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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11:50:34

어린 나이에 즉위한 군주들

1. 개요2. 실존 인물3. 가상 인물4. 관련 문서

1. 개요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0~18세)에 황제 등 군주가 되는 경우는 대체로 선대왕의 폭정 또는 단명, 주변 세력들의 간섭, 왕위 계승에 있어서 직계자손 고집으로 인한 폐해,[1][2][3] 혹은 앞의 세 가지 이유가 모두 어우러진 경우 등 이유가 다양하다.

문제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대개 이러면 왕의 후견인이 섭정이 되어 대신 정치를 맡는데 이러면서 생기는 정치적 폐단과 민심 문란 등으로 하루가 편한 날이 없고 이 상황이 심화되기 시작하면 황실 가족들끼리도 유혈사태가 일어난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왕위에 등극한 사람치고 일생이 편안하거나 그 마지막이 정상적인 사람이 드물다.

물론 예외는 있다. 고구려신라의 부흥기를 이끈 정복군주 태조왕진흥왕은 고작 7세에 즉위했다.[4]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으로 유명한 후기신라의 명군 성덕왕은 11살 즉위, 조선 성종은 후세에 성공한 왕으로 평가받으며, 성종도 명군이었다. 그리고 여러모로 유명한 프랑스루이 14세도 어릴 때 즉위했다. 그리고 중국 역대 황제 중 끝판왕인 강희제도 8세에 즉위했다.

덧붙여, 시간이 지난 뒤에 어리다고 얕잡아보는 자들을 보복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 숙종[5], 진시황, 이반 뇌제, 루이 14세, 메흐메트 2세, 표트르 대제 등이 이 예시에 해당된다. 물론 반드시 그런 건 아니고 섭정 기간을 책임진 나이 든 노신들을 왕이 성인이 된 후에도 원만하게 동행하는 경우도 많이 존재한다. 이사부와 진흥왕의 관계가 그러하다.

다음 목차에서는 0~19세의 나이로 왕이나 황제가 된 사람들을 다룬다. 국가, 군주, 등극할 당시의 나이, 즉위년일, 퇴위년일, 재위기간, 섭정의 순서이며, 군주와 섭정이 혈연관계인 경우 괄호 안에 명기했고 섭정 없이 친정했을 경우에는 '친정'이라 표기했다.

2. 실존 인물

2.1. 한국사

고려, 조선 시대의 연대는 양력으로 환산되었다.
한국사
국가군주즉위연령즉위년일퇴위년일재위기간섭정/친정
고구려대무신왕14세18.44. 26년친정
태조대왕6세53.146. 93년부여태후(생모)
신라 박혁거세12세BC57.AD4. 61년친정, 혹은 촌장대신들[6]
진흥왕6세 540. 576. 36년법흥왕보도부인(백모)
효소왕5세692.702. 10년신문왕신목왕후(생모)
성덕왕11세702.737. 35년친정?[7], 혹은 대신들?
혜공왕7세765.780. 15년경덕왕비 만월부인(생모)
애장왕12세800.809. 9년김언승(숙부)
경문왕15세861.875. 14년친정
효공왕12세897.912. 15년대신들
백제삼근왕12세477.479. 2년좌평 해구
가야수로왕생후 15~40일42.199. 157년친정[8]
고려헌종10세1094.06.17.1095.11.06. 1년 142일선종사숙왕후(생모)
인종14세1122.05.15.1146.04.10. 24년이자겸(외조부)
충혜왕15세1130.
1339.
1332.
1334.
2년
5년
친정
충목왕8세1344.1348. 4년충혜왕덕녕공주(생모)
충정왕11세1348.1351. 3년충혜왕비 덕녕공주(적모)[9]
우왕9세1374.1388. 14년충숙왕공원왕후(조모)
창왕9세1388.1389. 1년우왕근비 이씨(생모)
조선 단종 12세 1451.06.01. 1455.06.25. 3년 24일김종서 등 고명대신 → 수양대군(숙부)[10]
성종 13세 1469.12.31. 1495.01.20. 25년 20일세조비 정희왕후(조모)
명종 12세 1545.08.07. 1567.08.02. 21년 252일중종문정왕후(생모)
숙종 14세 1674.09.17. 1720.07.12. 45년 310일친정
순조 11세 1800.08.23. 1834.12.13. 35년 144일영조정순왕후(계증조모)[11]
헌종 8세 1834.12.13. 1849.07.25. 14년 228일순조순원왕후(조모)
고종 12세 1864.01.16. 1907.07.19. 43년 194일문조신정왕후(양모) → 흥선대원군(생부)

2.2. 세계사

2.2.1. 중국

중국
국가군주즉위연령즉위년일퇴위년일재위기간섭정/친정
성왕13세?BC1042.?BC1021.?21년?주공 단(숙부)
춘추
전국
시대
평공5세?BC576.BC532.44년화원

(晉)
도공14세BC573.BC558.15년친정
평공13세?BC558.BC532.26년
양공3세BC572.BC542.30년계손행보
간공5세BC565.BC530.35년자사

(秦)
영공10세BC716.BC704.12년
출자5세BC708.BC698.6년
시황제13세BC247.07.06.BC210.08.10.37년여불위
전한소제8세BC87.03.30.BC74.06.05.12년 298일곽광, 김일제
평제9세BC1.10.17.AD6.02.03.4년 109일왕망
유자영1세6.04.17.9.01.10.2년 268일
후한화제10세88.04.09.106.02.13.17년 310일장덕황후(양모)[12] → 두헌[13]
상제[14]생후 100일106.02.23106.09.21.6개월 29일화희황후(양모)
안제12세106.09.21.125.04.30.18년 221일
순제11세125.12.10.144.09.20.18년 285일
충제2세144.09.20.145.02.15.4개월 26일양기
질제8세145.03.06.146.07.26.1년 142일
환제15세146.08.01.168.01.25.21년 177일
영제12세168.02.17.189.05.13.21년 91일효인황후 동씨(생모)
소제13세189.05.15.189.09.28.4개월 13일영사황후 하씨(생모), 하진(외숙부)
헌제9세189.09.28220.12.1031년 81일동탁, 조조
삼국
시대
전폐제9세239.01.22.254.10.17.15년 272일사마의
후폐제14세254.11.01.260.06.02.5년 215일사마사
원제15세260.06.27.266.02.04.5년 223일사마소
폐제8세252.05.23.258.11.09.6년 171일제갈각, 손준, 손침
남조동진성제5세325.10.19.342.07.26.16년 284일명목황후 유씨(생모) → 왕도, 유량
목제2세344.11.18.361.07.10.16년 238일강헌황후 저씨(생모)
효무제10세372.09.12.396.11.06.24년 61일
안제14세396.11.07.419.01.28.22년 87일
전폐제15세464.07.12.466.01.01.1년 173일
후폐제10세472.05.11.477.08.01.5년 83일
순제10세477.08.05.479.05.27.1년 295일소도성
해릉왕14세494.09.10.494.11.23.2개월 13일
동혼후15세498.09.01.501.12.31.3년 122일
화제13세501.04.14.502.04.30.1년 16일소연
경제12세555.11.01.557.11.16.2년 15일진패선, 왕승변
폐제12세566.05.31.568.12.27.2년 211일
북조북위문성제12세452.10.31.465.06.20.12년 232일
헌문제11세465.06.21.471.09.20.6년 92일문성문명황후 풍씨(적모)
효문제4세471.09.20.499.04.26.27년 218일문성문명황후 풍씨(적조모)
효명제4세515.02.12.528.03.31.13년 45일선무영황후 호씨(생모)
원고낭1세528.04.01.528.04.01.1일[15]선무영황후 호씨(조모)
유주3세528.04.02.528.05.17.1개월 15일선무영황후 호씨(조모)
동위효정제9세534.11.08.550.06.07.15년 215일고환
북제폐제14세559.12.04.560.09.08.9개월 4일
후주9세565.06.08.577.02.04.11년 243일
유주7세577.02.04.577.02.24.24일
북주정제7세579.04.01.581.03.04.1년 338일양견
공제12세617.12.18.618.06.12.5개월 25일이연
상제15세710.07.08.710.07.25.17일위황후[16]
경종15세824.02.29.827.01.09.2년 315일
희종11세873.08.16.888.04.20.14년 251일
애제12세904.09.26.907.05.12.2년 228일주전충
후주공제7세959.08.03.960.02.03.6개월조광윤
성종11세982.10.14.1031.06.25.48년 254일예지황후 소씨(생모)
흥종15세1031.06.25.1055.08.28.24년 64일흠애황후 소씨(생모)
인종13세1022.03.23.1063.04.30.41년 37일장헌명숙황후 유씨(적모)
철종10세1085.04.01.1100.02.23.14년 331일선인성렬황후 고씨(조모)
공제4세1274.08.12.1276.02.04.1년 176일사황후(조모), 전황후(생모)
단종9세1276.06.14.1278.05.08.1년 328일
소제8세1278.05.10.1279.03.19.10개월 9일
영종9세1435.02.07.
1457.02.11.
1449.09.01.
1464.02.23.
14년 206일
7년 12일
왕진
세조6세1643.10.08.1661.02.05.17년 120일예친왕(숙부)
성조8세1661.02.05.1722.12.20.61년 318일보정대신 4명
목종5세1861.11.11.1875.01.12.13년 62일효정현황후(적모)+효흠현황후(생모)
덕종4세1875.02.25.1908.11.14.33년 263일효흠현황후(백모)
공종3세1908.12.02.1912.02.12.3년 72일순친왕(생부[17])+효정경황후(백모[18])

2.2.2. 일본

일본
시대군주즉위연령즉위년일퇴위년일재위기간섭정/친정
아스카몬무 덴노14세697.08.22.707.07.18. 9년 332일
헤이안세이와 덴노9세858.10.07.876.12.18. 18년 107일섭정 후지와라노 요시후사(외조부)
요제이 덴노9세876.12.18.884.03.04. 7년 78일섭정 후지와라노 모토츠네(외숙부)
다이고 덴노13세897.08.04.930.10.16. 33년 81일
스자쿠 덴노8세930.10.16.946.05.23. 15년 223일섭정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외백부)
엔유 덴노11세969.09.27.984.09.24. 15년 1일섭정 후지와라노 사네요리(백조부)
섭정 후지와라노 코데타다(외백부)
관백 후지와라노 카네미치(외백부)
고이치조 덴노8세1016.03.10.1036.05.15. 20년 71일섭정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외조부)
섭정 후지와라노 요리미치(외숙부)
호리카와 덴노8세1087.01.03.1107.08.09. 20년 223일섭정·관백 후지와라노 모로자네(처외조부)
관백 후지와라노 모로미치(처외숙부)
관백 후지와라노 타다자네(종형)
도바 덴노5세1107.08.09.1123.02.25. 15년 204일섭정·관백 후지와라노 타다자네
관백 후지와라노 타다미치
스토쿠 덴노5세1123.02.25.1142.01.05. 18년 319일섭정·관백 후지와라노 타다미치(장인)
고노에 덴노3세1142.01.05.1155.08.22. 13년 232일섭정 후지와라노 타다미치
니조 덴노15세1158.09.05.1165.08.03. 6년 334일관백 고노에 모토자네(처남)
로쿠조 덴노[19]2세1165.08.03.1168.04.09. 2년 250일섭정 고노에 모토자네(처외백부)
섭정 마츠도노 모토후사(처외숙부)
다카쿠라 덴노8세1168.04.09.1180.03.18. 11년 346일관백 마츠도노 모토후사
관백 고노에 모토미치(처남)
안토쿠 덴노3세1180.03.18.1185.04.25. 5년 39일섭정 고노에 모토미치
가마쿠라고토바 덴노4세1183.09.08.1198.02.18. 14년 167일섭정·관백 고노에 모토미치
섭정 마츠도노 모로이에
섭정·관백 쿠조 카네자네(장인)
쓰치미카도 덴노3세1198.02.18.1210.12.12. 12년 310일섭정 고노에 모토미치
섭정 쿠조 요시츠네
섭정 고노에 이에자네
준토쿠 덴노14세1210.12.12.1221.05.13. 10년 155일관백 고노에 이에자네
주쿄 덴노4세1221.05.13.1221.07.29. 2개월 16일섭정 쿠조 미치이에(처숙부)
고호리카와 덴노10세1221.07.29.1232.11.17. 11년 114일섭정·관백 고노에 이에자네(장인)
관백 쿠조 미치이에(장인)
관백 쿠조 노리자네(처남)
시조 덴노2세1232.11.17.1242.02.10. 9년 87일섭정 쿠조 노리자네(외숙부)
섭정 쿠조 미치이에(외조부)
섭정·관백 고노에 카네츠네(외숙부)
고후카쿠사 덴노4세1246.02.16.1260.01.09. 13년 330일섭정 이치조 사네츠네
섭정 고노에 카네츠네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라
가메야마 덴노11세1260.01.09.1274.03.06. 14년 60일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라
관백 니조 요시자네
관백 이치조 사네츠네
관백 고노에 모토히라
관백 타카츠카사 모토타다
관백 쿠조 타다이에
고우다 덴노8세1274.03.06.1287.11.27. 13년 269일섭정 쿠조 타다이에
섭정 이치조 이에츠네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라
관백 니조 모로타다
고후시미 덴노11세1298.08.30.1301.03.02. 2년 185일섭정 타카츠카사 카네타다
섭정 니조 카네모토
하나조노 덴노12세1308.09.11.1318.03.29. 9년 201일섭정 쿠조 모로노리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후유히라
관백 고노에 이에히라
관백 니조 미치히라
남조고무라카미 덴노12세1339.09.18.1368.03.29. 28년 200일관백 니조 모로모토
관백 고노에 츠네이에
관백 니조 모리모토
북조고묘 덴노15세1336.09.20.1348.11.18. 12년 62일관백 고노에 츠데타다
관백 고노에 모토츠구
관백 이치조 츠네미치
관백 쿠조 미치노리
관백 타카츠카사 모로히라
관백 니조 요시모토
스코 덴노15세1348.11.18.1351.11.26. 3년 8일관백 니조 요시모토
고코곤 덴노15세1352.09.25.1371.04.09. 18년 200일관백 니조 요시모토
관백 쿠조 츠네노리
관백 고노에 미치츠구
관백 타카츠카사 후유미치
관백 니조 모로요시
고엔유 덴노13세1371.04.09.1382.05.24. 11년 48일관백 니조 모로요시
관백 쿠조 타다모토
관백 니조 모로츠구
고코마쓰 덴노6세1382.05.24.1392.11.19. 10년 182일섭정·관백 니조 요시모토
섭정 고노에 카네츠구
관백 니조 모로츠구
관백 이치조 츠네츠구
관백 고노에 타다츠구
관백 니조 미츠모토
무로마치쇼코 덴노12세1412.10.05.1428.08.30. 15년 333일관백 이치조 츠네츠구
관백 쿠조 미츠노리
관백 니조 모치모토
고하나조노 덴노10세1428.09.07.1464.08.21. 35년 357일섭정·관백 니조 모치모토
관백 고노에 후사츠구
관백 이치조 카네요시
관백 니조 모치미치
관백 타카츠카사 후사히라
관백 이치조 노리후사
에도메이쇼 덴노5세1629.12.22.1643.11.14. 13년 330일섭정 이치조 카네요시(숙부)
섭정 니조 야스미치
고코묘 덴노11세1643.11.14.1654.10.30. 10년 353일
레이겐 덴노10세1663.03.05.1687.05.02. 24년 64일섭정 니조 미츠히라(종형)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후사스케
관백 이치조 후유츠네
히가시야마 덴노13세1687.05.06.1709.07.27. 22년 88일섭정·관백 이치조 후유츠네
관백 고노에 모토테루
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로
관백 고노에 이에히로
나카미카도 덴노9세1709.07.27.1735.04.13. 25년 196일섭정 고노에 이에히로
섭정·관백 쿠조 스케사네
관백 니조 츠나히라
관백 고노에 이에히사(종형)
모모조노 덴노7세1747.06.09.1762.08.31. 15년 76일섭정·관백 이치조 미치요시
관백 고노에 우치사키
고모모조노 덴노13세1770.05.23.1779.12.16. 9년 209일관백 고노에 우치사키
관백 쿠조 나오사네
고카쿠 덴노9세1780.01.01.1817.05.07. 37년 135일섭정·관백 쿠조 나오사네
관백 타카츠카사 스케히라
관백 이치조 테루요시
관백 타카츠카사 마사히로(종형)
관백 이치조 타다요시
고사쿠라마치 상황(6촌누나)

2.2.3. 기타

3. 가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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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문서


[1] 이게 동아시아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밑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이나 중동은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태아의 계승권을 미리 인정하고 아들로 태어나면 바로 왕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 오히려 동아시아보다 더 보수적이어서, 동아시아에서는 서자라도 왕의 아들이기만 하면 적자보다 우선순위가 밀릴 뿐 계승권을 인정해 주는데 서양에서는 서자에게 계승권이 없다.[2] 정확히는 아예 ''과 '서자'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첩'이라는 지위는 '정실부인에 비해 지위 및 권리가 열등하게 주어지도록 되어 있는 또 다른 공인된 혼인 관계'인데, 서양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철저한 일부일처제를 고수하였으므로 '정식으로 결혼한 배우자에 비해 열등한 지위에 있도록 규정된 또 다른 혼인 관계'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었다. 배우자 한 사람 이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모두 공식적으로는 내연 관계, 불륜이었다. 따라서 그런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서출'이 아니라 '사생아'였으며, 정식 결혼에서 태어난 적자녀들과 달리 상속권도 계승권도 받지 못했다. 물론 생부 입장에선 자기 피가 이어진 자식이므로 대체로 뒷바라지를 해 주는 게 보통이었고 생부가 자신의 사생아라고 공식적으로 인지하거나, 호적상 생모의 법적 남편의 자식으로 처리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부 케바케였고 법적으로 사생아에게 허락되는 권리는 없었다.[3] 대신 적녀에게도 계승권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살리카 법을 따르는 곳에서는 아예 여계 계승 자체가 금지되고 오로지 적자에게만 계승권이 주어졌다. 이 때문에 동양에서는 대가 끊겨 왕조가 망하는 일은 없었지만(있긴 있었는데 인위적으로 대를 끊어버려서 그렇게 됐다), 서양에서는 합스부르크 가문처럼 편법을 쓰지 않는 이상은(여성이 왕위/작위를 계승한 경우 그 후계자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해서 왕조의 성씨를 유지하게 하는 등, 현재도 유럽의 몇몇 왕실에서 쓰는 방법이다) 왕조의 수명이 100~300년 정도를 넘는 경우가 잘 없다.[4] 어렸을 적 할머니나 어머니, 후견인들이 섭정에 충실하여 왕들이 성인이 된 후의 발판이 되어 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5] 즉위 직후부터 예송논쟁을 이어받아 환국을 진행시켜버렸다. 또 다음 다음 환국에서는 송시열을 숙청했다.[6] 6촌이 6부가 되었고, 촌장들의 이름도 다 있으니, 엄밀하게 촌장도 맞다. 그러나 13세(만 12세)가 되니 숙성하여 왕이 되었다고 하니 13세(만 12세) 이후는 친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7] 성덕왕의 생모 신목왕후는 성덕왕 즉위 2년 전인 서기 700년에 죽었다.[8] 가야 건국 설화에 의하면 왕이 알에서 깨어난 뒤부터 계속 자랐다고 하며 다음 달 보름(생후 15~40일 사이)에는 웬만한 성인과 같아졌다고 한다. 프라이마크 물론 신화의 내용이므로, 실제 즉위 나이는 알 수 없다.[9] 충정왕의 생모는 충혜왕의 2비인 희비 윤씨지만 1비인 덕녕공주가 섭정을 했다.[10] 수렴청정을 맡을 대비가 없었다.[11] 이미지와 달리 3년만에 수렴을 거두었다.[12] 화제의 생모 양귀인을 죽였다.[13] 장덕황후 두씨의 오빠.[14] 황제로서 동아시아 최연소 즉위. 황제로 제한하지 않고 모든 동아시아 군주들을 통틀어 보아도 수로왕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15] 즉위하자마자 폐위당했다는 얘기도 있다.[16] 생모인지 적모인지 불명.[17] 선통제광서제의 양자로 입적되어서 족보상으로는 순친왕이 숙부가 된다.[18] 족보상으로는 양모가 된다.[19] 일본 역사상 최연소 즉위, 최연소 양위, 최연소 상황.[20] 호르미즈드 2세는 임신 중인 아내 이프라의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샤푸르 2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왕위 계승자로 삼은 뒤 죽었다. 남편의 유언을 충실하게 지킨 이프라는 샤푸르 2세의 대관식 때 자신의 배 위에(물론 그 안에 샤푸르가 들어있기 때문) 왕관을 올렸으며, 출산 전까지 왕관을 다리 사이에 둬서 태아가 태어나자마자 즉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들이 아니면 어쨌으려고(...) 마기들이 아들이라고 호언장담하긴 했다. 일단 동서양 합쳐서 최연소 황제로 간주.[21] 엘라가발루스 즉위 전까지 로마 제국 임페라토르 중 최연소 군주였다.[22] 원래 장인은 아니었고, 이렇게 제위를 찾아준 후 딸을 시집보내고 권신의 행보를 보이다가 마침내 제위에 욕심을 보여서 수도 시민들에게 살해당했다.[23] 유복자였다. 즉,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비록 생후 5일 만에 숨졌지만.[24] 생후 4일째에 부왕 자크 2세가 죽어 왕위에 올랐다.[25] 프랑스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샤를 10세는 손자인 앙리에게 양위한 후 인기가 좋았던 친척 오를레앙 공작 루이필리프에게 섭정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7월 혁명 때문에 앙리 5세가 즉위했을 때 혁명의 주도 세력이 아예 루이필리프를 왕으로 옹립(사실 루이 필리프 자신이 혁명을 일으킨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26] 장 1세와 마찬가지로 유복자였다. 즉, 아들로 태어나면 누나들을 제치고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장 1세와는 다르게 오래살았지만 공화혁명으로 퇴위당했다.[27] 프로이센 공국의 창립자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형.[28] 위의 마리어의 여동생인데 부왕 러요시 1세 사후 모후 보스니아의 엘리자베타가 언니의 섭정을 맡으면서 동생이었던 야드비가는 폴란드 귀족들의 섭정을 받았다.[29] 둘 다 사보이아 가문 출신 친척들이었다.[30] 독살설이 유력함[31] 실질적인 왕위에 오른 것은 16세, 대관식 후 정식으로 왕이 된 것은 21세이다.[32] 다만 G16을 끝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33] 선왕반역자에 의하여 시해된 후, 어린 나이에 국왕 자리에 올랐으나, 실질적으로는 최측근 기사가 일을 다 처리해주고 있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 친모와 사별하게 된 아픔을 겪었음에도 왕자 시절처럼 뭐든지 열심히 하고 씩씩하게 지내려고 하는 등 나름 성군의 기질이 보인다.[34] 테레나드의 전대 황제 시해 이후, 황족 혈통 중에서 왕위 계승 순위 중에서 거리가 가장 먼 존재였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의하여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다만, 무녀최고 대신의 보호를 받는 유약한 이미지와는 달리, 변혁을 위해 무시무시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일면이 존재한다.[35] 이쪽은 원래 게치스가 얼굴마담으로 놓은 황제. 그러나 그가 전설의 군주 하르모니아의 후예란 떡밥이 있다.[36] 사실 아카메 세계관의 현 황제는 왕위 계승 순위가 매우 먼 인물이었으나 대신 오네스트의 농간에 휘말려 황제가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