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역사적으로 널리 불린 각 지역의 별칭들을 중심으로 정리한 문서이다.2. 목록
2.1. 대한민국
- 기호(畿湖): 수도권·충청도
- 동협(東峽): 경기도 동부 및 강원도
- 남도(南道): 충청도·전라도(제주도 포함)·경상도를 아우르는 지역. 작게는 전라도만을 이르기도 한다.
- 삼남(三南), 하삼도(下三道), 남선(南鮮)[1]: 충청도·전라도(제주도 포함)·경상도를 아우르는 지역
- 양남(兩南): 전라도·경상도
- 양호(兩湖): 충청도·전라도
- 호령(湖嶺): 충청도·경상도
2.1.1. 수도권
경인(京仁)- 서울특별시: 남평양(南平陽)[2], 한성(漢城)[3], 한양(漢陽)[4], 양주(楊州)[5], 목멱양(木覓壤)[6], 남경(南京)[7], 서울[8], 경도(京都)[9], 경락(京洛), 경부(京府), 경사(京師), 경성(京城), 경읍(京邑), 경조(京兆), 도성(都城), 수도(首都)[10], 수부(首府), 수선(首善)[11], 장안(長安)[12], 한경(漢京)[13], 열양(洌陽)[14], 위례(慰禮), 오(육)백년 도읍지
-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강남4구
-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강남3구
- 서초구, 강남구: 영동(永東)
-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노도강
- 성동구·광진구·동대문구·중랑구: 동교(東郊)[15]
- 성동구 성수동: 뚝섬
- 금천구·관악구·영등포구: 금주(衿州), 금천(衿川), 시흥(始興)
- 인천광역시: 인주(仁州), 경원(慶源)[16], 구도(球都)[17], 미추홀[18], 제물포[19], 조선의 레닌그라드(해방 직후)
- 경기도
2.1.2. 강원도
관동(關東)2.1.3. 충청도
호서(湖西)2.1.4. 전라도
호남(湖南), 남도(南道)2.1.5. 경상도
영남(嶺南)- 부산광역시: 동래(東萊), 구도(球都)
- 기장군: 차성(車城)
- 대구광역시: 달성(達城)[65], 달구벌(達句伐)
- 울산광역시: 울주(蔚州), 학성(鶴城)
- 경상북도: 경북(慶北)
- 경주시: 금성(金城), 월성(月城)[66], 계림(鷄林)[67], 왕경(王京)[68], 동경(東京)[69], 오성(鰲城)[70], 서라벌(徐羅伐), 사로(斯盧), 신라(新羅)
- 구미시
- 김천시: 금릉(金陵)
- 상주시: 낙양(洛陽)
- 성주군: 벽진(碧珍)[73], 광평(廣平)[74], 흥안(興安)
- 안동시: 영가(永嘉), 영호(映湖)
- 울릉군: 우산(于山)
- 포항시: 연일(延日)[75], 영일(迎日)
- 경상남도: 경남(慶南)
2.1.6. 제주도
영주(瀛洲), 탐라(耽羅)2.1.7. 이북5도
2.1.7.1. 미수복 경기도
- 개성시: 송악(松岳)[송], 송경(松京)[송], 송도(松都)[송], 왕경(王京)[고려시대], 황도(皇都)[고려시대], 개성(開城)[86], 중경(中京)[87], 개경(開京)[88], 구도(舊都)[89]
2.1.7.2. 평안도
관서(關西), 서북(西北), 패서(浿西)2.1.7.3. 함경도
관북(關北), 동북(東北), 북도(北道)2.1.7.4. 황해도
해서(海西), 대방(帶方)- 황해남도: 황남(黃南)
- 배천군: 백주(白州)[98]
- 신계군: 협계(浹溪)[99]
- 연안군: 영응(永膺)[100]
- 해주시: 고죽(孤竹), 대령(大寧), 벽성(碧城)[101], 서해(西海), 수양(首陽)[102], 지성(池城)
- 황해북도: 황북(黃北)
- 평산군: 동양(東陽)
2.2. 중국
- 경도(京都), 경락(京洛), 경부(京府), 경사(京師), 경성(京城): 역사적으로 중국의 수도들을 일컫던 별칭으로, 명청시대에는 베이징의 별칭이었다.
- 요동(遼東): 요하(遼河)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랴오닝성의 동부와 그 이동의 지역을 말한다.
- 요서(遼西): 요하(遼河)의 서쪽이라는 뜻으로, 랴오닝성의 서부를 말한다.
- 형주(荊州), 형초(荊楚)
2.2.1. 행정구역별 별칭
- 베이징시: 연경(燕京)
- 랴오닝성
- 선양시: 성경(盛京)
- 허베이성: 기주(冀州)
- 허난성: 예주(豫州)
- 뤄양시: 호경(鎬京), 동도(東都)
- 산시성(섬서성): 관중(關中), 진천(秦川)
- 산둥성: 제(齊), 제주(齊州), 노(魯), 제로(齊魯)
- 쓰촨성: 파촉(巴蜀)
- 광둥성
- 광저우시: 수성(穗城), 오선성(五仙城), 오양성(五羊城), 양성(羊城), 화성(花城)
2.3. 일본
- 도쿄도: 에도(江戸), 테이도(帝都, 제도), 부요(武陽)
- 교토부 교토시: 사이쿄(西京)[104], 라쿠요(洛陽)
- 오사카부 오사카시: 나니와(難波)
- 아이치현 나고야시: 주쿄(中京)[105]
[1] 주로 일제강점기에 이렇게 불렀다.[2]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북한산군(北漢山郡)을 설치하면서 남평양이라는 별칭을 붙였다.[3]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의 이칭이었고, 1395년에 한양부를 한성부로 개칭한 이래 1910년까지 서울의 공식 명칭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지금의 서울에 설치되었던 경성부의 별칭으로 쓰였다.[4] 757년에 한양군이 설치된 이래 양주로 이름이 바뀌는 940년까지, 남경이 한양부로 격하된 1304년부터 한성부로 개칭되는 1395년까지 서울의 공식 명칭이었다. 서울의 옛 이름 중에서는 가장 널리 불리던 별칭이었으며, 공식 명칭이 양주나 남경이었던 때에나, 한성부였던 조선 시대 500년 동안에도 한양이라는 별칭은 1500년 넘게 계속해서 불려 왔다.[5] 본래 양주의 치소는 지금의 서울 사대문안에 있다가 한양 천도 이후에 지금의 광진구로, 그 다음에 지금의 양주시 관내로 옮긴 것이다. 940년부터 1069년까지 서울의 공식 명칭이었다.[6] 목멱산(現 남산) 근처 지역이라는 뜻. 고려 시대에 남경 천도 운동이 일어날 때 언급된다.[7] 1304년에 원나라의 간섭을 받아 남경이 한양부로 격하된 이후로도 관습적으로 남경이라고 불렀다. 한양 천도 이후로는 중앙 수도가 되어 더 이상 남경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다.[8] 1394년 한양 천도 이래 오래도록 한성부의 별칭으로 불려 왔고, 일제강점기에도 계속해서 경성부의 별칭으로 불렸다. 1946년에 경성부가 서울시로 개칭되면서 한양 천도 552년 만에 비로소 서울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9]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한성부의 공식 명칭을 경도한성부(京都漢城府)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이후에 발간된 지리지들에도 경도한성부라는 명칭이 등장한다.[10] 현대에는 '수도 서울' 같은 예로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그 외에도 서울특별시 관내에는 수도여자고등학교, 수도공업고등학교 등 서울의 별칭으로서의 '수도'를 교명에 사용한 경우가 있다.[11] 조선 시대에 한성부를 그린 지도인 수선전도가 유명하다.[12] 당나라 장안성과 같이 수도라는 점에서 한성부의 별칭이 되었다.[13] 조선시대에 한성부를 전 왕조의 수도인 개경과 동급으로 높여 부르던 이름. 조선 초부터 생긴 별칭이며, 조선 후기에 간행된 한성부의 지리지 한경지략(漢京識略)에서도 볼 수 있듯 조선시대 내내 한경이라는 별칭이 쓰여 왔다.[14] 한강의 별칭인 열수(洌水)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15] 한성부의 동쪽 교외라는 뜻이다.[16] 한때 인천 이씨를 경원 이씨로 불렀다.[17] 부산보다는 덜 알려지긴 했으나 축구, 야구 등 근대 스포츠가 먼저 들어온 곳이 인천이다.[18] 옛지명에서[19] 다만 미추홀과 다르게 옛 인천도호부 지역 전역을 가리키던 별칭은 아니었다.[20] 부평군의 옛 이름인 계양도호부에서 유래하였다. 1995년 계양구가 설치되면서 이름이 부활하였다.[21] 고려 시대 때의 행주현이 그 유래이다. 현재의 행주산성이 있는 그곳이며, 행주 기씨의 본관이다.[22] 덕성부원군 기철이 유명하다.[한] 본래의 한산군은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을 포함하는 한강 이남의 지역을 관할하였고, 광주시의 전신이 된다. 현재 서울특별시의 전신이 되는 건 북한산군이다. 한주로 개칭되었다가 757년에 광주로 개칭되었다. '한(漢)'은 고대 한국어에서 넓다는 의미의 말을 한자로 음역한 것인데, 이는 한강에서 유래한 것이다. 넓을 광(廣) 자를 쓰는 지금의 광주와 지명이 일맥상통한다.[한] [25] 옛 풍양현에서 유래하였다. 풍양 조씨의 본관이다.[26] 수원의 옛 이름이다.[27] 한강의 남쪽에 있다 하여 붙은 별칭이다. 세종과 혜빈 양씨의 장남 이어가 한남군에 봉작되었다.[28] 본래 수원의 읍치가 있던 화성시 안녕동의 화산이다.[29] 1793년에 화성유수부로 승격한 이래 1894년까지 수원의 공식 명칭이었다.[30] 475년에 지금의 양주 지역에 매성군(買城郡)을 설치할 때 붙은 별호이다.[31] 여흥 민씨의 본관이다.[32] 충선왕 때 남양부(南陽府)로 이름이 바뀐 뒤에도 별칭으로 남았다.[33] 1955년에 강릉군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이 강릉시로 승격되면서 강릉군의 나머지 지역은 옛 명칭을 되살려 명주군으로 개칭되었다.[34] 세종과 소헌왕후의 사남 이구가 임영대군에 봉작되었다.[35] 통일신라시대의 9주 5소경 중 하나인 북원경에서 유래하였다. 원주시 관내의 북원여자고등학교가 교명으로 사용하고 있다.[36] 세종과 소헌왕후의 7남인 이림이 평원대군에 봉작되었다.[37] 동주 최씨의 본관이다.[38] 춘천의 옛 이름으로, 광해군의 봉호이다.[39] 백제 때 청주의 이름이었다. 훗날 본관이 청주인 한명회가 상당부원군의 작호를 받았다.[40] 통일신라시대의 9주 5소경 중 하나인 서원경에서 유래하였다. 서원구가 설치되면서 이름이 부활하였다.[41] 조선 초기 인물인 한확의 봉호가 서원부원군인데 이 서원이 청주의 서원이다.[42] 통일신라시대의 9주 5소경 중 하나인 중원경에서 유래하였다. 1956년에 충주군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하면서 충주군의 나머지 지역은 옛 명칭을 되살려 중원군으로 개칭하였다.[43] 충주시 관내의 충주예성여자고등학교가 교명으로 사용하고 있다.[44] 서림 이씨의 본관이다.[45] 본래는 아산과 완전히 별개의 고을이었으나, 1914년에 부군면 통폐합으로 아산군과 합쳐졌다. 1922년에 아산군청이 온양면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온양면을 중심으로 아산의 시가지가 발달하였고, 장항선도 구 온양으로 지나가게 되면서 대외적으로는 아산=온양이라는 인식이 박혔다. 1986년에 아산군 온양읍이 온양시로 분리·승격되었다가 1995년에 아산군과 통합할 때 도농통합시의 이름을 아산으로 정하면서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만, 아산시의 도심은 지금도 옛 온양시 일대이며, 아산의 현관 노릇을 하는 곳이 온양온천역이기 때문에 온양이라는 지명이 아직도 아산의 별칭 혹은 아산의 도심 지역의 통칭으로 여겨지고 있다.[46] 온양 방씨, 온양 정씨의 본관이다.[47] 온양의 옛 이름.[48] 역시 온양의 옛 이름.[49] 세종과 소헌왕후의 삼남인 이용이 안평대군에 봉작되었다.[무] 통일신라시대의 9주 5소경 중 하나인 무진주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대 한국어의 '돌'이라는 단어를 진(珍)으로 훈차한 것인데, 무등산에서 유래하지 않았는가 추정된다. 757년에 무주로 개칭되었다. 현재도 무진대로의 도로명으로 남아 있다.[무] [52] 1935년에 광주군 광주읍이 광주부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읍면은 광산군으로 들어갔다. 광산 김씨의 본관이며, 광주 노씨도 한때 광산 노씨로 불렸다.[53] 광주에 있었다던 역참인 경양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경양방죽의 유래가 되었다.[완] 통일신라시대의 9주 5소경 중 하나인 완산주에서 유래한 것으로, 757년에 완주로 개칭되었다. 전(全)과 완(完)은 뜻이 같다. 1935년에 전주군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면서 전주군의 나머지 지역은 완주군으로 개칭하였다.[55] 완산 전씨의 본관이다. 전주 이씨, 전주 최씨의 별칭이 바로 완산 이씨, 완산 최씨이다.[완] [57] 완산의 별호이다.[58] 견훤의 성이라는 뜻으로, 후백제가 이곳에 도읍을 삼았던 것에서 유래하였다.[59] 고려의 왕족이었던 왕온이 승화후라는 작호를 받았다.[60] 936년에 설치된 안남도호부에서 유래하였다.[61] 한 고제 유방의 고향인 풍읍 패현에서 따온 것으로, 조선왕조의 본관인 전주를 한 고제의 고향에 빗댄 것이다.[62] 조선 중종과 희빈 홍씨의 아들인 이완이 봉성군에 봉작되었다.[63] 세종과 소헌왕후의 6남인 이유가 금성대군에 봉작되었다.[64] 능성 구씨의 본관이다.[65] 대구 달성에서 유래한 것으로, 1914년에 대구부와 달성군으로 분리되었다. 1995년에 달성군이 대구광역시로 통합되었고, 현재도 대구의 자치군으로 남아 있다. 달성 서씨의 본관이다.[66] 경주 월성에서 유래한 것으로, 경주를 본관으로 삼는 경주 김씨, 경주 이씨, 경주 최씨 등이 각각 월성 김씨, 월성 이씨, 월성 최씨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1955년에 경주군 경주읍이 경주시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월성군으로 개칭하였다. 1989년에는 경주군으로 다시 개칭되었다가 1995년에 경주시로 통합되었다. 경주시에 있는 월성원자력발전소도 舊 월성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67] 경주 월성 북쪽에 있는 숲으로,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신라의 별칭이기도 했으며, 조선 시대에도 계림이라 일컬어졌다.[68] 신라시대 경주의 별칭이었다.[69] 동경으로 지정된 것은 고려 때의 일이었지만, 신라시대에도 국토의 동쪽에 치우친 까닭으로 동경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70] 이항복이 경주 이씨라서 오성부원군의 작호를 받았다.[71] 인조와 귀인 조씨의 장남인 이징이 숭선군에 봉작되었다.[72] 인동 장씨를 일컬어 옥산문벌(玉山門閥), 혹은 옥산화벌(玉山華閥)이라고 하였다. 희빈 장씨가 사후 옥산부대빈(玉山府大賓)으로 추증되었다.[73] 성주군에 있었던 벽진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벽진 이씨의 본관이다.[74] 고려 말의 권신 이인임이 성주 이씨라서 광평부원군의 작호를 받았다.[75] 연일 정씨의 본관이다.[76] 김해에 있었던 금관국에서 유래하였다.[77] 남해군의 옛 지명으로, 예종이 대군 시절에 해양대군에 봉작되었다.[78] 1938년에 진주군 진주읍이 진주부로 승격되면서 진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된 바가 있다. 진양군은 1995년에 진주시로 통합되었다.[79] 진주 강씨를 진양 강씨로도 일컫는다. 고구려의 대장군이었던 강이식의 후손인 강진이라는 인물이 진양후(晉陽侯)의 작호를 받았다고 하며, 세조가 대군 시절에 세 번째로 받은 봉호가 진양대군이었다.[80] 중종이 대군 시절에 받았던 봉호였다.[송] 757년에 송악군이라는 이름이 처음 부여되었고, 개성군(지금의 개풍군)과 합쳐 개경이 되면서 송악은 별칭이 되었다. 송경과 송도는 모두 송악의 별칭이다.[송] [송] [고려시대] 고려시대에 개경을 부르던 별칭[고려시대] [86] 고려 시대에 개경을 부르던 별칭. 1304년에 원나라의 간섭으로 개경이 개성부로 격하되면서 현재까지 공식 명칭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87] 고려시대에 서경·동경·남경에 대비하여 개경을 부르던 별칭[88] 1304년에 개경이 개성부로 격하된 뒤에 관습적으로 부르던 이름.[89] 조선 시대에 경도한성부에 대비하여 옛 수도라는 뜻으로 붙인 별칭.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구도개성유후사(舊都開城留後司)라고 표기하였다.[90] 고조선의 옛 수도였다 하여 오래 전부터 평양의 별호로 사용되었다. 고조선 멸망 이후에도 평양의 지명이 낙랑군 조선현이였다. 고려의 작위 중 조선후의 조선은 평양 지역을 뜻한다.[91] 후대에 기자조선이 평양에 있었던 것으로 오해하고 평양에다 붙인 별호.[92] 한사군의 하나였던 낙랑군의 치소가 평양에 있었기 때문에 낙랑의 멸망 이후에는 평양 일대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93] 고구려 때 붙은 별호이다.[94] 고대 중국 주나라의 수도로, 지금의 뤄양(洛陽, 낙양)이다. 고려 시대에 평양을 빗대어 이렇게 표현하였다.[95] 세종과 소헌왕후의 8남인 영응대군의 두 번째 봉호가 역양대군이었다.[남경남해부] 발해의 남경남해부가 현재 북청군 자리에 소재했었던 것에서 유래.[남경남해부] [98] 백주 태씨의 본관이다.[99] 지금은 백주 태씨로 통합된 협계 태씨의 본관이었다.[100] 세종과 소헌왕후의 8남인 이염의 세 번째 봉호가 영응대군이었다.[101] 1938년에 해주군 해주읍이 해주부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벽성군으로 개칭하였다.[102] 세조가 대군 시절에 네 번째(마지막)로 받은 봉호가 수양대군이다.[103] 한 고제 유방이 수도를 지금의 산시성(섬서성) 시안시에 정하면서 장안(長安)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수당시대 이래로는 정식 명칭이 대흥(大興), 경조(京兆)였다. 명청시대 이래로 서안(西安, 시안)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현재까지도 시안의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104] 지명이 '동쪽 수도'라는 의미인 도쿄와 반대되는 서쪽 수도라는 의미이다.[105] 지명이 '동쪽 수도'라는 의미인 도쿄와 그에 반해 서쪽 수도라는 별명이 있는 교토 사이에 위치한 중간 수도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