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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06:41:03

민중가요

민가에서 넘어옴
1. 정의
1.1. 반대말
2. 역사
2.1. 대한민국2.2. 프랑스2.3. 그리스2.4. 미국2.5. 아일랜드2.6. 잉글랜드2.7. 남미2.8. 일본2.9. 홍콩2.10. 대만
3. 주요 가수 & 작곡가
3.1. 대한민국
3.1.1. 노동운동3.1.2. 농민운동3.1.3. 사회/통일운동3.1.4. 교육운동3.1.5. 학생운동
3.2. 그 외 국가
4. 관련 사이트
4.1. 피엘송닷컴4.2. 밥자유평등평화4.3. 노동의소리
5. 주요 노래
5.1. 대한민국
5.1.1. 투쟁가5.1.2. 단체가5.1.3. 진군가
5.2. 그 외 국가
6. 대표적인 콘서트7. 평가8. 대중가요로의 전용9. 노래방 수록 목록10. 관련 문서11. 관련 자료

1. 정의

民衆歌謠 / Protest Song

영어 명칭 protest song을 번역해서 저항가요라고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민중가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주로 사회운동에서 불리는 노래를 총칭하는 말이다. 민주화부터 노동, 인권, 평화(한국에서는 남북통일도) 등 대체로 진보 계열 운동에서 다루는 주제를 노래한다. 주로 진보 계열 운동단체 혹은 개인이 목적의식을 갖고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포크 계열의 방식으로 작곡된다. NLPDR 중에서도 강성 NL 노선에 근거했다면 국가보안법 탄압에 직면하여 이적표현물이 되는 경우도 있다.[1]

1.1. 반대말

반대말은 건전가요다. 한국에서는 건전가요라는 장르의 탄생 자체가 전두환 정부 시절 친정부적이고 사회적 불만을 고양시키지 않는 음악으로서 고안된 것이므로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상대적일 수 있다. 인터내셔널가는 공산 정권 수립 전의 중국 본토나 공산화를 면한 현재의 대만에선 민중가요지만 '신중국' 수립 후의 중국 본토에서는 건전가요라고 말할 수 있으며 실제로 중국공산당 당가로 쓰인다. 민중가요 (대만 노래패), 건전가요 (중국공산당 창립 90주년 기념회) 하지만 이것도 절대적인 건 아니다. 중국 본토에서도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이 엄연히 인터내셔널가를 민중가요로서 부른다. 즉, 중국을 비롯한 기형적 노동자 국가에서는 같은 곡이 상황에 따라 관료집단의 보나파르트적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용도로도, 거기에 도전하면서 더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하는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

물론 남북간도 비슷하다. 북한의 중학교 음악교과서에도 남한 것과 가사가 다르지만 '인터나쇼날가'가 실려 있다. 전대협 노래단이 1991년에 내놓은 <전대협 우리의 자랑이여>라는 카세트에는 여러 민중가요들과 함께 두 곡의 북한 노래가 수록되어 있는데 '청년진군가'는 북한의 사로청에서 만든 선전가요를 약간 개사한 것이고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는 항일 빨치산들의 무장 투쟁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자는 내용의 노래다. 이 곡들은 남한에서는 민중가요지만 북한에서는 건전가요 중에서도 건전가요다. 웃기는 것은 남한의 민중가요인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등이 북조선에서도 금지곡이자 민중가요라는 것이다. 실제로 북조선 인민들 가운데 관료집단의 전횡에 불만을 가진 인민들이 남한 민중가요를 부르고 듣기도 한다. 그러나 북조선 인민들에게 남한의 건전가요가 민중가요로 여겨지지는 않는데 이는 자기네 관료집단이 그냥 커피라면 남한과 미국은 TOP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관료집단에 불만을 가진 북조선 인민들의 절대다수는 관료집단이라는 장벽을 무너뜨리고 더 전진하길 원하지,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이 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 인민들에게 남한의 건전가요는 자기네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이상으로 극혐인 반동가요지만 남한의 민중가요는 관료집단을 넘어뜨리고 더 전진하길 바라는 열망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이는 전술한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형적 노동자 국가의 이중적 성격을 잘 나타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불렀던 '건전가요의 끝판왕'인 애국가마저도 이 상황에서는 민중가요 비슷하게 쓰이기도 했다. <Scotland the Brave>도 영국군의 백파이프 연주곡이었던 시절에는 분명히 건전가요였지만[2] 1980년대에 마거릿 대처 정권의 차별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스코틀랜드 민족주의가 성장하면서 민중가요화된 바 있다.

2. 역사

2.1. 대한민국

1970년대 중반까지는 독자적인 민중가요라는 인식은 없었다. 당시 학생운동, 민주화운동 세력들은 몇몇 구전가요, 대중가요와 외국 인권운동노래 번안곡, 저항적 의미가 있는 개신교 복음성가류를 차용해서 사용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에 김민기가 야학활동을 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노래극을 제작하고 이 과정에서 몇몇 대학노래패와 NCC 성향 개신교 교회 청년부들이 그의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이 그룹들이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민중가요를 창작, 지하에서 배포하기 시작했다. 이런 대학 노래패 출신들이 결집해 1984년 노래모임 '새벽'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노래운동이 시작되었다. # 이후 민중가요를 통해 학생 운동권의 규모가 급성장하였고 대학에는 민중가요 동아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되었다. 1988년 노태우 정권 출범 후 국가보안법 일부 규제가 완화되면서 노찾사를 시작으로 다양한 민중가요 음반이 발매되고 집회의 부속물이 아닌 독자적인 합법 공연을 하는 등 민중가요는 더이상 비밀리에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다.

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의 발흥을 기점으로 민중가요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노래를 이용해 많은 이들을 수월하게 선동하기 위해서는 떼창이 필요한데 기존 대학 운동권 출신들이 만든 노래는 노동자들이 함께 떼창하기에는 힘든 경우가 대다수였다. 전술했던 "새벽"의 <선언>[3] 1~2가 대표적인데 음역대와 멜로디가 어느 정도의 노래 실력을 요구했기 때문에 다 같이 부르기는 부적합했다. 집회에 모인 노동자들의 정서와 상황에 민중가요가 맞지 않았다. 이 때 한국 민중가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 바로 김호철이다. 군대의 군가에서 영감을 받은 김호철은 군가풍의 다 같이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를 만들었고 이는 노동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노래가 <혁명동지가>와 <단결투쟁가>이다. 아직도 각종 집회에서는 이의 연장선상 아래 있는 노래를 많이 부른다.

민중가요의 주제도 시대마다 달라졌는데 1986년 NL 성향 운동권이 생겨날 때 <반전반핵가>와 같이 반미/반제국주의를 주제로 한 노래가 생겨났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할 때 전술한 대로 노동자의 권익을 주제로하고 노동자들이 따라부르기 좋은 노래가 만들어졌다. 전대협-한총련이 주도하던 때에는 반미투쟁, 노태우-김영삼 타도, 평화통일 등을 주제로 노래가 나오기도 했고 1988년부터 '북한 바로알기 운동' 등의 영향으로 북한 노래까지 삽입했다. <조선은 하나다>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1992년에는 '조국과 청춘'을 필두로 대학생 노래단이 생겨났다.

1993년 '천지인'을 시작으로 1996년 '이스크라', '메이데이' 등 민중 락밴드가 생겨났고 1999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당시 미군의 양민학살 문제가 쟁점화된 후부터 2000년 매향리 사태, 2002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 등 미국을 비판하기 위한 가요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2008년 촛불시위미국 쇠고기 문제 시위 때까지도 명맥을 이어 왔다.

옛날 대학생들은 선배들에 의해서 기수를 이어 가면서 민중가요를 전수해 왔다고 하지만 현재는 민중가요 동아리 회원들을 제외하면 거의 사멸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 영향력은 거의 미미하고 잊혀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운동권 성향이 비교적 약한 노래는 전통 안무 BGM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구전만으로 전달되었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4] 전달자가 음치라거나 기억력이 좋지 않은 등의 이유로 같은 곡이라도 지역 차가 존재하였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민주화되면서 민중가요 테이프가 꾸준히 쏟아져나와 판매되기 시작했다. 유통은 여러 집회, 행사나 대학 앞 사회과학서점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사회과학서점은 서점 한구석에 민중가요 테이프를 따로 진열해서 판매했다. 출판사나 학생회에서 민중가요 노래책을 따로 만들어 판매, 보급하면서 이전까지 구전으로 전해지던 노래의 표준화가 어느 정도 이뤄지기도 했다.[5]

1996년 연세대 사태 등을 계기로 운동권이 쇠퇴하자 덩달아 민중가요의 지위가 약해져 시위 현장이나 운동권 활동에서나 간간히 들을 수 있었지만 2016년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민중총궐기가 일명 세월호 시위와 박근혜 하야 시위로 와전되어 알려지면서 많은 일반인들이 참석하자 이런 수요에 맞춰 민중가요가 여럿 나오기도 하였다.

한국 민중가요는 시작-전파-전성기-쇠퇴- 부활 이런 식으로 흐름이 이어지는데 보통 시작은 5.18 민주화운동에서 6월 항쟁까지, 전파는 6월 항쟁 이후부터 1996년 연세대학교 한총련 사태까지, 쇠퇴는 1996년 한총련 사태 이후부터 2008 광우병 집회까지, 부활은 이명박 정부(정확히는 광우병 및 정부 논란)~박근혜 국정농단 및 탄핵심판까지를 가리킨다.

참고로 민중가요 음악에 맞춰 율동하는 것을 문선이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문화선동 문서로. 그러나 노래방에는 사계나 솔아솔아 푸른솔아 등 그나마 알려진 곡을 빼고는 전무하다. 이유는 노래방 선곡 기준이 인기곡에만 치우친 데다 저작권료 문제, 민중가요 창작자들의 상업성에 대한 부정적 시선 때문이다.

아동청소년 인권단체에서는 동요를 개사한 민중가요를 쓴다.

2020년대 들어 기계학습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유튜브 등지에서는 인위적으로 합성한 목소리로 부른 민중가요들도 나타났는데 보통 야스모리 미노리처럼 캐릭터 설정[6]과 부합하는 캐릭터의 목소리로 부르게 하거나 전두환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하는 등 조롱을 목적으로 사용한다.

2.2. 프랑스

이 업계의 원조이자 본좌. 18세기 혁명기부터 많은 민중가요가 만들어졌다. 일단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부터가 민중가요 출신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들의 혁명정신을 고취하고 혁명전쟁에서 반혁명동맹을 맞서 사기를 고취하기 위한 노래가 작곡되었다.

또다시 민중가요가 대거 만들어진 계기는 파리 코뮌인데 전세계 민중가요인 대표곡인 인터내셔널가가 이때 등장했다.

2.3. 그리스

튀르키예 독립 전쟁 이후 튀르키예에서 그리스로 추방된 많은 이들은 재산도 몰수당하고 그리스에서 빈털터리 신세로 하층노 동자 신세가 되었다. 이들 특유의 감성과 튀르키예 음악 특유의 리듬에 그리스 전통악기인 부주키가 만나면서 새로운 음악 장르인 '렘베티카'가 형성되었다. 렘베티카 음악들은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자포자기하는 민중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 아테네와 피레아스 일대의 많은 소아시아 출신 그리스인들의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 메탁사스 정부가 '향락적이고 가사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박해하자 자연스럽게 좌파와 민주주의자들의 저항음악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 맥락을 이어 오고 있다. 한편 렘베티카의 동양적인 리듬에 현대음악의 리듬을 접목시킨 라이카라는 음악장르도 1960년대에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현대 그리스 음악의 중요한 줄기라고 할 만큼 가치있다.

2.4. 미국

미국은 20세기 이전부터 훌륭한 저항가요의 전통을 가진 국가다. 우디 거스리[7], 피트 시거를 비롯한 저항 포크의 역사는 1960년대 시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 운동을 거치면서 심화되었다. 특히 이 시기 포크 록을 비롯한 저항가요는 시위대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크게 번졌다.

2.5. 아일랜드

U2는 메이저한 밴드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만 저항가요를 부르는 가수 중 가장 유명한 밴드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거의 세계구급 인기를 누리는 이 밴드는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Sunday Bloody Sunday)부터 시작해서 보스니아 내전(Miss Sarajevo), 이라크 전쟁(앨범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등 20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인권탄압과 전쟁에 반대하는 저항가요들을 매 앨범마다 발표했으며 메인보컬 보노는 매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단골로 오르는 인물이다.

아일랜드의 역사에서 대영제국 통치에 항거하는 민중가요는 아예 저항노래(Rebel Song)라는 이름으로 분화되어 있을 정도다. 그 가운데 한 곡인 전사의 노래는 아예 독립을 쟁취한 아일랜드 공화국의 국가로 불리게 되었다. 다른 노래들도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며 펍에서 술 먹고 부르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있다. 아일랜드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나 아일랜드계 스코틀랜드인들이 선수층과 팬층의 주축을 이루는 셀틱 FC 경기에서도 응원가로서 많이 불린다.

2.6. 잉글랜드

스포츠 중계나 예고에 자주 등장하는 음악 ChumbawambaTubthumping은 사실 스포츠와는 관련 없는 투쟁가요다. 첨바왐바는 본래 노동운동과 관련한 민중가요를 주로 부르는 밴드이며 멤버 전원이 반파시즘, 환경운동, 인권과 관련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대표곡인 Tubthumping은 단순히 들으면 신나는 분위기의 펑크지만 실제로는 1995년 있었던 리버풀 항만 노동자 대량 해고와 관련하여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만든 노래다.

적기가도 영국이 원조다.

당시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었고 부총리 존 프리스콧이 항만 노동자 출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30년 넘게 근무한 항만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위한 시위 중 출근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500여 명을 해고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노동당을 비판하는 의미로 쓴 곡이 Tubthumping이었는데 이내 UK차트를 비롯해 호주, 일본 등지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EA의 월드컵98 축구게임 메인 OST로도 사용되었다.

이 노래가 인기를 끌자 세계화자본주의의 대표격이던 GM나이키는 저항가요인지도 모르고 이 노래를 자사 광고 음악에 차용하는 병크를 터뜨렸는데 첨바왐바는 광고로 벌어들인 수익 전액을 이들 회사에 반대하는 반세계화 운동 및 기업감시 시민단체들에게 기부해 버렸다.Tubthumping 링크

영국의 이름이 알려진 민중가수 중에는 1983년에 첫 앨범을 내며 활동을 시작한 빌리 브랙(Billy Bragg)이 있다. 인터내셔널가, 극우파에 반대하여 불려진 All You Fascists 등 기존 민중가요를 불렀을 뿐 아니라 시대 상황에 맞춰 개사도 하곤 한다.


빌리 브랙이 부른 노동조합에는 '힘이 있네(There is Power in a Union)'.

2.7. 남미

2.8. 일본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 쇼와 시대에 정착된 일본의 대표적인 음악 문화라고 할수 있는 엔카메이지 시대부터 자유민권운동 당시 선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요였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로.

20세기 중반 이후 일본의 민중가요는 세계적인 추세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벨라 챠오를 번안해 부른다거나, 바르샤바 시민을 번안해 부른다거나... 심지어 2018년에는 한국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까지 번안해서 쓴 바 있다. 사실 일본은 민중가요 항목을 따로 쓸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만큼 해외와 많이 겹친다. 이는 20세기 중반 이후 외국과 고립된 채 자체적으로 사회운동을 전개해야 했던 한국과 다르게 외국과의 교류 및 국제연대가 활발했던 만큼 해외의 민가를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굳이 일본 특유의 민중가요를 꼽자면 후술할 곡들 정도가 되겠다.

2.9. 홍콩

홍콩에는 그동안 민중가요보다는 주요 영화OST를 불러서 중국공산당에 저항하는 방법을 썼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때는 레미제라블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불렀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초기인 2019년 6월에는 한국임을 위한 행진곡도 불렀다. 그러다 2019년 8월 31일 드디어 영광이 다시 오길(Glory to Hong Kong)이라는 노래가 탄생했다.

2.10. 대만

3. 주요 가수 & 작곡가

3.1. 대한민국

3.1.1. 노동운동

3.1.2. 농민운동

3.1.3. 사회/통일운동

3.1.4. 교육운동

3.1.5. 학생운동

3.2. 그 외 국가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4. 관련 사이트

4.1. 피엘송닷컴

홈페이지

2001년 봄에 '丹風'이라는 유저가 세운 사이트다.

초기에는 mp3 다운로드만을 제공했지만 현재는 다운로드 없이 음악감상만 가능하다. 2012년에 두 번째 개편을 거치다 홈페이지 결함 문제로 2016년 하반기 이후 사이트 개편에 돌입해 Jamstash를 이용하여 임시 홈페이지를 만든다고 공시했다.

임시 홈페이지는 PC접속용[25] 홈페이지와 안드로이드용 앱[26]이 만들어져 배포되었으며 iPhone에서 사용하는 경우 SoundWaves라는 앱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아이폰에서 사용법

안드로이드 폰에서도 UltraSonic을 설치하고 아이폰 사용법을 참고해 설정한다. 2018년 상반기 이후 일부 곡이 삭제되었다.[27] 그러나 5월 21일에 상당수 곡이 복원되었다. 새 사이트는 DB 설계작업 후 2018년 9월경 사이트 작업을 거쳐 11월 노동자대회를 즈음해 개설된다고 했다.

사이트 개발을 위해 제작사와 개발계약을 맺어 개발을 진행했다. 2018년 12월에 개설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모바일 지원 등의 난이도 문제로 시행착오를 거쳐 2019년 11월에야 1차 오픈했다. 그러나 나머지 음원들은 보존용으로 돌려져 재생이 안 된다.

2023년 기준으로 서울민예총과 함께 협업하여 민중가요 사료관으로 개편할 계획이라고 하며 현재 사이트는 악보[28]를 중심으로 운영 중이다. 음악은 앱을 사용하면 들을 수 있다.

음질이 별로였던 민중가요 음원[29]들을 다시 작업하고 있다. 예전 카세트테이프를 음원파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 작업된 음원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2024년 4월 24일자로 유튜브 채널 이름을 '채널 세지마'로 변경했다. 채널 세지마는 음원 복원과 함께 다양한 민중가요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4.2. 밥자유평등평화

홈페이지

1970~90년대 초반 민중가요를 다운받을 수 있는 사이트. 2002년경에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의 지원을 받아 음악학자 김병오 등이 주축이 되어 세웠다. 줄임말은 '밥자평평'.

4.3. 노동의소리

홈페이지

민중가요 작곡가 김호철이 만든 노래를 듣고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사이트.

5. 주요 노래

5.1. 대한민국

5.1.1. 투쟁가

5.1.2. 단체가

5.1.3. 진군가

5.2. 그 외 국가

6. 대표적인 콘서트

7. 평가

일부에서는 민중가요의 작곡풍이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한다. 물론 대부분의 민중가요는 대부분 포크 계열이며 편안한 멜로디로 작곡된다.[94] 하지만 민중가요는 기교 있는 가수의 멋들어진 공연으로 들으라고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라 다 함께 부르고 가사에 공감하라고 만들어진 노래인 만큼 대중가요 등과는 방법론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방법론적으로 민중가요와 가장 비슷한 장르는 군가, 성가(찬송가) 등이다.

이를테면 군가는 징집병들도 불러야 하므로 멜로디가 쉬워야 하고 반주보다는 가사가 강조되어야 하며 되도록 어려운 기교를 넣어선 안 된다. 박효신 군가 "나를 넘는다"를 외워야 했던 군필자는 잘 알 것이다. 성가(찬송가)들도 상황은 비슷해서 어려운 기교를 최대한 배제하고 쉬운 멜로디와 강조된 가사를 지향한다.[95] 당연히 시위나 집회에서 노래를 잘 부르든 못 부르든 모두가 같이 불러야 하는 민중가요도 이러한 방법론을 쓸 수 밖에 없다.

이런 민중가요의 특성은 집회에서 집단의 단결과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일반적인 가요풍으로 작곡한다면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21세기에는 락이나 힙합 혹은 트로트를 민중가요를 접목하는 실험이 일부 대학 노래패와 작곡자 사이에서 진행중인 상황이니 기대해 볼 만하다. 이미 민중가요 중에서도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 예술성을 추구했던 적이 있다.(사계 등)

시위에서 불리는 노래라고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는데 일부 노래는 특정 집단을 위해 작곡되었기 때문에(예: 철의 노동자) 전투적인 성향이 다분한 곡도 있다. 몇몇 곡은 사실상 전투개시곡~군가라고 보면 되는데 다분히 전투적으로 들리는 가사와 멜로디 덕분에 이렇게 들린다. 심지어 1990년대 들어서 희망새나 천리마, 한반도 등 강성 NL 계열 노래패들은 북한 절가형식과 주체창법을 차용하고 '조선'이나 '미국놈', '연방조국' 등 이북에서나 쓰일 법한 문구를 가사에 넣는 바람에 일반 시민들이 듣기에 거북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중가요는 진보운동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가치(평화, 인권, 민주주의)를 노래하며 멜로디나 가창력이 괜찮은 곡들이 있다. 시위 음악이라는 편견을 벗고 들으면 그럭저럭 들을 만한 음악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로 많이 트는 곳은 아무래도 시위현장이라서 의외로 들을 기회가 적다. 덕택에 집회 장소 근처를 지나가면서 하는 수 없이 듣게 되는 사람들이나 수시로 대규모 집회가 벌어지는 곳 근처 사는 사람들은 저것들을 들으면서 통행 불편을 겪거나 폭력사태가 벌어지는 걸 보기 때문에 좋게 들을래야 들을 수가 없다. 집회를 막느라고 개고생하거나 다치거나, 옆에서 동료가 실려가거나 순직하는 걸 경험한 전경 및 기동대원 출신 중에는 들으면서 안 좋은 기억만 잔뜩 상기하는 사람도 제법 된다.

민중가요가 가지는 사회적 의의는 음악을 통한 사회참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것이 음악의 정치적 이용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지만 시대의 요구에 반응하는 예술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다.[96]

그러나 그러한 곡 자체의 문제와는 별개로 민중가수들이나 민중가요 시대 사람들의 배타성이 문제를 빚고 있다. 리믹스 등의 변형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민중가요가 아닌 노래로 가면 민중가수로서 자격이 없다는 비난을 퍼붓는 등의 민중가요계의 보수적인 행태가 이러한 문제의 중심이며 이로 인해 민중가요는 점점 민중들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힙합 그룹 [[거북이(혼성그룹)|거북이가 사계를 편곡하여 발표했을 때 민중가요 세대들이 이를 상당히 비난한 바 있으며 노래의 원작자인 노찾사 또한 당시에 유감을 표명했다가 후에 최근에 와서 <사계>가 유명해지고나서야 이를 긍정한 바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안치환윤민석을 대하는 민중가요 정통진영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상업성도 싫고 자기들과 정파적으로 틀어졌다고 변절자라고 부른 결과 이들의 상당수는 대중성을 상실했다. 민중가요계에서는 자체적으로 힙합이나 랩 등도 접목을 하네 마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군대에서 힙합군가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물만 내놓고 있을 뿐이다. 결정하는 사람들 머리가 냉전시대에 굳어있는데 그게 현시대에 먹힐리 수가 없다. 진짜로 대중성을 고려했다면 한참 전부터 시위현장에서 노브레인청년폭도맹진가라도 흘러나오고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저 노래는 축구 응원가로는 쓰여도 시위현장 민중가요 목록에는 올라가지 못하는 노래인 것이 대한민국 민중가요의 현실이다.

8. 대중가요로의 전용

사노라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사계, 천리길 등은 가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특히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는 가사가 밝은 데다 조금씩 바꿔서 부르다 보니 민중가요인 줄 모르고 부르는 사람들도 꽤 많다. 심지어는 모 대형마트에서 마트 로고송 비슷하게 썼을 정도다. 원곡과 동요 버전의 차이점은 해당 문서 참조. 가톨릭 청년 성가에도 수록되어 있다. 문제는 이 경우 민중가요를 상업적으로 오염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면 아예 민중가요와 CCM을 결합한 형태의 민중찬양(민중찬송)이 나온다. 민중가요에 담긴 역사의식을 그대로 기독교의 신에 대한 찬양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민중의 편에 서서 정의와 평화를 행하는 신을 찬양하거나 예수를 따라 정의와 평화를 위해 투쟁하겠다는 내용의 찬양이 되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민중찬양 문서 참조. 전교조 문화국원으로써 참교육의 함성으로를 비롯한 몇몇 민중가요들을 작사, 작곡한 주현신 목사[97]가 이러한 민중찬양들을 많이 뽑아내었다. 민중가요 작사, 작곡가인 백창우도 다수의 민중찬양을 뽑아낸 바 있다.

청계천 8가민들레처럼 같은 곡은 웬만한 대중가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애절하며 진솔한 곡이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첨바왐바의 Tubthumping이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민중가요로 유명하다.

반대로 대중가요로 탄생했다가 민중가요화한 노래들도 있다. 정유라 이화여자대학교 부정입학 사건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며 함께 부른 노래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였고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 당시 god의 촛불 하나 등의 노래가 민중가요처럼 집회 현장에서 자주 불리기도 했다.

9. 노래방 수록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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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관련 문서

11. 관련 자료


[1] 경기남부총련 노래패 '천리마'가 대표적인 사례. 1996년 1심에서 이적단체 선고를 받았으나 1998년 항소심에서 '이적단체 구성'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2] 때문에 영국의 침략과 식민통치에 시달렸던 나라에서는 혐성국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다.[3] 제목에서 짐작되듯 공산당 선언을 모티브로 한다.[4] 당시 공윤 심의기준 및 국가보안법상 정식발매는 당연히 불가능했고 녹음된 테이프나 악보를 가지고 있다가 형사들한테 걸리면 얄짤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로 심의기준이 완화되어 음반이 발매되는 일이 많아졌다. 다만 역시 이를 사는 수요는 한정적이라...[5] 응답하라 1988에서 차안의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응답하라 1994에는 한 술 더 떠서 노래 틀어놓고 문선을 하면서 시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6] 캐릭터 디자인부터 전공투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7] 기타에 붙인 "This machine kills fascists"라는 문구로도 유명하다.[8] 원곡은 Richard Berry의 곡으로 The Kingsmen의 리메이크로 유명해졌다. 시위 현장에서 자주 불려지면서 한때 민중가요 취급을 받기도 했다.[9] 우디 거스리의 곡.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저항가요이기도 하다.[10] 조안 바에즈의 곡. 한국에서도 "우리 승리하리라"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어 불려졌다.[11] 피트 시거의 곡. 미국 광산 노동조합 투쟁과 관련하여 작곡된 노래인데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12] 가사는 반공주의를 조롱하는 내용이다. 'Red'는 빨갱이라는 뜻이다. 즉, 이 노래는 빨갱이라고 불릴 만한 활동, 그러니까 좌익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니 빨갱이라 불러도 신경쓰지 말거나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라는 의미다.[13] 리치몬드 북쪽의 부자들이라는 뜻인데 글자 그대로 리치몬드 북쪽의 워싱턴 D.C의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내용이다. 일반 미국 시민들이 죽어라 일을 하고 받은 푼돈마저 세금으로 다 뜯어가고 고통스러운 삶을 술로 보내는데 정치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야유하는 가사를 담았는데 엄청난 인기를 끌어 수많은 미국인들로부터 민중가요 대우를 받고 있다.#[14] 원곡에서는 자본주의 박살내리라-> 노동해방 쟁취하리라-> 사회주의 건설하리라였는데 현재는 자본주의 박살내리라-> 노동해방 쟁취하리라x2로 개사되었다.[15] 2000년대까지 활동한 동아리들로 2020년대 들어 사라지거나 대중가요 밴드로 전환한 경우도 있다.[16] 2000년대 중반까지 단과대학노래패연합동아리 중앙문예예술단으로 활동했다. #[17] 의대 동아리였으나 의학전문대학원 도입으로 의대가 폐지되면서 간호대 소속으로 바뀌었다.[18] 舊 아침이슬[19]경상과학기술대학교 출신, 가천대학교와 연합동아리[20] 중앙노래패[21] 애기능중앙노래패[22] 스페인어로 선언이라는 뜻이다.[23] 의혈중앙이라는 대학구호에 걸맞게 서울권 대학 중 민중가요 율동을 굉장히 잘 전수하는 동아리로 알려져 있다. 율동 전담 동아리다.[24] 경상대학교와 연합동아리[25] 이것도 현재 사용이 불안정하다.[26] 안드로이드용 앱은 현재 사용이 불안정하다[27] 임시 사이트의 서버가 윈도서버에서 리눅스서버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 박사모의 준동이라는 소문은 헛소문이다.[28] 이용자들이 직접 악보를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29] 민중가요 mp3들은 대부분 128kbps였다.[30] 3편까지 나왔으나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1편밖에 없다. 1편이 나왔던 2002년에 일어난 아폴로 안톤 오노 사건의 여파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다. 사실 2, 3편이 나왔다는 것 자체를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31] 폴란드 자유노조의 노조가 야넥 비시니엡스키가 쓰러졌다를 번안해서 만든 곡. 사실 투쟁가풍 민중가요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32] 서울지역대학생노래패협의회(줄여서 서대노협)에서 부른 노래, 해웃음 버전보다 많이 불려지는 노래다.[33] 해맑은 웃음을 위하여(줄여서 해웃음), 서울지역교사노래모임으로 2집 앨범 "학교에 가자..."에 수록된 곡이다.[34] 가사를 조금 바꿔서 '늙은 노동자의 노래'로 부르기도 한다. 원래는 작곡자 김민기가 군대 시절 같은 부대의 한 부사관을 소재로 만든 노래다.[35] 이화여자대학교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시위 사건에서 처음 쓰였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 집회에서 쓰이면서 민중가요가 되었다. 퀴어 집회 등에서도 꾸준히 쓰인다.[36] 어느 정도 잔잔한 분위기라 끝맺음할 때 많이 불린다. 후렴부의 "민중 민주"와 "노동 해방"에서 보듯 PD 계열의 노래인데 가사가 매우 엄정하다.[37] 개사해서 우리공화당 당가로도 불리는 노래다.[38] 민중가요치곤 왠지 7080포크송 느낌이 많이 난다. 영광의 길보다는 덜하지만 꽤 비장한 멜로디다.[39] 육룡이나르샤의 육룡제라블[40] 일어나요로 개사한 버전도 있다.[41]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하는 그 노래 맞다. 기타 입문자의 영원한 벗 이정선씨가 작곡했다.[42] 폴란드 투쟁가이다. 전진하라, 붉은 함대 장병이여 문서 참조.[43] 단, 복수가라는 제목의 민중가요는 두 곡이 있다. 나무위키에 문서가 없는 전노협 노래패가 부른 복수가와 문서가 있는 조국과 청춘이 부른 복수가인데 워낙 두 정파의 입장차가 크다 보니 가사도 전혀 다르다.(물론 제목답게 둘 다 얌전하진 않다.) 조국과 청춘의 복수가는 NL계 민중가요 특성이 약간 드러나고 전노협 노래패의 복수가는 전형적인 노조 민중가요다.[44] 청계피복노조에서부터 전승되었다고 알려진 전태일 열사 추모가. 원래는 느린 곡이었으나 최도은이 부른 락버전이 유명하다.[45] 그 기원의 영향도 있고 가사 역시 정파성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서 강한 가사의 민중가요 중에서는 가장 넓은 범 정파적 인기를 가진 노래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길 PD도 NL도 함께 부르는 불나비.[46] 비정규직 관련 집회를 끝낼 때마다 부르게 되는 노래. 김성만 작사/곡.[47] 단순한 투쟁가가 아니라 군정 종식을 희망하는 노래이다.[48] 대통령 후보 시절 문화예술인 간담회에서 노래하는 영상이 현재도 남아 있다.[49] 현재 가요 혹은 동요로 알려진 노래 맞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문서 참조.[50] 별로 유명하진 않으나 들불의 노래보다 좀 더 비장하고 깊이 있는 노래다. 특이하게 피아노도 연주하는데 노래 이름도 그렇고 마치 종교적인 노래를 듣는 것 같다. 허나 영광이란 가사에서도 나오지만 고난과 시련을 의미한다.[51] 참고로 오월의 노래는 전부 3종류 있다.[52] ㅅㅂ도 정식 곡명에 포함된다. 2016년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과 관련된 민중가요다.[53] 원곡은 북한 노래. 남녘에서는 양희은이 부른 버전이 유명하며 일본에서도 재일교포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으며 70년대 안보투쟁전공투 투쟁에서도 불리기도 했다.[54] 정확하게는 가요로 작곡되었다. 김민기, 양희은의 행보와 비슷한 신세를 겪고 민중가요에 편입되었던 노래.[55] 독특하게 1절은 우리가 아는 놀부의 행패를 이야기하지만 2절에서는 개신교 먹사들을 신랄하게 까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정권에 영합하던 개신교를 풍자하는 노래다.[56] 원곡은 북한 노래이며 남대협과 극단 희망새에서 가사 중 국가보안법 상 위배되는 구절을 순화하여 편곡하였다.[57] 멜로디는 신난다. 헌데 가사가...[58] 친구라는 제목의 다른 민중가요가 있기 때문에 친구 2라고 부른다. 친구 3도 있다. #[59] 음반에 따라 제각각 버전이 있으며 가장 알려진 게 천리마와 희망새 버전이다.[60] 전형적인 NL 풍 노래다.[61] 안치환 버전이 유명하다.[62] 불나비와 마찬가지로 최도은의 버전이 유명하다. 불나비보다는 부르기 어려워서인지 많이 불리지는 않는다.[63] Johnny I Hardly Knew Ye를 개사한 곡으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시위현장에서 자주 불렸다.[64] 김호철 작곡, 류금신 노래. 1990년 작이다.[65] 원래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곡 중 하나였지만 호소력 짙은 가사와 인상적인 멜로디로 인해 민중가요로 자리잡았다.[66] 노동자들의 권주가로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의미의 노래이며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민중가요 중 하나이다. 이게 민중가요라는 걸 모르고 듣는 사람이 많다는 점만 봐도... 애초에 첨바왐바(Chumbawamba) 자체가 좌파,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밴드다.[67] 프랑스의 라 마르세예즈에 러시아어 가사를 붙이고 곡조를 살짝 편곡한 노래다. 러시아 혁명 당시 민중가요이자 혁명가요로 많이 불렸다.[68] 프랑스의 국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 군가였고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인터내셔널가 등장 이전까지 가장 유명한 민중가요이기도 했다.[69] 인터내셔널이 공산주의/사회주의 계열의 국제적인 노래였다면 이 노래는 계파를 가릴 것 없이 좌파 전반 및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들의 공통 투쟁가로 유명했다. 레닌이 살아생전 제일 좋아하던 노래였으며 스페인 내전 때도 자주 불려 인터내셔널가처럼 국제적으로 많이 퍼진 곡이다.[70] 바로 위 항목인 폴란드의 19세기 민중가요인 바르샤바 시민을 원곡으로 하는 스페인어 개사곡이다. 이걸 다시 빛나는 길에서 개사한 salvo el poder(권력을 제외하고)도 있다.[71] 나치당의 당가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Horst-Wessel-Lied)를 개사한 노래다.[72] 가자! 노동해방의 원곡이다.[73] 영국 노동당의 당가이다.[74] 나치 집권기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좌파 세력 간의 단결을 위해 부른 노래이다.[75] 야마노키 다케시(山ノ木竹志) 작곡. 한국어로 번안되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집회,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등지에서 평화의 나무 합창단이 부른 바 있다.[76] 중화인민공화국의 전설적인 락커인 최건의 곡으로, 천안문 6.4 항쟁 당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렸다. 현재에도 천안문 항쟁을 상징하는 민중가요 중 한 곡으로 남아 있다.[77] 소련의 가요이자 군가인 카츄사를 파시즘 치하의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이 투쟁가로 번안하여 불러 지금까지 민중가요로 불려진다.[78] 경찰 X까라는 내용의 노래가 뭐가 민중가요냐 싶을 수도 있지만 미국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관련 시위를 할 때 시위대가 자주 외치는 구호가 이 노래의 후렴이다.# 영어 위키백과에도 Protest Song으로 등재되어 있다.[79]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서 정말 많이 불렸다.[80] 빛나는 길의 당가로, 전세계 공산 반군의 상징적인 곡 중 하나가 되었다.[81] 필리핀 신인민군의 군가이다.[82]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작자 미상의 민중가요로, 이탈리아 초기 아나키스트들, 가에타노 브레시 (Gaetano Bresci, 움베르토 1세 암살) 등의 아나코-인서렉셔니스트들을 상징하는 곡이다.[83] 이탈리아의 유명 민중가요 작곡가인 피에트로 고리 (Pietro Gori)가 작곡한 곡으로 왕정에 의해 추방당한 이탈리아 아나키스트들의 입장을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꾸준히 불리며 아나키즘의 인터내셔널리즘을 잘 나타내는 곡이다.[84] 20세기 간도처럼 스위스의 이탈리아인이 많이 사는 루가노로부터 추방당한 아나키스트들의 입장에서 피에트로 고리가 작곡한 곡이다. 죠르죠 가베르(Giorgio Gaber)가 부를 정도로 상당히 유명하고 가사가 유려하다.[85] 작자 미상의 민중가요로 로마 방언으로 쓰여 있다. 언뜻 보면 권주가 같지만 반기독교 색채가 강한 곡이다. 2차대전 이전 이탈리아 아나키스트들의 정서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86] 본디 제1인터내셔널 관련 사회주의자 단체가 연 혁명가 대회에 나온 곡이었으나 노동 운동과 투쟁 과정에서 꾸준히 불리며 CNT(Confederación Nacional del Trabajo, 전국 노동 연합, 스페인 최대의 아니키스트 노조)를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잡았다.[87] 1969년 밀라노에서 파시스트가 저지른 폭탄 테러를 당시 아나키스트 노동자였던 피넬리를 표적 수사하며 누명을 씌우고 조사 과정에서 그가 추락사하였다고 조작하여 살해한 사건을 다룬 민중가요. 이탈리아 국가의 만행을 비판하며 복수를 맹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수사관과 그 수사관의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는 10년 뒤에 아나키스트들에게 암살당했다.[88] 러시아에 대항해 싸운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 흑군 지도자 네스토르 마흐노가 만든 노래로, 아나키스트들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지금까지도 부르고 있다.[89] 소련에 대항해 싸운 우크라이나 극우 지도자 스테판 반데라를 기리는 노래로, 아조우 연대, 스보보다 등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지금까지도 부르고 있다.[90] 프랑코 정권 시기의 유명한 민중가요 가수인 롤란도 알라르콘(Rolando Alarcón)이 작곡한 민중가요들.[91] PLsong에 실려 있던 노래로 누가 만들었는지와 가사는 불명이다.[92] 특히 임자상의 광동어 버전이 많이 쓰인다.[93] 1992년까지 정기적으로 열리다가 이후 부정기적으로 개최됨.[94] 트로트는 일제, 락이나 랩송 등은 미제의 음악이라는 이유...라지만 21세기에는 당연히 그런 거 없다. 사실 처음부터도 그런 말은 없었다. 작곡 자체도 트로트의 5음 음계와 비슷한게 사용되기도 하며 포크도 미국 음악이다.[95] 가톨릭의 생활성가나 개신교의 CCM 등으로 넘어가면 대중가요처럼 어려운 기교를 넣기도 하지만 이 경우 처음부터 전례나 예배에서 신자들이 부르는 게 아니라 '전문 가수'를 전제하고 있으므로 상황이 다르다. 이런 노래들이 인기를 얻으면 전례와 예배에서도 들을 수는 있지만 원론적으로 보자면 이는 예외적인 케이스다.[96] 애초에 예술 작품의 정치적이나 경제적 이용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현대의 유행은 아니다.[97] 전교조를 하다가 구로중학교 교사직에서 짤린 후 문화국원으로 잠시 활동하다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에 진학하여 예장통합 교단의 목사가 되었고 현재 과천교회 담임목사로 목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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