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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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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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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문서 참고.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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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정3. 0화4. 1화5. 2화6. 3화7. 4화8. 5화9. 6화10. 7화11. 8화12. 9화13. 10화14. 11화15. 12화16. 13화17. 14화18. 15화19. 16화20. 17화21. 18화22. 19화23. 20화24. 21화25. 관련 문서

1. 개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1994년을 고증하는 데 있어 몇몇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책임 프로듀서인 신원호 PD의 인터뷰에 따르면 고증에 대한 지적을 인정하지만 드라마의 전반적 흐름과 저 시대를 모르는 세대의 공감을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일정부분의 오류를 감수하고 작품의 재미를 더 추구하겠다는 생각이 보인다. 시각차에 따라 의견이 갈리겠지만 일부 팬들에게는 이럴 거면 굳이 94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만드는지 아쉽다는 반응이 있다. 따라서 과도한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닌 이상 90년대를 드러내는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할 것이다.감독 인터뷰 또한 제작 기간과 예산에 의한 한계점도 존재한다. 한 예로 1화에 등장한 서울역 장면은 표지판 CG작업에만 한달이 걸렸다고 한다.[1] 또 고증 자료가 부족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사정은 더 열악할 수 밖에 없다.

본편이 방송되기가 무섭게 고증오류에 대한 짤방이 등장하고 있다. 1탄 2탄

까놓고 말해서 응답하라 시리즈가 고증덕후들이 유독 많이 나오는 것은 그 당시(1994년)를 직접 겪은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그렇다.[2] 애초에 그 세대들이 인터넷 1세대이기 때문에, 지적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사실 여기서 적는 사람들도 그냥 절반쯤은 비교하고 따져보는 재미로 적는 것일 뿐, 완벽한 고증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서는 절반은 고증오류, 절반은 팬심으로 발견하는 옥에 티 모음 정도로 가볍게 즐기도록 하자.

2. 설정

극중 고아라의 사투리는 1화 맨 첫부분(2013년 현재의 성나정이 처음으로 사투리를 말하는 부분)만 빼면 거의 비슷하다. 톤은 맞지만, 스크립트(대본)를 서울사람이 쓴 것이 태가 난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본편으로 들어가면 무난하게 구사한다. 참고로 실제 마산말은 정우(쓰레기)의 말투가 가장 흡사하다. 응사와 관련있지는 않지만, 이런 사투리의 고증에 대해서는 배우 황정민이 예전에 무릎팍도사에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고 11월 14일자 썰전 예능심판자에서 박지윤(마산 완월초 졸업생이다)이 정리한 바 있으니 참고하자.

조윤진과 윤진의 친구가 쓰는 여수 사투리라고 나오는 대사들이 당시 여수에서 실제 사용되는 사투리보다는 타 지역의 전라도 방언을 바탕으로 구성되어있어 이질감이 느껴지는 편이다. 현재 주로 쓰이는 사투리와도 차이가 있다. 드라마를 위한 과장이 아닌 여수에 다른 전라도 출신 사람이 놀러왔을 때 듣는 사투리 느낌이다. 1994년 당시에는 여수가 삼려통합이 되기 이전으로, 여수시와 여천시 군의 경계가 명확했고, 지역민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 항구도시 여수시,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주가 되어 건설한 여천시, 그리고 외곽지역 농촌이나 어촌으로 구성된 여천군 출신 주민들의 아이덴티티가 상당히 명확하게 다른 편이었다. 윤진이 사용하는 사투리는 당시 여수시 지역에서 전반적으로 사용하는 사투리와는 상당히 격차가 있는데, 일반적인 억양에서부터 어휘에 이르기까지 구 여수시 출신 사람들이 듣기에 상당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대표적인 사례로 윤진이 '그리고' 대신 사용하는 '그라고'를 비롯하여, '이렇게' 대신 사용하는 '이라고'[3], '돌산대교'의 '돌'을 장음으로 발음하여 '돌-산대교'라고 발음 등의 사례를 들 수 있으며, 여수에서 '아주', '매우'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그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점도 들 수 있다. 또한 워메, 헙버 등의 단어는 여수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오히려 여수에서는 왐마 등의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ㅡ 그외에도 억양과 어조, 단어의 장단음 발음 등 여러 부분에 있어서 상당한 이질성이 보이는데, 이러한 상황은 극중 대사에서 여수시의 인구를 30만대가 아닌 18만으로 구 여수시로 한정하고, 윤진과 윤진 친구의 출신 지역을 구 여수시로 설정한 것, 해태가 사용하는 순천시 사투리는 실제와 싱크로율이 높은 것 등 세밀한 부분까지 충실히 고증한데 반해[4] 조금 더 보완이 가능함에도 다른 부분에 비해 미비한 고증이 아쉽게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다. 구 여수시 지역의 사투리는 극중에도 언급되는 백일섭씨의 평소 말투와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꽃보다 할배에서 백일섭의 말투와 윤진의 말투를 비교해 본다면 그 이질성이 확연히 느껴질 듯하다.

하지만 최대한 등장인물과 배우의 출신지역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특성상 조윤진역을 맡은 도희는 실제로도 여수시 출신이다.[5] 1994년생의 여수 출신 연예인이 보기엔 별 어색함이 없었기에 본문에서 지적하듯 비교적 일반적인 전라도 사투리로 대사가 구성됐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감안한다면 19년 동안의 여수 지역의 사투리가 타 지역과 동화된 정도가 생각보다 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일테니 굳이 제작진의 고증 미비만을 탓할 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현재도 도희가 쓰는 여수 사투리에 여수 주민들이 쟤가 여수 출신이고 저게 여수 사투리라고? 누가 여수 출신이냐? 하는 걸 보면 그녀의 사투리가 유달리 독특한 건 사실이다.

이에 대해 도희는 인터뷰에서 극중 사투리는 여수 현지에서도 노년층이나 중년층이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도희 배우 본인 평소 말투가 억양에 센 편이고 오히려 표준어가 더 안 나온다고 한다. 일단 작중 윤진의 어머니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고, 바지락 손질을 해서 용돈벌이를 했다는 표현이 나온 것 등을 볼 때, 이는 윤진의 성장배경 설정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6]

도희의 평소 생활 모습에서 타이니지 팀 멤버들과 얘기하는 것을 보면 실제 사용하는 사투리와 응사에서 연기하는 대사의 말투나 억양이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극중 과장인 듯하다. 여수 출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초반에는 아주 많이 어색했는데 후반으로 갈 수록 등장하는 '헙버' 등의 단어를 제외하고, 어색함이 완화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아무래도 초반에는 극중 과장이 있었고, 연기 초반이다 보니 대본에 있는 과장된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다가,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후 본인의 영향으로 적당히 조정한 듯 하다. 실제로 도희가 1월 9일 해피투게더에 출연했을 때, 초반에는 작가가 써 주는 대로 연기했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어느정도는 애드립이나 수정을 추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2013년 서울 상암동"이라고 나오는 아파트 야경은 인천 송도국제도시다. 가끔 아파트 뒤에 포스코타워-송도가 비친다. 16~17화에 빙그레가 길가에서 기다리는 씬에서 길건너 보이는 아파트(더샵 센트럴파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 0화



4.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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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kh-200.jpg 파일:attachment/kh-2002.jpg

5. 2화

6. 3화

7. 4화

8. 5화

9. 6화

10. 7화


파일:external/file.instiz.net/c416422b7616a9b57118d849d5414c1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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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8화

12. 9화


파일:external/menu.mtn.co.kr/2013112515463361508_00_829.jpg

굳이 유추해보자면 마산여중 교복에 가깝다. 다만 블레이저가 버튼다운 조끼 타입이어야 하고, 블레이저와 스커트 모두 마산여고와 같은 문양이되 색깔만 남색계열인 체크무늬여야 하는데 그건 사진으로 확인 불가다.

13. 10화

14. 11화

15. 12화


파일:attachment/error4.jpg

16. 13화

17. 14화

18. 15화

19. 16화

20. 17화

21. 18화

공항에서 기자가 들고있던 카메라중 오른쪽이 캐논 EOS 10D인데 이 카메라는 2003년에 출시되었으므로 1999년에는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1999년이라면 캐논이 최초로 개발한 DSLR인 EOS D30조차[66] 나오지 않은 시절이다. (EOS D30은 2000년에 출시됨) [67]

22. 19화

23. 20화

파일:응4 포트리스.png
* 포트리스2 화면이 나오는데, 온라인 버전이 아닌 2001년에 나온 아케이드판이다. 다만, 온라인 게임을 옛버전 고증에 맞춰서 구현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파일:attachment/error3.jpg
* 나정이 아웃룩 익스프레스로 메일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컴퓨터의 운영체제가 Windows XP로 되어 있는데 Windows XP는 2001년 10월 25일에 전세계 동시 출시되었다. 고증에 맞게 한다면 1999년 7월에 정발된 Windows 98 SE 또는 2000년 3월에 정발된 Windows 2000이 적절했을 것이다.

파일:attachment/error_2.jpg

24. 21화


파일:attachment/응답하라 1994/고증오류/REPLY1994E21.jpg
파일:attachment/응답하라 1994/고증오류/Image_20120808.jpg
파일:attachment/응답하라 1994/고증오류/정리_2차.jpg

25. 관련 문서


[1] 참고로 서울역 장면은 서울역의 문이 닫혀있다는 이유로 고증오류로 지적받았다.[2] 1994년을 직접 겪은 세대는 주로 80년대생 이상이다. 지금 20-30대인 90년대생들은 엄청 어렸기 때문에 주로 30-40대가 많이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4년에 대학 입학한 사람은 1975년생이고 수능 1세대다. 그당시 국민학교 입학한 사람들은 1987년생으로 2023년 기준 35세다.[3] 위의 사례들은 대표적인 목포, 신안, 영암 등 서부 호남방언의 특징으로, 동부 호남 방언과는 거리가 있다.[4] 손호준이 사투리의 억양을 굉장히 잘 표현했으나, 극 중 수화기 너머로 나오는 해태 어머니의 억양이 순천 사투리에 조금 더 가깝다. 4화 '거짓말' 편 참고.[5] 정확히는 여천동, 즉 구 여천시 출신이다.[6] 말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바닷가 어촌에서 자랐다면, 거친 뱃사람들이나 노인들에게 말을 배우며 자랐을 것이다. 여수 사람들이 듣기에 유독 윤진의 어조가 강하다거나 한 것은 도희의 사투리 연기 탓도 있겠지만, 윤진이라는 캐릭터의 성장배경을 추정해 보면 어느정도 이해는 가능할 듯하다. 통합 이전 구 여수시의 영역은 넓지 않은데, 어항이 있던 여수항이나 여수신항(2012 여수 엑스포 박람회장 부지) 부근에 윤진의 집이 있고 윤진의 아버지는 시내에 있는 회사에 출퇴근 하고 윤진의 어머니는 조개 까는 부업을 하며, 윤진은 동네 노인들이나 뱃사람들에게 말을 배웠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일단 바지락을 까는 부업 자체가 어촌, 혹은 수산시장 주변이 아니라면 성립하지 않는 설정이다.[7] 디자인은 일본판과 동일한 유럽판을 들여왔다.[8] 원래는 지원하려 했다가 취소되었다. 그래서 SFC의 고속 연산 능력은 떨어지는 편. 자세한 사항은 슈퍼패미컴 항목 참조.[9] 물론 비공식 패미컴 컨버터가 있었다.[10] 물론 슈퍼패미컴용 합팩을 잘찾아보면 버전이 가끔 나온다.[11] 아무래도 2013년 현재 일반인들이 기억하는 추억의 고전게임이라 하면 슈퍼패미컴 시절보단 패미컴 시절을 가리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그랬던걸로 보인다.[12] 원래 리리코스는 태평양(아모레)이 프랑스 진출을 목표로 현지에 공장을 설립해서 만들었던 브랜드로, 국내에는 프랑스에서 온 화장품으로 팔렸었다. 94년 당시 리리코스를 사용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스킨이 45,000원, 로션이 55,000원, 에센스가 60,000원으로, 2021년 현재 리리코스는 국내 생산으로 바뀌면서 저 가격의 절반이다[13] 물론 선물 자체는 지방에서 명문대 합격이라는 명목 하에 주변에서 선물로 안겨주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대학에 합격한 여학생에게 선물로 좋은 화장품 세트를 선물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14] 리리코스 스킨로션 케이스 디자인은 런칭 이래로 쭈욱 비슷한 유선형 실루엣을 이어오고 있지만, 뚜껑 모양이나 투명/불투명 여부같은 세세한 차이가 있다. 용기 색으로 봐서 나정의 화장대에 있던 것은 현재 판매중인 마린화이트 라인으로 추정된다. 리리코스에서 메인으로 미는 라인은 아니지만, 94년에 판매되던 제품은 아니다.[15] 개편 전 번호는 50번. 시청역은 51번이었다.[16] 현재도 서울 지하철 역들의 안내판에는 디자인서울에 의해 서울남산체를 사용하고 있다.[17] 아랫부분에 검고 노란 주의표시 막대가 설치되어 있다.[18] 이 방송은 지금도 개통 초창기부터 있었던 1호선 역들에서 청량리행 열차가 도착할 때면 들을 수 있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진짜 높다.[19] 가수 동물원의 노래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에서 1988년의 열차 진입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다.[20] 예시용으로 나온 차는 개조저항 전동차로 개조저항이 처음 운행한 건 1998~1999년이다[21] 개통 당시는 본선이었다.[22] 게다가 차종도 뉴 슈퍼 에어로시티 초저상버스. 참고로 1994년에 초저상버스는커녕 준저상버스도 없던 시절이다. 아니, 초저상이 준저상보다 먼저 나왔다.[23] 2003년 교내 신축기숙사로 이전하기 전[24] 현재는 공과대학 컴퓨터과학과.[25] 여담으로 당시 농구대잔치 중계진은 KBS: 이명용 아나운서-유희형 해설위원, MBC: 임주완-방열, SBS: 박영만-한창도였다.[26]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폭풍을 부르는 영광의 불고기 로드>에 나왔던 표지판을 생각하면 된다.[27] 굴림체와 비슷하지만 좀 더 슬림하다.[28] 현재도 사용중인 1990년대 표지판. 파일:1990년대교통표지판.jpg 사진 속 표지판은 대전광역시의 도로 표지판이며 이런 표지판이 서울시에서 쓰였다고 생각하면 된다.[29] 이는 지방과 서울간의 괴리감을 단적으로 표현한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해서 KFC를 등장시켜야 했고, 그당시 KFC는 다른 패스트푸드점에 비해 메뉴가 단순했던 관계로 이를 알면서도 비록 그 시대는 다르지만 "징거버거"라는 대표상품을 따 온것으로 인터뷰에서 신원호 PD가 밝혔다.[30] 정확하게는 1994년 당시 37만 5천명이고, 1995년 도농통합 후 43만 8천명 가량이다.[31] 레일바이크역으로 남아 있는 경강역(현 굴봉산역)이 남아 있긴 한데 MT 장소로는 인지도가 떨어지는데다, 당시 강촌역과 모양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걸 써도 고증오류였다.[32] 라즈베이파이나 *nix가 설치된 컴퓨터와 하이텔 단말기를 널모뎀 형식으로 연결하면 못할것도 없지만 쪽대본 등으로 굴러가는 스튜디오의 특성상 그걸 할리가..[33] 그리고 멜론을 백화점에서 사왔다는 사실에 나정과 그 식구들이 놀라는게 고증오류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당시 마산에는 백화점 하면 옷이나 침구류, 화장품등을 판매한다는 인식이 많았다. 엄밀히 말해 고증오류는 아닌셈.[34] 여기에는 지방 거주자들과 강남 거주자들의 시각 차이가 있다. 1994년에 이미 대치동 은마 아파트는 지방 거주자들에게는 집값이 비싼 부유한 동네의 상징으로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보습 학원으로 불리는 중소규모 학원들에 의해 학원가가 형성된 시기였다.[35] 지금도 대치동 핵심지역은 우선미지 은마는 아니다. 참고로 타워팰리스는 행정구역상 도곡동이다.[36] 정문에 들어와서 '공대 건물 멋있네..' 라고 생각한다면, 연구소와 벤처기업 위주로 구성된 공학원 건물을 본 것이다. 포스코브릿지와 연결된 그 옆의 허름한 건물이 공대다. 물론 공학원 건물도 공대 부속건물로 보기는 한다.[37] 백양로 상에서 공대 쪽을 바라보면 제1공학관 밖에 안 보이고 제2, 3공학관은 제1공학관 건물에 가려서 안 보이니 사실상 공대의 상징은 독일산 타일이 붙은 제1공학관이더.[38] 단 당시에도 한자용어는 사용되고 있었고 쓰레기의 다른 책이나 노트에서는 이게 발견된다.[39] 외솔 최현배로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을 이어받아서 그런지 연세대에는 순우리말을 사용하려는 학풍이 곳곳에 존재한다.[40] 사실 등장은 해남전이 빨랐다. 다만 산왕전과는 달리 그냥 지나가면서 등장한다.[41] 94년 당시에는 체스 무늬 공사를 하기 전이며, 그냥 타일이 깔려 있었으므로 체스광장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42] 쏘렌토는 2002년도에 나왔고 체이맨은 1997년도에 나왔다. 그리고 아직 E클래스 W124가 현역일 때다.[43] 민항사 파일럿이라고 한다.[44] 게다가 옆으로 보이는 차량은 기아 뉴 그랜버드였다.[45] 불은 뿜는다만, 전부 우승한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호랑이랑 사자가 했지... 어쨌든 독수리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46] 삼천포시청 장면[47] 통통배를 타고 일출을 보러 간 장면도 삼척에서 찍은 것이라고 방송 종영 후에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 출연한 김성균이 밝혔다.[48] 놀란 라이언의 투구폼과 같은 것. 사실 놀란 라이언은 박찬호의 우상이었고 박찬호가 여러모로 벤치마킹한 선수 중 하나이다.[49] 케이블TV 출범 이전에는 각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공청 시설'들이 사실상의 지역SO 기능을 하고 있었고, 시 지역의 공청들은 자체설비를 이용해 이전에 녹화한 방송을 낮에 틀어주곤 했었다. 심지어 남해안 지역인 NHKBS 1, 2와 WOWOW, 스타TV같은 외국계 위성도 그대로 송출했다. 물론 걸리면 불법이지만 다들 그렇게 봤던 시절이다. 그래서 지역민방체제 출범 이전에도 SBS를 본 지방 시청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50] 그런데 삼천포의 '삼'은 숫자 3(三)이 맞지만, 사천의 '사'는 숫자 4(四)가 아니라 지명용 한자로 쓰이는 泗자이다. 즉 어떻게 보면 개드립.[51] 전국민 상대로 공익광고 소스 등을 공모하는 것이었으며 1년마다 개최하고 있다.[52] MBC는 "서울의 달", SBS는 "사랑의 향기"가 방송중이었다.[53] 하지만, 2020년에 빙그레가 해태제과식품의 아이스크림 부문 자회사를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사실상 한 가족이 되었다.[54] 여러모로 획기적인 공연으로 대중문화사적 가치가 있다. 물론 그 전부터 뮤지션들의 공연은 많았지만, 오버그라운드 팝 가수의 쇼케이스는 변변한 공연 연출은커녕 제대로 된 조명이나 음향장비도 없이 거의 반주 틀고 춤이나 추던 시절이었다.[55] 실제로 1995년 3월, MBC에서 갓 론칭한 MBC 인기가요 BEST 50을 통해 이벤트성으로 '널 지우려 해' 콘서트 실황 무대를 공개했는데 시청률이 폭발했다고 한다. #해당 영상[56] 1집 활동 피크 때 이주노가 급성 맹장염이 겹처 병원에 실려가고, 서태지는 무대 뒤에서 산소마스크를 쓸 정도였다고 한다.[57] 시내버스 하차문 광고판은 2003년 이후 등장한다.[58] 사실 더 정확하려면 와이드 봉고의 후기형도 괜찮다. 봉고 J2는 1995년 6월 출시.[59] 당시에도 프로젝션 TV가 있었지만 그 당시 영상가전은 흑색 계통 디자인이었다. 1999년에 삼성 PAVV나 LG Xcanvas같은 대화면 TV 브랜드가 나오기 시작했다.[60] 네이버 옛날신문 1995년 6월 30일자 신문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61] 기존 계급장은 정말 눈에 잘 띄였다. 실제로 1996. 11. 5.에는 군단 기무부대장(육군 대령)이 이 '눈에 잘 띄는' 계급장 때문에 신분이 노출되어 공비에게 저격당해 전사하였다. 그리고 계급장의 색상 변경은 이전부터 계획된 것이기는 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면서 속전속결로 진행이 되었다.[62] 이러한 것을 드라마 송곳에서는 제대로 구현해냈다. 노란색, 흰색으로 된 계급장과 90년대 초반 당시 부사관 계급장(병장 계급장 위로 v자가 쌓여가는 형식)의 모양부터 패용 위치(병사들과 동일하게 왼쪽 가슴 주머니 덮개에 패용), 그리고 하계에 겉감이 보이도록 팔을 접는 방식까지도 구현했다.[63] 2004년 개편 때 170번으로 바뀌었다가 5711번과 통합, 153번→163번이 되었다. 우이동에서 신촌 가는 버스이기 때문에 버스 노선 자체의 고증은 맞다.[64] 참고로 90년대 당시 입석과 좌석을 혼용하는 노선이 매우 많아서 웬만한 정류소에는 모두 이렇게 달고 있었다.[65] 단, 보통 광안동으로 알려진 광안리해수욕장 부근은 지나지 않지만, 수영교차로에서 망미역 사이 구간은 엄연히 광안3동 일원이다. 실제로, 광안3동에 있는 광안중학교는 [5번 버스가 지나던 망미역(구, 국군부산병원) 정류소에서 가깝다.] 2012년 폐선되었다. 게다가 붙어있는 행선지표의 행선지 순서는 거의 워프 수준이다. 부산지방병무청은 2004년에 부전동에서 망미동으로 이전하였으며, 따라서 1997년 당시 행선지상에 부산지방병무청은 해운대와 망미동 사이가 아니라 부전시장지하철 부전역 사이에 있어야 한다[66] 물론 이전에도 캐논에서 DSLR이 있기는 했는데 필름카메라인 EOS-1N에 디지털백을 붙인 형태라 제대로 된 DSLR이라 보기는 어려웠다.[67] 설령 저게 2003년이었어도 기자가 들고있을만한 카메라는 아니다. EOS 10D는 연사속도가 겨우 3fps에 불과했기 때문이다.[68] 90년대 후반까지는 면허증 갱신 시작일을 기억하기 좋게 소지자의 생일에 맞추어 놓았다. 이후 취득일을 기준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가 2012년부터 취득, 갱신하는 모든 면허는 아예 1월 1일 ~ 12월 31일로 고정.[69] 대중화 단계는 보통 전국민의 1/10 규모인 500만명으로 취급하는 편이다.[70] 평범한 젊은 사람들에게까지 휴대전화가 급속도로 보급되는 기점이 바로 1997년 9월의 PCS 3사(016,018,019) 서비스 개시로, 이 시점을 기준으로 이동통신 5개사들의 박터지는 보조금 경쟁과 특히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경쟁을 했으며, 1998년 초쯤 되면 이미 기계값 0원 같은 출혈경쟁을 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나온 초창기 PCS폰은 소품으로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시대적인 면 에서도 이것을 택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였다.[71] 일체형 또는 내장형이라고 하는 그것이었다.[72] 시험방송에 맞춰 대부분 외장튜너가 필요한 HD Ready 제품들이 막 출시되었을 때였다. 물론 HD 시험방송용으로 제작된 드라마가 있긴 있었다. HDTV 외장 튜너를 구하지 않는 한 HD로 볼 수 없는 평범한 아날로그 화질의 드라마로 보였을 뿐이었다.[73] 물론 KBS 위성TV의 와이드 시험 프로그램은 있었다. 2000년에 지상파로 수도권부터 한다고 폐지해서 그렇지...[74] 물론, 작중에서는 혼자서 다 보유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한테 공짜로 뿌렸으니 음반 사재기라고 보기는 애매하다.[75] 7월 19일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