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대한 내용은 스마트폰 문서 참고하십시오.
[clearfix]
1. 개요
📱[1] | 携帶電話 | Mobile Phone, Cell Phone[2] |
이동통신 서비스의 사용을 목적으로 개발된 무선 전화기, 즉 개인이 쉽게 휴대할 수 있으며 휴대 상태에서 이용이 가능한 전화를 말한다. 1970년대 처음 등장했으며,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대중화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 전화는 사실 이동전화(Mobile Phone)이며, 20세기 중반에 군사용, 공무용 등으로 사용되던 휴대 전화(Portable Phone)와는 상당히 다르다.[3] 다만 그런 구식 휴대 전화는 오늘날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기에, 우리말로는 이동전화를 휴대 전화라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허나 그 근간을 이루는 기술인 Mobile Communication은 이동통신이라고 지칭한다.
초창기의 휴대전화는 전화 통화 기능만 수행하는 기기였다. 피쳐폰이 등장하면서 휴대전화 안에 계산기, 전자책, MP3 등 여러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추가되었으며 스마트폰에서는 범용 OS가 탑재되고 사용자가 임의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소형 컴퓨터화 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피쳐폰의 기능도 한정적이라 전화 통화와 문자만 되는 기본 휴대전화가 상당수였다. 3G가 도입되고, 피쳐폰의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며 점차 기본적인 기능만 갖춘 휴대전화는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이후 2013년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에는 이러한 전화와 문자 기능만을 지닌 휴대전화들은 전부 출시가 중단돼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휴대 전화라 하면 스마트폰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2. 명칭
최초의 휴대 전화는 그야말로 사람이 (간신히) 휴대하고 다닐 수 있는 전화로, "포터블 폰"이라 불렸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시스템” 포터블 전화 시리즈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등장한 시스템 1부터 1980년대까지 서비스한 시스템 4까지 있었으며, 시스템 4와 유사한 독일의 B네츠(B-Netz)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군용 무선전화 기술을 응용한 것으로, 중앙 송수신탑과 전파를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그 크기 역시 군용 무전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개 자동차에 설치해두고 쓰는 카폰 방식이었으며, 사람이 휴대 가능한 모델인 모비라 토크맨(NMT450) 같은 휴대 전화는 타자기 정도의 크기였지만 당시 기준으론 엄연한 휴대 전화기였다. 이를 벽돌만한 크기로 축소시킨 이동전화, 즉 모바일 폰인 모토롤라 다이나텍 같은 기기는 그야말로 최첨단 기술의 총아로서 당시 잘나가는 사업가나 거물 정치인의 상징이었다.[4]초창기 이동전화의 문제점은 (거대한 크기보다도) 명칭과 달리 이동 중에 사용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오늘날엔 전화 통화를 하면서 먼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통화가 끊기지 않지만, 초창기 이동전화는 통화를 하는 중에 전화기와 통신 신호(전파)를 주고받는 통신 안테나에서 멀리 떨어지면 통화가 끊겼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이 제안되었다.
- 넓은 지역(미국 전체, 일본 전체 등)을 커버하는 여러 대의 인공위성들을 쏴올려, 전화기가 어디로 이동하더라도 통신 신호가 끊어질 일이 없게 한다.
- 좁은 범위를 커버하는 신호탑을 무수히 세우고,[5] 전화기가 한 신호탑에서 다른 신호탑으로 이동하더라도 통화가 끊기지 않게 이어주는 기술(Handoff)을 개발한다.
결국 두 가지 기술이 모두 상용화되었으며 서로 경쟁하였다.[6] 첫 번째 방법이 바로 이리듐 인공위성 전화이고, 두 번째 방법이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셀룰러 전화이다.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 전자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어 한정적인 용도로 남아는 있다.[7]
셀룰러 전화(cellular phone, cell phone)라는 명칭은 이동전화를 위한 이동통신망인 셀 네트워크(cellular network, 세포망)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셀 네트워크는 수많은 통신탑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통신탑이 일정 영역(지역)에 통신 전파를 뿌려주는데, 한 통신탑이 담당하는 지역을 “셀”, 즉 세포라 지칭하기 때문에 이를 셀 네트워크라 부르는 것. 각각의 셀들은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성하며(세포라는 명칭을 이용하는 이유), 사용자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하나의 셀에서 다른 셀로 이동하는 경우 셀 네트워크가 이를 감지해 해당 사용자를 담당하는 통신탑을 바꿔준다(즉 셀이 전환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전화는 모두 셀폰이지만, 상술하였듯 휴대전화의 여명기에는 휴대전화=셀폰이 아니었다. 셀폰은 여러 휴대전화 기술 중 하나였으며 가장 성공해 다른 휴대전화 기술들을 멸종시켰기 때문에 오늘날 휴대전화의 대명사로 자리잡는 영광을 거머쥔 것이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에 시티폰이라 하여 셀폰이 아닌 휴대전화가 보급된 적이 있다.[8] 무려 한국통신이 사업자였으며 셀폰을 밀던 SK 텔레콤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허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에도 불구하고 셀폰에게 밀려 결국 사장되었다.
한국에서 널리 쓰이는 '핸드폰', '휴대전화'는 "휴대용 전화기"의 의미이니 위의 셀폰 방식, 시티폰 방식 등 휴대할 수 있는 전화라면 모두 지칭할 수 있다. 핸드폰이라는 단어가 콩글리시라며 타박하는 이들도 많지만 이미 대다수의 언중이 수용한 용어이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윅셔너리 등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휴대전화든 핸드폰이든 원하는 대로 부르도록 하자. 한국 외에도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권을 비롯하여 남미, 독일, 중동 몇몇 국가에서도 핸드폰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중화권에서도 마찬가지. 영어권에서도 handphone이란 단어를 쓰지 않을 뿐 한 손에 들고 쓸 수 있는 물건의 이름에 hand를 붙이는 것은 영어에서 널리 쓰이는 관습이다. 핸드건, 핸드백, 행커치프(hand + kerchief) 등 다양한 예가 있다. 문화어 '손전화기'도 비슷한 방식(손+전화기, 핸드+폰)으로 만들어진 말이다.[9]
한국통신에 따르면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소위 집전화(landline)의 보급률과 공중전화 설치대수가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머지 않아 휴대전화를 그냥 ‘전화’라 부르고, 집에 설치된 유선전화를 ‘집전화’라 부르게 될 것이다.
유럽의 다른 언어권에서는 독일어에서는 'Handy'(손에 들만한 전화)[10], 튀르키예어에서는 'cep telefon'(주머니전화
아시아 비 영어권 중 일본에서는 휴대전화를 줄여서 케-타이(휴대, 携帯, けいたい)라고 불렀지만 스마트폰이 주류가 되면서 스마-토훤(스마트폰, スマートフォン), 줄여서 스마혼(スマホン), 스마호(スマホ)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선 手机(shouji, 수궤 - 손전화)나 智能手机(지능수궤 - "스마트 손전화")라고 많이 부른다. 대만은 휴대전화를 手機(ㄕㄡˇ ㄐㄧ), 스마트폰은 智慧手機(ㄓˋ ㄏㄨㄟˋ ㄕㄡˇ ㄐㄧ)라고 부른다. 재미있게도 예전에는 大哥大로 불렀는데, 홍콩 영화에서 초창기 휴대폰을 보스(따거, 大哥)가 들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 모습이 각인되어 그랬다고 한다.[11] 그래서 두만강 국경연선에서 중국 휴대폰을 쓰다가 온 사람들은 중국 휴대전화 '다거다'와 조선 휴대전화 '손전화'를 구분해 부르는 경우가 많다. 아예 손전화라고 하면 뭔 말인지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기원의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3국(한중일)의 휴대전화를 뜻하는 단어는 서로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이라면 셋 다 '전화기'라는 단어가 거의 사멸화되었다는 것. 전화기라고 하면 삼국 모두 유선전화를 먼저 떠올린다.
3. 역사
휴대전화의 원류는 당연히도 휴대용 무전기이다. 실제로 초창기 휴대전화는 휴대용 무전기와 기능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무전기는 Push to talk 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전화와는 사용방법이 달랐다. 공중전화망에 접속해서 양방향 사용이 가능한 휴대전화의 기원은 카폰이다. 1956년 에릭슨의 전자동 카폰 MTA가 출시되었고 1958년 소련의 «알타이» 카폰이 출시되었다. 알타이는 초기형의 경우 트렁크에 장비되었다가 1970년대 나온 신형은 조수석에 탑재되었다. 21세기 사람들이 보통 떠올리는 휴대 전화인 '셀룰러 폰(cellular phone)'으로 1958년의 «ЛК-2» 및 1961년의 «ЛК-3» 가 출시되었다. 소련은 당시 당 간부간 핫라인 용도로 쓰기 위한 통신수단 개발을 위해 학자들을 불렀고, 이들이 개발해 낸 것이 저것들이었다. LK-3는 LK-2의 차기작으로서 전작 LK-2가 무전기 수준의 크기를 가진데 반해 이것은 스마트폰과 비슷한 크기를 자랑하는 본체를 가지는 휴대용 초소형 무선전화로서 본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게 가능했다. 다만 당시 기준으로 괜찮은 성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12] 대중화되는데에는 실패했다. 무전기처럼 제한된 주파수를 이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 대중들이 통화를 하는데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간부들은 카폰에 만족했기 때문이었다.[13]그래서 구소련권에서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한것은 1980년대, 대중화된것은 21세기 초의 일이었다.LK-2(왼쪽)과 LK-3 본체(오른쪽)의 모습. |
반면 서방의 경우 이보다 한참 뒤늦은 1973년 모토로라사의 마틴 쿠퍼 박사가 개발한 다이나택으로부터 시작된다.[14] 모토로라는 이 장비를 "Cellular Communication Service"와 "Tele Communication Service"와 함께 경찰을 대상으로 제공하였다. 서방 최초의 셀룰러 폰인 셈. 형태는 경찰차에 장착하여 사용하는 카폰이었다.
이후 1983년에 모토로라가 출시한 다이나택 8000X는 세계 최초로 상업용으로 승인받은 휴대 전화이다.[15] 생김새는 문자 그대로 거대한 벽돌 형태다. 당시 황당 사건 중 하나로 이 휴대 전화로 상대방의 머리를 가격한 사례도 있었을 정도로 무겁고 컸다. 그 후 1989년에는 모토로라에서 마이크로택 9800X를 출시한다. 이것은 세계 최초의 플립형 휴대전화이다. 또한 1994년에 IBM에서는 IBM 사이먼을 공개한다. 이것은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이다. 1996년에는 모토로라에서 스타택을 출시한다.[16] 이것은 세계 최초의 폴더형 휴대전화다. 또한 세계 최초의 패용 가능한[17](wearable) 휴대 전화이다.
일본에서는 1985년에 자동차 전화의 연장 개념으로서 NTT에서 숄더폰이라는 것을 내놓았으며, 3kg의 무게에 연속통화 시간 40분, 대기시간 8시간이라는 단점이 있었지만, 휴대전화라는 개념이 없다시피 했던 당시에는 매우 유용한 아이템이었으며, 이와 관련된 일화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전화 이외에도 무선 인터넷이 가능하고, 게임을 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기능이 추가되었다. 뭐 그래도 자주 사용하는 기능이 있는 반면 거의 사용을 안 하는 도구가 있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 휴대 전화에 영상통화 기능이 추가된 것을 혁신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이를 제대로 자주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18] 사람에 따라서 전화나 문자와 같은 고전적이고 기본적인 기능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2010년부터 2007년 출시된 iPhone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이 등장했고 2012년을 기점으로 기존 휴대 전화(피처폰)를 대체해가고 있다.
1919년 윌리엄 하셀덴이 그린 만화 #
3.1. 한국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1G(아날로그 통신) (삼성의 sh-100)기술을 사용하여 개발된 휴대전화가 시초이다. 그러나 비싼 가격과 어마무시한 크기[19], 사용의 불편함, 저조한 수신률 등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는 부유층이나 회사 중역, 간부급 되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물건으로 여겨져서 대중화되지 못했고, 가지고 있으면 잘나가는 비즈니스맨 인증이었다. 1988년 첫 출시 당시 가격은 무려 400만원으로,[20] 당시 최저시급 받는 노동자 3년치 급여를[21] 훌쩍 넘기는 금액이었다. 차량 가격이 500~600만원 하던 시절이니 차 한대 가격에 맞먹었던 셈. 그래서 이전부터 쓰이던 카폰도 당시까지는 쓰였다. 물론 카폰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이렇듯 휴대의 불편함과 높은 가격으로 인해 1990년대 중반까지 휴대전화는 10년 넘도록 대중적으로 팔리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공중전화를 많이 이용했고, 무선호출기 역시 공중전화와 결합되어 활발히 이용되었다. 1997년에는 삐삐와 휴대전화의 중간 역할을 하는 시티폰이 등장하여 짧게나마 히트를 치기도 했다.[22]
그러던 1990년대 후반, 디지털 기술인 2G(CDMA) 기술이 상용화되고 휴대전화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휴대전화가 대중화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휴대전화 가입자 1000만명을 돌파하는 등 대중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기존의 무선호출기와 공중전화는 사양길을 걷게 되었다.
2013년 중기에는 단순 전화기의 기능을 넘어 소형 컴퓨터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휴대전화 시장에 또 한번의 변화가 찾아온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기존 피쳐폰은 물론, 유선전화기와 무선전화기까지 판매량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3.2. 세계
이젠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도, 중앙아프리카의 시골의 농민들도 휴대폰 정도는 들고 다닌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부룬디에서도 부룬디 기준으로도 낙후된 오지 시골에 사는 사람도 2G폰만큼은 보유하고 있다. # 오히려 이런 곳들은 유선 통신 인프라를 갖출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건너뛰고 바로 휴대 전화 보급이 이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2024년 현 시점으로는 캄보디아, 네팔, 미얀마는 물론이고 르완다 같은 최빈국조차 전국민이 휴대전화 1대씩은 가졌다 봐도 무방한 수준이며, 적도 기니(48.8%)[23], 마다가스카르(44.9%), 에리트레아(41.9%), 파푸아뉴기니(36.9%)[24], 남수단(32.5%), 중앙아프리카공화국(31.6%), 북한(28.7%)[25] 같은 극소수 국가들[26]을 제외하면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도 국민 중 절반 이상이 휴대전화를 보유하는 판이다.[27]
무선 통신망 설치 자체가 유선 통신보다 훨씬 부담이 덜한지라 오지 지역 보급률이 상당히 높다. 다만 휴대폰을 충전할 전기 인프라가 항상 문제. 태양전지나 발전기 등을 소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장까지 가서 상점에 일정 금액을 지불해 충전하기도 한다. 급할때는 AA건전지 넣어서 충전시킬 수 있는 충전기를 사용한다. 이런 현상을 해결하고자, 한국의 한 기업에서 스타트업 형식으로 태양열 전지 충전 시스템을 개발해 호응을 얻고 있다. #
쿠바는 미국의 경제제재와 자체 규제에 의해 2008년까지 일반인들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중전화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는 특이사례로 존재했다. 그러나 2008년에 규제가 해체된 이후로 중국산 휴대전화가 상당히 보급되었고, 현재는 대다수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하면서 공중전화의 이용률이 크게 떨어졌다.
4. 특징
4.1. 신개념 물건
익숙해져서 잘 느끼지 못 하지만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는 사이에 생활상에서 PC, 인터넷과 더불어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발명품을 꼽자면 역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휴대전화 발명 이전의 창작물을 유심히 살펴 보면 휴대전화가 있다면 가볍게 해결될 만한 상황을 미련할 정도로 힘겹게 해결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28]예를 들면, 어떤 정보를 빨리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하는데 누군가 소리를 내거나 움직일 수 없게 나를 감시하고 있다면 지금은 간단히 문자를 보내면 되지만 예전에는 아주 힘들었다. 또 약속 장소에서 서로를 찾지 못할 경우에는 서로와 연락할 수단이 전무해서 한참 빙빙 돌며 서로를 찾아야 했다.
4.1.1. 오늘날의 기능
대체적으로 휴대 전화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능들은 아래와 같다. 당연히 스마트폰은 피처폰보다 기능이 더 많다. 아래있는 것들은 스마트폰 기준으로 보편적으로 처음부터 설치되어 있는 기능들이라고 보면 된다.전화 (음성·영상통화) | 문자메시지 | 인터넷 (Wi-Fi 및 데이터 통신망)[29] | 게임 |
달력 | 알람(타이머 레코더) | 메모장 | 카메라(캠코더) |
MP3 (및 PMP) | 텔레비전(DMB) 및 라디오 | 시계 | 플래시 |
나침반 | 지도 | 바코드/QR코드 스캐너 | NFC[30] |
외장하드[31] | 내비게이션 | GPS 트랙커 | 손거울 |
녹음기 | 리모컨[32] | PC 웹캠 | 다이어리(알림기능) |
전자사전 | 전자책 | 모바일뱅킹 | 카드결제[33] |
4.2. 필수품
한 때는 휴대폰이 값비싼 사치품이었으나, 현재는 몇 십만 원 정도면 단말기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값이 많이 내려갔다. 오늘날에는 휴대폰이 필수품이 되었다.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한국 나이 기준, 남녀노소 불문하고 대부분 모든 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일상생활에서 개인 식별을 위한 기본 정보로 활용되어, 모두가 휴대폰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라는 판단을 바탕에 깔고 있다.[34]
그래서 개인 정보 수집이 불법이 된 이후부터는 네이버를 포함한 대부분의 업체는 개인정보 인증을 휴대폰을 통해서 실시한다. 그 외의 별도 인증 수단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기 명의의 휴대폰이 없다면 인터넷에서 할 수 있는 것이 확 줄어버린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메일이나 주소등을 물어보는 외국과 달리 즉시 연락이 가능한 휴대폰 번호를 선호한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상대방의 연락은 즉시 받아야 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고[35] 휴대폰 요금은 사실상의 주민세가 되었으며, 휴대폰 번호는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사실상의 개인식별부호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휴대전화가 없고 직접 살 능력이 없는 사람, 특히 해외 거주자는 휴대전화가 없으면 휴대전화 본인인증 등을 못해 불편이 크다. 이들은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오프라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4.3. 취약성
[휴대폰A]- -(전파)- -[기지국A]ㅡ(유선통신망)ㅡ[기지국B]- -(전파)- -[휴대폰B] |
휴대폰 통신 원리 |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인프라 파괴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전 KT 아현지사 화재 사고 당시 인근 휴대폰이 전부 먹통이 된 바 있다. 그러면 지진같은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기지국이 파괴되면 큰일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지국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이용자들이 몰려도 먹통이 된다. 그래서 대형 참사가 터지면 필요한 사람이 통신할 수 있게 불필요한 전화를 삼가야 한다고 것이다.
따라서 큰 문제가 터지면 최후의 보루는 순전히 전파에 의존하는 무전기, 라디오이다.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들이 무전기를 쓰고, 재난영화에도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마추어 무선이 한국에서 위기에 몰렸으나 국가에서 유지시키려 노력하고 대처훈련을 시키며 억지로 살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2010년대에 들어서 재난안전통신망(PS-LTE)가 개통되어 경찰과 소방에서는 기지국을 중심으로 한 통신망[36]을 쓰게 되었지만 군에서는 아직도 무전기를 쓰고 있다.
5. 종류
자세한 내용은 휴대 전화/종류 문서 참고하십시오.6. 전화번호
대한민국의 휴대전화 번호 체계는 010-○○○○-○○○○ 11자리 숫자로 이루어져있다.2004년 1월 1일 이전 개통자는 011, 016,
미국의 경우 개통한 지역의 지역번호를 그대로 가져다가 쓴다.[39] 즉, 지역 번호가 202인 지역[40]에서 휴대 전화를 개통할 경우 전화번호가 202-555[41]-1234 꼴이 된다. 따라서 번호만으로는 유선인지 무선인지 구분할 수 없다. 단, 개통할 때 직원한테 다른 지역 번호로 달라고 하면 그렇게도 해준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휴대전화 번호를 재탕한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 010-1234-5678이라는 번호를 쓰다가 해지하면, 그 번호는 재활용되어 다른 사람이 쓰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010-1234-5678을 쓰는데 가끔씩 홍길동 찾는 전화가 오기도 한다. 휴대 전화 출시 초창기에 개통한 사용자[42]면 신경 안써도 되는 문제지만 휴대 전화 대중화 이후에 태어난 인물들과 한번이라도 번호를 변경한 사용자면 더더욱 심하게 겪고있는 문제점이다. 반면 일본의 전화번호는 무조건 1회용이다. 한번 쓰다가 해지하면 해당 전화번호는 절대로 재활용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번호변경과 신규가입이 늘어나다보니 090, 080만 있었던 번호가 부족해서 070까지 증설했다.
7. 보조금
자세한 내용은 휴대 전화/보조금 문서 참고하십시오.8. 주변기기/악세사리
8.1. 케이스
자세한 내용은 휴대 전화/케이스 문서 참고하십시오.8.2. 거치대
자세한 내용은 휴대 전화/거치대 문서 참고하십시오.9. 군대에서
미군과 중국군은 자신이 장군이건 장교건 부사관이건 병이건 모두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다. 그 뿐만 아니라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강군들은 예외없이 휴대 전화 사용을 허가한다.이스라엘군의 경우 군사 작전이나 훈련중엔 휴대 전화 사용을 엄격히 통제하지만 일과 시간 이외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9.1. 미군
미군은 일, 이등병이 탱크, 함정, 전투기 곁에서 휴대 전화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에 올려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한국군이었으면 자신이 아무리 직업군인인 장교나 부사관이라고 해도 당연히 징계감이고 직무 정지도 모자라 제대 후 공무원 임용 자격이 박탈되는 것에 비해[43], 미군은 낮은 등급의 군사기밀의 유출에 있어서는 상당히 관대하다.9.2. 중국군
중국군은 미군에 비해서 조금 엄한 편이다. 반정부 목적으로는 당연히 휴대 전화 사용이 통제되지만 그 외에는 자유롭게 휴대 전화 사용을 허가한다. 중국군에서는 구타 및 가혹행위를 적극적으로 신고하여 깨끗하고 밝은 중국군이 되고자 국방부에서 휴대 전화 사용을 적극적으로 허용한다. 당장 2010년 무장경찰 가혹행위 사건 당시 구타 안 당하는 후임병들이 몰래 휴대폰으로 찍어 선임병들의 폭행사건을 신고한 사례가 있다.9.3. 한국군
한국군의 경우 병사는 생활관에 수신용 전용 단말기(LG 젠틀)을 다르게 만들어 각 생활관에 비치해서 수신용으로만 쓰이는 제한적인 사용이 가능했다. 사실 이마저도 2014년 28사단에서 벌어진 윤 일병 사건 이후로 생긴 조치다. 그리고 카메라가 없는 휴대 전화에 한해서 사용을 검토한다고 하며 PX에서 휴대전화 대여 서비스를 시행한다.[44]2018년 4월부터 일부 부대를 대상으로 병사의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이 시범적으로 시행되었으며, 2020년 7월 1일부로 전면 허용되었다.
다만 군 업무상으로도 군사앱 등을 비롯한 스마트폰을 활용해야해서 삼성 Knox를 도입한 부대는 삼성전자 플래그쉽 기기를 병사,간부 모두 반입하라고 요구하는 부대도 있다.
9.3.1. 2019년 병 휴대 전화 사용
2018년 4월부터 국방부 직속 부대 4군데를 시작으로 8월부터 육해공 일부 부대를 대상으로 병들의 일과 후 휴대 전화 사용 시범 운영이 시작되었고, 12월 27일에 병 대상 일과 후 휴대 전화 사용이 확정되었다. 2019년 1월부터 시범운영 부대를 점차 늘려 4월 전군 실시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4월 1일 이후 일과 이후 휴대 전화 사용을 허용해줬다. 이후 휴대 전화 사용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당연히 허용되기 전까지 군 관련자나 사회 각계에서는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했다. 일례로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이었던 장기윤 예비역 준장은 병사들이 여가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으면 진정한 전우애가 생기기 어렵고[45], 전투력이 저하되며, 군사기밀 유출로 북한이 좋아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 의견을 냈다.# 하태경 당시 바른미래당 국방위원도 “저녁과 주말은 ‘폰게임’으로 날밤 새울 것” “군대 내 갖가지 사진 다 유출될 것” 등의 이유를 들면서 병사 휴대전화 사용을 반대한다고 밝혔다가 비판을 받자, “군대에서 겪는 20대의 서러운 마음 잘 몰랐다. 나도 꼰대였다는 걸 인정한다. 특히 20대를 게임중독자로 만든 건 심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고개 숙이기도 했다.#
실제로 일과 후 휴대 전화 사용에 대한 여러 사건사고[46]가 발생하면서, 온라인에서는 휴대전화 사용 확정 이전에 전역한 예비역 등 사이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다시 금지하자는 주장이 떠올랐고 군대 특성 상 정말로 다시 금지시켜버릴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나, 2020년 7월 군대 휴대폰 사용이 정식으로 시행되어 사용 금지가 거론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탈영 같은 다양한 군 범죄를 크게 줄여준 휴대폰 허용이라는 대업을 여론과 이미지에 민감한 국방부가 포기할 까닭이 없다.
강원도 양구군은 국방개혁 및 휴대폰의 영향으로 매출이 줄자, 인근 군부대에 휴대폰 사용을 제한해달라고 요구했다.
2020년이 코로나19의 해가 되면서 국방부의 스마트폰 사용 결단은 꽤 좋은 수가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휴가가 장기적으로 끊기고 심지어 연가를 다 쓰지 못해 조기전역하는 인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스마트폰은 스트레스 해소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2021년 대한민국 국군 자가격리 장병 부실 식사 제공 논란이 발생했는데, 이후 일부 부대에서는 휴대폰을 통제했다고 한다. 높으신 분들은 이런 논란 및 가혹행위를 군사기밀로 여기는 것 같다. 병사들이 휴대폰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일부 간부들이 불만을 갖고 있지만, 국방부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장병들의 각종 제보를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단순 병영생활 뿐만 아니라 미래의 전장에서는 실제 전투시에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고, 이미 그런 전투 상황에서 쓰이는 군용 스마트폰이나 러기드 폰들이 미군에서는 이미 쓰이고 있는 추세이니 앞으로 군대 내에서 해킹이나, 기밀 유출 등을 방지하고 스마트폰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육군은 병사도 군사용 앱을 활용한다. 아모스(육군 모바일 업무수행체계)를 병사, 간부 모두 활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육군 병사, 간부 모두 설치하라고 요구한다.
10. 여담
핸드폰 가입시 만 19세 이상이면 개인이 직접 개통할 수 있다.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47]의 허락을 받고 등본같은 증명서를 제출해야한다.휴대 전화, 주로 스마트폰의 침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침수라벨이 붙는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무선 전화는 선이 없지만 와이파이 등의 근거리 무선통신을 이용해서 유선망에 의존하는 전화이기 때문에 휴대 전화라고 하지 않는다.
교사의 손에 압수당하거나 파괴되기도 하는 물건이지만, 보통 학교에서 학생들은 1교시를 시작하기 전에 담임 교사에게 휴대 전화를 내고 하교 시간에 돌려받는다.
10.1. SF 창작물에서
의외로 고전 SF에서는 오래도록 등장하지 않은 물건이다. SF에서의 미래 소품들은 미래 예측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개상의 재미를 위해 등장하는 것이니 핸드폰이라는 물건이 꼭 등장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핸드폰이 매우 일상화된 현대인으로서는 의외라고 생각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제한된 사람들끼리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형화된 무전기나 휴대용 통신기의 개념은 고전 SF에도 아주 많이 등장했다. 가령 비밀요원이 팔찌 형태의 통신기를 사용해 대화를 나눈다던가 하는 장면은 여럿 찾아볼 수 있다.[48] 1966년에 방영된 SF TV 드라마 스타트렉에선 우주선 승무원들이 폴더폰처럼 펼쳐서 사용하는 통신기를 사용한다[49]. 그러나 소형화된 전화기가 보편화된 세상을 그린 SF물은 실제로 휴대폰이 등장하는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고전 SF 소설에서도 보면 휴대전화가 나오는 것이 거의 없다.
대표적으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1957년작 소설 <여름으로 가는 문>에서는 1970년대에 사는 주인공이 냉동 수면 이후 2000년에 깨어난 후 2001년까지 살다가 다시 70년대로 돌아가는데,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과 연락하기 위해 전화를 찾아 헤멘다. 같은 작가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는 도시를 관리하는 중앙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 자급자족이 가능한 달 식민지가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인공지능과 대화하기 위해 유선 전화기를 써야 한다. 조지 오웰의 1949년작 <1984>에서는 TV와 카메라, 도청기를 겸용하는 텔레스크린이라는 기계가 등장하지만 휴대전화는 등장하지 않으며,[50]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작 <멋진 신세계>는 설정상 250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인간을 인공부화소에서 찍어내는 시대이지만 역시 휴대전화는 등장하지 않는다. 필립 K. 딕의 1968년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에서는 인간과 구분이 가지 않는 정도의 안드로이드가 등장하지만 휴대전화라는 개념은 없다.[51]
전술하였듯 이런 고전 SF 작품이 나올 당시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무전기를 소형화한다는 발상은 비교적 간단하기에 많이 등장했지만, 모두가 전화기를 휴대하고 언제 어디서나 통신이 가능하다는 발상은 잘 등장하지 않았다. 사실 휴대용 만능 통신장비라는 것은 과거인들이 보기에 너무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이 막강해서 이야기 전개를 방해하기 쉬워 넣기가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호러물에서 주인공이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면 그대로 이야기가 끝나버리기 때문에 오늘날의 호러물에서는 “전파가 안 잡힌다”는 상황이 종종 들어가며,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자체를 호러 요소로 사용하곤 한다[52] 실제로 휴대폰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대중화되기 전인 1980~90년대 초에 나온 이언 뱅크스의 SF 소설 컬처 시리즈는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며, 리모트라는 공중부양형 휴대용 통신/전자수첩형 장비가 등장하는데, 작중에서 그 시대 상당수 창작물에서는 이 리모트가 고장나거나 잃어버려서 스토리가 전개된다고 설명하며 이런 작품의 등장을 정확히 예언한 묘사가 있다.
SF의 상상 중 실제 현대의 모습과 차이를 보이는 것은 핸드폰 말고도 이것저것 있다. 반대로 고전 SF에서 2000년대에 등장할 것이라고 상상한 날아다니는 자동차, 궤도 엘리베이터, 스페이스 콜로니 등은 21세기 초에도 요원하다 못해 불가능한 상태. 미래에 대한 상상은 들어맞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훌륭한 예시다.
11. 관련 문서
[1] 유니코드 1F4F1.[2] 전자는 영국식, 후자는 미국식 표현이다. 전자의 경우 줄여서 Mobile이라고도 부르고, 후자는 띄어쓰지 않고 Cellphone이라고 하기도 한다.[3] 이동전화는 이동하면서 통신이 가능한 전화, 즉 사용자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더라도 신호가 끊기지 않고 계속 통화할 수 있는 휴대 전화를 뜻한다.[4] 이런 이유로 홍콩, 대만에서는 초창기 휴대전화의 명칭이 大哥大였다. 말 그대로 보스(따거, 大哥)가 쓰는 물건이라는 것. 지금도 타이완모바일의 중국어 명칭은 台灣大哥大이다.[5] 2020년 기준으로 미국 내에 40만개의 셀폰 신호탑이 있다.[6] 이 문단은 조금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기술이 종국에는 상용화 되었으나 비슷한 시기에 경쟁한 것이 아니라 셀롤러 방식이 먼저 실용화되고 한참 있다가 위성 전화 방식이 나온 것이다. 미국 같이 국토가 넓은 나라에서 전체 국토를 커버하는 이동통신은 꿈속의 생각이고 일단은 대도시 안에서의 커버리지를 생각하는 통신 환경이 필요했고, 당연 모토로라에 의해 실현된 것이 셀롤러 방식이다. 구상만 있던 이리듐 계획이 실행된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고, 시작부터 셀롤러를 이기려고 나왔다기 보다는 나름의 수요를 찾으려고 나왔다.[7] 인공위성 이동전화는 통신탑이 없어도 통화가 가능하다는 막강한 장점이 있다. 한국 내에서도 도시를 벗어나면(예를 들어 산 속) 종종 통화가 불가능한 셀폰과 달리, 위성전화는 망망대해나 사막 한복판에서도 하늘 어딘가에 이리듐 인공위성이 떠있기만 하다면 통화가 된다. 때문에 태양전지가 달린 이리듐 인공위성 전화는 극강의 서바이벌 장비이며 선박이나 항공기 등에 비상용으로 비치되곤 한다. 선박용 통신은 특성상 연안지역 외에는 셀룰러 통신이 불가능하기에 애초에 메인 통신장비부터가 인마샛 위성통신이다.[8] 셀룰러망이 아니라 공중전화 부스에 설치된 통신 안테나로부터 통신 신호를 받았다.[9] 사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무선전화기라는 명칭이 이미 선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국선은 유선으로 연결하는 가정(기업)용 전화인데 전화기와 송수화기만을 무선으로 연결한 것을 이미 무선전화기라고 불렀기 때문. 이동통신이 개발되기 한참 전부터 실용화된 물건이라서 이미 오랬동안 단어를 선점한 것이다. 영어로도 cordless phone이라고 하면 이 쪽을 말한다.[10] /핸디/로 발음하는데, 아예 독일어화해서 'Händy'로 표기하기도 한다.[11] 대만의 통신회사 타이완모바일(Taiwan Mobile)의 중국어 명칭이 台灣大哥大이다.[12] 배터리 수명이 24시간, 미국에서 최초로 시판된 휴대폰인 다이낱텍보다도 크기가 몇배는 더 컸지만, 그 대신 배터리 수명은 24시간으로 우월했다.[13] 다만 발명가인 쿠프리야노비치가 쪽박차지 않았는데, 휴대전화 제조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로 의료기기 개발에 집중하면서, 리스모튼이라는 휴대용 의료기기를 발명했고, 이건 꽤 히트를 쳐서 소련 고위급 인사들의 건강관리를 맡았다고 한다.[14] 그러나 휴대전화 자체의 중량만 무려 850g에 달하는데다 10시간 충전에 고작 30분동안만 사용이 가능하고, 3,995달러(2024년 가치로 28404달러)라는 정신나간 가격이 문제였다. 어느 정도로 미친 가격이었냐면 당시 미국인들의 연봉의 절반을 훌쩍 넘기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신문명에 감탄해 4년 뒤 미 전역의 휴대전화 가입자수는 15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마틴 쿠퍼 박사는 처음 휴대전화를 발명 후 경쟁사에 전화를 걸어 자랑하였다.[15] 다이나택 8000X의 무게는 약 450g정도로, 첫 작품인 다이나택보다 약 40%가량 더 가벼웠다.[16] 무게는 88g[17] 바지 뒷주머니에 넣거나 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을 만큼 가벼이 휴대할 수 있음을 뜻한다.[18]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겐 상당히 좋은 기능이다.[19] 그 크기가 어느 정도냐면 이용식의 말로는 휴대용 무선 전화기로 호두를 까서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라고 했을 정도. 다시 말해 이용식은 어마무시한 크기의 휴대용 무선 전화기로 깨뜨린 호두를 까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고. 거기에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졌는지 호두가 깨졌을 정도라고.[20] 1988년의 화폐가치에 약 3~3.5배 정도를 곱하면 지금의 화폐가치가 나오는데, 그 벽돌폰 한 대 값이 지금으로 따지면 약 1200~1300만원 정도에 판매되었음을 알 수 있다.[21] 1988년 당시 월 최저임금은 11만 1000원 ~ 11만 7000원 사이였다.[22] 시티폰은 발신만 되고 공중전화에 설치된 기지국 반경에서만 통화가 된다는 큰 단점 때문에 휴대전화가 대중화된 이후 바로 사라졌다.[23] 1인당 GDP로만 따지고 보면 한때 한국보다 높은 적이 있을 정도에 지금도 중진국 수준이지만, 아 기록을 달성하게 해준 산유국 버프를 독재자 테오도로 오비앙이 다 해먹어 빈부격차가 극단적인 수준이다.[24] 1인당 GDP로만 따지고 보면 최빈국은 아니지만, 정글에서 부족 단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낮게 나온다.[25] 이쪽은 인터넷 접속을 정부 허가를 받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다 차단해서 인터넷 사용률이 2024년 현재도 0.1% 미만이다. 참고로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인 2002년 기준으로도 인터넷 사용률이 0.1% 미만인 국가는 한 손에 꼽는 수준이었다고 한다.[26] 이들은 적도 기니와 파푸아뉴기니를 제외하면 극빈국 중에서도 최하위권인 국가들이다.[27] 당장 상기한 부룬디만 봐도 휴대전화 보급률이 2024년 현재 63.2%에 육박한다. 게다가 전술한 국가들도 비율상으로 보면 한 가구당 한 대씩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이들 국가의 경제사정상 2G폰 위주로 쓰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28] 휴대전화의 출현을 예고했다는 평가를 받는 스타 트렉에는 미래인들이 폴더폰을 꼭 닮은 우주 무전기를 갖고 다니지만, 문제가 터지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이 통신의 차단이다(연락이 안 된다). 이처럼 인간에게 일어나는 곤란한 일들 중 상당수가 ‘누군가에게 연락할 수만 있다면‘ 해결이 가능한 것들이 많다. 휴대 전화는 그만큼 중요한 발명인 것이다.[29] 피처폰 시절에는 데이터 요금제가 강요되었고 테더링하는 용도 외에는 쓸곳이 잘 없었다. 피처폰에도 Wi-Fi를 기술적으로 탑재할 수는 있었지만, 통신사 입김 때문에...[30] 대부분의 피처폰엔 안 달려있지만, 2010년도 즈음하여 삼성전자에서 SHW-A170K라는 NFC 탑재 피처폰을 출시한 적이 있다.[31] Secure Digital이 고용량화되고, 내장 메모리 용량도 늘어났기 때문에 플래그십 모델의 경우 CD를 십수장 정도는 넣고도 남는다.[32] 그런데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적외선 센서를 탑재하지 않아 리모컨 기능이 도로 빠지기 시작했다.[33] 삼성 페이, LG 페이, Apple Pay 등의 마그네틱 카드 또는 RFID/NFC 기반 서비스 이전에도 UbiTouch, 뱅크월렛 같은 모바일 현금카드 그리고 가맹점은 적었지만 간편결제서비스 등을 제공하였고 모바일 티머니 등의 교통카드와 모바일카드 까지 사용 가능했다.[34] 특히 온라인 인증의 경우에는 '자기 명의'가 추가된다.[35] 문자 메시지를 많이 사용하긴 하지만, 원할 때 읽을 수 있는 이메일이나 우편과 달리 24시간 내에 전파가 수신되어야 한다.[36] 근거리에서는 무전기처럼 D2D(Device to Device) 통신도 가능하다. 하지만 파장이 짧기 때문에 원거리 사용은 어렵다.[37] SK텔레콤에 합병 후 2003년 1월 1일 신규가입 종료.[38] 012, 015는 무선호출기에 사용되었다. 012는 회수 및 용도 변경을 통해 사물인터넷용 식별번호로 전환되었으나, 015는 아직 서울이동통신 무선호출기용 식별번호로 남아있다. 013은 주파수분할 무전기용 식별번호였는데 특수업무용이라 일반인 인지도가 없는 수준. 014는 PC통신이다.[39] 대한민국도 01X 번호 시절 지역별로 전화번호가 부여되었다. 200~399는 서울특별시 및 경기도, 400~499는 대전광역시 및 충정도, 500~599는 대구광역시 및 부산광역시 및 경상도 등. 이후 개통자가 증가하면서 4자리 부여와 함께 지역구분은 폐지되었다.[40] 미드 NCIS에서 자주 사용하는 워싱턴 D.C.의 지역번호다.[41] 실제론 없는 국번이다. 미드 같은 데서 가상의 전화 국번으로 자주 쓴다.[42] 01X 번호로 최초 개통 후 한번도 번호변경을 하지않는 사용자를 해당한다. (01X에서 010으로 변경한 건 번호변경에 미포함.)[43] 병들에겐 생소한 사항이겠지만 간부들도 휴대 전화 사용을 마음대로 못 하는 상황이 꽤 있다. 보안 기밀 관련 업무나 깐깐한 부대라면 당직근무 시 제 아무리 자신이 간부라고 해도 지휘통제실에 반납해야 돼서 휴대 전화 사용을 못 한다. 재수없게도 대대장 등 상급자를 잘못 만나면 군기라는 명목으로 일과 중 휴대폰 사용에 눈치를 주거나 갈구는 경우도 있다.[44] 당시 휴대전화 대여 서비스는 LG U+가 지원하여 국번은 8048~8049, 8051~8054번을 사용했다.[45]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빈번했던 과거 군의 인권유린, 가혹행위 사건들을 보면 전우애 드립은 궤변에 불과하다.[46] 대표적으로 과도한 현질, 스포츠 도박 등. 의외로 기밀유출은 병에 의한 사례는 거의 없거나 아주 사소한 것들이며 실질적으로 보안, 군사작전 등에 해가 가해진 일은 전무하다.[47] 부모님, 직계 가족 등[48] 혹은 아날로그 손목시계에 무전기 기능이 숨겨져 있다는 설정의 작품들도 있다. 이런 경우 평상시엔 시계(혹은 팔찌) 속에 내장되어 있는 안테나를 길게 늘여서 통신을 연결하는 연출도 존재.[49] 참고로 스타트렉은 휴대전화 이외에도 타블렛, HMD(구글 글래스), MP3 등의 기술적 혁신에 영향을 끼쳤다.[50] 다만, 현실의 1984년 당시에도 휴대 전화라는 물건이 아직 완전히 상용화되기 이전이었다. 위에서도 나와있다시피, 세계 최초로 상업용으로 승인받은 휴대 전화인 모토로라 다이나택 8000X가 1983년에 출시되었다.[51] 반면 화상 전화는 대부분의 SF소설에서 등장한다. 상술한 <여름으로 가는 문>에서는 화상 전화가 기본인 공중전화가 등장하며 하인라인의 다른 소설인 <낯선 땅 이방인>에서도 주인공 쥬발이 집전화로 화상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1:1로 직접 연결된다'라는 개념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전화 교환원이 있다.[52] 해당 공포 게임 시리즈는 3편까지 게임 발매 당시의 현대가 아닌 1980년대를 배경으로 설정했는데, 이는 고립된 무대를 연출하는 데에 휴대전화의 존재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