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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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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장관 (1948~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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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정책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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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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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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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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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대

윤봉희
<rowcolor=#fff> 직책 변천 : 국방정책실 소속(제1-5대) ▸ 정책기획국장(제5-9대) ▸
정책실 소속(제10-11대) ▸ 정책홍보실 소속(제12대) ▸
정책홍보본부 소속(제12-14대) ▸ 국방정책실 소속(제15대~현재)
<rowcolor=#fff> 계급 : 현역 소장 / 고위공무원단 나급 일반직공무원(제2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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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1e31><colcolor=#fff> 대한민국 제44대 국방부장관
한민구
韓民求 | Han Min-goo
파일:한민구 국방장관.jpg
출생 1951년[1] 8월 30일 ([age(1951-08-30)]세)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現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본관 청주 한씨[2]
단허(丹虛)
현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원장
중원대학교 사회문화대학 군사학과 석좌교수
재임기간 제40대 육군참모총장
2009년 9월 21일 ~ 2010년 6월 18일
제36대 합동참모의장
2010년 7월 5일 ~ 2011년 10월 26일
제44대 국방부장관
2014년 6월 30일 ~ 2017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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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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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1e31><colcolor=#fff> 배우자 곽정임
자녀 1남 1녀
친인척 조부 한봉수, 고모 한정애
학력 내수초등학교 (졸업)
내수중학교 (졸업)
청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 / 학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외교안보학 / 석사[3])
종교 천주교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경력 제44대 국방부장관 (박근혜 정부)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75년 ~ 2011년
임관 육군사관학교 (31기)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
주요 보직 육군참모총장
육군참모차장
수도방위사령관
국방부 정책기획관
국방부 국제협력관
제53보병사단
육군본부 전략기획처장
육군본부 비서실장
수도군단 참모장
국방부 정책조정과장
제50보병사단 제123보병연대
수도방위사령부 민군심리전처장
수도방위사령부 감찰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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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대한민국 국방부장관2.2. 한국국가전략연구원장2.3. 중원대학교 석좌교수
3. 논란
3.1. 국방회담 중 한방울 규칙 관련 반박 중 차별 발언3.2. 생계형 비리 발언 논란3.3. 천안함 책임전가 논란3.4. THAAD 허위 보고 논란3.5. 계엄령 문건 관여 의혹
3.5.1. 군 지휘 체계 전복 시도 의혹
3.6. 그 외
4. 사건사고
4.1. 국방장관 협박 괴소포 사건
5. 경력6. 상훈7. 여담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군인, 前 국방부장관. 가족으로는 부인 곽정임 여사와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2. 생애

1951년 8월 30일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에서 아버지 한상대(韓相大, 1907. 8. 25. ~ 1989. 5. 3.)[4]와 어머니 부안 임씨(扶安 林氏) 임을순(林乙順, 1914. 11. 20. ~ 1999. 9. 14.)[5] 사이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내수초등학교(44회), 내수중학교(12회), 청주고등학교(43회)를 졸업하고, 1975년부터 보병 소위로 지냈다. 참고로 육군사관학교 제31기 출신이다. 위탁교육으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들어갔고, 1979년에 학사 학위를 받았다. 영관급 장교이던 1992년에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6]

군 경력으로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육군사관학교 전사(戰史)학과 교수를 지낸 이력이 있으며, 이후에는 정책과 기획 보직들을 역임했다. 대령 진급 후엔 수방사 감찰참모/민심처장을 거쳐 1994년 9월부터 1996년 3월까지 제50보병사단 제123보병연대장을 맡았고, 1997년 3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국방부 정책기획국 정책조정과장을 맡았다.

1999년 11월에 준장 진급에 성공하여 수도군단 참모장을 잠깐 하다가 2000년 4월에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으로 영전했고, 2002년부터 1년간 전략기획처장을 하다가 2003년 4월에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53보병사단장과 국방부 국제협력관과 정책기획관을 거쳤다. 2006년 12월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수방사령관을 지냈고 정권이 바뀐 이후에는 육군참모차장을 맡았다.

2009년 9월에 김태영 국방부 장관(육사 29기)이 취임하면서 군 수뇌부가 전부 교체될 때 야전군사령관 경력 없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했다.[7] 1기수 선배인 이상의 합동참모의장이 천안함 사건 당시 보인 처신 때문에 문책성 경질이 이뤄지자 9달 만인 2010년 6월에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했고 2011년 10월에 전역했다. 야전군사령관을 지내지 않았는데 그동안 맡았던 보직 등을 보면 작전통 야전군 지휘관보다는 안보전략과 국방정책을 다루는 정책형 군인이다.[8]

육군 대장 진급을 위한 커리어에서 제일 중요한 두 개의 보직이 사단장군단장인데, 대장 진급자들을 보면 사단장이나 군단장 중에서 최소 1개는 전방 야전부대 지휘관 경력이 있는데, 한민구의 경우 사단장과 군단장 모두 전방 야전부대 경력이 없다.[9] 군단장급 직위를 수방사령관[10]으로 보직 받긴 했지만 이 역시 전방 야전부대는 아니다.[11] 육군 출신 합동참모의장야전군사령관 경력이 필수나 다름 없을 정도로 야전군사령관을 거치고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하는데 한민구의 경우 야전군사령관 경력 없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했다.[12] 어찌보면 관운이 매우 좋은 모양. 다만 인사 이동이라는게 군 통수권자나 장관의 정무적 판단이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던 만큼 한민구 본인이 야전군사령관을 안 하고 참모총장에 간 것은 본인의 의도라고 보기에는 어렵다.[13]

전역 후 국회의원 출마(충북 청주)가 예상되었으나, 새누리당의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14]

2.1.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2014년 6월 30일에 김관진에 이어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하였다.[15][16]장관 취임 직후에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어 대국민사과를 하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은 한 장관이 취임하기 전에 발생한 사건이며, 그가 취임하기 전에 조직적인 사건 축소·은폐 의혹이 있었으므로 한 장관보다는 김 전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17][18]

2014년 7월 20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하여 THAAD는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2015년 3월 6일, 키 리졸브 연습현장을 방문해 훈련상황을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 한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미연합훈련은 한미동맹을 떠받치는 주춧돌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 8월 21일,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으로 담화문 발표를 했다.

2016년 1월 27일, MBC 이브닝뉴스에 출연하여 북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비책에 대해 논했다.

2016년 2월 5일, 설맞이 장병격려 메세지를 보냈다.

2016년 3월 18일, SBS에 출연하여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도발 행위가 이어지는 현재의 안보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상당히 향상되고 있고 추가 핵실험 또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2016년 3월 28일, 북의 도발 위협에 대비, 최전방 ‎천무‬(다련장)대대를 방문하여 대비태세를 확인하고 장병들의 정신무장과 완벽한 임무수행을 당부하였다.

2016년 4월 6일, 북한의 도발 억제를 위한 경계 및 작전의 장기화에 따른 장병 피로도 누적에 대한 국방부 장관의 장병 격려 영상을 송출했다.

2016년 11월 22일, '연평도 포격전 6주기'를 하루 앞둔 22일 연평도를 방문해 연평부대의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했다. 한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적이 도발하면 단호하고 강력하게 응징할 것을 강조했다.

2017년 2월 13일, 육군항공작전사령부를 방문하여 아파치 헬기 전력화 현장순시 및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하였다. 북한이 또 다시 탄도 미사일 발사를 자행했는데 핵과 미사일 도발 망상을 버리지 못하면 북한 정권은 자멸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2017년 2월 20일,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를 방문해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

2017년 2월 24일, 수도방위사령부를 방문해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

2017년 3월 20일, 육군 제2작전사령부를 방문해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

2017년 3월 29일, 육군 제32보병사단의 해안 경계소초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노고를 치하했다.

2017년 4월 3일, 방한 중인 스콧 스위프트 미 태평양함대사령관을 면담하고 군사 안보적 협력 증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2017년 4월 5일 실시된 지.해 합동해상사격 현장과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를 전격 방문했다. 한 장관은 이 자리에서 강력한 힘과 확고한 의지로 대비하는 것만이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길이라며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2017년 5월 22일,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백석산 6.25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육군 제21보병사단)을 찾아 호국 영령의 넋을 기리고 발굴에 참여하고 있는 장병들을 격려했다.

2017년 6월 21일, 중부전선 육군 제5보병사단 GOP를 방문해 경계작전 태세를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

2017년 6월 29일, 한미연합군사령부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 환송 의장행사를 열었다.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두 달이 지났고 전 정부 황교안, 윤병세, 김관진, 박승춘 등 주요 인물들이 떠나는 동안 후임 내정자의 임명이 난항을 겪는 모습을 보여 현직에서 머물러있어야 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의 임명이 확정되며 7월 13일에 국방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2.2. 한국국가전략연구원장

재임 기간 동안의 여러 논란이 제기되고 한 동안 소식이 없었으나 2019년 4월에 한국국가전략연구원[19]의 원장으로 취임했다고 한다.#

2.3. 중원대학교 석좌교수

2021년 10월 15일, 중원대학교 사회문화대학 석좌교수로 임용되었다. 임용기간은 2년이다. #

3. 논란


3.1. 국방회담 중 한방울 규칙 관련 반박 중 차별 발언

2006년 5월 17일 남북 군 실무자끼리 열린 국방 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였던 한민구 당시 국방부 국제협력관(육군 소장)이 한국 농촌사회의 다문화 바람을 이야기하자 북한의 수석 대표 김영철은 민족의 혈통이 더럽혀지고 단일성이 사라진다고 비판했고, 그 말에 한민구 소장이 어이가 없어하여 '한강 물에 잉크 몇 방울 떨어트리는 수준일 뿐'이라고 응수했으나 김영철은 그 몇 방울의 잉크도 용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워낙 북측 발언이 막장이라 그렇지 사실 한민구의 발언도 한국인을 '물', 외국계 혈통을 '잉크' 따위로 부른 시점에서 명백한 차별 발언 이었기 때문에 글러먹은 비유인 점은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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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생계형 비리 발언 논란

한민구를 대표하는 발언. 2015년 6월 16일 불거진 방산비리를 두고 "예전엔 방산비리가 대형 비리였지만, 요즘은 생계형이다."라는 황당한 발언으로 공분을 샀다. 본인의 의도는 권력 남용형 비리에서, 현재는 납품업체의 이권을 봐주고 대신 금품이나 전역 후 일자리 알선 등 비리로 변화했다는 맥락이다.

그러나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급여와 연금을 받는 고위직 군인들의 비리를 단순 생계형 범죄와 동일 선상에서 볼 수는 없다. 과연 방산비리 척결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비난이 거세지자 6월 19일에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했지만 퇴임할 때까지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다.

이에 예비역들은 한민구를 진정한 이등병, 폐급 이라며 비꼬고 있다. 이 발언 이후 인터넷 상에서 군납비리와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생계형 비리드립을 치면서 비꼬게 되었고 한민구는 생계형 국방부 장관이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도 부정부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생계형 비리 발언이 언급되면서 안 좋은 의미로 국민적 인지도를 얻고 말았다.

문민통제 이전에도 방산 비리에 대한 처벌은 엄한 처벌이 원칙이었으며 세계사 전체를 통틀어 장소나 시대나 상황에 따라서는 즉결 처형될 수 있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심지어 조선이 멸망한 시발점이 된 사건 중 하나인 임오군란이 일어난 원인이 군납비리다. 공직자의 비리와 비위에 민감해지는 시대에 이러한 발언은 유난히 부적절하다.

3.3. 천안함 책임전가 논란

합참의장 인사 청문회에서 천안함 침몰 사태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관련하여 "경계 작전 실패는 확실하지만 전체 작전을 담당하는 합참의 작전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20]

3.4. THAAD 허위 보고 논란

2017년 5월 30일엔 사드 추가 반입을 한 것을 인수인계를 하지 않았고 국방부가 이를 숨겼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전임자였던 김관진 실장과 공모하고 대통령에게 명령 불복종으로 항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청와대는 해당 사실을 밝혔는데, 6월 말 미국과의 회담을 앞두고 사드 '배치'에 대하여 별도 보고를 지시했다. 한민구는 보고 시에 사드 2기 배치만을 보고 했다. 그날 저녁 사드 배치 관련 장성에게서 청와대 관계자가 전화로 추가 4기 반입에 대한 정보를 전달 받았고 익일 오찬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한민구에게 사드 추가 배치 (반입말고) 확인을 요청하였다. 한민구는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반문, 30일 문재인 대통령의 직통 전화에서 사드 발사대 4기 반입(배치아님)이 최종적으로 확인됐다.

6월 2일엔 '사드 배치에 대해 정부의 입장변화가 없을 것'이란 의견을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 시사할 것임을 밝혀, '민주적 절차를 밟고 국민들을 설득할 과정이 필요하다.'란 뜻을 전날에 밝혔던 문재인 대통령의 의사를 대놓고 무시했다.#

3.5. 계엄령 문건 관여 의혹

조금 지나가 보면 '이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 2018년 7월 20일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을 두고
그리고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 으로 인해 또 수사 대상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가 기각될 경우 시위가 과격화된다면[21] 시위에 참가한 국민들을 병력으로 제압하기 위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모의하여 각 부대 병력들을 준비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고, SBS에서는 한민구 장관의 지시로 기무사가 해당 문건을 작성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실무자들이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 관련 문건을 한민구의 지시에 의해 작성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한민구만큼은 빼도 박도 못한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 내란 음모 혐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단 만 존재한다.

2018년 7월 25일 내란음모 혐의로 출국금지 되었다. '계엄령 검토 지시' 한민구 출국금지…내란음모 혐의 적시

내란음모 혐의로 한국을 나간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조현천이 있으며 지금도 돌아오지 않으니 당연한 조치이다.

결국 조현천 강제구인이 지연되자 일단 기소중지되었다. 즉 조현천 강제구인이 이뤄지면 수사가 재개된다는 말씀. 그리고..

3.5.1. 군 지휘 체계 전복 시도 의혹

2019년 5월 25일 자 JTBC의 보도로 19대 대선 2일 후에 실제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에서 육군총장으로 바꾸는 것을 추진한 정황이 확인되었다. # 물론 육군총장이 군 의전 서열 2위에 있으며, 군의 행정에 관한 권한인 군정권을 쥐고 있으나 합참의장은 군 의전서열 1위이며 군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군령권을 쥐고 있는 위치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한 무리수다.

한민구 장관이 앞서 터뜨린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진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6. 그 외

4. 사건사고

4.1. 국방장관 협박 괴소포 사건

국방장관 앞 협박 소포에 "한민구 처단" 적힌 식칼
한민구 국방장관 협박 괴소포 발견…군경 수사 중

2014년 9월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괴소포가 보내진 사건이다.

반정부 인사나 북한 고정간첩 등으로 추정되는 범인이 편의점에서 소포를 부치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소포에는 붉은색으로 식칼에 칼날 앞뒤로 한민구 "처단" 이라고 쓰여있었으며 편지도 있었다.

5. 경력

소위중위대위소령중령대령준장소장중장대장
전역 이후

6. 상훈

7. 여담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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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안전처장관 박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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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적상으로는 1953년생이다.[2] 장간공파(莊簡公派) 33세. 인수대비는 장간공파 파조 한치례의 동생이다.[3] 석사 학위 논문 : 統一 獨逸의 軍事統合에 관한 硏究(통일 독일의 군사통합에 관한 연구).[4] 초명 한점용(韓点龍).[5] 임태철(林台喆)의 딸이다.[6] 이때 인연으로 2014년에 연세대학교에서 연세를 빛낸 행정인상을 받았다.[7] 이 무렵 병 입영식이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로 인해 실시되지 않았다가 2010년 2월부터 재개됐는데 2010년 2월 1일 다시 열린 육군훈련소 입영식에 참모총장으로서 직접 참석했다. 그때 입대했던 사람들은 난데없는 포스타 등장의 임팩트 탓인지 전역 후에도 이를 기억하고 있다.[8] 역대 장관 중 비슷한 커리어의 정책통으로는 김태영 전 국방장관, 이종섭 전 국방장관 등이 있다.[9] 경력 문단에서 후술하겠지만 소대장과 중대장, 대대장은 전방 야전부대에서 지냈지만 연대장 역시 후방부대인 제50보병사단에서 지냈다.[10] 특전사수방사군단급 기능사령부이다.[11] 수방사는 엄밀히 따지면 지원부대(교육사, 군수사)가 아닌 야전부대이긴 하지만...[12] 합동참모의장 보직이 생긴 1954년부터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한 35명의 육군 대장 중에서 27명이 야전군사령관 경력을 거치고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했다. 야전군사령관 경력 없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한 8명 중 6명은 1980년 이전에 임명됐고, 21세기 들어 야전군사령관 경력 없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한 사람은 한민구가 유일했다. 2022년 6월 김승겸 장군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지명됐는데 이쪽도 야전군사령관 경력이 없고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서 영전했다. 하지만 이는 2018년부로 제1야전군사령부제3야전군사령부지상작전사령부로 합쳐졌기에, 대장 보직 중 전방 야전군 사령관이 하나밖에 안 남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13] 이명박 정부가 김태영 장관 임명 후 장관의 원활한 군 지휘관 보장을 위해 30기에서 합참의장을 내면서 31기를 바로 참모총장으로 끌어들인 것이 원인. 1군 사령관인 김근태, 연합사부사령관인 이성출은 전부 전역 조치되었고, 30기는 이상의 3군 사령관 1명만 남겨서 합참의장을 시켜주고, 31, 32기를 동시에 끌어서 대장 계급을 부여했다.[14] 아무래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국방부장관으로의 취임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15] 이로써 노재현, 김동진에 이어서 역대 세 번째로 육군참모총장 - 합동참모의장 - 국방부 장관을 모두 역임한 인물이 되었다.[16] 참고로 해군참모총장 - 합동참모의장 - 국방부 장관을 모두 역임한 인물은 아직까지는 없고, 공군참모총장 - 합동참모의장 - 국방부 장관을 모두 역임한 인물로는 이양호와 정경두가 있다.[17] 대신 2014년 8월 5일에 해당 사건에 책임을 지고 육군참모총장 권오성 장군이 사임했다.[18] 사건 당시 김관진 장관은 국가안보실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장관 직은 이임하고 물러났지만, 갓 임명된 안보실장 자리에서 경질하기에는 타이밍도 안 맞고 안보실장이 책임지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어 권오성 총장과 권혁순 3군 사령관, 이범수 6군단장, 이순광 28사단장으로 이어지는 지휘 계통을 박살내고 끝냈다.[19] 국가기관이 아니라, 정부의 외교·통일·국방 분야의 전직 장관 등 고위관료나 학계 전문가들이 민간차원에서 국가전략을 연구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민간학술기관이라고 한다.[20] 다만 당시 이상의 합참의장의 행적이나 당시 합참의 작전 계통이 전부 문책성 인사를 통해 좌천된 것을 보면 정부도 실패는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21]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탄핵 기각 즉시 계엄을 선포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박근혜의 혐의와 무성의한 재판 태도부터가 탄핵 기각 가능성을 0을 넘어 마이너스로 만드는 수준이었다.[22] 연구가 진전되고 해금된 사료가 늘어남에 따라 ,현대와 조선시대 이전 전쟁사 기술이 구체적이게 된 면에서 육사교수가 한 명쯤 참여하는 건 말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군이 과거의 잘못을 지우고 미화하란 요구를 자주 한 전력이 있다는 것.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전두환을 초대해 육사 사열한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혹자는 사면받았다며 괜찮다고 하는데, 대통령의 사면은 저지른 범죄에 무죄 선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을 감면시켜주고 피선거권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23] 별명이 승냥이이다.[24] 이 회담에서 남한은 한창 농번기겠다는 얘기로 인사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농사 이야기를 하던 중 한민구 대표가 최근 한국 농촌에 외국인 신부가 많다는 말을 꺼냈다. 그 얘기를 들은 김영철이 진심 못마땅한 표정으로 민족의 혈통을 더럽혀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단다. 이 말에 한민구 대표가 미소를 잃지 않고, 한강 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는 수준이라 다 같이 어울려 살면 문제될 거 없다고 받았지만 김영철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삼천리 금수강산이다. 잉크 한 방울 떨어뜨려선 안 된다'라고 강하게 나오는 바람에 논쟁이 길어지고 분위기가 싸해졌다고 한다.[25] 실제로 사단장 시절을 지역방위사단에서 지냈고, 야전군사령관을 거친 적이 없다. 요직인 수방사령관을 맡은 적이 있지만, 최전선의 야전 군단과는 분명히 다른 작전 체계나 교리로 움직이며(기본적으로 남침 저지 후 진격보다 서울 사수를 모토로 하는 부대니까) 일선 장병들의 군기 잡기도 야전 부대만큼 심하게 잡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분명 다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