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전은 문화의 불모지라고 불릴 만큼 특유의 문화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다. 최근엔 노잼 도시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됐는데, 울산, 광주와 더불어 노잼 도시 3대장 중 첫째를 맡고 있다. 그나마 울산은 바다도 있고 바로 옆에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을 끼고 있으며, 광주는 나름의 독특한 식문화와 특산물이 있는 반면, 대전은 고유의 뚜렷한 식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어가 눈에 띄게 독특한 것도 아니어서 정말 내세울 것이 없다.
이는 비단 대전만의 문제가 아닌데, 원래 충청도 자체가 뚜렷한 정체성이 없다. 북쪽으로는 경기도와 강원도, 동쪽으로는 경상도, 남쪽으로는 전라도와 맞닿아있는 탓에 지역 내에서 통일된 문화가 나오기가 힘들었고[1], 과거 충청도에서 가장 컸던 충주의 경우에는 오늘날의 대전[2]과 마찬가지로 교통의 허브 역할을 했었기에 뚜렷한 지역색을 갖기 어려웠다고 한다.[3] 근대화 이후엔 유일한 도로와 지리적 입지로 인해 외지인의 유입 역시 많아 외부 문화와 많이 섞이기도 했고, 남북 분단이 지속됨에 따라 수도권에서 가까우면서 국토의 중앙이라는 이유로 대덕연구단지나 정부대전청사 등 외부 기관의 이전과, 그로 인한 수도권 출신의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된 점 역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4] 전국에서 처음으로 엑스포를 개최한 적이 있기는 하나, 현재는 그렇다할 성과를 내지는 못 하고 있다. 그렇기에 꼭 대전에 와야지만 즐길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이유에서 울산이나 광주보다 노잼이라는 이미지가 더 커졌으며, '노잼 도시 = 대전\'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또한 교통의 발달로 서울 접근성이 무척 좋은 데다가, 서울에서도 각종 공연예술 등이 강남지역에 많이 분포하는 바람에 강남 접근성으로 보면 수도권 북부지역과 그리 큰 차이도 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거나 행사를 유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재미가 필요하면 서울 갔다 오면 되지 하는 분위기가 점차 늘어나는 것도 한몫 한다.[5]
반면 대전 사람들도 이런 노잼이라는 이미지를 싫어하는 듯하면서도 나름 즐기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대전하면 성심당이랑 교통과 관련된 얘기밖에 나오지 않았던 반면, 최근엔 노잼의 이미지가 커지면서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각종 미디어에서 주목을 받으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니 아무래도 인지도가 없는 것보단 좋다는 식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대전의 문화를 혼자 짊어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성심당을 필두로 '빵의 도시\'라는 타이틀과 '대전 빵문의 해\'를 추진하는 등 다양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이것이 빛을 발했는지 성심당 대전역점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또, 대전관광공사에서 시의 후원을 받아 202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빵모았당 축제도 많은 관심과 참여로 인해 매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으며, 참가자 중 절반 정도는 대전 이외의 지역에서 왔다고 한다. 또, 대전이 빵으로 유명해지다 보니 대전으로 빵지순례를 오는 빵돌이, 빵순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외에도 대전 출신 방송인들이나 대전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이 방송에서 대전이 칼국수로 유명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차츰 칼국수의 도시라는 인지도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2. 대중문화
대전에서는 문화 예술 활동이나 각종 사회 활동 참여율은 저조한 편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도 길거리 응원 열기가 타 광역시에 비해 낮은 편이었고,[6] 광우병 사태 때 촛불시위도 딱 한 번 경찰 통제 아래 별다른 충돌 없이 대전역 광장에서 충남도청까지 점잖은 시가행진을 하는 것으로 끝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무효 집회도 꽤나 평화로웠고. 유일한 예외라면 1987년 6월 항쟁 정도인데, 이때[7]는 비단 대전 뿐만 아니라 전국 대도시에서 넥타이부대니 대학생이니 할 것 없이 쏟아지던 때였으니.게다가 문화 관련 교육기관도 엄청 협소하다. 생활체육이나 음악 관련은 소수나마 있지만 그 외에는...답이 없다.
환경도 좋지 않고 사람들도 관심이 없어서 문화 행사를 열어도 반응이 무덤덤하다. 대전시민들 사이에서도 "대전은 문화 불모지"라며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할 정도. 이 때문에 예술, 공연계에서 절대 흥행 동원이 안 되는 지역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노라조가 공연을 와서 "대전사람들이랑 같이 달려 보는 게 소원입니다!"라고 하며 슈퍼맨을 부른 적이 있지만 같이 따라 부르는 사람이...
아마도 이는 충청도 기질 때문으로 보인다. 대체적으로 충청도 사람들의 특징이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며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
2.1. 공연과 전시
- 대전광역시 내 주요 공연장
- 서구
- 대전예술의전당 - 서구 만년동 둔산대공원 내 있으며 다목적 전용 공연장인 1,546석의 아트홀과 643석의 앙상블홀로 구성되어 있다. 대전에서 열리는 주요 대형 공연들은 주로 여기서 열리며 대전시립예술단 대다수도 여기에 상주한다.
- 대전시립연정국악원 - 서구 만년동 둔산대공원 내 있는 국악전문공연장으로 국악공연 말고도 다양한 예술 공연이 열린다. 750석의 큰마당과 338석의 작은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 평송청소년문화센터 - 서구 만년동 둔산대공원 내 있는 청소년문화센터로 799석 다목적 대극장인 평송홀과 317석 다목적 소극장인 어울림홀로 구성되어 있다.
- 서구문화원 - 서구 탄방동에 있는 구립 문화원으로 296석의 다목적 공연장인 아트홀을 갖추고 있다.
- 관저문예회관 - 서구 관저동에 있는 구립 문화원으로 254석의 다목적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 목원대학교 콘서트홀 - 서구 도안동 목원대학교 내에 있으며 504석의 공연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배재대학교 21세기관 - 서구 도마동 배재대학교 내에 있으며 1,200여 석의 다목적홀인 스포렉스홀과 400석의 공연장인 콘서트홀로 구성되어 있다.
- 유성구
- 충남대학교 정심화국제문화회관 - 유성구 궁동 충남대학교 대덕캠퍼스 내에 있으며 1,817석의 다목적 공연장인 정심화홀과 450석의 백마홀로 구성되어 있다.
-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강당 - 유성구 구성동 한국과학기술원 본원 내에 있으며, 1,100석의 다목적 강당인 대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 대전컨벤션센터 - 유성구 도룡동에 있으며, 전시장이지만 주로 유명 대중가수 콘서트가 주로 열린다.
- 중구
- 대전예술가의집 - 중구 문화동 옛 시립연정국악원 자리에 재건축한 복합문화시설로 140석 전동식 수납형 객석 등 총 340여석 좌석이 있는 공연장 누리홀로 구성되어 있다.
- 대전음악창작소(믹스페이스) - 중구 대흥동에 있으며 419석의 음악 공연장인 다목적홀을 갖추고 있다.
- 동구
- 대전청소년위캔센터 - 동구 원동에 위치한 청소년수련관으로 402석의 다목적 공연장인 대강당을 갖추고 있다.
- 우송대학교 우송예술회관 - 동구 자양동 우송대학교 서캠퍼스 내에 있으며 1,189석의 다목적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 대덕구
공연을 보면 충청권을 염두에 둔다면 행사가 인근 다른 대도시인 충남 천안시나 충북 청주시로 돌려지는 경향도 있다. 최근에는 좀 나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객석 점유율은 애매하다.[8] 게다가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가까운 비수도권 광역시[9]이므로 소수의 열광적 참여자들은 서울에서 하는 공연문화를 감상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전보다 인구가 30~50만이나 적은 수원-창원-울산에서 문화공연을 해도 대전보다 인구 대비 많은 인원이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전이 공연 시설/인프라 면에서는 타 광역권에 비해 모자라지 않지만, 대전 특유[10]의 방관적 태도와 문화 전반에 대한 건조한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 중앙로 일대에 몇몇 연극용 사설 소극장들이 개장하여 서울 대학로의 흥행작들이 라이선스로 공연되고 있는데 적어도 주말에는 만석인 편이다.[11]
음악 공연장의 경우 문화의 불모지 축에 드는 곳 답게 2010년대 이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클럽이 대세인 유흥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성인)나이트클럽/캬바레가 다수를 차지하고 EDM클럽은 별로 없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클럽 하면 이비자 정도를 들 수 있다. 클럽에 대한 설명은 대전광역시/클럽 참조.
1970년대 당시 백두산의 유철상이 회고하길 '유성 관광호텔 나이트클럽'이 의외로 인기였다고 한다. 대마초 파동때 유일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연장이었다는 후문. 다만 소규모 공연장은 빈약하기 그지 없어서 1990년대 후반에야 생겼을 정도고, 2000년대에는 헤비/하드록 중심으로 융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탈대전 성향이 강해서 진정한 의미의 대전 씬은 아예 없었다고 주장하는 현지 뮤지션도 있다. 2010년대 초반부터는 그나마 그린빈버찌라이브하우스 같은 곳이 생기는 등 좀 나아진 편. 출처
- 대전광역시 내 주요 미술관
- 서구
- 대전시립미술관 - 서구 만년동 둔산대공원 내 있으며 대전은 물론 중부권 내 공립미술관 중[12]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지하 개방형 수장고를 갖추고 있으며 1993 대전 엑스포 당시 재생관에 전시되었던 백남준의 '비정수의 거북선'을 상설 소장하고 있다.
- 이응노미술관 - 서구 만년동 둔산대공원 내 있으며 시립미술관 바로 옆에 있다. 시 산하 재단인 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주로 이응노 화백 작품 위주로 전시소장하고 있으나 다른 국내외 작가들 작품들도 전시된다.
- 대전엑스포시민광장 아트센터 - 서구 만년동 둔산대공원 내 있으며 주로 기획전시 위주로 운영된다.
- 유성구
- 여진불교미술관 - 유성구 전민동에 있으며 조계종 여진불교문화재단 산하 미술관으로 불교 미술 작품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
- 아주미술관 - 유성구 화암동에 있으며 사설미술관으로 아시아 각국의 예술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중구
- 대전예술가의집 - 중구 문화동 옛 시립연정국악원 자리에 재건축한 복합문화시설로 8개의 소규모 전시 공간을 갖추고 있다.
-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창작센터 - 중구 은행동 근대 문화유산인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남지원 건물을 개조한 대전시립미술관 분관이다.
- 동구
미술 전시의 경우 주로 대전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상설전시와 굵직한 특별전 등이 이뤄지며 이밖에도 대전시립미술관 바로 옆에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들을 소장 및 전시하는 이응노미술관과 대전엑스포시민광장 아트센터 등이 있다.
화방이나 갤러리 등은 주로 중구 대흥동 일대에 모여있고 주요 지역방송국이나 대전 주요 백화점 내에 소규모 자체 갤러리가 위치하고 있다. 차후 중구 선화동 옛 충청남도청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대전관이 조성될 예정이다.
2.2. 영화
- 대전광역시 내 소재 멀티플렉스 영화관. 굵은글씨는 직영관.
- CGV 6개관
- 대전 - 중구 문화동 세이백화점 세이 투 관에 위치, CGV 첫 충청지역 지점이자 직영점이다. 대전 내 영화관 중에서 가장 크며[13] 4DX, IMAX, 4DX, ScreenX, 아트하우스 등의 특별관이 있다. 연식이 롯데시네마 괴정점 다음으로 오래되었지만, 2회의 리뉴얼을 통해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
- 대전터미널 - 동구 용전동 대전복합터미널 동관에 위치, CGV 대전지역 두번째 직영점으로 대전점과 함께 CGV 양대 플레그쉽관이다. 복합터미널 자체는 동구에 위치해 있지만, 도로 하나 차이로 대덕구라서 대덕구 남부 수요도 겨냥하고 있다. 특별관으로 4DX관이 있으며, 2023년 추가 리뉴얼로 IMAX Laser와 ScreenX PLF가 생겼다.
- 대전탄방 - 서구 탄방동에 위치, 20m 바로 옆 로데오타운에 메가박스가 있으며 특별관으로 ScreenX가 있다.
- 대전가오 - 동구 가오동 소재. 구 롯데시네마 대전가오, 희한하게도 홈플러스 가오점에 입주해 있다.
- 유성노은 - 유성구 노은동 소재. 과거 씨네위가 자체 브랜드로 운영하다 CGV 브랜드로 변경한 위탁관.
- 대전가수원 - 서구 가수원동 가수원네거리 인근 KD U 프라자에 입주해 있다.
- 메가박스 5개관
- 대전 - 서구 탄방동 로데오타운에 위치, 씨너스 대전 이였으며 구 씨너스 직영점 중 하나였다. 여담으로 대전 소재 헌혈의 집에서 헌혈을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영화관람권은 이 곳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메가박스가 하는 각종 라이브뷰잉은 이 지점이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20m 옆에 CGV 대전탄방점이 있다.
- 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 - 2021년 8월 27일 대전신세계 Art & Science 내에 입점. 충청권 최초 Dolby Cinema와 THE BOUTIQUE관 입점. 이곳의 Dolby Cinema는 충청권 최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 대전현대아울렛 - 유성구 대덕테크노벨리 내 현대프리미엄아울렛에 7개관이 입점했다. 대전 최초 Dolby ATOMS(구 MX관) 입점점이다.
- 대전중앙로 - 2019년 4월 17일부터 번화가인 중앙로(중구 은행동)에 메가박스가 신규 지점을 오픈하였다. 도시철도 중앙로역 4번 출구가 가장 가깝다.
- 대전유성 - 유성구 온천동 소재. 유성온천역 1번 출구 쪽 센트럴프라자로, 구 CGV 유성온천점을 2020년 3월에 인수해 바꿨다.
대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화관은 CGV 대전이며 대전에 첫번째로 생긴 CGV이다. 리뉴얼 이전에는 2천석이 넘는 엄청난 규모이였으며 현재 리뉴얼 뒤에도 1,830석으로 대전에서 가장 큰 멀티플렉스다. IMAX, 4DX, ScreenX, 아트하우스 등 특별관이 위치해있다.
CGV세가 타 도시보다 매우 강한데, 메가박스가 2010년대 들어 치고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다.[15] 대전에도 1990년대까지 10여개 이상 단관극장들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망하기 시작하더니 대전 최초의 멀티플렉스인 롯데시네마가 2000년에 롯데백화점에 생기고 결정타로 2001년 비교가 안되게 엄청나게 큰 CGV 대전이 생기고 나서 멀티플랙스로 리뉴얼한 MCV 아카데미빼고 옛날부터 명맥을 이어온 단관극장들은 모조리 멸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았던 대전의 향토 대형영화관이자 대전역-은행동 권역의 유일한 멀티플렉스였던 MCV아카데미마저도 입지상의 한계 및 시설 낙후, 줄어든 관객을 버티지 못하고 2016년 7월 31일부로 폐업을 하고야 말았다.
반면 롯데시네마는 점차 세가 약해지고 있다. 현재 롯데시네마는 전부 서구에 몰려있으며, 그나마 동구 가오동에 있던 지점은 CGV로 전환되었고 인지도도 타 멀티플렉스보다 떨어지는 편이다. 이는 롯데 계열사 전반이 충청권에서 부진한 탓도 있지만, 대전에 진출한 롯데시네마가 입점한 건물의 위치와 특별관 등이 부실한 면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예전에는 롯데시네마와 독점 계약을 맺어 애니 덕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롯데시네마에 갈 수밖에 없었으나,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롯데시네마에서 벗어나 주로 메가박스 독점작으로 이주하기 시작해서 앞날이 결코 밝지는 않다.
그밖에 예술영화전문극장인 대전아트시네마 등이 있으며 CGV 대전에 예술영화 전용특별관인 아트하우스가 위치하고 있다. 대덕구는 멀티플렉스가 대전 5개 자치구 중에서 유일하게 없다.[16]
2.3. 도서관
공공도서관은 21곳이 있다(한밭도서관 홈페이지의 정보검색-자료검색 코너 참조). 동대전 쪽에 밀도가 좀 높긴 하지만 그럭저럭 대전 전역에 고르게 설치되어 있다. 네이버 지도검색 참조. 근데 여기는 공공도서관이라 치니 17곳이라 나온다? 대표적인 곳은 한밭도서관, 가양도서관(구 문화정보관), 갈마도서관 등이 있다.특히 한밭도서관은 시립 공공도서관답지 않게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무려 장서수가 85만권으로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큰 정독도서관과 남산도서관 보다 크며 부산에서 가장 큰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보다 더 크다. 나머지 공공 시립도서관은 대체적인 규모는 그럭저럭한 규모이며 각 구에서 운영하는 구립도서관의 수준은 원래 규모가 다소 작다는 점을 고려해도 상당히 열악한 곳이 많다. 특히 근처에 대학도서관을 갖춘 4년제 대학이 있는 경우에는 이게 심한지라 대학도서관을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이러한 도서관 환경 덕분에 대전은 도서관이 가장 많이 이용되는 도시 중 하나다.
2.4. 서점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전국구 대형 서점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이 있다. 2007년까지는 중구청역과 연결된 교보문고 빌딩 지하에 교보문고 대전점이 있었고, 당시 잘나가던 문경서적을 몰락시켰다. 그러다가 보유서적을 계룡문고에 넘겨주고[17] 천안의 대학생 수요가 넘쳐 흐르는 천안종합버스터미널로 갔다. 이후 대전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교보문고 지점이 충남대학교 제1학생회관 2층 구내서점이었지만, 2015년 10월 23일자로 계약 종료되어 폐점되었다. 이로서 2015년 10월 이후 대전에는 교보문고가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그러던 것이 2016년 7월 8일 둔산동 타임월드 근처에 교보문고가 다시 들어왔다. 한 층 전체를 사용하는 규모이며, 이전 교보빌딩 지하에 있었던 교보문고보다 매장 규모는 작지만 더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지역구 최대 규모이지만 매번 콩라인인 대훈서적은 2009년 말에 부도로 문을 닫았다. 원래는 규모 면에서 문경서적보다 못했고, 대전지역 1위 규모였던 문경서적이 2003년 망하면서 한동안 교보문고가 대전 1위를 먹은 적이 있었다. 대훈서적이 부도났던 이유가 시청점을 열면서 무리하게 차입경영을 했던 것도 있지만 회장님이 북한서적 덕후여서 그런 것도 있었다. 실제로 북한 책 전문 코너가 있었고,[18] 이 서점에서 북한판 황진이 소설(홍명희의 손자 홍석중 저)을 출간한 적이 있었다. 대훈서적이 있던 곳은 타임문고는 교보문고에게 밀려 2018년 12월 31자로 폐점되어 분점인 시청점으로 통합되었고 같은 계열의 세이북스는 홈플러스 둔산점에 이어 세종점, 인천에 송도점을 오픈하며 세력을 확장하였다.
지금은 교보문고의 서적을 인계한 대전테크노파크 디스테이션[19] 지하의 계룡문고가 유명하며 2011년 12월 말 대전복합터미널에 영풍문고가 들어와서 전국구 서점이 다시 생겼다. 그리고 2017년 7월 유성구 봉명동에 매드블럭이 생기면서 영풍문고가 하나 더 생겼다.[20]
사실 이는 대전 시민이 책을 잘 읽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대전은 인구당 서적 구매 비율이 서울 다음으로 높은 도시다. # 당시 상황이 대훈서적에 매우 불리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교보문고, 문경서적, 계룡문고가 1위 쟁탈전에 나섰기 때문에 열세인 대훈서적에게는 어려운 시기였다.
대전지역 한때의 1위 서점이었던 삼성생명빌딩[21] 지하의 문경서적과 이를 빼앗은 교보문고, 지하의 교과서 전문코너와 대량의 학습지 코너로 탄탄한 고정수요를 갖고 있던 계룡문고가 서로 1위 자리를 가져가면서 여기에 있던 서적들은 인수인계를 거치며 수난을 많이 겪었다.
참고로 당시 대훈서적 가운데에 한 개의 계단이 있었는데,그 계단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대훈서적 교과서 전문 코너였고 위로 올라가면 홍명서적 본점이었다.정확히는 2층으로 올라가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한쪽은 홍명서적, 한쪽은 박서방 옛 본점(!)이 있었다. 지하 교과서 코너에는 교과서 외에 상당수의 성경과 찬송가책도 배치했었다. 만일 대훈서적이 문경서적이 파산한 이후 대훈서적이 문경서적 자리와 입지를 동시에 차지하려다 돈문제로 허덕이다 파산할 즈음에 진출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일단 2008년에 계룡문고가 구 문경서적 자리를 차지하고 옛 문경서적의 입지에 오른 상태이며, 대훈서적은 망하고 그 자리에 베스트프랜드북이라는 서점이 들어와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2012년 2월부로 폐점하고 자리를 은행동 KFC 건물 2층으로 옮겨 은행문고로 상호명을 바꾸며 재개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폐점하고 그 자리에 만화카페가 만들어졌다. 실제로 만화카페에 가보면 은행문고는 폐점하였으니 착오없길 바란다는 문구가 있다.
일단 홍명서적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지하의 교과서 코너으로 통하는 부분이 폐쇄되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대전에서 유명한 불교상인 보문불교상이 바로 옆의 헌책방과 자리를 바꾸는 동시에 확장 공사를 하면서 보문불교상 측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창고로 쓰고 있다. 베스트프랜드북 위층을 쓰고 있었던 홍명서적은 옆 건물의 금은방인 보성당 2층으로 이사하였다.
2011년 말 대전 동구의 복합터미널 완공과 더불어 이마트 대전터미널점과 같이 영풍문고가 들어왔으며, 한 때 영풍문고가 들어오면 대전의 서점계에 후삼국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였으나 대훈서적이 망하면서 무산되었다. 영풍문고 바로 옆이 대전복합터미널이고 계룡문고는 중앙로역에서 200여m거리에 있다.
철수했던 교보문고가 2016년 7월 8일에 다시 오픈하였다. 갤러리아 타임월드 건너편 명동프라자 3층에 약 560평 규모로 계룡문고와 영풍문고에 맞먹는 규모로 생긴다.
알라딘 커뮤니케이션의 알라딘 중고서점도 두 곳 있는데, 중앙로역 인근의 대전은행점과 시청역 부근의 대전시청역점이다.
참고로 대덕구에만 네임드 서점이 존재하지 않는다.[22]
2.5. 덕질
만화책/라이트 노벨/서브컬처 서적의 경우, 계룡문고와 영풍문고의 만화책 코너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앞서 자주 언급된 홍명서적과 오직 용문역 인근의 PSB(박서방)뿐이다. 박서방은 대전에서 1995년에 시작해 현재까지도 20년이 넘도록 운영중인 역사가 오래된 매장이며 만화와 라이트노벨 외에도 플라모델과 피규어, 에어소프트건도 취급하는 복합 덕질 매장이다.[23] 그 외 건담 프라모델, 피규어 판매로 전국구로 이름이 있는 언플러그몰 매장이 지하상가 은행동 지하상가에 위치해있다가 지상으로 확장 이전하였다.[24]하지만 그 때문에 서적의 다양함은 홍명서적이 좀 더 나은 편이다. 일례로 홍명서적은 한국과 일본 만화 외에도 미국 그래픽노블을 비롯한 서양권 만화와 덕질 관련 일반 서적(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기반 소설, 도해 시리즈 등)이 각각 별개의 진열대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의외로 밀덕 책들도 잔뜩 들여 놓는다.
박서방의 경우 다양성보다는 일본 라이트 노벨과 만화책 등에 초점을 맞춘 편이며, 중고 만화책을 매입해 재판매한다는 특징이 있었지만, 현재는 중고 매입을 중단한 상황이다.
박서방은 프라모델과 일본 서적 및 중고 서점을 중심으로 2층 전체를 사용하던 큰 매장이었지만 2010년경 2층의 절반을 신한은행에 떼어주고 규모를 줄였으나, 2013년 즈음 옆 건물로 이전하면서 그 이외에 다양한 물품을 추가로 취급하면서 다시 규모가 늘었다.
일반적으로 서적을 사러 간다면 홍명서적을, 그 외에 굿즈 관련해서는 박서방을 가는 것이 좋은 편이다.
여담이지만 박서방은 대전바닥 동인녀들에게는 천국이다. BL(!!)류 소설, 만화책이 일부 공간을 전부 차지하고 있다. 또한 굿즈들의 경우 Fate 시리즈나 원피스,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품목이 제법 많은 편이여서 남성뿐이 아니라 여성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대전역-대전천 지하상가에 해외 원서를 취급하는 해풍사(海風社)라는 수입서점이 아직까지 잘 운영중이다. 세일러 문 등 고전 작품의 포스터나 고전 일본서적 및 잡지 등을 여전히 보유하면서 찔끔찔끔 판매하고 있다. 손님도 몇 없어 보이는 곳인데, 어떻게 굴러가는 곳인지 참 의아한 곳이다.
범위를 넓혀서 서브컬처 전반 매장들의 경우, 상술했듯 용문동에 박서방이 서적뿐 아니라 각종 오덕 굿즈를 취급한다.
2018년경에 으능정이 거리에 종합서브컬처 제이굿즈의 대전점이 생겼고, 2023년에는 성심당 본점 근처에 애니세카이라는 대형 서브컬처 매장이 개업했다.
이 외에는 아동과 대중적인 굿즈를 취급하던 가챠샵이 나왔으나 반짝 하다 사라졌고, 가챠샵에 있던 일부 가챠폰과 프리파라는 인근 가오스 게임센터로 이전되었다.
메이드 카페가 있었다. 다만, 본격적인 메이드 카페가 아니라 일부 대학생들의 취미 겸으로서 운영되던 카페였기에 불규칙적인 운영시간과 기타 요인으로 사라졌다.
또한 대전은 1년에 2번 대전 만화 페스티벌 일명 디쿠(DICU)가 열린다. 서울 코믹월드나 부산 코믹월드와 비슷한 대전 코믹월드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디쿠는 대전의 아마추어 만화 협회에서 대전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별도로 실시하는 만화 축제이다.
따라서 열리는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몇개의 후보군을 보유한 체로 섭외가 되는 장소에서 개최가 된다.
기본적으론 아마추어들의 굿즈 판매나, 코스튬을 보는 것이 메인이며, 정해진 시간에 맞춰 사전 신청자들의 노래나 현장에서 사람을 뽑아 골든벨을 하는 일정이다.
대전의 낮은 문화 참여율에도 제법 사람들이 모이는 편이지만, 전문적인 단체에서 여는 행사가 아니기에 진행이 비교적 다양하지 못해 특색은 적은 편이다. 그나마 서울 코믹월드 등과 일정이 겹치면 정말 한산해진다. 대신 서코의 북적임을 꺼리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디쿠 쪽을 선호하기도 한다.
2021년 7월에 중앙로에 애니플러스샵 대전 중앙로점이 새롭게 오픈했다. 메가박스 대전 중앙로점이 있는 빌딩 4층에 함께 입점해 있는데, 애니플러스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보통 메가박스에서 단독 상영을 하다 보니 애니플러스샵과 메가박스가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루리웹의 한 유저가 대전에서의 덕질 여행기를 올린 것이 있으니, 대전의 게임매장이나 어떤 서브컬처 전문점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글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대전] 대전 덕질 완벽가이드! 2023년 대전 덕질 여행!
2.6. 유흥 및 음반
열악하다라는 한마디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며, 수도권이나 부산권만 봐도 갑갑하기만 하다.앞서 설명했듯이 문화 불모지 취급을 받고 대전 시민들조차 자조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정도로 공연 수익이 나지 않는 곳 답게 처절할 정도로 없다.(...) 음반시장쪽에선 고작 신나라 레코드와 알라딘 중고음반 부스 2개만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2016년 교보문고가 다시 대전에 들어오며 핫트랙스를 볼 수 있을거란 희망이 싹텄으나 막상 입점하고 나니 고작 부스 하나 배치해놓은게 끝이라 좌절을 맛보였으며, 게다가 2020년 기준으론 대전 음반 시장의 핵심인 신나라 레코드까지 망해버리며 완전히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대전도 음반점이 많았던 때가 있었다고는 한다.
중구 은행동 으능정이 거리에 위치해있던 음반점. 유명 체인은 아니었지만 규모가 꽤 큰 편이었던지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수입 맥시 싱글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고 당시 플레이스테이션2 붐이 불었던 때라 플레이스테이션도 같이 판매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 중반에 재고정리를 하며 냄새를 풍기더니 결국 폐업. 현재 그 자리는 원더플레이스가 입점해있다.
중구 문화동에 위치한 백화점 세이에 입점해있던 음반점으로 처음 오픈시에는 대전 제일급의 규모를 자랑했다. 2001년 즈음까지 위세를 날리다가 점점 규모가 작아지고 cgv 옆 구석으로 쫓겨나기도 하고 그렇게 천덕꾸러기가 되더니 결국 폐점했다. 그래도 대전 내에서는 후에 언급할 신나라레코드와 함께 싸인회 등의 행사가 잦았던 매장이다.
서구 둔산동 갤러리아 타임월드 안에 자리하고 있던 음반점이다. 음반과 함께 악기까지 함께 판매하던 중간 규모의 매장이었으나 역시나 점점 규모가 줄어들더니 서점인 타임문고에 통합되었다. 그래도 타임월드 주차동 지하로 옮겨가 타임문고와 같이 입점했을 때에는 퀸의 리마스터링 앨범들이 모두 들어올 정도로 구경할 규모는 되었으나, 결국 사라졌다.
교보문고가 분점 1호로 대전에 자리를 잡으면서 함께 들어왔었다. 꽤 괜찮은 규모였다는 말이 있으나, 본체인 교보문고의 실적이 곤두박질치며 어느샌가 사라졌고 본체인 교보문고가 2007년 천안으로 옮겨가 버렸다. 그러다 2016년 7월 드디어 다시 교보문고가 돌아오며 둔산의 핫트랙스를 기대하였으나, 그런 거 없이 K-POP 최신 신보들과 디비디, 블루레이 몇 타이틀을 입구 근처에 배치해놓은 게 전부다. 이에 관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모양.
중구 은행동에 위치. 대전에 유일하게 자리잡고 있던 유명 체인 음반점이자 대전 음반 유통의 코어. 사이비종교 사업체라는건 알만한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그냥 어쩔 수 없으니... 시설은 좀 낙후되어보이고 규모도 생각보다 큰 편은 아니라지만 대전에서 유일하게 유명 아이돌들의 싸인회 등을 독점하다시피 개최하고 있었고[25] 가장 많이 음반이 들어오는 곳이여서 대전의 음반시장 중추이자 지역 아이돌 팬들의 성지 취급을 받았었으며, 그렇다 보니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소량 한정판 등의 음반들이 출시되면 대전 음반점 중에는 유일하게 입고가 된다고 봤었다.[26]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층은 가요 및 OST, DVD와 블루레이, 음향기기등을 판매하고 2층은 재즈 및 팝, 락 등을 구비해놓고 있었으며, 2층은 직원이 없어서 올라갈 때 1층 직원이 따라 올라가곤 했는데 요즘 수익이 시원찮은건지 아니면 컴플레인을 견디지 못했는지 폐쇄됐다.
이후 교보문고가 대전에 돌아오면서 둔산 핫트랙스 VS 은행동 신나라의 쌍벽이 이루어지나 했으나 교보문고의 음반 보유량이 원 시원찮으니까 신나라의 독주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였는데.... 2020년에 소리 소문 없이 폐점해버렸다. 아마도 요즘 세대가 음반 대신 MP3 다운로드와 인터넷 주문을 즐겨찾고 있어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데다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 더 다양한 장르의 음반에 책같은 다른 컨텐츠까지 풍부한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기며 경쟁력이 팍 죽어버린 와중에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재정난까지 겹치다 보니 더 이상 버티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27]
알라딘 중고서점 대전은행/대전시청역점
쬐끄만 음반코너가 있으며, 중고코너엔 요즘 잘나가는 팝스타들 신보나 락밴드의 대표작 등 있을만한 건 있다. 신품 중엔 구매하면 포스터 등 사은품을 제공하는 앨범도 있다.
중앙시장 중앙메가프라자(구 청년구단 건물) 라인에 중고 LP매장이 몇군데 있으며 7~80년대 발매된 음반들을 찾아 구매할 수 있고 장르에 따라 가게 주인에게 음반을 추천받고 들어볼 수도 있다. 보통 낮에 열리고 눈,비가 오는 날엔 습기 문제로 열지 않는다.
2.7. 게임
콘솔게임 판매점의 경우, 구도심에서는 과거 홍명상가가 있던 시절 대전판 용산이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예전에는 게임샵이 꽤 많았었는데, 홍명상가가 터지고 난 뒤 그 많던 게임샵들도 많이 사라졌다. 이 때 그 샵들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아 대전역-대전천 지하상가로 옮겨간 이 판의 초창기 맴버인 호키랜드와 만년동 테크노월드 전자상가에 생긴 코어전자가 이 일대 콘솔매장의 양대산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외에는 NC백화점 주변에 워커홀릭이라는 플레이스테이션 공식대리점이 있다.오락실의 경우, 구도심의 경우 예전에 한국 오락실이 그나마 흥성하던 시절, 은행동 번화가 역시 오락실이 꽤 많았었다. 1차 리듬 게임 붐이 일은 1999년 경만 해도 많은 수의 오락실이 성업하고 있었다. 그러다 전반적인 오락실 업계의 침체로 오락실들이 많이 사라졌으나, 다행히 2000년대 말부터 오락실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0년대 말에는 가족형 오락실 대형체인이 생겨서 오락실의 숫자 자체는 1990년대 수준 비슷하게 회복한 것으로 여겨진다.
구도심 이외의 지역의 경우, 대전 둔산 타임월드 초창기(대략 1990년대 후반)부터 상층부에 대형게임센터가 있었는데 그 규모가 입주하고 있는 층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매우 컸었다. 당시 대전 최대 규모의 게임센터로 추정되었는데 2000년대 중반(추정)에 오락실이 철거되었다. 이후로 타임월드 번화가에 오락실은 존재감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렇게 소규모의 오락실 하나 있는 상태였다가, 2016년에 좀 규모 있는 오락실이 생긴 듯하다. 다른 둔산 지역에는 챔프 오락실이 있으며, 동네 오락실이지만 둔산 거주자들이 선호하고 있다.
유성구의 경우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큰 호텔에도 오락실이 딸려있었다. 그중 리베라호텔[28] 지하 오락실의 경우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당시 한국에서 드물던 핀볼기계까지 가동했던 듯 하다. 유성호텔에도 오락실이 있었으나, 게임 라인업은 리베라호텔 오락실보단 상대적으로 떨어진 듯하다. 다만 호텔 오락실 자체는 유성쪽이 리베라보다 더 길게 영업한 듯하다. 아무튼 1990년대 말 호텔 오락실들이 사라지면서 유성 일대의 청소년 오락실은 자취를 감춘 듯하였으나, 2017년 가을 더벙커 게임존[29]이 생기면서 대전 최대급 타이틀을 다시 가져간 듯하다. 아무튼 유성권에 새로 등장한 화려한 오락실이라 유성-충남대학교 대학가권, 넓게는 둔산권 거주자들에게 있어서는 단물이나 다름없는 곳.
각 오락실들의 정보는 오락실/대전 참조. 이외에도 VR방도 몇 군데 성업 중이다.
2.7.1. 출신 프로게이머
대전광역시 출신 종목별 프로게이머 | |||
강선구 Blank [30] 최준식 Pirean [31] 김정민 Life [32]이재하 Mowgli [33]박도현 Viper [34] | 추가 필요 | 추가 필요 | 김성민 문선호 |
추가 필요 | 공진혁 Miro [35] 김세연 Geguri [36]이재혁 Carpe [37] 임시현 F4ze [38] 김영완 Creative [39] | 이병렬(저그) 김대엽(프로토스) 남기웅 이영호(테란 1.2) 홍진호(저그. 1) 김동주 진영화 한상봉(테란. 1) 양준식 | 홍승민 Daldda |
기타 인물 채민준 전 SPOTV 캐스터, 현 아프리카TV 캐스터 곽민선 전 SPOTV 아나운서 | |||
☆ - 대리 경력 존재 |
3. 언어
대전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비해선 서울말씨와 더욱 가깝게 들린다. 아무래도 충청도가 수도권 바로 밑에 위치해 있다보니 원래부터 억양 차이가 그리 심하지 않았거니와[40], 영호남에 비해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더 용이하기 때문에 왕래가 잦아지고 교류가 많아진 것 또한 이에 한몫했다.[41]또, 방언의 쇠퇴로 인해 대부분의 지방에서 세대가 지날수록 사투리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데, 충청 방언의 경우엔 서남 방언이나 동남 방언에 비해선 경기 방언과 공유하는 어휘들이 많았기에 남부 방언들에 비해 비교적 빨리 쇠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42][43]
충청권 최대 규모의 도시인만큼 외지인의 유입 또한 많았는데, 각종 연구소와 정부, 군사 기관으로부터 유입된 타 지역 주민과 더불어 수도권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대도시라는 점도 외지인 유입에 한몫했다. 그 결과 대전은 지방 광역시 중에선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본토박이의 비율이 25~30%로 가장 낮다.[44] 그리고 타 지방 광역시들은 외지인들이 대부분이 인근 지역민들이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지역 고유의 언어가 유지되고 있지만, 대전은 서울경기, 전라북도, 경상도 등 아예 충청권 이외 지역 출신의 비율도 상당하다.[45] 이러한 이유로 대전 지역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입지가 좁아지게 되어 이 지역만의 언어가 쇠퇴하게 됐다는 점도 들 수 있다.[46]
3.1. 사투리
노잼 대전 탈출 프로젝트 번외 | 랩에 충청 방언을 이용한 대전 출신 <머쉬베놈>의 충청도 억양[47] |
서울촌놈 대전편[48] |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기본적인 충청도 사투리 |
전국적으로 사투리가 소멸되어 가는 추세지만, 그렇다고 대전 사투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록 충청도 사투리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유"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49][50] 전라도나 경상도 지역에 비해 좀 더 표준어 내지 서울말에 가까울 뿐[51][52] 위의 영상처럼 알게 모르게 사투리를 쓰는 경우도 많고, <머쉬베놈>의 말투 및 억양과 비슷하거나, 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서울과 차별화 된 억양 역시 존재한다.
* '~여\', '~겨\'[53], '~려\', '~겄\', '~디\' 등과 같은 어미는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다. 단어의 경우엔 대부분 표준어로 대체해서 쓰지만, "댕기다(다니다), "대간하다(힘들다, 피곤하다, 고되다)"[54], "기다(맞다, 그렇다)"[55][56][57], 그리고 위의 영상에서 나온 "쩜매다(묶다)"[58][59] 등은 현재까지도 많이 쓰이고 있는 사투리 단어들이다.
- 발음 측면에서도 아직까지 충청 방언의 특징이 꽤나 자주 드러나는 편인데, 앞의 모음과 바로 뒤에 오는 모음이 둘 다 'ㅏ'일 경우, 뒤에 있는 모음이 'ㅓ'로 바뀌는 현상[60]과 'ㅏ'나 'ㅓ'가 'ㅐ'[61]로 바뀌는 현상, 'ㅓ'가 'ㅡ'[62]로 변하는 현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 대전 특유의 사투리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띠가다"와 "쫄때기살"이다. "띠가다"의 경우에는 "떼어먹고 (도망)가다"라는 뜻을 지닌 일종의 준말[63]로 대전 토박이, 그중에서도 50대 이상 세대에서 쓰이는 단어이다.[64] "쫄때기살"[65]의 경우에는 "돼지고기 사태"를 일컫는 단어로 꽤나 자주 접할 수 있는 사투리 중 하나이다.[66]
- 여담으로 대전의 편가르기 게임은 '우에시다리'인데, 이는 '위'를 뜻하는 일본어 '우에'와 '아래'를 뜻하는 일본어 '시타'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위'를 의미하는 단어인 '우에'인데, 충청 방언에서는 'ㅟ'에서 'ㅣ'가 빠져서 'ㅜ'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기에 '위에'를 '우에'로 발음하는 경우도 많다.[67] 이외에도 '바퀴'를 '바쿠'로 발음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물론 중장년층 이상의 토박이들은 이보다 더 짙은 사투리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 이하 세대는 표준어와 위에서 언급된 충청도 사투리를 번갈아가면서 쓰는 형태의 언어 사용을 보여준다.[68] 또한, 대전 내에서도 사투리가 비교적 심한 지역과 거의 표준화된 지역이 따로 있으니 대전의 모든 사람들이 이 어휘를 쓸거라 생각하면 안 된다.[69]
자세한 사항은 충청 방언 문서 참조.
3.1.1. 사투이 마케팅
도를 넘는 사투리 마케팅 때문에 욕을 많이 먹는다. '사투리에 가장 진심인 도시'라는 불명예스러운 밈까지 생겨 버릴 정도다. 대전광역시에서 운영하는 공식적인 것만 해도 공공자전거 타슈[70], 공공 월간지 보슈, 독립영화관 씨네인디유, 배달 대행업체 가유 등이 있으며 비공식적인 것까지 포함하면 셀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대전광역시의 슬로건인 Daejeon is You는 대놓고 '대전이쥬' 라는 발음을 노린 것이었다. 결국 엄청나게 욕을 먹고 일류 경제도시 대전으로 교체되었다.이런 사투리 마케팅은 중~노년층 사이에서는 반응이 좋은 경우도 많지만 젊은층은 굉장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젊은층일수록 사투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촌스럽다', '노인들의 말이다' 등)이 강하기 때문. 그 뿐만 아니라 대전이 사투리를 쓰는 도시라는 낙인이 찍혀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3.2. 일본어의 영향
대전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충청권에서 눈에 띄게 발전된 지역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전 서쪽에 위치한 공주[71]와 대전 동북쪽에 위치한 청주가 충청권을 대표하던 도시들 중 하나였기에 대전 일대는 이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72] 그리고 당시 신도시로서 발전하기 시작한 대전으로 인근 지역민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 역시 몰려들었고, 대전 내에서의 일본 거류민의 문화적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기에 대전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꽤나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대전의 편가르기 게임 용어인 '우에시다리\'가 대표적인 일본어의 잔재이다.우에시다리와 관련된 내용은 후술할 예정.
이외에도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단무지를 '닥광' 혹은 '단광'으로 불렀으며(다쿠안의 와전), '엄청 많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잇빠이', '아예, 차라리'라는 뜻의 앗싸리, 지퍼의 일본식 표현인 '자크', 비닐을 '비니루', 그리고 컵을 '고뿌'로 발음하는 등 일본어식 표현의 단어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8-90년대를 기점으로 둔산신도시가 개발되고 외지인이 대거 유입된 이후로는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많은 단어들이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차차 사라지게 되었고 현재는 '닥광'이나 '잇빠이' 같은 일본어식 표현을 쓰는 이들은 거의 남지 않았다. 물론 일제강점기 당시부터 대전에서 쭉 살아온 어르신들의 경우엔 아직까지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현대의 젊은이들 같은 경우엔 조부모와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는 대전 지역 본토박이들을 중심으로 간혹가다가 쓰이는 사례가 발견되기도 한다.[73]
3.2.1. 우에시다리
편가르기 놀이를 할 때 대전에서는 '우에시다리'라는 말이 쓰이는데, 어원은 일본어 우에(うえ, 上)와 시타(した, 下)로 알려져 있다. 청주와 공주 등 한국인이 주를 이루던 유서깊은 지역과 달리 대전은 구한말 끄트머리와 일제강점기 연간 철도의 개통과 도청의 이전으로 형성된 신도시로서 대전역 인근에 형성된 일본인 거류민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표현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74] 다른 지역에서 쓰이는 일본어 어원의 편가르기 놀이 용어들이 여러 지역에 변형되어 분포하는데 비해[75] '우에시다리'는 대전 이외의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으로, 타 지역 출신들에게는 생소하게 여겨지기도 한다.일제 강점기 국내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대부분 도쿄나 오사카 출신이었던 반면 대전에는 나고야[76] 등 다른 지역 출신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그 지역의 방언이 대전에 전파되면서 한반도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자적인 표현이 정착되었다는 설이 있다.[77][78]
다만 상술하였듯이 대전의 지역 특성상 충청도 외부의 외지 유입인구가 상당하고, 그만큼 대전 토박이들이 쓰는 지역 고유의 사투리가 점차 사라져가면서 서구, 유성구 등 외지인의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우에시다리' 대신 '데덴찌' 등 다른 지역의 용어로 대체되는 사례가 많이 늘었다.[79] 그럼에도 워낙 독특한 표현이다 보니 여전히 편가르기 놀이에서 대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에시다리'를 꼽을 정도의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링크
4. 종교
종교단체들도 조용하기로 유명하다. 대전은 신자 인구수만 보면 불교와 개신교가 1:1로 거의 대등한 수준이지만,[80] 사회적 영향력이나 재정능력, 종교단체 수 면에서는 개신교가 압도적 우위이다.[81] 부유한 서부권(서구, 유성구)에 개신교세가 몰려있으니 당연한 것.[82] 그러나 대전에는 중문교회 장경동 목사[83] 외엔 이른바 네임드 목사가 드문 편이다.[84] 용문동에 순복음교회가 있다. 근방에 용문역 8번 출구 부근에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맛디아 지파 본부가 있다. 규모가 상당하다.대전교통공사 홈페이지-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용문역 출구 유상표기에 항의하는 글이 뒤늦게 올라와 있고 2018년 2~3월부터는 1호선 용문역을 지나는 시내버스에서도 신천지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는 2019년 기준으로도 마찬가지.[85]
4.1. 개신교
특정 교파에 편중이 심한 부산[86]이나 인천[87] 등지와 달리 대전은 오히려 지역내 큰 교회들이 여럿이 각각 갈라져 교인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교파나 단체에 위세가 편중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시끄러운 전도활동도 없는 편이다. 다만 신천지 측에서 인근 교회 주변에 묵언시위를 하는 경우가 잦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천성교회'라는 대형 교회 앞에서도 몇 차례의 묵언시위를 행하며 교회 앞 주차장을 에워싼 적이 있으며, 순복음교회에서도 비슷한 묵언시위가 행해졌다. 때에 따라서는 경찰도 출동했을 만큼 분위기가 험악했다.대전의 개신교 교단별 비율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한국침례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이 대전의 6대 교단으로 거의 대등한 교세를 이루고[88], 나머지 교단들이 군소 교단으로 사이좋게 대전의 개신교인들을 나누고 있는 형국이다.[89][90][91] 다른 지역에 비해 특이한 점이라면 대전은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동아기독교회(현재 기독교한국침례회의 전신)의 선교지에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6.25 이후 미국 남침례회 존 애버내시(John A. Abernathy, 한국명 나요한) 선교사가 대전 지역에 침례교회와 신학교를 세우면서 침례회의 연고지처럼 인식되며 교세가 급성장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 침례회의 교세가 뚜렷하게 강하다는 것이다.[92][93]
또 하나, 대전은 본래 감리회 선교 구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로회의 교세가 세종특별자치시나 공주시, 논산시 등 인접 지역에 비해 매우 강한 편인데,[94][95][96] 장로회 선교 구역인 옥천군, 금산군, 청주시 등과 인접하다 보니 일찍부터 장로회의 영향을 많이 받은데다 장-감 선교구역 분할이 철폐된 1938년에 처음으로 장로교회가 세워지고 해방 이후에는 38선 이북에서 피난온 장로회 신자들의 대거 유입[97]과 함께 한남대학교 등의 교육 기관이 세워지면서 해방 이후에서야 장로교회가 처음으로 세워진 인천 등의 다른 감리회 선교지역에 비해 장로회가 비교적 일찍 자리잡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개신교 사회복지 단체인 기독교연합봉사회가 1949년에 장로회, 감리회, 구세군의 참여로,[98] 대한민국 최초의 지역 개신교 연합 기구인 대전시기독교연합회(약칭 대기연)가 6.25 전쟁 때인 1952년에 장로회, 감리회, 성결교회, 구세군의 참여로 조직되면서 교단들끼리 경쟁보다는 협력하는 관계가 일찍부터 정착되었기 때문이다.[99] 특히 대전은 예장백석 교단의 교세가 강한 편인데, 1958년 한국에 입국하여 대전에 자리를 잡은 레오날드 쿠드 선교사의 극동사도선교회[100]를 모태로 1963년 창설한 대한예수교오순절교회가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 은혜측으로 전향하고 1981년 연합측과 교단을 합칠 때까지 대전을 중심으로 주로 충청과 전북 지역에서 교세를 크게 확장해 나갔고, 이듬해 합동진리측과 결합하여 합동정통 교단이 된 후에도 교세를 계속 확장해 나가면서 현재까지도 백석교단은 대전 지역 내 장로회의 강세에 힘을 보태고 있다.[101]
이러한 영향으로 대전은 교단별 비율이 국내 다른 지역과는 크게 다른 독특한 구성을 갖게 되었고, 개신교 교단들 간의 관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원만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교단별로 진보/보수의 교단색을 명확히 띠기보다는 대체적으로 예장통합과 예장백석 사이 정도의 중도 내지는 온건보수 성향으로 통일되어 있는 편이다. 반면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대한성공회, 기독교한국루터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등의 진보성향 교단이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재건, 순장, 계신,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등의 극보수 장로회 교단, 한국성서침례친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예수교대한감리회 등의 군소 보수 교단들은 대전에서 교세가 약한 편이다.[102] 역시 대전 지역의 개신교 교단들은 중도~온건보수 성향이 강세. 그나마 극보수 장로회 교단 중에서는 교인수 1.000명 이상의 중견 교회들도 대전에 있고 선교센터까지 설립한 예장고신이 어느 정도 선전하고 있다.[103]
'새로남교회'라는 대형교회가 있는데,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친동생 오정호 목사가 담임하고 있다. 만년동으로 새로 교회를 지을 때 사랑의교회 측에서 지원이 있었고, 정부대전청사가 바로 옆에 있고 둔산지역이기 때문에 지역 정치인들이나 고위공무원, 사업가 들의 인맥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교회 규모도 겉에서 보는 것 보다 많이 크며, 대전 내에서 나름 유명하다. 서울에 사랑의교회가 있고 부산에 수영로교회가 있다면 대전에는 새로남교회가 있다고 할 정도이며, 이들 세 교회는 교회갱신협의회 소속으로 상호 교류도 상당히 활발한 편이다.
그외 개신교 예수쟁이가 주로 출몰하는 곳은 대전역과 대전복합터미널이다. 간혹 유성온천역 같은 준번화가 인근에서도 나온다. 출현 빈도나 예천불지를 외치는 소리 톤이나 타 지역에 비해 조용하다. 다른 지역처럼 "주예수를믿으라" 혹은 "예수님과 반공"[104]을 차 끌어다 놓고 주변에 민폐 엄청 끼치며 시끄럽게 떠드는 게 아니라, 차 위에 스피커 놓고 중저음으로 외치면서 최대한 민폐 안 끼치면서 금방 사라진다. 2010년대 들어 한물간 베리칩 드립을 치는 사이비 교회 사람들이 스피커 들고 나와 자주 포교를 나오긴 하는데, 역시 대전 예수쟁이들답게 스피커 소리가 근처 지나다니는 차소리 수준이다.(...) 2015년 11월 들어서는 물티슈와 광고지 뿌리는 데 더 열심인 듯.
그나마 시끄러운 편인 대전역 인근 예수쟁이들도 불교 포교나 탁발나온 승려들보다 더 조용하다. 최근 대전역에 찬양을 부르면서 전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변 노숙자에게 무료급식을 실시하고, 찬양도 죽어라 큰 건 아니라서 명불허전 대전이라고 느껴진다.
심지어 대전복합터미널 근처에서는 여호와의 증인 선교단이 가판대를 설치하고 선교하는 바로 옆에서 근처 교회에서 나온 아줌마들이 교회 팜플렛을 나눠주며 선교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곳은 서대전네거리역 부근. 이곳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신도들이 철천지원수인 CBS 근처의 서대전시민공원을 중심으로 상주하면서 집중적으로 전도를 하는 곳이므로 기독교인들의 경우는 이곳을 조심하는 것이 좋다. 물론 그걸 감안해도 타 지역 예수쟁이들에 비하면 정말 조용하다.
다른 타 도시에 비하면 전반적인 종교단체가 조용한 편이기는 하지만 개신교에 한정해서 대학 내 종교단체(사실상 개신교 종파간) 분쟁은 전국 최고 수준. 장로회 계열인 한남대학교나 침례회 계열인 침례신학대학교와 감리회 계열인 배재대학교, 목원대학교가 있는데, CCC, DFC 등 그 쪽 계열 종교 동아리는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IYF 등 이단 동아리로 알려진 곳은 거의 내패치는 분위기다. 심지어는 몸싸움까지 나오고, 욕설이 왔다갔다 할 정도라고. 2000년대 말에는 모 학교의 모 기독교 동아리방이 1학기 개강을 앞두고 인분테러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단동아리의 소행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으나 딱히 대처할 방법도 없었다고... 덕분에 그 해 신입생 모집은 날려먹었다.
4.2. 불교
불교의 경우, 사찰 자체는 조계종 소속 기준 총 35곳으로 제법 되지만 대전시 자체가 독립된 도시로 등장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데다(대전광역시/역사 문서 참조)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곳에 기도처로 유명한 명산인 계룡산이 있고 충남/충북까지 포함하면 각 지역의 본사인 마곡사와 법주사가 있어 중요한 불교 행사가 열리는 날이 되면 그곳의 사찰들로 사람들이 많이 가는지라 대전의 사찰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거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대전 시민들은 사찰 하면 근처 계룡산의 동학사나 갑사를 맞이 찾아가는 게 일반적.대전의 사찰 중에 그럭저럭 유명한 곳들을 몇 군데 꼽자면 탄허스님이 세운 곳이자 계룡산에 가까워 계룡산파가 자주 모이는 곳으로 알려진 유성구 학하동에 있는 자광사, 국립대전현충원근처 작은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예쁜 사찰인 여래사(2002년 개원), 1985년 성립된 공성회를 모체로 하는 보현불교대학/보현문화회관[105], 2001년 개원한 대전 백제불교회관, 대웅전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산사, 조선시대 건립된 비래사 등이 있다. 이외에 다른 절들은 상당수가 절(불교)/한국항목에 나오듯이 보문산에 많이 위치하고 있다.
이외에는 진각종의 사찰인 심인당이 4곳 있으며, 천태종이 2곳[106], 정토 계열의 군소 종파 사찰 2곳이 있다. 한때는 한마음선원도 있었으나, 2004년 공주로 이전했다.(참조)
4.3. 천주교
천주교 대전교구의 중심이며, 주교좌성당은 구도심에 위치한 대흥동주교좌성당[107]이다. 다만 번화가 특성상 교통이 다소 불편하거나 주차공간이 협소한 등의 문제로 인해 주교좌 성당을 새로 옮긴다는데, 세종쪽에 신축하는 성당으로 옮기는 걸로 결정되었다. 따라서 대흥동성당이 세종 신축성당 쪽에 주교좌성당 바톤을 넘기는 것은 시간 문제.4.4. 민족종교 및 무속
증산 계통의 종교 중 대순진리회와 맞먹는 규모의 경쟁교단인 증산도가 대전광역시를 총본산으로 하고 있다. 사실상 증산도 기관지로 기능하는 상생방송 역시 대전에 있다. 왜냐하면 증산도 수장 안씨 일가가 대전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증산도에서는 한때 대전을 태전이라고 박박 우겼는데 증산도 말로는 "조선총독부가 태전 지명을 뺏고 멋대로 다이덴(대전)이라고 붙인 것이다"라고 하는게 그 주장. 하지만 그 논거는 빈약하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지역 곳곳에 소위 조상신을 포교하는 대순진리회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복합터미널, 대전역 목척교 부근, 세이백화점 부근, 유성터미널 부근, 시청 부근을 배회하며, 항상 2인 1조로 다니고, 특정 사람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 사람이 반응하면 두 사람이서 속사포로 말을 던져 자신들 종교의 정당성을 포교한다. 은연 중에 활동하는 데다 다른 종교와는 달리 특별한 복색도 없어서 구별도 어렵다. 그냥 모르는 사람이 길 묻는 거라 생각하고 멈췄는데 정작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쿨하게 헤어질 것. 대개 '학생이세요?' 혹은 '직장 다니세요?' 등 신상을 캐는 이야기로 시작하므로 구별하기에 어렵진 않은 편이다. 이나마도 대전답다고 해야 할지 떨쳐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대순이 증산도와 앙숙관계인 것을 보면 참 간도 크지 싶은데, 동네 단위로 봤을 때 증산도 활동 영역이 겹치는 곳을 피해가면서 전도하는 듯하다. 증산도 관련 시설은 서구 괴정동, 중구 선화동, 대덕구 중리동[108] 쪽에 몰려있기 때문.
대전지역의 무속신앙도 독특하다. 타 지역의 시끌시끌하고 대규모로 열리는 굿과 달리, 대전/충청도에서는 각종 굿이나 부정풀이의 대부분을 앉아서 하는 앉은굿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설경을 치거나 미친굿을 할 때를 보면 타 지역에 주술적 행위에 비해 화려함이나 과격함이 절대 떨어지는 건 아닌데, 거의 대부분을 앉아서 한다. 굿을 하는 것도 다른 지역의 굿처럼 넓은 자리에서 여러 굿거리에 따라 무복을 갈아입으며 하는 게 아니라, 설경과 단을 마련하고 그 앞에 앉아서 법사가 북과 징을 치며 경을 읽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이런 점 때문에 대전에서는 무복이 발달하지 않았고, 신당도 복잡하고 정교한 설경을 제외하면 비교적 단순소박한 편이다. 굿을 할 때도 '굿 한다'는 말보다는 '경 읽는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래서 대전 출신의 고령자들은 이런 타지의 굿에 대해 "그럼 굿을 앉아서 하지 어느 동네에서 서서하냐?"고 말할 정도. 실제로 조금이라도 나이 든 대전 사람들은 굿 하면 개량한복 입은 법사가 경 읽는 걸 먼저 떠올리지, 타 지역처럼 무당이 화려하게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낯설게 여긴다. 무속인들 사이에서도 대전/충청도 지역의 앉은굿은 그냥 굿이라 하지 않고 양반굿이라 부르며 따로 분류할 정도다. 1990년대 들어 충청도 전통 앉은굿이 많이 위축되긴 햇지만, 앉은굿 전수회도 생긴데다 2000년대 기준 고연령층은 물론 민속에 관심이 있거나 무교에 친숙한 사람일 경우 20대 중후반~30대 중에도 앉은굿이 익숙한 대전 사람들은 많다.
그 외에는 자운대 근처에 동학계열 군소 종교단체인 수운교의 본부가 있다.
5. 스포츠
자세한 내용은 대전광역시/스포츠 문서 참고하십시오.충청 지역의 중심지답게 여러 종목의 프로구단이 소재하고 있으며 한때는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적도 있었지만, 문화의 불모지인 대전 특유의 한계 탓에 장기적으로 이쪽의 반응도 썩 좋지는 않다. 다만 딱 하나 예외가 있는데, KBO 리그 소속이자 1986년부터 대전광역시를 연고로 출범한 한화 이글스[109]는 대전을 넘어 충청권을 상징하는 프로스포츠 팀으로 등극했을 정도로 열광하고 응원하는 시민들이 많다. 대전 시티즌은 2003년, 2004년 동안 잠깐이나마 많은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지만 이후에는 침체되었다가 해체되어 2020년 대전 하나 시티즌으로 재창단되었고, V-리그 최강팀인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남자 배구단과 삼성화재와 짝을 이루는 여자배구단인 대전 정관장 레드스파크스가 있지만 이쪽도 성적과는 별개로 관객 흥행은 그저 그렇다. 프로농구 팀은 KBL 출범 후 대전 현대 다이넷/걸리버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한때 팬 싸인회에 타임월드가 마비될 정도였으나, 이후 모 기업인 현대전자가 부도나고 팬들의 관심이 식게 되자 2001년 KCC가 인수하고 연고지도 전주시로 옮겨 이제는 아무도 농구를 보지 않는다.[110] 굳이 농구 경기를 보려면 대전권에 속하는 청주시로 가서, 청주 KB 스타즈 경기를 보면 되긴 하지만...
[1] 대전, 논산, 공주 같은 금강수계 지역들은 서로 간에 통일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당진, 서산, 예산 같은 충남 서북부 지역은 일명 내포지방이라고 불리며 서로 간에 통일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2] 대전이 영호남의 갈림길이라면, 충주는 삼남(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지방의 관문이라 불렸다.[3] 이같은 이유로 충주 지역 방언은 경기 방언과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4] 그렇기에 충청권 내에서 대전 다음으로 크며, 충청북도 내의 모든 인프라가 집중되어있는 청주의 경우에는 대전보다 더 노잼이라고 한다.[5] 적지 않은 국가에서 이 정도 시간 거리는 그냥 같은 문화권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같으면 자동차 2~3시간 운전해서 자기 동네 야구팀 응원하러 경기장 찾는다.[6] 이는 당해 벌어진 효순이 미선이 추모집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7] 당시에는 충청남도 대전시였다. 다만, 대전은 직할시 승격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고, 대덕군 유성읍과 회덕면은 이미 1983년에 대전시로 편입되었다.[8]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경향이 정석이었으며, 심지어 대전 출신인 신승훈도 대전 콘서트를 안 하던 시절이었다.[9] KTX로 약 1시간, 고속버스로 약 1시간 45분이면 서울까지 갈수 있다.[10] 앞서 설명한 것처럼 충청도의 색채나 기질로 확대해석하기엔 조금 어렵다.[11]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성향 때문에 대전은 조용한 관람 매너가 요구되는 공연, 즉 클래식, 오페라, 뮤지컬, 독립 연극 등의 관람 매너가 상당히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정부대전청사, 자운대 등이 있는 대전이라는 도시 특성상 대학 교수, 고위공무원, 의사, 법조인, 대기업/국가기관 소속 연구원, 직업 군인, 벤처 기업인 등 전문직이 상당히 많이 거주하기에 시끌벅적한 대중가요보다는 정적인 공연을 선호하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다만 2022년 이후 트로트 콘서트 빈도는 상당히 많이 늘었다. 물론 트로트 공연도 대중가요 공연 중에서는 분위기가 조용한 편에 속한다.[12] 국립까지 포함할 경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가장 크다.[13] 본래 10개 상영관 2000석 가량이었으나, 2번의 리뉴얼을 통해 9개 상영관에 1830석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충청권 최대 영화관이며, 매점이 층별로 2개나 있는 유일한 매장이다. 롯데시네마 대전(백화점)점이나 둔산점도 1600석대에 불과하다.[14] 공교롭게도 모두 서구에 위치하고 있다.[15] 현재 대전에서 CGV 플래그십 매장은 CGV 대전과 대전터미널, 메가박스 플래그십 매장은 메가박스 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좌석수나 규모로 따지면 CGV 대전을 넘을 수 있는 상영관은 충청권에 없다.[16] 다만 대덕구 남부는 CGV가 있는 동구 대전복합터미널과 가까우며 대덕구 북부는 메가박스가 있는 유성구 현대프리미엄아울렛과 지근거리에 있다.[17] 이러한 사정으로 지금은 중구청역은 일평균 승하차합계가 5,000명을 넘지 못하는, 대전지하철 22개 역 중에서 이용객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18] 북한에서 펴낸 단군릉 홍보 서적도 있었다. 가격이 눈 튀어나오게 비쌌던 건 함정(...).[19] 옛 삼성생명 대전선화빌딩[20] 참고로 계룡문고가 삼성생명 빌딩에 자리 옮긴 것은 교보문고가 천안으로 떠난 2007년 때 일이었다.[21] 현 대전테크노파크 디스테이션[22] 서구는 둔산동 교보문고, 알라딘과 세이북스, 동구는 용전동 복합터미널 영풍문고, 중구는 은행동 계룡문고, 알라딘과 문화동 세이북스, 유성구는 봉명동 매드타운에 영풍문고.[23] 참고로 안양시의 안양 1번가 부근에도 박서방 지점이 하나 있다.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의외로 오래토록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 외 제주시에도 지점이 있으나 현재는 애니통관련 문제로 인식이 나빠진 탓인지 건담 마이너 갤러리를 비롯한 여러 건프라 관련 사이트에서는 박서방을 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24] 참고로 언플러그몰의 현위치의 건물은 원래 2018년과 2019년 사이까지는 한국교육서적이라는 서점이였다.[25] 타 지방에서 팬들이 몰려올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따지고 보면 독점은 아니고 영풍문고 대전점에서 개최하는 경우도 있긴 있지만 신나라의 빈도수에 비하면 비교도 안 돼서 결국 신나라를 대전 아이돌 팬들의 성지로 끌어올렸다.[26] 서태지 15주년 앨범 박스세트 역시 대전에서 유일하게 100장 정도가 입고가 됐었다. 그렇게 입고된 수량도 전국 각지에서의 전화주문+대전 서태지 매니아들의 구매러쉬로 일순간에 증발.(...)[27] 애초에 2층 규모였던 걸 1층으로 줄인 게 이상했었다.[28] 전신은 만년장으로 만년장이 망해서 같은 자리에 우성그룹 계열의 강남 리베라의 분점 격으로 개설된 곳이었다. 우성그룹의 부도로 한번 망했다가 신안이 인수한 뒤 리모델링을 거쳐서 예토전생했지만, 2017년 12월 31일부로 완전 폐업, 지금은 철거 후 주상복합단지가 건축될 예정이라는 듯.[29] PC방, 코인노래방, 싱글로케이션 게임 공간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어 규모로 따지면 대전 최대급이다.[30] 전 SKT T1 정글러[31] 전 SKT T1 미드 라이너[32] 현 FunPlus Phoenix 서포터[33] 전 Afreeca Freecs 정글러, 현 Hanwha Life Esports 코치[34] 현 Hanwha Life Esports 바텀 라이너[35] 전 서울 다이너스티 탱커[36] 현 상하이 드래곤즈 탱커[37] 현 필라델피아 퓨전 딜러[38] 전 닉네임 H1ghL1ghT RunAway 탱커[39] 현 서울 다이너스티 힐러[40] 충청 방언이 표준어의 바탕이 되는 경기 방언 (+ 영서 방언, 황해 방언)과 같은 중부 방언으로 묶이는 것만 봐도 이들 사이의 유사성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다만, 대전이 속해있는 충남 제3방언권의 경우엔 남부 방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41] KTX로 서울역~대전역의 소요시간은 최소 50분, 최대 1시간 12분이다. 광명역은 최소 40분, 최대 55분으로 더 가깝다.[42] 이와 같은 이유로 대전 이외의 충청도 지역에서도 젊은이들의 사투리 사용률은 낮으며, 수도권 바로 밑에 위치한 천안과 아산의 경우에는 대전보다도 더 심각한 사투리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43] 다만, 대전은 충청 북부에 비해 남부 방언과 공유하는 어휘들이 더 많은 편이긴 했다.[44] 정확히 말하면 30%가 채 못되는 수치이다. 다른 지방 광역시만 봐도 대구 55%, 광주 50%, 울산 40%, 외지인이 많다는 부산조차 35% 이상이다. 자세한 건 토박이 문서 참조.[45] 수도권의 경우는 전라도 출신이라 하면 대체로 광주-전남 출신의 비율이 높은데 비해 대전은 지리적 여건상 전라도 출신 중 광주-전남 출신은 여순광 출신을 제외하면 강원도 출신보다도 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적고 전북, 그중에서도 전익군 및 완주군, 무주군, 진안군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 대전은 충청권 시군 중에선 경상도 출신의 거주민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한데, 부산 출신 거주자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며, 그 외에 대구, 경남 창원시, 김해시, 진주시, 거창군, 함양군, 경북 김천시, 구미시, 상주시, 문경시, 경산시, 예천군, 칠곡군 출신도 많이 거주한다. 다만 울산 출신은 매우 적다.[46] 대전 본토박이나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쓰는 어휘를 들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충청 방언보다 더 독특한 형태의 방언을 구사한다.[47] 다만 이 영상의 주인공 머쉬베놈은 대덕구 출신이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당 기간을 대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서 보냈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전 토박이들과는 언어 사용이 약간 차이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48] 이 영상에선 '기야'가 대전 사투리이고, '기여(겨)'가 서해안 쪽 사투리라고 나와있는데, 사실 '기야'는 '기여(겨)'의 변형 표현이다. 아마 '~거여(겨)'를 표준어 '~거야'로 바꿔쓰기 시작했던 거랑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대전 지역 토박이 어르신들은 현재까지도 '기여(겨)'라고 한다. 물론 충청도 내에선 당시의 대전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사용되던 표현이긴 하지만 광주에서도 사용하긴 했다고..[49] 단, 토박이 비율이 높은 원도심에 가면 간혹 중장년층 사용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래도 청년층의 경우엔 노인 말투를 흉내내려고 일부러 쓰는 게 아닌 이상 일상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50] 충청도 지역 젊은이들 중 현재까지도 이 어휘를 쓰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은 표준어 높임체인 "~요"로 바꿔쓰기 때문. 아마 몇 십 년 후에는 일상어로서는 아예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51] 억양 자체도 전라도나 경상도 지역에 비해 높낮이가 크지 않아서 남부 지방에 가서 표준어를 구사하면 서울 사람인 줄 안다.[52] 간혹 매체에서는 지역색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심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라도의 경우에는 억양의 높낮이가 충청도보다 심할 뿐 사투리 사용률은 충청도와 거의 비슷하며, 사투리 하면 떠오르는 도시인 부산 사람들조차 영화에서 나오는 부산 사투리가 오글거린다고 할만큼 현대의 언어 사용보다 더 심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53] 특히 "~겨"의 경우에는 상당히 경미한 사투리에 속해서 대부분 자각하지 못 하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겨"가 사투리라고 하면 대부분 "겨가 왜 사투리야..?"라는 반응이다.[54] 노년층 토박이 사이에선 높은 사용률을 보이며, 젊은층 사이에선 간혹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55] 동의 및 긍정의 표현으로 나이대가 있으신 분들은 주로 "겨(기여)"를, 그 이하 세대부터는 "겨(기여)" 이외에도 "기야", "그래", "맞아", "맞어" 등으로 말한다. "그여?"나 "그야?"라고 쓰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려"와 "기여(겨)"가 혼합된 형태로 보인다.[56] 사실 이 "기"라는 표현법은 의외로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를 "내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나, "그치?"를 "기지?" 등으로 말이다. 여담으로 충청도 내에서 대전 다음 가는 대도시인 청주 사람들이 대전에 왔을 때 놀라는 것 중 하나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기"라는 어휘는 주로 충남 내륙 지역, 그중에서도 남부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되기 때문에 충남 서북부나 충북 지역 사람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57] 타지 출신의 경우에는 "기여"의 준말인 "겨"와 "~거여"의 준말인 "~겨"를 구분하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는데 그렇기에 대답할 때 "아 겨?" 이러면 겨가 거기서 왜 나오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58] "쩜매", "짬매" 두 가지로 발음되며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사투리 중 하나이다. Ex) "머리 좀 확 짬매(쩜매)", "봉지 좀 쩜매(짬매)놔"[59] 경상도에선 "짜매다", 전라도에선 "싸매다"로 쓰인다고 한다.[60] Ex) '아파' -> '아퍼', '맞아' -> '맞어' 등[61] Ex) '남기다' -> '냄기다', '먹이다' -> '맥이다', '덤비다' -> '댐비다' 등[62] Ex) '성질' -> '승질', '거지' -> '그지', '먹어야지' -> '먹으야지' 등[63] 사실 충청 방언에서는 경기 방언의 축약형이 자주 발견되기도 한다. 예) "드러누워" -> "둔눠", "일어나" -> "인나" 등.[64] 물론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 사투리라 사용자의 수는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65] 발음할 때는 "쫄때기쌀"이 되는데, 대부분이 이 사투리를 말로 직접 발음하기 때문에 글로 적혀있는 것을 보면 뭔가 싶을 수 있지만 본인이 직접 발음해보면 감이 올 것이다. "쫄때기"라고도 불리는데, 경상도 사투리 "쫄때기"와는 다르다.[66] 최근엔 요식 업체에서도 쓰이는 단어가 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대전 및 충남 일부 지역 이외의 지역에선 생소한 단어라고 한다.[67] 젊은층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 발음이지만 50대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러한 발음을 현재까지도 사용하는 이들을 의외로 많이 찾아볼 수 있다.[68] 특히나 젊은 세대의 경우엔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아닌 이상 사투리를 잘 쓰지 않는다.[69] 당연히 노년층이 많이 분포하는 중구나 동구 같은 원도심에서 사투리 어휘가 많이 쓰인다.[70] 심지어 타슈 자전거 잠금장치 옆에는 소중히 타슈 고의회손 처벌해유라는 대놓고 사투리로 된 문장이 적혀 있다.[71] 일제강점기 당시 공주에 있던 충청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대전이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되어 현재에는 충청권을 대표하는 광역시가 된 반면, 공주는 충청권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잃고 중소도시로 쇠퇴하면서 공주 주민들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대전에 대해 큰 원한과 증오를 품고 있었다. 그에 대한 반대 급부로 옛 대전사범학교가 교육대학으로 개편되면서 공주로 이전했고, 국립 사범대학(현 공주대학교)과 부설학교가 다른 지자체와 달리 도청 소재지가 아닌 공주에 생기며 정작 지역거점 국립대학인 충남대학교는 충청남도에서의 영향력이 약화된 것이다. 교육도시의 명성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는 것. 공주 토박이 어르신들 중에선 지금도 "그 촌구석 한밭이 그렇게 발전될 줄 누가 알았겠냐"와 "재수없는 한밭 촌놈들" 등의 발언을 하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72] 대전은 원래 공주군의 일부 지역과 회덕군, 진잠군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경부선 철도 노선이 깔리기 시작한 1904년부터 도시화가 시작되며 대전이란 도시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본인과 인근 지역민의 유입이 시작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대전광역시/역사 참고.[73] 이러한 이유로 본토박이들 중에선 예전부터 존재했던 대전 지역 사투리를 구사하는 경우도 꽤 많다.[74]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밀집해서 살던 지역에는 이와 같은 일본어 어원으로 추정되는 말이 남아있는 사례를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서울에서 편가르기 놀이를 할때 쓰는 '데덴찌'라는 말도 그러한 표현. 자세한 사항은 편가르기 참조.[75] 예를 들어 서울에서 쓰이는 일본어 어원의 편가르기 용어인 '데덴찌'의 경우 '데덴찌'(수도권), '덴찜뽕'(진주), '덴디'(경남 해안), '덴지씨'(대구) 등의 변형이 전국 각지에 분포한다.[76] 나고야도 대전처럼 큰 도시이며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지만, 정작 떠오르는 것은 몇 가지 없다는 점 때문에 두 도시가 서로 닮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편이다.[77] 실제로 편가르기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대전 이외에도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편가르기 용어를 사용하는 지역들은 많다(일본어, 고유어 모두).[78] 세종특별자치시의 건설과 함께 다수의 대전 주민들이 세종으로 이주하면서 2010년대 들어서는 세종에도 '우에시다리'가 전파되어 사용하는 사례가 발견되는 중이며, 대전의 영향력이 큰 옥천 서부 지역에서도 우에시다리가 쓰인다고 한다.[79] 그래도 2000년대 초까지는 외지인의 비율이 매우 높은 둔산이나 대덕연구단지 내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도 우에시다리가 곧잘 사용되었다.[80] 가톨릭도 대등한 수준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대전은 교구청 소재지라서 약간 그렇게 보일 뿐이지 전국적인 신자 비율을 비교해 보면 가톨릭의 교세가 약한 편에 속한다. 현재 대흥동성당에 지정되어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주교좌성당 지위가 추후 세종특별자치시 신설 성당으로 이전할 예정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천주교 세종교구로 명칭 변경[81] 대전은 일제강점기 말기까지만 해도 관내 개신교 교회가 5곳(감리회 2곳-대전제일교회·유성교회, 성결교회 1곳-대전중앙교회, 구세군 1곳-대전중앙영문, 장로회 1곳-대전제일교회)에 불과한 개신교 약세 지역이었으나 해방 이후 이북 출신 개신교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이들 교회에서 여러 교회가 분립되었으며, 6.25 전쟁을 전후해 한국에서 최초로 개신교 사회복지 단체(기독교연합봉사회)와 지역 개신교 연합기구(대전시 기독교연합회)가 창설되었고, 1990년대 말 국내 성시화 운동 발생 태동기에 지역 성시화 운동 조직이 발족, 참여하는 등 해방 이후부터 개신교가 급속히 세력을 키워 오면서 현재까지 개신교 우위 지역으로 분류될 정도로 개신교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다. 오죽하면 아직까지 대전에 불교방송이 개국하지 못하는 이유가 개신교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 대전의 지역 개신교 연합기구에 대해서는 후술할 내용을 참조. 더욱이 불교 신자가 인구수는 많지만 대전에 이렇다 할 구심점이 될만한 불교 사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불교가 개신교만큼 영향력을 키우는 데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82] 반면 구도심인 중구와 동구, 대덕구는 불교세가 상대적으로 더 강한 편이긴 한데, 이 지역에서도 개신교의 영향력이 약한 편은 아니다. 당장에 대전의 대표 개신교 미션스쿨인 한남대학교만 해도 대덕구 오정동에 있다.[83] 막말 파동으로 시끄러웠던 그 목사 맞다(...).[84] 무작정 없는 편이라는 말은 살짝 어폐가 있는 것이,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 한밭제일교회 이영환 원로목사, 송촌장로교회 박경배 목사, 대전복음교회 창시자 김신옥 원로목사 등이 전국구는 아니더라도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대외활동 또한 활발한 등 지역에서 나름 저명성을 확보하고 있는 목사들이다.[85] 사실 이는 버스회사 혹은 도시철도공사 잘못이 아닌 '유니비젼'이라는 광고 담당하는 회사 측에서 돈 받고 광고해주는 거라 따질 생각이면 여기에다가 따져야 한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회사 홈페이지도 검색되고 전화번호도 있다. 다만 돈 받고 광고해주는 부분이 불법도 아니라 항의하더라도 소용은 없을 듯.[86] 합동, 고신, 통합 등 대한예수교장로회 분파에 편중되어 있다. 단, 백석은 교세가 매우 약하다.[87] 기독교대한감리회의 비중이 타 교단에 비해 강세를 보인다.[88] 경우에 따라서 여기에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구세군 대한본영, 그리스도의 교회 유악기파 총회측, 대한예수교복음교회를 추가하여 대전의 10대 교단으로 일컫기도 한다. 예장백석 교회가 대전에서 교세가 강한 이유는 1960년대 예장 은혜측 총회와 총본산인 중도성서신학교(현 대전백석신학교 전신)가 대전(가양동 현 가양제일교회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89] 국내에서 대전과 같이 개신교 여러 교단이 대등한 교세를 유지하는 곳은 서울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그나마 서울도 침례회의 교세는 인구수 대비 약한 편. 참고로 개교회 수는 감리회가 341개로 가장 많으나 교인 수는 예장합동, 예장통합, 감리회가 각각 약 7만명 수준으로 거의 대등하며, 침례회가 약 4만 8천명, 성결교회가 약 2만 5천명, 순복음교회가 약 2만명 수준이다.[90] 다만, 대한예수교복음교회의 경우 교단 자체와 창시자가 대전에 연고를 두고 있고, 총회와 교단 신학교도 대전에 있어서인지 전국적으로는 군소 교단에 불과함에도 관내 54개 교회로 대전에서는 꽤 흔한 편이다. 다만 교단 자체가 워낙 영세하다 보니 모교회이자 총본산격인 예뜰순복음교회(구 대전복음교회)를 제외하면 본산인 대전에서조차 대다수의 교회들은 미자립교회인 상황.[91] 대전의 개신교 신자 비율은 이를 통해 전체 인구의 약 23~25% 정도임을 알 수 있다.[92] 물론 절대적인 개교회 수나 신자 수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인구 대비 개교회 수나 신자 수의 비율로 계산하면 공주시, 울릉군, 울진군 등 대전보다 침례회의 교세가 더욱 강한 지역도 여러 곳 존재한다. 더욱이 이들 지역은 구한말 대한기독교회 시대부터 침례회가 전파되어 선교한 지역으로 6.25 이후 침례회가 전파된 대전보다 역사적으로나 정통성으로나 훨씬 우위에 있다.[93] 그러나 대전 지역의 침례회는 개교회 수가 300개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교인 수는 5만 명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에 불과한데, 대흥침례교회, 중문교회, 디딤돌교회(구 둔산중앙교회) 등의 대형교회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교회들이 교인수 200명 미만으로 영세하고 교단 특성상 다른 교단에 비해 정체성, 결속력이 약하며 교회의 신규 개척과 소멸(합병, 폐쇄 등)이 잦은데다 대전의 지역적 특성상 외지인(특히 호남권 출신)의 비율이 높아 사도신경 및 유아세례 불인정, 침수세례, 회중제 교회정치, 극단적인 탈(脫)전례 성향 등 침례회 특유의 관습을 생소하게 여기거나 거부감을 갖는 개신교 신자들도 적지 않다 보니 침례회의 성장에 한계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94]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전에서 교세가 강한 장로회 교단은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백석 등이며 예장고신, 예장대신, 예장합동개혁(대전측, 홍도동 유향교회)이 그 다음.[95] 실제로 교단별 개교회 수를 살펴보면 각각 260여 개인 장로회 통합, 합동 교단에 비해 감리회는 개교회 수만 340여 개로 언뜻 보면 감리회가 가장 교세가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교인수 통계를 살펴보면 장로회 통합 교단과 합동 교단, 감리회가 각각 7만 명 정도로 거의 대등한 수준의 교세를 유지하고 있다.[96] 예를 들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 홈페이지에서 교회 주소록을 검색해보면 선교 초기 감리회 선교 구역이었던 인천과 대전의 교회 수가 270여개로 거의 동등하게 나온다. 인천의 거주 인구수가 대전보다 2배 이상임을 감안하면 통합 교단만 놓고 보더라도 대전의 장로회 교세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다.[97] 대전 최초의 대형교회인 대전중앙교회(현재 예장합동 소속)는 1947년 대전제일교회에 출석하던 이북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98] 1950년대 한국 장로회의 분열로 현재 기독교연합봉사회에는 예장통합, 기장, 기감, 구세군 등 4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다.[99] 일부 자료에 대전시기독교연합회 창단 교단에 성결교회나 구세군 대신 침례회를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상기한 대로 미국 남침례회 선교사가 대전에 처음 자리를 잡고 교회를 세운 것은 한국 전쟁 이후인 1953년이고, 신학교가 세워진 것은 그 이듬해로 대전시기독교연합회가 조직될 당시 침례회는 아직 대전에 전래되기도 전이었다. 대기연 홈페이지에서도 대기연은 장로회, 감리회, 성결교회, 구세군 등 4개 교단이 연합하여 창단하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참고로 침례회가 대기연에 가입한 것은 포항파(구 동아기독교 계열)와 대전파(미 남침례회 계열)가 합동한 후 한참이 지난 1980년대 초반이다.[100] 쿠드 선교사는 미국 오순절교회 소속으로 장로회 신학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음에도, 초창기 오순절교회의 이름으로 창시했다가 나중에는 장로회 신앙으로 전향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극동사도선교회 재단이 현재는 미국 본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오순절교회나 장로회가 아닌 침례회 소속의 대형교회인 대흥침례교회의 사실상 산하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것은 아이러니.[101] 특히 동구와 대덕구 등 구도심 지역에서 백석 교단의 교세가 강하다. 대전 지역의 대표적인 백석교단 교회로 구 은혜교단의 총본산이었던 가양제일교회를 비롯하여 한밭제일교회, 송촌장로교회, 중도교회, 지구촌사랑교회 등이 있다.[102] 아이러니한것은 전국에 세개 밖에없는 대한성공회 교구중 하나가 대전에 있다(성공회 대전교구). 다만, 이 경우는 성공회가 강세인 충청권 북부 지역의 경우 지역을 대표할 만한 도시를 딱히 꼽을만 하지 않고(그나마 대표성이 있는 충주의 경우 기독교대한감리회가 강하고 대한성공회는 약세이다.) 전라도 지역의 경우 대전보다도 성공회 교세가 더 약하기에 호남권에 성공회 주교좌성당을 세우기에는 적합치 않은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공회 대전교구의 관할구역은 대전, 충남북 뿐 아니라 광주, 전남북, 강원도 남부 지역까지 매우 넓다.[103] 그나마 예장고신은 특정 지방에 교회가 몰려있는 지역편중 현상이 심한 교단들 중에서는 이를 탈피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는 교단에 속한다. 고려신학대학원의 천안 이전, 고신 선교센터의 대전 설립, 고신총회의 서울 이전 등이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104] 기독교와 반공을 외치는 사람들이나, 항문성교는 에이즈를 발병시킨다며 기독교 믿으라는 사람들이 2010년 전후하여 복합터미널 근처 등 사람이 많은 지역에 종종 나타나긴 한다. 타 지역에서 원정온 거지만.[105] 특이하게 교회를 매입하여 사찰로 쓰고 있다. 본래 이 건물은 1978년 완공된 인근 동대전성결교회의 옛 예배당으로, 1986년 바로 옆에 새 예배당을 지은 이후 교회 부설 예식장으로 활용되던 건물이었다.[106] 광수사, 삼문사. 삼문사는 유치원도 운영하고 있다.[107] 성심당(빵집)과 이웃해 있다.[108] 괴정동은 증산도의 총본산이며, 중리동은 상생방송의 사옥이 있다.[109] 전신은 빙그레 이글스이며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됨에 따라 1993년 시즌 종료 후 한화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른다.[110] 그러나 2023년 전주시와의 홈구장 신축 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인해 결국 부산광역시로 연고지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