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명성황후(드라마)
1. 주연
문근영이 연기한 명성황후 | 이미연이 연기한 명성황후 | 최명길이 연기한 명성황후 |
이름 그대로 타이틀 주인공으로 어린 나이에 중전으로 간택되어 일생 동안 조선 왕실의 권력투쟁과 외세의 침략이라는 풍랑 속을 걷는 인물. 실제 인물의 부정적인 면모는 거의 묘사되지 않고 긍정적인 면 위주로 부각하여 캐릭터를 새로 창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하듯 마냥 '천사 of같이' 그려진 것은 결코 아니며, 굉장히 계산적인 치밀함과 비정한 면모 역시 묘사되고 있다.[2]
문제는 작중 흐름이 혼란스러웠던 근대 조선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뭔가 이루어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번번히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운의 인물로 자주 그려지게 된다. 초기에는 고종의 홀대와 왕실의 법도에 눌려 와신상담을 하지만 이후 민씨 일가가 들어오면서 힘을 얻고 마침내 대원군과 대립한다. 민승호 일가 폭사사건으로 겨우 화해 무드를 조성하던 중전과 대원군 사이에 다시 금이 갔으며 이 골은 임오군란에서 마침내 정점을 찍는다. 장호원으로 피신했다가 환궁한 뒤에는 권력투쟁에 몰두한 나머지 등한시하던 나라의 현실을 보기 시작하며 궁극적으로 고종이 황제에 올라 조선이 자주독립국이 되는 것을 꿈꾼다.
이후 흥선대원군과 화해하고 협력하여 조선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때가 너무 늦어버렸고 결국 미우라 고로가 보낸 자객들에게 시해당하며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이후 흥선대원군과 화해하고 협력하여 조선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때가 너무 늦어버렸고 결국 미우라 고로가 보낸 자객들에게 시해당하며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스토리 전체가 흥선대원군의 일생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차남인 이명복을 고종으로 옹립하고[5] 자신은 생부의 자격으로 대원군에 올랐다. 조선을 중흥시겠다는 일념으로 경복궁 중건, 서원 철폐, 호포제 등의 파격적인 개혁 정책을 밀어붙혔고 신정왕후 조씨가 국정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후계 문제를 두고 조급함[6]을 보이다 명성황후의 반격[7]으로 실각해버리고 운현궁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대원군은 포기하지 않았고 임오군란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다. 장호원으로 피난을 간 명성황후의 국상을 선포하고 며느리의 관뚜껑에 손수 못을 박아버리면서 개혁에 대한 의지를 재천명한다. 하지만 청국의 개입으로 마건충에게 납치되는 바람에 다시 실각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조선으로 환국한 대원군은 명성황후와 다시 알력다툼을 벌이나 날로 커져가는 일본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결국 명성황후와 손을 잡는다. 하지만 때가 너무 늦어버려 명성황후는 암살당하고 본인은 일본군에게 납치되어 경복궁으로 끌려오자 '500년 종묘사직이 망했다'라고 통곡을 하며 망국을 실감한다. 이후 명성황후의 장례를 손수 치러주고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대원군은 포기하지 않았고 임오군란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다. 장호원으로 피난을 간 명성황후의 국상을 선포하고 며느리의 관뚜껑에 손수 못을 박아버리면서 개혁에 대한 의지를 재천명한다. 하지만 청국의 개입으로 마건충에게 납치되는 바람에 다시 실각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조선으로 환국한 대원군은 명성황후와 다시 알력다툼을 벌이나 날로 커져가는 일본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결국 명성황후와 손을 잡는다. 하지만 때가 너무 늦어버려 명성황후는 암살당하고 본인은 일본군에게 납치되어 경복궁으로 끌려오자 '500년 종묘사직이 망했다'라고 통곡을 하며 망국을 실감한다. 이후 명성황후의 장례를 손수 치러주고 세상을 떠난다.
- 고종: 이인[8](아역) → 이진우[9]
이인이 연기한 고종 이진우가 연기한 고종 이진우가 연기한 고종황제(광무제)
드라마의 세 번째 주인공으로 비중은 앞의 두 사람보다 적었으나 등장 자체는 가장 많다. 어찌보면 극 중 가장 입체적인 인물로 어릴 때는 그저 여색이나 탐하고 정사는 아버지의 말에만 따르는 못난이로 나온다. 친정을 한 이후에도 명성황후 와 흥선대원군을 비롯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휘둘리기는 해도 나름 소신있게 정책을 주도해나가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갑신정변 준비단계에서 가장 많이 드러난다. 작중 가장 많이 눈물을 흘리는 인물로 큰 사건이 하나 끝날 때마다 소중한 사람을 계속 잃다보니 눈물이 마를 일이 없다.
2. 왕실
- 철종
12화에서 흥선대원군이 과거 회상할 때 등장했다. 죽기 직전 사경을 헤맨 채 신정왕후(조 대비)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며 임금이라고 할 수 있었냐는 말을 들었다.
- 대왕대비 조씨: 김용림[10]
왕실의 가장 큰 어른. 익종의 비, 헌종의 어머니이자 고종의 양어머니. 극 최초반에는 고종을 대신한 섭정[11]으로서 수렴청정을 하고 있었으나 중전 간택[12]즈음에 수렴청정을 거두었다. 이후 대원군에 의해 낙선재로 내려가면서 사실상 정치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려나게 된다.[13] 과거 안동김씨를 견제하기 위해 자기 세력이 없던 흥선대원군의 아들을 왕으로 삼았으나 차츰 대원군의 세력이 커지면서 정치적 대립관계에 놓이게 된다. 대원군의 권력이 절정에 달한 임오군란 당시 이를 막기 위해 노골적인 친청행보를 보이면서 대원군을 견제했고 급기야 흥선대원군을 청국으로 납치하는데도 협력했다. 명성황후가 적통 원자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영보당 이씨 소생의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려고 하거나,[14] 원자가 아프자 양의들을 불러오라는 고종의 말에 크게 반발하는 등,[15] 보수적인 왕실 어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임오군란 이후 조금씩 병색을 보이다가 갑신정변 당시 조영하가 개화파에게 살해당하자 정치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 갑신정변을 진압한 원세개가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자 이를 꾸짖었는데 원세개가 도리어 대왕대비의 면전에서 망령이 드셨다는 드립을 치자 충격으로 쓰러져 실어증까지 앓다가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임종 직전 명성황후와의 대화에서 신정왕후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한 많은 생을 회고한다.
신정왕후: 내 원망을 많이 했지요? 나는 나대로 생각이 있어서 그런겁니다.
명성황후: 당치 않으십니다. 원망이라니요.
신정왕후: 안동 김씨 일문이 득세를 하니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왕실입니다. 그게 어디 이씨의 나라라고 할 수 있었나요? 김씨의 나라였죠. 나는 중전께서 모르시는 수모를 겪으며 살아왔어요.
명성황후: 소인이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왕실이 이나마 유지된 것은 어마마마 덕분입니다.
신정왕후: 세간에서는 날더러 청국의 주구(走狗)[16]라고 한다지요? 나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무슨 욕을 들어도 좋아요. 5백년 종묘사직과 왕실을 지킬 수만 있다면 청국의 주구도 좋고 왜놈들의 앞잡이라도 상관없어요.
명성황후: ...
신정왕후: 솜씨가 좋으십니다. 임오년의 군란때도, 갑신년의 정변때도 중전께서 잘 하셨어요. 마음이 놓입니다. 내가 죽어도 중전께서 잘 하시겠죠...그만 물러가서 주무세요.
명성황후: 어마마마께서 잠이 드신 후에 돌아가겠습니다.
신정왕후: 나는 잠이 오지를 않아요. 지난 일들이 자꾸만 떠올라서...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볼까봐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난 그걸 면하고 가게 생겼소만...
명성황후: 천년만년 이어가야지요. 염려하지 마세요 어마마마. 아라사의 힘을 빌리든, 미국의 힘을 빌리든 이 나라 왕실을 지킬겁니다.
신정왕후: 예...중전께서는 해낼 수 있을 겁니다. 해내고 말고요...
명성황후: 당치 않으십니다. 원망이라니요.
신정왕후: 안동 김씨 일문이 득세를 하니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왕실입니다. 그게 어디 이씨의 나라라고 할 수 있었나요? 김씨의 나라였죠. 나는 중전께서 모르시는 수모를 겪으며 살아왔어요.
명성황후: 소인이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왕실이 이나마 유지된 것은 어마마마 덕분입니다.
신정왕후: 세간에서는 날더러 청국의 주구(走狗)[16]라고 한다지요? 나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무슨 욕을 들어도 좋아요. 5백년 종묘사직과 왕실을 지킬 수만 있다면 청국의 주구도 좋고 왜놈들의 앞잡이라도 상관없어요.
명성황후: ...
신정왕후: 솜씨가 좋으십니다. 임오년의 군란때도, 갑신년의 정변때도 중전께서 잘 하셨어요. 마음이 놓입니다. 내가 죽어도 중전께서 잘 하시겠죠...그만 물러가서 주무세요.
명성황후: 어마마마께서 잠이 드신 후에 돌아가겠습니다.
신정왕후: 나는 잠이 오지를 않아요. 지난 일들이 자꾸만 떠올라서...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볼까봐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난 그걸 면하고 가게 생겼소만...
명성황후: 천년만년 이어가야지요. 염려하지 마세요 어마마마. 아라사의 힘을 빌리든, 미국의 힘을 빌리든 이 나라 왕실을 지킬겁니다.
신정왕후: 예...중전께서는 해낼 수 있을 겁니다. 해내고 말고요...
작중에서 대원군과 가장 대립하는 인물로 임종하는 그 순간까지도 대원군을 경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 왕대비: 김정하[17]
헌종의 비이다. 왕실의 두 번째 큰 어른으로 궁 내의 수 많은 풍파를 모두 겪은 인물이다. 드라마에서는 시어머니인 신정왕후에게 자주 구박받는다. 효정왕후는 매우 장수하였으므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비롯한 굵직한 사건에 모두 휘말린다. 스토리의 시작인 민자영의 중전간택부터 최후반부인 고종의 아관파천까지 왕실과 관련된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 대비: 유혜영
철종의 비이다. 친정이 안동 김씨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소탈하게 지냈다는 면모가 잘 고증되었다. 드라마에서 등장한 세 대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승하했다. 명성황후에게 '철종께서는 여색을 가까이 하여 만사를 그르치셨으니 지금의 주상께서는 그러시지 않도록 잘 보필하라'는 충고를 남긴다.
흥선대원군의 아내로 어질고 따뜻한 성품이며, 흥선대원군과 고종, 명성황후 사이 에 끼어서 마음 고생을 하는 인물로 나온다. 고종,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이 갈등을 빚을 때는 아들/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서운해하지만 흥선대원군이 지나친 행보를 보일 경우 어떻게 아들/며느리에게 그럴 수 있느냐며 제동을 걸려는 모습도 보인다.[23] 아주버님 흥인군이 살해 당했을때 남편 흥선대원군이 고인드립을 날리자 제정신이 아니라며 기겁을 했다. 작품 후반까지 아들 부부와 남편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다가, 마지막 화에서 병사한다.
- 흥인군: 이영후
흥선대원군의 셋째 형. 본작의 초중반부의 개그 캐릭터. 초기에는 이렇다할 관직도 없이 왕실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식 석상에 불려다니는 병풍에 불과했으며 '관직 한 자리 안떨어지나' 싶어 매번 운현궁에 기웃거리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던 중 흥선대원군이 민씨 일가와 대립할 때 양측을 저울질을 하다가 잽싸게 반대원군파에 붙어서 대원군을 비롯한 대원군 일파를 축출하고 자신은 그 공로로 영의정에 오른다. 그러나 임오군란이 터지면서 폭도들에게 집을 침범당하고 방에서 끌려나와 조리돌림을 당한 끝에 살해당한다. 원래 군란 당시 궁궐에 있었으나 폭도들이 궁궐로 쳐들어올 것 같자 일부러 호통까지 쳐가며 궐 밖으로 탈출한 것인데 오히려 이것이 독이 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흥선대원군은 흥인군에게 아주 원한이 깊어서 흥인군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게 하고 '마음 같아서는 그 시신도 오체분시를 시켜버리고 싶다'고 폭언을 퍼붓는다.[24]
- 흥인군 부인: 엄유신[25]
남편인 흥인군과 마찬가지로 푼수 기질이 조금 있는 인물이다. 임오군란 때에는 방 안에 숨어있어서 화를 면했다. 사실 등장인물들이 아역일 때 젊은 모습으로만 나와야 했다. 흥인군의 부인은 1868년, 극중 아역이 퇴장하고 성인 역이 등장할 즈음에 33세로 죽었기 때문이다.[26] 아마 그 부인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것을 가정해 만들어낸 인물인 듯 하다.
- 세자빈 민씨: 박은빈(아역, 유년기) → 김소영(아역, 청소년기) → 이유리
박은빈이 연기한 순명효황후 김소영이 연기한 순명효황후 이유리가 연기한 순명효황후
마음 약하고 여린 성품으로 묘사되었다. 비록 자식은 없었지만 남편 순종과의 사이는 매우 돈독한 것으로 나왔다. 다만, 명성황후에게 아들을 못낳는다며 구박받는 장면도 나왔는데, 순종이 명성황후에게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후궁과 합방한 날이 하필 순명효황후의 아버지 민태호의 기일이었고, 이에 펑펑 울다가 명성황후에게 호되게 혼났다.
- 완화군: 강성현 → 김영찬
고종의 서장자.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원자에 봉해질 뻔 했었다. 어머니 영보당과 궁 밖에 나가 살다가 홍역에 걸려 죽었다.
- 의화군: 김종호(아역, 유년기) → 이풍운[27](아역, 소년기) → 강성민
김종호가 연기한 의화군 이풍운이 연기한 의화군 강성민이 연기한 의화군
순종의 이복동생으로 어릴적부터 순종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 되어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는다[28].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소 어벙한 순종 대신 의화군을 추대해야 된다는 세력이 생긴 탓에 왕실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만 것.[29] 그러나 순종과 의화군의 우애는 변함이 없었고 왕실은 이를 계기로 더욱 뭉쳤다. 이후 아관파천 당시에도 형과 함께 러시아 공사관에 갔다가 고종이 아직 도착하지 못한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고종을 모시러 가는 등 활약한다.
- 연원군부인 김씨: 이상인
의화군의 부인. 별 비중은 없으나, 의친왕비 항목을 보면 알다시피 평생 남편과의 사이에선 죽을 때까지 소생이 없었음에도 역사왜곡이 산재한 작중내서 임신한 만삭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고증오류를 보였다.
- 이재면: 한범희[30]
'이래도 응, 저래도 응' 했다는 실제 성격대로, 아버지, 동생, 제수씨 사이에서 눈치만 보는 우유부단한 캐릭터로 나온다. 주로 군주인 동생과 아버지 사이를 오고가며 서로의 견해를 알리거나 소식을 전하는 등 관계개선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한다. 초기에 궁에 자신의 편이 없던 명성황후에게 여러 서적을 구해다주며 친분을 맺으며 명성황후의 총명함에 기특해 한다. 고종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운현궁과 왕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려고 노력한다.
아버지인 흥선군에게 매번 죽도록 까이는 신세지만[31] 끝까지 흥선군을 위해 일하는 인물이다. 임오군란 이후 흥선군이 청으로 끌려가자 본인이 직접 청으로 건너가 아버지의 시중을 들기도 한다.
- 이재선: 이우석
흥선대원군의 서장자이다.[32] 흥선대원군이 권력에서 밀려난 뒤 흥선군의 사주를 받아 역모를 꾀했으나 발각당했다.[33] 고종은 이재선이 본래 어리석은 자라는 이유를 들어 귀양을 보내는 선에서 매듭을 지으려 했으나 이후 마음을 바꿔 이재선을 사사한다.
- 이준용: 안승민
흥선대원군의 장손자이자 이재면의 아들. 대원군이 어딜가나 함께 데리고 다닐 정도로 할아버지의 극진한 총애를 받으며 점차 고종의 보위를 위협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실제 인물과는 다르게 날카로운 이목구비에 마른 체격으로 나온다.
3. 고종의 후궁들
- 영보당 이씨(완친왕의 생모): 정선경
고종의 총애를 받던 나인으로 중전을 간택할 즈음에는 상궁이었다. 애초에 조선왕실과 같은 성씨였기 때문에 승은을 입었어도 중전의 자리에 오르기는 틀렸었다. 다만 어린 고종이 영보당 이씨만 찾던 탓에 이 기간 동안 명성황후는 독수공방을 해야 했다. 이후 완화군까지 낳고 귀인에 올랐으나 명성황후가 낳은 원자가 세자에 책봉되자마자 궁에서 퇴출되어 완화군과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완화군은 궁에서 나간 지 얼마 안되어 홍역으로 숨을 거두게 되고 영보당 이씨는 그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채 살다가 순종 7년에 죽었다는 나레이션으로 퇴장한다.[35]
- 귀인 장씨(의화군의 생모)[36][37]: 이재은[38]
의화군의 생모로 야심을 지닌 여인으로 나온다. 임오군란이 터져 명성황후가 축출되고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흥선대원군에게 붙어 중전의 위를 노린다.[39] 하지만 청의 개입으로 대원군이 청나라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명성황후가 복귀하자 궁에서 쫓겨나는데, 이 때의 연출만 보면 영보당처럼 극에서 퇴장하는 느낌이었지만 한참 후에 장성한 의화군과 함께 재등장하며 명성황후와 화해한다.
- 보현당 귀인 정씨: 김세아
- 엄상궁: 서미애
4. 궁관(宮官)들
- 이 내관: 황범식[40]
대전 내관으로 직급은 상선. 대원군에 의해 상선에 올랐으며 철종의 상 동안 창덕궁과 운현궁을 뛰어다니며 조정과 대원군의 뜻을 각각에 전달하는 일개고생을 하며 신임을 받았다. 대원군의 사람으로 분류됐으나 오히려 고종의 충직한 신하가 되어 외세와 기득권의 압력에 고통받는 왕실을 보며 자주 눈물을 짓는다. 임오군란 이후 친청파에 의해 대원군 세력이 축출되는데 이 과정에서 병이 있다는 이유로 강제로 물러나게 된다. 갑신정변 당시 다시 왕을 호종하게 했으며 이때 자기를 대신하던 내관이 사망한 탓에 대전 내관으로 복귀한다. 이후 을미사변 때는 왕의 곁을 지키다 난입해 온 일본 낭인의 말을 고종에게 통역해주고 아관파천 때도 왕을 모시는 등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으로 나온다.[41]
- 강 내관: 이건
중궁전의 내관으로 홍상궁과 함께 중전의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인다. 을미사변 당시 여러 내관들과 함께 궐 밖으로 나가 각국 공사관에 도움을 청하려 했으나 일본 낭인에게 공격받아 큰 부상을 당하고 목숨만 건진다. 이 내관과 함께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 유 내관[42]: 권병길[43]
임오군란 이후 흥선대원군 세력이 축출될 때 운현궁 사람으로 여겨지던 이내관을 대신하여 대전내관이 된 인물. 직급은 상온이다. 민태호의 말에 따르면 대왕대비전 사람인듯 하며, 품행과 언사가 가벼워 고종 앞에서 함부로 청군의 변명을 늘어놓다가 쓴소리를 듣기도 한다. 사실 정체는 개화파 인물로 진작부터 김옥균과 내통하면서 대왕대비전의 움직임을 개화파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동시에 대왕대비전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김옥균이 고의로 알려준 일부 정보만 대왕대비전에 전하는 치밀한 움직임도 보여준다. 갑신정변 직전에 창덕궁 누각 밑에 폭약을 심어 거사가 있는 날 정변군이 이를 터뜨리도록 도왔으며 이는 고종이 경우궁으로 피신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러나 정변 주동자들이 수구파 세력을 잔혹하게 제거해나가자 고종 앞에서 이들을 비판하고 풍문을 고하는데 이를 들은 서광범이 어전에 뛰어들어와 유내관을 끌고 나간 뒤 무자비하게 살해해버린다. 눈 앞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고종은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한 김옥균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끼며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오열한다.
- 홍 상궁(중궁전 상궁): 김보미
중궁전 상궁으로 명성황후가 입궐했을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모셨다. 임오군란 당시 오라버니인 홍계훈에게 부탁해 명성황후를 민응식에게 보내는 공을 세웠으며, 갑신정변 당시에는 기지를 발휘해 경기감사 심상훈이 준 원세개의 밀서를 명성황후에게 전달하는 공을 세운다.[44] 이후에도 계속 중궁전 상궁으로 있다가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를 지키던 중 그녀가 칼에 베이자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하다 일본 낭인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 중궁전 나인 → 상궁: 이지은
중궁전 나인이었다가 상궁으로 승격했다.
- 홍계훈: 홍일권[45]
홍 상궁의 오라버니로 무예청 소속의 별감이다. 민승호 일가 폭사사건 당시 명성황후가 부대부인 민씨에게 편지를 전하라는 명을 받으면서 첫 등장한다. 이때 명성황후가 답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하자 곧이 곧대로 그 명을 받아 편지만 전달하고 돌아와서 보고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들은 명성황후가 미련한 사람이나 본래 충성을 하는 사람은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는 법이라며 중용할 것을 시사한다.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를 업고 충주 장호원까지 피신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승승장구하게 된다. 갑신정변 당시에는 포천 현감으로 나가있다가 궁에 변란이 생기자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 명성황후를 지킨다. 정변군이 청군의 공격을 받고 무너지자 인근의 병사들을 모아 왕실을 호위했으며 고종이 청군에게 포위되자 엄포를 놓아 이들을 물러나게 한 후 왕을 업고 피신한다.[46]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자 양호토초사로 임명되어 전봉준 등 농민군 수뇌부와 협상한 끝에 전주화약을 맺어 농민군이 전주성에서 물러나게 하는 큰 공을 세운다. 이때의 공으로 훈련대와 시위대를 아우르는 훈련대장을 역임하게 됐으나 훈련대 장교들이 죄다 박영효가 심어놓은 친일파 인사들이어서 통제에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시위대를 동원하여 훈련대를 해산시키고 우범선을 비롯한 훈련대 대대장들을 체포하려고 하나 이들은 모두 달아난다. 을미사변 당시 서양인 교관 다이와 함께 궁궐을 지키고 있던 중 일부 병력을 이끌고 적을 요격하러 가다 낭인들과 대적하게 된다. 부하들이 모두 죽은 후에도 단신으로 여러명의 낭인들을 쓰러뜨렸으나 낭인들의 대장인 사사키가 쏜 권총에 맞고 결국 여러 명이 동시에 휘두른 칼에 목숨을 잃는다. 작중 가장 검술 실력이 뛰어난 인물로 특히 임오군란 때 화려한 무술 실력을 선보인다. 검 좀 쓴다는 낭인들 조차 쓰러뜨릴 수 없어 결국 총을 사용한다. 누이인 홍 상궁과 같이 고종보다는 명성황후에게 직접 충성했으며 둘 다 명성황후를 지키다 목숨을 잃는 것으로 나온다.
- 영보당 나인: 최영완[47]
- 장 상궁 나인
장 상궁을 모시는 나인.
5. 운현궁 사람들
- 안기영: 이원용
이재선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꾸미다 처형당했다.
- 신철균: 기정수[48]
전 경상우병사로 민승호 폭사사건의 배후로 지목받은 인물. 대왕대비의 지시를 받은 조영하가 직접 추국을 하여 어떻게 해서든 신철균의 입으로 배후가 대원군이었다는 증언을 얻어내려 한다. 그러나 끝끝내 원하던 발설을 듣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려는 민씨 세력과 대원군 세력간의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져, 풍양조씨와 안동김씨의 구 세력은 힘을 잃게 되고 대신 대원군의 세력인 이경하가 중앙직에 오르게 된다. 또한 이 부산물로 신철균의 배후는 따로 없으니 더 이상 심문하지 말고 형을 집행하라 하여 참수된다.
- 추월: 김혜선
흥선대원군의 소실. 본래 흥선대원군을 섬겼으나 김병기가 추월을 마음에 들어하자 흥선대원군이 보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 환국 이후 다시 흥선대원군의 소실이 되며 운현궁과 명성황후 사이를 오가는 연락책을 맡기도 한다. 아관파천 당시에는 고종이 탄 가마를 알아차릴 수 없도록 가마 중 한 대에 타고 있다가 고의로 일본군에게 발각된다. 이때 일본군을 보고 태연하게 미소를 짓는 모습이 압권.
- 옥선: 이현경
- 천희연: 정진각[49]
장순규와 함께 운현궁 하인들을 관리하는 가장 높은 인물. 장순규, 안필주가 행동대장으로 외부에서 활약한다면 이 사람은 주로 운현궁 내에서 모략을 짜는 것으로 나온다.
- 하정일: 이기열[50]
임오군란이 있기 전에 주먹패와 시비가 붙어 구타를 당해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이 때문에 천하장안 중 가장 출연분량이 적다.
- 장순규: 유종근[51]
산적 두목 같은 인상을 하고 있는 운현궁의 하인으로 부부[52]가 함께 흥선대원군 일가를 모시고 있다.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에는 김좌근의 종복을 두들겨 패거나 화공이 그린 난에 흥선대원군의 인장만 베껴넣고 석파란[53]이라고 사기를 치는 등[54]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 흥선대원군이 사대문 밖으로 물러났을 당시에도 흥선대원군을 따랐으며 흥선대원군이 청으로 납치되어 갔을 때는 이재면과 함께 따라가서 흥선대원군이 환국할 때까지 시종 노릇을 한다. 주무기는 작은 철퇴인데 싸우려고 할 때마다 싸움이 멈춰지는 바람에 사용하는 일은 많지 않다.
- 안필주: 정진화
운현궁의 하인들 중 서열이 높은 인물로 장순규와 함께 무사들을 이끌고 흥선대원군의 행동대장 역할을 맡는다. 작 중 엄청나게 고생을 하는데 임오군란 당시 군란의 배후로 지목되어 병사들에게 얻어 맞은 뒤 고문까지 당하는 바람에 한 쪽 팔을 영영 못쓰는 불구가 되고 만다. 이후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가 어렵사리 모은 돈을 가지고 목인덕, 허욱과 함께 중국으로 넘어가 친위군이 쓸 신식무기를 수입해오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막기 위해 일본이 파견한 암살자들에게 공격을 받아 허욱은 목숨을 잃고 자신은 칼을 맞고 도망치다 그만 돈 가방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후 가방을 찾으려던 목인덕이 피습을 받고 실종됐으며 자신은 만신창이가 되어 겨우 돌아왔음에도 이 때문에 흥선대원군에게 온갖 폭언을 듣고 근신하게 된다. 이후 을미사변 당시 장순규와 함께 장사들을 이끌고 흥선대원군을 지키려다 낭인이 쏜 총에 맞고 곳간에 갇혀 있었으나, 날이 밝고 나서 이재면과 이준용에 의해 다른 이들과 함께 밖으로 풀려난다. 내용과 별개로 배우가 무협영화로 유명했던 배우인지라 극 중에서도 상당히 화려한 발차기 기술을 선보인다.
- 허욱: 이경영[55]
무위영 출신으로 임오군란 당시 운현궁과 구식군 사이를 오가며 군란을 주도한 것으로 나온다. 군란 후에는 죽은 하서방을 대신해 운현궁 종복으로 있다가 목인덕, 안필주와 함께 중국 상하이에서 신식무기를 밀수입하려던 중 일본인 암살자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잃는다.
- 판돌어멈: 홍영자
여흥부대부인을 모시는 여종으로 장순규의 부인이다. 흥선대원군의 친위대이자 행동대장들인 천희연, 하정일, 장순규, 안필주를 당대에 이들의 성을 따 '천하장안(千河張安)'이라 불렀다. 드라마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지시하지 않은 온갖 의혹사건(민승호 암살 사건, 임오군란 등)에 이들이 나선 것으로 묘사된다.
6. 안동 김씨
- 김좌근: 송재호
역사대로 안동 김씨의 수장으로 흥선군이 권세를 잡자 안동 김씨가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굴욕을 감수한다. 하지만 임종을 맞는 그 순간까지 흥선대원군에게 엿을 먹였다가 그에게 "안동 김가 네놈들이 그동안 한 일이 무엇이냐, 죽어라 이놈!" 소리를 들으며 능욕당하다가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나름의 정성이 통한 모양인지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들의 힘을 빼놓는 선에서 멈추었고 안동 김씨들을 멸문시키지는 않았다.
- 김병학: 박영지
안동 김씨 중에서 흥선대원군에게 가장 우호적인 인물. 단순히 우호적인 인물에서 나아가, 흥선대원군을 이해하고 항상 그의 편에 서는 거의 유일한 지기로 나온다. 대원군을 부를 때 항상 '(대원위)대감', '합하'로 높여 부르면서 존대하다가, 최후를 맞기 직전 흥선대원군이 문병을 왔을 때 '이 사람 석파(흥선대원군의 호)'라며 말을 놓는다.
- 김병기: 정성모
김좌근의 양자. 흥선대원군의 시대가 열린 후 그를 초대한 연회에서 흥선대원군이 그를 엿먹일 생각으로 먹던 음식물을 토하자, 흥선대원군 독살 시도 누명을 피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이 토한 음식물을 비굴하게 주워먹었다는 야사를 재현했다. 게다가 말년에는 민겸호 등 민씨 척신들에게 남은 안동 김씨 재산을 탈탈 털렸다. 원래는 김병학보다 3살이 많은 인물이지만, 김병학을 형님이라 부른다.
- 김병국: 박철호[56]
김병학과 김병기의 뒤를 이어 안동 김씨가의 수장격인 인물로 나온다. 비중은 조정 신하 A정도. 안동 김씨답게 대원군이 하는 일마다 트집을 잡는다. 임오군란 이후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의 국상을 선포하자 이에 반발하며 상복을 입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으나 흥선대원군의 종복들인 천하장안에게 관모와 관복이 벗겨지는 굴욕을 당했다.[57]
7. 여흥 민씨
- 민치록: 이도련[58]
명성황후의 아버지. 작 중에는 이미 고인으로 사망 당시에는 관을 짤 돈도 없어서 감고당 이씨가 이집저집을 구걸을 했다고 나온다.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가 궁 밖으로 피신하여 민유중[59]의 묘에 들렀을 때,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등장했다.
- 감고당 한산 이씨(명성황후의 어머니): 선우은숙
명성황후의 친어머니며 민승호의 양어머니.[60] 민승호 암살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만다. 감고당의 죽음은 이후 명성황후가 흑화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 민승호: 김효원[61]
여흥부대부인의 남동생으로, 명성황후와는 원래 족보 상 12촌, 실제 혈통 상 20촌이었다. 그러나 민치록의 양자로 들어오면서 민자영(명성황후)의 오빠가 되었다. 고종의 친정을 계기로 병조판서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폭탄테러로 끔살당했다.
- 민겸호: 김성환[62]
여흥부대부인과 민승호의 친동생으로, 민승호가 폭살당한 이후 중궁전의 수족 역할을 도맡았다. 안동 김씨가의 세력이 약해지자 김병기를 찾아가 삥을 뜯고 능욕을 하기도 했다. 매우 부패한 인물로 선혜청 당상 당시 국고를 제멋대로 유용하여 세자 책봉식 등에 써버리는데 이는 이는 후에 임오군란이 터지는 결정적인 사건이 된다. 군란이 터졌을 당시 궐 안은 안전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치다가 구식 군인들이 창덕궁 안까지 쳐들어오자 내시로 변장하고[63] 궁궐을 탈출하려고 하였으나 구식 군인들에게 걸려 끔살당했다. 극 초반까지는 누이인 부대부인 민씨가 있던 운현궁과 비교적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64] 민승호가 폭사한 이후 완전히 척을 지게 된다. 쥐어짜는 듯한 특유의 말투를 가지고 있는데 왕을 알현할 때는 갑자기 멀쩡해진다.
- 민태호: 현석
세자빈과, 죽은 민승호의 양자로서 요직을 두루거친 민영익의 생부이다. 명성황후와는 12촌 지간. 자신의 딸이 세자빈으로 책봉받아 왕실과 사돈이 되자 덩달아 좌찬성에 오르고 권력의 중심에 다가선다. 임오군란이 터지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궁궐로 들어왔다가 밖으로 나가려는 민겸호와 길이 엇갈리고 이것이 두 사람의 생사를 가른다. 청군의 개입으로 군란이 진압되고 대원군이 청나라로 압송되자 수구세력의 거두로 올라서며, 소심하던 그간의 모습과 달리 명성황후 앞에서도 고집을 꺾지 않는 부패한 인물로 전락한다. 결국 갑신정변 당시 개화파의 참살 대상 0순위로 지목되어 경우궁에서 조영하와 함께 끔살당한다. 민영익이 보빙사로 미국과 유럽에 들렀을 때 입수한 신식총기 수백 정을 선혜청 창고에 묵혀 죄다 녹슬게 만들었는데, 이는 후에 개화파 군인들이 총기 정비만 하다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하는 계기가 된다.
- 민규호: 김병세
민태호의 친동생. 민씨 일족 중에는 그나마 개념인이다. 부정부패를 일삼던 민승호, 민태호, 민겸호와는 달리 매우 강직하여 조정에서 모난 돌 취급을 받는다. 민승호 일가 폭사사건의 배후로 흥선대원군이 지목되자 운현궁과 완전히 등을 돌린다.
- 민영익: 김광영
민태호의 친아들이자 민승호의 양자. 별기군 교관(통리기무아문 당상)으로 첫 등장하는데 서양식 제복 차림으로 나오며,[65] 홍영식과의 대화를 통해 수구파는 물론 민씨 세력에게도 불만을 가진 개화파의 모습으로 나온다. 임오군란 후 보빙사 일행의 대표인 전권대사로서 미국, 유럽 등을 외유하다가 갑신정변 직전 중절모에 코트를 걸친 양복 차림으로 인천 제물포항을 통해 귀국한다. 이때 신식소총과 농기구를 가득 싣고 왔으며 김옥균과의 대화에서는 미국과 영국을 통째로 뜯어오고 싶었다며 강력한 개혁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아버지인 민태호를 설득하지 못해 신식무기를 개화파에게 전달하지 못한데다, 개화파가 수구세력을 모두 죽이고 정부를 개편하는 정변을 계획하자 이에 강하게 반대하며 개화파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다.[66] 결국 자신마저 개화파의 제거대상에 이름을 올리게 되고 정변 시작과 함께 우정국에서 연회에서 피습당해 사경을 헤맨다. 다행히 목인덕이 그를 피신시키고 알렌을 데리고 와 치료해준 덕에 목숨은 건진다. 후에 중국으로 넘어가 장사를 하여 큰 돈을 벌고 조선 왕실과 운현궁이 계획한 신식무기 밀수를 도왔으나 일본의 방해로 계획이 실패하자 잠적한다. 갑신정변 직전에 명성황후에게서 '개혁을 주도하는 자가 김옥균이 아닌 민영익이길 바랬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끝내 이야기의 중심에 서지는 못했다.
- 민응식: 김영기
명성황후의 14촌 손자 뻘 친척.[67] 명성황후가 임오군란 당시 구식군대에게 쫓기자 자신의 거처가 있는 충주 장호원으로 피신시킨다. 이때 신임을 얻어 판서자리에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다가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실각한다.
민씨 일가는 대체로 최후가 좋지 않다. 민승호는 폭탄 테러 로 끔살, 민겸호는 임오군란 때 구식 군인들에게 끔살, 민태호는 갑신정변 때 개화파에게 끔살, 민규호는 지병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 민영익도 갑신정변 때 개화파에게 칼을 맞고 죽을 뻔했지만, 알렌에 의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8. 신하들
- 조영하: 최상훈[68]
신정왕후의 조카로 드라마에서는 풍양 조씨의 수장격인 인물로 나온다. 대왕대비의 충직한 심복 노릇을 하며 대원군과 대립각을 세운다. 명성황후와의 첫 만남 당시에는 성균관 대사성이었으며 이후 예조판서, 지중추부사까지 오른다. 그러나 갑신정변 당시, 개화파에게 친청파로 찍혀 제거대상에 오르게 된다. 정변 첫날 밤, 궐 밖에서 민태호와 만나 고종이 있는 경우궁으로 갈 것인지 돌아 갈 것인지 고민하다가 대왕대비의 꾸지람을 떠올리고 고종을 보필하기 위해 경우궁으로 갔으나 기다리던 개화파에게 참살당한다.[69]
- 박규수: 허현호[70]
개화파의 거두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친흥선대원군파이기도 하다. 다만 개화파라는 점 때문에 흥선대원군 섭정 중에는 중용되지 않다가[71], 흥선대원군이 실각되고 나서 명성황후에 의해 우의정에 오른다.
- 정기회: 양영준
- 최익현: 이대로[72]
동부승지로 첫 등장해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흥선대원군을 실각시킨 인물이다. 흥선대원군이 퇴진한 이후 개항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다 쫓겨났으며 을미의병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흥선대원군과 화해하고 다시 나라를 위해 움직인다.
- 홍순목: 윤덕용
명색이 영의정, 영돈녕부사 등을 지낸 중신이지만 정권교체의 부산물 정도로 취급된다. 친대원군파이긴 하지만 고종, 대원군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우유부단한 정승으로 나온다. 다만 이재선 역모사건 당시에는 궐 밖에서 죄를 빌던 대원군을 보자 아비와 아들의 관계가 이럴수는 없다며 부디 궐문을 열 것을 홀로 간언했다. 그의 자식이 갑신정변의 주역 중 하나인 홍영식으로 개화파의 행동을 못미더워 하긴하나 그 의기 자체는 높게 보고 있었다.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궐에 들어와 고종에게 인사를 올린 후 홍영식에게 어떤 상황이 와도 죽을 자리를 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로인해 홍영식은 끝까지 고종을 수행했고 결국 청군에게 목숨을 잃고 만다. 이후 갑신정변의 여파로 개화파의 친족 상당수가 역모죄로 처벌받자 스스로를 '역적의 아버지'라 자책하며 며느리와 함께 음독 자살한다.
- 이완용: 강인기
드라마가 다루는 시기상 친러파로 나온다. 그래서 이후 매국노 행적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보정을 받는다. 이완용/생애에 나오는 것처럼 을미사변 이전까지의 행적만 놓고 보면 이후 친일 매국노가 될 것임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사건이 없다. 만약 친일파로 묘사되었다면 오히려 그게 고증오류가 되었을 것이다.
- 이경하: 김주영
대왕대비 조씨, 흥선대원군을 거쳐 명성황후·민씨척족으로 줄을 갈아타며 살아남는 부패하고 박쥐 같은 인물로 나온다. 판의금부사, 금위대장 등의 직책을 주로 맡으며[73] 흥인군과 콤비로 붙어다닌다. 임오군란때는 분노한 구식 군인들에게 돌을 맞아 머리가 깨지는 굴욕을 당했다.
- 양헌수: 김경하
병인양요 당시 정족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명장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답없는 조정 중신 중 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임오군란 때는 궁궐 수비대 지휘관으로 창덕궁의 방어를 맡았으나 실패했고 갑신정변 때도 그렇게 큰 활약을 하지 못한다.
- 박영보: 이승찬
신미양요 당시 경기감사로 미국 군함의 출몰을 조정에 보고했다.
- 신응조: 김인태[77]
조정의 원로 대신이다. 임오군란으로 권력을 다시 잡은 대원군이 그를 초빙해 우의정에 앉혔다. 이후 조정 대신의 일원으로 간간히 등장한다. 임오군란 당시 이미 나이 80을 바라보고 있어서 나이를 이유로 들어 관직을 사양했으나 대원군의 강한 요청으로 관직을 지키게 된다.노인학대[78] 갑신정변 당시 도움을 청하는 박영효에게 급진적인 개혁에 반대를 표하며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 꾸짖는다.
- 신헌: 오영갑
강화도 조약 체결 당시 조선 측 대표였다.
- 김보현: 맹호림
전 선혜청 당상으로 임오군란 때 살해당했다.
- 이용익: 전인택[79]
임오군란 당시 충주 장호원에 피신한 명성황후를 보호하는 동시에 서울과 충주를 걸어서(!) 하루 사이에 오가며 왕실과 민씨 일가 사이의 연락책으로 대활약한다. 이때의 공로로 민응식과 함께 조정에 출사하게 된다.
- 김윤식: 장기용
흥선대원군이 청국에 잡혀간 이후 청국의 의전을 담당하는 인물로 본격 등장한다. 김홍집 내각의 일원으로 홍범 14조 등 여러 개혁안을 마련하는데 일조했다. 이후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김홍집에게 도망칠것을 권유하였으나, 그가 듣지 않자 혼자 살려고 도망치는 것으로 등장 끝.
- 심상훈: 윤관용
- 어윤중: 김형일
실제 역사에서는 개화기의 주요인물이었으나 극 중에서는 갑신정변 당시 원세개를 방문하는 것으로 잠시 등장했을 뿐 이후로는 출연 자체가 없다. 특히 어윤중이라는 캐릭터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춘생문 사건이 통째로 잘려나가버리고 아관파천 때는 수배령이 내려졌는데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아서 없느니만 못한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 김홍집: 강태기[80]
청일전쟁 이후 박영효와 함께 공동 내각을 구성하게 되나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는 신세가 된다. 나라를 생각하는 충직한 대신이기는 하나 우유부단한 면모를 많이 보인다. 아관파천 이후 명성황후의 빈소에서 자신의 죄를 고하며 통곡하다 고종의 명을 받고 온 경무청 경관들에게 붙잡혀 죽었다.[81]
- 심순택: 이신재
후반부에 자주 등장하는 원로대신으로 삼정승을 거쳐 의정대신을 지낸 거물급 정치인이다.
- 윤웅렬: 강만희
윤치호의 아버지로 갑신정변 당시 함경남도 병사로서 북청군이라는 신식 훈련을 받은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갑신정변 직전 김옥균의 계획에 따라 도성으로 불려와 왕 앞에서 군대를 사열했으나 이렇다 할 명이 내려지지 않아 북으로 철군한다. 정변을 얼마 앞두고 윤치호가 그를 간곡히 설득하나 왜 개화파가 실패할 것인지를 여섯 가지 이유[82]를 들며 거절한다. 정변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자식을 비롯한 개화파의 준동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귀양을 가면서 퇴장한다. 이후 배우는 을미사변을 수습하러 온 미우라의 후임 공사 고무라 주타로 역으로 재출연 (1인 2역).
- 윤태준: 조재훈[83]
후영사. 갑신정변 때 살해당한다.
- 이조연: 지성환
좌영사. 갑신정변 때 살해당한다.
- 이경직: 김준모
을미사변 당시 궁내부 대신. 일본 낭인에게 온몸으로 저항하다 팔이 잘리며 살해당한다.
9. 대신 부인
- 김병시 부인: 권기선
- 심순택 부인: 서권순
10. 임오군란
- 김장손: 김진태
- 김춘영: 이재연
- 유복만: 김대환
- 유춘만: 김기복
- 선혜청 관리: 김태형
11. 개화파(갑신정변 주도세력)
- 김옥균: 이병욱[85]
급진개화파의 우두머리격 인물로 실제 역사와 달리 정변이전부터 이조참판의 자리에 있었다. 개화파 관료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실제 김옥균처럼 행동보다 말이 앞서고 실속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첫 등장은 보빙사로서 해외를 순방하고 돌아온 민영익과 마주하는 장면으로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은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는 젊은 개화파 동지로 묘사된다. 그러나 개화파가 본격적으로 개혁을 시도하려는 과정에서 수구파인 민태호가 사사건건 훼방을 놓자 결국 민태호를 제거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이 문제로 민태호의 아들이었던 민영익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결국 민태호와 민영익을 모두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정변이 일어나자 우정총국에서 민영익을 습격하고 자신은 친군영의 병사들과 함께 고종을 보위하려 창덕궁으로 향한다. 이후 경우궁으로 어가를 옮겨가 일본군과 함께 수비를 다진 후, 민태호, 조영하를 비롯한 수구파 인물들을 하나 둘 제거해 나간다. 그러나 개화파의 과도한 숙청 소식에 고종이 등을 돌리면서 정변이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다음날 아침 김옥균은 고종과의 독대를 통해 진솔한 대화를 나눈 뒤 극적으로 화해를 하게 된다. 그러나 민씨 일가를 여러 대신들 특히 민영익을 잃은 명성황후가 일본군을 자극해 창덕궁으로 다시 환궁할 것을 명하고 이에 개화파는 어쩔 수 없이 창덕궁으로 돌아온다. 가뜩이나 병력이 부족한데다 넓은 창덕궁을 수비할 준비가 전혀되어 있지 않던 개화파는 결국 청군에게 몰살을 당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옥균은 고종을 따를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 고민하다 떠나는 고종을 뒤로 한 채,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변장한 후 일본으로 도피한다. 이후 김옥균은 실제 역사처럼 홍종우에게 암살당하는데, 고종은 이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오며 도리어 화를 내기까지 한다.
- 박영효: 차철순
철종의 부마로서 정변 이전에는 광주 유수로 내려가 신식훈련을 받은 군대를 조직하였다가 후에 중앙군인 친군영에 편입시켰다.[86] 나름 왕실의 부마라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명성황후가 총애하는 민영익을 제거하는 것에 반대하거나, 정변 준비 과정이 너무 성급하지 않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과의 약속이 한시적이라는 김옥균과, 다른 동지들의 계속되는 주장에 끝내 거사를 동의하고 만다. 정변이 일어나자 창덕궁에서 고종을 알현한 박영효는 곧장 일본 공사관으로 달려가 망설이는 다케조에를 추궁하여 일본군을 동원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거사 3일째에 창덕궁에서 일본군과 친군영의 병사들이 청군에게 몰살당하자 김옥균 등과 함께 일본 연락선에 몸을 싣고 피신한다.[87] 이후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자살하려는 김옥균을 만류하고 언젠가 조선으로 돌아갈 것을 피력한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도움으로 귀국해 김홍집과 친일성향의 공동정부를 설립하고 고종과 사사건건 대립하나 러시아가 개입한 이후 다시 쫓겨난다.
- 홍영식: 이원희
급진개화파의 큰 형님격 인물로, 성미가 급한 다른 멤버들과 달리 온화한 성품으로 척을 지는 사람이 없다.[88] 미국의 푸트 공사를 만나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며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할 수 없이 일본에게 기대어 정변을 일으킨다. 당시 우정국 총판이었던 덕에 우정국 개회식을 핑계로 민영익을 비롯한 5군영의 대장들을 우정국에 모아둘 수 있었다. 이후 정변 과정에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나가는 것을 크게 우려했으나 결국 다른 개화파들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정변 다음날 좌의정에 재수되었으며 이때 궐로 들어온 아버지 홍순목에게서 죽을 자리를 피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다. 이때의 영향인지 정변 최후까지 고종을 보위하려다 청군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 서광범: 박용진
개화파 인물로 정변을 통해 수구파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격파. 정변당시에는 관복을 입은 채 청군과 직접 싸우는 등 돌격대장 노릇을 한다. 특히 동지였던 유내관이 자신들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가히 광기가 느껴진다.
- 서재필: 홍정욱
갑신정변을 앞두고 도성의 장사패들을 모아놓고 있다가 정변에 동원하였다. 당시 서양식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신식군대 훈련소인 조련국의 사관장이었던 것을 반영한 듯 보인다. 20세의 혈기 넘치는 인물을 묘사하려 했는 지 매우 급한 성미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고종 앞에서 자결하겠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대왕대비 앞에서 칼을 뽑으려는 등 과격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후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청군을 막지 못하고 김옥균과 함께 일본으로 도주한다.
- 윤치호: 이기철
함경남도 병사 윤웅렬의 아들로 일찍이 미국을 유학하여 어느 정도 영어를 할줄 아는 것으로 나온다. 이 덕에 홍영식과 푸트, 갑신정변 당시 고종과 각국 공사 사이에서 통역 역할을 맡기도 한다. 아버지 윤웅렬이 훈련시킨 병사들을 정변에 동원하려 했으나 김옥균을 믿을 수 없었던 윤웅렬이 돌아서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정변이 실패하자 김옥균 등과 함께 일본으로 도주한다. 정변 기간 동안 서양식 군복을 입고 활동한 것으로 보아 서재필과 마찬가지로 조련국의 장교였던 것으로 보인다.
- 신복모: 한정국
젊은 개화파 인물들과 달리 40세의 무관으로 정변 참여 이유는 불확실하다. 정변 직전 자신의 생일잔치를 이용해 동료, 부하 병사들을 모아놓고 거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이후 정변이 시작되자 개화파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수구 대신들을 척살한다. 정변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도 김옥균 일당과 함께 도망가지 않고 고종을 보필하다가 청군의 손에 살해당한다.
12. 동학농민운동
- 동학군[90]: 이계영
13. 을미사변 당시 조선군
- 우범선: 오성열
훈련대 대대장. 을미사변에 협조했고, 이후 일본 공사관에 가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사정해 일본으로 망명했다. 여담으로 망명해서 일본인과 결혼해 낳은 아들이 바로 우장춘 박사이다.
- 현흥택: 김경응
우범선의 지휘권을 박탈한다는 훈련대 연대장의 지시를 우범선에게 전달했다.
14. 기타
- 민태호 집 하인: 김건호
15. 외국인
15.1. 일본
- 이토 히로부미: 윤주상[92]
실제 인물과의 외모 싱크로율이 상당하다. 등장 전까지만 해도 온건파, 평화주의자에 겁쟁이, 열강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라는 식으로 일본 등장인물들에게 비난받지만 후반부에 등장한 본 모습은 조선과 대륙 침략의 최대 흑막으로 그려진다. 삼화주의를 주장하는 김옥균을 조선과 대륙 점령에의 눈엣가시로 여기는 말을 하며 김옥균의 암살에도 관여된 것으로 묘사된다.[93]
- 데라지마 무네노리: 이치우
- 미우라 고로: 임혁
퇴역장성으로 이노우에가 진행하는 대 조선 정책이 삼국간섭으로 사실상 실패하자 극단적인 수를 쓰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가 직접 투입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쪽 나름대로 일본정부에 절대충성하며 이를 넘어서 광기까지 보이는 인물로, 배우 보정을 받아 이상하게 강직해보인다. 기존의 공사들과 달리 공격적인 정책을 사용하는데 주요인물의 독살 등을 주도하며 결과적으로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한다. 그러나 을미사변 이후 국제 정세가 일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짓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을미사변에 대한 조사도 시늉만하고 관련자 처벌도 솜방망이로 한 끝에 명성황후의 장례가 치러지고 흥선대원군이 사망할 무렵에는 풀려나게 된다.
- 하나부사 요시모토: 서상익
임오군란 당시 일본공사로 있으며 민겸호를 통해 조선에 차관 제공을 타진한다. 이후 임오군란 발발 당시 공사관을 지키려 했으나, 수적 불리에 기밀문서를 소각하며 철수를 준비한다. 그리고 운현궁과 구식군대에 의해 공사관 근처 가옥들에 화재가 나자 급히 거류민과 일본군을 이끌고 도주한다.
- 이노우에 가오루: 박근형[94]
드라마 속에서는 처음 등장할 때 그야말로 최대 흑막처럼 묘사되고 조선보다는 대륙 정복에 더 관심을 두고 사이고 다카모리와 구로다 기요타카 등의 무인들이 싸울 줄만 알지 외교에 있어서는 무식해서 전투에만 이용하고 엘리트인 자신이 그 과실을 따면 된다는 식의 말을 하는 등(그 장면에서 구로다가 그 말을 다 듣고 있었다.(...)) 폭풍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야심의 실현을 위해 명성황후에게 뇌물을 바치며 협력하게 시도하나 명성황후가 그 뇌물을 애국과 개화를 위한 자금으로 써서 결과적으로는 빵셔틀에 호구가 되고 이노우에가 삽질만 하고 있다고 오카모토가 쓴 투서와 이토의 분노에 의해 미우라에게 일본 공사 자리를 넘겨준다고 묘사된다.
- 오카모토 류노스케: 김병기
을미사변에 가담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본래는 일본 공사관 주재 무관인데 이노우에와 함께 조선에 부임했을 당시 사실상 공사 역할을 한다. 첫 출연은 강화도 조약 때 일본 육군 대위로 잠깐 등장했다가, 을미사변을 앞둔 후반부에 자주 등장한다. 일본 인물 중 미우라와 함께 가장 강경파로 묘사되며, 대원군에게 접근해 그의 환심을 사며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대원군을 허수아비 섭정으로 내세워 조선 침략을 도모하기 위해 뛰어다닌다. 결국 을미사변 때 입궐을 거부하는 대원군을 자루포대에 씌워 납치했다. 자신의 상관들인 이노우에나 미우라의 조선을 다루는 방식을 못마땅해하며 둘을 실각시키고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해 암투한다. 특히 이노우에 가오루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력을 자신이 차지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오며 이노우에의 양녀인 미치코마저 차지하려고 든다. 거의 모든 일본 인물들이 그렇지만 오카모토는 이중에서도 특히 간사한 인물로 나온다.
- 다케조에 신이치로: 김상순[95]
갑신정변의 일본 측 주역으로 배우의 영향인지 다른 일본 인물들에 비해 인상이 나쁘지 않고 허당끼가 있어보인다. 첫 등장은 민영익이 고종에게 귀국인사를 드릴 때, 차관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에게 문책당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이후 김옥균과 정변을 계획하는데 처음에는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이다가 일본 외무성에서 온 훈령에 '조선의 독립에 지원을 아끼지 말라'는 말이 있어서 본격적으로 정변에 가담하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이후 일본 외무성에서 또 하나의 훈령을 배에 실어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받기 전까지 움직일 수 없다며 다시 소극적으로 변해 버린다. 결국 정변 주도자들이 자기들 손으로 난을 먼저 일으킨 후 다케조에에게 고종이 보낸 밀서를 보이면서 당장 경우궁으로 와 고종을 호위하라고 요구하자 욕설을 퍼부으며 결국 자기 의지에 따라 일본군을 출동시킨다. 그러나 다음날 날아온 훈령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기존의 전략을 바꿔 일본군은 어떤 일이 있어도 조선 내정에 간섭하지말라는 새로운 방침을 내놓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에 기겁한 다케조에는 자신의 성급함이 일을 그르쳤다며 일본군을 철수시키려 하지만 김옥균 등의 강경한 요구로 하루를 더 궁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철수를 눈 앞에 두고 청군이 밀고 들어와 정변군과 일본군이 큰 피해를 입고 목숨만 건져서 정변 주역들과 함께 인천으로 피신한 뒤 훈령을 싣고 왔던 치토 세마루호를 타고 일본으로 도주한다. 이후 처리협상을 위해 잠시 돌아왔다가 그대로 퇴장한다. 중요한 말을 할때마다 기립을 하면서 말을 하는 특징이 있다. 배우 특유의 찰진 발음으로 내지르는이런 얼어죽을빠가야로는 덤.
- 구로다 기요타카, 치토 세마루호 선장: 이일웅
1인 2역이다. 구로다는 강화도 조약 당시 일본 군부 인물이다. 치토 세마루호 선장은 갑신정변 당시 일본 공사와 정변 주역들이 일본으로 피신하기 위해 탑승했던 배의 선장이다.
- 시바 시로[96]: 이도련[97]
일본의 정치인이자 문인으로 을미사변 직전 여러 낭인들과 조선으로 넘어와 미우라 공사와 함께 을미사변을 계획한다. 을미사변 당시에는 사사키와 함께 낭인들과 자객들을 지휘했으며 미국인 시위대 장교 다이를 보고 죽이지 말 것을 명령한다. 명성황후의 시신을 화장할 때 불사조가 날아가는 환영을 보고 시를 지으려 하나, 시상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혼잣말로 "馬鹿野郎(멍청이)"를 연발하며 자책한다. 이후 일본에 의해 본국으로 소환된다.
- 무쓰 무네미쓰: 강태기
- 미치코: 김성령[98]
이노우에의 양녀로 명성황후와 일본 사이에서 이중간첩 역할을 하는 일본 여성. 본 임무는 조선 왕실의 정보를 캐내어 이노우에게 알리는 역할이었으나 반대로 일본 측의 정보를 명성황후에게 알려주거나 궁내에서 파티를 열어 외국의 유명인사들을 초청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드라마 상에서 상궁들이 "요시무라 부인"이라고 부른다. 실록 등에는 나오지 않는 가상 인물이나, 드라마 상의 여러 내용으로 볼 때 "매천야록" 및 "대한계년사" 등에 등장하는 명성황후의 양녀 "고무라"를 모티브로 한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고무라"는 "매천야록" 등에서 명성황후 사후 시신 확인을 했다고 전해지며, 드라마 상에서도 미치코가 명성황후의 사진을 찍는 등 을미사변에 간접적으로 개입했으나 명성황후의 시신을 확인한 뒤 죄책감을 못이기고 자살한다.
- 사이온지 긴모치: 김하균
일본의 외무상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참모격으로 나온다. 조선의 정세를 이토 히로부미에게 전달하는 모습만 나온다. 주로 조선에 대한 이토 히로부미의 계획을 묻는 역할.
- 요시무라: 이두섭
일본공사관 서기관.
- 고무라 주타로: 강만희[99]
을미사변 이후 사건 수습을 위해 일본에서 파견된 인물로 미우라를 대신하여 임시로 일본 공사 역할을 맡게 된다. 고종의 머리를 자르고 단발령을 강제로 시행하게 했으며 아관파천 당시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행을 막지 못하고 황급히 본국에 연락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 시마무라 히사시: 박유승
다케조에 공사의 오른팔로 갑신정변 당시 직책은 서기관. 하나부사 공사임기까지는 군복을 입고 있었으나 다케조에 시절부터는 콧수염을 기르고 연미복 차림으로 나오는데 두 인물이 다른 배역인지 시마무라 한 사람인지는 불분명하다. 갑신정변 당시 우정국 초청행사에 다케조에 대신 참석했으며 정변 기간 내내 다케조에를 수행한다.
- 사사키 마사유키: 정의갑[100]
일본의 낭인으로 이노우에와 오카모토의 수행원으로 나온다. 낭인답게 항상 칼을 차고 다니며 일본이 비공식적으로 행하는 대부분의 사건에 행동대장으로 나선다. 을미사변 당시 홍계훈을 총으로 쏴 쓰러뜨렸으며 명성황후를 직접 살해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일갈을 들은 이후부터 영 상태가 좋지 않더니 살해한 직후 밖으로 나와 자기가 왕비를 죽였다고 소리치며 미친듯이 칼을 휘두르다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데, 연출만 보면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고 해도 좋을 수준이나 다음 화에서 멀쩡히 살아서 나온다. 그것도 양복차림으로. 실제 역사에서는 한성신보의 기자였으며, 주필인 구니토모 시게아키를 따라 을미사변에 참여했다. 단짝처럼 함께 다니는 히라야마 이와히코 역시 기자였다.
- 히라야마 이와히코: 허동훈
일본의 낭인으로 이노우에와 오카모토의 수행원으로 나온다. 낭인답게 항상 칼을 차고 다니며 일본이 비공식적으로 행하는 대부분의 사건에 행동대장으로 나선다. 을미사변 당시 홍계훈과 혈전을 벌이다 얼굴을 베였으며 칼에 맞아 피를 흘리는 명성황후룰 감싸안으려는 홍상궁의 등을 베어 죽인다
- 호리모토 레이조: 조정국
별기군을 훈련시키기 위해 파견된 일본군 교관으로 임오군란 당시 별기군을 훈련시키던 하도감을 지키고 있었다. 봉기한 구식군대가 하도감으로 들이닥치자 저항하려 했으며 병사 한명의 총을 빼앗아 구식군인 1명을 쏜 뒤 곧바로 유춘만의 칼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 장교: 양재원
15.2. 청나라
- 원세개: 박진성
첫 등장은 임오군란 이후로 마건창과 오장경이 연경으로 돌아가자 조선의 실권자로 자리잡는다. 갑신정변 당시 정변군을 격파한 후 실제 역사처럼 고종에게 온갖 무례한 태도를 일삼고 심지어 퇴위까지 요구한다. 고종의 퇴위를 요구한 것에 대해 따지는 신정왕후에게 대놓고 망령이 드셨다고 드립쳐서 고혈압으로 세상을 뜨게 만드는데 신정왕후 조씨의 문상을 와서까지 웃음을 터뜨리며 대원군에게 "이제 방해꾼인 대왕대비가 없어졌으니 좋으시겠다"고 드립치다가, 분노한 대원군에게 '예끼 이 떼놈아!'라며 뺨을 맞았다.[101] 청일전쟁 직전 북양함대가 "천하무적이니 걱정 말라"고 드립치다가 막상 전쟁이 터지고 경복궁이 일본군에게 점령되자 도망갔다.
- 이홍장: 남일우[102]
마건충, 원세개 등을 파견하여 조선을 막후에서 조종하려든다. 대원군을 납치해온 뒤 몇 차례 만나기도 했다. 등장이 잦은 임오군란~갑신정변 당시 청이 계속 전쟁 중이어서 그런지 주로 막사에 있는 모습으로 출연한다.
- 마건충: 박용식
임오군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3천 명의 청군과 함께 조선으로 온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과 청의 새로운 조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흥선대원군 납치를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 오장경: 박경득
- 오조유: 문회원
갑신정변 때 원세개와 같이 조선에 왔는데 원세개의 청군이 일본군과 교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을 자극하지 말라고 한다.
15.3. 독일
- 목인덕(묄렌도르프)[104]: 이참[105][106]
독일인으로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가 조선에 파견한 외교, 재정 고문으로 통리아문의 협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조정 인물들에게 목협판으로 불린다. 조선과 러시아의 조약 체결을 주도한 인물로 갑신정변 당시 큰 부상을 당한 민영익을 자기 집으로 피신시킨 뒤 의사이자 선교사인 알렌을 불러 치료하게 한다. 이후 원세개에 의해 고문 자리에서 물러나나 이후로도 계속 조선에 남아 명성황후를 도와 비자금을 가지고 신식무기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무기를 거래하던 도중 일본 암살자들의 손에 운현궁 종복인 허욱이 사망하고 안필주가 돈가방을 버리고 도주하자 돈가방을 찾겠다고 거리로 나섰다가 일본인에게 피습당해 쓰러지면서 퇴장한다. 일단은 칼이 아닌 권총을 쥔 손에 맞아 쓰러져서 생사는 불명인데 이때 죽었거나 일본인 손에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조선을 사랑합니다'는 말을 원세개에게 직접적으로 날리는 장면이 있다.
- 손탁(마리 앙투아네트 존타크): 김진아[107]
프랑스계 독일인으로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처제로 나온다.[108] 일본의 미치코처럼 각국 유명인사들을 명성황후에게 소개하거나 서구 문물을 소개하는 등 고종 부부에게 여러 도움을 준다. 도성 내에 정동구락부와 손탁호텔을 세워 서양 인사들을 머물게 하면서 사실상 외교관 역할을 했으며 특히 목인덕과 함께 조선 - 러시아간의 협력을 이끌어 내고 아관파천 당시 두 국가 사이의 의견을 전달하는 등 큰 일을 한다. 배우인 김진아는 독특하게도 한국인임에도 순수 서양인을 연기했는데, 실제로 그녀의 남편은 미국인이고 두 사람은 하와이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다고 한다.
15.4. 러시아
-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
러시아 공사. 드라마 내에서는 '웨베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109] 목인덕의 주선으로 조선과 비밀리에 밀약을 맺는다. 이후 주로 정동구락부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알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을미사변 당시 러시아군 교관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조선 왕실의 요청없이 궁궐로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과 조선의 왕비가 사망해야 러시아 입장에서도 조선의 주도권을 쥐기 쉬워진다는 계획에 따라 사실상 을미사변을 방관한다. 이후 일본공사관에서 미우라를 만나 "다른 국가들 모두가 일본의 을미사변 개입을 안다. 책임을 지라."는 말을 한 뒤 떠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 가까운 아관파천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목인덕을 제외한 서양인 중 가장 오랫동안 등장한다.
- 오이기니어 베베르
베베르 공사의 부인. 등장할 땐 주로 손탁과 함께 나온다.
-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
러시아군 장교. 다이와 마찬가지로 시위대의 교관을 맡고 있었으며 을미사변 당시 베베르에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궁궐을 빠져나온다.
실제 역사에서는 건축기사였으며, 덕수궁 중명전과 독립문 등 이때 당시 지어진 수많은 서양식 건축물들이 그의 작품이다.
15.5. 미국
- 호러스 뉴턴 앨런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이자 의사로, 갑신정변 당시 개화파에게 습격을 당해 크게 다친 민영익을 살리기 위해 목인덕이 데려오면서 처음 등장한다. 이후 "민영익의 상처가 깊으나,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목인덕에게 전하며 "민영익이 왕족이냐"고 묻는다. 이에 목인덕이 "왕족은 아니지만 그만큼 귀한 인물이니, 조선 왕실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답한다. 이후 쭉 출연이 없다가 을미사변 이후 궐 밖에서 베베르와 만나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으로 잠시 등장하는데, 이때는 미국 공사인 것으로 보인다.
- 프랜시스 앤 앨런
호러스 뉴턴 앨런의 부인. 건청궁 연회장에서 광혜원 운영비 지원을 부탁했다. 이에 참석한 고관대작의 부인들이 패물을 내놓았다.
- 존 루시어스 푸트
갑신정변 당시 미국 공사. 원래 개화파가 정변을 일으키면 협력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미국이 동아시아에 대한 정책을 바꾸면서 개화파에게 개인적인 도움은 줄 수 있으나 국가적인 도움은 줄 수 없다며 사실상 정변 협력을 거부한다. 이에 실망하고 돌아가려는 홍영식에게 "개화파의 목적은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수구파를 처단하는 것입니까?"라고 묻고, "조선이 독립을 원한다면, 왜 개화파와 수구파가 손을 잡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묻기도 한다. 이후 정변이 일어나자 김옥균의 계획에 따라 영국, 독일 공사와 함께 경우궁으로 와 고종을 알현하고, 이때 "많은 나라들이 혁명을 통해 국가를 쇄신했습니다"라며 정변의 성공을 축하한다.
- 오웬 데니
목인덕의 후임으로 고문직을 맡은 미국인. 고종을 만나러 말을 타고 궁으로 가던 중에 한 조선 아이를 놀라게 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으로, 데니가 이후 미국으로 귀국할 때 가져갔던 태극기가 바로 그것이다.
- 로버트 닉슨
을미사변 직전에 미국공사관에 새로 부임한 참사관. 손탁의 소개로 베베르 공사 및 이완용과 인사를 나눈다.
- 윌리엄 매킨타이어 다이
일본의 주도하에 창설된 훈련대가 해산된 뒤 시위대를 훈련시키기 위해 투입된 미군 교관으로, 미국 남북전쟁에도 참여한 베테랑이었다. 을미사변 당시 200여명의 시위대와 함께 궁궐을 사수하고 있었으며 홍계훈이 일부 병력과 요격을 하러 간 사이 남은 병력들과 대전을 지킨다. 자신도 권총을 들고 일본군에 맞섰으나 중과부적으로 시위대가 전멸해버리고 "미국인은 건들지 말라"는 시바 시로에 의해 목숨만 보전한다.
15.6. 영국
- 윌리엄 조지 애스턴
갑신정변 당시 영국 총영사. 김옥균의 계획에 따라 미국, 독일 공사와 함께 경우궁으로 와 고종을 알현하고 이때 많은 나라들이 혁명을 통해 국가를 쇄신했다며 정변의 성공을 축하한다.
- 이사벨라 버드 비숍: 김린
영국인. 기행문 《조선과 이웃나라들》의 저자. 첫 회에서 명성황후와의 티타임 상대로 등장한다. 암살을 방지하기 위해 상궁들이 기미(氣味)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자 명성황후가 "야만적으로 보이냐"고 묻는데, 그에 대해 "영국 왕실에도 암살당한 임금들이 많습니다"라고 말한다.
[1] 이미연은 임오군란으로 피신했다가 궁으로 돌아오는 78화까지만 맡았고 79, 80화에서는 세자(순종)의 병이 잦아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양주의 미륵사에 내려가 있다가 환궁했다는 언급만 될 뿐 나오지 않는다. 81화 시작부터 최명길이 배턴을 넘겨받았는데, 유동근과는 용의 눈물에 이어 2번째 매치업이고 원경왕후에 이어 다시 여흥 민씨 가문 출신의 왕비를 맡았다. 시청자를 극에 보다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서인지 담당 배우가 바뀐 뒤에는 아직 이미연이 나올 시점의 회상 신에서도 최명길이 나온다. 다시 이미연이 나오는 것은 명성황후의 생애를 총정리하는 느낌의 최종화.[2] 명성황후란 인물에 대한 미화에 대한 반동으로 2010년대 이후로는 명성황후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상당히 대중화된지라, 이 드라마 역시 막연히 명성황후를 무작정 착한 인물(...)로 그려냈으리라는 대중적 오해가 자리잡고 있다.[3] 최명길과의 2번째 매치업임과 동시에 정도전의 복권을 단행한 인물인데, 유동근은 이전 드라마에서 정도전을 살해했고, 한참 후에 나오는 드라마에서는 정도전을 발탁했다.[4] 판타인잔으로 알려진 사진이 이상하게 국내에선 한동안 대원군의 사진으로 알려져 있었고, 이 드라마에까지 영향을 주고 말았다.[5] 이재선은 서장자였고, 적장자 이재면은 둘째형 흥완군의 양자로 가있었던데다 무엇보다 성인이라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할 수가 없었다.[6] 이것은 대원군의 정치적 위치에서 기인한 문제였다. 조선 개국 후 살아있는 상태에서 대원군에 오른 인물은 흥선군이 처음이었고 흥선군이 어느정도까지 국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례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흥선군의 권력 기반은 흥선군 자신이 사라지면 그대로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흥선군은 자신이 사라지면 고종이 친정을 펼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았고 세자를 일찍 세워야 자신과 고종의 권력 기반이 안정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고종의 첫 아들인 완화군은 서자인 탓에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다. 더군다나 고종과 명성황후는 20대의 한창 나이였다. 세자 책봉 문제는 명성황후에게 있어서 역린이나 마찬가지였고 따라서 명성황후는 목숨을 걸고 대원군과 싸울 수 밖에 없었다.[7] 명성황후는 고종에게 대원군과의 담판을 일임하면 고종이 대원군에게 굴복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왕실에서는 신정왕후 조씨, 조정에서는 최익현과 안동 김씨가를 백업으로 내세웠다.[8] 본명은 이인이나 드라마 《명성황후》 촬영 시에는 이준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9] 참고로 유동근은 정도전에서, 이진우는 신돈에서 이성계 역을 맡았다. 다만 이진우가 맡은 이성계의 경우 조선 건국 이전에 죽은 신돈이 주인공인 관계로 익선관을 쓰지는 못했다.[10] 찬란한 여명에서 같은 역할을 연기한 바 있다.[11] 고종은 흥선군의 아들이 아닌 신정왕후 조씨의 남편이었던 익종의 양자로 입적되었고 즉위 당시 나이가 어린 탓으로 왕실의 최고 어른인 신정왕후가 수렴을 행하였다.[12] 신정왕후는 정국의 주도권을 흥선군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풍양 조씨인 조면호의 여식을 중전으로 추천했으나 흥선군에 의해 저지당했다.[13] 신정왕후는 '할 일 없는 과부 셋(신정왕후, 효정왕후, 철인왕후)이 살기에는 안성맞춤'이라며 비꼬았다.[14] 말도 안되는 소리다. 광해군 처럼 세자책봉을 받은 후에 정비가 아들을 낳았다면 모를까, 단순히 나이가 대여섯살 정도 많다고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궁녀 출신 후궁의 아들을 왕비의 아들 대신 세자로 삼겠는가. 만약 그런다고 해도 훗날 정통성 문제로 시달리는것은 물론 쿠데타까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15] 항문이 막혀 죽은 첫번째 원자때도 쇠붙이를 사용해 원자를 치료하는것을 결사반대했다. 사실상 이 할머니 때문에 명성황후 소생의 아기들이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보면 된다.[16] 사냥개를 이르는 말이다.[17]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이영애(김현숙 분)의 어머니로 나왔다.[18] 고종은 신정왕후의 남편인 익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즉위했기 때문에 왕실 법도상 어머니는 신정왕후이고 생모가 부대부인인 것이다.[19] 명성황후와는 며느리이기 이전에 친척지간이기도 하다. (애초에 같은 여흥 민씨인데다가, 명성황후의 양오빠인 민승호가 부대부인 민씨의 친동생이다). 그래서 대원군과 명성황후+민씨 척족 간의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둘 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에 처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체로 남편 편에 선다. 아들과 며느리를 '불효한다'고 원망한다. 물론 남편이 권력에 대한 지나친 노욕을 보이면 이를 견제하기도 한다.[20] 참고로 이미 KBS 삼국기에서 계백 역의 유동근과는 부부로 출연한 적이 있다.[21] 덤으로 서인석과 이휘향 주연의 1990년 특집극 '왕조의 세월'에서는 영친왕의 약혼녀이자 여흥 민씨 출신인 민갑완, 그후 1994년작 한명회에서는 한명회의 본처인 여흥 민씨, 그리고 1995년 SBS 장희빈에서는 무려 여흥부대부인의 5대조 할머니인 풍창부부인 조씨를 연기한바 있는데 그야말로 최명길 못지않게 여흥 민씨와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22]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월산대군 부인 박씨, 정도전에서는 공민왕의 어머니인 명덕태후[23] 임오군란 때 궁궐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고 있던 명성황후에게 자신의 가마를 내 준 것이 대표적.[24] 배우 개그로는 이영후는 용의 눈물에서 남은으로 등장해 태종으로 등장한 유동근에게 죽임을 당한적이 있다(....).[25] 《조선왕조 500년 - 대원군》에서는 동서인 여흥부대부인 역을 맡았다.[26] 사실 부인이 3명이었는데 전부 이른 나이에 죽었다.[27]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진성대군의 아역으로,당시 성종 역으로 출연했던 이진우와 이미 한차례 부자 지간을 연기했다.[28] 길을 가던 도중,행패를 부리는 일본인들을 향해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다.[29] 왕실을 이간질 하려는 일본의 공작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친일 행보를 보이던 훈련대가 순종과 훈련대장 홍계훈의 앞을 가로막고 총을 들이댄 반면 의화군의 호통 한 마디에는 아무 말을 못하고 물러난 것.[30] 연극배우로 현재는 경기도립극단에 속해있다. 정하연 작가의 2005년 작 지금도 마로니에는에서는 40대의 나이로 진주인공인 김승옥의 젊은 시절을 맡았다. 또한 KBS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당 고종 이치 역을 맡았다.[31] KBS 공식 홈페이지의 설명으로는 아버지에게 소같이 미련한 놈이라는 욕까지 퍼먹었다.[32] 고종은 물론 이재면보다도 나이로는 형이지만, 서자이기에 이재면도 '자네'라며 하대하고 반말했다.[33] 역모를 꾸민 것이 들통나자 흥선대원군은 이재선에게 자수하라며 빠르게 손절(...)했다.[34] 허준호의 형. 《야인시대》에서 인촌 김성수 역을, 《징비록》에서 정언지 역을 맡았다.[35] 실제로는 순종이 죽고 2년 뒤인 1928년 12월 17일에 사망했다.# 그리고 나레이션도 잘못된 게, 순종의 재위 기간(융희 연간)는 1907~1910년의 4년까지였으므로 '순종 7년(1913년?)'이란 표현은 나올 수 없다.[36] 명성황후 사후에야 귀인 첩지를 받은 것을 반영했는지, 궁에서 쫓겨난 후 을미사변 직전 고종이 그녀의 건재를 확인하고 생모를 대하는 의화군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귀인 첩지를 내렸으나 극구 사양한다.[37] 아들 역의 강성민과는 서로 불과 1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사실상 동갑이여서 모자 지간이라기보단 기껏 해봐야 남매로 보이는 비쥬얼 오류를 보인다(...).[38] 출연할 당시 '가면'이란 곡으로 가수 활동도 병행했다. 동시기에 사극과 음악방송에 같이 나온 드문 케이스.[39] 고증 오류인 것이 장희빈을 사사한 숙종은 후궁이 중전에 오르지 못하도록 법을 뜯어고쳤다. 이는 위의 영보당 이씨가 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하고 있던 시기에 명성황후의 오라비인 민승호의 입을 통해서 언급되었다.[40] 극중 왕에게 충성하는 올곧은 내관을 연기하는데, 다음 출연작인 KBS 대하사극 무인시대에서는 이광정이라는 돈과 권력 밖에 모르는 소인배 개그 캐릭터로 나와 대조를 이룬다.[41]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에서는 을미사변 때 낭인들이 왕세자를 인질로 삼아 고종이 있는 장안당으로 끌고 오는데, 낭인들이 고종 면전에서 왕세자를 칼로 내려치자 분개하여 낭인들에게 소리 치다 칼을 맞는다. 그것으로 사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상 수준이었음은 분명하다.[42] 갑신정변때 살해당한 내관 유재현이 모티브인 것으로 보인다[43]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김계원 비서실장으로 나온다.[44] 수라를 들이는 척하면서 밥 그릇에 밀서를 숨겨 놓았다.[45] 신창석 PD의 차기작인 KBS 대하사극 무인시대에서는 김약진 역으로 출연했다.[46] 이때 뒤에 남아있던 홍영식, 신복모 등의 개화파 세력은 청군에게 둘러싸여 살해당하는데 고종이 이 소리를 듣고 아까운 젊은이들이 다 죽게 생겼으니 어서 멈추라고 오열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묵묵히 자리를 피한다.[47] 후에 신창석 PD의 연출작인 천추태후에서는 헌의왕후 역할을 연기했다.[48] 《태조 왕건》에서 파달, 《야인시대》에서 단게 국장 및 유지광의 무술 스승으로 나왔다.[49] 《무인시대》에서 한뢰 역을, 《불멸의 이순신》에서 신호 역을 맡았다.[50] 《징비록》에서 심유경 역을 맡았다.[51]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이시애의 난의 주동자 이시애 역을 맡았다.[52] 아내는 부대부인을 모시는 여종으로 '판돌어멈'이라고 불린다. 장순규는 당연히 '판돌아범'으로도 불린다.[53] 흥선대원군의 호가 석파이다. 쉽게 말해 흥선대원군이 그린 난.[54] 흥선대원군 면전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가 머리에 벼루샷(...)을 당했다.[55]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권자신 역할을 맡았었다.[56] KBS 드라마 근초고왕과 대왕의 꿈에서 각각 고구려 대장군 고치수와 백제 무왕역을 맡았다.[57] "이놈들!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사가의 종놈들이 궐 안에까지 들어와 대신들을 농락하고 있느냐 이놈들!"이라며 고함을 쳤지만 천하장안은 듣는 시늉도 안했다(...)[58] 후반에는 아래의 시바 시로 역으로 재출연했다. 명성황후를 낳은 아버지가 명성황후를 죽이는데 앞장선 인물로 1인 2역을 맡게 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59] 인현왕후의 아버지로 명성황후의 6대조이다.[60] 민승호는 명성황후의 생부인 민치록의 양자로 입적되었다.[61] 《무인시대》에서 대장군 진준으로 나온다. 《근초고왕》에서는 진씨가의 수장인 진정 역을 맡았으며 《징비록》에서는 성혼 역을 맡았다.[62]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김처선 역을 연기했다.[63] 재미있게도 김성환은 사극에서 주로 내시 역할을 많이 맡았다. 대표적으로 《왕과 비》에서의 김처선.[64] 운현궁 하인들인 천하장안과 농담따먹기를 할 정도였다.[65] 실제로는 당상관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직책도 별기군 교관들을 총지휘하는 높은 자리에 있었다.[66] 당시 개화파가 처치해야할 최우선 목표가 그의 아버지인 민태호였다.[67] 족보 상으로 민응식과 명성황후는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의 아들 대에서 갈라졌다.(민유중의 6대손이 명성황후, 8대손이 민응식이다.) 그러나 실제 혈통 상으로는 무려 38촌(...)으로, 민응식의 20대조, 명성황후의 18대조에서 갈라졌다.[68]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신수근 역을 맡았었다.[69] 최후가 매우 처절한데 개화파들이 내리치는 칼을 손으로 막으며 "조선 국법에 누가 문신은 칼을 차지 못하게 하였던가. 수중에 칼이 없어 네놈들을 만동강이 베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고함을 치다가 살해당했다.[70]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노구(신구)의 친구 이영감님으로 나왔다.[71]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가 이를 언급한다.[72] 야인시대에서 염동진 역을 맡은 배우다. 참고로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구치관 역을 했었다.[73] 나레이션상으로 사람 때려잡는데는 이골이 난 인물이라고 소개한다.[74] 《풍운》, 《독립문》 및 기타 단편 사극에서 6번이나 고종 역을 맡았었던 배우이다.[75] 《불멸의 이순신》에서 구루지마 미치유키,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1인 2역을 맡은 배우다.[76] 이후에 청나라 통령수사제독인 정여창도 연기했다.[77] 《태조 왕건》에서 간신 아지태를 연기했다.[78] 실존 인물인 신응조는 1804년생으로 무려 1899년까지 장수하여 대한제국의 선포를 보고 눈을 감게 된다.[79] 사극에서는 시대, 연출을 가리지않고 나오는 단골 조연으로. 근현대를 다룬 드라마에도 다수 출연했다.[80] 드라마 초반 일본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 역으로도 출연(1인 2역).[81] 실제 역사에서 김홍집은 백성들 손에 살해당했다.[82] 요약하자면 폭력적인 성격의 정변이고 외세에 의지하는 불안정함, 단결된 인심을 얻지 못함, 인력부족, 정계장악 실패, 청군개입 여지 등이다.[83] 배우 조향기, 조기쁨의 아버지. 《태조 왕건》에서 임춘길, 《야인시대》에서 시대일보 편집국장 역을 맡았다.[84] 《야인시대》에서 신성모 역을 맡았다.[85] KBS 드라마 근초고왕에서는 부여휘, 정도전에서는 윤소종 역을 맡았다. 이재면 역의 한범희와는 지금도 마로니에는에 함께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86] 민영익이 민태호를 설득하기 위해 한 말에 따르면 고종은 이들을 영국의 왕실근위대처럼 부리려 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민태호가 끝까지 신식무기를 내어주지 않아 갑신정변을 끝으로 와해된다.[87] 이때 고종의 앞에서 누구보다 먼저 일본으로 도망가겠다고 하거나 김옥균에게 이곳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으니 빨리 달아나자고 종용하는 등 온갖 추태를 보인다.[88] 실제 역사에서는 민영익 습격 계획을 짠 당사자였음에도 차마 민영익의 죽음을 볼 수 없어 목인덕과 함께 쓰러진 그를 피신시켰을 정도. 다만 드라마에선느 목인덕이 홀로 피신 시킨 것으로 나온다.[89]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임영대군을 맡았었다.[90] 전봉준에게 하는 말과 외모로 보았을 때 이 인물은 김개남인 것으로 보인다.[91] '함께 춤을 추어요'로 유명한 가수 장은숙의 오빠이다.[92] 2002년 MBC에서 방영된 최익현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와 안중근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도마 안중근'에서도 똑같이 이토 히로부미 역으로 출연할 만큼 이토 히로부미 전문 배우이기도 하다.[93] 드라마 상에서는 김옥균 암살이 고종과 무관하다고 나오기 때문에 김옥균 제거를 직접 언급한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의 배후일 가능성이 있다.[94] 젊은 시절 모습부터 배우 그대로 나온다.(...)[95] 위의 조두순 역과 동일인물. 다행히 다케조에가 조선 공사로 부임할 시기는 조두순이 이미 사망한 후였으므로 겹치지는 않았다.[96] 필명인 도카이 산시로 유명하다.[97]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 역도 맡았다. 명성황후를 낳고 죽이는 역을 맡은 셈.(...)[98]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폐비 윤씨 역할을 맡았었다.[99] 윤웅렬 역도 맡았다.[100] KBS 사극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로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진주 목사 김시민, 《대왕 세종》에서는 고려 부흥 세력 수장 옥환의 호위무사인 무비, 《근초고왕》에서는 말갈 군장 부간태, 《광개토태왕》에서는 백제 장군 진무 역할로 나온다. 이 외에도 《연개소문》에서는 술탈을 연기했다.[101] 유동근의 전매특허인 호랑이 발성으로 "네 이놈! 대왕대비께서 네놈의 방자함을 꾸짖다 돌아가셨거늘 천한 웃음을 흘리며 문상을 와!!! 떼놈의 문상법은 그러한 것이더냐? 조선의 손님 대접은 이런 것이니라 이놈아!!!라는 일갈을 듣고 뺨을 맞았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대원군에게 뺨을 맞은 이후에 대원군과 마주치자 은근슬쩍 몸을 사린다. 원세개: 워 메이요우제더 베이양다신더 부저더쓰 / 대원군: 이놈이 뉘앞에서 샬라샬라 대는게야![102] 위의 신정왕후 조씨 역을 맡은 김용림의 남편이다. 부부가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사례 중 하나.[103] 김기수 역도 맡았다.[104] 독일인으로 구한말 조선 조정에서 재정, 외교 고문을 했던 인물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맡은 윤주상과 더불어 실제 인물과 무척 닮았다. 여기서는 조선을 돕는 인물로 등장하다, 극중 고종의 비자금이 중국에서 실종되자, 이를 찾기 위해 뛰어가는 식으로 실종처리하는 것으로 나왔다.[105] 당시만 해도 이참은 "이한우"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고, 종종 드라마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던 사람이었다. 이전에는 드라마 딸부잣집에서 둘째 딸과 결혼하고 귀화한 독일인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해당 배우인 이참 역시 독일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부분.[106] 위키백과에서는 《찬란한 여명》에서도 같은 묄렌도르프 역을 맡았다고 나오나#, 이 포스팅을 보면 아닌 듯 하다.[107] 배우 김진규와 김보애의 딸이다.[108] 《윤치호 일기》에 따르면 베베르 처남의 처형이라고 한다.[109] 키릴 문자 В 표기는 V 표기로 옮기는 것이 보통이지만 W 표기로 옮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