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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18:16:26

GAC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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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i-forum.co.jp/mt_images/GACKT.jpg
예명 GACKT CAMUI, GACKT.C[1]
神威楽斗(신위악두)|(카무이 가쿠토)
본명 [ruby(大城, ruby=おおしろ )]ガクト (오오시로 가쿠토, Gakuto Oshiro)[2]
출생 1973년 7월 4일 ([age(1973-07-04)]세)
오키나와현 나하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장르 일본 록, 얼터너티브 록, 팝 록, 발라드, 댄스
직업 싱어송라이터, 배우, 성우
데뷔 1995년 10월 10일 말리스 미제르 쇼케이스
'華麗なる復活劇(화려한 부활극)'[3]
솔로 | 1999년 5월 12일 미니 앨범 Mizérable
소속 Malice Mizer(1995 ~ 1999)
S.K.I.N.(2007~)
YELLOW FRIED CHICKENz(2010~)
The Ba·Lue Hearts(2019)[4]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5]파일:유튜브 아이콘.svg[6]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Ameba 아이콘.svg

1. 개요2. 이력
2.1. 생애~Malice Mizer까지2.2. 솔로 데뷔 후2.3. 2007년 이후
3. 세부활동
3.1. 2013년3.2. 2014년3.3. 2015년3.4. 2016년3.5. 2017년3.6. 2018년3.7. 2019년
3.7.1.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실시
3.8. 2020년3.9. 2021년3.10. 2022년3.11. 2023년
4. 음악성5. 어학 능력과 화술6. 덕업일치7. 대인관계
7.1. 각트의 팬으로 알려진 인물
8. 논란9. 기부활동10. YELLOW FRIED CHICKENz11. 디스코그래피
11.1. 솔로활동
11.1.1. 싱글11.1.2. 앨범
11.1.2.1. 오리지널 앨범11.1.2.2. 미니 앨범11.1.2.3. 베스트 앨범11.1.2.4. 컴필레이션 앨범11.1.2.5. 리믹스 앨범
11.2. YELLOW FRIED CHICKENz 명의
11.2.1. 싱글11.2.2. 앨범
12. 필모그래피
12.1. 영화12.2. 드라마12.3. 애니메이션
12.3.1. OVA
12.4. 게임12.5. CM
13. 도서1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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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Gackt'03.jpg
파일:Gackt'2018.jpg
MOON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2003년 2018년
일본 비주얼락의 대표주자
○ 2007 MKMF 에서의 소개 멘트.

일본가수이자 엔터테이너이다.

본명은 데뷔 이래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구글 검색 결과나 중국 웹사이트 등 일각에서는 본명이 오카베 사토루(岡部 学)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양친의 이혼 때문에 (자신의 출생지이던) 오키나와현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의 양자로 입적하고 어머니 성이던 오시로(大城)로 변환하며, 오시로 사토루(大城 学)라는 본명으로 개명하였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팬들 사이에선 암묵적으로 카무이 가쿠토가 본명이라고 믿어 주는 게 예의였다. 그러다가 2017년 12월 27일, 각트가 핵심 멤버로 참여한 가상화폐 회사 SPINDLE에서 본명인 大城ガクト(오시로 가쿠토)로 참가 및 기획을 하고 있다며 본인의 블로그에 본명을 최초 공개하였다. 이로 인해 모친의 성이 오시로라는 것이 사실도 정식으로 확인되었다. (SPINDLE의 프로필) 한편 중화권에서는 본명이 大城學(Dàchéng xué, 다청쉐)라는 표기로 알려졌다.

GACKT라는 예명은 어린 시절 미군 병사들이 ‘가크’라고 불렀다는 것에 착안해서 지었다는 설과 지휘봉을 뜻하는 일본어 ‘타쿠토’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영어 예명이라서 한국에서는 각트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가쿠토라고 부른다.[7] 사실 GACKT라는 표기를 단번에 ‘가쿠토’라는 발음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에[8] 무명 시절에는 영어 이름만 보고 가쿠토라고 발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2009년 6월에는 솔로 10주년을 맞이하여 Gackt에서 GACKT로 개명했다. 표기만 전부 알파벳 대문자로 변경. 참고로 성(姓)인 카무이아이누어로 ‘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9][10][11]

모 방송에서 자신이 흡혈귀이기 때문에 생년월일이 1540년 7월 4일이라는 농담을 했었으나, 2009년 11월 5일에 1973년생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뒤에 알려진 것이 한 프로그램[12]에서 농담으로 이야기했는데, 그게 정설화되어 버렸다. 처음엔 난처했지만, 나중에는 즐기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그런데 이는 솔로 데뷔 전에 활동 하였던 비주얼계 밴드 Malice Mizer가 지향하던 극한의 콘셉트에 기인한 부분도 있다. 실제 당시 리더인 Mana는 Malice Mizer 활동은 물론이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Moi Dix Mois에서도 특유의 신비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공식적인 미디어 자리에서 말은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데뷔부터 현재까지도 보통 Mana의 인터뷰는 다른 멤버가 대신 이야기하거나[13] 매니저로 대변인까지 동행하며, 대변인이 모든 인터뷰를 대신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각트만 하더라도 Malice Mizer 초기부터 인터뷰 때에 Malice Mizer 멤버들이 모두 프랑스 출신이라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꿋꿋이 하였고 이런 극단적인 콘셉트는 후에 비주얼계 특유의 문화로 이어지게 되었다.[14] 물론 세이키마츠와 같이 비주얼계가 아님에도 극단적인 콘셉트를 했던 밴드가 있었으나, 씬 내에서 유행으로 번창시킨 밴드는 역시 Malice Mizer. 그냥 각트는 Malice Mizer에서 탈퇴한 멤버이니 만큼 그에 따라서 Malice Mizer 시절의 극단적인 콘셉트를 그만둔 것이라고 보면 된다.

2. 이력

2.1. 생애~Malice Mizer까지

1973년 7월 4일 오키나와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15]는 음악교사 겸 무술관 관장으로 엄한 성격을 가졌으며, 어머니[16]는 조그마한 미용실을 운영했다. 그는 2남 1녀 중 둘째이며, 어린 시절부터 장난기 많은 성격으로 쾌활하게 지냈다고 한다. 한편 그의 집안은 오래 전부터 류큐의 귀족 집안이었는데, 일본에 귀속된 이후에도 지역 내에서 상당한 명망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증조부 또한 지방 영주로 그 세가 엄청났다고.

이후 명문가 출신으로서 주위의 기대를 받던 각트는 교토로 집을 옮기며, 그곳에서 자란다. 중학생이 되면서 각트는 친구의 피아노 연주를 보고 자극을 받아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강요로 시작한 피아노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영재교육으로 시작된 각트의 피아노 실력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연주자를 꿈꿀 정도로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다 고교 선배가 밴드에서 드럼을 치는 것을 서포트하면서 락에 매료된 각트는 독학으로 드럼을 마스터한다. 이는 각트가 락 음악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교 졸업 이후 각트는 도쿄로 상경하여 호스트 생활을 시작한다. 이는 자서전에서도 밝힌 내용으로, 당시 각트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이 여성은 각트보다 6살 위의 연상에, 당시 세계적으로 잘 나가던 일본계 금융회사의 고위직에 있었다. 하지만 각트는 1995년을 기점으로 이 여성과 단기간(약 6개월)에 이혼하였다.[17] 말리스 미제르 가입 이후 생긴 사생팬들로 인해 양쪽에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웠다고.

말리스 가입 전에는 현재 세션 멤버인 기타리스트 You와 함께 1994년에 CAINS:FEEL(카인즈 필)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드러머로서 활동하다가 보컬 부재 상황을 계기로 보컬리스트로 전환하게 된다.[18] 보컬의 부재를 채우지 못한 카인즈 필의 해체 이후 다시 호스트 일에 집중하던 각트는 우연히 가게를 찾은 남성 두 명과 친해지게 된다. 그들은 다름 아닌 Malice MizerMana와 Közi였다. 클래식 음악에 정통한 각트와 이탈리안 고딕을 표방했던 말리스 멤버들은 대화 주제가 맞아 떨어지면서 아주 가까워진다. 이후 Mana로부터 Malice Mizer에 가입을 권유받은 각트는 1995년 10월에 Malice Mizer를 가입하였고, 1997년 3월에는 싱글 ‘Bel Air’로 멤버들과 함께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메이저 데뷔하게 된다. 이 시기의 활동은 Malice Mizer 항목 참조.

이후 멤버들과의 다툼으로 인해 1999년 1월에 Malice Mizer를 탈퇴한 각트는 콜롬비아와 계약 파기 후 닛폰 크라운으로 이적, 싱글 Mizerable을 발매하면서 솔로 아티스트로 거듭난다. 여담으로, 각트가 Malice Mizer에서 탈퇴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다.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리더 Mana가 그를 탈퇴하게 했다는 설이 있고, Malice Mizer 내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는데 (역시 Mana에게) 역으로 탈퇴하게 했다는 설이 있다.[19] 당시 멤버들을 남기고 혼자 이탈한 것[20]처럼 보여 Malice Mizer 팬에게 엄청 비난받은 건 사실이지만, 본인과 Mana 사이에는 큰 악 감정이 없다고 한다. Mana 역시 이 사실에 대하여 인정. 아무튼 지금은 둘 다 서로를 축하하면서 지내는 사이로 보이는 건 최근 들어 Mana도 각트가 있던 시기를 부정하지 않고 블로그를 통해 그때 에피소드 등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2.2. 솔로 데뷔 후

파일:MizerableG.jpg
침체된 비주얼계에서 히데의 사망 1주기로 트리뷰트 앨범이 나오고, 추도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1999년 5월에 싱글 Mizerable로 기습 컴백을 치룬 각트는 미니 앨범과 싱글 총합 39만여 장의 매상을 올리며, 솔로 아티스트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치룬다. 이후 발매한 두 번째 싱글 Vanilla는 이전의 아트락/고딕 성향과는 다른 펑크와 브라스 요소를 적극 도입하여 솔로로서의 음악성에 차별화를 두었다. 콘셉트 또한 미래지향적이고 말리스 시절과는 다른 신비주의 이미지로 탈바꿈하여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 해 연간 싱글 판매량 89위를 기록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외에도 각트는 해외 진출 모색을 위해 당시 한국 이상으로 일본 음악의 인기가 강했던 대만에 진출, 현지 팬미팅을 열면서 중화권 활동도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비공개로 한국을 드나들며, 틈틈히 한국 진출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했다.

2000년에는 이전에 비해 싱글들의 매상이 좀처럼 부진하기도 했으나, 정규 1집 Mars와 곡들의 높은 퀄리티로 코어 층을 형성하며 자신만의 세계관 구축에 힘을 썼다. 그 결과 2001년도부터는 많은 수의 매니아 중심으로 결집하면서 싱글들의 성적도 향상되기 시작하였고, Another World를 발매할 때는 라르크 앙 시엘을 상대로 11만 장의 초동을 올리며 2위를 기록하는 등 외적으로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2002년도에도 정규 앨범 3집 MOON이 초동/2주차 판매가 각각 10만 장(총합 28만 장)을 기록하는 괴물 같은 성적으로 각트의 커리어 사상 가장 높은 매상을 올리면서 식지 않은 인기를 보여 주었다. 이를 계기로 뱀파이어라는 주제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세계관인 ‘MOON PROJECT’를 발동한다.

이후 2004년을 기점으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대대적으로 확장된 대한민국 진출을 이루면서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룬다. 그리고 일본/대만 외의 범 아시아 지역으로 활동 범위를 급속히 확장시키기 시작한다. 특히 한류 열풍이 부는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솔로 비주얼계 아티스트로서 활동한 그의 행보는 그 위치를 재확인하는 데 충분했다. 또 2005년에는 정규 앨범 5집인 ‘Love Letter’를 한국과 일본 동시 발매하면서 발라드와 R&B 수요가 커진 한국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뒤이어 정규 6집 Diabolos를 발매해 더욱 다듬어진 사운드를 선보였다. 이러한 각트의 한국 진출은 일본 음악계에 있어 큰 의의를 두고 있다. 이전에도 일본 가수들이 한국 진출이나 공연을 단발적으로 가진 적이 있어도, 그처럼 본격적인 프로모션을 통해 한국 활동을 장기간 진행한 경우는 전무했기 때문. 특히 라이센스 음반이 아니라 한국어 정규 음반 발매(Love Letter for Korean Dears), 지상파 방송 출연(2005년 MBC 수요예술무대)[21], 대규모 투어 진행[22] 같은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서 한국 진출을 실시한 일본 아티스트는 그 이후로는 전무하다.

이러한 한국 진출을 모색하기도 했던 각트는 2005년 하반기에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Diabolos의 프로모션에 매진했다. 2005년 12월 24일에는 처음 도쿄 돔에서 콘서트를 실시하였다. 삽시간에 예매가 매진된 이 도쿄 돔 콘서트는 오프닝이 상당히 강렬한데, 각트가 실제 말을 타고 돔 안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이 모습을 TV로 보았던 풍림화산의 총괄 프로듀서는 이후 캐스팅 과정에서 각트에게 우에스기 켄신 역으로 출연 요청을 하게 된다. 이렇게 도쿄 돔 콘서트로 식지 않은 인기를 보여 준 각트는 2006년에 들어오면서 스퀘어 에닉스의 유명 게임 크라이시스 코어 파이널 판타지 7제네시스 랩소도스 역으로 성우/출연하는 행보를 보인다. 그러면서 싱글 REDEMPTION을 발매, 음반 시장의 부진 와중에도 총합 12만여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이후에 약 1년 가까이 공백을 가졌던 각트는, 2007년 X JAPAN요시키와 함께 프로젝트를 시동할 것을 발표하고 LUNA SEA스기조, 미야비를 영입하여 S.K.I.N.을 결성한다. 이들은 18,000명 규모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었던 2007 Anime Festival에서 성대한 콘서트를 개최한다. 그리고 정규 앨범을 예고하면서 활동 시작을 준비했으나, 멤버들 간의 스케줄과 불화 의혹 등으로 인해서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S.K.I.N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는다. 더욱이 X JAPAN과 LUNA SEA가 부활한 것을 감안하면 정황상 앞으로도 활동 재개는 없어 보인다. 한편 각트는 이 시기부터 연기에 도전하여 NHK의 사극 풍림화산에서 우에스기 켄신 역을 맡아 열연했다. 드라마는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각트는 이에 편승해 싱글 Returner ~闇の終焉(어둠의 종언)~을 발매했는데, 싱글 역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데뷔 첫 오리콘 1위를 기록한다. 또한 NHK 홍백가합전에도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약 6회 동안 출연하는 등 유독 NHK와의 인연이 길게 이어졌던 시기였다. 특히나 2007년 홍백가합전에서는 세트를 아예 통째로 사용하여 드라마의 세트처럼 꾸미고, 극 중 자신이 연기하는 우에스기 켄신 복장을 하고 나와 카리스마 있는 연기와 함께 RETURNER ~闇の終焉~을 열창하였다.# [23] 한편으로는 한국 서울에서 개최된 2007 MKMF 공연에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2.3. 2007년 이후

2008년에는 VOCALOID 가쿠포이드의 목소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2009년 개최된 가쿠포이드 콘테스트의 최우수작 Episode.0와 우수작 Paranoid Doll이 2년 뒤인 2011년에 각트의 39번째 싱글로 발매되었고 Episode.0 PV에서 본인이 가쿠포 코스프레를 하고 원곡 PV를 충실히 재연했다. 이 앨범에 대해서는 본인이 본인 보컬로이드를 디스 걸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원곡을 뛰어넘은 편곡 실력을 자랑.[24]

2009년에는 솔로 데뷔 10주년을 맞이해 그동안 둥지를 틀었던 닛폰 크라운에서 에이벡스로 이적, 거액의 계약금으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또 기념 싱글 4연작(소악마 Heaven-Faraway-Lost Angels-FLOWER)을 일주일 단위로 연달아 발매, 모두 합쳐 10만 장 이상의 성적을 올리며 침체된 락 씬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였다. 그리고 가면라이더 디케이드의 주제가인 Journey through the Decade 또한 호평을 얻어 플래티넘 인증을 받으며, 그 해 연간 싱글 판매량 63위에 드는 데 성공한다. 그밖에도 서울에서 열린 2009 아시안 송 페스티벌에 일본 대표로 참석해 기자회견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소감을 발표하고, 신곡 GHOST와 대표곡 Redemption을 연주했다. 다만 이후 연속으로 계획했던 한국에서의 비주얼 라이브 투어는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한 주최사의 경영문제와 동방신기 팬덤 카시오페아의 예매표 연습 구매 논란으로 인한 좌석수 미달로 취소되는 등의 아쉬움도 있었다. 한편 2009년에는 솔로 데뷔 10주년인 만큼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신비주의적인 이미지 탈피에 성공, 나이와 일상을 공개하는 행보로 큰 호응을 이끌었다.

2010년에는 할리우드 진출을 꾀해 조쉬 하트넷, 데미 무어 등 유명 배우와 함께 헐리우드 영화 분라쿠에 출연했다. 스턴트맨 없이 직접 모든 연기를 했기 때문에 액션 연기 중에 조쉬 하트넷에게 들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때 치아가 부러지기도 했다. 이러한 가혹한 촬영이 이어지면서 “처음으로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힘내라면서 스태프가 보여 준 오와라이 블랙 마요네즈의 네타로 신나게 웃다가 기운을 차려 끝까지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전국시대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다룬 ‘네무리쿄시로 무뢰공’이라는 전통 연극에 주연으로 발탁, 특유의 카리스마로 우에스기 겐신이 연상된다는 호평을 받는 데 성공한다.

2012년에는 원안, 각본, 연출, 주연을 맡은 연극 「MOON SAGA -요시츠네 비전-」이 7월부터 10월까지 상연했다. MOON PROJECT라는 이름으로 콘서트와 영화로 그렸던 세계관이 처음 연극 무대로 꾸며졌다. 의상 콘셉트 디자인은 CLAMP가 담당.[25] 2014년에는 속편인 「MOON SAGA -요시츠네 비전- 제2장」이 상연. 프로젝션 맵핑으로 생동감 있는 연출을 선보였다.# 또 연기 활동의 일환으로, 키타가와 케이코와 함께 드라마 ‘악몽짱’에서 주연인 시키 타카시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 역시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소년층과 마니아들에게 상당히 인기를 모았다.

3. 세부활동

3.1. 2013년

파일:attachment/IMG_6830.jpg

3.2. 2014년

3.3. 2015년

3.4. 2016년


* 일본 연예인들이 동남아시아 등으로 주거지를 옮기는 상황이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데[37], 각트 역시 2016년도에 일본 내 재산을 처분 후 동남아시아로 이주한 것이 알려졌다. 재산 처분 과정에서 사기 피해로 집을 처분했다고 알려지기도 했으나[38], 실제로는 해외 거주를 위한 처분.

3.5. 2017년

3.6. 2018년

3.7. 2019년

3.7.1.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실시

3.8. 2020년

3.9. 2021년

3.10. 2022년

3.11. 2023년

4. 음악성

4.1. GACKT JOB

서태지서태지 밴드처럼 각트의 솔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세션 밴드.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5. 어학 능력과 화술


6. 덕업일치

7. 대인관계

7.1. 각트의 팬으로 알려진 인물

각트의 팬을 자처하며, 각트에게 애정을 표한 연예인들도 상당히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사람들이 있다.

8. 논란


2. 자신의 팬에게 자신이 소유한 골프장에 투자 및 주식 구매를 권한 적 있다. 그 팬은 각트 팬클럽에게 테러 등으로 개인정보를 인터넷에 유출을 당하거나, 반려견이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옷까지 칼로 찢기는 등의 피해를 보았다. 각트 자신은 투자 유혹에 실패한 것에 앙심을 품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정보로는 투자를 실패한 쪽에서 고의적으로 저지른 정황도 포착되었다고 한다.

3. 고참 밴드 근육소녀대의 베이시스트 우치다 유이치로에게 “난 나이나 위계질서 이런 걸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며, 나는 468살이니까 당연히 당신보다 나이도 위다”라고 했다가 심하게 두들겨 맞은 적 있다. 후술하겠지만, “의외로 각트 최강설은 설득력 있는 소리이다”라는 게 연배가 되는 가수들의 이야기.

4. 방송 중에도 은연 중에 자신이 싸움을 잘한다는 걸 어필하는 듯한 리액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장면 넘어가기 전에 카메라에 정권을 내지른다든지, 아버지가 오키나와 전통무술 도장 관장이라 이게 정설로 받아들여진 적도 있었다. 2011년에 피에로 나카노와 요시다 고우의 대담에서 “각트 최강설은 근거 있는 소리이다”라고 언급. “녹화장에서 혼자 있으면 주먹을 단련하고 있는 모습을 매번 보는데, 내 손이 저릴 정도로 단련한다”고 언급했다.[79][80]||
하지만 이런 자신에 대해 자각을 하였는지 현재는 예전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이미지 쇄신을 이룩했다. 오카타 켄과 같은 원로 배우도 인정할 정도로 성숙해졌다.[81] 특히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집의 일부를 공개하며, 얼마 전 최초로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곳을 보여 주었다. 헤어진 친구, 죽은 친구들의 유품을 모아둔 곳이었다.[82]

9. 기부활동

기부활동을 상당히 많이 벌인다. 대표적인 것이 유니세프 기부와 12월 어느 사랑 노래의 저작권료를 9.11 테러 피해자들 기금에 기부한 것. 이 때문에 자금난을 겪은 경우도 있다. 후쿠시마 지진 당시에도 의외로 적은 금액을 기부해 논란이 되었지만, 전후 사정을 본다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각트가 기부를 받아야 했다.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하기 3개월 전에 배용준의 제안으로 한·중·일 스타들이 공동으로 동아시아 전체의 기부 단체를 구성했는데, 여기에 올인한 상태였다''.'[89] 때문에 적은 비용을 낼 수밖에 없었고[90]사실상 기부를 해야 할 입장이 아니라 자신이 지원을 받아야 할 판'''. 2015년 한 방송에서 그거 매각했다며 산을 처분하였다고 밝혔다.], 이 사정을 밝힐 수 없어서 더욱 빈축을 샀다.[91]

그래도 SHOW YOU’RE HEART와 같은 프로젝트와 YFC의 두 번째 앨범인 ALL MY LOVE 등으로 대대적인 기부를 하고 있다. 돈만 기부한 연예인들과 달리 피해 지역을 직접 방문하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기부 및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92]

2012년 초에 발매 예정인 <ARE YOU “FRIED CHICKENz”??>에 수록된 “또 여기서 만나자” 역시 ALL MY LOVE와 마찬가지로 SHOW YOU’RE HEART의 일환으로 발매된다.[93]

참고로 데뷔 초부터 개인 홈페이지에 기부 버튼이 있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누를 때마다 광고가 뜨면서 광고사가 적은 금액이지만, 재해 대비를 위한 기금 또는 이재민을 위한 기부금을 마련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그것을 확장해서 계속 운영하는 중.

2012년 3월 11일에는 피해 지역 중 미야기현에 가장 먼저 도착해 헌화를 했다. 언론에서의 평가는 처음에는 적은 금액을 냈지만, 단순히 돈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마음으로서 도와주는 유일한 연예인[94]이라고 극찬.[95]

2016년 4월 라스트 비주얼 라이브에 돌입한 와중에 구마모토 대지진이 발생하자 5월까지 진행된 라이브에서 얻은 수익을 전부 지진 피해 지역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후술할 YFC 활동은 맨 처음에는 멋진 남자를 만드는 것이었으나, 도호쿠 대지진 때문에 그 목적을 기부와 사랑으로 콘셉트를 변경했다.

2020년 8월에 슈리 성 재건 비용을 기부하였다.

10. YELLOW FRIED CHICKENz

초식남육식남(또는 공룡남)으로 바꾸자는 테마 아래 2010년 3월 각트를 중심으로 결성된 밴드 프로젝트명. 약칭은 YFC. 밴드 이름이 노란 닭튀김인 이유는 잘 튀겨진 닭처럼 입에 감기는 노래를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결성한 2010년에는 솔로 활동인 煌☆雄兎狐塾(빛나는 수컷학원) ~YELLOW FIRED CHICKENz~을 서포트하는 세션 멤버들이 그대로 밴드 멤버가 되어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도호쿠 대지진 이후에는 “뮤지션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어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의 등을 밀어 줄 수 있도록,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의미도 포함하는 테마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2011년 6월 9일에는 새로운 멤버로 LUNA SEA의 신야, FADE의 JON, TAKUMI, U:ZO가 가입하여 투 보컬, 쓰리 기타라는 다소 독특한 구성을 가진 밴드가 된다. 그 전까지는 세션 멤버들로만 구성되어 솔로 활동의 연장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었으나, 신 멤버 가입 이후로는 기존 솔로와 다른 독립된 활동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참고로 새 멤버 가입과 세계 투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는 기자들이 하는 질문과는 상반되고 뜻이 통하지 않는 발언을 일삼았던 적 있다. 그런데 각트가 화를 낸 이유도 내뱉은 영어를 풀이하면 “YFC 기자회견에서 왜 내 솔로 앨범 이야기가 나오냐”[96]라는 의미로 한 말이라 누가 옳다느니 의견이 분분하긴 하다. 실제 다른 뮤지션들 중에서도 솔로와 그룹 활동을 구분짓는 사람들은 인터뷰에서 다른 활동 이야기가 나오면 화내는 사람도 있긴 있다.[97]각트만 이상한 건 아니다.[98]

그러나 정식으로 활동을 재개한 지 약 1년 만인 2012년 7월 4일 무도관 라이브를 마지막으로 해체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정확히 밝힌 바에 따르면 일시적 해체. 일단 이 밴드 자체가 개인 활동을 하는 여러 멤버들을 짜깁기하여 만들어진 밴드이기 때문에 개인 활동(원래 자신의 소속 활동)을 하면서 병행하기엔 무리가 있어 잠시 해체한다고 한다. 7월 4일에 해체 콘서트 이후에는 일시적 해체이기 때문에 이후 활동을 보증하는 의미로 사진집을 발매한다고 한다.

11. 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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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트의 음반

11.1. 솔로활동

11.1.1. 싱글

발매일 타이틀 순위 판매량 비고
1999.06.30 Mizérable Single Box 3위 116,771장 [99]
1999.07.15 Mizérable 72위 15,840장 [100]
1999.08.11 Vanilla 4위 248,360장 [101]
2000.02.09 Mirror 9위 116,770장
2000.02.16 OASIS 7위 126,280장
2000.03.08 鶺鴒 〜seki-ray〜 7위 108,870장
2000.08.30 再会 〜Story〜 7위 91,200장
2000.11.16 Secret Garden 10위 83,520장
2001.03.14 君のためにできること 6위 146,770장
2001.09.05 Another World 2위 285,550장 [102]
2001.12.16 12月のLove song 5위 171,822장
2002.03.20 Vanilla 12위 38,100장 [103]
2002.04.24 忘れないから 4위 132,260장
2002.11.27 12月のLove song / December Love 5위 81,954장 [104]
2003.03.19 君が追いかけた夢 2위 97,648장
2003.06.11 月の詩 3위 70,375장 [105]
2003.06.25 Lu:na/OASIS 5위 34,049장 [106]
2003.11.12 Last Song 5위 91,425장
2003.12.03 12月のLove song / 十二月的情歌 6위 51,748장 [107]
2004.10.27 君に逢いたくて 2위 124,432장
2004.12.08 12月のLove song / 12월, 어느 사랑노래 8위 36,767장 [108]
2005.01.26 ありったけの愛で 7위 61,981장
2005.04.27 BLACK STONE 3위 65,475장
2005.05.25 Metamorphoze 〜メタモルフォーゼ〜 2위 156,709장 [109][110]
2005.08.10 届カナイ愛ト知ッテイタノニ抑エキレズニ愛シ続ケタ… 3위 68,512장
2006.01.25 REDEMPTION 3위 124,955장 [111]
2006.03.01 Love Letter 9위 27,512장
2007.02.07 野に咲く花のように 3위 68,560장 [112]
2007.06.20 RETURNER 〜闇の終焉〜 1위 70,000장 [113]
2008.11.26 Jesus 7위 32,000장
2009.01.21 GHOST 6위 24,000장 [114]
2009.03.25 Journey through the Decade 2위 200,000장 [115][116]
2009.06.10 小悪魔ヘヴン [117]
2009.06.17 Faraway 〜星に願いを〜 [118][119]
2009.06.24 LOST ANGELS [120]
2009.07.01 Flower [121]
2009.08.11 The Next Decade [122]
2009.12.09 雪月花 -The end of silence- / 斬〜ZAN〜 [123]
2010.01.01 Stay the Ride Alive [124]
2010.07.28 EVER
2011.07.13 Episode.0 [125]
2011.11.30 Graffiti [126][127]
2012.02.22 UNTIL THE LAST DAY
2012.10.10 白露-HAKURO- [128][129]
2012.12.19 WHITE LOVERS -幸せなトキ-
2014.02.12 P.S. I LOVE U [130]
2014.10.01 暁月夜 -DAY BREAKERS-
2015.10.07 ARROW [131][132]
2016.11.23 キミだけのボクでいるから [133]
2017.03.22 罪の継承〜ORIGINAL SIN〜 [134]

11.1.2. 앨범

11.1.2.1. 오리지널 앨범
발매일타이틀비고
2000.04.26MARS국내 라이센스 발매
2001.04.25Rebirth
2002.06.19MOON
2003.12.03Crescent국내 라이센스 발매
2005.02.14Love Letter국내 전용판 번안앨범 발매
2005.09.21DIABOLOS국내 라이센스 발매
2009.12.02RE : BORN
2016.04.27LAST MOON국내 디지털 라이센스 발매
11.1.2.2. 미니 앨범
발매일타이틀비고
1999.05.01Mizérable
11.1.2.3. 베스트 앨범
발매일타이틀비고
2004.02.25THE SIXTH DAY 〜SINGLE COLLECTION〜국내 라이센스 발매
2004.05.26THE SEVENTH NIGHT 〜UNPLUGGED〜국내 라이센스 발매
2010.07.21THE ELEVENTH DAY 〜SINGLE COLLECTION〜
2013.07.04『BEST OF THE BEST vol.1 ―MILD―』
2013.07.04『BEST OF THE BEST vol.1 ―WILD―』
11.1.2.4. 컴필레이션 앨범
발매일타이틀비고
2006.12.1312月のLove songs 〜COMPLETE BOX〜12월의 러브송 박스 세트
2007.12.190079-0088기동전사 Z건담 A New Translation 수록곡 모음
2008.10.29nine*nine콘서트 실황 음원화
11.1.2.5. 리믹스 앨범
발매일타이틀비고
1999.11.03Remix Of Gackt[135]
2015.07.01GACKTracks -ULTRA DJ ReMIX-[136]발매기념 라이브 파티 개최

11.2. YELLOW FRIED CHICKENz 명의

11.2.1. 싱글

발매일타이틀비고
2011.09.14THE END OF THE DAY
2011.12.28ALL MY LOVE / YOU ARE THE REASON

11.2.2. 앨범

발매일타이틀비고
2010.06.23ARE YOU "FRIED CHICKENz"??[137]
2012.03.14YELLOW FRIED CHICKENz I1번 트랙 CIRCLE (.com)은 그래플러 바키 애니메이션 주제가

12. 필모그래피

12.1. 영화

12.2. 드라마

12.2.1. 웹드라마

12.3. 애니메이션

12.3.1. OVA

12.4. 게임

12.5. CM

13. 도서

14. 여담




[1] 작사·작곡 명의[2] 2017년 12월 27일 공개.[3] 중학교 재학시절인 1989년에도 카인즈 필(CAINS:FEEL)이라는 밴드로 인디 활동을 하기도 했다.[4] GACKT JOB 멤버들과 포지션을 바꾸어 공연하는 밴드로, 드럼의 VAL이 프론트맨으로 온다. 학원제에서 한시적으로 선보였는데, 각트를 대상으로 하는 VAL의 폭주하는 시모네타와 병맛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서 아예 자체적으로 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밴드명은 일본의 전설적인 록밴드 블루 하츠에서 유래.[5] 공식 계정.[6] 개인 계정.[7] 풍림화산에서는 이 예명 때문에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 보수적인 대하드라마의 스태프롤에 영문인 Gackt를 집어넣는 폭거를 저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분명히 독음으로 가쿠토라고 병기되어 있다.[8] 일본어를 기준으로 보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9] CLAMPX에서도 사용했다.[10] 카무이 각트라는 이름은 Malice Mizer의 리더 Mana가 지어 준 이름이다.[11] 데뷔 초 곡들을 보면 작사 작곡에 Gackt.C로 적힌 것을 알 수 있는데, 카무이 각트를 미국식 표기법으로 이름 성 순서로 쓴 것이다.[12] 일종의 가상 연애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당시 각트에게 인식은 미연시. 그렇기 때문에 미연시에 맞는 설정을 제시한 것이라고.[13] 주로 각트(Gackt)나 드러머였던 Kami[14] 특히 고딕 콘셉트인 밴드들이 주로 이렇다.[15] 2013년 작고.[16] 후에 아버지와 이혼 후 본가로 돌아간다. 각트도 나중에 어머니쪽 성인 오시로로 입적.[17] 각트는 이 후에 “난 더 이상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겠다”고 단언하였으며, 일생의 소원은 나중에 돈을 모아서 섬을 산 다음 아이들의 천국으로 만들고 싶다고 소회한 바 있다.[18] 여담이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당시 악곡들은 음질이 정말 나쁜데, 오프라인 모임에서 카인즈 필이 배포한 마스터링 테이프의 경우에는 상당히 깨끗한 음질을 자랑한다. 인터넷에 이 버전의 음원이 풀리지 않아서 각트의 팬들 사이에서는 이 마스터링 테잎이 귀중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19] 하지만 정황상 사실 Mana가 점점 Gackt의 영향력에 위기감을 느껴 탈퇴하게 했을 예측이 가장 확실하다. 다만 대인배로 유명한 각트가 그래도 자신을 발탁한 은인이라며 쿨하게 넘긴 것이라고.[20] 이 때문에 각트가 말리스 미제르 시절 혼자서 만든 작곡인 Le Ciel이나 Regret를 솔로 전향 이후 부르지 못하는 것은 당시 말리스 미제르 탈퇴로 인해 저작권 분쟁이 생겨 재판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부분을 아는 각트의 팬들은 역으로 Mana의 팬들과 큰 대립을 하기도 했고, 현재도 불편한 부분임을 인정한다.[21] 물론 SBS를 통해 콘서트 실황이 방영되었던 아무로 나미에라르크 앙 시엘(07'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도 있지만, 각트는 정규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후 지상파 방송 출연은 2013년 쿠사나기 츠요시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 두 번째 기록을 남겼다.[22] 2004년, 2005년 팬미팅, 2006년, 2007년 대규모 단독 콘서트.[23] 갑옷과 세트장은 NHK제공이지만 엑스트라 비용은 전부 각트가 사비로 지출하였다.[24] 지나치게 이전의 앨범들과 비슷한 스타일이라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엄연히 이 곡의 제작자가 각트 스타일로 만든 것이라.[25] 참고로 CLAMP 또한 한국의 전통 의상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얻기도 하는 등 한국에 우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26] 올림픽 태권도가 아닌 한국에서 북한 태권도로 불리는 ITF태권도.[27] 가면라이더 BLACK으로 유명한 쿠라타 테츠오도 시즌 2에서 게스트 출연한 특촬물이다.[28] 카라미스터, 빅뱅판타스틱 베이비, 싸이강남스타일을 불렀다.[29] 전국무쌍 3 타이틀 곡[30] 음악적인 측면보다는 가사적인 측면이 강하다. 지금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당신과의 만남은 저의 모든것이었어요. 그저 너무나 행복해서, 하지만 저는 당신이 새겨갈 인생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슬픔에 지금이 보이지 않더라도 당신은 이제 돌아보지 않길 바라요. 사랑하는 당신만큼은 부디 사랑하는 것에 겁먹지 말길 바라요.[31] YOU가 비밀리에 결혼을 했으나, 상대와의 갈등 끝에 헤어지면서 헤어진 상대 여성 측이 YOU는 물론 각트까지 엮어서 악랄하게 공격하여 한동안 방송을 중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말도 안 되는 공격이 많아서 잘 해결되었으나, 각트 입장에선 여러 가지로 당황스러웠다고.[32] 현재 켄신 공제는 각트가 참여한 이후 약 5배 정도 관람객이 증가했다. 이후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각트가 계속 참가할 듯하다.[33] 오답을 낸 팀원들은 “그냥 집에 가자.” “아냐,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34] 팀 기록은 39연승에서 멈췄지만, 개인으로는 연승 유지.[35] 사운드가 어디서 어디까지 들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면서 이동하고, 원하는 사운드가 나올 때까지 챠챠마루와 유에게 연주를 계속 부탁하는 등 일부에선 한 10곡 정도 부르는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리허설을 진행했다.[36] 맛만 보고 버리는 게 아니라 동행한 스태프나 멤버들과 함께 먹는다. 여기서는 화요서프라이즈 제작진이 함께한 셈인데, 누군가 같이 먹어 주니 가능한 기행.[37] 다만 요시키 같은 경우에는 이미 오래 전에 LA로 이주한 상태이기도 하다.[38] 침실에 폭포가 있다는 그 집이 맞다.[39] 편곡은 2013년도 카무이 학원제 때 선보였던 편곡이다.[40] 30대 초반에 등을 심하게 다쳐 찬바람이 불면 쑤신다고 하였다.[41] 알콜 도수 40~50에 달하는 상당히 독한 술이다. 다음 날 숙취가 굉장히 심한 것은 덤.[42] 대표로 미네기시 미나미, 미야자키 미호, 시타오 미우 등이 있었다.[43] 정확히는 1.5기생이다.[44] 학생들이 자리를 내팽겨치고 단상 아래로 모여들었다.[45] 한화 약 181,300원.[46] 한화 약 625,000원. 여담이지만, 60만엔 대 초 VIP석은 무료 선물도 동봉된 초호화 대우를 자랑했다.[47] 일측에서는 각트가 갑론을박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비주얼계 싱어로 표현했던 것이 이번 새 투어를 위한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48] 20주년 콘서트 준비 등으로 인해 싱글 발매는 결국 이뤄지진 않았다.[49] 다만 각트가 중견 아티스트로 자리잡은 현재와 달리, 1990~2000년대 당시 활발히 방송에 출연할 당시에는 시니컬한 캐릭터를 보여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그다지 이해 못 할 상황은 아니다. 그저 오랜만이라 생소할 뿐.[50] 유튜브에 있는 네티즌들이 단 댓글들의 내용에 따르면, 진격! 신소우사카가미에 화상으로 출연해 선보인 발언들은 일본인 특유의 화법을 생각해 본다면, 각트의 발언은 일본인 기준으로 정말 대놓고 폭언 수준으로 직설적으로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즉, 만약 1:1로 누군가에게 저런 화법으로 조언을 한다면, 마음이 약한 사람이면 금방 울 수가 있고 일본인에게 엄청 욕 먹을 각오를 하고 말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그리고 애당초 류큐 왕국 귀족의 자손이라는 출신 성분(일본인들 기준에 출신 성분이 좋은지 안 좋은지를 많이 따진다.)을 지닌 각트 본인이었기에 이 정도 수준의 발언을 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소속사와 방송사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 게다가 각트의 고향인 오키나와현이 원래 류큐 왕국이라고 하는 독립국가였으나, 1879년 메이지 시대 당시 일본에게 합병을 당한 적이 있어 각트처럼 오키나와현 출신 사람들은 일본 정부 자체에 대개 비판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51] 실제로 각트 본인은 옛날부터 옳은 소리를 하는 친한파 연예인이었던 탓에 그걸로 우익에게 테러를 당하거나 살해 위협을 받은 적 있었다.[52] 우타다 히카루의 첫 남편으로, 캐산을 감독했다. 각트와는 평소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53] 보도 스테이션 초대 앵커. 아베 신조 내각에 비판적인 성향으로 유명하며, 보도 스테이션 하차도 아베 내각의 압박으로 하차당한 게 아니냐는 설도 있었다.[54] 무기한 활동 중지로 부터 389일만의 복귀 보고이다.[55] https://youtu.be/mIUSgIxNcQI[56] 본인도 인정하지만. 자신은 오래 달리기 같은 지구력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매일 운동을 하고 단련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아무튼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각트 스스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와 멤버들은 무대에 오르는 그 순간. 무대에 서 있는 그 순간만큼은 목숨을 건다.”[57] 당시 공연의 영상을 보면 무대 위에서 그려지는 스토리 자체가 영화와 같은 양상이었고, 이 때문에 야광봉과 같은 불빛이 나는 도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못 쓰게 한 모양.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영화관에서 야광봉 흔들며 영화 보는 사람은 없잖아?”라는 한 네티즌의 지적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58] 유럽 투어 중 폴란드어나 러시아어로 가볍게 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59] 영어와 중국어 앨범은 정식발매되진 않았으나, 해외 투어에서 간간이 불렀다.[60] 여태까지 일류 연예인 등급 체크에서 무시무시한 기록을 갱신한 것이 배경으로 작용해 최상위 브랜드 모델로 채택된 것.[61] 단순히 벗으라는 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자신감과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표현 방식을 의미하는 것.[62] 이 때문에 윗사람을 우습게 본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63] 당시 현장에 있던 스태프가 누구라고 정확하게 공개는 안 해서 누구에게 한 이야기인지는 모른다.[64] 이 생각은 토미노가 생각하는 것이랑 비슷하다.[65] 특히 아무로 레이카이 시덴은 거의 비슷하다.#[66] 이때 디케이드 역의 이노우에 마사히로와 매우 친해졌는데, 서로 형님과 동생으로 부르면서 친분을 잘 이어나가는 모양. 여담으로 이 둘을 촬영장에서 붙여 두는 건 매우 위험했다고 한다. 이유는 문서 참조.[67]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걸 각트는 기억하는데, 하이도는 기억을 못 한다고 한다.[68] 이에 각트는 요시키야말로 정말 불가사의하고 재미있는 사람이고, 언제 어디서 어떤 포인트에서 욱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며 장난감 상자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정말 그 재능과 재미는 다른 사람들에게 2%도 전달되지 않았다고 평가하였다.[69] 팬들은 비비안 수의 경우에는 단순한 열애설이지만, 요네쿠라 료코의 경우에는 깊고 진지한 관계까지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70] 이 노래가 ‘널 만나고 싶지만’이었는데, 재미있는 건 박용하와 처음 방송에서 만났을 당시에도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71] 공연 전에 홍백가합전 출연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내용은 이렇다. “홍백가합전에 나가는 건 일단 축하. 그리고 나는 올 나잇 닛폰 쇼에 나가는데, 거기서 쓸데없는 짓하지 말 것. 하면 집 주소 불어 버린다”고 경고했었다. 이 영상 초반부에 한국어로 인사하는 점이 포인트라면 포인트.[72] 왜소한 키류인 쇼는 각트 의상을 입지 못하고 기타리스트 챠챠마루의 의상을 빌려 입었다.[73] 덤으로 들고 나온 독특한 모양의 스탠드는 골든 봄버의 기타 캰 유카타가 특기를 살려 빈 상자 곽으로 만든 수제품.[74] 실제로 골든 봄버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밴드 중 하나이다. 다른 멤버들은 비교적 번 돈을 펑펑 쓰고 있는 반면, 키류인 쇼만 유달리 가난했던 인디 시절의 거지 근성이 남아 돈을 잘 쓰지 못한다고 한다.[75] “우동에는 순무”라는 뜻.[76] 탄수화물 제한 때문.[77] “규동은 요시노야”라는 뜻. 요시노야는 유명한 규동 체인점이다.[78] 이쪽 역시 각트뿐만 아니라 일본의 문화와 음악 자체를 굉장히 좋아한다. 학생 때부터 X JAPAN을 비롯한 다른 일본 아티스트들도 굉장히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연습생 시절에는 록 음악에 굉장히 심취하여 마침 일본 비주얼록 콘셉트를 롤모델로 했던 밴드 TRAX의 원년 멤버이기도 했을 정도.[79] 그런데 각트라는 양반이 원래 혼자 있으면 저런 식으로 잘 논다.[80] 영화 분라쿠 스태프들 증언으로는 허당이 아니라고. 조쉬 하트넷이 처음에 각트를 업신여겼는데, 나중에 주먹으로 몇 번 다투고 나선 급친해졌다고 한다. 분라쿠 촬영 이후 조쉬 하트넷이 실제로 몇 번 심각하게 다퉜고, 주먹이 오가기도 했다고. 다만 그 이후에 꽤 친해졌다고 인터뷰를 했다.[81] 오카타 켄의 장례식에서 특유의 조용함으로 말 없이 서 있었지만, 같이 문상 온 풍림화산 스태프는 잘못하면 각트도 죽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82] 몇 년 전에 대만에 사는 친구가 죽었을 때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 뒤에 묘소를 찾아서 말 없이 몇 시간 동안 머물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때 한 것이라곤 줄담배뿐. 죽은 친구가 즐겨 피우던 담배로 애도했다.[83] 여기서 한 가지 아주 잘못된 게 알려져 있다. U+K,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 곡은 연계 곡이다. U+K는 Kami를 추모하기 위한 첫 번째 추모곡인데, 그래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내용인 반면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는 눈을 감아도 이제는 볼 수가 없고 꿈 속에서도 만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각트 본인은 U+K 곡보다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에서 자신의 감정이 표현되었다고 하였다. 실제로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 곡 라이브를 보면 절규하면서 노래 부르다 죽을 기세. 실제로 이 곡이 마지막으로 부르는 곡인 콘서트 투어 중에 실제로 엔딩 롤이 올라가기가 무섭게 실신하여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꽤 있다.[84] 사망한 옛 매니저를 추모하기 위한 곡. 매니저가 자주 피우던 담배 품명이 BLACK STONE이라고. 영문식 품명도 같아서 곡 명도 BLACK STONE이라고 한다.[85]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2ch 등지에서는 우익~ 정부 측에서 친한파 관련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한 일종의 시범케이스라는 의견도 많고, 실제로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와 몇 가지 탄압 사건을 고려해 본다면 향후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특히 탈세 혐의의 경우에는 고의적인 탄압일 가능성이 큰데, 왜냐하면 최근의 각트가 벌어 들인 수익은 2002~2005년도에 비해 적다. 특히 소속사를 에이벡스로 옮긴 이유도 수익 감소라는 추측이 나오는 게 현 시점. 그런데 수익이 가장 많을 때는 탈세 혐의가 없다가 수익이 상대적으로 감소하자마자 탈세 혐의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특히 2009년경에는 각트가 돈을 많이 잃어서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뉴스 보도도 나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탈세 혐의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86] 사과를 받아 내는 수준에서 그쳤다.[87] 2013년 4월부터 전국 투어 시작 중이었는데, 잘 알다시피 각트는 “무대에 서는 순간만큼은 목숨을 건다.”, “제대로 공연할 의사가 없으면 꺼져!”라고 할 정도로 라이브 무대에는 신경을 많이 쓰고 예민해진다. 상술했지만, 10년 넘게 함께 일한 멤버들이나 스태프들이 얼렁뚱땅 넘어가려면 ‘살해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느낄 만큼 완벽주의를 추구한다.[88] 더불어서 일본쪽에서는 탄압을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자신의 출신을 부정하는 기미가요까지 부르는 사람을 저렇게 탄압하는 걸 보면 일본의 극우도 갈 데까지 간 모양이라는 반응도 있다.[89] 덕분에 배용준이 아이젠과 닮은 것에 착안하여 “당황하지 마라, 경화수월이다!”라는 말도 나왔다.[90] 거기다가 이때 통크게 기부한 후 팬 프로젝트와 개인적으로 겨울 스포츠를 좋아해서 하나를 샀다. 지역은 밝히지 않았지만, 스태프들의 증언에 따르면 도호쿠 대지진 발생 직전에 거액으로 권리를 매입. 때문에 지진 발생 당시에는 진짜 돈이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자신이 매입한 지역으로 방사능이 불어 닥쳐서 2013년 겨울 팬클럽 동반 수학여행은 포기.[91] 그도 그럴 게, 당시 국내에서 번 돈을 해외 아동을 돕는 데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배용준이 주최한 아시아 행사에 장근석 등 한류 스타와 중국의 간판급 연예인들과 함께 기부 사업을 벌인 것 때문에 비난이 가중되었는데, 당시에는 일본에 큰 일도 없었고 다른 연예인들도 해외 기부 행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난을 한 쪽이 이상한 멘탈.[92]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지진 피해 지역에 가장 많이 방문한 연예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학창 시절의 추억이 많아서인지 중·고등학교를 중점으로 가고 있다. 상술한 도호쿠 고등학교 졸업식 참석이 대표적인 사례.[93] ALL MY LOVE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버린 이재민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하면서 다시 시작하자”는 잔잔한 이미지를 그려 낸 노래라면, “또 여기서 만나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연재해로 중요한 학창 시절의 추억이 사라진 아이들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자. 그리고 돌아보진 말자. 하지만 여기서 다시 만나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94] 실제로 가장 먼저 기부 단체 및 구호금 조성 활동을 벌였고, 아직도 유지하는 유일한 연예인이다. 2013년 1월 현재도 유지 및 활동하는 중이다.[95] 그도 그럴 게, 이렇게 직접 해당 지역을 수십 차례 방문한 연예인은 각트가 유일하다.[96] Ass Hole을 제외한 문맥을 풀이하면 "YFC 멤버 중 하나로서 여기 있는 나인데, 왜 내 솔로 앨범 이야기를 꺼내서 다른 멤버들 병풍 만드는 것이냐”라는 의미이다.[97] 예를 들면한 뮤지션이 가수로서 새 앨범에 대한 인터뷰에 나왔는데, 겸업인 배우 활동 얘기하면 “지금 내 앨범 얘기하고 있는 중 아니었음? 드라마 얘기가 왜 나옴?”이라면서 화낸다거나.[98] Ass Hole이 ケツの穴野郎(똥구멍 자식)이라고 직역되어서 나왔다.[99] 각트의 솔로 데뷔 싱글.[100] 8cm 단독 싱글.[101] 1999년 오리콘 차트 싱글 연간 판매량 89위[102] 2001년 오리콘 연간 싱글차트 74위.[103] 12cm 싱글 재발매판[104] 12월의 러브송 영어 버전 수록[105] 테크노라이즈 엔딩[106]북두의 권 메인 테마[107] 12월의 러브송 중국어 버전 수록[108] 12월의 러브송 한국어 버전 수록[109] 기동전사 Z건담 A New Translation 주제가. 2005년 오리콘 연간 싱글차트 62위.[110] 이는 각트가 기록한 연간 싱글 차트 순위 중 가장 높은 순위였다. 판매량은 의외로 낮은 15만여 장.[111] FF7 : DC 주제가[112] TRICKSTER -에도가와 란포 「소년 탐정단」에서- 10화 삽입곡[113] 현재까지 발표된 각트의 싱글들 중 유일한 오리콘 주·월간 차트 1위곡[114] 터미네이터 : 새라 코너 연대기 일본판 주제가[115] 가면라이더 디케이드 오프닝 테마. 각트의 에이벡스 이적 후 첫 발매작이자 마지막 오리콘 플래티넘 인증 싱글.[116]20만 장이 판매되었으며, 2009년에는 97,616장이 판매되었다. 특이하게도 꾸준히 팔려 2012년이 되어서야 판매량 20만 장 돌파와 함께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희귀한 케이스였다. 그리고 Journey Through The Decade는 이후 각트의 마지막 20만 장대 판매량의 싱글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117] 솔로 데뷔 10주년 기념 연작 제1 탄[118] 솔로 데뷔 10주년 기념 연작 제2 탄[119] 팬클럽 한정 앨범 아트가 민망하다. 각트와 멤버들이 나체로 팬티를 벗어 던지면서 공중으로 점프하고 있다.[120] 솔로 데뷔 10주년 기념 연작 제3 탄, 2009년 7월 1주차 빌보드 Japan 주간 1위[121] 솔로 데뷔 10주년 기념 연작 제4 탄[122] 극장판 가면라이더 디케이드 올 라이더 대 대쇼커 주제가[123] 전국무쌍 3 주제가[124] 가면라이더X가면라이더 더블&디케이드 MOVIE 대전 2010 주제가[125] 가쿠포이드 페스티벌 우승작 싱글컷 및 재녹음[126] 스켓 댄스 3쿨 오프닝[127] 한국에서는 챠탄이 불렀다.[128] 전국 BASARA MOONLIGHT PARTY 엔딩[129] 커플링 곡인 정열의 이나즈마는 이니셜 D 아케이드 스테이지 7 AAX의 BGM으로[130] 곡과 가사를 구상하는 데 반 년 이상 걸렸고, 각트 자신의 유언이라 할 만큼의 곡이라고 한다. 제작 기간 동안 받은 여러 사연들을 읽고, 팬들과도 소통해서 탄생한 곡. 더불어 타이틀만 각트의 친필이었던 LOVE LETTER과 달리 안의 가사집과 구성이 모두 각트의 친필로 구성.[131] 각트의 마지막 비주얼 라이브를 장식할 오프닝곡.[132] 곡 내부적으로는 꿈을 잃고 시대의 발전 동력이 사라진 시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스스로 시대를 움직이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러한 자신의 의견에 비판도 많지만, 그것도 스스로 건실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면 충분히 좋다고 언급했다. 기본적으로 “지금의 나로도 괜찮은가?”에 초점을 둔다고.[133] TRICKSTER -에도가와 란포 「소년 탐정단」에서- 1쿨 오프닝[134] TRICKSTER -에도가와 란포 「소년 탐정단」에서- 2쿨 엔딩[135] 각트의 허가없이 나온 앨범이다. 각트도 이 앨범 발매당시 잡지 등을 통해 사지 말라고 했을 정도(...). 판매량은 대략 34,920장으로 집계되었었다. 다만 리믹싱 퀄리티나 편곡은 현재 기준으로도 세련되게 느껴질 정도로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감각적인 앨범 커버도 덤.[136] 사실상 트리뷰트 앨범도 겸한다.[137] 참고로 이 앨범은 총 3가지 앨범아트가 존재하는데, 팬클럽 한정의 2개가 매우 민망하다. 1개는 엉덩이(...) 한개는 남자의 바지가 벗겨져있다. 물론 중요부위는 손으로 가렸...[138] 이시모리 프로덕션과 인도네시아 MNC 미디어와의 공동 제작 특촬물.[139] 성우와 모델이 둘 다 각트이다. 이유는 캐릭터를 디자인한 노무라 테츠야가 각트의 팬이라고.[140] 위의 드왕고 CM 재활용.[141] 반응이 매우 좋아 서적 발매 이후 일주일 만에 10만 권이 팔렸다.[142] GACKT JOB. 각잡이라 불리는 세션 멤버들.[143] 이때 반격으로 기타리스트인 YOU에게 “무처럼 생겼다고!”라고 반격했지만, 정작 YOU가 “나 안 그래도 무로 캐릭터 만들었음”이라고 해서 각트가 졌다. 실제로 YOU 본인의 공식 캐릭터가 이다.[144] 절대 작은 키는 아니지만, Malice Mizer 활동 당시 멤버 모두 굽 있는 신발을 신기 시작하면서 본인이 작아 보여 신게 되었다고.[145] 실제로 2013년 여름 인도네시아 특촬물 촬영 차 내려갔을 때 촬영한 사진을 보면, 그 많은 사람 속에서 혼자 높은 곳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146] 실제로 키나 체격이 큰 것은 맞다. 각트가 입었던 의상을 다른 사람이 입으면 치수가 커서 따로 제작을 하고, 본인이 소장하는 경우가 많다. 각트가 집 사진을 공개할 때마다 곳곳에 무대 의상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일본 갑옷이라든지.[147] 구 에고이스트 플래티넘. 기존 제품인 에고이스트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제품명을 바꾸었다. 샤넬 향수다운 강하고 성적이며, 성숙한 향이 특징. 반대로 향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맡으면 딱 고급 아저씨 스킨 냄새.[148] 여기에 갑주가 하나 있는데, 이걸로 ‘각트의 각츄(갑주의 일본식 발음)’이란 말장난을 했다.[149] 폭포를 설치한 이유는 습기 때문. 원래 이사 오기 전에는 가습기를 10개 정도 틀고 살았는데, 곰팡이가 펴서 철수했다. 그리고 고민한 끝에 폭포를 설치했는데, 그 결과 처음 몇 주간 물에 빠져 죽는 꿈을 계속 꿨다고.[150] 하이도가 “향수를 그렇게 뿌려대면서 그걸 다 구분하는게 신기하다”고 말했는데, 각트 본인은 와인 마니아이기 때문에 와인은 향뿐만 아니라 맛이라는 게 존재하니 누구라도 알 수 있다고 답했다.[151] 이렇게 자고 싶을 때 잔다는 말에 타카미자와가 “개랑 똑같네!”라고 발언. 각트는 “잠깐, 저 오늘 게스트입니다!”라고 응수.[152] 고등학생 무렵에 우연히 마스크를 쓴 어느 남자가 멋지게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걸 보고 반해 버린 각트가 다음 날 YOU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거 나임”이라고 하자 각트가 “그렇게 멋진 남자가 너따위일 리 없어!” 하고 싸웠다고 한다. 뮤지션답게 연주를 듣고 납득했다지만, 그 연주를 듣는 것보다 주먹이 먼저 나갔다나. 여담으로 각트가 반한 YOU의 자태를 보고 싶다면 雪月花 -The end of silence-의 PV를 보자. 거기서 어린 시절처럼 YOU가 가면을 쓰고 바이올린을 독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많은 여성팬들이 그의 엄청나게 날씬한 허리를 보고 멘붕했다.[153] 동영상 메시지, 포토 메시지를 만들고 하고 싶은 말과 마지막에 “SHOW YOU’re haert”라는 메시지를 보여 주는 것.[154] 위기인 이때 “우리가 다투면서 서로 마주해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식이었다.[155] 좀 더 정확히는 ITF 태권도로, 2002년부터 수련해 와서 현재는 유단자이다.[156] 물론 각트가 그때 한 말들 옳았고, 매니저 역시 이 때문에 뭐라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것. 특히 각트는 누군가 다치는 것. 특히 아이들이 다치는 것에 대해 아주 민감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난 셈.[157] 대신 회비가 약 10만원 안팎이긴 한데, 돌아오는 혜택을 본다면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다. 회원 전용 앨범 구입 구매권+행사 참여권+포스터+각트와 개인 촬영까지.[158] 자신도 어릴 때 지진이나 자연재해에 대한 트라우마가 많다고. 또 “일본은 자연재해가 항상 곁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가르쳐도 모자랄 판국에 그걸 폐지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였다. 논조가 상당히 격해서 제작진에게 자제 사인을 받을 정도. 실제로 들어 보면 갑자기 열변을 토하다가 광고가 나와서 말이 잘린다. 그런데 광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미친 것 아니냐!”라는 식으로 다시 이야기를 한다.[159] 참고로 이 노래는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급하게 제작된 노래이다. 때문에 전에 썼던 멜로디를 어쩔 수 없이 차용했다고. 후에 앨범화되면서 수정했기 때문에 졸업식장에서 부른 것과는 약간 다르다.[160] 이 노래는 해당 학교에 완전 기부해 버렸다. 즉, 이 노래 앨범을 사면 그 학교 운영 수익금으로 쓸 수 있게 만들었던 것. 노래 자체는 각트는 그 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제작했기 때문에 공식 앨범화할 생각이 없었지만, 팬클럽 측의 요청으로 자신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에게 허가를 요청해서 공식 앨범으로 제작되었다.[161] 이러한 이미지 때문인지 학교 졸업식에 와 줬으면 하는 가수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162] 고득점을 위해서는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는 점수가 높은 볼링 핀이다.[163] 각트가 우에스기 겐신으로 나왔던 드라마 풍림화산의 장면이다.[164] 사진 속 모델은 2017년 여름, 100개만 한정으로 판매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각트가 가장 많이 착용하는 선글라스이다. 정발가는 38,000엔이나, 현재는 무려 10만엔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165] 2005년부터 생산을 시작하여 현재는 단종되었다.[166] 물론, SPR14G의 경우에는 옆면에 ‘PRADA’라는 로고가 새겨져 있지만, VARTIX의 VX-i 모델의 경우에는 ‘VX’라는 로고가 새겨져 있다.[167] SPR14G의 경우에는 블랙 컬러가 가장 구하기 힘들며, 제일 비싸다. VX-i 모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VX-i 모델의 경우에는 SPR14G보다 더 비싸다.[168] 한정판 모델.[169] SPR14G는 2000년대 중반부터 생산된 모델이며, 현재 단종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렌즈를 구할 수 있다.[170] 야후! 재팬에서는 호환 렌즈를 무려 10,000엔부터 15,000엔까지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으나, 사실상 ‘되팔기’이다. 원래는 한화로 약 3만 원 정도면 호주의 유명 선글라스 업체에서 동일한 사양의 렌즈를 구입할 수 있다. 구글에 영문으로 검색만 해도 쉽게 구입처를 알 수 있으니 혹시라도 구입할 생각이라면 참고하자.[171] 번역 : 말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역시 말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으니 길어지긴 했지만 읽어줘. DJSODA의 트윗에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으니까' '옷차림에 문제가 있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는데, 대체 무슨 신경이지?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10000% 범죄를 저지르는 쪽이 잘못이다. 누가 어떤 옷을 입든 개인의 자유. 이에 대해 '그런 옷을 입었으니까'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마치 당하는 쪽이 더 나쁜 것처럼 말하는 것 아닌가. 자신이 원하는 옷차림을 할 수 없는 그런 나라로 만들고 싶은가? 본인이 피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범죄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가슴을 만지고 싶으면, 은근슬쩍이 아니라 정면으로 구애를 해라. 같은 남자로서 우습고 멍청해보인다. 우리 멋있는 남자가 되자고. 몇 살이 되어도.[172] 번역 : 어제 엠스테에 생방출연하면서 가장 기뻤던 것은 오랜만에 RIIZE의 쇼타로를 만나게 된 것. 사실 나의 투어는 업계에서도 단연 최고로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다. 각트의 현장을 견딜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할 정도. 누구에게나 힘든 투어 댄서 시절에도 그는 항상 웃는 얼굴로 최선을 다하며 매일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투어가 끝난 후 한국에 가서 승부수를 띄우고 싶다고 했다. 댄서들 중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혹독한 환경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한 것에 먼저 놀랐다. 그리고 이 녀석이라면 분명 해낼 수 있다고 내보내고 나서의 그의 성장에는 더욱더 놀랐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환경에 뛰어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의 의미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진심으로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기실에서의 장난스런 모습도 여전했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좋은 친구들이었고, 멋진 멤버들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라니 우와- 이런 말을 하는 나이가 되어 버린 내 자신이 너무 싫지만... 뭐, 나이를 먹어가는 건 사실. 가끔 부모같은 말을 하게되는 걸 용서해 줘. 여러분들 그를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인간적으로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착한 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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