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연방 연방보안국 특수목적센터 V국 Управле́ние «В» Це́нтра специа́льного назначе́ния Федера́льной слу́жбы безопа́сност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Directorate "V" of the Special Purpose Center of the Federal Security Service of the Russian Federati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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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 | |
| 봉사하고 보호한다. Служить и защищать | |
| 창설일 | 1981년 8월 19일 1998년 9월 8일 (재창설) |
| 해산일 | 1994년 1월 25일 |
| 국가 | → |
| 소속 | 국가보안위원회 제1총국 → 러시아 SFSR 연방보안국 → 러시아 보안부 → 러시아 연방경호국 → 러시아 연방보안국 특수목적센터 |
| 역할 | 특수작전 (대테러, 정보작전, 게릴라, 정찰, 직접타격, 인질구출 등) |
| 참여 |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8월 쿠데타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제1차 체첸 전쟁 제2차 체첸 전쟁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북캅카스 반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시리아 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1. 개요
러시아 연방 연방보안국 특수목적센터 V국, 통칭 빔펠 그룹(Группа «Вымпел») 혹은 베가 그룹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예하 러시아의 국내외 대테러 특수작전부대로, 부대명의 빔펠은 끝이 가늘어지는 깃발인 페넌트(Pennant)를 뜻하는 러시아어 단어에서 따왔다. 인지도 면에서는 같은 연방보안국 예하 대테러 부대인 알파 그룹에 조금 밀리지만, 러시아 특수작전군, 알파 그룹, 자슬론 그룹과 함께 러시아에서 최정예로 분류되는 특수부대이다.
2. 역사
2.1. KUOS
KGB 아카데미의 교육은 대부분 사복 차림으로 수행되는 첩보·방첩 작전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1955년 KGB 제1총국은 ‘장교 역량 향상 과정’(러시아어 약칭 KUOS)을 창설했다. 이 과정의 목적은 일반 KGB 요원들에게 비정규전과 전투 전술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해외 비밀작전 수행이나, 외국의 침공 시 후방 잔류 조직(stay-behind) 및 파르티잔 부대의 핵심 전력으로 활용될 예정이었다.1966년 KUOS는 제1총국에서 분리되어 독립 교육기관이 되었고, 모스크바 주 골리치노에 위치한 소련 국경수비대(KGB 소속 군사조직)의 훈련소와 함께 배치되었다. KUOS 수료생들은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후 1969년 KUOS는 KGB 아카데미(소련 KGB 고등 적기학교)의 정규 교육 과정에 편입되었으며, 초기에는 3개월 과정으로 운영되었다.
1970년 KUOS는 다시 발라시하로 이전했고, 책임자의 직급도 KGB 소령(또는 해군 2등대위)에서 KGB 대령(또는 해군 1등대위)으로 격상되었다. 또한 교육 기간 역시 7개월로 늘어났다.
2.2. 제니스(Zenyth)
KUOS의 주된 목적은 KGB 아카데미 생도들에게 정규·비정규 전투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특정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될 경우, 훈련 후반 단계에 있는 생도들 가운데 일부를 선발해 맞춤형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대표적인 사례가 러시아에서 전설적인 작전으로 평가받는 '스톰-333 작전(Operation Storm-333)'이다. 이 작전을 위해 KUOS 인원들로 구성된 특수작전부대 '제니스(Zenyth)'가 조직되었으며, 이들은 KGB 알파 그룹의 '그롬(Grom, 러시아어로 "천둥")' 팀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지도자 하피줄라 아민 제거 작전에 투입되었다.
제니스 부대는 당시 KUOS 책임자였던 그리고리 보야리노프 대령이 직접 지휘했다. 보야리노프는 1969년 KUOS가 독립 조직이 된 이후부터 기관을 이끌고 있었다.
하피줄라 아민은 자신의 전임자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를 암살해 권력을 장악한 인물이었고, 자신 역시 같은 방식으로 축출될 것을 두려워해 소련 정부에 경호 병력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KGB의 그롬과 제니스 요원들은 신분 표시 없는 아프간군 군복을 착용한 채 경호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소련 지도부가 상황을 재평가하고 군사 개입을 결정하면서, 고도의 전투 훈련을 받은 정보요원이자 대통령궁 내부에 이미 배치되어 있던 이들은 아프간 지도부의 동향을 파악하는 동시에 궁전 공격의 선봉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다. 이들의 공격으로 GRU 스페츠나츠 소속 '무슬림 대대'(제154독립특수작전부대)가 궁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전투 과정에서 보야리노프 대령과 그롬·제니스 소속 요원 5명이 전사했다. 스톰-333 작전은 KGB 스페츠나츠와 GRU 스페츠나츠가 협력해 수행한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2.3. 카스카드(Kaskad)와 오메가(Omega)
1980년 7월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이후, KGB는 KUOS에 새로운 특수작전부대인 '카스카드(Kaskad, 러시아어로 "폭포")' 창설을 지시했다. 카스카드는 1980년 7월부터 1983년 4월까지 서로 다른 편성과 기간으로 네 차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었으며, 각각 카스카드-1(6개월), 카스카드-2(6개월), 카스카드-3(9개월), 카스카드-4(12개월)로 불렸다.CIA와 달리 KGB는 정보 활동과 방첩 활동을 동시에 수행했기 때문에, 특정 목표 제거와 정보 수집에 초점을 맞췄던 제니스(Zenyth)와는 성격이 달랐다. 카스카드 부대는 현지 KGB 방첩 요원들을 지원하며, 도시 내 비밀 활동 진압과 국경 지역에서의 첩자 추적 임무를 담당했다. 또한 아프간인 요원들을 선발·훈련·지도해, 카스카드 철수 이후에는 이들이 임무를 이어받도록 하는 역할도 맡았다.
1983년 4월 카스카드-4는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작전부대 '오메가(Omega)'에게 임무를 인계했다. 부대명 '오메가'는 그리스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에서 따온 것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되는 마지막 유형의 KGB 특수부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오메가는 총 9개의 기동 특수작전팀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가운데 8개 팀은 지방에, 나머지 1개 팀과 본부는 카불에 배치되었다. 이 부대는 아프간 방첩기관 KAM과 그 산하 특수작전대대의 역량 구축을 완료해, 현지 KGB 자산의 역할을 아프간 측이 대신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4. 빔펠(Vympel)의 창설
빔펠은 제니스, 카스카드, 오메가의 계보를 잇는 조직이었다. 1981년 8월 19일, 소련 정부는 KGB 제1총국 산하에 상설 특수작전부대를 창설하기로 비밀리에 결정했다. 새 부대는 제니스와 카스카드-1·2의 핵심 인원들을 중심으로 편성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 비정규전에서 얻은 경험과 숙련도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빔펠의 초대 지휘관은 해군 1등대위 에발트 코즐로프였다. 그는 바쿠 해군장교학교를 졸업하고 북방함대와 카스피 소함대에서 복무했으며, 이후 소련 군사아카데미와 GRU 산하 군사외교아카데미를 졸업했다. 1970년 KGB로 이적한 그는 제1총국 'S국'(불법 해외공작 부서)에 배속되었고, 1972년에는 KUOS 교관이 되었다. 1979년에는 제니스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었으며, 귀국 후에는 스톰-333 작전에서 전사한 보야리노프 대령의 후임으로 KUOS 책임자가 되었다. 이후 빔펠의 첫 지휘관으로 임명되었고, 1985년 제1총국 본부로 승진 이동했다.
빔펠은 창설 당시 KGB 해외 비밀공작 조직인 제1총국 'S국' 지휘 아래 놓였으며, 대외적으로는 '독립훈련센터(OUC)'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했다.
부대의 주요 임무는 다음과 같았다.
- 적 후방 깊숙한 지역에서의 정보 수집
- HUMINT(인적 정보 활동)
- 전략 시설 파괴 및 기습 작전
- 적 함정 및 잠수함 탈취
- 해외 소련 외교시설 보호
- 테러 조직 대응 등
빔펠은 1981년 KGB 소장 유리 드로즈도프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특수공작, 파괴공작, 은밀 작전, 해외 공관 보호, 전시 첩보망 활성화를 전문으로 하는 스페츠나츠 부대였다. 대부분의 요원들은 2~3개 외국어를 구사했는데, 이는 해외 적진 후방에서 활동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빔펠의 임무에는 전쟁 발발이 불가피한 ‘특수 시기’에 적국 최고지도부 암살과 전략 인프라 파괴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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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이후
빔펠은 곧 소련 최고의 특수부대 가운데 하나라는 명성을 얻었고, 일부에서는 GRU와 MVD 소속 특수부대보다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지속적인 조직 개편과 임무 변경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부대는 보안부를 거쳐 GUO로 이동한 뒤, 최종적으로 내무부(MVD) 산하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경찰 조직은 이런 성격의 특수부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많은 요원들은 경찰 지휘를 받는 상황을 굴욕으로 여겨 사직했다. 전체 278명의 장교 가운데 단 57명만이 MVD에 남았으며, 부대명도 한동안 '베가(Vega)'로 변경되었다.
1995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특수작전센터(TsSN FSB)가 빔펠을 다시 관할하게 되면서, 부대는 원래 이름을 회복하고 정보기관 체계로 복귀했다. 이후 임무의 중심은 해외 은밀공작보다 대테러 작전과 핵시설 안전 확보 쪽으로 이동했다.
빔펠 요원들은 폭발물 처리와 특수 폭발장치 운용 훈련을 받으며, 경우에 따라 테러 조직과 유사한 전술을 활용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받는다. 또한 근접전, 낙하산 강하, 잠수, 수중전, 암벽등반, 산악 로프 기술 등 다양한 특수훈련도 실시한다. 핵심 핵시설이 위치한 도시들에는 지역 빔펠 팀들이 배치되어 있다.
현재의 빔펠은 러시아 FSB 특수작전센터 산하 'V국'(러시아어 키릴 문자 В)의 약칭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전히 극비 성격의 조직으로 남아 있다. 알려진 활동으로는 체첸 전쟁,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당시 최고회의 건물 진압, 2000년 체첸 무장세력 지도자 살만 라두예프 체포,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투입 등이 있다.
또한 2013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러시아 사업가 살인 사건과, 2022년 젤림한 한고슈빌리 살해 사건의 유죄 판결을 받은 바딤 크라시코프가 빔펠 현역 또는 전직 요원일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 결과도 존재한다.
3. 기타
- 대원 선발 기준이 매우 높은걸로 유명했다. 외국어 능력, 고학력, 특수부대 경력 등을 중시했다고 하며, 공수군, 해군보병, 스페츠나츠 출신 중에서도 다시 선발했다. 심지어 이들은 해외 문화, 언어 교육까지 받았다고 한다.
4. 대중매체
4.1. 게임
4.2. 영화, 드라마
- The Sum of All F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