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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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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mg.hani.co.kr/021011000120040728520_55.jpg파일:attachment/감천문화마을/busansan.jpg
8~90년대의 달동네 모습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하나인 감천문화마을

1. 개요2. 명칭3. 특징4. 지형5. 형성 과정에 따른 분류6. 한국 달동네의 특징7. 현재 달동네인 곳8. 한때 달동네였던 곳9. 외국의 달동네(셴티타운)
9.1. 남아프리카 공화국9.2. 브라질9.3. 콜롬비아9.4. 유럽9.5. 튀르키예9.6. 일본
10. 관련 문서

1. 개요

달동네는 일종의 슬럼이자 빈민촌을 가리키는 한국어 어휘이며, 판자촌이라고도 한다. 달동네의 형성은 난개발젠트리피케이션, 이촌향도 현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냥 슬럼가가 아니라 급속한 근대화 및 도시화 과정에서 도시의 고지대에 조성된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이다.

영어로는 그냥 슬럼(slum)이라고도 하지만 판잣집으로 된 달동네는 'shanty tow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영어의 슬럼에는 파벨라 같이 치안이 굉장히 안 좋은 지역이란 의미가 강하게 내포돼 있지만 한국의 달동네는 치안보다는 고지대라는 지리적 환경이나 난개발 구조에 방점이 찍혀 있다.

2. 명칭

언어별 명칭
한국어 달동네, 쪽방촌, 판자촌, 빈민가
영어 shantytown[1], slum, skid row, blighted area

달동네라는 명칭이 널리 퍼진 것은 1980년 TBC 동양방송[2]의 드라마 《달동네》가 방영되고부터이며, 해당 드라마 방영 이전 시기의 신문 자료에서는 이 키워드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열렬한 국어순화론자였던 백기완이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단어들 중 하나라고 한다. 달동네의 '달'이 가리키는 어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3. 특징

아파트나 신축 빌라를 분양받아서 자가를 보유한 주민보다 전/월세에 세들어 살고 있는 가난한 주민들의 비율이 높다. 주민들의 직업 구성도 저임금 근로자가 대다수이며, 무직자도 상당히 많다. 노후되고 낡은 건물, 여기저기 구분도 없이 분리수거도 제대로 안 돼 있는 일반쓰레기와 재활용쓰레기들, 빨리빨리 치워지지도 않고 방치돼 있는 쓰레기들, 불법주차 등 이러한 부정적 요소들 때문에 동네 미관도 상당히 좋지 않으며, 불량배들이나 조폭들의 아지트로도 딱 좋은 장소다.

대중적으로는 '못 살고 가난하고 영세한 동네'와 거진 동급으로 쓰인다. 실제로도 금방이라도 붕괴될 것만 같은 낡은 주택이나 구불구불하고 지저분하고 좁아터진 골목에 포장도 안 된 채 울퉁불퉁한 길바닥이며 가로등도 얼마 없는지라 저녁만 되면 금세 어둠침침해져서 치안에도 문제가 있는 등 아무리 봐도 잘 사는 동네는 확실히 아니다. 물론 달동네의 정의가 단순히 빈민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산동네 중 빈민촌'이기 때문에 평지에 있는 빈민촌(대표적으로 서울 강남구 비닐하우스촌 등)은 달동네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전국에 산과 언덕이 많이 있는 관계로 오히려 평지에 빈민촌이 형성되는 경우는 드물며, 부산 사상구사하구 신평[5][6] 등 일부 지역들을 제외하고는 있더라도 지금은 대부분 고층 아파트재개발되어 빈민촌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결국 아직까지 남아 있는 빈민촌의 대부분은 달동네이다.

시골처럼 매체상에서 곧잘 미화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TV 광고에서 달동네 풍경이 나오면 어딘지 모르게 푸근해지거나 평화롭게 느껴지는 것이 그 예. 그러나 현실은 열악한 인프라 때문에 현지인들도 기회가 있다면 하루빨리 다른 괜찮은 동네로 집을 사서 이사를 가고 싶어한다.

달동네와 유사한 단어로는 쪽방촌, 판자촌, 빈민가가 있다. 그러나 쪽방촌, 판자촌, 빈민가, 달동네는 의미가 약간씩 다르다.

먼저 빈민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의미적 범위가 가장 크다. 빈민가 안에는 쪽방촌, 판자촌, 달동네가 모두 포함된다. 쪽방촌, 판자촌,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빈민이기 때문이다.

판자촌은 제대로 된 건축자재가 아닌 비닐하우스용 자재, 합판, 두꺼운 천 등으로 만든 집들이 모여 있는 판잣집이 모여 있는 빈민가를 일컫는다. 빈민가에서 제일 열악하고 급조된 형태에 가깝다.

쪽방촌은 집 면적과 관련있다. 한 평 조금 넘는 조그만 방이 모여있는 곳을 주로 쪽방촌이라고 한다. 고시원도 일종의 쪽방촌이라 볼 수 있다.

달동네는 산기슭을 따라 생성된 빈민가다. 달동네는 마을이 위치한 지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달동네는 쪽방촌일 수도 있고, 판자촌일 수도 있으나, 쪽방촌이 아닐 수도 있으며, 판자촌이 아닐 수도 있다. 달동네라 해서 반드시 판자집이 바글거리는 것은 아니다. 아래 예시로 나온 서울의 달동네 대부분은 판자촌과는 거리가 먼 단독주택 및 저층 빌라, 원룸 건물이 모여 있는 동네다.[7] 서울의 대표적인 판자촌이라면 송파구 화훼마을 및 강남구 구룡마을이 있다. 또한 달동네에 있는 집이 무조건 고시원 방 한 칸 급으로 좁은 것은 아니다. 넓은 집은 나름대로 마당도 있고, 아무리 좁은 집이라도 5~8평 정도는 된다. 또한 쪽방촌은 집 면적과 관련된 개념이기 때문에 도심 같은 곳에 존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고 뉴스에도 종종 보도되는 쪽방촌은 종로3가역 근처에 있다.[8]

지자체나 중앙정부에서 재개발, 재건축을 내세워서 달동네를 철거하지 않는 이상 자연적으로 소멸되지는 않는다. 막상 정부에서 재개발을 하겠다고 하면 세입자들과 원주민들은 푼돈만 보상받고 길바닥에 나앉을 공산이 큰데다 멀쩡히 잘 살고 있는데 왜 느닷없이 재개발을 하려고 하냐면서 재개발하면 우린 어디로 가냐며 항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재개발을 반대해서 상당히 지체되거나 아예 계획이 취소되기도 한다.

4. 지형

달동네는 사람이나 차가 다니기 힘든 비탈에 세워진다. 이런데에 있는 이유는 그냥 간단하게 땅값이 싸기 때문. 한국의 경우 1960~70년대 산업화 시절 난개발로 인해 평지에 있는 동네들은 아파트다 산업단지다 상가다 뭐다 세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땅값이 비싸져서 돈 있는 사람들 외에는 못 살고, 돈 없는 서민들은 산을 평지로 깎아 그 자리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산비탈에 대충 터만 다지고 집짓고 살다 보니까 이런 동네가 형성된 것이다. 주로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교통 접근성이 취약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땅값이 싸진다.

산지가 아니더라도 빈민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것은 신흥공업국이[9]거나 한때 신흥공업국이던 국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는 북미/서유럽/일본의 도시 구조와는 완벽하게 정반대이다. 북미/서유럽/일본은 대체로 도심에 가까울수록 서민들이 살기 때문이다.(#) 이는 도심공동화와 관련이 깊다. 서유럽은 구시가지 지역은 개발하는데 난항이 있어서 교통이 불편하고, 미국은 전후기때에는 저심도 개발을 추구했기 때문에 외곽으로 부유층과 중산층들이 빠져낙갔다. 도심지는 이사할 여력이 없는 서민층들이 주로 남았기 때문에 오히려 쇠퇴하여 낙후되는 일이 다반사로, 디트로이트세인트루이스가 대표적인 예다. 일본의 버블 경제기 당시에는 집값과 월세비의 상승으로 서민층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일이 일반적이었지만, 버블 붕괴 이후로 도심 회귀현상을 보인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지나다니기 불편한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달동네에 복지 차원에서 야외형 에스컬레이터[10], 엘리베이터[11], 모노레일[12], 케이블카[13]를 설치하기도 한다.

5. 형성 과정에 따른 분류

달동네는 자연발생적 달동네와 인위적 달동네로 나눌 수 있다.

자연발생적 달동네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땅값이 싼 곳에 영세민들이 집 짓고 살던 곳인데, 과거 서울의 길음동, 월곡동 같은 지역들이 그러하다. 반면에 인위적 달동네는 정부 차원에서 도심지에서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사는 거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형성된 곳인데, 주로 국가 소유 국유지가 평지보다는 산지에 있어서 그 곳으로 이주시키다 보니 달동네가 되었다. 서울의 미아동, 봉천동, 신림동 등이 대표적.

두 종류의 달동네 차이는 이렇게 보면 된다. 자연적으로 생긴 곳은 제멋대로 땅을 차지하여 집을 지었기 때문에 집 크기가 제각각이다. 그러니 간혹 달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위치는 틀림없는 불량주택 밀집지역이지만 50평 이상의 평수가 큰 주택이 종종 등장한다. 반면에 인위적 강제 이주지역은 행정기관이 한 집당 10평 정도의 규격화된 대지분할을 했기에 집 크기가 규칙적이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재개발이 되어서 이 차이를 알아보기는 힘든데, 특성상 후자의 지역이 먼저 재개발되었다. 전자의 지역은 대형 평형 주택소유주들의 동의가 어렵기 때문. 참고로 한국의 달동네 재개발사업 구조는 큰 평수 소유주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감정가가 실거래가에 한참 못 미치지만 이를 배정받는 아파트의 프리미엄으로 보충하는 구조인데, 대지지분이 7평이던 70평이던 아파트 1채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아동, 신림동 산동네 국유지에 강제 이주 시키다가 아예 더 큰 스케일로 이주시킨 곳이 바로 '광주대단지'. 자세한 것은 광주대단지사건 참조.

서울에서 인위적 달동네는 도심부개발사업이 진행되던 1960~70년대 도심 판자촌을 다 밀어버리며 시 외곽 국유지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생겨났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노원구 백사마을, 성북구 정릉골 등이 있다. 이런 곳의 대표적인 특징은 집 평수가 거의 7~10평 남짓이며, 집 크기가 규칙적이고 집들이 마당 없이 벽을 경계로 붙어있다시피 늘어서 있다는 점이다. 강제 이주시킨 후 땅에 백묵으로 선만 그어놓고 알아서 집을 짓고 살라고 했기 때문에 발생한 특징이다. 단, 시간이 흐르면서 공가도 생기고 다른 집을 매입하기도 하고 조금 있는 빈 자리에 집을 확장하기도 하면서 이런 특징이 많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잘 찾아보면 이런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 아직 남아 있다. 또한 마을 곳곳에 공용화장실 및 그 흔적이 있다. 상하수도 시설을 깔아놓고 이주시킨 것이 아니라 이주시켜놓으면 거기에서 사람들이 알아서 어떻게 할 거라고 일단 옮겨놓고 방치해버렸기 때문에 좁은 실내 면적 문제와 더불어 하수 처리 문제로 인해 공용화장실이 군데군데 설치된 것이다.

한편, 자연발생적 달동네는 다시 형성 과정에서 또다시 자연발생적 달동네가 된 경우와 슬럼화되어 달동네가 된 경우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울에 있는 자연발생적 달동네는 1980년대까지 당시 기준으로 중산층들도 사는 멀쩡한 동네였다가 슬럼화가 진행되며 가난한 달동네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첫 번째는 서울에서 자연발생적 달동네는 대체로 늦어도 한국전쟁 직후부터 토막촌, 판자촌으로 시작해 거주민들이 집을 개보수하며 판자집 형태에서 벗어난 경우다.

두 번째는 과거에는 중산층들도 많이 살던 동네였지만[14] 점차적으로 슬럼화가 진행되며 달동네로 전락한 경우다. 서울의 경우 도시 내부에 언덕과 산이 상당히 많아서 많은 동네가 비탈을 따라 건물을 올릴 수밖에 없다.[15][16] 중산층들이 대거 아파트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단독주택, 빌라, 연립주택 등에 빈민들이 새로히 유입돼 그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언덕과 비탈이 많다는 지리적 특성과 슬럼화가 맞물리면서 과거에는 멀쩡한 동네였으나 현재 달동네 소리 듣는 동네들이 이때부터 꽤 생겨난 것이다. '비탈을 따라 높은 곳까지 형성된 마을+슬럼화=달동네'라는 공식이 적용된 것이라 보면 된다. 대구광역시 남구도 대략 이런 양상인데, 앞산 인근에는 집들이 큼직큼직하지만, 90년대부터 슬럼화되어 지금과 같은 달동네가 많아졌다.

자연발생적 달동네에서 기원에 따라 자연발생적 달동네인 곳과 슬럼화로 인해 달동네로 전락한 곳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좁고 낮고 건물에 슬레이트 지붕 및 시멘트 기와 지붕이 올라가 있는 집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17] 인위적 달동네와 자연발생적 달동네는 외관상 뚜렷한 차이가 존재하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존재하는지를 찾아보면 구분할 수 있지만, 자연발생적 달동네의 하위 분류인 기원에 따른 자연발생적 달동네와 슬럼화로 인한 달동네를 동네 외관만 보고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달동네들은 외관이 거의 똑같다. 그저 이후 땅주인이 원래 있던 집을 허물고 빌라 혹은 원룸을 올렸느냐, 아니면 예전 형태 그대로 단독주택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느냐 정도의 차이다.

서울의 경우, 자연발생적 달동네에서 기원에 따른 분류는 서울의 발전 과정을 참고해 몇몇 지역에 대해 대략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심인 종로와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달동네들은 슬럼화로 인해 달동네가 된 경우라 볼 수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도심부개발사업 및 도심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도심에서 가까운 달동네들은 싹 다 밀어버렸기 때문이다. 마포구, 서대문구, 종로구, 중구에 존재하는 달동네들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한편, 혐오시설(미군기지 등) 주변에 있는 달동네는 기원 자체가 자연발생적인 곳이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용산구 한남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6. 한국 달동네의 특징

비록 저소득층이 한국의 달동네 인구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는 있다지만, 치안은 무법천지나 다름없고 물도 전기도 제대로 안 나오고 길도 좁고 주변도 비위생적인 상당수 외국의 슬럼가들(가령 브라질의 파벨라)과는 거리가 멀다.[18]

경사가 심해서 생활하기 불편하다는 단점에 비해 장점도 몇 개 있는데, 대부분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보니 전망이 좋고 사생활 보호가 잘 되며, 장마철에도 침수를 피해간다. 그렇다 보니 서울 종로구의 평창동과 성북구의 성북동, 용산구의 이태원동한남동처럼 부자와 영세민이 공존하는 달동네도 있다. 경사도가 심해서 걸어다니기엔 힘들지만, 고급주택이나 대사관 등이 다수 위치해 있다. 부촌과 저소득층 지역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통행로의 상태를 들 수 있다. 부촌의 경우 잘 관리된 도로처럼 되어 있는 반면, 저소득층 지역은 계단이 많고 콘크리트를 대충 바른 듯한 데다 경차조차도 도저히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좁은 곳도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들과 달리 한국은 일단 선진국이고 국가의 행정체계가 잡혀 있기 때문에 치안은 국내 기준에서는 몰라도 세계 수준으로 본다면 상위권이라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의 부촌보다도 체계가 잡혀있다 할만하다. 다만 가로등이 없고 외진 곳이면 밤에 혼자 다니긴 좀 위험한 건 사실. 다행히 지자체가 인프라 관리를 하고 있으며, 거주 인구에 대한 행정관리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 서비스 또한 상위 소득층에 비해 질의 차이가 매우 클 뿐, 일단은 공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가에서 보장하는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비용적인 문제 및 행정공백, 주민들의 무지 등으로 인해 국가가 보장하는 모든 서비스가 제대로 전부 잘 제공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허나 이런 환경으로 변한 시기 역시 그리 오래 전이 아니어서,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달동네라 하면 인프라가 잘 깔려 있지 않는 등 치안을 제외하면 외국의 슬럼가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뭐 이 당시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이상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맨몸으로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한 사람이나 철거민들, 일용직 노동자들 같은 당대의 돈 없는 서민들이 달동네에 많이 살았다. 이런 모습은 한국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수많은 한국의 현대 문학 작품[19]에서 주로 비참한 서민들이 사는 곳으로 묘사되곤 했다. 슬프고 씁쓸한 사실이지만, 실제로도 그런 동네였기도 하였다.

한국의 달동네는 두 차례에 거쳐 거주민들의 거주지 분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중산층부터 하류층까지 모두 달동네에 모여 살았고, 타지에서 유입된 인구도 달동네로 많이 유입되었다. 급속도로 증가하는 도시 인구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주택공급으로 인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래로 대도시 근교지역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아파트가 대규모로 보급되었고, 중산층이 아파트로 거주지를 이동하며 중산층이 이탈했다. 그 후 고시원과 원룸이 대거 생기면서 타지에서 유입되는 인구를 고시원, 원룸이 대거 흡수했고, 달동네 거주민 중 고시원, 원룸으로 이주하는 주민들도 증가했다. 이로 인해 인구과밀이 많이 해소되어 생활환경 및 주민 건강, 치안이 개선된 부분도 있다. 또한 이와 같은 특징으로 인해 외국의 슬럼과 비교할 때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서울의 경우 강북구미아동, 성동구금호동, 옥수동 쪽이 달동네의 메카라 불릴 정도로 달동네가 많았지만, 현재는 다 재개발이 되어서 이제 달동네는 옛말이다.

실제로 70년대에 그 많던 달동네들은 80년대와 90년대의 집중적인 재개발 으로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재개발이 해당 지역의 모든 구역에서 다 같이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재개발된 신축 아파트와 여전히 남아 있는 달동네가 공존하는 경우를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20] 덕분에 또한 부산에서는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형성한 마을로 시작된 상당수의 달동네가 아직도 분포한다. 부산광역시에서도 서구 충무동처럼 대규모 뉴타운 사업을 계획하고 있지만, 워낙 험난한데다가 위의 역사적 가치도 있고 해서 사업 진행이 더디다. 현재 시행이 되는 곳을 굳이 꼽자면 뉴스테이로 선정된 남구 감만동의 감만1구역 정도다.

부산 동구수정동좌천동 북부지역의 경우는 특이한 경우인데, 1970년대 전반적인 도심계획개발을 위해 수천가구의 판자촌들을 다 철거하고, 원주민들을 해운대구재송동 일부 지역과 반여동반송동 같은 곳들로 강제 이주시키고 시에서 새로운 거주민들에게 저렴한 아파트 단지, 혹은 구획별로 계획된 단독주택지를 보급했으나, 이 역시도 세월이 지나 낡아지면서 9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개발의 필요성이 꾸준히 언급되었으나, 위치가 시내와 가까워 평균적인 지가와 토지매입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 사실상 수익성이 나지 않아 대규모 재개발이 불가능해졌고, 설상가상으로 해운대구 지역의 신도시개발까지 이루어지면서 재슬럼화가 이루어진 것. 이 이외의 달동네 마을들은 6.25 전쟁으로부터 그대로 이어져온다 보면 된다.

동구의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과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 같이 재개발을 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까지는 아니지만) 보존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의 달동네는 한국 영화 사생결단의 로케지로도 쓰였다. 특히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의 경우 알록달록하게 칠해놓으니까 주변의 풍광과 어우러지며, 감천문화마을 도시재생사업 프로젝트가 대성공하여 상당히 유명해졌고, 한국판 산토리니라며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고 있을 정도에 이르렀고, 비단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온다. 심지어 럭셔리 여행잡지인[21] 콘데 나스트 트레블러에서까지 주목하며, 연간 1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흰여울문화마을도 유명하다.

인천광역시에서는 과거 달동네였던 곳(동인천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세웠다. 이 쪽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체크해보자. 구청에서 세운 박물관이기에 입장료도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4세 이하나 65세 이상은 무료로 저렴하다. 홈페이지.

무당집과 사이비 종교 단체 건물[22]도 같이 공존하는 것도 특징이다. 달동네는 맹지에 컨테이너 하나 있는데 거기가 본부인 사이비 기독교나 무당집도 엄청 많다. 물론 비단 달동네 뿐 아니라 슬럼화된 단독주택가들도 마찬가지. 이런 이미지 탓에 한국에서는 단독주택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나쁘다. 하지만 새로이 개발되는 단독주택 단지와 개성 있는 디자인의 재건축하는 단독주택이나 일반적인 작은 단독주택과는 질적으로 다른 으리으리한 한남동 같은 부자 동네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단독주택, 그리고 기존 정원 있는 단독주택이 리모델링된 카페로 인해 많이 개선되고 있다.

7. 현재 달동네인 곳

7.1. 서울특별시

7.1.1. 강북

산이 많고 구도심인 강북지역 특성상 강북에 많이 몰려 있다. 서대문구 동쪽 - 종로구 북서쪽 - 성북구 서쪽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지역은 온갖 거주 형태가 모여있는 가히 서울 달동네의 메카라 할 만하다. 역사가 꽤 오래된 마을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실향민 및 이촌향도 현상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와 판잣집을 짓고 정착하면서 달동네가 된 곳도 여러 곳 있다는 점이 강북 달동네의 특징이다. 또한 강남에 비해 형성 시기가 이른 편이고 형성이 마무리된 편이 빠른데다 정부에서 집중적인 판자촌 확장 단속 및 관리를 시행했고, 강남 달동네보다 이른 시기에 재개발되었기 때문에 재슬럼화가 발생해 다시 달동네가 된 지역도 여러 곳 존재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종로구는 관할구역 안에 산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다 청와대 때문에 개발제한구역인 곳도 있고, 문화재도 많이 산재해 있어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개발이 가로막혀 낙후된 상태로 머무르다 보니 달동네로 전락한 동네가 많다. 노원구 달동네는 1960년대 말부터 서울 도심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도심에 존재하던 판자촌을 대대적으로 철거하고 경기도 양주군 국유지로 강제이주시켰던 곳들이 서울로 편입된 케이스다. 그래서 상당히 악명 높은 편이다.

7.1.2. 강남

강남 지역에서는 관악구에 많은 편이다. 관악구는 달동네가 워낙 대규모로 존재하다보니 일반적인 자료에서 보통 마을 단위로 다루는 다른 구와 달리 동 단위로 다룬다.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는 1980년대부터 생긴 판자촌, 비닐하우스촌이 여기저기 산재해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구로구, 금천구, 영등포구는 달동네보다는 쪽방촌으로 유명한 편이다.

7.2. 부산광역시

부산의 달동네는 대부분 6.25 전쟁 당시 피난민 정착촌으로 형성되었으나, 60년대 이후 부산으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생긴 곳도 있다.

7.3. 대구광역시

7.4. 인천광역시

7.5. 대전광역시

7.6. 울산광역시

7.7. 충청북도

7.8. 강원특별자치도

7.9. 경상남도

7.10. 경상북도

7.11. 전라남도

7.12. 전북특별자치도

8. 한때 달동네였던 곳[68]

8.1. 서울특별시

8.2. 부산광역시

8.3. 대구광역시

8.4. 인천광역시

8.5. 경기도

8.6. 경상남도

8.7. 경상북도

9. 외국의 달동네(셴티타운)

사실 이런 '달동네' 스타일의 마을은 세계적으로 찾아봐도 많다. 이촌향도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과거 선진국에서도 일어났었고, 현대에도 많은 개도국에서 일어나고 잇기 때문이다. 2010년초 일어난 2010년 아이티 지진은 지진 방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달동네쪽에서 일어난게 특히 수많은 인명/재산피해를 냈었다. 그 밖에도 1999년 벌어진 터키 이즈미트 대지진도 게제콘두라고 불리우는 달동네 사람들이 2만명 가까이나 목숨을 잃었었고 2011년 대지진에서도 역시 달동네 사람들이 주로 목숨을 잃거나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되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브라질개발도상국에 있는 달동네들은 치안이 안좋은 국가 내에서조차도 가장 최악의 치안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9.1. 남아프리카 공화국

타운십(Township)이라 부른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홈랜드 구역으로 추방되지 않고 계속 남아공 국적을 유지한 흑인들이 주로 살았다. 요하네스버그 근교의 '소웨토'(SOWETO)가 대표적이다. 당연히 흑인들은 가난과 차별에 찌들려 살아야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이후로도 흑인들의 다수가 여전히 빈곤에서 시달리고있는 중인지라 타운십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굳이 달라진점이라면 전력이나 교통같은 인프라가 개선되고, 흑인들도 복지혜택을 받을수있게 되면서 예전처럼 대책없이 가난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가난한것은 같다.

9.2.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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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파벨라(favela). 예수상 등 뒤편에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상을 중심으로 주변 사진을 찍을 때 항상 앞으로만 찍는다. 경찰병력이 모자란 데다가 부패하기까지도 하며 당연하겠다면 당연하겠지만 길도 좁아터지기 때문에 종종 마약조직이나 범죄조직들이 근거지로 삼기도 한다. 구룡성채 수준으로 내부가 복잡하고 음침해서 길을 잃기 딱 좋다. 어둡고 습하고 좁은 데다 애초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파벨라에 주거하다 보니 불결하기까지 해서 전염병 환자들도 많다고. 브라질 정부는 일부 파벨라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공권력이 미치는 곳에는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They Don't Care About Us의 뮤직비디오가 바로 이곳. 보면 경찰이 아니라 평화유지군이 마이클 잭슨을 경호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으며 중간의 난입한 팬에게 마이클 잭슨을 보호하는 모습도 나온다.

파벨라 중 한 곳에는 "코레야"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한국을 뜻하는 단어지만 왜인지 듣기에 괜찮다고 생각한 주민들이 자기네 동네 이름을 그걸로 정했다고. 어디에 사시나요? 한국에 삽니다.

9.3. 콜롬비아

2011년 콜롬비아메데진에 있는 한 달동네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에스컬레이터의 총 길이는 약 384m, 높이는 건물 28층 정도 이다. 걸어서 35분 걸리던 비탈길을 6분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고(...)[80] 이 메데진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굉장한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마약거래와 범죄의 온상이었던 도시의 치안이 과거에 비해서 상당히 개선되었고. 월 3만명 정도의 관광객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공원, 도서관 같은 생활 SOC가 조성된건 덤. 이러한 성과로 2016년에 도시행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한국에도 비슷한 느낌의 도입이 이루어졌다. 비록 모노레일이지만, 부산광역시 동구초량동 168계단에 모노레일을, 중구는 영주동에 모노레일을 건립,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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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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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는 전세계 없는 나라가 없다. 그렇기에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이나 프랑스나 남서유럽 지역에도 다 존재한다. 과거 19세기에 독일을 탐방간 일본인들은 온갖 첨단적인 독일 제국에도 빈민가가 있는 것을 보고 '여기도 똑같구나!'라는 것을 실감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대영제국이라고 큰소리치던 당시 영국을 다녀온 해외 여행가들의 기록을 봐도 영국도 빈민가가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차브족으로 대표되는 저소득층들이 'Council house'(카운슬하우스)라 불리는 임대주택에 주로 거주하는데,[81] 아파트 형태로 된 것은 한국의 영구임대아파트와 유사한 반면, 단독주택이나 2세대형 주택(semi-detatched)으로 된 임대주택 단지는 말 그대로 벽돌집이라 한국의 달동네와 어느 정도 유사한 분위기를 풍긴다.

현재는 주로 이민자들이나 집시가 많이 거주하지만, 전에는 백인 빈민층들도 굉장히 많이 살았었다. 사진은 유럽에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달동네이자 슬럼 판자촌인 마드리드 외곽 옛 목축용 도로를 따라 나 있는 스페인의 까냐다 레알 갈리아나. 그라나다 알바이신 지구의 경우 달동네이긴 하나, 인접한 알함브라 궁전의 효과로 인해 거의 관광지화 되었다. 프랑스에도 과거엔 '비동빌'(bidonville)이라 해서 구룡마을 비슷한 판자촌이 있었지만, 70년대부터 정부에서 이들을 지금의 방리유 영구임대아파트로 이주시키면서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다만 그들이 이주한 임대아파트 단지 자체, 혹은 임대아파트들이 많은 지역 자체가 다시 슬럼화 되어버린 게 함정.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는 아직도 달동네와 다름없는 언덕 지형의 낙후된 주택가가 많다. 다만, 이 나라는 아직도 가난하고 혼란스럽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9.5. 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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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앙카라에 있는 게제콘두(Gecekondu).[82] 서울 거주 중장년층이라면 위 두 개 사진을 어디서 많이 본 것과 비슷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진짜 별 차이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튀르키예에서 종종 벌어지는 강력한 지진에 게제콘두가 그야말로 몰살당하는 사례가 많다. 그야말로, 건축 전문가가 아닌 민간인이 몰래몰래 가장 싼 재료나 그야말로 재활용 재료로 대충 지은 집이라 강력한 지진에는 그야말로 집이 통째로 무너져 온 식구가 생매장되는 사례가 많다.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 때도 게제콘두가 무너져 사망자가 많았었다.

이런 재해나 질병에 대해서 똑같이 달동네는 피해가 압도적으로 큰 것 역시 전 세계 달동네 공통점이다. 코로나 19 여파에 브라질 파벨라나 튀르키예 게제콘두는 더더욱 확진자가 많았던 공통점이 있다.

9.6. 일본



'도야마치'(ドヤ街)라 불리는데 엄밀히 말하면 한국의 달동네와 달리 낡은 고시원형 숙소가 몰려있는 곳에 가깝다.[83] 매우 싼 집세 때문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건설 노동자들이 주로 기거한다. 오사카 가마가사키가 일본에서도 악명높은 달동네이다. 우스운 게 여긴 일본 온갖 노숙자들에게 오사카로 가서 살라고 교통권을 준 여러 시가 원인 중 하나였다. 1960년대 경제호황기부터도 이뤄진 이 빈민가는 수십여번 폭동이 일어날 정도이다. 비슷한 곳으로 도쿄 다이토구에 있는 산야(山谷) 지역이 있으며, 이곳은 내일의 죠의 배경 무대로도 유명하다.

소득 수준과 별개로, 한국의 달동네와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지역으로는 도쿄 곳곳에 산재한 노후주택 밀집지역들을 들 수 있다. 일본식 표현으로 '목조주택밀집지역'(木造住宅密集地域)이라 부르는데 판자촌 느낌이 아주 강하게 난다. 실제로도 '시타마치'(下町)라 해서 서민들이 사는 동네이다. 물론 인구 감소로 빈집이 많이 늘어나 을씨년스러운 느낌까지 준다.

10. 관련 문서



[1] 'shanty'가 판잣집을 뜻한다.[2] 얼마 못 가 언론통폐합으로 강제 폐국된 후에는 KBS1에서 이어서 방영하였다.[3] 대사에도 달동네에서 달을 본다고 말하거나 하는 그런 내용들이 나왔다.[4] 인터넷 방송에서 쓰는 '하꼬'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5] 신평은 동매산 부분 주거 지역은 제외. 전엔 무허가 건물이 많았고, 위쪽에는 아직도 모래톱 마을이라는 달동네가 있다.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행복센터가 생기며 점차 괜찮아지는 듯하다.[6] 둘 다 예전에는 공단이 있어서 평판이 썩 좋지는 못했지만, 현재는 서서히 고쳐나가는 중.[7] 아래 예시로 나온 서울 달동네 상당수가 시작은 판자촌 및 토굴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판자촌이 한 자리에 제대로 정착하면서 나름대로 제대로 된 건축자재로 개보수하며 판자촌 형태에서는 거의 다 벗어났다.[8] 일반인들은 '쪽방촌'이라는 용어에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 않지만, 고시원이 밀집해 있는 곳도 엄연히 쪽방촌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상당수 고시원이 도시 빈민들의 거주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 달, 심지어는 일 단위 계약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도시에 유휴지가 많아 무허가 건물들이 올라가 판자촌을 형성하고 달동네가 되었다면, 현대에 들어와서는 고시원, 원룸 등이 과거 판자촌, 달동네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9] 브릭스, 동유럽, 터키, 동남아.[10]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나 콜롬비아의 메데진 등[11] 포르투갈 리스본의 엘레바도르 산타 후스타, 브라질 사우바도르의 엘레바도르 라세르다 등[12]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중구영주동 오름길 모노레일[13] 볼리비아 라파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브라질 리우데자이루 콜롬비아 메데진[14] 물론 당시 중산층 살던동네라도 상경민들에게 세를 내주는 경우는 일반적이었다.[15] 이는 현재 서울의 번화가라 불리는 강남3구도 해당한다.[16] 심지어 현재까지도 재개발하는 지역을 보면 언덕 하나 전체를 평탄화하기에는 비용도 너무 많이 들고, 또 오히려 이렇게 할 경우 여러 제약들이 있기 때문에 적당히 건물 지을 자리만 평탄화시키고 건물을 올리고 있다. 최신 아파트들이 거의 언덕 꼭대기 언저리에 세워져 있는 것이 많은 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17] 이런 집들도 나름 부촌에 위치한 채 겉은 다 쓰러져 가지만 내부는 리모델링을 했다면 생각보다 서민적인 가격을 보여주지 않는 집들도 많다.[18] 하지만 한국도 1980년대까지는 공동수도, 공동 화장실을 써야 했던 곳이 많았으며, 시설도 재래식이라서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물론 이 당시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별로 보급되지 않았던지라 공중화장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는 없었기는 했던 시절이지만, 화장실은 아직도 공동 화장실을 쓰는 달동네가 존재한다.[19] 조세희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작품은 읽어 보거나 공부해 보지는 못했어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정도다.[20] 보통 재개발은 한 지역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서 각 구역별로 추진한다. 그런데 어떤 구역은 사업 진행이 잘 되는 반면 어떤 구역은 잘 안 되다 보니 신축 아파트와 달동네가 같이 있는 경우가 생기는 것. 그러다 보니 뉴타운은 빈 땅에 짓는 신도시에 비해 지역 내 빈부격차와 인프라 격차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개발만 거의 다 완료되면 이런 격차 문제는 해소된다.[21] 전용기 보유자들을 위한 섹션까지 있을 정도로 호화여행에 중점을 두는 잡지이다.[22] 물론 매우 작은 건물이다. 소형 상가의 한 층만 사이비 사무실인 경우도 많다. 아무튼 달동네라면 백퍼센트 꼭 있다. 진짜 정상적인 교회들이랑 이름조차도 비슷하니 절대로 현혹되지 말자.[23] 박원순서울특별시장이 2018년 옥탑방 한 달 살이한 곳. 신축빌라도 꽤 있으니까 일반적인 달동네라기보다는 달동네+일반주택가로 보는 게 맞다.[24] 당고개역이 있는 상계 3,4동에 위치해있다. 신림동과 상당히 유사하다. 특히 난곡동 일대와 상계3.4동 판자촌이 아주 많아서 극도로 악명 높은 지역이었고 오늘날에도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상계3.4동의 노원센트럴푸르지오 이북, 이동 지역은 사람들이 꽤 많이 민도나 수준이 극도로 악명 높다고 한다는 게 사실이다.[25] 일명 서울 최후의 달동네로 유명한 그곳이다. 다른 달동네들과 달리 좀 외진 곳에 뚝 떨어져 있고 규모가 꽤 되어 1,500세대 3천여명 가량 거주하느라 그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다만, 이쪽도 약 2022년 이후쯤 재개발 예정이다.[26] 도봉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들이다.[27] 2001년 3월 4일 이곳에서 주택 화재로 소방관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28]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가짜 주소를 쓰고, 여기 사는 것을 밝히기 꺼렸을 정도로 슬럼이었다고 소개했다.[29] 1-2구역, 21구역, 23구역, 응봉 2-1구역.[30] 청계천변 판자촌이 마장동 달동네까지 쭉 연결되어 거대한 달동네를 이루다시피 했으나 지금은 많이 재개발되어 군데군데 조금씩 산재해 있다.[31] 흔히 성북동이라고 하면 부촌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부촌을 이루기 전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곳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북동은 빈부격차가 극심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북정마을 역시 삼선동 장수마을처럼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방향을 바꾼 편. 그 밖에도 성북로16길 - 선잠로2길 - 선잠로2가길 - 성북로14길에 둘러싸인 지역(성북3주택재개발지구)도 상태가 영 좋지 못하다.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으나, 난항을 겪고 있다.[32] 문화재 보호(서울 한양도성, 삼군부 총무당 등) 때문에 아직까지 재개발을 하지 못했다. 주변지역은 이미 오래전에 재개발이 끝났다. 때문에 전면 재개발 대신 주민들의 터전을 보존하는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33] 한때 구 전체가 달동네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2000년대에 정릉동, 성북동, 삼선동 장수마을을 제외한 모든 동네에 아파트를 엄청난 속도로 마구 지어서 그런 면모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자연을 고스란히 살린 엄청난 경사는 여전하다. 최근에는 그런 지형을 활용한 형태로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34] 용산역 근처의 경우 최근 고층 건물들이 빠른 속도로 들어서고 있으나, 아직도 달동네가 여럿 남아 있다.[35] 용산동2가(해방촌), 한남동(한남 힐스테이트 뒷편에 위치한 한남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구역들에 해당). 한남동은 재벌들이나 재력가들이 거주하는 최고급 대형 저택들과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중 하나인 한남더힐 같은 최고급 아파트와 한남 힐스테이트, 한남 하이페리온 등 고급 아파트들도 위치하고 있다 보니 국내 최고의 부촌과 달동네가 공존하는 동네이기도 하다.[36] 사실 달동네라기보단 구축과 신축이 공존하는 빌라촌이 압도적으로 많다.[37] 은평구 내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달동네들이다. 불광동의 경우 은평구와 종로구를 오가는 터널인 구기터널이 있는 곳이고, 무엇보다 도로 경사가 성남시 본시가지급으로 미친 곳이라서 겨울에 눈이라도 조금 내리면 일대 교통이 완전히 마비된다. 녹번동의 경우 대로변이 있는 곳은 좀 덜하고 경사도 불광동에 비해 덜한 편이지만 산 거의 끝까지 주택이 퍼져 있어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은평구 전역이 시야에 잡힐 정도다. 대조동의 경우 대조 1구역쪽의 일부만 달동네이나 누더기도로의 파장이 너무 컸는지 전부 다 달동네 취급받고 있다. 여기 학생들이 싫어한다는 슬레이트 지붕은 여기에 다 모였다(...).[38] 해당 지역들은 모두 낙산을 포함한 한양도성 성곽 주변에 걸쳐진 동네다.[39] 구립중구노인요양센터 인근.[40] 현재 재개발이 진행중이지만 아직 남아있는 동네도 있다. 면목동이라는 이름의 뜻이 목장 앞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나름 평야가 펼쳐진 지역이라 원래부터 달동네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던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평지에 있는 적지 않은 동네들에서 슬럼 분위기를 살짝 느낄 수 있고, 담안선교회라는 성범죄자 교화 시설이 있다는 점 때문에 실제 전체적인 면목동의 치안 수준은 그저 그런데도 종종 달동네라고 오해를 받는 상황.[41] 전부 판자촌이다. 현재까지도 적용되고 있는 서울특별시 주택국에서 1997년 7월에 작성한 '무허가 건축물 단속 및 관리실무'에서 규정한 법적으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무허가 건축물에 대한 요건에 의하면 1982년 이전에 존재가 확인된 무허가 건물은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구룡마을, 달터마을, 재건마을은 이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치가 강남구에 전철 노선까지 있다 보니 투기꾼들도 꽤 많이 들어와 있는 상태라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다.[42] 성뒤마을과 윗성뒤마을은 합쳐서 크게 성뒤마을이라고 보기도 하고, 둘을 갈라서 보기도 한다. 지리적으로는 방배 체육공원을 경계로 갈라져 있다.[43] 복정역과 수도권제1순환선 사이에 위치해 있다. 단, 여기는 빈민촌일수는 있지만 평지이기 때문에 판자촌이지만 달동네는 아니다. 여기 있는 판자집은 모두 영농시설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다음, 네이버에 모두 현재 화훼마을은 기업으로 분류되어 있다.[44] 목동하면 보통 부촌을 떠올리겠지만 실제 부촌은 목1,5동, 신정1,6,7동이며 목2~4동의 경우는 옛 이름이 월촌이였던 만큼 엄청난 경사의 도로와 오래된 빌라등이 많이 모여있다.[45] 옛 부경대학교 용당캠퍼스 후문 주변지역[46] 물론 서울 용산, 한남 과 같이 지역 내 격차가 있기는 하나 대부분 고도가 높다.[47] 복산동은 행정동. 법정동 복천동칠산동을 관할.[48] 특히 부산과학기술대학교성도고등학교가 위치한 구포3동 일대. 이쪽은 고저차와 급구배가 매우 심한지라 도시철도도 닿지 않으며 오직 태진여객 소속 노선들에 의존해야만 한다.[49] 동네 자체가 해발고도가 꽤 높은 곳에 위치해있으며 만덕1동 구만덕 지역과 만덕2동 신만덕 지역의 경우 최근 재개발이 진행중에 있다.[50] 엄궁 롯데캐슬 리버 등 아파트 단지는 제외.[51] 중구, 동구와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난개발로 악독하기로 유명하다.[52] 거의 전체인 이유에는 이 동네 자체가 이라 평지가 거의 없어서 산과 언덕에 주거하는 탓도 있다. 육지와 연결되는 대교동봉래동 근처는 평지라 상업 시설은 주로 이곳에 있다.[53] 남구 법정동 전체다. 사실상 남구 전체[54] 실제로 이하 지역들은 20평 미만 내지는 10평도 안되는 집들이 많은 반면 남구는 집들이 큼직큼직하다. 특히 캠프워커 인근이나 앞산 기슭으로 갈수록 아파트도 많아지고 집들이 낡은 것 치고는 꽤 좋은 편이다.그래서 일부 주택은 개조되어서 레스토랑, 카페나 전시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일대에 카페거리도 조성되었다.[55] 반쯤 잘리고 남은 지붕아래 평상을 두거나 자전거 주차장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56]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이 여기 출신이다. 어릴 때 매우 가난했다고 한다.[57] 용현2동, 용현5동 제외[58] 대전에서는 거의 90%가 택지지구로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여서 실제로 대전에서 달동네 찾기는 모래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매우 어렵다.[59] 현재 재개발 중. 2024년 7월에 완공 예정이다.[60] 시장2리 사거리 남쪽과 호계역 사이에 난개발이 존재한다. 호계역의 오랜 역사가 불러온 결과인데, 끄트머리에 속하는 부분에 아파트 건설로 인하여 조금씩 구획정리와 신축빌라 건축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노년층 및 저소득자의 거주가 많다.[61] 시장2리 사거리 북쪽에는 구획정리가 되어있고 신축 원룸과 각종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으나 그 원룸이 임대주택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 넓은 의미의 달동네로 볼 수 있다.[62] 농소2동 행정복지센터 주위와 약수암 주변 지역으로 한정하며, 나머지는 단순 농지이며 재개발로 인한 신축 아파트와 구획정리가 깔끔하게 되어있으므로 달동네로 보기 어려움.[63] 북구의 사례와는 달리 동구의 구획은 비교적 깔끔하나, 7,80년대식 폐건물이 존재하는 경우 및 구식 주택이 혼재됨.[64] 춘천시는 북한강소양강에 둘러싸고 있어 개발이 제한되었고, 두 강들이 상수원 보호 구역에 해당되는 강이라서 이 일대의 재개발은 거의 하지 못했다.[65] 구 도심이다보니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해 개발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으나, 시청, 법원, 원주역이 차례로 이전하면서 중심지가 예전에 비해 남쪽으로 분산되고, 기업도시나 혁신도시의 개발로 외곽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다보니 인구분산이 심화되어 공동화가 진행되면서 어부지리로 재개발에 들어갔다. 물론 아직 달동네들이 꽤나 남아 있지만 원인동 쪽은 많은 달동네들이 이미 철거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중이고, 일산동도 희매촌을 중심으로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66] 여기도 부산과 마찬가지로 6.25 전쟁 당시에 피난민이 유입되면서 형성된 피난촌이 대부분이지만 1960년대 이후로 부산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생긴 곳도 있다.[67] 목포시는 개발을 호남선 연선 동편에 집중하는 바람에 호남선 연선 서쪽에는 달동네를 자주 볼 수 있다.말하자면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예수상이 부촌과 빈촌을 구분하고 있는 처럼 말이다.[68] 대부분은 아파트가 들어서도 도로가 정비되며 대중교통이 더 가까이 연결되어 주거지역이 쾌적해진 정도지만 일부 지역은 산의 절반을 날려 버리고 평지로 만들었다든가 하는 곳도 있다. 가령 신림동 달동네 일부 지역이 그렇다.[69] 아이러니한 것은, 일부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2017년 2월 서울시 '주택월세계약조사'에 따르면 이 쓰레기산 바로 앞 지역인 상도4동 지역 '평당' 월세 수준이 인근 노량진동과 함께 전국 최고라는 것. 공시 광풍으로 공시생이 급증하였으나, 노량진동만으로는 이 공시생 수요가 감당이 되지 않아, 자연히 차선책으로 도보가 가능한 이 지역 월세수준이 폭등한 케이스. 강남이나 타 지역처럼 교통이나 주거환경이 좋아서 월세가 비싼것이 아니고, 속칭 버려진 쓰레기산 지역 바로 옆 동네의 월세 수준이 높은, 굉장히 아이러니한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70]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빈 땅이다.[71] 군부대 이전의 한국전쟁기에는 거제포로수용소가 이곳에 있었다. 전후 거제도로 이전.[72] 동해남부선 거제역에서 이곳으로 들어서는 인입선이 존재했었다.[73] 다른 건물들은 노후하긴 하여도 두류동이 택지지구로 계획된 곳이다 보니 상당히 질서정연하게 건물들이 배열되어 있었으나 이 구역만 길들이 꼬여 있다.[74] 말 그대로 '수도국이 있는 산'이라는 뜻의 별칭이다. 원래 이름은 만수산, 송림산이었는데 1906년 한국통감부가 서울~인천 간 수도시설을 부설하면서 이 시설을 관리하는 관청 '수도국'과 배수지를 이 산 정상에 두면서 수도국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75]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촬영지였다.[76] 십정동이 원래 적은 인구에 비해서는 면적과 전반적 개발수요 규모가 꽤 큰 동네라 개발을 완성하기 어렵기도 하다.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별로 안 살고 산적이나 나오던 지역을 광복 이후에 딱히 개발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적은 비용으로 개발하면서 거주지역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에 인구유입에 한계가 있었다. 십정동의 신촌이라는 지명은 사람이 안 살던 지역이 마을이 되면서 "새로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77] 다만 여긴 예전에 주택지역이 아닌 장미아파트라는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다.[78] 현대건설이 아파트 브랜드를 현대홈타운에서 힐스테이트로 바꾼 이후에는 범박동 현대홈타운도 부천범박힐스테이트로 바뀌었다.[79] 2000년대 초 남간로 쪽에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기 전만 하더라도 집이 정말 많았다. 80년대 초에는 이 곳 하나만으로 바로 아래 동부초의 학생 수가 2500여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는 바로 위쪽에 영주 아이파크까지 들어설 예정이라 입지는 더더욱 축소될 판.[80] 현재는 메데진의 에스컬레이터에 캐노피가 설치되어있다.#[81] 마가렛 대처기때 감세로 재정이 부족하자 임대주택을 대거 민간에 불하시켜놓았는데 지역에 따라서 불하되지 않은 곳들도 있었다.[82] 게제콘두는 뜻은 밤(gece)에 지었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밤에 공무원 몰래 집을 조금씩 지어서 만든 거. 일단 집을 지으면 이슬람 윤리관상 강제로 추방하고 밀어놓는 건 불가능한지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전기, 수도도 알아서 깔아준다. 이게 튀르키예 대도시에 게제콘두가 늘어난 원인.[83] 어원도 숙소를 뜻하는 '야도'를 뒤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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