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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3:39:11

시리아 내전/분석


1. 개요2. 전술적 특색3. 끝나지 않는 내전
3.1. 시리아 정부군의 문제점3.2. 반군 세력의 문제점3.3.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
4. 무력 개입을 못했던 이유
4.1. 국제 정치적 역학 관계4.2. 인식의 변화4.3. 현시창: 온건 반군은 없다
5. 트럼프의 당선이 미친 영향6. 튀르키예의 변칙적 행보가 미칠 영향

1. 개요

시리아 내전을 분석한 문서

2. 전술적 특색

2011년 6월 이들리브 주의 도시 지슈르 앗 슈구르에서 정체 불명의 무장 세력에 의해 경찰이 전멸 당하고 무기고가 털리면서 정부군의 첫 진압 작전이 개시되었다.[1] 이후 정부군의 진압 작전은 일단 위수 지역의 치안 유지에 실패했을 때 주둔지로 퇴각하여 방어하고, 증원을 받아 주요 도시의 재탈환에 나서는 방식이었다. 이때부터 2013년까지 정부군의 전술은 압도적인 전차와 장갑차, 공군력을 이용해 주요 방어 거점을 파괴하고 시가지에 전차를 돌입 시켜 주요 포인트를 점령하고 보병으로 건물과 거리를 점령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2013년부터 시리아 정부가 심각한 경제제재에 시달리고 비축물자들이 바닥을 드러냈으며, 시가전에 전차를 들이미는 방식이 심각한 전차 소모로 이어지자 더 이상 정규군식의 전술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시리아 정부군의 전술은 반군의 체계를 상당부분 모방한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정부군, 반군 양쪽 모두 심각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금 사정이 충분하지 못해서 소수 병력으로 광대한 전선을 유지하기 때문에 여단 편제가 대세이다. 반군 조직들은 사단, 군단 등 상위 제대 명칭을 조직명에 집어넣지만(ex: 자유 시리아군 제1포병사단 등) 실제 규모는 2000~5000여 명 수준이며, 수만 명 수준의 조직이라도 내부에 여단급, 대대급의 소조직들이 연합을 이룬 상태이다. 이러다 보니 작전 행동에 나서기가 가벼워 뛰어난 기동성과 순발력을 보인다. 정부군도 사정은 비슷하여 내전 초기 정규전 편제로 게릴라전에 대응하다가 어려움을 겪었던 점을 감안하여, 비록 통제 자체는 사단 사령부에서 받지만 예하 제대들이 여단, 연대, 대대 기준으로 각 지역에 흩어져 독자적으로 작전한다. 4기갑사단의 본대는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지만 파견군은 알레포 시가지에 있고 11전차사단이 하마 광범위한 지역을 다 커버하는 것 등이 예시.

이러다 보니 기동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테크니컬을 이용한 기계화가 상당히 잘 되어 있으며, 어지간한 중화기는 죄다 트럭에 실어놓고 전투한다. 사정이 비슷한 정부군도 마찬가지로, 정부군은 야지 돌파 능력이 뛰어나지만 다량의 기름을 소모하고 유지비도 많이 들어가는 기존의 군용 트럭보다는 저렴한 유지비로 굴릴 수 있는 민수용 트럭 위주로 기동부대를 편성한다. 테크니컬에는 중기관총이나 기관포, 대공포뿐만 아니라 유탄기관포도 탑재하며, 병력을 전개하거나 이동 시킬 때도 한국제 1톤 트럭들이나 픽업 트럭을 활용한다. 대형의 트레일러 등에는 57mm 대공포 같은 무기를 탑재하여 지상전을 지원한다. 양쪽 다 가볍고 뛰어난 기동력을 가진 편제 대비 고화력을 갖춘 소부대 운용이 대세이다.

기존 냉전 시대에서 흔히 보이는 돌격 위주의 전술이 아닌 화력 제압 위주의 전법이 기본이다. 시리아 내전은 주요 전장이 도시의 시가전이기 때문에 냉전식 보병돌격 전술을 사용했다간 대규모의 사상자를 내는데, 이미 국가 체제가 붕괴되어 정예 병력의 유지가 반군과 정부군을 가리지 않고 중요한 시리아 내전에서는 절대 병력을 다량 소모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시리아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대비하여 구식 무기나 탄약도 버리지 않고 곳곳에 산재한 탄약고에 보관해놓았고, 경제 규모에 비해 잉여 무기가 많기 때문에 화력전이 가능하다. 그래서 주로 전투하는 패턴을 보면 포격이나 대전차 유도미사일로 적의 거점을 포격하면서 3~4km 전방부터 테크니컬 중화기나 전차의 화기 지원이 이어지고, BMP와 같은 장갑차들을 통해 병력을 수송하여 전개 시키며 소화기 교전 거리까지 진입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이상의 전진은 하지 않고 소화기를 이용해 화력 교전을 하면서 장시간 싸우다가 화력 제압에서 패배하는 쪽이 후퇴하면서 점령지를 내주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탄약 소모량은 엄청 많으면서 사상자는 생각보다 적다.

화력 제압이 중요한데 돈은 없다 보니 특이한 기형 무기들이 많고, 부대 규모 이상으로 과도한 화력을 운용한다. 가령 정부군과 반군을 가리지 않고 사용되는 엘리펀트 로켓이라는 무기가 있는데, 여러 타입이 있지만 초반에 로켓 엔진이 연소되면서 나는 코끼리 울음 소리가 특색이다. 정부군이 사용하는 형태는 대형 트레일러에 적제하여 발사하는 것으로 구경 750mm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물건임에도 대대급에서 운용한다. 반군도 대구경의 수제 박격포인 헬캐논(Hell Canon)이나 가스통에 날개와 로켓 엔진을 달아 발사하는 무식한 고화력 무기를 사용한다. 알레포 도심에서 전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이루어진 친 정부 조직인 리와 알쿠드스(Liwa al Quds)는 BM-21에 들어가는 그라드 로켓탄을 직사(!)로 발사하는 신무기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는 등 창의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다양한 무기들이 활약하고 있다.[2]

땅굴 작전도 다른 전쟁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리아 내전만의 특색이다. 시리아의 토질은 적당히 점성이 있는 마른 땅이기 때문에 곡괭이나 다른 공구만으로도 땅굴을 파는 것이 어렵지 않고, 파놓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특히 전선 근방의 지상에서는 저격수들이 수두룩하게 배치되어 주간에 함부로 돌아다니면 저격 당하기 쉽다 보니, 주요 지역으로 침투하거나 보급을 받기 위해서라도 땅굴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정부군은 땅굴 침투를 막기 위해서 주요 시설 주변을 포크레인으로 깊게 파놓고 모래를 채워 이게 내려가는지 감시한다. 땅굴 파다가 모래가 내려간 흔적이 나오면 적의 땅굴 작전이 진행 중인 것. 그러면 똑같이 땅굴을 파서 적과 교전하는 식이다. 또 땅굴을 파서 적 주요 시설 밑으로 침투한 다음 화약을 잔뜩 쟁여놓고 폭파시키는 터널 폭파 전술도 사용되었다. 이 전술들은 주로 시가전에서 점령지가 나뉘었을 때 사용되었다.

자살폭탄차량(VBIED)의 위력도 큰 특징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테러리즘 목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앞쪽과 바퀴에 방탄 철판을 용접하여 보병화기 사격에는 끄떡도 없게 강화를 시켜놓고, 폭약을 대규모로 탑재하여 적의 방어선 화력 거점에 돌격시킨다. 차량은 불도저, 트럭, 승용차, 장갑차, 전차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주요 사용법은 먼저 정찰이나 적과의 초기 교전을 통해 파악된 적의 화력 거점, 강력한 방어 거점을 향해 돌격 시키면 적은 기관포를 동원하여 파괴하려고 하지만 두꺼운 방탄 철판에 의해 요격에 실패하고, 자살폭탄차량이 방어선을 들이받은 다음 점화하면 항공폭탄의 몇 배에 달하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방어선이 순식간에 붕괴된다. 세속주의 반군은 쓰지 않지만 이슬람주의 반군들은 굉장히 자주 사용하며, 알 누스라 전선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가 이것을 제일 잘 사용한다. 2016년 들어서는 원격 조작형 자폭 차량도 등장하여 쓰이고 있다. 장비 면에서 우월한 정부군이 패퇴하는 전투를 잘 살펴보면 자살폭탄차량이 원인이 된 경우가 많다.

자살폭탄차량은 대전차 미사일, 휴대용 대공 미사일과 함께 사용되며, 만일 자살폭탄차량을 요격하기 위해 전차나 장갑차가 나와있으면 대전차 미사일로 먼저 공격하고, 전차가 격파되거나 이를 대비해 보병 엄호하에 후방으로 물러나면 방어선에 자살폭탄차량을 투입한다. 이에 대응하여 공격 헬기가 떠 있으면 대공 미사일이나 대전차 미사일을 이용하여 저공에서 근접 지원하는 헬기를 요격한다. ISIS가 이 전술을 가장 잘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전법으로 시리아 정부군은 물론 2016년 개입한 튀르키예군의 레오파드 전차를 비롯한 중장비를 손쉽게 파괴하며 큰 손해를 강요한다.

2019년에는 대응법이 개발되어 예전처럼 탁월한 위력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타이거 부대 같은 정예부대에서는 주요 기동로에 대전차 지뢰나 돌덩이를 얹어놓는다. 자살 차량의 대다수는 일반 상용 차량을 개조하기 때문에, 고속으로 달려오던 차량이 돌을 밟으면 구동계가 박살이 나서 운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점 때문에 자살 차량들이 험지가 아닌 도로로만 움직이려는 경향도 있어서 매우 효과적이다. 그리고 자폭차량 감시용 대전차 미사일반을 운영하면서 가급적 원거리에서 저격한다. 막지 못하면 미리 파놓은 개인호에 들어간다. 파편 살상을 생각하지 않고 폭약만 잔뜩 집어넣어 폭발력이 대부분 하늘로 솟구치기 때문에 호에만 들어가도 어지간하면 살 수 있다.

드론을 통한 실시간 정찰/지휘도 내전의 특색. 미군과 같은 고성능 드론은 날리지 못하지만 주로 중국산 쿼드콥터 드론과 무선 고화질 카메라를 연동 시켜 원격으로 지휘부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 지휘하며, 작전 지휘뿐만 아니라 포격 관측, 선전 영상 촬영에서도 쓰인다. 정부군과 반군을 가리지 않고 자주 쓰이는 편이다. 이젠 군사용이 아닌 민간용 드론을 이용한 폭격까지 하고 있다. #

미디어 전쟁이 워낙 중요하다 보니 전투마다 머리나 가슴에 액션캠을 장착한 병사들이 많이 활동한다. 편집되지 않은 실제 전쟁 영상을 유독 시리아 내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파일:영상_알_누스라_전선의_흔한_무장_수준__mp4_000203192.jpg

2017년에 들어 후줄근한 복장만 하고 나오던 반군들은 어디 가고 외국제 정품으로 도배한 택티컬 반군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만, 이것은 하이야트 타흐리르 앗샴(알 누스라 전선)과 전성기 IS의 일부 부대들, 그리고 일부 중앙아시아 지하디스트 계열 출신 반군들만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최근엔 아랍인 부대에도 택티컬 장비가 퍼지고 있어 엄청 흔한 건 아니어도 보기 드문 정도도 아니다. 이들을 보면 자유 시리아군 계열 조직들은 평범한 민병대로 보이는 수준. 친튀르키예 계열 반군의 경우 튀르키예의 지원으로 멀티캠 등 통일된 제복을 착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구 소련권 출신자들은 고르카 등 러제 장비를 애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또한 내전임에도 반군에 가담한 외국인 용병의 비율이 상당한 편이다. 당장 반군 조직을 보면 중앙아시아러시아, 위구르족 및 기타 이슬람권에서 건너와 창설된 조직들도 수두룩하다. 이들은 시리아를 민주화를 위해 건너온 게 아닌 지하드를 실천할 이상적인 장소로 보고 넘어오기 때문이다. 아예 말하마 택티컬(Malhama Tactical)[3]이라는 자칭 이슬람주의 민간군사기업을 자처한 외국인들이 창설한 조직이 반군에게 전술 교육을 시켜주기도 한다.

러시아 국방부에서 올라온 신형 무인 장갑차의 실전 영상이다. 반군들이 상당한 중무장을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

해외 지하디스트 유입은 무시 못할 수준이기 때문에 이들이 자국으로 귀국할 경우를 우려해 골머리를 썩히는 국가들이 많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시리아 내전 감시 단체인 시리아 인권 관측소에 따르면 2020년 6월 기준 사망한 13만 명의 지하디스트들 중 6만 명이 시리아인이 아닌 외국인이라고 밝혔다. #

3. 끝나지 않는 내전

이라크 전쟁아랍의 겨울, 레바논 내전 같은 분쟁들을 겪고도 지금은 전쟁이 종식된 시리아의 이웃 나라들인 이라크, 레바논 등과 달리, 시리아 내전은 발발한 지 약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3.1. 시리아 정부군의 문제점

시리아 정부군은 내전에 참가한 모든 군사 집단을 통틀어서 가장 강력한 기갑 장비와 항공기, 체계화된 군사 제도와 장교단을 보유하고 있다. 자유 시리아군이 성향이 제각각인 500여 개의 파벌로 구성되어 의견 통일이나 통합 작전이 불가능하고, 심지어 그룹들끼리 교전까지 벌이는 분열 상황을 보이는 것이나, 알 누스라 전선[4], 이슬람 국가의 경우 노획한 기갑 장비가 고작이고, 공군이 없다는 점만 보아도 시리아 정부군이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해보일 정도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먼저 시리아 정부군은 본래 국가간의 총력 전면전에 맞추어져 육성된 군대이며, 주적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염두에 둔 군대였다. 전선을 형성하고 후방에서 병력을 징집하고 집결지에서 각 전선으로 배분하며 항공기는 제공권 장악 및 지상군 지원을 하고 대공 장비와 전략 무기가 적을 타격하는 방식의 전쟁에 특화된 군대였기 때문에, 본래대로라면 안전한 후방이어야 할 국내 시가지에서 반군이 일어나고 포위 당해 보급이 끊어지는 사태는 시리아 정부군이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었다. 각 주둔지에 포위되어버린 시리아 군대는 한 곳으로 집결하여 전선을 형성할 수도 없고, 전선을 형성하고 싶어도 적의 주력군도 없고 사단도 여단도 존재하지 않으며, 실체조차 파악하기 힘든 게릴라 저항군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지역 주민들의 반군에 대한 묵인 혹은 협조였다.

이렇게 각지에 고립된 시리아 정부군은 군 기지의 방어 능력에 의지하여 해당 지역에서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고, 소규모로 쪼개졌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합동 작전도 불가능했다. 내전 초기에 함락된 기지에서 기갑 장비를 탈취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군의 우월한 지휘 체계와 화력을 바탕으로 군 기지에 공격을 가해오는 집단화된 반군 주력을 압도적으로 제압했고, 이렇게 반군의 공격 부대를 소탕하면서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이 연계하여 소탕 작전을 펼치면서 주요 도시들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의 주요 전법인 자살폭탄 테러와 소규모로 침투해서 습격하는 방식의 공격법 때문에 통제권을 회복한 도시라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각 도로망에 광범위한 검문소와 초소를 운영하지 않으면 도시의 안전을 절대로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군대가 시가지를 탈환하고 다시 작전 목표를 설정하고 계속해서 탈환해나가는 방식으로 싸울 수 없었고, 그 지역의 장악을 위해 한 군데에 주둔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는 정부군이 영역을 탈환하면 할수록 작전에 쓸 수 있는 병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해당 지역의 장악을 위해서는 압도적인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공군 기지의 유지가 필수적이다. 이 공군 기지의 방어도 시리아 정규군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기동전과 공세를 가하고 있는 병력은 얼마 되지 않는다. 헤즈볼라 의용군, 수헤일 알하산 대령, 통칭 타이거 대령이 이끄는 혼성 태스크포스 타이거 부대, 시리아 공화국 수비대 정도가 기동전을 수행하는 객체일 뿐이다. 추가적인 전면 공세를 진행할 병력 자체가 크게 부족한 것이다.

또 장악한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침투하고 수백 명 단위로 작전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주둔 병력은 끝이 보이지 않는 소탕 작전에 나서면서 전력이 조금씩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었고, 이 상황에 질려버린 병사들이 탈영을 거듭하기도 했다. 시리아의 친정부 민병대격인 국가방위대(National Defence Force)와 정규군 대부분이 계속해서 이 소탕 작전에서 소모되고 있다. 특히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의 외곽 지역인 조바르(Al-Jobar) 지역 같은 다마스쿠스 동부 일부는 복잡하게 매설된 땅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반군 병력들이 기어들어오면서, 수 차례에 걸친 대규모 소탕 작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군 지역으로 남아있을 정도다. 이게 어떤 상황인지 이해를 위해 한국의 경우로 비교하자면, 청와대와 정부중앙청사가 있는 종로구에서 불과 5~6km 정도 떨어진 동대문구 정도에 폭격과 격전이 나날이 이어지는 반군의 해방구가 떡하니 존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상황이다.

이러한 끝없는 병력 소모 때문에 2015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이들리브 참패 후 병력 부족을 토로하며 이들리브 지방 재탈환 노력을 공식적으로 포기해 버렸다. 탈영병과 병역 기피자에 대한 대사면령을 통해 조금이라도 병력을 확충해보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2018년 8~9 이후론 상황이 크게 나아졌다. 동구타 지역 반군이 완전히 투항/궤멸되면서 다마스쿠스와 수도권 지역 전역이 정부군 휘하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제 이러한 위험은 완전히 사라진 상황이다.

시리아군의 또 다른 문제점은 비축 물자의 부족이다. 시리아는 본디 생산력이 부족한 가운데 서방과 척을 지고서 사회주의적 경제 정책을 지속하던 나라로서 수 차례 경제 위기를 맞을 만큼 취약한 경제 구조를 갖춘 나라였으며, 군수물자를 다량으로 비축해둘 만한 생산력이 애초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전의 발발로 비축 물자는 대부분 소모해 버렸고, 강력한 경제 제재에 의해 국가 예산 집행 자체가 마비되었다. 이것이 가뜩이나 부족한 시리아 정부군의 작전 능력을 더 위축 시키는 주범이다.

이 모든 문제를 특별히 악화 시키는 것이 바로 전략적 주적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전에서 한 발 물러서서 방관하는 입장이지만, 시리아는 시온주의자의 음모가 내전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5] 특히 이스라엘 국경과 수도 다마스쿠스는 상당히 가깝다.[6] 그렇기 때문에 비축 물자와 병력을 반군 소탕에 올인할 수가 없다. 만일 그랬다가는 이스라엘의 전면 침공에 의해 시리아 정부는 붕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리아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에 대비한 최소한의 물자와 병력은 유지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병력 대부분이 주둔지에서 떠나지 않고 소탕 작전만 하는 것이 꼭 지역 치안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내전 상황에서도 시리아는 2014년에 이스라엘을 의식한 통합 방공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래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출범 이전까지는 반군들끼리의 권력 다툼과 팀킬, 걸프만 아랍 국가들의 지원 감소로 반군들이 조직 유지조차 어려울 만큼 작전 능력이 저하된 데다 정부군이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하였고, 특히 유전 지대 대부분을 통제하여 2014년 초에는 내전을 2014년 안으로 끝내겠다고 장담했을 정도였지만, 통합적인 작전 능력과 원정 능력을 갖춘 ISIL의 출범으로 이슬람국가 수도 라카(Al-Raqaa)에서 3년동안 버텨오던 17기갑사단 소속 93여단이 주둔지를 함락 당했다. 뒤이어 이들의 견제로 버틸 수 있었던 라카 인근의 타브카 공군 기지가 함락 당하면서 유전 지대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이슬람 국가에 대부분의 유전 지대를 내주었고, 2015년 5월에는 정부군 최악의 참패인 이들리브 패배로 예비 병력을 상실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이후 러시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기사회생하여 다시 승세를 이어가긴 했지만...

시리아 정부군의 역량이 극도로 저하된 것도 문제의 원인이다. 평시 31만의 병력을 자랑했지만 내전이 벌어지면서 탈영병이 급증했고, 초반에는 반군을 거의 압살하던 정예부대는 계속해서 기동전과 소탕전에서 소모되었다. 처음에는 편제를 잘 유지하던 병력도 내전이 길어지면서 점차 탈영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병력 자원을 확대징집하면서 수준 이하의 병력이 충원되기 시작했고, 이들은 적의 기습이나 방어전에서 무조건 도망부터 치고 보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기지를 포기하고 철수할 때의 기본인 중화기 및 차량의 파괴 유기도 절대 지키지 않는다. 2014년 알 타브카 공군 기지 함락 당시에는 전투기와 트럭, 중화기와 기밀 문서를 그대로 놔두어 IS가 선전 영상에 노획품으로 출연 시키기도 한 것은 물론, 2015년 10월부터 홈스 지역 마힌에서 IS에 연전연패를 당하며 러시아가 넘겨준 RPO-A 열압력탄두 로켓과 T-62 전차를 그대로 빼앗기기도 했다. 이쯤 되면 농담이 아니고 졸전은 아랍 정규군의 종특이 아닌가(...) 싶을 정도. 당나라 군대 집합소[7] 대다수의 오합지졸을 공화국 수비대, 타이거 대령이 지휘하는 타이거 여단 등의 최정예 부대가 먹여살리는 형국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무리 정예 부대가 반군을 격멸해도 지역을 안정화 시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다른 부대가 인수했다가 도로 뺏기는 참담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다만 2017년~2018년부터는 이런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 2016년 초급장교 합동 임관이 내전 후 처음으로 이루어져 간부가 확충되었고 러시아의 강력한 항공 지원과 훈련, 첨단 무기 공여를 통해 전투력도 크게 상승하였다. 정부군은 기존의 지리멸렬한 부대를 대신하여 러시아의 최신 훈련 지도를 받아 양성한 제5군단을 창설하여 팔미라 재탈환전에서 그 역량을 입증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마저도 내전에 참전하는 러시아 용병들의 증언에 따르면(#) 엘리트 부대가 아닌 기 간병력들의 질이 시아파 민병대만도 못한 수준이라고 까이고 있을 정도로 개선의 여지가 안 보이고 있다. 한편 반군이었던 쿠르드족의 시리아 민주군(SDF)도 튀르키예군의 야욕에 맞서 북부 만비지 시 정면의 넓은 영역을 정부군과 공동방위구역으로 설정하면서 사실상 정부의 협력 관계 내지는 동맹이 된 상황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이후 미군의 공습이 비록 IS에 한정되어 있으나, 정부군의 작전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정부군의 사정은 많이 나아진 편. 반군에 점령 당한 지역이었던 수도권의 동구타, 남부의 다라 지역과 IS 앞마당이었던 야르무크, 포위 당해 있던 데이르에조르 등을 연이어 완전탈환하고 이들리브와 알레포 북부의 코너로 잔존 반군을 몰아치는 등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3.2. 반군 세력의 문제점

반군 세력은 전쟁을 결정적으로 뒤집을 능력이 없다. 반군은 크게 나누어 이슬람 전선, 자유 시리아군,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 쿠르드족으로 4개 계파로 분류할 수 있으며, 그 내부에는 수백 개의 민병대들이 독자적인 입장을 가지고 연합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해 관계가 일치하지 않으며, 내부에서 분열 분쟁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8]

내전 초기에는 민병대의 한계 탓에 정부군에게 압살당하기도 했지만, 곧 리야드 알아사드 전직 공군 대령이 창설한 자유 시리아군에 가입하고 프랑스, 사우디, 카타르, 튀르키예 등의 적극적인 무기와 자금 및 훈련 지원으로 점차 정예화되어 2012년에는 수도 다마스쿠스에 전면 공격을 개시하고 알레포 작전, 데이에르조르 작전, 라카 작전으로 순식간에 시리아 전 국토의 2/3를 차지할 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도 정부군에 비해 본질적으로 우월해서라기보다는 반군 세력이 장악한 지역이 주로 알레포 지역을 비롯해 반정부 정서와 지역감정이 매우 강했던 지역이었기에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몇 년에 걸쳐 이들 지역에 잔존한 공군 기지나 교도소, 중앙병원 등을 포위했으면서도 요새화된 이들 지역을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는 반군의 본질적인 역량 한계를 잘 보여주었다.

따라서 아사드 정부군의 여러 취약점들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물자와 병기의 차이 및 역량 부족으로 정부군을 혼자서 격퇴하고 혁명 정부를 세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지역 민심에 의존하여 점령지를 지켜내는 것이 고작이며, 전선 근처로 일진일퇴하는 사실상의 소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반군의 능력 한계다. 현실적으로 외국 군대가 적극적으로 지상군을 파병하여 정부군과 전쟁을 벌이지 않는 이상 아사드 정부를 무너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리비아처럼 국제연합군이 개입할 수 없는 것은, 반군의 구성 자체가 서방 국가들이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겨온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IS를 제외한 반군의 숫자는 대략 15만 명 정도로 2016년 기준 10만을 겨우 유지하는 정부군에 비해 많다. 하지만 이 중 세속주의 민주 세력으로 분류되는 자유 시리아군은 4~6만 명 사이로 매우 적으며, 그나마도 대다수가 남부 다라 지방에서 선전하는 자유 시리아군 남부전선 소속(약 3만 6천 명)이다. 따라서 사실상의 주 전선인 시리아 북부에서는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에 대비되는 무슬림 형제단 기반의 이슬람 전선은 최대 8~10만여 명으로 추산되며, 이들은 자유 시리아군보다 월등한 조직력과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시리아 북부에는 최고의 단합력과 전투력을 갖춘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이 약 1만 명 정도 존재한다.

알 카에다의 극단주의 성향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른바 온건 이슬람 세력으로 알려진 이슬람 전선(Islamic Front)[9]조차도 "민주주의는 기만의 또 다른 이름" 같은 반 민주주의 팻말을 지역마다 내세우고 있으며,주민들에게 강제되는 샤리아 법원을 운영하지를 않나, 본질적으로 알 카에다보다는 온건해도 샤리아 통치의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세우는 집단이었다. 더욱이 이들은 수니파 이슬람이 아닌 타 종파, 타 종교에 대한 극도의 차별적인 종파주의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라타키아 지방을 일시적으로 점령했을 때 알라위파나 시아파를 학살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으며 반서방 경향도 크다. 알 누스라 전선 계열 반군은 아예 대놓고 시리아의 기독교(시리아 정교회) 주교 등 성직자들을 납치하거나, 가톨릭 신부를 처형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지금도 알 누스라 계열(HTS) 세력이 장악한 이들리브 지역에서는 2018년 현재 전쟁이 계속되는 중임에도 담배를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고 금지 시키고, 진열대 마네킹에조차 히잡을 씌우라고 명령하며, 미용실 등지엔 화장품을 버리라고 강요하고, 이성 교제를 했다는 이유로 미혼 젊은이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등 이미 부분적으로 샤리아 율법을 지역 주민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했으며, 전황 취재차 방문한 서양 여성 기자에게 무슬림도 아닌데 히잡과 몸을 두르는 검은 베일 착용을 강요하는 등 전형적인 극단주의 통치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자유 시리아군이라고 해서 반 종교, 반 이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어디부터가 민주주의자이고 어디까지가 종교주의자인지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유 시리아군 내부에서도 극단주의 이슬람 성향을 가진 그룹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반군을 지원하고 아사드 정권을 무너트렸다간 시리아 내부에서 정권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2차 내전이 발발하기 쉬운데[10] 여기서 세속적 성향의 자유 시리아군은 숫자로만 봐도 이슬람주의자들을 이길 수도 없고, 전투력에서부터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2차 내전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승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그렇게 되면 탈레반식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벌어지게 된다. 시리아 국민들은 이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비슷한 잔혹한 샤리아 통치에 억압 받을 것이고, 물론 여기에는 수백 만에 달하는 알라위파, 시리아 내 시아파, 기독교를 비롯한 소수 종파는 물론이고 아사드에 협력해왔던 바트당 지지자들, 수니파들도 코란에서 말하는 '위선자'로 취급 받아 보복 학살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러시아중국의 아사드 지지 이외에도 서방이 전면적으로 아사드를 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속 성향의 반군, 자유 시리아군이 이슬람주의 반군을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주도권도 결코 잡을 수 없다. 병력과 전투력 면에서 완전히 열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정부군의 명장 수헤일 알 하산 대령, 통칭 타이거 대령의 이들리브 공세 당시 허망하게 빼앗기던 반군은 그간의 반목을 접어두고 반군 연합체 자이쉬 알 파타(정복의 군대)를 결성하고서야 정부군을 몰아치면서 반격 섬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도 정복의 군대는 이들리브 지방을 지켜내는 반군 최대의 전투 세력이다. 이처럼 반군끼리 성향이 다르더라도 협력을 하지 않으면 지금의 점령지조차 지켜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2014~2015년에 ISIL의 만행이 전 세계에 알려진 뒤로는 일부 반군 세력 중에서 IS와 이슬람 극단주의 행보에 질린 나머지 친정부로 돌아선 세력도 있다고 한다.[11]

현재 남아있는 주력 반군간의 사이가 그리 좋은 것도 아니다. 북알레포 거점의 국가해방전선 반군을 지원하는 튀르키예는 이들리브 중심의 알 카에다 계열 반군을 2018년 8월 말 테러 조직으로 공식 지정했다. 거기다 몰락해버린 IS의 잔당들은 점조직 형태로 반군 장악 지역에서 레지스탕스처럼 활동[12]하며 반군들을 피곤하게 하는 중이다. 쿠르디스탄-로자바 지역 반군도 사실상 정부군과 동맹 상태인 데다 이들리브의 근본주의 반군에 대해서는 이를 갈고 있다.[13] 지금은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의 대규모 공세에 같이 대처해야 하기에 가시적인 충돌은 자제하고 있지만, 이미 반군 간 새로운 내전의 씨앗은 싹을 틔우고 있는 상황.

2018년 현재, 수세에 몰린 시리아 반군의 핵심 전력과 점령지의 최소 절반 이상[14]~사실상 대부분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인 상황이다.

2018년 봄에 이르면, 국제 정세 전문가들도 "시리아 반군은 더 이상 이슬람주의/세속주의 반군으로 구분함은 무의미[15]하고, 시리아 내에서의 지하드 정체성을 지녔는지, (IS 같은) 글로벌 지하디즘을 추구하는지로 갈린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비록 국제 사회에 피를 뿌리던 IS는 패망했지만, 이대로라면 반군이 내전에서 승리한다는 정말 꿈 같은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시리아는 결국 카다피 실각 이후의 리비아[16] 같은 대혼란을 겪거나 혹은 나지불라 정권 붕괴 이후 혼란을 겪다 탈레반이 집권한 아프가니스탄처럼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화를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서방에서도 반군 입장을 편향되게 옹호, 언론플레이하는 주류 언론이나 정치인 등을 제외하면 '차라리 다문화 공존을 보장해주는 정부군이 이대로 반군을 다 쓸어버리고 아사드 정권이 유지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더 심각한 것은 IS 조직원들이 IS 패망 이후 도주하여 반군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

잘 알려진 쿠르드족 무장 조직이 외국인 의용병을 받는 걸로 유명했고 수 차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용병을 받는 건 이슬람주의 반군 단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들이 시리아의 민주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지하드를 통해 샤리아 율법으로 다스리는 이슬람 땅을 세우는 게 목표라는 점이다. # 아예 외국인으로 구성된 단체도 많다.

3.3.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

따라서 현재 국제 사회의 종전 노력은 더 이상 반군이나 정부군의 완전 승리를 통한 내전의 종식이 아닌, 평화적으로 내전을 중지하고 각 세력을 정당으로 구성하여 과도 정부를 구성하고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와 IS를 완전 격멸한 다음, 대선을 실시하여 투표로 선출된 새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IS는 몰라도 알 카에다 계열은 세속주의와 원리주의를 막론하고 깊은 연계를 취하고 있어 상호간의 분리가 불가능했기에, 원리주의자를 선택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시리아 정부측은 아사드 대통령의 연임 여부를 놓고 확고한 입장을 취하여 평화 협상은 몇 차례나 결렬되어 왔다. 결국 2016년 제네바 평화 협상 결렬 이후 아사드 대통령은 독자적으로 전국적인 총선을 실시하여 새 국회를 구성한 다음, 국제 테러리즘과 영원히 싸우겠다고 선포하며 협상을 거부했다.

하지만 반군의 스폰서인 튀르키예와 정부군의 동맹인 러시아가 튀르키예 쿠테타 사건 이후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평화 종전을 위한 2017년 아스타나 평화 협상을 개최하였고, 하필 알 카에다 계열과 아흐라르 알 샴 계열로 원리주의 반군이 쪼개져 각자 동맹체를 결성하면서 마침내 알 카에다 계열의 선택적인 배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아스타나 협상에서는 겨우 과도 정부에 대한 합의가 도출된 상황이나, IS도 여전히 존재하고 또한 알 카에다 계열의 원리주의 동맹 타흐리르 알 샴의 세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협상 참여 반군이 정부에 귀순하더라도 이들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전쟁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4. 무력 개입을 못했던 이유

2011년 프랑스의 주도로 미국, 영국, UAE 등의 서방 국가들이 군사 개입을 시도하여 정권을 축출한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에 대한 무력 개입 문제는 복잡하다.

4.1. 국제 정치적 역학 관계

카다피 정권 시기 국제적으로 왕따 신세나 다름없던 리비아와는 달리 시리아는 강대국인 러시아, 지역강국인 이란의 동맹국이자 지지국이다. 러시아는 냉전 시대부터 라타키아 항구, 흐메이밈 공군 기지를 비롯한 군사 기지를 임대하여 주둔했으며, 대량의 장비를 시리아에 판매했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연방으로 전환한 현재에도 중동에 현존하는 유일한 러시아의 동맹국이자 군항을 제공하여 지중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유지 시켜주는 아랍 국가가 바로 시리아인 것이다.

이란은 이란-이라크 전쟁 때부터 시리아와 동맹 관계를 맺어왔으며, 정권 수뇌부의 종파인 알라위파가 시아파에 속하는 관계로 유대감을 지니고 있다.[17] 시리아는 아랍 연맹 내에서 이란의 입장을 아랍 국가들에게 전달하는 중개자 역할을 해왔다. 하페즈 알아사드 시대 지리멸렬한 사회주의 경제의 폐해를 이란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해결해왔음은 물론 레바논의 시아파들에게도 이란의 물자 지원을 수행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어, 이란의 전략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리아라는 국가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했다.

중국은 러시아나 이란처럼 시리아에 대한 정치적 이해 관계는 거의 없었고, 이 때문에 이란, 러시아와 달리 시리아 내전에 군사 파병을 하지는 않았으나, 내전 초기에 러시아와 같이 아사드의 편을 들며 오바마 정부 당시 미국 주도하의 시리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반대했고 반군, IS와 내전을 벌이던 시리아 아사드 정부군에게 무기류들을 지원하였다. 게다가 중국 또한 티베트위구르 등 자국 내 소수 민족의 분리독립 문제도 안고 있는 데다, 실제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국시로 삼아 티베트와 위구르, 대만 등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강경하게 억제하며 영토의 통합을 강조하는 강대국이다. 게다가 양국 모두 똑같은 독재 체제의 국가였기에[18] 내전 발발 초기에 아사드 정부군과 반군, IS, 쿠르드족 등 여러 세력들로 갈기갈기 찢겨져가는 시리아의 실태를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는 일마냥 치부할 수 없었던지라 IS, 반군들과 싸우며 분열된 자국 영토의 통일을 위해 애 쓰는 것처럼 보이는 아사드를 지지했다. 게다가 내전이 2015년 이후 러시아군의 개입으로 아사드 정부군의 우위로 반전되자 중국은 시리아 내전에 대한 외교적인 발언이나 성명조차 내지 않으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기에 미국의 전략적 영향력 확대 저지라는 측면에서 러시아, 이란과 공조하는 중국, 그리고 이라크 전쟁아랍의 봄의 실패로 인한 정치적 혼선들을 수습하지 못하다가 그 틈을 노려 시리아-이라크 역내에서 세력을 확장한 ISIL이 시리아 북동부 지역들을 비롯해 자국 영토의 절반을 장악 당한 적이 있었던 이라크 역시 시리아 내전 와중에 자신과 똑같이 IS와 대립하는 시리아 아사드 정부군의 편을 들면서[19] UN에서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쿠웨이트, 요르단, 바레인, 모로코 등 친미/친서방 성향의 아랍 왕국들과 미국, 영국, 프랑스를 위시한 서방 진영 국가들의 시리아 공습 및 아사드 정권에 대한 제재 시도를 속속 저지해냈다.[20] 이들은 2016년 현재 군병력을 파병하고 거액의 경제 및 석유 지원을 통해 시리아 정부가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동맹국 역할을 철저하게 해내고 있다.

한편 시리아의 정권 교체를 내세우던 미국, 프랑스, 카타르, 사우디, 튀르키예의 입장도 제각각이다. 민주화 운동 때부터 미국, 프랑스, 카타르, 튀르키예, 사우디는 알 자지라와 같은 언론을 이용하여 직원들의 항의 사직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과장해서 보도했으며, 무력 진압과 시위 과격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무슬림 형제단 집권 시나리오를 세우고 아사드 정권에 다양한 방향으로 압박을 가해왔다. 무슬림 형제단 집권을 통해 사우디와 카타르는 시아파 실각과 수니파 집권을 통해 이란의 영향력을 제거하고자 하였으며, 튀르키예는 시리아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자 했던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이해 관계가 대체적으로 일치하였으나, 정작 자신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거액의 자금을 쓰면서까지 시리아 본토를 침공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프랑스 또한 처음 구상과는 달리 리비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리비아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항구적인 내전 상태에 빠진 것을 우려하여 실익 없는 무력 개입을 피했다. 여기에는 러시아라는 강대국이 이들 국가의 개입을 외교적으로 저지하고 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미국은 일반적인 시각과는 반대로 초기 시리아 정권 교체 시나리오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오히려 거리를 두었으나, 2013년 정부군이 점차 반격을 개시하고 시리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실체가 드러나며, 카타르·튀르키예·사우디가 정권 교체 시나리오에 회의를 느끼고 발을 빼려고 하자 그제서야 점진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2013년 다마스쿠스 동부 두마 시에 대한 아사드 정권의 독가스 공격을 구실로 삼아 개입하려고 하였으나, 아사드 정권이 사린 가스를 국제 사회 감시하에 전량 배출 폐기하고 러시아의 견제로 전면 개입할 구실을 잃었다. 여기에 이라크, 아프간에서의 막대한 전비 지출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점도 있어 나름 철저한 심사를 통해 민주주의 반군을 엄선하여 TOW 대전차 미사일을 지원하거나, 종파 문제에서 가장 깨끗한 쿠르드족을 파트너로 만들어 지원하는 식으로 간접적인 개입을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고,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물러나고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는 반군 세력들에 대한 지원을 중지했다.

그 외에 이스라엘도 시리아의 주요 군사 시설을 겨냥하여 간헐적으로 공습을 실시하고 있다. 시리아군이 보유한 무기(특히 탄도미사일, 화학 무기)들이 헤즈볼라 등의 반(反) 이스라엘 성향 무장 단체에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명분. 여기에 러시아에서 제공 받은 초음속 대함미사일 야혼트의 소재지로 추정되는 해군 무기창도 공격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시 시리아 내전에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고 있다. 이 역시 미국과의 막후 교섭, 그리고 개입할 경우 일어날 심각한 정치적 파장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랍권 국가 민중의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을 고려했을 때, 자칫하면 제5차 중동 전쟁으로 번져 이스라엘 대 전 아랍 국가 구도가 될 가능성도 0%는 아니기 때문.

4.2. 인식의 변화

민주화 운동 때만 해도 시리아 문제는 순수하게 민주주의 세력 vs 독재 정권의 구도로 선전되었다. 하지만 갈등이 격화되어 내전으로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실체가 드러났으며 그 중 하나가 종교 극단주의, 종파주의의 존재였다. 특히 이들리브 주와 알레포 주를 비롯한 시리아 북부는 지역적으로 다마스쿠스와 대립해 왔던 데다가 바트당 세속주의 정부를 반대하는 의미에서 무슬림 형제단을 지원했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지하는 정서가 매우 강했다.

처음에는 이들 이슬람주의자들도 자유 시리아군의 일파로 합류하여 소수 종파에 대한 보호를 천명했고, 드루즈파와 기독교는 물론 정권 수뇌부의 종파인 알라위파에서도 반정부 저항군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이 알라위파 지역인 라타키아 등지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친정부 인사나 '이단'을 처형하는 비디오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주류 시아파나 알라위파, 드루즈파, 기독교인들이 아사드 정권 지지로 돌아섰다.

여기에 자유 시리아군 내부에서도 노선 갈등이 일어났다. 세속주의자들이 종교 원리주의자들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종교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자신들을 조롱하는 것에 분노하여 2012년에 이미 자유 시리아군 내부에서 파벌 조직 '시리아 이슬람 해방 전선(SILF)'를 창설하였으며, 이들은 카타르나 사우디의 특별히 선별된 자금 지원을 받았다. 결국 이들은 2013년 이슬람 전선을 창설하면서 자유 시리아군을 공격하고 반정부 세속주의자들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이 때 결국 반정부를 포기하고 친정부 민병대로 소속을 바꾼 자유 시리아군 그룹도 존재했다.

더욱이 알 카에다의 지휘를 받는 알 누스라 전선도 존재했으며, 가장 큰 문제는 반정부 세속주의로 나름 큰 세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군소 군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단합력과 자금력이 뛰어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동맹을 맺고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반군이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히잡부르카를 뒤집어쓰고 남성은 수염을 기르는 데다가, 이들리브 지역 등에서는 '민주주의- 서구의 기만' 같은 반 민주주의 팻말을 세워두는 등 이슬람 극단주의가 만연하고 있어, 아사드 정권이 패배하더라도 세속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들어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지경이다.

또 소수 종파가 아니더라도 사상적으로 아랍 민족주의, 세속주의는 종교 원리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에 집권당인 바트당은 물론 야당인 국가사회주의 계열 정당 시리아 사회국가당(SSNP),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시리아 저항군 등도 의용군을 창설하여 아사드 정권과 함께 반군 상대로 전투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만약 서방 국가가 작정을 하고 개입해서 무력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와 이란을 시리아에서 몰아내고 아사드 정권을 퇴출 시킬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설령 몰아낸다 해도 그렇게 되면 이슬람 극단주의가 지배하며 세속주의와 소수 종파가 학살 당하게 되는 미래만이 존재하고, 서방 세계는 자신들의 돈과 물자를 써서 반미, 반서방 극단주의 정권을 탄생 시킨다는 최악의 결과만이 남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이 점을 두고 시리아 남부 유목민으로 구성된 NSA(New Syrian Army)나 세속주의 반군으로 창설한 30사단(Division 30)등을 창설했지만 NSA는 IS와의 첫 전투에서 무기와 물자를 버리고 도주하였고, 30사단은 시리아로 진입하자마자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에 무기와 물자를 모두 넘기고 해산해버리는 등 진퇴양난의 처지를 보여주었다. 이에 대안으로 쿠르드족이 주축을 이룬 시리아 민주군(Syrian Democratic Force, SDF)를 지원하며 이들은 민족주의, 사회주의, 세속주의, 양성평등 성향이 가장 강하고 전투력과 의지가 뛰어나 대 IS 전투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튀르키예 내 PKK와의 연계, 아랍 민족주의와의 정면충돌 문제로 대놓고 키워줄 수만은 없다. 결국 세속주의 소수 종파 보호를 천명하며 그 자신도 소수 종파인 아사드의 정치 체제가 아니고서는 전후 대혼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미 CIA에서는 2013년 12월 12일, 미국 전 CIA 국장이 시리아 내전의 '불쾌하지만 최선의 해결책'이 아사드 대통령의 재집권이라고 제시했다. #

시리아뿐만 아니라 이라크이집트, 알제리 등에서도 군부 독재 정권은 기독교도 및 소수 종파를 박멸하려는 국민 대다수의 감정에 거스르면서까지 소수 종교 및 종파 보호에 나선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가 강해지고 있다 보니 정부의 노력에도 소수 종교와 종파들이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고 극단주의자들에게 탄압 받기 일쑤다. 공권력도 무능하고 부패하기 그지없어 극단주의자들을 제대로 단속할 생각을 안하고 처벌도 안하는 게 비일비재하다. 이집트에서는 기독교 여성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집단 폭행하고 옷 벗겨 끌고 다녔는데도 검찰은 불기소한 사례가 있다. #

4.3. 현시창: 온건 반군은 없다

아 글쎄, 그러니까 세속적이고, 민주주의적이며, 비근본주의·비종파주의 성향의 '온건' 반군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나만 뽑아서 말해보라니까요!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제임스 '짐' 자트라스(James 'jim' Jatras) (전직 외교관), 토론 중에
알레포에서 반군이 은닉한 물자를 찾은 시리아군.

2014년 6월 19일,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012년 정부군 철수 이후 시리아 북부에서 실질적 자치를 하고 있는 쿠르드 자치정부의 인권침해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야권 인사를 임의로 체포, 감금하거나 지역 내 납치 및 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계속 방치하고 있다는 것. 또 HRW는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민주동맹당(PYD)의 군사 조직 인민수비대(YPG)도 소년병을 활용하고 있음이 밝혀져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밝혔다. # 23일, HRW는 IS를 포함한 시리아 반군 조직들이 '공짜 교육'을 미끼로 청소년들을 모집해 소년병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심지어 자살폭탄 테러를 지시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시리아 내전으로 숨진 소년병 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반군 측 모니터 그룹인 '시리아 위반기록센터(VDC)'에 따르면 2011년 9월부터 지금까지 사망한 민간인이 아닌 청소년 수는 194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2014년 7월 8일, 미국 정부 관리는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외국 출신 용병이 7,000명에 이른다며, 이들 중 서방 국가 출신자들이 향후 고국으로 복귀해 잠복 바이러스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유럽 각국과의 연대 강화를 촉구했다. #

2014년 7월 9일, 영국 BBC는 1980년대 영국이 군수 기업 등을 통해 독가스 원료와 제조 장비를 시리아에 대량으로 수출했으며, 이 때 제조된 화학무기 일부가 시리아 내전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정부도 이미 자국의 화학무기 폐기를 진행하며 '원료를 전적으로 영국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혀 영국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고 있다. # 역시 신사의 나라 영국

같은 날, 프랑스 정부는 시리아나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교전을 경험하고 돌아온 프랑스 국적 무슬림 청년들이 자국 내에서 테러 활동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위험 지역 여행 가능성이 있는 이들에게 6개월 동안 해외 여행을 금지 시키는 법안을 마련했다. #

한편, 미국 주도로 진행 중인 수니파 무장 단체인 '이슬람국가(IS)' 공습에 대해 시리아 반군들과 그 재정적 후원자들 사이에서 반대와 불신의 분위기가 확산되어 연합군의 공습 작전이 중동권에서 지지를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IS가 경쟁 관계에 있던 반군들과 화해하는 움직임이 감지돼 미국이 주장하는 '온건한 반군'은 대체 어떤 반군을 말하는 것인지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주도의 공습에 반대하는 이들은 공습이 시리아 정부군이 아닌 반군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는 이슬람 자체를 향한 공격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습 작전은 미국 지원을 받는 단체들을 포함한 다양한 분파의 반군들 사이에서 IS, 알누스라 전선과 시리아 내 알 카에다 연계 조직에 대한 연민을 불러 일으켜 반군들 사이의 화해·협력이라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결국 현실화 되었다. 2014년 말에 이르러서는 시리아 정부군과 IS가 암묵적인 동맹을 맺고 경쟁 관계에 있는 적대 세력들을 먼저 박살내는 상황이 되어 더 최악의 상황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 관리들이 난데없이 '호라손 그룹'도 공습했다고 언급해 급속도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호라손 그룹은 음지에서 서방 국가를 공격하는 알 카에다 베테랑 정보원들의 정보 네트워크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활동가들은 호라손 조직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며, 공습 목표는 알 누스라 전선의 진지였던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시리아 내 있지도 않은 호라손 그룹을 언급하면서 실제로는 알 누스라 전선을 공격한 것이다. # 이 때문에 반군이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알 누스라 전선에 대한 공습은 곧 모든 무슬림에 대한 공격'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알 누스라 전선의 은둔 지도자, 아부 모하메드 졸라니는 이번 공습으로 미국과 아랍 각국에 엄청난 후폭풍이 불 거라고 예상하며 그것을 '화산 폭발'에 비유했다. 알누스라 전선과 IS는 2013년 중반 갈라졌고 혹독한 경쟁을 벌여왔지만, '공동의 적' 미국을 앞에 두고 "양측이 이미 화해를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고 시리아 문제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상황이다. 또한 IS의 본거지인 라카 시(市)에 억류 당했던 알 누스라 전선의 포로들이 (아마도 협력에 대한 우호의 증거로) 모두 석방되다고 전했다. 미군 공습 이후 많은 반군이 IS에 충성하는 등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시리아 내전 현장은 극히 다양한 세력들이 분포돼 있다. 많은 반군 분파들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슬람 전사(무자헤딘)들은 이 그룹에서 저 그룹으로 자주 옮겨 다닌다. 또 각 분파들은 편의에 따라 동맹을 결성하기도 한다. 춘추전국시대가 따로 없다 일단 대다수 반군들은 내전을 아사드 정권에 대한 반란-저항으로 보고 있다.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아사드 정부는 자기들이 이단으로 간주하는 시아파 이슬람의 알라위 종파, 곧 '이슬람 배교자' 로 보고 있어 반군의 저항에는 종교적인 함의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이슬람 국가(IS)'도 정식으로 칼리프를 선포하기 전에는 미국이 지원하는 반군을 포함해서 다양한 반군과 함께 시리아 정부를 상대로 싸워왔다. 이 과정에서 2013년 8월 마나 공군 기지를 접수하는 혁혁한 전공도 세웠다. 당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로 불렸던 IS는 두 차례의 자살 공격으로 마지막 저항을 분쇄하고 1년 넘도록 이어진 정부군과의 전투를 끝냈다.

2014년 9월 28일, 미군 주도 연합군이 공습 5일차를 맞아 IS를 노리고 공습 지역을 넓혀가며 공습을 이어간 가운데, 시리아 북부 튀르키예 국경 지역에서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CNN이 보도했다. 반(反) 아사드 성향의 인권감시단체 시리아 인권관측소(SOHR)은 공습 작전이 IS를 공격한다는 명목하에 민간인을 목표로 하는 단계에 들어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습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보도 이후 공습 반대, 항의와 함께 '서방으로부터 이슬람을 지키자'는 자체 결속의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 주도의 공습으로 IS 지배하의 임시 정유 공장이 파괴돼 석유 부족에 대한 불평마저 나오고 있다.

9월 중순 인터넷에 공개된 동영상에서는 이들리브 주 나블 시에서 벌어진 공습 반대 시위에서는 알 카에다의 깃발이 휘날렸다. 한 수니파 교도는 "여기에는 알 누스라 전선 같은 분파는 없다. 우리는 모두 수니파일 뿐이다. 연합군은 수니파와 민간인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

한편 2014년 10월 23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총기난사 테러를 자행한 테러범은 당초 시리아로 가길 원해 당국에 여권 신청을 했다가 발급이 지연되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

10월 28일, CNN은 시리아로 떠났다가 돌아온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도와주는 덴마크의 갱생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덴마크는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시리아로 자진해 떠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귀국하면 처벌 대신 사회 복귀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일례로 2013년 덴마크의 집을 떠난 '오마르'는 뒤늦게 참전을 후회하고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내가 있었던 곳은 여러 집단들의 다툼과 폭력으로 무질서 상태였다"며 "그런 현실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싸우는 것에 신물이 났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떠난 것은 자유일지라도 귀국은 만만치 않은 문제다. 지난 12일 오스트리아 소녀 삼라 케시노비치(17)와 자비나 셀리모비치(15)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며 사실상 거절한 바 있다.[21] 오마르는 "(귀국하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았다. 귀국해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도 큰일이 아니다"며 "시리아에서 싸우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테러리스트 조직을 위해 싸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시리아로 떠났다 돌아온 이들에게 덴마크는 직업 교육과 심리 치료, 심지어 이슬람 종교와 관련된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다만 입국 심사를 거쳐 테러리스트 활동에 가담한 사실 등의 불법 행위가 발각되면 당연히 처벌 받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다시 시리아로 가려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단순히 관리감독 시설에 방치할 수만은 없다"며 "덴마크 법에 따르면 시리아에 가는 것이 불법이 아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시리아로 가지 않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시리아로 가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설명하고 테러리스트와 연계되는 것이 불법이란 것을 설명한다"며 "어린이들과 부모들에게 심리학자의 멘토링 서비스를 지원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르후스에서만 약 30명이 시리아로 떠났는데, 이 중 16명은 귀국해 덴마크에서 생활하고 있다. #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에도 불구하고 매달 1,000명 이상의 외국인 용병들이 꾸준히 시리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30일,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의 자료를 인용해 최근까지도 시리아 유입 인구가 줄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정보당국 관계자는 "시리아로 향하는 무장 세력의 수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시리아 내 외국인 용병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1년간의 추세를 살펴보면 현재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의 수는 대략 1만 6,000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맞섰던 무자헤딘 인원을 넘어서는 수치다. 유입 경로도 다양하다. 인근 중동북아프리카는 물론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전 세계에 걸쳐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그 간의 조사 결과 IS의 세련된 신병 모집과 더불어 오랜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무장 세력들의 활발한 활동 등이 이 같은 흡인력을 가지게 만든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3년 넘게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정보당국의 예상보다 더 많은 수의 외국인이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국가 대(對) 테러센터(NCTC) 부소장이었던 앤드류 리프먼은 "미국의 시리아 공습은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시리아행을 좌절하게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시리아로 가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며 "이로 인해 시리아로 유입되는 외국인 수는 결국 과거와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

한편,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9월 중순 이후 이라크와 시리아에 600여 회의 공습을 감행했다. 공습으로 IS는 약 460명, 알 카에다 연계 단체 알누스라 전선은 약 60명의 조직원을 잃었다. 미국 국방부는 "공습이 IS의 활동에 지장을 주고 있다"면서도 "대대적인 공세는 아직 요원하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 30일, CNN과 뉴욕타임스 등은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이 최근 내부적으로 백악관의 시리아 전략 미흡을 비판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IS 저지도, 쿠르드족 지원도 기대에 못 미치고 아사드 정권의 연명에만 도움을 주게 된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라고 한다. # 결국 백악관과의 갈등 때문인지 헤이글 국방장관은 11월 24일 사임했다. #

2014년 11월 11일, 시리아 내전 현장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 와중에 소녀를 구하는 소년의 모습이 포착되어 화제가 되었다. # 그런데 이건 연출이었단다... #

11월 19일,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기 위한 군사 작전이 최대 4년까지 소요될 수 있다고 미국 밀리타리 타임스가 보도했다. #

11월 30일, 미국 폭스뉴스는 최근 국방부가 작성한 보고서를 입수해 다국적 연합군의 IS 공습에서 미군의 역할이 85%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이 전투기와 무인기(드론)로 감행한 IS 공습 횟수는 무려 819차례에 이른다. 반면 IS 공습에 참여한 다른 10개국의 공습 횟수는 모두 합쳐 157회에 그쳤다. 즉 미국의 공습 규모가 다른 연합국을 5배 넘게 압도하는 것. 천조국의 위엄 폭스뉴스는 미군과 연합군이 이처럼 IS 공습 횟수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미국의 압도적 국방력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군용기 13,600대 가운데 전투기와 폭격기는 4,800대에 달하지만, 바레인 공군은 폭격 가능한 전투기가 50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천조국 하면 쇼 미 더 머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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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5일, '이슬람 국가(IS)' 공격에 가담한 연합국 중 하나인 호주의 대도시 시드니에서 극단적 이슬람주의자에 의한 인질극이 벌어져 각국과 유관 기관이 충격에 빠졌다. 당초 호주가 IS 공격에 가담했기 때문에 IS 계열의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여겨졌으나,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는 상태다. #, 인질극을 벌이는 범인이 내건 깃발에 대한 분석. 결국 호주 경찰의 진압으로 범인 만 하론 모니스는 사살되고(그 외 인질 2명도 사망) 인질극은 16시간 만에 끝났다. 그렇지만 광신적 지하디스트들의 테러에서 비교적 안전한 나라로 여겨진 호주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서방 각국은 물론 한국 정부도 주의해야 할 상황이다. #

12월 16일,《더스타》등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은 과격 이슬람 단체에 가담하려고 시리아로 들어가려던 인도네시아인 7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25~35세로 그 중 1명은 필리핀에 거점을 둔 테러 조직 아부사야프와 연계된 인물로, 인도네시아 출신 이슬람 과격 세력의 시리아행을 돕는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자국 국적자 39명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이슬람 국가(IS)'가 벌인 전투에 가담했으며, 이 가운데 5명이 숨졌다고 밝힌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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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로이터통신이 17일(현지 시간) 미군 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12월 전반기까지 시리아 내 이슬람 국가(IS)에 대한 미군의 공습은 62회로 97%에 달했다. 반면 기타 동맹국들의 공습은 3%, 2차례에 불과했다. 미군은 그동안의 공습으로 표적 탐색이 어려워졌고 그새 다 깨부쉈냐 전체적인 공습 횟수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해명하고 있다. 미군 관계자는 "(고정된) 목표물이 줄고 있다"며 "우리 관점에서 보면 좋은 것이다. 이는 공습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

세계은행(WB)은 최근 발표한 자료에서 시리아, 레바논, 튀르키예, 요르단, 이집트, 이라크 등 6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분쟁이 없었다면 2007년 기준으로 350억 달러 더 늘어났을 수 있었을 것이라 추산했다. 시리아는 3년간 내전과 함께 '이슬람 국가(IS)'와의 전쟁이 겹치면서 1인당 복지 비용이 16% 감소했다. 이라크도 재건 노력에도 불구하고 IS와의 전쟁으로 14% 감소했다. 주변국인 레바논은 밀려드는 난민들에 대한 부담(전 인구의 25% 수준)이 커지면서 1인당 복지 비용이 11%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각종 수치와 통계를 포함해, WB은 분쟁으로 인해 여섯 나라가 최대 350억 달러(약 38조 5,000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고 추정했다. #

2014년 12월 23일, 국제언론인보호위원회(ICPJ)는 전 세계적으로 취재 중 숨진 언론인이 총 60명으로 시리아가 대표적인 언론인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발표 시점까지 17명이 시리아에서 숨졌고, 2011년 이후 사망자까지 합하면 79명에 이른다고 한다. #

2015년 1월 1일, 작년 7월 시리아에서 납치된 이탈리아 여성 2명이 구조를 요청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고 이탈리아 언론들이 보도했다. 작년 12월 17일 촬영한 동영상에는 얼굴을 제외하고 몸 전체를 가리는 이슬람식 검은 옷을 입은 그레타 라멜리와 바네사 마르줄로라는 2명의 20대 이탈리아 여성이 한 명은 '17.12.14. 수요일'이라고 씌여진 흰색 종이를 들고, 다른 한 명은 원고를 읽는 모습이 주로 촬영됐다고 이탈리아 뉴스통신인 안사는 전했다. #

최근 수 년 동안 3,000명 이상의 유럽 국적자가 시리아 내전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했으며, 이들 중 최소 500명이 유럽으로 돌아왔다고 CNN이 밝혔다. 이들은 프랑스 파리샤를리 엡도 테러, 덴마크 코펜하겐 테러 등 이른바 '외로운 늑대'의 테러 행각을 자행하고 있어 유럽 안보-치안 관계자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 실제로 미국 등의 정보 당국자들은 최대 180명의 극단주의자들이 테러 계획을 꾸미고 있다고 밝혔다. # 졸지에 시리아 내전은 유럽으로 '수출'되는 IS의 이슬람 테러리스트 양성소로 작동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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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여성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조지 브랜디스 법무장관이 밝혔다.

호주 ABC 방송에 따르면 브랜디스 장관은 이 날 "약 6개월 전에는 젊은 남성의 가담만 걱정했지만, 안보 기관들의 통계를 보면 갈수록 많은 호주 여성이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시리아와 이라크에)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그는 IS에 합류한 호주인이 지난해 약 75명에서 현재 약 90명으로 늘었다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호주 젊은이가 IS를 위해 (시리아) 내전에 참여한다는 거짓된 화려함에 유혹 당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호주인들은 이것이 심각한 문제이고 또 갈수록 커지는 문제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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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백업. 1월 30일,《해럴드경제》는 종파적 이해 관계에 따라 수니파 부국(富國)의 '석유 왕족'들이 '이슬람 국가(IS)'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여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을 꺾으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구체적인 실명과 행태까지 거론했다.

1월 31일, 한국 언론《채널 A》는 북한군이 군의 실전 감각 유지와 훈련을 목적으로 시리아 내전에 일부 병력을 은밀히 파병하여 실전 경험을 쌓고 외화 벌이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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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한국 언론《중앙일보》는 IS가 일본인 인질 1명의 석방 조건으로 알 리사위의 석방을 요구한 것은 오랫동안 견원지간이었던 알 카에다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이미 2014년 9월 미국 등의 공습을 계기로 계속 으르렁대던 사이인 알 누스라 전선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개선한 IS가 서방 세계의 압박에 맞서 힘을 결집하기 위해 알 카에다에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보인 것이라는 평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향후 IS와 알 카에다가 협조적인 노선으로 돌아서서 서방 국가들에 대한 테러나 중동 각지에서의 세력 팽창에 함께 나설 것이라는 악몽 같은 가정도 해볼 수 있다.

2015년 2월 22일, 영국 일간《인디펜던트》는 쿠르드 자치정부 수반의 수석 보좌관인 푸아드 후세인의 말을 인용, IS가 미국 등의 자금줄 차단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랍 지역 동조자들로부터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쿠르드족 지도자 중 한 명이자 이라크 의원직에서 물러난 마흐무드 오트만 박사는 "걸프 국가들이 왜 IS에 자금 지원을 하는지에 대해 오해가 있다"고 꼬집었다. 오트만 박사는 "걸프 국가들이 IS에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은 IS를 지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IS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걸프 국가들은 '''IS에 재정 지원을 함으로써 IS가 그들의 영토에서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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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개트윅 공항 CCTV에 찍힌 모습. 왼쪽부터 카디자 술타나, 샤미마 베이검, 아미라 아베이스. 사진 출처《가디언》.

튀르키예의 한 정보 당국자는 2월 22일(현지 시간)《텔레그래프》에 "이들은 지난 20일 시리아 탈랄비아드에서 목격됐다"며 "한 시리아 남성과 함께 민간 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시리아 신분증을 썼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또 "소녀들이 이스탄불에 도착한 뒤에 외국인의 '이슬람 국가(IS)' 가담을 돕는 IS 조직원을 만난 것으로 이해된다"고 덧붙였다. # 런던 동부에 있는 학교의 동급생인 샤미마 베이검(16), 카디자 술타나(15), 아미라 아베이스(15) 등 3명은 지난 2월 17일 런던 개트윅 공항에서 튀르키예를 향해 출국했다. 이들은 그 날 저녁 튀르키예 항공편으로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익명의 소식통은 이들이 이스탄불에 도착한 뒤 이틀을 머물렀으며, 20일 시리아와의 국경선을 넘었다고 전했다. 이들 10대 소녀 가운데 샤미마는 친언니인 아클리마(17)의 여권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탄불에서 튀르키예 경찰과 영국 경찰은 합동으로 수색을 폈지만 이렇다 할 소득을 얻지 못했다.

샤미마는 앞서 지난 15일 트위터에서 20살의 IS 가담 영국 여성과 접촉, 이들이 SNS를 통해 급진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IS 가담 여성은 자신의 블로그에 자신은 글래스고에서 공부하고 IS 대원과 결혼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영국 무슬림 여성들에게 시리아로 오라고 권유하는 글을 남겼다. 영국에서 IS 가담을 위해 시리아로 간 무슬림 여성과 10대 여학생은 5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저 시리아로 날아가 IS에 가담한 여성 셋의 근황이 2019년 2월 알려져 영국 여론이 시끄러워졌는데, 샤미마 베이검[22]만 살아있었고 아베이스는 행방 불명, 술타나는 폭발로 인해 죽었다고 한다. # 그리고 깨알같은 우즈베크계 시리아 지하디스트들의 한국행 희망

5. 트럼프의 당선이 미친 영향

정부군, 자유 시리아군, 이슬람 국가 등으로 나누어져있는 시리아 상황에서 러시아, 이란 등은 정부군을 지원하고, 미국 및 유럽은 자유 시리아군을 지원하고 있다. 자유 시리아군으로 통칭되는 반군 집단을 가장 많이 지원하는 건 미국이고, 다른 유럽 국가들은 거드는 정도이므로 러시아와 발 맞춰 정부군을 지원하겠다고 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됨으로써 시리아 내전도 좀 더 종전에 가까워졌다. 현재처럼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에서는 전쟁이 끝나기 힘들지만, 강대국들이 한쪽만 지원한다면 결국 전쟁은 한쪽의 화력 우세로 끝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리비아 내전도 강대국들이 반군만 지원하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정부군이 순식간에 패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친미 정권이라면 인권 탄압을 해도 묵인해줬고, 반미 정부군 아래의 친미 혹은 중립 반군이라면 반군을 지원해왔다.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이 시리아 반군을 지원한 이유는 하나이다. 시리아 정부군이 친러시아 정권이라 미국과 유럽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항구와 공항이 러시아군이 중동에서 주둔하고 있는 유일한 군사 기지이므로, 시리아의 친러 정권만 무너진다면 중동에서 러시아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중동을 미국과 유럽의 영향권 안으로 완전히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정부군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는데, 반정부군인 자유 시리아군이 그렇게 친미적이지도 않고, 되려 이슬람 극단파도 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 게다가 아사드 정권이 적어도 무조건 반미도 아니기에 차라리 러시아와 같이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 싶다.

그런데 아사드 군의 사린 가스 살포를 빌미로 2017년 4월 6일, 미국이 시리아 공군 기지를 타격했다. 이 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사드를 맹비난하며 동맹국들에게 시리아 내전에 참여할 것을 호소, 시리아 내전에 적극 개입할 것을 천명함과 동시에 반군 편을 들 것을 발표하여 튀르키예와 시리아 반군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 # 하지만 문제의 사린 가스를 살포한 쪽이 정말 아사드 군인가에 대해서 러시아는 부정하고 반군의 자작극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UN 최종 조사에선 사린 가스를 살포한 집단이 정부군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유엔 "시리아 사린가스 공격, 정부군 소행" 결론.

2017년 7월 도널드 트럼프가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고 훈련하는 미중앙정보국(CIA)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트럼프, 시리아 반군 지원 중단 결정…러와 협력 모색.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고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를 미국이 또 공격했다. #

6. 튀르키예의 변칙적 행보가 미칠 영향

이전부터 튀르키예는 시리아 반정부군의 은닉을 돕는가 하면 오스만 제국의 시조 쉴레이만샤의 유해를 튀르키예로 호위해 가기 위해 기습적으로 시리아 영내에 침투한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2016년 9월, 튀르키예군이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으로 시리아 영내에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대놓고 시리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물론 알-밥이 점령되기 전까지는 튀르키예가 시리아 정부군과 경계를 접하지 않았고, 튀르키예군 내부에서도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로 인한 장교단 숙청이 벌어졌기 때문에, 튀르키예가 근시일 내로 알-밥을 점령하고 에르도안이 주장한 약속대로 라카나 알레포로 향할 거라 보긴 어려웠으며, 실제로도 쿠르드족을 직접 공격하여 아프린을 점령하는 정도만 벌어졌다.

가장 주요한 변수는 튀르키예가 이 지역에 FSA를 지원하여 개입한 것은 사실상 시리아 정부, 그리고 그 뒤의 러시아, 이란과 대리전을 치르는 것과 크게 다름이 없다는 점. 실제로 러시아가 튀르키예와 지난 공격기 격추 사건 이후 화해 무드에 들어가면서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이 이뤄지는 지역에는 시리아군, 러시아군 모두 폭격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동안 알레포에서 지속적으로 공습을 당한 FSA 등 반군들에게는 튀르키예군 주둔 지역이 사실상 절대 공습 당하지 않고 지원도 보수도 높은 안전지대가 된 셈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알레포에 남은 반군들은 알레포를 이탈하고 튀르키예군에게 붙은 반군들을 단돈 200달러에 몸을 팔아먹은 배신자라고 욕하는 상황이었으나, 그렇게 배신자라고 부르던 HTS도 결국 이들리브로 밀려나 튀르키예에게 의탁하는 처지가 되었다.

거기다 에르도안은 실제로 신 오스만주의를 표방하며 시리아 북부, 이라크 북부 등을 자국의 영유권이라 주장하는 등 이 지역의 패권 강화를 위한 숟가락 얹기에 들어간 상태라, 이해 관계가 얽힌 열강들의 외교적 요구와 타협 없이는 튀르키예군이 시리아 땅에서 퇴거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으며, 현재의 시리아군 사정으로는 튀르키예군을 군사적으로 퇴거 시킬 능력이 없다시피 하다.

사실 튀르키예는 원래 내전 발발 초기부터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튀르키예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전폭기가 튀르키예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후 사이가 매우 안 좋아졌던 튀르키예와 러시아는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급속히 가까워졌으며, 알레포 휴전 협상도 러시아와 튀르키예가 주도하였다. 튀르키예의 지도자 에르도안이슬람 근본주의자이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시리아 반군을 지지할 의사가 없고, 반군과 같은 수니파사우디 아라비아에도 호의적이지 않아 결국은 반군 지지 세력(미국, 유럽, 사우디 아라비아)이 와해될 것을 직감하고, 서방에 의해 견제 받는 동지인 러시아와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튀르키예는 미국과 유엔을 배제하고 러시아, 이란과 함께 2016년 12월 20일 시리아 내전 평화 협상을 위한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하였다. 미, 러 경제제재 확대…양국 갈등 증폭.

6.25 전쟁휴전 협정이 당사국 중 하나인 한국을 배제하고 북한미국, 중국의 합의 하에 체결된 것처럼 시리아 내전의 정전 협상에서도 당사자인 시리아는 배제되고 러시아, 튀르키예, 이란정전 협정을 하고 있다. 튀르키예·러시아, 시리아 정전 조건 합의 2016/12/28.

2017년 3월 시점에서 튀르키예측은 군사적으로 시리아 정부군과 그들의 동맹이 된 쿠르드 자치정부와 시리아에서 대립하는 관계이나, 정치적으로는 친러 스탠스를 조금씩 보여주면서 변칙적인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로자바는 러시아군을 아프린 칸톤과 만비지에 불러들여 공동방어구역을 설정하는 등, 러시아의 개입을 유도하여 튀르키예군의 개입을 막으려 했으나 결국 4월 26일에 튀르키예-시리아 국경 전역에서 로자바 정부와의 전쟁에 들어갔으며, 군사 작전의 결과로 아프린 주를 장악하는데 성공, 이들리브와 북알레포를 연결하였다.

2018년 9월 경, 반군 측을 지원중인 튀르키예의 움직임을 고려해 봤을 때 가장 가능성 높은 움직임은 이들리브와 북시리아 일대를 시리아군이 직접 손댈 수 없는 튀르키예 정규군으로 채워 정부군의 점령 시도를 차단한 뒤, 표면상 자유 시리아군을 대표하는 국가해방전선을 앞세워 시리아 알 카에다, HTS를 비롯한 지하디스트 극단주의 계열 반군에겐 해산 및 튀르키예 지원 반군 휘하로의 편입을 명하고, 이에 불응/저항하는 조직은 제거하며,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는 자유 시리아군 계열 반군 조직(국가해방전선 휘하)을 대폭 지지해 세력을 키워주는 형식으로 형식상으로라도 이슬람 극단주의를 없애는 시늉을 한 뒤, 아사드가 통치하는 현재 시리아 정부와 다른 독자적인 친튀르키예 시리아 반군 주도의 정부와 의회를 구성 시키고 반아사드 성향의 반정부 해외 망명 인사나 국가해방전선 등 튀르키예 지원 시리아 반군 단체의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을 시리아 대통령이나 총리로 옹립시켜 이들리브와 아프린, 자라블루스, 알바브, 다비크 등 북알레포 지역들을 튀르키예 영향력 하의 괴뢰 미승인국으로 시리아에서 분리 독립 시키거나,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과거 시리아에 속해 있었다 1939년에 튀르키예에 귀속된 하타이 주처럼 튀르키예의 정식 영토로 합병할 속셈으로 보인다.[23]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 크림 반도를 이런 방식으로 괴뢰 국가로 독립 시켜 자체적인 주민 투표 후에 병합한 적이 있었으며,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에서도 압하스남오세티야 등 조지아 사카슈빌리 행정부의 친미/반러시아 노선에 반발하던 러시아와 인접한 조지아 내 미승인국가들 두 곳을 조지아로부터 강제로 떼어내어 러시아 영향권에 넣어 분리 독립 시킨 적이 있었다. 튀르키예 역시 1974년 키프로스를 침공하여 이슬람 튀르크계의 인구 비율이 높은 키프로스 북부 지역을 점령하고 수 년 뒤인 1983년에 북키프로스으로 독립 시켜서 사실상 튀르키예의 영향권 하에 두었다. 물론 시리아 아사드 정권은 내전 와중에 자국 영토를 무력으로 빼앗아간 튀르키예가 이들리브와 북알레포를 사실상 튀르키예의 괴뢰국으로 독립 시키거나 시리아령에 대한 영토 추가 합병을 하려는 시도에 결사 반대할 공산이 크고 러시아와 이란, 이라크, 레바논 등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부군을 지지하는 국가들과[24] 이 외에도 그리스, 불가리아 등 튀르키예와 역사적, 정치적으로 앙숙 관계에 있는 다른 튀르키예의 인접국들도 이러한 튀르키예의 북시리아 지역에 대한 영토 합병 밑 친튀르키예 괴뢰국가 건설을 통한 분리 독립을 좌시하지 않거나 반대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이 높아서, 과연 튀르키예가 북부 시리아를 병합하거나 괴뢰 국가를 만들 수 있을지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과거 역사 속의 크림 반도나 북키프로스, 하타이 등의 지역은 애초에 합병한 국가 계열 시민[25]이나 지지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합병 내지 괴뢰국화가 수월했던 것이지, 반튀트키예 감정이 상당하고 튀르크계가 다수인 것도 아닌 이들리브와 알레포 지역 주민들은 튀르키예 영토로 편입 당한다면 당장은 찍어누른다고 해도 이스라엘 치하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나 모로코 치하의 서사하라 주민들,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 점령기의 쿠웨이트 주민들, 인도네시아 점령기의 동티모르 주민들처럼 지속적으로 독립 투쟁이나 시리아로의 재편입을 주장하며 저항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 당장에 키프로스 분쟁과 앙숙 관계인 그리스와 불가리아 등 주변국과의 갈등도 버거운 튀르키예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1] 편향된 서방측 보도만 본 사람들은 시위 첫날부터 탱크가 사람을 산 채로 깔아뭉갰다는 루머를 곧이곧대로 믿고 나무위키 내에서도 비슷한 서술을 했는데 완벽한 루머이다. 시리아 경찰의 경찰버스가 파괴되거나, 퇴각하는 진압 경찰들이 시민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영상들이 남아있고, 진압 작전은 2011년 6월 지슈르 앗슈구르가 처음이었다.[2] 로켓탄 단발을 적당히 거치 조준해 쏘는 것이야 21세기 중국군 훈련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고, 대장간제 로켓탄을 단발 발사하는 것 자체는 레바논 내전에서 신물나도록 보여준 것이지만, 그럴 듯한 발사기까지 만드는 등 점점 발전하고 있다.[3] 21년 이후 활동이 중단 됐으며 다른 이름을 가진 택티컬 조직이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4] 2016년 7월 알 카에다로부터 이탈하였다.[5] 아이러니한 건 이스라엘은 오히려 수니파의 전면 봉기로 알라위파와 정교회로 구성된 친아사드 세력이 무너질 경우 그들을 지원해서 반군과 맞서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실제 상황에서는 아사드의 군대가 최소한 대등한 수준은 유지했고, 개입 잘못했다가 중동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 있어 실현되지 않았다.[6] 특히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의 군사적 요지이자 분쟁 지역인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부분이 크다. 골란 고원에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60km이다.[7]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도 이라크군은 조금만 사격을 받으면 곧바로 전차를 버리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걸프 전쟁은 물론 중동전쟁 전반, 심지어는 사우디가 개입한 예멘 내전에서 후티 반군에게 사우디 정규군이 브래들리 등 미국제 무기를 빼앗기고 한심한 졸전을 펼치며, 심지어는 사우디 국경까지 침략 당하기도 했다.[8] 대표적으로 2016년~2017년 다마스쿠스 동부 동구타 지역에선 반군들끼리 내전이 일어나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고, 이를 막으려고 화해를 촉구하며 시위에 나선 점령 지역 내 민간인들을 사살하는 막장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들 동구타 지역의 반군들은 시리아 정부군에 의해 토벌됐다.[9] 2018년 기준 해체된 상태.[10] 1989년 소련이 철군하고 소련의 지원을 받는 아프가니스탄 나지불라 정권을 1992년에 무너뜨린 뒤,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에 평화를 가져오기는커녕 서로 파벌 싸움과 내전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80년대와 90년대 초 카르말 정권, 나지불라 정권 때보다 더한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린 무자헤딘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1] 대표적으로 이슬람주의 반군이던 시리아 남부의 '쿠와트 샤밥 알 순나'와 동 콸라문 지역 반군 '리와 마그하위르 알 사하라' 같은 반군은 아예 아사드 정권으로 전향하여 2018년 8월 현재 정부군과 함께 수와이다 지역의 잔존 IS를 소탕하고 있다. 쿠와트 샤밥 알 순나는 정부군의 이들리브 공세에도 동참한다. 물론 시리아 반군에서는 이들을 대역죄인 배신자 취급 중.[12] 2018년 8월 하순 HTS는 IS 점조직 대원들을 적발해 공개처형했다.[13] IS에 맞선 라카 탈환전 당시 이들은 라카 지역 수복 뒤 이들리브 반군들을 공략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튀르키예의 침공으로 이뤄지지 못했다.[14] 알 누스라 전선으로 알려진 하이야트 타흐리르 알 샴, 탄짐 후라스 알 딘을 비롯한 알카에다 충성파 군소군벌, 튀르키예 지원 시리아 국가해방전선(자브하트 알 와티니야 릴 타흐리르) 내 지하디스트 유입파들 다수.[15] 사실상 주력 반군의 대다수가 이슬람 근본주의화 내지는 이슬람주의 반군화되었다는 것이다.[16] 리비아카다피 축출 이후로도 지금까지 대혼란을 겪은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부족 갈등, 이권 문제와 더불어 도처에 날뛰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통제하는 데 실패한 점이 컸다.[17] 단, 시리아는 세속 국가로 이란 같이 이슬람 근본주의 통치는 하지 않는다.[18] 단, 중국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해먹는 중국과 달리 시리아는 아사드와 바트당의 독재 정권이긴 하나 대선과 총선도 하고 어느 정도 다당제 체제의 틀도 갖춰져있다.[19] 반대로 아사드도 IS와 싸우던 이라크를 지지했다.[20] 바레인, 모로코, 쿠웨이트는 2010년대 후반기 시리아 내전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아사드 정부군의 우위로 돌아가자 시리아 반군과 반아사드 성향의 망명 시리아 반정부 단체들에 대한 지지를 끊고, 아사드 정부를 사실상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사우디와 같이 친미/친서방 진영에 속해있긴 했으나 모로코와 쿠웨이트는 2017년 카타르 단교 사태 때도 사우디 주도의 카타르 보복에 참여하지 않고 카타르를 지지하는 등, 대중동 외교에서 사우디와는 다른 노선을 보이기도 했다.[21] 이들은 결국 공습으로 폭사하거나, 탈출하려다 오함마에 맞아 죽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22] 베이검은 영국 언론과의 2019년 2월에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은 IS 선전 영상 속 삶과 똑같았고, (쓰레기통에 담긴 참수된 민간인의 목을 보고도) 어차피 비무슬림 이교도니까 별 감흥도 없었으며, IS 가담에 대한 후회도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뻔뻔스럽게도 자기는 이제 영국에 다시 돌아가서 지내고 싶다고 영국에 송환을 요구했다. 일단 곧 출산될 아이가 기아로 인해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라고는 하는데... 이에 대한 영국 여론은 '매우' 좋지 않다. 영국 토크쇼 진행자가 샤미마의 뻔뻔함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자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프로그램 설문의 90% 이상 응답자가 입국을 거부하라고 할 정도. 이 자는 방글라데시계 영국인이라서 영국-방글라데시 이중국적자로 알려졌기에 영국 정부는 결국 국적박탈 처리했으나, 방글라데시에서도 우리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서 무국적 상태가 되었다. 특히 방글라데시 외무부에서도 '베이검은 우리나라와 아무 관계가 없지만, 만약 입국한다면 교수형에 처할 것'이라고 반응. # 2020년대 이후에는 좀 정신을 차린 건지, 아님 절박한 건지 차도르도 벗어던지고 완전한 세속주의자로 변신해서 자신이 어려서 극단주의자들에게 속았던 거지 영국을 증오한 적은 없다고 싹싹 비는가 하면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IS와 싸우는데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딜을 제시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23] 그러나 하타이 지역은 시리아가 프랑스의 위임 통치령이었을 당시 시리아 영토였던 시절에도 튀르키예인들의 인구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이에 비해 이들리브와 북알레포는 시리아의 주류 민족인 아랍인들이 더 많아 1939년 튀르키예 귀속 당시에 튀르키예인들이 다수를 차지했던 하타이와는 사정이 조금 다른 편.[24] 사실 그리스와 튀르키예와 불가리아의 앙숙 관계만큼 덜 알려져서 그렇지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등 과거 오스만 제국 시기 튀르키예의 지배를 겪었던 중동의 아랍 국가들도 역사적으로 반튀르키예 감정이 몹시 심하다. 이라크의 경우 2000년대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과 영국이 튀르키예의 이라크 전 참전을 고려하자 이라크 국민들과 정치권 수뇌부들이 결사적으로 튀르키예군의 참전을 반대했을 정도였는데 자세한 건 튀르키예/외교 문서 참조.[25] 크림 반도는 러시아계, 하타이는 튀르키예계가 다수이고, 합병을 공개적으로 찬성할 정도로 해당 국가의 지지율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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