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000000 40%, #000000 100%); color:#ffffff; margin: -5px -10px; min-height: 26px"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 등장인물 (전라좌수영) · 평가 · 시대 구현 오류 · 유튜브 스트리밍 |
1. 주요 인물
주요 인물 | |
이순신 | 류성룡 |
원균 | 선조 |
2. 조선
2.1. 전라좌수영
자세한 내용은 불멸의 이순신/등장인물/전라좌수영 문서 참고하십시오.2.2. 경상우수영
- 우치적
영등포 만호. 나중에는 순천 부사가 된다. 야인시대에서 왕발 역을 맡았던 이재포가 연기했다.[1] 일찍이 북방에서 종성부사로 있던 원균 밑에서 같이 종군한 바 있어 원균을 매우 잘 따른다.[2] 이순신에게는 원균과 더불어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인물로 나왔지만,[3] 칠천량 해전 때 원균으로부터 살아남아 이순신을 잘 모시라는 유언을 받고, 경상도 초계에 있던 이순신의 초가를 찾아가 이순신 앞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칠천량의 패전과 함께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았음을 전했다.[4] 이후로는 명량에서 남들 다 튀려고 할 때 이순신 옆에서 죽기로 싸울 것을 결의하거나[5] 조정에서 내린 면사첩에 불만을 제기할 정도로 이순신을 따른다. 1~4화에서도 묘사되는 왜교성 전투에서 황세득이 전사한 뒤 그의 시신이 수습되자 여러 장수들 중에서도 특히 슬퍼하며 "내가 갔어야 했소, 황 첨사."라고 오열하는데, 그 전까지 황세득과 이렇다 할 접점은 없었고 단지 칠천량 해전에서 함대를 다 잃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여전히 남아있던 것으로 보인다.
- 이영남
야인시대에서 유지광 역을 맡은 유태웅[6]이 연기했다. 강직하지만 다혈질인 면모를 보이는 무관으로, 경상우수영 소속 하급 권관으로 나중에는 장흥 부사와 가리포 첨사로 승진한다.
원균의 직속 부장으로 전란 초반부에 원균이 온갖 추악한 꼴을 보이는 와중에도 우치적과 더불어 원균을 잘 따랐지만, 전공을 위해 부하들을 사지로 모는 모습에 분개하는 등 원균에 반감을 품게 되었다. 평소 안면이 있던 부하가 전사하자 폭발해[7] 원균에게 달려들어서 "전공을 위해서 수급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이 나라 조선에 왜놈들에게 죽은 백성들이 너무 많아 산을 이룰 지경인데 그 수급을 베어서 바치면 되겠습니까? 죽은 사람은 어차피 말을 할 수도 없으니 왜놈인지 조선놈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독설을 퍼붓기까지 한다.
급기야 부산포 해전을 앞두고 원균, 기효근을 감금하고 함대를 탈취해 이순신에게 합류하는 대형 사고를 치기도 한다. 당시, 선조는 부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이순신이 선뜻 받들려 하지 않자 그를 포박해 오라고 윤두수를 파견했는데, 윤두수는 이억기에게 이순신의 지휘권을 빼앗아 부산을 공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억기까지 이순신에게 동조하자 원균을 꼬드겨 이순신 함대를 빼앗도록 했다. 이영남은 이에 반발하여 원균을 감금했던 것. 이 때문에 분노한 원균이 그를 칼로 베어서 중상을 입기도.
원균이 통제사가 되었을 때 사직하려 했으나 권준의 만류로 통제영에 남았으나 계속되는 원균의 횡포에 맞서다가 칠천량 해전 직전에 이순신이 남긴 자료를 태우는 원균을 작심하고 비판하다가 통제영에서 쫒겨나[8] 그대로 이순신이 있는 초계로 간 이후, 이순신을 줄창 따라다니면서 종군한다. 그러다가 칠천량 해전에서 패전하고 난 후, 날발과 함께 한산도에 들어가 어진, 청향, 평산과 서 노인 등 남아있던 주민들과 함께 한산도를 청야하고[9] 초계로 돌아왔다.
이후, 이순신 휘하에서 활양하다가 왜교성 전투에서 명나라 도독 진린이 단독 행동을 하다 위기에 빠지자 황세득에게 그를 구해오게 하지만, 끝내 전사하고 이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아 이순신에게서 등을 돌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정에서는 선전관을 파견해 왜군을 돌려보내는 것으로 전란을 끝내라는 명령이 내려지고 탈영병까지 속출하는 등 조선 수군이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군관 서한수에게 한 방 맞고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이순신에게 왜군을 돌려보낼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싸울 지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장수들 앞에 나서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물러서서는 안된다는 것을, 물러선다면 전란은 또다시 되풀이될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장군이 결코 싸움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라는 것을! 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그 누가 말리더라도! 심지어 우리 모두가 싸우지 않겠다고 해도! 장군께서는... 싸울 것입니다. 이것이... 장군과 우리의 차이점입니다.[* 프롤로그 격인 2화랑 102화에서의 대사가 살짝 차이가 있다. ||
그 후 발발한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을 구하기 위해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동귀어진을 시도하며 바다에 빠졌다가 이순신 함대에 의해 건져 올려졌으나 전사했다. 본인의 대사에 의하면, 그에게 이순신은 가장 두려운 사람이자 가장 자랑스러운 사람, 그리고 진정으로 닮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한다. 한편, 한산 대첩을 앞두고 부산으로 정탐을 나갔다가 왜군의 손에서 구출해왔던 청향이 이영남을 마음에 품은 것으로 표현되나 중간에 소리소문없이 빠지는 캐릭터가 많은 드라마답게 흐지부지되었다.
- 기효근
남해 현령. 김기복[10]이 연기한다. 우치적과 함께 원균을 따르며 이순신을 까대는 게 주 레파토리며,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걸로 묘사된다.[11] 칠천량 해전 직전에 우치적과 안골포의 적선을 치려 갔다가 혼쭐이 났고, 조방장이던 김완이랑 외해(바깥 바다) 정찰을 나갔다 풍랑에 죽다 살아난 이후에 김완의 설득에 입장을 바꿔 무모한 전략이라고 원균을 만류한다.[12] 원균이 바로 파직시키겠다고 일갈하자 사직서를 내면서 "모든 것은 저 자신의 뜻이다. 부하의 충언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승리도 없다."면서 나갔고, 나가면서 이억기, 이영남, 김완, 서한수 등과 작별하면서 "통제사를 잘 모셔달라."면서 퇴장한다. 이후로 출연이 없지만 기록에 남은 그의 행적은 사직서를 내고 나서 고향으로 귀향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모친이 물에 빠져 자살하자, 같이 자살하였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추록, 개백군(皆白君)에 추봉,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 한백록
지세포 만호. 김응석이 연기했다. 이영남과 더불어 경상우수영 인물들 중 그나마 정상적인 인물. 원균에게 충언을 아끼지 않지만 이 충언이란 것이 원균 입장에선 심히 거슬리기 때문에 원균에게 찍혀 부산포 첨사로 발령이 났고, 미조항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 서한수
가상 인물. 김주호가 연기했다. 극중에선 병졸 중에서 칼과 창을 매우 잘다루는 걸로 묘사 되었다.[13] 아버지 서 노인을 전장에 두고서 어떻게 집에 가 있을 수 있냐면서 처음에는 아버지를 제대시켜 주고 자신이 복무를 하겠다고 했으나 어렵다는 말에 그렇다면 아버지와 함께 복무를 하겠다고 청을 하여 경상우수영 휘하 군졸로 입대하게 되었다. 상관인 이영남과는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며[14] 이순신에 의해 마영갑, 정일수와 함께 군관으로 임명되었지만[15]원균의 통제사 취임 후 도로 강등. 칠천량 해전에서 죽다 살아났으며[16] 그 후 명량 해전에서 다시 군관으로 복귀하여 김억추를 보좌했다. 왜교성 전투에서 황세득과 더불어 진린을 구출하다가 붙잡혀 온갖 고생을 하다 석방되어 통제영으로 보내진다.[17] 왜교성 전투로 현실을 깨닫고 자포자기했던 이영남을 다시 재기하도록 만들었으나 노량 해전에서 전사.[18]
- 서노인
가상인물. 허현호가 연기했다. 서한수의 아버지이며 통제영 전 장졸들 중 최고령. 통제영 병졸들의 큰형님 격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살뜰히 챙긴다. 왜교성 전투에서 사로잡혔던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겉으로는 목숨이 그리 중하냐고 질책했지만 뒤에서는 안도한다. 노량에서 한수가 전사하자 아들을 품에 안고 편히 쉬라며 고개를 떨군다.[19]
- 배설
배역은 황범식.[20] 원균의 통제사 취임 후 이순신을 따르던 장수들이 줄줄이 사직한 뒤에 경상우수사로 부임했다. 칠천량 해전 당시 휘하의 전선 12척을 회령포(현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에 숨기고, 진주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당시 백의종군 신분이던 이순신한테 개기거나 작전에 나서면 퇴각을 입에 달고 살며 두 번의 탈영까지 하는 전형적인 무능한 찌질이로 묘사된다. 명량 해전 직전에 정탐을 가는 척 하더니 도주하면서 출연 끝.
- 안위
배역은 김관기[21]94회에서 거제 현령으로 등장했다. 작품의 피해자 중 하나. 명량해전 직전에 수군에 합류한 초짜 장수 1인으로 등장한다. 명량에선 겁먹고 퇴각을 주장하나 부장 마영갑이 강력하게 돌진을 주장하자 마지못해 따르지만 전투에선 자신의 안위안위의 안위만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전투 도중 이순신한테 호된 질책을 당하고 마영갑까지 전사하자 제 정신을 차리고 전투에 임했다. 명량해전 이후로는 출연이 끊겼다. 역사상의 안위는 드라마와는 달리 임진왜란 당시 부산의 일본군 진영을 불태우는 등의 전공을 세우고, 명량해전 이후 전라 우수사로 승진하는 인물이다.[22]
- 김응함
배역은 김용수. 94화에서 미조항첨사로 등장했다. 명량해전 직전 등장한 신참 트리오의 일원이지만 안위와 김억추에 비해 존재감이 심하게 없다.[23] 명량해전이 끝나고 등장하진 않지만 역사상의 김응함은 이후 벌어진 왜교성 전투와 노량해전에도 참전했다.
- 조계종
배역은 최진홍. 영등포만호에서 순천부사로 영전한 우치적의 후임으로 89화에서 신임 제장으로 통성명 하는 장면에서만 등장한다. 대사는 “ 영등포만호로 새로 보직된 조계종 이라고 합니다.” 가 전부이다. 통성명 장면 이후로는 등장이 없는데 실제 역사에서는 이순신과 명량 해전에 함께 참전했다.
- 안홍국
배역은 나재균.
2.3. 전라우수영
- 이억기받게. 전라좌수군 최고의 돌격장에게 악비의 검이 없어서야 어찌 돌격장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자네의 검은 돌려주네만, 정충보국하는 그 마음만큼은 나도 나눠 가졌다, 그리 믿게나.- 녹도 만호 정운에게 검을 돌려주며
1965년생 배우 최성준이 연기했다. 본래 이순신에게 호의적인 편이었으나, 옥포 해전에서 이순신이 단독으로 장계를 올린 것 때문에 이순신이 원균의 공을 가로챘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운을 비롯한 이순신의 부하들이 직접 찾아와 전투 참여를 호소하자 이로 인해 오해를 풀고, 당포해전에서 승전한 전라좌수군 앞에 25척의 함대를 이끌고 와 이순신과 연합 함대를 결성한다. 그 후로는 이순신의 좋은 협력자가 되며, 가끔식 원균의 무개념 행각에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원균이 통제사로 부임한 이후 마찰을 빚지만 수군 무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재직하다, 칠천량 해전에서 왜군의 포위망을 뚫고 전진하다가 배로 넘어온 수많은 왜군과 최후의 단병접전을 벌였다. 수십 명의 왜군을 베었지만 중과부적으로 끝내 포위당하고 왜군 부장의 칼 던지기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 황세득
배역은 송금식.[24] 이순신의 처종형이다. 직위는 장흥 부사이며 나중에는 사도 첨사가 된다. 주무기는 대부. 수군임에도 해변가에서 해안방어나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등 전체적으로 해병대사령관에 가까운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작중에선 여러 가지 의미로 존재감을 내뿜는데 명량해전에선 남들 다 바다에서 싸우고 있는데 홀로 해변가에서 앙부일구를 보며 일정 시간마다 화차로 신호탄을 날려연을 안 쓰고?수군 배들에게 시간을 알려 주는 역할을 맡았고, 왜교성 전투 땐 무슨 무인시대의 금강야차마냥 대부로 무쌍을 찍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균이 통제사가 되자 사임했다가 명량해전부터 복귀했고 이후 왜교성 전투에서 진린을 구출하다가 장렬히 전사한다.
- 김억추
배역은 안형식.[25]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후임으로, 명량해전 직전에 합류하지만 전투를 강행하려는 이순신을 고깝게 본다. 전투에서는 안위와 김응함이 쫄아서 대놓고 숨거나 허둥대는 반면 이쪽은 그래도 붉은 철릭이라고 가오를 챙기며, 돌격을 주장하는 부장 서한수를 "네 이놈, 닥치거라" 한마디로 진압한다.[26] 명량 해전 이후로는 등장이 없다.[27]
2.4. 경상좌수영
- 정발
부산진 첨사. 57회 임진왜란 발발 초반에 부산진 전투에서 등장한다. 관민들과 합심하여 왜군들과 맞서 싸웠지만 정발을 포함하여 모두 전사한다. 정발이 경상좌수영 소속이라 경상좌수영 문단을 따로 만들어 서술했으나, 드라마에서 경상좌수영이 활약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도 그럴것이 경상좌수영은 다른 수영과 연합작전이고 뭐고 짜기도 전에 임진왜란 극초반에 바로 증발해 버려서 실제로도 한 게 없다.[28]
- 박홍
배역은 염정구. 경상좌수사. 57회에서 동래성 전투이후 부장 2명만 이끌고 도주하는 장면만 나왔다.[29] 이후 박홍이 조정에 상소를 올리게 되면서 조정에서도 전쟁 발발 사실을 알게된다.
2.5. 육군 무관들
- 이일
이일재가 배역을 맡았다.[30]성공적인 캐스팅스태프: 니가 이일이제~방진 밑에서 원균과 함께 수학한 바 있으며 이때부터 이순신을 견제했다. 이순신이 조산보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의 상관인 북병사로 재직했으나, 이순신이 야인들의 공격을 감지하고 병력 지원을 요청하는 것을 묵살하면서 피해를 키웠으며 패전 직후에는 오히려 이순신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이순신과 이경록이 백의종군을 하게 만들었다. 이후 생각이 바뀌었는지 이순신에게 사과하고 다시 복직시켜 이순신의 조언에 따라 시전부락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개념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거북선 침몰 사건 때는 다시 이순신을 깐다. 상주 전투에서 패하고 도주하는 장면을 끝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 신립
차기환[31]이 연기. 윤두수를 위시한 서인 계열의 인물로, 괄괄하고 호전적이지만 지략은 0인 전형적인 맹장 스타일의 무장이다. 이순신을 내심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순신이 임진왜란 개전 전부터 주장했던 '바다에서 결진하여 싸우는 것'에 매우 부정적이다. 신립뿐만 아니라 이일, 원균을 비롯한 대다수의 장수들이 이순신의 의견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불멸의 이순신 팬들에게도 희대의 사건으로 평가받는거북선 침몰 사건에서는 이순신의 쪼인트를 까기도 했다. 이후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왜군을 막기 위해 충주로 내려가 전투를 치르게 되는데 조령을 틀어막고 싸우자는 이종장, 김여물 및 부장들의 간언을 묵살하였고 군관 이운룡이 부하들을 이끌고 사지로 들어 갈 순 없다고 만류하자 곤장을 친다.[32] 이튿날 탄금대 전투에서 예정대로 기병들을 개돌시키다가 늪지대에 걸려 고전하는 사이 왜군 조총병들에게 당해 대패하였고 신립 역시 최후에 홀로 남아 이도류를 들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장면을 끝으로 전사하게 된다.
- 권율
도원수. 배역은 김영기. 69화에서부터 광주 목사의 신분으로 등장하며 용인 전투에서 조선군이 와키자카에게 패배했을 때 거의 유일하게 자기 휘하 부대를 온전히 데리고 퇴각했다. 왜란을 통해 이름을 떨친 명장답게 상당한 개념인으로 나오며, 문관임에도 그 판단력을 인정받아 전라도 방어를 책임질 총지휘관으로 임명된다. 이후, 한산도 대첩이 방영되던 에피소드에서 권율은 이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권율: (원균의 곤장을 치는 병사들에게 멈추라 손짓한 뒤) 당장 부산을 쳐! 그대가 이끄는 수군이 미적거리는 동안 왜선 천여 척이 또 다시 도해를 한다지 않는가!원균: 장수를... 이같이 모욕하는 법은 없소이다!권율: 어명을 거역한 죄를 묻고 있음이야! 기실, 어명을 거역한 죄를 묻기엔 장형이 너무 가볍지. 그렇지 않은가? 뭣들 하느냐, 죄인을 매우 쳐라!(장형이 끝난 후)원균: 육군이 먼저 공격을 해야 하오이다. 가덕과 안골의 적을 물리쳐 준다면, 그 때 수군이 부산으로 가겠소이다.권율: 그대의 눈에는 나와 육군이 그리 만만해 보였는가?원균: 장군.권율: 아니면, 수군 최고의 수장이 된 자가 병략의 기본조차 모르는 겐가? 공성을 하자면 필요한 병력은 최대 적의 열 배. 허면 안골과 가덕에 포진한 적이 각각 3천만 돼도 병력에 필요한 우리 육군은 6만. 그만한 군사도 없지만 있다 해도 육군을 모두 안골과 가덕의 전투에 투입할 수는 없네. 그 틈을 타 왜적이 모조리 도성으로 향하는 진격로를 장악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그대가 질 텐가?원균: 가덕과 안골의 적을 육군이 물리쳐주지 않는다면, 수군의 안위 또한...!권율: 수군의 안위를 그리도 걱정하는 자가 부산을 치겠다?! 전하께 허언은 왜 했는가! "지금 부산을 공격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수군만의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육군도 지원하기에는 여유가 없다." 그런 이순신의 판단에 어찌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전하께 헛된 희망을 품게 한 이유가 뭔가 대체! 그대의 목적은 오직 하나... 이순신을 무너뜨리고 삼도 수군의 수장이 되는 거였어, 그렇지 않은가!원균: 장군...권율: 수군의 수장이 되고 나니, 그 다음에는 조선군 최고 지휘관인 도원수 자리가 탐났던 것은 아니었는가? 그래서 날 걸고 넘어지려 한 것인가! 육군이 먼저 왜적을 치지 않아 부산으로 진격을 할 수 없다 장계를 올린 까닭이 그거 아닌가!원균: 말씀이 좀 지나치시오이다!권율: 허나! 그대의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일세. 난, 이순신만큼 순수하질 못하거든. 이기든 지든 이젠, 자네와 수군이 부산을 칠 수밖에 없어. 그대가 뿌린 것을 그 누가 거둔단 말인가? (그대로 퇴장)- 불멸의 이순신 91화, 삼도수군통제사 원균과의 대화.
통제사가 된 원균이 육군의 도움 없이 출전할 수 없다고 하자 불러다 장을 치면서 일침을 가하고, 부산포를 향해 출정시킨다. [33] 이때 배우 김영기의 일갈은 조연이라도 꼭 봐야 할 숨겨진 명장면. 이후 백의종군을 하는 이순신과의 대화도 세상에 물들어 영악해진 자신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정의로운 면이 매우 잘 드러나는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홀로 고민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권율의 방에 이순신 입장)이순신: 소인을 부르셨다기에...권율: (두 사람 모두 자리에 앉은 후) 원균과 수군은, 부산으로 진격을 할 것이오.이순신: ...(권율을 그저 보기만 한다.)권율: 내가... 그리 하라 했습니다.이순신: ...(이내 눈길을 떨군다.)권율: 전장을 무덤으로 삼는 것은 군인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렇지 않소이까?이순신: ...권율: 싸워 보지 않고서는, 승리와 패배를 가늠할 수 없는 경우도 있소이다. 어차피 부산을 친다면은, 더 많은 수의 적이 건너오기 전에 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이순신을 보고 갑자기 화가 솟아오르며) 그 침묵의 의미는 뭡니까, 날 조롱하는 겁니까?이순신: ...권율: 장군처럼 하지 못하는 날 비웃는 겝니까, 뭡니까!이순신: ...(이내 눈을 들어 권율을 다시 바라보지만 여전히 침묵한다.)권율: (책상을 치고 일어나 이순신의 시선을 회피한다.)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마시오.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초탈한 듯, 자신의 처지가 가장 나쁜 데도 나를 걱정하는 그 눈. 부담스러워요.이순신: ...권율: (다시 이순신을 바라보며) 나도 그대처럼, 나도 이 장군처럼 했어야 옳다고, 일신의 안위도 목숨도, 알량한 장수의 명예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이 장수다, 조국의 명운을 위해서는 못할 것이 무에 있나, 그리 비웃는 것으로 보입니다!이순신: ...권율: (다시 자리에 앉으며) 뭐라고 말을 좀 해보세요. 내게 할 말이 많을 것이 아닙니까!이순신: ...권율: 누구나 이 장군 같을 수는 없소. 아무런 계산 없이 모든 것을 내던지기에는 보통의 사람들은 두려운 것이 너무나 많아요. 역도의 굴레를 감내하고, 백의종군의 불명예를 감내하기에는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나 많고, 세상에 닳고 닳아 일찌감치 영악해졌소.이순신: ...(권율을 슬픈 눈길로 바라본다.)권율: (책상을 치며) 차라리, 날 비웃고 질책하기라도 하시오! 여전히 태연한 척 그리 앉아 있지 말고 사람답게 분기라도 한 번 터뜨려보라 이 말이외다!이순신: ...장군을 도울 길이 없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은 말이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리 여겨집니다. 무슨 말을 할까보다는 무슨 일을 할까가 중요한 때입니다, 장군.권율: (또 책상을 치고 씩씩대며) 원균... 그 다음은 납니다. 그가 물리칠 수 있을 만큼의 적을 물리치고 전장을 무덤으로 삼는다면, 그 다음 죽어줄 자는 나에요. 이 미쳐돌아가는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뿐입니다...- 불멸의 이순신 91화, 권율과 이순신의 독대.
통제사에서 파직되어 자신의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는 이순신에게는 여전히‘통제사' 혹은 ‘이 장군’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해라체나 하게체 같은 반말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하오체, 더 나아가서는 하십시오체까지 경어를 쓰며 존대해 주었다.[34] 심지어 93화에서는 (정황상) 이순신이 적진을 살펴 왜군을 몰아낼 방도를 찾고 싶다며 찾아오자 직접 밖으로 나와서 맞이해주기도 했다. 따로 독대를 하는 장면에서도 주옥 같은 대사를 줄줄 내뱉는다. 불멸의 이순신 극중 91화는 권율 에피소드나 다름없을 만큼 그의 인간적인 면이 매우 잘 드러난 부분이었다. 위 스크립트에서도 드러나듯, 시청자 보기에야 속 시원하게 원균을 두들겨 패줬고 원균의 억장을 산산이 깨부수는 사이다 역할을 해주기는 했으나, 정작 권율 본인의 심정은 그러지 못했다. 어차피 부산을 칠 수 있다 큰소리 쳐서 통제사 자리를 꿰찬 것은 원균 본인이니 적정이 어떻든 이제 원균은 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실상 죽을 자리가 될 부산으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권율도 이를 알고 있었고, 원균이 부산을 되찾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그 다음 부산을 쳐야 할 자는 육군 최고지휘관인 자신이 될 테니 권율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둬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후 원균의 요구를 수락해 함대를 퇴각하게 해주면 함대가 전멸하는 것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순신의 간청 끝에 "내게도 옳지 못한 것은 싸워서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 라며 외줄포에 기항한 함대에 귀영을 명령하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권율의 판단도 원균의 포기도 딱 하루의 시간이 늦어 결국 칠천량에서 함대가 전멸하고 만다.
이순신의 행보를 지지해주는 좋은 협력자 중 한 사람이지만, 명량해전을 앞두고는 고작 12척의 함대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육군에 합류하지 않는 이순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이유야 당연히 칠천량 패전 때문. 임진왜란 시기의 이항복과 함께 정유재란 시기에서는 멘탈이 바스러지는 모습을 보이는 인물로 묘사된다. 역사고증을 논외로 쳐도, 누구든 그 상황에선 정신줄 부여잡는 게 더 신기한 지경일 것이다. 심지어는 "원균보다 더 미친 짓을 하려고 작정했어요!"라고까지 전에 없던 막말까지 퍼붓는다. 그러나 그 미친 짓을 하려는 자가 조선 역사상 최고의 명장인지라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되고, 이후부터는 다시 이순신의 판단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징비록에서 배우 김영기가 같은 배역인 권율로 다시 출연한다.국민가토에 이은 국민권율
- 이운룡
배역은 야인시대에서 임화수 역을 맡은 최준용. 실제 역사에서는 북방 6진을 지키던 시절 충무공과 함께 백의종군을 지낸 바 있는 인물. 원래 역사대로라면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수군에 들어가서 여러 해전에도 참전했어야 했지만, 드라마에선 어째서인지 녹둔도편 이후로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이건 최준용의 개인사정 때문에 하차하느라 이렇게 처리된 것. 그 덕분에 본래 역사에선 이운룡이 원균에게 간하는 역할을 고스란히 한백록이 전부 다 커버하는 요상한 연출이 이어졌다.
- 김시민
정의갑[35]이 연기. 불멸의 이순신에서 진주 대첩도 조명했기 때문에 그의 활약이 잘 부각되며, 허구이긴 하나 권율, 이순신과 조우해 진주성을 방어할 책략을 짜는 등 지장으로써의 면모도 두드러진다. 왜군과의 단병접전 도중 총에 맞고 전투 종료후 숨을 거둔다.
- 유숭인
김영선이 연기. 경상우병사 직책으로 진주 대첩 직전까지 창원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다 진주성을 돕기 위해 합류하려 했으나, 왜군이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어서 성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자 뒤이어 오는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37].이 때 유숭인이 싸우다 전사하는 모습을 본 와키자카의 웃음소리가 아주 비열하게 들린다
- 임경번
이우석이 연기했다. 북방 6진을 지키던 시절 조산보의 감관. 녹둔도 전투에서 여진족에 맞서 싸우는 도중 포로가 되었으며, 뒤늦게 이순신이 구하러 오지만 풀려나 싸우던 와중 전사한다.
- 황진
실제 역사에서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하는 인물인데, 극중에서는 이치 전투에서 전사한다.
- 이경록
경흥부사. 이순신이 조산보 만호였던 시절 그에게 병력을 지원해 주었고, 함께 1차 백의종군을 치렀다. 드라마에선 더 이상 출연이 없지만 임진왜란 시기에는 제주 목사로 부임하며 본토에 물자를 지원했다. 병력을 차출해 지원군을 보내겠다고 제안했으나 조정에서는 제주도의 방위가 우선이라며 거부했다는 기록도 있다.
- 정담
김제군수. 웅치전투 지휘관으로 드라마에서 웅치전투를 묘사하며 잠깐 등장한다. 실제 역사대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다.[38] 작중 대사가 한줄인데, 실제로 정담이 했던 말을 대사로 사용했다.[39]
2.6. 조정 인물
- 윤두수
배역은 정동환.[40] 서인의 수장격 인물. 원균과 가깝게 지낸다. 작품 초중반까지는 임진왜란 극복을 위해 당파가 다른 류성룡과도 나름 협력하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한적도 있었으며 명이 내렸음에도 부산포로 출정하지 않는 이순신에게 항의하고 여차하면 압송하려고 좌수영을 찾았다가 결국엔 그의 의지를 높이 사 자신의 목숨과 가문을 담보로 그를 믿어줄 것을 선조에게 진언하기도 한다.자존심도 없는 미련한 인사같으니라고. 내가 졌소. 이 나라 조선의 경영은 서애가 나보다 한 수 위요.(대감...)(대감!)역사를 기록하는 자들, 그 후세들은 서애가 맡아주시오. 허나, 그들에게 날 충신으로 기록하지는 말라고 하시오.40년 간을 국녹을 먹었으나, 지나간 세월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세월이었어요.동서로 갈라진 지 20년. 아니라, 아니라 해도, 국익보다는 자당의 이해를 앞에 두고자 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던 듯 싶소이다.무엇보다... 이 나라 조선의 자존감을 내 손으로... 우리의 손으로 지키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거늘...명국에 기대고... 사대의 예를 다하는 것으로 이 나라 조선을 능히 지킬 수 있다 믿었던 죄...!그 죄를 결코... 씻을 수 없을 겝니다...(대감...)명 사신 양호에게 류성룡이 무릎을 꿇고 진언하여 지원 요청 허락을 받아낸 후. 이때까지만 해도 윤두수는 류성룡의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나라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부산포 해전을 전후하여 이순신의 위상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경계, 그에게 완전히 적대적인 입장으로 돌아선다. 역도로 몰아붙이는 것은 물론 그가 체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되었을 때에는 직접 심문했는데, 사실만 말하기는 했지만 특정 사실만 강조하고 고압적인 말투[41]를 쓰는 등 어그로를 팍팍 끌면서 악역으로 자리한다.[42] 칠천량 해전 후의 모습이 가관인데, 이순신을 추국하며 반쯤 죽여놓고 원균이 대패하자 류성룡에게 은근슬쩍 “'역도' 이순신에게 죄를 씻을 기회를 주자"는 발언을 했다. 직후 뚜껑이 열린 류성룡에게 멱살을 잡혔다.[43] 류성룡과 이순신이랑 대립했다는 이유로 본 드라마에서 다소 폄훼되는 인물. 윤두수는 비록 이순신 탄핵 건으로 류성룡과 대립하기도 하였으나 이항복처럼 서인 중에서도 중도파였던데다가, 유성룡과도 나름대로 말이 통하는 사이였다. 실제로 유성룡 탄핵 사건 때에도 유성룡 본인이 윤두수를 명으로 보내기를 추천했고, 서애집에 의하면 윤두수의 부음을 듣자 남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사람은 오늘날 쉽게 얻을 수 없다. 지나간 임진년 무렵에 만약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담당하게 하였다면 우리들은 이미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요사이도 자못 공평한 의론을 주장했는데 갑자기 이 지경이 된 것도 운수이니 어찌하겠는가.'라고 안타까워했다. 본작에서는 아주 악독하고 교활한 노대신으로 나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저렇게 애도한 것이 조금 어색해진다.# 오히려 징비록의 묘사가 실제에 그나마 더 가까운 편이다.
- 정철
배역는 안대용.
- 정탁"이순신은 역도가 아니에요. 죄 없는 자에게 죄를 묻는 것은 부당한 일이오. 헌데 그 부당함을 알면서도 항거하지 못하고, 정의를 보고서도 외면하려 든다면 선비로서의 우리의 생명은 이미 끝인 겁니다. 살아 있는 고깃덩이에 불과해요! 난 그리 욕스럽게 연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소이다!"
야인시대에서 장택상 역을 맡은 임혁주가 연기. 당파싸움보다는 실무에 집중하는 유능한 관료으로 묘사되며, 이순신에게도 우호적인 편이다. 이순신이 한양으로 압송당해 국문당하고 있을 때 다들 선조가 무서워서몸사을 사리는 와중에도 홀로 목숨을 걸고 신구차를 올려 그를 구명했다.
- 이항복서인인 저마저 당론을 배반하고 이순신을 구명하겠다 목숨을 걸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전하의 눈치를 살피고자 복지부동했던 대간과 삼사의 언관들이 어찌 나오리라 보십니까?(윤두수: 이순신은 역도야. 헌데 자네가 나서서 그를 영웅으로 만들겠다는 겐가?)이순신이 역심을 품었다면 국청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 당당할 수 있었겠습니까!(윤두수: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대체?)이순신은 처음부터 영웅이었습니다. 허나! 이 나라 조정과 군왕이 그 같은 영웅을 담을 그릇이 못 되었던 겝니다! 그래서 질서를 유지하고자 영웅을 역도로 둔갑시킬 필요가 있었던 게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배역은 박병선.[44] 윤두수의 당론을 따르는 서인. 이순신을 인정하지만 서인의 입장에서 이순신을 바라보기 때문에 부산으로 출전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기도 했으며 이순신을 옹호하는 장인을 국왕이 해코지할까 염려하여 자중하라고 일러둔 적도 있다. 하지만 이순신이 파직되고 의금부로 압송돼 고초를 당하자 이건 아니라며 윤두수를 찾아가 정탁의 신구차에 동참할 뜻을 밝힌다.
- 윤근수
윤두수의 동생. 형과 더불어 이순신 모함에 앞장서는 인물. 배역은 이원발.
- 윤길춘
배역은 기주봉. 선조의 최측근으로 내시부 상선인데, 선조가 아직 정사에 충실히 임하던 즉위 초기 전국에 가뭄이 든 상황에서 궁녀들이 길바닥에 쌀을 몇 톨 흘린 것을 줍고 있던 모습이 선조의 눈에 띄어 기용되었다. 하지만 점차 흑화되는 선조에게 간언하기보다 그에 편승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46] 이순신과 적대적인 윤두수, 윤근수 형제와 가깝게 지내며 본인도 이순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 이산해
김준모가 연기했다. 임진왜란 전에는 조정의 주요 대신중 한 명이었으나 전란이 발발한 후 류성룡과 함께 책임을 지고 사직하였으며, 그 뒤에도 유성룡을 비롯한 동인 세력과 전황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이 몇 번 보이다가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 이원익
윤덕용이 연기했다.[47] 실제로는 정탁과 함께 이순신 구명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물이었으나, 이 작품에서는 "어심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 있다. 복지부동이 상책이다."라며 신구차를 올리려는 정탁을 만류했다. 하지만 정탁의 반박에 느낀 바가 있었는지 그 후로는 이순신 구명에 동참한다.
- 김성일
무인시대에서 김보당, 태조 왕건에서 전의갑을 맡았던 권혁호가 맡았다. 통신부사로서 일본에 다녀와 전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보고하였고, 유성룡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는 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나 백성들이 혼란에 빠질 수 있어서 그리 고했다 털어놓는다. 극의 중심 자체가 조선 조정이 아니라 이순신이었기 때문에 통신사로 다녀온 후에는 전혀 등장이 없어서, 임진왜란 초의 활약에 대해서는 그려지지 않았다.
- 황윤길
KBS 사극마다 조연으로 꾸준히 등장하는 임병기가 맡았으며, 통신정사로 일본에 다녀오는 대목 외에는 출연이 없다.
2.7. 왕실 인물
2.8. 그 외 인물
- 방연화
최유정이 연기하였다. 이순신의 부인. 연화라는 이름은 창작 설정이다. 실제론 방씨 부인의 이름은 불멸의 이순신이 종영된 이후에야 방수진으로 밝혀졌다. 전형적인 조선 시대 현모양처의 모습을 보여준다.
- 이정
이순신의 부친. 박철호[49]가 연기. 이순신이 어릴 때 조광조의 제사를 지내다가 역도로 몰려 고초를 당한 바 있으며,[50] 이 탓에 썩은 정치를 증오하여 자식들의 출사를 결사 반대한다.
- 이요신
이순신의 둘째 형. 한범희[51]가 연기. 학문에 뜻이 있었으나 아버지에게 글 배워서 뭐하겠냐는 호통을 듣고 현실을 직시하며 술이나 퍼마시는 한량이 된다.
- 송병택
오리지널 인물. 윤기원이 연기. 아산 사또 아들내미로 이순신이 과거를 대리해 준 덕에 초시 장원 - 성균관 - 출사 테크를 타지만[52] 이순신이 부당한 세금 징수에 항의하여 자기 아버지인 사또에게 행패(?)를 부린 것도 있고 자신이 대리시험으로 출세한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쫄리니까연줄을 이용해 견제를 심하게 넣어 이순신에게 갖은 고생을 하게 만든 장본인. 성균관에서는 류성룡과 동문수학한 사이로 이순신을 마구 까대지만 류성룡은 그냥 흘려 넘긴다. 이순신의 무과 급제 후 조산보 만호 재임까지 14년이 타임워프되면서 별다른 언급없이 퇴장했다.[53] 여담으로, 김명민과 윤기원은 1996년 SBS 공채탤런트 6기 동기생이다.
- 이면
이순신의 막내아들. 작중에서 유일하게 등장한 이순신의 자녀다.[54] 한산도 대첩과 명량 해전 패전에 대한 보복을 위해 아산에 쳐들어온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왜군들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다.
- 날발
자세한 내용은 날발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한갈이 연기. 이순신의 호위무사 역할이다. 곤양 도공의 자식으로 왜군에 의해 부모를 잃었으며 이순신이 곤양에서 생활할 때 많이 챙겨 줬다.[56] 나이가 차자 녹둔도의 이순신을 찾아갔고 그때부터 이순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 임천수
오리지널 인물. 김규철[57]이 연기. 임란 당시 순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활약했지만, 배우인 김규철의 갑작스런 부상[58] 으로 인해 중도하차 당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게다가 그와 강하게 엮인 몇몇 인물들(천무직, 홍이 등)까지 한꺼번에 강판당하고 만다.[59] 임천수는 처음에는 아버지 묘와 가업까지 버리고 이순신을 따라가는 친구였지만 돈맛을 보고 "넌 과거 보고 임직하면 그만이지만 난 이 일 없으면 갈데 없다"며 점점 권력에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결국 허 도주와 공모해 함께 밀거래를 일삼는 등 타락한다. 그 후 허 도주가 잡히고 행수직에서 짤려 인생이 파탄나자 복수심을 품고 이순신의 발목을 여러 번 잡는다.[60] 임진왜란 때 악역으로 대활약(...). 조선과 왜국을 줏대없이 오가며 "한 몫 단단히 잡아보자"를 입에 달고 사는 비열한이 되어있다. 배우 김규철은 이후에 달관한 듯 사극을 포함한 많은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는다. 그리고 2015년의 어떤 드라마에서 최종보스가 되어 돌아왔다!
- 박미진/박초희: 김규리[61]가 연기한 오리지날 인물.
자세한 내용은 박미진(불멸의 이순신) 문서 참고하십시오.
1인 2역. 박미진과 박초희는 모녀 사이로, 박미진이 박초희의 어머니이다. 박초희의 경우 곤양 도공들의 손에 키워지면서 충무공과도 인연을 맺게 되고, 임진왜란 때도 활약한다는 설정으로 가려고 했었다고 했으나, 아쉽게도 배우인 김규리의 스케줄 문제(영화 '분신사바' 홍보)로 인해 중도하차함으로써 실현되지 못했는데 역설적이게도 김규리와 방연화 역의 최유정은 자사 드라마 장희빈에서 숙빈 최씨 역 후보에 올랐으나 영화 촬영 등의 이유로 고사해 버렸다.
- 청향
오리지널 인물. 전예서(전익령)가 연기했다. 석봉 한호의 제자로 조선 최고의 시기(詩妓)[62]이며 대단한 배포를 가지고 있다. 류성룡을 따르면서 이순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조정에 실망하여 희망을 버리고 낙향하여 서당 훈장이 되려는 류성룡에게 "그럼 영감께 배우는 자들이 배울 것은 희망을 버리는 법입니까"하고 일침을 가했다. 이후, 임란 당시 류성룡을 따르다가 평양에서 다시 한양으로 내려가 임천수를 죽이려고 의병에 가담했다가 포로로 잡혀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넘겨졌고,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와키자카의 수청을 들었다. 거북선에 대한 공격정보를 듣고 탈출하다 왜군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으나 이영남에 구출된다. 이후 전라좌수영에서 부상병을 돌보는 일을 하며 이영남와 플래그가 서기도 하며, 명량 해전 당시 어진을 비롯한 주민들과 강강술래를 한 것을 끝으로 퇴장. 기생이지만 의기가 넘치는 여걸.
- 천무직
이한위가 연기했다. 첫 등장은 얍쌉한 소매치기로 나왔지만 실은 정이 많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성격. 임천수와 함께 상단 일꾼 시절부터 왜놈에게 붙을 때까지 쭉 함께 한다. 등장하는 내내 임천수의 막장행보에 불안&울화에 가슴을 치며 산다. 이에 맞게 임천수가 하차하자 홍이와 같이 중도하차했다(...)
- 방진
김동현이 연기. 방연화의 아버지이자 무인을 양성하는 교육자로 이일, 원균 등 여러 제자를 키워냈다. 상단 꼬봉 노릇을 하는 이순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제자로 특별 채용하며 나중에는 사위로 삼는다.
- 남궁두
조경환이 연기했다. 이순신의 스승으로, 방진의 추천을 받은 이순신이 곤양(현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에 내려가 가르침을 받은 인물이다. 장평과 미진을 일본으로 잡아가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부하들과 싸우다 전사한다. 이순신의 무예 스승일 뿐 아니라 사상적 스승이라 할 만한 인물로 무(武) 자를 파자하면 지과(止戈)가 된다며 진정한 무인이 될 것을 당부했으며, 이순신은 남궁두에게서 받은 검을 노량 해전 무렵에 이영남에게 물려줄 때까지 보관하고 있었다.[63] 가상 인물로, 16세기 후반 당시 남궁두(南宮斗)라는 인물이 있기는 했으나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 도사(道士)처럼 묘사되는데다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인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광해군 대인 1620년까지 살았다.
- 소은우
손종범이 연기했다. 남궁두의 제자로 "서울 양반" 이순신과도 일찍이 안면을 텄다. 왜란이 터지지만 다 도망가면 누가 가마를 지키냐며 곤양에 그대로 남아 왜놈들에게 억류되고, 사무라이가 된 장평을 설득해 일본군의 기밀을 빼돌리지만 와키자카에게 들켜서 죽는다.
- 이장평
오리지널 인물. 조재완이 연기했다. 곤양의 도공으로 청년 시절의 이순신과 만난 적이 있으며 그로부터 글을 배우고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다.[64]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납치 당해 일본에 끌려가 사무라이가 되었다. 이때 '고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65] 도자기 기술을 인정받아서 와키자카에게 신임을 얻고 임진왜란에도 참전해 조선 도공들을 납치하는 임무를 맡았다.[66] 곤양에서 자신의 동네 형인 소은우를 만났을 때 왜국으로 끌려간 이장평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일본 수군 휘하에서 명령에 따라 없애야 할 전라좌수사가 자신에게 어릴때 글을 가르쳐 준 그 이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67]에는 정보를 빼돌리고 역정보를 흘리는 등 그를 도와준다. 결국 와키자카에게 들켜서 끌려갔고, 한산도 해전에도 끌려와 와키자카의 대장선에 실려 조롱을 당한다.[68] 그러나 와키자카의 수군은 이순신의 학익진 앞에 처참하게 패배하였고 이 광경을 지켜본 장평은 아주 즐겁게 와키자카를 비웃으며 도발한다. 결국 분노를 이기지 못한 와키자카가 장평을 베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죽기 직전에 와키자카에게 남긴 훈계가 인상적으로 표현되었다.[69] 이후 날발에 의해 시신이 수습되어 이순신에게 전해진다. 이 배역을 맡아 연기했던 배우 조재완은 2015년에 징비록에서는 종의지 역으로 나온다.
- 장삼복
오리지널 인물. 양재원이 연기했다.[70] 고향 옥포가 도도 다카도라 군에게 유린당할 때 해안가로 백련이[71]와 함께 바닷가의 협선이 있는 곳까지 간신히 도망쳤으나 백련이가 배에 같이 타지 못하여 왜군에게 납치당한 아픔을 안고 전라좌수영으로 피난을 왔다. 이에 대한 한과 복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좌수사 이순신에게 전의를 표현하였고, 순천부사 권준에게 도도 군영을 정탐할 때 길잡이 역할을 하는 임무를 설명받는다. 하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백련이가 왜군 무장의 칼에 살해당하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는데, 잠입한 사실이 들통나자 날발과 공태원을 포함한 나머지 정탐 요원들은 삼복만이라도 살아남기를 바라며 자신들이 희생하겠다고 했으나 삼복은 오히려 자신이 희생하겠다고 밝힌다. 결국 날발과 공태원 등이 탈출할 수 있도록 이목을 끄는 것으로 희생하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 횃불을 화약에 붙여 근처에 다가온 병사들과 자폭하는 것으로 퇴장.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매우 드문 날발도 그의 희생을 비통해하며 옥포 해전에 출항하기 직전 '장삼복, 자네의 원한을 풀어주겠다'고 독백하는 장면이 나오며, 이순신도 진혼제를 지내줄 것을 명한다.
- 장백수
배역은 강민석. 이순신이 북방 6진을 지켰던 시절에 거느렸던 병졸. 사냥꾼 출신으로 궁술에 능하여, 이순신 휘하에서 습사수(궁수) 훈련장이 되고, 아들을 낳자 이순신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청하는 등 각별한 사이였다. 그러나 집안 사정이 곤궁하여 임천수의 꼬임에 넘어가 여진족과 내통하여 화살을 건네주었다가 발각되어 이순신의 손에 처형을 당한다. 장백수가 자신의 권한을 일부 빼앗아간다고 불만을 표했던 오형을 비롯해 병사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이순신 자신도 평생의 아픔으로 남을 것이라고 독백.하지만 전라좌수사 부임 이후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생전에 이순신에게 아들에게 지어줄 이름을 새겨 내어주었는데, 이순신은 유족에게 이 활을 보내며 장백수는 여진족에 맞서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고 전하게 했다. 이순신이 지어준 아들의 이름은 현(賢).
- 최호
배역은 석정만. 충청수사로 이순신이 파직되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할 때부터 간간히 보인다. 붉은 철릭을 입고 등장하는 여러 다른 장수들과는 달리 회의 장면에서도 대사도 한마디 없고 비중은 엑스트라급으로 공기수준이다. 그래도 칠천량 해전이 있기전 출정식에서도 원균이 입고있는 갑옷과 동일한 두석린갑을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사는 없다.[72]
3. 일본
작중에서는 일본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부를 때 일본인들끼리는 일본식 발음으로, 조선인과 명나라인들은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는 것으로 차이를 두었다. 예를 들어 '고니시 유키나가'의 경우 일본인들은 '고니시'라고 부르지만 이순신 등 조선인과 명나라인들은 '소서행장' 이라고 부르는 식[73]. 다만 극이 진행될수록 이런 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이순신이나 권준 등이 "협판안치는~" 이 아니라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라고 언급하는 경우가 늘어나며, 이 때문에 1~4화의 장면이 일부 재활용되는 99화부터는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서행장이 혼용되는 어색한 모습이 연출되었다.3.1. 일본 본토
3.1.1. 도요토미 일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豐臣秀吉(풍신수길) | |
배우 | |
이효정 扮 |
졸병으로 시작해 일본 최고의 관직에 올랐다고 언급되며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처음에는 일본군이 승승장구하며 기세가 등등하지만 한산도 대첩 이후로 오늘부로 해전은 없다며 해전 금지령을 내리며, 와키자카에게 제멋대로 출진했다가 패한 책임[74]을 물어 그의 부하 두 명을 와키자카가 보는 앞에서 할복시키는 등 이상 징후를 보이더니 부산 해전 이후 도쿠가와에게 농락당한 뒤로는 개그맨으로 전락한다. 명량해전 이후로는 이순신에 대한 증오, 공포심에 휩싸여 이순신이 홀로 찾아와 자신을 베어버리는 악몽을 꾸고 침소 근처를 지키던 부하에게 칼을 휘두르는 난동까지 부린다. 분노가 극에 달해 이순신의 모든 것을 없애고 짓밟으라 발악하여 이순신의 아들 이면이 죽게하고 조선에 있는 장수들이 철군을 원한다는 상소를 듣고는 자신이 직접 조선으로 가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다 병으로 쓰러진다. 그 뒤 전장 상황을 듣고 분개하면서 쓰러지는 일을 반복하더니 99회에서 도도 다카도라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하극상에 충격을 받고 병든 몸으로 홀로 남겨져 과거의 환영[75]을 보다가 비 오는 오밤중에 마당으로 달려나와 허공에 칼질을 하다가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음을 맞는다.[76]
요도도노 淀殿(정군) | |
배우 | |
김혜진 扮 |
도요토미의 측실. 본래 임진왜란 종료 후 17년 후에 죽어야 하지만, 히데요시가 죽는 99회에서 도요토미가 사망한 후 아들 히데요리와 함께 도쿠가와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해 자결했다는 나레이션의 언급과 함께 죽은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도요토미 히데요리 豊臣秀頼(풍신수뢰) | |
배우 | |
배우 불명 |
90화에서 아역 배우가 연기했다.
3.1.2. 그 외
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직전신장) | |
배우 | |
박영록 扮 |
단역 수준으로 잠시 나오는 수준이나, 한극 사극 역사상 오다가 나온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덕천가강) | |
배우 | |
전일범[77] 扮 |
히데요시의 (이름만) 가신으로 작중에서 언급되는 바에 따르면 다이나곤[78]이란 직함을 달고 있다. 등장할 때마다 공손하게 받드는 척 히데요시를 능멸(...)하며 열받게 하는 화려한 언변을 선보이며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에 집착하는 동안 착실히 세력을 보전하고 전쟁으로 살림이 거덜난 99화에서는 히데요시에게 대놓고 하극상을 저지르는 패기를 선보이는데, 수군이 계속하여 패전하는 데 대노한 히데요시가 도도 다카도라 앞에 탄토를 내던지며 그에게 할복을 명하는데, 이에 도도는 자기가 할복하면 그 다음은 누구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이순신에게 패배한 장수들이 전부 할복해야 한다면 조선에 파견한 장수들 모두에게 할복을 명해야 할것 이라며 거세게 반발한다. 이에 격분한 히데요시가 직접 검을 빼들고 도도를 베려 하지만, 히데요시의 팔을 붙잡아 저지한다. 깜짝 놀란 히데요시가 이에야스를 돌아보자 "스스로 칼을 거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랫것들을 불러 그 칼을 빼앗으라 할까요?"라며 협박을 한다. 충격을 받은 히데요시가 감히 나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냐고 호통치자 "언제 자신에게 칼을 휘두를 지 모르는 자에게 충성을 바칠 사람은 없다."며 팩트폭행을 하곤 쇼타이를 제외한 모든 가신들(!)을 데리고 퇴장한다. 그나마 남아있던 쇼타이 마저 "태합으로서 체통을 지키라"며 일침을 가하는 건 덤. 실제 역사에서는 히데요시 사후 쇼타이까지 이에야스 편으로 넘어가니 매우 비참하다. 사실상 히데요시의 정치 생명은 여기서 끝이 났으며,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 데다 정신적 충격까지 받은 히데요시는 그날 밤 피를 토하며 죽는다. 와키자카에게 세키가하라 전투를 암시하는 떡밥도 풍기는 등 향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밀어낼 인물 상을 잘 표현해서 작품을 본 일본인들로부터 실제 이에야스와 매우 닮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작중 행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일본 사이드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센노 리큐 千利休(천리휴) | |
배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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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을 일으키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제지하려고 했으나 히데요시의 노여움을 사 할복했다[80][81]. 나레이션은 센노리큐가 할복하면서 일본 내에서 반전파가 사실상 소멸했다고 언급한다.
세이쇼 쇼타이 西笑承兌(서소승태) | |
배우 | |
김종결 扮 |
도요토미를 보좌하는 승려. 극 중에서는 '세이쇼 쇼타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을 반대하는 센노 리큐를 숙청하고 대신 영입한 인사. 자신을 알아준 히데요시를 끝까지 보좌하나[82] 패색이 짙어지고 히데요시의 위세가 실추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놓고 하극상을 저지르고 퇴장하는 장면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는 느낌으로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는 것이 인상적. 그 뒤 나레이션으로 도요토미가를 배신하고 도쿠가와의 신하가 되었다고 소개된다. 히데요시가 무슨 일만 있으면 쇼~타이~! 하며 찾는다
3.2. 임진왜란 당시 출전했던 주요 장수
3.2.1. 육군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소서행장) | |
배우 | |
정승호[83] 扮 |
도도와 함께 일본 장수 중에서는 그나마 이성적으로 나오는 인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고니시가 평화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전쟁이 벌어지면 자신과 대마도주인 사위가 손해를 본다는 것을 계산한 것이다.[84] 왜란 직전 선조의 국서를 빼돌리거나 정유재란 직전 심유경 등과 함께 종전을 위해 도요토미를 속이는 모습이 나오고 들켜서 목이 달아나게 생겼을 때도 사실은 조선 정벌 계획이 어쩌구 하며 오리발을 내미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머리가 잘 돌아간다. 그 밖에 천주교 신자였다는 사실을 살려 기도를 하는 모습도 보이며, 더는 전쟁을 막을 수 없게 되자 센노 리큐에게 묵주를 건네는 장면은 나름 명장면. 왜란 중에는 가토 기요마사와 대립하며 그의 급한 성격을 제지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대마왕 부하 A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는 이 작품의 큰 비판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왜란 말기에 가선 중반 이후의 성격과는 다소 다르게 묘사되는데, 요시라를 비롯한 부하들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이 많이 나오거나 나가! 네놈의 낯짝도 보기싫으니까 아군을 죽이고 조선군 포로를 직접 두들겨 패는 등 가토나 와키자카나 할 법한 막장짓도 하며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자주 부르짖는 등 성급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법성포 전투에서 군수물자를 운반해오던 보급부대가 상륙한 이순신에게 패배하여 군량미를 모조리 빼앗기고 거지꼴로 돌아오자 가토 기요마사가 분노하여 베어버리려고 했더니 자기가 먼저 나서 모조리 베어 죽여버려 "벌써 9월 말... 이제 곧 겨울이외다!!!"[85]라고 호통을 쳐서 그 열혈한인 가토조차 말을 잃게 만들었다. 왜교성 전투에서는 이순신의 공격으로 물에 한 번 빠지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더불어 일본에서 도쿠가와의 세력이 커지고 있다며 자신이 돌아가 '태합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루어야 한다' 운운하는 것도 중반 이후의 모습과는 다른 점. 하기사 당시 일본군의 전황을 고려하면 저렇게 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할 것이다.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小早川隆景(소조천륭경) | |
배우 | |
김시원 扮 |
일본군이 슬슬 한계에 부딪치자 구원 투수 격으로 조선에 투입되었지만 정암진에서 곽재우에게 깨지고 이치에서 권율에게 깨지며 퇴장한다. 극중 히데요시에게 피로 혈서를 써서 바치는데, "소조천융경" 의 "천" 자가 (川) 대신 (天)으로 나오는 오류가 있다.
안코쿠지 에케이 安国寺恵瓊(안국사혜경) | |
배우 | |
방길승[86] 扮 |
비중이 공기를 넘어서 말탄 엑스트라 수준으로 나오는 데다, 자막에 이름조차 뜨지 않고 작중 나레이션으로만 이름을 알 수 있다.
가토 기요마사 加藤清正(가등청정) | |
배우 | |
이정용 扮 |
차분하고 신중한 성향의 고니시에 비해 가토는 열혈속성이 강하고 성품도 훨씬 잔혹한 편. 이순신을 실각시킨 원인이 된 가토와 고니시의 불화 역시 잘 조명했다.[87] 이정용은 2015년에 방영한 징비록에도 가토 역으로 캐스팅되며 국민가토로 등극했다.[88] 작 초중반까지는 다른 일본 다이묘들처럼 고증오류로 오오요로이와 호시가부토를 착용하고 나오나, 정유재란 전후로는 고증에 맞는 실제 가토의 높게 솟은 투구와 토오세이구소쿠를 입고 나온다.
나가오카 다다오키 長岡忠興(장강충흥) | |
배우 | |
신동훈[89] 扮 |
진주 대첩에서 와키자카의 부장 포지션으로 등장. 병력은 얼마든지 있다며 진주성에 무차별 공격을 퍼붓지만 진주에서 털리고, 이후 진주성을 잠시 점령하면서 당항포에 진을 치고 노략질을 일삼다가 이순신한테 함대가 털리고, 담종인에게 화풀이하는 장면을 끝으로 극에서 퇴장했다.
소 요시토시 宗義智(종의지) | |
배우 | |
황준원 扮 |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이자 쓰시마 섬 도주. 조선과 일본 사이에 끼인 대마도 입장에서 전쟁이 터지면 망하기 때문에 전쟁을 결사 반대한다. 전쟁을 막기 위해 조선에 히데요시의 야욕을 알리고 한편으론 고니시와 짜고 통신사를 히데요시에 입조하는 일행으로 위장하는가 하면 선조의 국서를 조작하려 시도하는 등 전쟁을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 고니시의 부장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정유재란 직전에서도 강화를 위해 고니시, 심유경과 사기꾼 트리오를 결성하고 행동대장을 맡았으나 또 실패. 후반부에서는 순천에 갇힌 고니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103화 후반부에 대사를 틀릴뻔한 장면이 순간적으로 나온다.
구로다 나가마사 黒田長政(흑전장정) | |
배우 | |
여재구 扮 |
3.2.2. 수군
도도 다카토라 藤堂高虎(등당고호) | |
배우 | |
최동준[90] 扮 |
왜군 장수들 중에서 그나마 이성적인 인물로 등장했지만 이순신에게 연전연패를 당하면서 "이순신~!!!!!!이순신~!!!!!네이놈~!!!!!"거리는 평범한 일본 장군으로 변해간다. 특히 명량 해전 편에서는 이럴 수는 없다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99화에서 할복을 지시하는 히데요시에게 항명하며, 그 뒤를 이어 도쿠가와가 도도는 물론 사이쇼 조타이를 제외한 도요토미의 신하들 전원(!)을 데리고 패기있게 퇴장한다.
와키자카 야스하루 脇坂安治(협판안치) | |
배우 | |
김명수[91] 扮 |
이순신의 라이벌 격의 인물로 격상되어 사실상 일본군 대표나 다름없다. 하지만 대단한 인물로 띄워놓고 이순신과 맞붙을 때마다 패해 이순신을 돋보이는데 크게 일조하는 신세. 노량 해전에서 이영남과 함께 동귀어진했다. 당연하지만 이는 실제 역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극중 가상이긴 하나 미진에게 마음을 품은 듯한 장면도 있고 미진의 딸인 초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도 있어서 와키자카 본인이 미진을 강제로 범해서 태어나게 한 혈육이 아닌가 하는 암시도 있었으나 김규리의 하차로 인해 그 설정은 완전히 흐지부지 된 모양. 왜장 중 가장 연기가 출중하고 강렬했기 때문에 일본 시청자들까지 와키자카가 저런 맹장이었나 하고 감탄까지 했다고... 하필 조선 최고의 밸붕 치트키 그 자체인 이순신에게 연패를 하는 역이지만 역사와 달리 극중에서는 일본 최강의 수군 장수로 나오... 긴 한데 도도 같은 신중한 장수들의 조언을 무시했다가 박살나기도 하는 걸 보면 그냥 공격성만 최강으로 보이기도 한다(...). 부하를 어떻게 부려야 하는지 잘 아는 인물이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음산한 웃음소리는 극중에 나온 어떤 캐릭터도 보여주지 못할 가공할 포스를 자랑한다. 잔인한 성정과는 다르게 자신의 부하를 아끼는 면도 있고[92] 아산을 공격하여 이순신이 아끼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라는 히데요시의 명령에 자신들은 군인이지 자객이 아니라고 항명하는 것과[93][94] 아산에서 이순신의 아들을 베고 기분이 참 더럽다며 술을 진탕 들이켜는 것을 볼 때 전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비겁한 짓은 기피하는 성격임을 알 수 있다.[95][96] 이순신의 아치에너미 포지션이 되면서 사적으로도 아주 이순신의 철천지 원수가 되었는데 이순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해악을 끼쳤다. 이순신의 아들과 스승을 죽이고 날발을 고아로 만들며[97] 어쩌면 연인이 될 수도 있었던 친누이 같은 첫사랑 박미진의 인생을 파괴했다. 심지어 이영남도 죽일뻔했다. 그래서인지 전투마다 이순신에게 처참히 쥐어터지며 카타르시스를 주는 쪽으로 밸런스를 맞췄다. 아예 한산도 대첩 마무리에선 이순신과 야스하루가 활vs조총으로 대결하며 결국 야스하루가 이순신의 활에 맞고 패배하기도. 이 드라마에서 와키자카의 행보를 보면, 실제로는 그가 임진왜란에서 참전하지도 않았던 전투에까지 참전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부산진 전투는 그 당시 와키자카가 조선으로 건너오기 전이었으므로 와키자카가 그 전투에 참전했을 리가 없고, 한산도 대첩 이후로는 그가 가진 전력의 절반도 제대로 복구하지 못해 사실상 전선에서 소외되었으므로 부산포 해전이나 제1차 진주성 전투에는 참전하지도 못했으며, 노량 해전은 와키자카가 일본으로 철군한 다음에 발발하였으므로 노량 해전에서 와키자카가 참전했다는 묘사는 고증오류이다.[98] 정해왜변 또한 일본 정규군이 아니라 왜구(일본 해적 집단)에 의한 침략이므로 와키자카가 벌인 짓이 아니다. 물론 정해왜변 이후 조선과 일본 간 협상은 있었지만. 와키자카는 오히려 칠본창중 가장 오래 살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에 가담해 이후 시코쿠 번의 영지도 받고 천수를 누리다 교토 자택에서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가문은 이후에도 일본의 여러 역사적 대혼란에도 대처를 잘해내 에도막부 내내, 메이지유신 이후에도 번영하여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구루지마 미치유키 来島通幸(내도통행) | |
배우 | |
유병준[99] 扮 |
다혈질 성향으로 심심하면 고함을 지르고 방방 날뛰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다른 의미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등장인물. 조선군에서 김완이 개그캐였다면 일본군 쪽에서는 이 구루지마가 단연 개그캐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자주 쓰는 대사는 무개념의 극치를 보여주는 "자네는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 특히 전투 중 금방이라도 뒷목잡고 쓰러질 기세로 "모조리, 싸그리, 깡그리 죽여버려어어어!!!" 하고 사자후를 토해내는 모습이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 방영 당시 디씨에서 '불멸의 구루지마'라는 타이틀로 온갖 패러디물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일본군의 첫 패전을 장식한 도도 다카도라를 패전지장이라며 마구 찍어누르고 미친듯이 갈구며, 신중론을 펴는 도도의 의견을 묵살하고 돌격했다가 사천에서 거북선에게 영혼까지 털린다.[100] 패잔병들을 수습해 당포에서 저항하지만 권준의 화살을 맞고 전사.
구루지마 미치후사 来島通総(내도통총) | |
배우 | |
유병준 扮 |
구루지마 미치유키의 동생. 형님과 달리 한쪽 눈을 하얗게 분장하고 목소리와 말투를 좀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전장을 분석하고 전략도 세워오는 등 차이를 두려고 했지만 명량에서 탈탈 털리자 고함을 빽빽 내지르는 게 형이랑 똑같다. 브금도 같다 형님의 원수를 갚겠다며 이순신의 배에 직접 뛰어오르지만 패배하면서 형제가 쌍으로 이순신의 제물이 된다.
시마즈 요시히로 島津義弘(도진의홍) | |
배우 | |
유승봉 扮 |
그의 대표작인 사천성 전투 등은 묘사도 안 되고[101] 왜란 막바지에 소서행장을 구원하러 출격했다가 노량에서 함대를 싹 잃고 도주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와키자카가 시마즈 앞에서 각을 잡고 소 요시토시가 장인을 구해달라며 계속 설득하는걸 보면 직책은 높은데 비중은 시망. 노량에서 튀면서 고니시 구해주러 왔더니 지 혼자 튀었다고 이를 간다.
가토 요시아키 加藤嘉明(가등가명) | |
배우 | |
김대중 扮 |
구키의 똘마니 포지션. 안골포 해전에서 나뒹굴다가 부산포 해전에서 날발과 싸우다가 칼등을 맞고 쓰러지고, 칠천량 해전에서 김완의 칼을 맞긴 하지만[102] 살아남는다. 명량 해전에는 안나오지만 절이도 해전에서 모습을 비추었다가 패배하는 걸로 등장 끝. 이 배역은 나레이션으로 언급만 되지 자막도 나오지 않으며 대사는 당연히 없다.
구키 요시타카 九鬼嘉隆}(구귀가륭) | |
배우 | |
서영진 扮 |
일본 수군의 총사령관. 첫 등장부터 일본 수군의 최고 지휘관 포지션이였으며 한산도 대첩 즈음해서 히데요시로부터 공식적인 일본 함대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와키자카가 자신을 무시하고 혼자 나갔다가 견내량에서 망하고, 자신도 안골포에서 박살이 나며 이순신의 4번째 호구가 되었다. 이후로도 명색만 총사령관이지 와키자카와 도도에게 비중이 밀리는 바지사장 신세. 성향은 도도와 비슷한 신중파이지만 이순신 때문에 늘 화를 내는 인물이다.썩소가 일품 인고 끝에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박살내는데 성공했지만 배우의 개인사정으로 중도하차.[103]
마나베 사마노조 真鍋左馬允(진과좌마윤) | |
배우 | |
한창현 扮 |
용인 전투 직전, 삼도근왕군이 광교산에 집결하고 있다 와키자카에게 보고한 뒤 용인 전투에 참전하고, 이후 한산도 대첩에도 참전했지만 패배했다. 이후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다가 간신히 일본으로 도망친 와키자카의 모습에 빡친 히데요시한테 강제로 할복 명령을 받는다.
배우 | |
정봉연 扮 |
와키자카의 부장이다.
배우 | |
이원희 扮 |
도도 다카도라의 부장으로 옥포 해전에서 포로로 잡혔으며, 이후 이순신의 설득으로 항왜가 되어 사천 해전과 한산 해전 무렵에 구루시마 미치유키와 와키자카 야스하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한산도 해전 이후로는 출연이 없는데, 드라마 상에 묘사된 바는 전혀 없으나 사이쇼 조타이가 일본과 조선을 오간다거나 잠시 휴전 중이기는 했지만 날발이나 공태원 등이 일본에 잠입한 것 등을 보면 이순신이 처음에 약속했던 대로 일본으로 보내졌을 가능성도 있다.
간스케 敢助(감조) | |
배우 | |
전제혁 扮 |
일본군 저격수로 65화에서 도망치는 조선인들을 조총으로 저격하면서 등장한다. 사이쇼 죠타이가 섭외 했으며 사천 해전에서 사무라이 저격부대와 함께 이순신을 저격하려다가 날발과 공태원이 이끄는 첩보부대에 의해 저지되어 나대용과 이순신에게 부상을 입히는 정도에 그쳤다. 이때 공격 대기 중이던 도도 다카토라는 총소리가 두 번이나 들린 거에 수상함을 느꼈고 이에 구루지마에게 경과를 지켜보고 공격을 개시 하자고 하지만 성질이 급한 구루지마는 오히려 도도 다카토라를 보고 이럴꺼면 배에서 내리라면서 도도의 말을 듣지 않고 공격을 개시 했다가 거북선에 의해 본대가 박살났고, 이후 당포에서 권준의 화살에 전사했다. 사천 해전 이후 작전 실패의 책임을 물어 히데요시 앞에서 할복으로 처형당하고 간스케의 머리는 조선에 있는 수군 장수들에게 히데요시의 경고장으로 보내진다.
가메이 고레노리 亀井玆矩(구정자구) | |
배우 | |
박상현 扮 |
간 미치나가 菅達長 | |
배우 | |
여재구 扮 |
칠천량 해전 직전에 치른 가덕도에서의 일전에 참전한 적장.
시마즈 토요히사 島津豊久 | |
배우 | |
배우 불명 |
3.3. 그 외
요시라 要時羅(요시라) | |
배우 | |
이봉규 扮 |
고니시 휘하의 첩자. 강화 회담에서 심유경과 열심히 사기를 치지만 역사와 달리 명나라에 잡혀가 사형당하지 않고 이후 명량과 노량에서 일전을 준비하는 이순신에게 항복을 권유하며 심리전을 거는 등 고니시의 책사로 활약한다.
사화동 沙火同(사화동) | |
배우 | |
최당석 扮 |
왜변 때 왜구들의 길잡이를 했던 인물. 전쟁을 원하지 않는 소 요시토시가 조선에게 통신사를 요청하자 조선측이 배신자 사화동을 조선으로 압송할 것을 비롯해 여러 조건을 제시하고, 요시토시가 무조건 수용하면서 사화동을 조선으로 돌려보낸다. 당연히 잡혀오자마자 조정 대신들과 여러 무관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사지가 분해된다.
겐소 玄蘇(현소) | |
배우 | |
이경영 扮 |
소 요시토시와 함께 조선 정벌을 막기 위해 뛰어다닌 승려. 요시토시의 사람이므로 열심히 조선 정벌을 막아보려 하지만 무위로 돌아가고 일본 측 사신 노릇을 한다. 임란부터 고니시와 요시토시의 유능한 책사로 일하나, 요시라 등장 이후 어째서인지 아예 보이지 않게 된다.
다치바나 야스히로 橘康廣(귤강광) | |
배우 | |
반석진 扮 |
히데요시한테 선조의 입조를 받아내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조선으로 갔지만 한양으로 가는 내내 일본이 쳐들어온다고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듣지 않았다고 설명된다. 결국 입조는커녕 통신사도 못 데리고 와서 빡친 히데요시에게 모가지가 달아난다. 또한 알려진대로 기생들에게 후추를 뿌려대며 조선 측을 조롱하는 에피소드도 나오며, 여기서는 청향에게 역관광당한다.[104]
아까이 赤井(적정) | |
배우 | |
안연홍 扮 |
왜란 전에 고니시 측에서 조선에 파견한 고정간첩으로 임천수, 천무직과 함께 천수네 상단 일을 하면서 몰래 기밀을 빼돌린다. 임천수에게 정체를 들켜 죽을 뻔 했지만, 고니시에게 버림받아 진짜로 죽을 위기에 처할 뻔 하였다. 이후 다시 임천수랑 상단 일을 하고 왜란이 일어나자 가토에게 붙는다.
야나가와 노리노부 柳川教翅(유천조신) | |
배우 | |
배우 불명 |
이시카와 고헤몬 石川五右衛門(석천오우위문) | |
배우 | |
최운교 扮 |
료 亮(량) | |
배우 | |
정진화 扮 |
4. 명나라
만력제 萬曆帝 | |
배우 | |
배우 불명[105] |
석성 石星 | |
배우 | |
배우 불명 |
사헌 司憲 | |
배우 | |
손선근 扮 |
주균왕, 허의후, 곽국안, 보국사 朱均旺, 許義後, 郭國安, 報國寺 | |
배우 | |
배우 불명 |
임세록 林世祿 | |
배우 | |
최범호 扮 |
선조가 열심히 피난가면서 지원을 요청하자 상황 파악을 위해 내려온 명나라의 사신. 이 당시 명나라는 일본군의 진군 속도가 너무 빨라서 조선과 일본의 협공을 의심하고 있었고, 명나라의 원병을 요청하는 선조의 앞에서 "그대가 조선의 왕이 맞기는 한가?"라며 무례한 행태를 보인다.[106] 이에 류성룡이 왕에게 예를 갖추라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도리어 류성룡마저 공개적으로 폭행하며 모욕했다.
진린 陳璘 | |
배우 | |
김하균[107] 扮 |
첫 등장부터 이순신의 면전에 술을 뿌리고 대접이 마음에 안든다고 불평하는 등 행패를 부려 조선군의 반발을 산다.왜교성 전투부터 시작하는 1~4화와 후반부의 내용이 미묘하게 다르다. 고니시로부터 수급 2,000두의 제안을 받고 어차피 이긴 전쟁이니 길을 열어주자고 하지만 통제사는 거부한다. 그러자 진중에 돌아와서 이순신을 영웅이라 찬양하며 그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등자룡은 어차피 조선이 이긴 전쟁이고, 이순신의 공이 크니 무슨 걱정이냐 하지만 진린은 이순신이 왕과 조정의 음해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더니 전쟁이 끝나도 이순신이 난처한 입장이 될 것을 예견하고 그때 내가 이순신의 손을 잡아줄 거라 말한다. 이후 유정의 모함으로 선전관이 와서 수군 지휘권을 유정에게 넘기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 국왕이 이순신을 버리려 하니 그가 외롭겠다며 탐탁지 않아 하지만 결국 조선을 구하는 것은 이순신이 될 거라 믿는다. 노량 해전이 일어나는 부분도 후반부와는 다르다. 후반에는 노량에서 전투가 일어나게 판을 깔아주고 전투 때 나대용을 수로향도로 앞세워 참전한다. 여기서는 이순신이 이미 명 수군의 피해가 크다며 그냥 왜교로 유인만 해달라고 하지만 이순신을 마음에 들어하는 진린이 그냥 전장(관음포)으로 이동해 참전한다.[108]
극중 후반부에는 합류 이전 유정이 이순신을 극찬하자 못마땅해 했으며 합류하자마자 대명의 도독에게 무례하다며 접견 나온 군관한테행동 대장(?) 등자룡이 대신해서 싸대기를 날리더니 환영회에서 이순신이 직접 따라준 술잔을 이순신 얼굴에다 뿌려버리는 등 온갖 진상과 갑질을 부리는데, 본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좀 차이가 있다. 갈등 구조에서 흔히 이야기를 만드는 드라마적 각색이라고 봐야 될듯. 하여튼 환영회를 끝내고 돌아와 등자룡에게 이순신이 범인이 아니라며 유정이 쩔쩔매는 것도 이해가 간다고 말하며 12척 함대를 1년도 안 지나서 80척 함대로 만들어낸 것이 엄청난 일이라 환영회에 나온 음식들도 이순신으로서는 최대한 땡긴 것이란 걸 간파했다. 알면서 왜 그랬냐는 질문에는 이순신을 한번 떠보고 그래도 지휘권이 자신에게 있으니 기선 제압을 위해 그랬다고 한다.[109]
훗날 절이도 해전에서는 이순신 함대가 일본군을 없애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왜교성 전투에서는 처음에 안 나가겠다고 뻐기다가 칼을 들이대는 이순신을 보고 유정에게 작전을 중지하자고 했는데 유정이 이를 거부하자 유정이 혼자 공을 세우는 것을 경계하여 결국 출전한다. 이후 일본군에게 매수된 유정이 작전을 어길 테니 뒤에서 지켜보라는 전서구를 보냈는데, 이를 유정 혼자서 공을 세우려는 것으로 오해하고서 이순신의 신호를 무시하고 개돌했다가 큰 피해(군사 2,000명+전선 30척)를 보고 조선 수군에 의해 구출된다. 이때 황세득이 자기 때문에 죽을 자리로 뛰어드는 걸 보고 등자룡과 함께 매우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후 유정이 패전의 책임을 이순신에게 떠넘기는 장계를 올렸다면서 얘기하자 닥치라는 강언까지 하면서 이순신은 끝까지 분전했고 내 생명을 구했다며 커버하지만, 유정은 황제가 진린 때문에 피해본 걸 알면 또 다시 파직될 거라 협박하자 어쩔 수 없이 넘어간다. 이때 유정이 어차피 전쟁은 끝났고 길만 열어주면 철군하겠다는 일본군에게서 땡길 걸 땡기면서 본국에서 공을 크게 보이게 하자며 실리를 강조하자 매우 탐탁치 않아하면서 쳐다본다.
이후로는 일본이 길을 열어달라며 수급과 보물들을 보내자 요시라가 이순신에게 말을 전할 기회를 열어주고서는 스스로도 이순신에게 좋게 끝내자는 식으로 길을 열라고 하지만 이순신은 계속 거부했고, 나중에는 일본이 수급 2,000두를 주기로 했는데 절반을 통제사에게 주겠다며 회유했지만 통제사가 끝까지 거부하자 연합함대의 장으로 길을 열라 명령하지만 이것도 거절했다. 그러자 진린은 이순신을 아둔한 자가 아닌 장수 중의 장수로 생각하기로 하고[110] 받을 걸 이미 다 받아놓고서 고니시에게 길을 열어줄 수 없다고 통보한다. 이미 이순신에게 마음이 가는 와중에 이순신이 새로 뽑은 판옥선 2척을 주면서 잘해보자고 하자[111] 이에 감복하여 이순신의 뜻대로 하기로 했다. 유정에게는 판옥선을 선물받았다고 밝혔다.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처럼 판옥선까지 받은 마당에 뒤로 뺄 수 없으며 심기일전하여 왜군을 섬멸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선언한다. 또한 유정이 그 동안 뇌물로 받은 수급 등으로 전공을 위조한 것을 비꼬며[112] 자신은 전장에서 떳떳하게 전공을 세우겠다며 훈련을 하러 간다. 진린이 마음가짐을 새로 한 것은 좋았는데 유정은 이 때문에 일본에게서 땡길 걸 못 땡기겠다고 생각했는지 조선 조정에 또 다시 이순신을 모함하여[113] 선전관이 내려오게 만든다. 노량 해전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이 찾아와 일본 함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거짓정보를 흘려달라고[114] 부탁하며 판옥선을 주면서 설파한 의미를 주지시키자 한번 해보자고 하며 정보를 흘려[115] 노량에서 전투가 일어나도록 판을 깔아준다. 이때 이순신의 계획을 듣고 유정의 협조없이 우리끼리만 싸우는 거냐며 자기는 당연히 참전한다는 투로 굴었다. 노량에서는 선물받은 판옥선에 부관(수로향도)으로 나대용을[116] 끼고 나와서 이순신과 목숨을 나눌 것이라 선언하고서는 관음포로 출격한다. 이순신과 본대가 일본 함대를 관음포로 몰고 오자 위엄있게 등장하여 전투를 수행한다. 할 거 하다가 이순신이 쓰러지자 걱정하는 듯 좋지 못한 표정을 짓고서 극중에서 퇴장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명군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면서 진린 또한 그런 기조가 있지만 작중 내용을 보면 적어도 사리분별은 하고 사건의 전개를 파악하는 능력은 있다. 갈수록 이순신에 대한 태도는 호의적으로 변하고 유정처럼 자기랑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고 음해하지도 않는다. 이순신이 자기에게 칼을 들이댔지만 자신을 구해주자 이순신 탓으로 하자는 유정에게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그냥 넘어간 것/수급은 받았지만 길은 안 열어준 것/판옥선을 받은 후 해달라는 걸 다 해주는 것/하급 군관인 나대용에게 외관상이나마 부탁을 한 것 등을 보면 양면성이 공존하지만 결국 이순신의 사람이 되는 인물이다. 사족으로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유정과 대등한, 양호 바로 다음 급의 천장인 진린이 조정에서 내려온 선전관을 황제의 권위를 업고 있는 천장의 권위로 찍어눌렀다면 선전관이나 조정이 어찌하지 못하였을 텐데 극 전개를 위해서인지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진린이 조선의 선전관을 어찌하지 못한 건 고증에 맞는게 당시 명나라 조정은 파견 장수들에게 조선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기에 그런 점이 있으며 선전관 파견은 엄밀히 말하면 조선의 내정으로 진린이 천장의 권위로 선전관을 찍어내린다면 이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게 되는 것으로 실제로 명나라가 조선의 내정에 간섭한 건 경리 양호가 선조에게 이순신의 품계를 올려달라는 압박이 유일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유정은 별 도움 안되는 트롤러에 가깝고, 양호는 조선에 우호적이지만 비중이 극히 적고, 마귀 등은 나오지도 않기 때문에, 그래도 이순신과 조선 수군 입장에선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명나라 장수라 할 수 있다.
극중 후반부에는 합류 이전 유정이 이순신을 극찬하자 못마땅해 했으며 합류하자마자 대명의 도독에게 무례하다며 접견 나온 군관한테
훗날 절이도 해전에서는 이순신 함대가 일본군을 없애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왜교성 전투에서는 처음에 안 나가겠다고 뻐기다가 칼을 들이대는 이순신을 보고 유정에게 작전을 중지하자고 했는데 유정이 이를 거부하자 유정이 혼자 공을 세우는 것을 경계하여 결국 출전한다. 이후 일본군에게 매수된 유정이 작전을 어길 테니 뒤에서 지켜보라는 전서구를 보냈는데, 이를 유정 혼자서 공을 세우려는 것으로 오해하고서 이순신의 신호를 무시하고 개돌했다가 큰 피해(군사 2,000명+전선 30척)를 보고 조선 수군에 의해 구출된다. 이때 황세득이 자기 때문에 죽을 자리로 뛰어드는 걸 보고 등자룡과 함께 매우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후 유정이 패전의 책임을 이순신에게 떠넘기는 장계를 올렸다면서 얘기하자 닥치라는 강언까지 하면서 이순신은 끝까지 분전했고 내 생명을 구했다며 커버하지만, 유정은 황제가 진린 때문에 피해본 걸 알면 또 다시 파직될 거라 협박하자 어쩔 수 없이 넘어간다. 이때 유정이 어차피 전쟁은 끝났고 길만 열어주면 철군하겠다는 일본군에게서 땡길 걸 땡기면서 본국에서 공을 크게 보이게 하자며 실리를 강조하자 매우 탐탁치 않아하면서 쳐다본다.
이후로는 일본이 길을 열어달라며 수급과 보물들을 보내자 요시라가 이순신에게 말을 전할 기회를 열어주고서는 스스로도 이순신에게 좋게 끝내자는 식으로 길을 열라고 하지만 이순신은 계속 거부했고, 나중에는 일본이 수급 2,000두를 주기로 했는데 절반을 통제사에게 주겠다며 회유했지만 통제사가 끝까지 거부하자 연합함대의 장으로 길을 열라 명령하지만 이것도 거절했다. 그러자 진린은 이순신을 아둔한 자가 아닌 장수 중의 장수로 생각하기로 하고[110] 받을 걸 이미 다 받아놓고서 고니시에게 길을 열어줄 수 없다고 통보한다. 이미 이순신에게 마음이 가는 와중에 이순신이 새로 뽑은 판옥선 2척을 주면서 잘해보자고 하자[111] 이에 감복하여 이순신의 뜻대로 하기로 했다. 유정에게는 판옥선을 선물받았다고 밝혔다.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처럼 판옥선까지 받은 마당에 뒤로 뺄 수 없으며 심기일전하여 왜군을 섬멸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선언한다. 또한 유정이 그 동안 뇌물로 받은 수급 등으로 전공을 위조한 것을 비꼬며[112] 자신은 전장에서 떳떳하게 전공을 세우겠다며 훈련을 하러 간다. 진린이 마음가짐을 새로 한 것은 좋았는데 유정은 이 때문에 일본에게서 땡길 걸 못 땡기겠다고 생각했는지 조선 조정에 또 다시 이순신을 모함하여[113] 선전관이 내려오게 만든다. 노량 해전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이 찾아와 일본 함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거짓정보를 흘려달라고[114] 부탁하며 판옥선을 주면서 설파한 의미를 주지시키자 한번 해보자고 하며 정보를 흘려[115] 노량에서 전투가 일어나도록 판을 깔아준다. 이때 이순신의 계획을 듣고 유정의 협조없이 우리끼리만 싸우는 거냐며 자기는 당연히 참전한다는 투로 굴었다. 노량에서는 선물받은 판옥선에 부관(수로향도)으로 나대용을[116] 끼고 나와서 이순신과 목숨을 나눌 것이라 선언하고서는 관음포로 출격한다. 이순신과 본대가 일본 함대를 관음포로 몰고 오자 위엄있게 등장하여 전투를 수행한다. 할 거 하다가 이순신이 쓰러지자 걱정하는 듯 좋지 못한 표정을 짓고서 극중에서 퇴장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명군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면서 진린 또한 그런 기조가 있지만 작중 내용을 보면 적어도 사리분별은 하고 사건의 전개를 파악하는 능력은 있다. 갈수록 이순신에 대한 태도는 호의적으로 변하고 유정처럼 자기랑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고 음해하지도 않는다. 이순신이 자기에게 칼을 들이댔지만 자신을 구해주자 이순신 탓으로 하자는 유정에게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그냥 넘어간 것/수급은 받았지만 길은 안 열어준 것/판옥선을 받은 후 해달라는 걸 다 해주는 것/하급 군관인 나대용에게 외관상이나마 부탁을 한 것 등을 보면 양면성이 공존하지만 결국 이순신의 사람이 되는 인물이다. 사족으로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유정과 대등한, 양호 바로 다음 급의 천장인 진린이 조정에서 내려온 선전관을 황제의 권위를 업고 있는 천장의 권위로 찍어눌렀다면 선전관이나 조정이 어찌하지 못하였을 텐데 극 전개를 위해서인지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진린이 조선의 선전관을 어찌하지 못한 건 고증에 맞는게 당시 명나라 조정은 파견 장수들에게 조선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기에 그런 점이 있으며 선전관 파견은 엄밀히 말하면 조선의 내정으로 진린이 천장의 권위로 선전관을 찍어내린다면 이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게 되는 것으로 실제로 명나라가 조선의 내정에 간섭한 건 경리 양호가 선조에게 이순신의 품계를 올려달라는 압박이 유일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유정은 별 도움 안되는 트롤러에 가깝고, 양호는 조선에 우호적이지만 비중이 극히 적고, 마귀 등은 나오지도 않기 때문에, 그래도 이순신과 조선 수군 입장에선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명나라 장수라 할 수 있다.
유정 劉綎 | |
배우 | |
손호균 [117]扮 |
왜군 공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순천 예교성 공격 시 수륙협공을 약속해 놓고 일본군의 뇌물에 매수되어 발을 뺀다. 또한 진린과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등자룡 鄧子龍 | |
배우 | |
함석훈 [118]扮 |
진린의 부관으로 명나라의 지위를 믿고 조선군 앞에서 오만방자한 행동을 일삼는다.
조승훈 祖承訓 | |
배우 | |
장순국[119] 扮 |
이여송 李如松 | |
배우 | |
김태영[120] 扮 |
심유경 沈惟敬 | |
배우 | |
이원재[121] 扮 |
담종인 譚宗仁 | |
배우 | |
유병한 扮 |
양호 楊鎬 | |
배우 | |
박승규[122] 扮 |
마귀 麻貴 | |
배우 | |
손선근 扮 |
해생 解生 | |
배우 | |
정병호 扮 |
동일원 董一元 | |
배우 | |
김대환 扮 |
5. 여진족
우을기내 于乙其乃 | |
배우 | |
윤용현[123] 扮 |
여진족의 추장으로 일부러 공격을 늦춰 조선군에게 불안감을 심어주며, 이순신이 자리를 비운 것을 알고 공격을 지시해 녹둔도를 함락한다. 그러나 6진을 통째로 손에 넣기 위해 일부러 녹둔도를 점령하지 않았으며, 북병영이 남쪽으로 향한다는 것[124]을 듣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여겼지만 조선군의 기습을 받아 패하면서 포로로 붙잡히고 이순신에게 죽는다.
맛니응개 亇尼應介 | |
배우 | |
선동혁[125] 扮 |
여진족 추장이자 우을기내의 부하로 우을기내에게 조선군을 서둘러 공격할 것을 주장했지만 불안감을 심어주기 위해 출정을 늦추는 것을 듣고 납득하며, 이순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녹둔도를 공격해 함락한다. 그러나 녹둔도를 털고 철수하던 중 뒤늦게 나타난 이순신의 지원군과 싸우다가 전사한다.
사송아 沙送阿 | |
배우 | |
강재 扮 |
맛니응개의 부하. 녹둔도 전투에서 오형을 죽이고 뒤늦게 나타난 이순신에게 부상을 입히며 임경번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공을 세운다. 그러나 자신의 주군인 맛니응개가 사망하자 추장 자리를 이어받은것으로 보인다. 북병영이 남쪽으로 향한다는 것을 듣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여겼지만 조선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한다.
여진족 추장들 | |
배우 | |
맹봉학, 김광석 扮 |
우을기내가 결성한 연합에 소속된 부족들의 추장들.[126] 처음에 녹둔도를 접수하려고 침공을 계획하긴 했지만 맛니응개가 죽자 두려웠는지 우을기내에게 연합을 깨자고 주장하지만 애초에 목표는 녹둔도가 아닌 6진이라는 말을 듣고 연합을 깨려는 생각을 버린다. 이후 북병영의 군사들이 왜구를 잡으러 남하하였다는 소식을 가지고온 사송아의 말을 들었지만 조선군의 기습으로 인하여 정황상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127]
[1] 여담으로 배우 이재포는 해군 출신으로 대한민국 해군 병장으로 병역을 마쳤다.[2] 이는 역사와는 다른 설정으로 실제 우치적은 이순신을 매우 잘 따랐으며, 무의공 이순신과 더불어 통제영의 양대 명궁이었다.[3] 옥포 해전이후 이순신의 명령으로 포로로 잡힌 왜군들에게 음식을 배식하려는 모습을 보고 뒤따라가서 음식을 엎어버리고 감옥에 갇힌 왜군 포로들을 베어버리려고 한다.[4] 12척의 전선이 남았다는 사실은 초계에서 송희립에게 죽빵을 맞고 난 후, 격려를 하던 이순신이 다시 돌아갈 때에 그를 부르면서 말한 것이다.[5] 잘 따르던 원균의 유언도 있고,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는 걸 전한 것이 본인이라서 그런지 상관인 배설에게 무례하게 대들면서까지 명량 출전을 찬동했다.[6] 김명민에 앞서 이순신 역으로 낙점될 뻔했던 송일국이 '불멸의 이순신' 때문에 고사한 MBC 왕꽃 선녀님 남자 주인공이었던 김성민과 고교 동창이다.[7] 안면이 있기도 했거니와, 원균의 가혹한 훈련으로 인해 PTSD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을 격려하고 타이르는 이영남에게 갓난아이인 아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는 게 소원이라며 울기까지 하는데, 그러다 전사해 버린 것. 아들을 보고 싶다며 우는 장면도 감성적인 배경음악이 깔린데다, 시신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서노인으로부터 이 부하가 아들에게 꼭 전해 달라며 직접 만든 듯한 장난감까지 전달받자 폭발하게 된다.[8] 끌려갈 뿐더러 우치적의 칼에 협박까지 당했다. 결국 관아 밖으로 끌려 나가고 나서 소식을 듣고 온 김완에게 "조방장(김완)님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졌다."고 말하면서 갔다.[9] 93화 초반에 이를 다뤘는데, 어영담과 이순신이 작성하다가 칠천량 이전에 원균이 소각하다가 남은 지도와 진법서 등 각종 자료들과 식량, 화포 등을 왜적에게 넘어가기 전에 모두 태우거나 화포는 바다에 버렸다. 불타버리는 물건들을 보며 자책하고, 같이 배에 오르면서 탈출한 이들 역시 통곡과 오열 그 자체였다.[10] 태조 왕건에서 김락, 대조영에서 당나라 장수 소정방, 근초고왕에서 해녕을 연기했다.[11] 난중일기에 따르면 출정을 한 상황인데 함선에 기생을 숨겨두고는 들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사생활 면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던 반면에, 한산도 대첩 직후 종5품 현령에서 당상(정3품 상계 이상)으로 승차된 걸 보면# 극 중 이미지와는 다르게 장수로서의 능력은 어느 정도 갖춘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조항 전투에서 전사한 지세포만호 한백록도 이때 함께 당상에 추증됐는데, 전사한 장수와 동급의 관작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기효근이 장수로서 괄목할 만한 큰 전공을 세웠다는 방증이다.[12] 당시, 김완이 브리핑을 하면서 단호하게 '불가하다'하면서 원균의 심기를 건드려 파직할 위기에 봉해졌으나 기효근이 총대를 매고 만류하면서 김완의 파직만은 면하라고 했고, 전라우수사 이억기까지 나서면서 최종적으로 김완의 파직은 없던 일이 되었다.[13] 칠천량 해전 이후 조선 수군을 재건하면서 병졸들의 냉병기 훈련을 담당하기도 한다.[14] 서한수가 군관이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기효근이 서한수에게 트집을 잡아 괴롭힐 때 이영남이 당장 가서 따지려 할정도로 서한수를 매우 아낀다.[15] 하지만 군관으로 임명된뒤 군관이 된게 언짢은 옛 동료들에게 상관 대우를 못받거나 상관인 기효근에게 트집이 잡히는 등 여러모로 고생을 했다.[16] 가덕도에서 500명이 몰살당하는 와중 정일수와 단 둘이서 살아남았다. 이후 정일수는 칠천량에서 전사하지만 서한수는 끝까지 살아남아 이순신한테 합류한다.[17] 철수하라는 명을 가지고 온 선전관의 파견으로 이순신 진영이 흔들리자 고니시가 심리전을 걸기 위해 조선군 포로들의 목을 베서 서한수에게 딸려보냈다.[18] 프롤로그 부분인 4회에서 전사하는 장면이 나왔으나 마지막 회에서는 생략되었다.[19] 이 장면 역시 4회에서는 나왔으나 마지막 회에서는 생략된다.[20] 무인시대에서 기회주의적 소인배 이광정을 맡았다. 명성황후에서는 고종 황제의 충직한 심복인 이 내관 역을 맡았다.[21] 태조 왕건에서 박수경을 맡았고 대조영에서는 마파를 맡았다.[22] 다만 해당 장면 자체는 고증을 제법 잘 따랐다고 봐야한다. 실제로 명량해전에서 안위는 다른 함장들과 마찬가지로 싸우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보다 못한 이순신이 군법으로 다스릴거라 말하자 마지못해 참전했던 기록이있다.다만 참전해서부터는 미친듯이 싸워댔고 큰 전공을 올렸다. 그리고 이순신은 많은 전공들을 안위에게 몰빵해주며 초고속 승진의 길을 터준다.[23] 명량 해전 에서도 대사가 조금이라도 있는 안위와 김억추에 비해 대사가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대사도 중반부에는 부관이 돌격 명령을 대신내리다가 후반부에 모든 전선이 돌격할 때 그제서야 돌격명령을 직접내린다.[24] 실사 북두의 권 영화의 레이 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도전에서는 변안열을 연기했다.[25] 1969년 연극배우로 데뷔하였고 용의 눈물의 성석린, 대조영의 위승 등 사극에서 여러 조연을 연기했다. 드라마 광개토태왕에 출연 중이던 2011년에 지병으로 별세했다.[26] 하지만 후반부에서는 부장 서한수가 대신 명령을 내리는 걸로 봐선 한발 물러선듯 하다.[27] 실제로 김억추는 명량 해전 이후로 밀양 부사로 전근 가버리고 후임 전라우수사에는 안위가 임명된다.[28] 극둥에서 묘사된 경상좌수영은 극 초기 이순신의 젊은 시절에 동네 관아로 등장한 것이 전부다. 이순신이 왜놈 간자를 추적할 때 좌수영에 신고를 했으며, 임천수가 밀수를 하다 걸려서 좌수영에 잡혀가 재밌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극중 원균의 첫 부임지이기도 하다. 좌수사도 나왔지만 이름은 없는 단역.[29] 여담으로 드라마 종영후 방영된 스페셜 영상을 보면 해당 장면을 촬영할 때 NG가 많이 발생했다. 1차시도에서는 부장역할을 맡은 배우가 말을 못올라타서 NG가 발생했고, 2차,3차 촬영에서는 말이 자꾸 도망을 가버려서 NG가 발생했다.[30] 야인시대에서 김동진(야인시대)를 연기했다. 2019년 4월 5일 폐암으로 별세했다.[31] 대조영에서는 비열한 신라 장수 김찬 역을 맡았다.[32] 이 작품에 나온 원균처럼 이런 어리석은 행동이 다소 미화되는 연출이 있었는데... 망연자실해있는 이운룡에게 다가와 적은 병력과 낮은 훈련도로 인한 모랄빵을 방지하기 위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겠다고 정한 것이며, 무조건 승리 아니면 죽을 각오로 싸워야만 희망이 있을거라는 조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목숨은 내다 버리는 것 뭐 솔직히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결단이기는 하나 이후에 벌어진 명량해전 보다는 그나마 승리할 가능성이 1할이라도 있어 보이긴 했다 확률이 좀 신기하게 작용했다 확률이 1할 작았더니 일어났다[33] 이때 거절하는 것이 단지 원균을 조롱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칠천량 해전 직전 육군은 가덕도까지 진군하는 묘기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34] 이에 이순신은 백의종군하는 죄인에게 장군이라니 당치도 않다며 낮춰서 불러줄 것을 청했지만 권율은 끝까지 존칭을 사용했다.[35] 용의 눈물에서는 목인해/이종무의 부관 역을, 왕과 비에서는 남이 역, 명성황후에서는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일본 낭인인 사사키 역을, 무인시대에서는 이지영 역을, 연개소문에서는 술탈 역을, 대왕세종에서는 무비 역을, 천추태후에서는 탁사정 역을, 근초고왕에서는 부간태 역을, 광개토태왕에서는 진무 역을 맡았다.[36] 그런데 다시보는 불멸의 이순신에선 어찌된 영문인지 드라마에선 등장한 적 없는 경상좌수사 박홍으로 소개되어 나온다.[37] 극중에서는 성문을 열어 경상 우군을 성으로 들여보내면 왜군도 뒤따라 성으로 들어와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성문을 열지 못했다고 묘사했다. 일본군이 바로 코앞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진주성 근처까지 이르른 상황이었다는 점과 그에 따라 진주성 바로 앞이 아니라 그 인근에서 전사했다는 점이 실제와 다르기는 하나, 김시민이 유숭인에게 성문을 열어 주지 않았던 것은 선조실록에도 실려 있는 사실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곽재우가 김시민이 옳았다고 높이 평가했다고.[38] 참고로 본편에선 이름자막이 기재 되지 않으나, 다시보는 불멸의 이순신에선 이름자막이 기재된다.[39] 한 병사가 "나으리, 2차 방어선도 무너졌습니다. 퇴각을 하는 것이..."라고 하자 "퇴각은 없다. 적 한 명을 죽이고 죽을지언정 어찌 장수가 일보 물러나 살기를 도모한단 말이냐"라고 말했다.[40]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이영준 신부,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최동열 기자 역을 맡았다. 이후 대왕세종에서 조말생 역할을 맡게 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연기 톤이 조금 다르다. 이쪽에서는 완전 간신배처럼 나오는 것과 달리 조말생은 죄인이긴 했으나 어쨌든 조선 초기에 헌신했던 인물이었던 것도 사실인 만큼 매우 차분하고 침착하면서도 정동환 특유의 능글맞은 톤이 함께 담겨 있다.[41] 토설을 해! 토설을![42] 임관 초기에 상관들과 마찰을 빚었던 일과 녹둔도 이후 백의종군을 했던 점 등을 거론하며 한 말이, '파직과 백의종군을 밥 먹듯이 했군... ㅉㅉ'.[43] 이순신이 복직되고 나서도 류성룡이 자신에게 이순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게 하지 못한 이유를 자신의 발언이 뻔뻔해서가 아니라 선조 스스로 조선을 구할 영웅이 이순신임을 말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입을 원천봉쇄했다고 정치적으로 해석한다.[44] 2015년 3월 31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향년 48세로 사망하였다.[45] 선조를 맡은 조민기와 함께 5화 이후 교체.[46] 혹은 '전하께서 어떤 모습이시든 나는 충직하게 따르기만 하면 될 뿐'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더불어 이전까지 상선이었던 자는 선조가 직접 조사를 명한 뒤 부당하게 재물을 축적했다는 죄를 물어 축출해 버리는데, 선조가 이순신을 경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전임 상선과 그닥 다르지 않게 보이게 된다.[47] 1인 2역으로 명종 시기의 부훤당 오상도 연기했다.[48] 명성황후에서 고종 황제의 아역, 대왕 세종에서는 양녕대군의 아역으로 출연했다. 이 당시는 예명인 이준을 썼다가 뒤에 본명으로 돌아왔다.[49] 명성황후에서 안동 김씨가의 중진인 김병국, 무인시대에서 박존위,근초고왕에서 고구려 대장군 고치수, 대왕의 꿈에서는 백제 무왕 역을 맡았다.[50] 제를 지내던 중 제보를 받은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급하게 숨었는데, 관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이순신에게 아버지는 어디 갔냐고 묻는 바람에 잡혔다.[51] 명성황후에서는 흥선군의 장남 흥친왕 이재면, 대조영에서는 당 고종 역을 맡았다.[52] 처음에 이순신의 글솜씨를 알아보고 대리시험을 제안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이에 앙심을 품고 이순신이 역도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흘려 급제를 취소시킨 뒤, 술에 빠져사는 이순신의 형 이요신을 적당히 꼬투리잡아 감옥에 쳐넣고 형을 살려야하지 않겠나면서 대리시험을 강요했다.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한 이순신이 대신 시험을 쳐 준다.[53] 작중에서 송병택 가문은 윤원형 일파라서 문정왕후 사후에 윤원형이 실각하면서 세트로 처리된 듯 하다.[54] 이순신의 장남인 이회도 아역으로 딱 한번 등장했지만 대사도 별로 없었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등장한 자녀는 이면뿐이다.[55] 훗날 대조영에서 연남건을 연기한다.[56] 아버지는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형이 밀무역을 할 때 죽었으며 어머니는 와키자카가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곤양을 털 때 죽는다.[57] 처음에 고니시 유키나가 역을 제의받았다가 악역 캐릭터를 계속 맡기 싫어서 거절했다. 어차피 이 역도 악역인데? 고니시 역은 정승호가 캐스팅.[58] 북한산을 등반하다 추락하여 대퇴골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동시기에 출연중이던 부활은 현대극이라 휠체어를 탄 상태로라도 출연이 가능했고 최동찬은 조연이긴 해도 주요 인물들과 죄다 얽혀있는 중요인물이라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본작은 사극이고 임천수는 중요도가 아주 크진 않은 오리지널 캐릭터니 하차해도 극 진행에 큰 문제는 없었다.[59] 초기 설정으로는 임천수는 거북선 탈취를 꾀하다가 실패하고 이순신의 용서를 받고는 감화되어 그의 여불위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었는데, 배우 개인에게 부상은 불행이지만, 이 캐릭터가 계속 남아서 설정대로 갔으면 후반에도 역사왜곡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란 점에서 드라마 완성도에 있어서는 차라리 다행인 점이다. 도중에 임해군과 신성군이 납치된 현장 옆에 임천수가 있는 걸로 보아서는 실제 역사에서 두 왕자의 위치를 일본군에게 밀고한 사람을 임천수로 묘사한 듯하다.[60]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납치되어 이순신과 곤양을 팔아넘기고, 나중에는 여진과 밀거래하다 겨우 탈출하더니 최종적으로 임해군과 순화군을 팔아넘기는데 일조한다.[61] 당초 김보경이 캐스팅되었으나 교체되었다.[62] 시를 짓는 기녀.[63] 원균이 이 문구를 보더니 무인이 칼을 멈추면 쓰겠냐고 깠다(...) 한편 止戈가 새겨진 이 검은 이영남이 와키자카와 결투를 벌이던 중에 부러지고 만다.[64] 양반들이 도자기는 애지중지하면서 왜 그 도자기를 만드는 사기장은 사람 취급도 안 하느냐는 대사가 있으며, 일본으로 국적을 바꾼 것도 이런 불만 때문이었다고 스스로 언급한다.[65] 국적을 바꿨으면 그 나라식 이름을 얻는 게 당연한 일이다. 배설이나 할보, 석호필 등 조선인이 아니면서도 조선식 이름을 짓고 조선 독립 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좋은 예. 더불어 平 자가 へい로 읽히지만, 한국어식으로 '장'이라는 음을 가진 한자 중에 일본어식으로 'こ' 나 'こう', 'ご', 'ごう' 등으로 읽히는 것은 없다. 실제로 임진왜란으로 일본도 꽤나 인명피해가 심각했기에 고향으로 돌려보낸 조선인외에도 왜에 남은 조선인의 경우도 꽤 많았다.[66] 본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이었는데 옥포 해전 직후 다시 등장할 때 표준어를 사용한다. 이때문에 단순히 극중에 표현된 대로만 보면 일본에 끌려가서 표준 한국어를 익혔다는 괴상한 구도가 되어버린다. 이 작품이 일본측 인물도 한국어를 사용하기에 일본인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겉으로는 한국어로 나와도 일본어를 쓰는 셈으로 봐야 하기에 장평 또한 일본인과 대화할 때는 일본어를 쓴다고 여기면 된다. 이때문에 장평이 이순신, 소은우와 대화할 때는 예전에 쓰던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해 일본인과 대화할 때와의 모습에 차별화를 둔다.[67] 처음에 전라좌수사의 정체를 알아오라는 정탐 임무를 받았을 때도 그 이름이 이순신이라는 것을 듣고 자신이 아는 그 이순신이 아닐 것이라고 애써 부정한 장면이 묘사되었다.[68] 이 당시 와키자카는 일부러 한산도를 향해 단독으로 돌격한다는 거짓정보를 장평에게 흘렸고, 이 떡밥을 문 장평이 그대로 전라 좌수영에 소식을 알리자마자 붙잡아 가두었다. 그런 다음 실제로는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 진격하여 한산도를 애워싸면서 일자진을 치고 기다리는 이순신의 본대를 포위 섬멸하려고 했던 것. 때문에 와키자카는 이순신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어 한산도 먼 바다에 삼도 수군을 집결시켜 학익진을 펼쳐 공격하도록 작전을 세웠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이대로 이순신을 무찌르고 장평을 처형한 다음 그 묘비에 이순신을 무찌른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 새겨주겠다고 장평을 조롱하였다.[69] "무릎꿇고 빌어라. 이순신 장군, 아니, 네놈들이 짓밟은 조선 백성들 앞에서 무릎꿇고 빌어라! 그것이 네놈들이 사람으로 죽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라!" 다만 이 장면은 비록 통쾌하고 인상적이긴 했지만 한참 전투 중에 일개 함장도 아니고 총사령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포로 한 명과 씨음을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70] 양재원은 이순신의 곤양 시절 탐관오리로 등장한 적도 있다. 극 중 1인 2역.[71] 장삼복과 백련이의 관계는 부부나 약혼자 내지 연인이다. 스스로 희생하겠다고 말하며 '제 계집도 지키지 못하는 게' 라고 한 것에서 확인 가능.[72] 칠천량 해전에서 여러 장수들이 원균의 대장선에 모여서 회의를 할 때도 최호만 안보인다. 최호 역할을 맡은 배우 석정만씨의 블로그를 참고하면 원래 최호의 전사 장면도 있었으나 분량상 이유로 편집된 걸로 추정된다.[73] 고증을 더욱 치밀하게 하자면 소서행장이 아니라 평행장이라고 불렀어야 한다. 조선에서는 일본 측에 성씨가 藤, 源, 平, 橘 넷이 전부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고, 1617년 조선통신사가 남긴 기록에도 당시 조선에 '平調興' 이라고 알려졌던 일본인 柳川調興을 만나고 나서 柳川이 성씨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柳川은 調興의 별호(別號)이다' 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록에도 풍신수길이라고 나오는 기사는 3건에 불과한 반면 평수길로 나오는 것은 85건에 달한다.[74] 한산도 해전 당시 일본 해군 총사령관은 구키 요시타카였는데, 자신이 사령관이 아닌 것에 불만을 품은 와키자카는 군사들을 훈련시키겠다고 보고해 놓고서는 이순신의 목을 따러 갔다. 물론 결과는 참패.[75] 센노 리큐의 할복, 고헤이몬의 암살 시도,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게 패배하는 군사들[76] 쓰러지면서 모든 것을 달관한 듯 허망한 목소리로 "이렇게 끝인가, 오사카의 영광이... 이 모든 게 꿈 속의 꿈이었던가." 하는 유언을 남긴다. 실제로 죽기 전에 남겼던 사세구를 적절히 인용한 셈.[77] 비슷한 시기 타 방송국에서 방영하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여주인공 김선아의 맞선남으로 출연하면서 투잡을 뛰었다.[78] 일본 조정의 최고기관인 태정관의 4등관 중 2등관에 속하는 직책, 오늘날의 차관급 고위직책이라 보면 된다.[79] 정욱은 2006년 자신의 아들와 함께 9,000여 명 투자자 상대로 1,000억원 이상 사기를 쳐서 걸렸으며 정욱 본인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자신의 아들은 징역 6년을 받으며 이 일로 인해 10년째 출연정지 연예인 명단에 있다. 정욱와 같이 경제범죄로 출연정지 받은 연예인은 서세원과 나한일이 있다. 집유받은 연예인들 중에서 정욱이 형량이 제일 높다.[80] 할복 직전 '부하의 방자함을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라고 꾸짖는 도요토미에게 '저는 공의 신하가 아니라 그저 불제자일 따름입니다' 라고 반박하는데, 이는 도요토미의 신하가 되며 스스로를 '불제자이기 이전에 전하의 가신인 것을요' 라고 정의하는 사이쇼와 좋은 대비를 이룬다.[81] 이 때 도요토미는 센노 리큐가 배를 가르겠다고 하자 밖에 있던 무사를 불러다가 카이샤쿠를 해 주는데, 무사가 목을 베자 센노 리큐를 상징하는 듯한 찻잔에 피가 튀는 연출이 나와 극적인 분위기를 배가시킨다.[82] 그 누구도 믿고 방심해서는 안되며 심지어 쇼타이 본인도 절대 완전히 믿지 말라고 하며 도쿠가와를 특히 경계할 것을 거듭 진언한다.[83] 고니시 유키나가의 출생연도는 1555년생 또는 1559년생으로 임진왜란 출정 당시 나이는 만으로 37세 혹은 33세이다. 당시 50세를 앞뒀던 배우의 나이대와 맞지 않는다. 훗날 징비록(2015)에서는 이광기가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 역으로 출연하는데 이광기 역시 당시 만 47세로서 실제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 일본 사극 군사 칸베에(2014)에서는 고증에 부합하도록 당시 만 33세였던 오시나리 슈고가 고니시 유키나가 역을 맡았다.[84] 이를 가또가 상인 출신 어쩌구 하며 마구 까는 모습도 나온다.[85] 작중 시기는 음력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양력으로는 11월 중순이다. 즉 본격적으로 겨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는 철이다.[86] 대표작으로 자이언트의 삼청교육대 교관이 있다.[87] 최후반부에 고니시를 구해달라는 고니시의 사위인 소 요시토시의 간청에도 "사천에 주둔한 시마즈, 와키자카 그 놈들은 놔두고 왜 여기 와서 구걸이야?" 라며 대놓고 싫은 티를 낸다. 아예 그 천주인지 뭔지한테 빌면 도와주지 않겠냐는 조롱까지 한다. 사실 시마즈도 고니시한테서 직접 전갈이 오기 전까지는 군사를 움직일 수 없다며 우회적으로 거절했고, 와키자카는 일단 구해주겠다고는 했으나 이순신과의 마지막 싸움을 더 우선시하며 고니시 구출은 할 수 있으면 하겠다는 투였다.[88] 비하인드에 따르면 징비록 방영 당시 배역을 위해 삭발을 했다. 일본 장군들의 헤이하치컷을 구현하기 위해 배우의 머리에 작업을 하는데 삭발을 해서 그런지 훨씬 자연스럽다.[89] 태조 왕건에서 배현경 역을 맡은 바 있으며, 이후에도 연개소문에서 양만춘, 대조영에서 조인사, 대왕 세종에서 여진족 수장 이만주, 근초고왕에서 진률 역할을 맡으면서 사극에 심심찮게 등장한다.[90] 야인시대에서 김좌진, 대조영에서 조문홰, 광개토태왕에서 고구려 국상 개연수, 대왕의 꿈에서 연개소문 역을 맡았다.[91] 대조영에서 검모잠, 정도전에서 공민왕 역을 맡았다.[92] 거북선을 파괴하려다 실패해서 죽은 부하들에게 직접 염불을 하며 명복을 빌어주고, 히데요시가 한산도 해전의 패전의 책임으로 야스하루의 부하 장수들에게 할복을 명하자 '부하들은 죄가 없다. 차라리 나에게 할복을 명해달라'라며 빌기도 한다. 물론 히데요시는 넌 할복할 권리도 없다며 무시한다.[93] 이 말에 히데요시는 '넌 자객이 될 자격도 없는 놈이야...!!' 라면서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까고 뺨을 치는 식으로 모욕을 주었다.[94] 또한 한산도 대첩 이전에 거북선 공격에 실패한 부하들의 시신을 권준이 사자의 자격으로 돌려주러 진영에 오는 장면에서 권준을 베어버리려는 부하들을 간신히 참으면서 군인이지 해적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 칼을 거두라고 제지하였다.[95] 도요토미가 세상을 떠나고 일본군 지휘관들 모두가 조선에서 철수할 것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심지어 가토 기요마사조차도 '태합이란 놈은 죽어 나자빠졌으니 이제 우리가 조선 놈들이 보는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일만 남았다' 라는 막말을 내뱉는 상황이었다) 군사들을 혹독하게 훈련하고 자기 자신도 함께 구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96] 작중에서 와키자카가 포로로 잡힌 김완에게 이순신의 가솔을 도륙할 것임을 알려주며 향도가 되라고 지시하는데, 이를 김완이 탈출하는 장면과 엮어 전투가 아닌 다른 방법을 쓰기 싫었던 와키자카가 일부러 김완에게 정보를 누설하여 탈출을 방조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부 시청자들의 추측일 뿐이다.[97] 날발의 아비는 야스하루의 형에게 어미는 야스하루 일당들에게 죽었다.[98] 참고로 부산진 전투와 제1차 진주성 전투는 이순신과도 전혀 무관하다. 그런 전투에서 와키자카가 출전했다고 묘사하는 건 더더욱 이상하다.[99] 태조 왕건에선 신라의 마지막 충신 김율 역을 맡았고, 무인시대에선 2회만에 목이 잘린 환관 왕광취 역을 맡았다. 본작에서는 바로 아래의 구루지마 미치후사와 1인 2역.[100] 이후 정신을 못차리고 협공을 하기로 했던 부하들이 조선 수군의 유인에 걸려 배가 좌초되었어도 제시간에 도착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하들을 여럿 베어버리고 심지어 말리려는 부하까지 베어버리는등 괜한 화풀이를 하다가 도도 다카토라가 와서야 멈추게 된다.[101] 그래도 "엊그제 명나라군 4만을 물리쳤다"라는 사천성 전투를 언급한 와키자카의 대사가 있긴 있었다.[102] 실제로 칠천량에서 가토 요시아키가 부상을 입었다.[103] 명량해전 직전 부산 주둔지에 도도(최동준 역), 와키자카(김명수 역)과 같이 있는 씬까지 찍은 것(94회 ~ 95회)으로 봐서 도도와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구키 역을 맡은 배우 서영진의 건강 문제로 하차한 것이다. 그리고 서영진은 불멸의 이순신 종영 직후에 별세했다.[104] 후추를 줍는 기생들의 뺨을 친 뒤 유즈야의 술잔에 담긴 술을 마시고 맨 손으로 상에 놓인 고기를 먹으며 개에게 하듯이 후추를 던지셨으니 자신도 개의 예법으로 답례를 했다고 고한다.[105] 26회에서 한 번, 49회에서 한 번 등장한다.[106] 뒤이어 선조가 무릎까지 꿇어 명의 원병을 간청했지만, "그대는 조선의 왕일 수 없다. 진짜 왕이 어찌 이토록 함부로 나라의 자존심을 버리겠는가?"라며 재차 굴욕을 주었다.[107] 사극에서 조연을 주로 맡는 배우다. 태조 왕건에서 왕건의 책사 태평, 명성황후에서 일본 외교관 사이온지 긴모치, 대조영에서 매국노 부기원 역을 맡았으며 이밖에도 근초고왕에서 신라 실성왕, 광개토태왕에서 탐관오리 가렴, 대왕의 꿈에서 신라 진평왕, 징비록에서 양호 역을 맡았다. 영화 연평해전에서는 참수리 357호의 갑판장 역을 맡았다.[108] 이때 이순신을 조선 최고의 장수로 띄워주면서 자기도 명나라 최고의 장수라며 자찬한다.[109] 등자룡은 이순신이 작정하고 진린을 능멸했다고 했지만 진린은 오히려 작정은 내가 했다고 한다.[110] 진린이 아둔한 자vs장수 중의 장수인가로 고민할 때 등자룡은 이순신이 과거 황제의 명마저 거부하고 왜를 공격+진린에게 칼을 들이댄 것을 얘기하며 무슨 장수 중의 장수냐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데도 이를 신경쓰지 않는다.[111] 전장에서 무기를 나누는 것의 의미(=목숨을 나누는 것)를 설파.[112] 이때 유정이 지난 왜교성 전투에서 수급 2,000두를 뇌물로 받고 공격하는 척만 하여 자신이 죽을 뻔했음을 언급하며 극딜을 넣는다.[113] 이순신은 피해를 봤지만 그래도 적선 수십 척을 부쉈다고 했는데 유정은 자기들이 졌다면서 이순신 탓을 했다.[114] 이순신이 일본군 사자와 자주 만난 것을 알고 있다고 하자 뻘쭘해한다.[115] 이때 리얼하게 행동하는 양 보이기 위해서 수급 1,000두를 주면 전투에서 빠져주겠다고 하여 수급을 받는다.[116] 무려 나대용에게 수로향도가 되어 안내해달라고 부탁을 한다.[117] 야인시대에서 똘대가리역을 맡았다.[118] 전작 에서 명동패인 황병관(야인시대)를 맡았다.[119] 태조 왕건에서는 장수장. 무인시대에서는 석린, 대조영에서는 고돌발 역을 맡는 당 KBS 대하드라마에 자주 얼굴을 비췄다.[120] 야인시대에서 이규갑 역을 맡았다.[121] 드라마 주몽(드라마)에서 도치 역을 맡았다.[122] 태조 왕건에서 패서(황해도) 호족 중 하나인 원극유를 맡았다.[123] 야인시대애서 신영균 역을 맡았다.[124] 이순신이 제안하고 이일이 받아들인 위장술이었다.[125] 훗날 대왕 세종에서는 여진족에게 쥐약이 되는 4군을 개척한 최윤덕 역으로 열연했다는 것이 재미있는 점.[126] 원래 야인여진은 총 4개 부족으로 결성된 단체이다. 극에 나온 이 4개 부족의 추장들은 우을기내와 맛니응개, 그리고 이 2명이다.[127] 이순신이 시전부락에 대해서 말할 때 총 4개(우을기내, 사송아, 나머지 2명)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한 것으로 보아 죽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