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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슨 1978년식 커스텀 L-5 CES | |||
<colbgcolor=black><colcolor=white> 유형 | <colbgcolor=white,#1e1e1e>어쿠스틱 기타 / 일렉트릭 기타 | ||
생산 시기 | 1923년 ~ 현재 | ||
제조사 | 깁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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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합 구조 | 셋 넥 | ||
스케일 길이 | 24.75" (약 628mm)[1] 25.5" (약 648mm)[2] | ||
현 수 | 6현 | ||
헤드스톡 | 3x3 헤드스톡 | ||
바디 목재 | 메이플 스프러스 상판 / 메이플 측판 / 자작나무 후판 | ||
넥 목재 | 마호가니 | ||
지판 목재 | 에보니 로즈우드 | ||
지판 곡률 | 12" (약 304mm) | ||
지판 인레이 | 스플릿 페럴렐로그램 닷 풀 블록 | ||
프렛 수 | 20개 | ||
픽업 조합 | 험버커 픽업 x 2 P-90 x 2 험버커 픽업 x 1 | ||
컨트롤 | 2 볼륨, 2 톤 마스터 볼륨, 마스터 톤 | ||
브릿지 | 에보니 새들/L-5 트레피즈 테일피스 | ||
※ 볼드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사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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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깁슨에서 개발한 아치탑/풀 할로우 바디 일렉트릭 기타.2. 역사
2.1. 1923년 ~ 1945년
깁슨 L-5 (1924) | 깁슨 L-5 어드밴스드 (1935) |
당시 처음 생산되었던 L-5는 바디 상판으로 스프러스를, 바디 측판과 넥으로 메이플를, 후판으로는 자작나무를 사용하였으며, 지판에는 에보니를 사용하였다.
L-5의 개발 전에도 깁슨에는 깁슨 L 시리즈의 다양한 아치 탑 기타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5] 하지만 당시 빅 밴드 열풍 속에서 상대적으로 소리가 작았던 기타는 여전히 독주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보다는 다른 악기들을 보조해줄 뿐인 반주용 악기로만 치부되었었고, 실제 현장에서도 딱 그 정도 용도로만 사용되어져 왔었으나, L-5가 처음으로 개발되자 마침내 기타는 빅 밴드 내에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가 되었다.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L-5의 편한 연주감[6]과 우렁찬 소리를 선호하였고, L-5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초창기 깁슨 기타의 판매량에 일조한다.
꼭 재즈 빅 밴드 뿐만 아니라도 L-5는 그 특유의 적절함을 무기로 다양한 장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블루스, 컨트리 뮤직 같은 음악에서 이 L-5를 사용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한다.
1929년부터 생산된 몇몇 L-5들은 지판 인레이가 일반 닷 인레이에서 블록형 인레이로 바뀌고, 3중 바인딩까지 삽입되어 더욱 고급스러운 외관을 지닌 채 출고되는데, 이들은 L-5의 어드밴스드 모델이라는 마케팅과 함께 판매되었다. 거기에 1934년이 되자 깁슨은 기존에 생산되던 L-5 모델들의 바디 넓이를 16인치에서 17인치(약 43cm)로 더욱 늘렸고, 한편으로는 더욱 화려한 외관적 특징 및 옵션들을 더한 L-5 디럭스 모델을 개발하여 L-5 슈퍼(L-5 Super)라는 제품명을 붙여 판매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나중에 독립적인 아치탑 기타 모델로 분리되는데, 추후에 슈퍼 400(Super 400)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깁슨 L-5 PN[7] (1939) |
1941년에 진주만 공습을 시작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전격적으로 참전하자 미국 내 여러 공장들은 군용 목재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전환된다. 여기에는 당연히 나무로 악기를 만들던 깁슨 또한 포함되었고, 전쟁 내내 이들은 군수 물자를 생산한다. 악기의 생산량은 기존과 비교하여 크게 줄어들었고, 실제로 1941년부터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생산된 깁슨 악기들은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clearfix]
2.2. 1945년 ~ 현재
깁슨 ES-5[10] (1949) | 깁슨 ES-5 스위치마스터 (1951) |
한편으로 1930년대 재즈 기타리스트 찰리 크리스찬이 처음으로 아치 탑 기타에 전기적 픽업을 연결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보인 이래, 아치 탑 기타들은 적은 음량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전기적 증폭으로 극복한다는 해답을 얻은 상태였다. 1940년대에 들면 이미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본인의 기타에 외장형 픽업을 장착하여 연주하고 있었는데, 깁슨은 이에 착안, 1949년에 처음으로 픽업을 적용한 L-5를 선보인다. 당시 이 모델은 L-5라는 모델명 대신 깁슨에서 이전부터 생산하고 있던 일렉트릭-어쿠스틱 기타 라인업인 일렉트릭 스패니쉬(Electric Spanish, ES) 라인업[12]을 통해 ES-5라는 모델명을 지닌 채 출시된다. ES-5는 두 개의 도그 이어 P-90 픽업을 장착하여 외장형 픽업 하나만을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톤을 낼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깁슨은 2년이 지난 1951년에 ES-5에서 픽업을 세 개로 증가시키고 픽업 선택과 톤 조절의 범용성까지 넓힌 ES-5 스위치마스터(ES-5 Switchmaster)를 발매한다. 픽업 세 개에 각각 볼륨 노브와 톤 노브가 별도로 장착되어 있어 매우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했고, 세 개의 픽업을 개별 선택하는 것 외에도 추가로 모든 픽업을 켤 수 있는 옵션을 추가하여 매우 독특한 음색을 들려주었다. ES-5 시리즈의 독특한 사운드는 아치탑 기타가 재즈, 블루스, 컨트리 뮤직같은 기성 음악 장르들을 넘어 막 떠오르고 있던 로커빌리나 로큰롤에도 사용되면서 그 사용 저변을 넓히게 된다.
깁슨 L-5 CES (P-90 픽업 적용, 1953) | 깁슨 L-5 CES (PAF 험버커 픽업 적용, 1960) |
1957년이 되면 깁슨은 현재까지도 일렉트릭 기타용 픽업계의 스테디셀러로 남은 PAF 험버커 픽업의 개발을 완료하였고, 자사의 여러 일렉트릭 기타 모델들에 이 험버커 픽업을 적용한다. 레스폴같은 기타들이 그러한 것처럼 L-5 CES에도 험버커 픽업이 장착된 모델들이 출연하고 시작하였고, 이러한 기조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13] 당시 험버커 픽업을 적용한 L-5 CES들도 등장하였는데, 웨스 몽고메리, 리 릿나워, 에릭 클랩튼같은 재즈, 록의 전설적인 아티스트들부터 비교적 최근 아티스트인 존 메이어 또한 사용할 정도로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사랑받는다.
1993년이 되자 깁슨은 비교적 고가 모델이었던 L-5 시리즈의 생산을 당시 막 생긴 하이엔드 라인업이었던 깁슨 커스텀 샵으로 이전한다. 이 때 생산된 L-5들은 커스텀 샵 네이밍을 달고 출시되었고, 여전히 고가의 재즈용 아치 탑 기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수요를 담당하던 재즈 장르의 몰락세,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인구의 감소로 아치탑 기타의 수요가 점점 줄어갔고, 급기야 깁슨은 2015년 자사의 라인업을 리뉴얼하며 L-5를 포함한 모든 아치 탑 기타들을 깁슨 USA와 커스텀 샵을 포함한 정규 생산라인에서 단종시킨다. 2019년 회사가 파산할 때까지 아치탑 기타의 정규 생산라인 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는 회사가 재기한 2020년도 이후로도 여전하다.
2024년 현재 깁슨에서는 아주 극소량의 아치 탑 기타들만을 커스텀 오더 라인업인 M2M(Made 2 Measure)을 통해서만 생산 생산하고 있다.
3. 상세
1924년식 깁슨 L-5의 사운드[14] | 깁슨 커스텀 샵 L-5 CES의 사운드 |
동그란 사운드 홀을 가진 어쿠스틱 기타들이 일반적이던 시대에 바이올린족 악기를 연상케 하는 F홀을 뚫는다는 발상은 전문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알았던 디자이너 로이드 로어의 아이디어가 적극 반영된 결과물이었으며, 그의 아이디어가 적극 반영된 L-5는 실제로 업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아치 탑 기타 전문가인 토마스 반 후스(Thomas A Van Hoose)는 로이드 로어를 두고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Originally, he was hired as what we might refer to these days as a design consultant. He came up with a very primitive pickup that he tried to amplify a couple of guitars with, but he didn't do much with it at Gibson. He was a visionary, and I think he saw the future in electric guitars. He was always looking to improve and innovate throughout his career, either with Gibson or afterwards."
"원래 그는 우리가 요즘 말로 말하는 디자인 컨설턴트로 고용되었었고, 기타 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한 매우 원시적인 형태의 픽업을 고안하기도 했었지만 깁슨과 많은 부분 협업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안목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일렉트릭 기타의 장래를 엿본 것 같습니다. 그는 커리어 내내 발전과 혁신을 추구했습니다. 깁슨과 함께 했었건, 아니건 간에 말입니다."
Guitarplayer지와의 인터뷰 中
16에서 17인치에 달하는 큰 너비의 울림통은 당시 소리가 너무 작아 재즈 빅 밴드의 반주용 악기로만 사용되던 기타라는 악기가 픽업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기 전까지는 가장 효과적으로 악기에 존재감을 부여해주던 L-5만의 특성이었다. 실제로 아치 탑 기타에 픽업을 장착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바뀐 이후로는 이러한 특성이 더욱 강화되어 재즈 기타의 솔로 연주에서 많이 사용되었는데, 가령 웨스 몽고메리는 이 L-5를 사용하여 썸 옥타브 주법같은 다양한 재즈 기타 연주법을 개발해내어 기타라는 악기가 재즈 합주에서 얼마나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했다.[15]"원래 그는 우리가 요즘 말로 말하는 디자인 컨설턴트로 고용되었었고, 기타 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한 매우 원시적인 형태의 픽업을 고안하기도 했었지만 깁슨과 많은 부분 협업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안목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일렉트릭 기타의 장래를 엿본 것 같습니다. 그는 커리어 내내 발전과 혁신을 추구했습니다. 깁슨과 함께 했었건, 아니건 간에 말입니다."
Guitarplayer지와의 인터뷰 中
본래 아치 탑 기타는 재즈나 컨트리 뮤직 등에서 사용할 용도로 개발된 악기였으나, 1950년대가 되자 로큰롤을 필두로 성장한 솔로 아티스트들이 사용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아티스트들 중 L-5를 사용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가 바로 에릭 클랩튼이다.[16] 본인 스스로 에릭 클랩튼같은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밝힌 존 메이어 또한 L-5 기타를 라이브에서 연주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4. 사용자 목록
5. 여담
- 2023년을 기준으로 출시 100주년을 맞이했다.
- 첫 출시 당시부터 아예 전량 커스텀 오더 생산으로 변경된 현재도 깁슨에서 생산하는 기타 모델들 중에는 가장 비싼 가격을 가지고 있는 모델 중 하나인데,[17] 아치 탑 기타 자체가 생산 공정이 복잡하고 제작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6. 둘러보기
[1] 1923년 ~ 1934년까지[2] 1935년 이후[3] 깁슨의 창립자인 오빌 깁슨의 사후, 그가 개발한 아치형 만돌린을 개량한 F-5 만돌린의 전반적인 개발 및 디자인을 담당했던 이력이 있다.[4] 현재도 플랫 탑 어쿠스틱 기타들은 대부분 이런 디자인으로 만든다.[5] L-1부터 시작하여 L-4까지 여러 종류가 있었다.[6] 지금에야 압도적으로 편한 연주감을 가진 슈퍼스트랫같은 기타들이 차고 넘치기에 이해할 수 없는 말일 수도 있으나, 당시 대부분의 아치탑 기타들이 가진 불편한 연주감과 작은 음량 사이에서는 꽤 편한 연주 경험을 제공해주었던 것은 맞다.[7] 픽업이 장착되어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DeArmond에서 제작한 외장형 픽업으로, 당시 L-5들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나오던 것은 아니다.[8] Venetian Cutway, 컷어웨이를 둥근 모양으로 마감하는 기법이다. 이와 반대되는 기법으로는 컷어웨이를 뾰족한 모양으로 마감하는 플로렌틴 컷어웨이(Florentine Cutaway)가 있다.차이점[9] 네추럴 피니쉬가 적용된 모델들은 여기서 뒤에 N(Natural)이 붙어 L-5 PN이라 불렸다.[10] 블루스 기타리스트 T-본 워커가 소유했던 개체이다.[11] 지금이야 브라질리언 로즈우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벌목 및 국제 거래 규제로 엄청난 희소성을 자랑하는데 반해, 당시에는 어떠한 규제도 없었고, 악기 재료로 사용되는 로즈우드들은 거의 대부분이 브라질리언 로즈우드였다.[12] 현재도 깁슨의 대표 세미 할로우 바디 모델로 유명한 ES-335 또한 이 일렉트릭 스패니쉬 라인업을 통해 출시된 모델이다.[13] 커스텀 샵 오더 시 별다른 요구사항이 있지 않은 한, 거의 모든 L-5 CES들이 험버커 픽업 사양으로 출고된다.[14] 해당 개체에는 픽업이 없기 때문에 외장형 마이크를 사용하여 녹음하였다.(영상을 잘 보면 악기 앞쪽에 비치된 마이크를 볼 수 있다.) 현재도 픽업이 장착된 일부 아치 탑 기타들은 픽업 출력 사운드와 외장 마이크를 사용한 소리를 섞어 녹음본에서의 어쿠스틱한 울림을 증대시키기도 한다.[15] 추후 깁슨 커스텀 샵을 통해 웨스 몽고메리의 시그니처 L-5가 발매되기도 했는데, 실제 그가 커리어동안 사용하던 스펙에 맞춰, 단 하나의 픽업만이 넥 포지션에 장착되어 있다.[16] 라이브에서 L-5를 사용하여 오즈의 마법사(영화)의 테마곡인 Over the Rainbow를 연주한 것으로 유명하다.#[17] 가장 비싼 악기는 L-5의 파생작인 슈퍼 40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