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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8CB2D,#E8CB2D><colcolor=#b22222,#b22222> 조선 제27대 국왕 순종 | 純宗 |
| 대한제국 제2대 황제 순종 효황제 | 純宗 孝皇帝 | |||
| | |||
| 대한제국 육군 대장 예복을 착용한 순종[1] | |||
| 출생 | 1874년 3월 25일 (음력 고종 11년 2월 8일) | ||
| 한성부 창덕궁 관물헌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 |||
| 즉위 | 1907년 7월 22일 (33세) (고종 44년 / 광무 11년) | ||
| 한성부 경운궁 돈덕전 (現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 |||
| 사망 | 1926년 4월 25일 (향년 52세) | ||
| 경기도 경성부 창덕궁 대조전 (現 서울특별시 중구 창덕궁 대조전) | |||
| 능묘 | 유릉(裕陵) | ||
| 재위기간 | 조선 왕세자 | ||
| 1875년 3월 25일[2] ~ 1895년 1월 12일 (음력 고종 12년 2월 18일 ~ 1894년, 고종 31년 12월 17일) | |||
| 대조선국 왕태자 | |||
| 1895년 1월 12일 ~ 1897년 10월 12일 (음력 1894년, 고종 31년 12월 17일 ~ 양력 고종 34년 / 광무 원년)[3] | |||
| 대한제국 황태자 | |||
| 1897년 10월 12일 ~ 1907년 7월 22일 (고종 34년 / 광무 원년 ~ 고종 44년 / 광무 11년) | |||
| 대한제국 황태자 | 대한제국 황제 대리청정 | |||
| 1907년 7월 19일 ~ 7월 22일 (고종 44년 / 광무 11년) | |||
| 대한제국 제2대 황제 | |||
| 1907년 7월 22일 ~ 1910년 8월 29일[4] (순종 즉위년 / 융희 원년 ~ 순종 3년 / 융희 4년) | |||
| 초대 창덕궁 이왕 | |||
| 1910년 8월 29일 ~ 1926년 4월 25일 | |||
| 서명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E8CB2D,#E8CB2D><colcolor=#b22222,#b22222> 본관 | 전주 이씨[5] | |
| 휘 | 척(坧) | ||
| 부모 | 부황 고종 태황제 모후 명성태황후 | ||
| 형제자매 | 4남 1녀 중 차남 | ||
| 부인 | 순명효황후 (1882년 혼인 / 1904년 사망) 순정효황후 (1907년 혼인) | ||
| 자녀 | 없음 | ||
| 종교 | 유교 (성리학) | ||
| 신장 | 162cm | ||
| 자 | 군방(君邦) | ||
| 호 | 정헌(正軒) | ||
| 전호 | 효령전(孝寧殿) | ||
| 묘호 | 순종(純宗) | ||
| 시호 | 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 (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6] | ||
| 연호 | 융희(隆熙, 1907년 ~ 1910년) | ||
| 절일 | 건원절(乾元節) | }}}}}}}}} | |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 순종 효황제 어진[7] |
1. 개요
황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짐이 부덕으로 간대한 업을 이어받아 임어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을 유신하는 것에 관하여 누차 도모하고 갖추어 시험하여 힘씀이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원래 허약한 것이 쌓여서 고질이 되고 피폐가 극도에 이르러 시일 간에 만회할 시책을 행할 가망이 없으니 한밤중에 우려함에 선후책이 망연하다. 이를 맡아서 지리함이 더욱 심해지면 끝내는 저절로 수습할 수 없는 데 이를 것이니 차라리 대임을 남에게 맡겨서 완전하게 할 방법과 혁신할 공효를 얻게 함만 못하다. 그러므로 짐이 이에 결연히 내성하고 확연히 스스로 결단을 내려 이에 한국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하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여 밖으로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안으로 팔역의 민생을 보전하게 하니 그대들 대소 신민들은 국세와 시의를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각각 그 직업에 안주하여 일본 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으라. 짐의 오늘의 이 조치는 그대들 민중을 잊음이 아니라 참으로 그대들 민중을 구원하려고 하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능히 헤아리라." {{{#!folding [원문 보기] 《순종실록》1910년 8월 29일 양력 2번째 기사[8] 中. 《순종실록》마지막 기록. |
묘호는 순종(純宗), 시호는 효황제(孝皇帝). 휘는 척(坧), 자는 군방(君邦)이다. 정식 시호는 순종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純宗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 약칭 순종 효황제. 융희황제, 융희제라는 호칭도 사용한다. 현재 국가유산청은 '순종 효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생일인 3월 25일은 대한제국 시절 '건원절(乾元節)'이라는 이름의 국가 경축일이었다. 1907년(융희 원년) 8월 7일 궁내부대신 이윤용이 황제 탄신경절을 건원절(乾元節)로 개칭하자고 상소해 이를 윤허했으며, 다음해인 1908년(융희 2년) 음력 2월 8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3월 25일로 정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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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순종(대한제국)/생애#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순종(대한제국)/생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3. 평가
과거 망국의 군주였던 신라의 경순왕, 고려의 공양왕과는 달리 마지막 황제로서 뭔가를 하려고 했던 흔적도 없었고, 친일파와 일본 세력에 이리저리 휘둘렸으며, 망국 후에도 일제가 보장해 준 이왕직에 만족하고 잘 먹고 잘 살면서 그 이상의 특별한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단, 마지막 왕이라고 해서 나라 망친 책임을 그에게 전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말 그대로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그가 성인이 된 1890년대에 이미 조선은 외교적 경제적으로 외국에 크게 종속된 상태였다. 나라 망친 책임을 묻는다면 고종이든 흥선대원군이든 민비와 민씨 척족이든 누구든 간에 이전 세대에 책임을 물으면 또 모를까 순종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순종이 할 수 있는 수준의 저항은 아버지 고종이 다 해보기는 했다. 외교적 청원이라거나 국외 단체와의 연락이라든가, 국내의 반외세 세력과의 연락이라거나 국외로의 탈출 시도라거나, 심지어 결과적이지만, 죽음을 통한 저항까지. 순종은 옆에서 그게 다 안되는 것을 보고 성장했다. 더구나 모친은 일본에 저항하다가 미우라 공사를 뒷배로 둔 일본 낭인 자객에 의해 끔찍하게 암살당했다. 첫번째 부인 순명효황후 민씨 역시 이 사건으로 병사했으니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퇴위된 고종처럼 순종도 퇴위될 수 있었다.
심지어 순종 본인도 독살 미수 피해자였고, 즉위 당시 이미 아무런 권력도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세도 정치 시대의 철종마저도 세도가들에게 눈칫밥 먹이고 입 다물게 할 권력은 충분히 있었고 고종도 초반이나 극후반을 제외하면 왕이라고 불릴만한 권력이 있었다. 그러나 순종 시대에는 권력이 전부 일본으로 넘어가 버려서 현재 일본의 천황 수준일 정도로 허수아비였다. 순종이 기거한 창덕궁에도 일본 경비병들이 감시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궁중 의사 호러스 뉴턴 알렌은 순종을 싫어했는데, 알렌 일기에서는 순종이 지능이 낮았다는 등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순종이 지능이 낮았다는 것은 알렌만의 생각이 아니라, 당시 조선에서 널리 퍼져있는 소문이었다. 주로 언급되는 건 김홍륙 독차 사건 후유증으로 바보가 되었다는 설이었다.
그러나 순종 황제가 다른 가문의 족보를 달달 외울 정도로[11] 기억력이 뛰어났다는 기록을 볼 때 지능이 정말 낮았다기보다 사람이 좀 어수룩하게 보였다는 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당장 현대 대한민국 대중 사이에서도 순종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도 단순히 그의 외형만을 보고서 뭔가 어수룩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실제로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니라 머리가 커서 전반적인 비율이 좋지 않고 살집이 있어 카리스마가 떨어지기 때문에 만들어진 외모지상주의에 기초한 억울한 이미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그의 조부인 흥선대원군과 부친 고종만 하더라도 외모 자체는 적당히 준수하고 카리스마있게 생긴 편이라 정치적 평가와는 별개로 적어도 덜떨어진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전반적으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명석하다는 평도 내렸지만, 대외적인 이미지가 낮고 대중적 지지도가 없었다.
가뜩이나 선천적으로 병약한 순종이 김홍륙 독차 사건 후유증으로 또다시 몸이 크게 약해진 것은 사실인지라 이로 인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고 힘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애 문단에 서술된 대로 순종은 태어나서부터 평생에 걸쳐 죽음의 문턱에 한쪽 발을 걸친 채 살아왔던지라, 아편 사건 이후 틀니를 착용하는 등등 그 후유증에 평생 시달릴 정도로 매우 병약했고 이것이 자신감 결여로 이어졌다.
종합해보자면, 이미 나라가 다 망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던 말기에 꼭두각시 황제로 즉위하여, 무력하게 멸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전형적인 망국의 군주였다.
태어나서는 천연두와 잔병치레, 황태자 시절에는 암살 미수를 당해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고, 황제가 되어서는 모든 저항 시도가 봉쇄된 채 무기력하게 망국을 당했으며, 이왕이 되어서는 남은 평생을 후유증과 아편 중독에 시달리며 유약하고 무능한 황제로 기억되다 사망했으니 한 인간으로서는 제법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4.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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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8CB2D> 1928년에 그린 황룡포본 | <colbgcolor=#E8CB2D> 1918년에 그린 홍룡포 어진의 사진 | <colbgcolor=#E8CB2D> 2014년에 복원한 황룡포본 모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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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8CB2D> 순종 초상 사진, 1909년 경 | <colbgcolor=#E8CB2D> 순종 어진 유지 초본, 김은호 作 | <colbgcolor=#E8CB2D> 순종 어진, 김유진 作, 164 × 104㎝ | <colbgcolor=#E8CB2D> 고려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어진 |
5. 기타
- 대신들의 반대에도 궁궐을 최초로 개방한 황제다. 물론 일본의 강요가 크긴 했지만, 순종 본인의 의지도 없지는 않았던 듯하다. 중화 문명권에선 궁궐 개방을 무례하다 생각했지만, 서양의 경우 궁궐을 개방해서 평민들에게까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곤 했다.[12] 창경궁과 창경궁에서 보관하고 있던 황실 유물들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했으며, 이는 한국 최초의 박물관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유물들은 현재 경복궁 내의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창경궁이 1909년 창경원이 된 이후에도 계속 그 옆의 창덕궁에서 거처했다. 창경원 개원식에는 모닝코트와 중절모에 구두를 신고 지팡이까지 짚는 등 말끔한 양복을 입고 참석했다.[13] 당시 창경원 개원을 주도한 사람은 일본 초대 내각총리대신과 초대 한국통감을 지냈던 이토 히로부미였는데, 개원식 닷새 전에 안중근 의사에게 처단당하여 정작 식(式)에는 참석을 못했다. 순종 생전에는 매주 목요일에 창경원이 폐쇄되었는데, 순종이 직접 창경원에서 산책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 마지막으로 순종을 모신 궁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다채로운 식사를 즐긴 아버지 고종과 달리 좋아하는 음식이 딱히 없었으며, 수라를 올려도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물에 밥 만 것만 겨우 먹어서 수라간의 나인들이 수라 때마다 쩔쩔 맸다고 한다. 치아가 부실하고 위장이 약해 딱딱한 것을 먹기 어려운지라, 차돌박이를 삶고 뭉쳐 조려내 차돌조리개를 만들어 올렸고, 깍두기도 삶은 무로 담갔다고 한다. 그런데, 제국호텔의 초대 요리장을 지낸 요시카와 카네키치(吉川兼吉, 1853-1935)와 그의 아들 린조(吉川林造)의 프랑스 요리는 유독 좋아하여 매일 먹었다고 한다.
- 야사에 궁녀가 순종에게 여러 이야기를 읽어주다 망국(亡國)의 이야기가 실린 대목을 읽자 순종이 이에 빡쳐서 그 궁녀의 뺨을 치며 자신을 능멸하지 말라며 분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순종 행장(行葬)에도 표현을 약간 순화하여 기록하고 있다."나이든 궁인으로 근무하는 사람이 우연히 선조(先朝) 때의 국사(國事)가 어떻다고 말하니, 즉시 엄하게 꾸짖어 물러가라 명하기를, ‘너희들이 어찌 감히 선황제(先皇帝)의 일을 논할 수 있느냐?’라고 했다. 이로부터 궁녀들이 감히 선조(先朝)에 대해 다시 말하지 못했다."
야사의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당시의 순종이 망국의 운명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이며, 평가가 갈리는 고종과 달리 등극 때부터 아무런 실권도 없이 망해가는 나라를 지켜봐야만 했던 그에 대한 동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 근처에 있는 고종 어극(즉위) 40주년 칭경 기념비(속칭 비각)의 현판 글씨는 그가 황태자 시절에 쓴 것이다. 현판을 잘 보면, 끝에 '예필(睿筆)'이라고 쓰여 있는데, '예필'이란 '황태자가 쓴 글씨'를 말한다. 순종이 생전에 남긴 글씨들은 질적 편차가 매우 심한데, 이는 생전에 그에게 잔병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이며, 본래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어린 시절이면 몰라도 고종의 칭제 무렵에는 글씨체가 많이 원숙해진 듯 하며, 경술국치 이후 남긴 글씨도 매우 세련되어 있다.
- 아래 글씨는 순종어필군신동심(純宗御筆君臣同心)으로, 1910년 10월 7일, 당시 내각의 주축이던 정미칠적들에게 순종이 하사한 탁본이다.# 겉보기에는 황제가 신하를 격려하는 평범한 어필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망국 직전의 처절함과 배신이 공존하는 비극적인 사료다.君臣同心 民國多福 朕信內閣 卿勿負國"임금과 신하가 같은 마음이어야 백성과 나라가 많은 복을 누린다. 짐은 내각을 믿으니 경들은 나라를 저버리지 말라."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내셔널리그 중부 지구 소속팀 시카고 컵스가 2016년에 마침내 우승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해인 1908년은 대한제국 순종이 제위에 있을 때였다. 이것을 떡밥 삼아서 얘기할 때 알기 쉽게 "순종 2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었다. 다만, 지금에서야 그렇게 표현할 수 있지만 묘호이므로 당대에는 쓰일 수 없는 표현이고, 대한제국 이후로 독자적인 연호를 쓴 이상 공식적인 경우에는 '융희 2년'이라고 쓰는게 더 적절하단 점은 염두에 두면 좋다.
- 세자 시절부터 신문물을 신기해해서 세창양행을 통해, 시계 등 이런저런 물건을 사들여 수집했다고 하며, 이는 왕실 재정에 다소 부담을 주기도 했다. 특히 시계의 경우, 순종은 근대 시기의 황제답게 회중시계를 사용했다. 바쉐론 콘스탄틴 오픈 페이스 회중 시계이고 뒷면에는 황가의 문양인 이화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모 경매 회사를 통해 출품되었으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개인 수집가에게 1억 2,500만 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colbgcolor=#E8CB2D> 순종의 회중시계. 바쉐론 콘스탄틴에서 만들었다.
- 역대 조선의 세자들과 비슷하게 5살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성균관에 입교해 공부했다. 의사 올리버 애비슨의 회고에 따르면, 한자 수천 자를 알고 있었지만 의미를 알고 쓰기보다는 받아쓰기 정도를 할 실력이었다고 하며, 단순히 사물과 이름을 연결짓는 기억력이 비상할 뿐이라고 한다. 순종이 남긴 문집을 보면, (대필이나 누군가가 불러준 게 아닌 이상) 기본 이상의 한문 구사력은 갖추었을 가능성이 높다. 상당한 독서광으로 다른 가문의 족보를 달달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덕에 보학(譜學)에 밝아서 자신과 마주 앉은 사람의 본관과 이름만 듣고도 상대의 항렬을 알아내 몇 대손인지 맞히는 것은 물론, 그 사람의 직계 조상들까지 줄줄 읊을 수 있었다고 한다.
- 지독한 근시였음에도 예의를 차리기 위해 아버지 고종 앞에서는 안경을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의 예법에서는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이 대단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일례로 19세기 풍양 조씨 세도가의 일원이었던 조병구는 고도 근시자여서 평소 안경을 끼고 생활했는데, 당시 임금 헌종의 면전에서도 안경을 쓰고 나타나자, 헌종은 평소답지 않게 진노하며 그를 크게 나무랐다고 한다. 결국, 두려움에 휩싸인 조병구는 그날 자신의 집에서 음독 자살했다는 야사가 있다.
- 대구 시민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2013년부터 대구광역시에서 순종이 1909년 순행 차원에서 대구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70억원을 들여 순종황제어가길 조성에 착수, 2017년에 순종 동상까지 건립했다. 이때, 일제가 조직한 순행 기념사업은 친일 미화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으며, 특히 민족문제연구소가 강하게 철거를 요구하면서 "차라리 그 자리에 의병 동상을 세우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 결정적으로, 관광지로 자리잡기는 고사하고 주변이 개발되면서 통행에 방해된다는 민원만 늘어감에 따라, 심의 끝에 2024년 4월 22일부터 4억원의 예산을 들여 철거에 나섰다. 이에 이태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와 구황실은 반발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 이태진 교수는 순종황제남서순행이 백성들의 반일의지를 키우고 순종이 지방을 순행하며 백성들의 근대식 교육을 위해 상당한 양의 돈을 기부한 것 등을 사례로 들며 남서순행의 역사적 의의를 발견했다.
6.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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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풍군 | 창산군 | |||||||||||||||||||||||||||||||
| <rowcolor=#b22222,#fff>※ 실제 혈통이 아닌 족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실선은 친자, 점선은 양자 관계임 ※ 왕족 · 황족으로서 경술국치 이전에 정식 봉호를 받은 사람만 기재함 ※ 은신군은 영조의 동생 연령군의 후사를 이었으나, 당시에는 장조 의황제의 아들로 간주하여 그 후손들에게 황족 작호를 수여함 ※ † 기호는 사후 추증된 인물이며, 흥선헌의대원왕을 제외하면 대한제국 수립 이전 사망한 왕족임 ※ 영친왕은 이은의 황태자 책봉과 더불어 폐기된 작호로, 황태자 자격으로 받은 '의민황태자'라는 시호가 있으나,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지은 사시(私諡)이므로 표기하지 않음 |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bf1400,#bf1400><tablebgcolor=#bf1400,#bf1400><nop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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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color: #ffc224;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black,#ddd> 태조 | <colbgcolor=#fff,#1c1d1f>생애 | 건원릉 | 위화도 회군 | 왕씨 몰살 | 이성계 여진족설 | 조선태조어진 | 전어도 | 종계변무 | 평가 | 여담 | 대중매체 | 가족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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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color=black,#ddd> 헌종 | 생애 | 경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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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color=black,#ddd> 순종 | 생애 | 6.10 만세 운동 | 유릉 | 대중매체 |
[1] 목에 대훈위국화장경식을 걸고 있고, 위에서 왼쪽부터 순서대로 고종황제성수50년칭경기념장, 고종황제성수망육순어극40년기념장, 황태자가례식기념장, 순종황제즉위예식기념장, 일본 적십자사 금색 유공장, 순종황제남서순행기념장, 일본 적십자사 금색 메달을 패용하고 있다. 아래에는 시계방향으로 대훈위금척대수장, 대훈위국화대수장의 부장, 벨기에 레오폴드 훈장, 대훈위서성대수장을 패용하고 있다.[2] 조선 최연소 왕세자 책봉(1세). 양력으로 딱 첫돌이 되자마자 책봉되었다. 조선 최연소 왕세자로 알려진 사도세자는 생후 1년 2개월로 순종이 근소하게 빠르고, 소년 군주로 알려진 단종 역시 왕세손 책봉은 8세였던 1448년이었다.[3] 을미개혁으로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하여, 1896년부터 공식적으로 태양력 도입.[4] 한일병합조약 무효에 따른 명목상 재위 기간 1910년 8월 29일 ~ 1919년 4월 10일(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에 의한 대한제국 해산)[5] 시조 41세, 태조 20대손[6]
1차 추상 1926년 5월 1일[7]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8] 이곳에서 원문도 열람이 가능하다. 단 순종실록은 신빙성이 의심되어 조선왕조실록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음에 유의.[9] 엄밀히 말하자면 순종은 조선왕이 아닌 대한제국 황제로서 즉위했다. 즉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이쪽은 진짜로 공식 직함이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국왕이다.)처럼 두 직위를 겸직한 게 아니다. 유럽 문화권에서는 황제이면서 동시에 왕이고 또 동시에 공작이라는 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지만(소위 동군연합도 이런 이유로 성립할 수 있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황제면 황제고 왕이면 왕이었지 1인에게 여러 층위의 작위나 타이틀이 양립 불가능한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조선 왕조의 법통을 잇는 군주로서 조선의 제27대 왕임을 병기하고는 한다. 고등학교 국정교과서(7차)의 표기는 물론 한국학중앙연구원 산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순종(純宗) 문서 내용이 대표적인 사례. 국사편찬위원회가 감독하는 한국사 콘텐츠에서는 표제어에 조선을 넣어 조선과 대한제국이 별개의 국가가 아닌 연속된 계승국임을 밝히고 있다.순종(조선) [純宗] . 즉, 조선 제27대 왕이라는 것은 아주 엄밀하게는 틀렸지만, 별개의 왕조가 아닌 같은 조선 이씨 왕조인데다 대한민국 정부의 직간접 영향 하에 있는/있었던 국사편찬위원회의 국정교과서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는 공적 권위가 있는 곳에서조차 조선 제27대 왕이라고 표기하고 있기에 조선과 대한제국, 및 황제와 왕 간의 엄밀한 구분에 대해서 현대 한국 정부 및 사회에서는 그다지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10] 아버지 고종과 달리 대한제국 수립 이후 순수하게 황제 직함만 가지고 제위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11] 가문들의 항렬자가 무엇인지를 꿰고 있어서 이름만 듣고도 어느 가문 몇대손인지를 바로 맞혔다고 하며,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조상들 이름까지 줄줄 읊을 수 있었다고 한다.[12] 예컨대 루이 14세는 정장만 입으면 민간인의 베르사유 궁전 입장을 허용하여 왕권을 과시했으며, 최초의 동물원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쇤브른궁 동물원은 1779년부터 대중에 개방되었다. 일본과 한국이 이 영향을 받은 것이다.[13] 어복과 대원수의 군복 모두 입을 수 없어서 고민 끝에 정한 복장이었다고 한다. 이때 순종은 일본인 재단사로부터 양복을 맞췄으며, 완성된 양복을 입어보고서는 "이제 나도 하이카라가 되는 건가"라고 말하며 야릇한 웃음을 띠었다고 한다.
1차 추상 1926년 5월 1일[7]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8] 이곳에서 원문도 열람이 가능하다. 단 순종실록은 신빙성이 의심되어 조선왕조실록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음에 유의.[9] 엄밀히 말하자면 순종은 조선왕이 아닌 대한제국 황제로서 즉위했다. 즉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이쪽은 진짜로 공식 직함이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국왕이다.)처럼 두 직위를 겸직한 게 아니다. 유럽 문화권에서는 황제이면서 동시에 왕이고 또 동시에 공작이라는 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지만(소위 동군연합도 이런 이유로 성립할 수 있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황제면 황제고 왕이면 왕이었지 1인에게 여러 층위의 작위나 타이틀이 양립 불가능한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조선 왕조의 법통을 잇는 군주로서 조선의 제27대 왕임을 병기하고는 한다. 고등학교 국정교과서(7차)의 표기는 물론 한국학중앙연구원 산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순종(純宗) 문서 내용이 대표적인 사례. 국사편찬위원회가 감독하는 한국사 콘텐츠에서는 표제어에 조선을 넣어 조선과 대한제국이 별개의 국가가 아닌 연속된 계승국임을 밝히고 있다.순종(조선) [純宗] . 즉, 조선 제27대 왕이라는 것은 아주 엄밀하게는 틀렸지만, 별개의 왕조가 아닌 같은 조선 이씨 왕조인데다 대한민국 정부의 직간접 영향 하에 있는/있었던 국사편찬위원회의 국정교과서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는 공적 권위가 있는 곳에서조차 조선 제27대 왕이라고 표기하고 있기에 조선과 대한제국, 및 황제와 왕 간의 엄밀한 구분에 대해서 현대 한국 정부 및 사회에서는 그다지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10] 아버지 고종과 달리 대한제국 수립 이후 순수하게 황제 직함만 가지고 제위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11] 가문들의 항렬자가 무엇인지를 꿰고 있어서 이름만 듣고도 어느 가문 몇대손인지를 바로 맞혔다고 하며,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조상들 이름까지 줄줄 읊을 수 있었다고 한다.[12] 예컨대 루이 14세는 정장만 입으면 민간인의 베르사유 궁전 입장을 허용하여 왕권을 과시했으며, 최초의 동물원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쇤브른궁 동물원은 1779년부터 대중에 개방되었다. 일본과 한국이 이 영향을 받은 것이다.[13] 어복과 대원수의 군복 모두 입을 수 없어서 고민 끝에 정한 복장이었다고 한다. 이때 순종은 일본인 재단사로부터 양복을 맞췄으며, 완성된 양복을 입어보고서는 "이제 나도 하이카라가 되는 건가"라고 말하며 야릇한 웃음을 띠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