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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14:08:21

명성황후(드라마)/등장인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명성황후(드라마)
1. 주연2. 왕실3. 고종의 후궁들4. 궁관(宮官)들5. 운현궁 사람들6. 안동 김씨7. 여흥 민씨8. 신하들9. 대신 부인10. 임오군란11. 개화파(갑신정변 주도세력)12. 동학농민운동13. 을미사변 당시 조선군14. 기타15. 외국인

1. 주연

파일:명성황후 문근영.png 파일:KakaoTalk_20200118_030514388.jpg 파일:최명길_명성황후.png
문근영이 연기한 명성황후 이미연이 연기한 명성황후 최명길이 연기한 명성황후
이름 그대로 타이틀 주인공으로 어린 나이에 중전으로 간택되어 일생 동안 조선 왕실의 권력투쟁과 외세의 침략이라는 풍랑 속을 걷는 인물. 실제 인물의 부정적인 면모는 거의 묘사되지 않고 긍정적인 면 위주로 부각하여 캐릭터를 새로 창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하듯 마냥 '천사 of같이' 그려진 것은 결코 아니며, 굉장히 계산적인 치밀함과 비정한 면모 역시 묘사되고 있다.[2]
문제는 작중 흐름이 혼란스러웠던 근대 조선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뭔가 이루어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번번히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운의 인물로 자주 그려지게 된다. 초기에는 고종의 홀대와 왕실의 법도에 눌려 와신상담을 하지만 이후 민씨 일가가 들어오면서 힘을 얻고 마침내 대원군과 대립한다. 민승호 일가 폭사사건으로 겨우 화해 무드를 조성하던 중전과 대원군 사이에 다시 금이 갔으며 이 골은 임오군란에서 마침내 정점을 찍는다. 장호원으로 피신했다가 환궁한 뒤에는 권력투쟁에 몰두한 나머지 등한시하던 나라의 현실을 보기 시작하며 궁극적으로 고종이 황제에 올라 조선이 자주독립국이 되는 것을 꿈꾼다.

이후 흥선대원군과 화해하고 협력하여 조선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때가 너무 늦어버렸고 결국 미우라 고로가 보낸 자객들에게 시해당하며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스토리 전체가 흥선대원군의 일생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차남인 이명복을 고종으로 옹립하고[5] 자신은 생부의 자격으로 대원군에 올랐다. 조선을 중흥시겠다는 일념으로 경복궁 중건, 서원 철폐, 호포제 등의 파격적인 개혁 정책을 밀어붙혔고 신정왕후 조씨가 국정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후계 문제를 두고 조급함[6]을 보이다 명성황후의 반격[7]으로 실각해버리고 운현궁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대원군은 포기하지 않았고 임오군란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다. 장호원으로 피난을 간 명성황후의 국상을 선포하고 며느리의 관뚜껑에 손수 못을 박아버리면서 개혁에 대한 의지를 재천명한다. 하지만 청국의 개입으로 마건충에게 납치되는 바람에 다시 실각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조선으로 환국한 대원군은 명성황후와 다시 알력다툼을 벌이나 날로 커져가는 일본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결국 명성황후와 손을 잡는다. 하지만 때가 너무 늦어버려 명성황후는 암살당하고 본인은 일본군에게 납치되어 경복궁으로 끌려오자 '500년 종묘사직이 망했다'라고 통곡을 하며 망국을 실감한다. 이후 명성황후의 장례를 손수 치러주고 세상을 떠난다.

2. 왕실

임종 직전 명성황후와의 대화에서 신정왕후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한 많은 생을 회고한다.
신정왕후: 내 원망을 많이 했지요? 나는 나대로 생각이 있어서 그런겁니다.


명성황후: 당치 않으십니다. 원망이라니요.


신정왕후: 안동 김씨 일문이 득세를 하니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왕실입니다. 그게 어디 이씨의 나라라고 할 수 있었나요? 김씨의 나라였죠. 나는 중전께서 모르시는 수모를 겪으며 살아왔어요.



명성황후: 소인이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왕실이 이나마 유지된 것은 어마마마 덕분입니다.


신정왕후: 세간에서는 날더러 청국의 주구(走狗)[16]라고 한다지요? 나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무슨 욕을 들어도 좋아요. 5백년 종묘사직과 왕실을 지킬 수만 있다면 청국의 주구도 좋고 왜놈들의 앞잡이라도 상관없어요.


명성황후: ...


신정왕후: 솜씨가 좋으십니다. 임오년의 군란때도, 갑신년의 정변때도 중전께서 잘 하셨어요. 마음이 놓입니다. 내가 죽어도 중전께서 잘 하시겠죠...그만 물러가서 주무세요.


명성황후: 어마마마께서 잠이 드신 후에 돌아가겠습니다.


신정왕후: 나는 잠이 오지를 않아요. 지난 일들이 자꾸만 떠올라서...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볼까봐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난 그걸 면하고 가게 생겼소만...


명성황후: 천년만년 이어가야지요. 염려하지 마세요 어마마마. 아라사의 힘을 빌리든, 미국의 힘을 빌리든 이 나라 왕실을 지킬겁니다.


신정왕후: 예...중전께서는 해낼 수 있을 겁니다. 해내고 말고요...
작중에서 대원군과 가장 대립하는 인물로 임종하는 그 순간까지도 대원군을 경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파일:부대부인민씨.png ||
흥선대원군의 아내로 어질고 따뜻한 성품이며, 흥선대원군과 고종, 명성황후 사이 에 끼어서 마음 고생을 하는 인물로 나온다. 고종,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이 갈등을 빚을 때는 아들/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서운해하지만 흥선대원군이 지나친 행보를 보일 경우 어떻게 아들/며느리에게 그럴 수 있느냐며 제동을 걸려는 모습도 보인다.[23] 아주버님 흥인군이 살해 당했을때 남편 흥선대원군이 고인드립을 날리자 제정신이 아니라며 기겁을 했다. 작품 후반까지 아들 부부와 남편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다가, 마지막 화에서 병사한다.

3. 고종의 후궁들



4. 궁관(宮官)들

5. 운현궁 사람들

6. 안동 김씨

7. 여흥 민씨

민씨 일가는 대체로 최후가 좋지 않다. 민승호는 폭탄 테러끔살, 민겸호는 임오군란 때 구식 군인들에게 끔살, 민태호는 갑신정변 때 개화파에게 끔살, 민규호는 지병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 민영익도 갑신정변 때 개화파에게 칼을 맞고 죽을 뻔했지만, 알렌에 의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8. 신하들

9. 대신 부인

10. 임오군란

11. 개화파(갑신정변 주도세력)

12. 동학농민운동

13. 을미사변 당시 조선군

14. 기타

15. 외국인

15.1. 일본

15.2. 청나라

15.3. 독일

15.4. 러시아

15.5. 미국

15.6. 영국



[1] 이미연은 임오군란으로 피신했다가 궁으로 돌아오는 78화까지만 맡았고 79, 80화에서는 세자(순종)의 병이 잦아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양주의 미륵사에 내려가 있다가 환궁했다는 언급만 될 뿐 나오지 않는다. 81화 시작부터 최명길이 배턴을 넘겨받았는데, 유동근과는 용의 눈물에 이어 2번째 매치업이고 원경왕후에 이어 다시 여흥 민씨 가문 출신의 왕비를 맡았다. 시청자를 극에 보다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서인지 담당 배우가 바뀐 뒤에는 아직 이미연이 나올 시점의 회상 신에서도 최명길이 나온다. 다시 이미연이 나오는 것은 명성황후의 생애를 총정리하는 느낌의 최종화.[2] 명성황후란 인물에 대한 미화에 대한 반동으로 2010년대 이후로는 명성황후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상당히 대중화된지라, 이 드라마 역시 막연히 명성황후를 무작정 착한 인물(...)로 그려냈으리라는 대중적 오해가 자리잡고 있다.[3] 최명길과의 2번째 매치업임과 동시에 정도전의 복권을 단행한 인물인데, 유동근은 이전 드라마에서 정도전을 살해했고, 한참 후에 나오는 드라마에서는 정도전을 발탁했다.[4] 판타인잔으로 알려진 사진이 이상하게 국내에선 한동안 대원군의 사진으로 알려져 있었고, 이 드라마에까지 영향을 주고 말았다.[5] 이재선은 서장자였고, 적장자 이재면은 둘째형 흥완군의 양자로 가있었던데다 무엇보다 성인이라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할 수가 없었다.[6] 이것은 대원군의 정치적 위치에서 기인한 문제였다. 조선 개국 후 살아있는 상태에서 대원군에 오른 인물은 흥선군이 처음이었고 흥선군이 어느정도까지 국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례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흥선군의 권력 기반은 흥선군 자신이 사라지면 그대로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흥선군은 자신이 사라지면 고종이 친정을 펼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았고 세자를 일찍 세워야 자신과 고종의 권력 기반이 안정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고종의 첫 아들인 완화군은 서자인 탓에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다. 더군다나 고종과 명성황후는 20대의 한창 나이였다. 세자 책봉 문제는 명성황후에게 있어서 역린이나 마찬가지였고 따라서 명성황후는 목숨을 걸고 대원군과 싸울 수 밖에 없었다.[7] 명성황후는 고종에게 대원군과의 담판을 일임하면 고종이 대원군에게 굴복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왕실에서는 신정왕후 조씨, 조정에서는 최익현안동 김씨가를 백업으로 내세웠다.[8] 본명은 이인이나 드라마 《명성황후》 촬영 시에는 이준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9] 참고로 유동근은 정도전에서, 이진우는 신돈에서 이성계 역을 맡았다. 다만 이진우가 맡은 이성계의 경우 조선 건국 이전에 죽은 신돈이 주인공인 관계로 익선관을 쓰지는 못했다.[10] 찬란한 여명에서 같은 역할을 연기한 바 있다.[11] 고종은 흥선군의 아들이 아닌 신정왕후 조씨의 남편이었던 익종의 양자로 입적되었고 즉위 당시 나이가 어린 탓으로 왕실의 최고 어른인 신정왕후가 수렴을 행하였다.[12] 신정왕후는 정국의 주도권을 흥선군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풍양 조씨인 조면호의 여식을 중전으로 추천했으나 흥선군에 의해 저지당했다.[13] 신정왕후는 '할 일 없는 과부 셋(신정왕후, 효정왕후, 철인왕후)이 살기에는 안성맞춤'이라며 비꼬았다.[14] 말도 안되는 소리다. 광해군 처럼 세자책봉을 받은 후에 정비가 아들을 낳았다면 모를까, 단순히 나이가 대여섯살 정도 많다고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궁녀 출신 후궁의 아들을 왕비의 아들 대신 세자로 삼겠는가. 만약 그런다고 해도 훗날 정통성 문제로 시달리는것은 물론 쿠데타까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15] 항문이 막혀 죽은 첫번째 원자때도 쇠붙이를 사용해 원자를 치료하는것을 결사반대했다. 사실상 이 할머니 때문에 명성황후 소생의 아기들이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보면 된다.[16] 사냥개를 이르는 말이다.[17]막돼먹은 영애씨》에서 이영애(김현숙 분)의 어머니로 나왔다.[18] 고종은 신정왕후의 남편인 익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즉위했기 때문에 왕실 법도상 어머니는 신정왕후이고 생모가 부대부인인 것이다.[19] 명성황후와는 며느리이기 이전에 친척지간이기도 하다. (애초에 같은 여흥 민씨인데다가, 명성황후의 양오빠인 민승호가 부대부인 민씨의 친동생이다). 그래서 대원군과 명성황후+민씨 척족 간의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둘 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에 처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체로 남편 편에 선다. 아들과 며느리를 '불효한다'고 원망한다. 물론 남편이 권력에 대한 지나친 노욕을 보이면 이를 견제하기도 한다.[20] 참고로 이미 KBS 삼국기에서 계백 역의 유동근과는 부부로 출연한 적이 있다.[21] 덤으로 서인석과 이휘향 주연의 1990년 특집극 '왕조의 세월'에서는 영친왕의 약혼녀이자 여흥 민씨 출신인 민갑완, 그후 1994년작 한명회에서는 한명회의 본처인 여흥 민씨, 그리고 1995년 SBS 장희빈에서는 무려 여흥부대부인의 5대조 할머니인 풍창부부인 조씨를 연기한바 있는데 그야말로 최명길 못지않게 여흥 민씨와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22]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월산대군 부인 박씨, 정도전에서는 공민왕의 어머니인 명덕태후[23] 임오군란 때 궁궐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고 있던 명성황후에게 자신의 가마를 내 준 것이 대표적.[24] 배우 개그로는 이영후는 용의 눈물에서 남은으로 등장해 태종으로 등장한 유동근에게 죽임을 당한적이 있다(....).[25]조선왕조 500년 - 대원군》에서는 동서인 여흥부대부인 역을 맡았다.[26] 사실 부인이 3명이었는데 전부 이른 나이에 죽었다.[27]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진성대군의 아역으로,당시 성종 역으로 출연했던 이진우와 이미 한차례 부자 지간을 연기했다.[28] 길을 가던 도중,행패를 부리는 일본인들을 향해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다.[29] 왕실을 이간질 하려는 일본의 공작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친일 행보를 보이던 훈련대가 순종과 훈련대장 홍계훈의 앞을 가로막고 총을 들이댄 반면 의화군의 호통 한 마디에는 아무 말을 못하고 물러난 것.[30] 연극배우로 현재는 경기도립극단에 속해있다. 정하연 작가의 2005년 작 지금도 마로니에는에서는 40대의 나이로 진주인공김승옥의 젊은 시절을 맡았다. 또한 KBS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당 고종 이치 역을 맡았다.[31] KBS 공식 홈페이지의 설명으로는 아버지에게 소같이 미련한 놈이라는 욕까지 퍼먹었다.[32] 고종은 물론 이재면보다도 나이로는 형이지만, 서자이기에 이재면도 '자네'라며 하대하고 반말했다.[33] 역모를 꾸민 것이 들통나자 흥선대원군은 이재선에게 자수하라며 빠르게 손절(...)했다.[34] 허준호의 형. 《야인시대》에서 인촌 김성수 역을, 《징비록》에서 정언지 역을 맡았다.[35] 실제로는 순종이 죽고 2년 뒤인 1928년 12월 17일에 사망했다.# 그리고 나레이션도 잘못된 게, 순종의 재위 기간(융희 연간)는 1907~1910년의 4년까지였으므로 '순종 7년(1913년?)'이란 표현은 나올 수 없다.[36] 명성황후 사후에야 귀인 첩지를 받은 것을 반영했는지, 궁에서 쫓겨난 후 을미사변 직전 고종이 그녀의 건재를 확인하고 생모를 대하는 의화군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귀인 첩지를 내렸으나 극구 사양한다.[37] 아들 역의 강성민과는 서로 불과 1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사실상 동갑이여서 모자 지간이라기보단 기껏 해봐야 남매로 보이는 비쥬얼 오류를 보인다(...).[38] 출연할 당시 '가면'이란 곡으로 가수 활동도 병행했다. 동시기에 사극과 음악방송에 같이 나온 드문 케이스.[39] 고증 오류인 것이 장희빈을 사사한 숙종은 후궁이 중전에 오르지 못하도록 법을 뜯어고쳤다. 이는 위의 영보당 이씨가 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하고 있던 시기에 명성황후의 오라비인 민승호의 입을 통해서 언급되었다.[40] 극중 왕에게 충성하는 올곧은 내관을 연기하는데, 다음 출연작인 KBS 대하사극 무인시대에서는 이광정이라는 돈과 권력 밖에 모르는 소인배 개그 캐릭터로 나와 대조를 이룬다.[41]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에서는 을미사변 때 낭인들이 왕세자인질로 삼아 고종이 있는 장안당으로 끌고 오는데, 낭인들이 고종 면전에서 왕세자를 칼로 내려치자 분개하여 낭인들에게 소리 치다 칼을 맞는다. 그것으로 사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상 수준이었음은 분명하다.[42] 갑신정변때 살해당한 내관 유재현이 모티브인 것으로 보인다[43]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김계원 비서실장으로 나온다.[44] 수라를 들이는 척하면서 밥 그릇에 밀서를 숨겨 놓았다.[45] 신창석 PD의 차기작인 KBS 대하사극 무인시대에서는 김약진 역으로 출연했다.[46] 이때 뒤에 남아있던 홍영식, 신복모 등의 개화파 세력은 청군에게 둘러싸여 살해당하는데 고종이 이 소리를 듣고 아까운 젊은이들이 다 죽게 생겼으니 어서 멈추라고 오열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묵묵히 자리를 피한다.[47] 후에 신창석 PD의 연출작인 천추태후에서는 헌의왕후 역할을 연기했다.[48]태조 왕건》에서 파달, 《야인시대》에서 단게 국장 및 유지광의 무술 스승으로 나왔다.[49]무인시대》에서 한뢰 역을, 《불멸의 이순신》에서 신호 역을 맡았다.[50]징비록》에서 심유경 역을 맡았다.[51]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이시애의 난의 주동자 이시애 역을 맡았다.[52] 아내는 부대부인을 모시는 여종으로 '판돌어멈'이라고 불린다. 장순규는 당연히 '판돌아범'으로도 불린다.[53] 흥선대원군의 호가 석파이다. 쉽게 말해 흥선대원군이 그린 난.[54] 흥선대원군 면전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가 머리에 벼루샷(...)을 당했다.[55]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권자신 역할을 맡았었다.[56] KBS 드라마 근초고왕대왕의 꿈에서 각각 고구려 대장군 고치수와 백제 무왕역을 맡았다.[57] "이놈들!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사가의 종놈들이 궐 안에까지 들어와 대신들을 농락하고 있느냐 이놈들!"이라며 고함을 쳤지만 천하장안은 듣는 시늉도 안했다(...)[58] 후반에는 아래의 시바 시로 역으로 재출연했다. 명성황후를 낳은 아버지가 명성황후를 죽이는데 앞장선 인물로 1인 2역을 맡게 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59] 인현왕후의 아버지로 명성황후의 6대조이다.[60] 민승호는 명성황후의 생부인 민치록의 양자로 입적되었다.[61]무인시대》에서 대장군 진준으로 나온다. 《근초고왕》에서는 진씨가의 수장인 진정 역을 맡았으며 《징비록》에서는 성혼 역을 맡았다.[62]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김처선 역을 연기했다.[63] 재미있게도 김성환은 사극에서 주로 내시 역할을 많이 맡았다. 대표적으로 《왕과 비》에서의 김처선.[64] 운현궁 하인들인 천하장안과 농담따먹기를 할 정도였다.[65] 실제로는 당상관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직책도 별기군 교관들을 총지휘하는 높은 자리에 있었다.[66] 당시 개화파가 처치해야할 최우선 목표가 그의 아버지인 민태호였다.[67] 족보 상으로 민응식과 명성황후는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의 아들 대에서 갈라졌다.(민유중의 6대손이 명성황후, 8대손이 민응식이다.) 그러나 실제 혈통 상으로는 무려 38촌(...)으로, 민응식의 20대조, 명성황후의 18대조에서 갈라졌다.[68]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신수근 역을 맡았었다.[69] 최후가 매우 처절한데 개화파들이 내리치는 칼을 손으로 막으며 "조선 국법에 누가 문신은 칼을 차지 못하게 하였던가. 수중에 칼이 없어 네놈들을 만동강이 베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고함을 치다가 살해당했다.[70] SBS 시트콤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노구(신구)의 친구 이영감님으로 나왔다.[71]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가 이를 언급한다.[72] 야인시대에서 염동진 역을 맡은 배우다. 참고로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구치관 역을 했었다.[73] 나레이션상으로 사람 때려잡는데는 이골이 난 인물이라고 소개한다.[74]풍운》, 《독립문》 및 기타 단편 사극에서 6번이나 고종 역을 맡았었던 배우이다.[75]불멸의 이순신》에서 구루지마 미치유키,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1인 2역을 맡은 배우다.[76] 이후에 청나라 통령수사제독인 정여창도 연기했다.[77]태조 왕건》에서 간신 아지태를 연기했다.[78] 실존 인물인 신응조는 1804년생으로 무려 1899년까지 장수하여 대한제국의 선포를 보고 눈을 감게 된다.[79] 사극에서는 시대, 연출을 가리지않고 나오는 단골 조연으로. 근현대를 다룬 드라마에도 다수 출연했다.[80] 드라마 초반 일본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 역으로도 출연(1인 2역).[81] 실제 역사에서 김홍집은 백성들 손에 살해당했다.[82] 요약하자면 폭력적인 성격의 정변이고 외세에 의지하는 불안정함, 단결된 인심을 얻지 못함, 인력부족, 정계장악 실패, 청군개입 여지 등이다.[83] 배우 조향기, 조기쁨의 아버지. 《태조 왕건》에서 임춘길, 《야인시대》에서 시대일보 편집국장 역을 맡았다.[84]야인시대》에서 신성모 역을 맡았다.[85] KBS 드라마 근초고왕에서는 부여휘, 정도전에서는 윤소종 역을 맡았다. 이재면 역의 한범희와는 지금도 마로니에는에 함께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86] 민영익이 민태호를 설득하기 위해 한 말에 따르면 고종은 이들을 영국의 왕실근위대처럼 부리려 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민태호가 끝까지 신식무기를 내어주지 않아 갑신정변을 끝으로 와해된다.[87] 이때 고종의 앞에서 누구보다 먼저 일본으로 도망가겠다고 하거나 김옥균에게 이곳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으니 빨리 달아나자고 종용하는 등 온갖 추태를 보인다.[88] 실제 역사에서는 민영익 습격 계획을 짠 당사자였음에도 차마 민영익의 죽음을 볼 수 없어 목인덕과 함께 쓰러진 그를 피신시켰을 정도. 다만 드라마에선느 목인덕이 홀로 피신 시킨 것으로 나온다.[89]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임영대군을 맡았었다.[90] 전봉준에게 하는 말과 외모로 보았을 때 이 인물은 김개남인 것으로 보인다.[91] '함께 춤을 추어요'로 유명한 가수 장은숙의 오빠이다.[92] 2002년 MBC에서 방영된 최익현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와 안중근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도마 안중근'에서도 똑같이 이토 히로부미 역으로 출연할 만큼 이토 히로부미 전문 배우이기도 하다.[93] 드라마 상에서는 김옥균 암살이 고종과 무관하다고 나오기 때문에 김옥균 제거를 직접 언급한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의 배후일 가능성이 있다.[94] 젊은 시절 모습부터 배우 그대로 나온다.(...)[95] 위의 조두순 역과 동일인물. 다행히 다케조에가 조선 공사로 부임할 시기는 조두순이 이미 사망한 후였으므로 겹치지는 않았다.[96] 필명인 도카이 산시로 유명하다.[97]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 역도 맡았다. 명성황후를 낳고 죽이는 역을 맡은 셈.(...)[98] 작가의 전작인 왕과 비에서는 폐비 윤씨 역할을 맡았었다.[99] 윤웅렬 역도 맡았다.[100] KBS 사극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로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진주 목사 김시민, 《대왕 세종》에서는 고려 부흥 세력 수장 옥환의 호위무사인 무비, 《근초고왕》에서는 말갈 군장 부간태, 《광개토태왕》에서는 백제 장군 진무 역할로 나온다. 이 외에도 《연개소문》에서는 술탈을 연기했다.[101] 유동근의 전매특허인 호랑이 발성으로 "네 이놈! 대왕대비께서 네놈의 방자함을 꾸짖다 돌아가셨거늘 천한 웃음을 흘리며 문상을 와!!! 떼놈의 문상법은 그러한 것이더냐? 조선의 손님 대접은 이런 것이니라 이놈아!!!라는 일갈을 듣고 뺨을 맞았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대원군에게 뺨을 맞은 이후에 대원군과 마주치자 은근슬쩍 몸을 사린다. 원세개: 워 메이요우제더 베이양다신더 부저더쓰 / 대원군: 이놈이 뉘앞에서 샬라샬라 대는게야![102] 위의 신정왕후 조씨 역을 맡은 김용림의 남편이다. 부부가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사례 중 하나.[103] 김기수 역도 맡았다.[104] 독일인으로 구한말 조선 조정에서 재정, 외교 고문을 했던 인물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맡은 윤주상과 더불어 실제 인물과 무척 닮았다. 여기서는 조선을 돕는 인물로 등장하다, 극중 고종의 비자금이 중국에서 실종되자, 이를 찾기 위해 뛰어가는 식으로 실종처리하는 것으로 나왔다.[105] 당시만 해도 이참은 "이한우"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고, 종종 드라마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던 사람이었다. 이전에는 드라마 딸부잣집에서 둘째 딸과 결혼하고 귀화한 독일인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해당 배우인 이참 역시 독일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부분.[106] 위키백과에서는 《찬란한 여명》에서도 같은 묄렌도르프 역을 맡았다고 나오나#, 이 포스팅을 보면 아닌 듯 하다.[107] 배우 김진규와 김보애의 딸이다.[108]윤치호 일기》에 따르면 베베르 처남의 처형이라고 한다.[109] 키릴 문자 В 표기는 V 표기로 옮기는 것이 보통이지만 W 표기로 옮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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