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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참수형을 집행하는 사람. 참수 이외의 사형 방법까지 통틀어 부를땐 '처형인' 혹은 '사형 집행인'이라는 표현도 사용하며 영어로는 headsman(참수형에 국한될 때) 또는 executioner(사형 집행인)이라고 한다.[1] 살인이라는 부담스러운 일을 맡고 있는 상당히 특수한 직업이다.[2]2. 어형
어원은 ’막난이‘로 ‘막말’ 등에 쓰이는 ‘막-’과 ‘못난이’ 등에 쓰이는 ‘-난’ 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막돼먹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된다. 사람의 목숨을 끊는 일인데다 중죄인 중에서 뽑아 시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멸칭이 붙었으며 현재 쓰이는 의미 역시 여기서 유래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천주교 박해 당시엔 '휘광이' 라고도 불렀으며(관련기사) 한자어로 '회자수(劊子手)' 또는 '도부수(刀斧手)'라 하기도 한다. 이는 사형에 도(칼)와 부(도끼)를 사용했기 때문이다.프랑스에서는 사형 집행인을 무슈 드 파리(Monsieur de Paris)라고 불렀다. 한국어로 해석하면 '파리의 남자'. 업무 상 파리에만 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망나니의 오래된 은어로 개고기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 이전의 서술에서도 발견되는 표현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과거엔 개고기가 비하적 의미[3]가 있어서, 영 좋지 못한 사람을 부르는 말이었다 한다. 예컨대 도박중독자이자 백인 첩들을 거느리고 방탕한 생활을 즐겼던 산둥 군벌 장쭝창(장종창)의 별명이 '개고기 장군'이었다. 고우영 수호지에서도 이규를 개고기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고, 만화가 박인권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3. 지역별
3.1. 조선 시대
임진왜란의 전투 중 하나인 북관대첩 기록화. 성 밖에서는 도망치는 일본군들을 추격하고 있으며, 성 안에서는 망나니들이 포획한 일본군과 내통한 자들을 참수하고 있다.
김윤보의 <형정도첩>중 참수형 장면 |
주로 죄인이나 천인들이 그 일을 담당하였다. 자신이 참수하는 죄인보다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죄를 지은 죄인들이나 사형수가 사형을 면하는 대가로 처형인 일을 하기도 했다.
한국 사극 등을 보면 거대한 칼을 들고 춤추면서 입에 머금은 술을 칼에 뿜고 목을 베는 망나니를 자주 볼 수 있지만(대충 이렇게), 실은 타국의 참수형 형태와 섞여 생긴 재현 오류. 실제로는 중세 및 근세 서양의 참수형과 동일했다. 죄인의 얼굴에 회칠을 하고 양쪽 귓불을 뚫어 화살을 끼운후 상투 부분을 기둥에 단단히 매어 묶어두고 모탕 위에 목을 괴어 엎어놓은 뒤에 참수도로 내리쳐 목을 자르는 식이다. 제중원은 이런 방식으로 사형 장면이 나올뻔했다. 네이버 웹툰에서 이괄을 소재로 목요일에 연재되고 있는 칼부림에서 세밀하게 재현하고 있으며(칼부림 23화) 윤삼육 감독의 살어리랏다나 조여정 노출로 더 유명한 후궁: 제왕의 첩에서도 이런 식의 참수가 묘사되었다. 영화 중에서는 개벽 초반부에 최제우의 처형 장면이 이와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매체에서 망나니의 외형 역시 어느 정도 정형화된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대체로 봉두난발에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거지 왈패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위에 그림에서 보듯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고 형을 집행했다.[4]
3.2. 프랑스
다른 문화권의 망나니들과 달리 이들은 죄수들의 시체를 마음대로 할 권리를 가지고 있어 이들의 시체를 해부해 거기에서 얻은 해부 지식으로 외과업을 하거나 시체의 일부를 약용으로 속여서 팔기도 했으며, 도시당국의 명령에 따라 시체를 매장하거나, 사람들이 길가에 버린 분뇨를 처리하고 거리를 떠도는 쥐를 잡기도 했다. 이처럼 아무도 하지 않는 도시의 3D 산업을 담당하며 임금을 받을 수 있어서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나은 편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샤를 앙리 상송이 있다.3.3. 중국
자세한 내용은 사형/국가별 현황/중국 문서 참고하십시오.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경찰이 망나니를 겸했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가장 유명한 중국의 사형집행 사진은 사람을 살해한 죄로 사형에 처해진 육금봉(陸金鳳-루진펑, 1975~1995)포함 대여섯 명을 처형한 사진으로, 이 사진 때문에 인권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결국 비공개 약물주사로 바꾼다.
현재는 총살형이 폐단이 많아 금지되었지만 과거에 총살형을 시행한 방법은 사형수보다 더 많은 수의 경찰이 투입되며 사수와 부사수로 구분되어 있는데, 사수는 사형을 집행하고 부사수는 그냥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서있는다. 다만 사수가 사형집행을 거부할 경우 부사수가 투입되도록 되어 있다.
황당하다면 황당하고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이게도 이 총살형의 대상자에게 발사되는 총알값은 유족들에게 청구되었다.
현재 중국에서는 총살형은 인민해방군 소속 현역 군인만이 대상이 되며 중국군 군사경찰에 해당하는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가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군인 사형수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다. 중국에서도 오로지 현역 군인이 아니면은 총살당할 일은 전혀 없으며 중국에서도 군인을 총으로 하는건 명예롭다는 인식으로 군인에 대한 총살은 인정하고 있다. 뒤통수를 쏘는건 금지되며 심장에 쏘도록 하고있다.
4. 대우
비록 상대가 죄인이라고는 해도 살인을 직업으로 삼는 만큼 망나니는 사회에서 천시되었다. 민간에서 참수형을 집행할 경우 상당수가 사형 또는 그에 준하는 죄를 짓고 형을 면하는 대신 망나니 일을 하는 갈때까지 간 막장 인생이었고 교수형이나 사약, 군문에서의 참수형 등은 직업이었으나[5] 이들 역시 좋은 취급은 받지 못했다.여기에 더해 '살인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란 점 이외에도 망나니 본인들이 먹고 살자고 사람을 죽인다는 죄책감 때문에 정신병을 얻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이 그렇게 술에 절어 살던 이유가 술에 취하지 않으면 그 끔찍한 기억이 자주 떠오르기 때문이라 한다...[6]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신병에 대해 이해가 극도로 부족했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망나니들의 이런 가슴아픈 사연을 망나니란 직업의 천성인 것처럼 매도하면서 마치 사람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천시했다.
고려시대부터 신량역천의 상징인 양수척의 한 종류로 망나니를 의미하는 회자수가 등장하고, 이는 그대로 조선 시대의 백정 중의 하나가 된다. 회자수, 회수 등으로 불리었다. 군인에 대한 참수형(군문효수)은 지금의 군사경찰(헌병)에 해당하는 군뢰라는 보직이 있어 이들이 형을 집행했다. 다만 전시와 같은 특수한 상황, 가령 적진을 앞에 두고 병사들이 도주하거나 적군과 내통해 걸렸을 경우 사기진작과 내부기강을 잡기 위해 지휘관이 직접 칼로 죄인의 목을 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행주대첩 당시 전황이 불리해지자 탈영을 시도한 병사들이 나오자 총대장 권율이 직접 목을 치고 기강을 잡았다.
서유럽에서도 망나니는 천민 계층인 카고의 일부로서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망나니들은 일반인들이 사는 곳에서 절대로 살 수 없었고, 교회 또한 정해진 출입구로만 들어가야 했고 이때 반드시 지정된 자리에만 앉을 수 있었다. 이들이 지정석으로 앉던 자리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금기의 대상으로 이를 모르던 수공업자가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가 액막이로 길드에서 제명당하는 일로 인해 자살까지 했다. 심지어 19세기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성인인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생전에 아는 신자의 집에 가려다가 집을 착각해서 망나니의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마침 망나니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었는데, 청하지 않았는데도 신부가 자기네 집에 와주었다는 사실에 그들은 대단히 고마워했다. 그 바람에 요한 보스코 신부는 "잘못 들어왔습니다" 라는 말을 못하고 그대로 눌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성인조차 기피할 정도니 일반인은 얼마나 기피했을지 알만하다.
프랑스의 참수 집행인도 다른 나라의 사형 집행인처럼 천대받는 직종이었고 루이 16세를 처형한 무슈 드 파리였던 샤를 앙리 상송도 천한 신분 때문에 재판을 받은 적이 있다.[7] 하지만 무슈 드 파리는 한명만 두었기 때문에 무슈 드 파리가 없으면 처형을 할 사람이 없었고,[8] 상송 또한 내가 없으면 니들이 대신 처형 해줄 거냐?고 법정에서 따졌고 판사 또한 후작부인에게 따질 정도였던지라 결국 샤를 앙리 상송 측이 승소했다고 한다. 최후의 무슈 드 파리는 마르셀 슈발리에(Marcel Chevalier, 1921-2008)이다.(#)
서구에서 얼마나 망나니가 혐오의 대상이 되었느냐 하면, 16세기 독일에서 어느 하녀가 사람을 죽였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았는데, 그냥 죽이기에는 아깝다는 말이 나올만큼 외모가 아름다워서 법 집행을 하는 영주가 그녀한테 "만약 네가 망나니와 결혼하면 사형 집행을 취소해주겠다."라고 제안을 했으나 그녀는 "내가 망나니와 결혼해서 낳을 아이와 그 후손들이 다른 사람들한테 받을 멸시와 천대를 생각하면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낫다."라고 거부하여 죽음을 선택했던 일화도 있었다[9].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망나니들은 항상 마을에서 떨어져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유럽 역시 중세부터 망나니들을 차별해, 외출할 때는 붉은색 옷을 입어야 했고, 망나니들이 가계를 이을 때는 같은 망나니 가문이나 아니면 같이 차별 받았던 박피공[10] 가계의 사람들과 결혼해야 했다. 또한 주점이나 식당에 들어갈 때 주인과 다른 손님들에게 허락을 구해야 입장이 가능했을뿐만 아니라 일반인과의 겸상이 금지되어 있어 따로 배치된 자리와 벽에 걸린 전용 식기나 컵으로 식사를 해야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권 샤리아 시행 국가에서는 21세기 현대에도 조선 시대처럼 목을 베는 참수형 전문 망나니가 직업으로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공무원 신분이며, 참수 훈련을 받은 전문가이다. 국가에서의 예우도 좋은 편이고, 타인들이 크게 기피하는 인식도 적기 때문에 망나니들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11] 또한 가업 형태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망나니이면 아들도 그걸 물려받는 경우가 많다.[12]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보니 지원자가 적기에 망나니에겐 수당 보수도 엄청나고 온갖 경제적 지원도 후하게 주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이 부족하자 참수형 대신 총살형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사형 집행인들도 참수를 좋아하지 않으며, 그나마 시신이 온전하게 남고 죄의식이 덜한 총살형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들 이슬람권의 망나니들은 참수 및 총살뿐 아니라 신체 부위를 절단하는 형벌(예: 절도범의 손목을 자름)도 맡아서 한다.
문학 작품에서도 빨간구두에 등장하는 외따로 살고 있는 망나니라거나,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에서 밀레이디의 전 애인의 형으로 나와서 아우를 배신하여 죽게한 밀레이디의 목을 베는 망나니 등, 망나니에 대한 묘사는 하나같이 흉흉하기 짝이 없다.
같은 사람을 전문적으로 죽인다는 입장에서 군인과 비교가 되는데 과거부터 군인은 적을 많이 죽이면 죽일 수록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영웅으로 대접받거나 더 나아가 민족의 영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형 집행인은 악인을 처형한다는 것임에도 집행 횟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멸시와 천대를 받기 십상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대중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직접적으로 경험을 했는가 아닌가에 대한 분석이 있다. 세계대전 이전의 전쟁들에서는 전투가 벌어져도 저 멀리 국경이나 타지에서 일어나는 일이 빈번했기에 적의 군대가 눈앞까지 당도하지 않는 이상 직접적으로 체감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있는데, 사형 집행의 경우 악행에 대한 본보기로서, 권력에 대한 과시로서 집행 과정을 대중들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줘 왔고 이는 대중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기에 이러한 영향이 오랫동안 진행되며 각인되어 왔다는 분석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쟁이 더욱 큰 충격이고 그 영향도 거대하지만 어쩌다 가끔씩 일어나는 반면, 사형집행은 일상 생활에서 늘 존재해왔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시대가 현대로 넘어오며 미디어와 통신 수단의 발달, 세계화로 지구 반대편의 전쟁을 직접 경험하거나 보진 못해도 체감할 수 있는 반면, 사형 집행은 아예 하질 않거나 횟수를 줄이거나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비공개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5. 망나니의 실력과 고통
참수형의 경우 집행자가 살인의 충격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 술을 먹고 취한 채로 하다 조준이 빗나가거나 힘이 덜 실려서 사형수에게 참혹하고 고통스럽게 집행되는 경우도 꽤 잦았다고 한다.관에서도 이런 사정을 아는지 사형 당일이 되면 특별히 술과 고기를 푸짐히 내려 먹였다고 하며 이것을 '한밥 먹인다'[13]라고 표현한다. 조선 시대의 망나니를 그린 그림을 보면 단칼에 베는 대가로 죄인 가족들에게 받은 돼지를 안고 돌아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망나니에게 죄인의 가족들이 뇌물을 주는 행위는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다른 지역에도 있었다고 한다.
윤삼육 감독, 이덕화 주연의 《살어리랏다》에서도 이런 부분이 묘사되는데 이 뇌물 공여 때 벌어진 일로 인해서 양반가의 규수와 정분이 맺어지고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권력자에게 심하게 미움받은 자가 참수형 당할 때는, 일부러 참수 경험이 적은 망나니에게 사형을 시킨 일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단두대가 등장해서 너무 쉽게 목이 떨어지자, 재미가 없고 귀족들 좀 힘들게 죽여야지 '너무 쉽게 죽인다'는 이유로 불만을 가지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14]
6. 심적 부담
예전에 법무부로부터 사형 집행서가 오면 사형수를 포박하여 목에 줄을 걸거나 교수대의 레버를 당기는 역할을 해야 하는 등의 인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인 만큼 거의 대부분의 교도관들이 꺼렸기에 교도소장이 일일이 지정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이 때마다 교도관들은 아내가 임신 중이라든지 혹은 병석에 부모님이 계신다는 식의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차라리 전쟁터에서 자기가 살기 위해 적군을 쏘아 죽이거나, 중무장한 범죄자가 인질을 잡은 상황에서 인질을 구하기 위해 저격을 하는 거라면 살기 위해서 쐈다는 생존본능에 의거한 합당한 이유라도 있다고 자기합리화가 가능하지만, 사형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어차피 살려둬도 찰스 맨슨처럼 교도소 감방 천장이나 보다가 일생을 마칠 비참한 운명으로 사회로 절대 나가지 못할 만큼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라 꼭 죽일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를 도입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당시 단두대의 도입을 반대하던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가 바로 '이 단두대를 사용하면 사형 집행인들의 고생을 덜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교도관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집행자' 에서도 나오는데 국가로부터 사형수들의 사형 명령이 떨어지자 너도나도 사형 집행일을 피하려고 하며 제비뽑기로 뽑혀 사형을 집행했던 교도관들은 국가에서 사형 특별 수당으로 주는 7만원을 받고 집어던지며 "씨발... 우리는 그냥 망나니였어..." 라고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 13계단에서도 교도관인 주인공이 2번이나 사형 집행을 했으며, 사형 절차에 대해서도 꽤나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일본 사형 집행 방식이지만 한국도 큰 차이는 없다.
참수형을 공식적으로 시행하는 나라는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뿐인데, 예멘은 사형수가 원하면 총살형을 하게끔 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진통제를 써서 고통없이 참수당하거나 총살당하도록 배려해준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마찬가지로 사형수에게 치사량 수준 진통제를 쓰게해줘서 고통은 커녕 헤롱거리며 참수당한다. 게다가 참수형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고통 없이 한 번에 처형하기 위해 특별히 주문하여 만든 섬세한 샴쉬르로 일격에 참수시키며 망나니들도 상당히 많은 돈을 받는다.
현재로 참수형을 실행하는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선 무함마드 사아드 알 비쉬라는 망나니가 2013년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를 자신도 15년동안 많은 사형을 집행했는데 그의 죄함을 용서하고 알라께서 봐주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다른 망나니는 충실한 종교관에 따라 현세에서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는 명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믿고 신앙심 가득한 칼을 휘두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일부 망나니의 강한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일 뿐 사형제가 존재하는 대다수 국가의 대부분의 망나니의 경우 알콜 중독이나 약물에 빠져 아래 10.1의 망나니가 되거나 심하면 자살하는 등의 심한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망나니가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던 걸 종교경찰 무트와가 적발했지만 그가 직업을 밝히며 '댁들이 나 대신 참수할 수 있냐'고 하자 무트와조차도 봐줘서 그를 풀어주고 건드리지 않은 실화도 있을 정도다. 음주에 대하여 채찍과 회초리로 처벌하며 엄격한 무트와조차도 망나니가 잠깐 시름을 잊기 위해 음주를 하는걸 봐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집행 때마다 꽤 두둑한 돈을 줄 정도임에도 지원자가 없다고 한다. 오죽하면 참수형을 없애고 총살형으로 사형방법을 바꾸자는 말도 많다고 한다. 현직 망나니들은 '우리도 총을 새로 배우면 되니 상관없다'라는 반응인 듯.
한국에서도 과거 사형 집행이 이뤄지던 시절엔 사형 집행에 참여한 교도관들 대부분이 그 후 받는 특별 휴가 기간 동안에 내내 술만 퍼마시며 보냈다는 증언이 많다.
이런 문제 때문에 집행하는 사람들이 죄책감을 덜 느낄 수 있는 시스템으로 사형 시스템을 바꾸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수형을 집행할 때 밧줄이 사형수의 목을 죄도록 누군가가 레버를 당겨야 하는데 진짜 레버와 똑같이 생긴 가짜 레버를 여러 개 만들어 두고 여러 교도관이 동시에 레버를 당기게 한다든지, 또는 총살형을 집행할 때 실탄을 랜덤으로 주고 여러 명이 동시에 사형수에게 총을 쏘아서 누가 쏜 총탄에 맞아 사형수의 숨이 끊어졌는지 모르도록 한다든지.[15] 그러나 사형 집행인의 죄책감을 아예 없앨 수는 없는데다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의 수가 몇 배로 늘어나 버린다는 점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
17세기 독일 사형 집행인 가족이 주인공인 소설 사형 집행인의 딸 시리즈를 보면 이러한 부분이 잘 묘사되어 있다.
7. 유명한 사람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프랑스 혁명 시기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로베스피에르의 목을 자른 샤를 앙리 상송이 있다.나치 독일 시절 단두대(Fallbeil)로 4천여 명을 처형한 요한 라이히하르트가 있다. 전범재판에 회부되었지만 가스실 등 악독한 방식으로 대량 학살은 한것은 아니었기에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치 전범들을 처형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이후에는 사형 폐지 운동을 했다. 자연사했으나 결국 아들이 아버지 직업을 알고 자살하는 등 말로는 좋지 못했다.
앤 불린의 참수를 집행한 사람은 도부수가 아니라 특별히 프랑스에서 모셔온 검술의 대가였다(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한때 왕의 총애를 받았던 앤을 위해 도끼 대신 검으로 목을 치도록 배려한 것이라 하는데, 검으로 쳐서 머리와 목을 분리시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임에도 이 검술사는 한번에 이를 해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사형 집행인으로는 덩하이산(등해산, 邓海山 ? ~ 1925)이 있다. 그는 청나라 말기에 후난의 창사 현에서 활동하던 사형 집행인으로,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아로 사형 집행인 동소기(佟绍箕)의 제자로 들어가면서 사형 집행인의 길을 걸었다. 참수형 전문가답게 청나라가 망하는 순간까지 사형수 300명, 도적은 2300명 넘게 참수했다. 사형 집행을 하면서 보수를 넉넉하게 받았고 돈을 많이 벌어[16]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지만, 사형 집행인이라 직업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꺼렸고, 청조가 망하고 1914년 베이징 정부가 '도적처벌법'을 공포해 사형이 참수형에서 총살형으로 바뀌면서 오랫동안 종사해온 직업도 잃었다.
직업을 잃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살려 했지만 지인의 소개로 사귀게 된 여자친구가 그의 과거 직업을 알고는 이를 이유로 차이고, 세들어 살던 집의 집주인도 이를 알게 되어 '불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쫒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승려가 되고 싶어 절에 왔지만 주지마저 그를 거절했는데 이유가 "사형 집행인을 한 게 죄악이 너무 커서 보살도 구제할 수 없다." 하는 것이었다. 덩하이산 본인도 자신이 하는 일이 그리 좋은 일은 아니고 죄업을 쌓는 일이라는[17] 주위의 비난은 자각해서 일 마치고 관아에 돌아올 때마다 자신에게 곤장을 때리게 하고, 자신의 돈으로 재를 올리는 등 어떻게든 죄책감 덜어보려 했지만 주위의 비난은 그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장가를 들려고 해도 예전 직업 때문에 아무도 그에게 시집 오려는 여자가 없다 보니 결국 결혼을 포기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사형 집행인 생활로 모아놓았던 돈과 지인의 소개로 집과 땅을 사서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지으면서 은둔하며 살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18]
소련에서는 NKVD 전담 바실리 블로힌이 있다. 이 사람은 뒤통수를 총으로 쏘는 방법으로 적어도 1만 명 이상을 처형했고 카틴 학살 때는 폴란드인 7천여 명을 28일간 살해했다고 한다. 이 공적(?)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고 계급으로는 소장까지 오를 정도였으나 결국은 그도 미쳐서 자살했다고 한다. 물론 이 경우는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도 한몫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바실리 블로힌은 자살하기 전에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에 걸려 고통받았다.
에도 시대 일본에는 야마다 아사에몬이라는 전업 참수 집행인 가문이 있었다.
8. 매체에서
악인을 죽이는 직업임에도 별로 영웅적으로 그려지거나 그들의 고통은 나오지 않는다. 대다수 피의 미쳐있거나 공포 캐릭터로 나온다. 이노상에 같은 경우 인간의 이중성과 사형제도의 모순을 보여줬다.8.1. 소설
8.1.1. 수호전
- 양웅: 양산박에 들어가기 전에 계주의 간수이자 유명한 사형 집행인이었다.
- 채경: 채복의 동생으로 대명부의 간수이자 사형 집행인이었다. 양산박에 들어간 후에도 사형 집행을 담당하였다.
- 채복: 채경의 형이자 대명부의 간수이자 사형 집행인이었다. 양산박에 들어간 후에도 채경과 함께 사형 집행을 담당하였다.
8.2. 만화 및 애니메이션
8.2.1. 죠죠의 기묘한 모험 시리즈
- 스틸 볼 런: 자이로 체펠리가 사형 집행인 집안으로 나온다. 근데 4권 이후부터는 체펠리 집안 전체가 의술로 유명한 가문으로 나오고 체펠리의 아버지도 의사로 나온다. 아마 위의 의사가 처형인 역할도 했다는 이야기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
8.2.2. 치우천하
박강호 작가의 작품으로 주인공인 치우가 망나니 가문의 아들로 나오는데, 망나니는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주는 신의 대리자들로서, 처형하기 전에 추는 춤이 바로 그 의식이라 나온다.8.3. 게임
8.3.1. Kingdom Come: Deliverance
처형자 헤르만이라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선역 망나니 캐릭터가 등장한다. 마을 밖의 외딴 집에 홀로 살며 그에 온갖 나쁜 소문이 떠돌지만 실상은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자신이 처형한 남자의 미망인과 이어줄 수도 있다.8.3.2. 잃어버린 제국
1990년대 국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잃어버린 제국[19]에는 조선군의 후반 근접보병으로 등장한다. 가만히 냅두면 칼을 들고 빙빙 도는데, 게임의 문제로 도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8.3.3. 도미네이션즈
전술성 병력으로 등장한다.자세한 내용은 사형집행인(도미네이션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8.3.4. Warhammer
오거 킹덤 캐릭터 중 브라그도 망나니다. 다만 영어로 망나니를 Headsman이라고 부르는데 오거들은 오히려 설정상 배와 내장을 매우 중시해서 칭호가 Gutsman이다.8.3.5. 록맨 제로 3
팔심관 중 하나인 데스탄츠 맨티스크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죄인을 처형하는 레플리로이드다. 사실 원래는 자신이 처형할 이를 동정하고 자신이 낫을 휘두르지 않는 걸 평화의 상징이라고 여겼지만, 닥터 바일이 개조하면서 거리낌 없이 낫을 휘두를 정도로 포악해졌다.9. 기타
-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당시 프랑스의 사형 집행인들은 거리에서 마구 벌어지는 학살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왜 안 죽이냐고 하자 망나니들은 "저들이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죄인이 아닌데 왜 죽이냐? 이건 학살이잖아? 우린 학살자가 아니야!" 라면서 사람들을 깠다는 기록도 있다.
-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나니는 잘 할 때는 봉산나니, 그리고 못할 때는 망나니라고 불렸다.
- 그런데 워낙 볼거리가 없던 그 시대에 망나니의 참수형 집행장면도 하나의 구경거리였다.[20] 개중에 잇속에 밝은 망나니들은 형 집행 전 구경꾼들 사이에 돌아다니면서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관람료(?)를 요구했다고. 가령 목침을 괴어야 하는데 목침이 없어 곤란하던 차 육의전의 한 상인이 목침을 하나 주었다. 이후 망나니들이 일부러 목침을 안가져오고 주변 목침 판매상에게 목침 또는 돈 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또한 사형수 중에 대머리가 있어 머리카락을 묶지 못해 보다못한 장기두던 이가 장기 망태기를 주자 역시 그후에 장기두던 사람에게 망태기 살 돈 달라고 흥정했다고.[21] 산하에서 나온 어린이 도서 '속담 하나 이야기 하나'에서는 이런 망나니들의 요구에서 '까닭 없이 공짜로 달라고 하는 것'을 뜻하는 '목침행하'라는 속담이 나왔다고 하지만 현대에는 거의 사장된 말인 듯.
- 서구에서는 처형을 앞둔 죄수와 지켜보는 대중에게 사형 집행인의 신원이 비밀로 유지되곤 했다. 처형된 죄수의 가족이 사형 집행인에게 복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복면이나 강철 가면을 써서 익명성을 지킬 수 있었다.
10. 비유적 표현
10.1. 성질이 사나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
어원은 보통 1번 문단의 사형 집행인으로 보고 있다.다른 어원설로 막(마지막)+낳은+이가 변형된 것으로 '막내'의 의미로 보는 것인데, 보통 막내가 어리고 버릇이 없기 때문에서 왔다고 한다.
또다른 어원설로 역시 막(마구, 막돼먹게)+낳은+이 또는 막+난+이로 해석하는 것이 있는데, 문자 그대로 막 낳은 놈 또는 막 태어난 놈 즉 사생아, 후레자식 등등의 의미라는 것이다.
다만 막+낳은+이 설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게, 출산을 의미하는 '낳-'은 조선시대에는 ㄴ+아래아+ㅎ 의 형태로 쓰였고, 이게 '놓다'로 변형되어 내려온 지방이 적지 않다. (논개의 어원이 여기에 관련돼 있다는 말도 있고, 요새도 80대 이상의 노인들 중에서는 "손주 하나 놓고"란 말을 쓰시는 분들이 꽤 있다.) 막+낳은+이 설이 사실이라면 '망노니' 라는 어휘도 널리 쓰이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어휘는 전혀 쓰이고 있지 않은 것이 막+낳은+이 설의 반례가 되는 것.
망나니 중에서도 특별히 더 개차반인 경우는 개망나니라고도 부른다.
왜인지 2010년대 후반 들어 판타지 장르 웹소설에서 주인공의 속성으로 자주 등장하며, 아예 망나니물이란 장르의 일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주인공이 이세계나 소설 속 등장인물에 빙의하는데 그 등장인물이 능력은 개뿔도 없는 귀족이나 왕족 망나니인 식.[22] 이런 주인공의 왕도는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뉘는 편인데, 빙의한 주인공이 가늘고 길게 살겠다며 갖은 잔머리를 굴리면 작중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휘말려 위대한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기왕 망나니가 된 거 망나니로 살겠다고 막 나가면 작중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휘말려 고결한 위인으로 떠받들어진다. 주인공 자신은 이런 걸 원하지 않았다며 방방 뛰지만 행적을 보면 다 스불재인 것은 덤이다.
요즘은 굳이 성질이 사나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냥 인격이 개차반인 사람을 망나니라고 낮잡아 부르기도 한다.
10.2. あばれん-ぼう. 디지캐럿의 등장인물
한국판 애니메이션에서는 달건[23]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물방울 형태의 머리에 옛날 열혈캐릭스러운 얼굴. 왠지 벌거벗은 모습으로 엉덩이를 실룩거리는 괴캐릭. 방귀도 뀐다.
디지캐럿 작중에서 혼자 다른 그림체로 거친 오버액션을 구사한다. 몸뚱아리엔 あ자가 붙어있는데 본인이 말하길 망나니 문자라고.
언제나 날뛰겠다고 이야기는 하는데 정작 날뛰는 것을 육안으로 본 이는 없다. 그야말로 광속으로 날뛴다-라고나 할까. 그냥 가만히 있다 날뛰었다고 우기는 것 같기도 했다.
성격은 기본적으로 나사가 열 개쯤 빠진 열혈이지만 조울증이 심한 듯 급격히 음침해졌다 우울해져 푸념을 늘어놓거나 하기를 반복. 왠지 마사루가 생각나는 아스트랄한 행동양식을 가졌다.[24] 하는 행동 중 가장 기분 나빠지는 행동은 초저음으로 한 자 한 자 질질 끌듯이 중얼거리기. 직접 들으면 정말 기분 나빠진다.
이후 시리즈에서도 간간히 등장하지만 왠지 가면 갈수록 비중이 약화되어간다.
10.3. 온라인 게임에서
PvP가 주 컨텐츠인 온라인 게임에서 계속해서 싸움만을 원하는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이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 대표적인 게임이 리그 오브 레전드인데, 게임 특성상 적 챔피언과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운영 또한 중요하기 때문. 이외에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도타 2 등 주로 AOS 장르의 게임에서 쓰이는 표현이다.
이러한 게임에서 운영을 내팽개치고 계속 싸움을 거는 스타일은 본인은 재밌을지 몰라도 게임 전체로 보면 교전에서 이겨야 본전, 지면 막심한 손해인 경우가 많기에 망나니라 불리며 멸시당한다. 주로 탑신병자와 함께 탑 라이너들을 비하하는 용도로도 많이 쓰인다. 비슷한 예로는 도구, 백정, 숟가락등이 있다.
[1] 집행관, 집행자를 의미하는 Executor와 다른 단어다. 사형을 '집행'한다는 의미에서 비슷해보이긴 하지만 executioner의 execution은 처형 그 자체를 의미한다.[2] 군인과 더불어 합법적으로 생명을 거둘 수 있는 직업이다. 군인은 전쟁이나 전투라는 특수한 경우라면 망나니는 법 집행을 수행한다. 그리고 둘의 대접도 매우 다른데 오랫동안 영웅으로 숭배받은 군인과 달리 망나니는 악인을 죽이는 직업임에도 천시되어 왔고, 현재도 다르지 않다.[3] 양두구육이라는 사자성어에서도 개고기를 안 좋은 것으로 비유하는 의미가 있다. 심지어 이 사자성어의 모티브가 된 원래의 현실 일화는 말고기를 소고기로 속인다는 내용인데 후대에 개고기로 바뀐것이라고 하니, 개고기가 그만큼 임팩트가 있는 비하 목적의 비유라는 의미도 엿볼 수 있다.[4] 한편 중국 망나니는 보통 웃통을 까고 나오고 개백정같은 이미지라면 일본 망나니는 일반 사무라이와 별다른 차이가 없게 나온다. 유럽은 눈과 입만 뚫린 검은 가면을 쓰고 큰 도끼를 든 무시무시한 이미지이다.[5] 사약의 경우 높으신 분에게 내리는 것인 만큼 무려 금부도사가 담당했다. 다만 금부도사, 그리고 금부도사가 맡은 의금부는 사약 하사만을 전문으로 하는 일은 아니었고 그저 맡은 업무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죽이는 자들이 죄다 높으신 분들이다 보니 보복의 위험도 있어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가지고 간 금부도사 이세좌는 후일 폐비 윤씨의 아들인 연산군이 갑자사화를 일으켰을 때 보복당한다.[6] 현대에도 이는 다르지 않아서 후술하겠지만 그 술을 금지하는 사우디조차 사형 집행인들의 음주는 봐주는 지경이다. 그정도로 사형집행은 집행인에게도 괴로운 일이라는 것.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대상이 중범죄자라고 해도, 본인 개인의 원수도 아니고 생전 처음 보는 죄인들을 주기적으로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망나니도 상식이 있기에 그 중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는 사람도 없을 리 없으니 100% 순수 죄인만 죽였다고 확신할 수도 없고, 이로 인한 죄책감 또한 있을 수 밖에 없다.[7] 엄밀히 말하면 계급 자체는 기사 작위를 가진 귀족이었다. 더욱이 사형 집행인 직업도 대대로 물려받았다. 본인은 4대 무슈 드 파리로 본인 아래로 2대까지 더 상송 가문이 이 일을 맡았다. 다른 지역의 망나니는 그냥 완전 천민이었던 반면 프랑스의 무슈 드 파리는 작위와 많은 봉급을 받아서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았다. 하지만 이름만 신사고 귀족이지 하는 일은 몹시 천시받는 일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나빴던 것. 그가 재판을 받은 사유는 어떤 후작부인과 연애를 하면서 자신이 망나니라는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망나니인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겠지만 본인이 망나니라는 사실을 숨기기도 했거니와 미남에 똑똑하고 번듯하게 차려입고 다닌지라 이 후작부인 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을 낚았기 때문. 나중에 그의 직업을 안 후작부인이 기겁을 해서, 망나니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달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걸었다고.[8] 앞 주석에서 말했듯 망나니는 세습직이었다보니 급하게 구해오기도 뭣했다. 게다가 이 때의 처형은 그냥 칼이나 도끼로 목을 써는게 아니라 기요틴을 사용해 자르는 것이니...[9] 출처: 뉘른베르크의 사형 집행인/ 조엘 해링톤 저/ 이지안 역/ 마르코폴로[10] 생가죽을 다듬는 장인. 우리말로는 무두장이라고 한다. 생가죽이 딱딱해지는걸 막고 가죽위의 털을 제거해 매끈하게 만드는 작업에서 심한 악취가 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들의 작업장과 집은 마을에서 멀리떨어진 외곽에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매우 천대 받았다. 사회적 천대는 사라졌지만 생가죽 가공과 염색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가 나는 것은 지금도 똑같다.[11] 후술 되어 있지만, 겉으로는 대우가 좋을지 몰라도 마음 속에서는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말이 망나니이지 실제로 악인을 처벌하는 정의구현을 하는 것 이기에 자부심을 가져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문제는 사형을 재미있게 봐도 사형을 하는 사람을 거부하는 인간의 본증적인 거부감으로 인한 사회적 충돌이다.[12] 지원하는 사람이 적어서 자식이 물려 받는 것으로 보인다.[13] 여기서의 '한'은 숫자 하나(1)라는 뜻이 아니고, '크다'라는 의미의 '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관형사인 '한'이다. 즉 '큰 밥'이라는 뜻으로, 크게 밥상을 차려 먹인다는 뜻. 대전의 순우리말인 '한밭'의 '한'과 같은 뜻이다.[14] 사형이 하나에 유희임에도 이상하게 사람들은 망나니를 천시했다.[15] 이것도 진짜 레버를 당기거나 실탄을 쏘는 사람은 느낌이 가짜와는 미묘하게 달라서 눈치챈다는 말도 있다. 사실인지는 불명. 일단 한국과 일본은 전기식 랜덤 스위치를 도입해서 그때그때 실행 버튼이 바뀌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일단 총을 쏴봤다면 알겠지만 실탄과 공포탄을 쐈을 때 총성부터 반동까지 느낌이 꽤 다르다.[16] 한 사람 목을 벨 때마다 4위안을 벌었다고 한다.[17] 그를 사형 집행인의 길로 들어서게 한 스승 동소기마저도 "99명까지만 처형하고 그 이상은 더 처형 일 맡지 말고 손 털고 다른 일 찾아서 나가라. 그 이상 넘어가서 사람을 처형하게 되면 넌 평생 이 길을 못 벗어난다." 하고 충고했지만, 고아에 배운 것도 없는 등해산으로서는 이걸 그만두면 달리 할 일도 없었을 테니, 어떻게 보면 안타깝다고 할 수 있다.[18] 여기에서 모순을 알 수 있다. 사형은 지엄한 황제가 내린 것이고 국가 정부가 내린 것 이다. 그리고 사형 당하는 이들 대다수는 악인 맞다. 그럼에도 이를 수행한 이를 좋게 보지 않는 것은 사회가 정부가 허용하고 이를 재미 있게 봐도 마음 속에 절대적인 거부감을 가진 것으로 봐야 한다.[19] 효종의 북벌론이 실제로 실행되어 조선, 청나라, 일본의 3파전이 벌어진다는 내용의 게임이다.[20] 중국 소설 아Q정전에서도 아Q가 마지막에 총살당할때 구경꾼들이 에이, 총살형은 재미가 없어! 참수형이 재미있는데 말야!"라는 말을 하는게 나온다.[21] 가람기획, 이경재 저 <청계천은 살아있다> 중에서.[22] 장르가 책빙의물일 경우 십중팔구 남자 망나니는 용사에게 털리는 엑스트라, 여자 망나니는 패악부리다 파혼당하는 원작 남주인공의 약혼녀다.[23] '건달' 을 거꾸로 한 것.[24] 마사루와 망나니는 둘 다 성우가 우에다 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