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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등교육법 제41조(목적) ② 대학의 사범대학(이하 "사범대학"이라 한다)은 중등학교[1] 교원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
師範大學 / College of Education
사범대학, 약칭 사대는 중등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교의 단과대학이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일정한 자격[2]을 채우면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3]
본래 의미의 사범대학은 교원을 양성하는 곳 일체를 아우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중.고등학교 교원을 양성하는 곳으로 한정된다. 국내에서 초등 교원을 양성하는 곳은 교육대학교라고 지칭된다. 단,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만은 현재의 교육대학 체제가 만들어지기 전인 50년대부터 존속했기 때문에 예외를 인정받아 사범대학에서 초등교사도 양성 중이며, 그 외에 교원양성 종합대학으로 설립된 한국교원대학교에도 초등교육과가 존재한다.
교육을 학문의 대상으로 다루는 교육학과와 교육공학과를 제외하면,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특수 목적 인재를 양성하는 곳으로 여겨진다.[4] 따라서 학과 이름 뒤로 학이 붙지 않는다. 이를테면 국어교육학과가 아니라 국어교육과인 것이다. 그런데 사대로 정식 인가가 되지 않은 일반대학 교육과에서는 학을 붙이기도 한다.[5]
사범대학 및 교육대학을 교육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었으나 2023년 4월 시행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2. 역사
관련 문서: 사범학교일제강점기에 전문학교급으로 성장한 사범학교 3개교 경성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 대구사범학교는, 해방 후 경성사범대학과 경성여자사범대학[6], 대구사범대학[7]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1948년 공주사범대학[8]이 추가로 개교하면서 3개의 국립 사범대학[9]으로 국내 사범대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세 학교는 종합대학으로 성장하여 현재는 각각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립공주대학교 사범대학이 되었다.
1949년「교육법」과 1952년「교육법시행령」이 제정, 공포되면서 중등교원양성기관으로 사범대학을 설치하고 2년제와 4년제로 양분화하였으며, 2년제 졸업자는 중학교 교사, 4년제 졸업자는 고등학교 교사로 임명되었다.
1951년 사립대 최초로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이 개설되었다. 다만, 1990년 이전까지는 국립대학 우선 의무임용이었고, 여석에만 순위고사를 통해 사립 사범대학이 임용될 수 있었다. 따라서 사실상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립공주대학교 사범대학[10],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역별 3개의 국립 사범대학이 전국의 중등교원 양성을 위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진학률이 점차 높아지면서 교원 수요증가에 따른 교원 양성의 공급이 부족했었다. 따라서 1962년 교육대학(당시 2년제)이 발족됨과 동시 모든 국공립 사범대학(학교)은 4년제로 일원화되었다.[11] 오늘날 거점국립대학교에 해당하는 국립대학에 사범대가 설치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1968년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1969년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1971년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1972년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1977년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1979년 경상국립대학교 사범대학, 1982년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등이 있다.[12]
1970년대에는 급격한 학령인구 증가로 중등교사가 부족하였고, 국립사범대학 졸업생의 의무복무를 실시함에도 불구하고, 경제구조 확대로 인한 교직이탈률의 증대와 교직 지망 기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문교부는 중등교사 충원을 위해 지역별 거점 국립사범대학[13]들 이외의 사립대학들에도 4년제 사범대학 설치를 인가하였다. 교육부가 교원 수요 증가에 대한 대응으로 1960년~1970년대 후반 사립대학교의 사범대를 인가한 4년제 대학교들은 수도권 건국대학교 사범대학[14], 경희대학교 사범대학[15], 고려대학교 사범대학[16], 단국대학교 사범대학[17], 동국대학교 사범대학[18],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19], 인하대학교 사범대학[20], 중앙대학교 사범대학[21], 한양대학교 사범대학[22], 홍익대학교 사범대학[23]이 있고 비수도권에는 원광대학교 사범대학[24], 영남대학교 사범대학[25], 조선대학교 사범대학[26]등이 있다.
1984년에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동시에 수행하며 교원양성, 교원연수, 교육연구의 역할을 하기 위한 교원양성종합대학으로 한국교원대학교가 개교했다. 이는 기존의 사범대학 및 교육대학 등의 교원양성기관과 차별성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정치적으로 설립하였다는 점 때문에 당시 전국국립사범대학생연합(약칭 전사련)에서 교원대 철폐를 요구한 바도 있다. 또한 당시 국립대학 졸업자 중 대기발령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설되었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었으며, 이는 충청권 표심을 얻기 위한 공약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89년 평등권 침해 소송으로 인하여, 1990년 10월8일 헌법재판소가 국립 또는 공립의 교육대학, 사범대학 기타 교원양성기관의 졸업자 또는 수료자를 우선 채용하도록 규정한 구 교육공무원법 제11조 제1항, 동법 시행령 제10조가 평등권 및 직업선택의 자유에 위반된다고 하여 위헌을 선언하였다(89헌마89). 이에 중등교원임용경쟁시험, 속칭 임용고시가 1991년에 탄생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국립사대졸업자는 우선발령하고, 부족한 인원에 대해 사립사범대 출신자 및 교직이수자, 교육대학원 졸업자를 순위고사를 보게 하여, 임용을 하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국립사범대 누적 졸업자 및 대기자가 상당해져 순위고사는 특수한 일부 표시과목[27]을 제외하고는 없는 상황이 되어 실질적으로 사립 사범대 학생들은 국공립 학교로의 진출이 어려웠다. 이후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1991년 중등임용고사가 탄생하게 되는데, 여기서 국립사대 발령대기자, 사범대 학생회에서 반발이 상당하여 임용고사 시험 저지를 위한 투쟁이 많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공채 접수 등의 거부 등으로 이어졌지만, 모집인원을 초과하는 인원이 접수함에 따라 임용고사가 탄생하게 된다.[28] 여기서 문제점은 기존 졸업자중 발령대기자 역시 발령을 취소되었다는 점인데, 당시 대기자가 약 7000명에 달했다는 걸 생각하면 큰 문제였다. 이들은 2005년 미발추특별법에 의해 일부 인원을 따로 선발하는 중등 임용고사 혹은 독일어, 불어, 교육학 등 임용고사 선발이 없는 상황 등을 고려하여 교육대학 편입 등으로 구제하였다.
임용고사가 생기고 2005학번이 졸업하고 3번 응시하는 시점까지[29] 사범대학 가산점이 있었다. 그보다 예전에는 복수전공 가산점[30]과 지역 사범대학 가산점이 있었다. 즉, 전남대를 졸업하면 광주, 전남 지역에 응시할 경우 가산점이 있었다. 사범대학 가산점의 경우 초창기에는 5점 정도였고, 3점, 2점대로 축소되긴 했지만 소숫점 차이에 많은 인원이 몰려있는 임용시험 특성상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2005년 평등권 소송 등으로 사범대학 가산점은 없어졌고, 초등 임용의 경우 농어촌 지역 등의 교육환경 등을 고려하여, 존치되었다.
1980년대부터 사범대학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조정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시행한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평가를 시행해 사범대 정원 관리를 하고 있다.
3. 특징
- 상대적으로 높은 입시성적
국립대학의 경우 권역별로 하나의 사범대학에만 부설학교[31]를 두고 지금의 교육대학과 비슷하게 교원배출을 사실상 독점해 왔다. 그래서 의무임용시절부터 지역가산점이 있던 2000년대 초까지 특정 대학 출신 교사들이 해당 지역 교육계의 대다수를 차지했고, 그것이 지금도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다.[32] 이로 인해 현재도 굳이 상경해서 인서울 사범대에 진학하기 보다는 살고 있는 지역의 거점국립사대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의무임용시절 시절이었던 1960년대 중반에는 전국에 4년제 국립 사범대학이 3곳[33] 밖에 없었던 때라 선호도가 웬만한 최상위권 대학보다 높았으며, 사범대 졸업생이 희소했던 70년대 후반까지도 입결이 타 최상위권 대학과 비슷했다. 보통 국립사대는 의무임용에 학비 또한 거의 면제에 가까웠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학생들이 많이 진학했다. 이후 임용고시가 도입된 후인 1990년대부터 선호도가 다소 하락했지만 2000년대 초반 국민의 정부의 학급당 35명 인원수 발표로 인하여[34] 교원수요가 폭발적인 증가를 이루었고, 이는 임용률의 증가로 이어져 다시 03학번 즈음부터 선호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후 06학번 입시때까지 정점을 이루었다. 하지만 사범대학 가산점이 폐지되고 임용 경쟁률이 상승하면서 성적대가 하락하게 되었다.
이후 비교적 최근인 2010년대에 들어 사범대학의 입결은 눈에 띄는 하락세를 타게 되었다. 이는 사범대만의 문제는 아니고 대학 공급은 그대로인데 저출산으로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타 학과도 대부분 겪는 일이지만, 사범대는 여기에 추가타가 붙는 것이 출산율의 저하로 학교통폐합, 학급수를 줄이기 시작하고 있기에 이는 교사 신규임용이 현저히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났다. 일단 임용시험 TO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채 임용시험 낭인들만 누적되어 교사가 되기는 점점 어려워졌고, 그동안 대학에서는 계약학과 / 중점학과 등 대학 자체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신설 학과를 내놓으며 전액 장학금, 로스쿨 우대 등의 특혜를 주며 적극적으로 밀어주어 대학 최상위권 입결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었다.[35] 이로 인해 교사를 강력하게 희망하는 상위권 학생들이 사범대 진학을 포기하고 교육대학으로 빠지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2020년대 들어 교육대학마저도 여러 가지 안 좋은 상황들이 겹쳐 심한 선호도 하락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간호학과와 유사한 입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두 단과대학 간의 입결이 같다는 의미가 아니고,[36] 상위권 대학인 경우 그 대학 내에서 입결이 낮고, 하위권 대학으로 내려갈 수록 그 대학 내에서 입결이 상승한다는 경향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보통 간호학과는 상위권 수험생의 경우 제한적인 진로와 의료 노동의 신체적/정신적 힘듦 등의 이유로 기피하지만 하위권 수험생의 경우 우수한 취업률과 이를 보장하는 면허의 존재 덕분에 선호한다. 그러나 사범대학은 상위권 수험생의 경우 불안정한 임용고시 TO 상황과 더불어 타 분야나 전공으로 진출시 취업에 도움이 안되는 전공이라는 인식 때문에 기피하게 되나, 하위권 수험생의 경우 정교사 2급 자격증을 발급해주며 임용고시 통과가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통과시에는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학과가 되므로 선호하게 된다.
- 정통성에 대한 자신감
높은 입결과, 중등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단과대학에 입학했다는 자의식은 의대처럼 타 단과대 학생에게 배타적인 성향을 만들 수 있다. 교직이수자나 교육대학원생을 일종의 '뒷문으로 들어온 사람'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
물론 교직이수쯤 되면 출신 과의 엘리트인 것은 알지만 애초에 입결부터가 더 높기 때문에 특이한 케이스 정도가 아닌 한 "뒷문으로 들어왔다." 인식이 강하며, 차라리 토익과 같은 공인 영어 성적이 더 높거나 특수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그걸 더 인정해준다. 의대, 법학과와 더불어 교육대학이든 종합대학 소속이든 사회에서 명성과 선호도가 높아 이에 대한 자부심과 전통에 대한 고집이 있다. 그러나 일부 최상위권 대학의 경우, 교육계 쪽으로 소신이 있는 어느 정도의 학생들을 제하고는 같은 대학 내 소위 말하는 '문사철' 학과에게도 입결이 밀리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에 사범대 소속 학생들이 간판 따러 왔다고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다.[37]
- 정원이 적다.
국어교육과 기준으로 서울대학교 입학 정원이 25명이며, 비교적 많이 뽑는 고려대학교 입학 정원이 47명. 경북대학교 입학 정원이 36명, 한국교원대학교 입학 정원이 35명이다. 그나마 국영수 교육과라 이 정도라도 나온거지, 심한 경우 전 학년을 모두 합쳐도 총원이 40명 이하인 학과까지 나올 지경이다.[38] 한 마디로 입학이 결정되는 순간 4년간 선생님도, 학생 구성도 바뀌지 않는 고등학교 한 반이 구성된다는 이야기.[39]
- 사범대 학생들 간의 인맥
거점국립대학교와 국립공주대학교 등 지방 국립사범대가 소재하는 곳의 광역생활권 교사들은 대부분 해당 학교 졸업생이다. 서울대학교를 제외하고는 국립사범대 재학생의 대부분이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소재지역 또는 그 인접지역 출신이고, 거기에 더해 1980년대까지는 지역국립사범대 100% 우선임용, 이후 2009년까지는 우선임용까지는 아니어도 임용시험 지역가산점 제도가 있어서 대학교 소재지역에서의 교원 복무를 장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공주대학교 사범대학의 경우 경기도를 포함한 중부권에 하도 많이 진출하여 오죽했으면 '공사판(공주사대가 판친다)'라는 말까지 나왔을 지경.[40]
최근엔 한국교원대와 더불어 교육대학들이 전통성과 확고함을 고수하고 최상위권 대학들의 인맥과 지연에 대한 우려가 의대의 예시처럼 우려되고 있다. 이외에도 현직 교사들이 교육대학원 학생으로, 겸임교수로, 심지어는 전임교수가 되는 등의 과정을 통해 대학과 계속 교류하고 학생들 또한 교육실습 및 학교 봉사활동 과정[41]에서 현직 선배들과 만나는 일이 잦다. 교류가 지속되고 있다보니 과거의 학풍이 약해질 수는 있어도 절대로 없어지지는 않는 것.
- 강의방식
사범대도 종합대학 내 한 단과대학이기 때문에, 형식적인 교육 커리큘럼상으로는 학생의 선택권이 보장되는 것 같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 학년 인원이 많아야 20~30명을 넘지 않으므로, 어지간한 전공강의는 최소 개강 인원을 맞추지 못해 폐강이 되기 쉽다. 그렇다고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이 많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대부분의 사범대학은 타 단과대학 학생이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하지 못하게 제한해두고 있다. 그 탓에 사범대는 수강신청 전쟁을 겪을 일이 거의 없다.[42]
때문에 타과생이 와서 수업을 듣는다고 해봤자 사범대학 학생이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으로 듣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나마도 본래 그 학과 소속인 학생이 듣는 강의와 복수전공 및 부전공 학생만 듣는 강의로 분산 개설되는 경우가 많아서 결국 항상 개설되는 강의만 개설된다. 심하면 2학년이 3학년 강의를 선행학습하려 할 때, 예비역 복학생 그룹의 언질을 받은 과대가 "너 빠지면 폐강될 위기니 그거 듣지 말고 이거 들어달라"고 협박 반 로비 반의 전화를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3학년쯤 되면 10명에서 15명 내외의 인원이 한 단과대학을 벗어나지 않은 채 2~3과목씩 강의실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 건 흔한 풍경이 된다. 누구랑 밥 먹을지 걱정 안 해도 된다. 지금 강의 같이 들은 사람들하고 같이 밥 먹고 다음 강의 같이 들으면 되니까. 애초에 강의실도 안 오가고 책을 쭉 쌓아놓고 계속 듣는 경우도 있다.
4. 진로
4.1. 교사
졸업시 학사학위와 함께 교원 자격증이 주어진다.[43] 이를 취득하면 중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취직하거나, 사립학교 정규교사 채용원서를 낼 수 있으며, 공립학교 정규교사를 선발하는 중등교원임용경쟁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단, 그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급 이상 취득이 필요하다.교직을 시작할 때의 기본 호봉은 9호봉이며, 만약 군복무를 마친 경우 복무 연수에 따라서 추가하고, 교육대학원을 수료한 경우 2호봉을 추가한다. 여기에 특수교육 전공이면 1호봉이 추가된다. 비사대 교직과정 출신은 8호봉부터 시작한다. 왜 9~8호봉부터 시작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여기를 참고.
4.2. 교사 외의 진로
교육학과, 교육공학과 등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사범대학 소속 학과들은 대부분 "00교육과"이다. "00교육과" 출신들은 꼭 교사가 되지 않더라도 향후 진로를 정할 때 00교육, 00, 혹은 교육을 살린 쪽으로 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어교육과 출신 졸업생이 국어교육 관련 스타트업을 설립한다던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과정에 진학하여 국어학자가 된다던가, 혹은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 교육행정 직렬에 도전할 수 있다.사범대학은 교육대학과 달리 해당 전공 일반과의 커리큘럼을 대부분 따르기 때문에[44] 원 전공, 즉 윗 문단에서 말한 00을 전공한 비사범대 일반과 학생이 취업/진학하는 직업/학계에 전부 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 박사 출신의 연구원을 채용할 때 대부분의 기업들은 화학교육과 학부 출신과 화학과 학부 출신 간에 딱히 차등을 두지 않는다.[45] 이는 특히 원전공을 살리기 비교적 용이한 이공계열 사범대학 학과 출신들에게 큰 메리트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희망적이지 않은 말도 하자면, 애초에 사범대는 교과영역 과목과 교육학 과목을 모두 이수해야 하기에 실제로 소화하는 교과영역은 원 전공을 다루는 과에 비해서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일부 사범대학의 경우 임용 시험에 맞춰 개념 속성식으로 가르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원래 전공을 다루는 타 단과대의 학생들보다 전공 지식의 수준이 부족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본인이 교육 쪽은 아예 버리고 원전공으로만 승부하고자 한다면,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46]
사범대학 출신들은 임용고시를 선택지에서 제외한다면 사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진로의 폭이 그리 넓지만은 않다. 교사가 되지 않고도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예시를 들자면 교육학 연구원, 교대 및 사범대 교수, 학원 강사 등 사교육 업계 진출, 대학원 진학,[47], 그리고 교육행정직 공무원 시험 [48]및 행정고시 등이 있겠다. 만약 전공을 살린 진로로 진출하기를 포기하고 일반적인 취준으로 돌리기로 마음 먹었다면, 임용시험에 도전하는 사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면접관들은 졸업 후 무엇을 했는지 집요하게 물으며, 이 때 임용고시를 몇 년 준비했다고 답변하면 마이너스 점수나 받지 않으면 천만다행일 수준이다. 고시낭인 문서 참조. 공백 기간을 소명할 자신이 있다면 도전해 보자. 만약 아직 학부생인데 취업에 생각이 있다면 다른 취직이 잘 되는 학과로 복수전공(이중전공)을 하거나 전과를 하는 게 낫다. 타 라이선스 학과들과 달리 사범대생은 非사범대 학과를 복수전공/이중전공을 하는 데에 아무런 제한이 없기 때문에 제2전공을 살려도 된다. 그 외에도 학과에 상관 없이 지적능력만을 평가하는 법학전문대학원 등에 진학하거나 전문직, 교육행정직렬이 아닌 고시 시험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5. 전공
자세한 내용은 사범대학/전공 문서 참고하십시오.6. 학교
자세한 내용은 사범대학/학교 문서 참고하십시오.6.1. 개별 문서가 개설된 사범대학
국립대학
* 강원대학교/학부/사범대학
* 경북대학교/학부/사범대학
* 경상국립대학교/학부/사범대학
* 국립공주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서울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전남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제주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충북대학교/학부/사범대학
* 한국교원대학교
* 강원대학교/학부/사범대학
* 경북대학교/학부/사범대학
* 경상국립대학교/학부/사범대학
* 국립공주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서울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전남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제주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충북대학교/학부/사범대학
* 한국교원대학교
사립대학
- 가톨릭관동대학교/학부/사범대학
- 건국대학교/학부/사범대학
- 경남대학교/학부/사범대학
- 계명대학교/학부/사범대학
- 고려대학교/학부/사범대학
- 단국대학교/학부/사범대학
- 대구대학교/학부/사범대학
- 목원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상명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성균관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이화여자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인하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중앙대학교/학부/사범대학
- 청주대학교/학부/사범대학
- 한국외국어대학교/학부/사범대학
- 홍익대학교/학부/사범대학
7. 교육대학원
자세한 내용은 교육대학원 문서 참고하십시오.8. 임용시험 TO 확보 투쟁
외환 위기 이후 철밥통을 지향하는 경향이 늘고 요근래 출범한 정부들의 신자유주의적 성향에 따라 교원의 충분한 수급보다는 효율적인 학교운영을 중시하는 경향, 그리고 저출산이라는 근본적인 원인 때문에 임용시험 경쟁률이 급상승했고 2009년을 기점으로 기존에 활발하게 전개되던 교대의 TO확보 투쟁에 더해 사범대 역시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함에 따라[49] 학내에서 이와 관련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50]우선 크게 나눠서 대규모 상경 투쟁에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으로 나뉘는데, 찬성하는 입장은 반대 혹은 무관심한[51] 입장의 사람들에 대해 '이기주의적이다.', '자기들이 피해보는 것은 피하고 이득만 챙기려한다.', '투쟁이나 요구 없이 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리는 안일한 마음을 가지거나 개인이 알아서 잘하면 상황이 다 잘될거라는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하고 있으며, 반대 혹은 무관심한 입장의 사람들은 찬성파에 대해 '전체주의적이다.', '투쟁만이 해결책이라는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다.', '사실 공무원고시 등 다른 고시들에 비해 경쟁률이 그렇게 심하다고 보기도 힘든데 투쟁에 나서봤자 결국 밥그릇싸움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크다.', '나 선생 안할건데?'[52] 라는 식으로 반발하고 있어 양자간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투쟁 찬성파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늘어난 반대파들 역시 공공연하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뿐 상당한 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찬성파 내에서도 입장차이가 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흔히들 '밥그릇'이라고 부르는 현실적인 면을 중시하는 입장과 교육환경 개선 등 명분적인 면을 중시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사실 유사이래 전세계에서 일어난 수많은 투쟁들 속에서 자신과 연관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투쟁에 나선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에[53] 이런 차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어서 딱히 구별하기는 힘들지만 어느쪽을 더 중시해서 투쟁에 참여하고 있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입장이 갈리고 있다.
거의 매년 조직적인 투쟁을 통해 TO확보를 시도한 교대에 비해[54] 10년이상 각자의 입장차이 때문에 통일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각개격파되어 온 사범대에서 뒤늦게 투쟁을 하려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명분론보다는 현실론을 강조하여 투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려고 하는 성향이 생기게 되고 투쟁이 계속 이어지면서 이런 상황은 더욱 심해져 상경 투쟁 관련 학내 논의에서 '여러분 밥그릇이 걸린 문제니 무조건 참여해야 합니다'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현실론적 입장의 강조는 투쟁과 집회라는 단어에 대해 혐오감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중고등학교를, 그것도 대다수가 투쟁과는 인연이 먼 조용하고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해왔을 신입생들에게 상당히 당혹스러운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경우가 많으며,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같은 일이 사회의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요즘 안그래도 중요시되었던 교사의 도덕적 자질이 한층 강조됨에 따라 현실론적 관점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많은 상황이다.
2017년 초등교원임용경쟁시험 대란에서 교대가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지만 오만 욕을 먹고 이미지가 대폭 깎이는 등 장기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 이를 볼 때, 사범대에서 TO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워보인다.
9. 사범대학을 졸업한 유명 인물
교원 자격증 문서에 더 자세히 기술되어 있으니 해당 항목을 참조하자.10. 부설학교
자세한 내용은 부설학교 문서 참고하십시오.11. 과거의 사범계열 교육기관
- 고등사범학교: 이쪽은 중고교 교사뿐 아니라 교수 양성 또한 겸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 여자사범대(2년제): 과거 대학에는 여학교 교원을 양성한다는 취지에서 2년제 여자대학교 또는 여자고등교육기관이 있었다. 이들은 2년제 대학이었다가 4년제 대학으로 전환하기 위한 대학 행정의 일환에서 사범대로 전환하였는데 서원대학교 사범대학(당시 청주여자사범대학)(1973년), 상명대학교 사범대학(당시 상명여자사범대학)(1965년), 성신여자대학교 사범대학(당시 성신여자사범대학)(1965년) 등이 해당한다. 당시 모두 단설 여자사범대학이었다. 이후 종합대학으로 성장한다. 세종대학교의 전신도 수도여자사범대학으로 1954년 2년제로 시작하여 1961년 4년제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세종대의 경우 남녀공학 종합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범대를 유지하지 않고 폐지하였다.
12. 여담
- 사범대학은 창업 등으로 금전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다른 단과대에 비해 적고, 사범대학 졸업생들 진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교사가 큰 돈을 벌기는 어려운 직업이어서 졸업생들의 기부가 적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과대학 건물의 시설 수준이 열악한 경우가 매우 많다. 에어컨도 중앙집중식이 아니라 간혹 가다가 시골 여인숙에서나 쓰는 6평용 창문형 에어컨, 난방시설도 라디에이터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 바로 옆에서 줄줄이 산학협력으로 올라가는 공과대학 건물이나 졸업생 기부로 올라가는 법과대학, 경영대학 건물을 지켜보노라면, 쓰러져 가는 사대 건물은 실로 눈물을 짓게 만들 뿐이다. 물론 모든 학교가 이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또한 경영 논리에 희생되어 학과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 교직과정, 교육대학원은 교육부에서 승인한 사범계열이 아니다. 다만 교육부로부터 사범대학을 인가받지 못한 사립대학이 일반 단과대학을 통해 교육부에서 정한 소정의 교직과정으로 교원자격증을 발급하였는데 이곳을 일반대학 교육과라 한다.
- 대구대학교(당시 한국사회사업대학교)는 다른 케이스로 신설되었다. 1962년에 특수교육과를 신설 후에 특수교육학부 소속으로 여러 교과교육 전공을 두어 운영해왔고, 사실상 사범대학처럼 운영되다가 1981년에 대구대학교로 교명변경 후에 사범대학이라는 단과대로 분리되는 과정에 교육학부 산하의 개별 교과교육 전공들이 독립하여 만들어진 케이스이다.
- 대체로 4학년 1학기 기말고사 직후 임용 특강을 개설하여, 전공 교수가 기출 문제를 풀이하거나, 관련 용어 및 공부법을 강의한다. 교수가 유인물을 나눠준다면, 이를 전공 과목의 힌트, 요약정리 등으로 간주하여 전공 공부에 이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임용고시의 인터넷 강의를 듣고 전공 과목을 예습해서 전공 학점을 잘 받는 사례와 유사하다.
- 의외로 사범대 학우들 사이에서도 사건사고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원광대 국교과 및 체교과의 사건이 있다. 원광대 말고 타 학교들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수준으로 훗날 청소년들을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군기라는 명목으로 후배들을 괴롭힌다면, 이는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 교원 자격증 발급은 교육부의 소관이며 졸업한 학교에서는 이를 법률에 따라 위탁 받아 진행할 뿐이다. 교육대학, 사범대학 및 교육대학원이 교원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필수과목 등을 정하는 것은 교육부의 권한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사범대학 관계자들이 받는 공문은 교육부에서 바로 날아온다.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교원자격무시험검정원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것도 교육부에 직통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 사범대학 졸업요건으로 교육봉사활동 시간이 있어서 꼭 교육봉사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쌓아야 한다. 원래는 입학 이전, 그리고 휴학중에 쌓은 봉사활동 시간은 절대 인정받지 못한다고 알려졌지만 학교에 따라서 인정을 해주는 경우가 있어서 미리 문의를 하는 것이 좋다. 단, 교육봉사활동 1 과목을 따로 개설한 경우에는 이를 이수한 후에 하는 교육봉사 시간만 인정할 가능성이 거의 100%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래 사례도 교육봉사 1을 이수한 이후에 했을 가능성이 크다.
- 사회복무요원으로 학교나 아동센터에서 근무한 학생들이 연가처리 후 출근하여 평소 하던 일을 하는 대신 봉사활동으로 처리, 소집해제 및 복학 후 확인서를 제출하여 교육봉사로 인정 받은 사례가 있다. 처음 사범대에서는 난감해하며 교육부에 질의까지 한 결과 인정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55] 물론 정상적인 방법은 재학 중의 봉사활동이다. 대체로 교생실습이 있는 학기에 교육봉사활동 1~2 과목을 수강신청하고, 증명 서류를 학과 사무실에 제출한다. 지역아동센터(아동복지센터), 청소년수련원, 자활센터, 학교, 병설유치원 등 비영리 기관 인가를 얻은 곳에서 교육 봉사시간을 쌓을 수 있다. 자원봉사를 해야 하므로,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이는 재능기부의 일환이지만,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56]
- 과거에는 사범대학 남학생들에게 현역병 근무를 6개월만 시키고 대신 3년간 교사로 근무하게 하였다.
13. 관련 문서
[1] 여기서 중등학교란 중, 고등학교를 의미한다. 대학교는 고등교육기관이다.[2] 전공과목 백분위 평균 75 이상, 교직과목 백분위 평균 80 이상 등[3] 경력 3년을 채우고 연수를 마치면 1급으로 승격된다.[4] 단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학과 명칭에 대해 그렇게 볼 뿐 교과교육학은 엄연히 별도의 학문으로 대우받고 전문성을 가진다.[5] 일례로 연세대학교는 현재까지도 사대가 정식으로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체육교육과의 명칭이 교육과학대학 소속 체육교육학과며, 충남대학교에는 사대가 정식으로 설치되지 않았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학과 이름을 기술교육학과, 수학교육학과 식으로 명시했으나, 정식 인가를 받고 출범식을 한 이후로는 학 자를 빼서 명시하고 있다.[6] 194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으로 통합개편. 당시 교사는 서울시 중구 을지로 5가 40번지에 위치했다. 서울대학교 용두동 사범대는 1954년 12월부터 1975년 2월까지 있었다가 관악으로 이전하게 되었다.[7] 1952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으로 통합 개편.[8] 한동안 유일한 단설 국립사대로 존재하다 1991년 공주대학교 사범대학으로 개편.[9] 서울사대, 대구사대, 공주사대. 공주사대는 이 중 유일하게 일제강점기 이후에 개교 했으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경성사범학교와 대구사범학교가 발전해 탄생한 서울대와 경북대처럼 공주사범학교와 갈라지는 부분이 있긴 하다. 당시 공주사범학교(현 공주교대)의 교장과 공주사범대학(현 공주대) 학장이 같은 점이나 교사(校舍)를 공동으로 사용한 점 등이 있다.[10] 당시 명칭은 공주사범대학.[11] 즉 법률상으로 2년제 교육대학은 초등 교원을 양성하고, 4년제 사범대학은 중등교원(중학교, 고등학교)을 양성하는 형태가 확정되었다. 이때 54년 중학교 교원 양성을 위해 사립대에 허가된 수도여자사범대(현 세종대)가 4년제로 승격되고 1955년 중학교 교사 양성을 위해 설치된 2년제 부산사범대학과 광주사범대학이 초등교원양성으로 격하되었다. (부산사대는 이후 62년 부산대로 합병후 63년 부산교대로 재분리, 광주사대는 63년 광주사범학교랑 합쳐 광주교대가 되었다.) 교육대학은 1982년이 되어서야 4년제로 승격되었다.[12] 이 때 설치된 국립사범대학들의 졸업생들은 1990년 중등교원임용경쟁시험의 실시로 의무복무 및 우선임용이 사라지기 전까지 대부분 해당 지역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며, 해당 지역의 교육계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거점국립대학교 중 유일하게 충남대학교는 사범대학을 보유하지 못했는데 이는 같은 권역에 단설 국립사범대학으로 공주사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충남대학교는 숙원 사업으로 추진한 끝에 20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사범대학을 개설했다. 현재도 다른 거점국립대들이 가지고 있는 부설학교는 충남대학교에는 없어서 자신의 모교에서 교육실습을 나간다. 대신에 공주사대에 고등학교(공주사대부고)부터 중학교(공주사대부중), 특수학교(공주사대부특), 유치원(공주사대부유)까지 사범대가 개설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설학교가 개설되어 있다.[13] 지거국 + 공주사대[14] 1973년[15] 1966년 설치, 1998년 폐지 - 1997년 09월 29일 발간된 경희대학교 학보사에 따르면 경희대학교는 내부적으론 학부제로의 개편이 추진되었고, 외부적으로는 교육부가 교원양성의 수를 조절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종합적인 측면에서 2개 학과 밖에 없는 사범대학 보유가 경희대학교의 위상면에서 불리해 질 수 있다는 결정에서 자체적으로 사범대학을 폐지하였다.[16] 1972년[17] 1972년[18] 1968년[19] 1972년[20] 1973년[21] 1965년[22] 1966년[23] 1973년[24] 1971년[25] 1972년[26] 1965년[27] 즉, 사범대에 없는 과목.[28] 국립사범대 졸업자를 위해 처음 3년간은 모집인원의 70% 국립사대 우선쿼터를 적용해주었다.[29] 군대 전역자의 경우, 2년 가산[30] 여러 교과목을 담당하고 상치 교사 등의 해소를 위한 제도였다. 일례로 일부 시골학교의 경우 국어교사가 한문 과목까지 담당하곤 했다.[31] 부설학교는 각지역의 거점국립대에 설치되어있으나 대전-충남권은 충남대가 아닌 공주사대에 설치되어 있다. 충남대 사범대가 늦게 설치되었을 뿐더러 현재도 공업교육 중점이라 일반학교와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32] 해당 지역의 교육감이나 고위직도 그 지역의 국립사대 출신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예) 국립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출신인 김지철 충남교육감, 최교진 세종교육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출신인 강은희 대구교육감, 임종식 경북교육감[33] 서울사대, 경북사대, 공주사대[34] 그전만 해도 경기도 등에 학급당 45~50명인 과밀학급이 상당히 많았다.[35] 굳이 특성화가 아니더라도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문과 입결 최상위를 차지한 상경계열 학과들이 임용고시 상황이 악화되면서 점차 사범대와의 입결 격차를 벌리고 있다.[36] 물론 일반 4년제 대학의 경우 그 대학에 간호학과와 사범대가 동시에 있으면 입결이 비슷한 편(최상위 명문대에서는 하위과, 하위권 대학에서는 상위과) 이다. 참고로 같은 대학에 이들 학과가 동시에 있을 때 지거국 윗급 대학에서는 간호대보다 사범대가, 지거국 아래로 갈수록 사범대보다 간호대가 높아지는 대체적인 경향이 있다. 다만 간호학과는 일반 4년제 뿐만 아니라 전문대학에도 상당히 많이 설치되어 있으며 전문대 간호학과 중 입결이 쳐지는 곳은 학과 위치랑 별개로 상당히 점수대가 내려간다.[37] 물론 소신을 가지고 최상위권 학교의 사범대에 진학하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하지만, 학교 네임만 보고 입결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범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 졸업 후 로스쿨이나 고시, CPA 등 교육과 전혀 상관 없는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38] 인원이 적은 과는 동일계열을 명목상 한 학과(예:과학교육과)로 통합하여 유지하지만 전공수업이나 학생회 등은 과목별(예: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따로)로 돌아가므로 해당 과목만으로 축소하면 전 학년 총원 40명 이하가 된다.[39] 물론 예외도 있는데, 일례로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의 경우 공식 정원만 해도 58명에 정원 외 입학생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난다.[40] 참고 1, 참고2. 이는 국립사대 의무발령 시절 서울, 경기지역을 담당하는 거점 국립대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정원이 서울, 경기의 많은 인구에 비해 적고, 그 중에서도 상당수가 고시 등 비 교직으로 빠지는데다가 교직으로 나가도 서울에서만 응시했기 때문에 가까운 공주사대를 끌어왔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주사대 출신들의 임용시험 응시지역이 대전세종충남으로 편중되는 현상이 심해져 예전만큼 경기도 일대에 진출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교원대의 존재와 IMF 외환 위기 이후 서울 및 경기지역 사립사대의 교직진출이 활발해진 것이 한몫했다.[41] 사범대학이 있는 국립대학교에서는 지역 학교와 연계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기숙사 신청 등 봉사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경우 사대생들은 학교 또는 교육과 관련한 봉사활동을 선호하는 편이다.[42] 오히려 전공 선택 강의가 최소 인원 미달로 폐강되어 학점이 꼬이는 경우가 있다.[43] 단 교원 자격증을 받기 위해선 전공과목 평균 75점, 교직과목 평균 80점 이상을 총족해야한다.[44] 실제로 사범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들의 경우 학부는 사범대학 출신이어도, 대학원은 교과교육학 전공이 아닌 이상 일반적인 학문으로 학위를 받기 때문에 일반적인 연구자와 동급이다. 사범대학에 일반대학원이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사범대학 교수는 소속만 사범대학이지 엄연히 소속 학과의 일반 학문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범대학 소속이면서도 학부, 석사, 박사학위가 모두 원 전공의 비사범대 학과인 교수도 있으며, 원래 학교에서는 사범대 소속 교수였다가 옮긴 학교에서는 일반학과 소속 교수가 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45] 이는 당연히 물리교육과, 생물교육과, 지구과학교육과 등에도 똑같이 적용된다.[46] 지구과학교육과가 특히 이 문제가 크다. 각각 다른 학과로 개설되는 지질학, 해양학, 천문학, 대기과학을 총망라하여 교육학과 함께 배우는지라, 이들 교육 과정에서는 필요 없는 과목이나 부분들이 꽤나 생략되어 있다. 한 예시를 들자면, 자연과학대학 지질학과에서는 화성암석학, 변성암석학, 퇴적학, 구조지질학 등의 과목이 각각 개설되어 있으나, 지구과학교육과에서는 이들 과목을 지질학1, 지질학2 이렇게 배우게 된다.[47] 다만 대학원은 전문연구직을 희망하는 이상 기본적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선택의 폭이 줄어든 사례라고만 하기는 힘들다.[48] 교육학 베이스가 있는 점 때문에, 많은 사범대생들이 교사의 꿈이 없거나, 임용 낭인이 될 위기에 이에 많이 도전한다.[49] 몇차례 있었던 상경투쟁에서 조직위가 밝힌 것에 따르면 과거엔 교대처럼 사범대도 대학연합조직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와해되어 버렸던 것이 최근의 흐름이 갈수록 사범대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점이 자극제가 되어 다시 부활시키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50] 좀 보충한다면 사범대도 전사련(전국국립사범대학학생연합)과 서사협(서울지역사범대학학생연합)이 있었다. 이름만으로 보면 서사협이 전사련의 하위단체처럼 보이지만 절대 아니다. 서사협은 서울지역(이후 경기,인천 등 수도권도 포함)의 모든 사범대 연합이라서 사실상 사립사범대 중심이다, 전사련은 국립사대의 연합이다(사실상 거점국립대학교 및 공주사대, 한국교원대가 중심이다. 서울대학교는 서사협, 전사련 두 위치를 공유하고 있지만 좀 국립대와 사립대 가교 포지션이다). 교육민주화라는 대전제에서는 공유점이 있으나 과거 국립사대 전원임용에 위헌청구를 한 것이 사립사대라서, 전사련과 서사협은 대전제는 공유하나 뒤로는 밥그릇싸움을 하는 조직일 수밖에 없다. 즉 교대처럼 단일한 구심점이 생길 수 없는 것. 사범대 단일조직이 와해된 데에는 이러한 태생적 차이가 작용했다.[51] 염세주의 혹은 비관주의적인 입장 역시 이곳에 포함된다.[52] 종합대학 상당수가 사범대를 가지고 있다 보니, 대학만 보고 온 학생의 수가 의외로 많다. 물론 사범대 내에서 볼꼴 못 볼꼴 다 보고 싫어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 외에 교육실습생 등을 하고 '나는 선생 체질이 아니다.' 싶어 중도 포기하는 학생들도 제법 있다.[53] 환경운동이나 민주주의 운동 등 시민운동의 경우 1차적인 이익원리에 얽매이지는 않으나 사실 이들도 넓게 보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다.[54] 그 덕분에 교육대학은 사범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55]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역 출신들에 대한 역차별이 우려된다. 똑같은 병역의무 수행인데 누구는 복무 중 퇴근 후나 주말 등 개인시간을 활용해서, 심지어 편법으로 복무시간으로 봉사활동 해결하고 남은 시간에 졸업요구 자격증까지 붙어서 복학 후 널널히 다니고, 누구는 개인 시간 없이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전역 및 복학해서 학기중에 바쁘게 해결해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실제로 모 교육청의 임용고시 초수합격자 남성의 적지 않은 비율이 군복무를 현역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행했다고 한다.[56] 단 교통비, 식비는 비용 보조이므로 따로 받을 수 있으며 자원봉사로 인정되지 않는 범위의 일을 같이 하는 경우 이에 대한 수당 역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