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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본명 | 조지 워커 부시 George Walker Bush[1] | ||
출생 | 1946년 7월 6일 ([age(1946-07-06)]세) | ||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 그레이스-뉴헤이븐 병원 | |||
사저 | 텍사스 주 맥레넌 카운티 크로포드 프레리 채플 랜치 | ||
재임기간 | 제43대 대통령 | ||
2001년 1월 20일 ~ 2009년 1월 20일 | |||
서명 | |||
링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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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여동생 로빈 부시[2] 남동생 젭 부시 남동생 닐 부시[3] 남동생 마빈 부시[4] 여동생 도로시 부시[5] | ||
배우자 | 로라 부시[6] | ||
자녀 | 딸 제나 부시 헤이거[7] 딸 바버라 피어스 부시[8] | ||
친인척 | 친할아버지 프레스콧 부시 조카 조지 P. 부시 | ||
가문 | 부시 가문 | ||
학력 | 예일 대학교 (역사학 / 학사)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 ||
병역 | 미합중국 공군 중위 전역 | ||
종교 | 개신교 (연합감리교회)[9] | ||
신체 | 키 182cm / 체중 86kg / O형[10] | ||
소속 정당 | }}}}}}}}} |
백악관 공식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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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43대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 |
미국 대통령 역사상 최고 지지율[12]과 최저 지지율[13]을 모두 경험했다는 특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재임 기간동안 여러 굴곡을 겪었다. 국내적으로는 아동낙오방지법[14]과 적자를 불러 일으킨 막대한 감세정책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외치에서는 9.11 테러를 명분으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미국의 국방력 소모와 예산 적자를 초래한데다 국제적 위신까지 추락시켰다. 국민 생활수준도 악화되었다.[15] 2004년 재선된 이후에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으로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고, 결국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08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 따른 대침체까지 터지며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결국 집권당인 공화당은 2009년에 버락 오바마에게 정권을 내어주었다.
이로 인해 퇴임 직후인 2009년부터 2010년대 초반에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낮은 평가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시리아 내전의 수렁에 빠지며 별 다를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국토안보부 신설, 교육 개혁 정책 등 국내 정책에 한정해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최근에는 여전히 하위권이긴 하지만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20위권 후반대~30위권 초반대를 차지할 정도로 평가가 올라갔다. 그럼에도 2003년 이라크 전쟁과 2008년 대침체의 책임자라는 이미지가 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대통령이기도 하다. 특히 2016년 이후 공화당 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로 보호무역과 불개입주의 정책이 추구되는 등 노골적인 "부시 및 네오콘 지우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항해 퇴임한 부시도 RINO라 일컬어지는 반트럼프 성향의 의원들을 지원하는 등, 최근에는 민주당보다도 공화당 내에서 평가가 엇갈린다.
비공식적으로는 미들네임을 따 'W 부시(W Bush)' 혹은 '조지 W(George W)'[16]라고 부르며, 그저 '조지 부시'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미국인에게 특별한 설명 없이 이렇게 부르면 아버지 부시를 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아들을 부를 때는 미들네임을 꼬박꼬박 넣어서 '조지 W. 부시'라고 불러줘야 한다.[17]
2. 약력
- 1978. 제96대 하원의원 후보 (텍사스 제19선거구 / 공화당, 낙선)
- 1989.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
- 1995.1. 제46대 텍사스 주지사 (1995.1.17. ~ 2000.12.21.)
- 2000.11. 제43대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
- 2001.1. 제43대 미국 대통령
3. 생애
자세한 내용은 조지 W. 부시/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1. 조지 W. 부시 행정부
자세한 내용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문서 참고하십시오.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가 당선되면서 구성된 행정부다.
4. 평가
4.1. 부정적 평가
X까라. 난 집에 간다.[18] |
부시의 재선이 확정된 날, 영국의 일간지 《더 가디언》[19]의 표지 오, 신이시여. |
당시 부시의 이미지를 한눈에 잘 보여 주는 만평[20] |
결과적으로 국민들도 미국을 망칠 대로 망친 공화당과 부시를 외면하게 되었으며 2008년도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를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시킬 정도다. 물론 패배를 100% 부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조금 오버겠지만. 하지만 존 매케인이 선거 기간 동안 공개적으로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부시와의 접촉을 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위상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22] 심지어 선거기간 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매케인에 대한 지지연설을 하겠다고 하자 매케인측이 부시의 연설시간을 줄여달라고 요청해 자신의 연설시간이 8분으로 줄어버리는 굴욕까지 당했다. 이라크 전쟁과 미친 듯이 늘어나는 재정 적자, 큰 위기를 맞은 경제였다. 이런 걸 보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고충이 눈에 선하다. 덧붙여서 이런 압도적인 부시의 인기는 젊은 층 대상으로 두드러지는 편이다.
후술하겠지만 2016년의 공화당 분위기와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에 비하면 적어도 인종이나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돌풍을 일으키게 된 이면에는 유권자들의 기성 정치인과 기성 정치 체제에 불신이 있었고 이러한 원인은 당연하지만 부시 정권과 같은 기존 민주당·공화당 양당 정치인들의 삽질 덕분이다.
여담으로 한 유력지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유능한 미국 대통령과 가장 무능한 미국 대통령을 뽑는 앙케트를 했었는데 가장 유능한 대통령으로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뽑혔고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뽑힌 게 이 사람이다. 저 앙케트가 실시된 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직 대통령 후보였을 때였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 이후엔 언론들은 아예 그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고 "과연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것인가?" 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슬람에 관대했다는 재평가도 의문의 여지가 큰게, 당장 부시는 전 세계적 이슬람 극단주의와 이에 대한 이슬람혐오 반작용을 그대로 폭발시킨 양대 전쟁을 일으킨 지도자이다. 그 트럼프도 당선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방문때처럼, 필요할 때는 립서비스는 실컷 할 수 있었다.
최종결정을 내린 것은 부시지만, 당시 부시 행정부의 외교와 국방 분야[23]는 부통령으로서 거의 유례없을만큼 강력한 실권을 지닌 딕 체니 부통령이 거의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체니는 퇴임한지 한참 지난 이후인 2014년에도 "알 카에다와 사담 후세인은 10년 넘게 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다"고 할 정도로 전쟁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부시 개인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반감은 보인 적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나쁜 국가라고 생각한 국가들 중 이슬람 국가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24]
부시는 실제로 국방, 외교 쪽에 대해서 잘 몰랐다. 대통령 전에 그는 사업가이자 주지사, 야구 구단주였던 반면 누구보다 목소리가 큰 딕 체니는 국방장관 출신[25]이었다. 부시의 잘못은 체니가 하는 주장이 엉터리라는 걸 모를 만큼 어리석었으며, 그의 터무니없는 정책을 그대로 시행할 만큼 판단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26]
특히 정치학계에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눈이 돌아가는 바람에 중국이 저렇게 성장하는데 방관했다는 비판을 들으면서, 헨리 키신저와 함께[27] 대중국 외교에 있어서 신냉전 구도를 만든 원흉으로 꼽히고 있다.
4.1.1. 현대 공화당원 사이에서의 비토
현재 미국 내 보수주의의 방향성이 고보수주의로 선회하였기에 신보수주의의 상징인 부시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평가가 매우 좋지 않다. 보수파는 강경한 외교와 기독교에 기반한 보수정치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지만 부시가 그것과 상관 없이 거짓말을 해 미국인들을 속였다고 생각하는 미국 보수파들이 많다. 실제로 2023년 Yougov의 여론조사에서 조지 W. 부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공화당원의 비율은 32%에 그쳐 민주당원 중 긍정평가한 비율(21%)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부시보다도 공화당원에게 평가가 나쁜 유일한 보수 대통령이 리처드 닉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공화당원 사이에서 가장 인기 없는 공화당 대통령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4.2. 긍정적 평가
위와 같이 미국 국내로 보나 세계적으로 보나 대체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지도자이나 의외로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우선 미국 국내에서의 긍정적 평가로는 적어도 사생활은 깨끗한 편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전임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당시의 섹스 스캔들로 대통령 개인의 도덕적 이미지가 추락한 상황[28]이었는데, 이전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개인의 도덕관에 있어서는 크게 흠잡을 편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부시가 2004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으며, 당시 부시가 상대인 존 케리에 비해 무엇이 낫냐고 생각했냐는 물음에 대한 지지자들의 가장 큰 이유가 다름아닌 도덕성이라고 했을 정도다. 사람됨됨이가 원체 좋아서 깊은 신뢰를 얻었다는 것이다. 즉, 능력과 인간성이 별개인 사람.
히스패닉 사람들과 친화적이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한 것도 정치적으로 큰 장점 중 하나였다. 본인 역시 스페인어에 능통하였고 이는 21세기 들어 공화당의 입지를 확립하는 역할 중 하나를 담당했다. 이는 이후 플로리다가 레드 스테이트로 자리잡는 기초 역할을 하게 되었다. 미국의 히스패닉은 같은 히스패닉이라 하더라도 캘리포니아 등의 지역과 플로리다 등의 지역은 성향과 정치적 이슈를 받아들이는 입장도 상대적으로 모두 다르다.
게다가 부시가 세계적으로 저지른 짓과 정반대로, 개인적으로는 무척 친절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실제로 2009년도에 경북 안동시의 풍산고등학교를 방문하여[29] 연설을 했는데, 당시 풍산고등학생의 말에 따르면 경호원도 뒤로 물리고 학생들의 악수를 받아주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대체로 엘리트 코스를 착실하게 밟아왔던 기존의 대통령들과는 달리, 젊은 시절에 마약에 손을 대거나 1985년경까지 술을 좋아해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등 방황이 있었다는 점을 까이긴 하지만,[30] 반면 엘리트 출신치고는 실수했다가도 다시 스스로를 추스리고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인간미와 인간승리를 이루었다는 좋은 인상도 준다. 그의 방황을 끝낸 건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충고로 독실한 개신교인이 된 것이 계기라고 하며[31], 6.25 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에 와서 간증까지 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을 잘 믿고 아주 정의감이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항목에서 몇 안되는 그에 대한 좋은 평가들은 물론, 나쁜 평가들조차도 어지간한 미국의 거물 정치인들은 굳이 건들려고 하지 않으려 하는 문제에 뛰어든 정의감의 발로라고 생각하면 알기 쉽다. 일례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정의한 배경에는, 탈북자 지원 행사를 위해서 관련 서적을 읽은 연유라는 뒷 이야기가 있다. 보통은 유감을 표명하며 사진이나 찍고 악수나 하면 그만이지만, 탈북자들을 만나기 전에 그들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탈북자 수기와 관련 서적을 읽었다는 것이다.#
이희호 여사는 부시를 아주 사랑스러웠던 사람으로 회고했다. 식기를 갖고 장난치다가 아내에게 혼나고 풀이 죽은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았다고 한다. 허나 이 양반이 정의감 만큼이나 공감 능력과 섬세함도 뛰어났기에, 연설에 앞서 다소 감정적이게 되었고, 그 수기에서 나타난 북한의 끔찍한 인권 탄압에 대해 표현한 것이 바로 '악의 축'이었다.
부시의 이런 성향은 공중보건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미국 정부는 2001년 6월의 다크 윈터, 2005년 1월의 애틀랜틱 스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미국 사회에 천연두가 전파될 때의 파급 효과를 연구했으나, 이에 대해 대비책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32] 왜냐하면 공중보건은 정치적 인기를 얻는 정책 분야가 아니고, 로비스트들이 드나드는 떡고물이 있는 영역도 아니기 때문에, 딱히 이 정책 분야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알려지지 않은 경로를 통해 부시는 2005년 여름에 역사학자 John M. Barry'가 저술한 The Great Influenza의 미출간 원고를 받아서 읽는다. 그리고 나서는 팬데믹 상황의 위험에 완전히 감정이입한 상태로 참모들을 직접 설득해서, 팬데믹에 대응할 방안을 수립하고 진행한다. 그 결과 미국 정부는 그 이전까지는 팬데믹에 대한 대처가 거의 전무하였으나,[33] 부시 정부 이후로 비로소 대응할 수 있는 조직과 메뉴얼이 생긴다.# 이때 도입된 개념이 그 유명한 사회적 거리두기이다. 하지만 공중보건 분야는 앞서 말했듯이 관심을 덜 받는 분야였고, 오바마 정부가 전임자의 업적에 좋은 대우를 해주지 않은데다가,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는 활동을 억압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34] 그래서인지 트럼프는 코로나 19의 방역에 완전히 실패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트럼프의 행정적 무능이 가장 크게 기여한 덕이지만.
도널드 럼즈펠드와 딕 체니가 실권을 잡은 것도 그의 무능으로 인하여 그가 자신의 참모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탓이 크다. 물론 두번째 임기 말에 가서 이라크전의 처참한 결과(상이군인들이나 유족들의 항의)를 직접 대하면서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체니와 럼즈펠드의 몰락이 시작되었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다.
또한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나 그의 지지자들에 비하면 인종이나 종교문제에 대해 훨씬 관용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즉, 소수민족을 포용하여 '하나의 미국'을 지향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부시가 대선 후보였을 당시 공화당은 민주당에게 완전히 빼앗긴 흑인표에 대한 대항마로 급격히 증가하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이민에 대해서도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동생 젭 부시의 부인 역시 히스패닉계였기 때문에 부시 가문은 공화당 내에서도 더 히스패닉에 우호적인 축에 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부시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던 2000년 공화당 전당대회는 아예 하루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히스패닉 유명인사들이 연사로 나오고 조지 부시의 조카이자 히스패닉 혼혈인 조지 P. 부시가 영상메시지를 보내는 등 히스패닉 테마로 치러졌다. 젭 부시의 부인이 히스패닉계여서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조지 W. 부시를 밀었기에 당선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진지한 분석까지 있었다. 실제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35]
이외에도 네오콘의 일원으로 손꼽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온화, 온건해서 막나가는 네오콘의 참모들을 어느정도 제어했다는 평도 받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된 그의 친절함과 인간적인 매력 역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친동생을 포함하여 당 최고의 유망주가 16명이나 나섰다가 갑툭튀한 초짜에게[37] 탈탈 털린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 비교해 봤을 때 2000년, 2004년 두 번의 어려운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던 부시의 정치적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38] 특히 젭 부시와 비교해봤을 때 조지 W. 부시를 재평가하는 의견이 많다. 젭 부시는 'Low energy Jeb'이라고 조롱당하며 엘리트 이미지를 벗지 못해 지지율이 계속 하락했지만 조지 W. 부시는 정 반대로 소탈하고 대중적인 행보로 재선까지 성공했기 때문이다.
국외적으로는 그의 정치적 행보로 인해 평가에 대한 희비가 엇갈린 경우가 많은데, 위에 언급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국가들 외에 유달리 그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인 국가로는 알바니아가 있다. 부시가 동유럽의 강자인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압력 속에서 상대적 약자인 코소보(알바니아계 민족이 대다수)의 독립을 지지하였기에 이 곳에서의 인기는 실로 엄청나다. 알바니아 크루야에는 그가 방문해 2층 테라스에서 손을 흔들었던 카페에 '조지 W. 부시'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수도 티라나에도 같은 이름의 거리가 있다. 정확하게는 국회와 INFOSOFT 건물, 몇 년째 공사 중인 고층 빌딩이 있는 바로 그 거리다.
또한 결과적으로 재임기간 동안 셧다운 사태가 한 번도 없었던 점도 하나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다.[39]
개인으로서의 부시의 이미지는 여전히 좋기 때문에 아직도 높은 호감도를 보이고 있다. 2017년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로부터 51%의 호감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2018년 CNN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부시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15년에 비해 9% 증가한 수치이다. 이는 트럼프의 개인적인 이미지가 심각하게 추락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인품 하나는 훌륭했던 부시가 재평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4.3. 총평
부시 대통령은 스스로의 이상을 실현하기에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신뢰하는 참모들에게 정책 결정을 의존했지만, 그 참모들이 대통령의 기대와는 달리 개폐급 무능력자들이라 대통령 본인까지 같이 욕을 먹은 전형적인 케이스라 할만하다. 물론 참모진을 잘 뽑아 적재적소에 앉히는 능력도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기에 이 또한 본인의 책임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부시 행정부 시기에 일했던 관료들의 회고록이나 부시 행정부 시절을 다룬 저서들에 의하면, 부시는 의외로 일반 시민 이상의 도덕관념은 분명 있는 인물이었고,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얼간이라는 세간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일정 수준의 상식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네오콘의 꼭두각시도 아니었다. 부시는 체니와 럼스펠드와는 달리 이라크 전쟁이나 러시아와의 갈등에서 문제가 생길 때 상식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세간의 시선과는 달리 그는 철저하게 자신이 최고 통수권자이자 최고 권력자임을 확실히 하며 통치했기에, 체니에게 휘둘리는 얼간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부시는 행정부를 확실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조 바이든도 자서전에 부시가 딕 체니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고 체니는 쩔쩔 메는 모습을 봤어도 의아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서술했다. 또한 그가 보인 정치인으로서의 재능은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이었으며,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 자리까지 올라가는 건 아무리 가문빨이 있다 해도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미국 역사에서는 부시보다 능력이 더 떨어지는 대통령들이 여럿 있었다.[40] 당장 당대만 따져도, 도널드 트럼프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기 전까지는 부시는 로널드 레이건 이후 3명의 공화당 대통령 가운데 재선에 성공한 유일한 대통령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가 주요 요직에 임명한 네오콘들이 자기들의 이념을 반대하면 나쁜 놈밖에 외칠 줄 모르고 잘 하는 일이라곤 공무를 이용해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법 밖에 모르는 얼간이들이 다수였던 것이다. 그나마 유능했던 인재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었지만 네오콘들은 정치적 술수로 이러한 유능한 인재들을 내쫓고 요직을 차지해 자기 멋대로 권력을 휘둘렀고, 부시는 이러한 네오콘의 폭주를 제대로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네오콘에게 휘둘려 그들의 막장 행각을 방조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그 결과 미국에는 재앙이 펼쳐졌다. 나중에야 네오콘의 삽질을 깨닫고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부시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조직을 갖춰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기에,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선거에서 이기는 법을 아는 능력은 있었다.[41]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는 감정적인 충동이나, 흑백논리와 같은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쁜 버릇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다 자기 부하들도 흑백논리만 구사할 줄 아는 머리가 굳은 인사들을 중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질렀다. 나중에 잘못된 결정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게다가 인재를 발굴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나빴는데, 그를 지지한 능력 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들은 네오콘들의 견제를 받았고 실리보다는 명분론과 충성심에 더 혹한 면모를 보인 부시는 도덕주의를 외친 네오콘들에게 지지를 보내 그나마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유능한 인재 다수도 떠나보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똘마니들이라도 제대로 관리했으면 다행이었겠으나 부시는 부하 직원들에게 자율권을 준답시고 그들이 마음대로 깽판치게 내버려 두고 일이 잘못 돌아가도 제대로 통제하려는 노력은커녕 관심조차 제대로 가지지 않았다. 차라리 반미주의자나 극좌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로지 미국의 패권만을 위해 행동하는 교활한 제국주의자였다면 이정도까지 미국과 세계를 망쳐놓지는 않았을 것이다.[42] 결국 현실적인 시각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어설픈 정의심으로 나라를 운영한 셈이다.
타국을 증거 하나 없이 짓밟는 건 물론이고 애국법 등 자국민의 헌법적 권리마저 짓밟는 부시 행정부의 강압적인 국정방향 때문에 미국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유(Freedom)와 민주주의는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렸었다[43]. 이전에도 미국의 패권주의 전략 및 위선적인 행위를 비판하는 반미운동가들이 '미국의 자유'라는게 결국 미국의 패권을 합리화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사례가 있지만, 조지 부시는 이걸 확실하게 증명해버렸고 자유란 가치는 단순히 반미 운동가뿐만이 아닌 일반 대중들조차 조롱거리로 삼게 되었다. 결국 Free나 Freedom, 그리고 민주화는 "폭력으로 상대를 짓밟는다"는 비아냥조의 유행어로 쓰이게 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을 상징하는 흰머리수리가 산유국을 노려보며 "저 나라는 자유랑 민주주의가 좀 필요하겠군"한다거나, 미국의 단점을 꼬집는 사람에 대해 "너를 존나 자유롭게 해버리겠어"라고 하는 등의 개그요소가 있다.[44]
비슷하게 폴란드공에서는 Freedom™이라는 미국공의 트레이드마크로 나온다. 부시 정권에 대해 비판적일 순 있어도 제도적 민주주의, 자유주의 자체를 진지하게 부정하는 사람은 극히 드문 한국에선 직접 와 닫지 않겠지만, 2010년대에 국제 정치판을 주름잡는 소위 반자유주의적, 권위주의적, 민족주의적 스트롱맨들이 미국 본토에서부터 전세계적으로 난립했던 걸 보면 결코 농담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부시 정권이 서방식 민주주의, 자유주의란 가치관 자체에 가한 타격이 굉장히 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당장 중국, 러시아를 필두로 다른 권위주의적 국가들이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할 때마다 '서방식 민주주의, 자유주의는 우리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노골적으로 하는 것을 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냉전의 종식과 자본주의 체제 승리로 인해 거의 보편 불가침한 가치관으로 여겨졌던 이념들을 그 미국이 알아서 스스로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걸 본 집단적 회의감이 크다고 느낄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인간 부시"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가, 특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인간적 매력과는 완전히 별개의 자질이며,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부시"는 끔찍하게 무능하고 부적합한 인물이었다.
5. 잦은 실언
부시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문법을 파괴하거나 직설적인 발언을 반복하여 SNL 등 여러 코미디 쇼에 소재거리를 제공했다. 한 예가 바로 'misunderestimate' 인데, 직역하면 "잘못 과소평가하다"라는 뜻으로 당연히 이런 단어는 없으니까 "역전(역 앞) 앞" 에서 만나자고 한 친구를 떠올리면 되겠다. "해외에서 들어온 수입품이 증가하고 있다"도 유명하다.
조지 워커 부시는 이런 문법 파괴적이거나 비상식적인 모순어법을 어찌나 많이 구사했는지 부시즘(Bushism)이라는 단어가 아예 영문 위키피디아 문서로 작성된 데다가, 심지어 집권 극초기였던 9.11 테러 이전에 이미 부시의 언행에 대해 비판하는 책(마크 리스핀의 《부시의 언어장애》)이 나왔을 정도였다.[45]
"There's an old saying in Tennessee — I know it's in Texas, probably in Tennessee — that says, fool me once, shame on — shame on you. Fool me — you can't get fooled again."
"테네시에 오래된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 텍사스도 이 격언을 쓰는데 아마 테네시에도 있을 겁니다 - 나를 한 번 속이면, 부끄러워 - 부끄러워 하세요. 나를 속여 - 다시는 속을 수 없어요"
2002년 9월 17일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46]
"테네시에 오래된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 텍사스도 이 격언을 쓰는데 아마 테네시에도 있을 겁니다 - 나를 한 번 속이면, 부끄러워 - 부끄러워 하세요. 나를 속여 - 다시는 속을 수 없어요"
2002년 9월 17일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46]
# 원래 격언은 "한 번 속으면 속인 놈 잘못, 두 번 속으면 속은 놈 잘못(Fool me once, shame on you, Fool me twice, shame on me.)이다. 이 말은 영화 화씨 911의 엔딩에 나왔고 이 말 이후 마이클 무어 감독이 "나도 이젠 안 속아!" 라고 말하며 영화가 끝난다. 이 발언이 유명해진 이유는 문장 자체는 별 문제가 될 게 없지만 부시가 전달하는 상황이 매우 특이했기 때문이다. 영상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부시는 "fool me once, shame on..." 까지 말하고 잠시 멈칫하면서 그 다음이 you인지 me인지 헷갈리는 듯 멍한 표정을 짓는다. 약 1초 뒤 "shame on you."까지 말하지만 그냥 그 순간 감으로 찍은 건지 아직도 확신이 없는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1~2초 뒤 드디어 기억이 났는지 "한 번 속으면 두 번은 안 속으니까요!" 라고 필요없는 해설까지 달면서 자기가 진짜 헷갈려했다는 걸 인증했다.
"Which state is Wales in?"
"웨일스가 어느 주에 있죠?"
2001년 12월 25일 백악관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초대자이자 웨일스 출신 성악가 샬럿 처치(Charlotte Church)에게 한 말.
"웨일스가 어느 주에 있죠?"
2001년 12월 25일 백악관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초대자이자 웨일스 출신 성악가 샬럿 처치(Charlotte Church)에게 한 말.
처치가 자신이 웨일스 출신이라고 말하자 부시는 웨일스를 미국의 도시라고 착각했는지 이렇게 물었고, 당황한 처치는 잉글랜드 옆에 있는 영국의 한 지방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미국의 지명은 유럽, 특히 영국의 여러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 많아서 실제 미국 내에도 웨일스라는 이름의 도시 또는 마을이 8개나 있기 때문에# 미국인은 이 사람이 미국 어느 주에 있는 웨일스라는 도시에서 왔구나 하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처치의 국적이 영국이라는 걸 알았다면 당연히 나올 수가 없는 질문이었다. 더군다나 처치는 백악관에서 직접 초청한 사람이기 때문에 국적을 모른 채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결례이다. 처치는 어린 나이에 인기를 끈 가수로서 당시 고작 14세였는데, 이때 처치는 황당해하면서 부시가 민망해 할까 봐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사이에 있는 나라인데 아무도 언급을 안 하죠." 라고 재치있게 넘겼다고 한다. 이 사실은 행사 직후 바로 밝혀진 것이 아니라 2005년에 처치가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밝혀졌다.# 성악가가 아니라 정치인이었다면 반미 시위를 불러일으킬 차원의 모욕을 받은 처치는 인터뷰에서 영국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개 지방 중 하나의 이름도 몰랐다면서 부시를 괴짜(weirdo)라고 말했다.
For a century and a half now, America and Japan have formed one of the great and enduring alliances of modern times.
한 세기 하고도 반세기 동안 미국과 일본은 현대에서 가장 위대하고 오래 지속된 동맹 중 하나를 구축해왔습니다.
2002년 1월 18일 일본 도쿄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출처
한 세기 하고도 반세기 동안 미국과 일본은 현대에서 가장 위대하고 오래 지속된 동맹 중 하나를 구축해왔습니다.
2002년 1월 18일 일본 도쿄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출처
그 150년 사이에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바 있다. 그것도 자기 아버지가 죽다 살아난 전쟁이다. 그냥 반세기(half of a century)라고 말했어야 적절했을 문장. 제일 충격적인 것은 이 작자가 예일 대학교 사학과 출신이라는 점.
"The great thing about America is you don't have to listen unless you want to."
"미국의 아주 훌륭한 점은 듣기 싫으면 안 들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2001년 7월 11일 미국 시민권 취득 선서식 연설에서 한 말. #
"미국의 아주 훌륭한 점은 듣기 싫으면 안 들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2001년 7월 11일 미국 시민권 취득 선서식 연설에서 한 말. #
물론 듣기 싫다고 안 들은 대가는 2008년 9월에 이자까지 쳐서 제대로 받았다. 하필 임기 말에 터지는 바람에 일을 저지른 부시는 가만히 있다가 임기가 끝나서 떠났고, 부시의 후임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는 그 빚을 갚느라 임기 내내 고생했다.
"They misunderestimated the compassion of our country."
"그들은 우리나라의 동정심을 잘못 과소평가했습니다."
2000년 11월 6일 2000년 미국 대선 승리 연설에서. #
misunderstand와 underestimate가 합쳐진 괴이한 이 단어는 각종 토크쇼에서 안 좋은 의미로 대히트를 쳤다. 이 misunderestimate라는 단어는 부시가 만들어낸 단어는 아니고 1897년에도 사용된 기록이 있는 단어이기는 하다. 이후 부시는 이 일에 대해 "저는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냈습니다. 예를 들어 misunderstanding이라든지."라며 자랑했다고 한다. 본인은 misunderestimate라고 하고 싶었던 것 같으나 자랑 당시에는 misunderstanding이라고 했다고 한다."그들은 우리나라의 동정심을 잘못 과소평가했습니다."
2000년 11월 6일 2000년 미국 대선 승리 연설에서. #
"When Iraq is liberated, you will be treated, tried and persecuted as a war criminal."
"이라크가 해방되면, 당신은 전범으로서 취급받고, 재판받고, 박해받을 것이다."
2003년 1월 22일 백악관에서의 연설에서 한 말. #
"이라크가 해방되면, 당신은 전범으로서 취급받고, 재판받고, 박해받을 것이다."
2003년 1월 22일 백악관에서의 연설에서 한 말. #
여기서 '당신'은 사담 후세인을 말한 것인데, prosecute(기소)를 persecute(박해)으로 잘못 이야기한 것. 사실 시민사회운동에서 이 두 단어는 의미심장한 관계가 있어서 "검찰(prosecutor)은 박해자(persecutor)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검찰인가 박해자인가" 같은 식으로 언어유희를 섞어 비판에 쓰이는 경우가 꽤 있다.
children과 priorities는 3인칭 복수명사이니 3인칭 단수 be동사 is가 아니라 복수동사인 are을 써야 한다. 물론 역대 모든 미국 대통령들이 모두 수의 일치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 것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도 취임 이후 수일치를 실수한 적이 두 번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바마는 어려운 단어와 문법, 삽입구로 도배된 아주 긴 주어가 나오는 문장에서 틀렸다는 거고 부시는 주어-동사-보어(S-V-C)밖에 없는 매우 짧은 2형식 문장에서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You teach a child to read, and he or her will be able to pass a literacy test."
"아이에게 읽기를 가르친다면, 그 아이는 읽기 쓰기 테스트를 통과할 것입니다."
2001년 2월 21일 테네시 주 타운센드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아이에게 읽기를 가르친다면, 그 아이는 읽기 쓰기 테스트를 통과할 것입니다."
2001년 2월 21일 테네시 주 타운센드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he or she" 라고 해야 되는 걸 뜬금없이 her를 써서 기초적인 영문법도 모른다고 인증을 해버렸다.
"전쟁"은 "장소"가 될 수 없다. "War is a dangerous thing"나 "Battlefields are dangerous places."라고만 해도 주어와 서술어가 완벽히 맞는다. 주어와 서술어가 맞는지 아닌지는 의외로 헷갈리기 쉽지만, 이렇게 짧은 문장에서 틀렸으니 문제.
"Our enemies are innovative and resourceful, and so are we. They never stop thinking about new ways to harm our country and our people, and neither do we."
"우리의 적들은 혁신적이고 꾀가 많으며, 우리 또한 그렇다. 저들은 우리 나라와 국민을 해치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으며, 우리 또한 그렇다."
2004년 8월 5일 백악관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우리의 적들은 혁신적이고 꾀가 많으며, 우리 또한 그렇다. 저들은 우리 나라와 국민을 해치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으며, 우리 또한 그렇다."
2004년 8월 5일 백악관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They want the federal government controlling Social Security like it's some kind of federal program."
"그들은 연방 정부가 사회보장연금을 무슨 연방 프로그램처럼 관리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2000년 2월 11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 #
"그들은 연방 정부가 사회보장연금을 무슨 연방 프로그램처럼 관리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2000년 2월 11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 #
당연하지만 미국의 사회보장연금은 연방 프로그램이다.
"A dictatorship would be a heck of lot easier, there's no question about it."
"독재는 장난 아니게 쉽다. 의문할 까닭이 없다."
2006년 1월 25일 하원의장 데니스 해스터트(Dennis Hastert)와의 대담에서 한 말. #
"독재는 장난 아니게 쉽다. 의문할 까닭이 없다."
2006년 1월 25일 하원의장 데니스 해스터트(Dennis Hastert)와의 대담에서 한 말. #
"I'm fine. If you tell me the truth, the shoe size was 10."
저는 괜찮습니다. 굳이 사실을 얘기하면 신발 크기는 10이었습니다.
2008년 12월 14일 신발테러 봉변 직후에 애써 태연한 척 기자들에게 농담한 말.
저는 괜찮습니다. 굳이 사실을 얘기하면 신발 크기는 10이었습니다.
2008년 12월 14일 신발테러 봉변 직후에 애써 태연한 척 기자들에게 농담한 말.
"You're working hard to put food on your family."
"가족들 위에 음식을 올려놓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2000년 1월 27일 뉴햄프셔 주 공화당 경선 직전의 연설에서 한 말. #
'(가족을) 먹여살린다' 라는 뜻의 "to put food on the table (for your family)" 라는 말을 하려다가 실수를 해서 '가족들 위에 음식을 올려놓는다' 라는 이상한 말을 했다."가족들 위에 음식을 올려놓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2000년 1월 27일 뉴햄프셔 주 공화당 경선 직전의 연설에서 한 말. #
"Too many doctors are going out of business. Too many OB-GYNs aren't able to practice their... their love with women all across the country."
"너무 많은 의사들이 폐업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이 나라의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4년 9월 15일 미주리 주 포플러블러프에서 행한 대선운동 연설에서 한 말. #
OBGYN은 obstetrics(산과) & gynaecology(부인과)의 축약어로, 우리말로 치면 산부인과의다. 의료행위를 하다는 뜻의 practice까지 얘기해 놓고 gynaecology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대신 넣은게 "(practice) their love with women"(...)."너무 많은 의사들이 폐업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이 나라의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4년 9월 15일 미주리 주 포플러블러프에서 행한 대선운동 연설에서 한 말. #
"Africa is a nation that suffers from incredible disease."
"아프리카는 놀라운 질병으로 고통받는 나라입니다."
2001년 6월 14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아프리카는 지역 혹은 대륙이지 나라가 아니다. 더군다나 incredible은 '놀라운', '굉장한' 등의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위처럼 부정적인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는다."아프리카는 놀라운 질병으로 고통받는 나라입니다."
2001년 6월 14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I know the human being and fish can coexist peacefully."
"저는 인간과 물고기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을 압니다."
2000년 2월 29일 미시간 주 사기노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저는 인간과 물고기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을 압니다."
2000년 2월 29일 미시간 주 사기노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I hear there's rumors on the Internets."
"인터넷들에서 소문이 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2000년 10월 17일 앨 고어와의 대통령 후보 TV 토론에서 한 말. #
당연하지만 인터넷은 복수가 될 수 없다. 영어판 위키피디아에는 따로 Internets라는 항목이 만들어져 있다."인터넷들에서 소문이 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2000년 10월 17일 앨 고어와의 대통령 후보 TV 토론에서 한 말. #
"America needs a military where our breast and brightest are proud to serve."
"미국은 우리의 유방과 우수한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복무할 수 있는 군대가 필요합니다"
2001년 2월 11일 조지아주 포트 스튜어트(Fort Stewart)의 장병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우수한 사람들' (Best and Brightest)이라는 명사를 말할 때 Best (최고)를 Breast (유방)라고 말했다. "미국은 우리의 유방과 우수한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복무할 수 있는 군대가 필요합니다"
2001년 2월 11일 조지아주 포트 스튜어트(Fort Stewart)의 장병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하도 망언이 많고 여러 실책들이 많아서 당시에는 별로 이상할 것 없는 말조차 망언이 되기도 한다.
Every nation in every region, now has a decision to make. Either with us or you are with terrorist.
모든 지역에는 지금이 선택을 해야합니다. 우리와 함께, 아니면 당신은 테러리스트와 함께입니다.(전 세계는 선택해야 합니다. 미국의 편에 설지 테러리스트의 편에 설지.)
2001년 9월 20일 미국 연방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모든 지역에는 지금이 선택을 해야합니다. 우리와 함께, 아니면 당신은 테러리스트와 함께입니다.(전 세계는 선택해야 합니다. 미국의 편에 설지 테러리스트의 편에 설지.)
2001년 9월 20일 미국 연방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말. #
발언 당시에는 당시 상황을 잘 알려주는 문구였으나, 이제 와서는 부시의 망언에 묻어가게 되었다. 사실 당시 상황에는 적절했을지 모르나 이 말 역시 깨알같이 문법이 엉망이다.
"I think we all agree. The past is over."
우리 모두가 동의한 것 같군요, 과거는 끝났습니다.
2000년 5월 10일 당시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한 후 대선을 앞두고 한 말. #
우리 모두가 동의한 것 같군요, 과거는 끝났습니다.
2000년 5월 10일 당시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한 후 대선을 앞두고 한 말. #
한 마디로 20세기를 보내고 우리 모두 자신과 함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는 뜻으로 한 말이다. 문명 5에서는 이 어구가 마지막 기술인 '미래 기술'의 완성 멘트로 되어 있는데, 한 번 연구하면 끝인 다른 연구들과는 달리 이 미래 기술은 반복 완료가 가능해서 게임 후반부까지 가게 되면 지겹도록 듣게 되는 멘트다.
특이하게도 부시의 이런 문법 파괴적인 언행은 2기 행정부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이 줄어들게 되었는데,[47] 이에 대해서는 부시의 문법 파괴적인 언행은 사실 지지자들의 친밀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정적들이 부시를 과소평가하게 만들기 위한 치밀한 포석이라는 주장[48]과 그냥 뒤늦게 열심히 공부해서 인간 승리를 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양분되어 있다.
"러시아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결여돼 있다. 완전히 정당하지 않고 잔인한 '이라크' 침공을 개시한 한 사람의 결정은…"
대통령 퇴임 한참 후인 2022년에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두고 공정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그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는 연설 중의 말 실수. #
대통령 퇴임 한참 후인 2022년에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두고 공정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그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는 연설 중의 말 실수. #
실수로 우크라이나를 이라크로 바꿔 말하는 바람에 졸지에 자기 비하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물론 부시 본인도 곧바로 실수를 인지하고 '나이 때문에 말실수를 했다'면서 농담하면서 넘겼지만, 말실수를 한 순간 부시의 잔뜩 찌푸린 표정과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이라크 전쟁에서의 악명높은 삽질 때문에 또 다른 놀림거리가 되었다.
사실 이런저런 다양한 녹음본을 보면 말실수했다는걸 인지하고 다시 작은 목소리로 "And Iraq, too"라고 인정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 다음에 "75(세)"라 농담조로 변명하는걸 볼 수 있다. 말실수가 아니라 본인의 말실수 이미지를 이용한 고도의 언플일 수도 있고, 말실수 한거 자체는 맞는데 실제로 이라크도 "완전 부당하고 잔인한 침략"이 맞았다고 인정할만큼 의견이 바뀐 듯하다. 이에 대한 반응은 그 난리를 일으킨 본인이 이제 언론용 농담으로나 쓰고 있다니 역겹다는 반응도 있고, 이제나 와서야 그래도 본인과 미국이 잘못한 게 맞았다고 인정해서 다행이라는 반응도 있다.
6. 여담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가죽 점퍼를 입고 나오는 파격적인 패션감각을 선보였는데 이게 무전기를 등 뒤에 설치해 보좌관들로부터 답안을 전달받기 위해서라는 의혹이 있었다. 문제가 제기되자 결국 토론 도중에 옷을 갈아입었다.
2002년에 휴스턴 지역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는데 이때 부시가 책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이것은 그냥 포토샵 루머였다고. 그러나 사실이 무엇이든 간에 대중들은 "부시라면 과연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서글픈 사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이 사진은 에미넴의 mosh 뮤직 비디오에서 패러디된다.
원숭이, 특히 유인원 중 침팬지를 닮았다는 말이 많이 나돈다.[50]
피자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치즈버거 피자를 가장 좋아한다.
대통령 재임시절 백악관에서 슈퍼볼 게임을 보는 중 프레첼을 먹다가 목에 걸려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프레첼이 의외로 질식사의 주범이라[51] 모친인 바버라 부시 여사는 그에게 '프레첼은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 부통령 딕 체니가 러시아와 싸우자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 부시가 말린적이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미국에 방문했을 당시 연설을 하다가 실수로 엘리자베스의 나이를 200살이라고 해버리는 바람에 민망했는지 여왕에게 윙크를 날려 영국인들에게 무례하다고 까인 전적도 있다. G8[52] 정상회담장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의자를 잡아당겨줬다가[53] 독일인들에게 까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키히토 천황이 미국에 방문했을 당시 천황을 향해서 'Japan King'이라 가볍게 발언하자 일본인들에게 까인 적도 있으며, 일본 언론과 외무성은 'Emperor of Japan'이라 해달라고 권고한 바 있다.
퇴임 시기가 미국 드라마들의 휴방기와 겹치는 바람에 휴방기가 끝나면서 시작되어야 할 드라마들이 동시에 미뤄져 휴방기를 1주 더 연장해버린 셈이 되었다. 덕분에 퇴임식 보기 싫으니까 드라마나 틀어달라는 욕도 먹었다.걸프전 때문에 '부시 2세'라고 불리긴 하지만 아버지 조지 H. W. 부시와 비교하면 진짜로 가문빨로 대통령이 됐다고밖에 볼 수 없는 남자다. 아버지는 2차 대전 참전용사에[54] 하원의원, UN대사, 중국대사, 중앙정보국장, 부통령까지 거치면서 외교안보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을 보여주었으며, 대통령으로도 냉전 종식과 걸프전 승리 등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비록 마지막에 경기침체로 빛이 바래면서 클린턴한테 밀려서 재선에 실패하긴 했지만, 지금도 민주, 공화 양쪽에서 그래도 괜찮은 대통령이었다고 평가받는 것을 생각하면 정확히 호부 밑에 견자가 났다.
영어 위키백과에서 가장 수정이 많이 된 항목 1위로 선정되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정말 극과 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 한국어 위키백과의 경우는 박정희. 그리고 출처표시 등의 이유로 목차도 제일 많다. 중국어 위키백과의 경우는 마오쩌둥이고, 일본어 위키백과의 경우는 원피스 등장인물 일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신체의 일부를 붓처럼 써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그의 초상화를 그린 바 있다. 온라인에서의 반응은 좆이 붓이.
반미감정이 심한 중국에서는 어떤 중국인이 '부시'와 이름이 비슷한 발음의 '부쓰'를 기저귀 상표 이름으로 등록하려고 했다. #
세계적으로도 평가가 좋지 않은데 2015년 전 세계 대학생이 뽑은 역사상 최악의 악당 4위에 당당히 랭크되었다. 1위가 아돌프 히틀러, 2위가 오사마 빈 라덴, 3위는 사담 후세인이다. 참고로 마오쩌둥과 스탈린이 각각 부시보다 랭크가 낮은 5위와 6위이고 그 밑에 칭기즈 칸과 진시황도 보인다.
그 행적 덕분에 한국에서는 '조지고 부시고', '조져 부셔' 또는 '조지고 부시는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재임 시절에 회의를 하게 되면 농담따먹기를 하거나 보좌관 한 사람을 놀려서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고 했다고 한다. 단 한번 그러지 않은 적이 있는데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사태가 발생하고 있던 때.[55] 당연히,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세계 경제까지 영향이 간 것도 모자라 자국의 모든 시민들이 혼란과 분노할 정도로 큰 사태였다. 만약에 평소와 같이 농담했다가는 이 사람의 정치적 입지와 퇴임 후에도 사람들에게 무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금껏 저질러 놓은 실책과 도덕적인 문제성까지 늘어놓을 정도로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명패까지 붙고, 아버지 이름에 먹칠 했다는 가히, 막장 삼위 일체 행적을 남기기 때문에 본인도 의식한 듯하다.
Bushwhacked라는[56] 영상에선 부시의 연설이 짜깁기되어 유머소스로 쓰이기도 했다. 영상의 백미는 3분 6초경의 "그리고 오늘밤 이라크 사람들에게 해줄말이 있습니다. 집에 가서 죽어라.(And Tonight I have message for the people of Iraq. Go home and die.)"라는 부분이었다. 게리모드 유저 kitty0706이 병맛 영상에 써먹어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겼다.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아버지의 선거 참모로 활약한 리 애트워터와 막역한 사이였다. 애트워터는 그를 '주니어(Junior)'라고 불렀다고 한다.
1989년 아버지가 레이건에 이어 미국 대통령으로 부임할 당시 그의 나이는 무려 43세였다. 애초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상대적으로 빠른 나이에 결혼해서 그가 태어났고 자녀들 중에서는 장남이다.테쿰세의 저주를 죄다 피해간 사람이다. 하지만 조지 부시 자체가 저주라고 여기는 의견도 있는 것 같다.
2024년 현재까지 버지니아주, 콜로라도, 뉴멕시코에서 이긴 최후의 공화당 대통령이다.[57]
퇴임 후 취미 삼아 미술을 배웠는데 윈스턴 처칠이 풍경화를 그린 것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풍경화를 주로 그렸던 처칠과는 달리 초상화를 주로 그리는데, 전시회를 열거나 화집을 내는 등 꽤 열정이 있는 듯 하다. 전체적으로 좋은 실력이 나타나기도 한다. 2014년에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의 초상화를 그려 전시하였으며, 이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작품 목록에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림 실력에 대한 혹평이 자자했으나, 2017년에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전쟁에 참전했다 부상을 입은 상이군인들의 초상화를 그린 인물화집 <용기의 초상화>[58]를, 2021년에 미국의 이민자들의 얼굴을 담은 인물화집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 이민자들의 초상> 을 출간하였으며[59] 그림 실력도 2014년때에 비해 꽤 발전했다는 평을 받았다.#
가장 최근에 토요일에 태어난 대통령이었는데, 그의 후임인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모두 금요일에 태어났다.
6.1. 신발테러 사건
2008년 12월 14일, 당시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깜짝 방문했다가 이라크 출신 기자 문타다르 알자이디(منتظر الزيدي)가 투척한 신발 두 켤레에 얻어맞을 뻔한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60] 그 유명한 신발테러 사건으로 우리나라 인터넷상에서 합성 소재로 한때 유행했었던 것. 다행히 그 신발을 피했고[61] 알자이디는 즉시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이라크인들은 그를 영웅처럼 추앙했다[62]. 부시는 “사람들이 관심을 끄는 한 방법일 뿐이다. 그 자의 동기가 뭐였는지는 모른다. 나는 조금의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It's a way for people to draw attention. I don't know what the guy's cause was. I didn't feel the least bit threatened by it.)”라고 애써 무마하려 했지만 누가 봐도 웃기는 상황일 뿐. 그리고 카타르의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은 용기 있는 처신이라며 알자이디 기자에게 후한 대우를 해주었다고 한다.
이 일로 스타덤에 오른 알자이디는 3년형을 받았으나 곧 2년으로 감형되었고, 전과가 없었기 때문에 약 9개월 뒤인 2009년 9월 15일에 석방되었다. 그리고 석방된 후에도 여전히 기자 활동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더 웃긴 건 알자이디 본인도 프랑스에서 똑같은 봉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기자 회견 도중인 그에게 이라크 출신 망명인이 신발을 던졌고 그 역시 부시와 똑같이 신발을 피했다.
신발테러에서 모든 패러디들을 모아놓은 걸 볼 수 있다.
7. 선거 이력
<rowcolor=#ffc224>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 | 당선 여부 | 비고 |
1978 | 미국 연방 하원의원 선거 | 텍사스 제19구 | | 48,070 (46.76%) | 낙선 (2위) | |
1994 | 미국 주지사 선거 | 텍사스 | 2,350,994 (53.48%) | 당선 (1위) | 초선 | |
1998 | 미국 주지사 선거 | 2,550,821 (68.24%) | 재선 | |||
2000 | 미국 대통령 선거 | 미합중국 | 50,456,002 (47.87%, 271명) | 초선 | ||
2004 | 미국 대통령 선거 | 62,040,610 (50.73%, 286명) | 재선 |
8. 한국과의 관계
이 사람이 대통령을 하는 동안 지나간 한국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2001년 ~ 2003년), 노무현 대통령(2003년 ~ 2008년), 이명박 대통령(2008년 ~ 2009년) 세 명인데 2001년 방미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this man'으로 지칭하는 결례를 범했다. #[63][64] 부시는 대통령 당선 전부터 한국의 정치인들에 대해 상세히 보고받고 인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특히 김대중에 대해서는 김정일 정권과의 관계를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기준으론 김정일.[65] 전임 클린턴을 비롯해서 국제사회가 김대중을 국제사회의 명망가로 존중한 것에 반해서 국제상식이 부족했던 부시는 김대중이 누군지도, 국제적으로 얼마나 존중받는지 전혀 몰랐고, 당선 후에 북한이 중요한 문제라는 말에도 북한이 대체 왜 미국의 관심사인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66] 이후 북한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부를 한 부시의 결론은 매우 직설적이었는데 북한 = 악의 축, 김정일 = 극악무도한 악당이라는 것이었다. 김정일이 자기 인민을 탄압하고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동북아시아를 위협한다는 사실에 부시는 김정일을 만나본 적이 없었음에도 극도의 혐오감을 표출하며 김정일을 개새끼(SOB), 씹새끼(Asshole)라고 공적인 자리와 심지어 정상회담에서도 거침없이 욕해댔다. 이러던 와중 2001년 1월, 김대중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햇볕정책의 정당성에 대해 설득하려 하자 부시는 몹시도 놀라움을 표하며 부정적으로 반응했고[67] 이후 한미정상회담에서도 김대중의 설명에 대놓고 의자에 몸을 푹 묻고 불만스럽다는 티를 팍팍 내다가 김정일을 욕하고 햇볕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고 대놓고 반박해서 김대중을 매우 놀라게 하였다.[68] 이어 일어난 것이 위에서 설명된 디스맨 사건이고, 김대중은 대단한 모욕감을 느꼈다. 특히 이 디스맨 사건은 한국의 민족주의 감정을 정면으로 건드려 야당 성향에서도 상당한 분노를 야기하였다.[69]집권 초기부터 민주노동당과 한총련 등 NL 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부시 방한 반대투쟁이 벌어진 바 있으며, 2002년에 벌어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70] 때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아서 결국 반미시위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후 아폴로 안톤 오노의 금메달 헐리우드 액션 사건 등과 겹쳐 반미감정이 격화되어, 이 때문에 2차 북핵위기와 제2연평해전과 같은 사안들이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졌고, 결국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이 이회창을 누르고 대선에서 승리한 결과를 낳았다는 시각도 있다. 당시 한국의 분위기는 거의 반미국가를 방불케한 수준이었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easy man(이지 맨)' 이라는 표현을 써서 또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임기 중엔 한국군 이라크 파병이 이뤄지고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부시 대통령은 한국과 가장 친한 대통령이다. 미국의 한 사서가 찾아낸 독도 주권 분류 문제와 관련하여 직접 나서기도 했다. 당시 미국 의회[71] 도서관에서는 2007년 12월[72]부터 도서 분류의 표기에 있어 독도의 주권 분류를 한국령에서 주권 미지정으로 변경했으나, 부시가 나선 덕분에 이러한 방침이 철회되었다. 또한 탈북자 문제에도 도움을 준 편이다. 더 나아가 외교면에서 한국의 ESTA 가입,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재선, G20 정상회의 개최 등을 이끌어 내는데 영향을 미쳤다. 퇴임 시에는 버락 오바마 당선자에게 특별히 한국과의 동맹에 대한 메모를 남겨 전달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현재도 자주 내한 행사를 갖거나 유력인사들과 라운딩을 하는 등 한국과 인연을 지속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이희호 여사의 '동행' 이라는 책에 조지 W. 부시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가 나온다. 정상회담 만찬중이었는데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식탁에 놓인 수저와 식기로 장난을 치다가 아내인 로라 부시에게 꾸지람을 들었는데 마치 표정이 식당에서 까불다가 혼난 어린아이 같았다고 한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상당히 묘한 관계였는데, 일단 부시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노무현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했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김대중에 대해 노련한 정치가라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노무현에 대해서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며 괴상한 언행을 일삼고 종종 반미적 발언을 한다고 매서운 혹평을 남긴 바 있다. # 또한 미국의 로버트 게이츠 前 국방장관은 노무현 사후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 《DUTY》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나는 그가 반미성향(anti-American)을 가진 사람이며 아마 미친(crazy)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평을 했을 정도.
실제로 2002년 12월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이 당선된 직후 한 때 한미동맹이 깨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양국 정가에서 많았으나, 2003년 5월 참여정부 출범 후 첫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한데 대해 부시가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화답하면서 굳건한 한미동맹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북핵 문제를 놓고 부시가 강경책을 주문할 때마다 노무현이 반론을 펴면서 항상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냉랭했지만, 노무현이 한국 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덕분에 부시가 노무현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할 정도로[73] 한미 관계는 최악을 면했다. 관련 기사
<colcolor=#ffffff> 노무현 前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는 조지 W. 부시 前 미국 대통령 |
이처럼 부시가 직접 노무현의 10주기 추도식에 와서 좋은 말을 남겨준 것을 보면 인간적으로는 제법 좋게 평가했던 듯하다. [전문] 노무현 기리는 부시 추도사 "친절, 따뜻하고 강력한 지도자···영광이다"
9. 매체에서
대중매체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의 추태때문인지 나오면 까이는 사람으로 나온다. 심지어 본인재임시절에는 미국이 유발한 반미감정 때문에 특히 더심했다.9.1. 영화
- 2006년 무서운 영화 4 시리즈에서는 레슬리 닐슨이 연극을 했는데 무능하고 부정적이며 코미디적인 대통령으로 나온다. 이유인즉슨 외계인에게 인류가 정복당할때도 개그만 하고 분위기 파악도 하나도 못하는데다가 UN을 "언" 이라고 발음하고 국제연합에서 농담만 하는데다가 기계를 해괴하게 개조까지 해 알몸 상태가 되어 주변의 시선을 엿먹이는가 하면 그 기계를 실수로 잘못 작동까지 해 완전히 주변히 알몸으로 만드는 등 똘끼 가득한 행동만 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인도 총리를 뜬금포 폭행하는 건 덤.
2008년 개봉한 올리버 스톤 감독, 조시 브롤린 주연의 《W.》(2021년 국내 개봉명은 더 프레지던트)라는 영화는 조지 W. 부시를 주인공으로 한다. 리처드 닉슨을 소재로 끝내주는 대통령 영화를 만들었던 스톤 감독답게 부시를 가지고 파더 콤플렉스와 강박증, 가벼움과 무거움이 휘몰아치는 비극적 인물을 표현하였다.
- [[트랜스포머(영화)]|트랜스포머]에 나온 미국 대통령은 발만 나왔지만 말투나 행동으로는 어딜 봐도 부시.
- 《투모로우》에 나왔던 대통령 또한 아무리 봐도 약간 젊은 부시. 빙하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고받은 직후 한다는 말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75] 부통령은 아무리 봐도 딕 체니였다.
- 내 이름은 칸에서 칸이 줄창 쫓아다니는 대통령이 부시. 브렌트 멘델할이 분했는데 결국 칸이 테러리스트로 오해받았을 때 황급히 피하는 장면 한번 나오고는 등장하지 않다가 칸은 오바마랑 만난다.
-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에도 등장한다. 백악관에 불려온 베리 실과 복도에서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자신도 파일럿이었다며 은근 아는 체를 하다 아버지한테 불려가는, 다 큰 어른 치곤 상당히 칠칠 맞은 모습으로 묘사 된다. 대놓고 부시라고 나오진 않지만 배우의 외모와 파일럿이었다는 점, 그리고 아버지가 그를 부를때 '조지'라고 부르는 부분에서 빼박이다. 미국 배우 코너 트리니어가 분했다.
바이스(영화)에서는 샘 록웰이 분했다. 처음에는 아버지 부시의 파티에 나타나 술에 취해서 행패부리는 망나니로 나오면서 비웃음을 사지만, 나중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 분)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영입한다.
작중 묘사는 체니가 드리운 낚시줄에 걸린 무능한 꼭두각시. 보통 멍청이가 아니다. 부통령직이 빛 좋은 개살구란 걸 잘 알고 있어 별로 탐내지 않던 체니가 부시를 한 번 만나보고는 그의 어설픔에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다 확신해 생각을 바꿀 정도. 자신의 경험을 탐내 삼고초려한 부시를 만난 체니가 부시에게 "당신은 본능에 따라 결정을 하는 케네디형 리더죠. 아버님과는 달라요. 부통령의 업무 권한은 대통령이 결정하죠. 그런 면에서 제가 갖고 있는 의견을 말해보자면, (부통령이 되면)일상적인 업무를 담당하면 어떨까 합니다. 행정부를 감독한다던지, 군대를 관리하거나, 음... 그외에 에너지라거나, 외교 정책이든가요."라고 하는데 부시는 신나게 치킨 먹방을 하며 듣더니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구단주(= 대통령)나 돼서 4이닝때 투수 바꿀 순 없잖습니까. 그건 감독이 할 일이지"라고 넙죽 받아들인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라 웬만한 일은 주 정부 차원에서 처리하며, 연방 정부는 연방의 대표 역할로 다른 국가와 하는 일, 혹은 주 차원에서 맡기 힘든 국가적 규모의 일을 담당하기 때문에 국방, 외교, 행정을 이끄는 권한을 넘겨버리면 대통령은 할 게 없다. 에너지 관련 업무는 이름만 보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핵 관련 정책과 국내 전력 생산을 담당하기 때문에 핵심 업무다. 물론 영화적 과장이 조금 가미된 것으로, 체니가 사실상의 실권자라고 불릴만큼 어마어마한 권한을 지녔고 부시도 이를 용인한 것이 사실이지만 저렇게까지 홀라당 다 넘긴 건 아니다. 위에서 언급되듯 부시는 자기가 최고 권력자임을 확실히 했다.
- 영화 새벽의 저주에선 목소리로만 나왔지만 당시 재임중이던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인지라, 상당히 무능하고 부정적이게 묘사됐다.
- 헤롤드와 쿠마 2에서는 골수 대마초 중독자로 나온다. 테러리스트로 누명 쓴 주인공들을 사면하면서 자신도 정부를 안 믿는다며 셀프디스를 한다.
- 2021년, 9/11: 백악관 상황실, 그 안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나와 9.11 테러 당시 사건을 대통령 관점으로 서술해준다.
9.2. 소설/만화
대체역사 라노벨 《풀 메탈 패닉》에서는 죽는다. 정확히 이름은 안 나오지만 부시 대통령 아들내미인 관료라고 하는 걸로 봐서 확정적.《학원묵시록 HIGHSCHOOL OF THE DEAD》에서도 등장한다. 정확히 이름은 안 나오지만 좀비가 된 각료들 유사모습을 보면 결국 영부인에게 물려서 핵공격 승인을 최초로 하고 에어포스 원이 추락해서 죽는다. 감염되었기 때문에 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에서는 한국인 김갑환이 조지 W. 부시에 빙의했다는 설정으로 진행된다.
《피터 히스토리아》에서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정적인 인물로 나온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부시의 얼굴을 한 당나귀가 나오며 툭하면 헛소리를 하면서 이라크 전쟁과 십자군 전쟁을 긍정한다. 작 중 나타나는 시대를 뛰어넘는 제4의 벽개그/풍자 캐릭터로 등장한다.
9.3. 기타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는 성전기사단의 얼굴마담으로 뽑혔고 암살단의 지원을 받은 앨 고어를 성당기사단의 꼼수(투표조작)를 통해 눌러버리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 SCP 재단에서는 앨 고어의 몸에 씌인 SCP-4444가 대통령이 돼 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재단과 FBI UIU의 합동작전으로 총기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조지 부시의 몸에 잭 브라이트 박사의 인격이 담긴 팬던트를 넣는다는 정신나간 짓거리를 벌였고 그 뒤 그가 SCP-4444와의 선거전에서 승리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부시 대통령은 사실 잭 브라이트의 인격이 씌여 그가 부시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 플래시 게임 홈런왕 유상철 히딩크를 구해줘!에서는 최종 보스로 등장한다.
-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과 생년월일이 같다
- Ready or Not(게임)에서 LSPD 경찰본부내에 H 링컨 경사를 기념하는 전시품에 있는 설명문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당시 H 링컨 경사가 제임스 호튼 경관과 같이 민병대의 음모를 저지한 공로로 H 링컨 경사와 제임스 호튼 경관에게 직접 훈장을 달아줬다고 나온다.
10. 가족
자세한 내용은 부시 가문 문서 참고하십시오.- 아내: 로라 부시 (1946년 11월 4일 ~ )
- 장녀: 바버라 피어스 부시[76] (1981년 11월 25일 ~ )
- 사위: 크레이그 코인
- 외손녀: 코라 코인 (2021년생)
- 차녀: 제나 부시 (1981년 11월 25일 ~ )
- 사위: 헨리 체이스 헤이거 (1978년 5월 9일 ~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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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 조지 H. W. 부시가 허버트(H)가 빠지면 아들 부시는 조지 부시 주니어가 된다. 공교롭게도 2021년 기준 생존해있는 미국 전직 대통령 중 도널드 트럼프를 제외한 4명의 풀네임은 'n세'라고 볼 수 있다.(지미 카터는 주니어, 버락 오바마는 2세, 빌 클린턴은 3세, 그리고 조 바이든도 주니어) 조지 워커 부시도 사실상 여기에 속한다.[2] 1949년 출생, 1953년 사망.[3] 1955년에 출생했으며 로렌 부시의 아버지이다.[4] 1956년 출생.[5] 1959년 출생.[6] 1946년 출생. 1977년 결혼.[7] 1981년 출생.[8] 1981년 출생했으며, 쌍둥이이다.[9] 1946년 ~ 1977년까지는 성공회를 다녔다. 본래 부시 가문이 대대로 다니던 교회가 성공회로, 2018년 어머니 바버라 여사의 장례식이 거행된 장소도 성공회 휴스턴 성 마틴 성당이다. 조지 W. 부시 역시 젊은 시절에는 가족을 따라 성공회 교인이었지만, 결혼 후 아내가 다니는 감리교회로 옮겼다.[10] 기사[11] 당선 직후 20세기는 끝났다고 본인 입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게다가 취임했던 시기는 새로운 세기를 넘어서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했던 시기이다. 한편 21세기에 처음으로 취임한 대한민국 대통령은 동갑내기 노무현이다.[12] 9.11 테러 직후 9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었는데 이 기록은 자신의 아버지가 걸프 전쟁 직후 얻은 지지율과 함께 역대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 중 가장 높은 수치로 기록되고 있다.[13] 리먼 브라더스 파산 직후 20%대 초반으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이 기록은 지지부진한 6.25 전쟁으로 레임덕을 겪은 해리 S. 트루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곤경에 빠진 리처드 닉슨을 제외하면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14] 학력이 부진한 아이를 공교육이 놓치지 않겠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암기 위주 교육을 부추긴다는 현장 교사들의 막대한 비판에 부딪힌데다 자금마저 심각하게 부족해지면서 비판 받았다.[15] 그의 집권기간 빈곤층은 640만명에서 760만명으로 늘어났고, 건강보험 혜택을 못보는 사람은 3천900만명에서 4천500만명으로 불어났다. 재정은 2천3백억 달러 흑자에서 1조2천억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출처[16] 아버지 조지 H. W. 부시는 'HW 부시(HW Bush)'라고 부른다. 물론 아들을 그냥 'Bush junior'라고만 불러도 아들 부시라고 알아들으며, 같은 논리로 아버지를 'Bush senior'라고 불러도 알아듣는다.[17] 한국에서도 두 대통령을 직접 경험한 중노년층의 경우 혼동이 되므로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로 표현해서 구분한다. 한국의 이름 체계는 미들네임이 없으므로 조지 부시라고 하면 미국인들과 똑같이 혼동한다. 한국에서는 아들 부시가 상대적으로 더 유명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는 정확한 구분이 필요하기도 하다.[18] 9.11 테러 당시의 부시의 대응을 묘사한 것.[19] 타블로이드판인 G2이다.[20] 각각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을 그렸다.
수단 = 가뭄, 인도네시아 = 산사태, 칠레 = 화산 폭발
미얀마 = 사이클론, 중국 = 대지진, 미국 = 부시[21] 10여 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 재임기에 러시아는 소련 시절의 위상을 완전히 상실해버릴 만큼 큰 타격을 입었다. 대한민국도 김영삼 대통령 임기 말에 터진 1997년 외환 위기로 30여 년에 걸친 고속 성장 시대를 마감하고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였다.[22] 존 메케인은 괜찮은 보수주의자로 미국인에게 인식되어 있는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이었지만, 이미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여름 이후부터 전체적으로 평가가 낮아진 부시 행정부의 지지율과 같은 구도적 측면에서 매우 불리한 선거를 치렀다.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 마이크 허커비(아칸소주 주지사)와 밋 롬니(매사추세츠주 주지사)를 가뿐히 따돌린 존 메케인이지만 대선에서 득표격차는 컸다.[23]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서 이들 권한은 대통령의 전권사항이다. 프랑스에 빗대면 장관 인사권만 없었지, 체니가 대통령이었다 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24] 실제로 이슬람 인구가 60%에 육박하는 알바니아와는 관계가 좋았으며, 사담 후세인의 폭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라크인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25] 아버지의 국방장관이었다.[26] 반면 아버지는 중국대사, 유엔대사, CIA 국장을 모두 지낸 외교안보 전문가였다.그러게 아버지한테 자문 좀 구하지[27] 헨리 키신저는 생전에도 본인의 근시안적 외교 정책이 신냉전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들었고 사후에도 그렇다.[28] 이 때문에 당시 대통령 집무실을 뜻하는 오벌 오피스(Oval Office)에서 오럴(...) 오피스가 되는 치욕을 겪는가 하면, 의회에 대한 위증죄로 탄핵소추까지 당했었다.[29] 교장과 아는 사이었다고 한다. 2005년에는 아버지 부시가 풍산고를 방문했었다. 이는 이 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병산교육재단 이사장인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미국 정계와 연줄이 있기 때문이다. 정권 초마다 미국행 특사단에 매번 초대될 정도. 출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문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부시의 초청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30] 1980년대 중반까지 부시는 주당 수준을 넘어선 알코올 중독 증세게 시달렸었다. 1976년 9월에는 아버지의 고향집을 방문했을 때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어 150달러의 벌금형을 받기도 했는데, 2000년 대선 당시 이것이 재조명되어 민주당 측에서 이를 근거로 부시를 공격하기도 했다. 1986년 40번째 생일을 기점으로 술을 끊었지만, 2005년 무렵 스트레스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현재는 술을 가끔씩 즐기지만 이전처럼 중독 수준으로 마시지는 않는 모양.[31] 막상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성공회 신자였다.[32] 이 연구들은 톰 클랜시의 디비전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나중에 유명세를 얻는다.[33] 앞서 언급한 2차례의 시뮬레이션도 생물학 무기 혹은 그에 준하는 사태에 대한 대처법을 연구한 것에 불과하였고, 공중 보건의 개념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상 질병도 인플루엔자가 아닌 천연두였던 것이다.[34]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부시 가문은 트럼프를 매우 싫어해, 자당 대선후보에게 같은 당 출신 전임 대통령이 지지 연설을 해주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조지 W. 부시는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지지 연설을 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동생인 젭 부시의 정치 커리어를 트럼프가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기 때문이다.[35] 당장 2000년 플로리다에서 부시는 537표 차로 겨우 승리했다. 제수씨가 히스패닉이라는 이유로 부시를 찍어준 유권자가 당시 인구 1600만의 플로리다에서 과연 500명도 안 될까? 플로리다가 앨 고어에게 갔다면 부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36] 대선 초선때 자신이 무슬림에게 80% 가량 얻은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공화당 내 반이슬람 기류가 증가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삽질은 광범위한 무슬림의 심기를 건드려 이들은 민주당 지지층으로 돌아서게 된다.[37] 물론 트럼프는 정치에 초짜였던 것일 뿐 오랫동안 방송계에서 굴렀기 때문에 어지간한 정치인들보다도 각종 미디어에 빠삭한 사람이었다.[38] 실제로 아버지 부시가 대선 캠프에 자기 아들을 비서로 앉혔던 게 단순 혈연 때문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공사구분이 철저한 아버지 부시가 능력을 인정해 불러다가 비서 자리에 앉힐 정도면 조직을 꾸리고 캠프를 승리로 이끄는 데는 분명 재능이 있었을 거라고 보는 게 타당하기 때문이다.[39] 2차 임기 중간선거였던 2006년에서야 야당인 민주당이 상·하원을 탈환했기 때문에 셧다운까지 진행될 여지가 적기도 했다. 후임자인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가 모두 1차 임기 중간 선거 때부터 하원을 야당에 내주면서 고생해야했던 것과는 반대 상황이다.[40] 프랭클린 피어스, 제임스 뷰캐넌, 율리시스 S. 그랜트, 워런 G. 하딩, 허버트 후버 등이 꼽힌다. 그의 후임 공화당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역시 그보다 평가가 좋지 않고, 전술한 인물들과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 편들어줄 거리를 대자면 그랜트는 직업 정치인이 아니었으나 사실상 공화당이 추대하여 대통령이 되었고 스스로도 대통령직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딩은 공화당 내부의 권력 암투로 대통령 그릇이 아니었던 평범한 정치인이 추대된 것에 가깝다. 하딩은 그의 엄청난 부정부패가 아니었다면 꽤 괜찮게 평가받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후버는 대공황 때의 조치는 비판받을 대목이지만 적어도 전임 대통령 시기의 방치되었던 거품이 터진 거기도 해서 모든 게 후버 때문이라고 비판받는 건 좀 억울하긴 하며 후버 개인의 능력 자체는 행정 공직자로서는 유능했다.[41] 원래부터 자기 아버지의 대선 참모로까지 뛰었던 인물이었다. 즉 아버지가 대선후보로 선거할 때 2번, 본인 2번, 총 4번이나 대선을 뛰어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경험으로 선거에서 뭘 해야 이길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42] 이런 면모는 사실 아버지 부시한테 나타난다. 걸프전에 드러나듯이 미국의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데 주저함이 없지만, 동시에 그 한계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반미국가들과도 손잡는 철저한 현실주의 노선으로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면서도 자국의 이미지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반면에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소모시키면서도 패권 유지는커녕 반미정서만 폭발시킨 아들 부시였다. 실제로 아버지 부시가 일으킨 걸프전에서는 확실하게 승리를 거두어 지지율이 89%까지 뛰어오르게 했지만(단 경제문제 등으로 인해 재선에는 실패) 아들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은 아직도 미국 뒷목만 잡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최악의 괴물도 생겼다.[43] 이는 미국의 동맹국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파장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요소이다. 자칫하면 주변국들조차도 미국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줄곧 민주주의라는 이미지 하나에 주변국들의 시민들은 미국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이러한 미국의 가치를 추락시킨 것은 미국과 무조건적인 동맹을 하고 싶다는 이익요소마저도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44] 그래서 또 반대로 호주에서 유전이 나자 "거긴 민주주의가 이미 있단 말이야..." 라며 침울해하는 패러디가 있다.[45] 참고로 그 이전에 루마니아의 독재자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도 간단한 전치사를 헷갈릴 정도로 무식한 사람이었지만, 애당초 차우셰스쿠는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는 어찌 보면 더욱 가관인 게, 부시는 차우셰스쿠와 다르게 무려 하버드 대학교 MBA 출신이었던 사람이기도 하다.[46] 힙합 음악가인 제이 콜이 2014 Forest Hills Drive 앨범의 곡 No Role Modelz에서 샘플링했다.[47] 대개 부시의 말실수로 불리는 어록들은 대선후보 시절과 1기 행정부에 집중되어 있고 2기 행정부에서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48] 참고로 부시와 맞먹을 정도로 철자와 문법을 틀리고 상식부재의 발언을 반복한 댄 퀘일은 아빠 부시 시절의 부통령이었다. 즉 부시가 저런 발언을 일부러 했다면 퀘일의 흉내를 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정작 퀘일은 클린턴에게 처참하게 발렸던 인물이다. 퀘일을 흉내내서 친근한 공감대를 구성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굉장히 이상한 발상을 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49] 미국에서 someone that I can have a beer with, 즉 맥주 한잔 같이 걸칠만한 사람이란건 털털하고, 남이 다가기 쉬운 선량하면서도 배포가 큰 호남(好男)형에 대한 전형적인 설명이다.[50] 그래서 부시에 대한 만평을 찾아보면 하나같이 입가를 원숭이처럼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51] 질식사의 원인 중 하나가 미니 프레첼을 먹다가 기도가 막히는 경우도 있다.[52] 당시에는 러시아도 있었다.[53] 영화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식당 의자를 잡아당겨주는 것처럼[54] 참고로 참전 도중 까딱했다가 치치지마 식인 사건에 휘말려 죽을 뻔했다. 때문에 대통령으로서는 일본을 멀리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본을 싫어해 쇼와 덴노가 죽자 "이제야 일본을 용서할 마음이 생겼다." 라고 말을 했을 정도. 다르게 보면 아버지 부시는 공적 직무 수행에 개인적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55] Bernanke,'행동하는 용기',안세민 역,까치,2015,p10[56] 헤쳐나가다, 기습하다라는 뜻이지만 부시가(Bush) + 쳐죽이다(whacked)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다.[57] 네바다는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탈환했으니 제외.[58] 이 화집 판매 수익금은 전액 참전용사들에게 기부되었다. 부시 입장에서는 나름대로의 속죄 행위로도 보이지만, 본인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부상에 신음하게 한 장본인이라 그가 과연 이처럼 유유자적 예술을 즐길 자격이 있는가 질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59] 현재의 공화당 및 도널드 트럼프와는 달리 부시 가문은 젭 부시가 멕시코 출신 여성과 결혼하는 등 전통적으로 히스패닉 집단과 인연이 있는데다, 이민이 미국 국력의 원동력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어서 굉장히 친이민적이다. 조지 부시 역시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 내 불법체류자 1천2백만명에게 합법적으로 취업 후 체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이민개혁법안을 내놓았지만 양당의 반대로 결국 좌초되었다.[60] 아랍권 문화에서는 상대방을 신발로 가격하는 것은 큰 모욕을 주는 행위라고 한다.[61] 공교롭게도 이 과정에서 뒤에 비치된 성조기가 두 번째로 날아온 신발에 얻어맞았다.[62] 당장 당사자 본인의 고향 마을에 신발 모양의 동상이 있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가 있나.#[63] 직역하자면 '이 사람', '이 양반'이란 뜻으로 김대중을 비하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었다.[64]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을 지칭할 때는 보통 'Mr. President'라고 한다.[65] 참고로 전자가 재임하던 때에 김일성이 사망했고, 후자가 재임하던 때에 김정일이 사망했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들 중 임기 8년 모두 북한 지도자가 김정일인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다.[66] 부시는 대체 한반도인지 뭐시깽인지가 왜 중요한지를 집안 친구이며 사우디 왕족인 주미 사우디 대사 반다르 빈 술탄 알 사우드에게 물어봤다. 이에 반다르는 "그야, 한반도에서 전쟁 나면 거기에 있는 주한미군 수만명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매우 간단하게 이해를 시켜줬다.[67] 잭 프리처드 국무부 대북특사의 저서 『실패한 외교』에 정확히는 김대중이 대북 포용의 필요성을 설명하던 중 손으로 전화기 수화기를 가리며 ‘Who is this guy? I can’t believe how naive he is!'(이자가 누구야? 이렇게 순진하다니, 믿을 수 없군) 이라고 말했다. #[68] 김대중은 우려를 표명했고 시니어 부시는 아들이 저러다가 결국 북한에 대한 유화적 접근에 동의할 거라고 김대중을 안심시키려 했다고 전해진다.[69] 당시 국회부의장이었던 홍사덕이 '한국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며 부시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70] 여담으로 이날은 3회 지선이 있었던 날이다.[71] 당시 미국 의회는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다.[72] 아직 노무현 임기이다.[73] 당시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상당수 동맹조차 이라크 전쟁에 미온적이었던 터라 부시 입장에서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을 마냥 외면할 수가 없었다.[74] 노무현의 경우 자신의 대통령 임기 내내 부시와 임기를 같이 했다.[75] 투모로우의 감독 롤런드 에머리히는 골수 민주당 지지자로 유명하다.[76] 할머니와 동명이인이며 제나와 쌍둥이다.[77] 이래 봬도 버지니아주 부주지사인 찰스 헤이거의 차남이다.
수단 = 가뭄, 인도네시아 = 산사태, 칠레 = 화산 폭발
미얀마 = 사이클론, 중국 = 대지진, 미국 = 부시[21] 10여 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 재임기에 러시아는 소련 시절의 위상을 완전히 상실해버릴 만큼 큰 타격을 입었다. 대한민국도 김영삼 대통령 임기 말에 터진 1997년 외환 위기로 30여 년에 걸친 고속 성장 시대를 마감하고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였다.[22] 존 메케인은 괜찮은 보수주의자로 미국인에게 인식되어 있는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이었지만, 이미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여름 이후부터 전체적으로 평가가 낮아진 부시 행정부의 지지율과 같은 구도적 측면에서 매우 불리한 선거를 치렀다.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 마이크 허커비(아칸소주 주지사)와 밋 롬니(매사추세츠주 주지사)를 가뿐히 따돌린 존 메케인이지만 대선에서 득표격차는 컸다.[23]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서 이들 권한은 대통령의 전권사항이다. 프랑스에 빗대면 장관 인사권만 없었지, 체니가 대통령이었다 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24] 실제로 이슬람 인구가 60%에 육박하는 알바니아와는 관계가 좋았으며, 사담 후세인의 폭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라크인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25] 아버지의 국방장관이었다.[26] 반면 아버지는 중국대사, 유엔대사, CIA 국장을 모두 지낸 외교안보 전문가였다.