

5.2. 사회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이 영..." 같은 것들이 있다. "말세야, 말세.", "옛날엔 평화로웠는데, 요즘 세상 험해졌어."도 비슷하다. 유신체제가 들어서면서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경제발전이 본격화된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후반의 3저 호황을 지나 1997년 외환 위기 이전인 1990년대 중반까지는 폭풍 경제 성장시기라 호황기였지만 1990년대 후반에 닥쳐온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는 저성장대에 접어들었으니 이전보다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은 기성세대인 노인층과 중년층에게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30대가 청소년~20대를 까기도 하며 20대들 역시 초중고 학생들에게 급식충이라 지칭하면서 "우리 때는 저렇게 철없지 않았다."라며 두발자유화, 교복자유화를 비롯한 청소년 인권에 대한 주장을 철없게 치부하는 일이 매우 많다. 고등학생들도 역시 초~중학생을 까기도 하고 중학생도 초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도 유치원생을 까내린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사회에서 무개념 초딩 담론이 생긴 시기는 인터넷 보급 초창기인 2000년대 초반인데 당시 기록을 보면 지식인 서비스가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2~2003년에 작성된 게시물이며 해당 시점의 초등학생들이 1990~1996년생으로서 2024년 현재 28~34세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이 더욱 적합하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거나 패드립을 한다는 주장은 2000년대 초반에도 나온 소리이다.##

2016년에 일어난 초등학생 오버워치 신고 대란 당시 만 15세(중학교 3학년) 이상이 초등학생~중학교 2학년들을 상대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속된말로 "우리 때는 안 저랬다. 요즘 애들 참 문제다." 같은 격한 반응을 보인 사례도 있다.2016년 기사#2#3[20] 사태가 심각해지자 초등학생들이 직접 게임 단속에 반대한다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기도 했다.당시 기사 하지만 당시 중3 이상들도 초등학교 시절에 서든어택, 테일즈런너, 메이플스토리, 피파, 카오스, 파오캐 등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온갖 욕설, 소음을 퍼붓거나 책상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아이들이 난무했으니 과거 미화일 뿐이라 전혀 말이 안되는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2020년대 초반 시점의 중학생~20대 초반 중에서도 "자신이 초등학교 다녔을 때는 도티를 비롯한 각종 유튜버와 BJ의 콘텐츠를 즐겨보면서 스마트폰 모바일 게임을 자주 했는데 2020년대 초등학생은 '잼민이'로 불리고 틱톡을 한다고 버릇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21][22] 당연하겠지만 당시 다른 의미로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킨 페이스북 스타 신태일김윤태 등이 아동,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2015년 이후에도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면서 패드립온갖 비속어, 특유의 비꼬는 말투를 따라 하는 초등학생들이 다수 존재했고[23][24] 유튜브에서는 일명 '도티충' 같은 극성 초등팬들이 유튜브에 판을 치던 시절이라 이들의 주장은 과거 미화일 뿐이며 명백히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2016년에 초등학생을 다룬 기사를 보면 당시에도 초등학생들의 언어습관이 현재와 세부적인 차이는 있어도 전반적으로 보면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어, 어느덧 10대 중후반~20대 중반[25]으로 성장한 이들 세대들도 이전 세대와 별반 다를 게 없이 세부적인 세대 차이는 있어도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이 부합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중~고학년(3~6학년)이 저학년 학생들을 비난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인터넷 짤방을 통해 널리 퍼진 적도 있다. 게다가 앞서 서술한 얘기가 나와 있던 것도 본인이 그 시절에 비해 나이를 먹어서 그러한 행동이 그 당시와 다르게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 당연히 나이와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능이 높아져 그 당시에는 정상적으로 보였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민폐로 보이기도 한다.

5.3. 기타

이를 미러링한 "요즘 늙은 것들은 나이가 벼슬인 줄 안다"는 말도 있는데 장유유서에 따라 나이가 벼슬이었던 조선시대에 비하면 2020년대는 노인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당장 80년대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틀니'로 조롱한다든지 노인의 훈계에 "요즘 늙은 것들은~" 운운하며 되돌려줄 정도다.[26]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열정 페이 등의 부조리, 어린이 비하 및 아동 학대, 어린이, 청소년에게 저지르는 인권침해 등의 문제도 근본적으로는 이런 잘못된 사고방식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 어린이집 학대 사건, 아이를 학대하거나 심지어는 살해하기까지 하는 잔인한 사건들이 언론에 많이 보도됨을 생각해 보자. 현재는 과거보다 인권의식이 낫기에 그나마 이것이 담론화된 것이지, 그 전에는 이런 것들조차 당연시되어 묻혔다.

본인이 성장하면서 그만큼 지능 수준이나 보는 눈이 바뀐 탓인 것도 있다. 현재의 경우는 본인의 인생에서 나이가 가장 많을 때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본인 및 동급생들을 볼 때 학생이 되니 어느 정도 성숙하게 느끼지만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면 초1에 비해 지능이 꽤 성장해서 그냥 유치원생이랑 다름없이 매우 유치해 보이고 말이 통하지 않게 느낀다. 초등학교 5학년도 고학년이 되니 많이 컸다고 느끼지만 중학교 2학년 정도 되면 초5에 비해 지능이 꽤 성장해 그냥 잼민이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역시 본인은 이제 다 컸고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지만 고등학교 2학년 정도 되면 중2에 비해 지능이 꽤 성장해 중2병의 전형적인 모습이고 사고방식이 아직 유치하다고 느껴진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2학년이면 신체성장이 완료되고 정신도 많이 성숙했지만 20대가 보면 아직 유치하거나 덜 성숙한 느낌이 크다. 20대도 성인이 되었지만 30대가 보면 아직 완전히 성숙해 보이진 않고 풋풋해 보인다. 30대 역시, 자신은 나이 들었다고 하지만 40~50대가 보기엔 그냥 몸이 건강한 청년으로 보인다. 40~50대도 본인이 늙었다고 하지만 60~70대가 보기에는 40~50대 역시 젊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80~90대 입장에서는 60~70대도 청춘으로 보이며, 그 해당 나이의 사람들도 당시에는 본인을 다 크거나 늙게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니 어리거나 젊게 느끼게 된다.

이 탓에 고작 2~3살 차이 가지고도 이런 말은 되풀이 되고 있으며(역사는 반복된다) 심지어 중학생 선배가 후배에게 버릇 없다며 구타하는 사례도 있으므로 그냥 갑질러들의 흔한 레파토리에 불과할 수 있다.

저출산이나 페미니즘, 남성 역차별 문제에 대해 기성세대가 "남자애들이 게임만 해서 결혼할 생각을 안 하고 애를 안 낳는다.", "남자애들이 좀 참지. 여자애들한테 뭐라 그러냐."라고 하는 것도, 청년 탓을 한다는 점에서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의 2020년대 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6. 좋았던 옛날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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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이와 비슷한 심리적 특징을 연구한 걸로 유명한 심리학자도 있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의 리처드 아이바크(R.Eibach)는 이러한 현상을 \'Good-old-days bias(좋았던 옛날 편향)'로 부른다. 50년대 뉴스기사에서 다루어지던 각종 험악한(?) 사건사고 소식들을 제목만 추려서 노인들에게 보여주자, 노인들은 "그래, 요즘 사람들은 다 이렇다구. 저 예전 50년대만 하더라도 얼마나 인간미가 있고 살기가 좋았는데!"라고 반응했다고 했다.

현재는 청소년 범죄 같은 게 많이 노출되다 보니[27] 이런 상황을 언급할 때 "요즘 애들은 인성 개판에 버릇이 없어서 저런 사고를 많이 치네. 라떼는 말이야. 저런 일을 저지르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어!"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기성세대의 과실도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출세지향적인 사고방식을 주입한 바람에 자기중심적인 사고관을 지녀 성장한 아이들에게 올바른 인성을 가지게 하는 것은 이런 주입식 사고방식에 오래 노출되어버린 이상은 어렵다. '엄친아', '엄친딸'이 거저로 나온 게 아니며, 남을 누르고 내가 성공해 사는 것만 가르친 나머지 전인교육은 등한시한 오점은 피할 수 없다. 노인이 소외되는 까닭이기도 하고. 게다가 이 말 자체도 실제와 다른데, 기성 시대가 말하는 '나 때는'이란 시절인 1970~1990년대에도 청소년이 일으킨 범죄가 많았다. 가난한 가정이 절대다수이던 1950~1960년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관련 속담으로 '곳간에서 인심난다'가 있다). 단지 그 시기가 미디어가 발전하기 전이라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며, 현재 안 좋은 상황을 비난하고자 자신들이 경험한 안 좋은 부분은 쏙 빼놓고 미화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이런 말 하는 사람이야말로 과거에 현재 젊은 것들이라는 세대 못지 않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으면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윌러드 올포트(Gordon Willard Allport, 1897~1967)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는데, 인터넷이 대중화된 현대가 아닌 1950년대에 남긴 것이다.
집단 간의 경쟁의식과 증오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일은 기술의 발달로 이런 집단들이 서로 너무나 가까워져서 도저히 편히 지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인류는 이런 정신적, 도덕적 근접상황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를 아직 배우지 못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관을 지니고 성공한 사람이면 훨씬 많은 실패자는 무시하고 자신의 성공만 생각하면서 의지드립을 내뱉으며 옛날이 좋았다고 추억하기도 하고, 신세대 인물도 성공한 기성세대 인물만 알다 보면 기성세대가 꿀빤 세대라면서 자신이 태어나기 전 옛날을 좋게 볼 수도 있다. 이는 생존자 편향의 예이기도 하다.

과격하게 말하면 까마득한 옛날에는 나때가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수명이 다하거나 병사하거나 해서 죽기 마련이었다. 심화되는 세대 갈등은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에 접점이 없던 세대들이 마찰하면서 생기는 문제다. 50년이 넘은 나이 차이도 일제강점기만 해도 까마득한 나이 차이로 여겨져 접점이 거의 없었지만 21세기 현재는 50년이 넘은 나이 차이도 시대의 접점이 꽤 있으므로 사회 발전에 따라 해결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7. 기타

7.1. 관련 속담 및 명언

젊은이의 오만은 그들이 아직 삶을 통해 겸허함을 배우지 못했으며 사회 환경의 압력을 경험해보지 못했음에서 비롯된다. 젊은이는 스스로가 모든 것을 안다고 믿으며, 그 사실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 수사학[35]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조지 오웰
노인들이 세상을 개탄하고 세속을 비꼬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청년들의 반역을 조성한다.
임어당(林語堂; 중국의 문학자)
노인은 할 말이 없으면 곧 '요즈음의 젊은이는......' 하고 말하곤 한다.
안톤 체호프[36]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싹을 위하는 나무는 잘 커가고, 싹을 짓밟는 나무는 죽어 버립니다.
방정환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걸까? 옛날에는 하늘이라든가 사람들이 참 좋았거든.

근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고, 사회는 점점 썩어 가는 것 같애.

그래도 말이야. '옛날이 좋았다', '옛날이 좋았다' 쉽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

옛날을 안 살아 본 사람들한텐 너무 무책임한 이야기잖아.

그러니까, 나에게 지나간 시간이 소중했던 것처럼, 지금 또한 누군가에게 좋은 시절이었으면, 좋겠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봉현철 부장
Bedenkt: Der Teufel, der ist alt, / So werdet alt, ihn zu verstehen!
(생각해 보게: 악마, 그는 늙었다네, / 그러니 그를 이해하려면 자네들도 늙어 보게!)
파우스트(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는 말.
"악마, 그는 늙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연령을, 즉 인생의 나이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그러므로 악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늙어야 한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토론할 때 출생증명서의 날짜로서 승부를 결정하는 것을 나는 사실 한 번도 참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20살인 데 반해 나는 50살이 넘었다고 하는 단순한 사실이 나로 하여금 그것만으로도 나 자신 역시 정중하게 고개 숙여야 하는 업적을 이룬다고는 생각하게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닙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삶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의 단련된 냉철함과 현실을 참아내면서 내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중에서. 발언의 맥락은 정치에 관한 것이지만, 비단 정치에만 적용되는 주장은 아니다.

8. 관련 문서



[1] 단 실제로 우공이산의 의미는 본문과는 전혀 관련 없으며, 노인의 어리석음도 아닌 그의 노력과 의지를 찬사하는 의미다.[2] 사병들 인권 개선 차원에서 휴대폰 사용이 논의 끝에 허용됐는데 군대가 보이스카우트냐는 둥 군기가 개판된다며 반대하는 부정적인 여론이 존재했다. 과거엔 간부만 휴대폰 사용이 허용됐고 사병 중에서는 말년 병장 정도가 몰래 휴대폰을 들여와 사용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특권이었으니 이 시절을 지낸 이들이 보기에 새파란 이등병이 '감히' 선임 앞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는 것은 매우 버릇없고 군기 빠진 모습으로 느껴질 소지가 있다.[3] 판결이 나온 후로는 여론이 크게 바뀌어 교권 문제를 적어도 이 시간과는 연관지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재는 가해 교사에 대한 그나마 남아있던 옹호 여론도 거의 사라진 편.[4] 부작용을 고치기 위해 더 큰 부작용을 만드는 이러한 문제는 해외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5] 피고인인 가해 교사 본인이 여론 등을 의식하여 주호민 측에게 금전적 보상을 요구했다가 철회[6] 먹고 사는 문제를 의미한다. 말은 안 하지만 어른들의 눈에는 당연히 책임도 벌이도 없이 부모에게 기생하며 연명하는 듯한 뉘앙스의 '남녀 급식, 청년들'을 보면 귀엽기보다는 그저 한심하기 짝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가가 청소년의 노동을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에 미성년자들에게는 부모에게 기생한다는 비판이 부당하다.[7] 근데 이건 사실 위에서 말한 세대 갈등보다는 교육, 입시제도가 수시로 바뀌어서 신세 한탄 같은 느낌이 짙어서 꼭 같은 경우로 보긴 어렵다. '나 중딩 때는 자유학기제 같은 거 없었는데' 하는 것처럼 말이다. 교육과정은 보통 5~7년마다 바뀌기 때문이다.[8] 60년대 비틀즈만 해도 파격적인 한편 순수한 보이밴드 느낌이었다면 80년대에 핫하던 락밴드들을 보면 공연 도중 자해를 하는 등 기괴한 퍼포먼스들이 문제가 되기도 했으니 68세대의 눈에는 곱게 안보였을 수도 있다. 실제 영국의 비틀즈를 모방하여 탄생한 미국의 보이밴드 몽키즈를 보면 60년대엔 그 나름대로 파격적이었으나 80년대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실제 80년대에 몽키즈가 새로운 앨범을 발매했는데 뮤직비디오가 꽤 재미있다. 중년 아재가 된 몽키즈가 젊은이들의 클럽에 갔는데 펑크족처럼 온갖 요란한 젊은이들로 가득찬 클럽에서 몽키즈 멤버들은 술집 기도들에 의해 저 멀리 밖으로 던져진다. 물론 유머러스한 장면이지만, 몽키즈와 함께 했던 68세대들의 눈에 비친 젊은이들이 그렇게 버릇 있고 예의 바르다고 생각하진 않을 수도 있다.[9] 정확히는 변질된 유교적 전통이다.[10] 노인들이 중·장년을 '요즘 중년이란 놈들은 왜 나이살 먹어가지고도 철이 없냐?'라고 까고, 중·장년층들은 20~30대 청년을 '요즘 젊은 놈들은 고생을 안 하고 살아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라고 까고, 30대가 20대 보고 까기도 하고, 2030 청년들이 중~고딩을 '요즘 급식충이란 놈들은 안 쳐맞고 자라서 어른들 말을 안 듣는다, 이따구니 좀 패야한다.'라고 까고, 고딩이 중딩에게 '요즘 중2병 새끼들은 인성이 쓰레기다.'라고 까고, 중~고딩이 초딩에게 '요즘 잼민이들 싸가지가...'라고 까고, 초딩 3~6학년도 자기 아래의 후배들과 초1~2, 유딩들을 까는 등 아주 그냥 서로 까고 까이는 2020년대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를 보자. 사실 2020년대 현재가 아니라도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11] 정확히 이야기하면 고바빌로니아 시절에 수메르어로 쓰여진 점토판이다.[12] 어쩌면 그리스의 고대는 자신들의 신화에서 신과 인간이 공존하던 시대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화에는 초인이 가득했다.[13]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 글을 쓴 알바루스 펠라기우스 역시 대학생이었을 때는 똑같은 날라리였다는 것이다.[14] 다만 이 문장은 가공의 예시를 하나 들어 인덕에 의한 교화가 아닌 법도와 그에 따른 상벌-여기에서는 벌-로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오히려 한비자는 세상 변한 줄 모르고 고대 제왕들의 행실만을 배우라고 떠드는 유학자들을 단순 꼰대를 넘어 사회악으로 보았다.[15] 1975년에 젊은이들은 2023년 기준으로 60대 후반~70대의 노인이다.[16] 퇴폐 문화를 막고자 컬러 TV 방송이 미뤄졌다는 의견도 있다.[17] 이 부분은 자기합리화적대적 공생의 예일 수도 있다.[18] 여담으로 제안대군도 사촌형 성종에게 올린 상소도 언문(한글)으로 올린 탓에 승정원에서 다시 한문으로 번역하여야 해서 애를 먹었다. 왕에게 올라갈 공문서는 모두 한문으로 올리는 것이 원칙이었다.[19]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군사정권 시대라 함부로 비판을 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땡전뉴스삼청교육대를 생각해 보자.[20] 당시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온다.[21] 당시 기사#2#3#4 당시 이들 사이에서 유튜버, BJ를 비롯한 인터넷 방송인의 위상이 어땠는지 알 수 있으며 '초통령' 개념이 인터넷 방송인을 통해 생긴 것은 당시가 처음이다. 일례로 2014~2015년에 양띵 학교방문 유튜브 콘텐츠가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였는지 초등학교 방문 영상이나 아이들이 찍은 요청 영상이 네이버 카페를 통해 많이 올라오기도 했다.#영상영상2[22] 영상을 통해 2014년 무렵부터 초등학생을 포함한 20대 이하 연령대에서 유튜브, 인터넷 방송인이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인터넷 방송의 위상을 지상파에 반영한 최초의 프로그램이 2015년에 방영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다.[23] 패드립은 이전부터 존재했으나 이때부터 인터넷 방송인이 소셜 미디어(페이스북, 유튜브)를 통해 주도적으로 패드립을 사용하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2010년대 중반이 스마트폰과 함께 페이스북 서비스가 초등학생~고등학생 사이에서도 대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치기도 한다. 당시 BJ의 패드립 영상 자체는 2014년 말에 올렸으며 아동,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2015년 이후이다. 이는 2019년까지도 이어졌으나 코로나 이후로 사그라들었다.[24] 2014년 후반에는 학생들의 음란물 유포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당시 중고등학생은 트위터, 초등학생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음란물을 접한 후에 퍼뜨린다고 밝혔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이 자신의 신체 부위를 촬영해 유튜브에 올려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으나, 당시 어린이는 조작 미숙으로 인해 실수로 유튜브에 업로드했다고 밝혔다.해당 기사[25] 이들 중 2010년에 초등학생은 21~26세, 2016년에 초등학생은 15~20세이다.[26] 이건 세대를 탓할 수만은 없는데, 젊은이들, 특히 어릴수록 자기는 젊기 때문에 자신은 항상 혁신적이자 선구적이라는 착각과 망상 속에 사로잡힌 경향이 많으며 나이든 이들은 특유의 고정관념과 고집을 버리지 못해 젊은이들을 무작정 탓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27] 전체 범죄에서 청소년 범죄의 비율은 과거 5%에서 현재 3~4%를 오가는 수준으로 적잖이 줄어들었다. 감소세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유의미한 증가가 아니고 정체에 가깝다.[28] 주로 미래에 바뀔 정책이나 기술을 선보이는 기사의 댓글이나, 이 문서의 맥락과 같은 문제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면 가볍게 웃어넘길 때다.[29] 그래도 하필 이런 식으로 설명한 것에 불편함을 느꼈는지, 굴드의 라이벌 격이던 리처드 도킨스는 책 자체는 호평하면서도 문제의 야구 이야기에 대해서 '(내가 영국인이니) 진화론 책에 크리켓 이야기 주욱 늘어놓으면 이해가 갈 것 같소? 연구 잘하는 양반이 야구 이야기만 나오면 왜 이래?'라며 투덜거렸다.[30] 비슷한 맥락에서, 언론의 계속되는 KBO 리그 하향평준화 드립에 반박하는 을 2019년에 야구공작소에서 기고한 적이 있다.[31] 1982년의 4할은 298타석, 250타수 103안타다. 비록 규정타석이긴 하지만 타석수가 적은 것도 있다. 그리고 1982년과 현재는 차이가 있는데, 외국인투수의 유무, 144G 체제로 인한 체력관리도 중요하다. 거기에 10개팀이라 여러 투수를 상대해야 하는 것도 있다. 일본은 규정타석 4할이 아예 없고, 미국도 1941년 테드 윌리엄스 이후로는 4할 타자는 나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국프로야구에 80년대의 선동열처럼 규정이닝 0점대를 기록한 선수는 2000년대에는 없었고, 규정이닝 1점대도 최근에는 2010년 류현진이 유일하다. 지금 류현진이 메이저에서 잘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의 폼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도 0점대는 어려울 것이다.[32] 범 현대가 중 하나로 보는 게 제일 자연스럽다. H로 시작하는 재벌이야 한진, 한화도 있지만 제일 사업 분야가 넓고, 소위 "군대 문화"가 가장 강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다.[33] 도박묵시록 카이지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당시 일본에서도 요즘 청년들은 프리터로 사는 등은 게을러 졌다고 깠는데, 바로 카이지가 자신의 환경으로 말미암아 편의점 알바나 하며 취업에 관심 안 보이고 빈둥빈둥 사는 프리터였다. 하지만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제애그룹 지하노역장에 끌려가니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다. 어지간한 노가다보다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하며, 심지어 실패하면 죽지만 성공하면 대박터지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 브레이브 로드에 도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도박에 엄청난 베팅을 하여 성공한다. 이건 카이지가 특별히 대단한 열정과 도전 정신을 가진 것보다, 그 상황에서 본인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필사적이었던 것이고, 반면 딱히 빚도 없고 목표도 없던 시절엔 그냥 편의점 알바만으로도 그럭저럭 빈둥대며 먹고 살 수 있었으니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것이다.[34]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나오는 한병태가 이 사례이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하고 외판원 생활을 거쳐 사업을 하다 실패하여 학원 강사로 재취업했다고 회고한다.[35] 그러나 스스로가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것은 언어의 역사성, 유행 따위의 시대별 변화, 세대 차,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36] 비슷한 명언으로는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의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