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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17:24:40

선산 김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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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선산 김씨(善山 金氏)
이명 일선 김씨(一善 金氏)
관향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고아읍
비조 김알지(金閼智)
도시조 문성왕(文聖王)
시조 김선궁(金宣弓) · 김추(金錘)
집성촌 대구광역시 전역
부산광역시 전역
광주광역시 전역
경기도 전역
경상북도 안동시·경주시·구미시·김천시·상주시·의성군
경상남도 창원시·진주시·밀양시·합천군·고령군·거창군·함양군·산청군·창녕군
충청남도 전역
충청북도 전역
전라남도 전역
전라북도 전역
제주도 전역
함경남도 단천군·이원군·북청군
인구 145,890명(2015년) | 국내 72위[1]
웹사이트 선산일선김씨대종회

1. 개요2. 본관 선산에 대해3. 계열
3.1. 김선궁(金宣弓) 계
3.1.1. 분파3.1.2. 인물
3.1.2.1. 고려​3.1.2.2. 조선​3.1.2.3. 근·현대
3.2. 김추(金錘) 계
3.2.1. 분파3.2.2. 인물
3.2.2.1. 고려​3.2.2.2. 조선​3.2.2.3. 근, 현대​

[clearfix]

1. 개요

선산 김씨(善山 金氏)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선산 김씨 내 김선궁 계열 일선 김씨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30세로 [2] 시조 김선궁은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공으로 고려 개국(開國) 삼한통합익찬공신(三韓統合翊贊功臣) 삼중대광 문하시중(三重大匡門下侍中)을 지내고 대승(大丞)에 추증되었다. 선주백(善州伯)에 봉해지고 순충공(順忠公)의 시호(諡號)를 받은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삼는 후손들이 선산을 본관으로 계통을 이어오고 있는 집단이다.

선산 김씨 내 김추 계열의 들성 김씨는 경순왕의 8자 김추(金錘)를 시조로 삼는, 그의 후손 고려 검교중랑장(檢校中郞將) 김문(金文)의 손자 김기(金起)가 고려 말 선산으로 낙향하면서 선산을 본관으로 계통을 잇는 후손들의 집단이다.

즉, 이들은 이조(異祖) 동본동성(同本同姓)이다.[3]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조상이 서로 다른 데도 불구하고, 같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같은 성씨를 쓰며 마치 두 집안이 동성동본(同姓同本)인양 오인 받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4] 선산 김씨(善山 金氏)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와 같이 선산 김씨가 이조(異祖) 동본동성(同本同姓)이 일어나게 된 것은, 선산(善山)에 뿌리를 두면서부터이다. 선산(善山)의 고호가 일선(一善)이어서 본관을 일선(一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조에 들어 선산으로 지명이 바뀌면서 혼동이 발생되었다.

2. 본관 선산에 대해

파일:선산군기.svg
본관이 위치한 지역이 선산군이었던 시절의 군기.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이라 했었고, 614년(진평왕 36)에 일선주(一善州)로 승격되었다가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어버렸다. 그러다 757년(경덕왕 16)에 부활해 숭선군(崇善郡)으로 개칭했다가,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강등을 당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5]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一善縣)으로 승격되었으며, 다시 지선주군사(知善州郡事)[6]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에 선산군(善山郡)으로 되었다가 2년 뒤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7]로 승격되었다.

1896년 고종 말기에 행정대개편을 통해 도호부가 군으로 통합되어 폐지되면서 경상북도 선산군(善山郡)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선산면, 옥성면, 도개면, 해평면, 산동면, 고아면, 구미면, 장천면, 무을면이 되었다. 1963년에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되고[8], 1978년에 시로 승격하여, 선산군과 분리되었다. 선산군의 중심지인 선산면은 1979년에서야 선산읍으로 승격했다.

19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 다시 말해, 도농통합으로 인해,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하여 지금의 구미시가 되었다. 선산군청은 구미시청 선산출장소로 쓰이고 있다. 일선이었든, 선산이었든 어찌 됐건 간에 '선(善)' 하나만은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다.

선산 김씨의 본관인 선산읍이 이렇게 된 이유는 경부선이 선산읍이 아닌 왜관을 거쳐갔기 때문도 있고, 박정희의 고향이 바로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동, 즉 지금의 구미시 일대였기 때문이다. 근대에 와서는 경부선의 일부분이 구미 쪽으로 이설되어 선산은 또 외면 받았다. 경상북도 산업화의 중심도 구미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구미국가산업단지까지 들어서는 등으로 구미면 → 구미읍 → 구미시까지 폭풍성장을 거쳤지만, 선산읍은 아예 군도 사라지고 선산읍으로만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는 셈이다.[9]

3. 계열

김알지의 후예 김선궁을 시조로 하는 일선 김씨와는 달리, 들성 김씨는 삼척(三陟)김씨, 원주(原州)김씨, 진주(晉州)김씨, 온양(溫陽)김씨, 희천(熙川)김씨와 함께 경순왕의 8자 김추를 시조로 하는 김씨 집단에서 분관되어 계통을 잇고 있다. 따라서 선산·삼척·원주·진주·온양·희천김씨는 본관은 다르지만 시조를 같이 하기에 혈족은 같은 동성이본동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일선 김씨와 선산(들성) 김씨 두 집안은 공교롭게도 성도 본관도 똑같지만 엄연히 별개의 성씨다. 일선이라는 게 워낙 오래전 삼국시대 때 지명인지라[10] 어딘지 쉽게 알기 어려워 선산으로 바꿔 부르다 보니, 현재는 일선 김씨와 선산 김씨로, 또는 들성 김씨와 선산 김씨로 두 집안 모두 혼용하고 있다. 결국 김해 김씨처럼 통혼은 가능하되 시조가 다른 두 계통이 이조 동본동성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이를 잘 모르는 후손들이 상대 집안을 같은 집안 사람으로 착각하는 일도 왕왕 일어나며, 역사 연구나 인구 파악을 할 때도 혼선을 빚는 원인이 되기 일쑤다.

3.1. 김선궁(金宣弓) 계

시조 김선궁(金宣弓)은 초명이 김선(金宣)이며, 고려조에 삼중대광 문하시중(三重大匡 門下侍中)을 지내고 대승(大丞)에 추증되었다. 선주백(善州伯)에 봉해지고 순충공(順忠公)의 시호가 내렸다.

문헌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백제를 정벌할 때 숭선(嵩善. 지금의 경북 구미시) 지방 전투에 병사를 모집함에 김선궁(金宣弓)이 고을 아전(衙前)으로써 응모하니, 고려 태조는 자신이 쓰던 활 어궁(御弓)을 하사하고 이름도 선궁(宣弓)이라 지어 주었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시중(侍中)에 오르고 선주백(善州伯)에 봉해졌다. 선주(善州)는 일선(一善)의 고호이다. 아들 김봉문(金奉文)도 아버지 뒤를 이어 일선(一善)에서 아전(衙前. 지방 지배자)이 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을 일선(一善)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다가, 조선 태종 때 선산(善山)으로 개칭됨에 따라 선산(善山)으로 하였다. 혹칭 일선 김씨(一善 金氏)라 한다. 김선궁의 《순충공 신도비명》(順忠公 神道碑銘)에도 처음 적(籍)을 일선(一善)에 두어 세계(世系)를 이어 왔으나, 조선 태종 때 지명이 선산(善山)으로 개칭됨에 따라 관향을 선산(善山)으로 하였다고 하였다.

14세 김제(金齊)는 고려 조봉랑 지평해군사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군청벽에 도해 벽상시 27자를 남기고 바다로 들어갔다. 예조참판에 증직되고 시호가 충개공이며 안동 고죽서원, 고창 운곡서원, 울진 운암서원에 배향 되었다.

呼船東問魯連津(호선동문노연진) 배를 불러 동쪽 노중련의 나루를 물으니,
五百年今一介臣(오백년금일개신) 오백년 고려조의 한사람 신하로다.
可使孤魂能不死(가사고혼능불사) 외로운 이 영혼이 죽지 않고 남는다면,
願隨紅日照中垠(원수홍일조중은) 붉은 해를 따라가 님 계신곳 비추리.

14세 김주(金澍)는 김제(金齊)의 동생으로 고려조에 등과하여 벼슬이 예의판서로 하절사로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조선이 개국하자 서신과 의복을 아내에게 보내고 돌아오지 않았다. 선산 월암서원에 배향 되었다.

김선궁의 손자 김흥술(金興述)은 삼사우윤(三司右尹) 김봉문(金奉文)의 아들로, 호장(戶長)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 특히 김흥술의 13세손 김숙자(金叔滋)와 그의 아들 김종직(金宗直)은 가문을 빛낸 인물이 되었다.

김숙자(金淑滋)는 야은(冶隱) 길재(吉再)로부터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이어 받았으며,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등을 역임하고, 낙향해서는 조선 성리학 발전에 큰 업적을 쌓았다. 낙봉서원에 배향되었다.

김종직(金宗直)은 조선 초기 성리학적 정치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사림파의 사조(師祖)로 공조참판·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낙향해서는 성리학적 향촌질서를 수립하는 데 주력하면서,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김일손(金馹孫) 등 여러 제자들을 가르쳐 중앙 관료로 대거 진출시켜 사림파를 형성해 훈구파와 대립하다 무오사화를 당하여 엄청난 화를 입었다. 문충공(文忠公)의 시호가 내려지고, 영남 사림파의 종장(宗匠)이 되었으며, 금오서원(金烏書院)등에 배향되었다. 김흥술의 후손 김교(金嶠)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서(判書)였으며, 공신으로서 선산부원군(善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양양공(良襄公)이다.

3.1.1. 분파

1.백암파(白巖派) : 14세 김제(金齊) 또는 김제(金濟), 김제해(金䶒海), 증 예조참판 행 고려 조봉랑 지평해군사, 시 충개공, 서원 배향

2.농암파(籠巖派) : 14세 김주(金澍), 고려 예의판서 황명 예부상서 시 충정공, 서원 배향

3.문대공파(文戴公派) : 18세 김응기(金應箕),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우의정시 문대공, 서원 배향

4.간의공파(諫議公派) : 12세 김우류(金右鏐), 고려 우간의 대부 우문관 직제학, 지제고 봉익대부

5.화의군파(和義君派) : 13세 김달상(金達祥), 고려 지밀직사사 부대피난 일등공신, 신축호종 일등공신 화의군

6.낭장공파(郞將公派) : 13세 김달경(金達卿), 고려 중랑장

7.취수공파(醉睡公派) : 17世 김수양(金粹讓), 통훈대부 행 보령현감

8.송천공파(松川公派) : 23세 김천일(金千鎰), 통훈대부 풍기군수 성균관 사예, 춘추관 편수관 예빈사정

9.성암파(省庵派) : 22세 김효원(金孝元),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 세자 좌부빈객, 서원 배향

10.소암파(素庵派) : 22세 김이원(金履元), 병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세자사,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영경연사 홍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세자사 숭양부원군

11.곤육재파(困六齋派) : 22세 김의원(金義元), 수세자 시강원 보덕, 지제교 겸 춘추관수찬관

12.대장군파(大將軍派) : 9세 김창서(金昌緖), 고려 검교 흥위위 대장군

13.우윤공파(右尹公派) : 12세 김득자(金得資), 고려 삼사우윤

14.양양공파(良襄公派) : 17세 김교(金嶠), 정헌대부 병조판서 적개 일등공신, 선산부원군(善山府院君),시호는 양양공(良襄公)

15.정조공파(正朝公派) : 12세 김연(金延), 고려 정조(正朝)

16.강호파(江湖派) : 16세 김숙자(金叔滋), 중훈대부 성균관 사예, 증 중직대부 예문관 직제학 겸 춘추관 기주관, 증 자헌대부 호조판서 지춘추관사, 증 이조판서 양관대제학, 시 문강공, 서원 배향

17.과당공파(苽堂公派) : 17세 김종유(金宗裕), 청송교수

18.점필재파(佔畢齋派) : 17세 김종직(金宗直)''', 정헌대부 형조판서, 증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시 문충공, 서원 배향

3.1.2. 인물

3.1.2.1. 고려​
3.1.2.2. 조선​
3.1.2.3. 근·현대

3.2. 김추(金錘) 계

시조 김추(金錘)는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로 경순왕과 고려태조 왕건(王建)의 맏딸 낙랑공주(樂浪公主) 사이에서 태어나 일선군(一善君)에 봉해졌다.

김추가 일선(선산)군에 봉해진 후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선산으로 하였다.

고려 말엽에 검교중랑장을 지낸 김추의 후손 16세 '김문'(金文)은 슬하에 네 아들 김성원(金成元), 김성부(金成富), 김성룡(金成龍), 김성여(金成呂)를 파조로 하여 4대파로 분파하였다.

그 중 중서령공(中書令公) 김성원(金成元)의 아들 광주목사(廣州牧使) 김기(金起)가 기울어져 가는 사직을 개탄,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선산군 옥성면 포상동 하송산 아래[45]에 곧내 터를 잡았다.

3.2.1. 분파

1.중서령공파(中書令公派) : 파조 김성원(金成元)은 고려조 서운관정(書雲觀正)과 중서령(中書省)을 지냈다. 그의 아들 '김기'(金起)는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지내고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다.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 정신으로 선산(善山)에 내려와 고려 유신으로 절의를 지켰다. 화의(和義)는 선산(善山)의 별호이다. 김기(金起)의 현손 이조참판 김광좌(金匡佐)가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세인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2.판서공파(判書公派) : 파조 '김성부'(金成富)는 고려조 전의부정(典醫副正)을 지내고, 조선개국 원종공신으로 호조 판서에 이르렀다. 그의 장자 김경도(金敬道)는 조산대부로 밀양교수를, 차자 김경적(金敬迪)은 강화교수를 지냈다. 그 후손들은 함경도 단천 고읍을 중심으로 길주, 성진, 이원, 풍산, 북청, 홍원 등에 세거(世居)하고 있으며 북종파 이다.

3.좌의정공파(左議正公派) : 파조 김성룡(金成龍)은 고려말 산원동정(散員同正)을 지냈고, 조선개국 원종공신으로 대광보국 숭록대부 좌의정에 이르고 화의부원군(和義府院君)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김탁(金逴)은 병조참의, 증손 김정신(金鼎臣)은 안동도호부사를 지냈다. 후손들은 경기도 이천등에 세거(世居)하였다.

4.별장공파(別將公派) : 파조 '김성여'(金成呂)는 고려말 별장동정(別將同正)을 지냈다.

3.2.2. 인물

3.2.2.1. 고려​
3.2.2.2. 조선​
3.2.2.3. 근, 현대​


[1] 10만명이 넘어가는 9개의 김씨 본관 중에서 김해, 경주, 광산, 김녕, 안동, 의성, 사성 김해 김씨와 강릉 김씨를 이어 9등이다.[2] 계보[3] 물론 둘 다 뿌리가 김알지인 것은 같다.[4] 안동 김씨나 김녕 김씨처럼[5] 상주는 신라 시절 9주 5소경의 한 곳이었고, 도청에 해당하는 치소가 있었을 정도로 경상도의 주요 도시였다. 경상도의 경상은 경주와 상주에서 따온 것일 정도. 당시의 선주는 지금의 선산과도 큰 차이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통편이 망가진 상태인 것도 같을 정도.[6] 장으로 현감이 재직하는 현 보다 위에 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사이에 위치하는 행정기관으로 판군사(읍사무소장 쯤 된다.)가 관리했다.[7] 도호부는 목사와 군수 사이 쯤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읍~군 정도.[8] 참고로 선산군의 유일한 읍이었다.[9] 동래부에 속했던 부산도, 충남 회덕군 대전리도 현대에는 경부선 덕에 각각 부산광역시대전광역시가 되었다. 동래부는 동래구, 회덕군은 회덕동으로 떨어졌고, 충청남도의 중심지였던 공주시는 쇠퇴한다.[10] 대표적으로 구미시에 운행중인 버스회사인 일선교통 사명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일선김씨] [44] 소설 백색부유물질의 저자 이이안의 어미니이기도 하다.[45] 현 들성마을 일대[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50] 본명 불명.[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들성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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