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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대남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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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뉴스
6.25 전쟁 대남 도발 2016년

1. 개요2. 상세3. 원인4. 연도별 도발
4.1. 1940년대4.2. 1950년대4.3. 1960년대4.4. 1970년대4.5. 1980년대4.6. 1990년대4.7. 2000년대4.8. 2010년대4.9. 2010년~2012년4.10. 박근혜 정부 집권기(2013~2017)
4.10.1. 2016년4.10.2. 2017년
4.11. 문재인 정부 집권기(2017~2022)
4.11.1. 2017년4.11.2. 2018년4.11.3. 2019년
4.12. 2020년대
4.12.1. 2020년4.12.2. 2021년4.12.3. 2022년
4.13. 윤석열 정부 집권기(2022~)
4.13.1. 2022년4.13.2. 2023년4.13.3. 2024년
5. 대미국 도발6. 대일본 도발7. 대미얀마 도발8. 대말레이시아 도발9. 여담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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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대한민국을 겨냥해 일으킨 각종 도발 및 교전 목록.

2. 상세

현역 군인은 '정신전력'이라는 이름 하에 각 연도별 굵직한 사건들을 외워야 할 수도 있다.

큰 틀에서 도발의 특징을 살펴보면 1980년대까지는 주로 공비나 간첩 침투가 절대적이었다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핵(核)이나 미사일, NLL(서해북방한계선), 방사포 관련 도발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대남 도발의 여부는 대한민국의 대북 정책보다는 북한 내부의 사정과 연관이 깊다.

3. 원인

2021년 이전 북한 노동당 규약 전문은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데 있다.”며 한반도 적화통일을 당의 최종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북한정보포털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 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 온갖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전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며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조선로동당 당 규약, 2021년
우리의 '정권붕괴'와 '흡수통일'만을 추구해온 괴뢰 족속들은 완전히 소멸해야 할 우리의 주적이라는 확고한 관점에서 통일정책을 새롭게 정립하며...
2024년 1월 13일,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전원회의에서 제시된 대남정책전환방침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대적부문 일꾼들의 궐기모임에서 #

2021년 이후에는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 과업 대신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전국적 범위에서 이룩한다는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여기서 전국은 남북한 전역을 의미한다. 대놓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평화통일을 앞당긴다는 주장이 추가되었다. # 급진적인 대북 유화파 사이에서 아예 적화통일 포기론이 대두되었으나 이런 주장은 심지어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대북 유화파의 인사도 부인하였으며,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군사적 힘의 우위에 따라 자신들이 통일을 주도하겠다는 것으로 당 규약을 해석하였다. # 2024년 기준으로도 한국 정부는 전쟁 가능성과는 별개라도 매우 진지하게 김정은 정권은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따라서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북한의 대남도발은 분단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대남적화전략 더해서 여러 가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외교적 원인이 대남 도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4. 연도별 도발

4.1. 1940년대

1945년 해방 후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서 혼란한 해방공간의 상황은 곧 남북교전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북한대로 내부정리가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대로 남조선 반동들을 맛깔나게 후려치면 우루루 허물어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국지전을 감행했다. 훗날 이러한 상황은 6.25 전쟁 연구가들에게 교전확대설의 떡밥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교전확대설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다만 교전이 확대된 것이 북침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남침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교전들은 사실 북한이 신생 조선인민군의 교리와 전투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부단한 시도였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교전이 하도 많았기 때문에 신문지상에 안 실린 것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1948년 이후부터는 남한에 정치적인 침투를 위해 공작원을 보내기 시작한다.

설령 교전확대설이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북한의 기습남침은 명백하게 규정된 사실이다. 위의 내용들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같은 곳에서나온 것으로 보인다. 소련 붕괴로 인해 소련의 비밀 문서가 해금되었는데 이 중에는 6.25 전쟁과 관련된 비밀 문서가 있다. 비밀 문서에는 6.25 전쟁의 원인이 북한의 기습 남침이라는 것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

4.2. 1950년대

1950년대 초반에는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거짓으로 귀순한 간첩들이 정치적인 침투를 시도했으며 6. 25 전쟁이 휴전에 들어간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자 정보 수집과 체제 교란을 위해 간첩을 보냈는데 이 과정에서 남파 공작원이 일으킨 납북 사건과 월북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1960년대까지 이어진다.

4.3. 1960년대

1960년대 후반은 무장공비에 의한 침투와 교전이 잦았던 시기다. 7·4 남북공동성명 직전 비밀리에 남북의 부총리급 인사들이 서로를 방문했을 때[3] 김일성이후락 중정부장에게 1.21 사태에 관해 이야기하며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거 우리 군 내부의 좌익 극렬 맹동분자들이 저지른 짓이다. 나는 정말 몰랐다. 미안하다"라고 비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4] 하지만 이런 주장이 있다는 거지 김일성이 쪽팔려서 꼬리자르기를 시전했다는게 더 타당하다. 이후락 앞에서 "니 상사를 죽이려 했는데 실수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는가. 60년대 후반에는 미국에서는 Korean DMZ Conflict 혹은 일부에서는 2차 한국전쟁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충돌이 잦았다.[5] 휴전선 부근에서 매복공격과 교전이 꽤 잦았으며 이 기간 동안 대한민국 국군은 300여명, 미군은 약 40여명, 북한군은 약 400여명 정도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한반도 비무장지대 분쟁을 참고.





4.4. 1970년대

1970년부터는 화전양면전술을 본격적으로 사용해 불리한 상황에서는 대화를 주선하는 한편 비무장지대를 은밀히 침투할 수 있는 땅굴을 굴착했다. 반대로 유리한 상황에서는 무력을 동원했다.








4.5. 1980년대

1980년대에는 주로 테러를 이용한 도발을 시행했는데, 범위를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제3국에서 실행해 테러의 주체를 알지 못하게 위장하려고 했다.



4.6. 1990년대

1990년대에는 사실상 냉전에서 공산권의 패배가 줄줄이 이어졌고 중국과 소련 등의 국가도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이래저래 겪은 후 공산주의를 버리고 새 노선으로 갈아탔다. 한국에서도, 해외에서도 수십년 간 이어진 한반도의 체제 경쟁은 끝내 대한민국의 승리로 마무리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북한은 순순히 무너지지 않고 제 버릇 개 못 주고 이때까지도 치졸하고 비겁한 술수를 계속 부렸다. 국제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확대하자 북한은 남북관계에서 유연한 자세를 보여 회담을 진행하면서도 화전양면전술을 구사했으며 오히려 1980년보다도 침투 횟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참고로 1993년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출범했으나 이 점이 북한의 대남 비방을 근절하지는 못하였다.







1982년 한국으로 망명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 이한영씨는 북한에서도 알아주는 최고위층이었기 때문에 남한 측에서도 더 열심히 경호를 했는데, 자신의 탈북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다음 해에 북한 공작원에 의해 이마에 총상을 입고 말았다. 하지만 암살 당시 상황이 방송에 나온 걸 보면 경호는 커녕 홀로 있다가 암살당했고 제대로 된 목격자도, 용의자 몽타주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뉴라이트 계열 책자에서 이 암살이 한국 정부가 그를 죽게 방치했다고 성토했을 지경이다.

4.7. 2000년대

2000년대에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의 화해 분위기 조성을 이용, 핵실험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특수부대, 수중전 등 비대칭 전력을 이용한 도발을 지속하였다. 즉,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4.8. 2010년대

2010년대에는 북한에서 3대 세습 체제가 진행되어 강성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가시적인 성과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기습적이고 직접적인 타격을 감행하거나 간접적인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미 남북간 전력차는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져버려 북한은 이전만큼의 군사적 도발을 행하지 못하고 있으며[14] 이런 전력차나 외교적 고립을 돌파하기 위해 대남 도발보다는 핵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4.9. 2010년~2012년



4.10. 박근혜 정부 집권기(2013~2017)

한국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한의 도발에 강경 대응하거나 아예 무시했었다.[18] 그러나 군사 도발에는 강경하게 반응한 반면 핵개발에는 사실상 손을 쓰지 못 했다.[19]


4.10.1. 2016년


북한 관련 뉴스/2016년 항목 참조

4.10.2. 2017년

2017년 들어서 강성대국 건설의 구호에 맞추어 수소탄과 ICBM 개발로 중도, 보수적 성향을 가진 한국 국민들의 부정적 관심을 끌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선거공약에 맞추어 전임 정권과는 달리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고는 있지만, 최근 젊은 사람들 사이에 북한에 회의적인 인식이 많아짐에 따라 이런 여론을 의식하여 유화적 행보도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불쾌하게 여긴 북한의 반응은 무시 일관[23]이었다. 7월 29일, 대남 도발에 무력시위로 대응하기도 했다.

4.11. 문재인 정부 집권기(2017~2022)

4.11.1. 2017년



북한 관련 뉴스/2017년 항목 참조.

4.11.2. 2018년

2017년 후반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쾨르버재단 연설 이후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남북한관계 개선 의향을 밝히며 한동안 도발이 없었지만, 11월에 우리 측 어선이 2시간 정도 나포 되었다가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북한 관련 뉴스/2018년 항목 참조.

4.11.3. 2019년

파일:9.19 군사합의 이행실태.jpg

북한 관련 뉴스/2019년 항목 참조.

4.12. 2020년대

2020년대에는 미사일 개발은 물론 간첩 동조 사건 및 사이버 공격도 감행하는 듯 도발의 수위가 한 수 더 올라갔다. 아예 '대한민국'이 동포도 아니며 전쟁시 '수복'할 대상이라는 김정은의 발언은 그동안의 남북관계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사건이었고, 이에 관련한 도발도 감행하기도 했다.

4.12.1. 2020년


북한 관련 뉴스/2020년 항목 참조.

4.12.2. 2021년


북한 관련 뉴스/2021년 항목 참조.

4.12.3. 2022년

4.13. 윤석열 정부 집권기(2022~)

4.13.1.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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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2.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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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3.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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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쑤[33]들은 전쟁도화선에 불을 달고있다.
침략자 미제와 대한민국것들을 쓸어버릴
무기생산에 총궐기하자!
2024년 북한 군수공장에 걸린 현수막의 새로운 구호. 2023년 하반기부터 보이던 구호였으며, '남조선괴뢰들'이 '대한민국것들'로 쓰인 구호가 새로 발견되었다. 조선중앙TV,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노출되었다. #
2023년 연말, 나라가 아니라던 대한민국을 아예 '적대국' 관계로 선언하고, 김정은과 북한 언론에서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소멸시킨다는 언급, 남조선/남반부 전 영토 평정과 같은 언급이 생겨났다. 대남 매체에서는 평화적 통일과 관련된 언급이 사라졌다.

5.미국 도발

6.일본 도발

7.미얀마 도발

8.말레이시아 도발

9. 여담

10. 관련 문서


[1] 이 시기의 무장공작원 및 무장공비의 숫자는 잔존 빨치산이나 휴전선 교전 중 사살된 북한군도 포함되어 있다.[2] 이때는 위도 38선을 따라 개성이 남한의 영토였다. 이후 전쟁이 끝나게 되면서 북한의 영토로 편입된다.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가 황해도의 일부를 갖고 북한이 속초를 갖고 있었다.[3] 방남한 박성철도 부수상이었으며 방북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역시 부총리급 인사였다.[4] 1.21 사태가 일어난 1968년은 김일성이 갑산파, 연안파, 소련파 등의 정적들을 8월 종파사건 등의 조작을 통해 꾸준히 대량 제거해 나가던 작업의 후반부다. 이 시기에는 간부들이 많이 숙청당했기 때문에 간부공황 문제가 제기되고도 있었던 시점과 가깝기 때문에 김일성은 이를 타개하고자 군부에 약간의 자율권을 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렇게 지들끼리 알아서 청와대까지 쳐들어가놓고 김일성한테 "저 잘했죠?"라고 말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일성도 1.21 사태를 제외한 다른 사건은 칭찬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봐서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극렬 맹동분자 탓이었던 것이 확실한 듯하다.[5] https://en.wikipedia.org/wiki/Korean_DMZ_Conflict[6] 무려 100명이 넘는 어민들이 납북된 사건이다.[7] 당시 정부가 북측에 항의했지만 이 사건은 함박도 어민이 무단 월북한 사건이기 때문에 북측에서도 할 말은 있다.[8] 가수 윤하의 외조부인 김주호 공군 대령이 참전했으며 이후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펨코 정리글[9] 시체 주의[10] 시체가 모자이크 없이 그대로 나오니 주의[11] 해군 강원함에서 발진한 ALT-3 알루엣 대잠헬기가 AS.12 대전차 미사일 음? 로 격침시켰다. 당시 공작 자선은 결국 발견하지 못했으나 여러 유류품을 수거했으며, 격침시킨 헬기는 현재까지 한국군 육해공군을 통틀어 유일하게 킬마크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해당 기체는 퇴역한 후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12] 확증은 없으나 정황상 100% 북한 소행이다.[13] 1973년하고 1992년에 이어서 같은 부대가 겪은 사건이었다.[14] 목함지뢰 사건 때 북한은 남한의 강경책에 결국 남한 정부에게 최초로 유감이라는 사실상의 사과를 하였다.[15] 사실 이전에도 여러번 이런 사건이 있었다. 대부분의 이유는 자기들을 모욕하는 언동을 군부대 부호로 쓴다는 것에 국가의 모욕이라면서 도발하는 식이다.[16] 이번 2012년에는 15만명을 동원한 궐기 대회도 있었는데 김정은 체제가 아직 정립이 되지 않아 내부결속용으로 쓰려는 목적이 강하다는 듯하다.[17] 이후 조·중·동을 비롯한 국내 주요 언론사의 이름과 지도좌표를 언급하며 조준 격파하기 전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는데 특이하게도 성명서에서 언급한 좌표는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60진법(1도=60분, 1분=60초)이 아닌 10진법 좌표(1도=100분, 1분=100초)였다. 몇몇 언론과 네티즌들은 이 10진법 좌표를 60진법으로 해석하여 '북한이 엉터리 좌표를 가지고 있다'며 비웃었으나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18]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 당시 한국 정부에서 낸 공식 발표 중 하나가 "품격 있는 언어 써라."[19] 오바마 정부의 기본 대북 전략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였고, 한국의 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이 노선에 협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박근혜 정부-오바마 정부 간 한미동맹의 성격에 의해 한국의 도발 대응책은 기본적으로 한계를 가졌다.[20] 참고로 이 날은 설 전날이다.[21] 3월 3일 단거리 6발, 3월 10일 단거리 2발, 3월 19일 중거리 2발, 3월 21일 단거리 5발, 3월 29일 단거리 1발, 4월 1일 단거리 3발(2발 실패)[22] 2015년에 발사한거랑 비교하면 수직발사가 안정적으로 된 걸로 봐서 성공했다고 보지만 구소련제 잠수함탄도미사일 R-27을 대형화한것 치고는 예상 사정거리가 300km 이상이 되어야할 것이 고작 30km밖에 다다르지 못했던 점을 보면 실패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 국방부는 3~4년 내에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기술을 제대로 확보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23] 유일하게 반응하다시피 한 것이 "적대행위 중단하라"라는 말 한마디 뿐.[24] 1만톤급 잠수함을 만든다고 쳐도 아직 신포급으로 그친점에서 잠수함 개발 중에 바로 대형함으로 넘어간다는 자체가 크게 문제가 있고 무작정 만든다 해도 기술문제 소음문제 등 결함이 생길 것으로 추측된다. 자세한 건 중국의 한급잠수함 참고.[25] 미국의 주도로 자금이 유입될 만한 루트는 죄다 틀어막았는데도 꾸준히 개발하고 유지할 수 있는 자금이 어디서 들어가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에서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비공식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는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26] 이것 때문에 일본에서 06시 02분에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대피 문자가 발송되었다. 미사일이 일본 해안도 아니고 본토를 넘어가는데 비상이 안 걸릴 리가 없다. 다행히 15분 뒤에 해제되었다고 한다.[27] 단거리 미사일 외에도 방사포와 지난해 공개된 신형 자주포도 다수 포착되었다.[28] 다만 설치 2일만에 철거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도발이라고 보긴 어렵다.#[29] 다만 연락선 및 통신선이 모두 폐기 또는 차단되었기에 고의적인지 아닌지는 미지수다.[30] 며칠 뒤 북한의 대남도발 횟수가 박근혜 정권에 비해 6배가 많은걸로 집계됐다.“북한의 공식 발표를 분석한 결과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나흘 뒤인 2017년 5월 14일부터 최근까지 30여 회에 걸쳐 50여 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했다. 북의 미사일 발사는 박근혜 정부에서는 5회(8발), 이명박 정부에서는 12회(19발)였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한반도 상황이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했지만, 북의 도발 횟수만 비교하면 박근혜 정부 때보다 6배나 많은 셈이다.#[31] 평소보다 4~6발 많이 발사한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32]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의 미사일이 NLL을 넘어 착탄되었다.[33] 북한에서는 군 계급인 원수와 의도적으로 구분하고 적대감을 드러내기 위해 적을 지칭할 때는 '원쑤'라고 써야 한다.[34] 발생 시기가 최악의 폭염을 부추긴 2018년과 2024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