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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5-10 13:05:55

순종(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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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7대 국왕
순종 | 純宗
대한제국 제2대 황제
순종 효황제 | 純宗 孝皇帝
파일:Sunjong.jpg
대한제국 육군 대장 예복을 착용한 순종[1]
출생 1874년 3월 25일
(음력 고종 11년 2월 8일)
한성부 창덕궁 관물헌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즉위 1907년 7월 22일 (33세)
(고종 44년 / 광무 11년)
한성부 경운궁 돈덕전
(現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사망 1926년 4월 25일 (향년 52세)
경기도 경성부 창덕궁 대조전
(現 서울특별시 중구 창덕궁 대조전)
능묘 유릉(裕陵)
재위기간 조선 왕세자
1875년 3월 25일[2] ~ 1895년 1월 12일
(음력 고종 12년 2월 18일 ~ 1894년, 고종 31년 12월 17일)
대조선국 왕태자
1895년 1월 12일 ~ 1897년 10월 12일
(음력 1894년, 고종 31년 12월 17일 ~ 양력 고종 34년 / 광무 원년)[3]
대한제국 황태자
1897년 10월 12일 ~ 1907년 7월 22일
(고종 34년 / 광무 원년 ~ 고종 44년 / 광무 11년)
대한제국 황태자 | 대한제국 황제 대리청정
1907년 7월 19일 ~ 7월 22일
(고종 44년 / 광무 11년)
대한제국 제2대 황제
1907년 7월 22일 ~ 1910년 8월 29일[4]
(순종 즉위년 / 융희 원년 ~ 순종 3년 / 융희 4년)
초대 창덕궁 이왕
1910년 8월 29일 ~ 1926년 4월 25일
서명
파일:순종(대한제국)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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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8CB2D,#E8CB2D><colcolor=#b22222,#b22222> 본관 전주 이씨[5]
척(坧)
부모 부황 고종 태황제
모후 명성태황후
형제자매 4남 1녀 중 차남
부인 순명효황후 (1882년 혼인 / 1904년 사망)
순정효황후 (1907년 혼인)
자녀 없음
종교 유교 (성리학)
신장 162cm
군방(君邦)
정헌(正軒)
전호 효령전(孝寧殿)
묘호 순종(純宗)
시호 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
(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6]
연호 융희(隆熙, 1907년 ~ 1910년)
절일 건원절(乾元節)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파일:고궁14-91_순종황제어진모사도(5)_김광섭.jpg
순종 효황제 어진[7]

1. 개요2. 생애3. 평가4. 어진5. 기타6. 대중매체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1. 개요

황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짐이 부덕으로 간대한 업을 이어받아 임어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을 유신하는 것에 관하여 누차 도모하고 갖추어 시험하여 힘씀이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원래 허약한 것이 쌓여서 고질이 되고 피폐가 극도에 이르러 시일 간에 만회할 시책을 행할 가망이 없으니 한밤중에 우려함에 선후책이 망연하다. 이를 맡아서 지리함이 더욱 심해지면 끝내는 저절로 수습할 수 없는 데 이를 것이니 차라리 대임을 남에게 맡겨서 완전하게 할 방법과 혁신할 공효를 얻게 함만 못하다. 그러므로 짐이 이에 결연히 내성하고 확연히 스스로 결단을 내려 이에 한국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하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여 밖으로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안으로 팔역의 민생을 보전하게 하니 그대들 대소 신민들은 국세와 시의를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각각 그 직업에 안주하여 일본 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으라.

짐의 오늘의 이 조치는 그대들 민중을 잊음이 아니라 참으로 그대들 민중을 구원하려고 하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능히 헤아리라."

{{{#!folding [원문 보기]

《순종실록》1910년 8월 29일 양력 2번째 기사[8] 中. 《순종실록》마지막 기록.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조선 제27대 국왕.[9] 한국사 최후의 군주이다.[10]

묘호는 순종(純宗), 시호효황제(孝皇帝). 휘는 척(坧), 자는 군방(君邦)이다. 정식 시호는 순종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純宗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 약칭 순종 효황제. 융희황제, 융희제라는 호칭도 사용한다. 현재 국가유산청은 '순종 효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생일인 3월 25일은 대한제국 시절 '건원절(乾元節)'이라는 이름의 국가 경축일이었다. 1907년(융희 원년) 8월 7일 궁내부대신 이윤용이 황제 탄신경절을 건원절(乾元節)로 개칭하자고 상소해 이를 윤허했으며, 다음해인 1908년(융희 2년) 음력 2월 8일양력으로 환산해 3월 25일로 정했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순종(대한제국)/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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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

과거 망국의 군주였던 신라경순왕, 고려공양왕과는 달리 마지막 황제로서 뭔가를 하려고 했던 흔적도 없었고, 친일파와 일본 세력에 이리저리 휘둘렸으며, 망국 후에도 일제가 보장해 준 이왕직에 만족하고 잘 먹고 잘 살면서 그 이상의 특별한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단, 마지막 왕이라고 해서 나라 망친 책임을 그에게 전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말 그대로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그가 성인이 된 1890년대에 이미 조선은 외교적 경제적으로 외국에 크게 종속된 상태였다. 나라 망친 책임을 묻는다면 고종이든 흥선대원군이든 민비와 민씨 척족이든 누구든 간에 이전 세대에 책임을 물으면 또 모를까 순종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순종이 할 수 있는 수준의 저항은 아버지 고종이 다 해보기는 했다. 외교적 청원이라거나 국외 단체와의 연락이라든가, 국내의 반외세 세력과의 연락이라거나 국외로의 탈출 시도라거나, 심지어 결과적이지만, 죽음을 통한 저항까지. 순종은 옆에서 그게 다 안되는 것을 보고 성장했다. 더구나 모친은 일본에 저항하다가 미우라 공사를 뒷배로 둔 일본 낭인 자객에 의해 끔찍하게 암살당했다. 첫번째 부인 순명효황후 민씨 역시 이 사건으로 병사했으니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퇴위된 고종처럼 순종도 퇴위될 수 있었다.

심지어 순종 본인도 독살 미수 피해자였고, 즉위 당시 이미 아무런 권력도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세도 정치 시대의 철종마저도 세도가들에게 눈칫밥 먹이고 입 다물게 할 권력은 충분히 있었고 고종도 초반이나 극후반을 제외하면 왕이라고 불릴만한 권력이 있었다. 그러나 순종 시대에는 권력이 전부 일본으로 넘어가 버려서 현재 일본의 천황 수준일 정도로 허수아비였다. 순종이 기거한 창덕궁에도 일본 경비병들이 감시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궁중 의사 호러스 뉴턴 알렌은 순종을 싫어했는데, 알렌 일기에서는 순종이 지능이 낮았다는 등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순종이 지능이 낮았다는 것은 알렌만의 생각이 아니라, 당시 조선에서 널리 퍼져있는 소문이었다. 주로 언급되는 건 김홍륙 독차 사건 후유증으로 바보가 되었다는 설이었다.

그러나 순종 황제가 다른 가문의 족보를 달달 외울 정도로[11] 기억력이 뛰어났다는 기록을 볼 때 지능이 정말 낮았다기보다 사람이 좀 어수룩하게 보였다는 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당장 현대 대한민국 대중 사이에서도 순종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도 단순히 그의 외형만을 보고서 뭔가 어수룩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실제로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니라 머리가 커서 전반적인 비율이 좋지 않고 살집이 있어 카리스마가 떨어지기 때문에 만들어진 외모지상주의에 기초한 억울한 이미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그의 조부인 흥선대원군과 부친 고종만 하더라도 외모 자체는 적당히 준수하고 카리스마있게 생긴 편이라 정치적 평가와는 별개로 적어도 덜떨어진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전반적으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명석하다는 평도 내렸지만, 대외적인 이미지가 낮고 대중적 지지도가 없었다.

가뜩이나 선천적으로 병약한 순종이 김홍륙 독차 사건 후유증으로 또다시 몸이 크게 약해진 것은 사실인지라 이로 인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고 힘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애 문단에 서술된 대로 순종은 태어나서부터 평생에 걸쳐 죽음의 문턱에 한쪽 발을 걸친 채 살아왔던지라, 아편 사건 이후 틀니를 착용하는 등등 그 후유증에 평생 시달릴 정도로 매우 병약했고 이것이 자신감 결여로 이어졌다.

종합해보자면, 이미 나라가 다 망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던 말기에 꼭두각시 황제로 즉위하여, 무력하게 멸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전형적인 망국의 군주였다.

태어나서는 천연두와 잔병치레, 황태자 시절에는 암살 미수를 당해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고, 황제가 되어서는 모든 저항 시도가 봉쇄된 채 무기력하게 망국을 당했으며, 이왕이 되어서는 남은 평생을 후유증과 아편 중독에 시달리며 유약하고 무능한 황제로 기억되다 사망했으니 한 인간으로서는 제법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4. 어진

파일:순종 효황제 어진.jpg 파일:external/thimg.todayhumor.co.kr/1435414102AgWnRgccKN4cuBh3yNuKVR73mJFN5s.jpg 파일:순종 효황제 어진 복원 모사본.jpg
<colbgcolor=#E8CB2D> 1928년에 그린 황룡포본 <colbgcolor=#E8CB2D> 1918년에 그린 홍룡포 어진의 사진 <colbgcolor=#E8CB2D> 2014년에 복원한 황룡포본 모사도
순종 어진은 1935년 신선원전에 봉안했던 당시를 기준으로 황룡포본 1축, 홍룡포본 1축, 군복본 1축, 면복본 1축, 군복본 1축, 복건본 1축 등 총 7축이 있었다. 그 중 현재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진은 순종 사후 1928년 이당 김은호가 그린 황룡포본이다. 황룡포본은 완성 후 창덕궁 신선원전에 봉안되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다른 어진 및 왕실 유물과 함께 부산으로 옮겨져 관재청 창고에 보관되었다. 1954년 12월 10일 발생한 부산 용두산 대화재로 인해 어진의 오른쪽이 훼손되었다. 당초에는 7본 모두 불타버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황룡포본은 1918년에 그린 후 촬영한 홍룡포본 흑백 사진, 이당이 그렸던 순종의 다른 어진의 얼굴, 세종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황룡포 등의 자료를 토대로 2014년 표준영정으로서 복원했다. 어진이 유일한 초상이었던 선대 왕들과는 달리 참고 가능한 사진이 남아 있어 복원이 용이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unjong_of_the_Korean_Empire.jpg 파일:attachment/sunjong11.jpg 파일:external/pds.joins.com/20140114104517117320.jpg 파일:external/blog.joinsmsn.com/4b186ae64e18c.jpg
<colbgcolor=#E8CB2D> 순종 초상 사진, 1909년 경 <colbgcolor=#E8CB2D> 순종 어진 유지 초본, 김은호 作 <colbgcolor=#E8CB2D> 순종 어진, 김유진 作, 164 × 104㎝ <colbgcolor=#E8CB2D> 고려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어진
군복본 1축은 1909년에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김은호가 그린 어진 유지 초본이 남아 있으며, 김유진 화백이 이를 토대로 그린 어진도 있다. 왼쪽의 어진에서 순종은 대원수복이 아닌 육군 대장의 제복을 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순종이 군 통수권을 일본에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5. 기타

6.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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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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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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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 소황제 장조 의황제 이진익
 
 
 
 
 
제22대
정조 선황제
은언군 이병원
 
 
 
 
 
 
제23대
순조 숙황제
전계대원군 남연군
 
 
 
문조 익황제 제25대
철종 장황제
흥선헌의대원왕
 
 
제24대
헌종 성황제
제26대
고종 태황제
 
 
 
 
제27대
순종 효황제
[범례] 실제 혈통 기준 · 세로선(│): 부자 관계 · 가로선(─): 형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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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현효대왕 도정궁 사손
 
 
진종 소황제 장조 의황제
 
 
 
 
정조 선황제 은언군 은신군 은전군
 
 
 
 
 
 
순조 숙황제 상계군 전계대원군 남연군 풍계군 진안군
 
 
 
 
 
 
 
 
 
 
 
문조
익황제
철종
장황제
익평군 회평군 영평군 흥녕군 흥완군 흥인군 흥선헌의대원왕† 완평군 완성군
 
 
 
 
 
 
 
 
 
 
 
 
 
 
헌종
성황제
고종
태황제
덕안군† 경은군 청안군 완림군† 완순군 완영군† 흥친왕 완은군† 인양군† 의양군 예양정 완창군
 
 
 
 
 
 
 
완효헌친왕† 순종
효황제
의친왕 영친왕 풍선군† 영선군 경원군
 
 
청풍군 창산군
<rowcolor=#b22222,#fff>※ 실제 혈통이 아닌 족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실선은 친자, 점선은 양자 관계임
※ 왕족 · 황족으로서 경술국치 이전에 정식 봉호를 받은 사람만 기재함
※ 은신군은 영조의 동생 연령군의 후사를 이었으나, 당시에는 장조 의황제의 아들로 간주하여 그 후손들에게 황족 작호를 수여함
※ † 기호는 사후 추증된 인물이며, 흥선헌의대원왕을 제외하면 대한제국 수립 이전 사망한 왕족임
※ 영친왕은 이은의 황태자 책봉과 더불어 폐기된 작호로, 황태자 자격으로 받은 '의민황태자'라는 시호가 있으나,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지은 사시(私諡)이므로 표기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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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 중기 왕 용보.png
조선 국왕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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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에 대훈위국화장경식을 걸고 있고, 위에서 왼쪽부터 순서대로 고종황제성수50년칭경기념장, 고종황제성수망육순어극40년기념장, 황태자가례식기념장, 순종황제즉위예식기념장, 일본 적십자사 금색 유공장, 순종황제남서순행기념장, 일본 적십자사 금색 메달을 패용하고 있다. 아래에는 시계방향으로 대훈위금척대수장, 대훈위국화대수장의 부장, 벨기에 레오폴드 훈장, 대훈위서성대수장을 패용하고 있다.[2] 조선 최연소 왕세자 책봉(1세). 양력으로 딱 첫돌이 되자마자 책봉되었다. 조선 최연소 왕세자로 알려진 사도세자는 생후 1년 2개월로 순종이 근소하게 빠르고, 소년 군주로 알려진 단종 역시 왕세손 책봉은 8세였던 1448년이었다.[3] 을미개혁으로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하여, 1896년부터 공식적으로 태양력 도입.[4] 한일병합조약 무효에 따른 명목상 재위 기간 1910년 8월 29일 ~ 1919년 4월 10일(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에 의한 대한제국 해산)[5] 시조 41세, 태조 20대손[6]
1차 추상 1926년 5월 1일
[7]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8] 이곳에서 원문도 열람이 가능하다. 단 순종실록은 신빙성이 의심되어 조선왕조실록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음에 유의.[9] 엄밀히 말하자면 순종은 조선왕이 아닌 대한제국 황제로서 즉위했다. 즉 독일 제국빌헬름 2세(이쪽은 진짜로 공식 직함이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국왕이다.)처럼 두 직위를 겸직한 게 아니다. 유럽 문화권에서는 황제이면서 동시에 왕이고 또 동시에 공작이라는 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지만(소위 동군연합도 이런 이유로 성립할 수 있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황제면 황제고 왕이면 왕이었지 1인에게 여러 층위의 작위나 타이틀이 양립 불가능한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조선 왕조의 법통을 잇는 군주로서 조선의 제27대 왕임을 병기하고는 한다. 고등학교 국정교과서(7차)의 표기는 물론 한국학중앙연구원 산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순종(純宗) 문서 내용이 대표적인 사례. 국사편찬위원회가 감독하는 한국사 콘텐츠에서는 표제어에 조선을 넣어 조선과 대한제국이 별개의 국가가 아닌 연속된 계승국임을 밝히고 있다.순종(조선) [純宗] . 즉, 조선 제27대 왕이라는 것은 아주 엄밀하게는 틀렸지만, 별개의 왕조가 아닌 같은 조선 이씨 왕조인데다 대한민국 정부의 직간접 영향 하에 있는/있었던 국사편찬위원회의 국정교과서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는 공적 권위가 있는 곳에서조차 조선 제27대 왕이라고 표기하고 있기에 조선과 대한제국, 및 황제와 왕 간의 엄밀한 구분에 대해서 현대 한국 정부 및 사회에서는 그다지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10] 아버지 고종과 달리 대한제국 수립 이후 순수하게 황제 직함만 가지고 제위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11] 가문들의 항렬자가 무엇인지를 꿰고 있어서 이름만 듣고도 어느 가문 몇대손인지를 바로 맞혔다고 하며,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조상들 이름까지 줄줄 읊을 수 있었다고 한다.[12] 예컨대 루이 14세는 정장만 입으면 민간인의 베르사유 궁전 입장을 허용하여 왕권을 과시했으며, 최초의 동물원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쇤브른궁 동물원은 1779년부터 대중에 개방되었다. 일본과 한국이 이 영향을 받은 것이다.[13] 어복과 대원수의 군복 모두 입을 수 없어서 고민 끝에 정한 복장이었다고 한다. 이때 순종은 일본인 재단사로부터 양복을 맞췄으며, 완성된 양복을 입어보고서는 "이제 나도 하이카라가 되는 건가"라고 말하며 야릇한 웃음을 띠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