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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00:38:39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1]
<nopad>파일:A_grief_stricken_American_infantryman_whose_friend_has_been_killed_in_action_is_.jpg
<colbgcolor=#3c6,#272727> 국제질병분류기호
(ICD-10)
<colbgcolor=#fff,#191919>F43.1
의학주제표목
(MeSH)
D013313
진료과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증상 -
관련 질병 적응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1. 개요2. 특성3. 인지도4. 원인 및 사례5. 오해
5.1.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5.2. PTSD는 나약해서 걸린다?5.3. 사이코패스는 PTSD에 걸리지 않는다?5.4. 유년기의 외상 후 억압은 PTSD의 한 종류다?5.5. PTSD는 현대에 새로 등장한 질병이다?5.6. PTSD는 평균 생활 수준이 낮을수록 찾아보기 힘들다?
6. PTSD와 비슷한 증상7. 증상
7.1. DSM-5에서의 진단
8. PTSD의 치료법9. 외상 후 성장설10. 유전11. 대중매체에서12. 기타13. 참고 자료

[clearfix]

1. 개요

PTSD를 겪고 있는 이라크전 참전용사의 모습[2]
Delusional pain hurts just as much as pain from actual trauma.
So what if it's all in your head?



정신적 고통 역시 신체적 외상으로 인한 고통만큼이나 괴롭습니다.
만약 그것 모두가 당신의 머릿속에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트레이시 모건 (Tracy Morgan, 1968~)[3][4]
PTSD전쟁, 테러, 천재지변, 화재, 신체적 폭행, 성폭력, 교통사고, 트라우마 등 생명이나 신체를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정신적 외상)[5]를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이며, 대개 우울증, 불안장애, 또는 공황장애를 동반한다. 이와 반대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뒤 정신적인 성장을 보이는 것을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이라고 한다.

주로 강렬한 폭력과 충격, 공포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경찰관, 소방관, 군인들에게서 많이 발병된다. 특히 실전 전투 경험이 있는 군인의 경우 그 어떤 직종보다도 심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 외에도 의사, 간호사, 철도기관사, 교도관 등에게서도 발병되며, 범죄 피해자나 자연재해, 각종 사고 생존자들과 구조자들 또한 해당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PTSD는 정신건강적 문제 이외에도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의 난치병까지 불러올 수 있는 질병이기 때문에 증상을 자각했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의한 치료가 필요하다.

2. 특성

PTSD 환자가 공격적, 폭력적인 것은 보기 드문 현상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계속 떠오르는 데다가 트라우마에서 파생된 살의, 분노, 슬픔, 혐오, 우울 등의 감정이 가득찬 상태에서 자신을 제어 중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머릿속이 이런 상태에서 외부의 자극에 따뜻하고 차분하게 반응하기는 쉽지 않다.

공격성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무의식이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폭력이 자신의 안전을 지켜준 경험이 무의식에 남아 자신의 안전을 위해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에서야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상황을 '안전하지 못하다'고 여기고,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상단의 참전용사의 사례를 담은 영상이 그 예로 이들에게는 따뜻한 오후에 모두들 한가롭게 산책하는 일상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상황이고 언제나 총을 들고 사주경계를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행동이라는 기억이 뇌에 각인 되어있기 때문이다.

즉 전쟁 영웅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에 불안감을 느끼다가, 누군가와 시비가 붙거나 전투에 투입되면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성과 감성의 괴리에 괴로워하며 더욱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PTSD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에 정상참작은 적용되지 않는다. 불쌍한 것과 선량한 것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하며, 근대 사법체계의 심신미약이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인과관계를 인지하거나 책임을 느낄 수 없는 정신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현병 환자나 지적장애 환자들의 경우 범죄 사실에 감형이 되는 경향이 있다. PTSD가 있다고 해서 범죄자가 선량하다(재범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나마 유일하게 정상참작을 받을 수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범죄자의 PTSD의 원인이 피해자와 연관이 있을 때(예: 집단괴롭힘으로 PTSD가 생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 범죄를 저지른 경우)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할아버지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고문, 학대, 굶주림, 심한 추위를 겪은 유대인 노인이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와 폭군으로 군림하다가 손녀를 통해 치유되는 이야기를 다룬 동화이다. 만화 '쥐'에도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을 겪은 캐릭터 블라덱 슈피겔만이 등장하는데, 후처 말라와 아들을 홀대하는 등 신경질적이고 고집센 노인으로 묘사되었다. 전처인 아냐도 슈피겔만의 이러한 성격 등을 이유로 자살한 것으로 나온다.

연쇄살인마나 흉악범들이 불우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례는 꽤 흔하다. 이러한 범죄자들도 PTSD 증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임상심리사에게 심리평가를 의뢰한 정신과 의사의 전문적 판단으로 PTSD를 통해 심신미약 이상의 상태가 되었을 경우에는 형의 감경 사유가 될 수 있다.[6]

PTSD 환자에게서 전두엽의 수축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PTSD에 의한 수면장애가 수축의 원인이라는 추측이 있다. 수축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PTSD 환자는 뇌를 비롯하여 신체의 여러 기관들이 긴장된 상태로 굳어있거나 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그림을 주고 살펴보라고 했을 때 그림을 머리에 넣지 못하거나, 환자에게 손가락으로는 8자를 그리게 하고 눈으로는 손가락을 쫒으라고 했을 때 눈이 손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그 예이다. 긴장으로 인해 호흡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또한 몇 단계를 거쳐야 답을 도출할 수 있는 사고활동이 요구될 때 중간에 뇌가 거부하여 더이상 논리를 진행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경우 옆에서 짚어주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는 상황판단을 하지 못해 결정이나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미국의 슬럼가처럼 갱단 간 세력다툼이 심한 곳은 총격사건이 흔하고 주민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누가 죽더라도 주변인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 대체로 바로 복수를 생각하지 슬픔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전부터 이런 상황들을 경험했기 때문인 것이고 이미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적응하기 어렵다.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해보았다면 얄짤없으며, 인터뷰를 들어보면 그들 역시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12분 30초부터 이미 갱단들도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자신도 모르게 쇠약해질 수 있는데다 숨길수록 더 악화된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이 잘 나타난 영화가 브라질의 파밸라 갱의 삶과 죽음을 다룬 시티 오브 갓이다. 어린 아이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사람을 죽이는 등 사람 목숨이 별다른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슈츠슈타펠에서도 막장으로 취급받는 친위대 디를레방어 여단의 지휘관 오스카 디를레방어는 미성년자 강간과 폭력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이었지만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전쟁하는 건 잘했다. 또한 고대로부터 그래왔듯이 종교적인 광신이 있는 경우에도 살인이 큰 충격이 되지 않았다. 발할라에 갈 수 있단 믿음 하나로 도끼로 머리를 서슴없이 찍어버렸던 노르드인들이 대표적이다. 2차대전 구 일본제국군의 애국심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해당된다. 이 모든 예시의 공통점은 죽음이나 사건사고에 익숙해져있거나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7]

기본적으로 낯선 것에 대한 충격이 큰 원인인데, 어릴 때부터 익숙해졌다면 충격을 받을 이유가 없으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비슷하게 도시권에서 자란 사람이 짐승의 죽음(도살, 살처분 등)에서 비명소리, 낭자한 핏물, 시체 등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는 일은 많지만, 어릴 때부터 닭모가지 비틀고 개를 때려죽이고 등등을 겪으며 살아온 시골 사람은 별 충격을 받지 않는다.

다만 PTSD는 살인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위험에 처했을 때에도 나타나는 문제이다. 즉 자신이 살인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더라도 자신을 향한 위협에 내성이 생기기는 극히 어렵다. 일례로 폭죽 소리 등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미군 소속 군견 중 일부가 관련 증세를 보인다는 보고가 있다.

3. 인지도

한국2003년까지만 해도 정신과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PTSD 역시 별달리 조명되지 않았다. '누가 어떤 사건 겪은 뒤 정신이 나갔다, 정신이 이상해졌다' 라고 하는 일은 있어도 특정 질병으로 인식하진 않았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정도의 대사건을 겪었을 때에나 짧은 기사 몇 건 나왔을 정도였다. 다음 글을 통해 그렇게 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

그러니까 트라우마가 치료되지 않으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어요. 전혀 감정이입이 안 돼요. 왜냐하면 자기가 받은 그 끔찍한 고통에 계속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에 마음의 시점이 이동하질 않거든요.[8]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또다른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죠.

근데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일단 1950년6.25 전쟁을 겪으며 온 국민이 트라우마 환자예요. 그거 한 번도 제대로 치료한 적 없어요.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식을 낳고 굉장히 집에서도 폭력적으로 자식들한테 했고, 사회구조도 그렇게 돌아갔고... 제주 4.3 그렇게 민간인이 3만 명이 학살당했는데, 그 트라우마 한 번도 치료한 적 없어요. 광주항쟁? 한 번도 치료한 적 없어요.[9] 이런 것들이...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이 온 사회에 굉장히 넓게 퍼져있는데... 그런 것들이 이렇게 누적이 되다 보면 타인에게 적절한 정도의 공감을 한다든지, 타인의 고통에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이 사회구조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져요. 사회의 바탕이 그렇게 되죠.

그런 노인들이 자신이 살아온 시절이 너무 끔찍하고, 죽다 살아났고, 형제 몇은 다 죽으면서 거기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고... 그러니까 "애 하나 죽은 거...? 그거 별 거 아냐. 지금은 세상이 더 좋아져서 돈도 준대. 야~ 나 같았으면 그 정도는~" 이런 마음들이 있어요. 치료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고통에 아직도 깊이 매몰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렇게 극단적인 사회적인 트라우마가 있을 때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 반쯤은 괴물이 되는 사람을 양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PTSD가 주목[10]받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하는 추세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부터 심리학회 차원에서 화두로 삼고 전국의 연구실에서 대학원생들을 갈아넣고 있는 상태다.[11] 최근에는 아래에서 따로 설명할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에 늦게 알려졌을 뿐, 신종플루나 HIV, 슈퍼박테리아, 코로나바이러스-19와 같이 20~21세기에 처음 발견된 질병이 아니다. 배설임진왜란 당시 탈영한 원인이 PTSD라는 게 정설일 정도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인류와도 함께하던 유서깊은 정신적 질병이다. 유명한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도 PTSD가 있었고 그의 대표작 절규도 이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미국의 경우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크게 주목받았다. 베트남전 전부터 적지 않은 수의 참전 군인에게서 같은 증상이 발견되었지만 질병으로 인식되지는 아니었으며, 때문에 PTSD를 부르는 용어 역시 중구난방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셸 쇼크(Shell Shock)라고 불렸으나 질병인지 증상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했으며, 후술할 많은 유사증상을 하나로 묶어 칭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6.25 전쟁 이후에는 전투 피로증(Battle Fatigue, Combat Fatigue), 작전상 탈진상태(Operational Exhaustion)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역시 병명을 확정하는 단어로는 무리가 있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에 용어가 수정되어 현재는 PTSD로 정립된 상태이다.[12] 아직도 '전투 스트레스 반응'[13]과 혼동되고 있지만, 둘은 절대 동일하지 않은 별개의 증상이다.

4. 원인 및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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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해

5.1.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PTSD에 대해 잘 알고, 체질 및 경험 등으로 정신력이 강하다고 한다 해도 PTSD를 잘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본인도 타인도 전문가도 절대로 장담할 수 없다. 사람마다 정신력이 다르니 단정지을 수 없지만 실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PTSD에 걸릴 확률은 최대 50% 정도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확률이며 이 50%라는 PTSD가 공식 병명으로 채택된 배경인[14] 미군 베트남 전쟁의 참전용사 중 PTSD 환자의 비율을 가장 높게 잡은 수치다. 무슨 말이냐면 미군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280만 명 중 최대 140만 명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공포영화나 끔찍하고 불쾌한 그림 등을 보고 그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비위가 상하고 초조해지는 등의 고생을 겪은 적이 있다면[15] PTSD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심각한 일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 겪는 스트레스성 장애는 그것과 원리는 비슷하되, 정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다. 생사가 오가는 일을 구경하거나 상상하는 것과 직접 겪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애니, 소설 등에서 평범한 소년 소녀들이 사람을 죽이고 총질을 하고 칼질을 해대면서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못 하거나 그저 몇분 간 벌벌 떠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창작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뿐이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16][17]

단지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PTSD에 시달리는 사례는 굉장히 많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자들은 포격쇼크증,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자들은 전쟁신경증, 6.25 전쟁 참전자들은 전투신경증. 이것들은 모두 PTSD를 뜻한다.[18]# 괜히 미국이 참전유공자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영웅으로 모시는 게 아니다. 그 PTSD로 인한, 상처와 마음의 병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일단 전투에 돌입하게 되면(특히 첫 실전) 그 사람의 머릿속은 문자 그대로 패닉 모드로 전환된다. 과다 아드레날린 분비로 심장은 평소보다 훨씬 빠른 페이스로 뛰게 되고, 주변 상황들이 마치 슬로 모션으로 진행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며, 속은 말 그대로 하얗게 표백된 양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19] 그리고 전투가 끝난 후에도 한 수십 분 동안은 그저 숨만 몰아쉬며 아무 생각도 못 한 채 벌벌 떤다.[20] 비단 PTSD뿐만 아니라 처음 접하는 전투 현장에서는 극도의 수면부족과 피로까지 설상가상으로 덮치고, 옆에서 폭탄 몇 발만 터지면 작게는 깨질 듯이 욱신거리는 편두통에서부터 심하게는 청각적 원인에 의한 뇌진탕까지 밀려와서 제정신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팔다리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덜덜덜 떨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소위 데스 그립(death grip) 현상, 즉 손에 총이나 막대기 등 뭔가를 쥐고 있을 경우 손에서 힘을 뺄 수가 없는 상황이 닥친다. 한 마디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극한의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것이며, 미군은 이미 일찌감치 이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베테랑이란 증거처럼 등장하는, 전투 중 농담을 던지며 낄낄대는 행위 역시 PTSD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공포[21]와 자신을 향한 적대자의 강렬한 증오, 그리고 살인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과 죄책감[22]의 심리적 혼합물은 인간에게 상황을 부인할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23] 그리고 전쟁 상황이 별 것 아니라는 듯한 행동은 가장 강력한 부인의 증거이다. 흔히 전쟁물이나 히어로물 등에서 싸우는 도중에 웃으며 농담하는 것은 기세 등등하거나 겁이 없어 그런다기보다는 오히려 현실 고증이 잘 된 셈이다. 물론 농담을 통해 긴장과 신경을 풀고 자신의 정신을 정상적인 상태로 방어해 패닉에 빠지게 되는 것을 막는 경지에 오르는 것 자체가 웬만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의 장갑차를 운전하던 가해자인 미군 하사 마크 워커는 제대 후 민간인을 치여 죽인 자책감에 PTSD에 시달리고 있다. 사고 후 근 3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설사병과 허리통증으로 인해 살이 비약적으로 빠졌다. 제대사유 또한 PTSD. 유족들 또한 그가 무고한 여중생에 대한 마음의 죄책감을 덜었으면 하는 중이고 오히려 해당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고통받았다고 한다. 그 또한 고의로 그런 짓을 한건 절대 아니기에...

5.2. PTSD는 나약해서 걸린다?

수십년의 연구 끝에 밝힌 사실은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도 지속적인 트라우마 상황 앞에서는 정신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며 결국 정신병에 걸리고 만다는 것이다.[24]

PTSD 환자는 세계 곳곳에서 살고 있으며 나이나 성별, 인종, 사회적 지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람보 같은 미군 특수부대원들도 죽음의 공포는 이겨내지만 PTSD는 이겨내지 못 했다. 대한민국에선 2003년까지 의지드립으로 때워버리기 딱 좋은 병이었다.[25] 20세기 대한민국에선 의지드립이 PTSD의 특효약 아닌 특효약이었다. 그러나 2003년부터 의지드립이 결코 특효약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만이 PTSD 증상을 확연히 지연 및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게 밝혀졌다. 의지드립은 곰팡이 핀 벽에 페인트 새로 바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방호스로 물을 퍼붓는 것도 모자라, 그 벽에게 의지쯤으로 곰팡이를 떨쳐낼 수 있다고 소리치는 것에 불과했다.[26][27]

흔히 람보 시리즈의 주인공 존 람보를 왜곡된 마초주의와 PTSD를 겪지 않는 자칭 용감한 군인의 상징으로서 말하고 있지만 사실 여러 증상으로 봤을 때 람보도 PTSD이다.[28] 그리고 PTSD 증상이 극단적으로 가버린 사례가 람보 1의 람보의 난동이다.[29] PTSD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지간해서는 극복하지 못 한다. 이건 그 '의지'라는 것이 강한지의 기준조차 불명확한 의지박약 또는 그냥 개인이 제멋대로 단정 짓는 꾀병이 절대로 아니다. PTSD는 신경계에 문제가 일어난 질환이다. 뇌신경학자들의 관찰 결과에 따르면 PTSD 환자들의 두뇌의 생김새는 PTSD를 앓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두뇌의 생김새와 매우 다르다. 특히 다른 점은 환자들의 측두엽 내측에 존재하는, 기억 및 정서 그리고 신경의 체계를 담당하는 부위로 알려진 해마가 수축되어 있다는 점이다.[30] 그렇기에 환자들은 자기 기억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작은 자극도 엄청난 공포로 인식한다. 해마의 변형으로 말미암아 생긴 이러한 증상들은 다른 뇌 부위의 손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등 악순환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파병군인은 돌아와서 전부 검사를 받긴 하지만 애초에 검사 자체가 겨우 한 시간 동안 수많은 질문에 대해 예/아니오로 답변하는 수준이고 사회로 내몰려 굶어죽지 않기 위해[31] 어지간히 PTSD에 시달리는 병사는 대부분 거짓말을 하니 검사는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미군 내부에서도 흘러나온다. 카투사가 그런 미군과 친해지면 새벽 3시까지 자기 방에서 술을 먹자며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데, 평범하게 잠에 들면 악몽을 꾸니까 술을 무지하게 마시고 잔다고.

하도 이렇게 숨기는 병사들이 많으니 미군 측에서는 아예 부끄러워하지 말고 군종이나 군의관에게 와서 이야기하고 치료받으라는 내용의 광고를 만들었다. 만약 본 문서를 읽는 본인이 카투사이고 PTSD에 걸린 미군으로 짐작되는 병사가 있다면 개인의 군생활이니 대놓고 참견할 순 없지만 웬만하면 그 친구가 자존심 상하지 않게 병원이나 상관에게 슬쩍 말하는 편이 낫다. 그 병사가 PTSD가 아닐까 하고 감이 올 정도면 상당히 친해진 상태일 텐데, 말하지 않고 있다가 그 병사가 나중에 사고치고 군병원 내지는 본토로 송환될 때 후회하게 되거나 아니면 관리소홀의 책임을 물어 처벌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군에서는 지휘관뿐만이 아니라 PTSD 환자가 사고칠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제때 신고, 혹은 대처하지 않은 동료 병사 역시 근무태만으로 처벌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의 처벌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형사처벌보다는 영창이나 아니면 카투사 신분 박탈 후 한국군 편입 정도일 가능성이 크다. 미군 군사법정에 세워버리면 내정 간섭이 되기 때문.

그렇다고 한국군 군사법정으로 송치하자니 한국군 군법이나 복무규율에는 사전에 PTSD 환자를 신고하거나 대처하지 않은 행위를 근무태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무엇보다 진짜 미군과 달리 카투사는 PTSD 증상에 관해 교육받지 않으며 미군의 정식 기초훈련과정[32]을 거치지 않는데다 미군 소속 기관이나 헌병대의 보호를 받는 병사도 아니기 때문에 "그게 PTSD 증상인지, 미리 알려야라는 의무가 있는지 몰라서 그랬다", 혹은 "예견되는 피신고자의 보복이 두려웠다"라고 하면 그에 대해 마땅히 뭐라 할 논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카투사 박탈 후 한국군 편입만 해도 충분히 큰 처벌이긴 하다.

연구가 잘 되어있는 미국 조차도 '비겁한 사람들의 병'으로 치부된 흑역사가 있다. 조지 S. 패튼의 일화가 아주 좋은 예이고, 더 퍼시픽에도 나온 적이 있는 해병대의 전설 '조지프 풀러'조차도 공개적으로 PTSD 환자를 '비겁한 자'로 매도한 적이 있으니…[33]

근현대의 군대들도 그렇거니와 한국군 북한군 역시 앞에 서술한 것처럼 인식부족으로 '비겁한 자의 표상'으로 삼은 경우가 꽤 많았다. 심지어 자신과 싸우는 상대편 군인들의 PTSD를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경우도 있으니[34] 그나마 현대에 와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니 다행인 셈.

본 문서의 내용이 실제로 군인들이 많이 겪는 증상이란 점에서 주로 군대에 국한되어 작성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군인뿐만 아니라 학교와 사회로 확장해서 보아야 한다. 특히 한국은 지나치게 정신과 병원을 좋지 않게 본다. 어떠한 종류의 폭력이건 인간의 사고를 망가트리고 PTSD를 발현시키며, 그 결과는 자신에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에 심각한 해를 가할 수도 있다. 더욱이 지금 소위 자라나는 새싹이 폭력에 절어가고 있는 사회현상은 사회문제를 넘어 개인 신상의 위협으로까지 자라날 수 있다. 내 옆자리에 PTSD 환자가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고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앉아있으며 사람을 죽일 가능성도 있다고 상상해보라.[35]

다소 조잡한 비교이기는 하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한다면 PTSD란 정신이 상처를 입은 후 회복이 안되는 병이다. 사람의 몸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것처럼 사람의 정신도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상처를 입는데 평소에는 이 상처가 자동 치유되지만, 지속적으로 상처를 괴롭히거나 너무 크게 내면 낫지 않고 덧나서 곪기 시작하는 일이 생긴다. 이걸 PTSD라고 이해하면 비교적 간단하다.[36]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PTSD에 대한 오해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 PTSD는 마음이 나약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다? 아무리 몸이 튼튼한 사람이라도 칼로 공격 당하면 피나고, 피 철철 흘리면 결국 죽는다. 건강한 사람이면 상처에 좀 더 잘 버티는 것처럼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에도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개인차를 뛰어넘는 상황이란 얼마든지 있다.[37] 허약한 사람이라도 면도칼에 베여 죽을 확률은 낮지만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도 장검에 베이면 목숨이 위험하다. 당신은 PTSD에 안 걸릴 것 같은가? 그건 당신은 칼에 찔려도 상처 안 날 것 같다는 이야기하고 똑같은 말이다. 사이코패스는 PTSD에 걸리지 않는다? 고통을 모르는 통각이 마비된 인간이라도 칼에 찔려서 피 많이 흘리면 죽는 건 마찬가지다. PTSD 증상을 호소하는 것이 꾀부리는 것, 잔머리 굴리는 것, 요령 피우는 것으로 보이는가? 과다출혈한 사람은 수혈 못 받으면 죽게 된다.

한국에서는 집단괴롭힘의 피해자들이 PTSD를 앓고 있는 것을[38] 의지부족으로 모는 사람들이 부모 형제 자매 중에도 있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락부락한 형님들이라 할지라도 PTSD에 걸렸다간 얄짤없다. 예컨대 불의의 급습을 받아서 칼침을 맞는다거나, 오밤중에 갑자기 납치당한 채로 야산에 끌려가서 생매장당할 뻔하다가 간신히 죽다 살아났다고 가정하자. 이들이 그러려니 하고 툭툭 털고 넘길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 이런 외상적 사건을 경험한 조폭들 중 상당수는 만성적인 두통과 불안을 호소하며, 매일 악몽을 꾸고 헛소리를 하거나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린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실제로 임상적으로 PTSD로 진단받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정신의학계에 도는 일화도 많이 있다.

첫 문단에도 있듯 대구 지하철 참사 이전에는 PTSD는 그야말로 그런 질병이나 있는 거냐 수준으로 질병 취급도 못 받고 그냥 의지드립으로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5.18 민주화운동, 삼풍백화점 사고 등등 숱한 사회적 참사를 겪어오면서 그런 환자들이 분명히 많은데 PTSD는 완전히 아웃 오브 안중 그 자체였고 안그래도 정신건강의학과[39] 상담 자체를 터부시하던 사회 분위기와 맞물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시기라 그 영향력이 앞선 사건들과는 양적으로 달랐고 PTSD를 양지로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으며[40] 현재는 참사가 터졌다 하면 생존자에게 외상 치료 후 PTSD 치료가 필수 옵션으로 따라붙는다. 너무 형식적이고, 아직 갈 길이 멀어서 문제지. 세월호 참사 유족의 증언을 들어보면 한국의 심리상담은 문제가 많다.
"집에 가도 엄마, 아빠는 진상규명을 위해서 밖으로 나갔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상담을 자꾸 시켜요. 아이들한테. 그런데 그 아이들은 그 상담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게 상담이라는 게 어떤 아이를 감정적으로 너희 아픈 부분을 어루만져 주는 게 아니고 자꾸 상담을 학문적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거예요. 이 치료가 뭐 2년 정도면 어느 정도 회복이 된다라든지 약간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니까 아이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죠."-중략-

"누가 형제자매가 자기가 유가족인 것을 밝히고 상담을 받으러 가고 싶어요.(찾아오는 그런 서비스는 아직 전혀 없어요?) 애초에 있었는데 그게 정말 기가 막힌 게 장례식으로 찾아왔어요. 와서 2주 뒤에 내가 너를 방문할 것이다라고 통보를 해요. 그러면 정말 2주 뒤에 찾아와요, 방문을 두들겨요, 집 문을 두들겨요, 상담 받으라고. 그런데 정말 안 하거든요, 진짜 그게 정말 상처거든요. 아무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 식으로 되다가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되는 거예요. 저는 그 트라우마, 상담 받은 것 자체가 트라우마여서 상담 너무 싫어요."-중략-

"부모님이, 한 번 엄마가 갑자기 제 앞에서 죽고 싶다고 말하신 적이 있어요. ‘차가 날 들이받았으면 좋겠어, 윤아야’ 이러는 거예요, 엄마가. 그래서 깜짝 놀라서 트라우마 상담사 분 명함을 준 적이 있어요. 전화를 했어요, 엄마가 이런다고 무섭다고. 그런데 상담사 분이 지극히 일적으로 ‘아, 그랬어요? 아, 그러셨구나’ 이러시는 거예요, 너무 가식적이게. 그래서 뭐지, 이건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그래도 하긴 했어요, 털어 놓을 곳이 없으니까.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엄마가 죽고 싶다고 몇 번 하셨어요? 엄마가 자살충동 몇 번 느끼셨어요’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자살 프로그램에 참여해요? 자살 충동 여태까지 몇 번 있었어요? 죽고 싶다는 말 몇 번이나 했어요’ 저한테 되게 자살이랑 죽고 싶다는 이런 강렬한 단어들을 그 당시 저에게 계속 던지는 거예요. 말할 때마다. 말에 그 단어가 빠지면 안 된다는 듯이 당시 다 포함을 시켰어요, 모든 문장에.[41] 그런 것을 딱 하고서 결국은 한다는 소리가 ‘자살방지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거기 가세요’였어요. 그래서 딱 그런 것을 통화하고 나니까 통화 끊고 나서 저는 딱 든 생각이 그거예요, ‘다시는 여기에 전화 안 해. 나는 다시는 상담 안 받아’ 이거였어요." -중략-

(이런저런 과거 우리 사회에 큰 참사 같은 게 있을 때는 정신과 상담이니 정신과 의사들이 투입되는 이런 것 참 생각도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나마 그런 게 좀 이루어지나보다 했는데 직접 그 당사자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아...) 학대, 오히려 정신적 학대를 주셨어요.
(아주 그냥 형식적으로만...)너무 형식적이라서 더 힘들게 하는 느낌? 그 형식에 저희를 맞추려고 일부러 하니까 저희가 더 힘들어지는 느낌?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다 저희가 심리상담을 잘 받고 있는 줄 알고 트라우마 치료가 잘 되고 있는 줄 알고.
세월호 희생자 자매들 "학교도 직장도 잃어"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전날 인터뷰
하지만, 그나마 이 정도라도 PTSD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어 지금은 PTSD 치료가 필수 옵션으로 붙었다는 점은 사후 처리에 있어 큰 도움이 되는 점은 분명하다.

5.18 PTSD도 당연하다. 5.18 민주화운동이 정권 탓에 조사가 지지부진했던 것도 있지만 전두환, 노태우 사형선고 당시에도 PTSD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었다. 그게 대구지하철 참사, 세월호 사고를 겪고 나서 PTSD가 어느 정도 국민에게 인지도가 높아진 후의 일이다. 40년이 지나도 PTSD는 끈질기게 따라붙는다.[42]

5.3. 사이코패스는 PTSD에 걸리지 않는다?

보통 사이코패스는 정신력이 강해서, 또는 죄책감 자체를 느끼지 못해서 PTSD를 겪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가 있으나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PTSD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는 정신력이 강하거나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사이코패스도 감정이 있고 자기보호본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끔찍한 짓을 저지르거나 타인이 그런 끔찍한 상황에 당하는 걸 목격하는 걸로는 보통 사람들보다 걸릴 확률이 낮더라도 본인이 직접 끔찍한 일을 당하면 PTSD에 걸릴 수 있다. 오히려 PTSD 환자들이 후천적으로 사이코패스의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5.4. 유년기의 외상 후 억압은 PTSD의 한 종류다?

아니다. PTSD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같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억압(repression)이라는 개념에 전혀 의지하고 있지 않다. 애초에 억압(Verdrängung)이라는 표현 자체가 "(의식 영역으로부터) 무의식으로 몰아냄"을 의미하며 그 개인에게 있어서 이나 자유연상(free association)과 같은 방법을 빌어서 슬쩍슬쩍 나타나는 것이다. 즉 "스트레스 장애" 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사실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무엇이 억압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삶을 저해하기 때문에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억압이라는 문제가 가장 근본적이고 깊은 층위의 원인이기 때문에 현재의 불안, 짜증, 우울 등에 대한 근원적 치료를 위해서는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유년기 성폭행 문제로 PTSD 치료를 받는 청소년들과 유년기 성폭행 기억의 억압을 의심해 내면아이 치료를 받는 내담자들은 서로 다르다. 일상의 고통과 삶의 질의 차이는 서로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가 미안할 만큼 크다.[43]

무엇보다도 유년기의 외상 후 억압이라는 테마는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학술적으로도 그다지 지지받지 못 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유년시절의 성폭행 기억은 억압된다 문서로.

다만 이 문서가 대부분 인용한 <트라우마>란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거짓기억 증후군 재단이 피해자들을 마녀사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5.5. PTSD는 현대에 새로 등장한 질병이다?

PTSD라는 '질환'이 존재한다는 인식과, 그 원인과 과정에 대한 연구의 진행이 현대에 들어서 시작해서, 마치 이 질병이 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신종 질환인 것처럼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원전의 역사에도 PTSD로 추정되는 기록이 종종 나타나며, 상술했듯이 동물들도 PTSD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기도 하는 등 어찌보면 인류 등장보다도 오래된 병일 수도 있다.

PTSD가 별개의 질환으로 분류되고 연구된 것은 100년도 되지 않았지만 전근대의 역사 기록에서 PTSD로 의심되는 사례를 일부 찾을 수 있다. 한국사에서는 임진왜란기의 장수 배설이 대표적이다. 당시에 PTSD라는 개념이 없었음에도 사료에 기록된 배설의 행동은 PTSD 증상과 매우 유사하다. 기원전 490년에 발생한 마라톤 전투에서도 PTSD와 유사한 증상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데, 눈에 외상을 입지 않았는데도 전투 후 눈이 보이지 않게 된 병사가 있다고 하며 PTSD로 인해 신체화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 기사의 PTSD 사례

5.6. PTSD는 평균 생활 수준이 낮을수록 찾아보기 힘들다?

선진국 및 기타 고소득국가나 복지국가에서는 극도의 외상 및 정신적 충격이 이질적인 일이기에 PTSD로 발전하기 쉽고,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는 평균적인 QOL[44]이 낮기에 PTSD로 번질 만한 다양한 외상에도 무감각해지므로 찾아보기 힘든 사례가 아니냐는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극소량 일부는 맞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상술했듯 PTSD는 현대와 달리 삶의 질적인 면에서 크게 뒤떨어지며 민주주의의 개념조차 없던 신분제, 엄벌주의적 환경을 고수한 고대부터 있어온 질병이다. 주로 아프리카나 일부 서아시아의 내전 국가 등에서는 질병 통계가 거의 없다는 근거의 경우, 근본적으로 표본조사의 체계가 부실하기 때문에 통계를 면밀하게 조사하기 힘들다는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일례로 보통 사람들은 빈곤한 국가 및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절대적 빈곤율'이라는 개념을 차용한다. 즉, 총체적으로 보았을 때 전세계 평균 소득에서 일정 부분 미만을 달성하는 예멘, 남수단, 콩고 등 수많은 최빈국들은 수치상 절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가난한 국가라면, 일상 자체가 고될테고 그것이 수없이 반복되니 PTSD에 무감각할 것이다'라는 일종의 착각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서 상대적 빈곤율을 차용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당연하겠지만 아무리 못살고, 경제적으로 파탄난 국가로 보이더라도 엄연히 그 안에 빈부격차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즉 모두가 같이 못사는 후진국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경제적 격차는 벌어지기 마련이며, 이는 사회 구성원들이 결론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인지'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직결된다. 상술했듯 에 의한 문제로 생기는 PTSD 유형도 있으므로 최빈국이라는 조건은 상관없이 결국 사람은 PTSD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PTSD가 문서에서 수차례 언급된 만큼 인간군상을 가리지 않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역으로, 빈곤국이나 개발도상국의 경우 PTSD 보유자가 압도적으로 높은 경우가 잦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우선 정신과 및 상담 등의 다양한 '치료 인프라'의 부재가 꼽힌다. 즉 제때 치료를 받을 수도 없고 이후에도 치료 전망이 희박하니 별 대안도 없이 그냥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즉 빈곤국의 국민들은 PTSD가 없어서 그냥 그렇게 치료도 없이 살고 있는 게 아니라, 형편이 되지 못하고 인프라가 없어서 치료 없이, 심지어는 자신의 PTSD를 자각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6. PTSD와 비슷한 증상

실총을 비롯한 화기를 실제로 체험해 본 적 없을 일부 사람들은 입대해서 처음으로 실탄 사격을 할 때, 처음 수류탄을 던질 때, 귀를 찢는 총성과 폭음, 땅을 울리는 진동 탓에 전쟁으로 인한 PTSD와 거의 동일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게임이나 영화로만 보아왔던 총과 수류탄의 실제 소음과 위력에[45] 놀라 심장이 터질듯이 뛰면서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안전 수칙이고 뭐고 난생 처음 겪는 충격에 머리속이 백지가 될 때 자칫하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조교들의 긴장 역시 최고조에 달한다.

이런 실탄 사격과 수류탄 훈련의 흥분 상태는 PTSD가 아닌 '포탄충격증후군(셸 쇼크)'이며, 이는 누구나 경험하고 자신이 총에 맞거나 의지가 있는 누군가에게 공격당한 것은 아니기에 비교적 금방 회복한다. 포탄충격증후군(셸 쇼크)은 PTSD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지만 셸 쇼크 = PTSD는 아니다. 예를 들자면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면 극도의 흥분 상태[46]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사고 상황에서 흥분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자동차 사고로 인한 흥분이며, 이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끝난다. 이는 PTSD가 아니다. 사고 경험으로 인해 지속적인 정신장애와 일상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는 '자동차 사고로 인한 PTSD'가 된다.

현대의 연구자들은 포탄충격증후군을 전투 스트레스 반응(combat stress response)이라고 하여 PTSD와 함께 스트레스의 한 종류로 분류하고 있으며, 또한 근거리에서 폭탄이 폭발하는 청각적, 심리적 충격은 경미한 외상적 뇌 손상(mild traumatic brain injury)이라고 하여 심지어 뇌진탕(concussion)의 한 종류로 보고 있다. 이것이 PTSD와 갖는 연관성은, 적어도 이러한 증상들이 향후 PTSD의 발병을 예측하는 강력한 선행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자체만으로는 PTSD가 아니며, 향후 100% 발병을 장담할 수도 없겠지만.

베트남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쟁 상황에 발생하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뇌 속에서 분비되는 엔돌핀(모르핀의 무려 400배에 이르는 효과가 있다.) 덕분에 헤로인을 복용하는 것보다 3배의 황홀감에 빠진다고 한다. 덕분에 이러한 느낌을 지속시키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한 파일럿 중 많은 수가 마약류에 쩔어 살아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것도 PTSD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잠시의 흥분 상황에 빠지는 것이 PTSD는 아니다. 이 흥분 상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자극 중독'인 것이며 반대로 이 흥분 상태를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멀리하는 것이 PTSD이다. 저 상황은 그저 '흥분 상태'인 것이지 PTSD가 아니다.

보통 설명되는 PTSD보다는 좀 약할지라도 한국에서 전역한 남성에게서 이러한 트라우마 비슷한 증상을 굉장히 흔히 볼 수 있는데 바로 군대 꿈이다. 대표적으로 입영통지서가 날아오거나 일어나니 갑자기 선임에게 갈굼당하거나 맞거나 쫓아오거나 하는 식으로. 이는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4, 50대에 들어서까지 군대에 관련된 악몽을 꾸는 경우를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20여 년 동안 군대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평화롭게 살던 사람을 어느 날 갑자기 군대로 끌고 가서 군복 입히고 총 쥐어주고 마구 굴리고 바깥 세상과 동떨어진 환경을 강요하면 누구든 트라우마가 생긴다. 한국 남자들에게 '군대 다시 가는 꿈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자주 소비되지만, 군대와 관련된 이러한 현상 또한 사실 트라우마의 일종이다. 성인 남성들이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이야기 꽃이 피는 이유도 이러한 트라우마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극복하려는 현상이라는 말도 있다.

7. 증상

어떻게 그 몸으로 전선을 돌파하고 먼 길을 걸어 집까지 돌아올 수 있었을까 믿기지 않을 만큼 몸이 못 쓰게 된 건 약과였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었다. 자기가 없는 동안에 태어난 아들을 보고도 안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렇다고 무표정한 것하고도 달랐다. 시선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 하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작은 소리에도 유난스럽게 놀랐다.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은 무슨 소리를 해도 바뀌지 않았다.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도 그를 안정시키진 못 했다. 밤에는 바람 소리, 쥐 부스럭대는 소리에도 놀라 한잠을 못 잤다. 어디를 어떻게 무슨 꼴을 당하며 왔기에 그 꼴이 되었을까. 죽기를 무릅쓰고 사선을 넘은 무용담도 있으련만 말하지 않았다. 그런 흔적도 안 보였다. 오빠는 심한 피해망상을 앓고 있었다. …제풀에 놀라 머리 먼저 아무 데나 쑤셔박고 덜덜 떠는 증세까지 새로 생겨났다.
-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위 발췌문의 내용은 서울 교외 시골 학교에서 선생을 하다가 북한이 서울을 점령하던 중에 의용군에 끌려갔던 박완서의 친오빠가 1.4 후퇴 직전에 도망쳐온 모습이다. 보다시피 PTSD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이 작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실화를 소설로 쓴 자전소설임을 생각하면 정확한 것도 당연하지만. 이 오빠는 얼마 못 가 숨지는데 사망 경위는 <엄마의 말뚝 2>에 나온다.[사망경위][원문출처] 아래는 가장 흔한 PTSD 증상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참고할 만한 리스트일 뿐, 실제로 사람마다 외상마다 나타나는 증상은 범주화할 수 없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러니 "나는 왜 이런 증상이 없지? 나는 역시 PTSD가 아니라 그냥 나약한 건가?" 하고 타인의 증상과 자신의 증상을 비교하며 자책하지는 말도록 하자.

7.1. DSM-5[71]에서의 진단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5)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다음의 기준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1. 다음과 같은 방식 가운데 한 가지 이상으로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 심각한 부상, 또는 성폭력에의 노출을 경험.
    1. 외상성 사건(들)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
    2. 그 사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것을 생생하게 목격함.
    3. 외상성 사건(들)이 가족, 가까운 친척, 또는 친한 친구에게 일어난 것을 알게 됨.
      주의점: 가족, 친척, 또는 친구에게 생긴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은 그 사건(들)이 폭력적이거나 돌발적으로 발생한 것이어야만 한다.
    4. 외상성 사건(들)의 혐오스러운 세부 사항에 대한 반복적이거나 지나친 노출의 경험.[72]
      주의점: 노출이 일과 관계된 것이 아닌한 전자미디어, 텔레비전, 영화 또는 사진을 통해 노출된 경우는 적용되지 않는다.
  2. 외상성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시작된, 외상성 사건(들)과 관련이 있는 침습 증상이 다음 중 한 가지 이상으로 나타난다.
    1. 외상성 사건(들)과 관련된 고통스러운 기억이 비자발적, 침습적으로 반복됨.
      주의점: 7세 이상의 아동에서는 외상적 사건(들)의 주제 또는 특징이 표현되는 반복적 놀이를 한다.
    2. 꿈의 내용과 정동이 외상적 사건(들)과 관련되어 있는 괴로운 꿈이 반복됨.
      주의점: 아동에서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무서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3. 마치 외상적 사건(들)이 재발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느끼는 해리성 반응.[73][74][75]
      주의점: 아동의 경우 놀이를 통해 외상과 관련된 재현이 일어날 수 있다.
    4. 외상성 사건(들)을 상징하거나 닮은 내부 또는 외부의 단서에 노출되었을 때 극심하거나 지속적인 심리적 고통을 경험함.
    5. 외상성 사건(들)을 상징하거나 닮은 내부 또는 외부의 단서에 노출되었을 때 뚜렷한 생리적 반응을 나타냄.
  3. 외상성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시작된, 외상성 사건(들)과 관련된 자극에 대한 지속적인 회피가 다음 중 한 가지 이상으로 나타난다.
    1. 외상적 사건(들)에 대한 또는 밀접하게 연관된 고통스러운 기억, 생각, 또는 감정을 회피하거나 회피하려는 노력을 함.
    2. 외상적 사건(들)에 대한 또는 밀접하게 연관된 고통스러운 기억, 생각, 또는 감정을 상기시키는 사람, 장소, 대화, 행동, 사물, 상황 등을 회피하거나 회피하려는 노력을 함.
  4. 외상적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시작되거나 악화된, 외상적 사건(들)과 관련된 인지와 기분의 부정적 변화가 다음 중 두 가지 이상으로 나타난다.
    1. 외상적 사건(들)의 중요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함.[76]
    2. 자신, 타인, 또는 세상에 대해 지속적이고 과장된 부정적 신념 또는 기대.[77]
    3. 외상적 사건(들)의 원인 또는 결과에 대해 지속적으로 왜곡된 인지를 함으로써 자신 또는 타인을 비난함.
    4.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경험.[78]
    5. 주요 활동들에 현저하게 저하된 관심 또는 참여를 보임.
    6.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리감 또는 소원해진다고 느낌.
    7.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어려움.[79]
  5. 외상적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시작되거나 악화된, 외상적 사건(들)과 관련된 각성과 반응성의 뚜렷한 변화가 다음 중 두 가지 이상으로 나타난다.
    1. (유발 자극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음에도) 전형적으로 사람 또는 사물에 대해 언어적 또는 신체적 공격성으로 표현되는 이자극성과 분노 폭발.
    2. 무모하거나 자기파괴적인 행동.
    3. 과각성.
    4. 과장된 놀람 반응.
    5. 집중의 어려움.
    6. 수면의 어려움.[80]
  6. 증상 (진단기준 B, C, D, E) 의 지속기간이 1개월 이상이어야 한다.
  7. 증상이 임상적으로 뚜렷한 고통이나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의 장애를 초래한다.
  8. 증상이 물질 (예: 치료약물, 알코올) 의 생리적 효과나 다른 의학적 상태에 의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8. PTSD의 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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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이 명확하기에 사실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단순하다. 도망치지 않고 마주해서 완전히 이겨내며 소화하면 된다.[81]

문제는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무지막지하게 어려우니 고생이다. 애초에 단 한 번에 소화 가능한 사람이라면 PTSD에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핵심 요인을 소화해서 해결하더라도 그로 인해 망가진 뇌, 우울증, 인간관계, 경력손실 등등의 회복은 별개다. 솔직히 말하면 이것들까지 다 해결해야 진짜 끝이라고 볼수 있다. 질환의 경과 및 예후로만 따져본다면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증상이 악화되거나 재발 하기 때문에 PTSD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게 힘들 수 있지만, 위에서 쭉 설명해온 것처럼, 본인이 원인된 경험에 대해 마주하고, 스스로 납득을 하고[82] , 파생된 감정,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고 정신, 몸 상태를 강화시킨다면 증상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질환들에 무조건 불치병이라고 기술해놓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설명한 것들이 탈출하는 길의 정석이기도 하고 달성만 한다면 완전히 벗어나는 게 가능하지만 이것들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당장 기억 마주하는 거부터 쉽지 않다.[83] 게다가 충격적인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본인 내부의 생각들을 이기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84] 그리고 다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어도 그만큼의 세월이 사라졌기에, 망가진 인적,물적 환경을 감내하고, 벌어진 격차를 이겨내면서 상식인이라는 수준까지 따라가려면 정말 부던히 노력해야한다.

그래서 기억을 마주하고 소화하는 건 PTSD 치료의 가장 마지막 단계로, 일단은 여러가지 불편감이나 플래시백, 신체적 불편감, 부정적인 감정등에서 회복시키는 안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정신과 전문가들이 안정화 단계가 완료된 이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걸 권고하고 있으며, 안정화 단계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기억을 마주하는 건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안정화 단계만 잘 이루어진다면 이후 단계는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전문가도 있을정도로,[85][86] 1단계인 안정화가 가장 중요하다.

인터넷이나 위키 등지에서 PTSD를 치료하기 위해서 기억을 마주해야 한다는 말만 듣고서, 아직 기억에 대한 불편감이 남아있고 안정이 안되는데 기억을 함부로 마주하려 하는 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PTSD는 엄연히 의과적 증상이며, 전문의의 치료가 필요하다. 일단은 정신과를 방문하여 안정화치료부터 받도록 하자.

치료는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심신 전반에서의 치료를 위해 주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요법이 사용되는데, 약물치료로는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약물로, 이 약물은 우울증 및 다른 불안장애의 증상과 유사한 증상뿐만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유의 증상도 호전시킨다. 정신치료 요법으로는 정신역동적 정신치료, 행동치료, 인지치료, 최면요법 등이 활용되고 있다.

다행히 개인에게 맞는 여러 치료법을 병행하면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고, 치료 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치료하지 않는 경우 30%는 저절로 정상으로 돌아오고, 40% 정도는 가벼운 증상을 지속적으로 경험한다. 20% 정도는 중등도의 증상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며, 10%는 증상의 호전이 없고 심지어는 증상이 악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걸 '이후 재발이 절대 되지 않는 수준의 완치'라고 단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상술했지만 PTSD는 뇌에 심한 손상이 가해지는 것으로, 일반적인 상처에 비유해볼 때 몸에 상처가 생기면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심한 상처는 지혈과 소독 등의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 이후에도 진피가 손상된 상처는 완전히 재생하지 못 하고 흉터가 생기며 그 부분은 다른 피부보다 감염[87]과 손상에 약해지는 것과 같다. [88] 하지만 그렇다고 PTSD는 뇌를 교체하지 않는 한 정신적인 흉터는 남게 되며 치료 이후에도 반드시 재발의 위험이 존재한다라고도 단언할 수 없다. 평생을 증오로 살았어도, 본인이 소화되고 납득되면 해당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 인간이다.[89] 또한 뇌는 약화도 되지만 강화도 되고 원상복구도 한다. 피부가 덧나서 영구적인 흉터가 생긴 거를 뇌에 바로 대입하기에는 판단이 이르다.

충격적인 사건을 당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은 정서적인 지지와 그 사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것이다. 또한 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이완요법 등의 적응 방법을 교육하는 것도 좋은 치료 방법이다.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질환과 치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개인의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면 예후가 좋은 편이지만 정신력이 강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환자는 초기에는 불안과 공포 등의 증상을 경험한다. 하지만 정신력이나 의지드립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의지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질병 자체가 전쟁, 또는 각종 극한상황 때문에 발생하는 병이고, 그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발생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의지가 강한 사람일 수록 오히려 무너질 때의 위험도가 높다는 점도 주목해야 하는데, 베트남전에서 수십 명의 베트콩을 저격한 유능한 저격수가 죽기 직전의 베트콩의 얼굴을 우연히 보고 나서 고통을 겪게 된 일화도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된 대로 PTSD의 원인이 되는 경험은 개인의 경험에 근거하는 경우와 조직으로서의 경험에 근거하는 경우로 구분된다. 이 중 조직으로서의 경험 또는 단체가 겪은 사건의 경우 경험자간의 동지의식을 통해 상대적으로 충격을 완화할 수 있으며 동시에 같은 사건을 경험한 경험자들(군대라면 전우들 특히 한솥밥을 먹고 함께 사선을 넘은 같은 소대원이나 중대원들)이나 적어도 같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서로 의지함으로서 후유증을 비교적 줄일 수 있음도 수 차례의 전쟁에서 발생한 귀환병의 카운슬링 과정에서 입증되어있다. 이런 특성이 제1차 세계 대전이나 제2차 세계 대전에 비해 베트남전 및 이라크 전쟁 등 최근의 전쟁에서 PTSD 발생 빈도가 급격히 올라간 중요한 원인이라는 설도 있다. 앞의 두 전쟁은 병사들이 싸워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었지만 후자들은 그것이 확실치 않다는 점에서 병사들의 심적 부담을 한층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연관된 의미 있는 한 베트남전 참전 용사의 발언이다.
참전장병들의 대우에 관한 미군 지도부의 최악의 오책은 바로 베트남에서 복무가 끝난 우리들을 비행기에 넣어 바로 미국 본토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세계대전 당시의 병사들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과 함께 집에 돌아가는 기쁨, 귀향 후 하고 싶은 일들, 전쟁 중 받은 상처들에 대해 몇 주 간이고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내다 본토로 돌아올 수 있었다면 참전장병들의 PTSD 문제는 훨씬 덜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더 이상 볼 일이 없으니 꺼지라는 것처럼 하루만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돌아와 내팽개쳐졌고 우리들은 하룻밤만에 이번에는 서로의 등을 지켜줄 전우가 없다는 점에서만큼은 베트남의 정글보다 훨씬 가혹한 새로운 전장에서 혼자 버려졌다. - Mekong First Light, Joseph Calloway Jr.
책임자들이 적절한 정신적 도피처를 제공하는 것으로 비교적 쉽게 PTSD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으나, 문제는 이와 같이 PTSD를 줄이는 방법이 반대로 PTSD를 일으킨 이들을 겁쟁이로 모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PTSD 환자들이 겁쟁이로 몰린 이유에는 바로 저 문제, 즉, '전우들과의 교감을 통해 어떻게든 그 충격을 이겨낸 사람'이 많았기 때문도 있다. 상대적으로 전우들과의 교감이 부족했거나(이 문제 때문에 군 내부에서의 왕따기수열외가 위험한 행위다.), 아니면 처음부터 이겨낼 의지가 부족했던 사람일수록 더 쉽게 PTSD를 일으켰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전우들끼리는 누가 저런 상태인지를 더 쉽게 파악하고 자신과 다른 동료들의 걸림돌로 간주하는 자기보호기제가 형성되기 쉽다는 것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는 전우들의 도움이 부족해 끝내 이겨내지 못 한 자들을 이겨낸 자들이 겁쟁이로 치부하는 어불성설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징병제인 한국군의 경우 전시에 이런 문제가 더 심할 가능성이 크다.

PTSD를 이겨내는 방법은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자신이 참전했던 전장에 대한 당위성과 정당성을 부여, 자기합리화를 시행해 정신적으로 이겨내는 방법도 있다. 또한 정신과 의사들은 재향군인회 같은 곳에 들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권하기도 한다.

중동에 참전한 미군들의 PTSD 문제가 심화되자 동물치료나 요가 치료 풀 스펙트럼 워리어 같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스스로가 알아가도록 돕는 등 다양한 치료가 시도되는 중이다.

다음은, 미국에서 6.25 전쟁에 참전한 후 PTSD를 아직까지 앓는 노병들에게 정신과 의사들이 권하는 치료 방법에 대한 얘기이다. 한국 전쟁은 미국에서 잊힌 전쟁(Forgotten War)로 불릴 만큼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데다 전쟁 자체도 끔찍해 전후 PTSD 환자들 중 심적 부담이 큰 전쟁중 하나였다. 거기에 2차대전 처럼 명확한 승전으로 끝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휴전으로 끝나 미국 내에서도 반응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제 냉전의 시대가 열렸는데, 소련도 아니라 중국에 비긴 모양이라, 2차대전 용사들처럼 당당하게 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국전 60주년 기념으로 KBS가 미국에서 취재했던 한 노병은 PTSD 증상으로 60년이 넘도록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담당하는 의사가 약물 처방 대신에 "한국은 당신들 덕분에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보고 오라."는 진단을 내렸고 한국전 60주년 기념으로 초청된 그는 발전한 서울 거리를 보며 놀라고, 자신이 싸우던 주요 능선들이, 시가지로 개발되어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걸 보고 인터뷰에서 내가 진정 가치 있는 일을 했구나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 밖에도 전쟁 후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노병들 또한 내가 싸웠던 명분을 찾았다며 만족해했다. 무엇보다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인 북한이라는 훌륭한(?) 비교대상이 있어 효과가 배가된다.[90]

이는 "어째서 2차 대전 참전용사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에 비해, 그리고 한국 전쟁 참전용사가 베트남전 참전용사에 비해 훨씬 PTSD 환자 숫자가 적은가?"에 대한 아주 명쾌한 해답을 제공한다. 적어도 참전용사들의 PTSD 증상은 그들이 행해야만 했던 살상행위에 대한 정당화 기제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국들은 당시 자국의 군인들을 잔혹한 추축국에 대항해 인류의 존엄을 수호한다는 인류의 자유를 지키는 반 전체주의 성전의 전사로 추켜세웠다. 1942년 8월 한 달 동안에만 인디애나폴리스에서 7명이 모병에 떨어졌다고 자살하는 일이 일어났다. 징병도 아니고, 즉, 본인이 군대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고 비관해서 자살했다는 소리다. 이 정도로 당시의 참전 열기는 뜨거웠으며 비단 인디애나폴리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징병검사에서 탈락한 이들이 자살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그리고 이들은 현지 민간인들에게 해방자로서 환영을 받고 수십 년 뒤까지도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당한 대의 아래 적의 정규군을 상대로, 전시국제법을 최대한 지키면서 맞서 싸운 끝에 당당하게 승리했으며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대규모 승전 기념 행사를 치르고 그들이 받아들이고 감내한 고난에 대해 끊임 없는 사회의 경의와 찬사를 받는 2차 대전 참전용사가 민간인, 포로 학살이라도 하지 않은 한 자신의 살상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매우 용이하다.

한국 전쟁 참전용사는 2차 대전 참전용사처럼 궁극적 승전이나 대규모 승전 기념 행사, 넓은 사회적 관심을 얻지는 못했으나 부당한 침략으로부터 연약한 신생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구원한다는 대의 아래 북한, 뒤이어 중국, 소련의 정규군과 싸웠으며, 훗날 자유롭고 번영하는 국가가 된 대한민국의 감사를 받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만큼 호의적인 환경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PTSD 발병률이 낮을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전 참전용사는 제국주의적 침략이라는 반전 여론 아래 여자, 어린이, 노인을 포함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웠으며, 그들이 지키기 위해 싸운 남베트남은 끝내 멸망했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영아 살해자(Babykiller)"라는 사회적 냉대와 빈번하고 직접적인 타인의 모욕에 노출됐다. 자연히 자신의 살상행위에 대한 정당화는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PTSD 발병률은 어마어마하게 치솟았다. 이라크 및 아프간 참전 장병들의 PTSD 문제 또한 위의 베트남의 경우와 바로 딱 들어맞는다. 그나마 아프간은 종교 광신집단 탈레반이 적이고 9.11의 복수라는 명분이라도 있지, 이라크는 그것도 없다. 고대부터 존재했던 전쟁에 대한 질문인 '왜 전쟁을 하려면 대의명분이 필요한가'의 또다른 해답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한 가지 반론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서부 전선의 참전용사보다 태평양 전쟁의 참전용사의 PTSD 발병률이 높다는 반론이 있다. (발병률 통계 자체의 신빙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는 '정당화 기제'와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작용한다. 태평양 전쟁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태평양 전선의 환경은 유럽 서부 전선과는 전혀 달랐다. 서부 전선의 나치 독일군이 광신적인 나치즘에 빠졌다곤 해도 항복거부하고 특공하는 등 정신나간 행위는 그리 많지 않았다.[91] 이러한 상황에서 참전용사들이 받은 육체적, 정신적 충격은 엄청났고, 비록 태평양 전쟁의 참전용사들이 서부 전선 참전용사들과 동등한 수준의 '정당화 기제'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으로도 그 충격을 무마하기엔 부족할 지경이었다. 자연 환경 또한 대부분이 열대나 고립된 섬으로서 기후는 물론 문화적인 동질감이 강한 서유럽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으며 나치즘에 대한 비판과 비난, 그리고 부도덕성에 대한 주목은 지속적으로 환기되었으나 일제의 만행이나 적이 었던 일제의 부도덕성이나 그에 따른 자신들의 정당성 확보는 서유럽 보다 다소 약한 면이 있었고 되려 이런부분에 대한 주목은 2000년대 이후 한국과 중국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되레 주목 되었지 태평양전쟁은 미국 사회에서 꽤 소외된 전장이었다.

PTSD를 완화하는 치료방법으로는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이 있다. 2004년 미국 정신의학회가 PTSD 치료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인정한 치료이며[92] 이는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는 동시에 치료자의 지시에 따라 눈을 좌우로 굴리며 소리를 듣거나 촉각을 느끼거나 하는 활동을 하는 것으로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기억이 덜 불편하게 느껴지게끔 하는 것이다. REM 수면에서 안구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하며 괴로운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거나 잘 기억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전문 자격 훈련을 받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임상심리전문가에 의해 시술받아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어설프게 따라했다가 실제로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보고되었다. 절대로 따라하려고 하지말자. 수면과 유사한 기전, 혹은 안구를 굴리는 행위가 PTSD 기억과 연관된 뇌내 시냅스 연결의 재구축에 기여하는 것이 효과의 기전으로 추정되는데, 어설프게 했다간 시냅스 연결이 더 강화되어 외상성 기억이 보다 강하게 각인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일반인에게는 불면증 치료용으로 응용되기도 한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테트리스를 잡는 것도 도움이 된다. 테트리스를 한 쪽이 안 한 쪽보다 플래시백이 줄었다. 사고 순간을 떠올리면서 테트리스를 하면 EMDR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


또 한 가지는 PTSD 소리 요법을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것이다. 2014년 9월 11일 9.11 테러를 추모하며 테러 피해자들의 PTSD 회복을 기원하면서 만들어졌다. 자사 홈페이지에서 10달러에 판매하고 있으나 다행히 유튜브에서 무료로 들어볼 수 있다. 주변에 PTSD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권유해보도록하자.

존 브래드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를 보면 어린 시절에 겪은 PTSD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소위 내면아이 치료법이라는 것은 실제 PTSD와는 전혀 이론상의 접점이 없다! 정말로 유년시절에 성폭력을 당하는 등의 외상을 겪은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은 그런 류의 책들이 예상하는 흔한 독자들보다 훨씬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사실 내면아이 치료법이라는 것 자체가 임상심리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심리학의 링으로 올라와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은 2015년 현재까지는 사실상 없다시피 한 치료법이다. 공연히 공허하고 우울하고 슬프고 짜증이 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어줄 수는 있으나 문제는 그런 수준의 정서적 부전 상태를 보고 PTSD라고 말하는 심리학자는 없다는 것이다.[93]

상이용사들을 대상으로 한 PTSD 연구는 미 육군부 등을 중심으로 하여 임상심리학, 군사심리학, 상담심리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특히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온 병력들의 사후조치라는 측면에서 수요가 굉장히 높은 응용심리학 분야이다. 이런 연구의 최신 흐름에서는 개인 내적인 인지적 측면이나 의료적 개입(intervention) 외에도 가족 친지들이나 친구들과 같은 사회적 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인 내적 측면에 대해서는 일명 "배틀마인드(BATTLEMIND)[94]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어떻게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인지적 평가를 할 것인지를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

고압산소요법(HBOT: hyperbaric oxygen therapy)이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면 국내에서는 6.25나 월남파병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PTSD 연구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불행 중 다행히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하여 PTSD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간접적 외상에 대한 상담 서비스를 홍보한 것도 사상 처음일 정도이다. 이 분야 연구가 활성화되고 더 많은 국민들이 PTSD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버린다면 더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지원과 개입을 받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보면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는데, 전쟁과 사고, 학교폭력, 그리고 성폭력은 사람을 이렇게 망가뜨릴 정도로 끔찍하다는 것, 따라서 미디어 매체에서 보이는 폭력과 유혈 등 여러 묘사에 익숙해저 이들이 겪을 고통에 무심해지는 것은 크나큰 문제라는 점이다.

9. 외상 후 성장설

양들의 울음소리는 멈추었나?
<영화 양들의 침묵 中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스탈링에게 한니발 렉터가.>

기존에는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PTSD에 걸리는 사람과 걸리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 알려져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화가 가능한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PTSD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고 긍정심리학과 같은 분야가 각광을 받으면서 크게 네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모두 공통적으로 외상적 사건을 경험했으나…
  1. 그 사건에 완전히 압도당해 폐인이 되는 경우: 이 경우라면 조현병 등등 정신증에 해당하는 진단명이 붙게 된다. PTSD에서는 그 환자들의 현실검증력은 멀쩡하다.
  2. 그 사건 이후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 기존에 알려진 PTSD
  3. 그 사건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하는 경우: 외상 후 회복, 일명 "회복탄력성"(resilience)
  4. 그 사건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내적으로 성장하는 경우: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바람직한 케이스는 4라고 할 수 있다. 철부지가 충격적인 일을 겪고 갑자기 철이 든다거나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오히려 냉정침착하게 대응한다거나 등등. 어떤 요인이 어떻게 해서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위키에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태다. 많은 상담가들은 외상적 사건을 겪은 내담자에 대해서도 그들이 내적 성장의 기회로 삼아서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전보다 더 큰 희망을 갖고 있다.

아픔을 겪고 극복하는 외상후 성장을 이룬 사람이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을 위로하고 도우며 큰 도움이 되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사례를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고 부른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가 이태원 압사 사고 생존자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어 준 사례 세월호 생존자가 아동청소년의 트라우마 치료를 돕는 사람이 된 사례

10. 유전

후성유전학에서는 PTSD가 유전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신경과학센터 이사벨 만수이 교수팀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후천적으로 생긴 트라우마가 정자를 통해 후대로 유전될 수 있다는 논문을 실었다. 트라우마를 겪은 쥐는 피와 뇌와 정자에서 특정 마이크로 RNA가 과량 검출되는데 새끼 쥐도 그러하고 트라우마를 겪은 쥐의 새끼는 이상 행동을 보이거나 인슐린이나 혈당 수치가 비정상적임을 밝혀냈는데 트라우마가 3대를 유전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2차대전 막바지 네덜란드에는 기근이 들었는데 기근이 휩쓴 뒤에 태어난 이들은 그 전에 태어난 이들보다 기대 수명이 더 짧고 비만당뇨조현병의 발병률이 더 높았다.

레이첼 예후다 박사가 이끄는 미국 뉴욕 마운트시나이 병원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생물정신의학'에 홀로코스트 생존자 자손의 스트레스 장애 위험이 2차대전에 유럽 밖에 있어서 홀로코스트에 안 휘말린 유대인의 자손보다 크다는 연구 보고서를 제출했다.

샌프란시스코 ‘가족 포치 연구소’ 소장인 저자 마크 월린은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라는 책을 써서 PTSD가 3세대를 넘어서 유전된다며[95] 조상의 PTSD가 후손의 말에 반영되기에 말에서 조상의 트라우마를 찾아내고 이걸 후손이 깨달으면 유전된 PTSD를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1. 대중매체에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PTSD/대중매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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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니메이션 등 대중 매체에서 나타나는 PTSD의 묘사 및 PTSD 증상을 보이는 등장인물의 목록은 PTSD/대중매체 문서에 있다.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 묘사되는 PTSD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특정 상황이 되면 공황상태에 빠지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식으로 기본적인 틀은 비슷하지만, 그러면서도 일상생활이 문제 없이 이루어지고 주변에서도 관대하게 받아주는 등 각색이 심하다. 일부 창작물에서는 자폐증과 혼동하기도 한다. 각색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진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조건이 조금이라도 맞으면 바로 거부반응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자제한다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고, 단순히 주변에서 조심한다고 환자의 파괴적 행위가 줄어드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은 대개 다독여주는 건 고사하고 환자의 행동거지를 못 버텨서 하나둘 관계를 끊고 떠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아무리 좋게 봐도 매체에서 비추는 것처럼 성격 좀 괴팍해지고 가끔 애꿎은 사람에게 흉기를 휘두르거나 염세적인 일침을 날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그런 수준의 증상은 아니다. 간헐적 폭발 장애와 합쳐지면 예시로 든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순 있겠지만 이쪽도 현실에선 더 암담한 결과가 기다린다.

물론 매체에서의 각색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령 PTSD에 시달리는 인물이 주연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 증상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매달리는 순간 스토리 분량을 굉장히 많이 할애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고, 묘사 과정에서 질환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과정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게 된다. 주연일 때 발생하는 문제만 해도 이렇다 보니 해당 인물이 조연일 경우 굳이 리스크를 질 이유도 없고, 애당초 정신질환이란 것이 좀처럼 겪기 힘든 것들이라 미경험자가 공감하기 힘들다는 점[96]도 감점요인이다. 따라서 일부러 묘사를 조금 가볍게 만들어 묘사 난이도를 내리는 것.

그리고 대체적으로 대중매체의 특성상 PTSD가 있다 하더라도 외상 후 성장을 통해 그저 인물이 겪는 하나의 장애물 중 하나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에 묘사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설령 그 증세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제작자들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앞서 말했듯 PTSD를 다루기 위해 시작한 작품이 아닌 이상 PTSD 묘사에 너무 치중하다간 다른 재미 요소를 다 까먹고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가기 쉽기 때문에 일부러 PTSD 묘사를 적당한 선까지만 다루고 극복하는 전개로 되는 경우가 많다.

드물게도 이런 PTSD의 성질을 잘 묘사해 놓은 게임이 스펙 옵스: 더 라인. 주인공이 점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미쳐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97]

12. 기타

관련 질병으로 C-PTSD가 있다. Complex PTSD의 약자로, 장기간 지속적, 반복적으로 노출된 트라우마로 형성된다. 대부분의 경우 유아기에 지속적인 학대나 폭력, 정서적 학대, 언어폭력, 성적 학대, 방관, 혹은 그런 상황을 오랫동안 관찰하게 하는 행동 등에 노출되어 발생한다. 정신 상해를 지속적으로 입었기에 사고 방식 자체가 변하고 신경이 일부 손상되기까지 하는 병이므로 동시에 신경 관련 질병으로도 분류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PTSD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그러므로 치료도 어렵고 예후도 상당히 안 좋다.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인 조지 칼린은 PTSD라는 용어 자체를 비판한 적이 있다. 1차 대전 때는 shell shock라는 직설적인 용어를 썼는데 이후 battle fatigue, oprerational exhaustion,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점점 길고 완곡하며 인간적인 요소가 제거된 용어를 씀으로써 그 본질을 가리려고 한다는 것. 돌려말하는 완곡어법에 대한 비판은 칼린 코미디의 주요 주제 중 하나다.

여담으로 PTSD를 가리켜 미국에서는 '베트남 증후군(vietnam syndrome)', 러시아에서는 '아프간 증후군(Афганский синдром, Afganskiy Simdrom)'이라는 속어로도 부른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러시아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PTSD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했기 때문.
혹자는 이를 보고 "국가가 전쟁에 나가는 방법만 알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라고 코멘트하기도 했다.



'아프간 증후군(Афганский синдром)'
그라지단스카야 오브로나(Гражданская Оборона), 앨범 '생존 가이드(Инструкция по выживанию, 1990)' 수록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진지하게 질병이 아닌 그냥 과거에 안 좋은 경험이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유머글이나 이미지, 영상을 보고는 PTSD가 온다 식의 드립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한편 이런 농담이 매체들에서 가볍게 각색해버리는 것처럼 또 다시 신경정신 질환들의 인식을 가볍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13. 참고 자료

본 문서에서도 내용의 상당부분을 인용하고 있는 <트라우마>라는 책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저자인 주디스 허먼(Judith Herman)은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로, 케임브리지 병원 '폭력 피해자 프로그램'의 교육 이사를 맡고 있는데, 본인과 동료 상담가들이 실제로 환자들과 내담한 사례들을 예시로 들어 PTSD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력, 사고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PTSD의 사례를 설명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과 자세에 대해 깊이 분석하고 있다.

또한 데이브 그로스먼(Dave Grossman)의 <살인의 심리학>과 <전투의 심리학>에 대해서 읽어볼 것을 권한다. 저자 그로스먼은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심리학과 아칸소 대학에서 군사학을 가르친 예비역 중령으로, 전문적인 지식으로 범죄, 화재, 전쟁과 같은 PTSD 유발 상황에 놓인 경찰관, 소방관, 군인, 교도관 등의 심리와 그 현장을 벗어난 이후에 닥쳐오는 심리적 압박감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했다. PTSD의 치료법과 마음가짐도 자세히 서술했다.
[1] 직역하면 '트라우마(외상) 이후의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가 된다.[2] 경찰과 모친이 전투 상황이라는 착각에 빠진 참전용사를 안심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참전용사는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계속 차 옆에서 엄폐 자세를 취하던 참전용사는 지원 온 참전용사 경관이 'I’m a friendly, I was down range, that’s been searched, the AO is clear(나는 아군이다, (나도) 최전선에서 싸웠다, 저 쪽 수색이 완료되었고, 작전지역이 정리됐다)\'라고 익숙한 현장 용어로 현실을 치환해서 대화하자 전투가 끝난 줄 알고 착각에서 벗어나 기절한 뒤 구급요원에게 부축되어 실려간다.[3]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배우.[4] 다만 이 말은 미국의 작가인 옥타비아 버틀러가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5] ‘정신적 외상’이란 충격적이거나 두려운 사건을 직접 당하거나 생생하게 목격하는 것을 말한다.[6] 보통 그럴 경우에는 다른 정신질환이 같이 온다. 물론 다른 정신질환들도 그렇지만 비난 가능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다양한 논쟁거리 속에서 정신질환인(정신장애인) 당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부득이한 처지에 대한 고려라는 인권적 논제는 특히 한국에서는 간과되고 있는 실정이다.[7] 슬럼은 전자, 바이킹은 후자다. 바이킹은 종교적 특성상 전사한 남자는 천상에서 대우받는다고 여겨서 전사하는 것을 명예로 여겼다. 늙어 죽을 사람이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심장을 칼로 찌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8] 이런 식으로 '자신은 더 힘들었다'며 자신이 겪은 아픔에 비해 상대의 아픔을 과소평가하고 하찮게 취급하는 것은 의외로 일상에서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라떼는 말이야. 그렇다고 PTSD를 진단받을 정도로 큰 아픔을 겪은 같은 환자들끼리라면 서로의 아픔에 잘 공감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다. 설령 동일한 사건의 피해자라 해도 다른 삶을 살아온 독립된 개체이므로 대립과 다툼은 피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사고 이후 5년간의 이야기를 정리한 책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를 보면, 동일한 사건을 겪었음에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유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나온다.[9] 아예 정신건강의학과(구 신경정신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먹고살기 바빠서 다리가 부러져도 겨우 치료하던 시절이었다.[10]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였으므로 파급력이 더 컸다. 특히 야간정액제가 사라지고 xDSL기반 회선이 보급된 것도 한몫했다.[11] 국내 학회들의 동향을 보면 PTSD 관련 프로시딩이 의외로 많이 나온다.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게 중독.[12] 미국의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조지 칼린이 이를 비꼰 적이 있었다. 'Shell shock'라는 아주 직관적인 단어로 표현하면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쉽게 와닿았겠지만 자꾸만 좀 더 현학적이고 난해한 용어로 지칭되다보니 그만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사람들이 둔감해진다는 게 그의 주장. 물론 개그는 개그로 받아들여야 한다.[13] CSR: Combat Stress Reaction. 일명 전투신경증[14] 그 전에는 포격쇼크증, 전쟁신경증, 전투신경증 등으로 알려졌었다.[15] 심지어는 몇년간 휴대폰을 잡지 못할정도로 고통받기도 하며, 공포영화의 비하인드 씬(가짜신체나 시체를 만드는 과정 혹은 배우와 시체가 같이 찍은 기념사진-쏘우시리즈는 이 과정을 간접적으로 영상 혹은 사진으로 남긴다.-혹은 카메라 기법으로 분장티 덜나게 하는 것.)을 보고서야 실상황이 아닌 연출임을 인지하고 납득하여 공포에서 벗어나기도 한다.[16] 물론 정의와 가치관 확립이 되지않고 전두엽 발달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계속 폭력적인 상황과 사상 교육에 노출된다면 이 역시 가능하다. 실제 현실 사례로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가슴에 폭탄메고 AK-47 들고 미군들과 싸우는 IS가 있다. 당연히 굉장히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17] 애니메이션 중에는 레스톨 특수구조대의 주인공 강마루 등의 예시가 있다.[18] 6.25 전쟁 참전유공자들이 참전유공자 청와대 초대 행사에서 일제히 "이 땅에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가 그 전쟁을 한 번 겪는 것 조차도 충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하던 전우가 앞에서 쓰러져가는 걸 본 사람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괜히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나 이미 유로마이단을 기점으로 탈나치화가 완료되었음에도 불구, 탈나치화를 명분으로 재미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폭살하고 다니는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군이 괜히 미친놈, 악마의 자식들이라고 까이는 게 아니다.[19] 밴드 오브 브라더스 7편의 새로 부임한 다이크 중위가 어리버리 까면서 보게 된 장면이 (실제로는 다급한 목소리였겠지만) 부하들의 느려 터지게 들려대는 명령 요구였다.[20] 게임 울펜슈타인 3D에서 각각의 미션을 마치면서 나오는 스코어 장면에서 격하게 숨만 고르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주인공 B.J. 블라즈코윅즈의 모습이 있다. 앞 문장에서 나오는 증상을 현실적으로 표현했다.[21] 그러나 놀랍게도 가장 부차적인 원인이다.[22] 이는 열거된 원인 중 가장 강력하다.[23] 여기서 말하는 부인(Denial)은 정신 방어기제의 한 종류로 절대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수용하기엔 너무 큰 충격을 받을 때 아예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가 오진이라고 굳게 믿는 등의 행동이 이에 해당된다. 방어기제 문서의 '부정' 문단으로.[24] 김준기 (2009),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시그마북스, p. 129[25] 후술되어 있듯이 마초성이 두드러지는 군대의 특성상 한국 뿐 아니라 어느 나라의 군대든 이런 흑역사가 있다.[26] 의지드립은 정말로 간편한 미봉책이었다. 모든 것을 의지로 연결시켜 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묻어버리면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잡한 이야기보다 그게 더 편하고 쉽기에.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명확한 것이 밝혀지고 있다. 어쩌면 사회 자체가 모든 문제를 의지라는 마약을 통해 해결하려 했을 지 모른다.[27] 대한민국 기준에서 이런 의지드립으로 설명할 수 없는 대표적인 대상을 예로 들자면 참전 용사들인데 6•25 전쟁 참전 용사분들도 PTSD 피해자들 중 한 부류이다. 그 분들은 정말 의지가 나약해서 전쟁이 끝난 지 오래임에도 그런 증상을 겪고 있는걸까? 자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런 의지드립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다시 한 번 인지해야 한다.[28] 다만 이 설정은 1편만 통한다. 람보 1편은 PTSD와 반전주의를 다룬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걸작이지만 2편부터는 평범한 액션 영웅이 나온다. 하지만 마지막 편인 람보: 라스트 워에서는 PTSD에 시달리는 존 람보의 모습을 잘 보여주며 람보 시리즈를 좋아한 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다만 결말이 너무 어둡다는 점에는 호불호가 갈렸다.[29] 이마저도 대부분 정당방위로 피해자가 매우 적은 케이스다.[30] 코르티솔의 과다분비가 해마의 기능을 저하시킨다. 이는 PTSD 뿐만 아니라 우울증같이 만성적인 질환에도 해당된다.[31]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최근 미군에서 전역 군인들 다수가 노숙자로 전락해 거리를 떠돌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전장에서 싸운 참전군인들. 그래서 미국 드라마에서는 팔루자 전투에 참전했었던 군인 출신 노숙자와 같은 유형의 캐릭터들이 종종 나온다.[32] 흔히 말하는 훈련소[33] 참고로 이 사람은 태평양 전쟁이나 한국전 당시 포로 생활을 하고 귀환한 장병들을 영웅시하는 것도 대단히 싫어했다고 하며 용감성 같은 부분과는 별도로 이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34] 대망 시리즈로 유명한 야마호카 소이치의 소설 <태평양 전쟁>에서 솔로몬 군도 부분에서 어려움에도 처절하게 싸우는 일본군과 PTSD에 시달리는 미군들을 비교해서 조롱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패전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그럴 정도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껌만 짝짝 씹다가 항복하는 미군들"이라고 비하하는 목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퍼지긴 했는데, PTSD 상황에서 부대의 정신력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는 걸 보면 '비겁한' 미군을 비웃을 처지가 안 된다. 오히려 이런 짓까지 주저 없이 저지를 만큼 PTSD가 더 심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35] 실제로 각국의 학교에서는 잊을 만하면 학교폭력 피해자에 의한 보복살인이 벌어진다. 성인이 된 뒤에 복수하는 일도 많다. 참고로 살인은 아무리 정상참작을 받더라도 이후 인생이 끝장나는 건 물론 최소 수 년의 징역이 기다리고, 특히 침해 행위가 끝나거나 노골적으로 괴롭히지는 못 하게 된 성인 이후에는 복수를 해도 정상참작을 받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안다고 해도 보복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인격 장애나 심각한 PTSD 증세로 정신이 심하게 뒤틀린 상태라 후폭풍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고 행동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즉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발생을 막으려면 법보다도 피해자의 정신을 치료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의료 복지가 좋은 나라라도 정신질환 쪽은 미흡한 경우가 많아서 사라지기 어려울 듯하다.[36] 멘탈을 용수철로 비유하면 이해가 더 쉬운데, 용수철은 웬만큼 당기면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한계 이상 당길 경우 돌아오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늘어난다. 재질에 따른 한계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용수철은 한계를 넘어서서 당기면 망가진다. 이처럼 멘탈도 평소 곧잘 상처입고 또 금방 회복하는 걸 반복하지만 한계를 넘어서면 그대로 망가져서 돌아오지 못한다.[37] 가족과 여자친구가 본인 면회 왔다 돌아가던 중에 차량 전복으로 아버지는 중태, 나머지는 사망한 걸 알게된 경우라든지, 치매있는 어머니에게 아기를 맡기고 밖에 다녀왔더니 어머니가 곰국을 끓였다면서 아이를 솥에 넣어 익힌 걸 보여주는 경우라든지, 밤 늦게 술 마신뒤 트럭 몰고 돌아오다가 본인이 걱정돼서 휠체어 타고 나온 어머니를 쳐서 사망시킨 경우라든지...[38] 집단괴롭힘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성인이 된 뒤에도 청소년기처럼 상습적으로 괴롭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통받는 것은 PTSD가 주원인이다.[39] 당시 신경정신과[40] 특히 참사 이후 여러 방송사들에서 생존자들의 고통을 담은 프로그램을 여러차례 내보내면서 대중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41] 다만 상담 스킬상, 상담 대상의 자살 언급이 있었을 경우 오히려 상담자가 이것을 돌려말하는 것(이를테면 극단적 선택과 같은 표현)이 잘못된 대응이고 직접적인 언급을 통해 상황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배운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내담자에게 해당 스킬이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큰 상처를 주고 상담사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만 심어주어 이후 문제가 발생해도 결코 상담에 의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철저히 실패하고 잘못된 적용이었다.[42] 한국전쟁을 겪은 어르신을 보면 너무 쉽게 나온다. 7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지만, 그 전쟁의 상처와 고통, 트라우마가 모두 생생히 남아있다. 어르신에게 북한은 가족을 죽인 원수이자 지금까지 도발을 감행한 주적이다. 그런 어르신이 정말로 두려워 하는 건 바로 전쟁이다. 자신들이 직접 전쟁의 참상을 보았기 때문이다.[43] 실제로 PTSD는 아니지만 학계에 보고된 한 임상례에 따르면, 유년시절에 부모가 없을 때 동네 남성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어느 소녀가 있었다. 나중에 사춘기 때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고 자신이 성범죄 피해자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자, 그에 대한 반동으로 매일마다 그날의 일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에게 병적으로 보고해야만 하는 상태에 이르른 경우도 있다. 부모가 집에 없으면 그날의 일을 일기로 소상히 적어서 부모에게 강제로 읽게 했는데, 이 일기라는 것이 누가 봐도 병적이다 싶을 정도였다고. 성범죄 피해자로서의 삶의 질이 이 정도다. 심지어 이 경우는 일회적이고 경미한(피해자 입장에서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지만.) 사례였는데도.[44] Quality Of Life, 삶의 질을 구성하는 총체적인 요소를 의미한다.[45] 거의 절대다수의 가상 매체에서는 화기의 소음을 후처리하여 원본과는 많이 다르게 만든다. 실제 소리를 그대로 녹음한 작품이라고 해도 그것을 현장에서 듣는 것과 녹음된 것을 듣는 것에는 무섭게 큰 차이가 있다. 음향 기술이 발달되었다고 해도 대부분의 마이크는 총성, 포성을 원래 음량, 음색 그대로 온전히 담을 수 없으며 영화관 수준으로 큰 음향 시설을 쓰지 않는 이상 음량을 축소해서 들려줄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미디어 매체가 적었던 시절에는 이런 후처리된 총성만으로도 놀라는 경우가 발생했다.[46] 위에서 설명한 정신없는 상황을 말한다.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의 바보같은 소리가 아니다![사망경위] 인민군 군관이 집에 찾아와 총살한다. 엄마는 그 광경을 보고 충격을 먹고 나중에 노환으로 다쳐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한 직후 그때 그 광경을 환각으로 본다. 이는 전신마취수술 후에 종종 일어나는 섬망 증세다. 회상장면을 재구성하면 우선 엄마가 '나(작가 박완서 자신)'에게 네 오빠를 숨겨야 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이 회상 중에서 손에 잡히는 자신의 다리를 아들로 잘못 인식한다.) 이후 인민군 군관의 환영을 보고 군관의 환영에게 비굴하게 웃으며 아들이 없다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군관 동무, 군관 나으리,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군관나으리, 우리집에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찾아보실 것도 없다니까요. 군관나으리." 그러나 환각은 오빠의 사망 경위처럼 인민군 군관이 오빠를 찾는 장면으로 넘어가고, 엄마는 오빠를 사살하려는 (환각 속의) 인민군들에게 절규하며 말리려 달려든다. 이 과정에서 엄마를 말리려던 작가는 군관의 환영으로 착각되어 엄마에게 벽으로 밀려 넘어진다. "안된다. 안돼. 이놈. 안돼. 너도 사람이냐?(후략)" 작가는 겁에 질려 엄마를 바라보기만 했다.[원문출처] EBS 2017 수능 연계교재 수능특강 문학 237쪽[49] 신체적 고통은 견디기 쉽고 좋은 회피 수단이다. 이것은 습관성 행태다.[50] 환자 마음은 이런 환경을 싫어해도 신체는 이 환경이 익숙하다[51] 이들은 애니나 영화 등에서도 중독이 나타나기 쉬운데, 늘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폭발할 거 같은 상태로 살고 있기에 절망, 멘탈붕괴물, 극도의 슬픔, 그로테스크, 강렬한 액션 등의 자극이 강하고 동질감을 느낄 작품들을 주로 찾는다.[52] 불교에서 절 수련 시키는 이유 중에는 이걸 깨닫게해주려는 것도 있는데, 절을 하다보면 체력이 없어서 지치는 게 아니라, 올라오는 온갖 회의감, 짜증, 분노, 과거사 등으로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 무거워 지친다.[53] 끝도 없이 떠오르는 당시 상황과, '나'라는 가면을 쓰고 내 안에서 힐난하는 목소리들로 인해 심신이 24시간 내내 1초도 낭비 없이 계속 갈리고 있기에 멘탈 방어력은 0를 넘어 마이너스 상태이다.[54] 그런데 사실 돕는답시고 다가가는 사람들의 태도가 잘못된 경우도 많다. 애초에 이 예시문장에 쓰인 '겉보기엔 정상인 같고~' 운운하는 문장부터가 PTSD 환자의 내적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편견과 몰이해로 점철된 시선이며, 어떻게 대해야 옳은 것인지 전혀 모르는 비전문가가 멋대로 나서서는 함부로 환자 면전에서 의지드립을 치거나, '널 위해 직설적으로 말해준다'라면서 대놓고 '네 잘못이야' 또는 '네가 정신력이 약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해당 카테고리에 설명된 증상들을 가진 PTSD 환자에게 정상인들에게 하듯이 하는 것은, '곰돌이 푸우' 만화만 보고 실제 곰에게 다가가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당장 칼빵 안 나는 거에 감사하는 게 낫다.[55] 해당 과정을 쉽게 말하자면, 우선 자신의 메인 인격(운영체제)이 선하고, 명랑하고, 청결한 성향이었다고 하면, 사건을 겪으므로 인해 해당 사건과 자신의 인격이 얽히게 됨에 따라 뇌 입장에서는 봉인 과정에 들어간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눈 앞에서 죽었는데 본인이 못 구한 경우, 자신의 선한 면, 명랑함에 스스로 가증스럽고 사건을 다시 떠오르게해서 견딜 수가 없어 뇌 스스로가 봉인하고, 청결함도 본인이 쓰레기라는 생각으로 인해 사라진다. 결국 숨은 붙어있고 인생은 살아야하기에 뇌가 어쩔 수 없이 평소에 쳐박아두고 건들지도 않던 인격들과 성향들을 끄집어내서 새 운영체제로 만들어 돌리게 되고 그게 모여서, 메인 인격 대신 돌아가게 된다.[56] 상상임신, 플라시보 효과 등 몸은 생각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57] "학대는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거야."[58] "난 이걸 받을 가치가 없어."[출처]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60]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거냐면, 자기 눈앞에서 동료가 죽어나가고, 불려나간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불려나온 상대편 군인을 죽여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다시 생각난다는 것이다.[61] 아무 행동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웅크리거나 눈을 감거나 귀를 막고 가만히 있는 등의 나름의 방어적인 행동이 포함되기도 한다.[62] 이렇게 기억과 싸우고 진정이 되고 나면 30분~1시간은 정말 우습게 지나간다. 빠져나온다는 것이 스스로 원해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63] 이 대상은 사람 뿐만 아니라 상황, 물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물체(벌레, 지저분함, 냄새) 등도 포함된다. 약간이라도 이성이 남아 있으면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이 보통이나, 이성적 판단이 흐려질 정도로 심한 경우 단순한 공포를 넘어 생존의 위협으로 간주되어 방어기제가 우선시 된다. 이는 극단적인 PTSD의 위험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64] 교통사고를 당한 한 사람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교통사고 당시 잠들어 있어서 사고에 대한 기억은 깨어나서 얼굴에 피가 나 있다는 것 밖에 없다. 즉 그의 의식에는 사고 당시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고 당시처럼 조수석에 앉으면 본능적으로 몸이 위축되고 불안해지며, 이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동안 내내 계속된다. 이것도 일종의 플래시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설사 영상화 된 기억이 없다고 해도 몸은 그 사고를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65]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상황에 한정[66] 해리의 초기 증상이다. 시야는 특정물체를 주시하지 않고 소리에 반응조차 하지 못한다.[67] 해리상태인 사람은, 증상은 심각하지만 자신의 인격은 내부에 제법 무사히 보호받는 상태이다. 거듭 말하지만 해리 또한 뇌가 스스로 발현한 자기보호체계이며, 현실도피와 현실회피 또한 나약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자기보호체계다.[68] 이 대상은 사람 뿐만 아니라 상황, 물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물체(벌레, 지저분함, 냄새) 등도 포함된다. 약간이라도 이성이 남아 있으면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이 보통이나, 이성적 판단이 흐려질 정도로 심한 경우 단순한 공포를 넘어 생존의 위협으로서 간주되어 방어기제가 우선시된다. 이는 극단적인 PTSD의 위험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69] 단, 정신적으로 상당히 망가지지 않더라도 이러한 폭력성은 얼마든지 발현될 수 있다. 단지 치료가 수월하느냐 어렵느냐 차이다.[70] 폭행을 당했거나, 성폭력을 당했거나, 전쟁 중 적에게 기습당했거나 심지어는 적에게 포로로 잡힌 적이 있거나 하는 등의 상황에 있었던 사람들.[71] DSM-IV 이후로는 로마자가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72] 예: 변사체 처리의 최초 대처자, 아동 학대의 세부 사항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찰관.[73] 예: 플래시백.[74] 그 경험이 되살아나는 기분, 착각, 환각, 그리고 해리적인 Flash Back 삽화를 포함하고, 이런 것은 각성 상태 또는 중독 상태에서 생길 수 있음.[75] 이러한 반응은 연속선상에서 나타나며, 가장 극심하게 표현될 경우 현재 주변 상황에 대해 완전히 인식하지 못할 수 있음.[76] 두부 외상, 알코올, 약물 등 다른 원인들 때문이 아니며 전형적으로는 해리성 기억상실에 의함.[77] 예: “나는 나빠”, “아무도 믿을 수 없어”, “세상은 전적으로 위험해”, “나의 신경계 전체가 영구적으로 망가졌어”.[78] 예: 공포, 분노, 죄책감, 수치심.[79] 예: 행복감, 만족, 또는 사랑하는 감정을 느낄 수 없음.[80] 잠들기 어려움 또는 잠을 이어서 자기 어려움 또는 불안정한 수면.[81] 정서적인 안정, 감각 인식 등 다양한 방법을 다들 내세우지만 사실 임시방편이고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떻게든 소화하지 못한다면 고통은 절대 끝이 안 난다.[82] 일단 이들은 '왜 하필 나한테?'라는 거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괜히 PTSD환자들이 종교, 철학에 빠지는 게 아니다.[83] 평소 매일같이 고통스런 기억이 떠오르지만, 정작 제대로 마주보려하면 극심한 충격량 때문에 심신이 자동 차단하여 보호한다. 호흡곤란, 현기증, 급탈진, 무감각 등등. 그렇기에 치료를 위해서는, 한번에 마주보는 게 가능해질 때까지 조금씩 그 기억에 붙은 감정, 생각들을 날려 줄이거나, 충격을 버틸만한 정신력, 체력을 키우도록 하고 있다.[84] 이 생각들은 수많은 자아의 형태를 가지고서 매일같이 환자 자신의 이불킥 가능한 온갖 과거를 생생히 들먹이며 쓰레기, 패배자 등등의 욕을 섞어 매우 논리적이고 가슴을 후벼파는 말들을 머릿속 사방에서 계속 해대는데, 이 속에 있다보면 인파로 가득찬 시장 바닥에서 하루종일 서있는 느낌이 든다. 특히 현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을 대신하여 본인의 자아가 그들의 말을 그대로 머릿속에서 하는 건 정말 견딜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주변에서 누가 뭔 얘기를 하든, 뭐를 보든 간에 수많은 생각들의 소리에 파묻혀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고 제대로 의지대로 생각할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1초에 수십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상황으로, 수많은 말들 속에서 제정신 차리고 본인 의지로 생각하려면 입 밖으로 중얼중얼 자기 귀에 들리도록 독백을 해서 실제로 자기 의지로 생각하는 지를 인지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상한 논리와 자기합리화에 끌려가다 나도 모르게 상대를 흉기로 찌르거나 창 밖으로 몸을 날릴 수도 있다.[85] 1단계인 안정화만 이루어져도 생활에 지장이 없어지므로, 굳이 2단계 이상을 나가서 완치를 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다. 정신병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병도 결과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증상이기에, 증상만 사라진다면 굳이 완치를 해야 할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천식을 예로 들면, 천식이 당사자에에게 끼치는 문제는 호흡이 곤란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호흡하는데 지장이 없어진다면 천식이 있다고 해도 당사자에겐 불편이 없다. 따라서 증상만 완화시키면 굳이 완치까지 할 필요 없는 것과 비슷하다.[86] 예를들어서 전쟁터에서 얻은 PTSD가 완치되지 않더라도, 플래시백, 신체적 불편감, 정신적 불편감 등등의 증상때문에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증상만 일어나지 않게 해주는 안정화만 성공한다면 완치되지 않았다고 해도 당사자인 본인의 생활에 지장이 가지 않는다. 때문에 1단계만 잘 이루어지면, 완치가 된다면 더 좋겠지만 굳이 이후단계를 밟아 완치하는 것까지는 필요치 않을 수 있다.[87] 포경수술이 에이즈 감염 확률을 높이는 이유다.[88] PTSD는 완치가 불가능하여 불치병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치료 후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기능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완치가 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예를 들면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은 현재 불치병이지만 약으로 증상을 억제할 수 있기에 불편하지만 관리할 수 있어서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평생 헌혈을 못 하고 노콘을 하면 안 되고 여자의 경우 수직감염의 위험을 안고 출산해야 하는 등 평생 불편하게 관리하면서 살아야 할 위험을 안고 사는데 이러는데도 불치병이라고 안 적시하면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또한 남성형 탈모만 해도 탈모약을 꾸준히 복용해서 진행을 늦출 수 있으나 막지는 못 하고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게 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기에 엄연한 불치병이라고 말한다.[89] 어머니의 화상 때문에 평생을 남 눈치보며 살았다며 증오 속에서 모든 걸 어머니 탓하던 사람이, 자기가 갓난아기일 때 어머니가 불 속에서 자기를 구하고 그렇게 됐다는 걸 알고 고통에서 벗어난 사례도 있다.[90] 실제로 북한이 완벽한 막장 상태로 빠진 고난의 행군 이후 30년 가까이 그 상태를 탈출하지 못한 채 핵개발이나 대남 도발처럼 우방국인 중국조차 변호하지 못 할 행위를 계속 저지르는 걸 본 중국인들이 북한을 비난하면서 나온 말 가운데 하나가 "중국 인민지원군(6.25 전쟁 당시 한반도에 파병되어 국군과 UN군과 싸웠던 중국군을 일컫는 말로, 한국에서 중공군이라고 알려진 집단이 바로 이들이다.) 전사들이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겠다."였다.[91] 이건 아돌프 히틀러가 카미카제 비스무리한 방법을 쓰자는 제안(다만 이건 카미카제와는 달리 탈출한 수단이 있긴 했다.)에 격하게 반대한 것도 있었다. 항복의 ㅎ만 들어도 게거품 물고 반대했던 그 히틀러가 말이다. 다만 그 이유가 게르만 민족에겐 자살같은 최후가 어울리지 않는다나 뭐라나.[92] 김준기,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시그마북스, 2009, p250. 이 출처에는 EMDR의 다른 효과들도 나와 있다.[93] 극단적인 케이스로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 중에는 오밤중에 불꽃놀이나 폭죽놀이를 보고 베개를 끌어안고 황망히 피난길(?)에 오르는 케이스도 있다! 60여 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94] 일종의 두문자어인데 약간 억지로 조어를 한 느낌이 없진 않다(…).[95] 그러니까 현손, 심지어 내손이 PTSD가 유전되어 시달릴 수 있다는 거다.[96] 물리적인 증상이 없는 병의 괴로움으로 손꼽히는 것 중 하나가 이런 공감하기 힘든 특성으로 인한 지독한 고독함이다.[97] 또한 고블린 슬레이어키류 센토처럼 PTSD의 영향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전자는 PTSD로 인해 사람이 어디까지 미쳐버리는지 그리고 후자는 PTSD가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로 각각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