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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18:24:29

제12보병사단

12사단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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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보병사단
第十二步兵師團
ROK Army The 12th Infantry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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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창끝, 산악의 방패
행동으로 실천하고 승리로 증명하는 을지부대
<colbgcolor=#4374b8><colcolor=#fff> 창설일 1952년 11월 8일
상징명칭 을지(乙支)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3군단
규모 사단
역할 군사분계선 동부전선(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인제군-고성군)작전 담당
사단장 소장 조우제 (학군 33기)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

1. 개요2. 역사3. 예하부대
3.1. 사단직할대3.2. 제17보병여단 쌍호3.3. 제51보병여단 상승 향로봉3.4. 제52보병여단 쌍용3.5. 포병여단 왕벌3.6. 신병교육대
4. 과거부대
4.1. 舊 제37보병연대(독수리 → 향로봉)
5. 출신인물
5.1. 사단장5.2. 장교/부사관5.3. 병
6. 특징
6.1. 근무환경
6.1.1. 기후6.1.2. 지형6.1.3. 교통
6.2. 사단가
7. 사건 사고
7.1. 이신애 대위 과로사 사건7.2. 자원입대 LA한인 청년 뇌수막염 방치 (2015년)7.3. 한 모(가명) 이병 자살사건 (2019년)7.4. 강원 전방부대 이병 총상 사건7.5. 제12보병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
8. 부대 영상9. 여담

[clearfix]

1. 개요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조국의 창끝, 산악의 방패
- 제12보병사단의 사단 구호

대한민국 육군 제12보병사단. 일명 을지부대. 사단본부 비석에는 상승을지부대로 표시되어 있다. 표어는 <을지부대는 오직 전진할 뿐이다>를 사용한다. 경례구호는 '충성'.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는 당백(일당백), 1997년 여름까지는 '단결'이었다. 다른 사단과 달리 병사를 병사가 아닌 '용사'라고 부른다.

사단본부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에서 그 원통에 자리잡고 있다. 정확한 지명은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이며 북면사무소 소재지다. 물론 위 주소는 사단본부 소재지이며, 예하부대는 인제군 및 양구군, 고성군에 나뉘어 주둔하면서 <조국의 창끝, 산악의 방패>로서 그 사명을 충실히 완수하고 있다.

그러나 연이은 논란들과 하나 같이 가혹한 사단내 군기 혹은 괴롭힘 사건등으로 최악의 사단이란 이미지가 잡혀있다. 입대를 압둔 20대 남성은 12사단 신병교육대만큼은 제발 피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형성 될 정도이며 12사단으로 배정 받았다는 말만 꺼내도 뉴스 기사들을 보여주며 걱정의 눈초리를 받게 된다.
을지부대 소개영화
파일:을지부대.jpg
을지부대 소개 포스터

2. 역사

파일:12사단창설지비.jpg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 11월 8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207호에 의거 제15보병사단과 함께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전진리[1]에서 창설되었다. 을지부대라는 명칭은 창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수나라 113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장군의 기상을 계승하라는 의미로 명명했고 이는 육군 최초로 역사적 위인을 일반명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창설 후 11월 8일부터 12월 5일까지 양양에 주둔하였고 사단은 경기도 포천으로 이동 후 편성하였다. 같은 날 창설[2]된 15사단과 연대 번호가 이어진다.[3]

미 9군단에 배속되었으나,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미 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된 뒤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으로 주둔지를 옮겨 고지방어임무를 수행하였다. 전쟁의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6월, 이전까지 미 제45사단[4]의 책임 방어지역이었던 812고지, 854고지[5]를 인수받은 뒤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7월 17일까지 전투를 치러 854고지를 지켜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812고지와 쌍용고지는 끝내 되찾지 못한 채 북한군&중공군과 교전을 반복하다 휴전을 맞이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 덕분에 확보한 38선 이북 지역이 현재 대한민국 강원도 면적의 1/4에 달한다. 휴전 이후 포천, 화천 등 총 13회에 걸쳐 작전지역을 변경하여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1966년 9월 30일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로 이동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2사단은 이름에 걸맞게 창설 이후 단 한 번도 적에게 패한 적이 없다. 6.25전쟁 중 총 5번의 전투에서 전승을 거뒀으며, 휴전 이후 1967년 8월부터 1998년 6월까지 총 25회의 대침투작전도 완벽하게 수행했다. 총 85명의 무장공비를 사살하고 다수의 장비를 노획하는 성과를 올렸고 귀순자 유도작전 역시 수차례 임무완수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금까지 대통령 부대표창 11회[6] 등 다수의 표창을 받았다.

5.16 군사정변 당시 12사단장 박춘식(준장)은 정순화(대령, 부사단장), 이희성(중령, 작전참모) 등과 함께 가담하여 병력을 이끌고 춘천에 진주했다.

육군본부 공인, 육군에서 가장 높은 곳[7]에 병력이 주둔하여 국토를 수호하는 사단으로, 사단 책임지역 85% 이상이 산악지형이다. 1,000m 이상 고지 49개소, 작전지형 평균 고도 및 경사도는 각각 750m, 49˚이다.

예전에 비해 GOP경계 섹터 및 작전지역이 축소됐다. 과거에는 노무현 前 대통령이 현역으로 복무했던 건봉산(현재 22사단 55연대 담당) 일대까지 12사단이 담당했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같은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3. 예하부대

파일:제12보병사단 부대마크.svg
제12보병사단 예하부대
제17보병여단 제51보병여단 제52보병여단
포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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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 신병교육대는 제12보병사단/신병교육대 참고.

3.1. 사단직할대

3.2. 제17보병여단[17] 쌍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제17보병여단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17rgt.jpg

● 현재 편제
- 여단본부 및 직할중대[18]
- 1대대(인천상륙진격대대, 신병교육대대), 2대대(화령장전승대대)[19], 3대대(수도탈환대대), 17포병대[20], 군수지원대대[21] 군 구조 개편으로 전투지원중대와 수송대는 해체(수송대 소속 병력은 예하 대대 소속으로 변경, 차량무사고 5,000일 달성 후 부대구조개편에 따라 해체)


● 과거 편제
- 연대본부 및 직할중대[22]
- 1대대(인천상륙대대), 2대대(화령장 전승대대), 3대대(수도탈환대대)

● 17여단 역사
1) 창설 및 한국전쟁
- 국방경비대 시절부터 존재했던 연대로, 과거 2사단 내에서 가장 역사가 길었다. 그 뿌리는 육직부대이다. 수도경비사령부 17연대로 배속되어 있다가 육군본부 직할로 옹진반도를 수비하는 독립연대(당시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변경되었으며, 개전 이후 복합해진 전선 상황에 따라 지연전을 벌리며 후퇴했다. 이때 화령장 전투에서 높은 전공을 세운다. 그 이후 낙동강 전선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육군 유일의 예비 독립연대[23]였으며, 그 때문에 인천 상륙 작전에 대한민국 육군 유일의 작전 참가부대[24]로서 이름을 남긴다. 17연대는 그 후에 수도까지 탈환한다. 이러한 역사와 전공을 가졌기에 인천상륙작전, 화령장전투, 수도탈환은 각각 편제된 예하대대의 이명으로 사용하였다. 전후에는 주로 대간첩작전에 투입되어 전과를 올렸고 제3군단의 예비사단-예비대로 인제에 주둔하여 작전을 담당한다.

2) (구)제2보병사단 시절
- 다른 부대와는 다르게 17연대는 연대본부 및 직할대, 예하대대가 모두 하나의 울타리 안에 주둔했다. 그래서 그 면적이 어지간한 지방의 대학교 캠퍼스와 비슷했다. 사단본부와 사격장을 비롯한 주요 시설이 양구에 있다보니 그 어떤 훈련을 참가해도 행군 거리의 격이 달랐다. 각 대대가 미래과학화 전투실험 보병부대를 돌아가면서 맡았는데, 육군 보병부대의 발전을 위해 개발되는 신편제, 신식 교리나 무기체계를 실험하는 부대이다. XX년도에는 2대대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XK11의 시험운용부대로 매일 마일즈 장비를 착용하고 KCTC 수준의 실전적 훈련을 시행하는 실험에 참가했다. 이렇다보니 2015년 전반기 마일즈 육군 최우수 중대로 11중대가 뽑혔다. 2, 3, 5, 27사단의 각 대표 중대가 참여한 육군 최강중대 선발대회에서 4강(VS 3사단), 결승(VS 27사단)을 거치며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인원은 전원 17일에 해당하는 포상휴가를 받았으며, 해당 대대는 출타율을 조정해가며 휴식 여건 보장이 확실히 되었다.

31, 32연대와 달리 인제에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다보니 부조리가 꽤 심했다. 게다가 연대 예하 모든 부대가 하나의 주둔지에 묶여 있으니 연대장의 힘이 매우 막강했다. 무엇보다 연대 전통이 실로 엄청나니 명맥을 잇는다는 논리로 부조리가 근절되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양구에 주둔한 군사경찰대(헌병대)가 즉시 출동하기 위해 17연대 내에 헌병 파견대라 하여 분견대가 위치했다. 후반기 교육을 마쳤어도 바로 자대로 전입하지 않고 다시 쌍호교육대로 들어가 1주일 정도 교육을 받았다. 쌍호교육대는 연대 내 군기교육을 담당하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에는 연대 전통과 정신 불어넣기, 태권도 교육을 주로 받았는데, 이게 유격기초훈련과 유사해 매우 힘들었던 과정이었다. 2000년대 말에는 프로그램이 완화되었는데, 이전처럼 군사훈련이나 정신교육을 받지는 않고 간단히 연내 내 시설을 돌아보거나 연대장과의 면담 등을 실시하면서 전입 온 신병들의 적응을 돕는 수준으로 완화되었다. 연대 내 전입 온 모든 신병들이 모이는 교육이라서, 현재 운용 중인 부대 내에서 이 인원들을 수용할 만한 곳이 없어서 먼지 쌓인 구 1대대 막사와 구 쌍호교회 건물을 열어 사용했다. 2010년에 모종의 사유로 폐지된 적이 있었으나, 그 후 2012년에 다시 부활하여 유지했었다.

3) 12사단으로 이관
- 2019년 10월, 국방개혁 및 부대구조개편에 따라 17연대는 12사단으로 이관되면서 37연대는 해체 수순을 밟았다. 2019년 9월 연대본부 AMB차량이 야전 AMB차량에서 스타렉스 AMB로 바뀌었으며 2020년 부대구조개편에 따라 수송대및 전투지원중대가 쓰던 막사는 수색중대와 17포병대가 쓰고있다.
- 현재 12사단 직할대대중 하나인 방공대대와 12사단 보충중대가 여단 주둔지에 함께 주둔해 있다

● 참고사항
- 연대본부와 3대대는 기존 17연대 주둔지를 사용하고 1대대와 2대대는 12사단 37연대 시절 주둔지를 사용한다.

3.3. 제51보병여단 상승 향로봉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제51보병여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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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겨울에는 3일간 내린 누적 적설량이 2m를 넘긴 경우도 있었다.[32] 많은 적설량 때문에 향로봉으로 향하는 전봇대에는 10cm 단위로 눈금이 표시되어 있다. 폭우가 쏟아지면 전술도로가 유실되는 경우도 발생했고 낙석으로 인해 도로 자체가 통제되기도 한다. 한 여름 야간 경계작전 때도 야전상의를 입을 정도의 기온이며 2010년 6월 1일에는 최저기온 영하 5도, 최고기온 27도를 기록했다. 한 겨울 영하 34도, 체감온도 영하 57도를 기록한 경우도 있으며 보통 첫눈은 10월, 마지막 눈은 5월에도 경험한다. 장마 또는 태풍 시 보통 2~3일 누적강우량은 적게는 300~400mm, 많게는 800mm 이상이다. 아침마다 운해는 물론 동해에서 뜨는 일출을 볼 수 있고 화진포, 거진항, 송지호까지 조망된다. 백두대간 설악산 대청봉은 물론 대청봉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신선봉, 마산 등 백두대간 줄기 역시 보인다. 더불어 향로봉은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이고, 청명한 날에는 향로봉에서 북한의 금강산이 보인다.[33]

3.4. 제52보병여단 쌍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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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포병여단 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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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신병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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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거부대

4.1.제37보병연대(독수리 → 향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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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출신인물

5.1. 사단장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12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윤춘근 소장 경비사관 2기 사단장 친일인명사전 수록자[47]
2대 이주일 대장 육사특 7기 제21보병사단장, 前 제2야전군 참모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대한체육회 회장, 제3-4대 감사원장
3대 문용채 소장 군영 1기 前 사단장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4대 이용 예) 소장 육사 7기 사단장 前 육군보병학교장
00대 박춘식 소장 육사 5기 사단장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5.16 쿠데타 가담
00대 백행걸 준장 육사 10기 前 주월한국군사령부 기획참모부장 前 코엑스 이사장
00대 장정열 중장 육사 2기 병무청장
00대 류근무 중장 육사 13기 육군군수사령관 국가보훈처장
20대 천용택 중장 육사 16기 제2군단장 국방부장관, 前 국가정보원장, 前 15, 16대 국회의원
21대 박세환 대장 학군 1기 제2작전사령관 前 15, 16대 국회의원
22대 오영우 대장 육사 20기 1군사령관
28대 박승춘 중장 육사 27기 제9군단장 국가보훈처장
29대 최무철 소장 육사 28기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
30대 김진항 소장 육사 30기 수도포병여단
31대 임운택 소장 육사 31기 육군학생군사학교
32대 이상돈 중장 육사 33기 육군군수사령관 군인공제회 이사장
33대 이종명 소장 육사 35기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 국가정보원 3차장
34대 강병주 소장 육사 37기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
35대 장경석 중장 육사 39기 육군특수전사령관, 육군항공작전사령관 알자회
36대 조종설 중장 육사 41기 육군특수전사령관 알자회
37대 성일 소장 육사 43기 방위사업청 국제협력관 알자회
38대 박용준 소장 육사 45기 육군미사일사령관
39대 정덕성 소장 학군 29기 육군부사관학교[48]
40대 이진우 중장 육사 48기 수도방위사령관
41대 조종래 소장 육사 50기 사단장
42대 조우제 소장 학군 33기 사단장

5.2. 장교/부사관

5.3.


2013년 연예병사 폐지 이후 사단으로 전입 온 인물

5.3.1. 신병교육대 출신

6. 특징

6.1. 근무환경

6.1.1. 기후

파일:external/bemil.chosun.com/20111216171940.jpg

제설작전이 아무리 싫다 해도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눈물나는 제설을 해야 한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그 양이 또 어마어마하다. 같은 군필자라도 비교적 후방[52]에 있던 사람은 상상도 못할 정도. GOP에서는 보급로에 굴착기와 불도저를 배치하여 겨울 내내 운용한다.

참고로, 저 사진의 배경이 되는 그 당시의 12사단 전역자에 따르면, 눈을 치우다 치우다 결국 몇 시간이 지나 간부들이나 병사들이나 단체로 멘탈이 나가서 실성한 듯이 허탈한 표정으로 어이없어하면서 웃었던 게 찍힌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사를 보면 눈이 1m 50cm까지 쌓였다고 한다. 사실 강원도 지역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1m 50cm까지 폭설이 내리는 사례는 절대로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일보에서는 이것을 즐거운 표정으로 포장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2009년에서 201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최악의 폭설이 있었는데, FEBA에서만 하루 그것도 오전에만 내린 적설량이 74cm였다. 3일 동안 내린 누적적설량은 2m를 넘겼다.[53] 사실 해당 부대원들에게는 제설작업은 동절기 일과라고도 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병사들은 그 노동의 힘듦과 별개로 생각보다 서로 웃으며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저 경우도 그런 케이스. 해당 부대의 경우 눈이 오면 제설도구를 챙겨서 전술도로라는 곳을 올라가는데 이게 7.2km 길이에 경사가 도저히 사람 다니라고 만든 곳이 아니다. 보통 올라가는 데 2시간 걸리는데 다올라가서 제설하면서 내려간다.

물론 사진에 나온 당사자가 포병이든 아니든 제설 작업은 필수다. 아니, 방열은 둘째치고 폭설상태를 방치하면 막사 문을 여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눈 무게로 막사 지붕이 무너져 부대원 몰살이나 한겨울 텐트 취침 상황에 처할 수 있다.[54] 게다가 가장 중요한 보급이 끊긴다. 그래서 눈을 반드시 치워내야 하는데 병참로 밑 저지대까지 막 쓸어내지 않으면 그게 녹아서 길가로 흘러내린 뒤 밤중에 얼어붙기에 유의.[55] 게다가 신속 보급을 위해 눈이 좀 쌓인다 싶으면 제 아무리 새벽이라 하더라도 부대원 전원 기상 후 (상황병초병들을 제외한) 전원이 밤새 제설작업에 투입된다.[56] 이 내리고 있을 때 눈을 쓸다 보면 그새 눈이 또 쌓여 담당지 끝까지 쓸어낸 뒤 혹은 도중에 뒤돌아 쓸어내는 경우도 다반사다. 심지어 식목일에도 적설량 30cm를 기록하기도 했고, 심지어 2014년에는 5월 5일에도 눈이 왔다. 산골에 있는 민가들은 대부분 노인들이 살아 엄청난 폭설에 자주 고립되기 때문에 대민지원을 자주 나간다.

2021년 3월 GOP 소초 주둔지 기준으로 약 2일간 2m의 눈이 내려 일부 구간의 정전사태가 3일 정도 이어졌으며, 제설을 위해 FEBA에 있는 예비대대들이 모두 투입되어 사흘동안 제설작전을 벌였다. 동부전선은 지형이 급하고 험한 구간이 많아 로더나 닷지에 제설장비를 달아 운용해도 미끄러지기에 해당 구간들은 웬만하면 인력으로 해결한다. 물론 험한 지형이 전술도로의 80%를 담당한다. 눈만 많이 오는 것이 아니다. 비구름이 이동하면서 백두대간과 부딪히며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린다. 철책선이 유실될 정도로 비가 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대구만 덥다고 상상하지 말 것. 산으로 빼곡히 막혀 있어 고지를 제외한 FEBA는 매우 덥다. 아무튼 폭설, 폭우, 폭염을 끼고 사는 곳이 바로 을지부대다.

6.1.2. 지형

산악사단이란 명성에 걸맞게 작전지역 중 해발고도 1,000m 고지가 넘는 곳이 49개다. 21사단과 함께 제3군단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 중 21사단에서도 유명한 펀치볼 분지의 동쪽은 12사단이 맡고 있다. 그렇다고 근무환경이 21사단보다 나은 건 딱히 없다. 21사단은 GOP경계 섹터가 전군에서 가장 길어서 힘들다면 12사단의 동측 섹터는 지형의 고저차가 극심하고 해발고도는 백두대간의 정점을 찍고 22사단 55연대 섹터로 넘어가기 때문에 최악이다. 12사단과 22사단의 전투지경선에서 GOP경계병력이 종종 마주칠 경우가 있는데, 22사단이 12사단 장병을 측은하게 여길 정도다. 어쨌든 펀치볼 동쪽이 작전지역이다보니 100km 행군도 펀치볼을 찍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을지전망대가 있어서 제4땅굴과 함께 나름대로 유명한 안보 관광지이기도 하다. 사실 양구 펀치볼의 수려한 경관을 보면 이곳이 전선이 아니었다면 관광지로 유명했을 만한 곳이기도 하다. 단, 제4땅굴은 21사단 작전 구역이다. 또한 강원도 부대들이 그러하듯 12사단도 담당 지역들이 험하다. 주된 작전 지역인 서화리, 용대리, 원통과 같은 인제 북쪽 민통선 아래 지역들은 그나마 도로도 좀 뚫리고 민가도 좀 있지만, 여러 하천과 복잡한 산계가 뒤섞여 지형이 정말 변화무쌍하다. 하천과 각종 기암괴석들이 늘어선 것을 보면 삼국지 시리즈 등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오,월 지역과 비슷한 분위기도 있다. 물론 장가계 수준의 기암괴석은 아니다. 게다가 민통선 안쪽은 도로나 지형도 이보다 더 험준해서 특수 훈련을 받은 공비 외엔 넘어올 수 없으리라 여겨질 정도다. 사실 진짜로 못넘어 올 확률이 높은 게 실제 한국 전쟁 개전 당시 급습으로 이리저리 밀려나던 서부 전선과 달리 동부전선은 그 험준함 때문에 그럭저럭 막아내고 있었고, 서부에 이어 중부까지 밀려나자 별 수 없이 퇴각한 것이다. 종심 거리로 따지면 철책에서 민통선까지 불과 10km 남짓한 거리에 불과하지만 거기까지 올라가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길며[57], 차 멀미가 생길 정도로 지형이 험하다.[58]

6.1.3. 교통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춘천에서 소양강을 따라 배를 타고 신남선착장에서 내려서 인제로 들어가는 것이 빠를 정도로 도로 사정이 안 좋았다. 이 시절 원통에서 동서울 또는 상봉까지 5시간 소요됐다. 2006년~2010년 사이 46번 국도 중 인제군 지역이 왕복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59]되면서 비로서 뱃길보다 육로 사정이 좋게 변한 것이다. 그러나 동서울에서 원통행 완행버스를 타게 되면 양평, 양덕원, 홍천, 신남, 인제, 원통은 물론 각 거점 사이의 작은 정류장까지 모두 정차하여 5시간이 걸렸다. 2009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60]되면서 '인제 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오지의 타이틀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현재는 동서울-원통 무정차는 1시간 30분 소요된다.

이 부대가 주둔한 인제군에는 인제시외버스터미널(인제읍), 원통터미널[61], 서화터미널, 백담사입구시외버스터미널[62]이 있지만 지역의 특성상 교통편이 몹시 열악하다. 그래서 휴가 장병들이 출타나 복귀가 좀 불편한데 직행이 가능한 소수의 지역을 제외하면 동서울터미널, 홍천터미널, 원주시외버스터미널 등으로 이동하여 환승해야 한다. 특히 호남권, 서부경남권, 충남권은 답이 없다.[63] 아니면 동서울터미널을 거쳐 서울역(혹은 용산역)에서 TMO를 끊은 후 KTX를 타고 가는 경우도 간혹 있다.[64] 공기수송으로 악명높은 양양국제공항으로 이동하여 양양 - 김해 여객기를 이용하는 부울경 쪽 거주 장병도 간혹 있었다. 똑같은 강원도라도 강릉 쪽 노선은 없으며, 강릉 가려면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서 환승해야 한다.

2000년대 기준 대구까지 빨리 가도 환승 대기 시간까지 포함하여 4시간 45분~5시간, 부산까지 5~6시간 정도 걸렸다.. 자신의 부대 기준으로 3급지보다 높아야 휴가에 추가 1일이 더 붙는데, 대구~안동까지는 해당사항 없음. 대구에 산다면 잘 구슬려 보거나 포기하면 편하다. 중앙고속도로 덕분에 대구 가는 거리가 2시간이 줄었다. 중앙고속도로가 없던 2001년 이전에는 저기에 2시간을 더 추가했어야 했다. 그런데 중앙고속도로가 차량통행량이 적다 보니 말이 4~6시간이지, 부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홍천까지 3시간대 초반에 주파를 해댄다. 안동, 대구는 실상 부산 거주 장병이 부산 내에서 대중교통으로 집까지 소요되는 시간 정도에 해당 도시 터미널에 도착이 가능하다. 즉, 경상도 지역 장병들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안 걸렸다. 오히려 동서울로 가서 KTX를 타는 게 훨씬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정도. 진짜로 독박을 쓰는 건 애매하게 논산, 대전 정도에 사는 장병들이다.

물론 윗 문단은 과거 고속버스들이 140-50km씩 과속을 일삼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현재는 고속버스들도 정속주행을 하기 때문에 실제 거리만큼의 시간이 나온다. 여전히 해당 구간의 통행량은 적기 때문에 대구-부산 축선의 장병들은 비교적 쾌적하게 휴가를 오갈수 있지만, 과거와 같이 부산-홍천 3시간 이내 컷(...)같은 정신나간 질주는 불가능하다.

2027년에 춘천속초선이 완공되고 개통하면 인제역백담역을 통해서 서울과 경기동부에 더 빠르게 진입할 수 있을 예정이다.

6.2. 사단가


작사 박두진, 작곡 김동진
1. 태백산 큰 줄기 우리의 의지다 보아라 우리의 모습을
우리는 억세고 늠름한 용사들 빛나는 조국의 정예다
아 줄기차게 영용하게 싸워 나가는 이겨나가는
아 휘날리는 깃발을 보라 동해처럼 영원타

2. 푸른물 동해는 우리의 마음이다 보아라 우리의 가슴을
내나라 내겨레 뜨거이 안아서 생명을 내걸고 지킨다
아 줄기차게 파도처럼 솟쳐오르는 솟쳐오르는
아 우리들의 사랑을 보라 동해처럼 영원타

3. 우리는 빛나는 자유의 방패다 누구가 우리를 막으랴
우리는 평화의 정의의 용사다 누구가 우리를 막으랴
아 찬란하게 이루어 나갈 새로운 세계 희망의 세계
아 영원까지 누려가도록 우리들이 세운다

후렴: 12사단 나간다 12사단 용사들
이나라 이겨레 영원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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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7.1. 이신애 대위 과로사 사건

2013년 2월, 임신 7개월의 정비대대 운영장교 여군 중위가 과로사망한 사건.

이신애(여군사관 55기/강원대학교 한문교육과 03학번) 대위는 교사 생활을 하던 중 할아버지(참전용사/예비역 육군 대위), 아버지(예비역 육군 중령), 큰아버지, 사촌오빠의 뒤를 따라 장교의 길을 선택했다. 2013년 2월, 임신 7개월 상태에서 부서장(운영과장/대위 보직) 공석으로 인한 대리 업무, 훈련 준비 등으로 하루 12시간 근무가 일상적으로 진행되었고 같은 해 1월에만 5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하는 등 격무에 시달리다가 결국 혹한기 훈련을 하루 앞둔 새벽 뇌출혈로 사망했다.

국방부와 육군본부는 임신성 고혈압의 발생이나 악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순직이 아닌 단순 사망으로 처리하였다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군 출신 한기호 국회의원은 "그분에게도 상당한 귀책사유가 있다"고 말했다가 사과한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국회는 순직을 인정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사건 7개월이 지난 2013년 9월 순직을 인정받고 중위에서 대위로 1계급 추서됐다. 같은 해 12월 17일 정비대대에서 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이 일을 계기로 국방부는 재발방지를 위해 전방 군 부대 소재 48개 지역에 산부인과를 설치하는 등 임신한 여군을 위한 지원이 대폭 강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임신한 여군은 30분 이내에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로 이동할 수 있는 지역으로 근무지가 조정되며, 담당 지휘관의 직접 관리를 받게 되었다. 육아휴직을 내더라도 일부기간(첫째, 둘째 자녀는 최장 1년) 또는 전 휴직기간(셋째 자녀는 최장 3년)이 근무기간으로 인정돼 진급에 필요한 최저복무기간을 충족할 수 있게 됐다.

7.2. 자원입대 LA한인 청년 뇌수막염 방치 (2015년)

허핑턴포스트 기사(2015년 9월 25일, 임병도)

LA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오면서 성장했던 김믿음 군은 의료선교사를 꿈꾸면서 병역기피를 하고 싶지 않다고,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체검사 1등급 판정을 받고 3월 9일, 한국군에 자원입대했다.

그 후 홍천에서 운전병 교육을 받는 도중 갑자기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서 의무실을 찾았다. 그러나 '너 꾀병부리다가 훈련일수가 부족해지면 다시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해열제만 받고 돌아왔다. 해열제를 복용하고도 계속해서 열이 나고 토하기를 반복했던 김믿음 군은 결국 홍천 의무실에 입실했다.

김 군의 상태는 더 악화됐고 5월 6일 뇌수막염으로 생명이 위급해지자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됐다. 훈련 이틀 뒤부터 열이 났던 김 군은 2주간 방치됐다가 3주가 지나서야 가족과 연락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김믿음 군의 뇌는 이미 손상됐고, 한 달 반만에 서울대학병원에 입원시켰을 때는 이미 의사로부터 '생명을 보장못한다. 살아난다 해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추후 뇌수막염이 아니라 세포가 변이되는 특수한 뇌염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뇌에 염증이 생겨 몇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 일로 인해 김군은 균형 장애가 생겨 눈동자가 멋대로 움직이고 팔다리가 떨려 글을 읽고 쓰거나 걷기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김믿음 군의 중대장은 '훈련일수 때문에 아이들이 참는 경우가 많다 김군도 스스로 참느라고 우리들의 발견이 늦었다'라며 모든 책임을 김 군에게 돌렸다. 김믿음 군은 7월 22일 홍천 부대에 복귀됐다가 임무수행 불가능으로 12사단으로 옮겨져 의가사 제대 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때 군 당국은 피검사를 한 결과 김 군에게 마약 성분이 검출됐고 정신 이상 등의 이유로 '현역부적합자'라는 판단을 통한 '불명예제대'를 내리려고 했다. 김 군은 술 담배도 전혀 하지 않는 청년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2사단에서 의가사 제대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도중 부대 간부가 김 군이 앉아서 쉬는 모습을 보고 남들은 다 뛰고 있는데 너는 뭐하는거냐 최소한 걷기라도 하라며 강제로 걷기를 시켰는데 김 군은 몇 걸음 채 걷지도 못하고 기절하여 쓰러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김 군의 어머니는 인터넷에 이 일을 호소했으나 추 후 군의관으로부터 5걸음밖에 못 걷던 김 군이 10걸음까지 걸을 정도로 호전됐으니 4급 판정에서 3급으로 내리겠다는 통보를 받았고 어머니는 군 당국에서 해당 호소 글을 보고 화가나서 협박성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리고 인권 변호사들도 나섰지만 김믿음 군은 결국 보충역 판정을 받았으며 사회복무요원으로라도 끝까지 군 복무를 마쳐야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을 받았다. 12사단 측은 김 군의 가족과 합의하였으니 치료 내역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으며 김 군의 어머니는 이에 대해 단 한 번의 통화조차 한 적 없다며 반발했다.

7.3. 한 모(가명) 이병 자살사건 (2019년)

2019년 6월,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 입대 후 자대배치 열흘만에 한○○ 이병(가명)이 자살한 사건이다.

이 항목은 2021년 10월 30일에 방영된 뉴스토리묻지마 징병에서 나온 사례 중 한 사례를 기초로 작성했다.

한○○은 입대에 대한 과도한 불안이 커 원래 가지고 있던 척추측만증을 부풀려 4급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으나 자수했다. 이 건으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불안감을 느껴 그 후유증으로 넉달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검찰에서 기소유예 판결을 받았고 재검에서 2급 현역판정을 받았는데, 한○○이 걱정된 아버지는 병무청에 입대연기를 문의했지만 한○○이 병역면탈 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로 병무청이 거부했다. 2019년 6월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 입대 후 취침시간이 지난 한밤중에 생활관에서 혼자 울었다고 한다. 한○○의 동기에 의하면 퇴소식 하기 전날에 관물대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고 한다. 신병교육대에서 이상징후가 있는 장병들에게 현역 부적합 심사나 귀가를 시킬수 있었지만 이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군생활 할수 있다는 부분에 체크했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가 없었고, 신병교육대 진단검사에서 중증 우울증 진단과 전문가 상담필요 결과가 나왔지만 최종 군생활 적응검사에서는 양호하다고 판단했다.

자대배치 후 신병교육대 면담내용을 확인을 안하고, 행정보급관은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며, 신병교육대에서 우울증이 있다고 나오면 도움배려병사로 관리해야 하지만 일반병사로 관리되었다. 결국 자대배치 열흘만에 한○○ 이병은 자살을 했다.

7.4. 강원 전방부대 이병 총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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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8일 오후 8시 47분경, 대한민국 육군 12사단 52여단 일반전초(GOP)부대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김 모 이병이 몸에 총상을 입어 사망한 사건이다. 3개월 후 밝혀진 수사결과로는 부대 병사들이 한국문화에 익숙지 않은 김 이병에게 폭언을 하고 암기를 강요하는 등 정신적 괴롭힘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7.5. 제12보병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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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부대 영상


9. 여담



[1] 102기갑여단 부대창설지 안보테마공원에는 (창설일자 순으로) 8사단, 12사단, 15사단, 21사단, 20사단, 22사단, 25사단, 27사단, 7군단, 23사단, 8군단, 102여단 창설기념비가 있고 매년 8군단 주관으로 창설 행사를 한다. 파일:창설일자.jpg[2] 굳이 시간까지 따지면 오전에 창설식을 한 12사단이 먼저 창설되었다.[3] 2019년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부대개편이 되면서 37연대는 2사단 17연대에 작전지역과 장병을 인계하는 형식으로 해체수순을 밟게 되면서 더 이상 완벽하게 연대 번호가 이어지지 않는다.[4] 미 제45사단 전에는 국군 8사단이 주둔했다.[5] DMZ 내 위치. 1967년 1052고지에 854고지 전투전적비를 건립했다. 812/854고지, 2개를 일컬어 쌍용고지라고 언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틀리며 812고지 동쪽 능선에 쌍용고지가 별도로 존재한다. 쌍용고지의 유래는 52연대 목록 중 '참고사항 - 여방오 일등중사'에 서술하였다.[6] 2021년 기준[7] 향로봉 해발 1,296m[8] 대개 높은 산지나 오지에 있어 생활환경은 이루 말할수 없지만 부대에 남아봤자 작업과 훈련, 근무에 동원되다보니 어차피 고생할거 휴가라도 받는게 이득이다. 부대 내 분위기가 씹창나도 도망갈 수 있고. 수송이나 조리병을 제외하고 거의 유일한 휴가보급원이다 보니 욕심낼 만 하다.[9] 2020년 1월에는 인제 일대에 1m가 넘는 폭설이 쏟아져 공병대대를 비롯한 인근 부대들이 모두 마비되는 사태에 이르렀고 하필 주말이라 우선 급한대로 영내 순찰로와 위병소, 식당 가는길 등 꼭 필요한 경로부터 급히 제설했던 적이 있다. 월요일 지휘관 아침회의때 그야말로 온갖 부대에서 SOS를 쳤으며 당장 산 중턱에 주둔한 부대는 식량 수송부터가 문제시되어 환자나 식량 수송시 헬기를 투입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그 주는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사단이 통째로 제서작전에 들어갔다. 공병대대는 중장비가 있어 그나마 영내 제설을 일찍 마칠 수 있었고 수송과 로더, 굴삭기 특기병들은 있는 대로 타 부대에 파견되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10] 주로 말년들[11] 용은 하늘과 바다와 땅을 지배하는 變化無日(변화무일)하고 上下無時(상하무시)하며 미래를 예시해주는 신비로운 동물로 숭상되어 왔고 백룡은 그 모든 용들의 왕이다. 즉, 사단 내에서 가장 뛰어난 부대라는 자부심이다.[12] 최근에는 잘 하지 않는다.[13] 수색대대 전우회 부대방문을 고려하여 매년 이 시기 주말을 이용하여 부대창설기념행사를 시행한다.[14] 참고로 육군본부에서 이 부대를 대상으로 현재 보급중인 방한내피 및 발열내피를 테스트했다.[15] 보통 2달내지 4달정도 진지생활후 주둔지에서 2달정도 생활하고 다시 진지에 파견간다[16] aoc라고 부르며 사단 지휘통제실에서 근무하며 근무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않는다. 휴가는 매달 3일씩 들어오기 때문에 휴가를 잘모으면 80~90일 정도의 휴가를 모을 수 있다.[17] 2020년 12월부로 연대에서 연대급 여단으로 바뀌었고 군수지원대대가 창설됨[18] 본부중대, 정보중대, 의무중대, 통신중대[19] 사단에서 공식적으로 '화령장전승대대'라고 칭한다.[20] 과거 포병대대의 105mm 곡사포를 차량탑재형으로 운용하여 기존 보병연대 전투지원중대의 화력을 뛰어넘는다. 포병대로 군 구조개편이 되면서 보병연대 직할이던 전투지원중대는 편제에서 사라진다.[21] 정비중대와 보급수송중대로 편제되었다. 대대장은 병기, 병참, 수송 병과 출신의 군수 병과(영관장교부터는 병기, 병참, 수송 병과를 군수 병과로 통합함) 중령이다. 정비중대장은 병기 병과, 보급수송중대장은 병참 또는 수송병과 출신이다. 정비중대는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의 각 중대가 각 보병여단의 창설 주축이 되었다. 이는 보급수송중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와 보급수송대대가 해체되거나 축소되지는 않았고 본연의 임무는 계속해서 수행한다. 기존의 수송대 차량은 군수지원대대와 예하 보병대대에서 운용한다. 참고로 여단 군수과장(보병 병과)은 여단장의 군수참모로서 작전에 필요한 군수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고 군수지원대대장은 말 그대로 군수지원 역할을 하는 대대의 장이다.[22] 본부중대, 수송대, 수색중대, 의무중대, 전투지원중대, 통신중대[23] 여기서 예비대란 기동성을 확보, 주요 전황에서 투입하여 유용하게 사용한다는 교리에서의 예비대다. 그렇기에 경험이 많은 정예병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정예부대란 인식이 강했다.[24] 2사단 전체가 아닌 오직 17연대만 참여했다.[25] 과거 포병대대의 105mm 곡사포를 차량탑재형으로 운용하여 기존 보병연대 전투지원중대의 화력을 뛰어넘는다. 포병대로 군 구조개편이 되면서 보병연대 직할이던 전투지원중대는 편제에서 사라진다.[26] 정비중대와 보급수송중대로 편제되었다. 대대장은 병기, 병참, 수송 병과 출신의 군수 병과(영관장교부터는 병기, 병참, 수송 병과를 군수 병과로 통합함) 중령이다. 정비중대장은 병기 병과, 보급수송중대장은 병참 또는 수송병과 출신이다. 정비중대는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의 각 중대가 각 보병여단의 창설 주축이 되었다. 이는 보급수송중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와 보급수송대대가 해체되거나 축소되지는 않았고 본연의 임무는 계속해서 수행한다. 기존의 수송대 차량은 군수지원대대와 예하 보병대대에서 운용한다. 참고로 여단 군수과장(보병 병과)은 여단장의 군수참모로서 작전에 필요한 군수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고 군수지원대대장은 말 그대로 군수지원 역할을 하는 대대의 장이다.[27] 향로봉 입구 민통선 검문소 담당[28] 민통선 내 위치, 민통선 검문소 담당[29] 최초 흑표를 매직으로 그렸고 이어 미대생 출신의 병사가 다듬고 보완하여 흑표가 상징으로 굳어져 내려온다.[30] 이 다음으로 21사단 가칠봉 소초가 1241m 고도에 있다. 다만 공군 화악산(1468.3m) 관제부대가 존재하기에 전군 최고(最高)는 아니다.[31] 실제로 헬기를 사용해 병사들을 이송하는건 손에 꼽는다. 1997년 1월에 이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이후에는 그정도의 적설은 나타나지 않았는지 추가 증언이 없는 상태로 18년도 군번까지는 군단장 방문같은 특수한 경우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한 그 어떠한 헬기 이동을 본적이 없다고 한다.[32] 향로봉 자체가 백두대간에 위치하여 구름이 부딪히면서 여름에는 폭우, 겨울에는 폭설이 내린다.[33] 추가로 진부령 고개에 위치한 향로봉 입구(민통선 검문소)를 지나면 산림청 통제소가 있다. 그 이유는 향로봉, 건봉산 일대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유럽 알프스 고산 지역에서 자생하는 에델바이스(우리나라名:솜다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산림청에서 백두대간 보호에 힘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인이 향로봉에 오르기 위해서 예전에는 군부대 허가만 받으면 됐으나 현재는 산림청(양양국유림관리소)의 허가를 함께 받아야만 한다.[34] 만약 모노레일이 고장나면? 통문부터 도수운반이다. 물론 근처에 헬기장이 있지만 여느 말단 부대들이 그러하듯 동절기 유류 보급처럼 대량 또는 긴급 공수가 아닌 한 쓰이지 않는다. 심지어 저 아미누리 기자가 취재 온 2014년 말에도 침상을 쓸 정도로 시설 역시 뒤쳐져 있었다.[35]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15사단의 천국의 계단, 7사단의 네발계단 등이 있다. 그 외엔 V나 W(또는 맥도날드) 밸리(또는 계곡) 등으로 개성없이 호칭.[36] KBS 다큐멘터리 3일(37회, 2008.2.7, 혹한의 GOP 전선 - 그 3일간의 기록)에서도 신병 교육차 올라온 대대장과 신병들에게 물을 주는 훈훈함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연말, 연초에 사단장을 비롯한 사단참모, 연대장과 연대참모들은 단체로 4천계단을 올라 소초에서 일출을 보면서 부대의 안녕과 완전경계작전을 염원한다.[37] 4천계단의 경우 통상 오르내리는데에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향로봉 선점중대는 똑같은 경도로 평소 9시간에서 10시간 정도로 소요해 정찰임무를 수행한다. 병사들은 이같은 과정을 완전군장 차림과 전투식량 지참하에 간부 인솔하에 한두번 정도 반복한다.(더욱 웃긴것을 이렇게 뺑이를 쳐도 보상은 전투휴무 1일)[38] 과거 포병대대의 105mm 곡사포를 차량탑재형으로 운용하여 기존 보병연대 전투지원중대의 화력을 뛰어넘는다. 포병대로 군 구조개편이 되면서 보병연대 직할이던 전투지원중대는 편제에서 사라진다.[39] 정비중대와 보급수송중대로 편제되었다. 대대장은 병기, 병참, 수송 병과 출신의 군수 병과(영관장교부터는 병기, 병참, 수송 병과를 군수 병과로 통합함) 중령이다. 정비중대장은 병기 병과, 보급수송중대장은 병참 또는 수송병과 출신이다. 정비중대는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의 각 중대가 각 보병여단의 창설 주축이 되었다. 이는 보급수송중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사단 직할대대인 정비대대와 보급수송대대가 해체되거나 축소되지는 않았고 본연의 임무는 계속해서 수행한다. 기존의 수송대 차량은 군수지원대대와 예하 보병대대에서 운용한다. 참고로 여단 군수과장(보병 병과)은 여단장의 군수참모로서 작전에 필요한 군수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고 군수지원대대장은 말 그대로 군수지원 역할을 하는 대대의 장이다.[40] 부대 터만 닦여 있는 상태에서 부대 이동 계획에 의거 11사단 9연대가 1975년 8월, 12사단으로 예속 및 이동하여 창설됐다. 9연대 3대대 이곳에 배치되어 37연대 3대대로 편제된다. 연병장에서 야전텐트 생활을 하며 그야말로 無에서 有를 창조한 대대로서 주둔지 각종 생활관 및 건물, 심지어 주둔지 내 실거리 사격장까지 만들었다. 그 사격장을 여전히 사용한다.[41] 민통선 검문소 담당, 이곳 검문소를 지나면 고구려시대 토성인 서화성벽이 있다.[42] 현재 제703특공연대 및 군사경찰대대 도심지역작전 및 대테러훈련장으로 사용[43] 명백히 70년대, 80년대, 90년대 각각 사단 예비연대 담당했음[44] 이른 아침 펀치볼 일대에 안개가 자욱히 낀 풍경은 예술이다[45] 간혹 812고지와 같은 능선상에 쌍용고지가 있다고 둘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명백히 다른 고지다.[46] 부대 개편 전까지 향로봉의 입구, 즉 민통선 검문소 담당[47] 前 만주국 군관학교 출신 소위, 간도특설대 출신[48] 중령 시절 51연대 예하 GOP대대장을, 대령 시절 52연대장과 사단 참모장을 역임했다.[49] 대가로 막걸리 2을 받았다고 한다.[50] 이 당시 12사단 37연대에서 병역을 수행하던 장병 및 전역 간부들은 김무열이특의 평가가 서로 어떻게 엇갈렸는지 잘 알 것이다.[51] 제2보병사단에서 복무하다 부대 개편으로 인한 해체로 제3군단으로 재배치된 후 전역했다.[52]전방에서 말하는 후방은 접경지역을 제외한 모든 곳이다. FEBA를 포함한 이 이남의 모든 지역을 싸잡아 후방이라 여긴다는 얘기.[53] 2010년 봄은 원통에서 5월에 눈이 내렸고 벚꽃은 5월 중순이 지나서 폈다. 게다가 6월 초 원통의 최저기온이 0도였다.[54] 실제 12사단 관할에 예전 주인인 5사단을 위한 충혼비가 있는데, 그 내용은 폭설로 인해 막사째 깔려 죽은 장병들을 기린다는 것. 물론 당시는 나무나 깡통 막사(퀸셋 헛) 시절이었고, 콘크리트나 강철이 지탱하는 지금 막사의 적설 하중량은 상상을 초월하기에 수미터씩 쌓이지 않는 한 건물이 무너질 일은 없다 봐도 된다.[55] 물론 이렇게 되면 또 나가서 삽과 곡괭이로 죄다 까내려야 하기에 주의를 줄 수 있다.[56] 실제로 1997년 1월 초 폭설로 인해 밤새 제설작업을 해야 했다. 당시 3일간 내린 눈의 양은 2m. 그것도 첫날에 집중적으로 내렸다.[57] 인간의 흔적이 없어지는 지점에서 1시간 30분 정도 차량으로 들어가야한다.[58] 병력하차지점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2½톤 차량 진입 자체가 불가한 곳도 있다.[59] 2010년 한계교차로까지만 4차로였고, 한계교차로에서 미시령터널까지는 용대터널은 물론 계속해서 4차선으로 확장공사 했다.[60] 당시에는 동홍천IC까지만 개통되었다.[61] 2017년 8월 29일 기준 시간표이다. 다소 변경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본 이미지를 너무 신뢰해서는 안 된다.파일:원통 터미널 시간표(170829.jpg[62] 그나마 한계령, 양양, 속초, 고성, 거진 등 방향의 버스가 이곳에 정차한다.[63] 특히 호남권홍천에서도 가는 차가 전주행과 순천행 둘밖에 없으며, 광주행 노선은 원주춘천에 있다. 이들마저도 운행 횟수가 굉장히 적어서 사실상 100% 동서울터미널 환승 확정. 게다가 동서울터미널에서도 호남 지역의 운행 횟수가 적어서 대부분의 지역들은 건대입구역 환승으로 센트럴시티까지 이동해야 한다. 영남권은 거의 홍천터미널에서 환승하는데 홍천에서 대전, 대구(북부정류장), 부산 동부(노포동), 울산, 경주, 포항행 노선이 있다. 그중 대구 가는 차만 홍천 착발이고 나머지는 춘천 착발이다. 노포동터미널로 가는 차의 경우 원주 착발 노선도 따로 있으며, 이에 따라 춘천 - 노포동 노선은 홍천과 횡성만 찍고 간다. 창원지역이나 안동·영주 쪽은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환승해야 한다.(홍천에서 가는 차가 아예 없다.)[64] 다른 방법으로는 2016년 12월에 개통한 SRT를 타기 위해서 수서역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원통에서 8시 40분? 버스로 성남으로 간 다음, 길을 건너 야탑역에서 왕십리 방면 분당선을 타면 15분 내로 수서역에 도착한다. SRT도 후급증이 나오기 때문에 서울(용산)역으로 가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시간 절약된다.[65] 속칭 메이커 부대는 한국전쟁 이전에 창설된 1사단, 2사단, 3사단, 5사단, 6사단, 7사단, 8사단과 전쟁 초반 재편, 창설된 수도사단과 9사단을 말하는 것이다.[66] 육사 40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직을 끝으로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후임 군단장이었던 김승겸 중장(육사 42기) 역시 알자회 퇴출 때 선배들과 한목소리를 낸 적이 있는데, 이로인해 소장 시절 한직인 국군의 날 행사단장으로 좌천되어 전역직전까지 갈 뻔 했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2017년 9월 중장 진급에 성공하였다.[67] 여담으로 김병주 3군단장이 취임할 때와 비슷한 시기에 사단장에 취임하였다.[68] 육사 40기, 지상작전사령관직을 끝으로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69] 2포병여단장 취임식때는 같은 포병출신인 고현수 중장이 군단장이었다.[70] 사단장 취임 이전에 대대장, 연대장, 사단 참모장을 12사단에서 지냈다.[71] 우연의 일치로 12사단 출신인 코미디언 김경진동명이인이다.[72] 당시 사단장은 초임간부와 소통을 위해 민간 E-mail을 즐겨 사용했다.[73] 1인칭 시점의 시뮬레이션게임으로, PC에 실제 작전지역의 지형을 입력해 제병협동훈련이 가능하도록 구성돼 있다.[74] 한 예로 평일에는 1,200원하던 PC방 요금이 주말에만 1,500원으로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